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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환경 투자 않는 국가…놀이터·주차장도 사야 하는 국민

by 이성근 2017. 5. 9.

민주주의는 목소리다]2주거환경 투자 않는 국가놀이터·주차장도 사야 하는 국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주거권은 인권국가의 기본 의무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생활을 누릴 권리를 뜻한다. 주거권은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강조하는 사회적 기본권의 핵심이다. 우리 헌법은 주거권을 명문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등을 통해 간접 규정하고 있다. 또한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정부가 주거 면적, 방의 개수, 시설 등 최저주거기준을 설정 및 공고하게 했다.

 

1948년 국제연합(UN)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해 많은 국제규범에서도 주거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강조하고 있다. UN 사회권규약위원회는 점유의 법적 안정성, 경제적 부담 가능성, 물리적 거주 적합성 등 일곱 가지를 주거권 내용으로 구체화했고, 강제퇴거 방지를 위한 각국의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 기본이어야 할 공공시설, 왜 상품이 되었나

손수레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주택가 골목이었다. 울퉁불퉁 좁은 통로를 미로처럼 헤매고 다녀도 아이들이 뛰어놀 만한 놀이터는 찾기 어려웠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를 빠져나와 언덕을 5분여 올랐다. 세상은 달라졌다. 직선으로 잘 정비된 길가에서 아이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단지 입구엔 일단 정지를 알리는 표지와 함께 차량 차단기가 위아래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3000가구가 모여 사는 서울 은평구의 대단지 고층 아파트였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이다. 고급 브랜드 아파트일수록 성채는 더 높다. 아파트 단지 입주자들은 정성스레 가꾸어진 화단과 산책길, 테니스장·배터민턴장과 같은 체육시설, 넓은 놀이터 등 쾌적한 생활환경을 누린다. 그러나 밖은 딴 세상이다. 정부가 도시 공공시설에 대한 투자를 방기한 사이 삶터의 쾌적함은 건설업자들이 제공하는 상품이 돼 버렸다.

 

()’ 이 된 대단지 아파트

일반 동네에서는 놀이터를 찾으려면 하세월이다. 모든 골목은 주차장화돼 있고, 있는 것이라곤 돈을 내고 가는 헬스클럽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를 소유하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 아니라 단지 공화국이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성냥갑이라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하면서도 주택 수요자들이 아파트를 열망하는 이유를 단지에 집중해 풀이했다. 박 교수는 아파트가 중산층의 재테크 수단이자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돼 수요가 몰렸다는 진단으론 불충분하다도시환경과 주거환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성장과 함께 1970~1980년대 급성장한 중산층은 체육·육아·보안·주차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살기 좋은 집에 대한 갈망을 보였다. 그러나 중공업 위주 수출 주도 경제성장에 몰두하던 정부에 시민들의 공공 편의시설 마련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자력으로 놀이터·주차장·체육시설 등이 갖춰진 괜찮은 동네와 집을 찾아 나섰고, 대단지 아파트는 그런 중산층들의 욕구를 채워줬다.

 

그렇게 잘 가꿔진 산책길과 놀이터, 깨끗한 주차장은 사적 소유물이 됐다. 아파트 역시 단지 내부에 테니스장, 놀이터, 커뮤니티센터를 갖췄다. 1·2단지 사이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가 단지 내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1단지 입구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마치 내부 편의시설처럼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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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공간 불평등과 구별짓기

잘 구분된 단지 안과 밖의 현격한 생활수준 차이는 일부 입주민들에게 구별짓기욕망을 불러왔다. 아파트 단지 입주자 커뮤니티에는 외부에 사는 학생들이 단지 사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것을 걱정하며 셔틀 엘리베이터 운영비용도 우리가 다 부담하는데(단지 외에 거주하는 학생이 들어오면) 단지 관리가 어려워지지 않을까라는 얘기가 오갔다.

 

일부 대단지 아파트는 단지 내 놀이터·노인정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통제하기도 한다.

 

단지의 주거환경은 이미 상품이 돼 버렸고 비구매자는 주변을 맴돌았다. 판교 고급 주택 단지 근처에 거주하며 두 살배기 딸을 키우는 김정미씨(30·가명)단지 안 놀이터가 시설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와 가 본 적은 없다거주자들 시선이 부담스러워 늘 생각만 하고 만다고 했다.

 

2003년엔 아파트 단지 내에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른 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분양과 임대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소셜믹스제도가 도입됐지만, 입주민들은 임대동·분양동, 임대층·분양층을 구분해 교류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단지 안팎 환경이 거의 같은 파리와 마드리드의 아파트는 한국처럼 폐쇄적이지 않다양극화가 심한 나라일수록 (주거환경) 인프라의 공정한 배분이 안 이뤄진다. (아파트 안팎을 구분 짓는) 장벽 같은 담장이 있는 곳은 한국과 브라질 정도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노인정 등의 소유와 유지·관리 책임도 지자체가 하도록 해 단지 주민만이 아니라 지역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를 위해선 정부의 정책 전환과 예산 투입이 필수적이다. 거주지의 편의시설과 녹지 등은 시민 모두에게 차별 없이 제공돼야 할 공공재. 이제는 주거환경의 민주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부동산으로 경기부양국가가 만든 투기판 주거권리가 깨졌다

주부 김화선씨(58·가명)는 평생 가장 잘한 일1990년대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마련한 것을 꼽는다. 관악구 주택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항상 이주를 꿈꿨다. 기회는 왔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급매로 나온 서초구 한 아파트를 5억원에 샀다. 20년 새 집값은 4배 이상 뛰었고 기존 집터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빌딩을 세웠다. 현재 은퇴한 남편과 월세 수입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2013년 신지영씨(35·가명)는 서울 화곡동 18평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저축 6000만원에 대출을 더해 15000만원의 전세자금이 들어갔다. 재계약하면서 집주인이 3000만원을 올리려 했으나 읍소해 겨우 1000만원으로 깎았다. 하지만 2016년엔 결국 경기도로 밀려나 16000만원짜리 전셋집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은 파주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전세금을 빼더라도 2억원이 넘는 빚을 지게 돼 양육비와 빚 고민이 마음을 짓누른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344조원에 달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가계 대출 중 부동산 관련 빚의 비율이 60%에 이른다. 그만큼 서민을 짓누르는 부동산의 무게가 크고, 가정경제는 물론 국가경제까지 위협하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청년층을 겨냥한 다방’ ‘직방같은 방 구하기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 앞 세대가 을 찾아 달려왔다면 지금 세대는 지상에 몸을 누일 한 칸을 향해 전력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도시의 주택 가격은 이처럼 미래세대의 행복추구권마저 축소시켜 놓았다.

 

1970년대 이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국민을 투기 광풍에 몰아넣었다. 1990년대 말 구리 아파트 분양 현장에 차려진 떴다방’, 1991년 서울 홍은동 재개발 철거 지역, 1993년 마포아파트 세입자 농성 장면,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 너머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단지 모습(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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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만든 투기부동산 불패라는 신흥종교

하지만 이 모두에게 무거운 인 것은 아니다. 김화선씨처럼 어떤 이들은 집값이 몇 배로 올라 월급쟁이 연봉으론 꿈도 못 꿀 거금을 불로소득으로 거머쥐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이들 삶의 격차를 이토록 벌려놓았을까.

 

“(전농동) 변두리에 토지붐이 일자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 자고 일어나면 뛰는 땅값에 채소농사를 짓던 토박이 주민들 중 몇몇은 거부가 되기도 했다.”(경향신문 1973123)

 

<부동산 계급사회>를 쓴 손낙구씨는 그 시절(1970~1990년대)에 아파트 신()을 모시고 살지 않은 사람은 바보라고 했다.

 

1970년대 이래 정부의 부동산 개발 정책으로 집값은 폭등을 거듭했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강남·잠실 일대를 개발촉진지구로 정하고 부동산투기억제세 등을 없앴다. 1975년엔 아파트지구 11곳 중 6곳을 강남·잠실 지역에 몰았다. 그 결과 1963~1977년 사이 강남 주택지역 지가는 176배 폭등했다. 당시 국세청은 목화·화랑 등 6개 아파트에서 투기이익을 좇아 전매된 경우가 41.7%에 이른다고 밝혔다.

 

1980년 경기침체를 택지개발촉진법 등 부동산 활성화로 타개하겠다고 선포한 전두환 정권은 양도소득세 완화 등 투기를 부채질하는 정책을 쏟아냈다. 이에 분양가 인상 도미노현상이 나타났고, 아파트 가격이 한층 더 널뛰었다. 한 예로 개포지역 아파트엔 복부인들이 몰려 아파트 값 절반이 넘는 4500만원이란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이처럼 있는 사람들의 돈 놓고 돈 먹기판이 된 부동산 정책 결과, 1989년 토지공개념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5%가 전체 땅의 65.2%를 소유하게 됐다.

 

부동산으로 만든 가짜 성장 성적표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2001년 건설경기 부양에 1조원을 쓸 경우 첫 해엔 0.42% 성장 효과가 나타나지만, 30년 후엔 0.31%의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1970년부터 25년간 투자유형별 경제효과를 분석한 결과였다. 단기 실적을 올리기엔 좋지만 장기적으론 마이너스가 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방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은 임기 내 실적에 목을 맨 역대 정권엔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외환위기 한가운데서 정권을 시작한 김대중 정부 역시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섰다. 1998년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을 시작으로 3년간 평균 4개월에 한 번꼴로 집 팔아 경기부양을 하는 대책들을 냈다. 외환위기 한파가 여유자금을 쟁여놓은 일부에겐 역설적으로 최고의 투자 적기가 된 것이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때도 정부는 부동산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이명박 정부는 무주택, 1주택 보유자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양도세 인하 등을 통해 얼어붙은 수요를 끌어올렸다. 이런 기조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박근혜 정부에 그대로 이어졌다. DTI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 등 부동산 부양을 골자로 한 초이노믹스빚 내서 집 사라는 거냐는 서민들 규탄이 이어졌다. 그 결과 지난해만 141조원 등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380조원의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심각한 뇌관으로 자리 잡았다.

 

좌절된 주택시장 정상화시도들

아파트 등 건물을 짓기 위해서 누군가 쫓겨나야 했다. 철거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도시의 잉여로 주변부를 떠돌았다. 민주화 의지가 들불처럼 일어난 1987년엔 서울시철거민협의회가 생겨나면서 도시빈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싹텄다. 서민들의 폭발하는 분노에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개발이익환수제 등을 골자로 한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1993년 금융실명제에 이어 부동산실명제도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투기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면서 토지 불로소득에 세금을 매기기 위한 종합토지부동산세(종부세)를 도입했다.

 

하지만 부동산 안정을 위한 시도들은 건설 세력과 부동산 자산가들의 집값 꺼지면 경기 꺼진다는 위협에 다시 자취를 감췄다.

 

1967년 투기열을 잠재우기 위해 도입된 투기억제세’(양도소득세)50년 동안 경기부양필요성이 대두될 때마다 십수번의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토지공개념 3법은 불과 10년도 안돼 헌법 불합치딱지를 받고 자취를 감췄다.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역시 세금 폭탄이라는 보수세력의 뭇매를 맞고 일부 위헌판결을 받아 유명무실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곧바로 법을 바꿔 종부세를 크게 약화시켰다.

 

집값의 폭등과 서민의 고통은 역대 정권과 건설세력, 자산가들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과대대표되는 현상이 맞물려 나타났다. “민주화 3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부동산에 관한 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과두지배체제”(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얻지만, 누군가는 전·월세 난민으로 떠돈다. 이처럼 부동산은 하위계층의 소득이 상위계층으로 이전”(남기업)되며 우리 사회 건강성을 위협하는 역분배의 대표적 통로가 되고 있다. 손낙구씨는 주거권 문제를 민주화 과제로 삼지 못했던 것이 민주정부의 가장 큰 패착이라며 ‘87년 체제를 넘어 생활민주주의로 나갈 핵심 과제로 주거 민주주의를 꼽았다.

 

>> “임대차보호법·보유세 현실화 필요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2008년 이미 100%를 넘어섰다. 산술적으로 모든 가구가 집을 한 채씩 갖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체 가구의 절반(46.4%, 2014)은 주거권 보장 요구를 외면당하는 민간임대주택시장에서 세입자로 남아있다. 이들 주거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주거 민주주의실현을 위해선 세입자 보호 주택임대차제도 도입과 장기적으로 주택 보유세 강화를 통한 주택시장정상화가 필수적이다.

 

역대 정부는 급등하는 전·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외곽으로 밀려나는 세입자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에는 소홀한 채 민간기업에 주택 공급 확대만을 독려했다. 주택 공급을 늘리면 시장이 안정돼 집 없는 사람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집을 가진 자가 매매차익과 임대소득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얻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다. 이들이 얻은 불로소득에 합당한 세금을 물리는 책임도 방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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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와 주택 자가보유자 이해만 대변해온 주택시장에서 주거 약자들의 삶은 적자생존에 내맡겨졌다. 1990년 서울에 최초의 영구임대아파트가 지어진 지 27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아직도 5%대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유럽 주요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외쳤지만 막상 당선이 되면 재정 부담과 부지 부족을 이유로 계획대로 추진하지 않았고, 업계와 자가보유자는 시장 왜곡’ ‘집값 하락을 외치며 반대했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도 대다수 세입자들은 민간영역에 남아 전·월세를 구할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민간임대주택시장 규제를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전·월세 계약기간이 다가오는 2년마다 월세나 보증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하는 떠돌이들을 위한 정책 도입은 번번이 좌절됐다. 10여년 전부터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전·월세 인상률을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임대차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등 주거권 보장 대책이 논의됐지만 자유시장 원리와 사적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 앞에 매번 무산됐다.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손낙구씨는 독일은 한국보다 자가보유율이 낮지만 집이 없어도 큰 불편이 없어 특별히 자기 집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주택임대차제도가 세입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자가점유율(46%, 2014)과 공공임대주택 비중(4.2%)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하지만, 임차인의 주거권과 임대인의 재산권이 대등하게 간주되기 때문에 전·월세 부담 때문에 이사를 다닐 일이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억제와 조세형평성 강화를 위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현실화도 과제다. 보유세 강화는 토지는 공적자산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어떤 집이 비싼 것은 정부나 사회가 도로·공원·학교 등 인프라를 건설해 가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라며 그 가치를 향유하는 사람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보유세라고 말했다.

주요국들이 부동산에 낮은 거래세와 높은 보유세를 매기는 데 한국은 정반대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주요국과 비교해 최대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를 도입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유명무실해졌다.

 

>> “주택시장 참여 못하는 서민, 정책 대상서도 배제공공주택 확대가 답

한국 사회는 1987년 민주화를 성취했고 외환위기 등의 부침이 있었으나 경제는 지속 성장했다. 주택보급률도 100%를 넘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850만 세입자 가구는 보증금·월세 압박에 시달리고, 청년들은 집이 아닌 을 찾아 헤맨다.

 

도시·주거 문제에 천착해 온 조명래 단국대 교수(사진)적어도 주거 부문에서 민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주거를 상품으로만 바라보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카페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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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이후 30년간 서민들의 주거권은 얼마나 신장됐나.

주거 부문의 삶은 더 열악해졌다.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해졌고 저소득층(1~2분위) 소득의 주거비 비중이 33%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주거비 비중이 20%를 넘으면 주거빈곤으로 본다. 부동산 자산 양극화도 심해졌다. 소득 하위 20%에 비해 상위 20%가 부동산을 64배 더 갖고 있다. 한국인 자산 가운데 80~90%는 부동산인데 그 격차가 이만큼이라는 것은 자녀의 교육 등 삶의 기회가 그만큼 (부동산 자산에 따라)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 주거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주거가 상품화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택정책은 오너십(소유)을 부추길 뿐 주택을 공공재로 보지 않는다. 서울의 경우 지난 30년간 주택보급률은 30% 늘었는데 소유율은 3~4% 느는 데 그쳤다. 정부는 (건설세력과 자산 기득권층 요구대로) 집 있는 사람들이 더 사도록 끊임없이 부추겨 왔다. 그런데 그런 흐름을 추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입자를 위한 정책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의 평균 주거기간이 11년이고 세입자는 3년이다. , 집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헌법상 주거권을 차별적으로 누려야 하는가. 적어도 주거 부문에서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부동산 불패신화는 계속될까.

개발국가 시대를 거치면서 부동산이 국민경제에서 OECD 평균의 두 배 정도 강고한 영역을 구성하게 됐다. 건설업 연관 세력, 이미 부동산으로 자산을 형성한 세력이 기득권화해 집값을 올리도록 계속 압력을 넣어왔다. 사실 2008년 이후엔 집을 사지 않으려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이를 비정상이라고 보고 굳이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겨 (실수요가 아닌) ‘가수요를 일으키는 정책을 반복적으로 내놨다. 꺼져가는 부동산 불패신화 불씨를 살려놨다. 하지만 이 신화는 곧 무너지게 돼 있다. 올해와 내년 주택시장 공급량이 60~70만호인데 이는 2020년까지의 연간 적정 공급량 39만호의 1.5배 이상이다. 미분양·미입주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이런 식으로 왔다.”

 

- 세입자를 위한 정책이 부족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서민들은 주택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니 아예 정책 대상에서 배제해 버렸다. 이들을 대변하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없다. 주택공급 때는 청약제도 등으로 피분양자가 더 저렴하게 집을 살 수 있도록 관리하면서 전·월세에 대해선 가격을 신경 쓰려 하지 않는다. 한국의 전체 세입자 가구가 850만가구이고 전세보증금이 약 450조원이 되는데 이 부문은 완전히 블랙마켓(암시장)이다. 임대소득엔 과세도 하지 않는다.”

 

- 서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주거정책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 이를테면 주거를 완전히 시장에 맡기지 않기 위한 대책 중 하나가 전체 가구의 15~20%가 공공주택에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준공공 혹은 건설임대·매입임대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지만, 정부가 돈을 들여 실제 공급하는 양은 연간 2~3만호 남짓하다. 전체 가구의 반(서울은 60%) 이상이 세입자 가구인데 왜 이들을 위한 정책은 펴지를 않나. 많은 전문가들이 건설업계에 기생하고 있고 국토교통부도 카르텔의 한 멤버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주택정책을 주거권 보호 차원에서 펼칠 수 있도록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출처: 경향 17.2.27





불평등 해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2.4 프레시안

[복지국가SOCIETY] 지속 가능 발전의 세 축, 경제 성장·불평등 축소·환경 보호

2015925, 유엔(UN) 가입국들은 유엔 정상회의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 의제(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를 채택했다. 이 의제에 따라, 각 국은 경제 성장, 사회 발전, 환경 보호 간의 조화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17개의 상호불가분의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이 목표의 구체적 실천을 위한 169개의 세부 목표(targets)를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이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의제의 공론화 수준이 낮고, 특히 정부의 이행 의지가 매우 약해 기대됐던 성과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논의하는 것은 사회적 의미가 있다


'사회 발전' 측면의 지속 가능한 발전

2015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사회 발전, 경제 성장, 환경 보호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논의와 구별된다. 특히 사회 발전에 더 강조점을 두어 빈곤 퇴치, 사회 보호(social protection) 강화, 고용 강조, 임금 및 노동 조건의 개선, 주거 및 도시의 물리적 제도적 환경 개선, 무엇보다도 모든 종류의 불평등 축소를 포함했다. 왜 기존과 달리 사회 발전이 기반이 되는 확장이 일어났을까? 지속 가능성의 원리들이 비로소 제대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성은 세 개의 원리에 기초한다.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리이다. 개인, 조직, 사회 등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초를 다진 브른트란트 보고서는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정의했다. 즉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을 남겨 놓아야만 미래에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 원리는 개인, 조직, 사회의 구성 요소들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엮여 있다는 원리이다. 사회 발전, 경제 성장, 자연 보호는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영역의 변화는 다른 영역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유발하며, 이 유발되는 변화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지난 30년간 전 세계는 경제 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사회 발전을 위한 요소들을 축소시켜왔다. 이론상으로는 경제 성장이 사회 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창됐지만, 현실에서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강화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사회 발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이룬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에서도 경제 성장의 강조는 사회 발전의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가난한 구성원들의 수를 증가시켰다.


한 영역의 강화가 다른 영역을 갉아 먹는다면 그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이로부터 세 번째의 원리가 도출된다.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변화를 최대화하고 부정적 변화는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를 운영할 때 한 영역의 변화가 다른 영역의 변화를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하며 동시에 부정적인 변화는 최소화하도록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회 발전은 경제 성장의 조건이자 경제 성장 그 자체

이 세 가지 원리들은 특히 사회 발전과 경제 성장 사이의 관계를 더 명확히 규정한다. 사회 발전은 구성원들이 마주친 삶의 문제들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 해결하는 관행이나 제도들을 강화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다. 사회 발전은 경제 성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유발 관계가 유엔이 사회 발전과 경제 성장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기제가 작동한다.


첫째, 사회 발전은 결국에는 생산과 소비로 이뤄지는 경제 성장의 조건이 된다. 예를 들어 보건 의료 제도가 잘 정착되면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강화된다. -가정 양립 정책이 잘 구축되면 여성의 우수한 능력을 생산에 사용할 수 있어서 생산성이 향상하고, 조직 문화가 변해 생산 과정의 효율성이 증가한다. 결국 사회 발전은 경제적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의 관행과 제도들, 특히 사회보험, 사회 부조, 사회 수당, 사회 서비스 등은 구매력의 증가를 낳는다. 구매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 여력이 늘어나는 것이며, 결국 생산이 증가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마련된다.


둘째, 사회 발전은 그 자체가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경제 성장은 물건의 생산과 소비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사회 서비스는 사회 보장의 네 개의 핵심 중 하나이고 사회 발전의 한 요소이다. 사회 서비스 제공 체계를 잘 구축하면 이 영역에서의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고, 이는 곧 경제 성장의 일부를 이룬다. 즉 사회 발전의 강화 자체가 경제 성장의 일면이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 서비스를 시장에 맡기면 제공이 덜 되거나 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서비스의 영역이어서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돈이 없거나 절약하기 위해 소비를 포기하여 미충족의 상태로 고통을 감수하거나, 자기 스스로가 서비스의 제공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에 맡기면 사회 서비스 시장은 그 규모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사회 서비스를 사회적 연대에 의거하여 제공하는 것은 이런 불합리한 결과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회 발전이 곧 경제 성장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셋째, 사회 발전은 사회적 비용을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 보장이 미비하며, 이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 갈등과 미충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 비용들은 사회 보장이 제대로 구비되었다면 발생하지 않을 비용들이다. 따라서 사회 보장을 위해 지금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결국에는 곧 다가올 미래의 사회적 비용을 없애는 것이며, 곧 다가올 미래에 경제 성장을 위해 투여할 자원을 그만큼 더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곤율의 감소가 경제 성장을 가져 온다는 것이 정설로 인정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요컨대, 유한한 자원을 더 합리적으로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사회 발전은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빈곤한 삶을 유지하는 것을 지속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할까? 상식의 수준에서 답은 '아니다'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확보해야 함을 전제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모든 인간이 삶의 질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삶을 세대 차원에서도 유지하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브른트란트 보고서의 개념에서 "충족시켜야 할 필요"라는 것은 바로 삶의 질 개선인 셈이다.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것은 수준의 문제이다. 어느 수준까지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가가 핵심이다. 수준은 크게 최저선, 적정선, 최대선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최저선은 삶의 질이 적어도 이 수준은 넘어야 아픔과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저 소득 보장이나 최저임금 등이 보장하는 수준이 대표적 예이다. 하지만 인간은 최저선을 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충분하다거나 적절하다고 여기는 수준 또는 아픔과 고통이 양산되지 않는 수준, 즉 적정선을 넘어서야 비로소 삶의 안정감이나 편안함을 가진다.


이런 수준의 문제와 결부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각 국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최빈국, 개도국, 선진국은 추구하는 수준이 서로 다르고 정책 방향과 정책 도구에서도 상이하다. 빈곤의 퇴치는 주로 최저선을 넘자는 것이다. 최빈국이나 개도국의 경우에는 최저선을 넘기는 것이 핵심 목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나 선진국이 되기 전 단계의 국가들은 최저선이 아닌 적정선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적정선을 추구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보편주의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지속 가능발전목표(SDGs)의 기본 정신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No one is left behind)'이다. 어느 누구도 배제함이 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편주의가 기반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보편성은 이중의 고려가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그동안 소외의 대상이 되었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들은 주로 여성, 장애인, 저소득층, 영유아,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등을 주요 수혜 대상자로 삼는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구성원에게 자원 배분이 돌아가야 하는데 특정의 구성원인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자원 배분을 함으로써 보편주의를 위반하게 된다.


여기서 정책이나 제도가 겨냥하는 대상과 대상자를 구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상이란 제공되는 특정의 재화나 서비스 그리고 규제를 의미하며, 대상자란 수혜를 받는 구체적인 구성원을 의미한다. 대상은 의료 서비스일 수도 있고 현금일 수도 있으며 고용 보장이라든지 임금 보장 등의 법적 규제일 수도 있다. 대상자는 모든 구성원일 수도 있고 사회적 약자일 수도 있다.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가 겨냥하는 대상은 빈곤 퇴치와 같이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하게 가진 욕구와 필요들로서 보편적인 것이다. 반면, 지속 가능한 발전의 주요 대상자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보편주의를 위반하는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은 보편적인 욕구와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의 보편성에 기초한다는 점과 궁극적인 목적이 대상자의 보편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상자로 삼는 것은 보편주의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선별적 보편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우리나라에서 갖는 한계들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여러 긍정적인 측면들이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의 적용은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총괄할 조직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 현재 총괄 조직은 환경부 소속 자문위원회인 지속 가능발전위원회이다.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사회 발전, 경제 성장, 자연 보호라는 세 개의 축을 포함하는데, 우리나라의 총괄 조직은 환경부에 속해 있다. 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주로 자연 보호에 한정되어 이해되는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우리나라가 최근 유엔이나 유럽연합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총괄 조직의 위상을 높이고 활동 영역을 넓히는 작업이 시급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전 영역을 두루 포괄하는 종합적인 발전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에 총괄 조직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은 범정부간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이 총괄 조직은 각 관련 부처들의 담당자들을 구성원으로 포괄하여 각 부처들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한계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포함된 사회 발전 자체와 연관된다. 유엔이 제시하는 사회 발전은 사회적 결속에 초점을 맞추고, 그 구체적인 수단으로 빈곤 퇴치, 불평등 해소 등이 제시되며 '선별적 보편주의'에 기반을 두고 특정의 대상자들을 골라 자원을 배분한다. 하지만 적정 수준의 삶의 질을 영위하는 것은 사회적 결속을 위한 제도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결속은 사후 처방과 같은 것으로, 현실에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인의 노력들이 적절한 결과를 낳지 못했을 때 이를 보완해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 특히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이 최근에 사회적 결속을 강조하는 것은 예방적 성격의 사회보호 제도들이 이미 도입 안착되어 있다는 맥락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고용 보장, 노동권 보장, 적정 임금의 보장 등이 규제를 통해 제대로 이뤄지고 있고, 사회 보험, 사회 서비스, 사회 수당 등에 자원을 부가적으로 투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비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기반들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미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빈곤이나 불평등의 해소가 정책 결정에서 우선권을 갖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와는 전혀 다른 맥락을 갖고 있다. 고용 보장이 매우 취약하고 노동권과 적정 임금의 보장은 먼 나라 이야기이다. 사회보험, 사회 서비스, 사회 수당 등도 취약한 상황이다. 따라서 '선별적 보편주의'에 기초한 제도들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과는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이 전제로 이미 갖추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먼저 시급하게 복지국가를 제도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1차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고용과 노동 부문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사회 보험 제도들은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야 하며, 사회 수당을 전격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사회 서비스는 적절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제공 체계 자체가 질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거론해야 하는 한계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취약함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특징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구성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참여 보장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일이 자신의 일임을 인식하게 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런 주체성의 확립은 더 나아가 자율성의 확립으로 연결된다. 참여 보장은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자신의 자유를 향유하는 데 스스로를 규율할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바로 이 민주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고, 그것을 구축할 정부나 정치권의 의지도 매우 낮은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 당장 민주적 거버넌스를 도입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실장


Patti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