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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는 교육일 뿐? 팔짱 낀 책임자 815 시사인
한 해 100명 정도가 군대에서 자살한다. ‘윤 일병 사건’처럼 그 이면에는 폭력이 있다. 그러나 군 사법체계 탓에 솜방망이 수사와 처벌이 반복된다. 책임자들은 징계조차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월6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 ‘나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든 부모들이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유가족협의회’ 소속 한 어머니는 차라리 윤 일병이 부럽다고 하소연했다. 그녀는 “적어도 윤 일병은 부대에서 무슨 일을 겪었고 왜 죽게 되었는지라도 밝혀지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이들은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자살로 처리해, 아무런 예우도 명예회복도 없이 내치는 군의 현실과 폭력 문제를 고쳐달라”고 호소했다.
군대에서 자살 사건은 매년 100건가량 일어난다. 자살 이면에는 윤 일병 사건과 비슷한 구타 등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 수사부터 처벌까지 사고가 난 부대의 사단장 이상 지휘관이 사법체계를 운영하는 탓에 솜방망이로 끝나기 일쑤다. 특히 지휘·감독 책임이 있는 간부들은 징계조차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에서 한방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박 아무개씨(당시 20세)는 2011년 1월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2월에 작성한 군의 면담·관찰 기록사항에는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무사하게 군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 박씨가 같은 해 8월 배 안에서 로프를 이용해 스스로 목을 맸다.
ⓒ시사IN 신선영 국방부 앞에서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유가족협의회’가 기자회견을 했다.
해군 헌병대가 ‘변사 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수사 결과, 잦은 폭력이 원인이었다. 3월 한 소속함에 배치된 박씨는 숨진 8월까지 선임병 11명으로부터 맞았다. 특히 선임병 4명은 “네 동기생은 잘하는데 너는 못한다” “왜 후임병 관리를 제대로 못하느냐”라며 박씨를 지속적으로 때렸다. 이유 없이 맞는 날도 많았다. 계속된 구타는 심리적으로 건강하던 그를 입대 7개월 만에 자살로 몰아갔다.
심층 면담이나 자살 예방교육 이뤄지지 않아
박씨가 숨진 후 조사 과정에서, 소속함 장병의 62%가 근무 중 구타 및 언어폭력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씨가 자살할 당시 또 다른 후임병도 선임병에게 맞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폭력이 만연한 부대였지만 심층 면담이나 자살 예방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박씨를 구타한 허 아무개 병장 등 선임 4명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각각 벌금 150만원, 100만원, 30만원, 3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박씨의 자살은 직무와 관계된 죽음이라며 지난해 10월 순직 처리를 권고했다.
군대 내 폭력은 ‘교육’으로 포장되었다. 2008년 8월 해군에 입대한 강 아무개씨(당시 20세)는 소속 부대에 전입된 직후 이런 메모를 남겼다. “또 ‘구타 교육’을 받았다. 본부대에서만 왜 이런 일이 터질까, 나도 좀 편안히 지냈으면 좋겠다.” 강씨는 정훈교육 중에 졸았다고 뺨을 맞고, 청소를 하다 배를 걷어차이고, 제설작업을 하느라 늦었다고 종아리를 가격당했다. 본부중대장 인 아무개 중위와 본부대장 권 아무개 대령 등은 이런 잦은 폭행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결국 그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입대 6개월 만인 2009년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 수사기관은 폭력을 행사한 이 아무개 일병을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이 일병은 해군 1함대 보통군사법원에서 징역 6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선임병들의 폭행을 묵인한 인 중위, 권 대령에게는 지휘·감독 책임을 전혀 묻지 않았다.
국방부 시계는 사고 나면 돌고 돈다
군에서 사건만 터지면 위원회가 꾸려지고 대책이 제안되고 국방부가 이를 미온적으로 채택한다. 이번에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옴부즈맨 제도와 군 인권법 제정은 이전 정부에서도 제안되었다. 결국 실천이 문제다. 고제규 기자 | unjusa@sisain.co.kr
또 만들어졌다. 8월6일 전역 병사나 부모, 시민단체 관계자가 포함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었다. 위원회 산하에 복무제도, 병영문화와 환경, 장병교육과 윤리 등 3개 분과위를 만들어, 오는 12월 ‘병영문화 혁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지난 6월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 발생 한 달 뒤 국방부가 내놓은 대책이었다. 윤 일병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위원을 보강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땜질 위원회’라는 비판이 나온다. 군에서 사건만 발생하면, ‘위원회 설립→대책 제안→국방부의 미온적 채택’이라는 전철을 밟아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폭력적인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며 팔소매를 걷어붙인 것은 김대중 정부가 처음이다. 이전의 병영문화는 ‘기강 확립’이 목표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1999년 6월 국방부는 ‘신(新)병영문화 창달 종합추진계획 시안’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보급해 컴퓨터·생활영어 등 사회에서도 쓸 수 있는 특기를 장병들이 배우게 하겠다고 밝혔다. 또 표준 내무생활 프로그램도 개발해, 소대(40여 명) 단위로 움직이던 기존 내무생활을 분대(10명)별로 바꿈으로써 개인 시간을 보장하는 새로운 병영문화를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국방부는 “전투력도 높이고 동시에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신병영 문화의 목표”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연합뉴스 8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한민구 국방장관(오른쪽)이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일벌백계 책임론’을 말했다. 국방부는 다음 날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첫 회의를 열었다.
국방부의 홍보와 달리 현장에서는 폭력적인 병영문화가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2001년 4월 해병 2사단에서 이 아무개 일병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원인은 고참들의 상습 폭행이었다. 그런데도 해병대는 이번 윤 일병 사건과 똑같이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군대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 것 자체가 처음인지라 파문이 커질 것을 우려한 해병대사령부가 국방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인권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병영문화 개선에 나선 것은 참여정부였다.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8월 육군은 ‘사고 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2005년 1월 훈련소 인분 사건이 터졌다. 논산훈련소 이 아무개 대위가 화장실 위생이 불량하다며 정신교육을 받던 훈련병 192명을 집합시킨 후 인분을 손가락으로 찍어 동시에 입에 넣으라고 강요한 것이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사과했지만, 5개월 뒤 GP (감시초소) 총기사고라는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경기도 연천군 전방부대에서 김 아무개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터뜨리고 총을 난사해 병사 8명이 숨졌다. 김 일병은 상관들에게 언어폭력 등 괴롭힘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를 계기로 국방부는 민·관·군 합동으로 ‘병영문화 개선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번 윤 일병 사건 뒤 만들어진 병영문화 혁신위원회와 구성과 형식이 유사하다. 민간 위원 9명, 국방부 위원 9명으로 만들어진 당시 위원회는, 윤 일병 사고 이후 대안으로 거론되는 군 인권법 제정이나 독일식 군 옴부즈맨 제도, 군 사법체계 개혁 등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특히 옴부즈맨 제도는 징병제를 시행하던 독일을 벤치마킹했다. ‘제복 입은 시민’을 지향하는 독일군은 독일 연방의회에 국방감독관(옴부즈맨)을 두었다. 군대에 대한 의회의 통제를 제도화한 국방감독관법에 따르면, 군인은 국방감독관에게 의견을 제출할 권리가 있고, 국방감독관은 국방장관으로부터도 정보 요구권이나 문서 열람권을 보장받았다. 국방부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국방감독관은 독일군의 인권 지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당시 병영문화 개선대책위원회도 이 옴부즈맨 제도의 장점을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군의 조직적인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다.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정상모 평화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은 “군대문화를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노무현 정부였는데도, 옴부즈맨을 국회 산하에 두는 것을 두고는 군 고위 인사들의 반대가 심했다”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군 최고 인사들은 기강 확립을 위해서는 폭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8월4일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김흥석 국방부 법무실장(위)이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군의 반발로, 국회 산하가 아닌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재 국민권익위원회)에 옴부즈맨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위상은 물론이고 조사나 자료 요구를 강제할 권한도 대폭 축소되면서 옴부즈맨 제도는 시작부터 탈색되었다. 정 이사장은 “옴부즈맨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쪼그라들어 설치되었다”라고 평가했다.
당시 위원회가 내놓은 군인복무기본법(군 인권법)도 빛을 보지 못했다. 병사들의 기본권을 보장한 군인복무기본법은 2007년 입법 예고까지 되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되었고, 2008년 5월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병영문화 개혁 손 놓으면 ‘군 폭력 지수’ 높아져
병영문화 개선은 이명박 정부 들어 매우 축소되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국방부는 ‘군 재조형’ ‘전투형 군대 육성’을 국방 개혁 기치로 내걸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첫 국방부 장관을 맡은 이상희 장관은 ‘나사 풀린 군의 기강을 잡아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겠다’라면서 군의 재조형(Reshaping)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병영문화 개선보다는 간부와 병사의 안보의식을 높이는 데 집중하면서 국방부의 인권시계는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2010년 터진 천안함 사건도 국방 개혁에 찬물을 끼얹었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전투형 군대 육성이 국방정책의 핵심 화두가 되었다. 결국 2011년 7월 해병대 김 아무개 상병의 총기난사 사고가 터졌다. 김 상병 사건은 선임병들의 가혹 행위와 ‘해병대의 기수 열외’가 원인으로 꼽혔다. 이때도 국가인권위원회가 군 인권법 제정을 권고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군 관련 진정사건의 추이만 보아도, 병영문화 개혁에서 손을 놓으면 ‘군 폭력 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접수된 사례는 80건 이하였다. 2003년 73건, 2004년 61건, 2005년 65건, 2007년 80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2008년 89건, 2009년 96건, 2010년 117건으로 점점 늘더니, 전투형 군대 양성이 본격화된 2011년에는 무려 135건이나 접수되었다. 군에서 구타(폭행사고)로 형사 입건된 사건만 봐도 2009년 1237건, 2010년 1177건에서 2011년에는 1526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서는 옴부즈맨 제도나 군 인권법이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9년 전에 같은 대안을 내놓았던 정상모 이사장은 “근본 대책은 다 나와 있는데 실천하지 않는 게 문제다. 실행하지 않으면 사고는 또 터진다”라고 말했다
그 내무반은 지옥이었다
군대 내 폭력으로 사망한 고 윤 일병. <시사IN>은 1000쪽이 넘는 수사 기록을 입수해 이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기록에는 군림하는 최고참, 폭력을 학습한 동조자, 침묵하는 다수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14년 만에 군대 내 폭행 사망사건이 또다시 일어났다. 사병 6명이 근무하던 의무대 안에서 ‘짬밥(군복무 기간)’순으로 폭력을 대물림했고 결국 최말단인 윤 아무개 일병(21)은 사망했다. <시사IN>은 1000쪽이 넘는 윤 일병 사건의 수사 기록을 입수했다.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수사 기록에는 피해자 윤 일병과 가해자인 간부 유 아무개 하사(23)를 비롯해 병사 이 아무개 병장(26), 하 아무개 병장(22), 이 아무개 상병(21), 지 아무개 상병(21), 이 아무개 일병(21, 이상 입대순)이 등장한다.
기록에는 군림하는 최고참, 폭력을 학습한 동조자, 무능한 간부와 더불어 침묵하는 다수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군이라는 폐쇄된 조직 안에서 그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고 또 방조자였다. 주동자 격인 이 병장까지도 자신이 전 부대에서 후임 병사이던 시절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다.
드러나지 않은, 침묵의 가해자는 또 있었다. 윤 일병이 죽을 때까지 맞는 장면을 목격한 병사들이다. 윤 일병이 맞는 중에도 의무대에 약을 받으러 온 병사가 많았지만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가해 장면을 보고도 눈을 감았다. 사건의 전모를 들여다볼수록 폭력에 무감해진 군대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수사 기록에 첨부된 현장 검증 사진들. 가해자들은 머리를 때리거나,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 시키거나, 가슴을 차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맨 위 부터). 피해자가 쓰러져 호흡을 못하자 심폐소생술을 했다.
군 생활이 어려워도 끝까지 참겠다던 윤 일병
지방의 한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한 윤 일병은 2학년 2학기를 마친 직후인 지난해 12월9일 육군에 입대했다. “종강과 입대일 사이가 너무 짧아 보지 못한 친구와 중·고등학교 은사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군대에서 진짜 사나이가 되겠다”라는 야무진 포부를 밝혔다. 군대는 “자신을 조금 더 많이 성장시킬 수 있는 곳”으로 여겼고, 상관은 “존경하고 따르며 사랑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라며 갓 입대한 소감을 군 신상기록에 남겼다. 군 생활 중 적응이 어려워질 경우에는 “가장 먼저 가족을 생각하며 한 번 참고, 친구들을 떠올리며 두 번 참고, 마지막으로 옆에서 고생했던 전우·동기를 떠올리며 참아낼 것이다”라고 썼다. 다만 유격훈련이 걱정이었다. 스스로 운동신경이 부족하다고 여겨서다. 그래도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속 ‘구멍병사 샘 해밍턴’이 그랬던 것처럼 끝까지 도전하고 참아내겠다고 다짐했다. 자필로 쓴 글 속의 윤 일병은 군기가 바짝 든 초병이었다.
윤 일병은 신병 교육이 끝나고 2월18일 경기도 연천 28사단의 한 포병부대로 전입했다. 원했던 의무병이 되었다. “의무병으로서 많은 실무 경험과 구급법 등을 배우고 익혀 장래의 간호사가 되는 데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라는 바람이 이루어졌다.
전입 초기, 그는 활기차고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질문도 많이 하고 배우려는 자세였다고 의무대 생활을 같이 했던 맞선임(바로 위 선임) 이 일병은 기억했다. 초임병은 약품 이름과 병사 및 간부 연명부 등을 암기해야 했다. 한 번에 전부 외우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수첩에 일일이 적어서 항상 상기하고 다녔지만 선임 이 병장의 시험은 가혹했다. 대답을 머뭇거리면 “선임 말을 무시하냐” “만만하게 보이냐”라며 폭언을 했다. 한 개라도 틀릴 경우 손과 발이 날아왔다.
ⓒ연합뉴스 8월5일 윤 일병 사건 가해자(포승줄 묶인 이)들이 28사단 군법원에서 호송차량에 오르고 있다.
괴롭힘의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세졌다. 3월 초, 이 병장은 생활관 안 관물대에 윤 일병을 밀어넣고 1시간 동안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옆에서는 이 상병과 지 상병이 과자를 먹을 뿐 말리지 않았다. 이 병장은 이들이 먹던 과자를 바닥에 던지며 개처럼 먹으라고 윤 일병에게 지시했다. 앞으로는 말할 때도 멍멍 소리를 내라며 “너는 인간이 아니다. 짐승이다. 개처럼 살아라”고 말했다. 윤 일병은 시키는 대로 과자를 먹고 멍멍 소리를 냈다.
3월16일에는 이 병장이 윤 일병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미친 듯이 계속 때린 적이 있다(4월8일 이 상병 진술).” 윤 일병은 계속 맞으면서 “살려주십시오, 한 번만 봐주십시오”라고 소리를 쳤지만 폭행은 계속됐다. 이 상병은 이 장면 또한 그저 바라만 봤다. 그는 이 병장의 숱한 폭행을 말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말릴 생각은 했었지만 (하지 말라는) 그 말을 하면 나도 똑같이 당할 거 같아 못했다”라고 헌병 조사 때 진술했다.
교육과 군기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폭력은 수시로 자행되었다. 이 상병은 생활관 내 폭행에 대해 “교육을 시킬 목적과 군기도 잡으려는 행동이다”라고 주장했다(4월8일 헌병 조사). 생활관 내 최고참이자 나이가 가장 많은 이 병장이 주로 윤 일병에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생활관 인원 6명 중 가장 말단인 윤 일병은 다른 이들에게도 얻어맞았다. 분대장인 하 병장은 윤 일병이 동문서답을 한다는 이유로 때렸다. “오늘 뭐 했냐”라고 물으면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오늘 할 거 다 했냐”라고 물으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는 이유였다. ‘정신 차리게 할’ 목적의 손찌검이었다고 하 병장은 주장했다.
사병 6명이 근무하던 의무대에서 대물림된 폭력
윤 일병의 맞선임인 이 일병도 그를 때렸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인 4월5일 점심시간이었다. 기마 자세를 하고 있는 윤 일병을 가리키며 최고참 이 병장은 이 일병에게 “맞선임인 네가 관리해라”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이 병장은 이 일병의 가슴을 한 대 치며 “너 화를 돋우려고 일부러 때리는 거야”라고 귓속말을 했다. 말로만 하면 안 되니 윤 일병을 때리면서 가르치라고 지시한 것이다. 결국 이 일병도 윤 일병을 때렸다. 이때 의무대 안에는 의무병들이 다 있었던 걸로 이 일병은 기억했지만, 이 병장의 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합뉴스 8월5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여야 위원들이 윤 일병 사건이 벌어진 28사단 포병대대 의무대 내무반을 찾아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사병 6명이 근무하던 의무대 안에서 그들은 폭력을 대물림했다. 이 일병은 윤 일병이 부대에 전입한 2월 전까지는 윤 일병 때와 똑같은 이유, 즉 ‘행동이 느리고 동문서답을 한다’며 선임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 병장은 지난 1월 연명부 암기를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 일병에게 치약 한 통을 먹게 했다. 또 침대에 눕히고 말을 하게 한 다음 생수통에 가득 담은 물을 얼굴에 부었다.
윤 일병 괴롭히기에 가담했던 지 상병 또한 지난 1월 이 병장에게 방탄 헬멧으로 머리를 맞았다.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 장면을 목격한 한 병사는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너무 강하게 내리쳐서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맞은 지 상병은 이후 윤 일병 구타에 가담했다. 폭력이 폭력을 낳았다.
군 폭력을 막기 위해 국방부가 시행한 마음의 편지나 비전 그린캠프, 기본권 전문 상담관 같은 각종 제도는 윤 일병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간부인 유 하사가 폭력을 방조했다. 선임들이 때리는 상황을 보고받았지만 유 하사는 “윤 일병이 잘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선임병들에게 야단맞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여섯 명이 생활하는 의무대조차 장악하지 못한 유 하사는 오히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 병장과 우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함께 휴가를 나가 성매수를 하며 든 비용 51만원을 유 하사가 모두 대기도 했다.
상관이 폭행과 가혹행위에 눈을 감자 병사들은 더욱 대담해졌다. 유 하사가 보는 앞에서까지 윤 일병을 때렸다. 처음에는 “비겁해서 죄송하지만, 지시를 받았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제가 구타 및 욕설을 받아야 해서(지 상병의 4월14일 헌병 조사 때 진술)” 어쩔 수 없이 한 폭행이었지만 어느새 몸에 배었다.
이 병장이 휴가를 나가 자리를 비울 때도 자연스럽게 이 상병과 지 상병이 윤 일병을 때렸다. “이 병장이 ‘아버지 회사 망하게 하고 엄마는 섬에 팔아버리겠다’고 말해 겁이 나서 윤 일병을 때렸다”라던 지 상병은, 이 병장이 없어도 폭행을 했다. 이 상병은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폭행을 했지만 바뀌지 않아서 한 행동이었다”라고 진술했다(4월8일 헌병 조사).
학습된 폭력은 사고 당일인 4월6일 절정을 이뤘다. 전날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내가 좋은 말 많이 해줬는데 그중 감명 깊었던 이야기를 해봐라”고 말했다. 윤 일병은 이 병장의 아버지가 청년 시절 조폭이었다는 이야기와 이 병장이 일본 맥도날드에 갔다 온 이야기를 꼽았다. 자신을 놀리는 것같이 느낀 이 병장은 윤 일병의 배를 발로 10번 정도 찼다. 분이 풀리지 않은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자지 말라는 지시를 하고 잠들었다.
ⓒ연합뉴스 8월5일 ‘윤 일병 사건 시민감시단’이 군사법원에 군 문화 개선을 촉구하는 메모 등을 붙였다.
다음 날 윤 일병이 잤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침부터 매타작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때리다 윤 일병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는 하 병장의 지적에 수액을 맞혔다. 수액 바늘을 꽂은 채 또 때렸다. 이 상병과 지 상병도 함께 때렸다. 사건 당일 윤 일병이 맞는 장면은 여러 병사들에게 목격되었다. 의무대에 약을 가지러 간 유 아무개 일병은 “윤 일병의 얼굴이 많이 창백했다. 그냥 봐도 아픈 사람같이 보였다”라고 기억했다.
매일 맞았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아
지병으로 그날 하루 종일 의무대에 누워 있던 다른 부대의 김 아무개 일병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깨었다가 음식을 먹는 윤 일병을 이 병장이 때리는 걸 봤다. 상황이 심각해 보여 정자세로 일어나 앉아 윤 일병이 쓰러질 때까지의 상황을 모두 봤다. 심각해 보이길래 손을 내밀며 하지 말라는 식으로 하기도 했는데 신경 쓰지 말라며 계속 때렸다”라고 진술했다(4월28일 검찰 조사). 김 아무개 일병은 3월부터 의무대에 누워 있었던 터라 윤 일병이 매일 맞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럼에도 그는 신고하지 않았다. 김 일병은 “다른 포대에서 일어난 일인 데다 남의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 일병만 침묵한 게 아니었다. 헌병 조사에서 병사 9명이 윤 일병이 맞거나 가혹행위를 당하는 장면을 봤다고 진술했지만, 본 것으로 끝이었다.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윤 일병이) 다른 분과 사람이라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벼운 실수로 혼나는 정도로만 느꼈고 분대장도 같이 있어서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그냥 윤 일병이 잘못을 많이 해서 혼나는 줄 알고 그리 심각하지 않은 상황으로 이해했다”.
그날 윤 일병은 심장이 멎었다. 머리, 가슴, 팔, 다리, 허벅지, 옆구리 등 멍이 안 든 곳이 없었다. 4월10일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통합병원 장례식장에서 윤 일병의 아버지 윤 아무개씨는 헌병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군에서 각별히 유의를 해주고 우리 아이가 마지막 희생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때까지도 아버지 윤씨는 아들이 이렇게까지 폭행당한 줄은 몰랐다. 상관도 방조자였다는 것을, 수많은 목격자도 있었다는 것을 그는 뒤늦게야 알았다.
‘세월호 합의안’ 반대 쏟아지는데…관심 없는 지상파 방송3사 810 미디어오늘
[비평] 유가족·시민사회단체 등 ‘특별법 합의’ 반대 목소리 없는 방송3사…9일 뉴스 관련 소식 전혀 없어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두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한 시민사회 각계각층의 반발이 쏟아지고 있지만 공중파 방송3사 뉴스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특히 지난 9일 곳곳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지만, 방송3사의 주요 뉴스에서는 이 소식들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여야 원내대표가 수사권, 기소권 없는 세월호특별법을 오는 13일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등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도 여야 합의에 대한 반발이 일고 있다. (관련 기사 : <여야 ‘세월호 합의’ 후폭풍…영화인 동조단식 시작>)
9일에도 세월호 특별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모임(가칭)은 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가족들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릴레이 동조단식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제안한 용혜인씨도 새정치민주연합 당사 앞에서 세월호특별법 여야합의에 반대하는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대학생 10여명이 국회 본관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회의실을 점거하려고 시도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들은 9일 오후 3시 30분 경 국회 본관 안으로 들어와 회의실로 들어갔고, 여야합의에 반대하는 내용이 적힌 종이를 붙이려다 국회 직원들에 의해 끌려나왔다.
가족대책위는 9일 저녁 7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규탄하는 ‘광화문에서 외침’ 문화제를 열었다. 유가족과 시민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 정당 인사들 1만여명(주최측 추산, 경찰추산 1,800여명)이 참여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여야합의를 철회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하는 유가족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송3사 주요뉴스에서는 이런 소식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9일자 KBS 9시뉴스,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에 세월호 특별법에 반대하는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반면 같은 날 JTBC 주말뉴스는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 합의 무효…선거 끝나니 내쳤다">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반발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며 각계 각층이 세월호특별법 반대 소식을 전했다. JTBC는 <새정치연합 초재선 모임 "합의안 거부"…내부 반발 확산>,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 요구 분출…야당 내분 조짐까지> 등 두 꼭지에 걸쳐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특별법 재논의 요구도 전했다.
▲ 9일자 JTBC 주말뉴스 갈무리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한 것은 지난 7일이다. 지상파 3사는 이 날부터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소홀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7일, 관련 소식을 전하며 유가족의 입장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SBS 8뉴스는 관련 소식을 전하며 “유가족들이 요구했던 수사권은 부여되지 않아 강제 소환이나 압수수색을 직접 할 수는 없다”며 유경근 대변인의 말 한 마디를 덧붙인 것이 전부였다. KBS 뉴스9는 여야의 합의 내용을 전하며 유가족의 반발을 덧붙였다. JTBC는 합의 소식과 유가족의 반발을 한 꼭지로 전한 뒤 다른 한 꼭지에서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을 연결해 대책위의 입장을 전했다.
다음 날인 8일에도 마찬가지였다. SBS와 KBS는 8일 각각 한 꼭지씩 여야합의에 대해 반발하는 유가족과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목소리를 전했지만, ‘왜’ 반대하는지보다 유가족과 경찰 간의 충돌 등 반대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MBC 뉴스데스크는 같은 날 <여야 '세월호특별법' 합의 내부 반발…재논의 요구 봇물>에서 여야 내부의 반대 목소리를 전할 뿐 유가족의 목소리는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는 특검 추천권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다며 반발이 속출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진상조사위에 유가족이 추천한 인사를 포함 시킨 데 대한 반발이 일었다”며 합의 반대 목소리를 흔히 있는 정당 내부의 ‘내홍’ 정도로 치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JTBC 뉴스는 여야합의 반대 목소리 등 세월호특별법 관련 소식을 네 꼭지에 걸쳐 상세히 전했다.
‘세월호 참사 무능정권 심판’을 내세웠던 새정치민주연합이 7‧30 재보선에서 참패한 이후 유가족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했다. 일각에서 “이제 그만해라”는 목소리까지 나오면서 유가족들은 점점 고립되고, 단식으로 쓰러지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9일 광화문 광장 집회에 참석한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세월호 특별법이 (유가족 요구대로) 통과가 안 되면 관 짜놓고 (단식을) 계속할 것이다. 쓰러져도 병원에 안 간다. 대통령 고집이 센 지 내 고집이 센 지 두고 보라”고 말했다. 김영오씨가 꺽어야 할 ‘고집’에 ‘사실 전달을 하지 않는 언론의 고집’도 포함시켜야 할 판이다.
▲ 단식 27일째인 단원고 2학년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9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에 열린 문화제 <“광화문에서 외침!”>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단식농성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진= 김도연 기자 riverskim@)
무능을 기록하다 [미디어오늘 현장] 박소희 오마이뉴스 기자 8.6
아이들은 멋쩍은 듯 웃었다.
“잘 모르겠는데….”
몇몇은 앉은 자리가 불편한지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곤 했다. 길을 가다보면 ‘고딩이구나’하고 지나쳐갈 법한 모습들이었다. 7월 28일과 29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1호 법정 증인석에 앉은 단원고 학생 22명은 그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있었다는 점만 뺀다면. 그 평범하고 천진난만한 말투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능’을 증언했다. 생존학생들의 탈출경로는 대부분 혼자 힘으로 또는 친구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빠져나왔다는 식이었다. 물론 선한 어른들은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믿고 기다렸던 선원들은 오지 않았다. 해경도 다르지 않았다. ‘탈출과정에서 선원이나 해경을 보거나 그들에게 도움 받은 적 있냐’는 검찰의 질문에 22명은 똑같이 답했다. “아니요.”
어른들의 무능으로 아이들은 한순간에 친구를 잃었고, 평생 낫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 법정에 선 그들은 ‘친구들을 놔두고 혼자서만 돌아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손목에 걸고 있는 ‘remember 0416’ 노란 팔찌가 흔들렸다. 어깨가 들썩였고, 얼굴과 두 귀가 붉어졌다. 증언을 메모해가던 방청석의 한 중년 남성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법정에서 그 모습들을 지켜보며 나는 몇 번 입술을 깨물었다. 노트북 자판 위를 오가던 손가락이 멈칫멈칫하곤 했다. 하지만 기록해야 했다. 그들이 목격한 우리의 무능을 고스란히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와 동료 기자의 도움을 빌어 생존학생 22명의 법정증언을 최대한 가감 없이 전달하려 했던 이유다. 지난 5월 세월호 도면을 들고 제주도에 내려가 김동수씨 등 화물기사 생존자들을 만나 그들의 증언을 모은 까닭도 같았다.
단원고 학생이든 일반인 승객이든 생존자들의 증언을 직접 듣는 것은 예상보다 괴로웠다. 그들의 말을 토대로 탈출경로와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기 위해 거듭 내용을 되새겨보는 일은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줬다.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최근 선원들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30명의 ‘그날’을 정리할 때에는 내내 머리가 무겁고 지끈거렸다. 계속 세월호에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진통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다른 재판들을 방청할 때도 비슷했다. 곳곳에는 ‘무능’의 흔적이 가득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사람이 선원이든, 청해진해운 쪽이든, 해운조합 관계자이든, 증거가 사진이든 영상이든, 피의자신문 조서든 마찬가지였다.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모두들 그저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내놨다. 그 광경을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선 ‘착잡하다’는 표현으로 부족한 감정에 휩싸였다. 세월호를 가라앉힌 주범은 오랫동안 쌓이고 또 쌓여온 무능들이었다. 우리는 정말이지, 무능했다.
좌절하고 한탄할 수만은 없다. 방향 잃은 분노와 슬픔은 망각과 냉소를 부추길 뿐이다. 결국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구호에서 멈춰버리리라. 생때같은 아이들 수백 명을 바다에 던지고서도 아무런 성찰 없이, 사람을 그저 값으로만 매겨버리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또 다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라며 울먹이는 아이들을 목격할 때, 우리의 무능과 실패를 맞닥뜨릴 때 이 사회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고개를 젓고 있다.
그래서 기록한다. 거의 매주 세월호를 탈 때마다 목격하는 우리의 무능과 실패들을 최대한으로, 꼼꼼하게, 있는 그대로 옮겨 적으려 한다. 이건 감시기능을 다 하지 못한 나, 그리고 한국 언론의 무능을 기록하는 일이기도하다
뉴스 홍수시대, ‘사실’보다 ‘편향’이 더 가치 있다 미디어오늘 조윤호
[서평] 뉴스의 시대 / 알랭 드 보통 / 문학동네 펴냄
바야흐로 ‘뉴스 전성시대’다. 사람들은 출퇴근길에서 뉴스를 보고, 회사나 학교에 가서도 모바일이나 PC로 뉴스를 본다. 사람들은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뉴스 이야기를 한다. 신문이 없어지니 기자가 없어지니 공중파 뉴스를 아무도 안 본다느니 걱정하지만 그건 ‘언론의 위기’지 ‘뉴스의 위기’는 아니다. 뉴스로 인해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고 연예인이 활동을 접는다.
우리는 이처럼 수많은 뉴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뉴스가 하나 있다. ‘뉴스 그 자체’다. 알랭 드 보통의 책 <뉴스의 시대>는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뉴스 그 자체에 대한 사용설명서다. 온갖 별나고 중요한 이야기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헤드라인은 없다.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헤겔)되는데도, 우리는 뉴스 그 자체에 너무 무지하다.
시와 소설에는 플롯이 있고 창작자의 의도, 시대적 배경이 있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뉴스에도 ‘해석’이 필요한 일종의 플롯이 있으며 창작자의 의도, 뉴스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뉴스가 매시간 제공하는 언어와 이미지에 대해서는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교육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일생을 ‘교육’시키는 뉴스의 이면에 대해서는 교육받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를 정치뉴스/해외뉴스/경제뉴스/셀레브리티 뉴스/재난뉴스/소비자 정보 뉴스 등 6가지 형태로 분류해 설명한다. 언론은 특정한 뉴스들을 폭탄처럼 쏟아냄으로써 오히려 무관심을 선도한다. ‘정치뉴스’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정치 뉴스를 보며 분노하고, 분노하다 결국 허탈해진다. 언론은 독자들에게 이슈의 맥락을 설명해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긴 이야기 속 아무데나 빠뜨렸다가 재빨리 꺼내 다른 긴 이야기 속으로 빠뜨려 버린다.
▲ 뉴스의 시대 / 알랭 드 보통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뉴스는 여야 정치인들이 ‘왜’ 싸우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여야의 공방만 비춘다. 어쩌다 저런 비리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잡혀가는 정치인의 모습만 비춘다.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만 남고, 중요한 사회 이슈들은 ‘여야 간 정쟁’이 된다. 알랭 드 보통은 민주주의 이후의 독재자들이 ‘무리한 언론통제’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단신뉴스만 쏟아내는 상황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무리한 언론 통제’도 이루어지고 있다.
해외뉴스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낯선 국가의 정치부패, 내전을 전하지만 독자들은 이를 중요한 뉴스라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볼리비아에서 학교에 간다는 것이, 소말리아에서 괜찮은 결혼식이 가능한 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뉴스는 지진과 마약사건 등을 통해 우리가 그 사건들에 대해 충격을 느끼고 몰입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끔찍한 사건들 속에서 인류의 구체적 삶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남는 건 반복되는 뉴스에 대한 무관심 뿐이다.
다른 뉴스도 마찬가지다. 통계는 넘쳐나지만 경제뉴스는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끔찍한 재난뉴스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점점 무뎌진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는 넘쳐나지만 ‘안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사를 쓰지만 사람들이 세상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무선 신호를 끊고 멀리 기차여행을 떠나라고 조언한다. 뉴스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황당한 소리’처럼 느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은 우리 주위를 둘러싼 훨씬 낯설고 경이로운 헤드라인에 주목하기 위해 가끔은 뉴스를 포기하고 지내야하며, 뉴스가 더 이상 우리에게 가르쳐 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뜻이다. 뉴스가 오히려 세계에 대한 무관심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뉴스란 세계와 나, 타자와 나의 만남을 이끄는 ‘매개’다. 생생한 인간의 이야기로 가득찬 뉴스다. 뉴스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며, 인간에 대한 관심과 세계에 대한 사랑을 주선해야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한 가지 방법을 덧붙인다. 우리가 사실이 아닌 ‘편향’에 주목해야한다는 것. 넘쳐나는 사실 보도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겼을 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이 ‘편향’을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하는 것”이라 규정하는 이유다. 뉴스 홍수 시대, 우리는 팩트가 아닌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아야 할 지도 모른다.
"치킨 한 마리 3, 4천원 남는데 배달앱 수수료로만 2천원 나가" 8.9 오마이뉴스
[배달앱 이후①] 어느 치킨집 사장의 고백... "한 마리 팔면 2000원 남아요"
▲ 동네 치킨시장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TV광고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급성장 중인 배달앱 업체들의 영향 때문이다. ⓒ 고정미
"치킨 한 마리 팔면 평균 3000~4000원 정도 남아요. 거기서 배달앱 업체가 주문 수수료를 2000원 정도 떼 가지요. 남는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지난 5일 인천의 한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전문점. 조성화(가명)씨는 벽면에 부착된 치킨 메뉴와 매출대비 수수료 계산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번갈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조씨는 "음식 값의 17% 이상을 주문 수수료로 받아가는 업체를 써서는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동네 치킨시장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TV광고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급성장 중인 배달앱 업체들의 영향이다. 업주들은 "점포마다 기본적인 광고비가 늘어나고 수익률은 줄면서 유명하지 않은 '동네 치킨집'들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17% 넘는 수수료... 나중엔 배달앱 주문이 안 오길 바랐죠"
▲ 서울의 한 치킨집. ⓒ 김동환
조씨는 올해 5월 가족들과 함께 치킨전문점을 시작했다. 안전을 기하자는 생각에서 일부러 인지도가 높은 유명 프랜차이즈를 택했다. 경쟁이 치열한 분야임을 알았기에 1년 정도 4군데 점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경험도 쌓았다. 충분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뛰어든 장사는 조씨의 예상과는 달랐다. 생각만큼 치킨 주문이 많지 않았던 것. 별 기대없이 등록해놨던 두 종류의 스마트폰용 배달앱을 통해 주문이 적지않게 들어오는 것도 의외의 현상이었다.
평일 조씨네 점포에 들어오는 전화 주문은 평균 40건 정도. 그는 "배달앱에 등록하자마자 7~9건씩 주문이 더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배달앱 주문 덕에 매출은 늘었지만 꼼꼼히 계산해보니 좋은 일이 아니었다. 닭을 튀겨서 파는 것은 자신인데 배달앱 업체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고 있었던 것. 주문량의 다수는 업계 2인자로 꼽히는 '요기요'를 통해 들어왔다. 조씨는 결국 열흘 만에 요기요에서 자신의 점포를 내렸다.
"좀 놀랐어요. TV광고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 요기요 앱에서 연락이 많이 왔거든요. 이게 TV광고의 힘이구나 싶고... 그런데 팔아도 힘만 들고 마진이 안 남으니까. 나중에는 거기서 주문이 안 오기를 바랐죠."
▲ 조성화(가명)씨가 따로 계산한 요기요 수수료. 요기요는 고객 전화를 매장으로 연결해줄 경우와 온라인결제를 대행해줄 경우의 수수료가 다르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소비자들이 '요기요' 앱을 이용해보면 주문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앱상에서 메뉴를 골라 결제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앱을 통해 주문을 하고 배달원에게 결제를 하는 방법이다. 조씨는 "요기요는 고객이 배달원이 결제하는 경우 수수료를 13% 가져가고 온라인 모바일 결제는 17% 이상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치킨 배달 시장은 그대론데 배달앱이 '수수료 빨대' 꽂은 셈"
조씨는 5월 이후로 지금까지 '배달의 민족' 앱은 계속 이용하고 있다. 부가세 포함 13.8%의 수수료를 떼 가지만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게 이유다. 그는 "프랜차이즈 본사에서도 '배달의 민족' 수수료 관련해서는 보조를 해주기 때문에 쓸만하다"고 설명했다.
"저희는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닭을 사다가 튀겨서 팔아요. 본사 입장에서는 배달앱 때문에 업주 이익률이 좀 줄어도 매출이 느니까 좋죠. 그래서 수수료를 보조해주면서 배달앱 사용을 장려하고 있어요. 우리 점포에는 하루에 '배달의 민족' 주문을 타고 2~4건 정도가 들어와요."
그러나 조씨네 점포가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원래 점포를 운영하면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전단지 광고 비용만도 월 100만~150만 원 정도인데 배달앱에도 광고를 하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음식 가격의 10% 이상을 수수료로 주면 사실상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달앱 광고를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조씨는 "이 동네만 해도 7~8년 전에는 치킨집이 3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20개가 넘는다"면서 "이런 과열된 환경에서 종업원 없이 사장 혼자서 전단지도 돌리고 닭도 튀기고 배달도 하는 집들은 유명 배달앱에 홍보를 의존하다가 수익을 못 내고 고사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일부 상인들은 배달앱 주문 활성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배달앱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기존에 치킨을 안 시켜먹던 사람이 치킨을 시켜먹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치킨집들만 더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상필(가명)씨는 "결국 치킨집들이 나눠먹던 시장에 배달앱 업체가 수수료 빨대 꽂으면서 들어온 셈"이라면서 "수수료를 많이 가져가지만 남들도 다 하니까 나만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놨다.
배달통·배달의 민족은 주문 수수료 내려... 요기요 "계획없다"
▲ 조성화(가명)씨의 수첩. 각 배달앱 별 수수료율에 따라 계산한 실제 지급 수수료가 보인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상황이 이렇자 일부 배달앱 업체들은 자신들이 받아가던 주문 수수료를 인하했다. 배달 점포와 배달앱 업체 간에 어느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김태훈 배달통 사업본부장은 "치킨집 사장들이 털어놓는 가장 많은 불만이 높은 수수료율이었다"면서 "저희는 배달앱 수수료가 이슈화되기 전에 업계 최저 수준으로 수수료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현재 치킨·중식·한식 등 주요 배달 업종에 적용되는 배달통의 주문 수수료는 부가세 포함 8.8%. 이중 세금과 카드사 결제 수수료인 3.5%를 빼면 실제 업체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4.5% 정도다.
업계 1위 업체인 '배달의 민족'은 주문방식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 적용하는 정책을 시행중이다. 콜센터를 이용할 경우에는 수수료가 부가세 포함 13.8%이지만 전용 주문접수 단말기를 이용할 경우 건당 최저 9.9%까지 수수료가 낮아지는 조건이다. 배달의 민족 관계자는 "업주들이 장사가 잘 되어야 배달앱 업체들도 잘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그런 취지에서 전용 주문접수 단말기를 업소에 무료로 설치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배달앱과는 제공하는 서비스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주문 수수료 인하 계획이 없다는 업체도 있다. 요기요 관계자는 "수수료율만 보면 요기요 수수료가 높아보일 수 있지만 타 배달앱들이 따로 받는 광고비를 우리는 안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요기요 가맹점이 4만 개 정도인데 서비스 시점인 2012년 6월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가맹을 유지하고 있는 점포가 전체의 90% 이상"이라면서 "점포 사장님들도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수수료 인하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 “국민 위한 정치 맞나” 국회 비난…또 ‘네 탓’ 811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에서 신임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의 삼정도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제관련 계류법안 열거하며
사실상 야당에 처리지연 책임돌려
최경환, 30개 조속 처리 법안 제시
야당 “일방통행식 발언 불쾌”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국회를 향해 경제 활성화 법안 처리를 요구하며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박 대통령 특유의 전형적인 ‘네 탓’인데다 일방적인 주장,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사실상 야당을 공격하는 일방통행식 전달 등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보여온 박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답습하는 형태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가 정치인들이 잘살라고 있는 게 아닌데 지금 과연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자문해봐야 할 때”라며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경제 관련 법안 처리 지연을) 전부 정부 탓으로 돌릴 것인가. 정치권 전체가 책임을 질 일”이라며 국회에 계류중인 경제 관련 법안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또 박 대통령은 “말로만 민생, 민생 하면 안 된다”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로 판단을 잘못해 옛날 쇄국정책으로 기회를 잃었다고 역사책에서 배웠는데 지금 우리가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 등 사실상 야당을 향해 수위가 높은 표현을 쏟아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재보궐선거 압승 이후 자신감을 얻은 청와대가 경제 활성화를 앞세워 하반기 국정 운영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향후 국정에 필수적인 국회의 법안 처리 협조를 압박하려는 대국민 여론전의 성격도 짙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 법안 중에는 통과만 되면 청년들이 바라는 일자리가 생길 수 있는 게 보이는데도 안타깝게만 바라보고 있으니 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탄다”며 “서비스산업의 체계적 육성을 위해 정부가 재정과 금융, 인력 양성을 지원하는 법, 해외 관광객이 급증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숙박시설을 확충하는 법, 아이디어만 있으면 온라인상에서 다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법 등은 창업가를 위해 어떻게든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우리 보험사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외국 환자를 한국 의료기관 고객으로 모셔 오는 유치 활동을 하는 법, 임대차 시장을 활성화하고 생계형 임대인의 생활을 지원하는 소득세법도 통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이런 공세에 발맞춰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이날 국회에서 여야 지도부를 차례로 만나 조속한 법안 처리를 요청했다. 그는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지난 8일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제시한 30개의 조속 처리 법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최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모처럼 시장에서 경제회복 모멘텀을 마련했는데, 법안으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모멘텀을 이어갈 수가 없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사정하고자 국회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세월호 특별법 등 사후 수습을 국회로 떠넘긴 청와대가 ‘경제 활성화’와 ‘정치권 사정’이란 양 날개를 고리로 국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 높여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야당은 불과 두달 전 ‘중요 현안에 대한 국회 논의를 존중하겠다’던 박 대통령이 무조건 처리만을 주문하는 듯한 일방통행식 발언에 대해서도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대통령이 강조하는 경제 활성화 법안들인 서비스산업 육성 법안, 크루즈산업 육성 법안들이 과연 경제 활성화와 관련된 법안인지, 친기업의 단순한 탈규제 법안이 아닌지 근본적으로 의문이 드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의 입에서 ‘세월호’가 사라졌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만큼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의 얼굴을 한 조직에서 고통당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 역시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국교회에 경종 “세속적 유혹에 빠지지 말라”8.14 한겨레
교황, 한국 주교단과 만남서
“교회의 원래 목적은 가난한 이들 위해 존재하는 것 그들의 희망 지킴이 되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시 그다웠다. 그의 교회론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황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초지일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었던가’를 주지시킨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후계자다웠다.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숙소인 서울 종로구 궁정동 교황청대사관으로 향하는 도중 을지로입구 교차로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첫날 마지막 일정은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이었다. 한국 주교들은 늘 그랬듯이 교황의 치하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이 땅에 들어온 지 불과 200여년 만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현재 모든 주류 종교 가운데 신자 수가 가장 급증하고 있는 한국 가톨릭이니 그럴 만도 하다. 더구나 사제와 수도자 지원자 감소에 허덕이는 유럽과 미주와 달리 여전히 지원자가 많고, 신자들의 신앙 열기가 세계 최고라 할 만한 그 역동성에 신앙의 선배 국가들에서 온 사목자들도 늘 놀라곤 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14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30여명의 주교들을 만난 교황이 선택한 것은 칭송이 아니었다. 그는 “교회가 너무 잘나갈 때 가난한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가 가난한 이들이 문턱을 높게 여길 만큼 부자들 중심으로 움직인다거나 많은 사제들이 부자 교인들과 어울려 골프를 즐기는 등의 한국적 상황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한 발언이었다. 실제 한국 가톨릭은 인구 대비 신자 수가 서울 목동은 20%가 넘는 데 반해 신정동은 5%밖에 안 될 정도로 빈부 지역 간에 신자 수가 큰 차이가 날 정도로 부자화되어 가는 실정이다. 따라서 교계 주요 지도자들도 사회적 약자보다는 부자와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한 발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황은 “한국 교회가 번영했으나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 살고 있어 기업적 능률만을 중시하며 세속적 기준과 생활양식, 사고방식을 우선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며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빈다”고도 했다.
교회 선교라는 미명하에 교회도 권력적 힘을 갖고, 부를 축적해야 한다며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권력과 부자 편만 들며 반그리도적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에 대한 분명한 경계였다. 사목적 목적으로 방한한 그가 이날 주교들에게 내린 사목 지침은 세 가지였다.
“첫째,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와 교회의 원래 목적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한국 가톨릭은 초기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져 성직자들이 가질 수 있는 유혹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성직자주의를 경계하라. 셋째, 주교는 사제들이 대화하기 원하면 언제든 응하며 사제와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월호 유족 울먹이자…교황 “희생자들 마음속 깊이 간직”
14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영나온 인사들 중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과 인사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세월호 가슴이 아픕니다. 희생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 발을 딛자마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이렇게 위로했다. 교황은 14일 오전 10시36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 뒤 교황은 영접 나온 세월호 희생자의 한 어머니가 울먹이자 손을 꼭 잡고 “세월호 가슴 아프다. 희생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며 위로했다.
이날 교황을 영접하기 위해 나온 천주교 평신도 32명 중에는 고 남윤철 안산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씨와 부인 송경옥씨, 사제를 꿈꿨던 고 박성호(단원고 2학년)군의 아버지 박윤오씨, 일반인 희생자인 고 정원재씨의 부인 김봉희씨 등이 포함돼 있었다. 교황은 이들의 손을 한명 한명 맞잡으며 슬픔을 위로하고 기도했다.
평신도들 가운데는 세월호 유가족 외에도 장애인, 새터민, 필리핀과 볼리비아 출신 이주노동자, 범죄 피해자 가족 모임 해밀 회원 등 소외받고 상처받은 사회적 약자들이 다수였다. 교황은 통역을 통해 이들의 사연을 전해들으며 위로의 인사를 나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교황의 ‘민주주의’ 발언은 한국 정부에 보내는 충고”814경향
가톨릭계는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날 두 차례 연설이 한국 사회의 현실에 일침을 가했다고 지적했다.
한홍순 전 교황청 한국대사는 “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고 한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의라는 뜻”이라며 “평화는 전쟁에 의해서만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엄에 대한 침해에 의해서도 위협받는 것이라고 말한 과거 발언과 일맥상통한다”고 밝혔다.
경기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900㎞를 순례한 세월호 유가족 도보순례단이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유성성당에 이르는 최종 순례구간을 걸어가고 있다. 순례단이 메고 온 십자가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찾는 교황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은 “교황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좀 더 강화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 주필은 “교황이 외교적 언어로 표현했기에 (연설이) 중립적인 느낌을 받지만, 평화·정의·민주주의·참여 등 몇 개 개념어를 조합하면 흐름이 나온다”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계속 문제됐던 국정원, 밀양 송전탑 투쟁, 강정 해군기지가 정부의 비민주적 태도 때문이었고, 세월호 또한 국가가 국민 고통에 대해 책임을 방기한 상태로서 민주주의의 문제로 직결되기에 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톨릭 신자인 소설가 김홍신씨는 “교황이 대놓고 야단치는 건 아니지만, 성직자가 죄를 고백하면 보속을 요구하는 것처럼 사랑과 평화, 정의를 강조하면서 참회개를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혜롭고 위대한 민족은 그들의 젊은이를 귀하게 여긴다”는 대목이 세월호 침몰 당시 희생된 학생들, 입시와 취업에 고통받는 젊은이를 아울러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사건이 겹쳐서 국민들이 오래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데, 이를 풀어줘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전혀 풀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황의 연설은 문장이 탁월하다기보다 인간 본연의 휴머니즘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한국 가톨릭이 평화, 정의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읽혔다. 김씨는 “ ‘한국 교회는 거울을 보듯이 자기 자신을 비춰야 한다’는 말은 굉장히 따뜻한 회초리”라며 “교회가 자기 겉모습만이 아니라 고난받는 사람과 가슴앓이하는 국민들, 즉 종교를 통해서 평화로워지고 싶지만 종교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 이들 모두를 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주필도 “교황은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이 더 평화롭고 발전된 사회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독려하면서 한국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해 분명히 참여해야 한다는 면을 재확인해주셨다”고 말했다.
현대차 46세 근로자, 곧 '억대 연봉' 받는데… 파업? 814 머니투대이
작년 현대차 평균 급여 9400만원…노조 통상임금 요구안 수용되면 1억원 '훌쩍'
현대차 이경훈 노조위원장(가운데)이 지난 6월 25일 울산공장 본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2014 임금투쟁 승리와 노동운동 탄압 척결의지를 다지는 출정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올해 나이 46세인 A씨는 현대자동차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나이와 근속연수 등을 대입한 가상의 인물이다. A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21년째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A씨의 연봉은 9400만원이었다. 기본급과 직급, 직책수당 등을 포함한 통상임금은 전체의 40% 수준인 3800만원이 채 안되지만, 상여금 2400만여원(월 통상임금과 일부 수당을 합한 금액의 750%), 성과급 2000만여원과 함께 특근·잔업수당, 연월차 수당까지 합하면 전체 회사로부터 받는 돈의 총액이 나온다.
올해 A씨는 억대 연봉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조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경우 10∼15% 임금이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10% 인상 효과만 있다고 해도 연봉은 1억340만원이다.
여기에 노조는 △기본급 15만9614원 인상 △정기상여급 800% 지급 △회사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가 통상임금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양보한다면 호봉 승급분을 포함해 600만원이상 연봉이 오를 여지는 충분하다. 실제로 이경훈 현대차 노조위원장이 앞서 노조를 이끌던 2009년부터 3년간 현대차 직원의 평균 연봉은 6800만원에서 8900만원으로 연평균 700만원 인상됐다.
올해 사내하청 근로자들 2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근로자가 늘어났다는 변수가 있지만, 10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현대차가 SK텔레콤과 삼성전자에 이어 직원 억대 연봉 클럽에 가입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지난해 말 발간한 '2013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연말정산을 신청한 근로자 1576만8000명 가운데 총급여액이 1억원을 넘는 사람의 비율은 2.6%였다. 현대차에 들어가 평균 연봉을 받을 때가 되면 대한민국 직장인 연봉 순위 3%에 들게 되는 셈이다. 같은 기간 연말정산을 신청한 근로자 전체의 평균 급여 2960만원의 3배가 넘는다.
한국 입시제도, 진짜 인재 가려내는데는 실패” 814 국민
‘부모 경제력’ 덧씌워진 서울대 입학 실력
부모의 경제력 효과를 뺀 학생 고유의 노력과 잠재력만으로는 출신 고교·지역별로 편중된 현재의 서울대 입시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논문이 서울대에서 발표됐다. 서울 강남구 고등학생의 서울대 합격률(최초합격자 기준)이 강북구의 21배, 서울 외국어고·과학고의 서울대 합격률이 일반고의 15∼65배에 달한다는 분석에 기초한 주장이다. 논문은 "부유하지 못하면 대입에서 불리해진다" "우리 교육·입시 제도는 진짜 인재를 가려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3일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의 논문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북구에서는 2014년도 서울대 합격생이 학생 100명당 0.1명 배출됐지만 강남구에서는 100명당 2.1명이 나왔다. 구로·금천구는 100명당 0.2명꼴이었고 중랑·도봉·성북·관악·동대문·강서·동작·영등포·성동·은평·중·서대문·용산구 등 13개 자치구에서는 100명당 0.5명이 되지 못했다.
강동·노원·종로·마포·광진·양천·송파구에서는 100명당 0.5∼1명꼴로 서울대 학생이 선발됐다. 100명당 1명이 넘게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한 자치구는 강남구와 서초구(1.5명)뿐이었다. 김 교수는 "강남구 거주 학생들의 타고난 잠재력이 이 정도로 막대하고 월등히 앞선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고교 형태별로도 차이가 두드러졌다. 서울 일반고에서는 100명당 0.6명이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외고와 과학고에서는 각각 100명당 10명, 41명이 선발된 것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는 "올해 대학에 진학한 외고 학생들은 중학교 영어 내신만으로 뽑혀 '선발 효과'가 없었지만 외고는 역시 올해에도 일반고에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학생을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대학에 진학시켰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가 지난해 기준으로 일반고와 특목고(외고·과학고·자율형사립고) 출신 '스카이' 합격 비율을 분석한 결과 특목고가 12%로 일반고(1.4%)의 9배에 이르렀다. 그는 "일반고의 선생님 대부분도 열심히 가르치는 상황에서 이 실적은 마술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지역·고교별로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 서울대 입시 결과는 사교육, 일반고의 3∼7배 수준으로 학비가 비싼 특목고 진학, 집값이 비싼 동네로의 이사 등 '치장법'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학생 본연의 능력치인 '진짜 인적자본'이 아닌 부모의 경제력이 겉치장된 '겉보기 인적자본'이 평가된 결과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논증하기 위해 서울 구별 아파트 매매가 및 사설학원 수를 2014년도 서울대 합격률과 비교했고, 모두 강한 비례 관계가 도출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경제력이 앞선 지역의 학생들이 원래부터 똑똑할 수도 있지만 월등한 서울대 합격률을 타고난 유전적 요인으로만 설명할 증거는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확률적으로 '용'의 씨는 각 지역, 각 계층에 골고루 뿌려지지만 지금 용이라고 뽑히는 학생들은 지역적·계층적으로 일부에 극심하게 몰려 있다"며 "앞으로는 겉에 칠한 물감(부모 경제력)을 지우고 진짜 용을 가려내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고교·지역별로 편중된 서울대 합격률이 단순히 형평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는 교육 현장에서의 공정경쟁 약화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침체에 빠져든 원인일 수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경제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우수하고 창의적인 인재가 보다 생산성 높은 부문에 배분돼야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증대돼 국내총생산(GDP)이 극대화될 수 있다"며 "'가난하며 똑똑한 학생'보다 '부유하며 덜 똑똑한 학생'에게 자원이 보다 많이 배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9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카고대 로버트 루카스 교수의 제자다. 이 논문은 정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결과물로, 서울대 경제연구소의 '경제논집'에 최근 실렸다
부모 학력·소득 따른 성적差 더 커져 국민
일반고·자사고 간 성적 차이 3년 새 20.01점→ 25.76점
부모의 학력과 소득에 따른 학생 성적 격차가 더 커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경제적 여건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연구정보원과 고려대 김경근 교수 연구팀이 13일 발표한 ‘교육격차 원인 및 변화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성적(중학교 1학년 기준)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기준 월 소득 200만원 이하인 가정의 학생 국어 영어 수학 평균 성적은 192.63점을 기록했지만, 월 소득 501만원 이상인 경우 218.32점이었다. 소득에 따라 20점 넘는 점수 차이가 났다. 2010년 두 집단의 점수가 각각 196.94점, 221.28점으로 24.34점 차이가 났던 것에 비하면 3년 새 1.35점 더 벌어진 것이다. 성적은 각 과목을 난이도를 고려해 100∼300점으로 환산한 평균 점수다.
소득뿐 아니라 부모 학력에 따라서도 자녀 성적에 차이가 벌어졌다. 2010년 고졸 이하 부모의 자녀와 대학원을 졸업한 부모의 자녀 간 성적 차이가 25.96점이었지만 2013년에는 27.93점으로 조사됐다.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사교육 참여율 역시 부모의 소득·학력과 연관이 있었다. 2013년 월 소득 501만원 이상의 가정에서는 92%가 사교육에 참여한 반면, 월 소득 200만원 이하의 경우에는 49%만이 사교육을 받았다.
보고서에는 일반고 자사고 간 학력 격차 자료도 포함됐다. 2010년 일반고와 자사고 간 성적 차이는 20.01점이었으나 2013년 25.76점으로 더 커졌다.
특히 일반고의 성취도 검사 평균 점수가 2010년 202.15점이었으나 2013년 194.93점으로 떨어져 일반고 학력 저하 우려도 제기됐다. 연구팀은 “2010년 이후 자사고가 증가하면서 상위권 학생이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사는 2010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총 1만6000여명을 선발해 2013년도에 추적조사 한 ‘서울교육종단연구’ 자료를 활용했다. 표본 학생들은 별도의 성취도평가를 치렀고, 이 성적을 토대로 연구가 진행됐다.
"교황은 왜 박 대통령부터 만날까 천주교, 청와대 눈치보며 일정 짰다"814 오마이뉴스
[인터뷰] <교황과 나>를 쓴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씨
지난해 3월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00년 역사를 가진 가톨릭교회의 역대 교황 266명 중에서 세 번째 '개혁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가난의 구조적인 원인인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부패한 가톨릭교회 내부 개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편들고 교회·사회개혁을 강조하는 해방신학을 받아들인 첫 교황이기도 하다.
김근수씨는 우리나라에서 교황을 잘 알고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최근 개혁 교황 탄생의 의미를 짚은 <교황과 나>를 펴낸 그는 광주가톨릭대학과 독일마인츠대학에서 신약성서를 공부했고, 남미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대학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했다. 김씨는 지난 6월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의 스승인 카를로스 스카노네 신부를 만났고, 교황에게 한국 사회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시복식 과잉 경호, 교황 동선 통제하려는 시도"
김씨는 "교황은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 교황은 2004년 12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난 화재로 200여명이 죽었을 때, 가장 먼저 현장을 찾아 구조에 나섰고 그 뒤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천주교 주교회의는 진상 촉구 성명서도 내지 않았다, 교황이 이 사실을 알면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황의 방한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천주교 방한준비위원회가 짠 교황 방한 일정을 두고 "마치 소속사가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는커녕 죽이려고 하는 일정"이라고 지적했다. 가난한 사람을 만나고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교황의 메시지인데, 여기에 어울리는 일정이 없다는 것이다. 김씨의 말이다.
"교황이 지난해 7월 브라질 빈민촌을 방문했을 때, 지난 5월 이스라엘 통곡의 벽에서 기도했을 때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모았다. 하지만 한국천주교회는 교황의 방한 일정을 종교 행사에 가뒀다. 밀양 송전탑 현장, 강정 마을 등 갈등 현장 방문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한국천주교회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로 인해 정부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눈치를 보며 일정을 짠 것 같다."
교황은 한국에 도착한 직후 첫 일정으로 청와대를 방문한다. 김씨는 "교황이 왜 박근혜 대통령부터 만나야 하느냐"면서 "교황이 첫 일정으로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을 만난다면, 교황의 메시지는 더 분명하게 우리 사회에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90cm 높이의 방호벽 설치 등 시복식 과잉경호 논란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인 이해가 어긋나는 교황의 일정을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동선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때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해 우리나라를 찾는 교황은 모두 '나쁜 정부'에 이용당했다"고 지적했다.
-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으로, 교황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교황은 어떤 인물인가.
"교황은 민족·종파·계층·신분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이유는 교황이 가난의 구조적인 문제인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과거 교황들은 가난한 사람을 돕고자했지만, 구조를 고칠 생각은 안했다. 또한 교황은 과거 교황들로부터 탄압받았던 남미의 해방신학을 받아들였다. 가톨릭 내 기득권세력이 싫어하는 해방신학은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을 편들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해야 한다', '교회개혁을 한 뒤에 사회개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 교황이 지난해 3월 선출된 이후 한국을 세 번째 해외 방문지이자 첫 아시아 방문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교황은 앞서 지난해 7월 브라질, 지난 5월 중동(팔레스타인·이스라엘·요르단)을 방문했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는 표면상 이유는 아시아청년대회와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국천주교회의 능력과 역할을 점검하려는 속뜻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한국천주교회의 대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개인적 경험 등으로 인해, 세월호 침몰사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 교황이 세월호 침몰 사고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탈리아에서 살던 교황의 조부모와 부모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갈 때 침몰 사고를 가까스로 피한 바 있다. 교황은 지난 7월 로마 밖 첫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을 찾았다. 이곳 앞바다는 유럽으로 밀항하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배가 침몰해 한해 수백~수천 명이 죽는 곳이다. '항상 가장 가난하고 불이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찾으라'는 게 교황의 메시지 아닌가."
- 교황은 이번 방한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생각하나.
"아시아청년대회에서 실업·사회적 불의·물질주의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줄 것으로 보인다.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식 미사는 인간 평등 정신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다가 목숨 바친 분들을 위한 의식이다. 우리 시대에 불의,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저항하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황이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할 때 '저항하지 않는 청년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 교황은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폐해가 가장 큰 한국 방문에서 교황의 메시지는 큰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교황이 지난해 11월에 내놓은 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밝혔다. 교황은 추기경 시절 아르헨티나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인권 탄압을 강하게 비판했다. 아르헨티나와 한국은 군부 독재, 외환위기,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 등 비슷한 점이 많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의 정치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난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 것을 비판하려는 뜻도 있지 않겠나."
- 교황에게 "우리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사회 비판"이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교황에게 직접 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편지를 보냈다. 교황이 편지를 받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아직 답장은 받지 못했다. 우리 사회와 천주교에 사회 비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2009년 용산 참사 때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이나 현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그 현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 때도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진상 촉구 성명서를 냈나. 팽목항에 간 주교는 몇 명이나 되나. 교황이 이 사실을 알면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 염수정 추기경은 사제들의 정치·사회 참여에 부정적이다. 지난해 11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천주교 사제들이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미사를 하자, 염 추기경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언급하면서 사제들의 정치참여를 비판했다.
"염수정 추기경의 생각은 교황의 메시지와 반대되는 것이다. 교황은 '교회 밖으로 나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라'고 했다. 또한 가톨릭 교회법에 나온 사제의 정치참여 금지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는 것을 금한다는 것이지,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게 아니다. 교황이 주교들을 만나 '왜 가난한 사람 편을 들지 않느냐', '갈등 현장에 왜 가지 않느냐'고 혼을 냈으면 좋겠다."
- 우리 사회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논란으로 시끄럽다. 교황이 여기에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나.
"교황은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지지할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만나 이러한 얘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교황이 이런 언급을 하기 전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협조해야 한다. 문명국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가 교황의 평소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면, 세월호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2004년 12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 때 교황은 어떤 모습이었나. 당시 200여명이 죽은 사고 현장에 교황은 가장 먼저 달려가 사람들을 구조하고 그 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교황 방한, 천주교 보수파가 주도했다"
-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가 짠 교황의 일정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참 초라한 일정이다. 가난한 사람을 존중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게 교황의 메시지인데, 이런 메시지와 어울리는 방한 일정이 없다. 교황이 브라질 빈민촌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 통곡의 벽에서 기도했을 때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모았다. 방한 일정은 마치 매니저가 연예인을 돋보이게는 하기는커녕 죽이는 일정이다. 교황의 일정을 종교 행사 안에 가뒀다. 밀양 송전탑 현장이나 강정 마을 등 갈등 현장 방문도 못하게 했다. 한국천주교회가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로 인해 정부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눈치를 보면서 일정을 짠 것 같다."
- 정부와 경찰은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식이 열리는 광화문광장 주변에 높이 90cm의 방호벽을 설치하고 많은 경찰을 배치하는 등 엄격히 통제할 것으로 보인다. 과잉경호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교황의 동선을 통제하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방호벽도 없이 사람들을 만났다. 브라질은 총기 소지가 허용되고 폭력 조직의 위력이 강한 곳이다. 정부가 방호벽으로 국민과 가톨릭을 분열시키려는 것 아닌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를 찾은 것은 전두환 정권 때였다. 전두환 정권은 교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이번 방한도 비슷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교황은 모두 '나쁜 정부'에 이용당했다."
- 교황의 꽃동네 방문이나 명동성당에서 이뤄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꽃동네는 전두환 정권의 지원을 통해 급성장한 한국천주교회 내 사회복지시설이다. 후원회원만 약 80만 명에 달하고, 한 해 정부 지원만 300억 원이 넘는다. 보유 토지만 해도 400만 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리 의혹도 있고, 여러 가지 잡음이 나온다. 교황이 정말 가난한 사람을 만나려면 꽃동네가 아닌 다른 곳을 가야 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왜 명동성당에서 해야 하나. 오히려 판문점에서 미사를 하면 더 주목받지 않겠나."
- 강우일 교황방한준비위원장(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은 개혁 성향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강우일 주교보다 염수정 추기경의 영향력이 더 컸을 것이다. 교황은 이번에 서울대교구, 대전교구, 청주교구 지역만 방문한다. 이곳의 교구장은 모두 극보수 우파 성향의 인물이다. 천주교 보수파가 교황 방문 일정을 주도한 것이다."
- 한국천주교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개혁 교황의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 사회와 천주교회에 개혁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특히 천주교회는 가난한 교회가 돼야 한다. 교황의 목표 중에 하나다. 돈이 많은 교회는 부자 편을 들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돈이 많은 한국천주교회는 큰 성당을 짓는다.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평신도가 순교한 서소문공원을 천주교만의 성지로 만들려고 하는데, 욕심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사형터로서 천주교 신자가 아닌 많은 이들도 목숨을 잃었다. 또한 시복식을 광화문광장에서 하기로 했을 때, 국민이나 다른 종교에게 제대로 양해를 구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규제완화가 참사 불렀는데…규제완화 비판없는 언론 814 미디어오늘
[비평] 정부 ‘서비스산업 육성대책’, 국회 탓하는 언론…조선 “이 나라에 세월호만 있는 것 아니다”
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을 골자로 한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관련 대책만 135가지로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인데도 이를 보도하는 대다수 언론은 정부정책 ‘홍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두 줄 정도의 우려와 비판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고, 국회가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보도도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6차 무역진흥회의에서 보건‧의료, 관광, 콘텐츠, 교육, 금융, 물류, 소프트웨어 등 7개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135개 대책을 발표했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대책의 효과로 15조 원 이상의 투자와 18만 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각종 규제완화를 총망라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영종도와 제주도에서 추진되는 4개의 대규모 리조트 사업에 대한 규제 완화, 한강 개발, 산악지역 케이블카 설치, 해외 유명 교육기관 유치, 어학이나 요리 교육기관의 외국인 학생 비자 발급 허용, 주식가격 제한 폭 30%로의 확대 등이 포함돼 있다. 제주도와 인천 송도에 외국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방송3사는 12일과 13일 뉴스에서 관련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도가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정책에 대한 우려점은 한 두 줄 정도로 가볍게 처리됐다. 이번 대책에 대한 비판들을 대부분 정부가 ‘넘어야할 산’ 정도로 취급됐고, ‘왜’ 반대하는지 등에 대한 이유는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다.
SBS <8뉴스>는 12일 3꼭지에 걸쳐 관련 소식을 전했는데, 앞의 두 꼭지에서는 정부정책을 그대로 전달하고, 마지막 3번째 꼭지 <서비스 산업 대책만 세 번째…실현까지 ‘첩첩산중’>에서만 비판적 코멘트를 덧붙였다. “의료법인의 자회사를 허용하고 외국병원을 유치한다는 계획은 노동계 등이, 관광지 개발은 환경단체가 반대하고 있어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복합 리조트 건설도 카지노에 대한 찬반 논란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 KBS는 12일자 <뉴스9> <7대 서비스산업 육성…사회적 합의 관건>에서 서비스산업 대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 “이해당사자들 간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 8월 12일자 KBS 뉴스9 갈무리
조중동은 국회와 야당을 표적으로 삼았다. 8월12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은 <관광 빗장 푼다는 정부, 國會 빗장 풀까>이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정부의 서비스산업 육성 정책이 실행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만만치 않다”며 “노무현 정부 이래 경제팀 수장들은 의료와 교육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익단체와 국회 반대 등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조선은 “결국 국회의 벽을 넘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은 다른 기사 <서비스업 육성책, 매번 국회서 발목>에서 “작년 5월 이후 5차례의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 때마다 서비스업 육성책을 제시했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해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도 12일자 기사에서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돼 왔지만 국내 의료계와 시민단체 반발에 막혀 왔다”며 “수도권 관광자원 개발엔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공원 개발도 환경단체의 반대가 심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사설은 좀 더 노골적이다. 중앙은 12일 사설에서 “(그동안) 대책만 요란했을 뿐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업계 반발과 이해집단 간 갈등, 국회의 비협조에 막혔기 때문”이라며 “이번 대책의 성패도 이해집단의 우려와 반발을 어떻게 극복하고 국회 협조를 얻어내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역시 12일 사설에서 “국민들 사이에도 “국회가 해도 너무한다”는 원성이 높다. 정치권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주택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등 경제살리기 법안의 처리를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며 ”야당은 계층을 나누고 갈등을 부추기는 낡은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이들 언론은 하나같이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국회가 마비됐다고 혀를 찼다. 동아일보는 <서비스 규제 풀어 10만 청년 일자리 만든다>는 1면 톱기사 바로 옆에 <세월호法 표류 또 마비된 국회>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는 이 기사에서 “사실상 국회가 마비되면서 주요 법안 처리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주문했던 관광진흥법 등 19개 민생법안 역시 표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8월 13일자 조선일보 31면
조선일보도 정부의 이번 대책을 소개하는 1면 톱기사 옆에 <세월호法 재협상 수용 안되면 野 다른 법안 협조 않기로>라는 기사를 실었다. 사설 <합의 파기에 경제法案 심의도 거부하는 野, 어쩌자는 건가>에서는 “이 나라에는 세월호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무리 세월호라고 해도 이것 한 가지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하지 못하겠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겠는가. 이러니까 야당은 사사건건 발목 잡기만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야당을 맹비난했다.
이들 언론보도만 보면 정부의 이번 서비스산업 육성정책은 추진되기만 하면 일자리도 증가시키고 경제도 살릴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다. 다만 추진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으니 이들을 잘 설득하고 야당의 발목잡기를 넘어서면 된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야당이 별 이유도 없이 반대만 하고 이익집단들이 자기네 이해관계만 생각하느라 경제 살리기 대책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보건의료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의료 관련 규제완화가 사실상의 ‘의료영리화’라고 반발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병원에서 파는 건강보조식품, 거절할 수 있나요>) 문제는 방송3사와 조중동 등에서 이런 목소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8월 12일 JTBC <뉴스9>는 이번 대책에 대한 우려점들을 상대적으로 상세히 전했다. JTBC는 <이번엔 꼭 “영리병원 허가”…의료민영화 우려에 반발>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영리병원이 확대되다보면 의료비 폭등과 의료 양극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외국인 콘도 분양 허용…5년 유지 시 영주권 부여">에서는 콘도 자체가 투자자에게 이점이 없는 상품이기에 과연 많은 투자 유치가 일어나겠냐는 회의적 시각을 전했고, <주식 가격 제한 폭 30%로 확대…시장에 미칠 파장은?>에선 "투자 과열을 부추겨 가격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8월 12일자 JTBC 뉴스9 갈무리
가장 돋보인(?) 매체는 MBC였다. MBC는 12일 <뉴스데스크>에서 세 꼭지에 걸쳐 정부의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을 전했는데, 보도 내용은 전부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 박근혜 대통령 발언들만으로 채워졌다. 예의상 한 줄 넣어줄 만도 한데, 시민단체나 야당의 우려 목소리는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던 MBC는 13일 <뉴스데스크>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했던 오늘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면서 (중략)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관광진흥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도 발목이 잡혔다”고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는 앞 뒤 안 가리고 이윤만 쫓는 ‘규제완화’다.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증개축과 배의 수명 연장 등 감독 없는 규제완화가 비극을 낳았다. 그런데도 언론은 대규모 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만 전달하고, 그로 인한 우려점은 ‘넘어야 할 산’ 정도로만 취급한다. 심지어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정쟁 때문에 경제를 발목 잡히고 있다는 식의 보도도 서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네 달 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
조중동이 세월호 재협상파를 ‘강경파’로 모는 이유 미디어오늘
[뉴스분석] 재협상 세력에 ‘무능력’ 이미지…재협상 이유는 모른 척 하는 언론
새정치민주연합의 세월호특별법 재협상 선언이 ‘강경파 대 온건파’란 프레임으로 보도되고 있다. 당내 강경파들에 의해 여야 합의가 파기돼 정치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2일 5면 기사 <당내 반발·場外훈수꾼 압력에 합의 내던진 野>에서 “당 안팎의 야권 강경 세력의 거센 압력에 무릎을 꿇은 셈”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2012년 총·대선 야권 연대와 민주통합당 출범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야권 원로 그룹 등 장외 ‘빅마우스’들은 이번에도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주도한 박 위원장을 비판하며 정면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12일자 3면 기사
동아일보도 같은날 3면 기사 <“시간 달라” 朴의 호소, 강경파 성토에 묻혀>에서 “강경파의 목소리에 여야 합의안은 백지가 돼버렸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여당과의 합의 내용을 뒤집는 데 따른 더 큰 역풍이 우려스럽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면서 “하지만 강경파의 목소리를 넘지는 못했다”고 했다.
조선·동아일보에 따르면 세월호특별법의 여야 합의안을 반대하는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강경파’이며 합의를 주도했던 박영선 원내대표 등은 온건파다.
▲ 조선일보 12일자 5면 기사
한 조직의 구성원들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누는 게 특별한 분류법은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해 새정치연합 의원들을 강온파로 구분짓는 이들의 분류법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보인다. 재협상을 주장하는 의원들을 ‘강경파’로 규정하고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 파기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은 전하지 않고 “여야 합의를 파기했다”는 표면적인 사실만을 강조해 강경파를 ‘반대를 위한 반대’ 세력으로 몰고 있다. 여기에 정치도 모르고 민주주의적 감각도 없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타협=선’인 셈이다.
이런 시각이 잘 드러난 보도가 조선일보 8월13일자 4면 <세월호法 합의 파기 과정에서 또 도진 ‘야당 5大 고질병’> 기사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새정치연합을 △목소리 큰 소수 △타협은 죄악, 대안은 NO △눈치 보는 중도파 △리더를 인정하지 않는 조직으로 진단했다.
조선일보는 “타협과 협의를 비난하는 이들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으로 대안도 내놓지 않는다”면서 “반면 중도파는 말이 없다. 비난이 두려워 입을 닫고 있다”고 전했다.
MBC <뉴스데스크>도 14일 <새정치민주연합, 강경파가 주도권 장악…‘타협’ 실종>에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당내 지도부의 리더십도, 합리적인 의사소통도 실종되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MBC는 이어 “중도파는 비난이 두려워 입을 닫고, 강경파는 지도부도 인정하지 않는 현실 속에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수장만 있고, 정치리더는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언론이 전하지 않은 재협상 이유는 사실 복잡하지 않다.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해경의 무능력한 구조작업이 이번 참사를 키웠으며 때문에 수사권과 기소권 없이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가족들과 시민사회가 적어도 수사권만큼은 법안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MBC <뉴스데스크> 13일자 리포트
세월호국민대책위원회는 합의안이 발표된 지난 7일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 철저히 성역 없는 조사와 수사를 진행해 책임자를 처벌하여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막자는 것”이라면서 “새누리당은 말도 안 되는 사법체계 논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에 반대하였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수사권은 양보할 수 없다더니 수사권은 물론 특검추천권까지 포기해버렸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이뤄진 합의였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는 여야 합의 직후 “가족대책위에 어떤 의견도 묻지 않고 이루어진 여·야 원내대표끼리의 합의는 당신들만의 합의일 뿐임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정치에 타협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새정치연합이 당사자인 유가족들로부터 협상권을 위임받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유가족들과의 의사소통이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 강경파와 온건파라는 당내 노선 차이로 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타협과 합의만이 능사라고 외치는 일부 보수언론은 정작 이런 내용들을 숨기면서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셈이다.
재능기부라는 이름의 ‘깡패’? 시사인 813
재능기부인가 재능 갈취인가. 특정 기업이나 단체는 재능기부를 통해 이미지 제고라는 간접 이익을 취득하는 것은 물론 인건비를 아껴 금전적 이득까지 취하는 모양새다. 재능기부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노동의 소외를 부른다.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 ‘기부’의 뜻이다. 그렇다면 요즘 여기저기서 들리는 재능기부의 뜻은 무엇일까. 이 ‘신조어’의 뜻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은 재능기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인이 가진 재능을 개인의 이익이나 기술 개발에만 사용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기부 형태.”
재능기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기부’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는 만큼 ‘재능기부’는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난한 ‘재능기부자’가 자신보다 훨씬 사정이 나은 ‘특정 기업이나 단체 등에 기여’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잦다. 기업이나 단체가 재능기부자를 모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기업이나 단체가 재능을 기부할 사람과 기부받을 사람을 찾아 둘 사이를 연결(중개)해주는 경우다. 기업·단체는 재능기부자에게 재능기부 증명서를 발급해주거나 약간의 실비(도저히 ‘대가’라고는 할 수 없는)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단체 역시 재능기부자와 마찬가지로 금전적 이익을 얻지는 못하므로, 자신들도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전부일까. 해당 기업·단체는 금전적 이익 대신 ‘재능기부를 실천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재능을 기부받은 당사자들도 기부자보다는 해당 기업·단체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연합뉴스
벽화 동아리 소속 대학생들이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경북 예천군 곤충생태원 진입로 주변의 옹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두 번째는, 해당 기업·단체에 재능을 기부할 사람을 찾는 경우다. 이에 대해서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재능을 갈취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첫 번째 경우의 기업·단체는 간접적 이익(이미지 제고)을 취득하는 데 불과하지만, 이 경우에는 직접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정민호씨(가명·30)는 최근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재능기부라는 명목으로 인건비를 아끼려는 행태가 있다고 토로한다. “행사 기획 단계에서 인건비 이야기가 나오면 ‘이 부분은 재능기부로 충당하자’는 제안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좋은 일에 쓰겠다며 글 써달라, 그림 그려달라는 부탁을 다들 너무 쉽게 한다. 하지만 ‘돈을 얼마 못 드립니다’와 ‘재능 좀 기부해라’는 엄연히 다르다. 이것은 노동의 인식에 대한 문제다.”
재능기부에 대한 논란이 거센 분야는 아무래도 예술계다. 예술 분야의 재능을 기부받고 싶어하는 곳이 많고, 기본적인 생계 유지도 어려운 예술인이 많다. 둘을 종합하면, 안 그래도 먹고살기 어려운 예술인들에게 재능을 기부하라고 요청하는 사업자나 단체가 많다는 이야기다.
재능기부와 관련된 예술계 종사자들의 증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재능기부 유경험자 중에는 기부를 자발적으로 하기보다 반강제로 한 경우가 더 많았다. 기부 요청자와 예술계 종사자의 대화는 주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흘러간다. “여보세요. 님이시죠.” “예, 맞는데요. 누구세요?” “님께 그림(글, 사진, 일러스트, 캘리그래피) 좀 부탁드리려고요.” “보수가 어떻게 되나요.” “죄송하지만 저희가 돈이 없어서요. 재능기부 좀 해주셨으면 해요.”
이 단계에서 예술가는 본인의 재능을 기부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만일 예술가가 재능기부 요청을 거절할 때, 대화는 둘 중 하나로 이어진다. “예, 알겠습니다”라며 상대가 전화를 끊으면 다행이지만, “다 ‘좋은 일’ 하자는 건데요.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라며 도리어 상대가 언짢아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시사IN 이명익
서울시는 서울시장 취임식(위)을 준비하면서 재능기부자를 모집해 치르는 ‘비용 제로 취임식’을 선언해 논란을 빚었다.
재능기부를 요구하는 쪽의 ‘좋은 일’이 정말 좋은 일일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이른바 ‘윈-윈 거래’를 내세운 ‘보수 없는 구인 요청’이 재능기부자 모집 공고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7월 말, 영화계 정보 공유 사이트 필름메이커스(이하 필커) 게시판에서도 재능기부를 둘러싼 논쟁이 전개됐다. ‘재능기부라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재능을 갈취하지 말라. 하다못해 5만원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일부 구직자들과 ‘재능기부를 반대하는 배우는 돈을 밝히는 배우다. 그런 배우는 우리도 필요없다’는 일부 제작자들의 의견이 맞섰다.
이 게시판 논란을 지켜본 배우 지망생 김누리씨(가명·23)는 “재능기부는 재능이 있는 사람한테 바라야지 왜 연기 지망생한테 바라나. 제작자가 돈이 없으면 배우 지망생은 돈이 더 없는 거다”라면서 재능기부가 재능 갈취로 악용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이어서 김씨는 “무보수라도 작품이나 시놉시스가 괜찮다면 출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을 뽑는 쪽에서 재능기부를 바라는 게 당연해진 현실에 화가 난다. ‘우리 작품 할 건데 배우 섭외할 돈은 없거든. 너네는 뭐 스타도 아니고. 하고 싶으면 와.’ 이런 느낌이랄까. 이걸 누군가가 끊어주지 않으면 나중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기자가 이상해지는 사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필름메이커스’ 게시판에서 재능기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비용 제로’ 취임식이 가능했던 이유
재능기부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7월1일 치러진 제36대 서울시장 취임식에서도 벌어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비용 제로’ 취임식을 치러 화제를 모았다.
서울시는 6월20~30일 서울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서울시장 취임식 재능기부자를 모집했다. 재능기부자를 모집한 배경에 대해 서울시는 “‘시민은 시장’이라는 서울시정의 기치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는 “이번 취임식은 시민이 주인이 된,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취임식으로 진행했다. 행사장 안내를 희망한 7명을 포함해 총 18명의 시민이 재능기부 신청을 해주셨다. 이 중 11명을 선정해 사회, 애국가 반주 및 안내봉사에 참여토록 하였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예술인들은 서울시의 이같은 ‘무료 취임식’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안 그래도 재능기부를 당연시하는 문화 때문에 힘든데 모범을 보여야 할 지자체까지 재능기부로 행사를 치르면 어떡하느냐는 불만이 주를 이뤘다.
서울시 취임식을 두고 ‘어떻게 아꼈는가’보다 ‘어디다 얼마나 썼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취임식을 하루 앞둔 6월30일, 진보 성향 인터넷 매체인 레디앙(redian.org)에는 ‘재능기부 혹은 노동 착취’라는 글이 올라왔다. 레디앙은 ‘문어’라는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의 동의 아래 게재했다.
문어는 이 글에서 “세금을 ‘쓰는’ 일이 본업인 지자체가 스스로 재능기부 받는 일을 당연시하는 것은 아무래도 떨떠름한 모습”이라고 지적하면서 “취임식 예산을 아끼면 실제로 서울시의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 그 이익이 돌아갈 것인가? 워낙 방만한 지자체들이 많다 보니 ‘예산을 아낀다’는 것이 마치 일종의 절대선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그렇게 아낀 예산을 실제로 어디다 썼는가 하는 것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지자체가 재능기부를 받는 것이 타당한가’를 묻는 <시사IN>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재능기부의 제1의 원칙은 자발적 참여다. (중략) 예술인들의 재능기부는 시가 일방적으로 기여를 받는 차원을 넘어 예술인에게는 폭넓은 공연 기회를, 시민에게는 좀 더 풍성한 문화공연을 제공한다. 예술인과 시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상생, 윈-윈의 의미도 담겨 있다. 단, 예술가의 창작 과정과 그 결과물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기본 방침이다.”
서울시장 취임식 재능기부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한 가지 더 있다. 행사장 안내 자원봉사자도 재능기부자로 간주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흔히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를 분류해서 이야기하지만 재능기부는 사실상 자원봉사의 한 종류다. 즉, (재능기부는) 자원봉사 중에서도 시민 개인이 가진 전문성을 좀 더 강조한, 일종의 전문 영역의 자원봉사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재능기부를 제안하려면 이렇게 하라
평소 영상 촬영과 관련된 재능기부 요청을 많이 받는 임기웅 감독은 지난 5월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신이 재능기부나 봉사를 제안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이라는 글을 올렸다. 임 감독은 봉사는 어차피 자원하는 것 아니냐면서 ‘자원봉사’ 대신 ‘봉사’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운동 플랜B 홈페이지(nowplanb.kr)에도 게재된 이 글에는 1000명이 넘는 독자가 ‘좋아요’를 눌렀다.
임기웅 감독은 이 글에서 10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10가지 원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초면부터 재능기부를 요구하지 마라. △기부자가 업으로 삼고 있는 일은 되도록 재능기부로 요구하지 마라. △재능기부나 봉사를 권했을 때 상대가 머뭇거린다면 다른 이를 알아보라. 상대가 곤란하다는 뜻이다. △재능기부나 봉사가 필요하면 되도록 공고 형식으로 알려라. 자발적으로 기부자가 직접 움직이는 게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재능기부를 요구하면서 ‘허세’를 부리지 마라. 차라리 돈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진정성 있어 보인다. △차비 정도는 지급해라. △식사는 꼭 챙겨줘야 한다. △자원봉사자를 ‘자봉’이라고 성의 없이 줄임말로 부르지 마라. 차라리 ‘봉사자’라고 해라. △기부자·봉사자에겐 책임의 의무가 없다. 책임이 필요한 일에는 정당하게 노동의 대가를 지급해라. △나중에라도 ‘보상’이 될 만한 대형 프로젝트가 생기면 재능기부자에게 맡겨라. 무급으로 기부·봉사 시키다가 제대로 큰돈 쓸 때 업체에 맡기는 경우를 보면 허탈하다.
당신의 재능과 성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대중문화 매거진 <빅이슈>의 성공은 시민과 유명인의 재능기부 덕분에 가능했다. 지금도 4200여 명이 함께 잡지를 만들어 나간다. 나의 재능이 사회로부터 받은 기회와 혜택에서 온 것임을 기억하자.
<빅이슈(The Big Issue)>는 홈리스(노숙인 등 주거 취약 계층)에게만 잡지의 판매 권한을 주어 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 대중문화 매거진이다. 판매 수익의 50% 이상이 홈리스 판매원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빅이슈>의 성공은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빈곤 문제와 홈리스 자립에 공감하는 시민들과 유명인들의 재능기부가 있어서 가능했다. 시민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빅이슈>를 알렸고, <해리 포터>의 조앤 K. 롤링과 같은 유명 작가들이 기고했다.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같은 스타들은 초상권을 기부해 <빅이슈>의 표지를 장식했다.
2010년 창간된 <빅이슈> 한국판은 영국 <빅이슈>처럼 그 시작과 성장을 재능기부자들과 함께해왔다. 창간 초기 재능기부자로 참여한 김연수·오지혜·허지웅 같은 인기 기고자들의 글을 통해 <빅이슈> 한국판 창간을 알렸다. 초기 국내 표지모델 섭외에 난항을 겪던 <빅이슈>를 위해 유명 사진작가 고(故) 보리는 배우 하정우·최강희 등 국내 스타들을 직접 섭외해 표지 촬영을 해주기도 했다.
<빅이슈> 재능기부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전문성 확인이 필요한 분야는 기부자의 포트폴리오를 받는다. ‘자선보다 소비’라는 관점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실하게 담아내려면 이러한 검증 절차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빅이슈>에는 글·번역·사진·그림 등 전문 분야의 재능기부자 1800여 명과 <빅이슈> 판매 도우미(빅돔) 2400여 명이 있다.
<빅이슈>는 재능기부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있다. 재능기부자들이 <빅이슈>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일종의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며, 일방적인 의사 결정을 삼가는 것이다. 선의로 재능을 기부한 이들이 스스로 ‘좋아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노력한다.
문제점은 집단지성을 통해 보완될 것
홈리스는 집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인간관계가 단절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빅이슈> 재능기부가 특별한 이유이다. <빅이슈> 판매원들은 재능기부자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잡지를 판매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다시금 관계를 만들고 소통하기 시작한다. 또 스스로 노력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존엄성을 회복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재능기부자들은 재능기부를 받는 단체와 재능기부 수혜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공감대를 갖고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다.
<빅이슈>는 재능기부자들이 더욱 열린 구조로 참여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 미디어를 통한 정보량이 많아지는 만큼 시민들의 사회참여는 늘어나고 있고, 이들에게는 사회 변화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들의 욕구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 재능기부라면 이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현재 재능기부 현실에서 보이는 문제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단지성을 통해 보완될 것이라 믿는다.
왜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듯, 자신의 재능이나 성공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받은 기회와 혜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더 센 놈이 갈수록 자주 습격한다 813 시사저널
태풍 잇따른 한반도 북상은 약해진 북태평양 고기압 탓
또 태풍이야? 엊그제 ‘나크리’가 지나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강력한 11호 태풍 할롱 소식에 나크리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는다. 7월 초에 발생해 일본 오키나와를 쑥대밭으로 만든 제8호 태풍 너구리, 하순에 발생해 중국을 강타한 10호 태풍 마트모,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도에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부은 12호 태풍 나크리, 그 뒤를 이어 차도 뒤집어놓을 수 있는 위력인 초속 51m의 할롱까지, 한 달 사이에 벌써 4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몰아쳤다. 한반도에 태풍 영향이 가장 많은 시기는 8월 하순에서 9월 사이다. 이를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때 이른 태풍이 잇따라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태풍은 생겨난 순서에 따라 1호, 2호, 3호 태풍이라 정한다. 할롱이 나크리보다 하루 앞서 발생했지만 한반도 인근 해상에 더 늦게 도달한 것은, 2000㎞ 이상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태풍은 발생부터 소멸까지 보통 일주일에서 1개월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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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 고기압 확장 못해 한반도에 영향
국가태풍센터 통계에 따르면, 보통 태풍은 7월까지 평균 7.6개 정도 발생한다. 올해는 12개로 평년 수준의 1.5배다. 그중 2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 또한 평년보다 많다. 최근 30년(1981~2010년) 동안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미친 태풍은 연간 3개인데 보통 8~9월에 발생한 것들이다. 물론 이는 평균값일 뿐 해마다 다를 수 있다.
기상청은 그 원인을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약화돼 태풍이 한반도로 진입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태풍의 진로는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충분히 확장하지 못해 예년보다 세력이 약화됐다. 이 때문에 중국이나 타이완 쪽으로 서진해야 할 태풍이 힘이 약해서 아래쪽인 한반도와 일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북진하고 있는 것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면 태풍은 중국 쪽으로 진행한다.
태풍의 정체는 북태평양 남서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이다.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으로, 강한 바람과 비구름을 품은 거대한 공기 덩어리다. 열대 지역에서 저기압이 발생하는 이유는 지구의 자전 때문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의 자전으로 지역에 따라 태양으로부터 받는 열량에 차이가 생긴다. 이렇게 열량의 차이가 생기면 공기 밀도가 달라진다. 열을 적게 받으면 밀도가 높아져 고기압이 형성되고, 열을 많이 받으면 밀도가 낮아져 저기압이 형성된다. 적도 부근은 극지방보다 태양열을 더 많이 받아 저기압이 형성된다. 바람은 항상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불기 때문에 저기압이 형성되면 바람이 불어온다. 이때 불어온 바람은 중심 부근에서 몇 ㎞ 위로 올라간 후 밖으로 나간다. 여기에 지구의 자전으로 회전하는 힘이 가해지면 공기의 소용돌이가 생긴다. 이게 바로 태풍이다.
태풍은 해수 온도가 보통 섭씨 27도 이상이어야 발생한다. 열대 저기압이 뜨거운 해수면으로부터 에너지를 전달받으면서 강해진다. 태풍의 반지름은 가장 작은 경우도 300㎞나 된다. 이 지역에서 혼합층(해양에서 상하층이 잘 혼합되는 층) 깊이를 100m로 가정한 경우, 해수 온도가 1도 상승하면 해당 지역의 해양 에너지는 1.2×1020J(1J은 1N<뉴턴>의 힘으로 물체를 1m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만큼 상승한다.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10만 배에 해당한다. 다행인 것은 증가된 모든 해양 에너지가 태풍에 공급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중 일부만이 잠열의 형태로 태풍 에너지로 변환된다.
태풍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바다는 여름에 점점 데워져 9월 초에 온도가 가장 높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여름 태풍보다 이때쯤 발생하는 가을 태풍의 위력이 대체로 세다. 사상 최악의 슈퍼 태풍은 비이상적으로 더운 북태평양 위에서 한껏 뜨거워진 가을 바다의 에너지를 최대한 흡수했다는 말이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는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67m, 즉 시속 240㎞ 이상인 열대 저기압을 슈퍼 태풍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태풍의 강도는 중심부의 최대 풍속으로 분류한다. 초속 44m 이상은 ‘매우 강(强)’, 33?44m는 ‘강’, 25?33m는 ‘중(中)’, 17?25m는 ‘약(弱)’으로 나눈다. 초속 15m의 바람이 불면 간판이 떨어질 수 있다. 초속 25m의 바람에는 지붕이나 기왓장이 뜯겨 날아갈 수 있다. 초속 30m면 허술한 집이 무너지고 초속 40m의 강풍이면 사람뿐 아니라 커다란 바위까지 날려버린다. 역대 한반도를 강타한 최악의 태풍으로 꼽히는 태풍 루사는 2002년 당시 초속 50m가 넘는 강풍을 동반해 5조1000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낸 바 있다.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 약화는 엘니뇨 때문
그렇다면 이번 태풍에 왜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지 못했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엘니뇨 현상 탓이다. 태풍은 열대 지방의 바다에서 생겨 고위도로 이동하면서 힘이 점차 세진다. 바다로부터 계속 수증기를 공급받기 때문에 강한 바람뿐 아니라 많은 비를 동반한다. 전문가들은 적도보다는 북위 5~25도 사이에서 태풍이 잘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엘니뇨가 나타나게 되면 대개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약해져 한반도 쪽으로 힘을 쓰지 못한다. 엘니뇨는 동태평양에 위치한 페루 연안의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올라가 6개월 정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가 발생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페루를 비롯한 남미 국가는 강수량이 늘어나 홍수 피해를 겪게 된다. 최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산불이 오랫동안 지속돼 많은 피해를 준 것도 엘니뇨 현상에 의한 가뭄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마른장마도 결국은 엘니뇨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엘니뇨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해져 장마전선이 중부 지방까지 상승하지 못했다는 것. 태풍 경로도 장마전선의 영향도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 여름 기후에서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이 80%나 된다. 지각 장마, 마른장마에 이어 때 이른 태풍 러시까지, 엘니뇨의 심술에 한반도의 여름 날씨가 요동치고 있다.
파파, 꽃동네에 꼭 가셔야겠습니까 08.19ㅣ주간경향 1089호
“교황님이 신부님을 위해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곳에 사는 장애아들, 누구도 봐주지 않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자꾸 이런 문제제기가 나오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천주교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꽃동네가 아니라 만약 제주 강정을 가더라도 찬반 논란은 비슷하게 벌어질 것”이라며 “교황 방문이 그 어떤 면죄부라도 주는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가 지난해 8월 2일 로마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나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 꽃동네 제공, 경향자료 사진
오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 되기 전 부터 인연
꽃동네. 충북 음성, 경기도 가평, 강화 등에 심신미약자, 장애인, 장애아동을 수용하고 있는 전국 최대의 사회복지시설이다. 오웅진 신부는 꽃동네의 설립자다.
2003년 MBC PD수첩은 ‘꽃동네 거지 신부님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꽃동네 후원금과 재산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는 60여 차례에 걸쳐 오웅진 신부와 꽃동네 부동산에 대한 의혹을 보도했다. 이 기사들은 현재도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더라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꽃동네와 관련된 각종 소개자료, 책자 등에서 볼 수 있는 글귀다. 충북 음성 금왕읍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난 1990년 타계한 최귀동 할아버지다. “자신이 걸인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앞장선 ‘거지성자’ 최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의 만남이 꽃동네의 시작이었다”고 꽃동네 측의 연혁 소개에는 밝혀져 있다. PD수첩 등의 보도로 물의를 빚자, 오 신부는 꽃동네 회장직을 사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오 신부는 꽃동네를 대표하는 인사다. 사건 후 2006년 설립된 ‘재단법인 예수의꽃동네유지재단’의 이사장이다. 재단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사 오웅진 외에는 대표권이 없음’이라는 대표권 제한규정이 아예 명시돼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12월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했다. 1984년 MBC 문화시민상을 필두로, 국민훈장 동백장(1991년), 막사이사이상(1996년), 알리안츠 제일생명의 ‘올해를 빛낸 한국인상’(2004) 수상 등 경력을 지녔다.
교황이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은 ‘교황이 되기 전부터의 인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3일 오 신부 일행이 로마를 방문해 교황을 알현한 사진이 뒤늦게 화제에 올랐다. 당시 꽃동네 측의 공지를 보면 교황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일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꽃동네 분원을 설치하면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교황이 되면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알현하게 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인연이 이번 교황 방문 때 충북 음성의 꽃동네 방문 일정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는 것이 교계 안팎의 설명이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나온다. 한 천주교계 인사는 정진석 추기경과 오 신부의 ‘특별한 관계’를 지적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청주교구장일 때부터 오웅진 신부와 특별한 관계였다. 꽃동네를 설립할 때부터 정 추기경은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며, 정 추기경의 어머니 묘소도 음성의 꽃동네에 있다. 교황 방문 일정이 오 신부와 교황의 개인적인 인연만 작용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앞서 방송 전후로 검찰은 오 신부와 꽃동네 관계자들을 34억6000여만원 횡령 혐의로 기소한다. 그리고 2007년 12월, 대법원은 오웅진 신부에게 적용된 횡령 및 사기, 업무방해 등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꽃동네와 오웅진 신부에게 적용된 ‘억울한 누명’이 모두 벗겨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충북지역 민방인 CJB청주방송은 지난해 7월, 두 차례 기획보도를 통해 오웅진 신부의 부동산 투기와 횡령 의혹을 보도했다. 꽃동네의 부동산 매입과정에서 오 신부나 꽃동네 측 수사나 수녀의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했다는 것은 과거부터 끈질기게 나오던 의혹이었다. 여기에 2009년 새로 설립한 ‘꽃동네유한회사’에 오 신부나 꽃동네 측 수녀와 수사 명의의 부동산을 ‘현물출자’하고 대가로 30%에 가까운 지분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보도 후 음성을사랑하는주민들의 모임(음사모) 회원들이 오 신부 등을 고발했다.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해 꽃동네 측은 어떻게 말할까.
검찰 불기소 놓고도 수사 제대로 했나 논란
꽃동네 측은 끊이지 않는 고소·고발의 배후에 금광 개발업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재단법인 예수의 꽃동네 홍보미디어팀은 이렇게 주장했다. “금광 개발업체의 대표이사(2003년 작고)의 둘째아들이 KBS 김모 기자다. 김모 기자는 아버지의 광산 개발에 도움을 주고자 꽃동네를 중상모략하고 고소·고발을 해왔다. 지난 2013년 7월의 고발 주체도 김모 기자로 역시 2013년 12월 31일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지난 2002년에 이어 2013년의 고소·고발건에도 꽃동네와 이해관계에서 다툼이 있는 사람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다. 고발 주체만 놓고 보면 꽃동네 측의 주장은 사실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31일 검찰이 내놓은 ‘불기소 결정서’를 보면 고발인은 김모씨로, 금광개발회사의 둘째아들로 확인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실제 횡령이나 배임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8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애인 수용시설인 꽃동네 방문 취소를 위한 진정서 접수 기자회견’에서 꽃동네 거주 탈시설 장애인 모임 소속 장애인이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농지 등 부동산을 매입한 이유는 “꽃동네 구성원들이 먹을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꽃동네 수도자 명의로 필요한 농지를 구입했고, 실제 수도자들이 농사를 지어 농산물을 생산했다”고 꽃동네 측은 해명했다. 수도자 명의로 구입한 농지는 “꽃동네 수도자들이 급여 등을 모아 조성한 꽃동네 형제회·자매회 자금으로 매입한 것이며, 청주교구 천주교회유지재단, 꽃동네재단, 꽃동네유지재단의 자금으로 매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재단을 대표해 검찰 조사를 받은 윤모 수녀는 검찰에 “꽃동네 형제회 및 자매회 자금은 2013년 9월 30일 기준으로 137억5242만원이 있는데, 이 돈은 그동안 수백필지의 농지를 매입하고 남은 것으로 꽃동네 형제회 및 자매회 자금만으로 충분히 농지를 매입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고발인이 제기한 의혹은 기존 판결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부족하며, 꽃동네 측에서 제출한 자료 등으로 볼 때 꽃동네 측의 진술이 사실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고소를 기각했다.
그런데 의문은 남는다. 첫째, 수도자들의 급여 등으로 조성했다는 꽃동네 형제회 및 자매회 자금으로 땅을 구입하고도 137억이 남았다면 원래 조성자금은 얼마였다는 말일까. 땅 구입자금의 규모를 제외하고 남아 있는 돈만으로 계산해보자. 형제회와 자매회가 설립되었다는 1987년부터 소속 수도자들의 급여를 한푼도 쓰지 않고 저축했다고 가정한다면, 평균적으로 매년 5억700만원씩 모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게 과연 가능한 액수일까.
둘째로, 가평에 거주하는 꽃동네 수녀가 음성 인근의 땅을 매입하는 등 농지법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검찰은 음성군청 농지 취득 담당자의 말을 빌려 꽃동네 측에서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를 검토한 후, 농지 취득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하여 농지 취득 자격증명원을 발급했으며, 또한 농지 구입시점도 2008년으로 농지법 위반 공소시효(5년)를 넘겼다고 결론을 냈다. <주간경향>은 지난 2월 재벌가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 주변 땅과 관련해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재벌 2·3세들은 구입한 땅에 조경수를 심는 방법으로 농지 취득을 받았다. 지난해 8월, 지역민방인 CJB청주방송이 방영한 꽃동네 매입 부동산 실태도 비슷하다. 농지를 구입해 조경수를 심었다. 불법은 아닐 수 있지만 편법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꽃동네 관련 의혹을 제기해온 음사모의 박병철 대표는 8월 7일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불기소 처분이 될 당시 검찰은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오웅진 신부는 소환하지 않았고, 꽃동네 관계자 조사도 윤모 수녀 두 차례, 이모 수도사 한 차례 등 형식적인 수사를 한 것이 전부”라며 “당시 수사를 한 검찰 수사관은 오웅진 신부의 기존 토지매입 자금에 대한 수사를 할 필요 없어 마무리한다고 밝혔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꽃동네 측은 후원금이나 수녀·수도사의 월급으로 수백여만평의 토지를 샀다고 주장했는데, 후원금을 낸 사람들이 영리법인인 유한회사를 설립해 양도와 상속이 가능한 지분을 취득하라고 후원금을 기탁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후원자들과도 함께 고소장을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낸 박 대표 등의 고소·고발사건은 올해 1월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에서 각하 결정되었고, 대전 고등검찰청에 낸 항고는 지난 5월 30일 항고 기각 처분을 받았다.
장애단체 “시설수용 면죄부” 방문 반대
꽃동네 교황 방문을 두고 교계·시민·지역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 신부의 횡령 의혹이 제기됐던 지난 2003년부터 비판적인 입장을 내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쪽에서는 함세웅 신부가 지난 6월 ‘함께하는 사목’ 기고를 통해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고문에서 함 신부는 “꽃동네는 가톨릭 사회복지 정신을 따른 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큰 강제수용소 모형”이라며 “이것은 18세기 수준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며, 유엔이 제정한 장애인 권리협약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도 8월 5일 명동성당, 8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을 격리하고 억압하는 장애인 생활시설 꽃동네를 교황이 방문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설 밖으로 나오기를 열망하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현수 활동가는 “꽃동네 시설 자체가 불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이 탈시설 자립생활로 가는 추세에서, 상징성이 있는 인물인 교황이 대규모 시설을 방문하면 장애인 시설수용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장애단체의 기자회견에는 꽃동네에서 나온 장애인 당사자들의 꽃동네 생활에 대한 증언도 있었다.
지역사회에서는 교황의 꽃동네 방문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음사모의 박 대표는 “우리가 오 신부와 꽃동네를 고발한 입장이지만 꽃동네 방문까지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꽃동네 의혹 보도에 자문을 했던 한 인사는 “지난해 보도에서 의혹을 제기했던 땅 매매와 관련해서는 오 신부 측이 적극적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 땅주인들의 수용 요청을 꽃동네 측이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꽃동네 측에 논란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다. 꽃동네유지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임광규 변호사는 “전화로는 답할 수 없으며 이메일로만 답하겠다”고 밝혔다. <주간경향>은 11개항의 질문을 만들어 임 변호사가 제시한 이메일로 발송했다. 꽃동네 측은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하는 의향(意向)이 무엇인지 설명해주길 바란다”는 회신을 보냈다. 재차 기사 기획취지 등을 밝혀 답변을 보냈지만 꽃동네 측에서 답변은 마감시점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기사를 마감한 토요일 오전, 꽃동네 측에서 회신이 들어왔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꽃동네의 회신 내용을 공개합니다.
주간경향 정 용 인 차장께
취재 질문의 의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종교적 신념으로 이웃사랑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꽃동네도 그런 사람들의 장소이며, 이곳의 수도자들은 매일 성찰하고 기도하고 희생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꽃동네는, 자기를 흠내려고 사실과 다르고 사실을 왜곡하는 비방에 반박하기에는, 기도하고 버림받은 우리의 이웃을 돌보는데 너무 바쁜 곳입니다. 이를 매일 목격하고 있는 꽃동네봉사자들이 감동하여 그들도 함께 봉사하고 희생하여 오늘의 꽃동네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 차장님의 질문사항들이 어떤 것인가는 정 차장님이 너무 잘 아실 것입니다.
로마가톨릭 교황께서 꽃동네를 방문하고, 한국안의 거의 모든 수도회들의 수도자사제 수도자들에게 꽃동네로 와서 함께 기도하자고 명한 것은, 꽃동네가 요청한 것도 아니고, 꽃동네가 요청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교황께서 전 세계적 시야에서, 꽃동네 수도자들의 영성(靈性)에 주목하여 결정한 일입니다. 꽃동네는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겸손하게 침묵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이유로 꽃동네는 주간경향의 정 차장이 취재하는 “논란의 시시비비”에 협조하는 것을 사양하겠사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8월 9일 꽃동네유지재단 이사 임 광 규 드림
한국은 팔레스타인을 너무 모른다 [08.18 제1024호 한겨레21
팔레스타인 출신 귀화인 마흐모드가 아내, 다섯 명의 딸과 인천 송도의 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친척들을 두고 온 그는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이 시작된 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언젠가 아버지는 말했다. 나라를 잃어버린 자는
온 천하에 제 무덤도 못 가진다.
그리고 나더러 떠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팔레스타인 민족시인 마무드 다르위시 ‘나의 아버지’ 중에서
“오늘밤 죽을 수도 있다”며 소녀가 두려움에 떤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아이들이 울부짖고, 대답 없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아비가 절규한다.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비참을 보며 한국 인천의 하늘 아래서 함께 눈물짓는 이들도 있다. 야스민(14), 루바(12), 리나(10), 디마(6), 타라(4). 운이 좋지 않았다면, 별처럼 반짝이는 다섯 명의 딸들도 가자지구의 벽 뒤에 숨어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형벌 같은 삶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스크카니 마흐모드(43)는 적어도 지금 자신의 아이들이 그 천형을 피한 것에 안도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 땅
지난해 4월, 마흐모드는 한국인이 됐다. 요르단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요르단과 한국을 오가며 살았다. 한국 국적을 갖게 되기까지, 그는 자신의 ‘국적’으로 표기된 나라에 발을 들여본 일조차 없다. 아버지의 고향이 있는 팔레스타인이 그의 나라였다.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에 뿌리 뽑힌 망명자가 입국하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불허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 때문에 이스라엘만 알아요. 이스라엘만이 나라라고 생각해요. 팔레스타인? 잘 몰라요. 한국은 나에게 고마운 나라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거기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잖아요.” -스크카니 마흐모드
아버지의 고향은 가자 북쪽의 ‘알리드’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구두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부유하진 않아도, 부족함도 없었다. 유대계 이주민들과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 아직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양들의 목에 달린 방울이 딸랑이는 소리가 쿵쾅거리는 장갑차 소리로 대체된 것은 1948년의 일이다.
그해 4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군대는 유명한 피의 숙청인 ‘데이르야신 학살’을 저질렀다. 마흐모드의 가족은 알리드를 떠나 가자로 향했다. “한두 달이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대요. 그런데 20년을 살게 되었지요.” 마흐모드의 세 형이 가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가자에서도 그들은 뿌리내릴 수 없었다. ‘분할의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 통치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 80% 이상이 수십 년 동안 ‘디아스포라’로 떠돌게 될 운명에 처했다.
1967년 6월 벌어진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의 3차 중동전쟁은 엿새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마흐모드의 가족도 다른 팔레스타인 난민들처럼, 난민에 비교적 우호적인 요르단행을 택했다. 땅도 집도 없이 새로 시작한 삶은 녹록지 않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마흐모드가 태어났다. 그래도 그는 운이 좋았다. 일찌감치 한국 자동차 부품과 중고차 무역의 가능성을 알아본 덕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한국에 와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에는 아직 친지들이 있다. 할아버지 형제의 자녀들이다. “한국식으로는 육촌이에요.” 마흐모드가 설명했다. 일가족이 요르단으로 망명한 뒤 태어난 마흐모드는 그들을 직접 만난 일이 없다. 사진과 전화 통화로 안부를 물을 뿐이다. 그래도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러하듯, 마흐모드에게 가족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뿌리’에 의지하는 것은 오랜 이산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마흐모드와 한국에 살고 있는 그의 형제들은 살림이 안정되고부터 팔레스타인의 가족들에게 1년에 두어 차례씩 돈을 보내주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선 어떤 일을 해도 돈 벌기 힘들어요. 우리만 잘 지내는 게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요.”
“죽을 때는 꼭 팔레스타인에서”
친지의 일부는 팔레스타인의 수도인 라말라에, 일부는 가자에 산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이 시작된 뒤 한 달 가까이 가자에 있는 가족들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잘 지내는지 확실히 몰라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 마흐모드의 얼굴에 근심이 깃들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가 한반도의 이산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서는 만날 수 없고, 늘 생사라도 알고 싶은 혈육.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지 못한 마흐모드가 “죽을 때는 꼭 팔레스타인에 가서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향을 그리는 ‘망향가’ 같은 것이 팔레스타인에도 있는지 그에게 물었다. 그의 딸 야스민과 루바, 리나가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른다. “이건 아주 슬픈 이야기예요. 예루살렘은 우리의 도시, 우리의 땅이고. 우리가 비록 지금 당장 거기에 있지 못해도 영원히 싸워서 언젠가 우리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마흐모드가 노래의 의미를 대신 설명했다. 마흐모드의 아이들은 요르단과 한국을 오가며 살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팔레스타인 알리드가 자신의 뿌리인 것을 안다. “우리 고향은 팔레스타인이란다.” 요르단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늘 이야기해주었다. 속이 깊은 루바는 얼마 전 아빠와 함께 서울에서 열린 이스라엘 규탄 집회에 참여해 “이스라엘은 한국에 무기를 판 돈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의 어린이를 죽인다. 한국은 이스라엘을 돕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마흐모드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회에 나가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마흐모드는 한국인 친구를 사귈 때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은 옛날에 팔레스타인하고 상황이 비슷했어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일본하고 한국 같은 관계예요. 일본이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한국 사람들 어떻겠어요. 계속 싸워야죠.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한테 나쁘게 (공격) 안 해요. 이스라엘이 문제를 일으키려고 전쟁을 자꾸 하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너무 모른다. 한국의 뉴스와 신문에선 팔레스타인이 남한과 북한의 관계처럼 이스라엘과 세력 다툼을 벌이는 것처럼 보도된다. 틀린 이야기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 때문에 이스라엘만 알아요. 이스라엘만이 나라라고 생각해요. 팔레스타인? 잘 몰라요. 한국은 나에게 고마운 나라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거기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잖아요.”
“남한과 북한 같은 관계가 아니에요”
지난 6월 법무부 집계를 보면, 국내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국적자는 34명에 지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이지만 망명 뒤 인접 아랍국가의 국적을 갖게 된 이들을 포함하더라도 그 수는 미미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유대인 역사학자 일란 파페의 지적대로 팔레스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민족주의적이거나 인종적이거나 종교적 관점이 아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오만한 장군, 탐욕스런 정치인, 냉소적인 외교관”과 같은 악당이 아닌 “여성, 아동, 농민, 노동자, 평화운동가”들의 희생을 지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의 이스라엘 규탄 집회에서 어느 아랍인이 들고 있던 손팻말의 다음과 같은 문구처럼 말이다. “여러분은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감정을 느낄 수 없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휴머니즘입니다.”
제국주의의 균열 이스라엘의 발악
제국주의 시대 극우 유대인이 고안하고 미국의 전략적보물이 된, ‘시온주의’의 인공적 피조물 ‘이스라엘’의 역사. 도대체 왜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과 봉쇄는 계속되는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하마스 시설을 타격한다는 것은 대놓고 가자지구 민간인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인구를 박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서야 이스라엘의 학살극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이유를 이해하려면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성서 시대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시리아’라고 하면 현재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전 지역을 가리켰다. 그중 팔레스타인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가 있는 곳이었다. 예루살렘(이스라엘), 카이로(이집트), 다마스쿠스(시리아), 베이루트(레바논), 라바트(모로코), 바그다드(이라크)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은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였다.
영국의 이익을 보호해줄 동맹국
» 지난 7월29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의 동쪽에서 포연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과 구미 제국주의의 이해관계 속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1849년 영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요충지 아덴(남예멘의 수도)과 알제리를 장악하면서 중동과 아프리카에 식민화 물결이 들이닥쳤다. 프랑스와 러시아도 이 물결에 합류했고 후발 산업화로 승승장구하던 독일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1916년 4~5월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사이크스-피코(Sykes-Picot) 협정을 통해 중동 지역을 각각 나눠가졌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됐다.
같은 시기 유대인들 사이에선 ‘시온주의’(유대인 국가 건설 운동)가 꿈틀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우익 언론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반유대주의 여론에 떠밀려 스파이로 내몰린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을 지켜보며 정치적 시온주의를 구체화했다. ‘제국주의 열강의 지지를 받는 비발전국에서의 유대인 국가’상을 저서 <유대국가>를 통해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는 훗날 초대 이스라엘 대통령이 되는 과학자 하임 아즈리엘 바이츠만에게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보호하는 제국주의 질서가 중동에서 균열이 나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자지구 학살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츠만은 영국의 영향력 아래 시온주의 국가를 만들면 그 시온주의 국가는 영국의 이익(특히 수에즈운하)을 보호해주는 동맹국이 될 것이라고 영국 지배층을 설득했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던 땅에 제국주의를 돕는 유대국가 건설을 보장해주리라 선언했다.
밸푸어 선언은 유대인들의 이주에 가속을 붙였다. 시오니스트들은 전세계에서 자금을 끌어들였고 영국 고등판무관이 내린 포고령에 힙입어 팔레스타인 땅을 헐값에 사들였다. ‘유대인의 땅, 유대인의 노동, 유대인의 상품’이라는 기치 아래, 새 정착민들은 아랍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은 땅에서 유대인들은 노동조합뿐 아니라 기업가, 은행, 보험회사, 지주, 사회보장의 구실까지 광범하게 포괄하는 그들만의 공동체(히스타드루트)를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1936년 4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진정한 총파업으로 항의했다. 이를 두고 당시 한 영국 관리는 ‘혁명 초기’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파업과 납세 거부 같은 시민불복종 운동이 팔레스타인 전역을 휩쓸었다. 영국의 대응은 야만적이었다. 파업 첫날부터 계엄령을 선포했다.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뒤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처지에 팔레스타인에서 식민통치를 하느라 골머리를 썩느니 이라크의 석유에 좀더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1947년 2월 영국 노동당 내각은 팔레스타인에서 퇴장하고 이 국가의 장래 책임을 유엔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6% 소유한 인구 30%에게 55% 땅을 안겨
그런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비극은 시작됐다. 1947년 유엔은 유대인 이민자들 중심의 유대국가와 팔레스타인인 중심의 아랍국가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팔레스타인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아랍인들에게는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 전체 토지 면적의 6%를 소유하고 있던 인구 30%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영토의 55%를 할당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한 1948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크바’(재앙)라고 부르는 학살이 시작됐다. ‘데이르야신’이라는 한 아랍 마을에서는 이스라엘 특공대에 의해 팔레스타인 사람 254명이 일렬로 세워진 채 총살당했다. 공포에 질린 75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을 부랴부랴 떠나야 했던 이유다.
이스라엘은 갑자기 중동 땅을 점령한 새로운 식민종주국에 대항하는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1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의 군대를 격파했다. 특히 1967년 벌어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에 자신의 유용성을 확실히 입증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터였다. 그해 6월 이스라엘은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의 군대를 엿새 만에 제압했다.
미국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스라엘이 ‘미국 대신’ 중동 문제를 해결해주는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정상국가’의 지위를 확보했고 새롭게 점령한 영토의 주권도 승인받았다. 이후 1979년 이란혁명으로 친미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자 이스라엘은 미국에 없어선 안 될 중동의 보물이자 전략적 자산이 됐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제3세계와의 통로 구실도 했다. 1960년대에 이스라엘은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케냐, 나이지리아 등 15개 아프리카 국가들과 친교를 맺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친교는 특히 두터웠다. 미국의 무기는 이스라엘을 통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인종차별 정책)를 지원했다.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군 사이의 4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은 신속했다. 정교한 최신 무기를 공급했고 22억달러의 군수품 공급 협정을 체결했다.
이스라엘을 향한 미국의 지원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 가자지구 학살에 이용된 이스라엘의 미사일방어체제 아이언돔의 경우 1대를 배치하는 데 5천만달러, 1발을 쏘는 데 2만달러가 든다. 가자지구의 피바람 속에서도 미국은 아이언돔 지원액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라는 병영국가를 활용해 중동에서 패권을 유지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요르단 등의 나라에서 자신의 거점을 만들어왔다. 급기야 이란혁명(1979년)의 치욕을 되갚을 날을 기다리며 2003년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그러나 2001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점령, 2003년부터의 이라크 침공 및 점령으로 미국민이 50년간 사회보장제도를 누릴 수 있는 3조달러의 돈만 날렸을 뿐이다.
미국의 퇴각은 중동 질서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1967년 이스라엘이 아랍연합군을 엿새 만에 격퇴했을 때 아랍의 평범한 사람들이 느꼈던 깊은 좌절감을 씻어주는 구실을 한 것이다.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이스라엘은 자신을 보호하는 제국주의 질서가 중동에서 균열이 나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자지구 학살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3차 인티파다가 멀지 않았다
몇 년 전 아랍 혁명으로 아랍 지배자들의 통제력도 약해졌다. 이집트에서 혁명이 한창일 때는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을 폐기하라는 요구도 아래로부터 제기됐다. 이 협정을 계기로 이집트라는 중동의 가장 강력한 국가를 친미 동맹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미국으로선 큰 위협일 수밖에 없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같은 독재자들이 죽거나 약해지면서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세력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최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파타당의 연합정부 구성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가자지구 학살은 이에 균열을 내려는 이스라엘의 발버둥이기도 하다.
결국 시온주의는 영국과 미국이 만든 피조물이다. 그 피조물의 발악을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다. 요즘 미국 과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같은 외신을 보노라면 중동 특파원으로 오랜 경력을 쌓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구상해온 모든 것이 이제 더는 의미 없게 됐다. (…) 이스라엘은 아랍인들의 일에서 최대한 발을 빼야 한다. 거대한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 이스라엘이여, 길을 비켜라.” 제3차 인티파다(항쟁)가 시작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지금, 1차(1987년), 2차(2000년)에 이은 새로운 항쟁이 아랍의 봄을 다시 소생시키는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어진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반전평화연대(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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