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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5.10~

by 이성근 2021. 5. 9.

 

부동산 불패신화속 노마드의 삶, 회피인가 해방인가

[리뷰] 93회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선택에 대해, 좋아서 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93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남편을 잃고 밴에서 유랑하는 삶을 산다. 작은 밴에서 이 장소 저 장소 옮겨가면서 혼자 살고, 저임금 단기 노동을 제공하며 떠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펀이 노마드족으로 차츰 성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하더라도 돈이 없어서 노마드로 사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펀이 즐기는 것들을 가치 절하하기도 한다.

 

펀은 아마존 창고, 사탕무 가공 공장, 놀이동산 식당, 캠핑지 등에서 일하고 돈을 번다. 가끔은 친구 덕에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만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애써 부탁해도 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떠돌아다니면서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작은 밴에서 추위에 떨며 자는 펀을 보면 측은함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들을 이렇게 선택하게 한 미국 사회를 비판할 수 있다.

영화 노매드랜드스틸컷

 

펀의 주변인들 역시 펀의 노마드(유목민) 삶을 우려한다. 그래서 펀의 여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펀의 과거 이웃 주민은 슈퍼마켓에서 오랜만에 만난 펀에게 우리 집에 와서 살자고 제안한다. 펀이 이웃 주민 자녀의 교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펀은 나는 집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며 거절한다.

 

밴이 고장 나 수리할 돈을 구하지 못했을 때 도움을 받은 친언니도 같은 제안을 한다. 펀의 밴과는 달리 튼튼하고 넓으며 현대적인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하지만 펀은 또 거절한다. 펀은 넓은 침대에서 자지 못하겠다고 했다.

 

관객이 펀의 여정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정말 정착하지 않을까싶은 순간에도 펀은 노마드 삶을 택한다. 함께 노마드족으로 생활하면서 만난 한 남자는 손자가 생기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 남자는 펀과 함께 노마드족으로 생활하며 도움을 주고 받았고, 애정을 보이기도 한다.

 

노마드 삶을 먼저 청산한 남자는 대가족 안에서 안락한 삶에 적응했다. 시간이 지나 펀이 그 집을 방문했을 때 관객은 이 정도면 정착해도 좋지 않을까생각하게 된다. 따듯한 햇살과 밴을 세워둘 수 있는 넓은 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정원과 아기를 안은 펀의 시선까지. 그럼에도 펀은 또다시 밴 위에서 잠을 청한다.

영화 노매드랜드.

 

이쯤 되면 펀의 노마드적 삶에 빈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펀에게 꼭 맞을 것 같은 자리에서도 펀은 그 자리를 거부하고 밴으로 돌아간다. 이때부터 관객은 돈 때문이 아니라면 왜 펀은 노마드족 삶을 고집하는 것일까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펀이 노마드족으로 사는 이유에 대해 펀이 여행을 다니면서 본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라고, 그곳에서 만난 재미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여전히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라고 보여준다. 혹은 친언니 집에서 가족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펀이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한 가족 구성원이 부동산 투자를 이야기하자 펀은 사람들에게 전 재산을 투자하라고 해서 빚쟁이로 만들고,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이냐고 화를 낸다.

 

영화를 보면 노마드족에 대한 편견이 하나씩 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노마드족은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 노마드족은 아날로그적일 것이라는 편견 등이 그렇다. 펀은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끊임없이 노동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해 노마드 친구들과 소식을 전하고 아름다운 풍경 동영상을 주고받기도 한다. 노마드족 중 누군가는 빈곤 때문에, 누군가는 병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노마드족을 택한다. 각자 이유는 다르다.

영화 노매드랜드.

 

영화를 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삶 형태에 대해, 그것이 한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펀의 선택이 단지 빈곤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 원작인 미국 여성 언론인 제시카 브루더의 책 노마드랜드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책은 영화보다 사회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지만 마냥 회의적이진 않다. 열악한 환경 속에도 기쁨과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원작은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이후 임금은 낮고 주거 비용이 치솟는 시대에서 노마드족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르포다. 원작 르포는 미국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산이 버텨주는 나이보다 오래 사는 일을 두려워한다고 전한다.

 

노마드족인 이유에 사회가 빈곤으로 내몰았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동시에 노마드족의 자유와 해방도 말한다. “밴으로 들어갔을 때 사회가 내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달았다. 결혼을 해야 하고, 흰색 말뚝 울타리를 두른 집에서 살아야 하고,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 다음엔 삶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125p)와 같은 인터뷰를 책에서 볼 수 있다.

 

영화는 빈곤과 무주택에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추운 것, 불쌍한 것,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빈곤을 낭만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자유와 해방을 선택한 이들의 선택을 얕은 판단으로 가치 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원작의 책 99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둘 중 누구도 그들의 집값보다 높은 대출금을 갚으면서 남은 생을 보내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03년형 피프스휠 트레일러 카디널을 샀고, 길로 나섰다.

우린 그냥 걸어 나왔어요.” 애니타가 말했다.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중얼거렸죠. ‘우린 더 이상 이 게임 안 해.’”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조국 다섯번 째 도의적 사과에 대한 반응은

정무적·도의적 무한책임정부 여당 내 잇단 조국사태 반성 목소리도진중권 이걸 사과라고? 민주당 아직 정신못차려

4·7 재보선 참패 책임론의 하나로 지목돼온 이른바 조국 사태의 당사자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 공식적으로 하는 다섯 번째 사과다. 정무적 도의적 사과이며 합법이어도 혜택을 입은 점을 반성한다는 과거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두고 도대체 몇 번이나 사과를 하는 거냐는 지지층 반응과 이걸 사과라고 하느냐는 비판이 함께 나왔다.

 

조 전 장관은 지난 6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백기철 한겨레 편집인이 쓴 6일자 칼럼 그 반성문이 어색했던 이유의 한 대목을 들어 이같이 사과했다. 백기철 편집인은 결자해지라고 했다. 당사자인 조국 전 장관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법정에서 무죄 입증을 하지 말란 말이 아니다. 형사 법정에서의 분투와 별개로 자신으로 인해 실망하고 분노했을 많은 촛불 세력, 젊은이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건넬 수는 없을까라고 썼다.

 

조 전 장관은 이와 함께 세차례의 과거 사과 언급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 2019825일 장관후보자 대국민사과문에서 지금은 제 인생을 통째로 반성하며 준엄하게 되돌아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겸허히 고백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고, 기존의 법과 제도에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조 전 장관은 그해 9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아무리 당시에 적법이었고 합법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수 없었던 사람에 비하면 저나 저희 아이는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한다그 제도를 누릴 기회가 흙수저 청년들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라고 반성했다. 그는 기회의 평등 문제 역시 아주 따끔한 비판이라며 과거 정치적 민주화와 진보 개혁을 외쳐 놓고 부의 불평등 문제에 앞장서서 나서지 못한 점, 결과적으로 제 아이가 합법이라고 해도 혜택을 입은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0191014일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두 번째 검찰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법무부

 

조 전 장관은 나흘 뒤 열린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도 무엇보다 새로운 기회를 위해 도전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제 잘못이라며 박탈감과 함께 깊은 상처를 받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했다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도 저와 제 가족이 과분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고 자성했다. 그는 제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반성했다.

 

조 전 장관은 이밖에 한 차례 더 사과한 적이 있다. 그는 그해 1014일 퇴임상서도 이유 불문하고 국민들게 너무 죄송스러웠다특히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위와 같은 취지로 다시 한번 사과한다전직 고위공직자로서 정무적·도의적 책임을 무제한으로 지겠다. 회초리 더 맞겠다고 간략히 사과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번 사과까지 5번째 사과인 셈이다. 다른 흙수저들이 접할 수 없는 합법적 혜택을 자신의 자녀가 누렸으며,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 가족은 과분한 혜택을 누리는 등 언행불일치와 내로남불을 자인한 사과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와 정신에 반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사과하고 당시 왜 장관을 고집했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개혁의 소임을 다하고 불쏘시게가 되기 위해서라도 했지만, 그 역시 다른 장관과 국회가 충분히 할 수 없었겠느냐는 지적이다.

 

조 전 장관이 이날 돌연 사과를 한 이유는 한겨레 편집인의 칼럼 탓도 있겠지만, 여당의 4·7 재보선 참패 이후 터져나온 초선 의원들의 조국사태 반성문과 함께 당내 경선에서 후보들 사이에서 조국 사태 관련 잇단 공정의 문제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성찰의 목소리가 나온 점도 주요 요인으로 보인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뿐 아니라 김부겸 총리 후보자 역시 조 전 장관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젊은 층에 상처를 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이에 조국 사태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은 냉담한 반응을 내놓았다. 진중권 전 교수는 페이스북에 결과적으로 제 아이가 합법이라 해도 혜택을 입은 점을 반성한다는 조 전 장관의 과거 사과 내용을 들어 어디서 약을 팔아? 다 불법이었거늘이라며 이걸 사과라고 하니? 민주당 사람들 아직 정신 못 차렸다고 썼다.

 

권경애 변호사도 구체적인 거짓말에 대한 사과와 반성도 없는 사람한테는 회초리 때릴 애정도 없으니, 그만 입이나 다무시는 게 정무적, 도의적 책임을 그나마 지고, 민주당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고 비난했다.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Sophie Ideas 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조국 전 장관의 반성문이 어색했던 이유는, 그것이 '사과'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착함'이 보편성을 넘어서서 불편한 거다. 보편적 인간은 저 상황을 사과하지 않는다.

조 전 장관의 반성문이 맘에 와닿지 않아? 이유는 하나야. 그의 사과가 나의 잠자는 죄책감을 추동하거든! 내가 나쁜 놈처럼 여겨지거든. 저 극단적 선함 때문에 보편적으로 선한 내가 아주 몹쓸 놈처럼 여겨지거든. 그래서 여전히 그가 미운 거야.

 

진중권이랑 권경애가 닥치라고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고.

아니, 그 둘은 더욱 찔려서겠네.

'보편'보다 더욱 찔려서.

조현호 기자, 너도냐?

 

미디어오늘같이 제대로 있는그대로=보도하는데가없다진중권김근식발언만전하는보도만

국민의힘김근식은 아예 이런사과를 =일본사과와비슷하다고 갖다붙이더라 참비열한느낌

에휴 -또 기자들 진중권 개인 SNS를 떼거지로 복붙하네. 진중권 저널리즘 문제의식 못느끼는 것부터가 기자실격임

ㅇㅇ -진중권이 뭔데 기자는 진중권을 인용하지 진중권의 저질막말을 사이다라면서 빨아댈수록 저널리즘도 함께 추락한다는 사실. 진중권은 자아도취에 빠져 이준석한테 망하게 해주겠다느니 처음부터 난데없이 "지랄"이라느니 욕설하고 기초적인 예의도 못지키고 토론할줄도 모르는 인격파탄자일뿐

 

임대사업자 세금특혜 폐지' 반대하는 거짓 논리들

[주장]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대사업자 세금특혜 옹호' 논리는 틀렸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을 폭등시킨 주요한 힘이 '주택임대사업자 세금특혜'였음은 집값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당 내에서도 뒤늦게 이 사실을 인식하고 그 세금특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강병원 의원은 지난해 세금특혜를 폐지하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었다. 당대표에 출마했던 우원식 의원, 대권도전 의사를 밝힌 김두관 의원, 김성환 원내수석부대표와 이규민 의원도 "부동산정책이 실패하고 집값이 폭등한 핵심 이유가 임대사업자들에게 과도한 혜택을 준 것"이라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이런 주장이 힘을 얻을수록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세금특혜를 누려온 임대사업자들이 그 특혜 폐지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 숫자가 50만 명에 달하고, 160만 채의 임대주택에서 발생한 이익이 천문학적일 것이므로 세금특혜 폐지를 결사적으로 막으려 할 것이다.

 

두가지 핵심 반대 논리

현재 누리고 있는 엄청난 특혜를 지키려는 임대사업자들의 편에 선 동조자들도 적지 않다. 국토부와 기재부 등 특혜제도를 시행한 정부부처의 고위직들은 한결같이 그 세금특혜를 옹호한다.

 

노형욱 국토부장관 후보자가 그랬고, 급기야는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도 국회청문회에서 임대사업자들과 똑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짐작컨대 두 사람 모두 인사청문회를 준비한 공무원들이 적어준 내용을 그대로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부겸 총리 후보자는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소급 입법 문제는 워낙 논란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주택임대사업자 세금특혜 폐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임대사업자 세금특혜가 집값폭등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질의에 대해 "(임대사업자의 주택) 수요가 아파트값을 강하게 밀어올렸다 이렇게 보긴 어렵다"고도 말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임대사업자들이 세금특혜 폐지를 반대하면서 주장하는 핵심 논리들이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임대사업자 세금특혜와 집값 상승에 대하여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 집값이 가장 크게 폭등한 때가 2018년이다. 그해 서울에서만 약 14만 채의 임대주택이 등록됐다. 그 절반을 신규 매입했다고 가정하면 약 7만 채다.

 

2018년 서울에서 신규 주택공급은 4만 채가 안 된다. 신규 공급된 주택물량이 임대사업자들의 매수량에도 미치지 못했다. 주택부족으로 실수요자는 집을 살 수도 없었다. 집값이 폭등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국회사무처의 용역 의뢰를 받아 서울 주요 아파트단지 4곳의 등기부등본을 조사한 결과를 지난 28일 공개했다. 4곳 모두 2018년 임대주택 등록수요 때문에 가격이 폭등했음이 밝혀졌다.

 

4곳 중 강남의 은마아파트 단지를 보면 201831평형의 가격이 무려 3.6억 원이나 폭등했다.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거래량은 2017년의 191채에서 2018년에는 80채로 급감했다. 임대주택 등록이 201716채에서 2018162채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이 보유주택을 매도하지 않고 추가로 매수해 임대주택으로 등록했고, 그 결과 은마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다.

 

2018년 이후에도 임대사업자 세금특혜가 유지되자 기등록된 임대주택이 매도로 나오지 않았다. 서울에서만 50만 채의 임대주택이 매도하지 않고 잠겨 있는데, 실수요자의 내집마련 수요는 멈추지 않았으므로 집값은 폭등과 급등을 지속했다.

 

소급 입법 불가론에 대하여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일대.연합뉴스

 

"기등록된 임대주택에 대해 세금특혜를 폐지하는 것은 소급적용으로 위헌이다"는 주장은 실로 어이없는 거짓말이다.

 

김두관 의원실에서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2019년 기준 150만 채 임대주택의 93%"종부세 0"의 특혜를 누렸다. 대한민국에서 주택을 가장 많이 소유한 다주택자가 760채 임대주택을 등록했는데, 그 역시 "종부세 0"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지난해에 전액 감면해준 종부세를 지금 부과한다면 소급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년까지 감면한 세금은 포기하고, 올해 11월 부과할 종부세를 정상세율로 과세하면 이에 대해 어찌 "소급" 혹은 "위헌"을 운운할 수 있을까?

 

양도세 감면의 경우도 지난해까지 발생한 시세차익에 대해서는 기약속한 양도세 특혜를 인정하고, 지금부터 발생할 추가적인 시세차익에 대해서만 정상적인 양도세율(3주택 이상에 대해 75%)을 적용한다면 소급 논란은 없을 것이다.

 

김부겸 후보자가 "주택임대사업자 세금특혜 폐지"에 반대하는 근거로 내세운 2가지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 논리다. 이런 거짓 논리가 특혜의 수혜자인 주택임대사업자는 물론 국토부와 기재부 고위직과 청와대 인사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있다. 새로 임명될 국토부장관과 국무총리마저 그런 거짓 주장에 물들어 있음은 한탄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 하나를 알려주자면 많은 국민이 그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여당 내에서 그 거짓주장을 꿰뚫어보게 된 국회의원이 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오마이뉴스 /송기균(kigusong)

 

이재명이 던진 '고졸 청년''대졸 청년' 화두, 가볍지 않다

[기자의 눈] 왜곡된 노동구조 속 청년 문제 해법 고민해야

동양 최대 중국음식점으로 평가받는 하림각. 남상해 회장이 1987년에 세웠다. 1938년 경남 의령 출신인 남 회장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해방 후에는 귀국해 충남 보령에 정착했다. 시대가 그랬듯이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남 회장을 포함한 11남매는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채독 굶주림으로 남 회장은 4명의 형제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열 살인 남 회장이 무일푼으로 서울로 향한 이유다.

 

서울 생활도 쉽지는 않았다. 신문팔이, 구두닦이 물장수 등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그래도 배고픔은 잠자리는 해결되지 않았다. 집도 절도 없는 남 회장은 서울역 대합실에서 노숙을 하고, 창신동 땅굴에서 생활하면서 잠을 해결했다.

 

결국, 그런 삶을 견디지 못한 남 회장은 중국집 '뽀이'로 취직하면서 잠도 식사도 일거에 해결됐다. 그때부터 남 회장은 중국집 배달일을 시작했고, 이후 주방 보조 일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10년 넘게 경력을 쌓은 끝에 남 회장은 워커힐 조리부장으로 취업했다.

 

그리고 1967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대한극장 뒤편에 11평짜리 중국집 '동승루'를 열면서 그의 평생 꿈이던 중국음식점 주인이 되었다. 이후, '신해루' '열빈' '다리원'을 거쳐 동양에서 가장 큰 중국집 하림각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남 회장의 성공 신화는 규모만 다를 뿐,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 중국 배달원들의 로망이자 실제 부단한 노력을 하면 이룰 수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중국집을 운영하는 사장들의 상당수가 배달원으로 시작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도시에 와서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에 감사하며 철가방으로 부지런히 자장면을 배달했다. 틈틈이 주방에서 양파 벗기고 야채 채를 썰면서 곁눈질로 요리를 배우면서 주방장이 되고, 중국집 사장까지 되었던 것이다.

연합뉴스

 

2021년 한국사회에서 하림각이 나올 수 있나

지금은 어떨까. 하림각 같은 이가 나올 수 있는 사회일까. 우리 사회를 두고 평등한 곳은 아닐지 모르지만, 공정한 기회는 가질 수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키우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계급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필요한 건 노력이라고 말한다. ,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계급에 남겨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꼭대기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공정의 요체다. 과연 그럴까.

 

부모의 종착점이 자식의 출발점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정환경, 즉 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부모가 부유하면, 자식에게는 실력을 쌓기 위한 다양한 혜택과 선택권이 주어진다.

 

가난할 경우는 이와 반대다. 혜택은커녕, 가정사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린다. 물론, 그런데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갖추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자본을 갖춘 청년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달린다면, 이들은 리어카를 끌고 '실력'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사례를 발굴하고, 독려하면서 일반화한다. 하림각이 그런 일반화의 표본이다. 더구나 2021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사례는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적다.

 

그러나 실력주의가 공정 내지 평등의 기준이 되면서, 사회적 자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청년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멸시가 정당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4일 경기도청에서 고졸 취업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은 의미가 남다르다.

 

"대학을 가면 장학금도 주고 온갖 지원 해주는데 대학 안 간 사람은 왜 지원 안 해주냐. 똑같은 국민이고 똑같은 세금 내는 이 나라 국민인데 대학 가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잘 모르겠어요. (중략) 그래서 저는 대학을 안 가는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에게도 대학 지원에 상응하는 뭔가 지원을 해주면, (지원이) 상당히 많을 텐데, 그들의 역량도 발굴하고 좋은 인생경험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이런 협약을 통해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동료 친구들이 4년간 대학 다녔다가 졸업하고 다시 현장에 합류했을 때 4년 동안 현장에서 기술을 쌓고 노력한 결과의 보상이 4년 동안 대학 다녀온 사람이나 별반 다를 바 없거나 하면 훨씬 나을 수 있다는 믿음만 준다면 누가 우회로를 택하겠나 생각합니다."

 

신분이 다른 대졸과 고졸 청년들

출발선이 다른 대졸과 고졸 청년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대학 4년과, 직장 4년 생활을 동일하게 대우해주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지사의 이런 발언은 "세계 여행비를 1000만 원씩 대학 안 간 대신에 지원 해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발언이 부각되면서 사실상 묻혔다.

 

국민의힘과 야당에서는 "허경영을 초월한다. 돈 쓸 궁리만 한다"고 이 지사의 발언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정작 현재 위기에 놓인 청년들을 위한 대안이나 논의는 뒷전이 됐다.

 

사태가 커지자 이 지사는 6일 자신의 SNS에 다시 글을 올리며 진화에 나섰다.

"오늘날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기회와 미래가 없는 최초의 세대이다. 어디까지 공부했냐, 출신이 무엇이냐를 따져가며 편가르기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절박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삶을 받쳐줄 모두를 위한 유리바닥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노동 구조는 크게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뉘었다. 이때는 고졸이라 하더라도 정규직이 가능했다. 지금은 어떤가.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도식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구조 안에서 고졸 청년들이 선택할 폭은 거의 없다. 더구나 한 번 사회에 진입할 때 선택한 자신의 '신분'은 다시 재조정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고려시대 '육두품'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우리 사회 노동 구조 속에서 여야를 가르지 말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문제를 풀기 위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허환주 기자 프레시안

 

 

문재인 정부 추락에 '프레임' 있다

[오마이뉴스 -전강수의 경세제민]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근본 이유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참담하게 실패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동산 투기가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어설픈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근본대책 마련에 실기한 것과 부동산값을 잡겠다고 장담하면서도 도시재생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임대주택등록제를 확대하는 등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함께 추진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수요 억제 정책에 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올해 2월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는데, 이 또한 실패를 만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투기로 인해 수요가 급팽창해서 생긴 문제를 공급확대로 해결하려고 하니 해결될 리가 없고, 공급확대 자체가 새로운 투기수요를 촉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LH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신도시 정책을 재개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필자는 <오마이뉴스> 칼럼을 통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오류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를 다시 언급해 봐야 중언부언이 될 뿐이다. 이 글에서는 접근을 약간 달리해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배경에 모종의 프레임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밝히고자 한다.

신년사 발표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02017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데도 투기세력을 집값 폭등의 범인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반영된 듯하다.연합뉴스

 

소수 투기꾼이 준동해서 부동산값이 폭등했다?

모종의 프레임이란, 부동산 시장 참가자를 투기꾼과 실수요자로 나누고 부동산값 폭등은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 기인한다고 보는 인식 틀을 가리킨다. 20176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집값 급등은 실수요자보다는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선언한 것을 필두로, 정부 여당 인사들은 4년 내내 투기꾼 타령을 계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데도 투기세력을 집값 폭등의 범인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반영된 듯하다. 최근 들어 여권 인사들이 정책 실패를 반성하면서도 투기 세력에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또한 그 프레임의 영향이다.

 

부동산값 폭등을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프레임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할 뿐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악당'을 특정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한다. 그래서 정치인들도 정책을 펼칠 때나 정책 실패를 반성할 때 대중의 이런 성향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단시간에 대중을 설득하는 데 그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범 후 줄곧 이 프레임에 기대서 부동산 정책을 펼쳐온 문재인 정부는 바로 그것 때문에 역풍을 맞고 말았다. LH사태가 투기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국민 앞에 여지없이 드러냈으니 말이다. '범인'이 문재인 정부 공기업 안에 있었으므로 국민의 분노가 정부 여당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의 정신에 배치되는 임대계약을 맺었다는 뉴스는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갖다 부었다.

 

엉터리 프레임이 초래한 결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핀셋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이상 징후를 보이면 그 지역을 콕 집어서 규제지역으로 지정해 상대적으로 강한 투기 억제 장치를 가동했고, 이것저것 해보다 안 통해서 뒤늦게 착수한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도 다주택자와 규제지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4.7 ·보궐선거 후 논란이 일고 있는 보유세 부담 증가 문제도 집값 급등으로 인한 공시가격의 이례적 상승이 없었다면 규제지역에 부동산을 가진 극소수 다주택자에게 국한되었을 것이다. 한때 투기꾼을 잡겠다며 부동산 특별사법경찰, 자금출처 조사 등 유치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거론한 것을 보면 부동산 투기 광풍을 소수 투기꾼의 준동 탓으로 돌리는 정책 프레임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던 것 같다.

 

작금의 부동산 투기는 '핀셋'으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엄청난 '괴물' 같은 존재였다. 우습게도 문재인 정부는 4년 내내 핀셋을 들고 이 괴물을 잡겠다며 허둥댔다. 결과는 역대 최고의 부동산값 폭등과 역대 최다의 풍선 효과였다. 강남을 규제하니 투기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번지고, 마용성을 규제하니 '노도강'(노원·도봉·강북)으로 번지는 식이었다. 언론은 '금관구'(금천·관악·구로), '수용성'(수원·용인·성남), '안시성'(안산·시흥·화성), '김부검'(김포·부천·검단) 등의 신조어로 이 현상을 풍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권우성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몇 사람의 '악당'이 저지르는 악행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경제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누구도 거역하기 어려운 소위 '수요-공급의 법칙'이 근본 원인인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이 원인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에 행동이 민첩한 데다 정보 접근이 쉬운 까닭에 이 법칙을 누구보다 먼저 이용하는 악당들이 더 눈에 띈다. 이 경우 악당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원인을 다뤄야만 비로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투기 광풍이 격화된 원인은 간단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시된 유동성 확대 정책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바람에 유동성 과잉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제도적 장치가 취약했던 까닭에 과잉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이는 투기적 가수요의 팽창으로 이어졌다. 주택공급은 예년과 다를 바 없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는데도 투기적 가수요가 급격히 팽창하는 바람에 집값은 폭등했다.

 

투기적 가수요의 대열에서 제일 앞줄에 선 수요자는 민첩한 전문 투기꾼들과 부동산 기득권층이었다. 그 뒤를 따른 것은 중산층이었으며, 2030세대가 맨 마지막에 합류했다. 요즘 2030세대가 몰두한다고 알려진 '영끌구매''패닉바잉'은 투기 장세에서 흔히 나타나는 비이성적 과열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이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처럼 떼돈을 벌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오히려 201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무리해서 집을 샀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엉터리 프레임에 기대어 정책을 펼친 탓에 문재인 정부는 또 다른 역풍을 맞고 있다. 부동산값 상승과 공시가격 현실화로 새로 종부세 대상자가 된 1주택자들이 '나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는데 왜 투기꾼에게 물리는 종부세를 내라고 하느냐?'라고 항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종부세를 투기 세력에게 매기는 벌금처럼 취급했으니 이들의 항변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나름대로 근거를 갖춘 항변이 표출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두가 엉터리 프레임을 선택한 정부 여당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을!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1차 회의.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2021.4.27공동취재사진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인식 틀은 어떤 내용이라야 할까? 부동산 시장 참가자를 투기꾼과 실수요자로 나누어 투기꾼을 징벌하는 식은 곤란하다. 누구든 경제여건에 따라 실수요자도 투기꾼도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부동산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부동산 시장에 정의의 여신이 있다면 보유주택 수, 소득, 연령 따위는 보지 않고 오로지 가격만으로 판단할 것이다. 시장의 모든 정보는 가격에 집약되므로 가격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다.

 

가격이 아닌 보유주택의 수와 유형에 따라 차등 과세한다든지, 소득과 연령을 기준으로 자꾸 예외를 만들면 세제는 누더기가 되고 경제적 왜곡이 불가피하다(소득이 없는 노령층에 대한 배려는 과세이연(원활한 자금운용을 위해 자산을 팔 때까지 세금납부를 연기해주는 제도) 제도 등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

 

1주택자를 실수요자로 간주해 세 부담을 가볍게 하고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간주해 중과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형태로 투기가 행해지고, 시가 상응 과세의 원칙도 무너져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사회의 자원이 특정 지역의 고가주택 쪽에 과다 배분되는 비효율까지 초래된다.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이 심해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현재 정부 여당 인사들이 보유세를 개편한다고 하면서 바라보는 방향이 이쪽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엉터리 프레임이 '정책의 실패'만이 아니라 '정권의 실패'까지 초래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나날이다.

 

추미애, ‘민생주력 민주당 지도부에 “‘개혁 대신 민생은 개혁 힘 빼려는 반간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우철훈 선임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10민생 주력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내부 방침에 대해 개혁을 외면하면 온전한 민생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언론개혁 대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민생과 개혁을 나눠 국민과 개혁 집권세력을 이간시키고 개혁 진영 내 분란을 키워 개혁의 힘을 빼려는 반간계에 불과하다고 직격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통해 “‘개혁이냐 민생이나 양자택일논리는 기득권 세력이 주입한 개혁에 대한 두려움일 뿐, 개혁 없는 민생은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는 4·7 ·보궐선거 참패 이후 당내에서 개혁보다는 코로나19 백신 수급 문제와 부동산 시장 안정화 등 민생을 우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오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내며 개혁의 선명성을 내세운 발언으로 해석된다. 송영길 신임 민주당 대표는 검찰·언론개혁보다는 부동산 정책 전환 등 민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추 전 장관은 개혁을 천천히 하자는 건 민생을 천천히 챙기겠다는 것이며, 지금 시기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은 지금부터 민생을 포기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혁을 포기하고 민생을 중도화 전략 정도로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며 진정 민생을 짓누르는 건 곳곳에 자리 잡은 반칙과 특권, 극소수에 집중된 부동산 불로소득이라고 강조했다.

 

추 전 장관은 아파트 1평보다 못한 청년의 목숨값을 이대로 둔 채 도대체 민주당은 어떤 개혁, 민생을 원하느냐특권을 옹호하는 검찰과 언론이 바로 서야 민생의 전진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또 추 전 장관은 보수언론과 보수 야당의 간교한 정치적 주문을 쇄신이라 착각하고 개혁의 고삐를 늦춘다면 개혁 세력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라며 저항 없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진정 민생을 생각한다면 개혁을 멈춰선 안 된다부디 개혁 부진에 낙담하는 촛불 시민들에 다시 강력한 개혁 진군을 위한 연대와 희망의 손을 내밀 때라고 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진중권·김어준·서민은 도발 시대의 산물이다

상대의 아픈 곳을 찔러 기분 나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이다. 이것은 관심을 끌기 위한 공격 행위고 도발이다. 진중권이 유명 논객이 된 것은 지식인의 어젠다가 아니라 퍼포먼스 능력 때문이다.”

 

한국의 프로보커터(도발하는 사람)’를 대놓고 저격한 김내훈씨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만 28세의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시사IN 조남진

 

프로보커터(provocateur)’라는 말이 있다. ‘도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상으로 개인이나 집단을 도발해 자신에 대한 관심(사이버 세계에서는 조회수)을 끌어올리는 이들이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영미권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관종’ ‘어그로꾼같은 말과 비슷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 투사로 주목받았으나 아동 성착취물 소지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아모스 이(상자 기사 참조), 반페미니즘을 선동하는 대안 우파로 떠올랐다가 10대 때 성인과의 동성애 행위가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몰락한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등은 프로보커터의 부정적 사례로 주로 거론된다.

 

 

한국에도 프로보커터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 누군가 떠오르는가. 아래 글을 읽어보자.

레퍼토리의 반복으로 진보 논객으로서 상징 자본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도발밖에 없다. 주목이 걷히고 여유를 잃은 진중권에게는 억지와 악만 남았다. ··· 프로보커터의 말기적 증상이다.”

여론의 추이를 살피다가 그때그때 자신의 태도를 180° 바꾸며 자극적인 발언만을 내뱉는 전형적인 사이버렉카의 모습이다. ··· 어느 쪽이든 서민은 실패한 프로보커터다.”

 

음모론은 패자를 위한 것이지만 이제는 승자도 음모론에 열광한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서는 김어준과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도 상대 진영과의 진흙탕 싸움은 그에게 아웃소싱하려고 들 것이다. 진중권-보수언론 관계와 유사하게, 영향력과 하청을 주고받는 상부상조가 유지되는 한 김어준은 (여권에게) 여전히 쓸모 있는 인물이다.”

 

각각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서민 단국대 교수, 김어준 뉴스공장진행자에 대한 평가다. 당대 손꼽히는 유명인 셋을 프로보커터로 규정했다. 이처럼 혹독한 비판을 가한 이는 김내훈이라는 젊은 연구자다. 1992년생 만 28. 미디어문화연구 박사과정을 밟으며 조교 업무로 장학금을 버는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하다 관심사를 넓혀 좌파 포퓰리즘, 정치 유튜브, 인터넷 밈 문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황해문화주목경제 시대의 프로보커터라는 글을 발표한 뒤 문제의식을 확장해 이번에 프로보커터라는 책을 냈다. 진중권·김어준씨 등 영향력 있는 인물을 대놓고 저격했다는 점에서 그 또한 주목을 끌고 있다. 416일 그를 인터뷰했다. 달변의 독설가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직접 만난 그는 말수가 적고 신중했다. 말보다는 글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진중권·김어준씨 같은 유명인을 비판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은 아니다.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을 내 언어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프로보커터라는 낯선 용어를 가져왔다.

미국 포퓰리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유튜브를 찾아보다 이아노풀로스라는 인물을 발견했다.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걸로 미국에서 스타가 된 사람이다. 미국 언론에서 그를 인터뷰하는데 프로보커터라고 호명하더라. , 이건 새로운 직업의 탄생이라고 봤다.

 

진중권씨가 프로보커터의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비판했다.

지난 총선 이후 여권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나왔을 때 진중권씨가 “180석 달성 기념으로 한명숙 대모님께 효도 좀 하려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최대한 상대방의 아픈 곳을 찔러서 기분 나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이런 언사는 트롤링(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공격적 행위)이고 도발이다. 진중권씨 한 명만 이야기하면 심심하니까 김어준씨와 서민씨까지 다루게 됐다.

Jtbc 화면 갈무리

 

진중권씨의 언행을 두고 그는 전향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프로보커터였을까? 진중권씨가 유명한 논객이 된 데에는 프로보커터를 연상케 하는 도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싸가지 없는말로 도발해서 상대방을 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우리 편추종자를 확보한다. 그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논객으로 만든 건 지식인으로서 어젠다가 아니라 퍼포먼스 능력이다. 2000안티조선 운동때도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그랬다. 그는 안티조선 운동에 부정적인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를 찾아다니며 논쟁을 벌였고, 조선일보독자 게시판에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노는 낚시성 게시물을 올리며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그가 보수정당이 집권했을 때 진보 편인 것처럼 보인 건 착시였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씨가 과거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질타한 것도 프로보커터의 행태였을까?

디워논란이나 황우석 사태 때 진중권씨는 대중영합적인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전형적인 프로보커터의 면모를 보여줬다. 예컨대 그는 21대 총선 직후 미래통합당 토론회에 나가서 미래통합당은 뇌가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을 맹공해서 보수정당이 우리 편으로 착각하게 한 다음, 그들의 진지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장소가 인터넷에서 공당의 정치행사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차명진씨처럼 진보에서 전향한 프로보커터와 진중권씨의 차이는 무엇일까?

차명진 같은 이는 한 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리수를 던지다 자폭했다. 진중권씨는 아직 자폭했다고 볼 수 없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 정도 차이가 있다.

 

서민 교수가 극렬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적대하는 것에 대해 게으르다고 평가했다.

 

극렬 지지층은 이른바 문빠·대깨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몇몇 지지자의 경거망동을 갖고 지지자 일반을 공격한다. 혹시 서민 교수처럼 문빠를 공격하는 이들의 유일한 어젠다가 반문(反文)이고, 유일한 처신이 문재인 지지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민 교수처럼 거의 울부짖으며 증오를 드러내는 이들에게는 문빠가 존재의 이유로 보일 지경이다.

 

김어준씨에 대해서는 성공한 프로보커터라고 평가했다.

똑똑하고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 그는 SNS를 하지 않는다. 사생활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딱히 권위 있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우리 사회가 10여 년 전부터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개인 역량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서민 교수가 일반 유권자와 싸움만 벌인다면 김어준씨는 거대권력과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며 내부 결집을 유도한다.

 

어떤 한 가지 행동을 보고 프로보커터의 활동인지 아닌지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김어준씨가 자신의 역량을 전시하는 방법은 프로보커터와 일치한다. 농담과 유머를 가장해 법적 부담을 피하고 도발적 언사를 던지는 것은 미국의 프로보커터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일부 친문 유권자들이 이재명 지사를 공격하자 이를 작전세력의 농간이며 배후가 있다고 했다. 근거는 없었다. 사실 이 사건은 소수 유권자들의 감정에서 비롯된 해프닝에 불과했다. 김어준씨는 갈수록 양치기 소년이 되어가고 있다.

김어준.유튜브 갈무리

 

일부에서는 김어준씨를 음모론자로 규정한다. 그렇게만 보면 일부 극우 정치 유튜버들과 다를 게 없다. 김어준씨가 이렇게 성장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개표 조작설, 세월호 음모론 등은 무리수였다.

 

우파 코인반페미 코인을 노리는 우파 프로보커터들이 앞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왜 우파가 인기를 끌까?

 

좌파는 지향하는 가치가 다양해서 단순한 메시지로 결집시키기 어렵다. 더욱이 민주당 성향의 지지층은 김어준씨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한국에도 아모스 같은 이에 비견할 만한 극단적인 프로보커터가 있나?

없다. 아직 안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어떤 선을 넘는 이들은 살아남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조두순 아들을 사칭한 초등학생 유튜버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극단적 프로보커터들이 판치는 세상이) 언젠가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책에 썼다.

 

유럽 68운동 이후 좌파의 전략이었던 전복· 위반·금기 깨기가 프로보커터의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 점이 흥미로웠다. 앤절라 네이글의 Kill All Normies를 참고했다. 젊은 누리꾼들이 어떻게 프로보커터를 중심으로 결집하는지 다룬 책이다. 2011년 미국 월가 점령 시위는 전복과 위반의 미학이 대중화한 사회운동이었지만, 이후 현실정치에 닿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며 사그라들었다. 시위에 나섰던 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페미니스트를 공격했다. 이제 이런 선 넘기즉 위반의 미학은 하나의 장사 수완이자 극우 진영의 전략이 되었다. 그동안 학계에서 칭송한 변화와 전복의 가치는 기괴하게도 극우 아나키스트의 등장으로 변질됐다. 이는 트럼프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석사논문으로 한국의 20대 현상과 포퓰리즘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썼다. 지금 ‘20대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평론을 할 의도나 능력은 없다. 내 의견이 20대 전체를 대변할 수도 없다. 다만 책 내용과 연결해서 생각해보자면 지금 젊은 사람들의 언어가 변화되었다. 내로남불, 공정성, 위선 같은 말들이 처럼 됐다. 이것이 모든 평가와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복잡한 맥락은 가지치기되고 위선을 저질렀느냐 아니냐만 남았다. 젊은 세대는 위선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다. 이것이 말하자면 생각의 그물망이 되었다. 위선이 아니라 대놓고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은 이 그물망에 안 걸린다. 위선자인 민주당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국민의힘이 더 나쁘다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왜 대놓고 나쁜 것보다 위선에 더 분노할까?

미국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의 위선이 문제가 됐다. 자신은 엄청난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트럼프와 달리 정치적 올바름만 입에 올리는 힐러리에게 반발했다. 젊은 세대는 우리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사회의 병폐를 이용해서 축재에 나서는 모습을 심각하게 본다. 아마도 사다리 걷어차기로 보일 것이다.

 

언론이 프로보커터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 때 단톡방 가짜뉴스를 검증 없이 썼다. 무분별한 인용 저널리즘으로 엄청난 사회적 대가를 치렀다. 미국에서 한국인 대상 폭행이 일어났을 때 조선일보SNS 계정은 이게 다 중국 때문읍읍이라는 코멘트를 하더라. 언론이 프로보커터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첫 번째 책을 출간했다. 혹시 스스로 프로보커터를 프로보킹(도발)한 것은 아닐까 고민하지 않았나? 언급된 실명들 역시 시대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게 책의 본래 취지다. 내가 김어준씨를 비판하는 건 그가 양치기 소년처럼 될까 봐 우려해서다. 내 비판이 TBS에서 그를 쫓아내야 한다는 논리로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 김어준씨를 비판하는 것과 그를 방송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 시사인 이오성 기자

 

고소득자 쥐어짜는 세금? '한국경제'가 감춘 진실

[팩트체크] 억대 연봉자 앞세워 '세금폭탄론' 제기하는데...상위 5~10% 세금 비중, 오히려 감소

<한국경제>는 지난 6"고소득자만 쥐어짜는 세금"이란 기획 보도를 연달아 내보냈다. 이 신문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고소득자 대상 "핀셋 증세" 때문에 세금이 "국민 징벌"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신문은 지난 20201월에도 <상위 10%"소득세 79%" 내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한국경제

 

소득 상위 5%가 세금 65% 내는 나라

<한국경제>(아래 한경)는 지난 56'고소득자만 쥐어짜는 세금'이란 기획 보도를 연속해서 내보냈다. 이 신문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고소득자 대상 '핀셋 증세' 때문에 세금이 '국민 징벌'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이 신문은 지난 20201월에도 <상위 10%'소득세 79%' 내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소수 부자 편들기'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경>은 이날 사설('국민 징벌' 수단으로 변질된 세제, 지속가능하겠나)에서 "부자가 세금을 좀 더 내고 이를 활용해 분배를 개선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한국에선 세금이 국민에 대한 '징벌'처럼 변질돼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보도를 통해 고소득자가 많은 세금을 내는 구조가 현 정부 증세 정책 때문이며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속도가 세계 최고이며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낮은 것은 오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봤다.

[검증 ] 상위 5%65% 내는 기형적 구조?... 고소득자 세금 비중 감소

 

<한경>"2019120여만 명(상위 5%)25%를 벌어 세금의 65%를 냈다, 세금을 아예 내지 않는 사람은 700만 명을 웃돌았으며 전체의 37%에 이르렀다"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고소득자를 겨냥한 핀셋 증세가 계속되면서 형성된 기형적인 구조"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상위 5% 고소득자 세금 비중과 근로소득 면세자 비중은 오히려 해마다 줄고 있다.

지난 2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제공한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 합산)" 1000분위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5%와 상위 10%가 내는 세금 비중은 계속 줄었다.김시연

 

국세청이 지난 2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제공한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 합산)' 1000분위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5%가 내는 세금 비중은 201467.8%였지만, 201566.8% 201666.1% 201766.2% 201865.9% 201965.2%로 계속 줄었다.

 

소득 상위 10%가 내는 세금 비중도 지난 2014년에는 80.2%였지만, 201977.4%까지 점차적으로 떨어졌다. 소득 상위 0.1% 초고소득자가 내는 세금 비중은 201418.2%에서 201918.6%로 소폭 상승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고, 상위 1% 세금 비중은 그사이 42.8%에서 41.4%로 소폭 감소했다.

 

근로소득이 적어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중도 계속 줄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448.1%로 거의 절반에 달했지만, 201546.8%, 201643.6%로 줄었고, 현 정부 들어서도 201741.0%, 201838.9%로 계속 줄고 있다. (출처 : 국세청 '2019 국세통계연보' 자료 바탕으로 국회예산정책처 작성한 자료)

근로소득 면세자 비중 변화(자료 : 2020 조세수첩, 국회예산정책처에서 국세청, "2019 국세통계연보" 자료를 토대로 작성)국회예산정책처

 

<한경>은 현 정부의 고소득자 증세 정책 때문에 소득 상위 5%가 세금 65%를 내고, 면세자가 하위 37%에 이르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된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는 과거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고소득자 세금 비중과 면세자 비중은 2014년 이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용혜인 의원실 관계자는 10"고소득자 세금 비중이 줄어든 이유는 박근혜 정부 당시 소득공제 대상을 줄여 하위소득자의 실효세율이 증가했고, 고소득자들이 개인유사법인 등 조세회피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검증 ]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빠르다?... OECD 18위 수준에 G7 평균 이하

<한경>은 현 정부의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도 문제 삼았다. 이 신문은 지방소득세 등을 포함한 소득세 최고세율이 201641.8%OECD 평균(42.5%)보다 낮았지만, 201744%, 201846.2%, 올해 49.5%로 올라 OECD 평균을 웃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 문 정부, 소득세율 두 차례 올려 최고 49.5%... OECD 평균 '훌쩍')

 

이같은 보도 내용만 보면 마치 한국의 고소득자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세를 부담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중간 수준에 머물고 있고, G7 주요 선진국들보다는 여전히 낮다.

지방세 등 포함 소득세 최고세율 국제 비교. 출처 : 국회예산정책처 발행 "2020 조세수첩". 자료: OECD Tax Database(2020.7.31. 기준)국회예산정책처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46.2%)OECD 평균(42.8%)보다는 높았지만, G7 국가 평균(49.7%)보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2020731일 기준 OECD 세금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근거로 분석했더니, 우리나라 최고세율은 OECD 국가(201937개국) 가운데 중간인 18위 수준이었다.

 

G7 국가들 가운데 일본(55.9%)을 비롯해 프랑스(55.4%), 캐나다(53.5%), 독일(47.5%), 이탈리아(47.2%)는 우리보다 최고세율이 높았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최고세율을 46.3%에서 43.7%로 낮췄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다시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한경>은 지난 10년 한국의 최고세율 인상 속도가 '세계 최고'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실은 6위였다. 물론 이 신문은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큰 국가 중에선'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10년 전 한국의 최고세율이 주요 선진국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소득세 최고세율 변화. 2010vs. 2019(자료 출처 : 2020 조세수첩, 국회예산정책처)국회예산정책처

 

국회예산정책처 국제 비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10년 당시 38.5%에서 7.7%포인트 올려 6위를 기록했는데, 프랑스는 201046.7%에서 8.6%포인트 올려 5위를 기록했다. 캐나다도 46.4%에서 7.1%포인트 올렸고, 일본은 50%에서 5.9%포인트 인상했다. 지난 10년 사이 최고세율을 인상한 국가는 23개국이었고, 인하하거나 그대로 유지한 국가는 각각 9개국과 4개국에 그쳤다.

 

또 최고세율이 많이 올랐다고 해서 고소득자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한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 즉 조세부담률(국민소득 대비 조세수입 비율)201920.1%, OECD 평균(24.9%)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GDP 대비 개인소득세 부담률은 5.4%, OECD 평균(8.3%)2/3 수준에 그쳤다.

 

[검증 ] 조세부담률 낮다는 건 오해?... 그게 오해

우리나라의 낮은 조세부담률은 그동안 증세 근거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한경>"한국이 조세부담률 낮다는 건 오해"라고 반박했다.

 

이 신문은 납세자연합회 회장인 홍기용 인천대 세무회계학 교수 발언을 인용해 "한국에서는 조세부담률을 구할 때 준조세를 포함하지 않지만, 프랑스 등 OECD 내 상당수 유럽 국가는 조세부담률에 포함시키고 있다"면서 "실제로 준조세까지 포함한 통계인 국민부담률은 2019년 기준 27%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소득세뿐 아니라 국민연금, 건강보험, 요양보험, 고용보험 등 4대 보험료도 '준조세'로 분류해 고소득자 세금 부담에 포함시켰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국민소득 대비 조세수입)OECD 평균 비교. 아래는 같은 기간 우리나라 국민부담률(국민소득 대비 조세수입+사회보험료)OECD 평균 비교.(출처: 국회예산정책처 "2020 조세수첩" 자료 : OECD Tax Database 2020.7.31)국회예산정책처

 

이처럼 준조세까지 포함하면 우리 국민이 실제 부담하는 조세부담률이 더 높아진다는 주장이지만, 실제 준조세에 해당하는 사회보험료까지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오히려 OECD 평균보다 더 낮았다.

 

국회예산정책처 국제 비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국민소득 대비 조세수입)2018년 기준 19.9%OECD 평균(24.9%)5.0%포인트 차이가 났지만, 국민부담률(국민소득 대비 조세수입+사회보험료)26.7%OECD 평균(34%)보다 7.3%포인트 낮아 격차가 더 벌어졌다.

 

"고소득자 세금 많은 건 소득 양극화 탓... 소득분배효과 함께 따져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는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7<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소득세를 OECD 평균보다 적게 걷어 다른 나라보다 면세자 비중도 높고 고소득자가 상대적으로 세금을 많이 내는 것처럼 보인다"면서도 "이는 소득 양극화 때문에 저소득층이 세금을 낼 만큼 충분한 소득을 벌지 못해 발생하는 현상이지, 우리나라 고소득자들이 외국에 비해 세금 부담이 더 높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유럽 국가들은 소득 50% 정도를 세금으로 거두면 대부분 복지에 사용해 소득 재분배 효과가 발생하는데, 우리나라는 세금은 그보다 적게 걷으면서 복지에는 적게 쓰고 기업(경제 분야)에 많이 사용한다"면서 "조세 불평등을 따지려면 조세 정책뿐 아니라 소득분배 상황, 세금을 얼마나 걷어 어디에 얼마를 사용하는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 글: 김시연(staright)임안젤(aanzel879)

2차대전 비용 2.5배 투입바이든의 미국 복지의 귀환

팬데믹·양극화 속 40년 만에 큰 정부

균형재정·감세 기조 버리고

6조달러 막대한 돈 풀 예정

중하류층 복지확대 등 시동

미국 오하이오주 메이필드하이츠의 한 상점 유리창에 직원 모집 공고가 붙어 있다. 메이필드하이츠/AP 연합뉴스

 

큰 정부선언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정부는 우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고, 정부가 문제라고 천명했다. 1996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 주도의 보수혁명 물결에 휩쓸리면서 우리가 알던 복지의 종말을 선포했고, 중하류층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대대적으로 삭감했다. 신자유주의의 기본 원칙, 작은 정부와 균형 재정과 감세 기조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미국과 자본주의가 40년 만에 대전환의 기로에 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누적된 불평등과 전례 없는 팬데믹 위기, -중 패권 경쟁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격변의 와중에 지난 1월 취임했다. 새 행정부는 총 6조달러(6729조원) 규모의 대형 지출안과 이를 위한 증세 방안을 마련하며 정부가 해결책이고, 복지가 귀환했다고 선포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세 전임자에 비견한다. 1930년대 대공황에 맞서는 뉴딜 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1950년대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올린 소련에 맞서 미국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주간고속도로와 과학기술 투자에 나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1960년대 민권운동에 호응해 복지와 민권을 신장시킨 위대한 사회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지난 114(현지시각)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극장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19천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발표하고 있다. 윌밍턴/AP 연합뉴스

 

거대한 구조 변화의 시기에 취임한 바이든은 정말 이 세 전임자를 합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작은 정부에서 큰 정부로, 균형 재정에서 확대 재정으로,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감세와 규제완화에서 중하류층 복지 확대와 노동권의 신장으로 미국을 확실히 유턴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1980년대 레이건 정부 이후 작은 정부선봉장

신자유주의 교리들은 1980년대 이른바 대안정기동안 확립됐다. 부자와 대기업을 위해 감세와 규제완화를 도입하면, 급격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없는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해지고, 사회경제 전반으로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는 논리다. 1970년대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짝을 이룬 스태그플레이션은 미국 등 선진국의 재정적자 및 정부의 경기 개입으로 말미암은 민간 분야의 위축에 따른 결과라는 반성에서 나왔다. 실제, 198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 등 세계 경제는 낮은 인플레와 안정적 경제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등장이라는 세계 경제의 근본적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최근 우세하다. 중국이 풍부한 노동력으로 저가의 제품을 공급하는 한편 미국의 국채를 사준 덕에 인플레 없는 경제성장을 추동했다는 것이다.

 

인플레는 없었지만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버블이 일었다. 경기침체는 잦아들었으나 일자리 없는 경기회복이 오래 지속됐다. 1980년대 이후는 노동자의 임금 상승률이 미약했던 시대다. 균형 재정과 감세에 집착하면서 사회복지가 축소됐다. 이는 소득양극화 심화로 이어졌다. 전후 1948년부터 대인플레이션 전인 1969년까지 21년 중 39%는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4% 미만이었다. 반면 1980년대 이후 대안정기 동안은 실업률이 4% 미만이었던 기간이 8%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부 장관이었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대안정기는 특별히 안정이랄 것도, 특별히 대단할 것도 없다고 평가한다.

 

2008년 금융위기는 대안정기를 종식시키고, 신자유주의 교리들을 퇴색시켰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명운이 다해가던 신자유주의 질서와 교리들을 장례 치른 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과 코로나19 위기였다. 세계화로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본 백인 중하류층의 지지를 받은 트럼프의 포퓰리즘은 이를 가속화했다. 트럼프는 재정적자를 메울 재원도 없이 201715천억달러 부자감세를 추진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닥치자, 사상 최대 23천억달러 경기부양안을 밀어붙였다. 공화당의 신조였던 균형 재정과 작은 정부 원칙이 허물어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저금리 속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일지 않았다. 연준은 경제성장 자극을 위해 2%대의 인플레 목표율까지 설정했다. 그동안 재정운용과 통화정책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인플레 위험이 약화된 것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정부는 이런 토대 위에서 미국의 자본주의를 바꿀 행보에 들어갔다. 2차 세계대전 때보다도 더 큰 정부 역할 확대에 시동을 건 것이다. 맨해튼연구소의 마이클 헨드릭스 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2차대전 때 원자폭탄 개발 등 전비를 현재 달러 가치로 48천억달러나 썼는데, 미국이 지난해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쏟아부은 돈은 55천억달러다. 바이든은 이에 더해 향후 6조달러 지출을 예고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부양안은 월가·자산층만 덕봐

2008년 금융위기 때의 반성도 작용했다. 당시 공화당의 견제 속에 통과된 7870억달러 규모의 미국 회복과 재투자법은 경기회복이 중하류층까지 흘러가도록 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균형 재정과 인플레 방지라는 신자유주의 교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부양안은 좌우진영 모두로부터 월가와 자산층만 더 살찌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퓨리서치의 2010년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35%만이 그 부양안이 실업 방지에 효과를 줬다고 생각했다. 당시 민주당 오바마 정부는 중간선거에 패배해, 의회 다수당 지위를 공화당에 내줬다. 그 부양안을 협상했던 장본인이 당시 부통령이던 바이든이었다.

바이든 정부의 행보는 이런 과거의 성찰과 더불어, 미국과 자본주의가 직면한 중대한 현 상황에서 비롯됐다. 그 상황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대응을 촉구한다.

코로나·-중경쟁·기후변화 덮쳐 6조달러 대형 지출안

첫째,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1980년대 이후 계속된 소득불평등과 중하류층의 불만을 더는 방치할 수 없게 됐다. 라지 체티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1970년 미국 30대의 90%는 부모들이 자신들의 나이였을 때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렸다. 반면 2010년 그 비율은 50%로 줄었다. 금융위기 때 월가 점령(오큐파이)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위기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 위기를 일으킨 거대 월가 은행들뿐이었다. 위기 이후 자산 가격 상승으로 자산격차는 더 벌어졌다. 코로나19 위기마저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불평등과 사회적 내상이 예상된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주식 등 자산버블은 심해지고 있어, 중하류층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 때부터 제공된 직접지원금 등 정부 보조로 미국의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약 20% 늘어나리라 예상된다. 부모 중 한명만 일하는 4인 가정은 12460달러를 직접 지원받는다. 이에 따라 아동빈곤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둘째,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대결이다. 중국과의 디커플링(동조 해제)을 통해, 중국의 도전을 저지하고 국내 산업과 일자리를 부흥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대안정기의 저인플레와 안정적 성장률은 미국 등 선진국들의 혁신과 생산성 증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역할이 컸다. 이는 선진국 생산시설들이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이전했음을 뜻하고, 선진국 중하류층의 양질의 일자리 및 소득 정체로 이어졌다. 미국은 몸집이 커진 중국의 도전에 맞서는 방안으로 디커플링 해제를 선택했다. , 중국을 배제한 공급사슬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내놓은 사회기반시설·산업경쟁력 개선을 위한 대형 투자지출안은 중국의 도전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내의 중하류층 노동계급을 의식한 조처다.

-중 대결 상황을 본궤도에 올린 트럼프가 가장 실수한 것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파기라고 좌우파 모두 비판한다. 바이든도 새로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이 칭하는 중산층을 위한 대외정책은 반무역협정의 완곡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평가했다. 미국이 미-중 대결과 국내산업 기반 강화를 꾀하기 위해, 대외 정책에서 그간의 세계화를 지양하겠다는 의미다.

셋째, 지구온난화다. 기후변화는 이미 산업구조의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화석연료에 바탕한 경제는 수명이 다하고 있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려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역할이 필요하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지출안이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채 의회를 통과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더욱이 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은 대형 지출안들이 인플레를 야기할 가능성은 3분의 1이라고 지적한다. 대형 돈풀기의 부작용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금리가 인상된다면 미국의 국가부채나 재정적자도 버티기 힘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교리들이 장례를 치른 시점에서 더 이상 그런 우려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법인세·소득세율 높여 3~4살 아동 보편적 무료 탁아

바이든 확대재정안 보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큰 정부와 확대 재정을 위해 총 6조달러(6729조원) 규모의 대형 지출안을 마련했다. 19천억달러 규모의 미국 구호 계획은 이미 실시 중이다. 23천억달러 규모의 미국 일자리 계획’, 18천억달러의 미국 가족 계획이 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구호 계획은 미국인 1인당 1400달러 직접지원금과 올해 여름까지 300달러의 추가적인 연방정부 실업수당 등이 포함된 코로나19 대비 긴급 경기부양안이다. ‘미국 일자리 계획은 미국의 노후한 사회기반시설과 산업 경쟁력을 개선하는 향후 8년간의 투자지출안이다. ‘미국 가족 계획3~4살 아동의 보편적 무료 탁아, 커뮤니티 칼리지 무상교육, 연소득 15만달러 이하 가정의 18살 이하 자녀에게 월 250~300달러 자녀양육보조금 지급 등을 담은 중하류층 불평등 개선책이다. 자녀양육보조금은 자녀세액공제 형태로 제공되는 한시적 조처지만, 일단 실시되기만 하면 미국 중하류층 복지체계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중하류층 부모들의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

 

내용도 전례가 없지만, 이런 대형 지출안은 그 규모에서 기존의 재정 운용 등 경제 원칙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6조달러는 2019년 미국 국내총생산(GDP) 214300억달러의 28%에 해당한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 때인 지난해 3월에도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23천억달러 경기부양안, 12월에도 9천억달러 부양안이 통과됐다. 지난해 이후 긴급 경기부양안과 투자지출안들을 모두 합치면, 92천억달러에 달한다. 미국 국내총생산의 거의 절반이다. 코로나 위기 이전인 2019회계연도 연방예산 지출액인 44700억달러의 두배가 넘는다.

 

천문학적인 재원을 마련하고자 증세도 추진한다. 바이든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1%에서 28%, 연소득 40만달러 이상에 적용되는 최고소득세율을 37%에서 39.6%, 100만달러 이상의 자본이득에 대한 자본이득세 최고세율을 20%에서 39.6%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다국적 거대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글로벌 최저법인세(법인세 하한선)’ 도입도 합의한 상태다. / 한겨레 정의길 선임기자

 

김일성 왈가왈부 : ‘그 법7

해리포터에는 빌런(악당)이 하나 있다.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 너무 두려운 나머지 호명조차 할 수 없는 캐릭터다. 한국에는 이런 볼드모트같은 법이 하나 있다. 국가보안법 7, ‘찬양·고무죄.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국가보안법 제 7

 

최근 국가보안법 7(이하 찬양고무죄)가 또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적표현물이라 규정된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한국에 출판되면서다.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이 태어난 19124월부터 해방 직후인 194510월까지의 일대기다. 대법원은 2011년 이 책을 이적표현물로 규정하고 소지한 사람에게는 찬양고무죄를 적용해 유죄를 확정하는 판례를 남겼다.

 

언론들은 앞다퉈 김일성 회고록이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고, 배포가 되면 국가보안법이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소개하고 나섰다. 한 시민단체는 이 책의 판매를 금지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지난달 27일 첫 심리가 열렸다.

 

김일성 회고록은 대법원 판례에 법원이 인정하는 대표적인 이적표현물입니다. 즉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해하는 점을 알기 때문에 판매소지 등 이런 것이 금지되는 책입니다.

도태우 / 법치와 자유민주주의연대 대리인

 

논란이 확산되자 서점들도 고객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이 책 판매를 중지했다.

반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시대변화와 높아진 국민의식에 맞춰 표현의 자유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세기와 더불어> 출판을 허용하자는 입장을 밝히며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는 건 국민을 유아 취급하는 것이니 출판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고 적었다.

 

국가보안법 7조 폐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하태경 의원은 국가보안법 7조 폐지만가지고 이야기하면 좌우싸움이 된다면서 표현의 자유 3대 악법 국가보안법 75.18 왜곡처벌법대북전단금지법을 같이 폐지하면 국민의힘 내에서도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가보안법 7조 폐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7개월 넘도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계류중이다.

 

하태경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7조로 처벌 받은 건수가 과거에 비해 굉장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근거로 찬양고무죄는 거의 사문화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사건의 대리인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주희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7조가 사문화 되었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면서 단 한 명이라도 그 법으로 인한 피해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사문화 됐다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국가보안법 7조로 재판을 받은 사람들을 만났다. 평양시민 김련희, 북한연구자 유영호, 전 파주시의원 안소희, 전 중학교 국어선생님 박미자 씨다. 이들 중에는 유죄를 받은 사람도 있고 무죄를 받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신들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7조로 인해 모든 것을 그만둬야만 했다. 모두 열의를 갖고 북을 연구했고, 사명감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쳤고, 최선을 다해 시민들을 위해 일한 사람들이었다.

국가보안법 7조는 여전히 서슬퍼런 날을 세우고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생각까지 좀먹고 있었다. /뉴스타파 /신동윤

 

한강 실종 대학생 의혹보도는 정말 뉴스인가

[비평] 가십 다룰 때처럼 이슈 대응 기사 쏟아내기, 취재 없이 누리꾼 주장 전하며 의혹 확산 문제 심각

2340. 한강에서 실종된 대학생 손정민씨가 발견된 지난달 30일부터 510일 오후 6시까지 포털 다음에 송고된 관련 기사의 수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고, 경찰의 수사가 부실하다면 비판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관심을 갖고 집중 보도하는 일은 의미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무엇을 위한 보도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관련 기사를 언론사별로 나눠보면 경제신문들이 눈에 띈다. 머니투데이는 해당 기간 관련 기사를 107건 썼고, 이데일리는 99건을 썼다. 이는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61) 보도량을 압도한다. 경제신문들이 사회면에 실릴 사건 기사를 일간지는 물론 뉴스통신사보다도 많이 써낸 것이다. 전공이 아닌 분야에 힘을 쏟는 이유는 이들 신문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에 적극적으로 기사를 쏟아내온 것과 관련이 있다. 별도의 온라인 이슈 대응 기사를 잘 쓰지 않는 한겨레의 관련 기사는 같은 기간 4건에 그쳤다.

손정민씨 사건 관련 청와대 청원을 보도한 머니투데이 기사 갈무리

 

쏟아진 기사의 면면을 보면 필요한 뉴스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머니투데이는 청와대 청원 기사만 5건을 썼다. 3, 19, 20, 30만 등 청원인이 늘어날 때마다 중계하듯 보도한 것이다.

 

물론 언론이 화제가 되는 사안에 기사를 쏟아내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가십으로 다룰 이슈가 아닌데, 사건의 미스터리함에 초점을 맞추며 흥미 유발 기사를 써내고, 그 결과 친구를 범인으로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언론은 유가족의 의심을 전하며 친구의 사라진 핸드폰과 신발을 버린 사실 등을 연일 조명하고 그의 수상함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CCTV 영상을 토대로 네티즌 수사대의 추측을 전한 보도는 억측만 확산시켰다. 언론인권센터는 10일 논평을 통해 이들 기사를 문제로 지적했다.

 

“‘한강 실종 대학생인근 CCTV, 의문의 남성들그들은 왜 달렸나”(머니투데이)

“‘한강 실종 대학생' 주변 CCTV 속 남성들, 왜 전력 질주했을까”(파이낸셜뉴스)

 

현장 CCTV 영상에 세 명의 남성이 한강변 도로를 따라 뛰어가는 장면이 담겼다. 누리꾼들은 이를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추정했고, 언론은 이를 전하며 의혹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CCTV에 등장한 이들은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로 드러났다.

 

이어 다른 누리꾼은 세 명 중 한 명이 손씨 친구와 인상착의가 같고, 손씨로 추정되는 사람을 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한강 사망 의대생 사건 단서였던 CCTV 영상 분석한 누리꾼들이 새롭게 내놓은 주장”(인사이트) “손정민 씨 업고 가는 친구? CCTV 보고 의혹 제기한 누리꾼”(머니투데이) 등 기사가 이어졌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언론이 경찰보다 앞서 나가며 오보를 내기도 했다. 뉴스14“‘친구 휴대폰 찾았다실종 대학생 발견 구조사가 물속서 건져기사를 냈다. 이어 위키트리가 한강 의대생 시신 찾았던 민간구조사, 이번엔 친구가 잃었다는 아이폰 찾았다는 기사를 냈다. 여기에 주간조선은 정민씨 친구 추정 휴대폰 발견유심칩 빠져 있었다기사를 통해 유심칩이 없다면 누군가가 고의로 뺐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10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고() 손정민 씨 친구의 휴대폰을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 기사를 종합하면 친구의 핸드폰을 찾았고, 친구가 의심스럽게도 유심칩을 뺀 다음 휴대폰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들 기사는 오보였다. 핸드폰은 실종 대학생의 친구 것이 아니었다. 경찰은 한 번도 이 핸드폰이 친구의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없었다.

 

이번 사건을 취재했던 한 신문사 사회부 기자는 최소한의 자정조차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 기자는 검증되지 않은 보도가 지나치게 많다. 한쪽(손정민씨 유족)의 주장에 보도 가치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게 어느 한 대상(친구 A)을 범죄자 또는 그에 준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라면 검증을 하고 가려서 써야하는 게 맞다큰 따옴표만 단다고 기사가 되는 게 아닌데 열광하고 음모론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조회수가 폭발하니 언론사들이 달려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언론의 책임과 더불어 경찰의 문제도 지적했다. 경찰은 지난 6일이 돼서야 최초 백브리핑을 했다. 이미 억측과 음모론이 쏟아지고 며칠 지난 시점이다. 이 기자는 “6일 백브리핑이 너무 늦었다. 더 빨리해서 끊었어야 하는데 기관이 늦게 나서니 계속 음모론이 커진 것이다. 경찰들 사이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파이낸셜뉴스 기사 갈무리

 

한국일보는 지평선칼럼 위험천만한 한강 대학생 보도를 통해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언론 보도의 행태를 짚으며 지금은 수사 결과를 기다릴 때라고 했다. 당시 언론은 선장과 비슷한 사람이 도주하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을 토대로 온갖 추측을 쏟아내며 비겁한 선장을 조명했다. 하지만 선장은 선내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물론, 이번 사건은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때와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취재 없이 행해진 일방적 추측 보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저널리즘 교과서격인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사실확인의 원칙을 강조하며 이를 저널리즘이 연예 오락이나 선전 선동, 소설 등과 구분되는 중요한 특성으로 꼽았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 보도 행태를 지적하며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기자들은 자의적 판단을 멈추고 기자의 본분인 취재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언론 시민단체가 기자들에게 취재를 잘 하라고 지적한 게 아니라 취재를 하라고 지적한 대목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취재 없는 기사는 누군가의 삶을 파멸시킬 수 있는 소설과 다를 바 없다.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법정, ‘양승태 재판

양승태 재판이 피고인 측에 의해 지연되고 있다. 변호인은 피고인 권리를 내세우나 이는 현실적으로 양승태의 특권이다. 시간 끌기는 대법원 구성이 바뀌는 시기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42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법정이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 관련 재판(양승태 재판)이다. 법정이 열린 직후 재판장이 피고인과 변호인, 검사의 출석을 확인하는 통상의 절차 이후 모두가 온종일 입을 다문다. 문자 그대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드라마처럼 증인을 둘러싸고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하게 다투지는 않더라도, 보통 법정은 말의 향연장이다. 각자 증거를 가지고 말로 싸우는 공개된 자리다.

 

그렇다고 양승태 재판에 정적만 흐르는 건 아니다. 음성 파일이 스피커를 통해 출력된다. 내용은 지난해 진행된 양승태 재판의 녹음이다. 판사·검사·변호사·피고인은 각자 자리에 앉아 녹음 내용이 담긴 공판 조서를 보며 소리에 따라 종이를 넘기거나, 컴퓨터 모니터를 보거나, 가끔은 허공을 응시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주로 눈을 감고 있다. 같이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메모하거나 서류를 보는 모습과 대조된다.

 

지난 2년 동안 양승태 재판을 진행했던 판사들이 2월 법원 정기인사로 바뀌면서 벌어진 일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5(재판장 박남천)가 맡았던 양승태 재판이 형사35-1(재판장 이종민)로 옮겨졌다. 재판부가 바뀌면 공판 절차를 갱신(공판 갱신 절차)’해야 한다. 대법원 형사소송규칙 제14415호에 따르면, 갱신 전의 공판기일에서 증거조사를 한 서류 또는 물건 등에 대해 다시 증거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공판 갱신 절차는 피고인과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생략 가능하다. 실제로 대다수의 재판은 그렇게 진행된다.

 

즉 앞선 재판에 문제가 없었으면 통상 넘어가는 이 절차에 양승태 재판의 피고인들이 제동을 걸었다. 120회 넘게 진행한 재판의 증거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뀐 재판부가 이미 진행된 증인신문을, 조서 형식의 글로 읽을 게 아니라 공개된 재판에서 직접 들어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쪽은 시나리오만 보는 거랑 영화로 보는 거랑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라며 녹음 파일 재생이 필요한 이유를 시사IN에 설명했다.

 

당연히 검찰은 난색을 보였다. 그렇게 하면 녹음 재생에만 1년 넘게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피고인들은 법대로를 요구하며 맞섰다. 바뀐 재판부는 핵심 증인 4명의 증언 녹음을 법정에서 청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월 내내 양승태 재판에서 온종일 녹음된 목소리만 울려 퍼진 이유다. 채택된 증인 네 명의 녹음을 모두 듣는 시간만 두 달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주일에 세 번씩 재판을 진행하며 녹음을 틀고 있지만, 네 사람의 녹음본만 해도 양이 많다.

 

가장 먼저 재생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증인신문(모두 6)을 전부 듣는 데만 3주가 걸려 428일 마무리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5),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3), 한승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2) 등에 대한 이전 재판의 증인신문 녹음본도 모두 바뀐 재판부의 법정에서 재생될 예정이다.

정다은 그림

 

법관 사회의 내로남불원칙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증언이 재생된 416, 법정 바깥 복도에서 소란이 일었다. 다른 재판 민원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양승태 재판의 법정 안까지 새어 들어왔다. 종종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녹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 펴졌다. 정작 법정 내에서 녹음본의 볼륨을 키워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이어 419일에 재생된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증인신문 녹음은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있었다. 스피커가 웅웅대며 울렸고 때론 소리가 지나치게 작아졌다. 별 이의 없이 지나갔다. 녹음 재생 시간이 길어지면서, 판사·검사·변호인·피고인 등이 앉은 재판정에서 간혹 눈을 감는 이들이 보였다.

 

시사IN이 접촉한 전현직 판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판사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낯설거나 전무(全無)하더라도 피고인의 권리는 형사재판에서 담보되어야 하는 원칙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처음에는 (녹음을 듣는 것이) 지루한 절차, 무익한 절차가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다. 따분하고 누가 짜증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효용이 굉장히 컸다. 더 잘 이해가 되었다.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서 욕먹을 각오하고 FM대로(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며 한다는 의미) 가는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만 원칙이 적용되는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반 피고인은 양 전 대법원장과 같은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2년에 한 번씩 재판부가 바뀌는 상황에서,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재판 절차(양승태 재판에서는 공판 갱신 절차 등)를 요청할 간 큰 피고인은 찾기 힘들다.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판사의 눈 밖에 나고 싶은 피고인은 드물다. 법조인들도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안다. 한 판사는 양승태 전 원장처럼 일반 피고인이 재판 진행을 요청하면, 재판장 10명 중 5명은 불허하고 나머지 5명은 화를 낼 거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현실이 그렇기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부터 원칙을 지키도록 해서 다른 재판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모든 피고인의 권리 확대를 위해서라도 양승태 재판을 전범(典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 측에서 나온다. “대법원장의 재판이 선례가 되기에 욕먹어도 권리 주장을 해야 한다고 변호인들이 원장님께(양승태) 말했다. 원장님도 법이 뭐냐 원칙이 뭐냐 생각한다.”

 

하지만 한 현직 판사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2년 동안 진행된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서 지켜진 원칙이 이후 다른 재판에서 실현되었느냐고 꼬집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으로부터시작해 차츰 확대된 피고인의 권리였는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권리였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연합뉴스

 

함초롬바탕체논란이 대표적이다. 재판 초반이던 20196, 양승태 전 대법원장 쪽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물 조사에도 원칙을 들이댔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에서 나온 파일 1142개와 검찰이 재판부에 해당 파일을 출력해 제출한 문서가 동일한지 하나하나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검찰의 증거 조작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였다. 변호인 쪽에서는 원본 파일은 함초롬바탕체인데 출력물의 글씨체는 왜 다르냐고 따져 물었다. 검찰은 인쇄를 한 컴퓨터에 함초롬바탕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증거 조작은 딱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엄격한 증거조사는 당시 화제가 되었지만, 이후 다른 법정으로까지 널리 확대되지는 못했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도 마찬가지다. 피의자를 상대로 무차별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검경의 수사를 견제하기 위해,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도 실질 심사를 한다. 그러나 엄격하게 요건을 심사해 영장 발부를 해야 한다는 이 원칙이 법관을 대상으로 한 수사와 재판에만 적용된다는 비판이 숱하게 나왔다. 2018년 법원은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잇달아 기각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집에 대한 압수수색은 주거 안정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지인의 집에 머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같은 이유로 또 기각했다.

 

법원의 태도는 다른 고위 법관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임의제출 가능성 있다(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 “법익 침해가 큰 사무실·주거지 압수수색을 허용할 만큼 필요성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법원행정처 양형위 자료 등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 “기본권 제한의 정도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 압수수색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임종헌 전 차장 대포폰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주거 안정을 비롯한 위와 비슷한 사유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또 다른 사례는 알려진 바 없다.

 

결국 전직 대법원장으로 대표되는 판사라는 키워드를 넣어야만 가능해지는 장면이다. 사법농단 사건에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온 한 판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원칙은 피고인의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고 일갈했다. “형사소송법 발전을 위해 지금부터 그렇게 하자고 하는 건 좋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않았고, 법관 사회가 제대로 그 방법도 논의하지 못했다. 선례를 쌓아 일반 피고인에게도 적용하지 못했다면 내로남불이다.” 법관 사회가 일반 피고인의 권리 확대에 눈감으면서 자신들을 위해서만 원칙을 내세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고백도 덧붙였다.

고영한 전 대법관.시사IN 조남진

 

429일 현재까지 양승태 1심은 증인 87명의 신문을 마쳤다. 지난 2년 동안 재판을 진행한 결과다. 아직 증인 24명의 신문이 기다리고 있다. 반나절이면 신문이 끝나는 증인도 있지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는 임종헌 전 차장 같은 핵심 증인도 남아 있다. 재판 상황에 따라 증인 5~6명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어, 올해 안에 1심 선고가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도 처음 재판을 시작할 때 신청된 증인 216명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줄었다.

 

같은 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임종헌 재판) 진행은 훨씬 더디다. 신청된 증인 257명 중 164명에 대한 신문은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임종헌 재판은 개시 직후인 20191월 변호인 11명이 집단 사임하면서 한 달 이상 중단된 바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임 전 차장이 재판부(형사36부 재판장 윤종섭) 기피 신청을 했다. 1, 2, 대법원 모두 임 전 차장의 기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01월에야 최종 기각돼 그해 3월부터 임종헌 재판이 다시 열렸다. 이조차도 현재 임 전 차장은 사실조회 신청 등을 해 재판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한 번 더 무너지는 사법부 신뢰

피고인들이 시간 끌기를 한다는 지적은 사법농단 재판에서 거듭 제기되는 의심이다. 앞서 양승태 재판 증인으로 채택된 정다주·시진국·박상언·김민수 판사 등은 제때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재판 일정과 겹쳐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임종헌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되었으나 법원 체육대회때문에 출석하지 않은 법관도 있다. 전지원 판사(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총괄심의관)는 소속 법원의 체육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증인신문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가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하자, 이에 불복해 과태료 재판까지 열렸다. 이후 전 판사가 법정에 출석한 점 등이 고려돼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았다.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일이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재판 지연 의혹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쪽은 손사래를 친다. “사건 초기에는 증거 부동의를 많이 해서 시간 끌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은 바는 있다. 사건 볼륨이 커서 FM대로 하는 거지, 피고인이 방어권 행사하지 말라는 거냐고 반박했다. 이후에 증거 부동의동의로 바꿔서 증인 숫자도 많이 줄였다. 이후에는 오히려 검찰이 시간을 끌었다. 하루면 끝낼 수 있는 증인을 2~3일씩 나오게 해서 우리가 항의했다. 그리고 법관들이 증인으로 안 나온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연합뉴스

 

하지만 한 전직 판사는 사법농단 재판 피고인들의 속내를 이렇게 해석했다. “양승태 등 피고인들에게 사법농단 재판은 장기 프로젝트다. 단기 목표는 1. 장기 목표는 대법원. 1심에서 무죄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시 거기서 일부 유죄가 나더라도 대법원에서만은 확실하게 무죄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려면 대법원 구성이 중요하다. 2017년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인데, 그 이후를 바라보고 재판에 임한다고 봐야 한다.” 한 현직 판사의 시각도 비슷했다. “지금 대법원 구성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니, 사법농단을 정쟁이라고 우기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며 관심이 줄어들게 만들고 있다.”

 

이례적인 상황이 유독 사법농단 재판에서만 잦다 보니, 원칙은 빛이 바랜다. ‘신성 가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원칙은 보통의 시민에게 허탈함을 넘어 사법 불신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일반 피고인이 아무리 주장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판사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같은 전관 피고인이 하는 주장은 과하다 싶은 것까지 다 받아준다. 이게 문제가 뭐냐면, 그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그런 행위를 보는 시민들은 사법 행위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어느 정도 신분이 되지 않으면, 법정에서 내 이야기 한번 제대로 못하고 몰릴 수 있겠구나 하는 불신을 야기한다.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 규칙이 법관 출신들에게만 유독 적용된다면 누가 법을 신뢰하겠나.”

 

사법농단 의혹으로 무너진 사법부의 신뢰가, 사법농단 의혹 재판으로 한 번 더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형국이다./시사인 김은지 기자

 

혁명은 심장에" 미얀마 저항시인, 장기 없는 시신으로

 

내일(11)이면,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100일입니다. 피로 물든 시간들이었는데 어제는 한 저항 시인이 장기 없는 시신으로 가족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기자]케 티라는 이름의 미얀마 시인입니다.

지난 주말 구급차에서 찍힌 사진엔 고문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군부에 저항하다 잡혀간 지 하루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시신엔 심장을 비롯해 장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만 반복했고, 아내는 그조차 돌려받지 못할까봐 망가진 시신을 받았습니다. 장기를 빼낸다는 의혹이 불거진 건 처음이 아닙니다.

실제 감옥에 다녀온 청년들이 JTBC에 군부의 잔혹 행위를 고발했습니다.

 

[A/미얀마 시위 참가자 : 구금자를 살해하곤 시신을 돌려줬는데 안에 내장이 아예 없었어요. 군부는 잔인한 테러범들이에요.]

장기를 빼낸 게 비인간적인 고문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B/미얀마 시위 참가자 : 군인이 쇠줄로 후려쳤어요. 심문받은 선배는 머리가 깨졌어요.]

미얀마에선 쿠데타가 있고서 100일 동안 확인된 희생자만 780명에 달합니다.

혁명은 심장에 있다고 생전에 시를 쓴 케 티, 결국 군부 손에 심장을 잃은 케 티의 시가 미얀마를 또 한 번 울리고 있습니다.

(화면제공 : 미얀마 매체 '이라와디')jtbc 이지은 기자입니다.

 

기업 대변하는 언론보도, ‘산업재해 공화국벗어날 수 없다

[민언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수신문경제지, 현대중공업현대제철 죽음의 공장산재 외면

58일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에서 잇따라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 장 모 씨는 이날 오전 선박 탱크작업 중 13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숨졌습니다. 현대제철 노동자 김 모 씨는 같은 날 오후 홀로 설비점검 작업에 나섰다 쓰러진 채 발견됐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정확한 사고원인 조사가 필요한 가운데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노동자의 연이은 산업재해 사망사고 소식이 언론보도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 확인했습니다.

 

조선중앙한경매경, 산업재해 사망사고 외면

먼저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지상파3사와 종편4사 저녁종합뉴스 보도를 확인했습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진 후 510일부터 신문에 관련 기사가 등장합니다. 510일부터 11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가 지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은 이번에도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외면했습니다. 경향신문은 유일하게 510일자 1면에 사망사고 기사를 배치했습니다.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산업재해 사망사고 신문(510~11방송(58~10) 보도량.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 저녁종합뉴스에서는 사고 당일인 58일부터 10일까지 KBS, MBC, SBS, JTBC가 관련 보도를 냈습니다. 대부분 사고소식을 전하는데 그쳤지만 MBC <14년간 39명이그곳은 죽음의 공장이었다>(510일 김성현 기자)2007년 이후 현대제철에서 벌어진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39건에 달한다는 사실을 짚으며 3건의 관련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다양한 보도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뉴스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를 활용해 현대중공업사망이 포함된 보도, “현대제철사망이 포함된 보도를 분석했습니다. 관련 보도는 23개 매체에서 60건이 나왔습니다. KBS, SBS 저녁종합뉴스 헤드라인을 제외하면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한 보도는 58건입니다.

 

지면에 관련 보도를 싣지 않은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온라인기사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현대중 협력업체 근로자, 작업 중 추락해 숨져>(58일 김준호 기자)와 중앙일보 <현대중 울산조선소에서 협력업체 노동자 1명 추락 사망>(58일 위성욱 기자)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연합뉴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서 협력업체 노동자 추락해 사망>(58일 김근주 기자) 기사를 사실상 옮겨 싣는데 그쳤습니다. 헤럴드경제 <현대중 울산조선소서 협력업체 노동자 추락 사망>(58일 온라인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연합뉴스가 <당진 현대제철서 40대 근로자 숨져끼임 사고 추정>(59일 김준범 기자)으로 현대제철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보도한 후에도 통신사 받아쓰기방식은 반복됐습니다. 59일 한국경제, 매일경제, 디지털타임즈 등이 온라인에 보도를 실었는데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옮긴 데 불과했습니다. 사망사고가 주말에 일어났고, 언론사 대부분이 휴일인 기간임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보수신문과 경제지가 연합뉴스 받아쓰기로 대체하며 자체 취재를 하거나 심도 있게 후속취재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산업재해 노동자 사망사건에 대한 인식수준을 잘 드러낸 경우입니다.

58일부터 10일까지 빅카인즈 기준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산업재해 사망사고보도현황.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 지면과 방송 저녁종합뉴스, 빅카인즈를 활용한 분석 결과를 보면 과거에 비해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보도하는 매체가 늘었습니다. 하지만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언론과 경제지에서는 제대로 된 관련 보도가 여전히 없다는 특징도 나타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가입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로 산재사망자 수가 OECD 평균치 0.48명보다 3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2020년 한 해만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가 882, 질병재해 사망자 1,180명으로 2,000명 넘는 노동자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런 데도 보수성향 매체와 경제지는 산업재해 사고를 계속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장반복되는 이유, 왜 따지지 않는

현대중공업, 현대제철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을 여러 차례 받아온 사업장입니다. 지난해 노동자 6명이 사망한 현대중공업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5월 특별감독, 6~7월 특별관리 등 집중감독을 벌였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현대제철 설비는 그동안 근로감독에서 한 번도 지적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러 차례 혹은 몇 달간에 이르는 근로감독조차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산업재해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언론이라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이 유명무실하다는 문제점을 짚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산업재해 보도에서 특별근로감독 문제를 지적한 언론사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경향신문 <사설-현대중·현대제철 또 산재, ‘죽음의 행렬지켜보기만 할 건가>(510)지난해 5월 노동부의 특별감독 종료 다음날 용접작업을 하던 30대 하청노동자가 질식사했고, 집중감독을 받은 지 석 달 만인 지난 2월 초에는 40대 직원이 2.6t짜리 철판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라며 근로감독이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짚었습니다. 한겨레 <사설-이번엔 어버이날 산재 사망, 정치권 애도만 할 건가>(510)현대중공업 사고를 보면 노동부의 관리·감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JTBC <현대제철 끼임사왜 끼나’ 254건 산재보고서 전수분석>(510일 정영재 기자)은 이번에 사고가 일어난 현대제철과 같은 설비가 당진제철소에만 20대가 넘지만 고용노동부는 사고가 난 설비 1대만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는데요. 고용노동부는 같은 설비에서 또 사고가 날 우려가 있다면 함께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있다고 했지만, 추가조사를 이유로 예방조치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2월 열린 국회 사상 첫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산업재해 책임을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으로 돌리는 발언으로 질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히 만연하고, 사업주가 노동자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데도 노동자 탓을 할 수 있는 배경엔 정부의 부실한 근로감독이 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줘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또 다른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산업재해 소식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노동자 죽음이 반복되는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적극 지적하는 보도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노동자를 사실상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문제를 짚은 경향신문(510).

 

기업 시각으로 산업재해 바라본 동아일보

그러나 일부 언론의 경우 산업재해 근본 원인을 짚는 보도가 가능할까 의구심이 듭니다. 노동 문제에서 노골적으로 기업 시각을 반영해왔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2022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제정 직후부터 기업 경영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고 있다며 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수칙 다 지키면 공사기간 못 맞춰중대재해법 대비 버거운 중소>(56일 김호경·이새샘·정순구 기자)는 건설현장을 사례로 산업안전정책 보완을 촉구하기 위한 보도임에도 노동자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기업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작업현장에) 추락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철제 구조물이 옆에 있었지만 빨리 작업하려고 여기저기 옮기기 쉬운 사다리를 사용했다거나 안전관리자가 흡연은 절대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담배를 피우며 용접하는 근로자도 눈에 띄었다며 노동자 책임을 부각했습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이 언제 시행되든 애초 지키기 힘든 법이라는 주장을 전한 뒤 안전관리 인력 2명이 30여 명에 달하는 근로자의 모든 작업을 일일이 관리하기란 불가능해보였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대형 건설업체도 중대재해법을 완벽하게 대비하기 어렵다며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두고 현장에 드나드는 인력이 워낙 많아 안전관리의 범위가 무제한에 가깝다는 주장을 전했습니다.

 

매일경제 기업현실 최대한 반영해 법 고쳐라

매일경제는 자사가 주최한 강연 중 기업 입장이 담긴 발언을 크게 부각했습니다. 매일경제 <사설-외국계 기업 CEO마저 반대하는 중대재해법 개정 시급하다>(56)에서 외국계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기업인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경영진에 대한 형사처벌이 너무 과하고 한국의 기업 정서가 경직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면서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기업인 단체가 법안내용 변경을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산업현장에서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법적 제재로 인한 기업인의 사업 의지 약화, 기업 활동 위축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매일경제 결론은 정부가 경제계와의 소통을 통해 법을 개정하고,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도 기업의 현실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날 강연에서는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이 참석해 현재 한국의 산재사고 사망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2배에 달해 산업보건 부문에서는 한국이 '후진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안전·보건 투자에 대한 경영진 관심이 적은 것 아니냐고 기업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매일경제는 기업의 무책임을 비판하는 박 차관 발언을 제외한 채 기업 입장만 일방적으로 강조한 편들기보도를 했습니다.

 

한국경제, 기업대상 중대재해처벌법 로펌 광고

중대재해처벌법 기업자문 법무법인을 집중 소개한 한국경제(421)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을 대변해줄 로펌을 소개한 언론도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421로펌의 진화를 제목으로 기획 지면을 선보였습니다. 기업을 지원할 법무법인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법률 서비스의 격을 높였다로펌, 이젠 종합 컨설팅사로>(421일 최진석 기자)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가 크다며 다양한 기업규제 법령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가 징역까지 살 수 있고 법인 벌금,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작업 중지 등과 같은 조치를 받기업경영에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기업들의 로펌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산업재해 책임을 피할 방법을 자문해주는 법무법인을 홍보해준 것과 다를 바 없는 기사입니다. 이번 기획 지면에는 중대재해처벌법 기업 자문을 한다는 법무법인 광고가 모두 11차례나 실렸습니다.

 

기업만 대변하는 언론, 산재 없는 대한민국 가능할까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에서 벌어진 산업재해 사망사고 보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보수언론 및 경제지 보도는 대한민국이 왜 산업재해 공화국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할 언론 중 일부는 수년간 반복되고 있는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무관심하거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을 철저히 기업 입장에서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하다 죽지 않는 노동환경을 만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기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있어야 하고, 일하다 죽지 않는 안전한 노동환경이 만들어져야 노동자와 기업이 상생할 수 있습니다. 산업재해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에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할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입니다.

 

산업재해는 정치성향, 진영논리와 무관한 일하다 죽지 않을 노동자의 기본권문제입니다. 기득권 시각, 기업의 시각만 대변하는 언론보도가 달라지 않는다면 산업재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언론은 산업재해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기업 책임을 묻는 게 우선입니다.

 

모니터 대상 : 202158~10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빅카인즈에서 현대중공업”, “현대제철검색 후 사망키워드 일치 검색으로 나온 결과 중 관련 보도/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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