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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5.3.1~3.8 3월 1주

by 이성근 2025. 3. 9.

1.경제를 위해 윤석열을 파면하라 2.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이유 3. 극우에 대한 두려움과 악마화 넘어서기 4. 민주공화국의 갈림길에서 5. 점 보는 반역자들 6.가장 약한 존재를 잃은 이유 7. 한반도의 전환점 ‘2025 체제를 위하여 8. 12·3 내란 심리부검 9. 이토록 기묘한 서민의식 10. 윤석열의 나 혼자 산다책략

11. 진리가 너희만 자유롭게 하리라 12.,타락한 극우 종교의 정치화 13. 몽클레르는 벗어도 사교육은 못 줄이는 이유 14. , 무궁화폰, 진급, 유튜브내란 세력 감별법 15. “시대가 쇠퇴할 때 모든 경향은 주관적이다” 16. 헌법이 말하게 하라 17. 현직 대통령의 내란 행위가 일깨운 입법과제 18. 악은 어떻게 내면화하는가? 19. 윤석열의 끝이 보인다 20. 양극화 심화, 지속가능 성장 막는다

21. 지금, ‘이재명 주 4일제가 틀린 이유 22.박세현, 직을 걸고 윤석열 구속취소즉시항고 관철하라 23. 내란 정국 '최악의 장면', 윤석열 석방은 법원의 '자해극'

 

경제를 위해 윤석열을 파면하라

돌이켜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3대 개혁의 실패, 자영업자의 심각한 매출 감소, 재정 악화, 경제성장의 둔화와 같은 여러 측면에서 실패했다.

첫 징후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나타났다.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기획재정부는 20223, 갑자기 53조원의 초과 세수가 있다고 발표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재정 부족을 강조하던 기재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였다. 법인세 증가 때문이라 했지만, 한 달 만에 이렇게 큰 변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재부가 이전 문재인 정부를 속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윤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도 추진했다. 처음 제시된 비용은 500억원 미만이었지만 이후 실제 이전 비용은 경호·보안 시설 이전과 추가 공사 등을 포함해 수천억원으로 늘어났다는 추정이 있다. 청와대를 시민에게 공개하면 매년 약 300만명 방문객이 생기고, 주변 상권에서 최소 연간 2000억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고 홍보했다. 이전 비용은 500억원 미만으로 제시하며 경제적 타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제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기존 글로벌 가치사슬 대신 가치외교에 기반한 안보경제를 내세웠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고 나토 정상회의에서 중국과의 경제적 거리두기를 시사했다. 그 결과 중국과의 교역량은 크게 줄었다. 대중 수출은 취임 당시 월 134억달러에서 올해 191억달러로 줄었다. 수입도 감소했지만 수출 감소폭이 더 커 무역적자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노동정책도 강경 일변도였다. 2022년 화물연대 파업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규정하면서 노동계와 갈등이 깊어졌다. 69시간 근무제 논란도 발생했다. 20233월 정부는 충분한 노사정 협의 없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특정 주에는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논리로 국민의 반발을 샀었다. 지금 69시간 근무제를 기억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도 경제 혼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었고, 회사채 금리와 기업어음 스프레드가 급등하면서 중소기업과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20229, 강원도가 보증한 레고랜드 사업의 채무 2050억원 상환을 거부하면서 채권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이 여파로 단기 자금시장과 기업 금융이 위축됐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까지 어려워졌다. 정부는 뒤늦게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 대책을 발표했지만 경제위기 대응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에서 특히 힘든 사람들은 자영업자였다. 팬데믹 시기보다 더 어렵다고 느낄 정도였다. 2024년 소매판매지수는 21년 만에 최대 하락폭인 2.2% 감소를 기록했고, 2022년부터 3년 연속 줄었다. 매출 감소로 다중채무자의 연체율은 2%를 넘었고, 중소득·고소득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도 1.7%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서비스업 경기가 얼어붙은 2020~2021년에도 연체율이 0.5%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지금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은 겉모습뿐이었다. 대규모 감세로 인해 재정 운용 여력은 급격히 줄었다. 기재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속된 세금 감면으로 세수 결손이 커졌다.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예산을 쓰지 않고 남기거나, 기금 여유자금을 끌어오거나 지방정부에 가야 할 예산을 지급하지 않았다.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긴축재정을 실시한 것이다.

 

결국 경제성장률은 2023년에 1.4%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은 1.8%였다. 미국은 2.9% 성장을 했고, 일본은 1.7% 성장을 했다. 전쟁을 하던 러시아도 3% 이상 성장했다. 2024년에는 총선 영향으로 1분기 성장률이 1.3%였지만, 이후 2분기 -0.2%, 3분기와 4분기는 각각 0.1%에 그쳤다. 여기에 경고용내란 사태를 일으킴으로써 GDP6조원 정도 없애버린 GDP 킬러가 되었다.

윤 대통령은 경제 운용에서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했지만 실제 경제정책들은 그렇지 않았다. 저출생, 생산성 저하, 사회개혁과 같은 중요한 경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과의 동행이 더 이상 어렵다. 우리 경제의 회복과 미래를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의 파면이 필요하다./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경향 : 2025.03.02.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이유

조 바이든이 승리했던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 공화당 지지자 상당수가 선거 사기를 의심하고, 진짜 승자는 도널드 트럼프라고 믿었다. 투표 기계의 표 바꿔치기나 트럼프를 찍은 투표용지 대량 파기 등으로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사기 증거는 발견된 바 없으며 각종 문제 제기는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지만 잘못된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같은 유형의 음모론은 이제 한국으로 건너와 변주되고 있다.

음모론은 승리 확신과 패배의 좌절이라는 심리적 불일치를 해결해준다. ‘인지 균형 이론이 설명하는 바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이런 기제에서 벗어나 합리적 판단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미국 코넬대 고든 페니쿡 교수의 조사 결과, 트럼프 지지자들은 정치 지식이 많을수록 도리어 헛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음모론 신봉자들은 주류 언론을 불신하며 주로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를 통해 정치 지식을 얻는다. 음모론이 고독을 달래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노르웨이에서 연구한 바로, 외로움을 많이 겪을수록 음모론을 더 믿게 된다. 음모론 신봉자는 정부 기관과 사법부도 믿지 않는다. 미국의 정책 싱크탱크 애스펀연구소는 이것을 진실과 신뢰의 위기라고 이름 지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그의 변호인들, 그의 정당, 일부 수구 개신교 집단, 정권이 지속해야 뭐라도 하나 더 얻을 것 같은 지도층 인물 등이 음모론을 이용한다. 게임에 졌어도 권력 이양을 거부하는 반민주적 이기심이다. 이들은 애국심, 신앙심, 당파성 등 집단적 가치를 내세우며 종북 세력과의 전쟁 프레임으로 지지자를 동원한다. 개인 차원의 인지 불균형을 집단 차원으로 끌어내 분노로 표출되게 하는 선동 방식이다. 이들은 국가 및 언론 등 사회기구들이 기득권 체제 안에 있다고 손가락질하며 신뢰를 떨어뜨리고, 그만큼 자신들의 정당성을 과시한다. 이 기구들이 진실을 말할수록 집단정체성을 체화한 신자들은 도리어 그것을 거짓의 증거로 받아들이며 분노하고 심지어 폭력에까지 이르게 된다.

음모론은 저비용 고효율 수단이다. 이번 헌법 재판정에서도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들은 법리 논증보다는 중국 개입설 등 논거 없는 주장에 치중했다. 언론이 사안의 다면적 측면을 다루기보다 자극적인 거짓 발언을 따옴표로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쉬운 방법이다. 원고 준비도 없이 강단에 올라 종북’ ‘사탄’ ‘동성애신앙의 적들을 거론하며 편견과 차별의식에 호소하는 일부 개신교 목사의 설교가 고효율인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공공종교연구소의 조사로는,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의 약 3분의 2가 부정선거론을 믿는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의 사이언스지 게재 논문을 보면, 허위 사실이 진실보다 트위터’(현 엑스)에 공유될 가능성이 70% 이상 높고, 진실은 1500명에 도달하는 데 거짓보다 약 6배 더 오래 걸린다. 음모론은 카톡방’ ‘텔레그램방등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신념 확인, 강화, 공명, 확장의 공간에서 퍼지므로 주류 언론의 팩트 체크로는 속수무책이다.

양극화하는 정치 현실에서, 그리고 시선 끌기 언론 경쟁 현실에서 해결은 쉽지 않다. 당대 정권이 가짜뉴스를 잡겠다며 나서는 것은 부작용만 낳는 것을 우리는 그간 잘 보았다. 관련 연구를 보면, 공영방송이 잘돼 있는 나라일수록 사회적 신뢰가 높고 음모론이 자리 잡기 힘들다. 신뢰받는 보도로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정상화가 시급한 이유다. 장기적으로, 미디어 교육 및 분석적 사고 공교육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분석적 사고 능력은 음모론의 유혹에 강하다는 게 그간의 연구 결과다. 각 사회 주체가 참여하는 조합주의 방식으로 사회적 신뢰와 소통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차기 대선 후보자가 있길 바란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경향 : 2025.03.02.

 

극우에 대한 두려움과 악마화 넘어서기

문재인은 악마예요.” 한 장년층 여성 수강생이 문재인 정권의 실정 사례를 들어달라는 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곧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그리 답했다. 그에게 문재인 정권은 구체적인 실책을 비판하며 정정을 요구할 대상이 아니라, 저주해야 할 존재였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경기도의 한 공공도서관에서 지역 주민 대상으로 정치 특강을 하는 자리에서 겪었던 일이다. 보통 공공도서관에서는 정치 관련 강좌는 개설하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워낙 뿌리 깊어 정치를 공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편향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치의 현실과 관련해서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여러 차례 지자체와 대학 협동 과정으로 강의를 맡아 할 때, 한국 정치의 현실보다는 주로 외국의 역사적 경험에 바탕해 민주주의 원론에 가까운 내용을 정치 영화나 드라마 등을 활용하며 다루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정권의 등장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지, 일회성 특강으로나마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강의 요청이 빈번하게 들어왔다. 그래서 맡아 한 강의였는데, 그런 일을 겪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날 강의의 실제 수강생은 오히려 강사인 나였다. 촛불혁명이 탄생시켜 높은 정당성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권에 대해 강고한 적대감을 보유한 사람들의 외침을 접했기에. 그것도 배움과 사회경제적 자원이 꽤 풍부해 아쉬울 것 없이 고운 노년을 맞이해 갈 여성에게서.

누군가를 악마로 몰아 저주하는 건, 그 누군가와의 공존과 상생을 거부하고 그를 기어코 배제-추방-절멸시키겠다는 의지의 피력과 행동의 개시이다. 이는 민주-공화의 규범과 질서에 반하는 정도가 도를 넘어선 행태이다. 작금의 탄핵정국에서 극단, 특히 극우로 불리는 세력의 등장은 그런 의지에 기댄 혹은 그런 의지를 키워가는 집단이 조직화되었음을 가리킨다. 이런 세력의 등장을 우려하는 이유는 보통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을 조장·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런 폭력의 최고 형태가 바로 테러와 전쟁이다.

내가 만났던 그 여성이 극단 세력의 일원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강의 때 만난 그 후로 그를 본 적도 없고 소식을 들을 일도 없다. 지금은 저주를 멈추고 안락하고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가 아니어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정치 세력에 대해서는 물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마저 악마로 몰아 저주하는 이들을 거리와 광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내 주변의 꽤 많은 이들이 극우 준동을 넘어서서 발흥의 시대에 들어서 있는 것 아니냐며 근심한다. 그 와중에 극우 파시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를 만나기도 하고,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을 히틀러의 나치가 지배했던 시기의 독일과 유럽에 비견하는 분석과 해석을 내놓은 이를 만나기도 한다. 또 최근의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에서 극우 정당들이 득세한 선거 결과를 보며 극우 발흥이 세계의 공통적 현상이라는 데에 주목하는 이를 만나기도 한다. 한국에서 극우의 깊은 연원과 발흥 배경을 정치·경제, 종교·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찾는 이를 만나기도 한다. 극우 발흥의 시대에 걸맞은 극우학(혹은 극우사회/정치론)’을 조성하는 지식 담론 지형이 만들어지고 있는 때이기도 한 것이다.

극우 준동 넘어 발흥의 시대

극우의 발흥은 8년 만에 다시 조성된 이번 탄핵정국의 특질로 주목해야 할 현상임이 분명하다. 학문적 조명도 필요하고, 정치적·사회운동적 대응 전략 모색도 필요하다. 그 두 가지의 연결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때 유의하고 전제할 게 있다. ‘의지적 낙관주의로 현실을 타개하며 오히려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사항들이다.

첫째, 극우를 단지 악마로 바라보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만 규정해서는 극우의 발흥과 위험성을 제어하고 해소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민주공화제의 규범과 질서를 위협한다고 해도, 그들은 그 규범과 질서의 밖에서 침탈해 들어온 이들이 아니다. 즉 그들은 우리가 결함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제라고 부른 규범과 질서의 작동 구조 안에서 형성되고 등장했다. 암적인 존재이겠으나 어느 날 갑자기 지옥에서 솟아올라온 악마는 아닌 것이다. “문재인은 악마예요라는 비명 소리는 귀청을 찢기는 했어도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마음을 사지도 못했다. 법원 침탈과 여의도와 광화문의 윤석열 탄핵 반대고함은 세상에 놀람과 충격을 선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암은 다스림의 대상이기에 초연함을 유지하며 냉철하게 대해야 한다. 암적 존재임을 넘어선 악마라 해도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보며 넘어설 방법을 찾는 논의와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 극우의 악마적 무서움보다 취약함을 찾아야 한다.

둘째, 극우 발흥 시대의 극복을 위해서는 압도적 다수 시민의 동의와 협동에 기반한 힘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단기적 관점에 기댄 특정 정치 세력의 선택에 앞서 민주공화제의 원활한 작동과 유지의 명분과 실리를 세워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좋음을 증명해야 한다. 특정 정치 세력을 선택한다고 해도 이를 제대로 수행할 의지와 역량을 가진 이들이어야 한다. 극우의 취약함은 많은 이들이 민주공화제의 좋음을 이미 알고 있으며, 그 좋음을 구현하고 지키기 위해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 있다. 폭력의 세기가 강해지면 그 저항의 세기가 결국 커진다는 것도 모른다. 극우는 광주항쟁 때 시민군이 만들어졌던 것, 12·3 사태 때 군대에 맞서 국회를 지키러 시민들이 달려갔던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방 투쟁 혹은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렸던 저항이 특정 이념과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것도 모른다. 저항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삶의 추구를 보장하는 민주공화제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기에 다수의 동의와 협동을 끌어내는 초극의 힘을 가졌다는 걸 모르는 것도 극우의 취약함이다. 극우가 아닌 이들도 이를 잊고 있다면 얼른 상기하고 오랫동안 기억해야 하리라.

무지의 오판에 조롱·비난 말아야

셋째, 극우의 민주공화제를 향한 시민의 존재와 의지의 발현에 대한 무지를 조롱의 소재와 비난의 무기로 삼지 말아야 한다. 조롱과 비난은 반발감과 적대감으로 취약함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어 주는 치명적 실책이다. 그들 스스로 무지에 따른 오판임을 체험해야만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의 무지가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혐오를 우선하다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의도적으로 조장된 것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 자기 삶의 불투명함과 망가짐과 공허함을 좌파라고 딱지 찍은 이들에 대한 헛된 미움과 혐오를 통해 해소하려는 초라함의 귀결이었음을 자각할 수 있다. 부정선거론의 수용과 비상계엄의 정당화 그리고 탄핵 반대 같은 정치적 인식과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해야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분단-전쟁-산업화-민주화-양극화를 거치며 만들어져 온 삶의 서사와 자기연민을 조롱하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귀 기울여 듣고 눈길을 던져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서로를 악마화하지도, 저주하지도 않을 대안적 서사의 구성이 가능해진다. 극우 독재를 낳은 분단체제라는 미로에서 빠져나올 통합의 서사를 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한정된 지식에 기대어 극우 개념을 남용하거나 누군가를 쉽사리 극우로 몰아가는 것도 삼가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전제로 삼아 이재명 대표가 주창하고 나선 중도보수론을 보자면, 그건 단지 선거전략의 차원이 아닌 극우 발흥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것으로 심화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략적 포석과 정책적 의제의 선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깊이 배어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 우측으로 가 멈춘 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나간 이들을 극우라고 명명해 고립시키려는 담론의 효과는 이미 제한적이다. 좌우만이 아니라 상하로도 움직이며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 삶 속에 깃들어 있는 기구한 사연들을 끌어내고 묶어내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그래야 진심을 알 수 없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넘어설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헌정체제의 울타리를 단단히 하고 그 내부 공간을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기를 높일 수도 있다. 즉 민주공화제를 지켜낼 사회적 약속의 강건함을 키울 수 있다. 비단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아니어도 국민을 대표해 국정을 책임지려는 정치 세력이라면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극우 발흥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담론 정치는 공포를 조장하고 적대성을 가증시키거나 지지 확장을 위한 정략에 머물면 안 된다.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고 시대를 넘어설 용기와 지혜를 북돋아야 한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향 : 2025.03.03.

 

민주공화국의 갈림길에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다시 갈림길에 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헌법 제1조는 2016년 촛불광장에서 시민들이 크게 외치고 노래로 널리 부르면서 우리에게 다시 다가왔다. 연인원 17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눈바람을 맞으며 촛불로 지켜낸 민주공화국이 12·3 내란과 1·19 서부지법 폭동으로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

현대 민주주의 역사가 그랬듯이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위기와 퇴행, 복원의 진자운동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두 사건 이후 전개되고 있는 민주주의 수호 세력과 내란 옹호 세력 간의 내전에 버금가는 대립은 한국 민주주의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 문제를 세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위험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결과에 대한 도전과 부정이다. 민주화 이후 대선 때마다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모두, 선거에서 패배한 쪽이 선거 결과를 문제 삼았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스스로 주관해 치른 선거에서 패배하자 부정선거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최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하자 제기한 부정선거론의 한국판 주장이다. 음모론에 기초한 부정선거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12·3 내란의 핵심 원인이었다. 음모론과 결합한 부정선거론은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를 흔들며 광장의 정치를 작동하게 하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더구나 보수 진영의 핵심 인사와 집권여당의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부정선거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둘째, 극단화된 세력이 정치적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서부지법 폭력 사태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의 보루인 법원을 침탈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는 일부 극단화된 세력의 일탈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폭력을 목도하고도 적지 않은 시민들이 이를 거부하기를 주저한다. 한 조사(‘시사인’·225)에 따르면 응답자 중 70%는 서부지법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지만, 여전히 20%저항권 행사라고 옹호했다. ‘모르겠다’ 10%를 포함하면 3분의 1에 약간 못 미치는 시민들이 정치적 폭력을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 같은 조사에서 계엄의 정당성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전체 보수 응답자의 40%) 80%저항권 행사라고 답했으며 전체 탄핵 반대 세력으로 범위를 확장해도 57%가 저항권 행사라고 인식했다.

셋째, 보수 정치권과 극우 사회운동 세력의 본격적인 결합이다. 미국에서 티파티 운동과 우익 기독교 운동단체, 공화당의 연합이 대표적 사례다. 보수 정치권과 극우 사회운동 세력은 정치적 기회 구조와 열성적인 지지의 동원을 서로 교환하면서 연합해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한다. 지금 우리는 한국 정치에서도 같은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 위기로 인해 한국이 전통적 의미의 일당독재로 전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위기가 2016년 탄핵 위기 때처럼 헌정주의 틀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선거는 유지되지만, 행정부가 권력을 남용해 선거의 공정성과 경쟁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경쟁적 권위주의체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우선 세 가지 과제가 시급하다.

먼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민주주의 다수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서로 다른 열정과 이해관계를 공적인 영역에서 제도를 통해 조정하는 체제다. 이러한 면에서 민주주의는 잠정적인 균형이다. 각자의 진영을 위해서라도 서로의 차이를 넘어 민주공화국의 기본원칙인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한목소리를 낼 때다. 민주주의 수호 원칙에 동의한다면 비록 정치적 반대자라 해도 포용하고 경계를 넘어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둘째, 민주주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폭력과는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민주주의 다수 연합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폭력의 배제다. 민주주의는 어떠한 폭력과도 공존할 수 없다. 셋째,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헌정 체제의 결정을 전복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해야 한다.

나누어진 광장에서는 혐오와 극단의 언어가 넘쳐나지만, 현재 우리에게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우리는 열성적 당파주의자 이전에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고 지켜온 민주주의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과 교수 경향 : 2025.03.03.

 

점 보는 반역자들

12·3 내란사태 이후 나는 예전에 연구했던 조선 시대 역모 사건 기록을 다시 훑어보고 있다. 종교학자가 왜 그런 걸 공부했냐면,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역자들의 언어와 행위에서 종교적인 상징체계를 찾으려는 관심 때문이었다. 왜 지금 그것을 다시 보느냐면, 오늘날 내란 혐의자들의 행적에서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조선왕조 시기의 역모, 즉 반란 모의 사건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한 자료가 남아 있다. 17세기 이후 수십건의 역모 사건에 대한 고발, 수사, 신문, 재판, 처벌 과정을 담은 추국(推鞫) 문서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고변서(告變書)라고 불린 고발장, 압수된 증거 문서들, 관련자들의 진술서, 판결문에 해당하는 결안(決案)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사태 동안 우리가 언론을 통해 매일 접하는 내용과 유사한 성격의 문헌들인 셈이다.

전근대 왕조 국가도 현대 공화정과 마찬가지로 국가 전복을 노리는 반란의 주모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포함한 극형에 처했다. 다만 조선의 경우에는 반란 모의 단계에서 적발되더라도 그것을 실행한 것에 준하는 강력한 처벌을 했다는 차이가 있다. 반란 가담자는 미수에 그치더라도 엄히 처벌했다는 점은 오늘날과 비슷하다. 반역자들의 음모가 성취되면 그들 자신이 권력을 잡아버린다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성공한 반란은 처벌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란 참여자 가운데 조선 시대 모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다. 그는 부하 군인을 성추행하여 불명예 제대한 뒤 사주를 전문으로 하는 역술인으로 활동하며 군내 사조직을 통해 내란 모의 과정에 깊이 개입하였다. 특히 경찰이 입수한 그의 수첩에는 정치인, 언론인, 방송인 등을 반국가세력으로 지목해 수거하여 숙청하겠다거나,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겠다거나, 대통령이 장기 집권 후 후계자를 지목할 것이라거나 하는 초현실적인 계획들이 담겨 있었다. 조선 시대 기록에서 괴서또는 흉서라고 언급되는 이런 문서들에는 반역자들의 모의 내용이나 세계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가 전근대의 반역자들과 닮은 또 다른 측면은 점복 등 술수에 심취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사주팔자와 관상을 근거로 조언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와 자주 나랏일을 상담했던 무당 비단아씨의 증언에 의하면 노상원은 내란 관련자들의 얼굴과 생년월일로 신점을 치며 계엄 계획을 세웠다. 이 모든 것은 조선 시대 역모 사건에서 흔하게 일어난 일이다. 17세기의 몇몇 사건 기록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반란 모의자들은 스스로 반역의 길흉에 대한 점을 치거나, 유명한 점쟁이를 초빙해 목욕재계를 하고 점사를 받거나, 왕으로 추대할 인물의 사주를 풀어보거나, 국운을 점쳐서 거사일을 고르거나, 서로의 관상을 보면서 자신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확인하곤 하였다.

노상원의 점복에 대한 가십성 보도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자신의 계획에 불리한 점괘에 대해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했다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 사례에도 역모 혐의자들은 반역이 실패할 것이라는 점괘를 받으면 다른 술사를 찾아가 다시 묻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번이나 점을 치고는 했다. 점복을 다루는 이런 태도는 운명에 대한 순응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욕망에 대한 초자연적인 확신이다.

억압받는 민초들의 저항이라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조선 시대 역모 참여자의 다수는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은 좌절된 권력 획득의 욕망을 비현실적인 반란 계획과 비밀스러운 점복 행위로 표출하였고, 전근대 국가는 그것만으로도 그들을 철저히 처단하였다. 이번 내란의 위험성은 그런 과거의 반역자들과 유사한 세계 인식을 지닌 인물들이 행정부와 군을 장악하고 입법부와 사법부를 실제로 무력화하려 한 데 있다.

민주공화정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 21세기의 반역자들이 무능하고 저열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악용한 권력을 박탈한 뒤의 조치들이다. 내란 참여자들이 믿은 바와는 달리, 국운은 점복으로 예측하거나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것이 아니다. 몇 사람의 저열한 찬탈자가 아닌 주권자인 시민의 집단적인 의지가 온전하게 구현되는 제도를 만들어 나간다면 이 국가의 운명은 길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를 배신한 반역자들의 처단에 실패한다면 흉한 미래가 기다릴 것이다. 점괘를 뽑아보니 그렇다.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한겨레 : 2025.03.03.

 

가장 약한 존재를 잃은 이유

지난달 10일 늦은 오후에 인터넷에서 처음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 기사를 보았다. 믿기지 않았다. 나에게 학교는 일터고, 내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해. 좋은 곳으로 가라는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찾는 게 먼저였다. 한편으로는 한 교사의 일탈 행위를 두고 전체 교사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해법이 만들어질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그날 이후 교육공무원법, ·중등교육법, 학교보건법 등 관련 법규의 일부 개정 법률안이 15건이나 발의되었다.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사건인 만큼 여야가 모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법안을 발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문제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기보다 정신질환으로 치료받는 교사를 잠재적 위험군으로 내세워 교사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대부분의 법안에서 교직 수행이 어려운 교사에게 임용권자가 직권휴직의 조처를 강제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교육청마다 질환교원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의 열리지 않던 것을 활성화해 운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정신질환으로 휴직했던 교사가 복직할 때 정상 근무가 가능한지 확인을 필수화하겠다는 것이다.

20234월 교사노동조합연맹이 교사 11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26.6%가 최근 5년 이내에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교사 네명 중 한명은 우울증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최근 5년간 교사의 우울증 진료 비율이 2.3배 증가했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도 있다. 그 원인이 최근 몇년간 부쩍 힘들어진 생활지도와 교권 침해 등 교직 생활의 어려움에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3월에 의욕 넘치고 밝았던 동료 교사가 힘든 학생, 학부모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다가 몇달 안 가 병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았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는 마음을 쓸 수밖에 없고, 그 마음을 다칠 때 한 사람의 세계에는 균열이 생긴다. 교사는 이를 잘 치료하고 회복해서 다시 학생들에게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정신질환을 겪은 교사를 모두 체에 거르듯 위원회에 회부하고 교직 수행 가능 여부를 판별하게 되면 많은 교사가 정신적 고통을 숨기고 치료받기를 거부하여 더 큰 문제를 낳게 된다. 한술 더 떠 교원 선발 과정에서 정신병력이 있는 지원자를 배제하겠다는 법안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안전망은 하나의 원인 때문에 뚫리지 않는다. 가해 교사가 컴퓨터를 부수고 동료 교사를 공격하는 등 전조 증상이 있었지만 직권휴직이라는, 있는 제도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돌봄교실 이용 학생을 교실 앞에서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코로나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한 뒤로 돌봄교실 학생들이 혼자 하교하게 되었고, 개선 없이 몇년간 지속된 상황도 있었다. 교육 현장에서 인권침해, 각종 분쟁 위험을 이유로 폐회로티브이(CCTV)를 구석구석 설치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이 모든 느슨함이 구멍을 만들었고, 그 구멍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가장 어리고 약한 존재를 잃었다.

지난달 18일 교육부는 고위험 교원과 일반적인 교사의 정신질환 문제를 분리해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존 제도에 앞서는 긴급 조치를 할 근거를 마련할 것이며 학생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인적, 물적 자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국가 차원의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지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는 학교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학교와 교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제야 하늘이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아, 네가 없는 봄을 맞이해서 정말 미안해. 좋은 곳으로 가.’

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한겨레 : 2025.03.03.

 

한반도의 전환점 ‘2025 체제를 위하여

2025년은 역사적인 해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지 120년 되는 해이자, 1945년 해방으로 광복을 맞은 지 80년 되는 해이다. 나는 요즘 이 역사적인 해가 어쩌면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설렘 속에 살고 있다.지금은 대전환의 시대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등장이 몰고 온 국제정치적 태풍은 기존의 모든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1945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지속돼온 국제질서가 매일같이 와르르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미국 패권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트럼피즘은 확실히 미국 패권 시대의 종언을 상징한다. 미국 패권의 붕괴와 함께 기존의 정치, 경제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냉전체제가 허물어지고,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의 종언은 국제정치적 구질서의 붕괴, 특히 냉전체제의 최종적 와해를 뜻한다. 이런 변화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칠 지역은 단연 한반도이다. 한반도는 신냉전은커녕 냉전도 사라지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땅에선 30년 전에 사망한 냉전의 유령이 떠돌아다닌다.

트럼프가 뒤흔드는 세계질서 중에서 가장 낡은 질서가 한반도의 냉전체제이다. 그렇기에 그의 전복 행위가 한반도에서는 의외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최근에 나온 김동기의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는 충격적인 책이다. 앞서 지정학의 힘이란 저작을 펴낸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트럼프가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에 몰고 올 거대한 변화를 전망한다. 한반도의 미래는 비관적이지 않다. 빠르면 올해 가을쯤 트럼프가 평양에 갈 것이다. 북한핵 동결, 종전선언, 평화협정, -미 국교 수립 등이 예상된다.

그의 낙관적 전망은 최근 미국 학계와 정계의 기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지난해 1229일 뉴욕타임스 칼럼 세계를 뒤흔들 트럼프-김정은 협상 파트 2’도 비슷한 기조다.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과 국교 수립은 미국에 커다란 이득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인 한반도에 마침내 평화를 가져오고,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주며, 미국의 최대 유일의 지정학적 위협인 중국에 집중할 수 있도록해줄 것이다. 요컨대, 북한과 손을 잡는 것이 미국의 최대 현안인 중국 견제에 최선책이라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미중위원회20221월에 내놓은 보고서 중국-북한의 전략적 균열에서도 북한과 중국 사이에 “70년 이상 쌓인 긴장과 적대의식을 역사적으로 되짚으며, 이 틈새를 미국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동기의 결론은 가슴을 뛰게 한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 이익 때문이다. 미국이 최대의 라이벌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전략적 도구로 끌어들이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한반도에는 엄청난 변화가 닥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상황 변화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올해에 들이닥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체제를 ‘2025 체제라고 부르고자 한다. 2025 체제는 냉전체제 종식이라는 한반도의 거대한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대한민국과 새로운 한반도, 나아가 새로운 동북아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체제여야 한다.

2025 체제는 먼저 시대착오적인 냉전체제의 유산을 걷어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국가보안법 등 냉전 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고,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며,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평화공동체, 세계평화 체제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트럼프의 세계는 결코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는 이념과 가치보다 이익과 거래를 앞세운다. 정부 출범 이후 그가 세계에 보여준 것은 이기적 강대국의 야만적 모습이다. 트럼프의 철저한 탈이념적 거래주의가 이념적 비극으로 점철된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면, 이는 이 전환시대의 최대 역설이다. 이 역설적 상황을 우리는 한반도에 영구 평화를 정착시킬 절호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외세에 의해 120년 전 국권을 잃고, 80년 전 국가가 분단된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치유할 호기를 결코 가벼이 흘려보내선 안 된다.

이제 낡은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한반도에 냉전의 겨울이 가고, 평화의 봄이 꿈틀대고 있다. 우리는 2025 체제를 통해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젖혀야 한다. 5월에 치러질 장미 대선은 대전환의 시대를 헤쳐갈 비전과 용기를 가진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 2025.03.04

 

12·3 내란 심리부검

윤석열은 특유의 장광설로 가득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전시·사변에 못지않은 국가 위기 상황이라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방위사업법 개정 추진, 국방예산 삭감, 검사·감사원장 등 줄탄핵 시도를 근거로 들었다. 입법, 예산안 처리, 공직자 탄핵은 입법부 고유 권한이다. 윤석열 주장대로라면 모든 여소야대는 망국적 위기 상황이고, 계엄은 일상이 될 것이다. 윤석열이 국가적으로 비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상대권을 휘둘렀다는 뜻이다.

12·3 내란이 발생하고 석 달 넘게 지났지만 이 돌연한 난행의 심층 동기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혹자는 명태균 게이트가 방아쇠가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이 가설은 명씨 사건이 불거지기 6~7개월 전부터 윤석열이 비상대권을 입에 올린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한 가지 전제할 것은 국가적 위기 상황은 아닐지언정 윤석열 나름으로는 모종의 절박한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그게 아니라면 비상계엄은 미치광이 권력자의 순수한 난동이고, 그 동기를 밝히는 건 정치학이 아니라 심리학의 몫이 될 것이다.

검찰의 윤석열 공소장과 탄핵심판 최후진술에 단서가 있다. 윤석열은 지난해 3월 말~4월 초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 등에게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처음 말했다. 총선이 목전이었고 런종섭 파동, 황장무 회칼 발언, 윤석열 대파 발언 파문 등으로 여당의 패색이 짙은 때였다.

당시 여당 상황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당을 이끌던 한동훈은 윤석열과 결별한 상태였다. 나름의 대중적 지분을 가지고 윤석열과 긴장관계를 형성한 첫 여당 대표였다. 윤석열로서는 국회는 물론 당까지 잃을 수 있는 정치적 위기였고, 이를 일거에 해결하는 수단으로 비상대권을 떠올렸을 수 있다. 윤석열이 작년 8월부터 한동훈을 조치 대상으로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윤석열은 지난해 1124일 김용현 등과 차를 마시다 야당의 판검사 탄핵 가능성,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 추진 등을 성토하며 비상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이틀 전에는 김용현을 불러 어느 나라 국회에서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을 탄핵해서 재판대에 세우냐’ ‘특정인을 수사하는 검사 3명을 탄핵하는 것도 말이 되느냐국가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은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도 같은 이유를 들어 망국적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이 정부에서 검찰·감사원이 무엇이었나 떠올릴 필요가 있다. 두 기관은 정권 보위의 전위대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검찰 통치는 안팎의 위기에 직면했다. 하나는 김건희 수사를 둘러싼 윤석열 사단 내부의 균열이요, 다른 하나는 검사 탄핵을 통한 야당의 검찰 통제 시도였다. 감사원도 비슷했다. 내부에선 전 정권 때 임명된 감사위원들이 감사원의 통치수단 역할에 비토를 놓았고, 야당은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하며 견제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

윤석열은 애당초 정치라는 걸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정치를 대신한 게 검찰·감사원·방통위를 통한 강압적 통치였다. 이 기관들을 앞세워 야당과 전 정권을 두들기고 언론을 옥죄었다. 여당은 바람잡이, 치어리더였다. 그런데 이 통치수단들이 뜻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국회는 국회대로 거대 야당이 장악했으니, 윤석열 입장에선 심대한 통치의 위기였다고 할 만하다. 통치기구의 위기가 곧 통치의 위기인 셈이다

이럴 때 가능한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를 복원해 야당 협조를 구하려 애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3의 통치수단을 강구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택한 건 후자였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군대를 동원했다. 즉흥적·우발적 결정이 아니었다. 수개월의 의식화·조직화를 거친 나름 치밀한 거사였다. 윤석열 공소장에는 그가 비상대권이 필요하다며 수개월에 걸쳐 김용현 등을 가스라이팅하는 과정이 제법 상세하게 담겨 있다.

이런 가설로 보면 술에 절고 무속에 심취한 어리석은 윤석열과는 사뭇 다른 인물의 모습이 그려진다. 권력의지는 충만하나 정치를 할 생각은 없는 독선적 통치자의 일그러진 초상이 떠오른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시대착오적 색깔론도 나치 법학자 칼 슈미트의 정치론처럼 적과 동지를 갈라치려 발명해낸 맹신에 가깝다고 본다. 12·3 내란은 아둔한 폭군의 비이성적 난동이 아니라 그릇된 정치이성의 소산이었다. 그래서 더욱 위험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정제혁 논설위원 경향 : 2025.03.05.

 

이토록 기묘한 서민의식

학계 시절 교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간혹 이질감이 들 때가 있었다. 돈 잘 버는 친구를 만났더니 가난한 교수에게 쏜다며 술값을 내줬다든가, “교수는 서민이라 살기 힘들다는 유의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듣는 시간강사들이 민망해졌다. 교수와 가난과 서민은 내가 끝내 적응할 수 없는 낱말의 조합이었다.

물론 교수도 사정이 같지는 않다. 직급, 전공, 소속 대학, 물려받은 자산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래도 교수의 평균 연봉이 대략 1억원이라면 2024년 기준 근로소득자 상위 7% 이내의 고소득이다. 연구활동비, 발표토론비 등 기타 수입도 있고, 맞벌이도 많아서 실제 가계소득은 훨씬 큰 경우가 흔하다. 자신이 중산층도 못 되는 서민이라고 여기는 대학교수의 자의식은 기묘했다.

교수들은 왜 그럴까? 그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는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비해, 또 학부만 나온 대기업 직장인에 비해 소득이 낮은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탓일 수 있다. 씀씀이도 이유일 듯하다. 사비로 비싼 외국 책을 사거나 학회, 답사 등 해외여행을 해야 할 일이 드물지 않다. 문화비 지출도 많고, 자녀 유학 등 교육비 지출도 많다. 집이 서울인 지방대 교수는 주거비도 이중으로 든다. 역사적인 이유도 있지 않을까? 지금의 교수들은 대부분 대학의 민중 지향성이 강했던 1980~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다. 그 부채의식이 남아 서민적인 마음가짐만은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도 같다.

마침 대학교수인 페이스북 친구의 글이 딱 이 주제였다. 해외여행 이야기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게 불편하다는 글을 읽고 쓴 소감이었다. 해외여행이 일상사인 좁은 세계 속에서 살아온 탓인지 누군가는 그걸 과시적 소비로 여길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단다. 대학원생 때는 교수가 제일 가난하지같은 말을 하는 교수에게 화가 났지만, 지금은 동료가 그런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고. 문학의 쓸모는 타자에 대한 공감이라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젠더나 섹슈얼리티의 타자, 심지어 비인간 타자에게는 관심이 가도, 계급적 타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진보적이며, 약간의 기부로 부채감을 퉁치고 마는 패션 좌파가 된 것은 아닐까 자문하고 있었다.

그의 진중한 성찰을 읽다가 얼마 전 처와 노후 대책을 의논하면서 주택연금을 받으면 그리 힘들지는 않겠다며 안도한 일이 떠올랐다. 마흔 중반까지도 자가는 꿈꾸지 못했는데 어쩌다 삶이 변했다. 서울 전셋값 폭등에 쫓겨 경기도 외곽 아파트를 할인 분양받아 이사 온 게 십여년 전이다. 시간이 가도 아파트는 분양가 회복을 못 했다. 그사이 우리는 이웃살이에 빠져들었고, 결국 이웃 생활의 중심지에 땅을 샀다. 땅은 빚으로 샀지만 건축비는 무대책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아파트값이 치솟았다. 심지어 여기까지 집값이 좀 올랐다. 그 덕에 집 팔아 작은 집을 지었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이다. 그리고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그 폭등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이 멍들었던가? 성찰의 글을 읽다 보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졌다.

당시 아파트값 폭등으로 자산이 불어난 이들이 제법 된다. 이들도 교수처럼 기묘한 서민 감각이 충만한 듯하다. 달랑 집 한채 가졌을 뿐이라며. 이들이 세금으로 고통받을까 정치권이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상속세 면제 한도를 10억원에서 18억원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여론이 시끄럽길래 민주당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몇곳에 들어가봤다. 열성 지지자 커뮤니티는 예상대로 대찬성이었다. 취미 커뮤니티들의 반응이 충격이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자기 일로 대환영이었다. “아파트값 오른 게 얼만데 진작에 한도를 올렸어야 했다거나, “이참에 증여세도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난무했다. 상속세 내려고 집 팔아야 했던 서민의 아픔을 덜어주는 신의 한 수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이 조치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10~18억원 사이 아파트는 압도적으로 서울,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강남은 초고가 지역이라 오히려 적고, 소위 마용성으로 상징되는 중상급지역에 집중되어 있다고. 언론은 국민의힘 지지층을 겨냥한 조치라고 보도하는 듯한데,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 서울 수도권 고소득 상위 중산층으로 바뀐 지 꽤 됐다. 산토끼와 집토끼를 모두 기쁘게 하려는 양수겸장은 아닐까?

윤석열의 내란 이후에 자신이 갑자기 보수가 된 것 같다는 이들을 자주 본다. 본디 진보 성향이었건만 내란에 맞서다 보니 어느덧 기존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가 된 것 같다는 말이다. 이해가 된다. 이재명 대표는 아예 중도 보수 선언을 했다. 나는 중도층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헌정 체제 수호, 국가와 민족 공동체의 통합, 국방력 강화 등을 다짐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상속세 면제 한도 인상은 물론 반도체산업 노동시간 규제 완화, 상위 1%쯤의 금융소득자에 대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종합부동산세 완화, 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이 중도 보수라는 것이다. 검토한다는 의제가 모두 부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들이다. 서민의 땀과 피와 눈물 위에서. 이렇게 두 거대 정당이 감세와 규제 완화 경쟁에 나섰다.

땀 흘려 일하면 연소득 1500만원만 넘어도 근로소득세를 낸다. 상속은 10억원을 받아도 세금 한푼 안 낸다. 면세 한도를 내리기는커녕 아예 18억원으로 올리자는 민주당이 정강에서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평등한 기회를 갖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단다. 상속과 금융투자에 대한 우대 앞에 차별받는 노동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참에 강령도 바꾸면 어떨까?

지금은 내란 막기에 힘을 모아야 하니 탄핵 이후의 세상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들 한다. 주로 민주당 쪽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래놓고 자기들은 탄핵 이후의 세상을 거침없이 그리고 있다. 내란을 막자면서 왜 부자가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지 모르겠다. 내란을 막자면서 왜 당신들이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윤석열은 나쁘지만, 세상의 고통이 모두 그의 탓은 아니다. 어떤 슬픔들은 당신들에게서 나온다.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우리의 응원을 받으며.

조형근 | 사회학자 한겨레 : 2025.03.05.

 

윤석열의 나 혼자 산다책략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지난해 10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이유를 묻자 “(본인이) 살기 위해 됐다고 주장했다. 국가 안보와 국민 삶을 최종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인 대통령을 자기 생존을 위해 했다니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그동안의 행태들을 볼 때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명씨는 윤 대통령 부부와 내밀한 대화를 해온 인물이 아니던가.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이 발언을 다시 떠올렸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펴낸 책을 보면, 지난해 1210일께 윤 대통령은 자진사퇴 요구에 이런 입장이었다고 한다. ‘결국 탄핵으로 가겠지만 당이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때까지 몇번이고 탄핵을 계속 부결시켜달라.’ 이때는 국회의 1차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직후였다.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지고 경제와 외교 불안이 가중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위만 챙기겠다는 속셈이었다. 그의 속내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경호처의 관저 봉쇄로 1차 체포영장 집행(13)이 무산되며 공권력 간 초유의 충돌 사태가 우려되는 시점이었던 7, 그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국군통수권자의 안전만 생각해라.’

이렇듯 윤 대통령의 자기중심주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을 지켜주는 경호원과 정당한 공무 집행을 하려는 경찰이 어떻게 되든, 국민들이 두 진영으로 갈라지든 말든, 경제와 외교가 어떻게 되든 별 상관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오직 자신(그리고 아내)만 생존하면 된다는 심보였다.

탄핵심판 최후진술은 그의 민낯을 보여주는 결정판이었다. 의도적 거짓말과 확증편향, 그리고 선동으로 채워진 최후진술은 살아남기 위한 교활한 책략이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게 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 만천하에 드러난 범죄 행위마저 자신이 짜낸 대안 서사에 억지로 끼워맞췄다. 자신은 털끝만큼도 잘못한 게 없으며, 모든 게 야당·노동단체 등 반국가세력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공작이라는 것이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을 더 빨리 믿는다. 충분히 반복하면 조만간 믿게 된다는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선동 교본을 떠올리게 한다.

더 섬뜩한 것은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을 방증하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그는 서부지법 폭동을 일으킨 청년 등에게 미안하다면서도 또다시 시민들을 선동했다. 다수 시민이 겪을 고통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다만, 그는 계엄 선포가 왜 123일이었는지에 대해선 침묵했다. 하필 하루 전 명씨의 황금폰 공개폭탄선언이 나오고,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 표결을 한주 앞두고 친한계에서 찬성 시사 발언이 나오던 때였다. ‘정권의 성역김건희 여사에 대한 포위망이 좁혀 들어오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내란 사태를 겪으며 권력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사상가 엘리아스 카네티는 권력의 본질을 꿰뚫은 저서 군중과 권력에서 살아남는 자가 권력자라며 이렇게 말한다. “권력의 아주 오랜 구조, 즉 권력의 심장부는 바로 권력자가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대가로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는 1920~30년대 불안과 동요가 들끓고 결국 나치즘과 파시즘이 발호했던 독일·오스트리아 등에서 청년기를 보낸 뒤 평생을 군중과 권력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바쳤다. 그의 통찰력에 기대면 윤 대통령의 행동들도 상당 부분 설명이 된다. 그는 자기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정적들을 싹 다 잡아들이라 했다.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북한의 공격을 유도해 전쟁이라도 벌어졌다면 얼마나 많은 이가 희생당했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는 최후진술 뒤에도 변호인을 통해 선동을 그치지 않고 있다. 마치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닥치는 대로 건물과 숲을 파괴하는 괴물을 연상케 한다. 그는 짧은 기간임에도 이미 정치·경제·외교·역사·의료·과학·검찰·군대 등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을 망가뜨릴 만큼 망가뜨렸다. 이제 그만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거짓 선동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이런 민주주의 파괴자를 감싸고도는 여당의 행태다. 일부 의원이 헌법재판소를 쳐부수자는 망발을 해도 지도부는 내버려둔다. 그게 제 무덤을 파는 행위인 줄도 모른다. 무책임하고 아둔한 국민의힘 지도부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는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박현 논설위원 한겨레 : 2025.03.05.

 

진리가 너희만 자유롭게 하리라

한 달이 넘었다. 146건 중 단 1건만 삭제됐다. 지난 1월 말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유튜브, 페이스북, X에 올라온 허위·조작정보나 혐오·폭력 조장 게시물을 해당 플랫폼에 신고한 결과다. 페이스북 7건은 신고가 반려됐다. 그 외에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99명이 체포됐다든지 하는, 허위로 판명됐고 입에 담기도 어려운 콘텐츠들이 여전히 노출돼 있다.

유튜브 등은 게시물 규정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거대 디지털 플랫폼들은 점점 모니터링에서조차 손을 떼고 있다. 유튜브는 20236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거짓 콘텐츠를 더 삭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선을 불과 1년여 앞둔 시점이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도 지난 1팩트체커정책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용자들이 직접 게시물에 추가 설명을 달 수 있는 커뮤니티 노트기능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에게 인수된 X가 걸어갔던 길과 비슷하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도록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누가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존 밀턴이 쓴 <아레오파지티카>의 경구가 떠오른다. 언론 자유를 다룬 이 고전은 이른바 사상의 공개시장자동조정의 원리로 알려져 있다. 이미 언론으로 자리 잡은 거대 플랫폼 역시 진리의 승리를 믿고 있는 것 같다.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입증되지 않은 가정에 기반한 정치적 생각이라 할지라도,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대로 된 민주사회의 핵심입니다. 특히나 선거철에는요.” 유튜브가 밝힌 정책 변경 이유다.

현실에서 진리는 패배에 가까운 스코어를 기록 중이다. 상당수 루머들은 당당히 하나의 사실로 자리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정에서까지 부정선거론이 설파된다. 과거에는 자신의 의견이 소수이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말을 삼갔고 침묵의 나선을 타고 묻혔다. 지금은 유튜브를 보고, 그 유튜브를 본 서로를 보고, 소리 지르며 더욱 확산한다. 전한길씨처럼 설득된 사람도 생겨난다. 나도 수많은 게시물을 보다 세뇌당할 뻔했다.

물건을 파는 것처럼 사상의 유통을 시장에만 맡겨둔다면, 시장균형에 따라서는 진리가 허위에 패배하는 일도 가능하며 그런 일도 그냥 놔둬야 한다. 그사이 또 다른 시장에선 누군가가 돈을 번다. 약자를 혐오하고, 폭동과 계엄을 옹호하며, 부정선거론에 열을 올리는 콘텐츠마다 조회 수가 주렁주렁 열리고 수익으로 연결된다.

정작 밀턴은 자유지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당시 진리 탐구와 종교 자유를 제약했던 가톨릭 등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어선 안 된다고 했다. 진리가 허위를 무조건 이긴다면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홍성구 강원대 교수에 따르면 밀턴은 언론 자유가 공동선의 증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봤고, 공동선을 훼손하는 경우에는 정당하게 억제될 수 있다는 공화주의적 입장에 더 가까웠다. 선과 악을 숙고할 수 있는 시민적 덕성도 기본으로 생각했다.

토머스 제퍼슨도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전제는 모든 시민이 신문을 읽고 토론하며 적극적으로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퍼슨은 자유가 덕성을 가진 시민들의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만 좋은 것이며, 사심 어린 당파적인 사람들이 홍수처럼 쏟아내는 거짓말보다 공동체를 더 효과적으로 타락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존 네론 <최후의 권리>).

상대편과 토론하고 설득하기보다 자기편을 향해 선동하고 열광하는 데 익숙한 거대 플랫폼과 그를 닮아가는 오늘날의 세계를 밀턴과 제퍼슨이 생각한 건전한 공동체로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플랫폼의 게시물 규제가 사적 검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최소한의 외부 감시도 없애는 그들도 믿을 수 없긴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머스크는 왜 메타의 조치를 환영했을까. 아무 말이나 던질 수 있는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사이, 우리는 정작 진리와 진짜 자유를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황경상 데이터저널리즘팀장 경향 : 2025.03.05.

 

타락한 극우 종교의 정치화

한때 개발독재 체제 아래 신음하던 민중의 눈물을 닦아주던 종교가 기독교다. 하나 교회는 권력에 순응하며 개인의 성공은 이끌었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외면했다. 이후 대중을 자본으로 보는 시장신학, 경영기법이 도입된 기업교회, 예수의 이미지와 말씀을 상품화한 천국경제가 뒤를 이었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을 추동하는 자본의 신을 숭배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발터 베냐민이 기독교 자체가 자본주의로 변형되었다고 한 말 그대로다. 욕망긍정의 신학이다. 일부의 극우 기독교인들은 이제 이 나라를 정교일치의 국가로 만들고자 광장으로 나온다. 혐오와 증오의 얼굴로 적을 찾으며, 온갖 욕설과 저주로 맑은 하늘을 오염시킨다.

정치의 사법화에 이어 정치의 종교화가 진행 중이다. 전자는 그나마 제도가 받쳐주지만 후자는 예측불허다. 극우 기독교는 선지자이승만이 추구했던 기독교가 통치하는 신정국가 창출을 목표로 한다. 현재 한국은 체제전쟁 중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공산국가의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북한을 선제타격하는 출애굽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 차별금지법 반대, 반무슬림, 난민과 이주민 반대, 세습교회 또한 전술이다. 법원 난동 사건에서 본 것처럼 터무니없는 저항권을 외치며 폭력을 정당화한다. 신도를 표로 계산해 대선과 총선, 시장과 군수 선거에도 개입한다.

독일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은 세속화된 신학으로 무장한 전쟁이었다. 십자가 대신 하켄크로이츠, 예수와 같은 히틀러, 게르만 민족의 선민의식, 절대악인 유대인 처단 등. 만약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그와 유사한 일이 이 땅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극우 기독교에 포위된 정치인들을 보면 기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탄핵 반대 집회에서 하나님도 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신성모독 발언을 한 전광훈 목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그들의 모습과 공수처·선관위·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숴야 한다며 민주공화국 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 공포의 역사가 재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익 기독교는 독자적인 신앙을 갖고 있다. 김진호 목사는 태극기는 애국 퍼레이드, 성조기는 구원자의 나라, 이스라엘 국기는 선민을 상징한다고 하며 이를 식민화된 신앙이라고 한다(<‘태극기집회와 개신교 우파>). 근본주의에 기반한 미국 보수주의 신학을 이식한 한국 기독교는 자국을 분열로 몰아넣는 그들과 여전히 깊이 연결되어 있다. 배제와 비타협의 한국 정치는 자신을 파멸시킬 괴물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어떤 경전도 돈을 벌어 거대한 교회나 절을 세우라고 하지 않는다. 정치적 상대방을 쳐부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국가를 지배해 권력을 행사하라고 한 적 없다. 그들은 종교소멸의 위기감에 처한 내부의 결핍을 리플리 증후군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보고 싶은 현실 이외의 것은 부정한다.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연속된 거짓말로 자신을 위로하고 주위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알뜰폰 장사를 한다. 군중을 도착된 맘몬()의 종교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광활한 우주에서 과연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지식도 거의 무에 가깝다. 하여 그들은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모든 종교의 교의와 조직은 영혼의 자유를 구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마약 같은 언설에 빠져 가던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수가 돈의 소굴이 된 성전을 채찍으로 정화하며, 헐어버리고 새로 짓겠다고 한 것은 하나의 우주적 존재인 자신의 참된 주인공을 회복하라고 한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는 선종의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정신 또한 마찬가지다. 분별과 집착하는 마음을 놓으면 바로 부처다. 그때 평화는 종교가 되고, 양심은 신이 되며, 자비와 사랑과 은혜의 실천은 교리가 된다.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주여, 저들을 용서해주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한 말을 따라 파산된 영혼들의 적개심마저 감싸는 성인의 후예들이 될 것이다/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경향 : 2025.03.06.

 

몽클레르는 벗어도 사교육은 못 줄이는 이유

개그우먼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이 역대급 조회수를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대치동 엄마들의 교복이라는 몽클레르 패딩과 영어를 섞은 교양미 넘치는 말투에 현실 고증이 놀랍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어디선가 한번쯤 본 것 같다는 간증이 쏟아졌다. 차림새만큼이나 주목받은 것은 4살 아들에 대한 사교육 밀착 지원이다. 이소담씨는 아들 제이미를 수학학원에 라이드한 뒤 차에서 내릴 새도 없이 영어학원 선생님과 통화를 한다.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고 제기차기 과외 선생 면접을 보러 가는 그는 제이미의 영재적 모멘트를 찾느라 분주하다.

극성맘이라는 공격이 가해지며 어느새 풍자는 조롱이 됐다. 명품으로 치장한 차림새가 집중포화를 받는 것 같지만, 실은 엄마가 온종일 아이의 사교육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그것이 자녀의 입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가 더 많은 탓이다.

엄마의 라이드는 셔틀버스를 잘 운영하지 않는 대치동 학원가의 상징이고, 제이미의 배변훈련 과외는 사교육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인프라 수준을 보여준다. 제이미맘이 걸친 명품은 사교육비를 아낄 필요가 없다는 경제적 여유의 방증이다. 틈틈이 깐깐한 면접을 봐가며 과외 선생을 고르는 것도 축적된 인맥과 정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20여년간 입시 전문가로 일한 조장훈은 대치동을 욕망의 최전선이자, ‘그 바깥의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곳이라고 했다.(2021, ‘대치동’) 대치동의 대입 성공담과 부동산 신화는 교육을 통한 계급 상승에 몰두하는 이들을 광범위하게 불러 모았다.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대치동 학부모는 4개 그룹으로 나뉜다. 1970년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대치동 원주민(대원족), 2000년대 재건축 붐과 함께 재입성한 대원족의 자녀들(연어족),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 전세를 얻어온 사람들(대전족), 대치동 학원에 자녀를 라이드하는 비강남권 거주자(원정족) 등이다.

대치동 학원가의 중심은 은마 사거리 인근에서 한티역까지의 구간이다. 실거주자가 되는 것은 제한적이지만 원정족은 교통수단의 발달과 함께 한없이 유입된다. 가까이는 서울 강북권, 멀리는 경기 동남부까지학령인구 급감에도 대치동 학원가는 굳건하다. 노골적인 경쟁사회에서 우리 아이만 도태되어선 안 된다는 불안의 크기는 전혀 줄지 않은 탓이다. 학원들은 더 어린 연령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자녀가 초등학생 때 입시 트랙을 태워야 한다는 초등 사교육 로드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4세 고시유명 영어학원 입학을 위한 ‘7세 고시선행·심화 학습 전문 수학학원에 보내기 위한 황소 고시등이다. 고시라는 말이 붙은 건 입학시험 통과에 대비하는 학원 수강이 필요할 정도로 준비 과정이 고되기 때문이다. 15분 만에 영어 에세이를 작성하게 하고 고등 수학인 미적분을 풀게 하는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대치동 패러디도 현실을 다 담기엔 역부족이다.

유아기의 과도한 사교육엔 우려가 크다. 어린 시절의 학업 스트레스는 뇌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4~7살은 전두엽 특정 부위들과의 연결망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단계인데 이 시기에 연결망이 과다하게 자극받게 되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추적 607세 고시’) 입시 성공담은 크게 회자되지만 더 많은 실패담과 후유증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영유아 사교육에 대해선 그 실태조차 모른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23년 사교육비 27조원에 영유아와 엔(n)수생은 빠져 있다. 온 가족이 자녀의 사교육에 매달리는 기간은 초중고 12년이 아니라 유치원과 엔수생 기간을 합쳐 최소 16년 이상으로 길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은행 총재가 강남 출신 학생에 대한 대입 상한선을 두자고 했을까 싶다. 하지만 대입제도를 고치고 교육열을 누른다고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다. 초등학교 일제고사가 폐지되고 석차를 매기지 않았더니, 전국적으로 수십개 지점을 가진 학원이 입학시험으로 아이들을 줄세우기 하고 있다. ‘내 아이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을 공략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니, 유아기에 영어 공부를 끝내고 이후로는 수학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는 공식이 나왔다.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의 힘이 빠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쟁사회에 균열을 내지 않으면 그 양태만 달라질 뿐 문제는 반복된다. 사교육비가 가계 소비를 짓누르고 저출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급여 진료의 팽창과 함께 수직 상승하는 의사 소득과 그에 따른 의대 열풍, 갈수록 줄어드는 양질의 일자리, 그냥 쉬는 청년들의 한숨이 모두를 더 격한 경쟁으로 내몬다. ‘대치맘 조롱에 몽클레르를 벗어 던졌다는 말은 나와도 사교육을 줄였다는 말은 잘 안 나오는 이유다.

황보연논설위원 한겨레 : 2025.03.06.

 

, 무궁화폰, 진급, 유튜브내란 세력 감별법

12·3 내란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가 준 뼈아픈 교훈이 있다. 말이 안 되는 음모론이라고 해서 함부로 무시할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 그날의 헌정 문란 사태는 우리의 인지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초현실적인 사건이었다. 국회 기능 마비와 정치인 체포를 시도한 그날 밤은 일찍부터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경고하며 대비해왔던 야당에도 충격과 공포였다. 무엇보다 내란 우두머리인 윤석열 본인이 지독한 음모론자였다. 여기서 우리의 상식과 순리는 무너져버린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우리가 이러저러한 음모론에 휘둘린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 지붕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천장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보다는 지붕이 무너질 수 있는 희미한 신호를 포착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강구할 일이다. 분명 공직 세계 안에서 내란을 획책할 새로운 파벌이 등장하는 징후가 있었다. 그 징후들은 지금에 와서 내란 세력을 감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징후. 군과 경찰의 중요 직위자들이 권력자의 공관이나 안가에 수시로 모여 엄청나게 술을 마시거나 밀담을 나눈다. 계엄은 술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윤석열이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사령관들을 모아놓고 비상대권을 말한 지난해 1130일 한남동 공관에서의 만찬에서 참석자의 음주량도 만취 수준이었다. 이전에도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은 대통령과 술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은 한남동 공관촌 만찬 뒤 차에서 내려 구토했다. 이런 현상은 양조업자의 매출에는 기여했을지 모르나 국가에는 위험이었다. 삼청동 안가와 한남동 대통령 공관, 국방부 장관 공관이 주로 술 모임의 장소로 활용된다.

두번째 징후. 이른바 무궁화폰이라고 불리는 비화폰으로 자신들만의 비밀 의사소통 체계를 구축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경호처의 비화폰 운용 내역은 정부 내의 또 다른 정부, 일명 딥스테이트가 존재함을 밝혀줄 것이다. 김건희 여사로부터 민간인 노상원까지 연결되는 소통의 비밀 공동체는 우리가 몰랐던 세계이자 또 다른 비공식 정부일 가능성이 높다. 이 소통 체계를 이용해 윤석열은 사령관들에게 국회의원 끌어내라고 윽박질렀다.

세번째 징후. 무력을 지휘하는 인물들에 대해 진급과 보직에서 비정상적인 파격이 나타난다. 연거푸 두차례 고속 승진하여 자리에 오른 조지호 경찰청장, 이미 진급 적기가 경과해버린 중장 4차 진급자인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계엄 하루 전날 내쫓아 1년에 5개 보직을 전전한 김봉수 합참 차장, 이와 대조적으로 합참 차장으로 이동한 지 하루 만에 계엄사 부사령관을 맡은 정진팔 중장 등등. 계엄 이전의 군과 경찰 인사는 심하게 요동쳤다.

네번째 징후. “(김용현이) 많게는 매주 3~4회 반국가세력, 종북세력에 대한 극우 동영상을 보내 가스라이팅 했다는 곽종근의 진술이다. 노상원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동영상을 정보사 영관급들과 공유했다. 극우 유튜브는 내란 세력에게 행동 지침이자 강령이었다.

, 비화폰, 진급, 유튜브는 정부 안에서 정치적 파벌이 형성되는 신호다. 지금 구속되어 조사받고 있는 내란 우두머리와 중요 가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반면 이 네가지에 해당되지 않아 술자리에서 배제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강호필 지상작전사령관은 내란 세력에 포함되지 않았고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아예 명령을 거부했다. 내란 세력을 감별하는 데는 이 네가지가 전부일까.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 총선 전부터 윤석열의 경비계엄 선포를 우려했다고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말한 바 있다. 총선 직후 용산에서 윤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와서도 걱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나 보다. 그는 이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계엄을 말했다. 이재명은 윤석열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아마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증오심이었을 게다. 권력자의 증오심은 모든 합리적 검토를 생략하고 권력자의 주관과 변덕에 좌우되는 무질서한 명령과 혼란으로 이어졌다. 그날 밤에 육군 2군단의 한 대령은 수도방위사령부의 육사 선배와 통화하며 대통령이 뭘 노린 거죠?”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국회 현장에 출동한 계엄군은 더 이상 윤석열의 감정에 따르지 않고 새벽에 회군해버렸다. 술 취한 계엄은 그걸로 끝났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한겨레 : 2025.03.06.

 

시대가 쇠퇴할 때 모든 경향은 주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음모가 남긴 후유증이 만만찮다. 탄핵을 기화로 정치적 득실을 셈하면서 벌이는 준동이 임계치를 넘어선 듯하다. 극우 성향의 광신적 종교 집단의 집회가 윤석열과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 이끌려 파시스트 결사체처럼 폭동 세력화하고 있다. 주된 참가자들은 오랜 권위주의 습속에 길들어 민주적 정치문화는 탐탁지 않다. 정치 지형의 변화로 초래된 불이익이 극우 선동에 심취하게 한다. 새로운 세대의 정치적 팬덤 현상까지 겹치면서 봉인이 풀린 듯 미증유의 난동이 일고 있다.

이번 소동에서 첫째로 지적할 점은 말의 소통력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쟁의 경우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일방적 주장만 있지 의견 교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적 견해에 따라 말의 논리도 달라지고 사고방식도 변하고 그래서 처지가 다르면 서로 말을 건넬수록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적대적으로 바뀐다. 대부분 우연히 속하게 된 집단이지만 그 정체성에 따라 확증편향으로 빠져드는 맹목성을 지닌다. 계엄령은 그동안 독재 탄압과 살인 학살의 공포감을 자아내는 상징어였는데 이를 부정하고 계몽이라는 말로 억지를 부린다. 이는 우리 사회가 무장 군대의 통제로 이루어진 질서를 강요당했던 식민지 치하처럼 계엄군의 계몽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같은 길거리 막말을 끌어다 가장 엄밀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변론으로 거리낌 없이 내세운다.

둘째로는 소통이 되지 않으니 신뢰도 사라졌다. 믿지 못하고 의심이 팽배해지니까 음모론이 판친다. 민주사회의 핵심은 선거와 투표제도이다. 지난날 독재자들이 국민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선거와 투표에서 임의대로 불법 부정을 자행해 그 결과를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의 지지를 잃어 선거에서 패배하면 권력을 잃는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이다.

그러나 지금 극우 세력은 애초 보수의 핵심축인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 사법부를 비방하면서 아예 철폐하겠다고 한다. 이 기구들이 예전과 달리 상식과 이성에 기초한 합리와 공정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배척일 터다. 특히 탄핵심판을 두고 헌법재판소를 향해 퍼붓는 공세는 국가의 근본을 부정하는 내란 행위의 연장이다. 권위주의 향수에 빠진 수구 정객들은 터무니없는 부정선거론을 제기하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혹세무민의 수법으로 권력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됐다.

셋째로 소통이 안 되고 불신이 쌓이고 음모론이 횡행하는 뒤끝은 폭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야밤에 법원을 습격하는 끔찍한 폭동 행위가 저질러졌다. 무차별 파괴 행위와 방화 시도, 그리고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 건물 내부를 뒤지는 전대미문의 폭동이었다. 민주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윤리가 살아 있는 사회에서, 그것도 잘잘못을 심판하는 사법부를 겨냥해 무소불위의 폭동이 거리낌 없이 자행됐다. 곧 단단해 보이던 민주주의 사회가 한순간 폭력 난동의 야만 사회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그런 폭도들을 향해 윤석열은 탄핵심판정의 마지막 진술에서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이라고 감쌌다. 그는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였다는 품격은 고사하고 제정신의 인격체라고 하기에도 모자란 듯하다. 거리에서도 줄기차게 열리는 광신적 집회에서는 이런 막말과 폭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터무니없게 저항권 운운한다. 이런 사태에 누구보다 큰 책임이 있는 여당 의원들은 오히려 곳곳의 집회를 찾아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를 파괴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폭도를 앞세워 폭력으로 정권을 되찾겠다고 하는 그들이 곧 내란 세력이다. 그 정권이 꿈꾸는 권력이란 장님 무사가 휘두르는 칼날같은 것이다.

넷째로는 품격을 잃은 사회가 됐다. 윤석열은 민주당이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이고 그 반국가 세력의 방해로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피해자라고 했다.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군인들이 시민들의 공격을 받아 부상했고’, ‘전 국정원 1차장과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민주당 의원의 사주를 받아서 하지도 않은 주요 인사 체포 지시와 국회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거짓 증언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경고용 계엄일 뿐인데 내란이라고 잘못 탄압받고 있다고 억지를 부린다.

옛날 동네에서 누가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억지를 부리면, 어른들은 뎁데꼬깔한다’(‘적반하장이란 뜻의 전라도 말)고 나무라면서 혼냈다. 한때 대통령이었던 자가 탄핵심판 내내 보여준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궤변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파렴치한 행태는 새삼스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뿐만이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들의 공개 발언들이 한결같이 판박이라는 점이다. 법정에서 하는 변론마저 최소한의 품격도 없는 광신도 집회 막말 못지않다. 거의 폭력적이고 터무니없는 궤변이 당의 공식적인 논평이 되고 다시 법정의 변론이 됐다.

그 탓에 우리나라가 모범적인 선진 문명국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됐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우리에게 힘주어 전한 말은 젊은 야학 교사 박용준이 광주항쟁에서 계엄군 공격으로 희생되기 전 마지막 밤에 쓴 일기 한 대목이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국민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양심은 그만두고라도, 염치와 체면이나마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애초 이런 사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괴테는 생애 말년의 대화에서 시대가 쇠퇴할 때의 모든 경향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모든 일이 새로운 시대를 위해 성숙해갈 때는 모든 경향이 객관적이다라고 말했다.(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인용) 각자의 주장만 내뱉고 마는 시대와 상식적인 공론화가 이루어지는 시대의 차이에서 흥망으로 갈린다. 나라를 위기에 빠트린 망상적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에서조차 이성과 상식을 배반하면서 정파의 수구적 사고에 매몰돼 궤변을 반복하거나 광신도들의 얄팍한 사탕발림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는 정치인들을 응징하지 못한다면 장차 이 나라는 어찌 될 것인가.

안병욱 |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한겨레 : 2025.03.06.

 

헌법이 말하게 하라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완전민주국을 졸지에 흠결민주국으로 만든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이 곧 종결된다. 진정 어린 반성보다는 거짓과 궤변의 선동을 택한 내란죄 피고인 탓에 나라가 두 동강 났다. 광장의 기세로 세계가 목도한 내란 시도를 호수 위 달그림자로 만들 수 있다고 아직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헌법이 왜 헌재에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했는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헌재 재판관들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일만 남았다.지금이 헌재의 시간임을 부정하는 헌재 흔들기가 계속 시도되고 있어 우려된다. 특히 법학계의 원로라는 사람마저 나서서 부화뇌동하는 것을 보면 걱정을 넘어 개탄스럽다. 헌법 해석은 학술적으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정파적 편견에 입각한 자의적 해석을 전문가적 견해인 양 혹세무민해서는 안 된다. 정파적 주장을 대중선동용으로 신문광고까지 해대는 세태에는 분노까지 치민다.

탄핵심판은 신분이 강하게 보장되는 공직자들에 대한 특별 징계 절차다. 법 위반을 따지고 증거에 입각해야 하는 기본원칙은 일반재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징계 절차여서 그 직에서 파면하는 데 그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절차는 별도로 있기에 형사 절차처럼 최고도의 엄격성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의 탄핵 사건에서 확립된 법리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비상계엄 선포나 포고령 발표, 국회나 선관위에 대한 군병력 투입과 같은 객관적 사실이 너무나 명백해 엄격한 증거조사의 필요성이 작은 사례다. 오히려 헌정의 중핵적 기관의 권한이 정지되고 있으므로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필요하다. 이를 두고 형사소송법의 증거법칙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헌재가 헌법 위에 군림한다는 둥 막말을 하는 것은 법 전문가가 해서는 안 될 선동일 뿐이다.

수사서류 송부촉탁, 검찰조서의 증거 채택 등도 헌재법에서 헌법재판의 성질에 따라 자율적으로 관계 법령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 사실관계의 확인 절차로 필요한 증거를 헌재 규칙이나 판례에 따라 확보한 것이어서 시빗거리가 못 된다. 이미 확립된 법리마저 부정하며 시시콜콜 절차를 두고 선동하는 것은 정작 사건의 실체인 법 위배의 중대성이 너무 명백하다보니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벌이는 몽니에 불과하다.

가장 무도한 것은 재판관의 인신을 공격하는 행태다. 스스로가 법 전문가의 법적 논변이 아니라 정파적 입장에 따른 궤변임을 보여주는 만행이다. 원래 탄핵심판의 구체적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회와 같은 정치기관에 탄핵결정권을 준다. 재판소와 같은 사법기관이 맡거나 탄핵심판소처럼 준사법기관이 맡는 경우에도 그 구성은 정치적 다원성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헌정사는 우리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제헌헌법에선 위헌심사기관인 헌법위원회와 별도로 탄핵재판소를 두면서 선거직인 부통령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5인 외에 국회의원 5인이 심판관이 되었다. 현재처럼 탄핵심판권을 헌재가 맡은 제2공화국의 경우에도 심판관은 대통령, 대법원, 참의원이 각 3인씩 선임하면서 2년마다 3인씩 개임하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이 정무직 혹은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가지는 정치적 성격을 고려해 탄핵심판에 정치적 다원성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현행 헌법은 이런 전통과 탄핵심판의 본질에 입각한 구성 방법을 채택해 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분해 관여토록 했다. 이런 헌법의 결단과 탄핵심판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이른바 야당이나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에 대한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태도는 탄핵심판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윤 대통령이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임명한 모든 재판관은 심판에 관여해도 되는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은 오로지 헌법이 정한 대로 하면 된다. 우리의 약속인 헌법이 헌재 재판관의 입으로 말하게 하라. 헌법이나 계엄법이 정한 절차는 아랑곳없이 국회를 반국가세력으로 단정하고 선관위를 선거부정의 진원지로 몰아 군병력을 투입해 국헌을 문란한 행위를 국민에 대한 경고일 뿐이라고 뻔뻔하게 떠벌리는 사람에게 다시 그런 권한을 행사할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민주공화국 헌법의 뜻일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 2025.03.07.

 

현직 대통령의 내란 행위가 일깨운 입법과제

계몽’, 지식 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친다는 뜻이다.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령이 느닷없이 계몽령으로 포장되어 궤변에 동원된 조어다. 대통령에게 국민은 여전히 계몽의 대상으로 보였을까. 국민은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깨어 있는데, 무엇을 가르치고 깨우치려 했단 말인지 모르겠다. 계엄으로 호소해야 알아듣는 수준의 국민도 아니고,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이 취할 방도가 계엄밖에 없는 것도 아니었다. 대국민 호소의 형식으로 무력을 동원해 자신의 정치력 부재만 드러냈다.

비상계엄으로 확실히 일깨워준 게 있다. 헌법의 중요성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헌법에 뭐가 쓰여 있는지 대략은 알지만, 비상계엄 관련 규정은 시민은 물론 법률가도 잘 모른다. 계엄권 발동은 평생 있을까 말까 한 대통령의 권한이라 법학도조차 헌법을 공부할 때 소홀히 했던 부분이다. 로스쿨 형법 강의 시간에 그냥 넘어간 내란죄의 성립 요건인 폭동의 개념이며 국헌 문란이 무엇인지 이제 다 안다.

현직 대통령의 내란 행위가 백 가지 해롭고도 무익했지만, 눈 씻고 찾아본다면 입법과제를 남긴 공 한 가지는 있다. 탄핵심판과 내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입법의 불비(不備).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현직 대통령이 내란죄를 범할 것이라고 입법자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쉽게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봉쇄할 줄이야, 피의자가 물리력을 동원해 체포를 저지하고 버틸 줄이야, 피의자 심문을 위한 출석을 거부할 줄이야. 법의 흠결이 입법자 탓은 아니다. 입법 당시에 상상치 못했던 극단적 사태를 벌인 자, 공권력을 무시하고 형사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한 자의 잘못이다. 법의 구멍을 메워야 할 입법과제가 있음을 깨우쳤다는 점에서 계몽성이지만, 치러야 할 피해와 대가와 후유증은 상상 초월이다. 대한민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수준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전락했다는 외국의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작년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법안 건수가 상당하다. 중복과 유사한 것을 묶어보면 계엄법 개정안, 국무회의 실질화 방안, 압수수색·체포 영장 집행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형법 개정안, 사면법 개정안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헌법 개정도 논의되고 있다.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과 절차를 강화해야 하고,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는 것은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권 행사에 대한 사전·사후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 등 계엄법 개정안이 도드라진다. 내란죄 또는 외환죄의 수사를 위해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나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때에는 제한 없이 영장 집행이 가능하도록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대통령이라도 피의자라면 출석요구나 소환조사에 불응할 수 없도록 하는 개정 규정도 눈에 띈다. 영장 집행 방해 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안, 소요죄의 법정형을 높이는 안,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는 궤변이 통하지 않도록 내란죄와 외환죄의 미수와 기수를 같게 처벌하는 안도 있다. 내란 또는 외환, 반란의 죄를 저지른 자는 임시석방, 사면·감형, 복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법은 경험과 상식의 산물이며, 공정과 평등을 추구한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거나 예상되는 상황을 미리 상정해 법률을 만든다. 이제 입법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도, 발생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더라도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완벽하게 입법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논란이 많았던 수사와 기소의 주체, 각 주체 간의 관계와 권한 등 충돌되거나 규율하지 않은 부분도 이번 기회에 찾아내 싹 다 정리해야한다. 대선 국면이 펼쳐지더라도 국회가 해야 할 입법과제들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경향 : 2025.03.07.

 

악은 어떻게 내면화하는가?

악의 평범성개념이 있다. 독일 출신 미국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문제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 나온다. 상당수 유대인 출신 지식인들은 1933년에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자 서둘러 미국 등지로 망명했다. 살기 위해서! 한나 아렌트도 그 중 하나였다. 유대인 등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 권력의 폭력은 물론 그에 동조한 평범한 국민들의 행태를 둘러싸고 당시 지식인들 사이엔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아렌트는 늘 이런 의문을 품었다. ‘과연 나치 학살자들은 어떤 존재이기에 그 무자비한 일을 저질렀을까?’

그 극악무도했던 히틀러도 1945년에 자살로 마감하고 2차 세계대전도 끝이 났다. 흔히 우리는 (개발론 내지 발전론의 시각에서) 폐허와 잿더미로부터 라인강의 기적이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관심을 갖지만, 아렌트는 학살자의 존재론을 물고 늘어졌다. 마침내 1961년에 (1945~46년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이어) 또 하나의 세기적 재판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주인공(?)은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었다.

수백 만 유대인 학살한 '평범한 시민' 아이히만

과연 그는 누구인가? 그는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중령)로 유대인 학살 실무를 총괄했다. 19455,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살기 위해 은둔의 삶을 택했다. 그는 독일 패전 뒤 전쟁포로로 심문을 받던 중 탈출해, 독일 북부 오지 마을에서 오토 헤닝거라는 이름으로 삶을 즐긴다. 그 뒤 19506월엔 리카르도 클레멘트가 되어 아르헨티나로 갔다. 먼저 탈출해 은둔해 사는 전직 나치들이 좋은 친구들로 살고 있던 곳! 2년 뒤 아내와 아들 삼형제까지 합류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한적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 비밀정보국(모사드)의 집요한 추적으로, 마침내 19605월 극적으로 체포됐고 약 2년여 검찰 조사, 법원 판결 끝에 사형됐다. 그 과정이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에 잘 묘사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시 한나 아렌트가 미국 교양지 <뉴요커>의 요청으로 이 예루살렘 전범 재판을 면밀히 관찰하고 보고하면서 악의 평범성개념을 제시한 것!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나는 히틀러가 만든 절멸 작동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라며 학살 책임을 부인했다. “그저 명령만 따랐을 뿐이었다는 것, “지시 내용을 성실히 수행 않았다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란 말(?)! 아렌트의 눈에, 아이히만은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지만, ‘조국’ ‘충성’ ‘영광’ ‘성실’ ‘복종등 상투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일개 조직인으로 행동한 결과 끔찍한 학살도 죄책감 없이 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악의 평범성이 탄생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명제다. 우리 주변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얼마든지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이들이 많다. 윤석열의 계엄(내란)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이 그 증거다.

나는 198710, 느지막이 군 입대 후 훈련소에 갔다. 난생 처음 받은 충격은 절대 질문 하지 말라는 조교의 말(?)이었다. ‘아무 생각 말라’, ‘무조건 복종하라’! 1981년부터 1986년까지의 대학() 공부에서는 질문을 많이 하라.”가 기본 태도였고 권장 방식이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경험한 바로 이 3, 즉 무사고, 무질문, 무분별이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연결돼 무자비로 이어짐을 깨달은 건 한참 뒤다. 그리고 최근까지 이 아렌트 통찰의 탁월함에 무릎을 치곤했다.

아이히만에게서 악의 확신성찾아낸 후학 슈탕네트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들어 아렌트의 명제에 정면 반박하는 논리가 부각됐다. 독일 철학자 베티나 슈탕네트(1966~)가 쓴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2011)이 바로 그것! 슈탕네트에 따르면,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속았다.’ 슈탕네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을 당시, 그가 취한 자세, 태도, 발언 등은 모두 상식적인 사람, 평범한 사람,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간교한 위장술’, 였다. 그 근거로 슈탕네트는 재판 이전에 아이히만이 했던 발언들이나 기록물들을 끈질기게 추적, 분석했다. 그 결론은, 아이히만은 평범인이 아닌, ‘확신범이었다는 것! 요컨대, ‘악의 확신성명제다. 그렇다면 왜 그가 확신범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우선, 슈탕네트는 무엇보다 아이히만 스스로 열심히 말하고 다니며 글을 썼다고 했다. 아이히만과 관련된 문서와 기록, 진술서는 히틀러나 괴벨스를 포함한 나치 전범들 모두의 것보다 더 많다는 것! 더 중요한 점은, 바로 그런 아이히만의 과거 흔적들 속에 이미 반유대인주의 내지 인종주의적 신념이 일관되게 보인다는 것! 아르헨티나에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히만은 매주일 좋은 친구들과 함께 독일과 세계의 발전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처럼 토론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 내지 성찰은 전혀 없이, 모두 나치의 우월성과 대량학살의 정당성을 옹호하면서 새 시대의 전망을 모색했다. ‘확신범확신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아이히만은 인생 세탁을 위해 자기 삶을 철저히 평범화했다. ,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낮에는 토끼 사육사로 일하고, 일과 후에는 바이올린 연주와 와인을 즐겼으며, 저녁 시간에는 독서와 집필에 미친 듯 몰두했다.

어쩌면 아이히만 등이 보인 이 야누스의 얼굴평범인의 전형이 아닌, ‘확신범의 전형일지 모른다. 평범인이라면 인지 부조화 내지 언행 불일치 상황에서 수치심, 죄책감,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침묵 속으로 숨거나 외면하려 한다. (엉터리이긴 하지만) ‘나름의 일관성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 그러나 확신범은 다르다. 양심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생각과 태도, 행동을 오히려 합리화, 정당화, 적극 옹호한다.

악의 확신성평범성둘로 나뉘는 내란 세력들

최근 한국 상황에서 나온, “반국가세력 척결을 위한 계몽령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에서는 좋은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평범한 척, 착한 척, 선행을 베푸는 척한다. 아이히만 역시 가축 돌봄 노동을 수행하고 음악을 즐기고 독서도 열심히 했다. 예루살렘의 재판정에서도 그는 ‘(저항 않는) 성실한 관료로 위장했다. 그러나 그의 실상은 최후의 순간까지 나치즘을 신봉한 확신범이자 반성 없는 자기변호인(거짓말장이)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는 이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까지 동원하며 자기 정당화에 진력했다. “나는 항상 칸트 철학의 애호가였으며,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칸트의 정언명령은 오히려 양심의 명령에 가깝지 파쇼의 명령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슈탕네트는 말한다. 아이히만에게 재판은 자신과 세상을 감쪽같이 속인 가면극이자 냉소적인 기만극이라고! 그리고 바로 그 가면극 내지 기만극에 관찰자 아렌트 역시 속았다고!

따라서 슈탕네트의 악의 확신성개념 역시 타당하게 보인다. 알고 보니, 윤석열과 김용현, 김건희와 노상원, 일부 국힘당 의원이나 극렬 종교인 등, 계엄 주도 세력들은 이 명제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 같다. 한편, 상당수 장군들과 국무위원들, 상당수 고위공직자들과 국힘 추종자들은 악의 평범성명제를 입증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체로 마음속으로는 아닌데하면서도 거부하기 힘든 ‘VIP의 의지때문에, ‘눈 밖에 나기 두려워’, ‘보복을 당할까 겁이 나서등의 이유로 반신반의하는 상태에서 끌려갔기 때문이다.

평범확신도 넘어서는 질문 어떻게 악이 내면화 될끼?”

여기서 나는 묻는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슈탕네트의 악의 확신범, 나름 일리가 있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해서 평범한 사람조차 악을 확신하게 되는가'라는 것이다. 요컨대, ‘악의 내면화가 문제다. 이에 대한 내 나름의 사유 결과는 이렇다.

첫째, 가장 쉬운 설명은 세뇌 효과.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릴 때부터 사람의 두뇌와 생각을 국가 내지 특정 세력(교육, 언론, 종교)이 조작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가 칭송하는 독일의 킨더가르텐(유치원) 제도는 원래나치 시절에 국가가 (그리고 자본이) 아이들을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됐다. 거칠게 압축하면, ‘아이들을 부모의 오염된 가치관으로부터 보호하고 순수한 아리아족의 위대함을 고취하기 위해만들어진 게 만3세 아동부터의 킨더가르텐 제도다. ,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인의 혼을 개조하기 위해 국민학교를 세우고 그들이 만든 교과서로 국민교육을 해온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세뇌 교육의 수단은 당근과 채찍이다. 말 잘 들으면 당근을 주고, 아니면 채찍으로 때린다. 국가나 어른이 원하는 일을 반복하며 당근으로 보상을 거듭 받게 되면 그런 생각, 느낌, 태도, 행동은 습관이 된다. 세뇌의 결과 낯선 규범이 습관으로, 나아가 그것이 상식으로 신념화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일정 시점에서 근본적 성찰의 계기를 갖지 못하면 세뇌된 상태로, 그것이 옳다는 확신으로 살아간다. ‘악의 내면화는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아이히만은 19579, 원탁 모임에서 우리가 1030만 명 유대인 중 (600만이 아닌) 1030만을 죽였다면 매우 만족스러웠을 것이고 () 우리 피와 민족에 대한, 또 민족의 자유에 대한 우리 의무를 완수했을 것이라 했다. 이런 신념을 그는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

근본 성찰없이 세뇌-습관-상식화경로로 어른 아이되는 사람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무 근본 성찰의 기회가 없다면 악의 내면화는 일사천리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그런 근본 성찰은 유럽의 68 혁명을 계기로, 한국의 경우엔 대학 신입생 시각 교정을 계기로 상당 정도 이뤄졌다. 물론, 지금의 일상에서도 교양도서나 꾸준한 인문학 모임을 통해 그런 근본 성찰은 얼마든 가능하다.

반면, 이 근본 성찰의 기회가 없다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른 아이가 된다. 인생 마지막 순간에도 인생의 의미조차 모르기 일쑤다. 그저 생존했고, 재산을 모았으며, 국가에 충성했고, 내 새끼 남기고 갈 뿐! 요컨대, ‘세뇌-습관-상식화의 경로가 악의 내면화를 낳는다.

둘째, 이해관계 내지 이해득실 계산법에 따른 악의 내면화. 세뇌되어 성장한 사람조차 일정 계기에 직면해 국가에 속았다’, ‘언론에 속았다또는 사람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서(현타=현실 자각 타임), 결국 돈이 최고라 느끼게 된다. 크게 보면 이것은 등가법칙의 효과. , 인간적 유대감에 기초한 공동체가 해체될수록, 그리하여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이 상품-화폐 교환(등가법칙)에 지배될수록, 이런 실리주의가 팽배하게 된다.

악의 확신범 만드는 현타-실익-소신화라는 또 하나의 경로

대체로 우리는 부모의 품을 떠나 살게 될수록 가혹한현실을 경험한다. 돈이 없으면 세상은 매우 비참하다. 방 한 칸 얻는 것도 돈이요, 지하철 하나 타는 것도 돈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돈이 많으면 사람처럼 살겠는데, 돈이 없으면 노숙자나 거지가 된다! 그리하여, 세상에 믿을 건 하나도 없는데, 심지어 부모조차 믿기 어려운데, (밖에 나가면) 오로지 돈만이 힘이고 권력이고 말빨(!)임을 반복 경험, 체험한다. 상품, 화폐,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경험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평범한 현실, 일상의 법칙이 된다.

이제부턴 삶의 의미나 존재, 인간관계, 자연관계 같은 건 위선이나 사치에 불과하고 오로지 돈 되는것만 가치 있게 보인다. 그리하여 특정 종교나 집단이 돈 되는’ (밥 주는) 주장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간다. 한두 번, 그리고 두세 번 실제로 돈 되는경험을 반복하게 되면 이것!’이란 확신을 한다. 최근 독일 총선에서 극우파 정당(AfD)20% 이상 득표한 것도 이런 맥락이며, 한국에서 극우 종교, 극우 언론, 극우 정치의 동맹체가 출현하고 있는 현상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요컨대, 이는 현타-실익-소신화의 경로다. 그 결과 자신도 모르게 악의 내면화가 이뤄지고 (백골단 부활이나 법원 폭동, 헌재 폭파 주장에서 드러나듯) ‘악의 확신범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저항을 포기하는 폭력-공포-동일시경로

셋째, 이와 연관되면서도 좀 다른 측면에서 악의 내면화를 볼 수 있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력을 반복 경험한 결과 트라우마에 찌든 사람들이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강자동일시심리를 수용한 결과라는 것! 앞에서 국가나 자본은 아이들을 일찍부터 세뇌하려 함을 보았다. 그러나 성장하는 아이들이 늘 순종하는 건 아니다. 일탈 내지 저항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한두 차례 저항을 했다가도 거듭 패배하고 좌절하면 결국엔 죽음, 배제, 탈락, 낙인의 두려움(공포)을 감당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주체성과 저항을 포기한다. 체제 전반의 차원이건 개인적 차원이건 강자동일시가 일어난다. 비판자나 저항자들을 척결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일한 것으로 여기거나, 자기가 아는 성공자, 출세자를 마치 자신과 한 몸처럼 여기는 것이 모두 강자동일시. 그 한 결과가 악의 내면화.

, 자본주의 시스템이 돈벌이를 위해 얼마나 거짓말을 예사로 하고 (사람과 자연에) 폭력을 행사하는지 묻지 않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만 기억하며 오로지 주류 체제 안에서 인정받고 성공, 출세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아래로 갈구고 위로 비벼대는 갈비 법칙조차 지극히 당연한 규범으로 된다. 그런 규범이나 지시가 못마땅하면 나가라’, 그리고 살아남아 계속 먹고살려면 복종하라는 가치관이 퍼진다. 요컨대, ‘폭력-공포-동일시의 경로다. , 죽음, 배제, 탈락, 낙인의 두려움(공포)강자동일시심리를 낳고 이것이 악의 내면화까지 낳는다.

자기 책임 회피인가, ‘희생양 찾기인가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개념을 내세우며 대량학살(홀로코스트)을 수행한 아이히만이 별 생각 없이국가와 조직에 충성하고 복종했으며 성실했을 뿐이라 했다. 반면, 아렌트보다 60년이나 젊은 베티나 슈탕네트는 악의 확신성가설을 제시, 아이히만이 인종주의 내지 반유대주의를 상식화, 소신화, 신념화했다고 본다.

아렌트에게 키워드는 무사유, 생각 없음 내지 피해의식의 위험함이다. 피해의식 뒤로 숨는 피해자(희생자) 코스프레는 무사유 외에 무책임을 드러낸다. 이는 최종적으로 무자비한 행동을 정당화한다. ‘~척 하는피해자가 책임 전가를 통해 가해자로 둔갑하기 때문! 아이히만도 사형 직전의 법정 최후 진술에서 나 역시 일개 희생자라 했다. 원래 국가 폭력의 희생자조차 (어느 순간엔) 양심적 거부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가 되기도 한다. 그 어떤 악도 내면의 영혼까지 지배하긴 어렵기 때문! 그러나 늘 피해의식으로 충만한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런 능동성 내지 주체성조차 스스로 부정한다. 자기책임 회피를 위해서다.

반면, 슈탕네트에게 키워드는 신념화, 외적 가치의 내재화다. 그야말로 일반인이 보기에 비인간적이고 반민주적인 것(, 인종주의나 이기주의)도 이들에겐 소신 내지 행동 규범이 된다. 외적 가치를 내적 가치로 내재화한 상태이기에, 이 둘 사이의 경계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 논리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오히려 책임의 주체(, 유대인이나 굼뜬 자는 사회의 장애물)로 둔갑한다. 그리하여, ‘희생자 나무라기또는 희생양 찾아내기가 예사로 행해진다.

평범이든, 확신이든, 악은 성찰 없음에서 나온다

일단 겉으로는 이 두 학자들의 명제가 서로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두 명제 모두 성찰의 부재란 공통점을 내포한다. 악의 평범성도, 악의 확신성도, 성찰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성찰이 없다면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쉽게 악인이 된다.

성찰, 그것도 근본 성찰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최근 한국의 계엄 사태와 관련해서도, , 지금의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도, 나는 이 근본 성찰의 부재가 존속하는 한 특정 개인()의 죽음은 물론, 한 나라, 한 사회, 나아가 지구 전반의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 본다. 특히, 나치 파쇼주의나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반공주의, 흑백논리, 가부장주의, 생산력주의, 능력지상주의, 성장지상주의를 체계적으로 부채질하는 자본주의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절박하고도 긴요한 시점이다.

아이히만은 죽기 전 이스라엘 감옥에서 자신을 계몽주의와 세계주의를 갈망하는 평범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포장했다. 최근 123 비상계엄과 관련, 윤석열은 “(야당인) 민주당의 폭주를 알리기 위한 경고성 계엄이라 하며 계몽령이란 말까지 간접 창조했고, 김계리 변호사는 나는 계몽 되었다고 했다. 이들의 최후 진술과 아이히만의 최후 진술 사이에 무엇이 다른가?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5 3.7

 

윤석열의 끝이 보인다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에 복귀 꿈꿔...윤석열, 최악의 지도자로 역사에 박제될 날 임박

헌재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윤석열이 3·1절에 열린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에 크게 고무됐다고 한다. 윤석열 변호인은 집회에서 "대통령께서 정말 한없는 감사의 표정으로 '나는 건강하다, 잘 있다'는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도심을 가득 메운 지지층이 헌재 선고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확신이 묻어난다. 윤석열 측에선 탄핵 찬성 집회보다 반대 집회에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현직 보수대통령 탄핵 반대에 보수진영 다수가 동조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8년 전 박근혜 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보수 지지층이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보이는 숫자가 전부는 아닌 것이다. 탄핵 찬성 쪽이 상대적으로 집회에 적게 나오는 것은 대통령 파면을 기정사실로 여기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지지부진하자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반대편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된다.

지금 광장에 나온 탄핵 반대 세력은 윤석열이 좋아서라기보다 정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정서가 더 강하다. 비상계엄은 잘못됐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탄핵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보수층 다수의 생각이다. 윤석열은 보수기득권 유지를 위한 도구일 뿐이지 언제까지 신줏단지처럼 지켜야 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보수진영에서 박근혜는 그래도 챙겨줘야 할 사람이라는 동정심이라도 있었지만 윤석열은 그런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사회, 이미 탄핵 이후 준비... 권력기관 윤석열과 '손절'

이미 우리 사회는 탄핵 이후로 성큼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 옹위에 결사적인 국민의힘도 물밑에선 조기 대선 준비가 한창이다. 잠재적 대선 주자들은 북콘서트다, 포럼이다 하며 대놓고 선거운동에 나선 마당이다. 당 지도부가 연일 전직 보수대통령을 만나고, 텃밭인 TK·PK를 찾는 이유가 뭐겠는가. 강성지지층이 두려워 겉으론 드러내지 못해도 윤석열 파면이 불가피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다.

윤석열 정권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던 권력기관들도 일제히 '손절'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김건희에 쩔쩔매던 검찰은 이제 김건희를 언제, 어떻게 요리할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윤석열 사단'의 막내 검사였던 이복현 금감위원장이 김건희가 몸통이란 의심을 받는 주가조작 사건을 이 시점에 터뜨리는 배경은 안 봐도 비디오다. 난파선에서 빨리 탈출해야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다는 생존본능이 작용한 터다. 윤석열이 복귀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대통령 복귀의 착각에 빠져 있는 이는 윤석열뿐이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도 그렇지만 이후 수사와 탄핵심판에서 거짓말과 궤변으로 일관한 것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서였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처지에서 윤석열이 살 수 있는 길은 냉엄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나마 재판에서 최고형을 면하려면 고개를 숙이고 참회록을 써야 한다. 일말의 성찰도 없는 중죄인에게 선처를 베풀 재판부는 없다.

윤석열은 어느덧 점차 잊혀진 존재가 되고 있다. 그가 헌재 최후 진술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드러낸지 열흘이 지났다. 모처럼 윤석열의 화난 표정과 거친 발언을 접하지 않게 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모습 자체가 많은 국민을 힘들고 짜증나게 했다. 이제 파면이 되면 윤석열의 동정은 내란 형사재판이나 그간 은폐됐던 비리 의혹 수사 결과를 통해서나 전해질 것이다.

윤석열은 재임 때 "역사만 보고 가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윤석열이 사라지면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명확하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대통령으로 기록할 것이다.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혼군'(昏君)이자 아둔하고 변변치 못한 '용군'(庸君), 사납고 악한 '폭군'(暴君)을 합쳐놓은 최악의 지도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윤석열이 역사에 박제될 날이 머지 않았다.

이충재(h871682) 오마이뉴스 2025 3.7

 

양극화 심화, 지속가능 성장 막는다

지금 극우세력이 커지는 경향은 세계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일종의 집단적 히스테리로도 볼 수 있다. 지난 몇 십 년 비교적 평온하고 이성적 성장을 하던 인류가 왜 최근 들어 이런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전반적인 불황의 지속이 낳은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희망을 잃은 빈곤층의 급증이 이런 변화를 부르는 것이라는 진단들이 늘고 있다.

중도적 우익과 좌익은 이성적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범주에 들기 때문에 사회적 불안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치닫지 않는다. 그러나 극우의 특징은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임으로써 사회적 불안정성을 키운다.

과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던 시기에는 극좌의 폭력성과 기존 질서에 대한 무한한 부정으로 문제가 됐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극좌는 사라졌고 한동안 극단주의 경향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자본주의가 유일한 가치체계로 자리 잡으며 견제대상을 잃은 자본들의 무한 탐욕이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그 독점력을 키워가며 새로운 극단주의를 키웠다. 한국에서는 극좌세력이 극우로 탈바꿈함으로써 좌우를 막론하고 극단적 성향은 결국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수십 년 간 누려온 미국의 자본주의는 일방적으로 자본의 탐욕을 지지하는 학자군의 지지를 받으며 견제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갈수록 집을 잃고 길거리에서 혹은 자동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홈리스를 양산하고 있다.

철저한 개인주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미국의 경우 그런 만큼 개인의 삶 또한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하며 국력에 비해 미흡한 사회보장 시스템에 머문 탓이다. 아예 대학을 포기한 빈곤층은 다른 해결방법이 없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중산층 출신의 다수는 대학 학비에서부터 빚으로 시작해 평생을 그 빚 속에 허덕이게 된다.

 

게다가 의료시스템도 철저히 민영화된 까닭에 멀쩡하던 중산층도 몇 개월 병원신세를 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홈리스로 전락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게다가 인구의 대도시 집중화현상은 미국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여서 이렇게 몰린 인구로 인한 주거비 수준이 중하층 정도면 홈리스가 될 수밖에 없도록 밀어낸다.

사회 인프라까지 민영화 바람을 앞서 일으킨 미국을 따라가듯 이웃나라 일본 역시 장기불황를 겪는 와중에 죄다 민영화시킴으로써 개인의 삶을 궁핍함으로 내몰고 있다. 과거 호황기에 저축을 넉넉히 한 노년세대를 제외하면 젊은 세대로 갈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종종 무계획하게 돈 생기면 쓰고 없으면 아예 골방에 박힌 채 기초적 생존에 급급한 일명 히키코모리가 되고 갈수록 그 수가 증가하며 사회적 우려를 낳기도 한다.

 

팬데믹 이후 홀로 호황을 누리는가 싶었던 미국도 지금은 살인적 물가와 낮은 급여의 불안정한 일자리 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지금 미국의 상황을 놓고 대공황의 경고가 나오기 시작한지도 한참 됐다.

소득격차가 커지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나 사회보장은 미흡해 빈곤의 세습화가 큰 흐름이 돼가고 있다. 홈리스 가족에게 현상을 돌파할 여력이 있을 리 없고 결국 빈곤은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수치상으로만 보자면 한국이 훨씬 심각하다. 그러나 통계자료상 수치가 동일하다 해서 미국과 한국이 당장 똑같은 결과를 보이지는 않는다. 성년이 되면 독립하는게 당연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성년이 되고도 결혼 전까지 부모 집에서 숙식이 해결되고 심지어 독립자금까지 지원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문화가 종종 가족 전체를 수렁에 빠지게도 만든다. 노후자금 마련이 충분치 못한 부모세대들에 대해 늦게까지 부모에게 기생하던 자식들은 그 대가를 지불할 의지가 박약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인 민주당 이재명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제시한 경제정책 방향이 성장을 강조함으로써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민주당이 집권한 지난 시절에는 늘 통계적으로 더 큰 경제적 성장을 해왔기에 기성언론의 반응이 오히려 의아하다.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고 다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분배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으려 노력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늘 가린 것은 그들 언론이었기 때문이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2025 3.7

 

지금, ‘이재명 주 4일제가 틀린 이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창의와 자율의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4.5일제를 거쳐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라며 주 4일제 화두를 던졌다. 조기 대선을 겨냥해 큰 선거에 걸맞은 노동시간 단축이슈를 던진 것이다. 2021년 말 20대 대선을 앞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주 4일제 공약을 발표하자, 나는 이 지면에 4일제와 노동양극화라는 글을 실어 반대를 표명했다. 20039, 참여정부가 들어선 지 7개월 만에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됐고, 그 후로 22년이 흘렀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찬성한다. 그러나 법정 근로시간을 주 25시간 이하로 단축하기 전에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결사반대다. 아무리 외국 사례를 들먹여도 소용이 없는, 명백한 한국 고유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주 4일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OECD 1위에 빛나는 최장의 출퇴근 시간이다. 40시간·35시간과 병행하는 주 4일제는 퇴근 시간의 연장을 의미한다. 유럽연합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2019년 기준 EU 27개국 15~64세 임금노동자의 평균 통근 시간은 편도 25분이다. 반면 국토교통부 산하 대도시권 광역교통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대도시권 광역교통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대도시권 평균 통근 시간은 왕복 116, 수도권은 평균 120분에 이른다. 둘째, 상대적으로 긴 점심시간이다. 미국, 영국, 북유럽 국가들은 점심을 일터에서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영국 노동법은 무급 점심시간이 아닌 20분의 유급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때문에 20분 동안 점심을 해결하고 5시 칼퇴근할 수 있다. 즉 같은 주 40시간제라도 한국의 퇴근 시간이 1시간 30, 길게는 2시간까지 늦는다. 4일제를 섣불리 말하는 게 무지해 보이는 이유다.

시간 거지.” 돌봄과 일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 엄마들이 스스로 붙인 자조 섞인 별명이다. 부족한 엄마라는 자책, 저급한 노동자라는 평가 속에 돌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멸시와 혐오를 뼈저리게 체감한다. 공적 돌봄·아동수당 등 양적 확대에 매몰된 정부를 향해 정치하는엄마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제1 요구안으로 꼽았다. 서로 돌볼 시간을 쟁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계 최저의 출생률을 해결하겠다면서 정부는 여성 고용단절 문제에 전혀 손대지 않는다. 어린이집은 12시간 운영, 초등 돌봄교실은 저녁 8시까지 운영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아니 그럼 우리가 대를 이으려고, 종족을 보존하려고, 인구절벽에 대응하려고 출산했을까? 아니다. 우리는 서로 돌보고자, 그 안에서 행복하고자 출산했다. 여성 임금노동자들이 고용단절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적 정리해고다. “어린이는 국가가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일하라라는 말에 모든 모순이 담겨 있다. 국가는 일을 택하라고 등 떠밀지 말고, 돌봄과 일 중에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5일치 밥을 4일에 먹이고 하루 굶길 수 없는 것이 돌봄이다. 우리는 노동시간 단축, 돌봄 시간 쟁취를 원한다. 4일제는 아직 멀고 먼 얘기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활동가 주간경향 2025 3.7

 

박세현, 직을 걸고 윤석열 구속취소즉시항고 관철하라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7일 대통령 윤석열의 구속 취소 신청을 받아들였다. 구속기간 만료 후 기소돼 위법하다는 판단이다. 검찰이 7일 내 즉시항고하지 않으면 윤석열은 자유의 몸이 된다. 열쇠는 심우정 검찰총장과 박세현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서울고검장)이 쥐고 있다. 심 총장 등 대검 수뇌부는 즉시항고를 포기하고 석방을 지휘하라는 지침을 특수본에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특수본에선 상급법원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며 반발 중이라고 한다.

즉시항고는 법원 판단에 불복해서 상급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제도이다. 형사소송법 974항은 구속을 취소하는 결정에 대하여 검사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410조는 즉시항고의 제기기간 내와 그 제기가 있는 때 재판의 집행은 정지된다고 돼 있다.

이번에 검찰이 즉시항고할 경우 상급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윤석열의 석방은 보류된다. 상급 법원이 즉시항고를 받아들이면 윤석열은 계속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게 된다.

검찰은 통상적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피고인이 1·2심에서 무죄가 나면 법원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바로 후속 절차에 들어간다. 영장 재청구나 항소·상고 등에 대한 입장 표명이 그것이다.

이번에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절차가 존재하고, 구속이 취소된 피고인이 내란수괴라는 중범죄자임에도 즉시항고 방침을 밝히지 않았다. 피고인이 검사 출신이자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도 이렇게 시간을 끌었겠는가.

윤석열 측에서는 2012년 헌법재판소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는 위헌이라고 결정한 점을 들어 검찰이 석방을 지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한 대상은 구속집행정지이지 구속취소가 아니다.

검찰은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아직 헌재가 판단을 내리지도 않은 사안에 위헌성을 고려해선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검찰의 직무를 위배하는 것이다.

심 총장에게는 전비(前非)’가 있다. 지난 124일 법원이 윤석열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을 불허했을 때 즉시 기소하지 않고 고검장·검사장 회의를 열었다. 당시 연장 불허 직후 바로 윤석열을 재판에 넘겼다면, 이번 구속 취소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 총장은 이번에 또 다시 즉시항고 포기를 지시함으로써 씻지 못할 오명을 안게 됐다.

박 특수본부장은 박순용 전 검찰총장의 아들이다. 대를 이어 검찰 고위간부가 됐다면, 이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마땅하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다.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검찰권을 행사해야 옳다. 즉시항고를 반드시 관철해 내는 것이 그 길이다. 구속기간(정확히는 구속시간)을 초과했다는 절차적 이유로 중범죄자를 그대로 풀어줘선 안 된다.

윤석열은 내란수괴라는 범죄혐의도 무겁지만, 체포와 구속 과정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법집행에 저항함으로써 심각한 국론분열을 야기해온 장본인이다. 자유의 몸이 된 윤석열이 탄핵반대 집회에 가서 연설하고, 향후 치러질 가능성이 있는 대선에서 전국을 누비며 시민을 선동해도 괜찮은가.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 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연될 경우 심우정 총장은 어떻게 책임질 텐가.

박세현 특수본부장은 즉시항고를 관철하라.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경향 : 2025.03.08

 

내란 정국 '최악의 장면', 윤석열 석방은 법원의 '자해극'

법치주의 협박범 윤석열에, 법원 스스로 날개를 달아준 꼴

헌법재판소 윤석열 탄핵 심판 과정에서 최악의 장면 중 하나는 조지호 경찰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다. 조 청장은 혈액암으로 투병중이다. 3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윤석열 측 변호인은 "수사를 받을 때 섬망 증세가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섬망은 뇌기능 악화로 인한 주의력 저하, 언어력 저하 등 인지 기능 전반의 장애, 정신병적 장애 등을 말한다.

조 청장은 12.3 비상계엄 당일에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해, 불법이야"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진술한 인물이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자 명단'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명단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들었다는 명단과 거의 같다.

투병 중에 양심 선언을 한 핵심 명령 수령자를 환각에 시달리는 '정신질환 환자'로 몰아가려 한 게 윤석열 일당의 전략이다. 아무리 사실관계를 다투는 법정이라지만 윤석열이라는 인간의 밑바닥을 엿본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 윤석열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상대의 인격이라든지, 사정따위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냉혈한이다.

본인이 최종 검수한 문건조차 부인하고, 자신의 명을 따른 부하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심지어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윤석열의 목표는 단 한가지다. 스스로 벌인 최악의 범죄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정당한 통치 행위로 예외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 끝없는 소송에서 벗어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혼자 일상을 회복해 성군의 자리로 왕정복고하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카프카의 소설 속 심판의 요제프K가 되어 출구 없는 법정을 헤매고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에 쫓기고 있다는 걸 믿는 실존주의적 망상에 빠져 있다.

사실 윤석열은 하나의 거대한 부조리의 표상 같은 인물로 우리에게 교훈점을 준다. 윤석열이란 법비의 잔기술에 세상의 법이 농락당하고 있음에도 손을 쓸 수 없는 현실은, 윤리적 당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를 부조리한 현실의 시궁창으로 내동댕이친다. 그리하여 비로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좌절해 가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희곡 <예외와 관습>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석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여정에 오른 상인은 길잡이(중간자)와 쿨리(짐꾼)을 고용한다. 길이 바쁜데 상인은 길잡이가 쿨리를 관대하게 다루고 있는 게 불만이다. 길잡이는 쿨리를 부려야 할 관습을 잊고 쿨리와 친해진다. 혹독한 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상인은 길잡이와 쿨리가 공모해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 쿨리를 가혹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잡이를 해고한다. 당연하게도 상인과 쿨리는 사막 한 복판에서 길을 잃게 되는데, 상인은 오히려 쿨리에게 더욱 가혹하게 굴며 매질을 하고 그의 수통을 빼앗아버린다. 물이 떨어져가는 상황, 상인은 자신이 살기 위해 쿨리로부터 수통을 숨긴다. 하지만 쿨리는 심한 갈증을 느끼는 상인을 보면서, 길잡이가 자신을 위해 몰래 챙겨 준 여분의 수통 꺼내 상인에게 건네려 한다. 상인은 쿨리가 돌맹이를 들어 자신을 해치려 하는 줄 알고 권총 꺼내 쿨리를 죽인다.

이 극의 핵심은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쿨리의 아내가 상인을 살인죄로 고소해 벌어지는 재판을 보면서 관객은 상인이 유죄라는 걸 확신한다. 쿨리가 건네려 한 게 돌맹이가 아니라 수통이라는 게 밝혀진 이 명백한 상황에서 재판은 엉뚱하게 진행된다. 판사가 상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관객은 혼란에 휩싸인다. 판사는 "물을 나누어 마실 때 손해를 보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오로지 이성적인 행위"라면서 "수통으로 상인을 때려죽일 의도였다"고 보는 게 관습적으로 타당하다고 판결한다. 쿨리는 노예여야 하고 노예는 공격적일 수밖에 없으며 인간성이 존재할리 없는 사람이다. 상인은 그런 관습에 충실했다는 게 무죄의 이유다. 그러자 브레히트는 코러스의 입을 빌려 극에 난입한다.

"저들이 만든 체제에서 인간성은 예외입니다. (...)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는데, 늑대가 마시는구나."

현대 사회 법치의 아이러니를 표현한 이 극은, 관객의 상식적 기대를 벗어난 흐름으로 교훈을 주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꼴은 하나의 거대한 교훈극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세워놓은 법치가, 형법상 최악의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저지르고 법정에 서 있는 윤석열에게 관대하게 작용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 체제는 윤석열과 같은 '법비'에게 휘둘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그 추종자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권력 유지에 필요한 가짜 서사를 만들어 불리한 진실을 죽여버렸다. 윤석열은 야당이 반국가 세력이고 그들이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선거를 교란시켜 북한과 중국 공산당에게 나라를 넘겨줄 것이라는 극우적 '관습'을 신봉하면서, 목마른 자에게 수통을 건네려는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민의의 전당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사람에게 마실 것을 건네니, 늑대가 그 물을 마시는 꼴이다.

국가의 기간인 헌법을 팽개치고 국회 침탈을 노려 내란의 죄를 범한 자에게, 법원이 발부한 체포 영장에 저항하고 사법 기관의 집행을 방해한 자에게, 지지자의 법원 난입 폭동을 선동하고 지금도 폭력 시위를 부추기고 있는 자에게, 법원은 관습을 인정하고 그를 석방했다. 사법 체계 질서 자체를 무시하고 짓밟고 조롱했음에도 법원은 공수처와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절차상 불비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윤석열의 손을 들어줬고, 윤석열을 기소한 검찰의 정당성을 흔들어댈 명분을 극우 세력에게 던져주고 있다. 현직 대통령 최초의 '내란 현행범' 혐의라는 사안의 중대성과 특수성을 따질 판사의 '재량권'은 어디로 갔나? 그 재량권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법정의 '재심 걱정'에서만 작용하는 건가?

법원은 그를 석방함으로서 그에게 증거인멸의 기회와 함께 더 많은 거짓말을 꾸미고, 더 많은 지지자들을 선동해 법원을 협박할 용기를 줬다. 윤석열 석방, 내란 정국에서 최악의 장면 중 하나가 또 탄생했다.

우리는 상식을 조롱하는 법을 무시하는 힘있는 자에게 관대한 세상을 풍자한 100년 전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여전히 통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거대한 교훈극은 우리를 계몽으로 이끈다. 윤석열을 보면서, 법원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계몽되고 있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5.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