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우울증, ‘숲’이 잡는다
동·식물 멸종 원인 1위는 '외래종 침입'
2015~2016년 엘니뇨는 전염병 창궐도 낳았다
'공포 조장' 미세먼지 프레임, 통째로 뒤집어야 오마이뉴스
"미세먼지 그래픽에 농락당한 대한민국, 모두 속았다"
미세먼지=중국"은 틀렸다, 환경부는 왜 국민을 속이나
미세먼지는 정직하다
맹독성 비소 흡수하는 고사리, 그 식물 먹는 애벌레
시애틀 범고래를 보고 제돌이를 생각하다
국경 넘은 미세먼지 갈등, 유럽과 미국은 어떻게 풀었나
환경과 맞바꾼 편리…그르노블의 ‘녹색 독재’는 성공할까
지구 온도 4도 오르면 인천·김해국제공항 모두 잠긴다
중앙정부-서울시 알력에 도시공원 83% '풍전등화'
‘중국판 새만금’에 먹이 사라진 도요가 살아남는 법
서울, 경기 국내 전력소비량 32.4% 사용”
코끼리가 그린 코끼리
그들은 진정한 동물의 대변자였을까 -‘사랑과 혁명의 낭만주의자’ 동물해방전선,
부산을 적정도시로 <4> 도시 현실 진단- 공원
미세먼지 우울증, ‘숲’이 잡는다
도시숲, 정신건강 증진에 도움
재난 수준에 가까운 미세먼지 문제가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의 위험까지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서울대 의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세먼지에 장시간 노출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일반 집단에 비해 우울 장애 위험도가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장시간 미세먼지를 흡입하게 되면 뇌로 가는 염증 물질이 증가하여, 우울증 발생이나 자살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분석 결과다.
우울증 저감에 도시숲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산림청
이처럼 미세먼지 문제가 신체적 질환은 물론 정신적 질환으로 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이 우울증 증가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도시숲 조성 사업’을 제시하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시숲이 우울증 감소에 도움주는 것으로 밝혀져
‘도시숲(Urban Forest)’이란 도시나 마을같이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에 조성된 숲이나 공원녹지 등을 가리키는 용어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로수나 공원의 나무들도 일종의 도시숲이라 할 수 있다.
도시에 숲이 우거져 있고 나무가 울창하게 심겨 있을 때 우울했던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사례는 많지 않았는데, 최근 국내 연구진의 조사 결과가 이런 현상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도시숲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국내 성인 6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도시숲과 ‘우울증 질환(depressive symptoms)’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각 개인의 성별과 교육수준, 그리고 직업 및 소득수준 등을 고려하여 우울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파악했다. 이어서 ‘우울증의 척도(Center for Epidemiological Studies Depression Scale)’를 항목별로 평가하여 총점이 16점 이상인 경우 우울증상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도시숲이 적은 곳과 많은 곳 간의 우울증상 상대위험도 비교 ⓒ 국립산림과학원
조사 결과, 도시숲이 가장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의 우울증상 위험도가 도시숲이 가장 적은 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평균 18.7%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숲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이번 연구 결과는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저감하는 도시숲이 국민 정신건강 증진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도시숲에 머무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추정하며 “도시숲 조성이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저감 전략의 하나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라고 밝혔다.
정신건강 증진 외에도 미세먼지 저감효과 확실
도시숲이 미세먼지를 얼마나 많이 저감시키기에 이처럼 우울증까지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최근 미국과 이탈리아의 공동 연구진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뉴욕주립대학과 이탈리아 파르테노페대학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5개 대륙에서 인구 1000만명이 넘는 10개 거대도시를 선정하여 현재의 녹지 면적과 잠재적으로 녹지가 될 수 있는 면적,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추산했다.
그 결과, 도시숲이 감당하는 사회적 비용은 연간 5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해당 비용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기능은 대기 오염물질을 줄이는 것으로서, 약 4억8000만 달러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 홍수방지 기능 1100만 달러와 난방 및 냉방 에너지 저감 기능의 50만 달러, 그리고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저감 기능으로 8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특히 도시숲 기능 가운데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미세먼지 저감 기능’이라고 밝혔다. 도시숲이 미세먼지 1톤을 저감시킬 때 도시숲이 제공하는 사회적 비용은 약 26만 달러인 것으로 추산됐는데, 이는 도시숲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 미세먼지를 줄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연구에서도 도시숲이 미세먼지 저감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도시숲의 미세먼지 농도는 도심에 비해 25.6%, 초미세먼지는 40.9% 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홍릉숲의 경계부와 내부, 그리고 중심부를 측정한 결과와 숲에서 2㎞ 떨어진 도심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를 비교한 결과다.
미세먼지 감소가 각종 질환 증상에 미치는 영향 ⓒ 충남연구원
다음은 이번 연구의 실무를 담당한 국립산림과학원 도시숲연구센터의 박현지 연구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이번 연구의 의미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 달라
이번 연구는 국내에서 도시숲의 미세먼지와 폭염 완화 등 환경개선기능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신건강에 유익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다. 따라서 도시숲이 지역주민의 걷기 및 운동을 유도하고,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여 사회적 교류를 증대시킴으로써 거주민들의 정신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도시숲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입증되었지만, 아직 메커니즘은 규명되지 않았다. 후속연구를 통해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궁금하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일단 인자(因子)가 확인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 기관이 바로 그 같은 일을 하는 곳이므로 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김준래 객원기자 ScienceTimes
동·식물 멸종 원인 1위는 '외래종 침입'
사례 953건 중 300건이 외래종 영향
UCL 연구팀 ”생물학적 안전조치 필요“
1500~1900년 사이 외래종 수가 급수적으로 늘어났다.(사진=UCL 대학 홈페이지)
외래종의 침입이 많은 생물 멸종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국제학술지 '생태환경개척지저널‘은 1500~2005년 사이 멸종한 생물 중 16%가 외래종 때문이라는 영국 연구팀의 연구 내용을 최근 게재했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953건의 전 세계적 멸종 사례 중 약 300건이 외래종 때문에 발생했다. 300건 중 126건(42%)은 전적으로 외래종 탓이었다. 이중 동물은 261종(33.4%), 식물은 153종(25.5%)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2017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레드리스트를 참고했다.
반면, 토착종으로 인한 멸종 사례는 현저히 낮았다. 외래종 때문에 발생한 멸종이 토착종에 의한 것보다 12배 이상 많았다. 토착종은 동물 종 멸종의 약 2.7%, 식물의 경우엔 약 4.6%의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드러났다.
칼리지런던대(UCL) 생물과학 교수이자 이번 연구를 이끈 팀 블랙번은 "우리의 연구는 생물의 지리학적 기원이 멸종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연구를 통해 외래종의 침입이 토착종의 멸종을 초래한다는 점은 밝혀냈지만, 어떤 경우에도 토착종이 다른 생물 종의 멸종 원인이라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IUCN 레드리스트엔 외래종, 토착종, 사냥 및 수확과 같은 생물자원 이용, 농업 등 12가지의 광범위한 멸종 원인이 명시돼 있다. 이처럼 여러 멸종 원인 중 '생물자원 이용'이 2위를, '외래종'이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섬 지역에서는 곰쥐, 시궁쥐, 폴리네시아쥐 및 야생 고양이와 같은 포유류 포식자가 최악의 가해자로 꼽혔다.
외래종 유입에 대해선 고양이와 여우 등 의도적으로 도입된 외래종도 있지만, 보트에 숨어 있던 일부 외래종이 침입한 경우도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식물 중에서도 조림 나무에 속하는 종이나 정원 관상용 식물 등 의도적으로 도입된 외래종이 있다. 외래종이 일단 자리를 잡아 퍼지기 시작하면, 주변 토착 동·식물에겐 위협으로 다가온다. 특히 외래 식물은 전체 면적의 80%까지 퍼져나가는 등 토착종보다 더 높은 분포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가 일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멸종에 대한 외래종의 영향이 실제로 더 클 수 있다"면서 "더 이상의 외래종 침입을 막으려면, 외래종 통제 혹은 박멸 등 강력한 생물학적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블랙번 교수는 ”몇몇 종은 기원을 알 수 없어 토착종으로 분류했지만, 사실 외래종에 더 가깝다“면서 ”이 때문에 우리의 연구결과는 외래종을 멸종에 연루시키는 범위에 대해 다소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에 포함하지 않은 멸종 사례가 더 있을 수 있고, 많은 지역에 대한 연구도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roma2017@greenpost.kr
2015~2016년 엘니뇨는 전염병 창궐도 낳았다
역대 3위권 엘니뇨로 강수량·온도 상승
미국 남서부 페스트·한타바이러스 증가
탄자니아 콜레라·브라질 뎅기열 창궐해
“계절 전망에 맞춘 예방 중요성 역설”
2015~2016년 엘니뇨는 세계적으로 풍토전염병 창궐을 촉발시키는 기후 조건을 만든 것으로 분석됐다. 주요 기상 변화인 엘니뇨가 공중 보건에 끼친 영향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진단하기는 처음이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연구팀은 2015~2016년 엘리뇨가 세계적으로 전염병 발병을 2.5~28% 촉진시켰다는 사실을 밝혀낸 논문을 ‘네이처’가 발행하는 온라인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신판에 게재했다.
역대 3위권으로 강력했던 2015~2016년 엘니뇨는 세계 곳곳에 기상 이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지역 풍토전염병의 창궐을 낳았다고 미국 나사 연구팀이 밝혔다. 미국 나사 제공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에서 해수온이 평상시보다 높아지는 기상 패턴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으로, 먼거리의 날씨 변화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친다. 엘니뇨는 치쿤구니아, 한타바이러스, 리프트밸리열, 콜레라, 페스트, 지카 등 전염병 발병이나 확산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2015~2016년 엘니뇨로 인한 강수량과 지표면 온도, 초목의 변화가 질병의 전파에 알맞는 조건들을 만들어 냈고, 이로 말미암아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에서 페스트와 한타바이러스, 탄자니아에서 콜레라, 브라질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뎅기열이 많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논문 제1저자인 나사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연구원 어새프 애냠바는 “역대 3위권에 들 정도로 강력했던 2015~2016년 엘리뇨는 날씨에 영향을 끼쳤고 풍토전염병을 강화했다. 날씨 변화와 이에 따른 공중보건 기록들을 추적하기 위해 위성 자료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분석작업을 한 결과 날씨와 전염병 관계를 계량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나사 테라(Terra) 위성에 탑재한 중간해상도 분광복사기(MODIS)에서 지표면 온도와 초목 자료 등 일련의 날씨 관련 데이터들, 나사와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강수량 데이터들을 사용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의 월별 질환 발병 추이를 보면, 2015년에 페스트 발병률이 가장 높았고 2016년에는 한타바이러스 발병률이 가장 높았다. 연구팀은 두 치명적인 질병의 발병이 늘어난 것은 엘니뇨로 인한 미국 남서부의 강수량 증가와 온도 상승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날씨 변화가 초목의 성장을 촉진해 한타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쥐 등 설치류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설치류가 번성함에 따라 인간과 접촉이 증가하고 주로 오염된 배설물이나 오줌을 통해 치명적인 질병이 옮았다. 또 설치류가 확산함에 따라 페스트를 옮기는 벼룩들도 늘어났다.
케냐 나이로비 인근 농장에서 2016년 1월 채집한 리프트밸리열 바이러스 매개 모기인 아데스 매킨토시(왼쪽, a). 평년보다 강수량이 급증했지만 ‘계절 전망’에 따라 예방 접종을 받은 양들이 건강하게 풀을 먹고 있다(가운데, b). 2007년 1월에도 같은 상황이었지만 ‘계절 전망’도, 그에 따른 예방조처도 없어 양의 80% 이상이 폐사했다(오른쪽, c).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는 2015년과 2016년에 콜레라 발병 건수가 2000~2017년 18년 동안 각각 2번째와 세번째로 많았다. 콜레라는 배설물로 오염된 물과 음식을 통해 전파되는 소장의 치명적인 세균감염병이다. 엘니뇨 기간 동아프리카에서 늘어난 강수로 하수가 지역 상수원을 오염시키고 정수되지 않은 식수가 공급되는 결과를 낳았다. 애냠바는 “콜레라는 단기간에 방역되지 않는다. 콜레라가 2015~2016년에 급증했지만 발병 추세가 2017년과 2018년까지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브라질과 동남아시아에서는 엘니뇨 기간에 뎅기열이 창궐했다. 모기 매개 질병인 뎅기열은 브라질에서 2000~2017년 18년 중 2015년에 가장 많은 뎅기열 환자가 발생했다. 인도네이사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번 엘니뇨에는 다른 엘니뇨 기간들보다는 뎅기열 발병률이 낮았지만 엘니뇨-라니냐 중립 기간에 비해서는 높았다. 두 지역에서는 엘니뇨로 평상시보다 높은 지표면 온도가 유지돼 서식지를 건조하게 했고, 이로 인해 모기들이 산란하는 데 필요한 개방된 수원이 있는 도시의 인구 밀집 지역으로 몰려들게 했다. 또한 공기가 따뜻해짐에 따라 모기들이 쉽게 허기가 지고 더 빠른 시간에 성적 성숙에 이르러 사람들이 모기한테 물리는 횟수가 많아졌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애냠바는 “엘니뇨와 전염병 발병의 밀접한 관계는 기존 ‘계절 전망’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냠바는 미국 국방부 지원 아래 20년 동안 이 분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전염병이 발병한 국가들은 유엔의 세계보건기구(WHO)와 식량농업기구(FAO)와 함께 이 계절 전망을 통해 질병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 수단을 가동할 수 있다. 이 전망을 근거로 미 국방부는 사전 파견계획을 수립하고 농무부는 수입 농축산물의 안전성 검토를 위한 대책을 세운다.
논문 공저자인 케네스 린시컴 미 농무부 곤충학연구소 소장은 “엘니뇨와 이번 연구에서 언급된 주요 질병들의 연계에 대한 분석은 질병 관리와 예방에 중요하다. 또한 질병의 세계적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전망은 2016년에 동아프리카에서 리프트밸리열 발병을 막는 데 쓰였다. 가축에게 예방접종을 함으로써 수천명의 발병을 예방했고, 수천마리의 가축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공저자인 뉴욕시의 공중보건 및 환경 비영리단체 시민환경연맹(EcoHealth Alliance) 부회장 윌리엄 카레시는 “인간과 가축에 대한 예방접종, 페스트 방역계획, 유휴수 제거 등 각 국가가 (엘니뇨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들은 많다. 하지만 여러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농업국가들에는 ‘기후-날씨 전망’이 새로운 낯선 수단이어서 이런 실천 방안들이 좀더 원활하게 활용되려면 시간과 세밀한 자료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냠바에 따르면 계절 전망의 가장 큰 잇점은 시간이다. 그는 “많은 질병, 특히 모기 매개 전염병은 날씨 변화에 따라 산란에 2~3개월이 필요하다. 계절 전망은 그래서 효과적이다. 매월 자료가 보완된다는 것은 지역별로 조건에 맞춰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고 말 그대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생명을 구하는 원천이 된다”고 말했다. ♣H6s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공포 조장' 미세먼지 프레임, 통째로 뒤집어야 오마이뉴스
[미세먼지 오해와 진실 ③] 사실이 아니라 보도를 보다가 깜짝 놀란다
뉴스를 보다가 놀랄 때가 있다. 지난 2014년 2월 27일 JTBC가 보도한 내용이 그랬다.
"요즘 서울에서 딱 1시간만 돌아다니면서 미세먼지를 마시면 디젤차 매연을 3시간 40분 동안 흡입하는 것과 똑같다는 연구결과입니다."
연구결과가 충격이어서가 아니었다. 황당한 내용이 방송에서 사실처럼 전파를 타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론 뉴스도 거짓말을 한다. 왜곡된 사실을 퍼트린다. 실수일 때도 있고,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건 잠깐만 생각해도 사실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날 보도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오늘의 숫자' 코너에 '3시간 40분'이란 숫자가 등장한다. 이틀 전(2014년 2월 25일),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PM10 163㎍/㎥이었는데, 이는 60㎡(약 18평)의 밀폐된 공간에서 배기량 2000cc 디젤차 매연을 3시간 40분 동안 마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강연할 때마다 물어본다. 밀폐된 공간에서 디젤차 매연을 3시간 40분 마시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청중은 "죽어요"라고 답한다. 맞다. 밀폐된 공간에서 중형 디젤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를 3시간 40분 마시면 의학적 지식을 논할 필요조차 없이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누구나 생각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산소 부족이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질식할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오염이 아무리 심해도 그렇지 1시간 산책했다고 사망할 수준이라는 주장이 사실일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내용이 의심의 여지도 없는 사실처럼 방송됐을까? 보도 내용은 이탈리아 암센터의 연구결과를 인용한 것이라 했다. 진짜 그런 내용인지 뜯어보자.
잘못된 뉴스의 탄생
인용된 연구는 2004년 'Tobacco Control'이란 학술지에 보고된 논문이다. 연구 제목은 '담배와 디젤차 배기가스로부터의 입자상 물질 비교: 교육적인 관점(Particulate matter from tobacco versus diesel car exhaust: an educational perspective)'이다. 분류가 'Brief Report'라고 표시돼 있는데, 이것은 비교적 간단한 실험을 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실험이 진행된 장소는 작은 환기구가 여섯 개가 있는 60㎥ 면적의 개인 차고였다. JTBC 보도 내용과는 달리 밀폐된 공간이 아니고, 어느 정도는 공기 순환이 되는 장소였다. 이탈리아는 개인 차고의 경우 공기 교환을 위해 환기구를 설치하도록 법으로 제정해놓고 있다.
실험에 사용한 디젤차는 2002년형 2000cc 포드 몬데오였다. 이 자동차의 연료는 실험 목적에 맞춰 미세먼지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품질 좋은 바이오디젤(콩기름 등 식물성 기름을 주성분으로 하는 저공해 연료)을 썼다. 미세먼지 농도를 짧은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휴대용 간이 측정기를 사용했다.
실험 전 차고 안의 미세먼지 농도는 PM10 기준으로 15㎍/㎥이었다. 30분간 엔진을 공회전시키면서 PM10의 변화를 살펴봤더니 오염도가 36㎍/㎥로 2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PM 2.5의 측정값은 28㎍/㎥이었다.
본격적인 실험으로 담배연기로 인한 미세먼지 오염도를 확인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미세먼지 농도는 급증해서 최고 측정값이 PM10 기준으로 약 700㎍/㎥나 됐다. 평균 오염도는 343㎍/㎥이었고, PM 2.5로는 319㎍/㎥이었다.
비록 바이오디젤을 사용한 차이기는 하지만, 담배 연기가 디젤차 배기가스보다 미세먼지 오염도가 약 10배나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연구는 담배의 유해성을 청소년들에게 확인시켜 주는 게 목적이었다. 일반 공기와 비교하려는 연구가 아니었다. 담배는 직접 흡연은 말할 것도 없고, 간접흡연으로도 실내 환경과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실험이었다.
결론적으로 JTBC 뉴스가 보도한 내용은 인용 논문의 진짜 연구 목적, 시험에 사용한 자동차와 연료, 실험 장소 등이 모두 가려진 채 보도됐다. 미세먼지 농도도 간이 측정 결과여서 담배연기와 디젤차를 비교하는 용도로 사용해야지, 일반 대기 환경과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실험 결과 수치까지 바뀌면서 사실이 왜곡됐다. 이 실험에서 담배로 인한 미세먼지 오염도 343㎍/㎥는 2014년 2월 25일 서울시 미세먼지 오염도(163㎍/㎥)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그런데 보도 내용에서는 오히려 서울시 공기 1시간 마시는 것이 담배 연기를 1시간 24분 간접 흡연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즉 1.4배 나쁜 것으로 높고 낮음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았다.
왜 이런 황당한 오류가 발생했을까?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약간 복잡한 계산 과정을 추적해 보자.
실험 결과 해석이 원래 내용과 정반대로 뒤집어진 이유는 담배로 인한 오염 실험 결과 343㎍/㎥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3분의 1을 줄인 114㎍/㎥로 바꿔치기 해서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 공기가 담배 연기보다 1.4배 나쁜 것으로 됐다. (163/114=1.4).
이런 잘못을 고의적으로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 그 원인은 뭘까? 자동차는 30분 공회전시키고 담배는 3개비를 차례차례 피워서 30분 동안 연기를 발생시키고 오염도를 측정한 실험을, 담배를 한 번에 3개비를 피운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3으로 나눈 것(343/3=114)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런 황당한 실수와 논문의 원래 취지나 실험 내용에 대한 왜곡이 겹쳐져 서울시 미세먼지 오염이 담배 연기는 물론 디젤차 배기가스 마시는 것보다 훨씬 나쁘다는 가짜 뉴스가 탄생했다. 비전문가들이 국제 논문을 들여다보면서 해석에 실수가 발생할 수는 있다. 그래서 전문가 자문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일부 언론인이 스스로 모든 분야 전문가 역할까지 자처하면서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다.
미세먼지로 조기 사망자가 매년 1만 명 넘는다?
더 큰 진짜 문제는 언론의 무비판적인 베껴 쓰기, 기초적 사실 확인도 하지 않는 소위 전문가들이다. 덕분에 이탈리아의 금연 교육용 논문은 대한민국의 미세먼지 상황을 과장하기 위해 왜곡된 내용으로 몇 년 동안 잘못 인용됐다.
이 가짜 뉴스는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을 것이다. 이후로도 정부나 언론,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국민들의 과도한 공포를 진정시키려고 하기는커녕, 아무리 낮은 농도의 미세먼지라도 마시면 큰일이 나는 듯 불 난데 기름 붓듯 겁주는 발표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의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매년 만 명이 넘는다는 정부의 발표나 언론 보도 역시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공포가 과도한 것이 아니라 사실임을 확신하게 만들었을 듯싶다. 바깥 공기가 마시면 죽을 정도이고,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가 마치 1년에 만 명이나 되는 듯 정부와 학자, 언론이 함께 주장하는데, 도대체 누가 마스크로 숨쉬기 힘든 것을 참지 못할 것이며, 공기청정기 구입할 돈을 아낄 것인가.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는 사망진단서에 사인으로 기록되거나 개별적으로 진단이 내려졌다는 것이 아니고, 미세먼지 오염도와 질병별 사망률 등 몇 개의 변수를 이용해 통계적 계산 방법으로 추정한 수치다. 따라서 진짜 사망자 숫자로 착각하거나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사용하면 오해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수치는 미세먼지 저감의 보건, 경제, 사회적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미세먼지 오염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피해가 교통사고나 다른 경제적인 요소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정책 결정자나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지표다. 의미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 없이 그저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1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까, 국민들은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 미세먼지에 대해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치는 과거 학자들이 추정한 것들이 들쭉날쭉해서 많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는데, 2018년에 세계보건기구(WHO)가 183개국의 2016년의 추정값을 정리해 발표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비교가 가능해졌다.
중국이 약 115만 명으로 1위였으며, 인도가 약 109만 명으로 2위였다. 우리나라는 1만5825명으로 세계에서 33번째로 높았다. 이 수치는 최근 우리나라 환경부가 추계한 것보다 약 4천여 명이 많은 값이다.
미세먼지 오염이 높은 국가들만이 아니라 매우 낮은 국가들인 미국이 약 7만7550명, 일본은 약 5만4780명으로 우리나라보다 무려 5배와 3.5배나 높았다. 그뿐이 아니다. 역시 미세먼지 농도가 우리보다 훨씬 낮은 유럽 국가들인 독일은 3만7085명, 이탈리아는 2만8924명, 영국은 2만1135명, 프랑스는 1만6294명으로 모두 우리나라보다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숫자가 훨씬 많다. 중국과 우리나라만 조기 사망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 있는 통계다.
원래 이런 통계는 단순 숫자를 비교하면 안 되고, 인구수와 연령구조 등을 보정해서 비교해야만 한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18명으로 세계 순위는 27위다. 일본의 12명보다는 1.5배, 미국의 13명보다는 약 1.4배 높다. 영국보다는 약 1.3배, 독일보다는 약 1.1배 높은 수준이다.
ⓒ 세계보건기구(WHO) 2018/ 장재연 정리
이처럼 우리나라의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개발도상국들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 입장에서는 부러운 수준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전 세계 국가 중에서는 무척 낮은 편이다. 매일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심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와는 너무나 다른 결과다.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 피해 수치는 미세먼지 오염도만이 아니라 미세먼지로 인해 악화되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나 유병률 등을 함께 고려한 계산식에 의해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노인 인구 비중이 높거나, 해당 질병 사망률이나 유병률이 높은 국가 등은 미세먼지 오염이 낮더라도 건강 피해가 크게 산출된다.
이와 같은 조기 사망자의 정확한 의미와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 없이 그냥 1만 명이 넘는다는 숫자만 발표하면, 대책 없이 국민들의 공포심만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언론과 전문가와 정부는
▲ 마스크 쓴 나경원 "미세먼지 막아내겠다"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은 지난 1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책위-안전안심365특별위원회 연석회의를 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의원들과 함께 마스크를 쓴 채 "미세먼지 막아내겠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해도 정보의 일부만 제공해서 국민에게 겁을 주고, 그것을 통해 뭔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면 그 목적이 아무리 정당해도 국민을 개돼지처럼 우습게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 국민에게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를 준 결과가 실제로 미세먼지 오염도를 낮추고, 우리 사회를 저에너지 고효율 사회로 바꾸는 동력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과도한 공포는 개선하려는 의욕조차 꺾기 마련이다. 고장 난 배는 고쳐서 타고 가자는 것이 설득이 된다. 그러나 곧 배가 침몰한다고 생각하면, 모두 탈출하려고 하기 마련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건강한 사람도 금방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 죽을 수 있다는 식으로 겁을 주는 방식으로는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언론은 의심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갖춰 보도해야 하는데, 특히 미세먼지와 관련해서 우리 언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몇 년동안 남 탓과 공포 조장에 앞장선 전문가들 주장에 포획되어서, 가짜 뉴스와 정보를 퍼뜨리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선 미세먼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제대로 설명부터 해야 한다. 국민을 이해시키고 협조를 구하면서 법규를 강화하고 꾸준하게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환경 정책을 수행하면, 실제 대기의 질은 점차 개선된다. 이미 과거에 미세먼지 오염이 극심했던 선진국에서 실행한 방법이다. 왕도가 따로 없다.
물론 이런 과정이 쉽지는 않을 수 있다. 가뜩이나 가짜 정보로 혼란을 느끼고 있는 국민 설득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까지 하거나 정보를 토막만 제공하면서 시민들의 공포심을 키운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고 사회적 혼란만 불러온다.
우리나라는 미세먼지를 줄여야 한다.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으나 꼭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언론이나 일부 학자들이 쏟아내는 말처럼 공포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마스크 회사와 공기청정기 회사의 영업사원들이 아니라면, 마치 사람들이 곧 죽기라도 할 듯한 협박은 이제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미세먼지 인식,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 미세먼지에 관한 수많은 가짜 뉴스를 생산하거나 전파한 언론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 믿는다. / 장재연
"미세먼지 그래픽에 농락당한 대한민국, 모두 속았다"
[미세먼지 오해와 진실-최종회] 장재연 환경연합 대표 인터뷰 "내가 학자적 양심 건 이유"
그는 학자적 양심을 걸었다. 미세먼지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데 이름을 내걸었다. 환경부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미세먼지=중국'이란 수식이 틀렸다고 했다. 정부를 향해선 국민을 속이지 말라고 했다. 언론을 향해서도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렸다.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를 멈추라고 했다. 불편한 진실은 외면한 채 마스크 착용을 부추켜선 안 된다고 했다.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대표의 이야기다.
기자는 사실을 말하고, 과학은 연구로 말한다. 지난 30년, 장 대표는 미세먼지를 과학으로 접근했다. 도시를 희뿌옇게 뒤덮은 먼지의 정체를 추적했다. 이렇게 미세먼지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글로 옮겼다. 기획 '미세먼지 오해와 진실'이 그 결과다. 2월 말 서울 서초구에 있는 재단법인 '숲과 나무' 사무실에서 장 대표를 만났다. 미세먼지가 사흘째 한반도를 뒤덮은 날이었다. 이날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미세먼지 특별법)이 제정된 후 처음 비상대책이 시행됐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비상저감조치에도 숨막히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중국발 미세먼지를 탓하는 목소리만 커져갔다. 이날 인터뷰는 장 대표에게 '미세먼지는 중국 탓'이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인터뷰는 2월 만남 이후 수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완성됐다.
"정부는 중국 미세먼지 영향이 80%라고 하지만..."
- "미세먼지=중국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중국발 미세먼지 절대 영향론이다. 우리 정부는 중국 영향이 80%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책을 세워도 소용없다. 중국 영향이 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국내 영향이 20%밖에 안 되는데 온 국민이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도 쓸데없이 대책을 만드느라 힘을 빼고 있는 게 아닌가.
인터넷을 보면, 어제 서풍이 불어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넘어와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하루 만에 중국에 있는 미세먼지가 500킬로미터를 날아왔다는 것이다. 동풍이 불어서 하늘이 깨끗해졌다는 말도 앞뒤가 안 맞는다. 오늘 동풍이 불어 서해로 이동한 미세먼지가 내일 서풍이 불어 다시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해보자. 그럼 서풍이 불어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이 크다는 논리가 무너진다.
동북아 공기에는 우리나라 미세먼지와 중국발 미세먼지가 섞여 있다. 이 중 중국발 미세먼지가 많다고 하면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발 미세먼지가 마치 순간 이동한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 이동해 시시각각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자연법칙에 어긋난다.
중국 탓만 하니 국민들이 미세먼지 공포에 휩싸인다. 아무리 위험한 일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면 공포는 줄어든다. 정부가 중국 미세먼지 절대 영향론만 주장하니 국민들이 공포에 떠는 거다. 중국 탓만 하면서 마스크 착용하라고 말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진짜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내놔야 한다."
- 많은 사람들이 미세먼지 이동을 보여준다는 '어스널스쿨(Earth.nullschool.net)' 사이트를 본다. 언론에도 많이 인용됐다. 여기에서 중국발 영향을 확인한다고 하는데.
"그 사이트는 애초에 바람을 예측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운영자가 한 말이다. 일반인들이 보기 편하게 바람의 흐름을 컴퓨터 그래픽화 한 것이다. 하지만 아주 초보적인 수준으로 만들었다. 기초적인 자료를 활용하고 바람 방향이나 세기를 단순화했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그냥 재미 삼아 봐야 하는 사이트다.
이런데도 많은 국민들이 이 사이트를 믿는다. 미세먼지 이동을 실시간 보여주는 인공위성 영상으로 여기는 거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어스널스쿨은 애초 그래픽 작업을 할 때, 미세먼지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았다. 중국의 일산화탄소 데이터만 입력했을 뿐이다. 이건 운영자가 직접 MBC < PD수첩 >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운영자도 어스널스쿨에 나오는 그래픽을 믿지 말라고 했다."
MBC < PD수첩 >은 2017년 5월 23일 '미세먼지, 가면을 벗기다' 편에서 어스널스쿨 사이트의 운영자 카메론 베카리오(Cameron Beccario)를 인터뷰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카메론 베카리오는 어스널스쿨 사이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웃긴 게 뭐냐면 이 영상은 먼지가 아니에요.
여기에 일산화탄소라고 적혀 있어요.
이 정보를 기상예보처럼 사용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아요.
이 자료는 실험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어스널스쿨(Earth.nullschool.net) 사이트를 보여주며 “사이트 운영자도 대한민국의 미세먼지를 보여주는 그래픽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미세먼지 이동을 나타낸 실시간 인공위성 영상처럼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유성호
"어스널스쿨, 텐키.. 미세먼지 사이트 아니다"
- 일본에서 만든 미세먼지 사이트 텐키도 있다.
"그건 일본의 기상협회에서 만든 것이다. 정부 기관이 아니라 사설 기관이다. 어스널스쿨과 마찬가지로 바람을 예측한 컴퓨터 그래픽을 보여준다. 미세먼지 농도의 높낮이를 말하지만 얼마나 높고 낮은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게다가 이 사이트에는 한국과 일본의 오염물질 배출량 자료가 입력돼 있지 않다.
미세먼지 인공위성 영상이라는 건 믿지 말라. 미세먼지는 인공위성으로 촬영하기도 불가능하고, 한다고 해도 컴퓨터 그래픽에 담지는 못한다. 지표면에 있는 미세먼지를 인공위성으로 촬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미세먼지에 관련한 앱(APP)과 사이트가 다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이다.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 바람 방향을 보고 미세먼지 이동을 예측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스널스쿨을 예로 보자. 바람이 직선으로 표시돼 있다. 바람은 이처럼 예쁘게 한 방향으로 불지 않는다.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부딪혀 방향을 튼다. 산이 있으면, 돌아서 분다. 바람의 방향은 좁은 공간에서도 여러 갈래다. 그래서 기상청은 '동풍'과 '서풍'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최대 풍속일 때, 바람이 어느 방향이라고만 한다. 바람은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뀐다. 이걸 보고 미세먼지 이동을 확인한다니 황당하다.
미세먼지 배출량과 기상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때문에 중국 미세먼지가 우리나라 쪽으로 어떻게 확산하는지 추정하기 어렵다. 미세먼지는 공기 중의 다른 물질들과 반응해 생성되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 간 영향을 알려면 평균 배출량이나 기상상태 등을 고려해야 하고, 장기간 연구해야 한다. 이런데도 국립환경과학원과 환경부는 하루하루 중국 미세먼지가 한국에 몇 퍼센트 영향을 끼쳤는지 계산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80% 영향'이 좋은 예다.
오늘 발생한 미세먼지가 '중국산인지 한국산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있다면, 학술지에 게재해야 한다. 노벨 물리학상도 탈 수 있다. 국제 사회에 이런 프로그램을 판매하면 세계 모든 나라와 지자체가 서로 사려고 난리일 것이다. 상품화해 돈도 벌고, 노벨상도 타면서 국위 선양 할 수 있는 일을 왜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안 하고 있을까. 못하는 것이다."
"내가 JTBC <뉴스룸>과 논쟁한 이유"
- 미세먼지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어떤가?
"수많은 언론이 '어스널스쿨' 등의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미세먼지 보도를 한다. 이게 문제다. 언론의 생명은 공신력이다. 운영자도 믿지 말라고 한 그래픽을 인용 보도해선 안 된다. 이러니 그 사이트를 보고 국민들이 오해하는 것이다. '미세먼지=중국'이란 수식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지난 2013년, 환경부가 근거도 없이 우리나라 미세먼지가 중국발이라고 했다. 언론이 받아쓰지 않고 검증했다면, 중국발 미세먼지 논란은 없었을 거다. 언론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정부가 주장하고 전문가도 똑같은 소리를 하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이 조금만 세밀히 점검하고 다른 목소리를 취재했다면,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거다."
- 미세먼지 보도와 관련해 JTBC <뉴스룸>과 논쟁도 했다.
"미세먼지는 과학의 영역인데,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다. 해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지난해 3월 26일이다. <뉴스룸>에서 미세먼지 특집 기획을 보도했다. 미세먼지 오염이 감소했으나 PM2.5(초미세먼지)는 증가했다는 것이다. 1990년 한국의 PM2.5가 연평균 26(㎍/㎥)으로 OECD 7위였는데, 2015년 29(㎍/㎥)로 증가했다고 했다.
먼저,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해는 1996년이다. 이것부터 틀렸다. 또, 우리나라 환경부가 공식적으로 PM.25를 측정한 것은 2015년부터다. 서울시가 자체측정을 시작한 것도 2006년부터다. 1990년 오염도를 측정한 곳은 없다. 자료출처를 밝히고 있지 않아 실제로 PM2.5를 측정한 결과인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뉴스룸>에 따르면, 1990년뿐만 아니라 1995년, 2000년, 2005년의 PM2.5 농도가 모두 26(㎍/㎥)으로 동일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오염도가 같게 나온 것이다.
또한, <뉴스룸>은 PM10(미세먼지) 내 PM2.5(초미세먼지) 비율이 지난 2015년 이후 3년간 48%에서 75%로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세먼지 전체 농도는 줄어들고 있지만, 더 작아지고 독해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 비율을 자세히 보면, 3월 26일이라는 특정한 날의 하루 값을 비교한 것이다. 단, 3일의 비율을 갖고 미세먼지가 더욱더 독해졌다는 주장한 거다. 대기오염은 장기적인 변화를 측정해야 한다. 어느 특정일의 수치를 비교해선 안 된다. 학술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언론인들이 아무리 자기 분야에 뛰어나다고 해도 과학을 다 이해하기 어렵다. 관련 분야에서 10년, 20년 연구를 해도 모르는 게 많다. 몇 시간, 며칠 만에 모든 걸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결정적인 용어를 써가며 보도해선 안 되는 것이다. 미세먼지와 관련한 <뉴스룸> 보도가 그랬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문제를 무책임하게 보도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미세먼지 비상대책은 효과 없다... '미세먼지 30% 저감' 하려면"
- 정부의 미세먼지 비상대책은 어떤가?
"미세먼지가 고농도일 때 비상저감조치 해봐야 소용없다는 게 입증됐다. 차량 2부제 등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지금은 밀폐된 집안에서 창문을 잠그고 고기를 굽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기가 집 안에 가득한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건, 기상 상황이 확 바뀌어야 한다. 바람이 불어야 수치가 떨어진다. 물을 뿌리는 조치도 소용없다. 공사장이나 도로에 있는 PM10(미세먼지)의 경우, 입자가 크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PM2.5(초미세먼지)는 다르다. 효과를 보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특별한 날에만 대책을 가동한다. 오늘 미세먼지가 높았다가 내일 낮아지면, 비상저감조치는 중단된다. 하루만 지나도 효과가 없는 '말짱 도루묵' 같은 대책이다. 근본적으로 미세먼지를 줄이는 평상시 대책이 필요하다."
2016년 5월 25일부터 개인 블로그에 미세먼지와 관련된 글을 쓰고, <오마이뉴스>와도 미세먼지 기획을 진행했다.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나?
- "미세먼지와 관련한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이나 환경운동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예상과 달리 반응이 뜨거웠다. 예로 '지금이 미세먼지 오염도가 최악인 것은 아니다'라는 글을 올리자 이걸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정부나 학계에 과학적인 자료가 많이 나와 있는 상태라 논란이 될지 몰랐다. 그런데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중국 탓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썼다. 그랬더니 '중국에서 돈 받았냐' 같은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더 중요한 이야기를 못 하고 있다
아직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 "우리 사회가 저에너지 고효율 시대로 가야 한다.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미세먼지 농도가 OECD 꼴찌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상위권으로 갈 수 있다. 우리 정부가 OECD 국가에서 했던 정책들을 펼친다면 말이다.
근데, 이건 정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연료 정책이나 규제만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나서서 함께 해야 한다.
가령 석탄 발전소를 국가 정책으로 줄여나갈 수는 있다. 하지만 전기 가격이 오르는 문제가 있다. 국민들의 인식과 호응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자동차 타고, 고기 구워 먹고, 난방하고, 전기를 사용하면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버려도 소각하면서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국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부분이다.
국민들이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다. 석탄 등 환경에 큰 부담이 되는 연료가 아니라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주고 공기청정기를 보급하는 데 세금을 쓸 게 아니다.
미세먼지는 우리 사회 건전성과도 연결돼 있다. 요즘 대기업은 규제가 심해 예전보다 미세먼지를 덜 발생시킨다. 하지만 영세업체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그렇다고 영세업체에 규제를 강요할 수는 없다. 정부가 미세먼지 배출 억제 시설을 설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미 성남시에서 영세기업을 대상으로 미세먼지 저감 시설비를 지원하고 있다."
- 미세먼지로 생활 방식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인가?
"어린아이는 건강하게 운동해야 한다. 생태적 감수성도 키우면서 자라야 한다. 미세먼지 탓하면서 마스크 착용시켜 숨 쉬기 어렵게 하면 안 된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꽁꽁 묶어둘 수는 없다. 건강한 아이가 미세먼지 피해도 적다. 하지만 정부와 환경부가 내놓은 미세먼지 대책은 정반대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시행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이 미세먼지를 30%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중국 탓만 할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면 된다. 국민이 협조하면, '미세먼지 30% 저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국민이 움직이면, 정치인도 따르게 돼 있다. 이러면 기업들도 나설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등한시했던 태도를 바꿔 미세먼지를 줄이는데 투자할 것이다. 지금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저효율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개인적으로 '미세먼지 오해와 진실'을 연재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이 시대 언론의 문제, 정보와 소통의 문제 등을 고민하게 됐다. 예전과 달리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직접 대면하게 된다. 그런데 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건 어려워졌을까.
그 중심에 언론이 있었다. 사실, 미세먼지에 대한 오해는 언론이 만들었고 키웠다. 그런데 이걸 바로잡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과 힘이 필요하다. 지금 미세먼지에 뒤덮인 대한민국은 아주 특별한 상황이다. 언론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고 올바르게 보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의 미래도 없다. 이걸, 많은 언론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미세먼지=중국"은 틀렸다, 환경부는 왜 국민을 속이나
[미세먼지 오해와 진실 ⑤]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오해... 올바른 환경 외교란?
▲ 초미세먼지 심각성 알리는 그린피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발생하는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초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입자가 매우 작아 호흡기는 물론이고 피부로도 침투해 호흡기 및 심장질환을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많은 시민들이 초미세먼지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날아온다고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50~70%가 국내에서 발생한다"며 "정부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의 규제를 강화하고 현재 계획중인 석탄화력발전소 증설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 유성호
'미세먼지=중국'. 국민들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수식이다. 이런 수식을 만들고 유포한 건 한국 정부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우리나라 미세먼지 대부분은 중국산'이란 입장을 초지일관 유지해 왔다. 미세먼지 고농도 오염이 발생하면 중국발 미세먼지 기여율이 80% 이상 높아진다고 주장할 정도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중국발 미세먼지 공습'이란 제목을 붙여 정부의 주장을 극적으로 표현해 보도했다. 학계나 사회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정부와 언론, 학계, 사회단체가 입을 맞춰 말하니 지난 6년 동안 '미세먼지=중국'이란 수식은 기정사실로 됐다. 국내 미세먼지를 줄이자는 글에 "중국 간첩", "중국 돈 먹었다", "매국노" 등 악플이 서슴없이 달리기도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럽의 산성비 문제나 최근 온실가스와 오존층 관련 국제 협약 등의 경험 등을 통해 대기오염물질이 이웃 국가, 나아가 지구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상식이 됐다.
중국 학자들도 인정한다. 자기 나라 미세먼지가 한국과 일본, 멀리는 미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을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물론 이 논문들이 미세먼지 영향만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향을 미친다'는 말과 '절대적인 영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인터넷상에는 미세먼지 오염의 원인을 '모두 중국 탓'으로 돌리는 주장과 정보가 넘쳐난다. 엄청난 양의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를 덮치는 인공위성 사진이나 실시간 영상을 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자료, 검증되지 않은 조잡한 예상 오염도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착각한 것이다. 일부 방송국에서 이런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을 인용해 보도해서 국민들의 눈을 혹하게 하고 있으니 무리가 아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미세먼지가 수백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우리나라까지 날아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화산이 폭발하면 가까운 곳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산재 때문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지만, 멀리 떨어진 곳은 그렇지 않다. 도로 바로 옆은 매연이 심하지만 멀리 떨어질수록 덜하다. 이런 현상은 공기 중 오염물질은 멀리 갈수록 희석되기 때문이다. 굳이 과학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자연법칙이다. '미세먼지=중국'이란 수식은 이런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대기질 예측 모델링에 의존해 서해안을 날아온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에서는 똘똘 뭉쳐서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보다 무려 4배까지 많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연구 결과도 자기들끼리 주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논란이 많은 주제일수록 국제 학술지 게재 등의 방법을 통해 최소한의 신뢰성은 갖춰야 한다. 하지만 국립환경과학원은 긴 세월 동안 국민 세금을 들여 막대한 연구 개발비를 사용하고도 국제 학술지에 지금껏 관련 연구를 게재한 적이 없다. 심지어 국내 학계에 세부 정보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자신들의 모델링 결과에 자신이 있다면, 무릇 거기에 걸맞은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지,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 억지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대기질 예측 모델은 수학 방정식을 이용해서 오염물질의 공간적, 시간적 농도 변화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정식 자체는 대기 전공 대학생이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이며, 여러 가지 공유 프로그램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모델 추계라는 것이 워낙 불확실성이 크고 오차도 크다. 연구자가 임의대로 입력 변수를 취사선택하거나 변형하면 어떤 의도하는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때문에 모델에 입력하는 자료의 신뢰성이 가장 중요하다. 모델링 하는 사람들이 철칙으로 삼는 말이 있다. '쓰레기를 집어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이다.
중국발 미세먼지 기여율 모델링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자료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배출량과 세부 기상자료다.
최근에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 있다. 우리 정부가 '미세먼지=중국' 탓을 하는 모델링에 지금 사용하고 있는 중국의 미세먼지 배출량 자료는 알고 보니 2010년 자료였다. 무려 10년 전 자료를 가지고 현재의 중국발 미세먼지 영향을 모델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자료는 정확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최근 공개한 '2015년 국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미세먼지(PM10) 총 배출량은 23만 3177t으로, 1년 전인 2014년 배출량 9만 7918t보다 무려 2.3배가 높은 것으로 수정됐다.
PM2.5도 마찬가지다. 2015년 전체 배출량이 9만8806t으로 2014년 6만3286t의 1.6배였다. 1년 사이에 이렇게 배출량이 급증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 PM10(미세먼지)에 지금까지 집계에 포함되지 않던 날림 먼지(비산 먼지)와 생물 연소에서 배출되는 먼지 등이 새롭게 추가됐기 때문이다. 고기·생선구이에서 배출되는 PM2.5(초미세먼지)도 이때까지 통계에서 빠져 있었다. 그동안 국립환경과학원이 우리나라 오염물질 배출량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해 왔다는 것이다.
중국 배출량은 지금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 지난 2010년 과거자료를 사용하고, 우리나라 배출량은 절반으로 축소된 지난 2014년 자료를 입력했기에 잘못된 수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자기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조차 게재하지 못하는 약점을 감추는 방법으로 나사(NASA)와의 공동 연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다. '한미 대기질 합동 연구(KORUS-AQ 예비종합보고서)'에서 중국발 미세먼지 영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사 이후 발표된 중간보고서를 보면, 이 연구는 우리나라 미세먼지 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방안을 종합적으로 제시한 연구다. 먼저, 2차 미세먼지 생성은 지역 내 오염원이 지배적인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휘발성 유기물질(VOCs), 질소산화물, 아황산가스, 암모니아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PM2.5 감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둘째는 휘발성 유기물질이 오존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감축하면 바로 PM2.5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현재 국립환경과학원의 오염물질 배출량 통계가 과소평가된 것이며, 넷째는 충남 지역의 화력발전소 등 대규모 점오염원의 영향은 수도권 남쪽 지역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서울이 주변 지역, 아시아 대륙(중국) 또는 북반구로부터 유입되는 오염물질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매우 급격하게 바뀔 수 있어 예측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KORUS-AQ 예비종합보고서'는 국내 오염물질 관리와 감축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실행을 제안한 연구 결과이며, 모델링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연구 결과가 환경부의 설명회와 보도자료를 통해 느닷없이 모델링에 의한 중국발 미세먼지 기여도를 산출한 공동연구처럼 왜곡보도 됐다.
KORUS-AQ는 우리나라의 오염물질 영향은 '장거리 이동이 오염의 주원인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짧은 기간 중 중국으로부터의 유입으로 인해 PM2.5 오염이 극대화된 적은 있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보도자료에 우리나라 미세먼지가 '국내 52%, 중국 34% 영향'이라고만 썼다. KORUS-AQ 예비종합보고서가 모델링에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어 과학적인 데이터로 사용하기에 부족한데도 말이다. KORUS-AQ 예비종합보고서 소개에는 '그러나 한국의 대기질 문제를 모두 설명하기에는 KORUS‐AQ의 연구기간이 불충분 하였기 때문에, 과학적 측면의 가치와 해석상 한계가 동 연구에 공존한다는 것을 도입부에서 밝히는 바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걸 정부와 언론 등이 확대, 재생산해 전파하면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 미세먼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국제적으로 확증된 것처럼 부각되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황당하고 비상식적이며 비과학적인 일을 정부 기관이 해 왔다. 그리고 그 권위와 결과를 맹목적으로 믿은 언론은 비판 없이 받아쓰기만 했다. 그 결과 무능한 환경부의 정책결정자들에게 빠져나갈 구실을 마련해줬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높은 모델링 결과를 국가 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서는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지난 6년간 일어났던 미세먼지 정책의 혼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기여율 모델링을 그쪽 전문가들끼리 열심히 연구하게 하는 것까지는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정책의 보조적 수단이어야 한다. 허술한 모델링 결과에 기반을 둬서 정책을 세우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부에서는 걸핏하면 우리 정부가 중국에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며 적극적으로 항의하라는 주장을 편다. 항의의 목적은 중국의 미세먼지를 줄이라는 것일 테다. 중국은 지난 5년 짧은 기간 동안 40% 가까이 오염 물질을 줄였다. 우리나라가 항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나라 국민들을 위해서다. 중국은 미세먼지로 인해 연간 1백만 명 이상이 조기 사망하는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미세먼지를 줄인 것이다.
▲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세먼지 배출 주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계획 철회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 최윤석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국립환경과학원의 말대로 높다면, 같은 기간 동안 우리는 미세먼지 오염도가 조금이라도 줄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오염도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었다. 그러자 그동안 중국발 미세먼지 절대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풍속이 변했다는 둥 별별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설사 그들의 새로운 주장을 그대로 믿어주더라도, 중국 미세먼지를 무려 40%나 감축해도 우리나라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제기구나 학계에서는 환경오염물질의 국가 간 장거리 이동에 관한 공동연구와 협력을 권장한다. 그러나 서로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서 책임을 상대 국가에 추궁하고 소송 등의 방법으로 보상을 요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국을 비난하는 근거로 사용하라는 것도 아니다. 유럽은 각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서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교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국가 간에 소송을 내고 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다. 국가 간 환경문제는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는 인식과 합의가 국제 사회의 대세다.
지금은 깨끗한 대기질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유럽도 과거에는 지금의 중국보다 더 심한 대기오염을 겪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대기오염을 개선해 온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중국을 돕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래야 중국도 대기 오염물질 감축 사업에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간접 보상이라도 하려 할 것이다. 이러면,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날아오는 미세먼지를 줄이면서 경제적 이익도 취할 수 있다.
환경 외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근거도 부족한 자료를 들이밀며, 중국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을 늘어놓고 소송을 제기하는 게 아니다. 서풍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 미세먼지 오염에 절대적 원인이라고 고집하면, 최종적인 수혜자는 일본이 될 것이다. 일본은 중국, 북한 그리고 우리로 인해 이중 삼중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 산출 방법은 현재의 사망률에 일정 비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인 데다가 인구도 많아 사망자 숫자가 우리보다 한 해 약 3.5배나 많다. 따라서 설사 우리가 중국에 피해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여기에 보태서 일본에 줘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국가 간 소송이나 분쟁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순진하거나 무지한 것이다. 아니면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소영웅주의 행동으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다. 환경 외교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며, 국가 간에 협력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그것이 곧 환경 외교 난제를 풀어가는 가장 슬기로운 방법이다.
▲ 미세먼지 나쁨, 마스크 착용한 금연구역 단속자 고농도 미세먼지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1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금연구역 단속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날 서울시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해 2005년 12.31 이전 수도권에 등록된 총중량 2.5톤 이상 경유차 운행제한과 자동차 배출가스, 공회전 단속 및 행정, 공공기관 주차장을 전면 폐쇄했다. ⓒ 유성호
최근 우리나라와 중국은 미세먼지에 대한 본격적인 공동연구를 앞두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양국이 협력할 때다. 하지만 국립환경과학원과 환경부는 요샛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결론을 짓고 '중국발 미세먼지 영향이 고농도시 60~80%'라고 확정해 말하면서 국민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중국 정부를 향해 공동연구를 거부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중 공동연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다. 국립환경과학원과 환경부는 반성문부터 써야 한다. 미세먼지 예측 능력 제고를 외치며 예산 타령을 하고 인력이나 기구를 늘려달라고 아우성 칠 게 아니라, 그동안 '미세먼지=중국'이란 수식을 만들어 국민을 속인 잘못부터 반성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미세먼지 배출량 감축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미세먼지 특별대책에 대한 협조를 구해야 순서가 맞다.
'미세먼지는 중국탓이지만 우리나라 미세먼지를 줄이자'는 비논리적이며 정신분열적 주장은 정리할 때가 됐다. 아직 잘 모르는 '미세먼지 중국탓'은 긴 호흡으로 한중 공동 연구에 맡기고, 우선은 '우리나라 미세먼지 줄이기'에 전념해야 한다
미세먼지는 정직하다
장재연 아주대 교수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최고 한국에 깨끗한 공기는 욕심”
대책은 대중교통 이용, 노후 석탄 발전소 폐쇄 등 오염원 감소뿐
“수도권 내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노후 경유차 서울 운행 단속), 마스크 착용 등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요란한 알람과 함께 휴대전화가 떨린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을 알리는 ‘경고’다. 일곱 번째다. 우울했다. 무려 일주일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2017년 제도가 시행된 뒤 처음이다. 방송에선 한반도와 중국 대륙 동부 일부를 가득 덮고 있는 붉은 구름이 꾸물댄다.
<마스크 쓰지 말라는 ‘미세먼지 전문가’>
미세먼지 앞에 인간은 평등했다. 마치 ‘군대’ 같았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학력이 높아도 피할 수 없다. 미세먼지 섞인 공기를 조금이라도 마시지 않을 방법은 없다. 폭염이 왔을 땐, 돈이 많으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서 시원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물이 오염됐을 땐 비싼 돈 주고 빙하 녹은 물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미세먼지 없는 공기를 파는 가게는 없다.
다급해진 정부는 국민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 일부 언론은 마스크도 비싸서 못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정부가 지원하라고 압박했다.
그런데 온 사회가 미세먼지로 들썩이는 이 순간 “웬만하면 마스크를 쓰지 마라”고 하는 ‘미세먼지 전문가’가 있다.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다. 장 대표는 1985년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울시의 대기오염을 연구한 것을 계기로 미세먼지 연구에 뛰어들었다. 미세먼지 경보가 울리면 장 대표는 분주해진다. 수많은 언론이 그에게 자문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항상 논란에 휩싸인다. “한반도 미세먼지는 ‘중국의 영향’으로 근래에 ‘증가’했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명제를 부정하기 때문이다(제1007호 ‘월드컵 때 더 마셨노라’ 참조). 그는 말한다. “미세먼지는 줄었고, 중국의 영향은 크지 않으며, 마스크는 안 써도 된다”고.
<한겨레21>은 최근 ‘학자적 양심’까지 걸고 미세먼지 인식 바꾸기에 나선 장 대표를 3월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숲과나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상위권인 한국이 깨끗한 공기를 원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다”며 “국내 미세먼지 오염원을 줄이는 동시에 국제사회가 협력해서 함께 줄여나갈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영향을 강조하며 국내 미세먼지 감소 노력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분위기를 꼬집은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세계에서 12번째로 많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6번째였다.
7일 동안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계속된 건 처음이다.
-최근 10년 안에 이렇게 공기가 나빴던 적이 없었다. 지난 일주일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기상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대기가 정체해도 3~4일이면 움직이는데, 이번엔 꼼짝을 안 했다.
미세먼지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말해왔는데 올해는 다시 나빠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미세먼지 농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영향을 미치는데 ‘오염물’과 ‘기상 조건’이다. 보통 오염물 배출이 두 배 늘면 미세먼지 농도도 두 배로 비례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기상 조건은 좀더 다이내믹하다. 대기가 정체되니 미세먼지 농도가 다섯 배 이상 훌쩍 뛰었다. 기상 조건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미세먼지와 관련해 할 수 있는 건 오염물 배출량을 줄이는 것뿐이다.
<중국이 40% 줄일 때 우리는>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졌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도 일반 시민 처지에선 공감하기 힘들다.
-최근 들어 줄어드는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과거보다 많이 낮아진 것은 팩트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사실을 언급했던 이유를 헷갈리는 분들이 있다. 나는 “현재 미세먼지 농도가 과거보다 낮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이(미세먼지) 문제가 새로운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일부 언론이 여전히 과거에 없던 중국의 미세먼지가 날아와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주 오래된 문제인 미세먼지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자는 것이다. 대체로 오염물을 줄이는 정책을 펴면, 미세먼지 농도도 그에 따라 정직하게 줄어왔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 농도 감소가 더뎌진 것은 어떤 이유인가.
-큰 오염원들은 차단했지만, 작고 다양한 오염원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세먼지를 더 줄이려면 더 많은 오염원을 잡아야 한다. 과거 수도권 미세먼지 대책을 세울 때 오염물 배출 업소 중 규모가 큰 곳을 먼저 관리했다. 중소 업체는 저감시설을 설치하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효율적인 미세먼지 감소를 위해 큰 배출원을 먼저 컨트롤했다.
자동차도 그런 맥락에서 경유차를 먼저 규제했다. 휘발유차는 규제하지 않았다. 그런데 휘발유차라고 해서 미세먼지를 내뿜지 않는 게 아니다. 질소산화물 같은 미세먼지 원인 물질을 배출한다. 마모되는 자동차 타이어도 주요한 미세먼지 오염원이다. 이륜차(오토바이)나 선박도 아예 규제하지 않는다. 대기 중에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규제를 확대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은 한국이 깨끗한 공기를 갖겠다는 건 과욕이다.
일부에선 중국 영향이 크다고 보고, 국내에서 아무리 미세먼지를 줄여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환경부가 고농도 때 한국의 미세먼지 중 80%가 중국 영향이라고 주장하는데 국제 학술지에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다.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서풍이 불어서 중국 대륙의 미세먼지를 가져온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어떻게 중국에서 불어온 바람이 딱 한반도에서 멈춰 설 수 있는가. 대신 중국이 5년 동안 미세먼지를 40% 줄였다는 건 국제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중국의 미세먼지가 40% 줄었다면 중국 영향을 80%나 받는 한국은 10%라도 줄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차량 2부제 하면 부자는 2대 탈 것>
2019년 3월5일 에어비주얼 미세먼지 상황 화면 갈무리.
위성사진에 나오는 빨간 미세먼지 구름을 보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방송에 자주 나오니까 인공위성에서 찍은 실시간 대기 현황 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위성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다. 모델링 해서 그래픽 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위성으로 미세먼지를 찍는 기술은 아직 없다.
연구기관이 신뢰를 바탕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언론에서 자주 보여주니까 실시간 위성사진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림만 보면 그럴듯하다. 마치 중국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해상에 미세먼지가 많이 떠 있다고 해서 중국에서 넘어온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도 중국 공조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부 여론이 현재 문재인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이야기를 못한다고 하는데 그 반대다. 학술적 데이터도 없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까지 모두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 일본에서 오늘부터 ‘서풍으로 한반도 미세먼지가 일본에 온다’고 주장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박근혜 정부 때부터 미세먼지의 원인을 중국에서 찾았는데,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됐다. 이제는 좀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다.
현재 정부의 미세먼지 정책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 같다.
-거의 포기했다. 초반에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노후 석탄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미세먼지를 30%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최근 이야기를 보면 중국 탓으로 돌리면서 정부가 세운 대책을 부정하고 있다.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니 중국 탓으로 돌리면서 정책 실패를 감추는 거로밖에 안 보인다.
비상저감조치 때 하는 일시적인 2부제는 반대해왔다. 하지만 상시 2부제는 효과가 있는 것 아닌가.
-차량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차량 2부제는 아니다. 상시로 2부제를 운영하면 돈 있는 사람이 차량번호 끝자리를 ‘홀짝’으로 두 대 사서 끌고 다닐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본질적으로 승용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대중교통을 더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세금을 써야 한다. 본질적인 대책은 두고, 국민에게 차를 이틀에 한 번만 갖고 나오라 하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 미세먼지 증가를 원자력발전소와 연결지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탈원전 정책 반대 정치 공세에 활용하려는 거다. 정말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노후 석탄 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든지, 이미 있는 천연가스 발전소를 활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천연가스 발전소는 가동 비용이 비싸, 전기료 상승 요인이 될 수 있으니 국민을 설득하자고 해야 한다. 보수 쪽에서 석탄 발전소 줄이지 말고,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는 반대하면서 원전을 이야기하는 건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보면 183개국 중 미세먼지(PM2.5) 때문에 조기 사망하는 비율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핀란드가 가장 낮고 한국은 27번째로 낮다.
마스크 안 써도 된다고 했는데 진짜 안 써도 되나.
-세계적으로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라고 권하는 나라는 아직 찾지 못했다. 어느 정도 미세먼지 농도부터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과학적 데이터도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다만 미세먼지가 많아서 몸이 불편하고 호흡기 증상이 있다거나 실제로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에 한해서 쓰라고 말하고 싶다. 정부나 언론이 쓰라고 해서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스크를 썼는데 숨쉬기가 불편하면 벗어야 한다. 어린이들은 마스크를 쓰면 숨을 쉬기 어렵고, 몸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 더욱 주의해야 한다.
<누가 공포를 부추기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미세먼지와 관련해선 정부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막연하고 과도한 대중의 공포를 가라앉혔으면 하는데, 정부가 되레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언론이 정부 대책에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방향을 잡아줬으면 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한겨레21 제1253호
맹독성 비소 흡수하는 고사리, 그 식물 먹는 애벌레
밤나방류 애벌레 독성 고사리 먹어 천적 회피
맹독물질인 비소를 농축하는 고사리인 사다리봉의꼬리를 갉아먹는 밤나방류의 애벌레. 차즈 헤셀레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비소는 맹독성 발암물질이다. 이런 물질이 조금만 몸에 들어와도 죽는 게 일반적이지만, 토양에서 비소를 흡수해 몸속에서 수백 배로 농축하는 식물이 있다. 레나 마 미국 플로리다대 토양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2001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양치식물인 사다리봉의꼬리가 놀라운 비소 흡수 능력을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플로리다 중부의 비소로 오염된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을 조사하다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 사다리봉의꼬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호주 등에 널리 분포하는 고사리과 식물인데, 비소농도가 19∼1600ppm(ppm은 100만분의 1을 가리킴)인 오염토양에서 자라는 이 고사리 잎에서 1400∼7500ppm의 비소가 검출됐다.
보통 토양 속에는 3.6ppm의 비소가 들어있는데, 이 고사리는 1500ppm의 고농도에서도 너끈히 살았다. 게다가 2주 만에 잎 속 비소농도가 29ppm에서 1만6000ppm으로 늘어나는 등 흡수능력이 뛰어났다. 당연히 이 고사리를 오염지역 비소 제거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비소는 자연적으로 분포해 지하수를 오염시키거나 폐광산, 공장폐수, 농약 등을 통해 토양과 하천수를 오염시킨다.
고사리의 일종인 사다리봉의꼬리. 주로 석회암 지대에 살며 건물 틈에서도 잘 자란다. 애벌레에 뜯긴 흔적이 보인다. 차즈 헤셀레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더욱 놀랍게도 치명적인 비소를 간직한 이 고사리를 먹고 사는 나방 애벌레가 발견됐다. 벤저민 자페 미국 노던 애리조나대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플로리다의 비소 축적 고사리를 주로 먹는 밤나방과의 나방 애벌레가 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은 과학저널 ‘생태 곤충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 나방 애벌레가 다른 곤충 치사량의 수십 배 농도의 비소를 축적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800ppm의 비소가 농축된 사다리봉의꼬리를 먹은 애벌레의 몸에는 최고 4200ppm의 비소가 농축돼 있었다.
나방 애벌레가 이처럼 고농도의 비소를 축적하는 이유로 연구자들은 “기생자나 포식자를 피하고 외부 스트레스에 저항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딱딱한 껍질 없는 애벌레는 새, 파충류, 포유류 등이 즐겨 잡아먹는 먹이이다. 새가 번식기를 애벌레가 나오는 철에 맞추는 것도 먹이의 90%가 애벌레이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나방으로 ‘죽음 뒤 환생’하는 애벌레, 신물질·미래 식량 보물). 이 밤나방은 고농도의 비소로 자신을 방어한다.
애벌레가 비소가 농축된 고사리를 먹는 밤나방과의 나방(학명 Callopistria floridensis G). 앤디 리고 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렇다면 이 애벌레는 어떻게 비소의 독성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킬까. 연구자들은 이 애벌레가 뱃속에서 비소를 독성이 없는 형태로 변환시키는 등의 생리적 장치를 갖추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건 애벌레가 몸속 비소 농도를 의도적으로 조절한다는 사실이다. 여러 농도로 비소가 든 고사리를 주었을 때 애벌레는 몸속 비소가 일정 한도를 넘지 않도록 먹이를 조절하는 행동을 보였다. 또 애벌레가 성체가 되기 전 다량의 비소가 포함된 허물을 벗었다. 성체에도 꽤 많은 비소가 남아있지만 애벌레 만큼 많은 양이 필요하지는 않다. 연구자들은 “이 나방 애벌레는 지상에서 비소를 축적할 수 있는 알려진 유일한 동물”이라며 “비소의 해로운 영향을 조절할 수 있도록 생리와 행동을 적응시켰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enjamin D.Jaffe et al, A caterpillar (Callopistria floridensis G. (Lepidoptera: Noctuidae)) accumulates arsenic from an arsenic-hyperaccumulating fern (Pteris vittata L.). Ecological Entomology (2019), DOI: 10.1111/een.1272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시애틀 범고래를 보고 제돌이를 생각하다
“보호구역 지정 시급…먹이 확보, 환경 개선, 재원 마련 뒤따라야”
미국 워싱턴 주의 내면인 푸젯 사운드에서 범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바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녀석이 있다. 바로 고래다. 아마도 고래는 인간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바다 생물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스타벅스의 고향, 미국 시애틀에서는 범고래가 유명하다. 돌고래보다 둥근 머리에 검은색과 흰색의 무늬가 몸통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중국 쓰촨 성에 사는 자이언트판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범고래를 산 채로 잡아 아쿠아리움에 전시한 곳이 바로 시애틀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된 1965년 7월의 일이었고, 그 범고래를 산 채로 잡은 테드 그리핀은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다.
범고래는 학명이 오르키누스 오르카(Orcinus orca)여서, 쉽게 오르카로 부른다. 그런데 이 녀석의 영문 이름이 흥미롭다. ‘킬러 웨일(Killer Whale)이란 듣기에도 섬뜩한 이름을 갖고 있다. 범고래의 학명은 로마 신화에서 죽음의 신인 오르쿠스(Orcus)에서 왔다고 한다. 북미 인디언 중 하나인 하이다 부족은 범고래를 죽음의 악마라는 뜻의 ‘스캐나(skana)’라고 부르고, 알류샨 열도의 원주민은 무서운 것이라는 뜻의 ‘폴로사틱(polossatik)’이라고 부른다.⑴
하지만 범고래는 사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바다 동물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야생에서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가끔 다른 고래나 물개 등을 사냥하는 모습이 다큐멘터리에 찍히기도 하지만, 대부분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시애틀 사람들에게 자기들 앞바다에 사는 범고래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시애틀은 태평양에 가까운 대도시이지만, 실제로는 태평양에 직접 접하지 않고 푸젯 사운드⑵라는 큰 만 안에 들어서 있는데, 이 만 안에 사는 범고래는 주로 연어를 먹이로 삼아 가족 단위로 정착해 산다. 태평양 먼 바다로 나가지 않고 오랜 기간 푸젯만의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무리이다.
그런데 작년 8월 이 무리 중 한 마리가 시애틀은 물론 전 미국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어미 범고래가 낳은 지 30분 만에 죽은 새끼를 끌고 다니는 장면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J35로 명명된 이 암컷은 무려 17일간이나 죽은 새끼를 품고 다녔다(어미가 새끼를 입에 물거나 머리로 밀어가며 새끼를 놓지 않았다).⑶ 처음 어미 범고래의 소식이 전해진 시애틀은 물론 이후 미 전역에서 많은 이들이 이 어미 범고래와 새끼의 마지막 여정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했다(▶관련 기사: 동물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죽은 새끼를 포기하지 않고 물 위로 들어 올리며 헤엄치는 암컷 범고래 J35. 켄 발콤, 고래연구소 제공.
그런데 범고래 J35의 죽은 새끼와의 마지막 동행만큼 안타까운 사실은 최근 3년간 푸젯 만에는 새로운 새끼가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⑷ 새끼는커녕 상당수의 범고래가 영양실조에 걸려 머리 부분이 땅콩처럼 휘는 현상을 보였다.⑸ 작년에만 먹이 부족으로 범고래 세 마리가 죽으면서 무리의 숫자는 74마리로 줄었다. 가족관계를 이뤄 생활하는 범고래는 어미가 죽으면 그 새끼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미를 잃은 다른 새끼들을 비롯해 여러 마리의 범고래에서 체중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⑹
왜 푸젯만의 범고래가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일까? 당연히 푸젯 만에 이들의 먹이가 없기 때문이다. 푸젯 만에 서식하는 범고래는 주로 태평양 연어 중 가장 크기가 큰 왕연어(치누크 연어)⑺를 먹이로 삼는다. 범고래들은 왕연어의 이동을 쫓아 함께 움직인다.⑻ 어미 범고래가 아니면 그 경로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어미를 잃은 새끼 범고래가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왕연어가 태평양 연안, 특히 푸젯 만에서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반면 푸젯만 북쪽의 캐나다 연안과 알래스카를 오가며 사는 다른 범고래 무리는 푸젯만의 범고래 무리와 비슷한 먹이를 먹고 유전적으로도 동일하다. 캐나다 연안의 범고래는 현재 309마리로 관찰을 시작한 1974년 이후 약 두 배 이상 늘었다.⑼ 이곳에서는 영양 부족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푸젯만 범고래의 주 먹이인 왕연어. 연어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길이 150㎝, 무게 60㎏ 가까이 자란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푸젯만 범고래 먹이가 부족한 원인은 푸젯만의 주변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시애틀과 밴쿠버, 이 두 대도시 모두 푸젯 만에 위치한다. 주변 인구가 600만에 이른다. 과거에 푸젯만의 수질은 매우 좋지 않았다. 다행히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질관리를 한 덕분에 지금은 비교적 청정한 상태로 개선됐다. 그런데도 범고래 먹이가 되는 연어는 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 있었다. 과거에는 푸젯만 곳곳에 발달한 작은 하천이 왕연어에게 좋은 산란지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더 숲 깊이 들어가 집을 짓고, 댐과 보를 지으며 하천에 손을 댄다. 이 때문에 강을 따라 올라와 산란해야 할 연어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연어 부화장을 여러 곳 두고 인공부화를 통해 어린 연어 새끼를 매년 수없이 방류하지만 정작 회유하는 연어는 갈수록 줄고 있다.
먹이만의 문제도 아니다. 푸젯만의 범고래는 사람의 간섭이나 교란으로부터 가림막이 되는 보호구역 하나 없이 주변 해안이 대부분 개발된 바다에 산다. 해안은 항구와 도시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컨테이너와 석유를 실은 대형 선박은 커다란 프로펠러를 돌리며 수없이 푸젯만을 드나든다. 푸젯만은 땅 위의 시애틀만큼 크고 시끄러운 ‘바다의 대도시’인 셈이다.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고 먹이를 잡는 범고래에게 수중 소음은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푸젯 사운드 북서쪽 스페이스 니들에서 바라본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반면 푸젯만의 범고래와 달리 캐나다와 알래스카까지 퍼져있는 북쪽의 범고래는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주변에 인구가 적고 자연이 잘 보전되어 있기도 하지만 캐나다 정부는 범고래의 주 서식처에 오직 범고래 보호만을 위한 보호구역도 설정했다. 롭손 바이트 생태보전구역은 범고래의 주 먹이인 연어가 육지를 향해 이동할 때 지나야 하는 좁은 해협에 설정되어 있다. 캐나다는 이곳에서 범고래에게 영향을 주는 선박의 통항도 금지하고 있다.
그동안 이곳 주 정부나 연방정부, 지자체 역시 푸젯만의 범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해 왔다. 1970년대 후반 처음으로 푸젯 만에 사는 범고래 무리의 숫자를 약 68마리로 파악했다. 범고래의 흑백 무늬를 사진으로 하나하나 식별해 파악한 결과였다.⑽ 이미 40마리가 넘는 범고래가 포획된 후였지만,⑾ 처음으로 범고래의 수 확인되면서 이후 태평양과 푸젯 만에서 범고래 포획은 금지되었다. 1972년에는 연방정부 차원의 해양 포유류보호법이 시행되었다. 1976년 68마리였던 푸젯만의 범고래는 1995년 98마리까지 늘어났다. 또 푸젯만을 공유하는 캐나다와 미국은 이곳의 범고래를 각각 2001년과 2005년에 보호종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후 범고래의 수는 더는 늘어나지 못하고 2018년 말 기준으로 74마리에 그친 상태다.
푸젯만 범고래 무리의 개체수 변화
2018년 여름에 전해진 범고래 어미와 죽은 새끼의 안타까운 모습은 범고래 보전 정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말 워싱턴주 주지사인 제이 인슬리가 적극적으로 범고래 보전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인슬리 주지사는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환경론자로 얼마 전 2020년 미 대선 민주당 후보경선에도 출마 의사를 내건 인사다. 그는 범고래와 연어 보전을 위해 향후 2년간 11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 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경제규모 자체가 우리와 다른 미국이지만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새로 설정하는 것은 지도자의 의지만으론 가능하지 않다. 지역에서 이에 대한 강력한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워싱턴 주의 범고래 보전 정책에서는 핵심 과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회유하는 연어 개체수의 회복을 비롯해 푸젯만 수중의 독성물질 관리, 선박에서 발생하는 수중 소음의 관리가 그것이다. 연어의 회유를 늘리기 위해 어도를 놓거나 복개한 하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만드는 데 약 4000억 원, 연어 양어장을 늘리는 비용 200억 원도 포함되어 있다. 하천이나 연어 관리 외에도 예산 항목 중 흥미롭게도 연어를 잡아먹는 또 다른 포식자인 물범이나 바다사자 같은 기각류에 대한 관리 필요성도 제기했다. 1972년 해양 포유동물보호법 제정 이후 이들의 수가 북미 연안에서 급격히 늘어났고, 그 결과 이들이 잡아먹는 연어의 수도 많이 늘어났다. 결국 같은 먹이를 쫓는 범고래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시각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이들 기각류에 대한 개체수 관리도 하겠다는 입장이다.
2018년 10월 7일 ‘연어의 날’을 맞아 개방한 연어 양어장 모습. 육근형 박사 제공.
또한 푸젯만 내 선박에 대한 관리도 빼놓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고래가 나타날 경우 주변 200야드(183m) 이내로 선박이 접근할 수 없는 규정이 있는데, 이번에 이를 강화해 400야드(366m)로 그 범위를 늘리고, 그 이상 800m(0.5해리) 거리 내에서는 저속 항행구역을 신설해 선박의 이동속도를 줄이도록 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범고래 관광 상품을 향후 3년간 한시적으로 금지하고, 푸젯만을 오가는 대형 페리⑿ 3척의 디젤엔진을 전기 엔진으로 바꿔 소음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한다. 여기에만 약 1200억 원이 책정되어 있다.
선박 접근금지구역 강화(안). 인슬리 주지사실(Office of the Governor graphic) 제공.
시애틀항에 정박 중인 대형 페리(https://twitter.com/zargoman).
범고래를 잡아온 사람을 영웅 대접한 지 50년이 흘렀다. 이젠 그 범고래를 보호하겠다고 무려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그 사이 범고래는 더는 바다의 포악한 살인자나 사냥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다. 범고래는 지역을 대표하는 마스코트이자 바다 생태계 보전의 상징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시애틀의 범고래에서 우리 제주의 돌고래가 떠오른다. 한때 제주에서도 산 채로 잡힌 남방큰돌고래가 전국의 아쿠아리움과 테마파크로 팔려갔다. 이들 돌고래 중 처음으로 바다로 돌아간 녀석이 제돌이였다. 2013년 제돌이 이후 돌고래 여러 마리가 아쿠아리움에서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다행히 제주의 남방큰돌고래의 개체수는 100여 마리가 넘는다. 푸젯만의 범고래보다는 많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해상에 들어서는 풍력발전과 오가는 대형 선박을 피해 서식범위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서식범위가 좁아지자 인근의 육상 양식장 주변을 맴돌며 배출구 근처에서 먹이를 구하곤 한다. 서식처가 갈수록 교란되고 먹잇감이 부족해지는 형편은 제주 남방큰돌고래나 시애틀의 범고래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등지느러미에 1번 표시가 된 개체). 김병엽 교수 제공.
제돌이와 그 무리에게도 우선 사람의 간섭에서 피할 수 있는 보호구역부터 마련해 줘야 한다. 바다의 건강성을 대표하는 생물을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모든 일의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먹이가 되는 어류의 서식환경도 살펴봐야 한다. 낚시나 어구가 너무 많이 설치되지는 않는지, 육지에서 오염물질이 흘러가 서식처가 훼손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선 알아야 한다.
미국이 범고래를 두고 개체수 확인, 포획 금지, 보호종 지정, 보호구역 설정, 먹이 관리, 서식환경 개선 계획까지 고민하는데 걸린 시간이 대략 50년이다. 그들 역시 아직 미완성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경우 이렇게 보면 처음 몇 단계까지 오는 데 불과 5년밖에 안 걸렸다. 경제성장만큼 압축적으로 이런저런 고려를 하자니 숨이 차긴 하다. 하지만 필요한 일은 명확하다.
또한 그 일에는 돈이 든다. 돌고래 보호구역을 설정하면 때로는 어민들의 조업구역이 줄어들 수 있다. 또는 재생에너지로 주목받는 해상풍력 중 일부는 사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미 해상풍력단지로 제안된 사업구역이 남방큰돌고래 서식처와 겹치는 곳도 나온다. 어선이건 풍력발전 회사이건 거기에는 이해관계자가가 있고 또한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거나 투자를 위해 자금을 투자했다. 이들을 설득하고 다른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하다. 미국 워싱턴주처럼 2년간 1조 원이 넘는 막대한 규모의 재원을 우리가 당장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호종이나 보호구역 지정이 행정문서에서만 효력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필요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재원이 필요하다. 하늘 아래 공짜도 없고, 기회비용 없이는 뭘 얻을 수도 없다. 부디 푸젯만 범고래 J35의 안타까운 모습을 우리 바다에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주>
⑴ Roberts, Callum. The Unnatural History of the Sea. Island Press. 2007
⑵ 푸젯 사운드(Puget Sound)는 미 대륙의 서북쪽 맨 끝에 있는 워싱턴 주에 육지로 깊게 들어서 있는 반 폐쇄성만이자 하구이다. 남북으로 200㎞가 넘는 길이의 길고 좁은 만으로 내륙의 산과 들을 지나 내려온 하천과 바다가 만나면서 많은 호수와 기수역의 푸젯만을 형성한다. 이 만은 캐나다와 미국의 경계를 이루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스타벅스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본사가 있는 시애틀을 지나 남쪽으로 100㎞나 내륙으로 들어간다.
⑶ 영장류나 다른 포유류에서도 간혹 죽은 새끼를 며칠씩 안고 다니는 암컷이 목격되곤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들의 감정이지만 일반적으로 새끼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⑷ 범고래 J35가 작년 7월에 낳은 다른 새끼도 불과 30만에 죽었다.
⑸ Ward et al.(2009)의 연구에 따르면 치누크 연어가 많은 해에는 푸젯만의 암컷 범고래가 새끼를 품는 비율이 평소보다 50%나 증가하기도 한다. 결국 범고래의 영양 상태에 따라 새로운 개체의 가입률이 결정된다.
⑹ 범고래 암컷은 사람과 비슷하게 30살 후반에서 40살 초반에 마지막 새끼를 낳고 평균 80살 이상 산다. 사람처럼 폐경을 하고 이후까지 수명이 지속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었는데, 알려진 바로는 폐경이 들어간 암컷은 자식은 물론 친척뻘에 해당하는 새끼들도 키우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⑺ 태평양 연어 중 가장 크기가 큰 종류로 캘리포니아와 알래스카, 일본 북단 인근의 호수와 강에서 발견되는 종류이다.
⑻ Ford et al. 1998; Ford and Ellis 2005; Ford et al. 1998; Ford and Ellis 2005
⑼ http://projects.seattletimes.com/2018/orcas-in-peril/
⑽ 이들 범고래의 개체수 확인은 민간 비영리 기구인 고래연구센터(Center for Whale Research)에서 수행 중인데, 이들은 사진을 통한 개체 확인은 물론 먹이활동이나 짝짓기, 건강상태, 가계도 확인까지 같이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범고래 보전을 위한 정책 결정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⑾ Balcomb KC, Goebel CA (1976) A killer whale study in Puget Sound. Final report, Contract No. NASO-6-35330. Marine Mammal Division, National Marine Fisheries Service, Seattle, WA
⑿ 척당 2500명의 승객과 차량 202대를 실을 수 있다(위키피디아)
육근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한겨레
국경 넘은 미세먼지 갈등, 유럽과 미국은 어떻게 풀었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미세먼지 딜레마, 우리가 갈 길은? <1>
미세먼지가 우리의 일상을 좌우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외출과 여가, 자녀 학교 보내기, 운동, 교통편 등 산업과 직장, 일상 모든 부문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과 건강 우려가 현실로 등장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좋은지, 언제 써야 하는지, 공기청정기를 집이나 사무실에 들여놓아야 하는지 선택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국내 미세먼지 발생을 아무리 줄여도 중국 쪽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미세먼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비상 저감조치와 각종 미세먼지 대책을 세워 실행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그 효과를 피부로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미세먼지 딜레마 한복판에 서 있다.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미세먼지 오염이 일주일이나 지속되는 일을 겪고 나서 우리는 미세먼지가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첫 번째 요인임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에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몇 차례에 걸쳐 심층 해부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한국의 미세먼지 오염은 우리와 상관없다."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중국의 대표적 언론사 가운데 하나인 <환구시보>도 지난 8일 "한국이 말하듯 미세먼지의 50% 이상, 심지어 75%가 중국에서 왔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가?"라면서 "한국 여론은 충동적이고, 너무 쉽게 격분하거나 비장해진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한국인의 의식에서 민족주의의 역할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더욱 크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인은 베이징의 미세먼지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서울 상공에 뿌린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의 이러한 태도와 보도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결같이 분노한다.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따진다. 우리 언론들은 일제히 몇몇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중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는 심각한 상황이며 때에 따라서는 그 기여율이 75% 수준이라고까지 전한 것을 시민들은 굳게 믿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미세먼지와 관련해 중국과 한국 두 나라의 정부와 정부, 언론과 언론, 시민과 시민들이 서로 다른 정보와 주장을 하고 있고 또 믿고 있다. 미세먼지와 관련한 딜레마가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중국과의 갈등이다.
중국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까지 날아와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조사·분석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문제다. 여기에 눈앞의 국익이나 감정 문제가 끼어들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다가도 사라지고 만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겨우 풀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더라도 다시 꼬이고 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차분한 대응과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역지사지, 즉 소통의 정신이 두 나라 정부와 시민들에게 필요하다.
다른 나라의 오염물질이나 황사가 국경과 바다를 넘어 수백 내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국가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중국과 한국의 미세먼지 사례뿐만 아니라 많은 국제적 사례에서 보아왔다. 조선시대에도 흙비가 내렸다는 역사적 기록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중국의 베이징 등 북부나 중동부 지역 대도시의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해진 뒤 1~3일 뒤 우리의 서해 쪽부터 미세먼지 오염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에서도 중국 영향이란 지적이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미국 나사 등이 2017년 미세먼지 중국 영향 이미 입증
중국 미세먼지 영향을 둘러싼 공방이 오가자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 즉 NASA에서 공개한 사진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위성들이 촬영한 지난달 26일 사진을 보면 한반도 상공은 깨끗하다. 반면 중국에는 많은 미세먼지가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다음 날 촬영된 사진에서는 중국의 미세먼지가 한반도 쪽으로 이동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깨끗했던 한반도 상공이 점차 뿌연 미세먼지로 뒤덮였고 지난 6일까지 유지되다가 7일이 돼서야 걷혔다.
물론 이런 사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 인공위성 사진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 쪽은 거짓말 하지 않는 사진에 대해서도 여전히 오리발이다. 인공위성 사진은 지표면에서부터 높은 고도까지 공기층을 모두 반영해 한 번에 표시하는 것이어서 한반도에 영향을 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못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의 주장이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지만 상식선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의 미세먼지 오염도에 중국이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결코 부정 못할 연구결과가 이미 있었다. 2016년 5월과 6월 미 항공우주국과 우리 정부는 나사가 보유한 연구용 특수항공기로 한국에 영향을 주는 미세먼지 요인들을 분석한 뒤 그 결과를 2017년 발표했다. 52%가 국내 요인이며 중국 요인은 34%로 외국 기여율(48%)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북한, 몽골, 러시아 등이다. 우리나라 5월과 6월의 대기는 외국의 영향이 극대화하는 시기는 아니어서 중국 요인이 50% 이상이거나 최악의 경우 75%까지 된다는 지적 또한 억지 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나라에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을 얼마나 전해주는가와 관련해 꾸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우리의 미세먼지 장기 오염 사태를 계기로 나사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과도 국경을 넘어오는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에 대한 연구를 서두르고 확대해야 한다.
미국-캐나다, 영국·독일-북유럽 국가도 대기오염 문제로 갈등 벌여
이와 함께 중국 쪽에 장거리 이동 미세먼지 문제를 더욱 강하게 제기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대기오염물질이 다른 나라에 영향을 끼쳐 분쟁이 발생한 사례가 여럿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1930~40년대 이른바 '트레일제련소' 사건으로 대립했다. 결국 이 사건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트레일 지역 제련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기오염물질로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미국 워싱턴 주 주민 승리로 결말이 났다.
또 유럽에서는 강대국 영국과 독일이 산업화를 본격화하면서 대기오염물질이 다량으로 북유럽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당시 영국과 독일은 지금의 중국처럼 부인으로 일관하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북유럽 정부와 학자들, 그리고 이들은 러시아와도 공조해 두 강대국을 압박했다, 그리고 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결과 월경성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협약(CLRTAP)을 체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이 강대국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시인과 적극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배워야 한다.
우리도 결국 중국 쪽을 압박하고 외교적 노력을 곁들여 가칭 '동북아 월경성 장거리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을 세워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여기에 일본의 참여와 북한, 몽골, 러시아도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두 나라 간의 정례 환경장관회의에 머물지 말고 외교장관회의, 그리고 적어도 총리급 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진행하는 것이 좋은 접근법이다. 물론 최종 합의는 두 나라의 정상 몫이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프레시안
환경과 맞바꾼 편리…그르노블의 ‘녹색 독재’는 성공할까
희뿌연 그르노블 시내레나네 가족은 그르노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청정지역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공기의 질이 좋지 못하다. 특유의 지형 조건 때문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시내를 덮고 있는 대기가 뿌옇게 정체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곽원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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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 지면을 빌려 종종 자랑해 오곤 했지만, 레나 가족이 살고 있는 그르노블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첨단 과학기술 산업이 어우러져 프랑스에서도 삶의 질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이런 저런 매체에서 다양한 기준으로 발표하곤 하는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도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편인데, 주로 장애인·학생·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양질의 일자리, 주거 환경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편이다. 하지만 의외로 공기의 질로만 따지자면 그리 상위권에 들지는 못한다. 특유의 지형 조건 때문이다.
2000~3000m 설산들로 둘러싸인
침식분지 지형 프랑스 그르노블
공기 순환이 잘 안돼 대기질 나빠
대략 4만~5만년 전인 신생대 4기 마지막 빙하기에, 그르노블 지역은 두께 1000m가 넘는 빙하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깎으며 지나간 자리에 남은, 해발 2000~3000m를 훌쩍 넘는 설산들로 둘러싸인 움푹하고 평평한 지형이 현재의 그르노블이다.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 기슭의 샤모니에 가면 ‘얼음의 바다(Mer de Glace)’라 불리는 거대한 빙하를 구경할 수가 있는데, 그 계곡이 4만~5만년 정도 지나면 현재의 그르노블처럼 되는 것이다(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의 유실이 점점 빨라지고 있어 어쩌면 그 기간이 훨씬 단축될 수도 있다. 아직도 지구온난화가 사실인지 미심쩍은 분이 계시다면 더 늦기 전에 몽블랑의 ‘얼음의 바다’에 꼭 가 보시기 바란다).
2014년 당선된 에릭 피욜 시장
환경 관련 정책들 강력 추진
소상공인·저소득층 피해 호소에
“모든 변화엔 낙오자 생기기 마련”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침식분지 지형이다 보니 공기의 순환이 썩 좋지 못한 편이다. 오염물질이 계곡을 빠져 나가지 못해 누적되면 대기의 질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 이웃 나라인 독일에 비해 녹색당의 세가 약한 프랑스의 2014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지자체 중 유일하게 그르노블이 녹색당 소속 시장을 선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41세의 나이로 6년 임기의 그르노블 시장에 당선된 에릭 피욜 시장은, 당연하게도 환경 개선을 최우선의 시정 목표로 삼고 강력한 정책들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가령 대기오염 경보 및 이에 따른 비상저감조치도 프랑스의 다른 지자체들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프랑스의 대기오염 기준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오존 농도,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등을 종합하여 정한다. 타 지역은 우리나라 예보등급 기준과 비교할 때 ‘보통’과 ‘나쁨’의 경계인 미세먼지(PM10) 80㎍/㎥에서 1단계 경보를 내리는 데 비해, 그르노블은 ‘보통’ 구간에서 ‘좋음’에 더 가까운 50㎍/㎥를 임계점으로 삼는다.
1단계 경보 발령 시 취하는 조치는 지자체에 따라 다른데, 그르노블은 이 역시 타 지역에 비해 엄격하다. 평상시 110㎞/h인 외곽순환도로의 제한 속도를 70㎞/h로 낮추고, 그 외의 모든 도로는 20㎞/h를 낮추게 되어 있다. 가령 평시에 제한 속도가 50㎞/h인 도로는 30㎞/h로, 30㎞/h인 도심은 아예 자동차 출입이 통제되는 식이다. 공원에서 바비큐 등이 금지되고 각 가정에서도 벽난로 사용 등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뜨며, 공공기관의 냉난방 온도도 조정된다.
물론 경찰이 스피드건을 들고 길에 좍 깔려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번 미세먼지가 심했을 때 정부가 재난문자를 보내 경고한 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던 모양인데, 그르노블에서는 미리 신청한 사람에 한해서만 문자로 통보를 한다. 대신에 시내 진입로에 설치되어 있는 전광판의 안내나 지역 언론, 동사무소의 게시판이나 관공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 등을 통해 각자 알아서 파악해야 한다. 나의 경우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이를 체감했다. 국외 출장을 갔다가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기오염 경보가 뜬 것을 모르고 90㎞/h로 운전하다 단속에 걸린 것이다. 비행기에서 막 내렸는데 경보가 떴는지 알 길이 있나. 전광판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평시보다 차들이 천천히 다니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한시라도 빨리 레나를 보고 싶은 마음에 방심한 모양이다. 물론 ‘몰랐어요’ 따위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저 사정을 설명하여 보통은 135유로(약 17만원)인 범칙금을 90유로(11만원)로 감면받을 수 있었을 따름이다. 돌아오자마자 뒤늦게 문자 알림 통보를 신청한 것은 물론이다.
1단계 경보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되거나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2단계 경보가 발령되는데,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각 차량에 부여된 6단계의 대기 환경 등급(Certificat Qualite de l‘air·CQA)에 따라 운행을 부분 혹은 전면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0등급은 100% 전기차와 수소차, 1등급은 천연가스차와 하이브리드, 2011년 이후 생산된 친환경 차량들이 해당한다. 몇 등급까지 운행을 제한하느냐는 대기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서 사람들을 헷갈리게(짜증나게) 하는데, 대체로 4등급 이하, 즉 2005년 이전에 생산된 노후 경유차량들은 길에 나오지 않는 것이 속 편하다. 유럽인들은 차를 스스로 수리해가며 오래도록 사용하는 편인지라 20~30년 이상 된 차들도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상당수의 차량들이 대기오염 저감조치로 운행을 금지당하는 것이다.
이보다 훨씬 강력한 조치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대기질 악화 시의 한시적인 조치가 아닌, 연중 내내 차량의 시내 진입을 억제하는 정책이다. 이미 2017년 1월부터 시범적으로, 시내 중심가 전 구역에 차량 운행 제한구역(Zone a Circulation Restreinte·ZCR)을 설정하여, 주중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소형 트럭이나 승합차 등 상용차 중에서 CQA 등급이 없는 차량의 진입을 금지해 왔다. 올해부터는 시내뿐 아니라 인근 마을 등 그르노블 생활권(프랑스 행정구역 ‘메트로폴’) 전역에 배기가스 저감구역(Zone a Faibles Emissions·ZFE)을 설정하고, 진입 제한을 CQA 5등급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전체 등록 차량의 5% 정도를 아예 차고에서 꺼내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ZFE는 그르노블뿐 아니라 프랑스 내 15개 지자체들이 실시하는 것이기는 하나 메트로폴 전역에 설정하는 것은 그르노블이 유일하다. 내년부터는 4등급까지, 3년 후인 2022년에는 전체 차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등급까지를 운행 금지할 계획이다. 최종적으로 2025년에는 2등급까지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레나 가족이 타고 있는 디젤 하이브리드를 포함해 현재 운행 중인 차량의 절반이 교체되거나 차고에 고이 모셔져야 할 판국이다. 사실상 전기차와 수소차를 제외하고는 운행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발이 없을 리가 없다. 최근 독일의 한 언론이 그르노블의 대기질 개선 노력을 취재하면서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식당 주인을 인터뷰했다. 1852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영업해온 전통을 자랑하는 이 식당의 매출이 현 시장 취임 이후 20% 이상 줄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식당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식사하러 오던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반대파들은 ‘녹색 독재’가 그르노블시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킬링 필드’의 주역이었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붉은 크메르)와 그 지도자 폴 포트의 이름을 따서, 에릭 피욜 시장을 “폴 피욜”, 그 지지자들을 “크메르 베흐(녹색 크메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환경보호를 위한 이러한 정책들은 낡은 차를 몰고 생업에 종사하는 저소득층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녹색당의 연정 파트너이기도 한 그르노블 좌파연합의 수장인 투쉐 의원은 “배기가스 저감구역”은 결국 “저소득층 배제구역”이라며, 목적이 좋을 수는 있어도 과녁을 잘못 잡았다고 힐난한다. 저소득층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확실한 조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현 시장이 추구하는 환경정책은 “징벌적 환경주의”에 불과하며, 그르노블을 “녹색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거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급격한 환경 전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은 그르노블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 있다. 그르노블의 야당들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프랑스 시민 연대(Federation Francaise des Automobilistes Citoyens·FFAC)’ ‘분노한 이륜차 운전자 연맹(La Federation Francaise des Motards en Colere·FFMC)’ 등 전국 단위 조직들과 함께 반대 여론을 조직하고, 최근에는 마크롱 정부가 환경보호를 위해 추진한 유류세 인상 조치로 인해 촉발된 노란 조끼 시위대와도 연대하여 에릭 피욜 시장의 정책을 저지하려 애쓰고 있다.
그르노블 시장의 도전 성공할까
한국이라면 이런 불편 감수할까
하지만 네 자녀의 아빠이며 항상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현 시장의 의지는 확고한 듯하다. 정치 성향으로 따지면 정통 좌파인 사회당보다 오히려 더 왼쪽에 위치한 것으로 평가되는 그가 “모든 변화에는 낙오자가 생기게 마련”이라는 발언까지 해가며 스스로의 정치 기반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의 비전은 단순히 노후 차량을 도로에서 퇴출시키고 환경친화적인 차량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 공유’를 통해 도로 위를 달리는 바퀴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있다. 그에 따르면 시민들의 이동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지만, 차량을 소유하는 것은 친환경적인 도시 생활에 배치된다. 차량은 공유되었을 때 가장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교통부 장관 엘리자베스 보느에 따르면, 최근의 설문 조사에서 프랑스인의 75%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일상의 이동(모빌리티) 습관을 바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르노블 시장의 과감한 환경정책은 과연 시민들의 불편함과 야당의 반대를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르노블시는 불리한 지형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대기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환경 문제에서만큼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이웃 나라를 둔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대기 환경 개선을 위해 불편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남 프랑스 그르노블 곽원철/ 경향
지구 온도 4도 오르면 인천·김해국제공항 모두 잠긴다
'클라이메이트 센트럴'이 내놓은 '매핑 초이스'가 분석한 지구 기온이 4도 올랐을 때 인천 지역의 해수면 변화도(오른쪽). 해안가 대부분의 지역이 물에 잠긴다는 뜻인 파란 색으로 표현됐다. 매핑 초이스 사이트 캡처.
지구 기온이 4도 오른 시나리오에 따르면 인천의 검단 산업단지와 청라국제도시, 인천국제공항 지역을 비롯한 인천 해안가 지대 상당수가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 비영리조직 ‘클라이메이트 센트럴’이 내놓은 ‘매핑 초이스’가 분석한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 지형이 바뀌는 모습의 한 단면이다.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학계 곳곳에서 나오지만, 기후변화는 여전히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다가올 위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온도에 따른 해안선의 변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나 정보와 그래픽의 합성어인 인포그래픽처럼 ‘보여주는’ 방식으로 내기 시작했다.
클라이메이트 센트럴의 매핑 초이스(https://choices.climatecentral.org)는 이름처럼 두 가지 시나리오를 선택한 후 이를 비교할 수 있게 했다.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였느냐에 따라 해안선이 바뀌는 모습을 보거나 온도 상승에 따른 해안선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온도에 따라 단순히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을 표현했기에 정확성이 높다고 볼 수는 없으나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하기에는 충분하다.
클라이메이트 센트럴은 기후변화에 관해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이 모여 전 세계에 기후 변화에 관한 사실과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달하는 비영리조직이다. 스테판 파칼라 프린스턴대 생태 및 진화생물학부 교수가 의장직을 맡고 있다.
어스타임은 온도 변화에 따른 해수면의 높이 변화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어스타임이 보여주는 한반도 해안선 변화의 모습. 어스타임 제공
미국 카네기멜론대 크리에이트(CREATE) 연구소는 온도 변화에 따른 해수면의 높이 변화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어스타임’(https://earthtime.org/explore)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세계의 주요 도시의 미래를 보여주는데 한국을 선택해 볼 수도 있다. 한반도 지역을 보면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인천과 부산 지역 등 해안가 지대가 점점 잠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리 기후협약을 따르면 해수면이 어떻게 변할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2015년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 채택된 파리 기후협약은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2도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온도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제안하기 위해 세계가 노력하자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한국은 2030년까지 37%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이에 동참하고 있다. 다만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이 2017년 탈퇴 선언을 하며 협약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정보는 아름답다
인포그래픽 전문가 데이비드 맥킨들리스가 설립한 ‘정보는 아름답다’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바다 높이 관측기’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데이터를 가지고 ‘해수면이 공격해 온다’라는 인포그래픽을 제작했다. 직관적으로 해수면 높이에 따라 어떤 도시들이 잠기게 되는지를 그림으로 풀어냈다. 기후변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100년 후에는 이탈리아 베니스, 200년까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함부르크 등의 유명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게 된다 동아사이언스 shinjsh@donga.com
중앙정부-서울시 알력에 도시공원 83% '풍전등화'
도시공원실효제로 내년7월 도시공원 대거 없어져
116개 도시공원 중 83% 일몰…여의도 33개 면적
중앙정부, 지자체 늑장대응 탓하며 지원 소극적
서울시, 정부 국공유지 떠넘기기에 속앓이 심화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2020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 관계자들이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일몰 도시공원 우선보상대상 대지매입 긴급예산 수립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2.13. bluesoda@newsis.com (사진=뉴시스DB)
'도시공원 일몰제(실효제)' 때문에 서울시내 곳곳에 있는 공원 부지가 내년 7월 땅 주인들 손에 넘어가게 됐다. 공원을 현 상태로 유지하려면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부지를 사들여야 하는데 이 작업을 해야 할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책임 공방을 벌이는 통에 일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도시공원 실효제에 따르면 내년 7월1일자로 서울시내 116개 도시공원 약 95㎢(여의도 33개 면적, 서울시 도시공원의 83%)가 한꺼번에 땅 주인 몫으로 돌아간다. 땅 주인인 개인이나 중앙정부부처, 공공기관은 공원부지의 용도를 바꿔 건물을 짓는 등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이 제도는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도입됐다. 그간 지자체는 임의대로 개인 소유 토지나 국공유지를 공원부지로 지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9년 헌법재판소가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땅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정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공원으로 쓰고 싶으면 해당 지자체가 땅 주인으로부터 부지를 사들이라는 취지였다. 시민 건강이나 도시환경보다 재산권이 중요하다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법원 판단이었다.
헌재 결정이 바람직한지 논란이 일었지만 어쨌든 1년 뒤인 2000년 도시계획법이 개정돼 미집행 도시공원 실효제가 도입됐다. 20년 동안 해당 지자체가 공원 부지를 사들이지 않으면 공원 지정이 해제되도록 법이 바뀐 것이다.
20년이란 기간이 문제였다. 학교, 공공청사, 도로나 철도, 상하수도 등에 투자하느라 바쁜 지자체들에게 20년 뒤는 먼 미래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공원부지 매입 예산 배정은 항상 후순위로 밀리거나 삭감됐다. 하지만 공원 부지 매입기한인 2020년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두면 내년 7월에는 서울시내 도시공원인 삼청공원, 안산도시자연공원, 방배동 도구머리공원·와우근린공원, 성산근린공원, 개화산 개화근린공원, 꿩고개근린공원, 자연생태 체험 교육장 일자산도시자연공원, 관악산도시자연공원, 북한산도시자연공원, 한양도성이 지나가는 인왕산 도시자연공원, 남산 일대 근린공원 등이 모두 공원에서 해제된다.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전국 지자체들 중 재정여건이 비교적 양호한 서울시는 그나마 공원 부지 매입을 위해 노력을 해온 편이다. 서울시는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조8504억원(연평균 1157억원)을 투입해 4.92㎢의 공원부지를 땅주인으로부터 사들였다. 시는 지방채를 발행해 내년 7월 이전까지 1조6000억원을 투입해 2.33㎢를 매입, 공원으로 보존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내년 7월까지 95㎢를 다 사들이기는 역부족이다.
서울시는 이 과정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중앙정부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서울시는 시내 곳곳에 도시공원을 대거 지정한 시점이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1995년 이전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중앙정부가 임명한 관선시장이 임의대로 지정했던 공원부지를 뒤늦게 사들이느라 서울시가 수십조원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시는 "이번에 실효를 앞둔 공원은 모두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전에 국가에서 지정한 공원이지만 지금까지 국비 지원은 단 한차례도 이뤄진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시는 또 "실효 예정 사유지 전체(40.2㎢, 국공유지를 제외한 면적)를 보상하려면 약 16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고 지자체 재정 여건상 시가 단독으로 재원을 모두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부에 국비지원을 지속 요청하겠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가 특히 억울해 하는 부분은 국공유지에 속한 공원부지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서울시는 국토교통부나 국방부 등 중앙정부부처가 소유한 국공유지에 있는 공원부지 역시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처지다. 시는 "도시공원 실효제의 목적은 토지 소유자의 사유재산권 침해 해소인 만큼 국공유지는 이와 무관하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일각에서는 정부부처가 서울시내 공원부지를 탐내고 있다는 의심까지 제기된다. 국방부의 경우 보유 중인 토지 속 공원의 지정 해제를 기다린 뒤 그곳에 군사시설을 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국토계획법을 개정해 국공유지에 있는 공원을 실효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2019 시도별 도시공원 토지보상 배정 예산.2019.02.28.(제공=지존)
'2020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과 '한국환경회의' 등 시민단체도 "실효대상지역 중 국공유지는 약 123㎢로 전국일몰대상공원의 26%에 해당된다"며 "시급하게 국공유지만큼이라도 공공의 공간으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공원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서울시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지만 이 역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물론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환경부·산림청 등 중앙정부 부처도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들 부처는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부처 합동 정부종합대책'을 통해 지자체를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생색내기에 가깝다고 지자체들은 성토한다. 실제로 중앙정부는 매입이 시급한 공원을 사들이는 데만 당장 1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매입자금 확보를 위해 "지방채 발행 이자의 50%를 5년간 지원하겠다"고만 밝혔다. 최대 7200억원까지만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 약속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올해 장기미집행공원 지방채 이자지원을 위해 편성된 국토부 예산은 79억원에 불과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아진 지자체에 지방채 발행을 권한 것도 모자라 터무니없는 액수의 예산을 책정한 것이다.
중앙정부가 이처럼 공원부지 매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도시공원을 포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이 같은 비판에 중앙정부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공원 조성은 기본적으로 지방사무인데 지자체가 자구노력은 하지 않고 중앙정부 탓만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규모 공원지정 해제 사태가 궁극적으로 지자체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과거 지자체가 민원해소, 시가지 개발 등을 위해 도시계획시설을 과다 결정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결정 후에는 지자체 재정여건 상 도시계획시설사업을 위한 재원확보가 어려워 미집행 시설이 양산됐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무능력을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정부는 "그동안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등이 임기 내 문제에만 집중해 2020년도 실효에 관심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자체의 공원부지 매입 실패 후 대응 방안도 미리 마련해뒀다. 정부는 지자체가 상당수 공원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면서 공원 지정 해제에 따른 부동산 투기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후속대책을 미리 마련해뒀다.
정부는 "우선관리지역에 해당하지 않는 지역에 대해서는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요불급한 시설은 해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만 불가피하게 공원에서 해제된 지역은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시장 상황을 조사하는 등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을 마련·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daero@newsis.com
‘중국판 새만금’에 먹이 사라진 도요가 살아남는 법
모래주머니 키우고 찌꺼기 토하고…압록강 하구서 안간힘
새만금에 이어 압록강 하구의 갯벌이 개발로 훼손되면서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는 붉은어깨도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위기’ 종으로 지정한 종이다. J 해리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겨울을 난 뒤 번식지인 북극 툰드라로 향하는 붉은어깨도요의 여정은 매우 빡빡하다. 중간 기착지인 황해 갯벌에서 충분히 먹이를 먹어 지방층을 보충한 뒤 시베리아 북동쪽 해안의 번식지에 때맞춰 가야 한다. ‘중간 급유’가 차질을 빚는다면 목적지까지의 비행은 물론 번식도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황해의 갯벌 3분의 2가 지난 50년 동안 사라졌다. 붉은어깨도요가 배를 채우던 마지막 갯벌 가운데 새만금 갯벌이 2006년 간척으로 망가지자 압록강 하구의 갯벌만 남았다.
그러나 중국은 스스로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압록강 하구의 중국 쪽 갯벌 안에 2008년부터 항만 개발을 위한 10㎞ 길이의 방조제를 건설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붉은어깨도요의 마지막 먹이터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붉은어깨도요는 어떻게 이 난관에 맞서고 있을까.
압록강 하구 중국 쪽 갯벌과 개발 현황. 오른쪽 끝이 압록강 하구, 바로 옆에 항만(빗금)과 방조제(1)가 보인다. 네모 빗금은 양식장, 점은 농경지를 가리킨다. 장 외 (2019) ‘생태학과 진화’ 제공.
마지준 중국 후단대 교수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생태학과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압록강 먹이터 변화가 붉은어깨도요의 몸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했다. 이 도요새는 맞춤한 먹이가 사라져 점점 크고 거친 먹이를 삼킬 수밖에 없게 되자, 모래주머니를 키우고 먹이활동 시간과 범위를 늘리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필요한 먹이를 섭취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압록강 하구 갯벌에는 다량의 쇄방사늑조개(일명 계화도 조개)가 살아 붉은어깨도요의 주식 노릇을 했다. 도요새는 바지락보다 작은 이 조개 가운데 폭 1㎝ 이하의 작은 개체를 주로 잡아먹었다. 그대로 삼킨 조개는 모래주머니에서 으깨지고 부서진 조개껍데기는 배설됐다.
그러나 갯벌을 가로질러 거대한 방조제가 들어서자 압록강의 담수가 흘러들지 않게 된 데다 해안에 들어선 해삼 양식장의 폐수와 인근 경작지의 농약과 비료가 흘러들어 이 조개에 치명타를 가했다. 2011년과 2017년 사이 조개의 99% 이상이 줄었다(▶관련 기사: 도요새의 마지막 기착지 압록강 하구는 무사할까).
쇄방사늑조개. 부안과 김제 갯벌에서 많이 나던 계화도 조개와 가깝다. 박윤이,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연구자들은 “붉은어깨도요가 주식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먹이 전환에 나섰다”며 “애초 소화가 쉬운 소형 쇄방사늑조개를 주로 먹다가 먹이가 줄자 큰 조개도 삼켰다. 조개 자체가 눈에 띄지 않자 황해비단고둥으로 먹이를 바꿨다. 그러다가 고둥도 소화가 만만치 않자 더 큰 개량조개를 삼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먹이 교체에 대응해 도요새는 몸의 소화기관과 소화 행동도 바꾸기 시작했다. 비단고둥은 껍질은 얇지만, 매우 단단해 쉽게 깨지지 않는다. 큰 조개와 고둥을 부수기 위해 도요새의 모래주머니는 15% 커졌다. 으깨는 힘도 11배나 늘어났다.
단단한 껍데기를 지닌 연체동물을 섭취하면서 찌꺼기를 배설이 아니라 펠릿 형태로 토하게 됐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조개껍데기가 장관에 상처를 내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이다. 소화기관의 크기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연구자들은 “소화기관은 에너지 소비가 많고 장거리 이동에 앞서 무작정 크기를 키울 수는 없다”고 밝혔다.
황해비단고둥. 껍데기가 얇지만 단단해 붉은어깨도요새는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준상,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모래 주머니를 키운 것으로 먹이 처리 능력은 32% 증가에 그쳤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소화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도요는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멀리 먹이를 찾아다녀야 한다. 2011년까지는 먹이활동에 하루 5시간 미만을 보냈지만, 2017년 13∼16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해도 먹이 섭취율은 과거보다 85%나 줄었고, 어딘가에서 부족한 먹이를 채워야 한다. 연구자들은 “기존 갯벌을 대체할 만한 고급 먹이터를 새로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논문에 적었다. 해마다 4만4000여 마리가 이 갯벌을 찾는 붉은어깨도요 개체수는 이미 29% 줄었다. 연구자들은 “장차 이 세계적 멸종위기종의 생존율과 번식률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기사가 인용한 원문 논문 정보:
Zhang S?D, Ma Z, Choi C?Y, et al. Morphological and digestive adjustments buffer performance: How staging shorebirds cope with severe food declines. Ecol Evol. 2019;00:1?11. https://doi.org/10.1002/ ece3.501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서울, 경기 국내 전력소비량 32.4% 사용”
지난해, 수도권 전력소비 크게 늘어…전력자립도 비중도 같이 높여야
2018년 국내 총 전력소비량은 52만6149GWh(기가와트시)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최대 111년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더위가 덮친 '역대 최악 폭염'으로 인한 계절적 요인과 역대 최대치인 연간 수출액이 전년 대비 5.5% 증가한 6051억6900달러(중소기업 수출액 1087억달러 포함) 기록에 따른 경제적 요인이 전기 사용 증가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광역자치단체 기준으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한 지역은 경기도로 전국 소비량의 23.3%에 해당하는 12만2696GWh를 사용했다. 다음은 충남(9.9%), 서울(9.1%), 경북(8.7%), 경남(6.7%), 전남(6.5%), 울산(6.4%) 등이다. 전년 대비 전력사용 증가는 경기도와 울산광역시가 각각 6.8%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자료제공=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18 지역에너지 통계연보(2019-02-13)'에 따르면, 2017년도 전력 발전량은 55만3530GWh이다.
전력을 가장 많이 생산한 지역은 충남으로, 전국 발전량의 23.8%에 달하는 13만1천897GWh를 생산했다. 그다음으로 발전량이 많은 지역은 경북(15.2%), 전남(11.9%), 인천(11.3%), 경기(11.2%), 경남(10.0%) 등이다.
이는 충남과 인천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경북과 전남에는 원자력발전소가 다수 분포돼 있는 지역적인 요인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력발전량 비중 후순위로는 대전 0.0%, 광주 0.1%, 서울 0.2%, 충북 0.2%, 대구 0.5%이다.
<자료제공=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
전력자립도(전력생산/전력소비)는 충남 262.86%, 인천 255.19%, 전남 196.80%, 경북 185.02%, 경남 160.38% 등이다. 전력자립도 후순위는 서울 1.82%, 대전 1.96%, 충북 5.21%, 광주 5.53%, 대구 17.38%이다.
충남은 전력소비량(9.9%) 2위, 전력생산량(23.8%) 1위, 전력자립도(262.66%) 1위로 전력생산량의 62% 이상을 타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반면에 서울은 전력소비량(9.1%) 3위, 전력생산량(0.2%) 공동 15위, 전력자립도(1.82%)에서는 17위로 광역자치단체 중 꼴찌의 불명예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전력생산과 소비 구조의 특징으로, 전력 생산과 소비 지역이 다른 이유는 충남 사례와 같이 발전소가 밀집된 지역에서 주로 수도권의 전력을 공급하는 배후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력 다소비 수도권 지역인 서울과 경기를 합하면, 국내 총 전력소비량의 31.7%를 사용한다. 하지만, 자체 전력 발전량은 11.4%이다. 이는 국내 총 전력소비량의 20.3%를 외부 지역에서 공급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기준으로 전력 다소비 수도권 지역인 서울과 경기를 합하면, 국내 총 전력소비량의 32.4%를 사용했다. 이는 2017년 대비 0.7%가 증가한 것이다.
서울(9.1%), 대구(3.0%), 대전(1.9), 광주(1.7%) 등 인구 밀집 주요 도시는 전력 소비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전력자립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82%, 17.38%, 1.91%, 5.53%로 저조한 편이다.
특히 서울은 광역 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전력자립도가 낮고, 타 지역에 크게 의존하는 전력소비 도시이다.
2017년 전력발전량은 842GWh에 불과했는데, 전력소비량은 46,294GWh로, 자체 전력생산 보다 약 55배를 더 소비했다. 서울 다음으로는 대전이 자체 전력생산량의 52.2배, 충북 20.3배, 광주 18.3배, 대구 5.86배 순이다.
전력자립도(전력생산/전력소비) <자료제공=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
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회장 박태윤)는 "에너지정의 차원에서 지역 전력 생산 및 소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전력자립도가 미미한 광역자치단체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 감축을 위한 건물효율화 사업과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통해 전력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속적인 대학의 기후변화 적응 및 녹색문화 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교육통계 및 대학정보공시제도에 기본적인 대학의 환경관련 정보를 수집해 공개해야 한다"라며, 이를 통해 "대학 스스로 환경관련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대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로써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국공립대학, 에너지목표관리대학 및 배출권할당대상대학이 대상인 환경정보공개제도를 모든 사립대학에 확대해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김봉운 기자 bongwn@hkbs.co.kr
코끼리가 그린 코끼리
‘실직 상태’ 코끼리 코에 붓을 쥐여준 장사꾼과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침팬지 콩고
타이의 관광지에서 코끼리는 조련사 마훗의 지시로 놀랄 만큼 정교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코끼리가 그림을 그린다. 긴 코로 붓질을 한다. 아래로 곧게 향하는 직선, 부드럽게 휘어 올라가는 곡선, 강약이 조절된 붓 터치. 마침내 푸른색 코끼리 한 마리가 캔버스에 나타난다. 여백도 적당하고 색깔 배치도 완벽하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로 수백만 건 조회된 이 영상을 보고 놀랐다. 아무리 코끼리가 영리하다지만, 이제 예술가까지 된 것인가? 코끼리 미술가의 탄생?
‘코끼리 미술가’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가장 분명한 경계는 예술이었다. 인간만이 도구를 쓴다는 주장도, 정치를 하고, 슬픔을 나누고, 언어를 사용한다는 주장도 다 깨졌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인간만이 예술을 한다는 것이다.
코끼리 미술가는 이 주장마저 부순 것일까? 현재로써 이 영상은 ‘사기’에 가까운 거 같다. 코끼리 뒤에 서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마훗(코끼리 조련사)이 귀를 잡아당기며 지시하고 있다. 아래로 잡아당기면 아래쪽으로 긋고, 꾹 누르면 붓을 누르라, 뭐 그런 식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붓을 조종하는 파일럿이 있다.
베스트셀러 <털 없는 원숭이>로 잘 알려진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도 이 코끼리 미술가를 비판한 적이 있다. 본디 좋은 뜻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타이는 전통적으로 코끼리를 노동에 이용하는 나라다. 동물보호 의식이 전세계에 퍼지면서 타이 정부도 변화를 받아들였고, 1990년 코끼리의 벌목 노동을 금지했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가끔 선의로 포장되는 법. 수많은 코끼리가 ‘실직 상태’에 놓이고, 맡아줄 사람이 없어지면서 생명 또한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무리의 미술가들이 아이디어를 낸다. 코끼리들에게 붓을 쥐여주자. 그 그림을 팔아 코끼리 생계를 잇게 하자. 이들은 ‘아시아코끼리 미술과 보전 프로젝트’라는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전직 코끼리 노동자들을 위한 특별 캠프를 세운다.
그런데 일부 캠프의 코끼리 그림이 물감을 흩뿌린 추상화에서 명확한 대상이 있는 구상화로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이 코끼리에게 세밀하게 지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재단과 무관하게 코끼리를 데리고 그림을 그려 파는 장사꾼이 관광지에 나타났다. 또 하나의 ‘코끼리 서커스’가 된 것이다.
코끼리 미술가의 존재에는 회의적이었지만, 데즈먼드 모리스가 예술적 잠재력을 인정한 동물이 있다. 짧은 생을 살다 떠난 침팬지 ‘콩고’였다. 모리스는 당시 영국 런던동물원에서 일하며 <주 타임>이라는 텔레비전용 동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유인원을 대상으로 예술 기원을 연구하려 했던 그의 눈에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새끼 침팬지 중 유난히 똑똑했던 콩고가 눈에 띈다. (당시에는 전시효과가 좋은 새끼를 생포하기 위해 어미를 먼저 죽이는 사냥 방식이 선호됐다. 새끼는 죽은 어미 곁을 떠나지 않는다.) 미술가로 ‘선택’된 콩고는 다른 침팬지들이 사는 동물원 우리에서 빠져나와 특별 시설에서 모리스 부부와 전담 사육사 손에 길러졌다. 매주 일정한 시간에 콩고에게 미술 시간을 주었다. 따로 가르치는 사람은 없었다. 연필이나 붓 그리고 캔버스의 광활한 공백이 어린 침팬지에게 펼쳐졌을 뿐이다.
침팬지 콩고가 그린 그림에 대해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예술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상호대칭성에 끌리다
처음에는 한두 살 아기의 낙서처럼 의미 없는 선이 그어졌다. 미술 시간이 거듭되자, 일정한 유형이 보였다. 콩고는 활짝 펼쳐진 부채꼴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거꾸로 선 부채꼴, 점으로 된 부채꼴 등 유형은 변형, 발전되고 있었다. 콩고는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부채꼴을 펼치곤 했으며, 사람과 마찬가지로 상호 대칭적인 것에 끌리는 듯했다. 한번은 그림 그리기를 멈추게 하자 불같이 성을 냈다. 콩고는 그림에 몰두했다.
‘예술 하는 침팬지’는 당연히 화제를 모았다. 미술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1957년 9월,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콩고의 나이 세 살 때였다. 격렬한 논쟁으로 평단이 들썩거렸음은 물론이다. 콩고의 부채꼴 그림이 ‘반사적인 근육 경련’이라고 깎아내리는 평론가도 있었지만, ‘타시즘’(그림물감을 뿌리는 화법)을 거론하는 이도 있었다.
어쩌면 콩고가 예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대신 우리는 예술의 기원을 추측해볼 수 있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 우리 조상은 대형 포유류를 사냥하게 된다. 고도의 전략과 협동이 필요하고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라 쉽지 않지만, 한번 성공하면 성취감을 맛보는 동시에 양식을 배불리 나눠 먹을 수 있다. 성취를 축하하기 위해 축제를 벌였으며, 다음 사냥 때까지 생긴 여유 시간에 생존과 관련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예술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침팬지 무리에서는 왜 예술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침팬지는 여전히 하루 시간 중 절반 이상을 식물을 씹어 먹는 데 쓴다. 초식동물인 코끼리도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생존을 위해 바친다.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이 침팬지 무리가 작전을 짜서 원숭이를 사냥하는 걸 보았지만, 그 횟수는 구석기시대 인간처럼 자주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콩고의 작품이 비인간 동물의 예술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임은 틀림없다. 모리스는 “비천한 원숭이가 그림 그리는 일에 거의 강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예술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며 콩고의 작품이 라스코의 동굴벽화를 이해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도 콩고의 작품을 보고는 한마디 던졌다. “침팬지 손은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군. 반면 잭슨 폴록의 손은 완전히 동물이야!” 콩고는 자신이 그리는 형태에 일정한 틀을 갖추려 애썼고, 잭슨 폴록은 인간의 미적 경향과 유형을 파괴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콩고는 훗날 ‘예술’이라 일컬을 만한 어떤 것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폴록은 그것을 해체하고(혹은 해체하는 예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술 역사의 처음과 끝을 꿰뚫는 통찰이었다.
예술가 침팬지의 말로
콩고는 그림 384점을 남기고 평단에서 사라졌다. 그의 쓸쓸한 말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3년간의 실험이 끝나자 특별대우를 받았던 이 예술가 침팬지는 인간 세계에서 침팬지 세계로 돌아갔다. 어릴 적 인간 손에서 길러져 손짓과 행동 등 ‘침팬지 문화’를 배우지 못한 콩고는 동물 우리에 갇혀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열 살이던 1964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초로 예술적 잠재력을 인정받은 침팬지 화가는 고향에서 납치되어 삶의 절반을 인간에게 빼앗긴 ‘반인반수’였던 것이다.
런던(영국)=남종영 <애니멀피플> 기자 fandg@hani.co.kr 3.20 한겨레21 1254호
참고 문헌: 데즈먼드 모리스의 <예술적 원숭이>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 레모나 모리스와 데즈먼드 모리스의 [Men and Apes]
그들은 진정한 동물의 대변자였을까
‘사랑과 혁명의 낭만주의자’ 동물해방전선,
6천 마리 밍크 방사 20년 뒤 밝혀진 새로운 사실
2004년 동물해방전선의 활동가가 독일의 한 모피농장에서 밍크를 구출하는 장면. 동물해방전선 홈페이지
크라운힐 농장은 계곡 깊숙이 자리잡아 눈에 띄지 않았다. 1998년 8월 영국 남서부 뉴포레스트. 어둠이 깔리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경비견을 잡아 가두고 철조망을 끊고 농장에 침입했다. 밍크를 꾀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불과 2시간 만에 밍크는 밖에서 대기하던 수송팀에 인계됐고, 뉴포레스트의 넓은 숲과 늪지로 풀려났다. 케이지(우리)에서 ‘해방’돼 처음 자유를 맛본 밍크는 6천 마리나 됐다. 그해 겨울, 두꺼운 털을 명품 패션에 헌납하고 죽음을 맞았을 생명이다.
모든 이가 비난에 나서다
급진주의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전선(ALF)이 벌인 사건이었다. 당시 가장 ‘핫한’ 동물단체였다. 점조직처럼 비밀 운영하면서 농장 습격과 사보타주(태업), 방화 등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다른 동물단체를 합한 것 이상의 주목을 받았다.
동물해방전선은 동물의 목숨 값을 사람의 목숨 값과 똑같이 여겼다. 영국과 미국 시골에 산재한 공장식 농장의 닭과 돼지를 풀어주는 직접행동을 1년에도 수십 차례 했고, 가끔씩 대학 실험실의 원숭이, 수족관의 돌고래도 대상으로 하는 비밀작전을 수행했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이 단체를 테러단체로 올려놨고, 활동가들은 감옥을 드나들었다. 단체의 중심인물인 배리 혼은 방화 등의 혐의로 동물권 활동가로선 이례적인 18년형을 받고, 네 번째 옥중 단식을 하던 중 숨지기도 했다. 1982년에는 초콜릿바 ‘마스’에 쥐약을 넣었다며 대중을 혼란에 빠뜨렸고, 한참 뒤 그런 적이 없다고 밝혔다. 마스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충치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사건은 많다.
‘뉴포레스트 밍크 해방 작전’은 너무 매끄럽게 진행돼 자신들도 놀랄 지경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비난의 후폭풍이 몰아쳤다. 이런 식으로 나라 전체가 눈을 부라리고 달려든 적은 없었다.
동물권 운동에 동정적인 영국 언론조차 비난에 나선 데에는 밍크가 방사된 뉴포레스트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숲과 습지라는 점이 컸다. 밍크가 새로운 포식자로 등장해 생태계가 교란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됐다. 학자들과 동물단체도 이번 캠페인에는 등을 돌렸다. 스티븐 해리스 브리스틀대학 생물학과 교수는 사건 직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운 좋은 밍크는 물새와 토끼를 잡아먹고 연명하겠지만 대부분 굶어죽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밍크의 운명은 물론 지역 야생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라 비난했고, 현재도 모피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동물 존중’의 마크 글로버는 “모피 반대운동에도 재앙, 밍크에게도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동물해방전선이 연대운동의 분위기를 깨는 ‘풋내기 활동가’나 ‘관심종자’들이 모인 단체라는 시선은 동물단체들 사이에서 더욱 강해졌다. 사실 뉴포레스트 밍크 해방 작전이 진행된 1998년 8월, 이미 영국은 모피농장 금지를 앞두고 있었다. 노동당 정부는 모피농장에 압도적인 반대 여론이 있다면서, 이미 한 달 반 전에 관련 법 제정을 공언했다. 영국에는 모피농장이 11곳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2000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모피농장 금지법을 제정한다).
반면 동물해방전선은 자신들만이 진정한 동물의 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캠페인 전략을 구사했다. 단체에서 유일하게 공개되는 인물인 대변인 로빈 웹은 사건 직후 “노동당 정부가 모피 금지법 제정 약속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으므로 정당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도 밍크들이 죽을 거라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유를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밍크는 영국에서 이미 외래종으로 정착했다. 다른 종을 싹쓸이하지 않는다. 일부는 살아남아서 자연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뉴포레스트 사건의 비밀
이 사건이 재조명된 것은 20년 가까이 지난 2018년 2월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경찰 비밀요원 한 명이 동물권 단체 활동가로 위장해 뉴포레스트 작전에 참여했다고 폭로했다. 국가적인 난리법석을 떨면서 경찰이 미제로 남겨놓은 사건의 범인 중 하나가 경찰이었다니!
영국 경찰은 의외로 보도를 순순히 인정했다. 숨진 아이의 이름을 도용해 ‘크리스티 그린’으로 동물해방전선에서 위장 활동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린은 2000년 초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친구 장례식을 간다면서 활동가 네트워크에서 사라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위장 활동으로 심적·신체적 고통을 겪었고, 경찰을 그만둔 뒤 자신이 감시했던 동료와 스코틀랜드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전했다. 혁명과 거짓말 스토리의 결말이 사랑이라니! 영화 같은 일이었다.
동물해방전선은 20세기 후반 동물권 신장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활동이 역사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얼핏 보기엔 그렇다. 불법을 가리지 않고 터뜨리는 방식의 캠페인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사건 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좇는 언론의 본성에 맞닿았다. 동물해방전선이 풍기는 혁명적 낭만주의도 젊은 활동가의 지속적인 투신을 이끄는 요인이었다. 반면 대다수 동물단체는 무대 뒤 정책과 제도의 영역에서 일했다. 지루하고 더디고 영웅이 되지 않는 방식이지만 이런 행동이 용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은 동물해방전선으로 대표되는 급진주의가 예전처럼 회자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바가 제도에 많이 수렴됐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동물에게도 내재적 권리가 있어 이를 침해할 수 없다는 ‘동물권’ 주장을, 삶의 질을 개선해 고통을 줄이자는 ‘동물복지’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이미 유럽연합은 산란계의 케이지 사육을 금지했고, 밍크 등 모피농장은 거의 사라졌으며, 유인원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다.
동물해방전선은 동물의 진정한 대변자였을까? 이 질문은 6천 마리 밍크의 운명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6천 마리 중 4천 마리 이상이 엽총의 표적이 되거나 그물에 걸려 농장에 다시 갇혔다. 운 좋게 빠져나간 밍크는 처음 만난 야생의 삶터에서 당황해 굶어죽거나, 용맹스러운 밍크는 포식자로 정착해 다른 종의 죽음을 이끌었을 것이다. 어쨌든 수많은 생명이 잠시나마 ‘세상 뒤집어지는 경험’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그들에게 무한의 공포였는지, 환희에 찬 도전이었는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공포였을까 환희였을까
어둠을 깨고 잠입한 활동가들의 폭죽 같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었음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산 동물을 역사의 제단에 바친 제사장이었을까?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동물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불가지론에 빠져서도 안 되고 쉽게 단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런던=남종영 <애니멀피플>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21 2.20 제1251호
부산을 적정도시로 <4> 도시 현실 진단- 공원
신도시·외곽 늘고 원도심은 제자리 … 공원조차 ‘양극화’
- 1944년 부산 3% 공원부지 지정
- 6·25전쟁 거치면서 무용지물
- 한때 1인당 21.3㎡ 추진했지만
- 현재 6.1㎡로 3분의 1도 못 채워
- 신도시 덕 공원비율 는 아이러니
- 원도심 폐·공가를 근린공원 조성
- 도보로 10분내 찾을 수 있게 해야
부산 중구 영주어린이공원(왼쪽)과 해운대구 우동 아이파크공원(오른쪽). 신도시는 택지개발의 반대 급부로 공원이 크게 는 반면, 원도심은 공원 규모도 작을 뿐더러 찾기도 쉽지 않다. 김성효 김종진 기자
공원은 도시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생물학적인 역할은 물론이고 여유로운 삶, 즉 ‘삶의 질’을 논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산의 도시계획 속 공원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지난 70여 년 동안 부산의 인구당 공원 면적은 찔끔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신도시는 법적으로 공원 비율이 정해져 사정이 낫다.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원도심에선 소공원조차도 찾기 힘들고, 공원도 대부분 산비탈에 위치해 있다. 공원이야말로 부산시의 개발 지향적 도시계획의 단면을 보여주는 분야다.
■있던 공원도 사라졌다
지난 15일 오후 부산 서구 초장동 에코하우스. 서구를 가로지르는 산복도로 중에서도 가장 윗길가에 자리잡은 이곳에서는 부산의 원도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부산시의회 박민성(더불어민주당·동래 1) 의원이 취재진에게 ‘공원을 찾아 보라’고 했다. 산 중턱에서부터 부산 앞바다까지 빽빽하게 가득 찬 건물 속에서 작은 섬처럼 용두산 공원이 있고, 한참 떨어진 산 정상에 조성된 대청공원 정도가 보였다. 박 의원은 멀리 영도구 신선동 일대를 가리키며 “저기도 원래는 도시계획상 공원이었는데 주택가로 변했고, 지금은 아예 재개발 구역이 됐다”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처음 도시계획상 공원이 등장한 때는 1944년이다. 이때 32곳 198만6000㎡(조선총독부 고시 제14호)가 공원 부지로 지정됐다. 이는 전체 도시계획구역의 약 3%로, 1960년 계획인구 40만 명을 기준으로 1인당 5㎡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34곳의 공원 시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고지대, 사찰 혹은 방치된 해변가여서 공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광복과 전쟁을 거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1950년대 행정력 부재를 틈타 무허가 건물이 난립해 부전·송도·문현·향취공원 등은 공원이라 부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영도제2·범일·대신·구덕도로공원 등은 학교가 들어서 공원 기능을 잃었다. 결국 32곳 중 7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공원으로 남은 곳은 단 9곳뿐이다.
현재 부산의 1인당 공원조성 면적은 6.1㎡. 첫 계획을 세운 지 75년이 지났지만, 최초 계획(1944년 5㎡)에서 겨우 1.1㎡ 늘어났다. 박 의원은 “부산시가 공원의 생태적 기능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2000년대 ‘5분 내 공원에 접근하도록 공원 녹지를 확충한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며 “당시 1인당 도시공원면적 목표가 21.3㎡였지만 개발 논리에 막혀 절반도 실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격차가 더 문제
사례1.서구 초장동에서 50년째 사는 박모(72) 할머니는 공원에 가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젊은 시절엔 용두산 공원 정도는 가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고 다리가 불편해지면서 이마저도 힘들어졌다. 다닥다닥 붙은 산복도로에 사는 박 할머니는 “동네에선 공원이라는 걸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사례2.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사는 이모(여·40) 씨는 거의 매일 유치원생 아들을 데리고 공원에 간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데도 많지만 차를 타고 10분만 가면 각각 다른 유형의 공원에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여름철엔 물놀이 할 수 있는 공원으로, 봄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곳으로 필요에 맞춰 움직인다”고 말했다.
19일 부산시 자료를 보면 해방 후 지금까지 총 519개 공원이 조성됐다. 1945~1964년 조성된 공원은 한 곳도 없고, 1965년이 되어서야 공원이 생기기 시작해 20년 동안 15개 공원이 신규 조성됐다. 공원 조성이 본격화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부터다. 1985~1994년 74곳, 1995~2004년 130곳, 2005~2014년 229곳, 2015~현재 71곳이 조성됐다.
이처럼 공원의 숫자와 면적은 늘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지역별 격차가 극심하다. 1985년 이후 조성된 공원 504곳 중 85곳이 기장군에 위치한다. 그 뒤를 강서구(72곳), 북구(65곳), 해운대구(49곳)가 뒤따랐다. 이들 4개 구·군의 공원 수를 합하면 271곳으로,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이들 지역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외곽’과 ‘신도시’다. 땅값이 비교적 저렴해 공원을 조성하기 수월하고, 의무적으로 공원을 조성해야하는 신도시가 많아 공원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인구 대비 과잉개발 논란을 빚은 신도시 덕에 공원비율이 늘어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셈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1970, 1980년대 과도한 택지개발사업으로 자연자원의 고갈, 자연환경 훼손 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정부는 택지 개발에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했다. 보고서는 이 덕분에 1980년대 1인당 공원면적 4.3㎡이 2000년대 9.6㎡로 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보면 개발 면적에 따라 1인당 3~9㎡ 혹은 전체 개발 면적의 5~12%를 도시공원이나 녹지로 확보해야 한다.
이와 달리 원도심은 참혹한 수준이다. 1985년 이후 조성된 공원이 가장 적은 곳은 서구로, 2곳에 불과하다. 중구는 3곳, 동구는 4곳이다. 30여 년간 원도심권에 조성된 공원 수는 22곳에 불과한데 전체의 4.3% 수준이다.
이 같은 ‘공원의 양극화’는 지역별 ‘삶의 질’ 양극화 우려를 낳는다. 부산대 정주철(도시공학과) 교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신도시도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만든 거다. 공원과 녹지는 연결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도시계획상 계획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미국은 걸어서 10분 안으로 공원에 접근할 수 있는가로 도시의 질을 평가하기도 한다. 뉴욕의 경우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원에 도달할 수 있는 주민 수가 무려 96%에 달한다”며 “원도심은 폐·공가를 활용해 작은 근린 공원을 짓는 등 도시재생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산 안에서도 공원 양극화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신문 하송이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신중현:편곡 / 외국곡(I Can't Help My Self) 달콤한 사랑 - 펄씨스터즈 출처: 다음 블로그 둔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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