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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이날 평상 봄이 안 온 적이 없어

by 이성근 2025. 1. 31.

1. 윤석열 아래 악의 빙산을 보라 2.보수의 적()3. 물리적 충돌까지 선동하는 윤석열, 즉각 격리해야 4.대통령 경호처가 알아야 할 27년 전 특수공무집행방해 판례 5.위기의 대한민국 6.윤석열은 가도 국민의힘이 남는다. 그게 문제다 7.썰물 이후 밀물 시간, 다른 세상이 가능하려면 8.불확실성 시대, 새로운 사회계약 모색 9. 생각하는 군인이라야 산다 10.독재자의 후예와 그 동조자들

11. 저들은 자기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12.쿠데타 군대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13.음모론 14.‘피크 코리아와 민주주의 위기 15.사회 보호하는 시민, 시민 보호할 민주주의 16.최상목은 왜? 17. 윤석열이 풀어놓은 '파시즘'과의 속도전 18. 한국 경제의 숙제, 윤석열 단죄 먼저 19.‘키세스시위가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인가 20.한국경제, 다시 전환시대에 서다

21 왕을 꿈꿨던 윤석열씨,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22. 내란 가담 군 장성들에게 군사반란죄 적용해야 23. ‘내란성 불면증을 앓는 마음 24. 비상계엄 환영했던 부끄러운 과거 반복하려는가 25.부끄러움을 아는 시민들과 그것을 모르는 자들 26.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27. "수구기득권 세력 여전, 끝까지 싸워야“ 28.항복하라! ‘김건희 유니버스의 빌런군단 29.나라를 거덜 내는 뻔뻔한 헌법 모독 30. 구시대의 종언과 새 시대의 출발

31. 야스쿠니, 그리고 끝나지 않은 싸움 32. 윤석열 옹호자들에게 묻는다 33.내가 만나고 싶은 세계-탄핵 이후 34. 재앙 앞의 마음들 35.초고령사회도 각자도생하란 말인가 36.내란 이후, 기본부터 다시 37.내란성 불면의 밤을 지나며 38.7공화국과 재정민주주의 39.나훈아와 남진, 그리고 어른 40.계엄 타산지석엇갈린 일본

41.이 와중에 하는 삼성 이야기 42.파시즘의 두 얼굴 43.12·3 비상계엄과 광장민주주의, 후진형 정치를 넘어 44.‘국민의힘보존 법칙? 45. 사악한 자, 뻔뻔한 자, 비겁한 자 46.전문직종의 비민주성 47.수신의 정치는 난망한가 48. 43일간의 비루한 정치 49. 애국심 50.주술정치의 종막과 개혁의 서막

51.2025 을사년에 다시 보는 1905 을사년 52.살인마를 향한 사랑, 내란범을 향한 집착 53.대한민국 망치는 극우 카르텔윤석열·국힘·태극기 부대 54.폭주하는 극우를 이기는 법 55.법꾸라지윤석열의 연전연패 56.윤석열 체포'로 본격화된 '조기 대선 국면'을 읽는 7가지 키워드 57.'윤석열'은 보수의 '질병'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다 58.윤석열, 내란 선동을 멈추라 59. 영 김과 미국의 이익선 60.선동은 어떻게 폭동이 되었나

61.탄핵당하지 않는 재벌 총수들 62.자유우파라는 이름의 망상 공동체’ 63. 내란범죄에서 극우테러까지'윤석열들' 앞에 선 국가의 과제 64.‘보수의 폭력에 너무 관대한 나라 65.한국 정치 보는 미국의 세가지 시각 66.중종반정과 인조반정 67.부끄럽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68.찾는 일과 되찾는 일 69.확증편향적 신념에 대하여 70.미국 우선주의와 금융시장에 쌓이는 불안

71.이날 평상 봄이 안 온 적이 없어 72.지옥에서 벗어날 용기 73.서부지법 폭동의 뿌리, '극우 내란' 발화점 진압해야 74.다음 사회를 위한 연대 75.비상계엄이 부른 혼돈, 파국 아닌 전환의 새길 찾기 76.서부지법 폭동 군중의 증오는 만들어진 것이다 77.민주주의 킬러, GDP 킬러 78.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일까 79.마음으로 필사하는 사회계약 80.반사회적 의견광고의 숙주 매체

81.몽매한 망상이 활보 못하게 82.인과성 왜곡 83.“AI 100대 기업, 한국은 0” 84.도사·목사와 내란 85.경계해야 할 금리인하 만능론 86.한국보다 더 못 믿을 러시아 여론조사 87.사나운 개를 대행하는 교활한 쥐새끼들 88.이재명 대 반이재명전에 헌법 대 반헌법’ 89.에게 생선을 넘기겠단 고양이 90.부끄러움과 상식을 회복하자 91. 조선일보의 '대한민국 때리기'는 끝을 모른다

윤석열 아래 악의 빙산을 보라

12·3 쿠데타 이후 어느새 한달이 지났다. 그사이 국회 증언 및 수사로 드러난 사실들과 정부·여당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12·3 내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운명의 도움과 시민들의 용기로 가까스로 모면한 것이 단지 일시적 계엄이 아니라 잔혹한 테러였다는 것이다. 도끼로 문을 찍고 총을 쏴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대통령의 명령, 군 체포조가 소지한 야구방망이, 송곳, 망치 등 고문 도구, 그리고 정치인, 판사, 언론인, 종교인, 노조 지도자들을 수거’, ‘처리’, ‘사살한다는 작전 계획은 한국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국가폭력의 귀환을 뜻했다. 내란 세력이 계획한 대로 국회 봉쇄, 주요 인사 체포, 선관위원 고문, 부정선거 선포, 국회 해산, 독재의 수립이 완료되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것과 같은 공포의 감옥 안에 살고 있을 것이다.

계엄 뒤 밝혀진 또 하나의 중대한 사실은, 위와 같은 대내적 독재 수립 계획이 대외적 전쟁 도발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권은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고 독재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북한에 수차례 군사적 도발을 했으며, 심지어 국내 공항과 미군 기지에 북한 소행으로 위장한 테러 계획까지 세웠다는 증언이 나왔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군사 도발을 자행하는 깡패국가로 전락하여 국제적 리스크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우려해야 한다.

그동안 극우 세력은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한국이 북한의 핵 조공국이 될 거라는 협박으로 윤 정권의 독재화를 정당화해왔다. 그러나 이제 국제사회는 북핵 위험 못지않게, 한국이 3차 대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위험 역시 크다고 인지하게 됐다. 이처럼 공포정치와 전쟁국가를 세우려 한 무시무시한 시도가 윤석열이라는 나쁜 대통령 한명 때문에 일어날 수는 없다. 윤석열이 해수면 위로 솟은 얼음송곳이라면, 그 아래에는 수많은 군 장성과 장교, 정부 각료, 정치인, 검경 및 국정원 수뇌부, 극우 유튜버와 목사, 광신적 추종자로 이뤄진 거대한 악의 빙산이 있다.

그것의 한 축은 국가기관과 정당의 부패한 엘리트 집단이다. 12·3 쿠데타와 그 이후 상황에서 놀라운 사실은 군과 검경, 국정원 지도부의 수많은 인물이 내란을 공모·실행했으며, 국무위원들과 국민의힘 의원들 대다수도 내란에 동조하여 엄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는 거대한 폭력조직, 범죄조직이 되었고, 국민은 그 인질로 잡혀 있다. 그래서 국민은 법을 지키려면 그들의 파렴치함을 지켜볼 수밖에 없고, 그들을 징벌하려면 법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다른 한 축은 극우단체들과 거기에 연계된 사회 각계 엘리트 집단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극우 개신교 세력과 반공 이념단체, 우익 엘리트 단체들이 포함된다. ‘극우하면 사람들은 보통 집회에서 극언을 쏟아내는 전광훈 목사,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며 호응하는 신도, 선글라스와 군복 차림의 노인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많은 극우단체의 임원, 발기인은 전현직 총리, 장차관, 군 장성, 판검사, 교수, 언론인이다. 이들은 국가조직과 정치권력에 깊숙이 들어가기도 하며, 후방 지원 역할을 하기도 한다.

 

12·3 쿠데타에서 나타난 테러독재 구상과 대북 전쟁 도발은 윤석열 개인의 망상이 아니라, 위와 같은 거대한 극우냉전독재 세력의 사회적 하부구조를 윤석열 정권의 당····경 지도부가 극한까지 응축시킨 결정체였다. 역으로 윤석열을 지키려 국민의힘과 극우단체, 대형 교회 목사들이 결집하는 이유 역시, 이 우둔하고 광폭한 술꾼을 추앙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윤석열이 그들의 이익과 욕망을 실현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 정당, 사회에 포진한 극우 엘리트 세력이, 국민 대다수가 염원하는 윤석열 탄핵과 내란 세력의 사법 처리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이 교착 상태가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날지 가늠할 수 없기에, 대한민국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다.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이 파면되고 내란 세력이 완전히 처벌된다면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말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 재공고화와 국제사회의 재평가를 위한 노력을 개시할 수 있다. 하지만 탄핵이 기각되어 윤석열이 대통령에 복귀한다면 그는 거듭 독재화와 전쟁 도발을 꾀할 것이다.

이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사태가 불행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면 야당과 수사당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단지 탄핵, 조기 대선, 정권 교체로 이어진 2016~17년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극우의 하부구조를 깰 수 있는 힘은 그들의 차별과 폭력에 의해 고통받고 지워진 존재들의 행동과 연대에서만 나올 수 있다.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의 투쟁에서 시민들은 행동에서 희망이 생겨나며, 연대에서 힘이 생겨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 싸움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시리도록 구체적인 생존과 존엄의 문제다. 우리는 그것을 오직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을 통해서만 지켜낼 수 있기에, 그리고 독재는 사회의 힘없는 이들을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희생시킬 것이기에,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지향은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실업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자, 청년, 학생, 군사독재를 겪은 부모 세대를 이어주는 고리가 되어주고 있다.

계엄 이후의 국가적 위기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다. 이 나라의 국가기관과 엘리트 집단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각성하게 되었고,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겸허히 성찰하게 되었으며, 그런 현실과 싸우며 연대하는 공동체가 생겨났고,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 평화를 염원하는 세력이 압도적 다수임을 확인하고 있기도 하다.

이 고비를 잘 극복한다면, 지금의 국난은 더 나은 사회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낙관의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존엄을 지키려는 절박함 때문에 싸우고, 그 싸움이 희망의 틈새를 만들어낸다. 2024년은 어둑한 불안과 슬픔이 가득했던 한해였다. 2025년에는 우리가 악의 빙산을 깨뜨리는 수천개의 빛이 되자.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한겨레 2025.1.1.

 

보수의 적()

대통령 윤석열의 몰락은 보수의 멸족이 될 것인가. 윤석열의 민주공화국 파괴 망동 이후 보수가 겪는 처절한 혼란은 모두 이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당초 계륵과도 같았던 좌충우돌 권력자는 보수의 발목을 꽉 잡아채는 모래수렁이 된 것 같다.

지난해 117명태균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윤석열의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임기에 관한 것이었다. 담화문을 마지못한 듯 읽어가던 그는 유독 한 대목에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저는 202759, 제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모든 힘을 쏟아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고 한 달도 안 돼 자폭적 비상계엄이라니, 임기를 지킬 수단은 이 분열증적 도박을 말하는 것이었나. 야당의 국정 방해를 핑계 댔지만, 자신과 부인의 비리 방탄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 탄핵 이후 계엄을 통치행위라 강변하고, 수사를 거부하며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정신착란 수준의 버티기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터다. 도대체 이 비극적인 맷집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보수의 복잡한 심사를 철석같이 믿고라도 있는 것인가. 비상계엄의 그 밤 이후 보수는 세 유형으로 갈라지는 듯하다. 전광훈류 극우의 현실 부정세력과 감춰뒀던 독재의 DNA를 커밍아웃하며 극우를 오가는 기회주의 보수’, 그리고 보수 구명에 나선 시민으로서의 보수.

우리 사회 10% 안팎으로 추정되는 전광훈들은 충격적이다. 시민이 총구 앞에 놓이고, 심지어 희생될 수 있었음에도 계엄령 만세를 외치고, ‘윤석열을 지켜라아우성치는 그들과 같은 시공간을 나눈다는 게 섬찟하다. 온갖 패악질로 해방 공간을 피로 물들인 서북청년단을 떠올린다면 과도한 것일까. 어느 보수 논객은 미치광이를 싸고도는 미치광이라고 분노하지만, 그래서 더 두렵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을까. 이들은 박근혜 탄핵 학습효과를 이야기한다.

 

실상 과거도 현재도 더 심각하게 공화국을 위험에 빠트리는 건 기회주의 보수들이다. 계엄이 잘못이라면서도 경솔한 한밤중의 해프닝일 뿐이니 탄핵은 안 된다 하고, 향후 권력 향배와 결부 지으며 당면한 국가 위기엔 눈감는다. 계엄에 공동책임을 져야 할 친윤 패거리와 정부 내 잔존 인사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 저질 양비론으로 본색을 드러내는 무리들이다. 10% 보수가 극우 괴물이 된 것도 끊임없이 정치혐오를 부추겨온 이들과 무관치 않다. 윤석열의 계엄이 극단적 정치 양극화의 결과물처럼 호도하며 민주주의의 죽음을 주장하는 위선에 이르러선 헛웃음만 나온다. 바로 자신들이 양극화된 진영한가운데서 기생하며 정치의 타락을 부추겨왔음을 왜 모르는가. 그들이 윤석열의 숱한 비정상 행태에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경고했다면 무도한 계엄은 없었을 것이다.

기회주의 보수들은 윤석열을 이용은 했지만 존중하지는 않았다. 계엄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과 통화하며 느낀 감정은 멸시였다. 혀를 끌끌 차는 한숨과 윤석열을 향한 업둥이모멸은 친윤이라고 덜하지 않았다. 제 편조차 뒤돌아 조소했으니 그가 분열증적 광탈’(광속 궤도이탈)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이제와 권력의 화양연화는 끝났다는 낭패감에 심판의 시간을 미루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허망한 일이다. ‘가치를 말하지 않고, 업둥이든 뭐든 상관없이 권력만 탐했을 때 예견된 운명이다.

 

보수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엄의 어둠 속에서도 보수가 가야 할 길을 밝힌 불씨들을 본다. “지금 국회에서 막지 못하면 국민들이 피를 흘릴 수 있다는 생각에 앞도 뒤도 보지 않고”(김상욱) 계엄 해제에 나서고, “제가 대리해야 하는 시민들을 대신해 당연히”(김예지) 탄핵안 표결에 들어가 시민의 곁을 지킨 이들이다.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하는 참담함에 그들도 번뇌했을 테지만, 정치인 이전에 공화국 시민의 의무에 투철했기에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김상욱은 보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한다. 국민이 보수를 버리는 게 아니다. 보수 스스로 몰락을 선택하는 것이다. 8년 전 박근혜 탄핵의 강을 온전히 건너지 못하고 보수 변화의 싹을 모조리 자른 결과가 오늘의 윤석열 참사일 것이다. 보수의 적()은 보수 안에 있다. 이 혼란 와중에 또 다른 업둥이를 꿈꾸며 기웃거리는 자, 업둥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무리들부터 멀리해야 한다. 주권자로서 보수는 선택해야 한다. 공화국 국민이 될 것인지, 공화국 파괴자가 될 것인지. 진짜 보수라면 멸족이 아니라 나라를 걱정해야 한다.

김광호 논설위원 | 경향 2025.1.1.

 

물리적 충돌까지 선동하는 윤석열, 즉각 격리해야

내란 우두머리피의자 대통령 윤석열이 관저 앞에 모인 탄핵 반대 시위대를 독려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하자 이를 저지해달라고 지지자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거부하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법을 집행하는 수사기관을 향한 물리적 충돌을 사실상 선동하고 나선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시위대에 편지를 보내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위헌적인 계엄령으로 군대와 경찰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기소되고 있는데도 반성의 기색은 전혀 없고, 오로지 자신을 지켜달라며나라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무책임하고 후안무치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다.

 

변호인들이 쏟아내는 궤변도 선을 넘었다. 석동현 변호사는 1일 관저 앞 집회 무대에 올라 여론전을 펼치면 이길 수 있다체포영장은 불법 무효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또 입장문을 통해 경찰기동대가 공수처를 대신해 체포·수색영장 집행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으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사실상 시위대로 하여금 경찰을 공격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폭동 선동을 언제까지 내버려둬야 하는가.

윤 대통령과 변호인단의 이런 선동으로 인해 시위대들이 점점 과격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유튜버는 “100리터 휘발유가 든 드럼통에 심지를 박고 불을 붙여 굴려서 폭발하면 반경 30는 불바다가 된다”, “새총, 쇠파이프, 화염병, 짱돌 등 모든 방어적 자원을 확보해둬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유튜버는 민병대를 조직해 결사 저지하자고 주장한다. 군을 동원해 국회를 침탈하는 내란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이번엔 자신을 지지하는 시위대를 발판 삼아 2차 내란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물리적 충돌 등 돌발 상황이 우려돼 2일 소속 의원들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리기도 했다.

공수처를 비롯한 공조수사본부는 이 내란 피의자를 즉각 잡아들여 하루빨리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선동을 막아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하기에는 우리 공동체가 처한 위험이 너무나 크다. 한겨레 사설 | 2025.1.2.

 

대통령 경호처가 알아야 할 27년 전 특수공무집행방해 판례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죄를 공무원들이 저지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무원이 다른 공무원의 공무집행을 방해한다는 상황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경호처라고 하는 막강한 조직에 속한 공무원들이 단체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법원의 체포영장 및 수색영장 발부에도 불구하고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이 관저에 들어앉아 있고,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를 명분으로 영장 집행을 방해할 태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경호처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윤석열에 대한 영장 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한 특수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판례로 부안군의회 회의 방해판례가 있다.

199611, 전북 부안군청 공무원 150여 명은 당시 부안군수와 내무과장의 지시로 부안군의회의 회의를 30분 동안 방해했다. 회의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막고 군의원들의 회의 진행을 방해한 것이다.

당시 부안군의회는 부안군수와 갈등 관계에 있었고, 그래서 군수 불신임 결의안을 회의 안건으로 상정해서 다루려고 했다. 그런데 부안군수와 내무과장이 이 안건 상정을 막으려고 공무원들을 동원했다.

군수 불신임 결의안상정 방해한 부안군수와 공무원들 특수공무집행방해죄 선고

여기에 대해 부안군수와 내무과장은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그리고 피고인들이 항소했지만, 2심에서 내무과장만 집행유예로 감형되었다. 1998년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해서 부안군수는 실형이, 내무과장은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당시 부안군수와 내무과장은 지방의회에서 다루려고 하는 안건이 군수 불신임 결의안인데, 지방자치법 등에 근거가 없는 안건이어서 위법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지방의회의 안건 중에 지방의회의 권한에 속하지 않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지방의회 의원들이 회의에 참석하고 의사진행을 하는 것은 적법하므로 이를 방해하는 것은 특수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회의 자체가 불법적이거나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회의를 방해하는 것은 특수공무집행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법리를 지금의 상황에 적용해 볼 수 있다.

만약 대통령 경호처 공무원들이 물리력으로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을 방해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대통령 경호의 필요성을 강변하거나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대한 불만을 제기해 본들 소용이 없다. 체포에 대한 불복은 체포적부심 청구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이전에는 무조건 법원의 체포영장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대통령 경호처나 피의자 윤석열 변호인들이 주장하는 여러 가지 억지스러운 주장이 설사 일부 인정되더라도,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므로, 지방의회의 회의를 방해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게다가 대통령 경호처 공무원들이 영장집행을 방해하면서 누군가가 다치기나 하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이 된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에 처하게 돼 있는 중대 범죄이다. 벌금형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경호처 공무원들을 지휘 감독한 경호처장은 무조건 실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의회의 회의를 방해해도 실형으로 처벌받는데, 하물며 내란수괴를 비호하기 위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을 방해한다면 당연히 실형일 수밖에 없다.또한 윤석열은 이미 내란죄의 수괴이지만,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도 처벌받게 될 것이다. 윤석열의 지시나 묵인 없이, 경호처 공무원들이 영장집행을 방해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검찰총장 출신인 대통령이 내란죄에 덧붙여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까지 처벌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대통령 경호처는 1996년 부안군의회 회의 방해 사건을 참고하기 바란다.대통령 경호처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실형이 아니라 집행유예만 받아도 공무원 신분이 상실될 뿐만 아니라 연금에도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대통령 경호처 공무원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승수 뉴스타파 전문위원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 | 뉴스타파 2025.1.2.

 

 

위기의 대한민국

지난해 1229일 오전에 발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는 전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123일 한밤중에 일어났던 현직 대통령의 불법적 친위쿠테타와 이어진 정국 불안정으로 인해 심란한 와중에 접한 비보였기에 더욱 황망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참사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인재 여부를 밝혀야 한다. 만약 인재 요인이 있다면, 충분하고 철저한 형사·민사적 책임 추궁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인재에 의한 대형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철저한 형사·민사적 책임을 우리 법체계가 물을 수 없다면, 법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이에 미온적이면, 이들부터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24년은 한국 엘리트들의 민낯을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어느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나쁜 사람(the bad)’이거나 추한 사람(the ugly)’이었다. 국민을 배반하고 경제를 나락으로 내몬 친위쿠테타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가담자들은 두말할 것 없이 나쁜 사람이다.

문제는 이런 나쁜 사람이 자신이 믿지 않는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국정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는데, 실상 후보자의 생각과 비전도 모르고 뽑은 것이다. 지나치게 짧은 후보 선출과 공식 선거 기간으로 인해, 후보자 간 상호검증이나 언론과 유권자에 의한 검증이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고, 결국 연출된 후보자의 이미지가 당선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된다. 후보자 선출과 공식 선거 기간의 확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행정처가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를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고 임명해야 한다는 해석을 사실상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탄핵되는 길을 선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추한 사람이다. 민주당 계열 정부와 국민의힘 계열 정부에서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두 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사람으로서 헌법재판관 후보 임명 거부가 불러올 경제적 충격을 몰랐을 리 없다. 무책임한 것인지 일신의 이익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직업 공무원 전체 얼굴에 먹칠을 했다. 경제관료인 최상목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나, 원칙 없는 취사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 행태가 읽힌다.

 

대통령 계엄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헌법재판관 임명은 반대하는 국민의힘 지도부 역시 나쁜 사람이거나 추한 사람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과도기적 상황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나마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지만, 다음 총선 때 이해득실만 계산하는 이기적 행위에 매몰되어 있다. 얼굴을 두껍게 하고 다녀야 한다는 막말마저 들린다.

국민의힘이나 윤 대통령이 극성 지지자에게만 호소하는 이런 전략이 어느 정도 통하는 것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재판 대응 전략을 물고 늘어지고 또 조기 대선이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내려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선동 때문이다. 이런 선동을 막고 정국을 안정시킬 열쇠는 이 대표가 쥐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경우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이 대표는 우리 정치에 드문 선한 사람(the good)’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단을 못한다면, 권력욕에 찌든 흔해 빠진 추한 정치인이 될 뿐이다.

 

정치 엘리트만 문제인 것도 아니었다. 삼성전자 주가가 2024710일에 87800원을 찍고 지속적으로 하락해 5만원대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HBM 부문에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뒤졌고, 수십조원을 투자한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부문은 부진한 결과이다. 이대로 간다면, 삼성전자는 길어야 10년 안에 고만고만한 전자회사로 쇠락할 것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재용 회장은 회사의 미래와 대응 전략을 설명하는 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 해외 순방이나 지방 일정을 수행한 열의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경제 엘리트인 이재용 회장 역시 추한 사람일 뿐이다.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든 국민들의 외침이 이 패거리에서 저 패거리로 정권이 옮겨가는 수단으로 소모된다면, 대한민국의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광장의 외침이 부패한 한국의 정치 및 경제 엘리트를 물갈이할 수 있는 제도 혁명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위기의 대한민국은 소수의 선한 사람(a few good men)’을 소환하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향 2025.1.2.

 

 

윤석열은 가도 국민의힘이 남는다. 그게 문제다

얼마 전 한 유명 보수 유튜버를 검색해 열어본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은 구독자 100만 안팎을 보유한 쟁쟁한 보수 유튜버들의 세계로 줄줄이 나를 안내했다. ‘탄핵소추안 가결 뒤 대통령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헌법재판소 8인 체제가 됐어도 해볼 만하다’, ‘관저뿐 아니라 헌재 앞에서도 열심히 싸워야 한다같은 주장을 쏟아내는 채널들이 화면을 채웠다.

윤석열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수년간의 단련을 거쳐 특정 취향으로 이보다 훨씬 공고히 구축됐을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한 방송에서 윤 대통령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다 망가져 세상을 보는 창 자체가 망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 속에 살면서 윤석열은 공산전체주의와 반국가세력에 흥분하며 일거에 척결할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끄집어내 부정선거 실체를 밝혀내서 정국을 한방에 역전시킬 꿈도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내란 실패로 궁지에 몰렸으니, 더 깊은 동굴 속으로 걸어갔으리라. 급기야 그는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새해 첫날 지지자들에게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의 선동으로 정국이 더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의 싸움이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 국민 자존심을 이겨내진 못할 것이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박근혜 탄핵 사유는 윤석열에 견주면 새 발의 피였다“6인 체제든 9인 체제든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올 걸로 예상한다고 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저물어가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여전히 그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윤석열이 처단되더라도 국회 의석 100석 이상을 지닌 국민의힘은 2028년 총선 때까지 원내 제2당으로 존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내란 옹호 정당 모습을 유지한 채 국회의 거대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한 12·3 내란은 완전 진압이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의힘을 방관할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은 잘못이라면서도 윤석열 탄핵소추는 당론으로 반대하는 치명적 악수를 둠으로써 스스로를 내란의 늪에 가뒀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들은 국민의힘의 스텝이 얼마나 꼬여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지난달 30일 취임사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윤석열의 내란에 대해 사과한다는 건지, 탄핵소추를 못 막아서 죄송하단 건지 분명하지 않다. 그는 윤석열 체포영장 발부 직후에는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거나 도주 우려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더구나 애도기간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체포를 반대한다는 건지, 애도기간 이후 영장이 발부됐더라면 좋았겠다는 건지 모호하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요건도 절차도 갖추지 못한, 너무도 명백한 위헌·위법 행위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헌법 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침탈하고 정치인들을 체포·구금하려 한 내란이고 친위 쿠데타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내란 사죄, 탄핵 찬성이라는 상식을 말하지 못한다. 소수 지지층만 바라보는 선택을 해놓고, 이제 와 다수 국민들도 살피는 모양을 취하려니 권 비대위원장처럼 미끄러운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진심은 실제 벌어지는 행태에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반대했고, 의원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운운하며 윤석열을 옹호했다. 윤상현 의원은 전광훈 목사의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탄핵소추를 못 막았다며 큰절 사과를 했다. 내란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탄핵심판도 수사도 거부하는 윤석열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의힘은 내란 수괴 배출 정당이다. 검증도 준비도 안 된 이를 급히 데려다 대통령으로 만든 뒤, 그의 야당 경멸, 의회 무시, 권력 폭주를 제어하지 못했다. 이 당 출신 대통령이 연속으로 두명째 파면당할 상황이다. 국민에게 석고대죄, 윤석열과 결별, 새로운 보수로 재탄생을 꾀하는 게 마땅한데, ‘이재명 공직선거법 재판 2심보다 윤석열 탄핵심판이 먼저 나와선 안 된다는 주문을 외우며 버티기 중이다. 그러느라 내란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 탈출을 더 어렵게 한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너무도 힘겹게 한 해를 건너온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상식, 평온, 무탈 같은 것들이다. 평범한 일상의 회복을 돕는 일이 국민의힘은 그토록 힘든가.

황준범 논설위원 | 한겨레 2025.1.2.

 

 

썰물 이후 밀물 시간, 다른 세상이 가능하려면

썰물이 지면, 바닷물 아래 바닥이 드러난다. 해양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체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게 된다. 물론, 바다를 오염시키는 쓰레기도 함께 나타난다. 역사의 썰물도 마찬가지다. 퇴행과 저항이 오가는 사이, 일상적인 언론 보도에선 잘 드러나지 않았던 사회 진보의 진짜 주인공이 나타날 때가 많다. 이들이 자기 언어를 가질 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근대 유럽의 시민혁명이 그랬다. 19805월 광주 이후, 한국 사회 민주화 과정도 비슷했다.

 

이런 점에서 나는, 2024년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이라는 시대적 퇴행이 역으로 시대적 전진의 기회가 될지 주목한다. 12·3 퇴행 시도가 역으로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이를 통해 다시 민주주의를 원상회복하려는 복원력이 발동됨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기존의 체제에서 잠자고 있던 정치적 역동성과 대중의 민주주의 감수성이 깨어났다. 아울러 기존 권력 엘리트의 한계가 드러나고, 다양한 소수자의 언어가 광장을 메웠다. 또 시위 현장의 문화와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 같은 변화가 87년 체제를 거듭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19876월 항쟁으로 만들어진 민주 헌정 체제를 ‘87년 체제라고 한다. 여야 간의 타협으로 직선제 부활을 포함한 선거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구성한 ‘87년 체제는 양면성을 갖는다. 한편으론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선거민주주의라는 그릇을 만든 사건이었지만, 그 정치적 그릇에 담긴 내용은 한계가 분명했다.

 

‘87년 체제한계 뛰어넘어야

그 한계는,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진행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나타났다. 기초 지표에 해당하는 지니계수, 자산소득 대 노동소득의 비율, 상위 1%의 소득 비중, 상위 1%의 부동산 비중 등 모든 지표에서 격차 확대와 양극화가 뚜렷해졌다. 예컨대 1987년과 2023년에 상위 1%가 보유하는 부동산의 비중을 비교해 보면, 1987년에는 약 30%였고, 2023년에는 50%로 크게 증가했다. S 해거드와 S 카우프만은 현대 세계의 민주주의의 후퇴를 16개국 사례를 통해 분석한 책 <백슬라이딩(역행)>(2021)에서, ‘양극화의 치명적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확대가 정치적 극단화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속화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양극화의 치명적 효과는 사회적 분리의 고착, 그리고 사회적 병목현상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교육을 중심으로 보면, 단적으로 부모 세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자녀 세대의 학력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됐다. 이 대표적인 통로가 바로 사교육이다. 지금의 사교육 산업은 수능 등 입시평가가 요구하는 지식과 역량을 학생 맞춤형으로 만들어 낸다. ‘시험 기반 한국형 능력주의는 이를 공정한 것으로 믿게 한다. 이 과정에서 중하위계층 자녀의 좋은 재능들은 충분히 계발되지 않는 반면, 중산층 이상 계층 자녀는 과열 경쟁 속에서 문제풀이식 사교육 의존이 심화돼 스스로 공부하는 힘과 창의 역량을 기르지 못한다.

 

결국 사회 전체에서 동맥경화가 생겨난다. 나는 교육감으로 재직하며 매년 초중고의 배정 갈등을 경험했다. 안타깝게 반복되는 사례는, 중산층 이상 계층 학부모들이 그들의 자녀가 임대아파트 등에 거주하는 중하위계층 자녀와 같은 교실에서 어울리기를 기피하는 경우였다. 해방 이후의 역사에서 학교 교실은 사회통합을 위한 용광로 같은 역할을 해 왔는데, 사회경제적 격차 확대와 함께 교실을 오히려 계급계층 분리의 현장으로 만드는 압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교육이 희망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절망이 되어, 부동산 문제와 함께 세계 최고의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촉진하는 악순환이 나타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저출생의 핵심 요인은 부동산과 교육이다. 저출생의 위기는, 젊은 세대가 지난 민주화 40년에 이르는 동안 악화되어 온 거대한 경제적 양극화와 그와 결합된 사회적 병목들에 대한 좌절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낮은 출산율은 19876월 항쟁으로 빚어진 정치적 그릇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이며, 87년형 민주정이 실질적인 공화정으로서는 균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양한 사회대개혁 공론장 필요

12·3 비상계엄이라는 역사적 썰물 이후 밀물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 시간에도 87년 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방치한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부재가 인구 붕괴를 낳고 다시 사회적 절망을 부르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해서는 이처럼 사회의 선순환을 꽉 막은 동맥경화를 뚫어내는 공화적 대개혁이 필요하다.

검찰과 군인, 관료로 대표되는 기존 권력 엘리트의 한계가 드러난 지금, 누가 대안을 만들어 낼 것인가. 202412·3 비상계엄에 맞서 광장에 나선 이들의 면면은 그보다 훨씬 다양했다. 기존에 조직화된 단체들과 그 성원들은 물론이고, 응원봉을 든 젊은 세대에서부터, 다양한 깃발을 든 소수자들, 농민 등이 대거 참여했다. 중산층 이상 계층이 주도하는 공론장에서 그동안 배제돼 왔던 이들이다. 이제 교육 사회대개혁, 젠더 사회대개혁, 생태환경 대개혁 등을 논하는 다양한 공론장들이 상향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87년 체제가 빚어낸 정치적 그릇에서 배제된 다양한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와 요구가 더 폭넓게 담길 때, 민주주의가 국가 엘리트 선출의 형식으로 형해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주권자의 요구와 기대에 더욱 근접하게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사회화이다.

지금은 중단된 2000년대 세계사회포럼의 구호는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였다. 202412·3 계엄 이후, 우리는 퇴행을 막는 동시에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 경향 2025.1.2.

 

불확실성 시대, 새로운 사회계약 모색

총체적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곧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미국 우선주의는 전 세계 경제와 외교·안보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불안정한 정치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 폭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코스닥·나스닥 급락의 충격 여파도 적잖다. 이렇게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보수 집권세력은 권력야욕만 앞세운 행태들만 보인다. 오직 본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정권과 자리 유지에만 혈안인 듯하다.

 

지난 한 해 힘든 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충격들이 적잖았다.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싸고 전공의 집단사직과 의대생 휴학사태는 해를 넘겼다. 이뿐만 아니라 쿠팡 물류센터 사망사고부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오랜 기간 상흔이 될 것 같다. 게다가 100년 만에 처음 겪은 폭염·폭우와 폭설의 기후재난은 이젠 일상적 위험이 됐다. 지난 1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둘러싼 각 영역에서 총체적 난국을 접했다. 시민 불안은 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함께 사회적 재난과 맥락을 같이한다. 되짚어 보면 해결해야 할 숙제들을 확인시켜 준다.

극한의 의정 대립으로 병원 직원들은 무급휴직을 감내해야 했고, 계약만료로 일터를 떠난 비정규직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병원 신규 채용도 중지돼 수천명의 간호사 일자리가 사라졌다. 건설제조업 공장은 물론 물류센터와 유통분야까지 이젠 플랫폼노동과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임금체불이나 산업안전보건 의무조치 위반 등은 빈번한데 관리감독 사각지대다. 항공·운수와 보건의료분야에서조차 비용편익이 우선시돼 생명안전업무들이 외주화된 곳이 많다. 이처럼 노동시장의 취약성은 차별과 격차에 그대로 반영된다.

반복되는 현실 속에 도대체 변한 게 없다. 변화가 가속화되고 사회적 위험이 증가하는데도 말이다. 불평등으로 인한 압박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제는 정치체제와 함께 지속불가능한 사회경제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논의할 시점이다. 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찾고 노동자들의 권리 기반을 실현할 공화국 논의가 필요하다. 성장의 한계와 생산의 늪에서 새롭게 등장한 기후위기, 보건의료, 디지털 기술변화와 같은 글로벌 과제가 핵심이다. 기술발전은 노동세계 전반은 물론 노사관계 모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나은 노동을 위한 과제는 기존의 강성·연성 정책수단만이 아닌 대안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들은 이제 복지국가를 말할 자격이 없다

그 해법은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 실현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여기서 포용성, 형평성, 다양성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다. 이미 실업과 불안정 고용 및 소득불평등 심화 그리고 불충분한 사회적 보호의 제도적 과제들이 논의되고 있다. 소득기반 사회보험이나 육아돌봄 및 플랫폼노동 문제 등은 유럽연합(EU)과 일부 국가들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수준에서의 정책도구로서 규제와 시장 메커니즘, 표준설정 등을 섬세하게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과 사회적 연대는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새로운 사회계약의 핵심인 사회적 보호의 기본권을 권고(No.202)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평등 수준을 향상하고 차별을 종식해야 한다. 납작한 권리가 아닌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리로 전환해야 한다. 고착화된 불평등을 바로잡고, 새로운 불평등이 생겨나지 않도록 시민참여와 사회적 대화를 통한 새로운 사회계약 논의가 절실하다. 사회적 배제를 해소하고 보편적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때마침 국회에서도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 경향 2025.1.2.

 

생각하는 군인이라야 산다

윤석열의 12.3 친위 쿠데타 당시 동원된 일부 군인의 처지를 두고 여러 말이 많다.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으로서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항변하는 군인도 있다. 또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참총장의 명령으로 계룡대에서 행선지도 모른 채서울로 출발했던 군인들은 처벌에서 배제한다는 공조수사본부의 결론도 들려온다. 그야말로 한 순간의 시비로 누군가는 살고, 또 누군가는 감옥에 갇혀사회적 명성과 명예가 끝장나는 등 갈림길이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동원된 보통의 군인과 달리 장성급 사령관까지도 황당한 변명과 거짓말로 처벌을 회피하려는 여러 수작을 보니, 기가 막힐 일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다. 그는 국회 국방위와 법사위 증인으로 출석하여 위원들의 질문에 군인으로서 명령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없었다며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전에 기세등등했던 충암파 일원의 모습은 오간 데 없다.

 

국민의 국군을 부정한 장군들

함께 구속된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경우는 더욱 놀랍다. 그는 노상원 전임 정보사령관과 함께 롯데리아에서 수차례 내란 기획 회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초로 회동한 1117일 모임 당시 노상원은 자신이 직접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족쳐서부정선거 전모를 밝히겠다며 야구방망이·니퍼·케이블타이 등을 준비하라고 지시 내렸다고 한다. 그러자 문 전 사령관은 동행한 정보사 대령 2인에게 “(국방)장관님의 지시, 명령이 있으면 군인으로서 따라야 하지 않겠냐며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야말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과거 연이은 군사 쿠데타로 헌정질서가 유린되었던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가해자 처벌이 없었으니 아무런 교훈도, 깨달음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 된다. 하물며 이런 자들이 이 나라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막중한 지위에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언급한 이 자들만 문제가 아니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을 비롯하여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그리고 그 아래 일일이 거명하기 힘들 만큼의 최고위급 장성과 간부들이 대동소이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중에는 내란 혐의 수사가 진전되면서 내란 당일의 본인 언행이 사실과 다른의혹도 드러나고 있다. 국민을 두 번, 세 번 속이고 있는 것이다. 육사 생도 시절부터 장군이 된 지금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의식주 일체를 사실상 제공받으며 살아온 군인들이 이럴 수 있는가.

 

목숨 바쳐 반란군 막아섰던 일개 병장

이런 비겁한 장군들의 언행 앞에서 나는 지난 1979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의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고 정선엽 병장의 최후를 떠 올린다.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정선엽 병장은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장관마저 도망친 국방부 B-2 벙커를 홀로 지켰다. B-2 벙커는 유사시 전쟁이 발발하면 전투를 지휘하는 중요 시설이다.

정선엽 병장은 그 벙커를 지키고자 자원하여 배치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시각인 1213일 새벽 1시경, 실탄 장전된 총을 들고 반란군들이 국방부로 몰려왔다. 이어 총을 내려놓고 투항하라는 지시에 국방부 내 다른 군인들이 순순히 따를 때 그는 혼자서 저항했다. 사건 당시 숨어서 이 장면을 목격한 당시 방위병의 증언에 의하면 정 병장은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중대장님 밖에 없다고 말한 후 반란군과 격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최후였다.

정선엽 병장이 정말 뭘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정 병장은 그날 밤, 어떤 게 국민의 군대이며, 누가 반란군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는 정 병장이 B-2 벙커 근무를 자원했다는 사실 앞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제대 3개월을 앞둔 말년의 정 병장이 최초 배치된 경계 근무지는 국방부 건물 내 보안실이었다. 매우 안전한 곳이었다. 하지만 정 병장은 B-2 벙커에 이제 막 전입온 이등병을 배치하자 자기 대신 안보실로 이등병을 보낸 후 자원하여 벙커로 갔다. 중요 시설인 벙커를 반란군들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반란군이 몰려왔지만 정 병장은 투항 강요에 따르지 않았다. 그 밤에 반란군에 맞섰던 군인 중 목숨을 잃은 군인은 두 명뿐이었다. 정선엽 병장, 특전사령관을 지키려했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그 두 명이었다. 그 반란의 밤에 국민의 군대로서 본분을 다 한 군인이었다. 나는 두 군인의 이름을 잊지 않고 그 공적을 알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이 시대의 또 다른 의무라고 늘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고 추종만 한 자들의 업보

19588, 장준하 선생이 발행했던 <사상계>에 함석헌 선생이 기고한 글이 필화 사건으로 번졌다. 이승만 독재의 말기적 증세가 심화되어가던 그때, 이를 비판하는 함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이었다. 이승만 독재에 비관 대신, 백성이 생각하며 살아야한다는 이 글이 그들은 무서웠던 것이다. 결국 함석헌 선생은 이 필화 사건으로 감옥에 끌려가 고초를 겪는다. 하지만 그런다고 진실마저 갇힐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글의 감동이 살아있는 이유다.

12.3 윤석열의 내란 후 어느덧 한 달여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관여된 자들의 실체는 참으로 초라하다. 길게는 20223월 윤석열 대선 캠프 때부터 김용현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한계엄을 언급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또한 구속된 이들은 물론이고 현재 수사 대상인 군인 다수가 윤석열의 내란 발표 전 이미 계획을 구체적으로 듣거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윤석열의 대국민 반란 획책을 아무도 국민에게 알린 자가 없다. 나는 그 점이 놀랍고 또한 충격적이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사건에 연루된 군인들 중 상당수는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군인으로서 대통령 명령을 수행했을 뿐인데 왜 우리가 영화 <서울의봄> 속 전두광을 따른 반란군 신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다. 생각 없이 추종한 업보다.

 

국민에게 총 겨눈 당신들, 억울해 할 자격도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도 모르면서 내란 수괴범 윤석열과 그를 추종하는 김용현 따위의 명령만 따랐는데 뭐가 억울할까. 국민의 군대가 왜 국민에게 총을 겨누나. 왜 반역을 하나. 이런 것도 몰랐나.

생각하는 군인이라야 산다. 명심하라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5.1.3.

 

 

독재자의 후예와 그 동조자들

그는 여전히 왕처럼 행세하고 있다.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에도 끝내 불응했다. 공수처의 적법한 공무집행인데도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법 위에 존재하는 왕처럼 행동했다. 그의 충실한 호위무사박종준 경호처장과 경호처 직원 및 병사들을 마치 사병처럼 부려먹었다. 아직까지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런다고 사태가 전혀 달라지지 않을 텐데도 막무가내다.

어쩌면 그는 분할 수도 있겠다. ‘그날 밤 조금만 더 일찍 계엄군을 국회의사당에 투입했더라면. 1시간, 아니 30분만이라도 더 일찍.’ 그런 상상을 하며 그는 분루를 삼키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그랬더라면 지금쯤 그는 진짜 왕좌에 올라앉아 세상을 호령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손바닥에 그냥 자를 새긴 게 아니었다. 정말로 왕처럼 되고 싶었던 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충암파 최측근들을 만나 여러 차례 비상대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것만 거머쥐면 골치 아픈 야당 상대하지 않고 자신과 아내를 향한 특검도 받지 않으면서 입법·사법·행정 3부 위에 군림해 마음껏 세상을 다스릴 수 있을 텐데. 반국가 종북 세력을 싹 다 쓸어버리고 진짜 자유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을 텐데. 군인들인 박정희와 전두환도 그렇게 했는데 엘리트 검사 출신인 내가 왜 못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게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과 그 수하들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벌였던 일련의 행태들은 군사쿠데타 원조인 박정희와 박정희가 키웠던 전두환의 비상계엄 조치와 비슷한 대목이 많았다. 마치 그대로 베끼기라도 한 것처럼. 박정희의 197210·17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전두환의 1980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바로 그것들이다. 두 독재자는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해 손에 넣은 비상대권을 가지고 집권 연장과 권력 찬탈을 도모했고 성공했다. 저항하는 야당과 재야인사, 학생들은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경호실, 경찰 등 권력기관들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제압했다. ‘내란 우두머리피의자 윤석열과 그 수하들은 상당기간 앞선 두 독재자의 비상계엄 조치들을 연구하면서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는 19714월 대선에서 광범위한 관권·금권 부정선거를 자행했음에도 김대중 신민당 후보에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데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해 5월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즈음부터 민주화 요구가 각계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정희는 다음해인 19721017일 위헌·위법한 국가비상사태를 전격 선포했다.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권력을 강화하고 집권을 연장하기 위한 전형적인 친위 쿠데타였다.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했으며, 정적들을 체포·구금했다. 박정희는 당시 강창성 보안사령관에게 직접 야당의원 15명의 명단을 건네며 체포하도록 지시했다. 최형우·박종률·김녹영 등 야당 정치인들이 포함됐다. ‘40대 기수론의 대표 주자들인 김대중과 김영삼의 정치자금과 조직을 캐려는 목적이었다. 이들은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박정희는 9일 뒤인 1026일 유신헌법을 선포했다. 입법·사법·행정 3부 위에 군림하는 비상대권을 갖고 종신 대통령을 꿈꿨다. 그는 19791026일 구중궁궐 속 권력 암투 속에서 혁명 동지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질 때까지 무소불위의 철권통치를 했다.

 

전두환의 1980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전두환 신군부가 최규하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삼아 전권을 휘두르려는 쿠데타였다. 전두환도 정적 제거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당시 체포된 인사는 김대중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등 정관계 인사와 리영희 문익환 등 재야인사들이었다. 전두환은 14일 뒤인 531일 국가 통치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해 위원장에 취임했다. 국보위는 군 실세 14명과 장관 10명으로 구성돼 내각 기능을 했다. 입법·사법·행정부 위에 군림하는 비상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그해 10월에는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입법기구를 만들어 5공화국 수립을 위한 법적 토대를 구축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과 진술들로 미뤄보면, 윤석열은 박정희와 전두환처럼 비상대권을 거머쥐고 삼권 위에 군림하며 강권 통치를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무력화시킨 뒤 별도의 입법기구를 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계엄선포 당일 밤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부총리에게 건넨 쪽지엔 `비상계엄 입법기구의 예비비를 마련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를 구상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또한 그의 강권 통치를 뒷받침하는 권력기관으로는 기존의 검찰 외에 방첩사(옛 보안사)와 정보사, 경찰이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과 핵심 주동세력 김용현·여인형·노상원은 그렇다치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과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그리고 영관급 장교들까지 가담하고 나선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군사독재 정권 종식 이후 군인들은 병영으로 돌아갔다.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을 거치며 다시는 정치의 세계에 발을 담그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오판이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독재자의 친위 쿠데타에 가담하도록 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폐쇄적인 군대에서 육사 중심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치 성향이 강한 군인들이 사조직을 꾸리도록 방치한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5.16은 육사 8, 9기 중심의 일단의 군인들이, 12.125.17은 하나회가 그 중심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조직을 둘러싼 논란들이 계속됐으나 그렇다 해도 쿠데타 음모와 실행까지는 가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이들을 부추긴 게 그 전과 다른 점이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주도하는 친위 쿠데타는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더 높으니 가담 유혹에 빠졌을 수 있다. 이들은 잠시나마 유신정권과 5공 정권 때 쿠데타에 가담한 뒤 권세를 휘두르고 영화를 누렸던 선배들을 떠올렸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사태에서 관료 그룹들의 행태도 문제적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보인 한덕수 국무총리의 행동은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졌다. 국정 혼돈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켜야 할 막중한 책무를 가졌음에도 그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정치권에 떠넘겼다. 아무리 관료는 영혼없는 존재라 하지만 너무나 무책임했다. 윤석열의 내란 음모에 어떤 형태로든 연루되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일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나라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했는데 그는 그렇게 책임을 떠넘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보신의 끝판왕이다. 이런 그의 태도는 19805·17 쿠데타 때 최규하 대통령의 처세를 떠올리게 한다. 197912월 과도기 대통령을 맡은 최규하가 1980서울의 봄때 정치 일정을 앞당겼다면 쿠데타라는 상황까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정치 일정 단축이란 유신헌법 개정과 새 대통령 선거를 말한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신현확은 나중에 최규하 대통령하고 호흡이 잘 맞았다면 민정 이양이 제대로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5·17 싹쓸이를 불러온 최규하 씨는 (신군부가 자기를 업어주리라는 기대 속에) ‘민간 정부 출범이라는 국민에게 한 약속을 위배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김충식 저 ‘5공 남산의 부장들-권력, 그 치명적 유혹’)

 

이번 내란 사태를 보면, 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민주화가 됐지만 독재자에 절대 충성하거나 아부하고, 잘못을 알고서도 모른 체하며 따르는 자들은 여전히 권력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는 걸 목도하게 된다. 16세기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온 나라가 독재자의 손아귀에 통째로 떨어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구했다. 그의 작품에는 독재자 주변에서 그를 도와주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스티븐 그린블랫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폭군-셰익스피어에게 배우는 권력의 원리에서 독재자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번 내란 사태와 관련해 주목되는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대통령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이 부류에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자 마지못해 명령을 따르는 이들, 적극적으로 명령을 이행하면서 그 과정에서 뭔가를 챙길 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 그리고 고위직 인사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고통받게 하는 잔인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포함된다. 아마도 김용현·여인형·노상원 등 이번 사태의 행동 대장들이 어떤 부류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수사 결과가 맞다면 선관위원장 심문을 위해 야구방망이를 준비시킨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잔인한 게임을 즐기는 축에 속할 것이다. 그린블랫은 셰익스피어의 세계에서 그리고 실제 세계에서, 야심만만한 독재자는 이런 사람들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다소 음흉한 사람들이다. 왕이 파괴적인 인물이라는 걸 알지만 왕 덕택에 자신들이 이익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사태에 적용하자면 관료 그룹과 국민의힘 친윤계가 여기에 속할 것 같다. 세 번째는 왕에게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왕의 주장을 정당하다고 여기고, 왕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며, 왕의 감정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윤석열의 부정선거 의혹 주장을 믿는 극우 지지층 일부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밖에 왕의 위협 앞에서 겁을 먹은 사람들, 사태 파악이 잘 안되는 사람들, 그리고 왕이 형편없는 줄 알지만 중심을 잡는 어른들과 제도가 있어 나라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거라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겁쟁이이거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들이다. 셰익스피어는 작품들에서 이런 자들이 합해지면 나라는 집단적 패망에 이를 것이라고 암시한다.

 

윤석열의 내란 기도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이 있다. ‘윤석열 사수대를 자임하고 있는 경호처장과 일부 국무위원들, 대통령실 고위층들, 국민의힘 친윤계, 그리고 일부 극우 지지층들이 그들이다.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윤석열이 탄핵당하고 내란죄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윤석열처럼 극우 유튜브 채널을 보며 집단최면에라도 빠진 것일까. 그러나 윤석열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은 끝났다. 이들 비호세력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의 시대는 끝났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살아날 방법은 없다. 3일에는 경호처가 막아줬지만 그게 과연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왕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다. 윤석열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라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이므로 경호처는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에 따라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내란 공범이 되는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빨리 그와 절연을 선언하라! 그게 자신들도 살고 혼돈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박현 논설위원 | 한겨레 2025.1.4.

 

저들은 자기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책 황금가지에서 고대왕국의 정치가 인민이 오직 군주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전제정치라고 보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했다. 거꾸로, “군주는 오직 인민을 위해서만 존재하며, 소임을 다하지 못하면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거나 생명을 부지할 수조차 없는 존재였음을 많은 사례를 들어 보여줬다. 중국 사서인 삼국지위서 동이전의 부여 조에도 부여의 옛 풍속에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고 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왕이 허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5년 또는 12년마다 죽이고 새로 뽑는 나라도 있었다. 애초 왕은 공동체와 구성원의 삶에 무한 책임을 지는 존재였다.

 

정복 국가의 팽창은 왕권 강화 과정이기도 했다. 왕위는 세습되고, 주술을 대신해 정교해진 종교와 정치이념은 왕에게 백성을 잘 돌보라는 도덕적 책무만 남겼다. 519년간 27명의 왕이 통치한 조선에도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왕이 많았다. 양반 사대부들은 2명을 끌어내렸지만, 처형하지는 않았다. 상당수 백성은 병역에서도 제외되고 국가가 아닌 소유주에게 신분세(신공)를 내는 노비로 살았다.

백성이 주인인 민주공화제는 조선이 망하고, 백성들의 의회 설립 요구를 끝내 짓밟은 왕(고종)이 죽은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돛도 닻도 없는 조각배로 태어났다. 공화는 왕이 없는 정치체제, 민주도 대표자를 국민이 선출한다는 의미를 넘지는 못했지만, 1894년 동학농민전쟁, 1898년의 만민공동회, 19193·1운동을 거치며 흘린 백성의 피가 강을 이루고서야 그 배는 뜰 수 있었다.

 

광복 뒤, 민주공화정이 출범했다. 그런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들은 국민 주권을 유린하고 종신왕을 꿈꾸기 일쑤였다. 이승만은 경찰을 동원해 왕 노릇을 했고, 박정희는 군과 정보기관을 등에 업고 군림했다. 그가 죽임을 당한 뒤 서울의 봄을 전두환이 또 짓밟았다. 이에 맞서 싸운 1960년의 4·19 혁명과 1979년 부산·마산 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은 다른 어느 나라의 현대사에서도 찾기 어려운 장엄한 역사.

그렇기에 대통령 윤석열의 12·3 친위 쿠데타 기도는 너무 충격적이다. 기억에서 지워져가던 비상계엄을 43년 만에 다시 끄집어내, 국회를 무력화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김 왕정을 세우려 했다. 발상이 놀라 까무러칠 지경이다. 어쩌다 이 나라 정치는 저런 미치광이를 전제왕과 다름없는 힘을 가진 대통령으로 뽑게 됐을까? 혀를 깨물고 피눈물을 쏟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윤은 경제와 외교를 필두로 국정 운영에 너무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오기 부리듯 밀어붙인 감세·긴축재정 정책은 민생을 망가뜨렸다. 지지율이 2년차에 30%대로, 3년차엔 20%대로 떨어졌다. 여기에 배우자 김건희 문제 처리에서 공정과 상식을 저버려 사실상 국민의 탄핵을 받은 처지였다. 그러자 자신에게 등 돌린 주권자를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는 미치광이 짓을 벌였다.

비상계엄만큼이나 놀라운 것이 여당 국민의힘과 몇몇 장관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의 움직임이다. 내란 수괴에 대한 탄핵 심판과 수사를 방해하느라 여념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늦추고 최대한 시간을 벌어 정국을 흔들 기회를 엿보자는 속셈이 뻔하다. 민주공화국의 공직자가 아니라, 미치광이 왕의 충실한 신하로 행동하고 있다. ‘왕과 함께 순장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그날 이후, 우리는 붕괴 위기에 처했던 민주공화제를 제자리에 온전히 돌려놓으라는 숙제를 받았다. 제도의 위기를 부른 원인을 찾아 교정함으로써 한 단계 더 성숙시키라는 역사적 과제도 받았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당분간은 불가능한 일이 돼가고 있다. 100석 넘는 의석을 가진 국민의힘이 말하는 개헌론엔 12·3 내란에 대한 성찰이 한줌도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쌓아온 시민의 민주역량이 12·3 내란을 좌절시켰다. 그러나 내란 우두머리의 권력을 완전 박탈하고 구속·수감할 때까지, 저 많은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들이 헛소리를 그칠 때까지 내란은 평정되지 못한 상태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하루하루다. 주권자 시민은 각자 제자리를 단단히 지켜야 한다.

정남구 | 선임기자 | 한겨레 2025.1.5.

 

쿠데타 군대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아주 오래전 병영으로 돌아간 군대가 총을 들고 민주주의의 무대에 난입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민주주의와 군대의 관계를 다룬 국내외의 모든 논문은 한국에서 쿠데타의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군부독재를 경험한 나라 중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라고 했다. 그런데 쿠데타가 일어났다. 시민들이 주도한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안도하지만, 미친 대통령의 시대착오와 함께 대한민국 군대의 암 덩어리가 드러났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군대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스페인에서 1981년 쿠데타가 실패했을 때, 군부는 군법회의로 쿠데타 세력을 엄격하게 처벌했다. 쿠데타에 가담한 정치군인은 당연히 처벌받겠지만, 동시에 쿠데타의 징후를 알고도 방관한 군 고위층도 반성해야 한다. 여기서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법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번 쿠데타는 민주화 이후 문민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검찰(출신)과 군대의 합작품이다. 내란의 우두머리는 검찰의 우두머리였고, 바로 박근혜 탄핵 과정의 법률주의가 낳은 괴물이었다.

법률만큼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칠레의 인권박물관처럼 군부독재 시기의 국가폭력을 기억하고 교육했으면, 국민의힘 의원들이, 내각의 장관들이 혹은 일부 언론이 탄핵에 반대하고 결과적으로 쿠데타를 옹호하겠는가? 쿠데타의 재발을 막으려면 기억해야 한다. 기념관을 만들어 누가 어떻게 쿠데타에 가담했는지, 누가 쿠데타를 옹호했는지를 반드시 역사에 남겨야 한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도 점검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왜 군인 출신만 국방부 장관을 맡아야 하는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과 비슷하게 군부독재를 겪었던 칠레에서 여성인 미첼 바첼레트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해는 2002년이다. 이후 칠레 국민은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여성 국방부 장관으로 칠레군의 현대화와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확립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상징이다. 이제는 60조 국방비를 효율적으로 집행할 경영 능력이 있는 민간인이 맡을 때가 되었다.

민주화 이후 군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군에 대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극성도 문제를 키웠다. 선진국은 국방개혁 수립 과정부터 민군이 함께 참여한다. 물론 민과 군이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국방정책에 대해 군 장성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확고한 문민통제의 제도화로 갈등이 벌어져도 민군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국방비는 어떤가? 만성적인 재정적자 상황에서 60조원이 넘는 국방비를 부담스러워하는 의견도 있지만, 군은 언제나 만성적 예산 부족을 호소한다. 과거처럼 노골적인 방산 비리는 줄었지만, 구조적인 낭비는 여전하다. 민주 정부가 국방비를 얼마나 올렸는지를 자랑할 때가 아니라, 국방비의 효율적 배분 체계를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전력 증강의 구체적인 분야가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제대로 기획·조정·통제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다. 코스타리카처럼 군대를 해산하고 평화 국가를 지향할 수 없다. 튼튼한 안보와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최근 5년간 부사관 지원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고, 학군사관(ROTC) 경쟁률도 과거와 비교해서 하락했으며, 육사의 중도 탈락률이 20%를 넘어섰다.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를 준비하는 동안, 군대의 병이 깊어졌다. 독재를 위해 안보를 희생하려고 했던 환부를 도려내고, 국방개혁의 청사진을 만들 때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자주국방의 필요성도 커졌다. 계엄의 명분을 위해 전쟁 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쿠데타 세력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작전통제권이 여전히 미국에 있음에 안도한다. 부끄러운 현실이고, 비정상적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 주한미군, 즉 유엔사가 정전 체제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군이 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무인기를 세번씩이나 날릴 때, 유엔사는 무엇을 했는가? 전환비용은 부담이지만, 그래도 단계적으로 자주국방을 지향해야 한다. 동시에 주한미군이 쿠데타 세력의 불장난을 막을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입만 열면 안보를 외치는 세력이 얼마나 안보를 위험에 빠트렸는지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일부 정치군인의 탈선으로 군부 전체를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군인의 무모함에 대비되는 젊은 군인의 주저함에서 희망을 보았다. 대한민국 군대가 국민의 존경을 받고,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 한겨레 2025.1.6.

 

음모론

어떤 소셜미디어에서 특정한 음모설을 비판했더니 온갖 반박과 비난이 쏟아진다. 교수 맞아? 회색분자! 등등 인신공격은 기본이다. 내가 존중했던 분들도 그 내용에 일리가 있다고 거든다.

음모론이란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공식적·합리적 설명 혹은 해석을 물리치고 그 뒤에 어마어마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주장이다. 주로 권력자가 비밀리에 음모를 통하여 자기의 거대한 이익을 취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속인다는 설이다. 예컨대, 9·11테러가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설, 심지어 1969년에 미국 우주비행사가 달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도 거짓이라는 주장, 제주항공 참사를 특정 정치세력의 자작극으로 몰아가기 등 중요 사건에는 음모론에 기초한 반론이 생겨난다.

문제는 상당수의 식자도 이런 유의 주장에 쉽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내가 신뢰했던 어떤 사회운동가는 지금도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미국 정부의 음모에 의해 대중들이 기만당한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음모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NASA 직원과 관계자 수천 명을 속이거나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특히 우방국들이 그런 쇼에 속거나 눈감아줘야 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하기야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면, 결은 조금 다르지만,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라는 중세적 믿음을 수호하는 평평한 지구 학회’(Flat Earth Society) 등의 단체가 있기도 하다. 그들은 지구가 구형이라는 주장이 비과학적이며 기성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기만이라고 생각한다(미국인 2%650만명이 평평설을 믿는다고 한다).

상당수의 음모론은 권력자와 그 측근 엘리트들에 불리한 내용이고 포퓰리즘 요소가 많다. 반대로 권력자에게 유리한 음모론도 적잖다. 극우파와 윤석열 대통령이 심취한 것으로 알려진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어느 경우에나 사실을 무시하고 근거 없는 주장만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나 사회 건강에 위협적이다. 설사 권력 엘리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해도 결국은 힘 있는 자들이 지배력을 마음껏 행사한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패배주의적이며 민주적, 과학적 사고를 방해한다.

 

한국 사회는 음모론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사실과는 먼 주장으로 밝혀진다 해도 별 사과나 반성 없이 넘어간다. 즉 음모론에 관대한 편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 축적된 반민주적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고 합리적인 논쟁을 벌이는 공론의 장이 부재하거나 억압되었던 역사적 경험 때문일 테다. 특히 분단체제 독재하에서 자유롭고 솔직한 논쟁이나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했겠는가?

극단주의자들이 제일 문제지만 의식 있는시민조차도 황당한 음모론을 믿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모든 음모론이 통째로 거짓이지는 않다. 가끔 일부는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얘기한 음모론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일 수 있다. ‘약자의 무기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 내용의 진위를 떠나 음모론은 구조적 인식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회 형성에 방해가 된다. 왜냐하면 단선적 인과관계를 쉽게 수용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데 있어서 여러 변수/상수들의 복잡한 연관성을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단순하고 협량한 시각을 벗어날 수가 없다.

 

학계나 언론에서는 일단 구체적인 사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을 기반으로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초래한 사회구조를 밝혀내고 복잡한 인과관계를 침착하게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 사람들은 음모론적 사고방식을 갖게 될까? 사람은 누구나 각자가 위치한 곳과 관계없이 본성적으로 세상과 인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저급하건 수준이 높건 간에 자기 나름의 답이다. 불행히도 사건 대부분은 복잡하다. 사람들은 단순한 이론, 감정부터 흔들어놓는 선전 선동에 취약하고 또 그것에 쉽게 이끌린다. 음모론은 대체로 사건을 구조적으로 인식하는 걸 되레 방해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은폐한다.

어떤 정치 지도자가 생전에 제시한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화된 힘은 유명한 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깨어 있는것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근거 없는 추측과 끊임없는 의심에 기초한 음모론에서 벗어나서 복합적인 사고, 즉 역사적/구조적 조망을 할 수 있는 의식이 이제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 경향 2025.1.6.

 

 

피크 코리아와 민주주의 위기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은 드높았다. 한강씨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로제의 노래 아파트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오징어 게임 2>의 공개가 임박하면서 다시 한번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났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두고 이미 내리막으로 들어섰다는 피크 코리아담론이 한쪽에서는 계속 제기되었지만, 이와 같은 문화 강국으로서의 자부심과 낙관론이 그런 비관적 담론들을 덮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12월 초두에 시작된 이 불만의 겨울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대통령이라는 자 스스로가 외환과 내란을 일으키는 수괴 노릇을 하는 꼴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행정부와 국회의 3분의 1을 장악한 자들이 노골적으로 헌정과 법치 질서 자체를 조롱하는 황당무계한 행태를 보이면서 내란의 장기화가 벌어지고, 아무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자부심은 처절하게 짓밟혔고 길고 어두운 불확실성의 안개 속으로 나라 전체가 들어서고 있다.

원래 피크 코리아담론은 경제 분야에 국한된 것이었다. 2010년대 들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여러 요소들을 지적하면서 한국이 이제 내리막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이었다. 세계 경제의 환경 변화로 미·중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전까지 미·중 사이의 무역 구조에서 혜택을 보았던 한국 경제의 산업 구조가 따라서 위기를 맞게 되었고, 여기에 출생률이 저하하면서 인구 감소가 예측되고 또 큰 규모의 가계부채까지 더하여 내수 경제의 장기적 불황까지 겹칠 것이라는 게 대략의 줄거리였다.

이렇게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객관적·물질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그대로 침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또 않을 수 있다는 낙관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문화적·정신적 힘 등 주관적·무형적 요인들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첫째, 대한민국은 교육적·문화적 수준이 대단히 높은 나라이다. 이러한 힘들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과 지식 생산과 유통의 구조를 개혁한다면 총요소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혁신적 성장 체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한민국은 지난 30년간 민주주의 발전의 빛나는 성과를 보유한 나라이며 이에 기반한 국민적 통합이 분명한 나라이므로 경제적 체질 전환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제도적·구조적 변화도 이루어 나갈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은 피크 코리아담론에 맞설 수 있는 근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담론을 더욱더 강화시켜주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인구학적 변화만큼이나, 세계 경제의 구조 변화만큼이나, 산업 구조의 한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최악의 요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치솟는 환율은 과연 언제쯤 되어야 1200원대로 되돌아 올 수 있을까? 탄핵과 체포 등 내란 세력들을 청산하려는 시도가 좌절될 때마다 주저앉는 주식시장은 언제 다시 힘있게 차오를 수 있을까? 게다가 이제는 외채 시장마저 불안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5일 재정당국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의 국고채 보유액은 지난해 12월 약 3조원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선행지표 격인 선물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12월 한국 국채(선물 3~30년물 기준)158949억원 순매도했다.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예고될 만큼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던 우리 국채에 갑자기 셀 코리아흐름이 생겨났다.

 

계엄이 피크 코리아담론 더 강화

시장이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불확실성이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우리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가 재벌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필연적으로 안게 되는 불확실성에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어느 나라의 국가 및 행정 권력의 운영이 과연 예측 가능하며 믿을 수 있는 것인가의 여부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나라의 법치 질서가 어느 만큼 확립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는 다시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만큼 확고하게 그 나라에 뿌리를 내렸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부분에서 2025년 벽두 시점에서의 문제가 심하게 불거진다.

윤석열 개인과 거기에 동조한 일부 군인들의 행태는 일부 집단의 황당한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12월 중순경만 해도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낙관적시각이 우세했던 듯하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 특히 응원봉 시위로 빛을 발한 시민들의 성숙하고 적극적인 모습이 부각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자체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는 관점은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에 전개되는 사태는 뚜렷하게 내란 장기화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문제가 윤석열 개인 및 일부 세력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권한대행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친 뒤에도 행정부의 수반은 윤석열의 체포 및 수사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온전한 작동을 가로막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국회에서 여당은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헌정 질서의 조속한 회복을 방해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자 윤석열 집단은 불법적인 폭력을 동원하여 체포에 저항하고 있으며, 여기에 일부 시민들마저 호응하여 집결하고 있다.

 

민주 대 반민주구도 여전히 존재

요컨대, 2024년 말 불거진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어느 개인과 소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에 훨씬 더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의 민주화 성과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 윤석열 집단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에 드러난 행정부 고위 관료들과 여당이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대하는 태도는 40년 전 군부독재 시절과 거의 변한 게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시민들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라는 것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여전히 살아있으며, 이것이 2025년 이후의 대한민국에서도, 설령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확실하다. 윤석열의 계엄 시도에 대해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구절을 들이대며 한바탕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희화화하는 시각도 많았지만, 탄핵 이후 보름간 전개된 상황은 사태의 뿌리가 훨씬 더 깊고 심각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피크 코리아담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어이없게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들어서고 말았다. 이제는 정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경제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2024123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정부만 들어서면 모든 것이 원상복귀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도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로 새로 추가된 코리아 리스크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여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가 더욱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안팎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내란이 진행 중인 지금으로서는 내란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이에 맞서서 헌정과 법치 질서를 확립하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하며, 이것이 곧 최선의 경제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너머에도 평안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0년간의 민주화 노력이 아직 굳게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했다는 아픈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결함을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 선거에서 이겨 정권만 교체할 수 있으면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1980년대 식의 사고방식도 쇄신해야 한다. 허약함이 드러난 우리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2020년대의 시점에서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캐묻고 또 실천해야 한다. ‘피크 코리아의 역전을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는 이제 민주주의의 강화가 되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 경향 2025.1.6.

 

사회 보호하는 시민, 시민 보호할 민주주의

국가적 위기,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학자들은 종종 사회적 모순의 분출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이번은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사회학자들이 사회 갈등을 해석하기 위해 살펴보는 계급, 세대, 성별, 지역 중 이번 내란 사태와 연결된 것이 대체 무엇인가. 국민의 공통 감각과 현저히 벗어난 대통령의 비뚤어진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그리고 비상계엄과 연결되어 있는 군부와 정보기관, 경찰이 보여준 일련의 폭압적 행위들이 사회를 공격하며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내수 경기 부진, 환율 급등, 대외적 경제 손실을 빚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다수의 시민이 사회이론가 미셸 푸코 말마따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며 거리로 나서고, 사회를 복원하겠다 결의를 다지는 중이다.

 

상식 파괴하는 권력자들에 답답

부정선거론으로 대표되는 음모론은 정치적 갈등을 숙주 삼아 코인장사를 하는 유튜버, 이들의 이론을 빌미로 정치적 이익을 편취하려는 정치세력에 의해 조장되는 생태계의 재화일 따름이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드러낸, 가짜뉴스에 기반을 둔 비뚤어진 인식은 중요하지만 부차적 문제이다. 생각과 행동은 법적으로 위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식에 호소한다. ‘상식을 영어 단어로 풀어보자면 공통 감각(common sense)이다. 다수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 우리는 공통 감각 안에서 공분한다. 비상계엄이 진행되는 동안 TV를 보며 밤잠을 설치고, 내란 모의의 정황이 공개된 후 격분해 여의도에 모인 사람들, 거기에 응원을 보탠 사람들의 모습은 분명 민주화 이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몸으로 느끼며 공유해온 상식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은 고구마를 한 움큼 입에 넣은 것처럼 답답한 상태를 느끼는 건, 지금까지 공유해온 상식이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권력자들에 의해 깨졌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이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고 탄핵심판 절차가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내란 항목을 제외했으니 재표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법원에서 피의자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음에도 앞으로 공무원연금을 받을 국민의 공복인 대통령경호처는 마치 사병처럼 영장 집행을 수행할 공수처를 막고 거기에 수도방위사령부의 병사들을 동원했다. 경호처는 한남동 관저 주변에 철조망을 치기도 했다. 탄핵소추가 되고,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된 피의자는 관저 앞에서 농성하는 지지자들에게 함께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일군의 입법자들은 헌정 파괴를 지지하는 시위 단상에 올라 지켜내지 못해죄송스럽다며 고개를 숙인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속적으로 이 시국에 정치적 의사결정을 해도 되는 존재인지 아닌지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야당 역시 딜레마 게임서 벗어나야

탄핵, 내란죄 여부는 헌법재판소와 사법부가 결정할 사안이다. 시민들의 불안, 초조, 답답함은 일차적으로 헌법과 형사법이 해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1987년 개헌 이후 공권력의 자의적 동원을 제어하기 위해 형성된 모든 장치들이 권력집단에 의해 무시될 수 있다는 게 밝혀진 지금,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포함한 기본권을 지키는 울타리를 다시금 어떻게 두껍게 칠 것이냐는 문제를 반드시 헌정질서 재건이란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정치학자 서희경의 <87년 체제의 한국 헌정사>에 따르면, 6공화국 개헌 논의는 노태우 정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늘 레임덕 대통령은 개헌을 치적으로 쌓고 싶어 제기하고, 당선이 가까운 유력 후보는 확실한 임기 5년이 보장되기에 미적대다가 논의가 중단되었다고 전한다. 3번째 탄핵소추로 헌정질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발본적 문제 제기가 되는 지금, 야당 역시 딜레마 게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래야 헌정질서를 넘어선 더 많은 민주주의논의와 협상과 조정을 수반하는 정치 게임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다.

한 달여간 시민들은 혼란 속에서 일상을 잘 유지해왔고, 대다수의 공통 감각은 복원력을 발휘하며 깨지지 않았다. 민주주의 역시 시민들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다. 위기가 올수록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 음모론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서로 다른 존재들을 배제하지 않고 끊임없이 교류하며 연결되어야 한다. 사실 그런 감각을 생활인들은 모두 공유하고 있다. 들어야 할 존재들은 입법자와 권력자들이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 경향 2025.1.6.

 

최상목은 왜?

몇몇 신문사의 몇몇 기자들이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을 띄우고 있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셋 가운데 둘만 임명한 것을 묘수라고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가 하면,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과 금감원장 이복현의 최상목 지지 발언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최상목이 무슨 초능력이라도 있어서 한국 경제를 위기에서 구해낼 것만 같다. 과연 그렇게 기대해도 좋을 사람인가? 궁금해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공직자로서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헌법재판관 두 명만 임명한 건 평생 출세지향주의자의 합목적적 선택

최상목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한 가장 중요한 일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이다. 왜 임명했을까? 살아남기 위해서다. 달리 해석할 수 없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전면 거부했다면 야당이 즉각 탄핵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한덕수처럼 직무를 정지당하고 내란 피의자로 경찰 국가수사본부의 출석 요구를 받았을 게 뻔하다. 왜 둘만 임명했을까. 윤석열을 포함한 내란 공범들과 절연하지 않기 위해서다. 최상목은 내란범들을 보호하면서도 탄핵을 피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처를 했다. 그런 점에서 목적 합리성 있는 선택이었다.

최상목은 평생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살았다. 그런 사람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대통령 놀이를 해볼 기회를 포기하지 않는다. 되도록 오래 즐기려고 한다. 그래서 대행의 권한으로 내란 진압을 방해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험담이라고? 그렇지 않다. 그의 이력과 계엄령 선포 전후의 행동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는 상황을 이주호 체제가 넘길 수 있겠는가.” 어느 신문은 익명의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최상목이 권한대행 자리를 지킨 이유를 설명했다. 애국심과 책임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상목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후의 언행을 보면 사실로 믿어도 될 듯하다. 최상목이 유능한 경제전문가라는 말이 아니다. 최상목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는 뜻이다.

 

할 일 안 하고 대통령 놀이에 빠진 대행의 화려한 경력

제주항공 사고 현장에 간 것은 워낙 큰 참사였으니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었다고 하자.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다 이상했다. 왜 가는지 모를 곳에 가서 왜 하는지 모를 말을 했고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 해병 부대를 방문해서 모양새도 나지 않는 거수경례 사진을 남겼다. 흔해빠진 대통령 놀이. 미국 대사와 주한미군 사령관을 만나 한미동맹 노래를 부른 것도, 경제계와 중소기업인 신년하례회에 가서 위기 극복을 위한 단결을 호소한 것도 다 그런 놀이였다. 소위 'F4 회의(거시경제금융간담회)'를 매주 하겠다고 호언한 것도 마찬가지다. 원래 하던 회의 아닌가. 내수를 촉진하고 환율을 안정시킬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자주 회의를 하겠노라고 말한다고 해서 경제가 좋아질 리는 만무하다.

최상목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로 소일한다. 꼭 해야 할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윤석열의 내란이 야기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최상목은 그 과제를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을 거부하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은 한다.

 

왜 그럴까? 과거에 했던 일과 살아온 과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상목은 전두환 정권 시절 서울대 사법학과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독자라는 이유로 이병 전역했다. 군 복무를 사실상 면제받은 것이다. 재무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두 차례 국가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공부했다.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 비서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정책보좌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과 기획재정부 1차관까지 직업공무원으로서 차근차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윤 정권 인수위 때 공직 복귀한 최순실 국정농단 연루 혐의자

공직자로서 큰 위기를 맞았지만 잘 이겨냈다. 청와대 금융경제비서관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되었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청와대에서 여러 차례 미르재단 설립 회의를 열었다.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했는지 기소를 피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5월 공직을 떠났다. 몇몇 금융투자회사의 사외이사와 농협대학교 총장 등 주목받지 않는 자리에서 머물다가 20223월 윤석열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로 공직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용산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쳐 현재 내란공범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국힘당 원내대표 추경호의 후임 경제부총리가 되었다.

최상목은 경제수석 시절 탈중국 노선을 공개 표명해 대규모 무역 적자 사태를 불러들였다. 법인세 인하 등 부자감세 정책으로 사상 초유의 대규모 세수 결손을 자초했다. 경제부총리가 되어 자신이 경제수석으로서 만들었던 정책을 그대로 밀고나갔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 책임자가 누구인가 묻는다면 첫 번째로 나올 이름이 바로 최상목이다.

최상목은 코넬 대학교에서 경제정책이 소규모 개방경제의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자본형성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 ‘소규모 개방경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그렇다. 한국이 바로 성공한 소규모 개방경제의 대표 사례다. 미국 유학생들이 흔히 그러하듯, 최상목도 이런저런 분석모델에 한국경제 데이터를 넣은 계량경제학 논문으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대 박사 학위 때부터 거시경제 무지 드러낸 모피아의 전형

학위 논문을 썼을 때나 지금이나, 최상목은 거시경제정책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윤석열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수십 년 검사를 했는데도 헌법과 계엄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거시경제정책의 기본을 아는 사람이라면 시장주의 광신자 밀턴 프리드먼의 광신도인 윤석열의 경제정책 참모로 일했을 리 없다. 재정학의 기초를 아는 사람이라면 부자 감세로 천문학적 세수 펑크를 내거나, 한국은행 마이너스 통장을 써서 회계를 분식하거나, 외평채 기금을 끌어다 재정적자를 메우거나,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마구잡이 난도질하지 않는다.

최상목은 자리를 주기만 하면 누구한테나 충성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피아의 전형이다. 정책에는 무능하지만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는 유능하다. 그런 사람이 이주호 교육부총리한테 국가의 운명을 맡길 수 없어서 헌법재판관을 둘만 임명하는 편법으로 권한대행 자리를 지켰다고 하니, 실로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주호가 최상목보다 낫다는 게 아니다. 최상목이 이주호보다 유능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마은혁 재판관 임명, 경호처장 해임 등 꼭 해야 할 3가지 일

최상목이 국가 위기 극복에 기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신속하게 내란을 진압하고 새 정부가 출범하게 함으로써 경제를 포함해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 일은 누가 권한대행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경제학 박사일 필요는 전혀 없다. 헌법 조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독해력과 법치주의 원칙을 지키려는 소신만 있으면 충분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나 안다.

첫째,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즉시 임명하라. 우원식 국회의장이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마은혁 판사가 이미 헌법재판관 지위에 있음을 확인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함께 제출했다. 무엇을 위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허비한단 말인가.

둘째, 공수처의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지 말라고 대통령 경호처에 지시하라. 경호처장을 비롯해 13일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불법적으로 막은 책임자들을 해임하라. 내란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데 가담한 혐의가 분명한 고위 공직자들을 면직하라. 최상목이 수방사와 경찰청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호 인력을 추가 파견하라고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야당은 최상목 탄핵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내란의 공범이라는 유력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셋째, ‘대통령 놀이를 그만두라. 최상목이 용산 대통령실의 방탄차를 요구했다든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고위직 공무원 인사를 하려 한다는 소문이 돈다. 그런 짓을 계속하면 윤석열과 함께 역사의 심판대가 아니라 현실의 법정에 던져질 것이다.

 

'A4종이' 'F4회동' 내용, 머지않아 밝혀질 것

최상목이 내란의 공범인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공범일 수 있다고 본다. 명확한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내란 수괴 윤석열과 주요임무 종사자들을 보호하고 있으니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최상목한테 국회 운영비를 끊고 비상입법기구 운영을 위한 예비비를 장만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지시를 담은 ‘A4 종이를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읽지도 않고 접어서 가지고 있다가 차관보한테 맡겼단다. 최상목 자신도 사람들이 믿어 주리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최상목에게 윤석열이 그 종이에 적은 지시가 무엇이었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 그는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나중에 예비비라는 말은 하긴 했지만 무엇을 위한 예비비인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비상입법기구 운영을 위한 예비비 마련 지시는 내란죄의 유력한 증거가 된다. 최상목과 차관보는 입을 맞추어 그 사실을 숨겼다. 최상목은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의결하기 전에 소위 ‘F4 회동을 했고 재정경제부 간부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에서 무슨 말을 했으며 어떤 지시를 했는지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

윤석열은 전두환처럼 불법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비상입법기구를 만들려 했다. 나는 최상목이 윤석열의 지시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의심한다. 하지만 국회가 그를 즉각 탄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란에 동조했든 그렇지 않든, 윤석열을 구속하고 내란의 진상을 속속들이 밝히며 헌법재판소가 신속하게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리게 하는 데 기여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새 정부가 출범하게 하도록 필요한 일을 제때 한다면 굳이 탄핵할 필요가 없다.

 

민심은 결국 윤이 서울구치소에서 파면 결정 소식 듣게 할 것

민심은 중력과 같다. 잠시 버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오래 견디지는 못한다. 윤석열은 체포영장 집행을 막으려고 공무원과 군인들을 사병(私兵)처럼 부렸다. 경호처는 관저 진입로를 차량으로 막고 주변 숲에 철조망을 깔았다. 마치 농성하는 무장 테러집단처럼 공권력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경호처의 관저 농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윤석열은 13관저 전투의 승리를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길을 걷고 있다.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영장 집행을 막았으니 법원의 내란 혐의 구속영장 발부 확률은 크게 높아졌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할 확률은 0퍼센트 가까운 수준으로 낮아졌다. 윤석열은 서울구치소에서 헌재의 파면 결정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한다. 최상목이 어떻게 하든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란 진압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불필요한 우여곡절을 더 겪을 뿐이다. 최상목은 어떤 경우에도 내란 진압에 협조하는 게 최선이다. 내란의 공범인지 여부는 그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공범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망설일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의 난동을 방치하는 것을 보면 어딘가 찔리는 데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눈을 질끈 감고 윤석열 체포에 협력하는 게 합리적이다. 나라의 혼란을 종식하는 데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야 처벌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최상목은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최상목에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는 <시민언론 민들레> 같은 좌파언론의 기사와 칼럼을 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신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예 모를 가능성이 높다. 설혹 읽는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계속 내란 수괴를 감싸면서 대통령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다. 자리는 그 사람을 보여줄 뿐이다. 내가 최상목을 잘못 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유시민 작가 | 시민언론민들레 2025.1.6.

 

윤석열이 풀어놓은 '파시즘'과의 속도전

파시즘에 맞서는 속도전이 시작됐다 - 내란 1개월 차의 가설들

이 글을 쓰는 16일 현재,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아직도 관저에 틀어박혀 있다. 경호처는 법원의 체포영장에 맞서 윤석열을 지키며 무장 농성 중이다. 한 마디로, 내란 사태가 한 달을 넘긴 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폭설에 아랑곳없이 밤샘 시위를 벌이는 한남동 관저 앞 시민들처럼 윤석열 체포와 내란 진압에 전념해야 마땅하다. 무리하게 진단이나 분석을 흉내 냈다가는 쓸데없이 비관 혹은 낙관의 언어를 더하는 꼴이 되기 쉽다. 아마도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겸허한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쪽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껏 확인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고 토론의 운을 뗄 필요는 있다. 123일에 돌연히 닥친 현실이 우리에게 너무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런 물음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판결이 나오더라도 계속 우리를 무겁게 짓누를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그 답을 조금씩 마련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내란 사태의 다음 국면에 닥칠 또 다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가설'의 수준과 형태로마나마 감히 몇 가지 의견을 풀어놓는 이유다.

가설1 12. 3 친위쿠데타는 한국 사회에 '설익은' 파시즘이라는 유령을 풀어놓았으며, '설익은' 파시즘과 이를 제압하려는 세력들 사이의 속도전이 시작됐다

윤석열 체포, 구속이 늦어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헌법재판소 판결이 대다수의 예상과 다르게 나올 가능성을 크게 잡는 전문가는 없다. 보는 이를 답답하게 만드는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위헌, 위법을 자행한 대통령을 파면하는 절차는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앞에 펼쳐진 위험이 헌법재판소 판결만으로 말끔히 가시는 것은 아니다. 123일 밤의 친위쿠데타가 한국 사회에 풀어놓은 유령, 파시즘 때문이다.

그날 밤 우리는 느닷없이 파시즘이 무시무시한 실체를 드러내는 광경을 봤다. '파시즘'은 워낙 논란이 분분한 용어이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그 핵심 특징 중 하나는 기존 민주주의 제도를 미련 없이 파괴한다는 점이다. '극우파' 안에는 실로 다양한 갈래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도 이토록 민주주의를 노골적으로 파괴하는 사조는 드물다. 파시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심지어 왕당파조차 의회의 틀 안에서 다른 정파들과 경쟁하고 타협했다. 그러나 파시즘은 다르다. 정당 활동을 비롯한 언론,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고, 대의기구를 분쇄한다. 군대가 국회를 공격한 123일 밤의 모습, 이것이 파시즘의 '고전적' 실행이다.

 

하지만 '고전적' 파시즘과 확연히 다른 점도 있다. 백 년 전에는 제복 입고 거리를 떼 지어 다니며 패싸움을 일삼는 파시스트 대중운동이 어느 정도 무르익고 난 다음에야 기존 민주주의 질서를 짓밟으며 파시스트 체제가 들어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도우파' 이미지를 내세워 선출된 대통령이 돌연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파시즘의 실행자로 나섰다. 고전 파시즘과는 달리 '집권 전 대중운동'에 해당하는 단계가 생략된 것이다. 그래서 123일 밤의 일격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지난 글("조숙한 '파시즘' 윤석열의 내란 앞에 '나는 반성한다'", <프레시안> 2024. 12. 24)에서 나는 이것이 '21세기' 파시즘의 특징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집권 전 대중운동'이 생략됐지만, 전에 없던 요소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극우 유튜브 방송이다. 여기에서는 오프라인 가두 투쟁의 수고를 덜어주는 온라인 공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부정선거론'이라는 새로운 음모론 또한 중요하다.

'부정선거론'의 위력은 참으로 놀랍다. 오늘날 대한민국 시민의 대의민주주의 경험은 1920-30년대 유럽 시민의 경험보다 훨씬 두텁다. 이런 시민이, 비록 그 일부라도, 파시즘에 동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부정선거론'은 이 어려운 일을 해낸다. 대의민주주의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대중조차 '부정선거론'에 노출되면 갑자기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불신하게 되고 대의민주주의와는 '다른' 체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지금 이 전염병이 한때 윤석열을 지지했던 대중 사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것이 파시즘의 초고속 성장을 낳은 21세기적 요소라면, 이런 급성장에 기여한 한국 사회의 토착적 요소도 있다. 나는 다른 지면에 발표한 또 다른 글("내란의 뿌리를 뽑으려면", <한겨레> 2024. 12. 20)에서 현 제6공화국 체제에까지 이어지는 제3공화국의 뿌리 깊은 유산이 이러한 토착적 요소라고 지적했다. 5. 16 군사쿠데타로 시작된 제3공화국은 산업화, 근대화, 경제성장의 깃발 아래 직선 대통령에게 권력을 극도로 집중시킨 체제였고, 6공화국 헌법은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의 대통령 간선제만 극복한 채 제3공화국의 '대통령주의'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6공화국 40여 년 동안 사실상 '민주주의'와 등치된 이 '대통령주의'는 제도와 인적 구성, 상식과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강고하게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이 몇몇 측근과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친위쿠데타를 치밀하게 기획,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대통령 1인의 재량에 내맡겨진 권력의 지대가 드넓기 때문이다. 또한 윤석열이 사법부가 발부한 영장을 가볍게 무시하며 농성전을 펼치는데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끄는 행정부가 이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대통령이 국가 관료기구 전체와 일체라는 시각이 관료와 국민 모두에게 깊이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헌법을 다시 읽으며 '국회''대통령'보다 먼저 등장한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이러한 '대통령주의'와 민주주의의 간극에 둔감하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판결이 상식대로 나오더라도 이후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일단 12. 3 내란 시도로 한국 사회에 '설익은' 파시즘이 출현하고야 말았고, 이후 한 달 동안 이 '설익은' 파시즘이 한국 사회의 토착적 요소와 21세기의 최첨단 요소를 효과적으로 동원하여 초고속으로 성장할 수 있음이 어느 정도 증명됐다. 헌법재판소 재판 일정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1월 초 현재만 해도 '설익은' 파시즘의 분명한 지지층으로 떠오른 5-10%20-30%의 유권자에게까지 영향력을 넓히며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젠더, 연령, 지역 별로 핵심 지지 집단들이 존재하기에 상당히 안정적인 구심력까지 갖추고 있다.

12. 3 이후 이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쟁점이자 사회 전체를 가르는 기본 지형이 됐다. 갑자기 강력한 흐름으로 등장한 '설익은' 파시즘과, 이를 제압하여 민주공화국의 기본 질서를 수호하려는 광범하고 다양한 세력들의 대립 구도가 모든 시민의 삶을 규정하는 엄중한 현실로 대두했다.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 '설익은' 파시즘의 추격을 따돌리며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재건할 것인가"라는 치열한 속도 경쟁의 시각에서 모든 정치적 고민을 철저히 다시 사고해야 한다. '사회대개혁'이나 '사회대전환' 같은 사회운동의 오래 된 구호 역시 마찬가지다. 파시즘에 맞선 속도전이라는 차원이 대입되지 않으면, 이제 어떤 이상도, 전략도, 구호도 현실적일 수 없다.

 

가설2 지금 헌법 안의 자유주의적 규범을 진지하게 지키려 하는 것은 민중 세력뿐이며, 대중의 적극적 행동 덕분에 이런 규범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고전 파시즘은 명시적으로 반-자유주의를 표방했다. 노동운동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를 적대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자유주의를 불구대천의 적으로 지목했다. 이 점에서 윤석열의 사례는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다. 정치에 뛰어들면서부터 늘 '자유'를 입에 달고 다녔고, 지금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윤석열이 말하는 '자유주의'가 자유주의의 여러 흐름이나 버전 가운데에서도 '신자유주의'만을 가리킨다는 다소 심오한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등이 공저한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정기헌 옮김, 원더박스, 2024)는 이 복잡한 맥락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윤석열이 존경한다고 언급한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자유를 늘리기 위해 선배 자유주의자들이 주창한 자유권 중 상당 부분을 기꺼이 무효화하려 했다. 윤석열의 '자유주의'가 이런 부류라고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국민의 자유권을 박탈'하겠다는 언어도단의 뿌리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굳이 이런 사상사적 탐구를 경유하지 않더라도 이미 분명한 사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의 가장 구체적인 실현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헌법에 규정된 자유주의적 권리들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을" 권리(121)"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122),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211)가 그러한 자유권의 대표적 사례이고, 헌법 앞부분에 명시된 '정당 활동의 자유'(8)'국회', '정부', '법원'이 대등한 국가기구로 서술된 체계 역시 고전 자유주의의 원칙을 구현한다.

윤석열 내란 세력은 이러한 자유주의의 최상의 유산을 폐지하려 했다. 증거로는 비상계엄 포고문 제1호 하나로 충분하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첫 항부터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마지막 항까지 모든 내용이 헌법 안의 자유주의적 원칙에 대한 부정이다.

 

그럼 지금 한국 사회에서 누가 이러한 원칙의 편에 서 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가? 물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원내외 야당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뒷받침하는 더 강력한 힘은 내란을 진압하기 위해 거리와 광장에 모이는 시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이를 응원하는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123일 밤에 친위쿠데타에 동원된 장병들이 국회를 공격하길 주저하게 만든 것도, 내란동조정당의 방해에도 2주만에 탄핵안 가결을 밀어붙인 것도, 윤석열 정부의 남은 무리가 위헌, 위법을 저지를 때마다 이들을 포위하며 새로운 출구를 연 것도 모두 시민의 힘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는 묘한 균열과 대립 구도에 주목해야 한다. 자유주의는 오랫동안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치부돼왔다. 이는 좌파 정치나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주류 역사학, 사회과학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명제였다. 그러나 12. 3 이후 한국 사회의 지배 집단 가운데 과연 누가 내란 세력이 공격하는 자유주의의 영혼을 지키려고 나섰는가? 재벌 중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행정부 고위 관료와 사법부 고위층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내란 세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형편이다. 자유주의의 오랜 주체로 여겨진 집단들이 헌법 안의 자유주의를 방어하려는 의지나 의사가 없음이 드러났다.

 

반면에 목숨을 걸고서라도(12. 3 밤에는 확실히 그랬다) 이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재벌, 고위 관료에 비하면 '민중 세력'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시민들이다. 거리와 광장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은 노동계급의 여러 부분이고 신, 구 중간계급의 상당 부분이며 여성이고 젊은 세대이며 다양한 소수자들이다. 그들은 "'형식적', '추상적' 자유가 인민대중의 획득물"(니코스 풀란차스, <국가, 권력, 사회주의>, 박병영 옮김, 백의, 1994. 117)임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며, 이것이 온전히 보장 받는 민주공화국에서만 더 진일보한 사회적 권리들 또한 실현될 수 있음을 정확히 간파한다. 그래서 한때 자유주의의 담지자로 상정됐던 집단들이 이를 공격하거나 방기하는 와중에 그 마지막 상속자를 자처하고 나선다.

하지만 민중 세력만이 자유주의의 상속자라는 책임을 떠맡았다는 '일방적' 관계만 봐서는 안 된다. 좀 더 '쌍방향적인', 그래서 더 역동적인 관계가 작동하고 있다. 내란을 진압하려고 직접 행동에 나선 시민 덕분에 그간 종이 위 활자로만 존재하던 원칙들이 비로소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통령주의'의 시각에서는 늘 혈세 낭비 기구로나 치부되던 국회가 민주주의의 심장으로서 권위를 되찾았다. '대통령주의'적 국가에서 결코 행정부와 대등한 기관으로는 보이지 않던 사법부가 윤석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국가기구의 엘리트들이 새삼 원칙적 자유주의자로 거듭났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대중운동 때문이다.

 

말하자면 '설익은' 파시즘에 맞서 민중 세력이 헌법 안의 자유주의적 원칙(자유권의 철저한 보장, 권력의 분산과 상호 견제)을 지키는 주체로 나서고, 이런 민중의 직접 행동과 개입을 통해 그간 잠자던 자유주의적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상호 상승 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자유주의 대 인민주의'류의 도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포착할 수 없는 관계이고, '설익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희망의 근거다.

윤석열 탄핵과 퇴진 이후에 추구해야 할 정치 대안에 관한 상상 역시 내란 사태 이후의 정세와 동떨어진 다른 어떤 별난 논의가 아니라 지금 이미 작동하는 이 역동적 관계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조기 대선이 됐든 개헌 논의가 됐든 앞으로 닥칠 정치적 계기마다, 대중의 행동과 개입을 통해 활력을 유지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이 실마리가 우리의 앞길을 밝히는 응원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5.01.07.

 

한국 경제의 숙제, 윤석열 단죄 먼저

올해 재벌 총수들 사이엔 윤석열 대통령이 없었다. 집권 뒤 2년 연속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찾았던 내란죄 피의자는 체포영장에 응하지 않기 위해 지난 3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 틀어박혀 있었다. 대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대한상공회의소가 연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의 자리는 빠졌지만 지난해와 바뀌지 않은 풍경이 있었다. 대한상의 회장인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정기선 에이치디(HD)현대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자리는 그대로였다.

 

10년 전에는 어땠을까. 그때도 다른 건 대통령뿐이었다. 2015년 경제계 신년인사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재벌 총수들까지 모두 참석하며 1500여명 규모로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불법 계엄 사태로 탄핵된 한덕수 국무총리도 당시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자리를 같이했다. 현대차그룹 회장이 정몽구에서 정의선으로 바뀌는 등 총수들이 3·4세로 바뀌긴 했지만 기업의 이름은 그대로였다. 금호아시아나 정도가 뒤로 밀려났다.

여야가 뒤바뀌며 10년이 흘렀지만 한국 경제의 생태계는 크게 변한 게 없는 셈이다. 되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와 같은 재벌 중심 정경유착이 되살아나는 모습까지 보였다. 2023년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도모한다면서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에서 재벌 총수들을 불러 폭탄주를 돌렸다. 정경유착이 드러나 해체 직전까지 몰렸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돌아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상공의 날 기념식에 재벌 총수들을 모아놓고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전략 회의 자료를 산업부 창고에서 가져다가 가득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꼼꼼히 읽었다고 한 뒤 “(기업인들이) 상속세 신경 쓰느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힘들다부자 감세를 약속했다.

 

그렇게 원팀을 외쳤지만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20152.9%였던 경제성장률은 20231.4%까지 떨어졌다.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1%, 2025년 전망치는 1.8%로 지난 2일 정부가 내려 잡았다. ‘영업사원 1라는 윤석열 대통령을 거치며,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2% 안팎)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신년사에서 성장률 둔화의 주원인으로 한국 경제의 생태계 문제를 들었다. “금년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수출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수출 구조가 다변화되지 못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몇몇 주력 상품 위주로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의 사이클에 따라 전체 수출의 부침이 커지는 가운데 주력 산업에서는 후발 주자인 중국이 우리를 추격해왔다. 반면 지난 10년간 미래 수출을 이끌어가야 할 신산업은 개발되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의 매출액 상위 15대 기업을 10년 전과 비교하면 미국은 7곳이 새로 진입했지만 한국은 2곳만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신산업을 통해 성장한 기업은 1개에 불과해 신규 진입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달 국내외 경제·경영학자 488명은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먼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수록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정치적 불확실성은 전속력으로 달려도 모자랄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높이가 다른 나무가 울창한 숲을 만들고, 실력은 달라도 충분한 힘을 가진 4명의 주자가 모여야 이어달리기에서 이길 수 있다. 안정된 토양, 안정된 기반. 이를 논의하려면 내란죄 피의자 체포 등으로 불확실성을 이 지경으로까지 키운 이부터 정리해야 시작할 수 있다.

이완 | 산업팀장 | 한겨레 2025.1.7.

 

키세스시위가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인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로 인해 하루아침에 위기에 빠졌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우리가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면 한국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시대에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어본다. 눈 내리는 밤을 지새운 키세스시위가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인가?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그 발상부터 실행까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무속에 빠지고 극우 유튜브 방송에 빠지더니 결국 자폭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아직도 버티고 있다. 내란세력 일당은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그럴 수 있겠다. 문제는 노골적 동조 혹은 은근한 비호 세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 결집의 흐름 속에 윤석열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단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작년 1214일 국회 앞에서 두번째 표결 결과를 들었다. 탄핵안 통과의 기쁨 한편에서 찬성표가 204표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상식과 법이 억지와 정치적 계산에 밀리고 있구나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 불행한 사태는 크게 보면 세계사적 민주주의 위기와 맥락이 맞닿아 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시도는 황당한 해프닝으로 치부해도 되겠지만, 그 이후 벌어지고 있는 버티기와 진영 대결은 사회과학적 분석을 요구한다.

아마르티아 센은 한 인터뷰에서 20세기 인류에게 일어난 수많은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확산이라 했다. 냉전이 끝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이념과 체제를 겨루는 경쟁은 끝났고, 모든 나라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나아갈 것이란 주장이었다. 세기말 지구촌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났다. 하지만 21세기 초입에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다. 세계화의 이익을 독점하며 천문학적 부를 쌓아가던 경제엘리트,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던 금융엘리트가 초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이들이 자유시장과 세계화를 찬양하며 그 부작용엔 눈감는 동안 세계화의 그늘로 내몰린 많은 이들은 앵거스 디턴이 말한 절망의 죽음을 택했다. 극단적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던 자유시장 논리는 월가 붕괴와 구제를 통해 그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를 목도한 대중은 분노했다.

 

포퓰리즘과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지고 반이민 정서가 퍼져나갔다. 기성정당과 기성언론을 포함해 제도권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타협의 정치와 관용의 문화는 사라지고 극단적 대결이 만연하게 되었다. 더 이상 사실도 진실도 상관없이 자기편 주장에만 귀 기울이는 에코 체임버가 여론을 갈라놓았다. 부정선거론을 비롯해 각종 근거 없는 음모론이 난무하게 되었다. 미국이 위기의 진원지였지만 이러한 현상은 세계로 확산되었다.

기성정치에 대한 혐오와 함께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믿음도 흔들렸다. 2023년 퓨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24개국 중 18개국에서 민주주의 작동에 만족한다는 답보다 불만족한다는 답이 많았다. 불만족 비율은 남아공이 76%로 가장 높았고, 프랑스 73%, 미국 66%, 한국도 61%로 높은 편이었다. 이러한 불만족의 바탕에는 민주적 제도가 결국은 엘리트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깔려 있었다.

우리나라 정치가 극단적 대결 정치가 되어버린 배경에도 민주주의 외피를 쓴 엘리트 지배와 그에 따른 양극화 심화 및 정치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생산적 정치와 타협이 사라진 자리에 권력투쟁만 남았다.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제왕적 대통령제가 이를 부추긴 것도 사실이나, 더 크게 보면 위와 같은 세계적 민주주의 위기 현상의 한 표출이기도 하다.

 

작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저서 <좁은 회랑>에서 민주주의는 제도를 잘 설계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회적 투쟁에 의해서만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노벨상 수상 발표 이후 인터뷰에서도 아제모을루는 민주주의가 지금 힘든 시기를 맞이했다면서 더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약속을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구와는 달리 민주화 투쟁의 생생한 경험이 살아 있는 우리나라가, 고강도 경쟁의 압박을 뚫고 자라 오히려 연대에 능숙한 우리의 젊은이들이 지금 위기에 빠진 지구촌의 민주주의를 살려내는 사회적 투쟁의 첨병이 되었다. 승리하여 더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류의 희망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 | 경향 2025.1.7.

 

 

한국경제, 다시 전환시대에 서다

학창 시절 <전환시대의 논리>는 내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 책이다. 2006년 개정판 서문에서 리영희 선생은 피를 먹고 싹을 튼 한국의 민주주의 나무는 그 앞날이 결코 순탄치는 않겠지만 힘 있게 자라서 넓은 번영의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왜냐하면 수십만을 헤아리는 전국의 전론의 사상·정신적 제자들이 사회와 나라의 주인으로 자랐기 때문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서 역사는 한 단계의 투쟁이 끝나면 으레 임금은 알몸이다라고 폭로한 소년의 용기에 열중한 나머지 힘없는 소년에게 그런 엄청난 임무를 떠맡기게 된 그 사회의 실태에 대해서는 눈이 미치질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해 123일 밤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계엄에 대응하여 국회는 바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즉시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지만, 국회는 이번 사태를 초래한 원인을 꼼꼼히 따져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도대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대통령은 정부 관료에 대한 탄핵소추와 민주당의 예산삭감, 반국가세력 척결을 비상계엄 선포의 사유로 제시했지만, 대통령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정부 정책의 이면에 가려진 이해관계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가 권력을 낳고 권력이 부를 키우는 상황에서는 정치 과정을 통한 지대추구행위가 치열해지고, 국가 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삼권분립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만,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경제가 경세제민, 세상을 잘 다스리고 백성의 생활을 돕는다는 사자성어에서 유래된 것도 국가 권력의 사유화와 폭정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금의 한국경제는 모방과 추격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이르고,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불거진 양극화와 불평등이 내수기반을 침식하면서 더 높은 단계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1.8%는 잠재성장률 2%를 밑돌고,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0.584에서 20240.612로 증가하여 불평등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2022년 가구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0.324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 13번째로 높지만, 재정의 불평등 감소 효과는 4번째로 작고, 그마저도 2020년 이후에는 축소되고 있다.

불평등한 분배구조는 내수기반을 위축시키고 인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저해하며, 계층 간 사회 이동성을 제약하여 성장잠재력은 물론 다수 국민의 행복감을 떨어뜨린다. 2023GDP 규모는 세계 14위를 기록했지만, 행복지수는 50위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각자도생과 승자독식의 시장경제에서 전개되는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삶이 고달프고 힘들기 때문이다.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낮은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낙수효과에 기대어 재정을 소극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초저출생, 4차 산업혁명, 기후위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에 직면한 한국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 미완의 경제민주화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경제의 선진화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경제질서를 경제 헌법의 지도원칙으로 표명하고 있다. 특히 2(일명 경제민주화 조항)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국가의 책무로 명시하고 있다.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위해선 투자국가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혁신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적정한 소득분배를 위해선 공정과세, 서민·중산층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 참여예산제도 확대와 선거제도의 대표성 강화 등이 필요하다.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선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행위를 근절하고 불합리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한 경제의 안정적 관리2025년 경제정책 목표로 제시했지만, 여전히 감세 기조하에서 정책금융과 규제 완화에 치중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경제의 구조전환이 절실한 시점이고, 대전환기의 경제개혁은 경제민주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 경향 2025.1.7.

 

왕을 꿈꿨던 윤석열씨,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석열씨. 일단 체포를 면하신 것 같습니다. 6일 자정이 오기만 기다리며 자축의 폭탄주를 준비하고 계셨나요? ‘인의 장막으로도 모자라 군용 철조망까지 설치한 걸 보면 적잖이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대통령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데 격노하셨나요. 시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라고 명령한 것으로도 모자라, 국가 사법 체계까지 정면으로 모독하는 이가 대통령으로 불릴 자격이 있습니까. 주권자에게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주권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당신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역대 대통령에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는데, 당신에게선 그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일자체, 혹은 아내 보호가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해보곤 했습니다.

지난해 123일 이후 선명해졌습니다. 당신은 왕을 꿈꿨습니다. 롤모델은 박정희나 전두환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근거는 유신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겠지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소장을 보면, 지난해 3~4월부터 비상계엄 선포 직전까지 당신이 비상조치권’ ‘비상대권을 수차례 언급한 걸로 나옵니다. 비상조치권이나 비상대권은 19876·10 항쟁 이후 개정된 현행 헌법엔 등장하지 않습니다.

 

내란의 밤, 당신은 잔인하고 무자비했습니다. 다시 짚어봅니다.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의원)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들어가서 끌어내라”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들어가 다 끄집어내”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을) 싹 다 잡아들여”.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

당신과 수하들이 무능하고 허술했던 건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죄과가 가벼워지진 않습니다. 계엄을 선포하려 했으나 발각돼 실행하지 못한 것(미수·未遂)이 아니라, 계엄을 선포해 실행에 옮겼으나 실패한 것(기수·旣遂)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체포를 면했다며 승리감에 들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모르는 게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가두고 말았습니다. 이제 관저에서 나오면 구치소에 가야 하고, 안 나오면 한남동에 유폐되는 처지입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해 직접 변론하겠다고요? 관저 밖으로 나가는 순간 긴급체포돼 구치소부터 들러야 합니다. 공권력이 방어권을 고려해 자비를 베푼다 해도, 심판정에서 나오는 즉시 체포될 게 분명합니다. 관저에서 헌재까지 무사히 왕복할 길은 없습니다.

 

당분간 법꾸라지석동현·윤갑근 변호사 등의 법기술과 사병박종준 경호처장의 충성심에 기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주권자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법기술엔 법기술로, 힘에는 힘으로 맞설 겁니다.

체포를 둘러싼 적법성 논란은 끝났습니다. 법원은 체포영장 집행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유효기간 연장을 위한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습니다. 체포에 계속 불응할 경우 구속영장 청구는 시간문제입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으면 거의 100% 영장이 발부된다는 건 아시지요.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해도, 버티면 그만이라 여깁니까.

 

체포와 구속은 무게가 다릅니다. 그때도 경호처가 기꺼이 사병 노릇을 해줄까요. 박종준 등 경호처 간부 4명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습니다. 경호처 직원들은 상급자 명령을 따랐다는 것만으로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을 압니다.

국가는 영토 내에서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막스 베버)입니다. 당신의 내란 어록대로 압도적 인원을 동원해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면됩니다. 또다시 망설이는 공권력이 있다면, 공수처든 국가수사본부든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그리고 시민이 있습니다. 폭설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얇은 은박 담요 한 장 덮고 밤을 지새우는 청년여성이 있습니다. 광장의 시민은 당신 덕분에 전투력이 급상승 중입니다. ‘윤석열이라는 악몽을 물리치기 위해 담대하고 용감하게, 치열하고 끈질기게 싸우는 중입니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한남동 관저에선 이 노래가 들릴 겁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

헌법은 힘이 세고, 국민은 더 힘이 셉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내란 책동은 따박따박 분쇄되고 있습니다. 비상계엄은 해제됐고,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으며, 헌법재판관 2인도 임명됐습니다. 8인 체제를 갖춘 헌재는 탄핵심판의 쟁점을 압축하고, 5차례 변론기일을 확정했습니다.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이미 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시민(을 대리한 공권력)이 다시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알코올과 극우 유튜브를 마음껏 즐기시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경향 2025.1.7.

 

내란 가담 군 장성들에게 군사반란죄 적용해야

검찰 특수본은 12·3 내란 가담자인 군 장성들을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군형법상 반란(군형법 제5) 혐의를 적용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정당한 법령의 적용이라고 할 수 없다.

군사반란은 다수의 군인이 작당해 병기를 휴대하고 국권 내지 국가기관에 반항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국권에는 군의 통수권 및 지휘권이 포함된다. 현재 국군조직법 및 합동참모본부 직제(대통령령) 등은 군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군사작전 및 군령 작용을 합참의장이 지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계엄 시행 등 업무 역시 합참의장의 임무로 되어 있다. 계엄의 시행은 군부대 이동과 병력 투입이 필수적 요소이다. 이는 전투준비태세 유지와 직결된다. 관계 법령이 합참의장으로 하여금 계엄업무를 통제하도록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실시하는 을지훈련(UFS 훈련) 시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이 되어 합참에 계엄처를 설치하는 연습을 한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계엄법은 국군조직법에 대한 특별법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통령도 계엄을 시행할 때엔 법령에 따른 군의 조직·지휘체계를 준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3 내란 당시 군 장성들은 법령이 아닌 대통령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무장병력을 지휘·투입해 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군 장성들은 작전(군령) 및 계엄업무의 최고 책임자인 합참의장에게 작전병력 투입과 계엄에 대한 사전보고를 하지 않았다. 소수의 군 장성들이 법령이 정한 군의 지휘통수체계가 아닌 비선 조직을 통해 헌법기관의 전복을 꾀한 것이다. 전형적인 군사반란에 해당한다.

이번 내란 사건은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지휘한 것으로 군사반란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1980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 계엄군의 행위가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하에 이뤄진 것으로 반란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963376 판결)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12·3 내란 및 군사반란 사건에 위 판결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내란범이 아닌 정상적인 대통령으로서 재가 등 행위를 한 것이고, 또한 당시 계엄사령관인 육군참모총장(대장 이희성)은 군령권과 군정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점 등에서 사실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군통수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초법적인 제왕적 권한이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도 대통령의 사병집단이 아니다. 대통령이 군의 최고통수권자이기 때문에 그의 명을 따른 군인에게는 군사반란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성립되기 어려운 반헌법적 주장이다. 소수의 장성이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최고 지휘관인 합참의장 모르게 작전병력을 움직여 헌법기관 전복을 시도하고 안보태세에 구멍을 낸 행위가 군사반란이 아니라는 논리는 용납되기 어렵다. 이들의 행위는 누구의 명령에 따랐는지에 상관없이 군의 지휘통수체계를 침해한 것으로서 군사반란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번 내란 및 군사반란은 법령에 정해진 정상적인 군의 조직체계와 지휘체계가 유지되었다면 절대 발생할 수 없었다. 군형법의 군사반란죄는 형법의 내란죄보다 더 중하게 처벌되고, 처벌 범위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내란 가담 군 장성들을 군사반란죄로 처벌하는 일은 대한민국에서 군사쿠데타의 재발을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군사반란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수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검찰 특수본은 조속히 내란 가담 군 장성들을 군사반란죄의 수괴로 추가 기소해야 한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경향 2025.1.7.

 

 

내란성 불면증을 앓는 마음

백석만큼 거듭 깊이 글감을 생각한 시인은 드물다. 푹푹 눈이 내리는 날엔 소주를 마시며 나타샤를 생각한다. 시제(詩題)이기도 한 국수를 앞에 두곤 연이은 질문으로 생각을 키운다.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그 생각은 아득한 옛날 북방을 향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일가친척이 모이던 여우난골을 비추기도 한다. 사모했던 여인의 현재를 흰 바람벽에 상상하는 물감이 되기도 하고, 시골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의 미래를 예견하는 만화경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풍요로운 생각으로 감싼 초겨울 시들을 음미하기 딱 좋은 작년 123,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수사와 국정조사와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다. ‘병정놀이였다거나 경고성이라거나 계엄 이전으로 이미 원상회복되었다며 애써 범행을 축소하는 이들도 있다. 몇몇 단어에 매달리지 말고, 백석 시인처럼 생각을 펼치는 건 어떨까.

 

생각은 일어난 과거를 오래 기억하는 쪽으로도 잎을 드리우지만, 일어날 뻔한 미래를 살피기 위해서도 뿌리를 뻗는다. 국회의원들이 필사적으로 모여 계엄을 해제시키는 바람에 현실이 되진 못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추종자들이 만들려던 세상이 바로 코앞까지 왔었다. 그 세상을 선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가 202412323시 대한민국 전역에 공식적으로 알린 계엄사령부 포고령(1)’을 밑바탕으로 삼는다. 간단한 주석처럼, 내 생각의 두께는 한두뼘을 넘지 않는다. 한달 넘게 내란성 불면증을 앓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겠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계엄사령부는 정치 활동을 이끌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와 중요 정치인들부터 붙잡아 감금한다. 국회와 지방의회와 정당 출입을 막는다.

‘2.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급습한 계엄군은 위원장과 직원들의 손발을 묶고 두건을 씌워 끌고 간다. 야구방망이와 작두 재단기 등으로 위협하여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을 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이를 근거로 국회를 해산하고 비상 입법기구를 신설한다. 가짜뉴스 유포 혐의로, 방송국과 신문사의 간부와 피디와 기자들을 체포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방송과 신문을 매일 검열한다. 강제로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기사를 삭제한다. 출판물도 빠짐없이 검열한다. 금서 목록을 만들어, 출판사와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괄 수거하여 없앤다. 불온 저자 명단을 작성하여 집필을 막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태업·집회행위를 금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노동자와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합법 조직들을 점령하고, 중요 간부들을 수배하며 가둔다. 파업을 진압하고 주동자를 구속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파업에 동참했던 의사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심문한다. 특히 전공의들을 예외 없이 엄벌한다. 항의하는 의대 교수들과 학생들을 제압한다. 복귀한 의료인들의 근무 태도를 수시로 점검하며, 위반한 자는 처단한다.

포고령엔 또한 이렇게 적혀 있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영장도 없이 대한민국 국민을 언제 어디서나 붙잡아 뒤지고 끌고 가선 가두고 벌하겠다는 뜻이다.

 

12·3 비상계엄 당시 내려진 계엄사령부 포고령 원본 문서. 검찰 특별수사본부 제공

 

냄새에 예민했던 백석 시인에 다시 한번 기대자면, 포고령의 모든 단어에선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국가폭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것이다. 이토록 섬뜩한 냄새를 풍겨대는 자들이 작당하여 벌인 짓이 어떻게 서툰 놀이나 단순한 경고이겠는가.

저들의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독재자의 영구 집권을 공고히 하는 포고령이 잇달았을 것이다. 더 많이 잡히고 갇히고 다치고 죽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아니다. 무장 군인을 앞세워 민주공화국을 깡그리 짓밟으려 한, 반국가 세력이자 체제전복 세력에겐 단 한줌의 미래도 용납해선 안 된다. 내란이 내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곱씹어 생각하며 행동할 때다.

김탁환 | 소설가 | 한겨레 2025.1.7.

 

비상계엄 환영했던 부끄러운 과거 반복하려는가

비상한 경우에는 비상한 조치를 필요로 한다. 어제 1719시를 기하여 이 나라는 비상조치를 선포하였다. () 우리는 이 사태에 직면하여 오늘 우리에게 부닥친 안팎의 모든 정세를 살펴보며 조국의 앞날의 걸어가는 길을 내다볼 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로서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 헌법기능의 일부 정지와 이에 따르는 몇 가지 조치가 선포된 것은 새로운 헌정질서의 정립을 위하여 만부득이한 조치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 () 이번 비상조치에 의하여 많은 국민들은 충격도 없지 않았을 것이지만 () 각자의 직책에 더욱 충실하며 민족적 대의에 기여하기를 권고해 마지않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체제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다음 날인 19721018일치 조선일보 사설이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실종된 야만의 시대였다지만, 지금 이 신문 기자들이 봐도 낯뜨거울 것이다.

 

조선일보는 7년여 뒤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한 직후 이런 사설도 썼다. “광주사태를 진정시킨 군의 어려웠던 사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 ()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1980528)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에 대해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천성적인 결단은 그를 군의 지도자가 아니라, 온 국민의 지도자상으로 클로즈업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1980823)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전두환에게 잘 보인 덕분인지 5공화국 내내 잘나갔다.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당시 부동의 1위였던 동아일보가 동아방송을 잃는 등 경쟁지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 신문이 최근 12·3 내란사태를 보도하는 태도는 40여년 전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기계적 중립을 가장한 물타기로 윤석열과 내란 비호 세력을 돕는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처럼 차마 편들지는 못하겠는지, 내란 세력을 단죄하려는 수사에 딴지를 건다.

이 신문은 지난 6일치 법이 무너졌다는 제목의 1면 기사에서 내란죄 수사권 없는 공수처 수사’, ‘판사의 입법권 침해 영장 발부등이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거부에 빌미를 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빌미를 제공한 건 바로 조선일보다. 체포영장 집행 전날인 2법 위에 선 판사라는 기사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얼굴 사진까지 실어 공격했다. 체포를 위한 수색영장에 ‘(군사상 비밀에 관한 곳은 책임자가 허락해야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110·111조 적용 예외라고 기재한 것을 두고, “삼권분립 원칙과 법률을 어긴 것이라는 익명의 전문가 멘트를 받아 마치 위법한 영장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법원은 5일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이의신청을 기각하면서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피고인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수색의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137조가 적용되며, 그 경우 형사소송법 110조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장에 이 내용을 기재한 것은 법령 해석이라는 사법권 범위 내에서 법관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내란죄 수사권에 대해서도 이 체포영장 및 수색영장의 혐의사실에는 내란죄뿐만 아니라 직권남용죄의 혐의사실이 포함돼 있어 공수처법에 포함된 범죄라며 이와 관련 있는 내란죄를 혐의에 포함했다고 해서 위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봤다. 법 해석 권한이 있는 사법부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7일치 사설에서 계엄과 같은 초법적 발상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이 신문의 한 편집국 간부가 쓴 칼럼은 할 말을 잊게 한다. 123일 밤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 부대가 국회로 출동하기 직전 야당 의원에게 관련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 몰래 정치적으로 줄을 댄 군인탓이란다. 쿠데타를 막기 위해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할 일을 한 것을 정치질이라고 비난할 일인가.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이 신문의 윤석열 편지가 불러 모은 분열의 깃발기사(3일치 1)에 대해 혼란과 대립을 강조하면서 내란 범죄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전선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인 것처럼 프레임을 뒤섞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물타기가 극우 세력의 준동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조선일보는 모르는가.

이춘재 | 논설위원| 한겨레 2025.1.7.

 

부끄러움을 아는 시민들과 그것을 모르는 자들

불이 났는데 불은 안 끄고, 불 끈 뒤 집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얘기한다는 게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해 그동안 공정귀촌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글 쓸 힘이 있으면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내란 세력을 물리치는 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란 이후 선량한 주권자들이 고백한 부끄러움의 편린들은 마치 눈처럼 차곡차곡 내 마음에 채워져 결국 이렇게 글 쓸 작심을 하게 만들었다.

작년 123일 윤석열과 그 일당이 일으킨 내란을 막고, 나라를 지키고자 주권자들이 나섰다.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들, 동영상들 속에서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얘기하는 부끄러움이었다.

 

“123일 국회에서 쿠데타군을 막아준 분들에게 부끄러워서 나왔다.”

우리나라가 너무 창피한 나라가 될 것 같아서 나왔다.”

추운 거리에서 탄핵 집회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나왔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세상을 물려줄 수 없어서 나왔다.”

윤석열을 뽑은 게 부끄러워서 나왔다.”

과거의 저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서 이번에는 거리로 나왔다.”

훗날 역사책에 쓰일 지금, 이 순간에 누나는 뭐했냐는 질문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나왔다.”

 

부끄러움 아는 시민들이 부끄러움 모르는 자들에 맞선 빛의 혁명

나도 가족과 함께 탄핵 찬성 집회에 나갔었다. 나 역시 임금의 나라를, 천황의 나라를 종식시키고 빼앗긴 나라를 헌신하며 되찾아 주권재민의 민주공화국으로 만든 의병과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탄핵 찬성 집회에 나갔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인간의 4가지 본성인 인(), (), (), () 중 의()에서 발현되는 마음이라고 했다.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곧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양심이자 도덕적 자각이 수오지심이다. 자신의 손에 왕() 자를 새겼던 윤석열은 마치 제왕무치(帝王無恥)’ 왕은 무슨 짓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라는 전제 군주 시대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무치, 무도함을 거침없이 온 세상에 드러냈다. 인간이 갖춰야 할 본성이 거세된 소시오패스임을 입증한 것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내란을 옹호하며 의원들에게 얼굴 두껍게 다녀야 한다라고 했다. 말 그대로 후안무치(厚顔無恥),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공자는 법치로 다스리면 백성이 부끄러움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내란 세력들은 그동안 법을 집행하면서 법 위에 군림하는 치외법권자로서의 의식을 갖게 된 모양이다. 결국 불법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진, 인두겁을 쓴 파렴치한 괴물이 돼버린 것이다.

 

이제 부끄러움은 주권자의 몫이 되었다. 주권자의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주권의 대행자들을 보며 의분(義憤)에 북받친 주권자는 불의를 물리치는 빛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빛은 그동안 어둠 속에 있던 부끄러움을 비추기 시작했다. 바로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했던 부끄러움. 이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일어난 연대는 1221일 남태령에서 1894년 꺼졌던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에 다시 불을 붙였다. 전남과 경남에서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출발한 전봉준투쟁단트랙터가 6일 간 달려와 서울 진입을 앞두고 남태령에서 길이 막혔다. 이 길을 뚫은 주력은 2030 도시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심야에 남태령으로 달려간 이유에도 부끄러움이 있었다.

살수차에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일이 마음의 빚이다. 어떻게든 농민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농민 분들 사정에 너무 무지했다는 걸 알아서, 너무 부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막차 타고 왔다.”

 

성별도 세대도 지향도 직업도 다른 이들이 만든 대동의 남태령

전봉준 투쟁단2015년 백남기 농민 사망 때 처음 조직됐고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때도 등장했지만 당시 도시민들은 그들을 외면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 다름을 만든 2030 도시 여성들이 참여한 동기가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헬조선에 살고 있는 청년으로서,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특히 윤석열 정권이 젠더 갈등 프레임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면서 만들어진 마초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현 시대 기층의 삶을 살게 된 2030 여성들은 그동안 외면했던, 수백 년 기층 민중으로 살아온 농민과 부끄럽게 직면했고, 그 부끄러움을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내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2030 여성들이 탄핵 찬성 집회에서 민중가요로 만든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만든 세계는 부끄러움과 함께 다시 만난 세계였고, 그 세계는 130년 전 동학농민혁명이 만들고자 했던 대동의 세계였다. 전봉준투쟁단 총대장,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그 감격을 이렇게 남겼다.

여러분! 역사는 지난 이틀을 남태령 대첩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그저 이겼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혐오와 차별 속에 주류사회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 노인, 도시빈민, 농민이 만든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성별도 세대도 지향도 직업도 다른 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연대를 넘은 대동의 남태령을 열어냈기 때문입니다.”

 

내란 종식 후 빛의 혁명이 이룰 새 세계에 대한 희망

20241221일 밤부터 22일 오후까지 남태령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억눌림을 받았던 사회적 약자들의 발언이 자발적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빛의 혁명은 그동안 어둠 속에 있던 부끄러움을 공감과 연대의 무대에 주역으로 등장시켰다. 그 연대의 힘이 결국 대동세상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이 내란 이후 빛의 혁명이 사회대개혁 연대로 나가고 그 대개혁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130년 간 우금치를 넘지 못했던 농민의 전진을 도시의 기층 민중과 손잡고 함께 이뤄낸 남태령 대첩, 평소 도농상생과 풀뿌리 자치를 위한 공정귀촌을 주장하는 내게 내란 종식 후 다시 만날 세계가 이전의 도시 중심 세계가 아닐 것임을 보여주는 희망의 빛이었다. 몰염치한 정권의 벽을 뚫은 남태령 대첩은 빛의 혁명이 내란을 종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게 해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부끄러움은 내란을 끝내는 과정에서도, 끝낸 이후에도 대한민국 제7공화국을 여는 저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주권자를 죽이고 독재를 했어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세력을 추종하며 그 패륜의 역사를 다시 만들어 내려 했던 윤석열과 그 괴뢰도당이 일으킨 내란은 부끄러움을 자각한 주권자의 손에 끝장날 것이라 믿는다. 마침 올해가 을사년이라고 하니 윤석열과 그 일당이 비상계엄 상태에서 120년 전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일본에 갖다 바친 역사를 올해 재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소름 끼치는 상상도 하게 된다. 내란을 내전으로 만들려는 반동이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그 끔찍한 상상이 혹시 현실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깔끔히 떨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훗날 12.3 내란은 역사에 이렇게 기록될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도당은 내란을 일으켰고, 부끄러움을 아는 주권자는 내란에서 나라를 구했다.’

신동진 마을활동가 | 시민언론 민들레 2025.1.7.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학교에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따로따로 배워서 그러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한국사와 세계사를 종종 별도의 영역처럼 취급한다. 한데 사실 한국의 현대사만큼 세계사적 맥락과 직결돼 있는 한 나라의 역사도 없다. 가령, 군사 독재는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처럼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의 변두리에 위치했던 1960~1980년대 남미 국가들의 현실이기도 했다. 1980년대 말의 민주화를, 한국과 대만, 동유럽과 남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공유했다. 1990년대 말 이후의 신자유주의의 도입과 비정규직 양산 등에 있어서는, 한국과 일본은 대체로 비슷한 궤도를 밟아왔다. , 한국 현대사는 기본적으로 특수라기보다는 보편에 훨씬 더 가깝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국내외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이번 윤석열 내란 사태 역시 그렇다. 이 사태에서는 한국 특유의 상황, 예컨대 검사 출신 대통령의 안하무인식 권위주의적 사고·행동, 그리고 군사 조직에 대한 시민 사회 감시·통제의 부족 등도 반영됐지만, 동시에 이 내란은 세계적 트렌드의 일부이기도 하다. 사실, 2010년대 후반부터 우향우와 극우들의 약진, 극우파의 권력 장악과 신권위주의 정권의 성립은 전세계의 하나의 지배적 경향이 됐다. 취임 이후 윤의 극우 정책과 궁극적 내란 시도는 바로 이 경향에 속하는 것이다.

2010년대 후반 이전에는 신권위주의는 대체로 지정학적 비중이 있는 준주변부 국가들의 몫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권력 기반을 굳힌 푸틴 정권은 가장 전형적이었지만, 2014년부터 출발한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정권과 인도의 모디 정권도 비슷한 부류에 속했다. 한데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와 트럼프 1기 정권(2017~2021) 이후로는 상황이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한국이 속하는 국가의 그룹, 즉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된 고소득 국가에서도 신권위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대하는 극우 정치가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이런 국제적 배경이 없었다면 이번 윤석열의 망동이 일어났을 확률도 더 낮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스칸디나비아가 사회민주주의 본산으로 일컬어졌던 시대는 이제 옛날이 됐다. 오늘날 스웨덴의 우파 내각은 2022년 총선에서 20%의 득표력을 보인 극우 정당 스웨덴민주당의 지지에 의존하는가 하면, 2023년 총선에서 역시 20% 정도의 득표를 한 핀란드의 극우 정당 핀인당은 지금 핀란드 연립 우파 내각에서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 유럽 좌파의 마음의 고향이었던 스칸디나비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극우파가 이미 권력을 장악했는가 하면,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각각 20%대와 30%의 지지를 받는다. 트럼프 2기를 준비하는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체제의 준주변부에 이어 중심부도 이젠 우향우를 거듭하고 있다.

왜 극우파는 구미권에서 상당 부분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모순들이 가져다준 결과다. 1980년대 이후의 세계화는 구미권에서 시작됐지만, 그 최고의 수혜자는 이제 전세계 제조업 생산의 무려 3분의 1을 담당하는 중국 등 신흥국들이 됐다. 1973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계속 내려갔던 이윤율은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1991~2007년 사이에 반등했다가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로는 계속 내림세로 일관했다. 구미권에서는 양적 완화, 즉 추가 통화 발행과 공적 자금 투입으로 세계 금융 위기를 부랴부랴 수습했다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지속적인 생활 수준의 저하, 대중들의 빈곤화 문제에 직면했다. 스스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로 가난해졌다고 여기는 유권자들이 보호주의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강한 국가를 열망하게 됐는데, 이런 요구에는 여태까지 세계화를 잘 반대하지 못했던 제도권 좌파보다 극우 정당들이 더 적합한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상으로 세계화에 더 회의적인 구미권의 대중들과 달리, 무역으로 먹고사는 이상 세계화를 반대할 리가 없는 한국에서는 세계화가 아닌 복지국가의 미발달과 국가 민생 정책의 부재야말로 핵심적 문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오로지 복지 지출 삭감만으로 일관했던 윤석열로 대표되는 한국형 극우들은, 유권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매력적 의제는 아예 없다. 페미니즘 마녀사냥을 통한 남녀 갈라치기와 젊은 남성 표심 장악의 시도부터 대북 전쟁 도발을 위해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는 폭거까지, 그들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란 오로지 혐오와 공포, 군사적 폭력밖에 없는 것이다. 한데 그래 봐야 내란을 성공시킬 수 있는 만큼의 대중적 지지를, 한국 극우들이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지금 한국인 10명 중의 7명이 윤석열의 탄핵(파면)을 지지한다. 이대로 가면 가까운 미래에 온건 자유주의자들의 집권이 거의 확실시된다.

 

사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전세계적 우향우의 경향에 역류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돼도 안심은 금물이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우향우의 경향을 거슬러 갔던 지난번의 문재인 정권은, 비정규직이나 집값 폭등 등 신자유주의가 낳은 문제들의 해결에 실패해 결국 극우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됐다. 다음에 들어설 온건 자유주의 정권이 문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온건 자유주의 정치인에 대한 거리로부터의, 왼쪽으로부터의 강력한 압박이 필수적이다. 검찰 개혁과 함께 비정규직 고용 사유의 제한 등 고용의 전반적 정규직화와 부유층 과세의 대대적 강화, 그리고 노후연금의 내실화 등 보편적인 복지제도의 완성을 강력히 요구해야 의회와 관료기구에서의 보수들의 저항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압력이 실효를 거두자면,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진보 정당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힘을 키워야 하고, 복지나 남북한 대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 정착 등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의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이념적 차이를 넘어 손잡고 같이 투쟁할 줄 알아야 한다. 강력한 급진 진보 정치 없이는 우리는 전세계적 극우화의 파도를 오랫동안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 한겨레 2025.1.8.

 

"수구기득권 세력 여전, 끝까지 싸워야

'검찰총장 윤석열''대통령 윤석열'을 지지한 세력은 그대로 있다

12.3 위헌·위법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골수 '찐윤' 정치인, 극우 유튜버, 전광훈 목사 등 극우 개신교 류의 집단 외에는 윤석열을 옹호하는 이는 없다. ··동 같은 보수언론도 연일 윤석열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내란수괴 윤석열을 맹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 검찰총장 윤석열을 지지·찬양했다는 점은 잊히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정의의 화신', '법치의 수호자'인 양 치켜세웠고, 그와 반대편에 선 사람, 그의 수사대상이 된 사람을 비난하고 폄훼하지 않았던가. 이 시점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검찰총장 윤석열'은 정의와 법치의 현신(顯身)이었지만, '대통령·내란수괴 윤석열'은 불의와 인치(人治)의 화신인가? '검찰총장 윤석열''대통령·내란수괴 윤석열' 사이에는 단절이 있는가? 양자는 다른 사람인가?"

 

"마흔 넘으면 사람 안 바뀐다"는 속언을 상기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은 이렇게 증언했다. 총선 직전인 2020319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 간부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육사 갔으면 쿠데타 했을 것이다. 5.16 쿠데타 핵심 김종필은 중령이었고, 검찰로는 부장검사다. 나는 부장검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후 '조국 사태'를 주도하였고 이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던 그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당시 그는 '제왕적 검찰총장'이라고 불리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2020319일 발언에서 몇 가지를 추론할 수 있다. 첫째, 윤석열은 쿠데타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둘째, 검찰총장이라는 지위에 있었지만 대통령, 법무부장관 등에 의한 견제가 싫었고 이를 뒤엎고 싶었다. 셋째, 이 발언이 총선 직전에 이루어졌던 바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의 예상되는 견제 역시 싫었다. 요컨대, '검찰총장 윤석열' 안에 '내란수괴 윤석열'이 이미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감 중인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8일 시민언론 민들레에 보내온 자필 기고문 일부

 

당시 검찰총장 윤석열의 언동과 수사를 정면으로 비판한 사람은 소수였다. 2019'조국 사태' 발발로 민주진보 진영이 혼돈에 빠졌을 때 유시민, 김민웅 등 소수의 지식인만이 윤석열의 본질을 꿰뚫고 윤석열과 맞섰다(두 사람은 이후 각각의 이유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성 언론이 윤석열의 편에 섰을 때, 시민언론 민들레, 김어준의 뉴스공장 정도의 비주류 언론만 윤석열을 비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벌인 일 중 '조국 사태'는 당사자이므로 빼자. 그가 정치 참여의 핵심 근거로 내세웠던 원전 조기 폐쇄의 경우, 검찰에 의해 치도곤을 당하고 기소된 공무원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법무부가 합작한 인권 침해 사건으로 몰고 간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도 마찬가지다. 차규근(현 조국혁신당 국회의원), 이광철(현 조국혁신당 탄추위 총괄간사), 이규원(현 조국혁신당 전략위원장) 세 사람은 2심에서 완벽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추미애 장관이 군 복무 중 아들의 휴가에 관여한 것처럼 흘리고 요란을 떨었으나, 아무도 기소하지 못했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수행한 박은정 검사(현 조국혁신당 국회의원)는 검찰 안에서 '왕따'를 당하며 온갖 수모를 겪었다. 이외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밀어붙인 사건 중 상당수는 적어도 중요 부분 무죄가 나올 것이다(나의 경우 요란했던 '사모펀드' 건은 기소되지도 않았다).

 

2020319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쿠데타 발언과 그 전후 검찰 수사를 종합하면, 윤석열은 총칼 대신 검찰권을 사용하여 정치권력을 잡으려 했다고 판단한다. 실제 그는 추미애 장관과의 대립을 극도로 만들어낸 후 정치 참여를 선언하고 수구기득권 진영의 '영웅'이 되어 대통령까지 되었다.

'대통령 윤석열'의 행태가 목불인견이었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선출된 대통령의 통제를 참지 못하고 쿠데타 발언을 했다면, '대통령 윤석열'은 국민의 다른 대표기관인 국회의 견제를 없애버리려고 쿠데타를 실행했다. 그리하여 대통령이 내란수괴가 된 기괴한 현실이 2024년 대한민국에 펼쳐졌다. '검찰총장 윤석열''대통령·내란수괴 윤석열'은 단절되지 않았다.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지키고 반대자를 억압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 헌법과 법치는 허울 좋은 수식어로만 사용할 뿐이라는 점, 자신을 법 위의 존재로 인식하고 법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집행한다는 점 등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무속중독 역시 검찰총장 시절에도 파다했던 이야기다.

 

한편, '검찰총장 윤석열''대통령 윤석열'을 지지·응원했던 세력도 동일하다. 극우 개신교 세력, 군복과 선글라스를 쓰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아스팔트 보수' 세력은 눈에 보이는 지지집단이다. 그 뒤에는 전현직 고위공무원·군장성·교수·언론인 등의 거대한 수구기득권 세력이 있다. 이들은 김대중을 '빨갱이' 취급했고, 노무현을 '고졸'로 폄훼했으며, 문재인을 '주사파'로 몰았다. 현재 대선후보 지지율 1위인 이재명은 그들에게 '범죄인'일 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내란수괴 윤석열'조차 옹호하고 있다.

윤석열 탄핵과 형사처벌은 다가오고 있다. 그렇지만 방심하거나 낙관만 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윤석열을 비호하는 수구기득권 세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은 지지했지만 현재의 '내란수괴 윤석열'은 비판하는 세력은, 윤석열 탄핵과 형사처벌은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보전하기 위해 새로운 모색을 하고 새로운 '영웅'을 찾을 것이다. 윤석열 탄핵과 형사처벌, 뒤이어지는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성공해야만 비로소 헌정과 법치 회복이 가능하다.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싸워야 할 시기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시민언론 민들레 2025.1.8.

 

 

항복하라! ‘김건희 유니버스의 빌런군단

이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 아니 영화 같은 현실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악당이다. 이들의 언행은 조폭영화의 주먹들보다 막장스러우며, 이들의 만행은 공포영화의 사건들보다 기괴하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악당이 개과천선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이들은 더 악한 빌런군단으로 흑화했고, 급기야 내란을 시도해 대한민국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빌런군단의 얼굴마담은 윤석열이다. 특징은 국정과 주정의 혼동이다. 시도 때도 없는 어퍼컷과 욕설 그리고 광기, 1시간이면 혼자 59분을 떠드는 대화법은 그만의 장기다. 숙취로 제때 출근 못하는 날엔 빈 차를 위장 출근시키는 비기도 지녔다.

가까운 측근들은 관저로 불러 폭탄주를 나누고, 적당히 관리하는 우호세력들에겐 이따금 체리 따봉을 보낸다. 윤석열의 가장 큰 특징은 무도함이다. 덩치만큼이나 비대한 자아, ‘짐은 국가라는 과대망상에도 빠져 있다. 자신을 비판하면 반국가세력이고, 친위 쿠데타가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기막힌 주장도 이런 인식에서 나왔다.

 

대개 악의 세력이 그렇듯, 얼굴마담 뒤의 실세는 따로 있으니, 아내 김건희다. 특기는 손금 보기와 약간의 신기, 자산은 건진·천공·명태균 등 도사들과의 끈끈한 네트워크다. 주술을 통해 윤석열의 수상쩍은 국정운영을 배후조정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명품백 뇌물을 받고 해외순방에서도 명품매장을 찾는 지독한 명품사랑, 세계문화유산 종묘를 지인들과의 차담회 장소로 사용하는 등 공사 구분 못하는 행동도 특징이다. 다만 술이나 마시며 검찰에서 골목대장 노릇하던 윤석열에게 정치적 야망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윤석열에게 김건희는 우주다. 하여, 빌런군단은 김건희 유니버스로 불려야 마땅하다.

빌런군단은 정부·여당에도 잔뜩 있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은 대인이고 제일 개혁적이라고 했던 한덕수는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으로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는 등 윤석열 파면 절차를 방해하려다 자신도 탄핵됐다. 여당의 똘마니 빌런들도 막무가내로 윤석열과 김건희를 감싼다. 윤석열을 보호하겠다며 관저를 겹겹이 둘러싼 방탄 의원단 45명을 보면서 두목의 담궈한마디에 돌진하는 깍두기들을 떠올렸다. ‘법 앞에 편파를 시전한 검찰, 내란에 앞장선 충암파들도 김건희 유니버스의 핵심 빌런들이다. 윤석열의 비대한 자아가 친위 쿠데타 망상으로 커지는 것을 돕거나 방치했다는 점에서 이들 모두는 내란 공범이다.

이렇게 해괴망측한 김건희 유니버스빌런들의 면면을 보면 윤석열 정부 국정이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됐는지 이해가 된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구호는 헛된 망상으로 끝났지만 윤석열은 그 어렵다는 비정상의 일상화를 이뤄냈다. 이것도 성취라고, 박수라도 쳐야 하나. 국회 침탈을 시도하고도 경고용이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알량한 법지식을 활용해 탄핵 절차를 방해하고, 자신과 김건희 보호를 위해 극우세력을 방패로 세우고, 정작 자신은 관저 뒤에 숨어 농성하는 행태가 찌질하고 비열하다.

 

필립 로스의 소설 <미국을 노린 음모>는 친파시즘 고립주의자인 찰스 린드버그가 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 대선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꺾고 승리한다는 가상의 역사를 전제 삼아 혼란과 분열, 히스테리와 광기로 물들어가는 미국 풍경을 묘사한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어떻게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맡게 되었을까.”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걷잡을 수 없이 펼쳐지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무자비한 미래가 나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지만 우리 학생들은 그것을 역사로서 공부했다.” 최근 이 책을 읽으면서 먼 나라 일 같지 않아 여기저기 밑줄을 그었다. 소설 속 린드버그가 미국을 노린 음모였다면, 현실의 윤석열과 김건희는 대한민국을 노린 음모다.

윤석열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가결된 직후에도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2,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며 재촉했다고 한다. 이 얼토당토않은 말을 되돌려 주겠다. 내란 수괴 윤석열의 망상과 광기가 2, 3번 부끄럽다. 내란 수괴 윤석열의 적반하장에 2, 3번 분노한다. 내란 수괴 윤석열을 2, 3, 4, 5, 100번이라도 응징해야 한다. 이것은 민심이다. 윤석열과 김건희, 그리고 국민의힘 그만 항복하라.

이용욱 정치에디터 | 경향 2025.1.9.

 

 

나라를 거덜 내는 뻔뻔한 헌법 모독

12·3 내란 사태가 엉뚱하게 장기화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내란이 묻지마 옹호세력을 집결시키면서 심리적 내전 수준으로 번질 조짐이다. 전 세계가 생중계로 목도한 현실마저 부정하고 대안적 사실이라는 허구가 만들어내는 황당한 궤변을 내세워 나라를 거덜 내고 있다.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대중을 현혹하는 법리논쟁을 결합시켜 애당초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사안을 정쟁으로 만들거나 사법절차를 통해 논박되어야 할 사항을 공권력을 부정하는 정치선동으로 둔갑시키길 서슴지 않는다.

 

탄핵심판에서 내란행위를 헌법위반 문제로 한정하는 과정을 정쟁화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탄핵심판이 형사소송과 구별되는 징계절차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탄핵심판에서는 직무집행이 헌법과 법률에 중대하게 위배되는지만 심판하면 된다. 형사책임을 묻는 절차는 헌재의 관할이 아니며 별도로 형사법정에서 다툴 일이다. 국회의 소추사실을 바탕으로 탄핵심판의 대상을 헌재의 관할에 맞게 정리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이 과정은 그동안의 탄핵결정에서 확고히 확립된 바 있다. “소추사유를 판단할 때 국회의 소추의결서에서 분류된 소추사유의 체계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소추사유를 어떤 연관관계에서 법적으로 고려할 것인가 하는 것”, , 내란죄와 관련한 소추사유를 형법의 관점이 아니라 헌법의 관점에서 탄핵사유가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헌재의 판단에 달려 있다.

 

그런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박근혜 탄핵사건 당시 국회 소추위원으로 참여해서 같은 방법으로 탄핵사유를 정리한 적이 있어서 이 문제가 단순히 소송기술적 문제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뻔뻔하게 정쟁거리로 만들어서 윤 대통령을 비호한다. 권 대표는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악의적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대가 바람피워서 이혼하자더니, 재판을 빨리 마치기 위해 바람피운 내용을 심의하지 말자고 하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소추단이 바람(내란)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들이 징계사유(헌법위반)가 되는지 징계절차의 요건에 맞게 정리하는 것을 마치 바람을 심의하지 말자고 한 것처럼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그러면서 탄핵 각하 사유라며 헌재를 흔들어댄다. 참 고약한 헌법 모독이다.

 

권 대표의 뻔뻔한 헌법 모독은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위법일 수 있지만 내란은 아니라는 궤변에도 이어진다. 이런 주장은 법의 정신이나 목적에는 관심도 없고 법을 도구 삼아 이권과 권력만 챙기는 법꾸라지들에게 전형적인 개념과 논리 조작의 사례다. 군병력을 동원하여 국가기관을 배제하는 시도 자체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국헌문란과 맞닿아 있다. 대법원 판례가 이미 확인했다.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법령이나 제도의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인 협박행위가 된다.

 

법조문이 있건 말건, 판례야 있건 말건, 전 국민이 눈으로 본 사실마저 부정하고 짧은 시간에 계엄을 해제했으니 내란은 아니란다. 정당의 대표가 막무가내로 주장하고, 주장이 있으니 정치적 논쟁이 있는 셈이고, 논쟁이 되었으니 헌법상 의무사항도 이행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마저도 자기들 입맛대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탄핵소추되어 권한이 정지된 대통령이 내란피의자가 되었는데 그래도 아직은 대통령이므로 경호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공권력 집행을 방해한다. 이런 공권력의 충돌이 있는데도 헌법수호 의무를 다해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이 한다는 일이 고작 사람이 다치는 일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뿐이고 정작 법집행에는 손을 놓는다. 법에 따른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무정부 상태인데, 그런 무법 상태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국정안정을 도모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무법천지 무정부 상태로 우리나라를 내모는데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영론은 애당초 설 자리가 없다. 진영이든 이념이든 그 차이를 헌정질서 속에서 자유경쟁을 통해 해소해야 하는 게 민주공화국의 철칙이거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자체를 위협하는 내란을 비호하고 사법절차마저 부정하면서 어떻게 상생과 미래를 논할 수 있겠는가. 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별로만 받아들이는 내전적 관점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여··정 국정협의체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 제발 뻔뻔한 헌법 모독을 그치고 나라 꼴 좀 생각하라.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경향 2025.1.9.

 

 

구시대의 종언과 새 시대의 출발

유시민 작가 말처럼,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 당시 이것은 국헌문란이며 내란이다라고 외친 자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국가 안위를 다루는 국무위원과 국방을 책임진 최고위 장성들이었다. 명문대와 사관학교 출신 또는 외국 유학을 경험했거나 학생을 가르친 엘리트들이며, 국민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자들이었다. 그러나 마비된 판단력으로 전 국민 경전인 헌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국민의 공복을 자처한 자들이 주인을 배반했다.

 

우리는 전도된 현실을 목격한다. 국법 파괴자가 오히려 철옹성을 쌓고 법 운운하고 있다. 하수인들은 국격 추락의 원인인 윤석열은 제쳐놓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한 온갖 구실을 찾고 있다. 거짓말, 은폐와 왜곡, 위선과 허위, 기회주의, 적반하장. 참으로 추하고 비열하다. 2030MZ세대는 그들을 질타한다. ‘국가는 국민을 버릴지언정 국민은 국가를 버리지 않는다’ ‘대구와 부산은 권력욕으로 뒤덮인 보수의 텃밭이 아니다’ ‘위기의 나라를 온몸을 던져 구하는 자들은 노동자, 약자, 여성들이다라며 열변을 토한다. 대의를 무너뜨리고 정의를 짓밟은 자들에게 철퇴를 내리지 않고, 불의와 부조리에 타협한 자들을 심판하지 못한 역사의 후과가 바로 윤석열의 탄생이라고 질타한다.

구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사익과 공익, 파시즘과 공화, 불평등과 공정, 분열과 통합의 투쟁에서 후자가 전자를 밀어내고 있다. 이 전선에 앞장선 젊음이 이 나라의 수호신임은 이제 정칙(定則)이 되었다. 류관순, 전태일, 박종철 등 각 대학이나 지역사회에 한둘쯤 서 있는 청년들의 묘비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청년들의 불굴의 저항정신으로 구축된다. 미안해하는 노인들 또한 한때의 젊음을 정의의 횃불로 불태워 이 나라의 어둠을 밝히지 않았던가.

 

광화문에서 청년들의 천둥 같은 고함소리에 파묻혀 안국동 쪽으로 행진하며, 나는 왜 젊은이들이 사회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들이 맘껏 누리는 자유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일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청년의 정치철학은 역사에서 언제나 명료했다. 그들은 칸트가 주장한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갖췄다. 타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종교가 금과옥조로 삼는 황금률이다. 디지털 유목민이자 원주민인 그들은 세계시민의 역량을 갖춰가고 있다.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중시하고, 개성과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표다. 윤석열류의 약육강식의 자유에 대항하는 보편과 중용을 구현할 MZ세대의 자유가 승리하고 있다.

청년들은 권력의 공적 기능이 마비될 때 어떤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세월호와 이태원의 집단적 참사 다음은 바로 자신이 될 것임을 예견한다. 몰염치하고 부도덕하며 반역사적인 인물들이 사회를 지배하며, 국지전을 일으켜 정적들을 탄압하고, 반란을 혁명으로 둔갑시켜 역사책에서나 보던 왕의 출현을 볼지도 모른다. 하여 그들은 국민들에게 욕망을 선택하지 말고 사람을 선택하라고 주문한다. 이 사태의 결말을 끝까지 주시하는 그들은 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은박담요를 덮어쓴 젊은이들의 한남대로 키세스 시위대는 흡사 고고한 선사(禪師) 모습 같다. 독선과 아집의 타락한 정치를 끝내려는 수행자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있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 나라는 대개혁되어야 한다. 승자독식을 제어하고, 공공(公共)의 사회철학을 수립하며, 공동체에 대한 책임 윤리를 고양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저항권을 백성의 권리로 명문화하여 사욕에 눈먼 위정자들이 연단에 못 서게 해야 한다. 동서양의 성현들은, 정치의 목적은 인간의 선함과 덕성에 기반해 사회적 도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곧 이 나라를 이끌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어떻게 가꿔가야 하는가를 묻는 거대한 정치적 학습의 장이 되고 있다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경향 2025.1.9.

 

야스쿠니, 그리고 끝나지 않은 싸움

지난 8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신사에는 차가운 겨울 공기가 낮게 깔렸다. 신사 초입, 인간의 땅에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경계인 첫번째 문 도리이를 만난다. 무려 25m 높이의 거대한 입구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작은 건널목을 지나 두번째 도리이, 세번째 도리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세번 넘어 본전을 마주할 수 있다.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본전 앞마당이 끝이다. 그 뒤로 영새부 봉안전이 자리하고 있다.

본전에는 신체로 불리는 거울과 칼이 놓여 있다. 야스쿠니에 합사될 이들의 명단 영새부신체에 비추면 죽은 자들의 영혼이 칼과 거울에 깃들며 신이 된다는 것이다. ‘합사란 여러 혼령을 한곳에 모아 제사를 지낸다는 뜻인데 신체를 통해 합사된 혼령 전부가 한덩어리의 신이 된다.

 

잘 알려진 대로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이나 내전 때 숨진 이들의 혼령이 합사돼 있다. 1867년 메이지유신 직후 군부인 막부 세력과 일왕을 다시 세우려는 존왕파 간 내전인 무진전쟁(보신전쟁·1868~1869) 희생자부터 시작됐다.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것은 1978년이다. 야스쿠니신사 누리집은 오로지 나라의 태평함을 일념으로 존귀한 생명을 바친 이들의 혼령들이 모셔져 있으며 그 수가 2466천기에 이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야스쿠니 봉안전에는 합사된 이들의 영새부가 놓여 있다. 이 안에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이름이 포함됐다. 일본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야스쿠니신사 문제 자료집’(1976)에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한국인이 2636, 일본 도쿄신문의 1995년 기사에는 21181명으로 기록됐다. 어처구니없게도 야스쿠니신사는 과거 일본인으로서 싸우다 숨진 대만 및 한반도 출신 대동아전쟁 말기에 이른바 전쟁범죄인으로 처형됐던 이들 등이 함께 모셔져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족이나 조상이 침략국의 전쟁범죄자들과 한덩어리가 된 유족들은 원통함을 토로한다. 한 유족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무 억울합니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지금 상태라면 제 아버지는 일본군에 지원한 것이 되고, 또 전범으로 모셔지고 있는 것이 됩니다. 아버지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니라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동원되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한국인 유족 416명이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소 소송을 처음 제기한 게 2001년 일이다. 첫 소송은 10년에 걸쳐 3심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우리의 대법원)까지 갔지만 패소했다. 지금까지 한국인 유족 등이 세차례, 일본인 유족들이 두차례 등 모두 다섯차례 소송이 있었다. 일본 재판부는 단 한번도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는 17일 일본 최고재판소 제2소법원에서 한국인 유족들이 2013년 시작한 소송의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 일본 언론들은 “2심 결론을 바꾸는 데 필요한 변론이 열리지 않았다며 유족 쪽이 패소했던 1·2심 결론 유지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25년 가까이 법정 투쟁을 벌여온 유족들은 또다시 패소하더라도 대를 이어 싸움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야스쿠니와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홍석재 | 도쿄 특파원 | 한겨레 2025.1.9.

 

윤석열 옹호자들에게 묻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안다. 헌법 제1조 제1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구를. 그러나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은 19876월 항쟁으로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부터였다. 그 이전 제1공화국부터 제5공화국까지는 사실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독재공화국이었다. 이승만의 민간독재,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이어지면서 한국은 민주공화국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다행히도 19876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은 점진적인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공화국으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왔다.

 

그런데 2024123일 밤 난데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하여 민주공화국은 순식간에 위기에 처하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 의결로 민주공화국의 역사가 단절되는 상황은 모면하였고,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로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국회에서 의결되어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또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에 참여했던 군 장성들도 검찰에 체포되어 조사받고 있다. 일단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친위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계엄 선포의 주역인 윤 대통령은 내란죄 혐의로 법원에서 발부한 체포영장을 거부하고 경호처 인력을 방패 삼아 대통령 관저에서 농성 중이다. 그의 체포영장 거부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전면 부정한 것으로, 계엄 선포에 이어 또 한번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또 극우 유튜버와 시위대에 자신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자신을 응원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극우 시위대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내란이 아니라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를 옹호하고 나섰고, 국민의힘 의원 일부도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말끝마다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하면서, 이를 위협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는 반공반북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는 영어로 리버럴 데모크라시’(liberal democracy)라 부르는 것으로,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를 가리킨다. 서구식 민주주의는 주권재민, 삼권분립, 권력의 견제와 균형, 대의(의회)민주주의, 복수정당제, 다수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중시, 인권의 중시, 법치주의 등을 핵심 원리로 한다. 대한민국은 1987년 이후 이러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고, 그 결과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123일 계엄 선포 때 나온 포고령에는 국회와 정당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 집회·시위의 금지 등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군인들에게 국회에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 계엄 해제 결의를 막고,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또 국회를 해산하고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와 같은 것을 구상한 듯한 흔적도 있다. 그의 계엄 선포는 자유민주주의와 결별하고 독재의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그는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독재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계엄 선포와 포고령 발포는 한마디로 민주공화국에 대한 정면 도전 행위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헌법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 것이기 때문에 형법상의 내란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당시 온 국민은 계엄군이 국회를 침탈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다 지켜보았다.

 

당시 일부 시민은 민주공화국이 위기에 처했음을 직감하고 바로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이 국회로 들어가려는 것을 온몸으로 막았다. 또 국회 건물 내에 진입했던 일부 계엄군도 국회 직원들이 복도에서 필사적으로 가로막자, 더 이상 무리한 행위를 하지 않고 자제하여 본회의장까지 들어가진 않았다. 그 결과 신속하게 국회에 집결한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한밤중에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 국회 직원들, 국회의원들이 위기에 처한 민주공화국을 간신히 구해낸 것이다. 1987년 이후 축적되어온 한국 시민의 민주주의 역량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열망은 일거에 폭발하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의 백만명이 넘는 군중의 집결로 나타났고, 결국 국회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1214일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반쯤은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의 대다수는 탄핵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이후에도 계엄은 내란이 아니라면서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늦추려 애를 쓰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국민의힘 의원 40여명이 대통령 관저 앞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보다 어떻게든 정권을 지키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고, 세계 10대 경제강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요, 드라마, 영화 등에서 한류 붐을 일으켜 한국은 세계 속의 문화선진국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한국의 높은 문화수준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사회적으로도 한국은 비교적 중산층이 두텁고, 교육 수준도 높고, 치안도 안정된 사회를 유지해왔다.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한국이 이같이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비교적 안정되고 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의 민주화가 이를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어느덧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 스며들어, 한국은 자유롭고 민주화된 선진국가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계엄령이라니!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다.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독재공화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우리 국민이 수십년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단숨에 무너뜨리겠다는 것과 같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계엄을, 내란을, 윤석열을 옹호하여 수십년 전의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당신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은가. 민주공화국인가, 아니면 독재공화국인가.

박찬승 |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한겨레 2025.1.10.

 

내가 만나고 싶은 세계-탄핵 이후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윤석열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반란은 진압되고, 수괴와 그 일당은 응분의 죗값을 치를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윤석열의 구속과 파면에 뒤이어 21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질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야당의 집권이 유력해 보이지만, 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곧바로 대한민국의 생명평화적 재구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2024년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하여 중요한 국제회의 2개를 열었다. 하나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진행된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COP29),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부산에서 개최된 유엔 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 회의였다.

하지만 두 가지 회의 모두 다 기후정의적 측면에서 진전보다는 현상 유지적 타협으로(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또는 결론의 유예(유엔 플라스틱협약)로 귀결되었다. 화석연료의 생산과 이산화탄소 배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과 산유국, 그리고 주요 기업들의 책임 회피가 주된 이유다. 선진국들이 이전에 약속한 규모의 기금 출연 거부로 가난한 나라들의 기후위기 대응은 더욱 어려워지고, 플라스틱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제한 없이 대량으로 생산소비폐기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재집권은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된 국제사회의 흐름을 더욱 퇴행시킬 것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곧 끝날 것처럼 보였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중동의 전쟁도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계는 상시적 전쟁체제에 들어서 있다.

나라 안팎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대한민국 사회, 나아가 인류공동체가 생명과 평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가동되고 있는 시스템과 의사결정 구조로는 현재 우리가 봉착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의 문명,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분칠한 권력의 집중과 자본의 독점이 오늘의 문제들을 야기한 주요한 원인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서 무엇으로 시작할 것인가

기존의 해법에서 답을 구할 수 없으므로, 그 해법은 버리거나 뒤엎어야 한다.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 의사결정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우선 현재 인류가, 지구공동체가 당면한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 중심의 세계관, 특히 무한한 경제 성장이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이며,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원래 불가능했다.

둘째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나의 운명과 관련된 모든 사안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즉 민치(民治)가 아니다.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 낸 사술(詐術)이었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했던 대한민국의 참모습은 이(이번 생은 망했다!)과 대통령의 반동 쿠데타로 가면을 벗어 던졌다. 해방 이후 80년 동안 온갖 간난신고를 겪으며 우리가 추구했던 문명의 종착점은 기득권 세력과 엘리트 계층의 권력 독점과 자본의 집중, 극심한 불평등과 민치를 가장한 과두정이었다.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헌법 개정으로 새로운 30년을 정초할 밑돌을 놓자

대한민국 헌법은 정부 출범 이후 모두 9차례 개정됐다. 마지막이 1987년이었으니 한세대 30년을 훌쩍 넘긴 것이다. 이후에 몇 차례의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다 무산되었다. 현재의 헌법이 변화된 시민의식과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윤석열 파면과 대통령 선거를 거친 후 개헌 논의를 전면화해서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시대적 과제와 좌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최소한 한세대 30년 이상 시민의 삶을 규정할 제대로 된 밑돌을 놓아야 한다.

 

이번 헌법 개정이 지향해야 할 바는 명확하다. 끔찍할 정도로 엉망이 된 대한민국을 생명과 평화, 민주주의가 충만한 세상이 되도록 정초해야 한다. 나아가 헌법이 갖는 일국적 제한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헌법 개정에 담겨 질 정신은 정의롭고 평등한 새로운 민중적 국제질서 구축을 목표로 한다. 국가 간 연대, 시민사회 간 연대, 지역 간 연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연대를 세계적 차원에서 지향해야 한다.

정치권력은 분산시키고, 주권재민의 원칙은 더 분명히 한다. 대통령제 폐지,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양원제, 전면 비례대표제,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 등이 모두 논의 테이블에 올려져 집단지성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는 너무도 당연하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국가원수 지위 폐지, 사면권을 제한한다.

시민의 기본권 보장과 확장은 국가의 의무다. 남녀노소, 성별, 지역,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모든 사람의 존엄한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 이주민의 권리는 보장되며, 모든 차별은 금지된다. 난민은 수용하고, 추방은 금지된다.

국가보안법은 폐지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가 의무다. 국가는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하며, 탈탄소, 탈원전, 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 구조 전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시장이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기술이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

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를 넘어 사회적 경제를 포함한 공유, 호혜와 협동의 경제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구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 하며, 미래 세대, 국제사회, 비인간 자연과의 연대와 공존 지향을 분명히 한다.

평화 수호는 국가의 의무다.

자위적 조치 외 모든 전쟁에 반대하며, 해외 파병도 금지한다.

남북 간 불필요한 긴장 조성의 근거가 되고 있는 한반도 영토 조항을 유엔 등 국제 사회가 인정하는 범위로 한정하여 수정한다.

통일 지향의 평화적 남북 관계 유지를 국가의 의무로 명시한다. 특히 남북의 화해와 협력, 공존공영의 과제를 연구수행할 학부와 학과를 국립대학에 설치한다.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 생명평화민주주의 구현

이 땅에서 존엄한 삶을 구현하기 위한 민초들의 자취를 분명하게 기록해야 한다.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 518 612월 민주항쟁의 지향과 염원이 담겨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민주주의, 기회균등, 자율과 책임, 권리와 의무, 다양성 보장, 연방제에 준하는 자치와 분권, 지역 간 균형 발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본권의 주체는 국민이 아닌 사람이다.

유권자 연령도 18세로 하향한다.

사형제는 폐지하고, 고문은 금지한다.

성별, 종교, 신분, 장애, 연령, 인종, 지역, 혼인 여부에 따른 출생 등 사유를 불문하고 모든 차별은 금지하고, 평등권은 강화한다.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배제되고, 알권리는 보장되며, 집회 및 시위, 결사에 대한 허가제는 폐지된다.

지역정당의 허용 등 정당의 자유는 강화되며, 선거운동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역시 보장된다.

주거권, 건강권, 안전권, 환경권, 교육권은 보장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평생에 걸쳐 민주적 시민으로서 소양을 쌓고 활동할 수 있는 시민교육 진흥을 국가의 의무로 해야 한다.

국토관리와 생태계 보전은 국가의 의무다.

미래 세대, 비인간 자연에게도 법인격을 부여한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하게 결정하는 노동권을 보장한다.

참여 재판, 배심제, 참심제 도입 등 시민의 사법 참여를 보장한다.

국가는 정보 독점 및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알 권리, 자기정보 통제권을 보장한다.

질병과 재해로부터의 예방 및 보호는 국가 의무다.

아동 및 노인, 장애인은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며, 이들에 대한 기본권 보장 및 보호는 국가의 의무다.

성 평등은 보장되며, 자녀의 출산과 양육 지원은 국가의 의무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준수한다.

병역 의무 이행에 따른 불이익은 금지되며, 양심에 반한 집총 병역 강제 역시 금지되고, 다양한 형태의 대체 복무제를 시행한다.

군인 등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권 제한도 폐지한다.

국가는 기초학문 장려에 대한 의무가 있다.

전통문화는 발전적으로 계승하며, 문화적 자율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증진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헌법재판소는 폐지하고, 일반법관에 대한 임기제도 폐지한다.

감사원은 독립기관화하고, 헌법적 중립 의무를 부과한다.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 발안제를 보장한다.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자치 구현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 또는 자치정부로 명명한다.

국가는 지방정부가 수행할 수 없는 사무에 대해서만 보충적 권한을 보유하며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 의무가 있다.

지방정부에 대한 실질적 자치권(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사법권)을 보장한다.

자치사법권의 실현을 위해 광역지방정부 수준에서 자치법원을 구성한다.

국가는 자치입법권 확대를 위해 지방정부가 법률의 범위 내에서 모든 지역적 사무를 자기 책임 하에 수행할 수 있도록 조례 제정 등을 보장한다.

국가는 자치재정권 확대를 위해 지방정부가 그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비용의 충당을 위해 필요한 세출을 자기 책임 하에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국가는 지방정부가 국가의 사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보장한다.

지방정부의 재정 악화 방지를 위해 재정 조정 등 헌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지방정부 중요 의사결정에 주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한다.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동장 직선제, 동의회 구성 등 지방자치를 확대한다.

국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 상호 간 사무의 배분은 주민 이익 우선 원칙에 입각하여 주민에게 가까운 자치단체가 우선한다.

 

불평등 해소 및 존엄한 삶 보장

기본소득 지급, 일자리 제공, 생애적 지원 등 시민의 안정되고 존엄한 삶을 보장한다.

민주적 분배를 통해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명시한다.

시장경제 외 공유, 호혜와 협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사회적 경제 진흥 의무를 국가에 부과한다.

금융을 통한 과도한 사적 이익 추구는 제한되며, 중앙과 지역의 공공은행 설립을 장려하고 금융의 공적 기능을 확대한다

토지공개념을 도입한다.

생명의 원천으로서, 식량 주권과 식량 안보 강화 차원에서 농어업의 공익적 기능을 명시하고, 농어민을 보호한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소비자 권익은 보호한다.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에서 에너지 정의,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국제교역은 정의로워야 한다. 착취적 교역, 무기 및 원자력 수출은 금지한다.

제도 권력인 국회와 시민사회 공동으로 (가칭)헌법개정 시민회의구성 운영

 

이번 헌법 개정 논의는 대한민국의 향후 30년을 책임지고, 한반도의 생명평화적 재구성을 위한 핵심적 토대 구축 작업이다. 생명평화 운동진영은 차기 헌법에 담아야 할 시대적 가치를 구하는 작업을 탄핵 국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대 수준에서 이번 헌법 개정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요구들을 정리해 내고, 준비 정도에 맞춰 지역별계층별부문별 순회 간담회를 통해 지역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

 

광장과 지역의 목소리가 담긴 개헌안은 제도권력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가칭)헌법개정 시민회의에서 성안시켜 국민투표를 거쳐 완성한다. 국회 중심의 제도권력만의 공론장에서 개헌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 광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민의 목소리, 이해와 요구를 제도권력은 지금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권력과 기득권 세력은 분출되는 광장의 목소리를 제압하거나 최소한으로 반영하는 수준에서 타협을 제안할 것이다. 생명평화운동 진영은 여기에 멈춰서는 안 되며, 개헌 논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만민공동회형식의 공론장을 온오프라인에서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이 만민공동회는 개헌 후 심화된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형식과 질서로 계승한다.

 

생명평화운동 진영의 개헌 공론화는 현시기 대한민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재인식과 역사적 소명을 확인하는 살아 있는 시민교육정치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다. 위에 열거된 과제들은 1987년 마지막 헌법 개정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이미 충분히 숙성된 것들이다. 이번 헌법 개정에 응당 담아 내야 할 숙제로서 더 이상 미룰 여지가 없다. 아니 너무 늦은 것이다.

 

역사는 준비된 만큼 전진을 허락한다.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가로막고, 응원봉과 함성으로 남태령의 경찰 차벽을 무너뜨린 시민들은 이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내란 수괴의 관저 앞에서 밤새 쏟아지는 눈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하얀 등신불이 된 이들의 소망과 염원을 우리는 안아내야 한다. 그것이 헌법 개정이다. “가진 자들은 바꿀 마음이 없고, 못 가진 자들은 바꿀 힘이 없다는 존 롤스의 이야기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우리는 바꿀 힘이 있다!

정범진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5.1.12.

 

 

재앙 앞의 마음들

2024년의 끝자락에는 대재앙의 날을 다룬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맷 몰티즈(말티스)애즈 더 월드 케이브스 인’(As the World Caves In)이랄지, 파더 존 미스티의 아이 러브 유, 허니베어’(I Love You, Honeybear) 같은 노래들.

버튼은 눌렸고 곧 이을 핵폭발이 자명한 날, 세계 시장은 무너졌고 무엇 하나 남지 않은 날을 노래하는 이들 곡의 멜로디만은 이상하리만치 고즈넉했고, 충격과 불안이 지배한대도, 완전한 파멸은 아니니 어떻게든 회복할 현실 정도는 제법 견딜 만한 것으로 덧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노래들은 그런데도 희망, 사랑 같은 것을 전했다. 어쩌면 재앙은, 그마저 꺾을 수 없는 인간성을 극대화하려는 장치일 따름인지도 몰랐다.

 

재앙 앞에 어떤 마음을 지닐 것인가. 방식이야 제각각이어도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은 비슷하리라 믿었다. 사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고, 그로부터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해보려는 마음들. 12·3 내란사태 이후 마땅한 민주주의 복원 절차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 광화문 앞에 모여든 시민들이 누누이 그런 다짐을 전해줬다. 때로 날 세우며 서로 비판했던 공직 사회 취재원들도 같은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무너진 세상 앞에 느끼는 마음만큼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우리에 대한 믿음이 노래만큼 위로가 됐다.

 

대통령이 관저에 숨어 있는믿기지 않는 현실보다 아팠던 새해의 풍경은, 그래서 관저 앞 대통령 지키기에 나선 이들의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전해지는 지지자의 목소리는 그간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과 전혀 무관해, 허탈하기까지 했다. 부정선거는 확실히 벌어지고 있으며, 배후에는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노리는 중국이 있다고 했다. 야당의 대통령에 대한 비토와 탄핵은 이를 지원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공격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근거는 부실한 반면 사회 체계 전반을 부정하고 위협하는 것들이라 언론도 정치권도 차마 공론장에 올릴 수 없던 것들이다. 그 와중에 한 지지자가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부터 오래 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2017310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전해진 날, 어쨌든 한국 정치사의 재앙이라고밖에 이를 수 없는 그날 이후 8년을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생각했다. 코로나19 방역 조처에 대한 반대, 성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혐오, 대한민국 공산화의 위협을 내건 집회를 광화문과 관저 앞에서 꾸준히 이어왔다. ‘공포를 쌓았다. 이를 보도하지 않는 언론은 유튜브로 대체됐고, 용납하지 않는 정치·사법·행정 체계는 모두 좌파에 점령당했다고 여겼다. ‘불신또한 쌓았다.

대통령이 공포와 불신을 계엄 선포의 이유로 동원했고, 여당 의원 일부가 동조했다. 2025년 지지자 집회에서는 대한민국을 중국공산당에 바치지 마라’ ‘조중동도 믿지 말자는 손팻말이 자신 있게 들렸다. 국회 소통관에는 자신을 백골단으로 부르는 청년들이 섰다.

 

8년 전 그날, 헌재 앞에는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탄핵 인용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린 시민과 격하게 저항하는 시민이 나뉘었다. 안도한 시민들조차 장밋빛 앞날을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또다시 서로 다른 생각들로 갈등할 테고, 나아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할 것을 알았다. 다만 차벽 너머 이 모든 논쟁과 고민의 지평을 무위로 돌리는 극단적 주장을 대통령과 여당이 이끌고 지원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예감하지 못했다. 그날 차벽 너머에선 2명이 목숨을 잃고, 2명이 크게 다쳤다. 그때는 그것이, 대통령의 비위와 탄핵이 가져온 가장 큰 사회적 상처라고 생각했다.

2025년의 시작을 맞고도 재앙을 다룬 노래를 계속 듣는다. 관저 앞에선 죽음을 각오했다는 외침이 터져 나온다. 재앙 앞에 끝내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기도문처럼 왼다.

방준호 | 이슈팀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5.1.12.

 

초고령사회도 각자도생하란 말인가

75살 이상 고령자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국회를 통과했다. 이름하여 플랜 75’. 복잡한 심사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고 가족의 동의조차 요구하지 않는다. 본인이 신청하는 즉시, 준비금 10만엔(93만원)이 주어진다. 안락사를 돕고 화장장도 제공한다. 처음에 반발하던 국민들도 곧이어 순응했다. 국가의 재정 부담과 확산되는 노인혐오 범죄를 해결할 묘수라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정부는 플랜 65’로 대상 연령을 낮추는 방안까지 검토한다.

얼핏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야기는 일본 영화 플랜 75’에 나오는 가상의 제도다. 영화는 안락사 케어라는 극단적 소재로 일본 사회에 만연한 초고령사회의 위기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자신의 사회적 쓸모를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78살의 주인공 미치는 실직과 퇴거 명령, 동료의 고독사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끔찍한 최후에 대한 공포는 그를 기어이 플랜 75에 순응하게 만든다.

 

일본은 2005년에 인구의 20%가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이른 고령화로 그에 적응하기 위한 채비도 빨랐지만 일본 사회의 위기의식은 여전하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인식은 고령자를 더 움츠리게 한다. 일본은 75살 이상을 후기 고령자로 부르며 상대적으로 젊은 노인과 분리해 정책을 펴고 있는데, 플랜 75의 신청 기준은 이를 빗댄 것이다.

지난해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의 포스터. 2022년 일본 개봉 당시, 영화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고령 관객 비중이 유독 높았는데 상영이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말없이 스크린을 응시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찬란 제공

 

우리는 어떤가. 어느덧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고령화사회(노인이 인구의 7% 이상)초고령사회로 진입하기까지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154년과 76, 일본은 35년 걸렸는데 우리는 24년 만에 도달했다. 전속력으로 늙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위기감은 일본을 따라가기는커녕 한참 뒤처진다. 지난 연말 한 정부 부처의 호들갑스러운 초고령사회 진입발표는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모양새였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224일 보도자료를 내어, 전날 주민등록 인구 기준 65살 이상이 전체의 20%를 넘었다고 공표했다. 곧이어 언론은 이를 앞다퉈 속보로 보도했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에 따라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추정된다고 전망해왔다. 행안부가 이를 염두에 두고 12월 한달 내내 일자별로 살피다가 20.00%에 도달하자마자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공식 인구 지표는 실거주 기준으로 조사하는 통계청 인구총조사다. 이런 점은 차치하더라도 굳이 인구 구조의 변동 상황을 일 단위로 파악할 일이었는지 의문이다. 행정 서비스 제공이 목적인 주민등록 인구는 원래 매달 1, 직전달 기준 현황을 누리집에 게시한다.

정작 관심이 가는 정부의 중장기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카운트다운을 하듯이 초고령사회 진입을 온 국민에게 각인시킨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반짝 관심이 아니라 긴 안목의 정책이 아닌가.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려운 기후위기가 정치권의 우선순위가 아닌 것처럼 매우 느린 속도로 문제가 누적되는 고령화도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하지만 앞으로는 시간이 많지 않다. 지난해 65살 이상 인구는 1천만명을 넘어섰고 취업자도 60대 이상이 가장 큰 비중인 역피라미드 구조가 됐다. 2045년엔 노인이 인구의 37.3%로 일본도 추월할 전망이다. 의학계에선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돌봄 요구가 본격화되는 연령을 77~78살 정도로 본다. 현재 노인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65살 이상이 약 106만명(2023년 기준)인데, 올해 51~70살인 베이비붐 세대(1636만명)가 후기 노인이 될수록 이 규모는 가파르게 늘어난다.

우리의 정책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다. 노인 빈곤은 유독 심각하고 노후소득의 근간이 되어야 할 공적연금은 빈약하다.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도 미흡하다. 연금개혁과 정년 연장, 노인연령 조정 등의 과제는 정부 업무보고 문서나 대선 공약에서만 반복적으로 오르내린다. 중장기 정책 방향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엔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세수 기반 약화와 긴축 재정 기조는 초고령사회에 역행하는 정책 방향이다.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일본 못지않은 혐로사회가 될 수 있다. ‘플랜 75’를 만든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그것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를 향하는 게 아니라 약자인 고령자에게 향하기 쉽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것은 노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누구나 나이가 든다. 초고령사회도 각자도생으로 맞고 싶진 않다.

지난해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의 포스터. 찬란 제공

황보연 | 논설위원 | 한겨레 2025.1.12.

 

내란 이후, 기본부터 다시

머잖아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될 것이다. 탄핵 심판은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인데, 위헌·위법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윤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친위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고 허용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권력자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다른 헌법기관을 침탈하고 마비시키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소 우여곡절이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윤 대통령은 파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유지하려고 해도,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에 대한 파면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단지 윤 대통령을 파면하고 처벌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온전히 회복된다고 할 순 없다. 더구나 윤 대통령 측이 내란 이후에도 거짓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좀 더 큰 차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과 국가적 통합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해 갈등도 치유해 나가야 한다. 정당과 정치인들도 이런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 이번 내란을 통해 드러난 국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 상당수도 비상계엄은 잘못이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하나회등 군대 내부의 사조직을 정리했고,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 심지어 충암파’ ‘용현파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군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방 옴부즈맨이라는 기구를 설치했다. 독일의 국방 옴부즈맨은 독일 헌법에 근거를 둔 기구이며, 연방의회에서 비밀투표로 선출한다. 우리도 이런 사례를 참고해서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경찰도,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민주적 통제를 위해 국가경찰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경우에도 국내 정치개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돼 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경찰과 국가정보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방안도 다시 논의돼야 한다.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 개혁도 필요하다. 그동안 검찰은 정치적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먼지 털이식 수사봐주기 수사·기소를 하는 편파적인 검찰권 행사를 해왔다. 검찰을 개혁하되, 이제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검찰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사·기소 단계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참여하는 미국의 기소배심이나 일본의 검찰심사회 같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행정부 조직도 전면 개혁해야 한다. 헌법상 보장된 인사제청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대통령 뒤치다꺼리나 하는 국무총리로는 안 된다. 국무총리가 제대로 된 책임총리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통과의례 역할만 하는 국무회의도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국민 전체의 민심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는 정치세력이 존재하기 어렵게 하려면, 선거제도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정 지역의 일당 지배 현상을 타파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1인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헌법개정도 필요하다. 이처럼 제도개혁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단단하게 해야 한다.

 

둘째, 민주주의 회복과 함께,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복합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 위기, 경제·민생위기, 남북 관계 위기, 지역위기, 저출생 위기 등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넘길 힘과 에너지도 나온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에서도 정치권에서도 활발하게 논의하고,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 경향 2025.1.13.

 

내란성 불면의 밤을 지나며

잡혀갔나?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눈 뜨고 못 볼 일은 늘어났다. 윤석열 체포를 막겠다며 방탄의원단이 관저로 모이고 경호처는 철조망, 쇠사슬로 저지선을 만들었다. ‘반공청년단백골단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촉구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했다. 내란범 체포가 지지부진하자 내전이 번지는 모양새다. 내란의 수괴는 윤석열이라면 내전의 야전사령관은 전광훈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다. 광화문 사거리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는 계엄 사태 전 10월부터 열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뉴라이트’ ‘태극기 부대등으로 불리며 이어진 세력은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를 거치며 더욱 성장했다. ‘보수 개신교는 이들의 진지다.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하는 이들과 동성애 반대’ ‘학생인권조례 폐지’ ‘성평등 도서 퇴출을 외치는 이들 사이엔 아무 장벽이 없다. 한국에만 있지도 않다.

 

일주일 후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기 트럼프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국회의사당 난입 폭동이다. 트럼프가 선거결과에 불복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고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했다. 결국 진압되었지만 세계는 충격을 거둘 수 없었다. 그가 다시 돌아온다. 트럼프에 훨씬 더 충성하는 이들로 2기 행정부를 채우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굉음은 세계 곳곳에서 들려온다. 유럽 각국에서도 극우 정당 약진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드러졌다. 많은 학자들이 이런 현상을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킨 불평등의 결과로 진단한다.

이들의 정치적 구호는 조금씩 다르다. 반이민, 반난민, 반무슬림, 반젠더, 반낙태, 반페미니즘, 반공산주의(트럼프는 해리스를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공통점을 찾기 어렵지 않다. 전통을 지키며 성실히 살던 애국자들이 으로 인해 억압당하고 고난을 겪고 있다는 정동이 흐른다. 종교, 민족, 가족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서다. 유튜브를 매개로 한 확증편향이 강하며 정치를 신뢰하지 않아 자신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말이 통하지 않고 상식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대면하노라면 암담하다.

 

민주주의 위기에 관해서라면 나는 낙관하지 않는다. 윤석열의 계엄 시도보다 훨씬 심층적인, 체제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관해서라면 나는 비관하지 않는다. 말이 안 되는 말, 정치가 못 되는 정치라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하며 익히 겪었다. 하지만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광장에서 평등은 기본값이 되어 있다. 답이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도 전망을 밝히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무엇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윤석열은 주권을 찬탈하려 했지만 우리는 빼앗기지 않았다. 평등과 연대가 자유롭게 흐르는 민주주의는 정권교체를 초과하여 미래로 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 이미 시작되었던 덕분이리라. 불평등의 구조를 따라 번져나간 민주주의의 위기는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부터 일상을 잠식하고 있었다. 두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존엄과 평등을 지켜온 힘들이 지금 광장에서 만나고 있다.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던 그때, 우리의 주권자 되기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극우 세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숙주를 찾아내겠지만 그들은 무너뜨리기만 할 뿐 세우는 일은 할 수 없다. ‘탄핵 찬반을 보도하는 언론을 보노라면 동성애 찬반을 토론하던 과거의 언론이 떠오른다. ‘탄핵 찬반은 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과 같다. 언론은 지금 광장에서 세우는 민주주의를 조명해야 한다. 윤석열에게 허락된 공간은 도로에서 관저까지 300m 남짓한 거리가 전부다. 우리가 세우기 시작한 민주주의는 그것을 능히 넘을 것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경향 2025.1.13.

 

 

7공화국과 재정민주주의

현행 헌법은 국가재정과 관련해 조세법률주의를 천명하고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국회 간 권한의 배분에 대해 규정한다. 그러나 재정이 헌법 전문의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밝히지는 않는다. 국민의 기본생활 영위나 경제의 성장 안정을 위한 재정 역할을 명시한 다른 나라 헌법과는 차이가 있다. 아울러 우리 헌법은 중앙재정과 지방재정의 관계도 별도로 밝히지 않는다. 무도한 권력자가 파면되고 응분의 처벌을 받고 난 뒤의 제7공화국을 예비하며 그간에 재정정책의 틀을 규율해온 관련법의 근본적인 개정에 관심을 갖게 되는 배경이다.

다만 제7공화국의 시대정신은 헌법과 국가재정법을 포함한 재정 관련법 개정에 있어 무엇보다도 재정민주주의의 실현을 지향해야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재정민주주의는 시민의 의사를 재정 활동에 실질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당위적 가치이다. 한국 현실에서 그 제도적 과제는 적어도 두 가지를 포함한다. 예산 과정에서의 국회 권한 강화, 그리고 예산법률주의가 그것이다.

 

먼저 첫 번째 과제부터 논한다. 정부가 시민사회로부터 재원을 조달해 지출하는 재정 작용은 재산권 제한 등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치므로 기본권 보장을 위해 시민의 대표인 국회가 그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 재정민주주의에 부합한다. 그런데 현행 법규범은 예산 기능과 관련해 기획재정부 권력 강화에 기여해 왔다. 대자본에 포획된 관료들이 정치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재정 자원의 분배를 주도함에 따라 재정 권력을 가진 집단 및 그들과 결탁해 수혜를 입는 집단의 지대 추구에 취약한 구조이다. 이에 국회의 예산 편성권을 원천적으로 제한해온 현행 헌법 제57조가 재정민주주의 가치와 충돌할 소지에 대해 평가해야 하며 향후 완화하는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기재부와 대통령실이 주도하고 각 부처가 참여하는 예산 편성 과정은 여러 한계점을 노정해왔다. 기재부가 관료주의와 재정보수주의로 치닫고 윤석열 정권처럼 대통령실이 전횡을 일삼아도 통제할 수단이 부족하다. 국회에 예산안 심의권이 있다고는 해도 시간과 정보의 제약으로 시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부분적인 수정에 그칠 때가 부지기수다. 예산이란 것이 편성 단계에서 사실상 확정되는 요소들이 많아 국회의 예산 심의는 정부 예산안에 대한 수동적인 찬반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산 편성은 행정부 조직이 독점하는 폐쇄적인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국회가 정치적 책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개입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그 일환으로 특정 지역구의 이해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는 지출에 한해 국회의 증액을 허용하는 편이 바람직할 수 있다. 다만 그 경우에도 국회와 정부 간 견제와 균형을 위해 정부 예산안을 기준으로 증액의 가능 범위를 사전에 한정할 필요는 있다. 혹은 주어진 총액 내에서 사업별 예산 변경을 국회에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할 법하다. 항목 재조정은 정부의 예산 편성권에 대한 존중과도 조화될 여지가 상당하다. 적어도 세계적으로 선행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을 들어 무작정 반대할 일만은 아니다.

재정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두 번째 과제는 예산법률주의의 도입이다. 오래전 판례에 따르면 예산은 국가기관을 구속할 뿐으로 정부의 집행 행위를 통하지 않는 한 시민의 기본권에 직접 관련성이 없는 점에서 법률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의 시각에서는 그 결정에 동의하기 어렵다. 재정 총량과 분야별 사업별 배분 등 재정과 관련된 의사결정 전체가 시민의 경제생활에 광범위하고 다면적인 영향을 미치며 시민의 기본권은 경제생활의 수준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점에서 예산 절차 전반에 걸쳐 그 기본권에 대한 영향이 현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도 그래서 예산을 법률로 본다.

 

우리처럼 예산이 법률이 아닌 경우엔 국회가 심의해 확정한 사항을 정부가 위배해도 법률 위반이 아니다. 그 결과 윤석열 정권처럼 정부의 예산 집행 내용이 국회의 예산 확정 내용과 달라도 제어할 길이 없다. 현실에선 정부와 대통령실이 예산에 담긴 사업이라도 내용을 바꾸거나 지출하지 않을 수 있고 예산에 없는 사업이라도 자의와 독단으로 추진할 수 있다. 예산이 법률이 아닌 탓에 구속력이 없어 집행 책임성이 확보되지 않는 것이다. 국회가 사후 감사를 수행한다곤 해도 예산이 법률이 아닌 이상 한계가 뚜렷하다. 차제에 예산법률주의로의 전환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경향 2025.1.14.

 

나훈아와 남진, 그리고 어른

은퇴 무대에서 나훈아가 왼팔을 들었다. “니는 잘했나?”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12·3 내란사태를 입에 올렸다. 작심했던 모양이다. 얼핏 들으면 정치권을 싸잡아 개탄하는 양비론처럼 들리지만 새겨보면 왼쪽을 향한 조롱이다. 내란을 획책한 대통령을 단죄함이 어찌 왼쪽·오른쪽 문제인가. 그럼에도 자신의 노래인생을 정리하는, 어쩌면 생의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왼쪽을 힐난했다. 가황이라 불리는 나훈아가 정치적 발언의 파장을 모를 리 없다. 아마 은퇴를 하기 전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자신의 어머니도 형제가 싸우면 둘 다 팼다고 했다. 어머니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훈아는 만인의 어머니가 아니다. 결국 나훈아는 왼쪽이 싫었던 것이다.

 

나훈아는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다음 공연에서 다시 독설을 날렸다. “안 그래도 작은 땅에서 경상도니 전라도니 XX들을 하고 있다고 호통쳤다. 정치인들을 향해선 욕을 퍼부었다. “나보고 뭐라고 하는 저것들,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지 얻다(어디다) 대고 어른이 얘기하는데 XX들 하고 있어.” 나훈아가 언제부터 무엇으로 어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데 연예인은 나이가 있되 나이를 잊고 사는 것 아닌가. 나훈아가 이토록 분노하는 것은 자신의 본심이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나훈아가 데뷔하기 전에 이미 하늘에 남진이라는 샛별이 떠 있었다. 남진이 가슴 아프게를 부르면 젊은이들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남진은 수십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남진이 출연한 영화를 봤다. 딱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다. 남진이 매섭게 눈을 뜨고 누군가를 노려보는 장면이다. 그때 객석의 누나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남진의 거침없는 독주에 라이벌이 등장했다. 바로 나훈아였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스타덤에 올라 남진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때 공교롭게도 영구집권을 획책했던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어떤 복선도 없이 노래에 빠져들었던 팬들은 두 사람의 고향을 살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남진과 나훈아는 우리나라 가요계를 양분했던 인기 가수였다. 그런데 나와 내 친구들은 한결같이 나훈아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남진은 전라도고 나훈아는 경상도였기 때문이다. 이게 1960년대 후반 경상도가 아니라 강원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도 나훈아를 좋아한다. 남진은 왠지 간사스럽고 주는 것 없이 밉고 금방이라도 거짓말을 할 것 같다는 것이 내 친구들의 느낌이었다. 반면 나훈아는 투박하고 씩씩하고 남자답고 사나이의 의리를 지킬 것같이 보였다. 약간 소도둑놈(?)을 방불케 하는 나훈아의 그 못생긴(?) 얼굴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 이쯤 되면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스토리는 연예계의 뒷이야기 수준을 넘어 우리의 정신세계에도 매우 체계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정치학자 전인권 <김대중을 계산하자>)

 

그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도 나훈아를 좋아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그 때문인지 몰라도 남진을 여전히 싫어한다이다. 정말 그 때문인지 몰라도 나훈아는 가황으로 불리지만 남진 앞에는 그 흔한 국민 가수라는 수식어도 붙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지역감정의 피해자이지만 정도 차이는 있었다. 한때 세상의 모든 인기를 홀로 삼키던 스타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접이다. 물론 자기 관리(선전)에 있어서 남진은 나훈아에 현저하게 뒤졌다. 나훈아는 숨었다가 갑자기 나타나 신비감을 심어주었고, 뜬소문과 스캔들마저 자극적이며 화려했다. 남진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했고 아무 데서나 노래했다. 그럼에도 남진의 명성은 지역색에 멍이 들었다고 봐야 한다. 남진이라고 그걸 모를까. 방송에 나와 보란 듯이 고향 사투리를 사정없이 구사하는 것을 보면 괜히 짠해진다.

그렇다고 나훈아가 반사이익을 챙겼다는 말은 아니다. 나훈아도 지역감정의 피해자이다. 그럼에도 은퇴무대에서 자신이 지역감정에 갇혀 있음을 폭로해버렸다. 나훈아는 그동안은 구름 위를 걸었지만 이제 땅으로 내려오겠다고 했다. 자신이 어른이라 호통을 쳤으니 이제 어른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이 시대의 어른들을 만나본 윤춘호는 어른과 꼰대 사이를 가르는 기준이 성찰”(<어떤 어른>)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를 지켜달라는 간절한 외침도 들어보고, ‘고향역을 부르며 눈물을 훔친 팬들이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도 살펴보기 바란다. 이런 당부를 아직은 현역인 남진에게도 해본다. 노래도 늙는다.

김택근 시인 | 경향 2025.1.14.

 

 

계엄 타산지석엇갈린 일본

작년 123일의 비상계엄은 일본 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에 많은 것을 양보한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수괴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경쟁하듯 내란사태에 대한 보도를 연일 쏟아냈다. 하지만 내란이 발생한 지 40여일이 지나면서 관심은 줄어가고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복원해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거의 없다. 다만, 일본에 한없이 친절했던 윤석열 정권이 무너지고 반일 정권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만이 팽배하다. 이렇게 한·일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권력자에게 권력을 더욱 집중시키려는 자들이 있다.

일본도 긴급사태 조항을 신속히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 긴급사태 조항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긴급사태 조항이 없다는 것이 더욱 위험하다.”

 

12·3 비상계엄 직후, 헌법에 긴급사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2년 보수 자민당이 마련한 개헌안을 보면 긴급사태 조항의 신설이 포함되어 있다. 2018년에는 개헌 4항목중 하나로 명기했다. 긴급사태 조항은 대규모 자연재해, 테러, 내란 등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회의원의 임기를 연장하고 정부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의 계엄령과 매우 유사한 개념이다. 일본의 현행 헌법에는 계엄령과 같은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수정당인 일본유신회 바바 노부유키 전 대표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일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헌법 개정을 통해 긴급사태 조항을 정비해야 한다며 한국의 내란사태를 타산지석삼아 헌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가 어떻게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현행 일본 헌법에서는 한국과 같은 권력 남용은 발생하기 힘들다. 오히려 한국의 계엄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긴급사태 조항의 신설을 포기하자고 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편,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긴급사태 조항 신설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들은 한국 시민의 힘에 주목한다. 그들은 국회에 진입하는 군대에 저항하는 시민의 모습을 보았고, 탄핵을 요구하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인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한국이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시민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만약 긴급사태 조항이 남용되었을 때,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시민의 힘이 일본에는 없다는 것이다.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을 연구해온 한 학자는 일본에서 한국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시민들은 과연 거리로 나와 저항했을까?”라고 자문했다고 했다. 일본 주재 미국인 기자는 만약 일본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일본 시민들은 stay home이라고 외쳤을 것이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한국의 비상계엄이 권력자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떻게 권력을 감시하고 저항해야 하는지, 그 경험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박진환 일본 방송PD | 경향 2025.1.14.

 

 

이 와중에 하는 삼성 이야기

이 와중에 하는 이야기다.

현직 대통령의 체포를 목도하는 시대에 우리는 돌고 돌아 산업역군을 만들어낸 그 시절처럼 삼성전자지원 법안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가정이지만 12·3 비상계엄이 아니었다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이 법안이 벌써 국회를 통과했을지 모른다. 한국 반도체 수출을 흔들 미국의 관세정책 파고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일정이 숨고르기에 들어가고 나면 곧 국회에선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질 테다. 모든 현안에서 삐거덕대는 여··정은 반도체 특별법앞에서 하나가 되기 직전이다. ‘52시간제 적용 예외쟁점 하나만 빼고는.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익히 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수출 증감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흔든다. 삼성전자가 만든 갤럭시 휴대전화 판매도 소비지표를 출렁인다. 삼성의 성과급 지급 여부는 근로소득 통계마저 흔든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국가적 지원으로 성장하는 산업인 것도 맞다. 미국, 일본도 그랬다. 지금 잘나가는 TSMC도 대만 정부가 전폭 지원해 성장했다. 지금은 과거보다 무역 장벽이 높아지는 국가 간 경쟁 시대가 됐다. 반도체 산업에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물음표를 지울 수 없다. 삼성을 지원한다고 해서 삼성이 살아날까. 52시간제를 풀면 삼성이 살아날까.

 

MZ세대(1980~2010년생)의 중간쯤인 올해 311994년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보자. 1994년은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명목·2020년 기준년 개편 적용) 1만달러를 처음으로 넘은 해다. 1994년생이 11세가 된 2005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었고, 20세가 된 20143만달러를 처음 넘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태어난 196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79.71달러였다. 반도체 부문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이 태어난 1960년엔 100달러도 채 되지 않은, 80.46달러였다.

1994년생은 선진국에 올라선 한국에서 컸고, 5일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퍼지고 대체로 52시간제가 시작되고서 입사했다. 그들에게 주 5일과 주 52시간제는 기본값이다. 회사에서 먹고 자며 밤새 일하는 것이 삼성을 위하는 길이요, 그것이 곧 애국하는 길이라고 가르침을 받아온 세대와는 애초에 물적 환경이 다르다. 삼성의 기술 개발을 이끌 젊은 세대에게 라떼는~”이라며 장시간 노동을 말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건 수당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의 문제다.

 

반어법으로 생각하면 또렷해진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서 철수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경쟁력이 낮은 것은 긴 노동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HBM에서 철수하고, 파운드리를 분사하지 않은 건 모두 리더의 결정이다. 개발자들이 52시간을 지켜가며 일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52시간제타령은 리더의 잘못된 결정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행위일 뿐이다. 논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사이 삼성은 오히려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인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에 삼성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하고자 대형 로펌에 자문해 부상이 아닌 질병이라고 의견서를 냈다. 방사능 기준치의 100배 넘게 피폭당해 다친 직원을 두고 질병이라고 하는 회사를 젊은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불태울 곳으로 믿고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새 20대들은 SK하이닉스 주식을 사지, 삼성전자는 안 삽니다.” 최근 20대 후배가 한 말이다. ‘5만전자가 되어도 안 산단다. ‘물타기를 하더라도 SK하이닉스로 한단다. 이들에게 성장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건 SK하이닉스이고, 삼성은 그저 관리의 삼성으로 정체되어 있는 공룡기업일 뿐이라는 소리다. 뼈아프지 않은가.

많은 전문가가 삼성이 예전 같지 않다고 걱정한다. 기술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겠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삼성이 예전 같지 않길 바란다. 노동시간을 쥐어짜며 노동자를 극한으로 몰아가 성과를 내는 삼성이 아니길 바란다. 다음달 3일 이재용 회장의 삼성 불법 경영권 승계 항소심선고가 나온다. 달라진 삼성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임지선 경제부 차장 | 경향 2025.1.15.

 

 

파시즘의 두 얼굴

요즘 부쩍 파시즘이란 말이 유럽과 미국에서, 또 부분적으로 한국에서도 자주 들린다. 사실 파시즘은 역사학의 난제 중 하나인데 이 문제를 푼다고 노벨상이나 필즈상이 주어질 리 없건만, 그간 수많은 연구자가 파시즘 연구에 매달리며 그 정체를 밝히려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여전히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해법도 오리무중이지만, 파시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된 공식들은 있다. 가령 파시즘은 폭력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은 이념이자 운동이라는 것이다. 파시즘의 원조라 할 이탈리아 파시즘의 경우 파시스트들은 각종 소형 화기와 곤봉, 그리고 구토와 설사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정화의 수단으로 간주된 피마자기름 등으로 무장하고 트럭으로 무리지어 다니며 정적과 비판자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가했다.

이처럼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검은 셔츠를 입고 팔을 치켜들며 로마식 경례를 하면서 폭력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모습은 당대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파시즘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퍼져 아류들을 낳았는데, 독일의 갈색 셔츠를 입은 나치 당원들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곧 파시스트와 나치는 당대 유럽에서 폭력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탈리아와 독일은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억압과 공포의 체제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웃지 못할 장면은 억압과 공포의 집행자가 법과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한 대목이다. 특히 권력을 장악한 후 파시즘은 법과 질서를 앵무새처럼 되뇌며 그 성과를 과장하여 선전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파시즘이 기차를 정시에 도착하게 만들었고, 여성과 아이도 밤길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파시즘은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운 만큼이나 어지럽힌 세력이었다. 파시즘은 법과 힘, 질서와 폭력 등 상반되는 것들을 동시에 말하고 행했다. 이는 명백히 모순이다. 한편으로 법 앞에 주먹을 앞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법의 지배를 내세웠으니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파시스트들의 폭력으로 초래된 혼란을 수습할 사람은 파시즘의 수장인 무솔리니밖에 없겠다고 생각하여 왕이 그를 총리로 지명한 사실은 어처구니없다. 이처럼 파시즘은 힘과 법, 폭력과 질서라는 서로 대립하는 원리들을 장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시즘엔 두 개 얼굴이 있다고들 한다. 짐작할 수 있듯, 하나는 적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힘과 폭력을 행사하며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의 이름으로 법을 부과하여 국가 권위와 사회 질서를 확립하려는 얼굴이다. 여기엔 역설이 숨어 있다. 파시스트들은 위계와 규율이 잘 잡힌 이상적 질서를 추구했는데, 그런 미래의 질서를 가져오기 위해선 먼저 무질서하게 보이는 현재 상태를 깨부숴야 했다. 그들이 혁명을 외치며 폭력을 불사한 까닭이다. 법과 질서에 대한 강박증이 힘과 폭력을 통해서라도 법과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분열증을 낳은 셈이다. 파시즘이 드러낸 자기모순적 민낯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그런 자기모순은 파시즘이 저렴한 마키아벨리주의임을 암시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무솔리니는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의 애독자였다. 그러나 제자는 스승을 열심히 읽었지만 잘못 읽었다. 흔히 오해하듯이,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그의 진짜 가르침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적의 수단과 방법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의 편법으로 득을 볼 수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해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편법은 목적을 달성하는 최적의 수단은커녕 최악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무솔리니는 법과 질서라는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에 개의치 말고 힘과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식으로 마키아벨리의 교훈을 곡해했다. 그런 잘못된 해석은 꽤 뿌리가 깊은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며 불행을 낳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경향 2025.1.15.

 

 

12·3 비상계엄과 광장민주주의, 후진형 정치를 넘어

주변부로 상징되던 3세계로부터 정치, 경제적으로 탈출하는 데 기적적으로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세계적인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 전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민주주의 연구자들은 신생 민주주의의 안착과 공고화의 조건으로 자유민주주의 기본원리에 대한 엘리트들의 공감과 실천을 들었다. 반면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 연고주의, 적대적 진영정치, 선거불복, 주술정치 등은 공고화를 방해하는 후진형 정치의 특징들이다.

 

2006년 군부 쿠데타 이후 태국은 총리직에서 쫓겨난 탁신 친나왓을 지지하는 레드셔츠 진영과 포퓰리스트 탁신을 반대하며 탁신포비아’(탁신혐오)를 생산해내는 옐로셔츠 진영으로 두 동강 났다. 반면 탁신이 이끄는 타이락타이당에 총선 때마다 패배했던 보수 성향의 민주당은 급기야 좋은 쿠데타(good coup)를 주창하며 또 다른 쿠데타를 기획하려는 극우세력과 손을 잡았다. 이들 극우세력은 민주당의 외곽부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선거불복, 정부종합청사 및 국제공항 점거 등 무정부 상황 조성을 의도했던 이들은 마침내 애초 목표했던 군부 쿠데타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2014522일에 일어난 19번째 쿠데타였다.

 

민주주의를 뒤엎은 후진형 정치는 태국의 이웃국가 미얀마에서도 발견된다. 4년 전인 202121일 군부는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NLD가 압승하고 친군부 정당이 완패한 202011월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단정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등 3명을 체포하고 15명으로 구성되는 위원회를 친군부 인사 중심으로 재편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미 30년 전 친군부 정당이 패배한 19905월 총선 결과도 불복한 바 있다. 연고주의로 똘똘 뭉친 미얀마 군부 엘리트 집단의 수뇌부는 공화국가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도 전근대적 점술에 의존했다.

 

202121일 군부 쿠데타를 주도한 민아웅흘라잉은 숫자 9에 집착했다. 세계 최대 불상이라 자랑한 마라위자야의 봉헌식을 202381일에 거행한거나 불상 공사기간이 1143일인 것, 스님 900명을 초청한 것, 미얀마 포함 9개국 스님들을 초청한 것 등은 모두 각 숫자의 합이 9. 1962년 쿠데타로 현재의 군정시대를 연 네윈 장군 역시 권력을 영구히 장악할 수 있는 왕과 같은 통치자가 되려면 숫자 9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점술가의 조언에 따라 기존에 없던 45, 90짯 지폐를 만들었다. 민아웅흘라잉의 전임 군총사령관 탄슈웨 역시 2005년 점술가의 조언에 따라 양곤에서 북쪽으로 320떨어진 지역으로 수도를 옮겼고 도시 이름을 왕의 도시란 의미인 네피도로 정했다. 불교조직 마바타의 수장 위라투 승려는 이렇듯 왕이 되고 싶어 하는 미얀마 군 최고지도자들을 일관되게 지지해온 극우 종교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에서도 파워엘리트들의 후진적 정치의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 비민주적 시민사회를 발견하게 된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암울하기만 했던 태국과 미얀마에서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35월 총선에서 내전을 유발했던 민주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했고, 청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왕실 개혁과 군 개혁을 내건 신생 정당 까오끌라이가 제1당이 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내전 상황에 있는 미얀마에서도 최근 민아웅흘라잉의 쿠데타 세력이 정치, 군사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있다.

12·3 이후 다시 열린 광장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시켜가고 있는지, 비상계엄 쿠데타 기도 세력은 어떻게 몰락하는지, 극단적 진영정치를 넘어 성숙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만들어질 것인지, 후진형 정치와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는 아시아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경향 2025.1.15.

 

국민의힘보존 법칙?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하나같이, 국민의힘이 지지율을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탄핵 반대여론도 30%대로 늘었다. 12·3 내란 발발 직후의 여론 지형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물론 직접적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 체포가 지연되며 대치 국면이 지루하게 이어졌던 데 있다. 이를 틈 타 내란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극우 선동이 판을 치는가 하면, 이에 부화뇌동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거침없는 언행이 계속된다. 국민의힘 지지율 복원은 이런 정세에 힘입은 것이므로, 너무 암담하게만 볼 이유는 없다. ‘내란 수괴수사에 속도가 붙으면, 분위기는 충분히 반전될 수 있다.

 

사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단기가 아닌 장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2017년 벽두에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은 지지율이 약 10%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추락이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전신 정당들은 이후 전국선거를 거듭할수록 지지율을 배로 늘렸다. 급기야 2020년 총선 정당투표에서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은 약 34%를 얻으며 1위를 기록했고, 2년 뒤 대선에서는 결국 1639만여표(48.56%)를 획득해 권력을 다시 쥐기에 이른다.

이 기억을 돌이켜본다면,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 추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어차피 반복될 현실이 조금 일찍부터 조짐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자연에 에너지 보존 법칙이 있듯이, 21세기 한국 사회에는 국민의힘 보존 법칙이 작동하는 것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하지만 결코 신비한 자동적 법칙은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요인들이 있다. 무엇보다 양대 정당의 정치 독점을 조장하는 제도들(초집중적 대통령제, 승자독식 선거제도 등등)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런 정치 체제에서는 10~20%의 골수 지지층만 확보해 놓고 있으면 상대 정당의 실책에 실망한 유권자를 흡수해 쉽게 광범한 연합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미 이러한 극적 회생을 한차례 성사시켜봤다는 사실이야말로 지금 국민의힘이 보이는 믿기 힘든 자신감의 근거다.

한데 이것만이 아니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 굳어진 상대편의 정치 문법, 문화도 상당한 기여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당시 원내 다당 구도의 역동성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다당 구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 경험을 만들어내려는 의사가 없었다. 대신 적폐 청산구호 아래 자유한국당과 일대일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데 전념했다. 그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적폐세력을 약화하기보다는 이 세력이 정부-여당의 대항마로 급속히 힘을 되찾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번에도 이 운명이 법칙처럼 반복되고 말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만, 어떻게든 이를 피해야 할 이유 또한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풀어놓은 파시즘이라는 독 때문이다. 이 독에 오염된 국민의힘이 그 모습 그대로 회생에 성공한다면, 이는 또 다른 차원의 재앙과 파국을 뜻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 운명을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이미 광장에 있다.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공동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그 색깔과 모양이 너무나 다양한 깃발들이 광장을 수놓고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정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정치만이 극우 난동 세력을 만년 소수파로 고립시킬 수 있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한겨레 2025.1.15.

 

사악한 자, 뻔뻔한 자, 비겁한 자

그는 비루하고 졸렬했다. 그는 끝까지 국민을 우롱했다.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뒤집어엎으려 하고 한달 넘게 나라를 혼돈에 빠뜨렸던 사람이 국민들에게 사과는커녕 변명과 궤변만 늘어놨다. 심지어는 자신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했다. 이런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뻔뻔하기가 철면피 같았다. 평소 법치의 화신인 것처럼 행세했던 이가 정작 자신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자 모든 법 적용을 거부해놓고선 되레 법이 무너졌단다. 그리고 관저 농성을 하며 극렬 지지층을 선동하고 공권력 간 충돌까지도 압박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석에 응한다고 했다. 그가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됐다거나 칠흑같이 어두운 시절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는 말문이 턱 막혔다. 언어도단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인가. 야심한 밤에 군경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침탈한 뒤 독재정권을 수립하려 한 자가 도대체 할 소리인가. 그의 영상메시지는 문장 하나하나가 거짓으로 분칠돼 있어 정반대로 읽어야 사실에 부합한다.

 

며칠 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진보매체에 단전·단수를 지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그날 밤을 떠올렸다. 무시무시한 계엄포고문을 읽으며, 특히 언론인으로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제3항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1970~80년대 같은 언론 암흑기가 시작됐음을 예고하는 문구였다. 다음날 새벽엔 계엄군이 신문사 출입을 통제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간단한 옷가지와 비상식량만 챙겨 회사로 향했다. 그래도 단전·단수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기사·칼럼 검열을 했지, 단전·단수까지 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아예 윤전기를 세워 신문을 내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군사독재 정권보다 더 악독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처음엔 윤석열 대통령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가 총과 도끼를 써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전두환 같은 ×’라는 욕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 명령을 따랐다면 19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그런 유혈사태가 빚어졌을지 모른다. 그러고는 43일간 관저에 칩거하며 수사기관 소환을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도 거부했다. 지지층에 편지를 보내 자신을 지켜달라 선동했다. 마지막에는 관저를 요새화하고, 경호관들에게 총은 안 되더라도 칼이라도 휴대해서 무조건 막으라고 했다 한다. 미증유의 공권력 간 충돌이 벌어져도, 경호관들이 범법자가 돼도 알 바 아니라는 태도였다. 이런 식으로 극렬 지지층을 자극해 내전을 유도하고 시간 끌기를 하며 뒤집기를 시도하려는 술수였다. 그는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지지층을 선동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젠 그가 구제불능의 사악한 인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건 비호 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국민의힘 주류는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대역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법적 절차에 따르도록 설득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되레 그를 감싸고 있다. ‘원조 윤핵관권성동 원내대표는 체포영장을 짝퉁 영장이라 부르며 불법이라 우긴다. 윤상현 의원은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김기현·나경원 의원 같은 중진 의원마저 관저 사수대에 가담했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친위 쿠데타마저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진영 대결로 몰고 가려는 책략이다. 권력을 놓치 않으려 이렇게 혹세무민하는 뻔뻔한 이들은 더 이상 정치인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전임 한덕수 총리에 이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비겁하다. 그는 무정부 상태를 질서 있게 정리해 나가야 할 막중한 책무가 부여돼 있다. 더는 경제만 책임지는 관료가 아니라 중요한 국정 현안에 대해 정무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정치 지도자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는 공수처·경찰 대 경호처 사이에서 관전자인 양 행동했다.

 

사태를 냉정히 봐야 한다. 윤석열 비호 주도자들은 그가 파멸하면 직간접으로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사건에 연루가 의심되거나, 검찰 혹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 등 각종 개인적 인연으로 얽혀 있는 이들이다. 거짓을 참이라 우기며 지연전략을 펴는 이들의 궤변과 요설에 더는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한달 넘게 이어진 혼란으로 국민들 간 분열이 심해지고 국가 이미지도 훼손됐다. 1960~70년대 쿠데타가 빈발하면서 정정 불안국으로 낙인찍힌 남미 국가들처럼 각인돼선 안 된다. 그 누구보다도 정치 지도자들이 혼돈을 조장 혹은 방치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원칙에 입각해 헌정질서 회복에 협력해야 한다.

박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5.1.15.

 

전문직종의 비민주성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도 내란을 완전히 진압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전문직종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비민주적 지배 엘리트 집단이 일상을 포획하고 있어서다. 내란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동조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일류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버지니아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고려대 법학과를 나왔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력을 동원한 이들은 어떤가? 박안수 계엄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정보사령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박종준 경호처장,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경찰대학을 나왔다. 계엄에 동조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방해하는 국회의원들도 하나같이 일류대학 출신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비민주적 의사소통을 자행하고 있는 온갖 공적 조직의 수장들도 학력이 화려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내란 수괴 대통령을 탄핵하고 체포하고 구속한다 해도 일상의 비민주성은 굳건하다. 경제, 정치, 교육, 종교 등 사회적 삶의 모든 영역을 비민주적인 전문직종이 깡그리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대학교육에 뭔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대학은 전문직종을 길러내는 현대 사회의 핵심 제도로 여겨져 왔다. 특히 기능주의 사회학으로 이름 높은 파슨스는 전문직종을 현대성의 상징으로 찬양했다. 대학에서 과학 교육을 받은 전문직종은 무엇보다도 비합리적인 전통적 가치에 맞서 합리적 가치를 따른다. 새로운 기술 지식을 도입해서 미래를 앞당기는 선봉자이기도 하다. 사업가 및 고위관료와 함께 전문가 집단은 모두를 아우르는 보편 가치에 기반한 사회를 만든다.

 

하지만 전문직종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이러한 전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문직종은 권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보상과 특권을 극대화한다. 다른 직종은 전문직이 아니라며 배제한다. 전문성은 직업의 시장 가치를 보호하고 향상하기 위해 진입자의 공급을 제한하고 통제하도록 설계된 전략에 불과하다. 전문직종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 지식과 직업을 독점한다. 이 과정에서 일상의 삶과 단절되어 자기들만의 폐쇄된 세계를 구축한다. 이 안에서 지식의 위계를 만들어 전문직종과 비전문직종 사이의 비민주적 의사소통을 자행한다.

한때 전문직종은 조직 이론의 프리마돈나로 불릴 만큼 주목받는 연구 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죽었다는 비판적 평가가 다수다. 전문직종이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된 세력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학교육은 이러한 비민주적 전문직종을 키워내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전문직종 진출을 근거로 일류대학과 비일류대학을 구분한다. 폐쇄적 전문직종 안에서 조직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라는 일반화된 공동의 준거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 불법 계엄이 선포되는 자리에서도 그 잘난 전문직종 무리가 단 한마디도 못하고 동조한 이유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 경향 2025.1.16.

 

수신의 정치는 난망한가

한겨울 산중에 눈이 내리면 산길보다 들길을 걷는다. 흰 눈을 맞으며 사람 사는 마을과 푸른 산을 바라보면 온몸이 청신하게 시린다. 눈 덮인 들길을 걸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양연의 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숙고했던 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뒷사람의 이정표를 되새긴다. 이 세상은 나와 이웃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생명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물코라고 표현한다. 상호의존하는 생명의 이치로 우리 모두를 살펴보면 나는 곧 너의 나이고, 너는 곧 나의 너이다. 이런 생명의 연결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의 생각과 행위가 그대로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를, 자신을 바로 세우고 가다듬는 수신(修身)’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상이 참 불안하다. 산중 수행자에게도 위기감이 엄습해온다. 매 순간이 절박하다. 지난해 123,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시국이 더욱 그러하다. 혼군 암군 폭군의 시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이중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설에서 이중사고는 모순되는 두 가지 신념을 마치 하나인 것처럼 신봉하도록 왜곡한다. 빅브러더는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를 조작하는 이중사고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고 규정하고 대중들에게 세뇌시킨다. 윤석열이 이를 차용한 듯하다. ‘계엄은 고도의 통치, 참패한 선거는 부정 음모, 약자와 동행하는 공동체는 공산 전체주의가 된다. 어처구니없는 민주사회의 퇴행에 온 나라가 휘청인다.

어지러운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옛 문장에서 찾아보자.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생생한 경험과 모색,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로 삶의 이치를 증명하는 문장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치국평천하앞에 놓인 수신의 무게가 묵직하고 절실하다. 수신은 개인의 도덕성을 넘어 가치관, 역사적 소명, 지향점, 판단 능력, 경청하고 대화하는 소통의 덕목 등을 아우른다.

 

정치 지도자, 특히 선출직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아무리 대중의 요구가 많을지라도 거듭 자신을 짚어봐야 한다. 자신이 과연 그 자리에 앉을 그릇이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수신의 기본은 분수와 처신, 즉 자신을 향한 정직한 성찰이다. 윤석열의 경우가 그렇다. 윤석열은 자신이 대한민국을 책임질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를 살피지 않았다. 소위 깜냥이 되지 않음에도 여론 지표에 들떠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장군 루키우스 킨키나투스는 로마의 독재관으로 선출되어 로마를 위기에서 구했으나 임무를 완수한 뒤 바로 사임하고 농부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분수와 처신을 살피는 수신을 완수한 것이다. 무릇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오르지 않는 것이 나와 모두에게 이롭다. 끊임없는 자기객관화가 수신의 출발이다.

 

설령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다 해도, 대중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정치에 들어선 사람은 평생을 수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시민의 권력을 잠시 위임받은 자신이 청정한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지, 반대편의 주장과 대중의 여론을 경청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특히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 사회 정의에 투철하게 다가가고 있는지를 거듭거듭 짚어야 할 것이다.

정치는 결코 수싸움과 세싸움이 아니다. 연민과 공감, 대화와 경청이라는 ()’는 없고 오로지 내 편만이 옳고 이겨야 한다는 치졸한 ()’만 난무하는 정치는 얼마나 서글픈가. 도리가 살아날 때 정치는 고품격 종합예술이 된다. 위정자와 시민 유권자 모두가 자신에게 정직하고 준엄하게 질문하는 수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 경향 2025.1.16.

 

43일간의 비루한 정치

12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내란 폭동은 43일 만인 115일 오전 체포영장 집행으로 일단락됐다. 문을 부수고 총을 쏴서라도 봉쇄하고자 했던 국회에서 자신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뒤 보여준 대통령의 모습은 목불인견’, 그야말로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한남동 집 안에 똬리를 튼 채 적법한 법 집행 앞에 삼중 사중으로 차벽을 만들고, 칼날 철조망으로 막아서고, 경호처 공무원들을 방패 삼았다. 헌정사상 유례없이 법과 질서를 형해화시킨 대통령의 모습으로 대한민국은 대혼돈의 소용돌이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혼돈은 정치해야 할 때 정치를 하지 않은 채 비뚤어진 법을 강조한 잘못에서 비롯했고, 법질서를 바로 세워야 할 때 오히려 비루한 정치를 한 잘못에서 부풀려졌다.

총선을 통해 야당이 의회 제1당이 된 것은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었다. 고통스러웠겠지만 여소야대는 대통령으로서 그가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처지와 실정에 맞춰 야당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며 자신의 국정 목표와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책무였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의 책무를 내팽개쳤다. 야당과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를 사법적으로 몰아세웠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법안 거부권을 남발했다. 그리고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하더니 국회 시정연설까지 거부했다. 그 대신 선거 부정과 의회독재’, 반국가세력이라는 독선과 망상의 세계를 차곡차곡 구축하며 헌법과 법률을 무너뜨리고 헌정 질서 자체를 타도하겠다는 계획을 꾸며냈다. 많은 이들이 정치와 정치인을 냉소하고 조롱하지만 대의민주제 정치에는 명확한 역할이 있다.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중재하며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의 충돌 상황에서 타협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에 기반해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의 궁극적 과제를 설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중 가장 큰 역할의 정치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이 내동댕이쳐진 지경에 이르러 필요한 것은 어설픈 구태적 정치가 아니다. 헌정 질서를 회복하려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를 비롯한 사회 전체의 노력이 긴요하다. 그런데 얄궂다. 정치를 하지 않아야 할 때 정치가 횡행했다. 그것도 정치인도 아닌 총리와 부총리, 관료들이 사법시스템을 부정하면서 정치를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총리는 헌법재판관 임명에서 법에도 없는 여야 합의를 들먹이다 탄핵소추 당했고, 뒤이어 권한대행을 맡은 경제부총리는 무책임한 양비론으로 법 집행을 무력화하는 세력들에 침묵으로 동조했다. 급기야 대통령은 체포되는 순간까지 일부 극우 지지자들을 향해 법이 모두 무너졌다는 궤변의 영상 메시지를 남기며 우스꽝스럽고 비루한 정치 행태를 멈추지 않았다.

 

정치의 역할을 방기하고 앙상한 법치를 내세우던 이가 이제는 법질서를 정면으로 훼손하고 퇴행과 반동의 정치 역할 뒤에 숨으니 한국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막장으로 치닫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자신이 흩뿌려놓은 비상식과 불공정, 위헌·위법 흔적들의 활약을 보며 대통령은 한남동 집을 요새 삼고, 무장한 경호원을 사병 삼고, 일부 극우 지지자들을 여론전 졸개로 삼았다. 그렇게 남미 마약 갱단처럼 공권력과 맞섰다. 이러한 막장 대립 갈등 조장은 계엄령 내란 폭동보다 더 큰 생채기를 남기며 우리 사회를 쉬이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넣었음이 분명하다.

 

정치권력을 사유화한 채 취생몽사의 나날을 보낸 이의 말로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체포 이후 구속과 탄핵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를 통해 헌법과 법률의 지엄함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그 이후에도 있다. 무너진 정치의 역할과 책임을 복원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하다.

얼마 전 본 영화 시빌 워처럼 미국 내에서 서로 군대를 꾸려 전쟁하는 장면이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아 다행이다. 다만, 총을 들지 않았을 뿐 한남동 앞에서 응원봉과 성조기·태극기를 들고 탄핵 찬반으로 맞서던 모습이 이어지고, 이에 편승하는 정치가 계속된다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내란의 혼돈에 머물지 모를 일이다.

박록삼 | 언론인 | 한겨레 2025.1.16.

 

 

애국심

모두가 동의하는 공통의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 자유, 민주, 평등, 공정, 아름다움, 성장, 복지, 예술등 사회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개념들은 대부분 논쟁적이고 서로 경합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뜻하는 애국심도 마찬가지다. ‘애국의 반대가 매국일 텐데, 대놓고 매국이 자신의 신념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나라를 팔아먹는 마음을 권장할 수 없어서 그런지 매국심같은 말도 없다. 그렇다면 애국심정도는 같은 의미로 쓴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사랑한다는 국가에 어떤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확연히 갈라진다.

 

진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국가의 도덕적 가치는 감정이입이다. 타인의 자리에 함께하는 것. 감정이입은 그저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보살핌(돌봄), 다양성, 공존, 공생의 사회를 지향한다. 국가뿐 아니라, 학교도, 시장도 그래야 하는데, 궁극에 가서는 국가를 초월하여 모든 생명을 향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도 애국심의 핵심은 우리는 서로를 보살피고 있는가?’의 문제라고 했다더라.

 

반면에 애국심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이 땅의 극우 그리고(또는)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국가의 도덕적 가치는 힘에 의한 지배이다. 상명하복의 단일한 질서를 추앙하는 가부장적인 정부. 잘난 사람들이 득세하고 못난 사람들은 그들의 시혜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우승열패. 자신들이 그어놓은 선을 밟으면 범법자로 지목하고 추방하거나 처단한다. 그들의 애국심은 적대적이고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은 가짜 애국자들이 득세하는 세상. 그들이 말하는 애국심은 그저 악당의 마지막 피난처일 뿐이다.(새뮤얼 존슨)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주술정치의 종막과 개혁의 서막

윤석열 대통령은 손바닥 주술로 왕이 될 수 있다는 망상에서 친위쿠데타를 자행했다. 그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탄핵 남발, 예산 폭거, 입법 독재를 남발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고 단정하고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면서 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의 광기 어린 책동은 민주시민의 저지로 무산되었고 김건희 연출에 윤석열 주연의 무속정치도 막을 내렸다. 무도한 왕 노릇의 끝에 철조망과 철창 내 유폐가 기다렸던 셈이다.

대통령 부부의 괴기스러운 행적이 장차 어떻게 끝맺게 될까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결국은 아무도 그려내지 못한 모습으로 결말지어지고 있다. 이는 박정희 18년 압제가 10·26 사태로 결말 났을 때만큼이나 모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종막이다. 역사를 우롱한 데 따른 엄정한 업보다.

 

윤석열은 우익 세력의 시대착오적 맹목성에 의지해 집권 내내 한국 사회를 헤집고 분열시킨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그는 지난해 1212일 담화에서도 계엄령은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었을 뿐인데,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펼쳤다.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다고 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를 희생양 삼아 지지자들을 동원하려는 비열한 술책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지도자로서 현실과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은커녕 정상적인 사리분별력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은 윤석열의 탄핵과 파면을 지연·저지시키기 위해 갖은 억지를 부리고 있다. 애초 지도자 역량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자를 교묘히 치장해 대통령으로 세웠으면 그로 인해 초래된 지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하면서 이의 수습에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군색한 변명으로 감싸면서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윤석열의 광기를 끌어다 극우 세력을 충동질하는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 행태이다. 소속 의원들이 44명이나 대통령 관저 앞에 집결해 후안무치한 모습으로 탄핵 반대 시위대를 부추겼다. 전광훈 목사 등 우익집단 집회엔 국민의힘 의원 10여명이 동참했는데 연설에 나선 윤상현 의원은 저와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여 성전이라는 자극적인 말로 선동했다. 또 김민전 의원은 이른바 백골단을 국회로 불러들여 공포심을 자아내면서 폭력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듯이 부추겼다. 참으로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소행이다. 이들의 행태는 극우 세력의 맹목적 도발을 부추겨 민주 시민단체들과 충돌을 유발함으로써, 1945년 해방 직후 좌우 대립으로 야기됐던 바와 같은 내전 상태를 재현시킬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전쟁과 독재 시기 조장된 분열과 갈등이 살인 학살의 야만적인 테러행위로 비화했던 비극의 상흔이 지금껏 아물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계엄군이라는 그 단어만으로도 모두의 뇌리를 짓누르는 공포심을 유발한다. 지금 아스팔트 우익들이 성조기, 때로는 유대인 깃발을 흔들면서 외치는 구호들은 지난날 야만의 색깔과 다르지 않다. 일부 정치인들의 망발은 자칫 옛날 파국의 역사를 또 초래할 개탄스러운 짓이다.

이번 12·3 내란 파동에서 예전과 같은 듯 다른 점들이 더 의미 있게 부각되면서 반세기의 역사 변화를 실감한다. 우선 지금 군인들은 19805월 광주에 나타난 살기등등한 공수부대와 다르다. 이번에 출동했던 계엄군의 어느 부대장은 동원 당시 잘못된 판단을 반성하면서 부대와 부대원들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또 무엇보다 특기할 일은 2030 세대 여성들이 주축을 이뤄 케이팝 공연의 팬덤 응원봉을 흔들면서 축제처럼 펼친 시위·집회의 의미이다. 지난날은 대학생들이 대학 교정을 거점으로 반독재 민주화 집회를 열었고 여론 형성과 저항 수단으로 거리 시위를 감행했다. 반독재 운동은 학생운동 주동자들의 감옥행을 각오한 희생과 헌신으로 추진됐다. 지금 대학에는 그때와 같은 운동권이 없다.

 

이번 세상을 뒤흔든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는 세상에 처음인 새로운 문명 양식이다. 2030 청년세대는 민주화 세례를 받은 열린 사회의식으로 영역의 장벽을 넘나들면서 민중운동 지평을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그들은 민주화 시대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성장했고, 관습에 속박되지 않으며, 가부장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초래한 억눌린 사고가 아닌 개방과 평등의 열린 가치관이 상식인 세대이다. 한류 문화를 세상에 전파하여 글로벌 문화로 창조한 주체들이지만 그렇다고 민족, 사회,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에 교조적으로 얽매이지도 않는다. 기성세대와 같지 않은 공정과 정의의 가치관은 때로는 2020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화2018평창겨울올림픽 남북단일팀같은 이슈를 두고 논란을 불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면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무기로 하는 새로운 세대에는 세계가 그들의 활동 영역이고 글로벌 문화가 그들의 사회의식 배경이다.

 

이에 반해 반세기 전의 냉전과 군사문화 향수에 젖어 권위주의 회귀를 획책하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청년들에게 더불어 공존하기 어려운 구시대 잔재일 뿐이다. 태극기 부대 같은 극우 집단과 보수언론의 역성에 의지해 존립하는 정치는 시대착오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2030 청년들이 앞장서 수구 잔재 집단의 계엄 선포 같은 역사 반동을 첨단의 글로벌 문화로 유쾌하게 압도해버리는 혁명을 전개한 것이다.

지금의 파동을 개혁의 역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인들의 이해에 따라 미봉책으로 때우고 정권 장악에만 몰입한다면 이는 미래 역사까지 끌어다 배신하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19876월 항쟁 이래로 미뤄 왔던 체제 정비를 마무리할 때이다. 곧 미완의 개혁 숙제를 ‘2025년 개혁으로 완성해야 한다. 이는 청년세대 미래를 위한 설계이다. 이번 기회에 미흡한 제도와 헌법 조항들을 정돈하여 명실상부한 새출발을 기약해야 한다.

안병욱 |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 한겨레 2025.1.16.

 

 

2025 을사년에 다시 보는 1905 을사년

2025년은 을사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설날인 129일부터 을사년이라고 하겠지만, 이미 우리가 양력으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으니, 벌써 을사년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60년마다 오는 을사년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어요. 올해는 1905년의 을사조약 120주년이자, 한일기본조약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특히 1905년은 조선의 국권의 일부를 일본에게 넘겨, 통감부가 설치되어 보호국으로 전락한 해인데요,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했던 것도 그 이유였을 것입니다. 강제로 체결했다는 것을 강조해서 늑약이라고도 하지만, 그럼 다른 조약들은 모두 자의로 체결했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 가급적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고종이 믿었던 루스벨트는 확고한 친일파

그런데 1905년의 을사조약은 갑자기 체결된 것이 아닙니다. 190428일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10일에는 서울을 점령하였어요. 223일 일본군의 주둔과 활동을 허가하는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습니다. 822일에는 1차 한일협약을 체결하고, 재정고문인 메가타와 외교고문 스티븐스를 통해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지요.

한편 222일에는 일본의 변방이었던 시마네현에서 일방적으로 무주지 선점의 원칙을 내세워 독도를 다케시마로 부르며 오키 섬의 관할로 고시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고시는 현재 관인이 찍혀 있는 원본이 남아 있지도 않으며, 관보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시마네현은 20052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한편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자, 대한제국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기 위해 열강으로부터의 동의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1905727일 미국과 카츠라-태프트 메모를 교환했으며, 812일에는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할 것을 동의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95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통해 러시아를 배제하게 됩니다.

회담을 주선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친일파라고 자처하였으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열망했습니다. 조약 체결 후 "나는 이전에도 친일파였지만 앞으로 더 확고한 친일파가 될 것"이라고 공언하였어요. 그는 한국인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조치도 제대로 취할 수 없는'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스벨트는 포츠머스 조약의 중재로 세계 평화를 가져왔다고, 1906년 제1회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요. 결국 한국의 희생쯤은 세계 평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고종은 여전히 미국이 '거중조정'에 나설 것으로 믿고 있었어요. 거중조정이란 조선이 제 3국에 의해 위협을 당하면, 미국이 나서서 조정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일본 지배권 인정하고 가장 먼저 주한 공사관 폐쇄한 미국

알렌은 미국인에게 이권을 달라, 그러면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리라고 주장했던 것인데요, 고종은 이 말을 믿고 경인철도부설권, 운산금광채굴권 등의 핵심 이권을 미국인들에게 넘겼습니다. 고문관과 관립학교 교사 및 교관들도 미국인으로 임명했어요. 하지만 막상 거중조정이 필요했을 때, 알렌은 전혀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919일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미국 군함을 타고 제물포에 도착했어요. 그녀는 전쟁장관이었던 윌리엄 태프트가 이끄는 사절단에 참여하였다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미국 공주가 왔다고 엄청나게 환영했어요. 고종은 자신이 타던 황실가마까지 내주었고, 중명전에 17첩 반상의 식탁을 차려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과 겸상을 했습니다.

앨리스 루스벨트

 

천방지축으로 유명한 그녀는 고종을 알현할 때, 승마복을 입었고 입에는 시가를 물었어요. 홍릉에서는 석상 가운데 말을 보고서는 재빨리 올라타는 무례함을 저질렀습니다. 고종은 앨리스의 내한을 굉장히 중요한 기회로 여겼어요. 일본의 위협으로 위태로워진 대한제국을, 미국이 보살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도착하기 전부터, 태프트를 통해 한국의 운명이 곧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겠지요. 그녀가 도착하기 직전 이미 포츠머스 조약이 조인되었고, 두 달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해 1117'보호조약'이 체결된 바로 다음날, 미국 정부는 공사관을 폐쇄함으로써 가장 먼저 공사관을 폐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을사오적

 

을사조약 체결에 찬성 표시를 한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 등 5명의 대신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을사오적이라 하여 매국노의 대명사로 기억되지요. 그 가운데 가장 혹독한 비난을 받는 것은 바로 처음으로 찬성 의견을 제시한 이완용입니다. 그가 돌아선 이유는 가장 대표적인 친미파 인사로서, 미국의 입장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우리가 자초한 것입니다. 국력이 약한 우리가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진대 더 이상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 이완용이 한 말입니다. ‘때에 따라 적당함을 따르는 것이 그의 인생관이었고, 이를 계기로 친일파로 변신에 성공하여 내각 총리대신으로 승승장구했어요.

 

을사오적의 죄과를 능가하는 고종의 우유부단

물론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서 나타난 일제의 침략성과 기만성에 대한 비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을사오적의 매국적 행위에 대해서도 가혹한 심판이 이루어져야 하지요. 하지만 고종의 책임도 분명히 따져야만 합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제5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함을 보증한다였어요.

 

그는 스스로 제정한 <대한국국제>에서 규정한 자신의 전제군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약 체결의 책임을 정부 대신들에게 위임했고, 을사오적을 엄벌에 처하라는 상소에는 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했어요. 군주가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데 일제의 군사적 무력시위 속에서 대신들이 조약 체결을 거부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새 조약의 주지로 말하면, 독립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는 안전하고 황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을사오적으로 지목된 자들이 스스로 항변을 했어요.

그뿐 아니라 고종은 을사오적을 파면하고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치는데도 전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민영환은 자결을 하였고, 조병세에게는 죄인을 도성 밖으로 추방하여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형벌인 문외출송(門外黜送)을 명하였지요. 결국 조병세도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확고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고종은 이완용이 황태자의 사부였다는 이유로 비호하였어요. 나중에 이 조약이 무효라고 해외에 호소했지만,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의 최고권력자이며 전제군주였던 고종에 대해서는 준엄한 심판이 없이 넘어간 경향이 있어요. 늘 을사오적에 대해서만 비난이 집중되었습니다.

 

1905년의 을사오적이 무색한 2024123일 국무위원들

최근 우리 사회는 작년 123일의 친위 쿠데타 시도로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은 탄핵안 통과 후에도 관저에서 농성하며 대한민국을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몰고 가다가 체포되었는데요, 지금은 최고권력자가 법 위에 군림하는 전제군주정이 아닙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위를 수행하는 것이지요.

그날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의 태도도 을사오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반대를 했다고 하지만, 정당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되는 친위 쿠데타를 막기 위해 목숨은커녕 자리를 걸고 반대를 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국가의 정상화를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것이 그들입니다.

1905년에도 나라의 체면을 살린 것은 재야의 유생들과 민중들이었어요. 어떤 이는 목숨을 버려서 뜻을 지켰고(致命守志), 의병을 일으켜 싸웠으며(擧義掃淸), 더럽혀진 땅을 떠나 망명(去之守舊)을 했습니다. 쿠데타를 막아낸 데 이어, 2025년에도 탄핵을 요구하며 추운 밤을 거리에서 지새는 국민들이 있어요. 이들이 바로 참된 국격을 지키는 존재들인 것이지요.

1899년에 제정되었던 <대한국국제>를 한국 최초의 성문헌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황제의 권한만 명시되어 있지, 책임은 적혀 있지 않았어요. 그래도 <경국대전>에 국왕에 대한 조항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진일보했습니다. 하지만 책임이 규정되지 않다 보니 1905년에는 무능한 전제군주 고종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웠어요.

 

2025년의 대통령은 1905년의 전제군주가 아니다

2025년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바탕을 두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지, 그 위에 군림하는 전제군주가 아니에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는 파면되고 처벌을 받게 되고, 그때 가서야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모든 국민들에게 평등한 것인지 분명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190584일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면담한 대한제국 국민이 있었어요. 그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대한제국 황제가 아닌 일진회라는 단체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전달할 것을 위임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있는 것에 기뻐한다고 했지요. 그는 바로 이승만입니다.

주진오 역사학자·상명대 명예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 2025.1.17.

 

살인마를 향한 사랑, 내란범을 향한 집착

하이브리스토필리아. 그리스어로 범죄를 뜻하는 'hybristos'와 사랑을 뜻하는 'philia'가 합쳐진 말이다. 범죄인을 향한 사랑, 혹은 그에 매혹되는 심리를 뜻한다. 범죄자는 죄인이지만, 때로는 우상이 된다.

역사는 수많은 범죄와 그에 열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로 불리는 찰스 맨슨에게는 '맨슨 패밀리'라는 열렬한 추종 세력이 있었다. 197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에게도 철창 너머로 펜레터가 쏟아졌다. '나이트 스토커'로 불린 리처드 라미레스는 체포된 뒤 광기에 매혹된 여성 중 한 명과 결혼식까지 올렸다.

범죄자에게 쏠리는 기이한 동경은 어둠 속에서 자란다. 금지된 것에서 아슬아슬한 쾌감을 느끼고, 범죄자의 냉혹한 자신감과 거친 카리스마에 매혹된다. 세상의 이목이 쏠린 범죄자를 좇으며, 그 시선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 그 뿌리는 허기진 마음의 그늘 속에 있다. 병든 땅에서 자라난 왜곡된 욕망이다. 그것은 마음이 앓는 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뒤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이 오열하는 광경을 보며 문득 '하이브리스토필리아' 단어를 떠올렸다. "아무리 살인범이라고 해도 법이 살아 있어야 되는 것"이란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발언도 연상작용을 자극했다. 말속의 '살인범' 단어 때문이다.

 

내란죄와 살인죄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죄의 무게에서 내란죄가 더 가볍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란은 한낱 권력 찬탈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뿌리를 뽑고, 다가올 미래를 불태우는 일이다. 살인이 인간의 생명을 찢는 일이라면, 내란은 국가의 존재 자체를 파괴한다. 나라의 심장에 칼을 꽂고 국민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는 잔혹한 범죄다. 내란죄는 역사의 강물에 독을 풀어놓는 행위다. 흘러간 시간과 앞으로 흘러갈 시간 모두를 죽인다. 살인이 한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라면, 내란은 수천수만의 영혼을 불살라버린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은 죄의 무게다.

악명 높은 살인범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가장하며, 피로써 진리를 설파하려 했다. 자신을 예언자나 메시아 같은 존재로 여겼다. 자신이 심판자였다. 법과 도덕이 산산이 부서진 자리에서 그들은 웃었다. 극단적인 자기애와 과대망상, 희생자와 추종자들에 대한 통제 욕구, 도덕적 경계의 상실 등은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가. 극단적인 자기애와 과대망상은 체포 직전에 찍어 배포한 녹화영상에서도 다시금 확인된다. 죄책감이나 후회는 없다. 자신은 법을 초월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내란 행위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므로 체포된 뒤에도 일절 공수처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 자신을 법으로 단죄하려는 것은 "좌파 사법 카르텔"의 음모라고 확신한다. 그런 맹목적 정신세계 속에서 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고 준 국군통수권을 악용해 공동체에 죽음의 재를 뿌렸다.

 

윤 대통령의 체포 소식에 눈물을 쏟는 사람들은 그가 저지른 중대한 범죄의 무게를 애써 외면한다. 그들의 추종은 단순한 매혹이 아니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복잡한 실타래가 얽히고설킨 감정이다. 그들에게 윤 대통령은 범죄자가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려다 불가피하게 몰린 희생자이며, 자신들의 신념을 실현하는 구원자이다.

윤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정당하다고 믿는 이들은 끔찍한 죄상이 잇따라 드러나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 케이블타이, 안대, 포승줄, 송곳, 망치, 야구방망이 등 잔인한 고문 도구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윤 대통령을 동정하고 그를 비판하는 자들을 향한 적개심을 더욱 불태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신념을 윤 대통령에게 포개어 재구성하며, 그의 그림자 속에 깊이 몸을 웅크린다.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들은 광기의 전도사들이다. 연쇄살인범들도 법의 심판대 앞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다. 그러나 그 변호사들은 살인범들의 범죄 행위 자체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범죄자의 정신 상태 이상을 내세워 방어 논리를 펼쳤을 뿐이다. "범행 당시 의식을 잃었다"느니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여서 자신의 행동이 옳고 그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윤 대통령 변호인들도 차라리 그런 변호 전략을 짰으면 좋았을 것이다. '주취감형'을 내세워 윤 대통령이 잦은 폭음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내란죄를 저질렀다고 변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변호인들은 내란죄 정당화 차원을 넘어 "대통령의 운명이 나라의 운명"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윤갑근 변호사는 "시민이 경찰을 체포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쯤 되면 오히려 변호인의 '정신이상'도 의심해 봐야 한다.

연쇄살인범에게 열광하는 심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어두운 마음의 골짜기에서 발원한다. 다행히도, 이 기묘한 애착은 세상 한구석의 일그러진 파편일 뿐이다.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고, 집착의 불길은 주변을 태우지 못하고 스스로 소진한다.

 

하지만 내란범을 향한 광신적 애정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외로운 몇몇의 욕망이 아니라, 더 크고 무거운 질량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땅을 뒤흔드는 힘으로 커간다. 정치세력과 뒤엉켜 위험성은 더욱 증대된다. 국민의힘은 그 뿌리에서 자양분을 빨아들이며 버티고 있다. 그늘은 더욱 짙어지고, 더 많은 이들이 그 어둠 아래 모여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법의 심판을 받아도 광기의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집착은 제2, 3의 윤석열을 키워낼 토양이 되어 뻗어나갈 것이다. 이제 다시 희망을 말해야 할 순간, 가슴 한편에 무겁고 어두운 돌덩어리가 얹혀 있는 이유다. 이 무거운 돌덩어리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본질일지 모른다. 희망이 싹을 틔운다고 해도, 그 무게가 쉬이 가벼워지지 않을 것이다. 광기와 어리석음,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걸음, 힘겹게 발을 내딛는다.

김종구 (언론인) | 프레시안 2025.01.17.

 

 

대한민국 망치는 극우 카르텔윤석열·국힘·태극기 부대

작가 진중권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키호티즘’(quixotism)에 비유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유래된 말이다. “돈키호테는 비루먹은 말을 타고 소설로 들어가 늘어선 풍차를 거인으로, 양떼를 군대로, 농부의 딸을 귀부인으로 착각한다. 이렇게 저만의 이상(망상)을 좇아 현실을 떠나는 것을 키호티즘이라 부른다.” 윤 대통령이 망상에 빠져 느닷없이 계엄령을 발동했으니,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후에도 끝까지 싸우겠다니 언필칭 키호테란 호칭이 제격이다.

 

그런데, 윤석열이 드러내는 정치·이념·역사적 정체성은 결코 일탈이 아니다. 돈키호테처럼 시대 흐름에서 낙오된 인간의 미친 짓이 아니다.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가 말한 그대로 현실이 정치에 종속된 상태의 지속 및 강화, 다시 말해 한국 사회가 정당을 기준으로 대치하고 적대하는 정서적 양극화가 빚어낸 현상, 그리고 극우세력의 성장과 주류화에 따라 등장이 예고된 괴물이라고 봐야 한다. 트럼프가 보여주는 기괴한 언행 때문에 트럼프 현상이 이례적인 돌연변이로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 공화당의 극우화가 낳은 적자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의 정체성도 극우다.

윤 대통령이 망상 속에서 그려본 석열민국은 어땠을까? 힌트가 있다. 우선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민주주의는 트램과 같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것을 타고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거기서 내려야 한다.” 그는 총리가 된 후 트램에서 내려 독재적 본능을 드러냈다. 당연히 저항이 거세졌고, 급기야 군부가 그를 제거하려고 나섰다. 에르도안은 이를 핑계로 삼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공무원 수만명이 체포됐고, 4000명의 판사와 검사가 파면됐고, 100개 넘는 언론사가 폐간됐다. 에르도안은 정치적 반대를 짓누르는 데 성공해 독재자의 반열에 올랐다. 윤 대통령이 부러워할 만한 역전이다.

 

다음은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다. 오르반도 1998년 총선에서 승리해 35살의 나이로 총리에 올랐다가 2002년 선거에서 패해 물러났다. 끝났는가 싶었는데, 오르반은 8년 만에 권좌에 복귀했다. 2002년 패배가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믿음을 지지층이 공유하고 있었던 게 재기의 큰 힘이 되었다. 게다가 재집권한 오르반은 사법부, 언론, 대학 등 독립기관들을 당의 통제 아래 두는 독재적 돌파구를 통해 안정적 통치 기반을 마련했다. 독재적 돌파구는 법에 따른 통치’(rule of law)통치에 따른 법’(law of rule)으로의 전환이었다. 윤 대통령도 계엄을 독재적 돌파구로 생각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연대는 극우동맹이다. 2010년대부터 보수정당 국힘은 민주·평화·복지 어젠다에서 멀어지는 행보를 해왔고, 박근혜 탄핵 등을 거치면서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생존의 근거로 삼는 극우정당으로 꾸준히 변화해왔다. 이런 적대감과 극우화를 빼놓고선 자신의 당에서 배출한 두명의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숱한 보수 인사들을 형사처벌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는 굴욕마저 감수하는 행태를 이해하긴 어렵다. 탄핵당한 윤 대통령과 한 몸이 되고 극우세력에 포획돼 탄핵 반대에 나서고 있는 광태(insanity)도 설명하기 어렵다.

정치적 적의가 미국 정치의 규정적 특성이 되었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폴 피어슨과 에릭 쉬클러 교수의 지적이다. 상대에 대한 적의 때문에 미국이 두개의 나라로 나뉜 상태라는 얘긴데,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의 제목도 파당 국가’(partisan nation). 워낙 두 정당이 죽일 듯이 싸우는 통에 서로 다른 부족 간 다툼에 비유해 부족주의로 부르기도 하고, 지지 정당에 따라 시비와 선악을 가르는 현상이 기승을 부려 파티즘(partyism) 또는 당파주의(partisanism)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어느 용어든 어떤 정책적 선호나 이념적 성향에 상관없이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관한 것이면 닥치고 옹호하고, 반대하는 정당의 그것은 무조건 적대한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통해, 미국의 트럼프는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의회 폭동으로 판을 엎으려 했다. 당연히 둘 다 탄핵소추당했다. 트럼프의 경우 그에게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전체적으로는 70%가 넘었으나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52%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202116일 의회 폭동 이후 트럼프의 지지율이 떨어졌을까? 얼마나? 다시 회복했을까? 언제쯤?

프린스턴대의 샘 노오르트 교수에 따르면, 의회 폭동 후 열흘가량 지난 시점의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율은 폭동 이전에 비해 대략 11%포인트 하락했다. 트럼프에 대한 선호도는 4.6%포인트 줄어들었다. 비선호도는 6.3%포인트 늘어났다. 과거 의회 폭동 정도의 심각한 사건이 없을 때도 이런 정도의 지지율 등락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의회 폭동이 지지율 판도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폭동 한달 뒤 조사에선 폭동 이전에 비해 공화당 지지율이 겨우 3.7%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코펜하겐대의 그레고리 이디 교수 등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의회 폭동 이후 소셜미디어 활동에서도 트럼프와 공화당을 멀리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폭동이 있은 후 3주 동안 소셜미디어 사용자의 7%가량이 공화당 지지를 연상하는 용어를 삭제했다. 극심한 양극화를 생각하면 꽤 고무적이긴 하나 아쉽게도 이런 흐름은 채 두달도 지속되지 않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의회 폭동으로 인해 지지층 사이에서 트럼프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으나 짧게 지속되었을 뿐이다. 길어야 두달, 짧으면 몇주에 그쳤다.”(이태구 등, ‘백인 권력! 백인의 지위에 대한 위협이 어떻게 반민주적 정치인에 대한 반발을 감소시켰나?’) 독립운동 때 영국에 점령당한 후 처음으로 의회가 폭도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역대급 사태에도 정당에 대한 맹목적 충성은 거의 약화되지 않았다.

 

왜 이런 반전이 일어났을까? 노오르트 교수는 정당 엘리트들의 메시지와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는 비판에 나섰지만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고 나면 사건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거나 트럼프의 역할이 거의 없었다는 식으로 전략적 부정과 변호에 나서기 시작했다. 배신자 운운하며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당파적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음모론과 진영론을 대대적으로 동원했다. 지지자들이 그 당파적 신호에 반응해 다시 모이기 시작하고, 그 결과 지지율이 반등하게 됐다.

예일대의 밀란 스볼릭 교수는 이념적 양극화로 설명한다. 미국처럼 이념적으로 편이 갈려 있으면 자기편이 대놓고 반민주적 행태를 보이더라도 문책하는 걸 꺼린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상대편인지라 대안으로 선택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계속 편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 국힘의 다수, 상업화된 극우팔이 소셜미디어, 태극기 부대 등 극우 카르텔이 비상계엄을 추동하고 동조한 까닭도, 지금 상당한 수의 보수 유권자들이 그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이유도 이런 당파주의 때문이다. 상대가 악마이기 때문에 그 상대를 으깰 수 있다면 뭘 해도 괜찮다는 태도를 보인다. 계엄-탄핵 국면을 계기로 정당정치에서 보수는 짓눌리고 극우가 주류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선전은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대상을 공격 매개물로 삼아 촉진되어야 한다.” “거짓말을 충분히 큰 목소리로 반복해 말하면 사람들은 결국 믿는다.” 지금 극우 카르텔이 추앙하는 두 명제다. 때문에 줄기차게 외친다.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얼핏 보면 이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듯하다. 진짜 그럴까? (, 앞의 두 명제는 히틀러의 선동가 괴벨스의 말이다.)

이철희 전국회의원 | 한겨레 2025.01.17.

 

폭주하는 극우를 이기는 법

근본적으로 윤석열 내란은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태가 아니라 한국 엘리트 위임 정치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한다. 그 실패는 이미 한국 사회에 잠재하던 것이지 외계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다만 시민을 향한 폭력과 전쟁까지 불사하는 폭주형 극우 엘리트가 출현했다는 점은 새로운 현상이며 주의 깊게 분석되어야 한다. 윤석열, 김용현 등이 기존 우파 엘리트 그룹과 다른 점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뚜렷한 폭력성, 다른 하나는 음모론이다. (지난 칼럼에서 이런 음모론을 어준석열 유니버스라 명명한 바 있다.)

 

민주공화정의 대통령은 법을 준수해야 한다. 삼권분립과 정치적 견제에 의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제한된다. 개혁 의지가 넘쳐흘렀을 뿐 아니라 공부와 준비도 많이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종종 무력감을 토로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이라도, 아무리 선의와 신념으로 무장해도,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라는 대원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극우는 그게 불만이다. “악랄한 저들이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는데 왜 선한 우리가 양보해야 하지?” 여기서 음모론은 폭력에 불을 붙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일반적 상황이면 법을 지켜야겠지만 지금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직적으로 선거를 조작하는 비상사태 아닌가. 법질서를 지키려면 타협이 아니라 결단이 필요하다!” 그렇게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불법이라는 형용모순이 출현한다.

 

윤석열 일당이 실제로 음모론을 믿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들 내면이 어떻든 간에 중요한 건 음모론이 폭력의 명분으로 당당히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다. 이번 내란에서 음모론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껏 인류가 벌인 많은 집단학살이나 전쟁에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비인간화하는 음모론적 서사가 있었음을 엄중히 기억해야 한다. 약물이나 외과 수술 없이 인간의 뇌를 해킹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토리텔링, 즉 그럴듯한 이야기다. 특히 이야기 속 감정이 핵심이다. 이성은 좀처럼 인간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감정은 즉각 행동하게 만든다.

 

브레인 해킹이 항상 잘 먹혀드는 건 아니다. 잘 작동하는 조건이 존재한다. 바로 사회적 고통이다. 정확히는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한 인식이 공유되고 나면 다음 단계는 범인 찾기. 인간이 가장 참기 어려워하는 고통은 이유 없는 고통이며 그래서 인간은 자기 고통의 근원을, 설령 허구일지라도, 반드시 찾아내려 한다. 주류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여기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좌파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너무 거대한 답을 내민다. 하지만 극우파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한다. “이게 전부 무임승차자와 불순세력 때문이다. 난민·이주민, 무슬림, 중국인, ‘김치녀’, 호남인, ‘종북세력’, ‘빨갱이’,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기여도 없이 보상만 챙기면서 나라를 망가뜨린다.”

 

극우정치의 세계적 확산에서 볼 수 있듯이 분배인정의 불만, 즉 가난해지고 멸시당한다는 울분은, 말만 번드르르한 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결합해 기층 인민을 급격히 우경화했다. 지지부진한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각에서 결단력 있는 독재자를 은근히 기대하기 시작한다. 제도와 관행의 외피에 가려져 있던 날것의 폭력성, ‘힘 숭배욕망은 스멀스멀 폭력과 전쟁의 기운으로 전이된다. 폭주형 극우 엘리트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탄생했다. 이들은 군대를 불법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음에도 탄핵 직전의 박근혜보다 훨씬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바야흐로 극우는 현실 정치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피노자는 감정은 이성으로는 통제될 수 없고 다른 강력한 감정으로만 제어될 수 있다면서, ‘지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로운 수동적 감정에서 용기와 관용 같은 능동적 감정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가 일종의 감정 서사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걸 이겨낼 수 있는 건 대항논리가 아니라 대항감정인 것이다. , 궁극적으로 혐오를 이겨내는 힘은 서로 돌보는 마음에서 나온다. 이러한 능동적 감정은 파산한 엘리트 정치를 누구나의 민주주의로 바꿔내기 위한 절대적 동력원이다. 트랙터와 응원봉이 만들어낸 남태령의 기적을 소중히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 한겨레 2025.01.17.

 

법꾸라지윤석열의 연전연패

대통령 윤석열은 사법시험을 아홉 번 만에 붙었다. 말이 9수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가 된 후에도 그는 특유의 집요함을 과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의 모든 단계마다, 모든 절차를 문제삼거나 거부하고, 가능한 이의신청을 모두 내고 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지만, 대표적 사례만 짚어보자.

헌재 탄핵심판 서류 수취 거부, 공수처 출석요구 3차례 거부, 서울서부지법 체포영장 이의신청, 체포영장 집행 거부, 정계선 헌법재판관 기피 신청, 탄핵심판 변론기일 이의 신청 및 변경 신청, 공수처 조사에서 진술·날인 거부, 서울중앙지법 체포적부심 청구. 탄핵심판과 수사를 피하기 위해, 30여년간 법률가로서 쌓아온 법지식과 법기술을 온통 투하하는 중이다.

노력이 무색하다. 연전연패다. 헌재는 기피·이의 신청 등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심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와 경찰은 한 차례 집행 실패를 딛고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체포적부심을 기각했다. ‘공수처는 내란 혐의 수사권이 없으며,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은 불법이라는 윤석열 측 방어 논리는 완전히 깨졌다.

 

공수처는 17일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법 앞의 평등이란 헌법 가치를 모독하고, 국가 사법 시스템을 우롱해온 법꾸라지 대통령은 구속을 눈앞에 둔 처지가 됐다.

윤석열은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반전을 노릴 것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감되면, 구속적부심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구속적부심이 기각되면, 건강 문제를 호소하며 보석이나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낼 것이다.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무기금고 뿐인 중대범죄 피의자라 해도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것이 한국의 법치주의다. 문제는 윤석열이 사법 시스템 내에서만 다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이른바 부정선거론등 근거없는 허위 주장으로 극렬 지지층을 선동하고 있다. 탄핵심판 대리인단과 변호인단 역시 앞뒤 안 맞는 궤변으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탄핵심판에서 파면이 이뤄지고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국론분열이 계속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려면 윤석열의 반성과 사죄가 우선이다. 물론 기대하기 어렵다. 윤석열은 극우적 망상을 토대로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결국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다. 헌재와 법원은 신속하고 공정해야 한다. 동시에 단호해야 한다. 헌재는 증인신문과 변론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궤변이 난무하는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 기소 이후 재판을 맡게 될 법원도 마찬가지다.

 

언론도 제 구실을 해야 한다. 지금 상당수 매체가 기계적 중립이나 균형을 내세우며 내란세력의 음모론과 거짓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이는 중립·균형 보도가 아니다. 범죄자들의 위헌적·위법적 방어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행태에 불과하다. 불가피하게 보도하더라도 팩트체크 과정을 거쳐 제한적으로 다뤄야 마땅하다.

윤석열의 연전연패는 확정적이다. 그는 대통령직을 잃을 것이다. 평생 감옥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극우적 망상 속에서 공동체의 폭력적 전복을 꿈꾸는 이들은 윤석열 말고도 많다. 사법기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언론도 정신 차릴 때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경향 2025.1.18.

 

'윤석열 체포'로 본격화된 '조기 대선 국면'을 읽는 7가지 키워드

박근혜 탄핵' 때와 확연히 다른 '윤석열 탄핵' 여론국힘 지지율 상승 의미는?

 

국면 전환

윤석열이 체포됐고, 이제야 새해가 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16일 체포적부심이 기각됐고, 17일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니 18일 중으로 구속 여부가 결정될 것입니다. 구속이 되면 내란 국면이 일단락될까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내란죄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립니다. 대선 국면은 아마 설 연휴 이후에 본격화할 것입니다. 정당은 정당대로, 광장에서 놀라운 민주주의 회복력을 실천한 위대한 시민은 또 시민대로 과거에서 미래로 시야를 전환할 것입니다. '다시 만날 세계'를 꿈꾸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을까?

그런데 윤석열 체포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116일에 나온 NBS 전국지표조사를 보고 의아했을 겁니다. 내란을 옹호하고 윤석열 체포를 막았던 국민의힘 지지율(35%)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33%)에 앞서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국갤럽 결과도 비슷한 흐름입니다. 국힘이 39%로 치솟았고, 민주당은 36%에 그쳤습니다.

NBS 차기 지도자 지지율도 이재명이 28%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예상보다 너무 낮았고, 김문수가 13%로 치고 올라왔습니다. 한국갤럽의 주관식 조사에서는 이재명 31%, 김문수 7%, 홍준표-한동훈 6%, 오세훈 4%, 이준석 2%, 조국-김동연 1% 순입니다.

언론에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번 NBS 조사에서 보수 후보 지지율 합(38%, 이준석 2% 포함)이 이른바 진보 후보 지지율 합(35%)을 앞지른 것입니다. 한국갤럽은 야권 후보 지지율 합(33%) 여권 후보 지지율 합(25%)보다 많았으나 절대 수치가 작습니다. 박근혜 탄핵 당시인 2017년 초와 완전 딴판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보수 과표집 현상

위 조사 결과는 19일 조사에 비해 국힘 지지율은 3% 오르고, 민주당 지지율은 3% 내린 결과입니다. 왜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되고 체포되는 상황인데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이번에는 박근혜 탄핵 당시와 다르게 보수 결집 현상이 뚜렷합니다. '180+이재명'이라는 공포의 야당이 단일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당시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있었고, 민주당 의석도 123석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보수세력이 총결집하고 있습니다. 여기다가 윤석열측과 극우 유튜버들이 공공연히 여론전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보수가 과표집되고 있습니다.

NBS 세 차례 여론조사(1219, 19, 116)의 응답자 이념 분포를 보면 진보는 286=>291=>257로 축소 양상을 보이고 있고 보수는 276=>328=>344로 확대 양상을 보입니다. NBS 16일 조사 응답 분포를 보면 보수가 진보보다 무려 87명이 많습니다. 한국갤럽의 경우도 보수 응답자가 337명으로 진보 응답자 262명에 비해 75명이나 많습니다. 이 같은 보수 과표집은 윤석열의 관저 농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국힘은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구요. 민주당의 무전략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여론조사는 설 연휴 이후 상황이 조금은 정리된 뒤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략적 인내 없는 '공포의 민주당'

민주당도 보수 과표집의 빌미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체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지금 민주당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탄핵' '특검' 밖에 없습니다. 속도조절도 강약조절도 없습니다. 법제사법위원장이 윤석열 사형을 언급하는 것도 모자라 윤석열이 체포되자 마자 김건희를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80석을 가진 정당이 대통령까지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특히 윤석열 체포와 탄핵에 동의하지만 이재명의 민주당에 불편한 마음을 가진 중도층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기 대선은 복수정치의 연장이냐 통합정치의 시작이냐의 프레임을 포함합니다. 무엇이 확장에 도움이 될까요? 이번 대선이 종북세력 VS 내란세력의 복수혈전이 되기를 바라는 기득권 세력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국민은 정치의 복원을 통해 대한민국이 전진하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정치 전략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것에는 절대다수의 국민이 동의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불법, 위헌 계엄을 막을 법률적 장치도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개헌 논의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 갖고 충분할까요? 국민 전략으로는 통합과 희망이, 국가전략으로는 경제 비전과 기후위기, AI 등 대전환기 의제 등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전진이 이번 대선의 주요 화두가 될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을 승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상 초유의 대통령 내란 사태로 인한 대통령 보궐 선거는 야권 유력 후보의 승인 여부를 묻는 선거입니다. 사실상 내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대선에 도전할 자격이 없습니다.

지난 2017년에 안철수가 "탄핵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양자 프레임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은 매우 효과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그렇다는 뜻입니다. 2017년 대통령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을 승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거였습니다.

이번 대선은 아직까지는 이재명 대통령을 승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거입니다. 각종 지지율을 봐도 이재명이 상당히 큰 폭으로 앞서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아주 흔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40% 안팎의 박스에 갇힌 데다 최근 조사에서는 28%도 나왔습니다. 비호감이 크고 비토 정서가 아주 강합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국힘 지지율 상승은 '180+이재명'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의 반사결집 현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내란으로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국면인 것은 분명하지만, 강력한 일극체제가 갖고 있는 뚜렷한 한계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마치 이미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행동하면 리스크는 더욱 커집니다.

서머싯 몸의 표현처럼 "미래에만 살다가는 현재는, 현재는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버리게 됩니다(<인간의 굴레에서>). 전략은 주장이 아닙니다. 전략은 오히려 서사에 가깝습니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거부의 박스'를 돌파할 이야기가 필요한데 지금 민주당은 오직 강경 주장이 지배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것이 오히려 민주당의 확장이 아니라 국힘의 결집을 부르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통합과 전진'의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을까?

강경 지지층은 양날의 검입니다. 불안에 떨며 전략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강경 지지층에만 의존합니다. 하지만 달콤한 사과와 사이다만 먹다간 탈이 납니다. 30%는 엄청난 세력을 표상하기는 하지만, 당선에 유효한 숫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거는 확장을 위한 경쟁입니다. 비호감과 두려움을 완화할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분열과 복수를 넘어 통합과 전진을 위한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것입니다.

윤석열이 구속되고 설 연휴가 지나면 지지율 조정이 일부 일어날 것입니다. 냉정을 되찾은 국민들은 상황을 조금 더 직시하게 될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 컨벤션 효과가 꺼질 무렵 선거와 문학을 비교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공이 강인하기를 바라지만 완벽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주인공이 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면, 그 이야기는 이내 지루해질 것이다." 이야기의 파장은 취약성을 인정하고 드러내며 이를 용기로 전환시킬 때 커집니다.

브레네 브라운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취약성을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약점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용기라고 생각하나요?" 브레네 브라운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중요한 변화를 시도하거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취약성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즉 취약성은 창의와 혁신의 출발점입니다.

불행하게도 최근 한국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취약성을 발견하고 인정하며 이를 용기로 전환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영국 작가 윌 스토르가 말한 '성스러운 결함(sacred flaw)'을 가진 인물이 대중의 감정에 파고들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억누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억누름주의(hold-backism)'는 우리 정치에 만연한 질병이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진단입니다.

 

가령 이재명은 사법 리스크가 있습니다. 2월말-3월초에, 즉 헌재 탄핵심판과 비슷한 시기에 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윤석열을 맹공한 민주당은 당내 유력 후보인 항소심의 사법적 판단에 대응할 스토리를 갖고 있을까요? 다시 탄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재명의 전략은 재벌 회장을 만나고 은행장을 만나는 이른바 대통령 놀이에 있지 않습니다. 사법 리스크라는 최대의 취약함을 어떻게 넘어설지가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합니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려면 사법 리스크라는 현존하는 강력한 이 취약성을 용기로 전환시킬 확고한 전략적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180+이재명'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무너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연결 가운데 가장 강력한 연결은 논리적 연결이 아니라 감정적 연결입니다. 브룩스가 말했듯이 소설가 조지 E.M 포스터가 문학의 제1원칙을 '오로지 연결하라(only connect)'라고 한 것은 정치, 특히 대통령선거에서 아주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광장의 역동성, 대선까지 이어질까?

저는 아직도 이재명이 민주당 후보가 될 활률이 99%, 대통령이 될 확률이 75%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지금 민주당이 위기 대응에 너무 취약한 일극체제라는 점입니다. 일극체제의 이야기는 일단 재미가 없습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어떤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요?

응원봉과 다양한 깃발을 앞세운 광장의 시민은 내란극복과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정말 위대한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남태령 시위''키세스 시위'는 그 정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이런 광장의 다양한 역동성을 끌어안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공간이 없습니다. 잔뜩 웅크린 철갑 고슴도치처럼 똘똘 뭉쳐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민주당과 이재명 앞에 놓인 가장 높은 장애물입니다.

'탄핵''특검'만을 되뇌는 민주당 의총은 고립된 깃발입니다. 민주당이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광장의 역동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판, 다양성, 레드팀이런 단어들이 우선 떠오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이 만드는 선거 캠프나 의원총회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커뮤니케이션 레일'을 까는 것입니다. 전문가 100명 심층 인터뷰(FGI), 2030 세대별, 지역별, 성별 심층 토론(FGD) 등을 다각적으로 해야 합니다. 절대 듣기 좋은 대답을 위한 조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진짜 권력의지가 있다면 쓴소리의 공간을 51%로 확대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일극체제, 적대적 양당체제는 위험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이 체제 안에서 정치적 내전이 끝날 수 있겠습니까? 광장의 시민은 전국민 오픈 프라이머리 같은 새로운 판을 준비해야 저 악랄하고 구시대적인 내란세력의 준동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당은 '180+이재명' 일극체제가 주는 거부감을 뛰어넘을 광장의 새로운 판짜기를 응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내란세력의 준동을 막고 복수정치의 연장을 제어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합리적인 인물들이 대한민국의 전진을 위한 새로운 판짜기를 해볼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입니다. 이런 국민 판짜기가 가능하다면 임기단축을 포함한 7공화국 개헌의 깃발도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민주당과 국힘 이외에도 조국혁신당(의원수 5명 이상), 정의당(직전 선거 4% 이상 득표) 등이 TV토론 자격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개혁신당의 이준석은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입니다.

광장의 역동성은 대한민국의 후퇴를 막고 민주주의를 전진시킬 대선 공간의 실질적 힘으로 재구성돼야 합니다. 태극기부대가 더럽힌 '진짜 애국심'을 갖고 이 나라를 과거에서 미래로 전진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양극체제의 완충지대를 넘어 권력연합의 주체로 성장하기 위해선 남태령 시위와 키세스 시위를 넘어선 열정과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메모처럼 시작한 글이 다소 비장해지고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메모는 메모일 뿐입니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이야기로 글을 맺겠습니다.

"열정적인 캠페인을 지배하는 원칙은 이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두려움을 버리고 스스로가 이끄는 대로 하라.'"

유승찬 정치컨설턴트 | 프레시안 2025.01.18.

 

'윤석열'은 보수의 '질병'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다

보수의 가치를 '분노''적개심'으로 메워버린 결과

폭군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아니, 그는 언제나 화가 나 있었다. 내란 수괴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의 성명들은 분노와 적개심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계엄 포고령)"에 그는 격노해 계엄을 선포했다. 내란이 실패로 돌아간 후 체포되면서 "가짜 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독재", "사기탄핵, 사기소추", "무법적 패악" 등 험악한 말들을 들어놓더니 "(내가) 폭동을 계획하길 했습니까"라고 따지고 앉았다.

 

정신상태는 이상하다. "민주당은 의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선거 부정을 서슴지 않는 반민주 반민족 패거리들", "중국의 재력을 앞세워 이 땅을 중국과 북한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그는 중국과 북한, 민주당, 사법기관, 수사기관을 모조리 간첩들이 장악했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 부정선거론을 진지하게 믿으면서 "칼에 찔려 사망한 시신이 다수 발견됐는데, 살인범을 특정하지 못했다 하여 살인사건이 없었느냐"고 반문하는데, 애초에 살해 당한 시신따위는 발견된 적이 없다. 음모론의 대부분은 틀린 전제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진지하게 반박하는 건 국력 낭비고 언어 낭비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격노'는 오랜 기간 윤석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분노는 이성적 사고와 판단, 행동과 감정의 조절을 관장하는 전두엽을 손상시킨다. 손상된 전두엽이 갑작스러운 분노를 부르는 악순환을 계속되면, 결국 알코올 의존중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윤석열의 격노를 정신병리학이나 뇌과학, 알코올 중독으로만 설명하려 드는 건 게으른 일이다.

말하자면 윤석열은 지금 대한민국 보수가 앓고 있는 병의 증상이다. 윤석열은 하나의 은유다. 보수 정당에 닥친 이 거대한 재앙을 윤석열 개인 캐릭터의 문제로 치환하고 넘어가는 건 대증요법일 뿐, 보다 근본적인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보수는 합리적 이성과 객관적 현실 판단을 중시한다. 보수정당의 원동력은 가치와 철학이다. 그런데 이 자리를 언제부터인가 분노와 적개심이 메우고 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과 이재명을 향한 적개심으로 '될 것 같은 후보' 윤석열을 골랐다. 자기 진영 대통령 두 명을 감옥 보낸 그를 섭외한 보수 정당은 대선에서 가까스로 이겨 '대통령직''여당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과 이재명에 가장 큰 적개심을 가진 사람에게 정치를 외주 준 결과물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놀라운 건 국민의힘이 '윤석열 이후'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며 내건 첫째 명분이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테제란 점이다. '반 이재명'이 보수의 가치인가?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세의 동력은 '반 이재명'과 함께 2017년 탄핵 이후 정권을 잃었던 보수층의 트라우마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성찰 대신 '이재명 프레임'을 스스로 껴안은 보수정당은 지지율의 착시에 빠져 또다른 적개심을 찾아 제2의 윤석열을 주물해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철학과 가치를 팽개치고 적개심과 분노로 하는 보수 정치는 정치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다.

 

되짚어보면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에선 국정 목표를 디자인한 상징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학자 출신도 있었고, 노련한 외교관 출신도 있었다. 이른바 'OOO정부'의 정책을 상징하거나 하다못해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꼽을 사람이 꽤 된다.

노태우 정부 때는 북방외교를 설계한 '황태자' 박철언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중국과 수교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정립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 냈다. 김영삼은 남재희, 윤여준, 박세일 등을 기용해 '신한국''세계화'라는 큰 틀의 국가 디자인 플랜을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에도 박재완과 같은 걸출한 관료 출신 학자들이 있었고, 박형준 같은 소장파 학자들은 최소한 '정부를 상징하는 국정 철학' 정도는 내 놓았다. 박근혜 정부 때도 김광두 같은 경제학자들이 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불렸다.

 

윤석열 정부에서만큼은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 윤석열은 그냥 평소 하던대로 분노했을 뿐이고 대중의 적개심에 올라타 어쩌다 '별의 순간'을 잡았다. 용인술은 충암고, 검찰이 전부였다. 그에게 조언하는 학자나 전문가는 아예 씨가 말랐다.

윤석열 정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경제 철학을 상징할 만한 인물도 없고, 국정 기획을 담당하는 학자나 관료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누구를 멘토로 부른다는 말도 없다(신평 변호사가 멘토로 불렸다지만, 대체 무슨 분야에서 멘토인지도 불분명한데다, 이 정부의 국정 디자인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에겐 멘토가 없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그 자리에 민망스럽게도 천공이니, 건진이니, '버거 보살'이니, 미륵(명태균)이니 하는 해괴한 인물들이 호명된다.

그 흔한 '명망 있는 학자'의 그림자도 안 보이는 보수 정부는 난생 처음 본다. '별의 순간' 같은 점성술적 시기를 타고 대통령이 된 탓이련가. 그리하여 대통령 주변에 남아 있는 건 '용산 십상시'라든지 '한남동 라인' 같은 추레한 별칭으로 불리는 일군의 참모들이다. 그러니 윤석열이란 괴물이 휩쓸고 간 폐허 위에서 가치와 비전은 찾아볼 수 없고, 욕망과 적개심만 여전히 난무한다.

 

시대는 변했다. 과거 냉전 시대 보수 정당은 북한(혹은 북한 추종 세력)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북한을 향해 적개심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보수 정당 후보에 표를 던졌고, 보수 세력은 손쉽게 권력을 점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북한과 적대적 공생만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 위태해졌다. 그래서 끌어들인 것이 분노에 가득 차 허수아비 적을 만들어 때리고 있던 아스팔트 극우 세력이다. 그들이 창조해 낸 중국 공산당 음모론과 문재인 간첩설은 보수 정당의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해 이재명을 반국가 세력의 수괴로, 범죄의 화신으로 만들어 '적개심'을 끌어올리고 있다.

가치와 철학을 만드는 데 게을러진 보수 정당은 눈 앞의 권력 게임에 매몰돼 가장 적개심이 강한 자를 선택해 박근혜 탄핵으로 빼앗긴 권력 그 자체를 되찾아오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진지하게 기록되지 못할 윤석열이란 질병적 증상은 보수정당의 게으른 적개심 전략을 폭로하는 증거물이다. 남은 것은 무철학의 철학, 무전략의 전략이다. 그리하여 국민의힘은 윤석열이 자폭한 그라운드 제로에서 또다시 적개심과 분노의 대상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우 김문수가 보수 후보 중 1위를 차지했다는 여론조사는 많은 걸 시사해준다.

분노와 적개심의 정치가 계속되는 한 보수 정당엔 미래가 없다. 만약 보수가 전광훈류의 정치세력과 극우 유튜버에 휘둘리며 '민주당을 이길 사람', '복수해 줄 사람'을 찾아 다음 대선에 임한다면, 어쩌면 윤석열 탄핵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찾은 대통령은, 또 다시 국민의힘을 배신하고 시민을 배신할 것이다. '윤석열 바이러스'는 치료 가능하다. 윤석열을 버리고 보수 정당의 정체성과 가치, 철학을 다시 세워야 이 비극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5.01.18

 

 

윤석열, 내란 선동을 멈추라

윤석열은 비루하다. 말과 행동이 너절하고 지저분하다. 그는 비상계엄이 자기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자 온갖 거짓말, 궤변, 책임 전가, 말 바꾸기, 공갈 협박을 일삼으며 추태를 보였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가 정치에 경고하려는 것이었다는 설명이나 두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변명은 아재 개그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습다 못해 서글픈 발언이었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버스로 길을 가로막고, 철조망을 두르고 몇날 며칠을 기약 없이 버티려고 했던 건 못난 짓의 끝판이었다.

그뿐 아니다. 윤석열은 궁지에 몰리자 지지자들을 노골적으로 선동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에서 그렇게 했고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으러 나서면서도 또 그랬다. 위헌, 위법 비상계엄으로 내란을 획책한 것에 그치지 않고 내란 선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내란 우두머리로 구속된 후 그의 지지자들이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여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 방패를 빼앗아 폭행도 했으며 법원의 담을 넘어 들어가 건물 내부로 진입,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기도 했다. 사법부가 공격을 받은 이런 전대미문의 폭력 상황에 대한 책임은 윤석열에게 있다. 그가 끊임없이 지지자들을 선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처벌을 엄하게 해야 하는 이유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구속된 그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책임을 지고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한다. 윤석열, 그리고 그와 함께 내란에 참가했던 자들을 엄벌하는 건 기본이다. 불관용으로 그들을 다스려서 이런 일을 다시는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서부지법에 난입하여 폭력을 행사한 법치주의의 근본을 파괴한 것에 대해서도 엄벌을 해야 한다.

이번 서부지법 폭력의 뿌리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는 국가 폭력기구를 사물화하여 권력 장악과 유지에 사용했다. 검찰은 그의 첫 번째 도구였다. 그는 검찰의 힘을 배경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자신과 자기 가족의 허물은 덮어버리고 자신의 경쟁자에 대해서는 신상을 탈탈 털었다. 거기에다 검찰에서 맺은 인적자원으로 명실상부 검찰 국가를 만들었다.

 

윤석열은 검찰 권력으로도 모자라 또 다른 국가 폭력기구인 군대까지 동원했다. 그것은 뜻밖이었다. 비상계엄을 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일찍이 민주당으로부터 나왔을 때도,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바로 그 시각까지도 그것을 초현실적 상황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군대를 통치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쓸 수 있다는 현실에 많은 국민이 놀랐다. 검찰이나 군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기구인데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킬 것인가?’ 군부 정치 연구의 고전적 명제가 다시 입에 오르내릴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군대를 보내 의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난입하고 정치인과 선관위 공무원을 감금하려고 한 윤석열과 서부지법의 담을 넘어 들어가 재판장에게 위해를 하려고 한 사람들이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이 나서서 폭력으로 헌법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행동이 지금 모방범죄를 낳고 있다. 윤석열은 이 사태를 심각하게 봐야 한다. 이것은 그간 우리가 쌓아온 민주주의의 금자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정치적 자해행위라 하겠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검찰, 경찰, 군대 등 국가폭력기구에 대해 문민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의 필요성이다. 검찰 권력의 개혁은 아직 미완이다.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모두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므로 개혁의 동력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검찰 개혁과 연동하여 달라진 지위를 가지게 될 경찰에 대한 문민 통제도 사전 장치를 해야 한다. 군대의 문민화는 그동안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군 지도부를 이루고 있는 고급장교들의 직업의식과 판단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쿠데타의 온상이었던 하나회를 척결한 후 군의 탈정치화가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사법부의 정당한 결정에 따라 감옥에 머무르고 있다. 그동안 주장해왔던 수사기관, 관할 법원, 체포 영장 및 구속 영장의 부당함에 대한 문제 제기는 모두 이유 없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런즉 지금부터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선택과 판단을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뭔가를 취하려는 생각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 경향 2025.1.19.

 

영 김과 미국의 이익선

강화도 조약(1876)으로 조선이 서구식 근대 조약 체계 속으로 편입되던 19세기 말은 지금과 엇비슷한 대격변의 시대였다. 병자호란(1636~1637)으로 조선을 복속시키고, 이후 명을 무너뜨리면서(1644) 동아시아 패권국 지위를 차지했던 청의 기세가 급격히 꺾이고 있었다. 이 틈을 타 메이지 유신(1868)으로 국가 개조에 성공한 일본이 청의 세력권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대만을 정벌(1874)하고, 조선을 개방시켰으며, 마침내 류큐(오키나와)를 병합(1879)하기에 이른다. 또 다른 위협은 북쪽에서 몰려왔다. 러시아는 1880년 신장의 서부 이리 지역을 두고 영토 갈등을 벌이던 청을 압박하기 위해 극동에 23척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는 무력 시위에 나선다.

절박한 위기에 몰린 청이 새삼스레 주목한 것은 조선의 지정학적 중요성이었다. 이들에게 한반도는 자신들의 왼팔’(左臂)이자 울타리’(藩籬)였다. 자국 안보를 위해 왼팔과 울타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한 허루장(하여장) 주일 청국공사는 조선이 배출한 최고 엘리트 관료였던 김홍집(1842~1896)에게 당신들이 살아남으려면 친중국·결일본·연미국(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이어지고 미국과 연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조선책략’(1880)이다.

이 조언을 듣고 귀국한 김홍집에게 고종이 보인 반응은 조선왕조실록 1880102(음력 828)치에 실려 있다. 김홍집이 중국이 언급한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설명하자, 고종은 대뜸 우리나라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혹시 우리를 꼬이고 놀래키려는 단서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복잡한 국제정치 이론이나 세력균형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을 고종이 조선을 자국 방어의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 하는 청의 의도를 순식간에 간파한 것이었다.

청에 조선이 왼팔이자 울타리였다면, 일본에 한반도란 머리 위에 매달린 칼”(이노우에 고와시)이자, 자국 방어를 위해 반드시 세력권 안에 잡아둬야 할 이익선’(야마가타 아리토모)이었다. 머리 위에 매달린 칼을 안전하게 통제하기 위해 일본은 처음엔 조선의 중립화’(1882·조선정략, 1890·외교정략론)를 주장했다가, 이후엔 청일전쟁을 일으켜 내정개혁을 시도(1894·갑오개혁)했고, 결국엔 외교권을 빼앗은(1905·을사조약) 뒤 강제병합(1910)을 단행했다. 여러 달콤한 말로 조선 개혁과 동양 평화를 언급했지만, 저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조선인의 운명이 아닌 자국의 국익일 따름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고금동서 예외 없이 적용되는 국제정치의 엄혹한 진실이 아닐까 한다.

 

망상에 빠진 대통령 윤석열이 12·3 내란사태로 자폭한 뒤 차기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진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한국계 미국인 영 김(63) 의원(공화당)의 지난 6일치 더 힐기고문이었다. 이 기고에서 김 의원은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세력들은 한-미 동맹과 한··3각 협력을 약화시키려 해왔다한국 내의 정치적 혼란과 반미 선전의 증가는 적들에게 (행동해도 된다는) ‘그린라이트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17일치 조선일보 인터뷰에선 탄핵 주도 세력은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 중국에 대한 순응을 선호하고 이는 한반도 안정과 지역 전체에 큰 재앙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까지 했다. 윤석열이 무너뜨린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회복하려는 한국인들의 절박한 노력을 적대시하는 김 의원의 노골적인 내정 간섭에 할 말을 잊게 된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힘이 부딪히는 지정학적 단층선위에 자리해 있다. 지난 150여년 동안 지긋지긋한 왼팔론이익선론의 틈바구니에 끼어 식민·전쟁·분단으로 이어지는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왔다. 한국은 이후에도 미국의 단단한 동맹으로 남을 것이지만, 미국의 최전방 소총수역할을 자임하며 대중 견제의 전면에 나서는 선택을 할 순 없다.

김 의원이 신뢰해 마지않는 윤석열 정권에도 중국은 적이 아닌 지역의 번영·평화를 위한 주요 협력국”(202212, 윤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었다. 김 의원은 미국의 국익만을 생각하며 만만한 고국인들을 꼬이고 놀래키려는것은 아닌가. 나는 그것을 의심한다.

길윤형ㅣ논설위원 | 한겨레 2025.1.19.

 

 

선동은 어떻게 폭동이 되었나

일요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던 시간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유리창이 깨졌다. 폭도로 변한 지지자들 중 일부가 쇠막대기와 소화기를 들고 법원 곳곳을 부수며 무법지대를 만들었다. 경찰은 물론 기자와 시민까지 폭행을 당한 후 86명이 체포됐다.

보수 결집. 지난 주말 언론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이런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통령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감행과 실패, 공조본 출석 요구 거부, 체포와 구속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광장이 넓어졌지만, 아스팔트 위 윤석열 옹호세력도 커졌다. 선동 목적의 여론조사 결과가 마구 뿌려졌고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는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 선동이 폭동으로 점화됐다.

쿠데타 이후 여진(餘震)은 예상 가능한 것이지만, 그 충격이 헌정 질서에 심각한 균열을 내기까지는 여러 주역들이 있었다. 대통령 윤석열은 검사로 27년 동안 국가의 봉급을 받으며 법을 집행해왔지만, 지금 억지와 궤변으로 법의 틈새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그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대통령의 힘으로 자처하고 있다.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변호사인지 정치인인지 헛갈릴 만큼 정치적 수사(修辭)로 피의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스팔트를 채우는 실행 부대는 전광훈 목사 세력과 극우 유튜버들, 그리고 어제 새벽 연행돼 처벌받을 사람들은 체계 말단의 인물들일 것이다.

 

선동이 폭동으로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은 지난해 123일 밤 이후 계속해서 영상이나 문자로 메시지를 방출해왔다. 비상계엄은 정당하며 반국가세력과 싸우기 위한 것, 그리고 자신을 옹호하는 행위가 애국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건강과 안부를 묻는 짧은 인사말을 버무리고 넥타이도 매지 않는 무방비의 모습으로 지지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구치소에서도 옷을 갈아입지 않으며 조사에 불응한 채 손편지와 변호인을 통한 메시지를 매일 발송하고 있다. 독립운동 투사라도 된 것처럼, 조사는 거부한 채 외부로만 메시지를 연발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시종일관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였다. 18명을 제외하곤 국회 계엄 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십수명의 의원들 외엔 탄핵에도 반대했다.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시 수십명에 이르는 의원들은 한남동 관저에 모여 농성했다. 스크럼을 짜고 성명서를 읽는 그들의 모습은 그리 당당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옹호자들에겐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메시지로 들렸을 것이다.

 

윤상현 의원과 김민전 의원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계엄 해제부터 탄핵, 체포에 이르는 한 달 반 남짓한 시간 동안 국민들은 새삼스레 그들의 존재성을 깨달았다. 대통령 주변을 맴돌고 명태균 녹취록 주요 인물 중 하나로만 기억됐던 윤상현은 12·3 사태 후 단박에 국민의힘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탄핵을 반대하는 거친 막말은 전광훈에게 90도 인사를 올리던 그의 꺾인 허리와 오버랩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법원 난입 세력에게 조사 후 석방될 것이라는 문자로 화룡점정을 이뤘다. 초선의원으로서는 발군의 실력이랄까?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지던 김민전 의원은 마침내 백골단이라는 무시무시한 각본을 꺼내 들었다. 일요일 새벽 법원 난동을 담은 사진 속에는 백골단 헬멧을 쓴 폭도의 모습도 찍혔다.

 

권성동 대표도 빠뜨릴 수 없다. 시종일관 꿋꿋하게 얼굴을 두껍게 하고 다니라는 그의 지시를 가장 잘 지킨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나마 국민의힘의 건강함을 지키던 김상욱 의원에게 나가라는 공격도 서슴지 않던 그는 실상 한남동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최고의 연기자라고 할 수 있는데, 대통령 체포 소식에 눈물을 보이며 친한 친구였다고 애석해한 것이다. 윤석열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고 한다면, 그 역시 공사 구분 없이 여당 원내대표라는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닮았다. 그들은 친구임에 틀림없다!

국민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광장에서 혹한을 견뎌야 했던 국민들이 이제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때 선동이 폭동이 되었다. 대한민국 법질서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무너뜨려온 내란 및 동조 세력에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 경향 2025.1.19.

 

탄핵당하지 않는 재벌 총수들

윤석열 대통령은 이변이 없는 한 헌법재판소 심판을 통해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것이고, 법원에서 내란죄도 유죄로 확정돼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를 설치해 탄핵 심판을 관장하게 하고, 대통령도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하면 재직 중이더라도 형사상의 소추를 받도록 한 우리나라 헌법 덕분이다. 국가 거버넌스 체계가 나름대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기업 거버넌스 체계는 그렇지 못하다. 재벌 총수는 법 또는 정관을 위반해 회사 또는 주주들에게 큰 손해를 입히더라도 법적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는다. 2021년 경제개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11월부터 20215월까지 배임·횡령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총수 18명 중 9명이 집행유예를 받았고, 실형을 받은 9명 가운데 형이 종료된 6명 중에서 만기 출소한 총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특별사면, 가석방으로 풀려나거나 병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총수들은 법적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을뿐더러 회장 자리에서도 물러나지 않는다. 기소 당시 임원으로 재직한 총수 16명 중 12명이 유죄가 확정된 이후에도 자리를 지켰다. , 자리에서 물러났던 4명 중 3명이 복귀했다. 2021년 이후 기소되어 경제개혁연구소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어느 한 총수는 2023년에 9개월 동안 수감 중이었음에도 두 회사로부터 무려 78억원의 보수를 받아 지탄의 대상이 된 바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일단, 경제사범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 복권, 가석방이 남용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최소화해 이전 대통령과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비리 기업인을 대거 사면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구태를 다시 보여주었다. 형의 집행을 정지시켜 사법부의 판단을 무력화시켰을 뿐 아니라 경제위기 극복이나 투자 촉진 명목으로 사면권을 행사함으로써 총수들이 경영에 복귀할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주었다.

둘째, 특정경제범죄법상의 취업제한제도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제도는 횡령·배임 등 특정재산범죄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때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로의 취업을 일정 기간 제한함으로써 영향력 행사 기회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총수가 보수를 받지 않고, 상근하지 않으면 미등기 임원을 맡을지라도 취업으로 보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경우에도 얼마든지 영향력 행사가 가능함에도 법무부는 이 점을 애써 외면한 채 재벌 총수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비리 기업인들의 경영 복귀 일자만 앞당겨주었다.

셋째, 상법은 사외이사나 상근감사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결격사유를 정하고 있지만 사내이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격사유를 정하고 있지 않다. 비리 기업인일지라도 얼마든지 상장회사의 사내이사로 선임될 수 있는 것이다. 사내이사의 결격사유는 금융사지배구조법과 총포화약법 등 일부 규제 산업 관련 법에서만 정하고 있다.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사면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사면법을 개정해야 한다. 예컨대, 중대한 경제범죄를 지은 자, 형기를 일정 비율 이상 남긴 자, 집행유예 기간이 만료하지 않은 자, 벌금 추징금을 미납한 자 등은 특별사면 등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 사면심사위원회 외부 위원 추천권을 국회와 대법원에도 부여해 독립성을 높이고, 5년 뒤 공개하도록 한 위원회 회의록을 즉시 공개하도록 하여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특정경제범죄법을 개정해 취업의 의미를 명확히 함으로써 보수 지급 유무, 상근 여부, 등기 여부 등 무의미한 기준으로 취업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입법 취지를 고려한다면 당연히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지가 핵심적인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상법을 개정해 범죄행위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일정 기간 상장회사의 사내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금융사지배구조법의 입법례에 따라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을 사내이사직에서 배제할 필요가 있다.

12·3 내란 때문에 자본시장 밸류업 논의가 잠시 멈추어 섰다. 하루빨리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가 재개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때 비리 기업인 퇴출을 위한 입법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 한겨레 2025.1.19.

 

 

자유우파라는 이름의 망상 공동체

119일 새벽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윤석열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비상계엄 선포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윤석열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석동현은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를 반헌법반법치주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계엄령 선포를 옹호하는 윤석열 지지자들은 경찰을 공격하고 서울서부지법 청사를 파괴했다. 내란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제정을 한사코 반대하면서 윤석열을 보호해 왔던 국힘당 원내대표 권성동은 과잉진압이 서부지법 폭동을 촉발했다고 경찰 탓을 했다. 탄핵소추 피청구인 윤석열의 법률대리인은, 헌법재판관은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 여부를 심사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미친 것 아니고 자기에게 필요한 일 하는 것일뿐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런지, 어떤 이들은 그냥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나름의 상황 인식을 토대로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일을 한다. ‘미쳤다고 하기 전에 그들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들어보라. 내 진단에 공감할 것이다. 다음은 윤석열이 담화문이나 서신에서 내놓은 말이다. ‘의미 있다고 판단한 문장만 추렸다. 원문 그대로가 아니라 발췌 요약했음을 밝혀둔다. 윤석열의 말과 글은 워낙 두서가 없어 그래야만 했다. 취지는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된 국회는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2024123, 비상계엄령 선포 제1차 담화)

지난 6월 중국인 3명이 부산에서 드론으로 미국 항공모함을 촬영하다 적발되었다. 지난달 10일에는 40대 중국인이 드론으로 국정원을 촬영하다 붙잡혔다. 외국인의 간첩행위를 처벌하려고 형법의 간첩죄 조항을 수정하려 했지만 야당이 가로막았다. 국정원이 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의 일부만 점검했는데도 상황이 심각했다. 해커가 얼마든지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었고 방화벽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선거 관리 전산시스템이 엉터리인데 국민이 어떻게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있겠는가. 선관위는 판사들이 위원으로 있어서 압수수색이나 강제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계엄을 선포해 국방장관더러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라고 했다.”(20241212, 비상계엄 관련 제4차 담화)

나라의 법이 모두 무너졌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불법을 저지른다. 불법 무효인 영장으로 강압적 체포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개탄스럽지만 유혈사태를 막으려고 공수처에 출석하기로 결심했다. 현실은 어둡지만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고 열정을 보이고 있으니 나라의 미래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2025115, 체포 직전 공개한 영상)

 

윤석열이 115일 체포 직전 급하게 촬영해 공개한 영상.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라며 서울서부지법 체포영장을 문제 삼았다. 윤석열 제공.

 

그가 진지하게 하는 말 내가 구속되면 대한민국 망할 것

전체주의 국가는 주변국을 지배하거나 영향력 아래 두려 한다. 국내 정치세력이 이러한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과 손잡으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데 유리하지만 우리의 국익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국가기밀 정보와 산업기술 정보, 원전 같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내주게 되고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무너뜨려 외교적 고립을 자초한다. 이것은 명백한 반국가행위다. 이런 세력은 집권 여당일 때뿐 아니라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인 경우에도 반국가행위를 계속한다. 국회 독재로 입법과 예산을 봉쇄해 국정을 마비시킨다. 견제 차원을 넘어 국익을 해치고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반국가행위를 밀어붙인다. 이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유권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패악을 계속하기 어렵겠지만 선거를 조작해 국회 의석을 마음대로 차지하고 행정권을 접수할 수 있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2025115, 자필 편지)

 

이런 말들이 논리적으로 타당해서 의미 있다고 한 게 아니다. 윤석열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사법 절차를 거부하는지, 국힘당 계열의 정치인변호사종교인언론인유튜버들이 왜 윤석열의 행위를 옹호하면서 법원을 폭력으로 공격하기에 이르렀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의미 있다고 했다. 무게를 잡으려는 심리 때문인지 대통령 윤석열은 검찰총장 시절과 달리 이야기를 에둘러 하는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통역이 필요하다. 위에서 소개한 문장들을 종합해서 그가 국민에게 말하려고 했던 바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해 보겠다. 이런 주장이다.

 

민주당은 중국 공산당과 손잡고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있다.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조작하는 부정선거로 의회권력을 장악했다. 국회 다수 의석의 힘으로 장관과 검사와 감사원장 등 고위 공직자들을 탄핵하고 정부예산을 난도질해 국가 운영을 마비시켰다. 나는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세력 민주당을 일거에 척결하려고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가동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장악한 국회를 제압하지 못해서 헌법에 따라 계엄을 해제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당의 일부 배신자들과 함께 아무 잘못이 없는 나를 탄핵했다. 경찰·검찰·공수처·법원마저 장악해 불법적 폭력을 행사하며 관저에 쳐들어왔다. 내가 구속되면 대한민국은 망할 것이다. 나를 지지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윤석열 둘러싼 그들도 망상(妄想) 공동체일뿐 미친 것 아냐

윤석열은 진지하다. 미치지 않았다. 윤석열의 모든 행위를 옹호하는 국힘당 정치인과 변호사종교인언론인유튜버도 머리에 꽃을 달고 다니지 않는다. 지난 며칠 동안 한남동 대통령 관저와 과천 공수처,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과 체포 적부심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을 순회하면서 시위를 벌인 태극기 부대원들과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이름을 외치며 서부지법 청사를 때려 부셨던 청년들도 미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특이할 뿐이다. 신뢰할만한 여론조사 결과로 추정하면 대한민국 국민 넷 가운데 하나는 그들과 생각이 비슷하다. 국민의 25퍼센트를 미쳤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특이한가? 보통 수준의 사유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 허구를 그들은 사실로 여긴다. 사실과 거짓을 섞어 꾸며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런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만든 가상현실과 실제상황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현실과 무관한 망상을 올바른 사상이라 확신한다. 그런 망상을 전파하는 자를 지도자로 모시면서 돈과 열정을 바친다.

이것은 미친 짓이 아니다. 사람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많든 적든, 그와 비슷한 행위를 하면서 산다. 게다가 그들의 지도자는 제법 그럴듯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정치학 박사, 목사, 언론인 같은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유튜브 방송만 하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도 나온다. 그들이 공유하는 신념체계를 알면 비상계엄 선포에서 구속영장 발부까지 윤석열이 벌인 모든 일을 한 줄에 꿰듯 이해할 수 있다. 윤석열과 그들은 모두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 그들 스스로는 자유 우파라고 하고, 관찰자인 나는 망상(妄想) 공동체로 간주하는 정치적 진영이다.

 

전광훈TV 등이 전파하는 대한민국 멸망 시나리오

자료가 많은데 아주 괜찮은 것 하나를 전광훈TV에서 얻었다. 116일 업로드한 광화문 천만 동원을 위한 5대 유튜브 특별 생방송을 보다가 그 자료를 발견했다. 전광훈이 사회를 맡고 고성국, 이봉규, 신의한수 신혜식, 펜앤드마이크TV의 내가 알지 못하는 기자, 그렇게 다섯 명이 한 대담이었다. 유튜브 썸네일에 여러 격문이 걸려 있었다. ‘국민이여 일어나라 국가가 위험해졌다.’ ‘이재명에 속아 북한처럼 될 것인가?’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나오라!’ ‘2025118() 총궐기로 대한민국을 지킵시다.’ 전광훈TV는 라이브 방송을 할 때 매번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그 영상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멸망 시나리오라는 제목을 붙이면 좋을 영상이다. 최근 극우 유튜브 방송들은 비슷한 영상을 수없이 송출했다.

굳이 시청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핵심 메시지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영상은 브금과 화면 특수효과 때문에 문자 텍스트보다 훨씬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굳이 볼 필요까지는 없다. 흑백 자료화면에 맥락을 허위로 조작한 문재인이재명의 발언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말을 이어 붙여 마치 대한민국이 멸망 직전에 놓인 것 같은 망상을 전파하는 그 영상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시위와 태극기 세력이 충돌한다. 촛불시위는 윤석열 탄핵,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종전협정, 연방제 통일을 외치고 태극기 세력은 문재인·이재명 구속, 한미동맹 강화, 주사파 척결, 자유 통일을 주장한다. 북한 간첩들이 경찰복과 군복으로 위장하고 빌딩에 올라가 촛불시위대를 저격한다. 이성을 잃은 촛불 시위대는 총을 빼앗아 경찰을 공격한다. 북한이 전국에 구축해둔 지하 조직이 좌익 성향 국민을 선동해 전국 동시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중국인과 조선족 백만 명이 가세한다. 그들은 파출소와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하고 내전을 일으킨다. 북한 특수부대가 걷잡을 수 없이 혼란해진 대한민국을 침략한다. 좌경화된 국민은 김정은을 환영해 연방제 통일을 이룬다. 1946년 대구 폭동에서 시작해 제주 4.3, 여순반란, 5.18광주로 이어진 북한의 공작을 완성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자유 시민 천만 명을 학살한다. 천만 명은 보트 피플이 되어 일본으로 탈출한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권교체를 이루지 않았으면 벌써 일어났을 일이다. 일본 국회는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난민 대책을 논의했다. 대한민국 국민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윤석열이 혼돈에 빠뜨린 망상의 공동체의 미디어 생태계

이것이 가상현실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비상계엄을 선포해서라도 촛불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1년 전 이재명 대표의 목을 찔렀던 김진성이 그런 사람이었다. 윤석열도 그런 사람이다. 언론의 펜으로 죽이지 못했고 김진성의 칼로 죽이지 못했으며 한동훈의 법으로도 죽이지 못했던 이재명과 민주당을 제거하려고 윤석열은 특전사와 HID의 무장 병력을 동원했다. 민주당이 부정선거로 다수의석을 차지한 국회를 해산하고 선관위를 장악하려고 했다. 칼을 뽑은 김에 한동훈과 일부 판사들까지 해치우려 했다. 윤석열과 똑같은 망상을 가진 사람들은 온오프라인에서 교신하고 협력하면서 스스로를 자유 우파라고 한다.

 

전광훈이 자유 우파의 5대 유튜브라고 한 고성국TV전광훈TV이봉규TV신의한수펜앤드마이크TV의 구독자는 최소 20만 최대 160, 최근 업로드한 동영상의 첫 24시간 재생회수는 최소 10만 최대 100만 회 정도다. ‘대한민국 멸망 시나리오라는 가상현실을 전파하는 미디어는 그밖에도 많다. 성창경TV나 배승희변호사 등 널리 알려진 유튜브 방송은 구독자가 백만이 넘으며 유명하지 않은 유튜브 방송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들이 자유 우파라는 망상공동체1선 공격수다. 2선에는 <뉴데일리> <데일리안> <스카이데일리> 같은 극우성향 인터넷 언론이 있다. ‘망상 공동체의 바깥 경계 완충지대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문> <한국경제>를 비롯해 레거시 언론이라고 콧대를 세우는 보수 언론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윤석열 정권을 세우고 지켰던 미디어 생태계다. 그런데 윤석열이 그 생태계를 혼돈에 빠뜨렸다. 극우 유튜버들은 윤석열의 내란을 공개 찬양하면서 후원금을 모으고 광고 수입을 불리는 데 혈안이 되었다. 극우 인터넷 언론은 여전히 후방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발 하나를 뺐다. 보수 언론은 중립균형을 내세워 내란세력과 야당 모두에게 동등한 발언권을 제공하면서 생존을 도모하는 중이다. 그들은 윤석열이 자기네 말을 듣지 않고 1선의 수준 낮은 극우 유튜버를 추종한 탓에 망했다고 본다. 윤석열의 자리에 다른 보수 정치인을 갈아 끼우기 위해 앞으로는 이재명을 흠집 내는 작업에 집중할 것이다.

다시 말한다. ‘자유 우파망상의 공동체. 그들은 미친 게 아니라 위험하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배척하려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한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터무니없다고 여기는 사상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비록 소수라고 해도, 다수가 망상으로 간주하는 생각이라도, 무엇이든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관용의 땅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러나 무제한의 관용이 선은 아니다. 예외가 하나 있다. 불관용이다. 불관용은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최악의 불관용은 물리적 폭력으로 이견 집단을 배제하고 말살하는 것이다. 윤석열은 바로 그 짓을 하려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군대의 무력으로 정치적 반대 진영을 제거하려 했다. 서부지법에서 폭동을 저지른 윤석열 지지자들의 행위도 똑같은 것이었다. 관용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자유 우파의 5대 유튜브운영자들은 비상계엄을 찬양하고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했으며 공수처와 법원에 대한 공격을 선동했다.

그들의 행위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그들의 말을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보호해 주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렇게 긴 칼럼을 썼다. 나는 보호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아무도 폭력 행동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어야 하겠지만, 대통령이 불법으로 군대를 동원하고 추종자들이 폭력으로 법원을 짓밟는 상황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내란 선전 또는 내란 선동 혐의로 처벌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유시민 작가 | 시민언론 민들레 2025.1.20.

 

 

내란범죄에서 극우테러까지'윤석열들' 앞에 선 국가의 과제

위헌불법세력 발본하고 반() 기후·생명·노동·안전 정책 중지해야

일요일(19) 새벽 내란수괴 혐의로 윤석열이 구속되었다. 위헌적 폭거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따라 처벌과 회복의 절차를 밟고 있다는 안도도 잠시, 우리는 곧 탄핵 반대 극우집단이 자행하는 사법부와 경찰력에 대한 끔찍한 테러를 목격했다. 실체를 드러낸 극우의 폭동을 멈춰 세워 더 이상의 사회혼란을 막으려면 내란모의세력 뿐만 아니라, 동조세력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엄중하게 책임을 지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12.3 내란사태 이후 지금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수 시민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윤석열들'을 몰아낸 이후의 세상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본 가치를 고르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 공동체를 겁박한 위헌불법 세력을 발본하는 과정에서 국회와 사법부를 포함하는 모든 국가 기관과 공권력이 철저하게 제 직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요구는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권력은 개발독재와 군사독재를 거쳐 신자유주의적 국가로 전회한 지금까지 권위와 폭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억압착취해왔던 존재로서 시민들에게는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비춰 의미가 있다. 그 요구는 일시적으로는 독점적 폭력기구인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내란세력에 대한 법제도의 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기구를 신뢰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예외적인 국면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크게는 시민들이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국가권력의 쇄신, 즉 우리 삶에 직접 관여하는 모든 국가조직의 지향과 계획들이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바로 세우며 전면적으로 시민들의 편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권자의 의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권력은 이런 시대정신에 조응하고 있을까? 계엄선포를 인지했을 뿐만 아니라, 계엄해제 이후에도 내란세력에 동조하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시간 동안 행정부처에서 추진된 몇 가지 사업들을 보자.

19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 를 열었다. 이날 정부는 '병행진료 급여제한', '관리급여', '중증 중심 실손보험 개편' 등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쉽게 말하면 현행 제도에서 민간보험사의 손해가 커지므로 정부가 '보험금 지급기준 강화' 라는 정책개입을 통해 이들의 이익을 개선해 주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민간보험사들이 실손보험을 판매하기 위하여 비급여진료 보상을 약속했고 결국 이용자가 많아져서 손해율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잘못 설계된 상품을 판 보험사의 책임이 제일 먼저이다. 그러나 정부는 소수의 과잉남용 이용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의료공급의 왜곡을 만들어 내도록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보험상품의 문제를 나머지 대다수 가입자의 편익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기존 보험을 국가가 매입하는 방안을 포함시킴으로써 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사적 계약에 불합리하게 개입하려고까지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어디에도 환자에게 적정하고 적합한 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검증된 시스템, 실손보험사들이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던 중증질환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의무화하는 조치와 같이 정부와 보험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대책은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비급여 진료관리와 실손보험 개혁 의지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바이오헬스 또는 디지털 헬스케어 무엇이라 부르건 보건의료부문이 산업화의 수단이 된 이후, 정부는 지속적으로 규제 완화와 개인건강정보 활용촉진 등 비급여시장 개발의 불쏘시개가 되는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안전성과 효과성이 확인되지 않은 채로 시장에 진입하여 3년간 비급여를 보장받는 '신의료기술 선진입-후평가 제도',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보험사 개방 확대' 계획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시민들의 보편적 건강보장보다 보험산업과 제약의료산업이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일을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으로 거래하고, 관련 자본이 이윤율이 높은 시장을 점유하도록 정부가 나서서 길을 열어주는 사이 2023년도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전년 대비 0.8% 포인트 하락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1220일 한국석유공사 주도로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동해 심해가스전 개발을 위한 시추가 시작되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신규 원전을 증설하는 내용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확정을 서두르고 있다. 기후에너지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막대한 탄소배출을 우려하며 심해가스전 개발중단과 11차 전기본안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합리적 설명이나 대책 없이 강행하고 있다

또한 12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는 지방공항들의 조류 충돌 위험성, 공항설계의 안전성, 운영의 경제성 등을 전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환경운동단체들은 많은 신공항 예정지들이 무안공항보다 더 높은 조류 충돌 위험도가 예측된다며 신공항사업을 전면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가 묵인한 채로 국토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국의 신공항사업은 이 참사 국면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참사에 대한 애도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공항건설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한다는 신년계획을 내놓고 있다.

 

시민사회가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내란공모범의 혐의를 받는 장관들로 인해 행정부의 기능이 무력한 상황에서도 뜨거운 시대정신에 눈감은 일부 국가권력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의 경제권력의 이익을 위한 특정 계획들은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앞세워서 또는 국가의 혼란을 틈타, 미래세대와 동시대를 기만하고 자기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는 자본주의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내란의 주요 임무 종사자들인 김용현과 이상민 두 전직 장관의 퇴직금 신청 사실을 보라. 이들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한 행위에 대한 반성은 없지만 개인의 경제적 이해에는 빛의 속도로 민첩했다.

123일 이후 혹한의 50여 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광장을 열었던 사람들은 박탈되고 차별받고 자유롭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해왔다. 그리고 지금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삶, 서로가 연결된 존엄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을 서로가 약속하고 있다.

국가의 행정과 제도권 정치가 분노하고 또 열망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단지 한시적인 것 또는 정권 창출의 기회로만 여기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려면, 현재 기득권 세력들이 추진 중인 반()기후, 반생명, 반노동, 반안전의 정책 사업들을 즉각 중지시켜야 한다. 시민의 삶을 돌보는 정치, 체제와 담론에 깊게 자리 잡은 불평등에 개입하는 정치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상을 열고자 하는 시민들과 함께 광장을 함께 할 자격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건강연구소 | 프레시안 2025.01.20.

 

보수의 폭력에 너무 관대한 나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되기 직전 나라가 종북 좌파들로 가득 차 있는데, 2년 반을 더 해서 무엇 하겠나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내란죄 특검법을 종북과 이적, 위헌과 매국, 독재를 버무려서 만든 괴물이라고 비난했다. 어느 보수 언론은 윤 대통령이 종북 세력을 너무 몰랐다고 한탄했다. 방식은 적절하지 못했지만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는 뉘앙스다.

 

한국 보수의 머릿속엔 좌파를 척결해야 나라가 산다는 굳건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빨갱이란 단어가 종북으로 바뀌었을 뿐, 세상을 보는 시각은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보수에 비교적 폭넓게 퍼져 있는 이런 인식이 윤 대통령의 어이없는 계엄령 발동과 법치 부정, 극우 시위대의 법원 습격 사태를 불러온 근본 요인이 아닐까 싶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뉴욕타임스의 표현)인 대한민국을 바나나 공화국으로 추락시킨 건 종북 좌파가 아닌 극우 파시스트 세력이다. 또한 이들을 은근히 감싸는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 일부 기독교 집단의 책임이 크다. 윤 대통령의 선동과 이에 호응한 시위대의 무법 행동은 대한민국에서 위험한 반국가 세력이 진정 누구인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과 방식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격렬히 논쟁하고, 때론 충돌할 수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에 대한 동의와 믿음은 정파를 떠나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갈등을 최종 판정하는 기관이 사법부라는 건 모두가 인정한다고 믿었다. 극우 시위대의 난동은 민주주의에 관한 컨센서스(합의)와 공동체를 우선하는 공화적 가치의 존중을 무너뜨렸다. 적어도 대통령은 누구보다 국가 통합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리라는 믿음을 윤석열은 여지 없이 깨뜨렸다. 법원 습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달라라니, 이건 오히려 폭동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이번 사태의 핵심은 과격한 일부 군중의 일탈이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가 분열과 내전을 선동하고, 집권당 국회의원들은 지난 총선은 부정선거였다며 유언비어를 공공연하게 퍼뜨리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보수의 비겁함이다. 이들에겐 좌파의 폭력은 국가 전복이지만, 우파의 폭력은 통제되지 않은 소수의 과잉 행동일 뿐이란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으로 실체도 모호한 종북 좌파를 지목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를 보면 내란을 시도한 건 언제나 보수 세력이었다. 19615·16 쿠데타와 1972년의 10월 유신, 19805·17 쿠데타에 이어 이번엔 12·3 비상계엄과 1·19 법원 습격으로 내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좌파의 내란 시도로 규정됐던 사건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이나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나중에 모두 조작임이 밝혀졌다. 2013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됐지만, 2심에서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 의원은 한반도 전쟁을 대비해 다양한 물질기술적 준비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의 추상적인 강연을 했다는 이유로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8년 넘게 복역했다. 직간접으로 거리의 시위대를 부추기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행동은, 오직 발언만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이 의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고 편협한 퇴행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대통령 생일에 경호처 요원들이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위해 불렀다는 축하곡을 보면, 21세기에 이런 노래가 권력의 중심부에서 버젓이 불리는 데 아연할 따름이다. ‘845280분 귀한 시간들 오로지 국민만 생각한 당신’ ‘새로운 대한민국 위해서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대통령이란 가사에서, 세습 체제를 찬양하는 북한의 선전 가요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반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과 그를 감싸는 보수 진영은 시대를 거꾸로 거스르고 있다.

지금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건 파시즘으로 치닫는 극우 세력의 폭주와 야당 집권이 두려워서 이를 방치하는 보수 세력의 나약함이다. 보수가 윤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일부 정치세력과 단호하게 선을 긋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극심한 혼란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박찬수 | 대기자 | 한겨레 2025.01.20.

 

한국 정치 보는 미국의 세가지 시각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달링이었다. -미 동맹과 한··3국 협력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연합에서 가장 충실한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명분 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위협했다는 사실은 미국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 대통령의 행보와 그에 따른 한국 정치의 위기 국면을 보는 미국 내 시각은 크게 세가지로 갈린다.

바이든 행정부를 필두로 한 자유 국제주의자들은 거의 배신당한 느낌으로 윤 대통령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계엄선포가 미제로 끝나자마자 윤석열 정부의 후견인 역할을 해오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가장 먼저 심각한 오판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연이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이 철회되고, 예정됐던 핵협의그룹(NCG) 회의 관련 도상 연습도 연기되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충격적이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이임한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 대사도 계엄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불행한 사건이지만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한국의 민주적 절차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했다.

 

미 의회 쪽에서도 비판적 기류가 강하다.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결의안을 주도했던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과 앤디 김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비상계엄이 민주주의와 법치, 더 나아서는 한-미 동맹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도덕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미국 주류사회는 계엄 조치에 비판적이면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의 측근 인사들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한달이 넘고 윤 대통령이 탄핵의 벼랑에 서 있는데도 일절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주의 성향으로 보아 예측 가능한 현상이다. 그는 가치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며 다른 나라에 대한 불필요한 내정간섭을 반대한다. 지난 12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을 때도 우리 싸움이 아니다. 미국은 개입해선 안 된다고 곧바로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는 또한 트럼프 2.0 외교 정책 우선순위에서 한국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푸틴, 시진핑, 김정은 등 강력한 지도자와의 을 선호한다.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한 윤석열 같은 지도자에게 관심을 쓸 이유는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맷 슐랩 미국 보수주의연합(ACU) 의장이 지난달 14일 직무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을 극비 회동했고 2016년 대선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선대본부장을 지낸 폴 매너포트가 최근 비공개 방한해 홍준표 대구시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일부 여권 인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로 보아 이들의 행보는 유의미하게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자신만이 대한국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비상계엄을 지지하고 탄핵 세력을 적대시하는 시각도 있다. 냉전 반공주의에 둥지를 틀고 있는 미국의 극우보수 세력이다. 최근 미 하원 아태 소위원장으로 선출된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영 김은 지난 16더 힐에 실은 기고문에서 탄핵 주도 세력은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 중국에 대한 순응을 선호하고 이는 한반도 안정과 지역 전체에 큰 재앙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며 이들은 인도·태평양 안보에 사활적인 한-미 동맹과 한··3자 동반자 관계를 훼손하고자 노력해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대표적 인사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도 중국 개입론을 흘리면서 우려를 표한다. 시위와 정치 불안으로 윤 대통령이 퇴진하게 되면 중국이 한-미 동맹을 훼손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의 극우보수들이 주장하는 종북주의자 척결에도 공감한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비상계엄 조치에 비판적이고, 한국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환영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정치의 윤곽이 잡히고 차기 지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태도다. 문제는 냉전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극우 세력이다. 이들이 한국의 태극기 부대와 같은 극우 세력과 초국가적 연대를 구축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한국 정치에 부적절하게 개입한다면 한-미 관계는 전대미문의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5.01.20.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우리가 알고 있는 동서양 국가들 역사의 대부분은 왕정(王政)의 역사다. 현재 세계 대다수 나라가 민주주의를 정체(政體)로 표방하지만, 개인들 내면에는 적어도 2000년 이상 이어진 왕정시대에 침전된 습관이나 감정이 여전히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길게 보아도 100년 혹은 200년 정도 지속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정치체제다. 여전히 실험하고 수정하여 개선해야 할 것이 많은 제도다. 2024123일 대통령의 일방적인 계엄 선포와 즉시 뒤따른 국회에 의한 신속한 해제 이래 지속되고 있는 정치적 긴장 상황도 그런 내용의 일부이다.

 

중국과 한국의 전통시대 왕정은 유럽의 왕정보다 대체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이었다. 통치 영역의 넓이나 왕조의 지속 기간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왕조의 지속 기간에서 한국의 전통 왕조는 중국보다 장기간 유지되었다. 예컨대 중국의 마지막 두 왕조인 한족의 명나라(1368~1644)와 여진족의 청나라(1616~1912)가 각각 276년과 296년을 유지했다. 두 왕조는 중국 역사에 등장했던 왕조들 중에서 성공적인 왕조였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1392년에 건국하여 1905년 혹은 1910년까지 적어도 513년 이상 유지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왕조나 국가도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나라 안팎에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것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응하는가가 나라의 수명을 결정한다. 조선왕조의 장기 지속은 조선왕조 체제의 문제 대응의 효율성과 정치적 안정성을 증명한다. 정치적 안정성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일어난 일들을 효율적으로 극복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선에서도 지금 개념으로 말하면 공식적인 정치 쿠데타가 두 번 있었다. 100년 간격으로 일어난 중종반정(1506)과 인조반정(1623)이 그것이다. 전자는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이 즉위한 사건, 후자는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가 즉위한 사건이다. 흥미롭게도 중종반정인조반정반정은 쿠데타의 뜻에서 反政에 가깝지만 反正으로 쓴다. ‘反正은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요즘 뜻으로 본다면 정치적 올바름상태, 즉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헌법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모두 반정으로 불리지만, 그 성격에서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개인적 성향, 통치 스타일, 나아가 폐위된 이후 생존 기간도 크게 달랐다. 연산군이 조선의 정치 이념과 관행을 정면으로 부정한 사나운 임금, 폭군이었다면 광해군은 온전히 그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혼란스러운 정치 행위를 했던 혼군에 가까웠다. , 연산군은 폐위된 지 두 달이 조금 지나서 사망했던 반면에 광해군은 폐위된 후 18년을 더 살았다.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모두, 반정 자체의 성격과 반정 이후 전개된 정치적 양상은 상통했다. 이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123일 이후 진행된 상황에서 한 가지 두드러진 양상이 눈에 띈다. ‘헌법의 재발견이 그것이다. 국회가 계엄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헌법 조문 한 글자 한 글자가 현실적으로 큰 힘을 갖는 것을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2016년 겨울의 촛불혁명이 헌법 11항과 2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현실로 소환했다면, 이번엔 훨씬 세부적인 사항까지 헌법이 현실로 소환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탄핵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치 헌법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123일 밤 계엄군을 막아선 시민들의 행동과 대한민국 헌법은 오랜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기억과 의지의 소산이다. 요즘 회자되는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한강 작가의 말이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님을 지켜보는 나날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 경향 2025.01.22.

 

부끄럽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충격이 충격을 덮는, 각종 초유사태의 폭풍 속을 지나면서, 국민들이 가장 자주 마주하는 감정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아닐까 싶다.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집단적 수치심을 안긴 충격적인 장면 몇 가지만 추린다.

 

“845280분 귀한 시간들 오로지 국민만 생각한 당신” “새로운 대한민국 위해서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대통령이 태어나신 뜻깊은 오늘을 우리 모두가 축하해”. 20231218일 대통령실 강당에서 대통령경호처 창설 60주년 기념행사를 빙자해 열린 윤석열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의 생일잔치에 울려퍼진 축하곡이다. 북한에서나 있을 법한 윤비어천가에 희희낙락했을 윤석열의 낯두꺼움에 국민들은 부끄럽다.

 

김용현 국방장관이 국회해산권이 존재했던 예전 군사정권 때의 계엄 예문을 그대로 필사했다. 나는 (이러한) 문구 잘못을 부주의로 간과해 바로잡지 못했다.” 윤석열 변호인단은 지난 14일 김 전 장관이 계엄 포고령을 잘못 베껴 위헌적인 내용이 포함됐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한마디로 쟤가 그랬다며 책임 떠넘기기를 한 것이다. 지난 21일 헌재에 출석한 윤석열은 포고령은 부하가 쓴 것을 형식적으로 공포한 것으로, 자기는 실행할 생각이 없었다는 설명까지 더했다. 포고령의 위헌성을 피하기 위해,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계엄을 마치 별것 아닌 것처럼, 장난처럼 얘기했다. 찌질함, 무책임의 극치다. 국민들은 부끄럽다.

 

윤석열이 경호처 부장단과의 오찬에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때) 총을 쏠 수는 없냐고 묻자, 김성훈 경호처 차장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는 진술도 있다. 이광우 경호본부장은 기관단총 2정과 실탄 80발을 대통령 관저 안으로 옮겨두라고 했고, 관저 근무 경호관들에게 2정문이 뚫릴 경우 기관단총을 들고 뛰어나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석열은 부하들을 범죄로 내몰아 인생을 망치고, 인간방패로 이용하려 했다. 그 비정함이 국민들은 부끄럽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몰고 간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조장했다. 체포 직전 한남동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끝까지 싸우겠다” “뜨거운 애국심에 감사한다고 했고, 체포 직후엔 나라 법이 무너졌다고 선동했다. 폭동에 비판이 일자,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국가적으로는 물론, 개인에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평화적인 방법의 의사표현을 당부했지만, “새벽까지 자리를 지킨 많은 국민들의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뒤끝을 남겼다. 그는 대한민국 전체를 호명하지 않는다. 한 줌 지지자들에 고무돼 골목대장처럼 선동을 서슴지 않고, 지지자들 뒤에 숨으려는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부끄럽다.

 

호기롭게 제기했던 부정선거론은 갈수록 말이 바뀌며 쪼그라든다. 체포 당시 윤석열은 부정선거의 증거가 너무나 많다더니, 변호인단은 헌재 2차 변론에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 것이라 했다. 3차 변론에서 윤석열은 “202310월 국정원이 선거관리위원회 전산장비의 극히 일부를 점검한 결과 문제가 많이 있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부정선거 자체를 색출하라는 게 아니라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스크리닝(점검)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던 것이라며 팩트를 확인하자는 차원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부정선거 의혹, 시스템 점검이 비상계엄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의혹이 있다면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해 법적인 틀에서 규명하려 노력했어야 한다. 22일엔 현 정부 들어 중앙선관위에 대한 압수수색이 30차례 진행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선관위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비상계엄의 명분을 쌓았던 거짓말이 또 확인된 셈이다. 상식적인 시민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윤석열의 허술한 논리와 아무말대잔치, 무개념이 부끄럽다.

 

계엄 폭탄 때문에 밝아야 할 설 명절이 참으로 암울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켜보는 국민들의 부끄러움의 목록도 늘고 있다. 지난해 설 윤석열은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노래를 부르며 언제나 국민 곁에 함께하는 따뜻한 정부가 되겠다는 동영상을 올렸다. 내란 사태가 몰고 온 뜻밖의 좋은 점은 이 같은 가식적인 명절 인사를 안 받아도 된다는 점, 그가 말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머지않아 이 모든 부끄러움들과 결별할 수 있다는 역설적 희망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 | 경향 2025.01.22.

 

 

찾는 일과 되찾는 일

찾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없는 것을 얻거나 여기 없는 사람을 만나고자 살피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희망과 이상을 좇고 새집과 새 친구를 구하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인생의 목표를 간구하는 일에 대해. 잃거나 빼앗기거나 맡기거나 빌려주었던 것을 돌려받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유실물을 다시 손에 넣고 상실했던 주권을 회복하는 일에 대해. 헤아려보건대 찾는 일의 근간에는 으레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

 

찾는 일은 환희와도 연결된다. 부푼 마음으로 고향을 찾을 때, 숨 돌리기 위해 여행지를 찾을 때 우리는 설렌다. 안식처나 해방구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쁘다. 좋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모든 일의 중심에 양심을 두는 일 또한 능동적으로 찾는 행위다. 여기에는 취향과 신념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관공서, 병원 등 기관을 방문하는 일은 회복을 통한 찾기의 실천이다. 잃어버린 꿈과 명예, 신뢰와 긍지, 심신의 건강을 원래의 상태로 돌이킴으로써 삶을 기쁨으로 물들이겠다는 적극적 선언이다. 찾는 사람은 결심한 사람이고, 나아가 그 결심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이다.

 

2024123일 이후, 여전히 12월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새해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한겨울에 촛불이 되어 광장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음력으로 날짜를 계산해서가 아니다. 새해를 제때 맞이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은 이전 세대가 피땀으로 힘써 이룩한 것을, 내가 지금껏 공들여 찾아냈던 것을 단박에 부정당하는 경험이었다. 국회 봉쇄와 침입,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등에 대한 체포 지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난입에서 발견되는 위헌성은 명명백백하다. 한술 더 떠 이날 발표된 비상계엄 포고령은 국민의 정치활동 자유를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언론출판의 자유 또한 속박하는 것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행위를 금한다라는 포고령의 문장은, 포고령이 그 자체로 자유민주주의를 구속하는 모순임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날 이후 많은 시민이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내란성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 주변에도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초조해서 폭식하고 걱정에 시달린 채 불면의 밤을 보낸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휴대전화로 뉴스 새로 고침을 반복하기도 한다. 비상계엄이 촌극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누군가는 그 후유증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소동이나 소란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동이 아니다. 소요다. 소란 정도가 아니다. 내란이다. 거기에는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만들고 기득권을 영구히 유지하고자 하는 불순한 목적이 있었다.

 

실체가 없는 불안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실체가 있지만 그것이 언제 우리를 덮칠지 몰라 가중되는 불안은 삶을 찍어 누른다. 되찾아야 한다. 개개인의 평정심을,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사회의 평화를. ()은 고르게 한다는 의미의 접두사로, 순조로운 상태를 지향한다.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의 소중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안온한 상황 속 가 찾는 일을 주도한다면, 되찾는 일에서는 내가 놓인 불안정한 상황을 이겨내는 게 먼저다. 불안을 안도로 바꾸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경찰은 경찰의 임무를, 법원은 법원의 책무를, 시민은 시민의 의무를. 되찾음에 깃든 다시도로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

되찾는 일은 찾는 일보다 더 절박하고 기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찾았던 것을 누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를, 민주주의를. 시간이 흘러도 이것들은 절대 낡지 않는다

오은 시인 | 경향 2025.01.22.

 

확증편향적 신념에 대하여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사회체계이론>에서 근대사회가 여러 하위 체계들을 병렬적으로 진화시켜 온 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근대사회의 각 하위체계들인 법체계, 정치체계, 경제체계, 학문체계 등이 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매체, 코드, 기능 등을 발전시켜 왔다고 본다. 예컨대 법체계와 정치체계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세계이며, 각자 서로 다른 코드를 통해 스스로를 타 체계와 구분해왔다. 법체계가 합법인가 불법인가라는 코드로 자신을 특화해왔다면 정치체계는 통치하는가 통치받는가라는 코드로 스스로를 인지한다. 요컨대 합법성과 통치성의 개념은 서로 기원이 다를뿐더러 섞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근대사회 원칙과 같은 것이다.

 

반면, 최근 12·3 불법계엄 이후 등장한 일련의 사태는 합법성과 통치성의 대립 혹은 법체계와 정치체계 사이의 갈등 구도를 보여준다. 헌재 심판에서 윤석열의 변호인단은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이에 대해)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는 심판할 정보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주장해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고유 경계를 고의적으로 흐리게 한다. 어쩌면 이러한 논리적 혼합과 왜곡은 합법성과 통치성이란 서로 다른 두 세계 코드가 그의 뇌 안에서 합선되어버린 윤석열의 머릿속에서는 처음부터 익숙한 것일지 모른다. 많은 정치검사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죄인을 지목하고, 그 죄를 입증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곤 하지만, 이런 검사생활을 거쳐 대통령까지 된 그가 보여주는 합법성과 통치성의 개념적 혼란은 가히 환각적 경계성 장애를 능가한다.

 

이 와중에 자주 등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역시 이러한 법체계와 정치체계 사이의 경계 넘기와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야당이라는 정치 주체를 정치체계 안에서 상대할 수 없으니 이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불법이라는 법체계의 영역으로 밀어내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법적 증거로서의 부정선거 의혹이었는 듯싶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사회가 확증편향적인 사회심리의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태도이다. 최근 이런 확증편향적 이념과 정보들은 정치권 및 정치화된 사이비 종교집단에 의해 확대되고 유튜브 미디어에 의해 그 편향성이 가속화되면서 일종의 정치적 재생산 사이클을 구축하게 되었다. 특정 지식과 정보가 확증편향 메커니즘을 통해 악무한적으로 확대되는 동안 이 괴물은 수많은 인간들을 숙주 삼아 자기증식을 성공리에 달성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극우 이념으로 세뇌된 정치 세력들이 탄생하였다.

 

앞서 말한 합법성을 침범하는 통치성에 대한 과대망상이 민주주의의 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확증편향성을 통해 사회를 편가르기 하는 것도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중대 적이다. 불행히도 서부지법 난동사건은 그런 정치세력화의 산물이다. 법원은 이 사건을 중히 보며, 엄히 처벌할 것을 선언하였다. 물론 난동은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근원은 법적 처벌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참가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이렇게 만든 확증편향성이라는 사회적 바이러스이다.

확증편향성은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으며 그 안에서 인간은 숙주다. 바이러스를 잡아야겠지만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들을 죽일 수는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경로를 차단하고 그 증식에 적합한 환경을 제거해야 한다. 극우 집회에 참여하고 동조하는 다중은 우리와 똑같이 한국 사회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를 느끼는 시민들이다. 사회적 이념의 대립은 치유 대상일 뿐 처벌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를 우리 사회가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욕망과 좌절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며, 또한 무엇이 이들을 폭력적이면서도 세뇌적인 정치집회로 내모는지 탐색할 필요가 있다.

 

정치 이념은 대부분 상황학습이나 경험학습 혹은 사회학습 등 무형식적 학습의 메커니즘을 통해 전파되고 특정하게 배치된 집합적 연결망 안에 집단적으로 증식한다. 모든 생각과 이념은 어떤 방식으로든 학습을 통해 체화된다는 점에서 확증편향성을 치유하는 사회적 임무는 학습과 교육의 문제다. 만일 극우보수라는 사고방식의 재생산을 막고 싶다면 단순히 그들을 비난하거나 처벌하기 전에 그 지식생명체의 DNA 증식 고리를 끊고 이들을 재학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경험하는 정치담론 학습 체계의 실태를 분석하고, 이들을 위한 비판적 정보문해력 학습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 경향 2025.01.22.

 

미국 우선주의와 금융시장에 쌓이는 불안

2016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힐러리를 누르고 당선이 확실해질 무렵 애플의 CEO 팀 쿡은 회사 인트라넷에 서한을 올렸다. “동료 여러분, 저는 오늘 많은 분들로부터 대통령 선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다른 두 후보자가 이번 선거에서 대등한 표를 얻었습니다. 여러분이 선거에 대해 격한 감정을 품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중략) 향후의 불확실성에 대한 논의가 오늘 있었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애플의 목표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시켜드립니다. (중략) 동료들이 불안감을 느낀다면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실 것을 권합니다. 앞으로 나아갑시다. 다 함께!”

팀 쿡은 당시 공개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고, 미국 서부의 실리콘밸리는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이기도 했다. 팀 쿡의 서한에는 트럼프라는 문제적 인물이 백악관에 입성하는 데 따른 당혹감이 묻어나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빅테크 기업인은 온라인 지불 시스템인 페이팔을 창업한 피터 틸이 거의 유일했다.

이번 대선 때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페이팔에서 피터 틸과 동업을 했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진작에 트럼프 캠프에 합류했고, 오랜 기간 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온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이자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의 대주주인 제프 베이조스도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이 밖에 거짓뉴스와 관련해 트럼프와 각을 세웠던 메타 플랫폼스CEO 마크 저커버그도 트럼프 진영으로 돌아섰다. 애플의 팀 쿡 역시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에게 100만달러의 기부금을 낸 데 이어, 트럼프와 여러 차례 직접 통화를 하면서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 제대로 작동 못해

트럼프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빅테크 기업들의 태도 변화는, 일시적인 역풍으로 치부되기도 했던 트럼프 현상이 미국에서 확실한 주류 질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보호무역주의도 더 이상 주변부 정책으로 폄하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은 좋은 거래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카드라기보다는 강력한 자기확신하에 진행되는 정책으로 봐야 할 듯하다.

 

일반적으로 보호무역이 초래할 비용으로 소비자들의 후생 악화가 거론되곤 한다. 관세 부과 등으로 수입품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진다. 이에 대해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말했다. “더 이상 미국인이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 살아선 안 된다. 일자리를 아웃소싱함으로써 지역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렴하게 소비해서 얻는 이득보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데 따른 비용이 더 크다는 인식인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값싼 수입품을 들여오는 유통자본과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배치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이 된 제임스 밴스 역시 쇠락한 공업지역에 사는 백인 하층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힐빌리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를 썼다. 이 책은 제조업의 쇠퇴가 단지 경제적 이슈를 넘어 인간 존엄을 해치는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정부는 보호무역이 물가를 자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미국이 정상화된 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유무역의 잣대로 평가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확신범이라 불려도 무방하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대체됐고, ·FTA에 대해서도 재협상이 이뤄진 바 있다. 특히 USMCA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발효됐음에도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번 미국 신정부 관세율 인상 공세의 타깃이 되고 있다. USMCA와 같은 다자간 협상이 외국 기업들이 미국 경제에 우회해 침투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은 증시에 부정적 영향

흥미롭게도 트럼프 행정부는 FTA 안에 들어가곤 하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 제도(ISDS)에도 반대하고 있다. 통상 ISDS는 다국적 기업이 국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2007년 한·FTA의 국회 비준 과정에서도 ISDS가 미국 자본이 한국 정부를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될 수 있어 한국에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외환은행 인수에 참여했던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는 ISDS를 활용해 한국 정부로부터 총 4500억원에 달하는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원칙적으로 ISDS에 반대하고 있다. ISDS가 미국 자본의 해외 유출을 불러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 NAFTA가 발효된 이후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은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했다. 인건비가 싼 멕시코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면서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이익을 늘릴 수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자들은 ISDS라는 투자자 보호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재산권 보호 등이 미흡한 나라들로 미국 자본이 이탈하면서 미국 내 제조업 공동화의 한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금융시장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인플레이션을 감내해야 할 비용으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물가 불안이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면 금융시장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당장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작년 9월부터 미국은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5.25~5.5%4.25~4.5%)했지만, 오히려 시장금리는 급등(국채 10년물 3.64%4.60%)하고 있다. 금리 상승은 장기적으로 가격부담이 큰 미국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주가수익비율(PER) 26배인 미국 주식시장(122, S&P500지수)4.6%의 장기금리를 견뎌낼 수 있을까. 보호무역주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금융시장의 교란은 그 진심을 시험하는 첫 번째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 경향 2025.01.23.

 

이날 평상 봄이 안 온 적이 없어

쓰러진 한마리 개 옆에 주저앉아 떨며 죽음의 과속을 멈추려는 사람

오염물 뒤집어쓴 흙과 죽어가는 벌레와 풀, 잘린 나무의 신음을 듣는 사람

저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겠습니다

먹고 먹히는 계산법을 넘어 자연의 경이에 무릎을 꿇는 사람

자비와 분노가 한통속인 사람

서로 밥이 되어주기를 바라 마지않는 사람

저는 그를 형제이자 스승으로 받들겠습니다

절망조차 사치임을 아는 사람

탄식 속에서도 벌거벗은 인간의 영혼에 호소하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는 사람

아흔아홉의 낙담 속에서도 한줄의 희망을 꿰는 사람

죽어가는 나무에게 물을 주는 사람

저는 그를 친구이자 동지라 믿겠습니다

폭력과 탐욕으로 얼룩진 인류 역사의 나쁜 책들을 태우고

절멸을 향해 가는 마지막 페이지를 고쳐 쓰는 당신이 촛불입니다

스스로를 태워 자기를 갱신하는 대지처럼

폭염과 산불과 가뭄, 광폭한 바람과 비,

물과 불조차 치우친 압도적인 비대칭 속에서 세계가 피 흘릴 때

대지에 씨앗을 심는 당신이 촛불입니다

촛불은 밤이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

콩처럼 타작되는 죽음 곁에 당신이 있습니다

가도 가도 수평인 바다처럼 뭍 생명이 숨 쉬는 광장은 우리 모두의 것,

움켜쥘 수도 떼어 갈 수도 없습니다

서로를 비추는 통 큰 불빛,

자기 몸 녹여 세상을 밝히는 촛농처럼

빛을 나눠 가진 우리가 촛불입니다

-, ‘당신이 촛불입니다’, 김해자 시집 <니들의 시간>

 

겨우내 마주한 만행산은 눈사람, 머리에서 발끝까지 흰 눈을 뒤집어썼다. 키세스 같다. 산이 통째로 흰 봉분 같다. 밤마다 새 은박지 두른 듯 나무 하나하나가 하얗게 빛났다. 세계를 하얗게 고쳐쓰며 한자리에서 나무마다 눈 맞으며 견뎠겠다.

잡지 <전라도닷컴>에서 만든 기획특집 앞으로 봄을 보다 오랜만에 오래 웃었다. 지난해 123일부터 하루하루가 그날인 듯, 불안하고 때로 낙담하던 마음을 단번에 날려버린 구수한 말씀의 주인공들은 오일장 장터를 떠도는 사람들의 나도 하고자운 말이 있소.

 

자유, 자유를 외쌓더니 저만 혼자 자유할라고 즈그 거시기들만 다 갖다세와놨어. () 높은 자리에 앙겄다고 가치가 있가니.” 갯벌에 출정해 굴을 캐다가 함평장 한 귀퉁이에서 굴을 까서 한 보시기에 만원에 파는 임영애씨(84) 말씀이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틀린 짓거리를 하고 경우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는 일갈이다. “요 호미로 이 시상 못쓰게 맹그는 것들도 요러코 쏙쏙 뽑아내불믄 좋을 것인디. 시작할 때는 널룹게 보여도 한 고랑 한 고랑 매다보문 끝이 있어. 겨울 지나문 봄 오대끼.” 무안 월두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김영임씨(67) 말씀이다.

 

국민들 눈에 눈물 흐르는 것도 모르고.” “소도 그만치 갈치문 진작이 알아들어.” “나쁜 것을 쳐내고 존 것을 키워야제.” “동지 지났응께 하로하로 봄이 가차와.” 푸성귀 키우며 파래와 감태와 매생이 캐며, 새벽 너댓 시부터 하루 12시간씩, 닷새 중 하루 쉬며, 해남장과 완도장과 남창장과 강진장을 떠돈다는 고된 삶들이 입말을 입과 귀에 넣어준다. 지치지도 낙담하지도 마라.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이 안 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대한이 지났어도 대한민국은 눈사람, 고장 난 칠흑의 세계를 고치는 중이다. 어제는 조만간 도래할 미래, 추위와 고통, 실패의 가능성마저 껴안고 미래로 돌진해왔다. 나라도 하나 더, 한자리 지키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새들이 날아간다. 울음과 노래를 떨어뜨리며. 못되고 힘센 말들이 일용할 양식보다 높은 세계와는 결별하겠다는 듯이. 새들이 눈 위에 미래를 떨어뜨린다. 소리의 길이 열린다.

김해자 시인 | 경향 2025.01.23.

 

지옥에서 벗어날 용기

희망의 조짐과 절망의 조짐이 교차하는 나날이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LA 산불은 사람들이 애써 일군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킨 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가 초래할 지구적 재앙의 서곡인가 싶어 아뜩해진다. 그 혼란의 와중에도 빈집에 들어가 약탈을 감행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고, 약탈자 가운데는 소방관의 복장까지 갖춰 입은 이들도 있다 한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재난 속에 피어나는 인정의 꽃도 있다. 기쁨은 개별적이지만 고통은 보편적이다. 많은 자원봉사자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미국의 작가 리베카 솔닛은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라는 부제가 붙은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자연이 한번 손을 대면 전 세계가 친구가 된다고 말한다. 타자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이야말로 분열된 세상의 치유제가 아닐까?

 

15개월간 지속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의 전쟁이 잠정적 휴전 상태에 돌입했다. 인질과 포로 교환 등 세부적 절차가 남아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은 전쟁으로 인해 죽거나 다친 이들의 숫자를 나열하지만, 그들은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이다. 그 생명을 파괴하고 죽일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광대하고 광막한 우주에서 생명의 탄생과 성장과 죽음이라는 드라마가 전개되는 지구란 행성에 초대받은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서부지법에서 벌어진 난동 사태는 충격적이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토대 자체를 허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과격주의가 도를 넘었다.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이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무도한 권력에 저항하던 이들이 찾는 마지막 도피처는 명동성당이었다. 공권력은 그곳에 숨어든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함부로 진입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경계를 지키는 것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무언의 약속이 무너지는 순간 세상은 전쟁터로 변한다. 옛날에는 아기가 태어난 집 대문이나 현관에 금줄을 쳐놓았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두 가닥으로 꼰 새끼줄에 숯덩이와 빨간 고추를,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작은 생솔가지와 숯덩이를 꽂았다. 금줄을 보면 방문자들은 태어난 아기를 축복하며 발길을 돌렸다.

 

근본주의자들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한다. 선과 악,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날카롭게 대립할 뿐 그 사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 배중률이 작동되지 않는 세계는 위험하다. 근본주의자들은 모호함을 못 견딘다. 머뭇거림은 악덕이다. 이 과도한 열정이 종교적 외피를 입으면 상황은 훨씬 심각해진다. 자기들의 행위를 신의 뜻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이들을 제거하는 일은 숭고하다고 여긴다. 여당의 한 유력한 정치인은 난동에 가담한 이들을 일러 거룩한 전쟁에 참여한 아스팔트 십자군이라 칭했다. 그는 십자군 전쟁이라는 기독교 역사의 오점을 자랑스럽게 호명하고 있다. 과격 시위자들의 행동을 부추기기 위한 수사라곤 하지만 그 표현 속에 내재한 피비린내를 그는 짐짓 외면하고 있다.

 

세상의 소란스러움에 지칠 때마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침묵 속에서를 떠올린다.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 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시인은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른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한에서 입춘으로 이행하는 이 계절에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을 식히기 위해 잠시 멈출 수 없을까? 절망의 조짐을 희망의 조짐으로 전환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영성가인 토머스 머튼은 지옥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고 서로를 떠날 수도 없으며 그들로부터 떠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지옥에서 벗어날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 경향 2025.01.23.

 

서부지법 폭동의 뿌리, '극우 내란' 발화점 진압해야

민주·법치주의는 반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역사에 반동은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프랑스 혁명의 테르미도르 반동이 그랬고,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촉발시킨 '브뤼메르 18' 역시 혁명의 물줄기를 역류했다. 1815년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의 비인 회의는 프랑스 혁명의 주권재민과 입헌군주, 인민주권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반동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2·3 비상계엄 이후 두 달이 다 되도록 국민의힘은 아직도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을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고, 지난 주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폭도들의 폭동에도 원론적인 말 이외에 법치주의를 파괴한 행동이라는 그 흔한 비판 메시지 하나 없다. 윤 대통령이 구속되는 날 그의 변호인단은 "엉터리 영장 발부로 법치가 죽고, 법 양심이 사라졌다"는 궤변을 쏟아냈다. 115일의 체포영장 집행으로 윤 대통령이 관저에서 나오던 날,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를 "사법쿠데타"로 명명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 폭도들의 법원 난입은 윤 대통령과 그의 수하들이 무장한 병력으로 헌법기관을 침탈한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영장을 한낱 종이조각으로 보고, 국가의 공권력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재단하면서 무법천지를 당연시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내란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내전'을 획책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내란을 국가원수의 통치행위라고 정당화하고, 사법심사 대상이 안 된다는 논리를 설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궤변을 앞장서 전파하고 내란을 정당화하는 국민의힘은 정당으로서 존재할 가치가 없다.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적 정당 질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내란 혐의가 명백한 행위를 비호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 당사자에 대한 구속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민주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절차의 문제를 부단히 야기하는 것 역시 법치주의에 대한 광의의 부정이다. 사법논쟁과 법적논란을 끝없이 제기하지만 법원은 정확하게 법에 따라 그들의 시도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기소 후에도 이들은 수사의 주체, 영장 발부의 관할 문제 등을 제기해 왔다.

 

헌법재판소 재판에서도 변론기일을 한꺼번에 정한 문제 등 헌법과 법률에 따라 아무 문제가 없는 부분들을 끊임없이 제기할 것이다. 이는 방어권 차원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방어권이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의 반응은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절차들을 부인함으로써 극렬 지지자들로 하여금 탄핵 반대와 내란 혐의 수사를 지연시키려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도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지난 21, 헌재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이 보인 모습은 억지와 궤변, 거짓과 강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극우가 주장하는 부정선거 이슈 쟁점화를 시도하면서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늘어놓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헌재 변론에 적극적인 것은 법정 밖의 변론을 염두에 둔 전략일 것이다. 사법부를 침탈하는 반민주적 폭도들과 계엄이 정당했으므로 탄핵은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 세력에게 보내는 집회 논리를 설파하기 위한 것이다. 헌재 변론은 그대로 공개되기 때문이다.

 

11일 낸 메시지에서는 "주권침탈 행위와 반국가 세력의 준동을 막기 위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이 메시지는 물론이고 윤 대통령과 그의 대리인들,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부단히 극렬 태극기 부대에 대해 탄핵 반대와 계엄을 옹호할 수 있는 궤변을 발신하고 있다.

이 반동은 반드시 진압되어야 한다. 부정선거 얘기는 이를 주장하는 극소수의 정치인과 무리들을 제외하곤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부정선거 논란을 헌재 법정까지 끌고 들어온 윤 대통령과 그의 무리들의 프레임이 강성 극우의 무리들에게 견강부회의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

 

헌재의 탄핵심판과 형사법원의 내란죄 재판은 아직 남아있으므로 사법적 결론은 나지 않았으나 이미 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평가는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헌재의 234차 변론기일에서의 피청구인 윤석열과 피의자 겸 증인이었던 김용현의 궤변과 거짓이 날것으로 국민에 공개됐다. 이러한 내란과 선동, 반동과 혹세무민도 곧 제압될 것이다. 반동은 항상 존재했지만 역사의 장강에서는 한낱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다. 역사는 반동을 잠시 허용하지만 결국은 민주와 평등을 향한 진보를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5.01.24.

 

 

다음 사회를 위한 연대

연말연시 공포와 혼돈, 분노가 부딪히는 두어 달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모두가 뉴스의 홍수 속에서 떠밀리고 있었고, 거기에서 벗어나기엔 사안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급류에 휩쓸리고 부딪히는 것 같으면서도 각자 두 다리로 어떻게든 땅에 발을 디디려고 애쓴 시기였던 것 같다. 발을 디디려고 애쓴 땅이 어디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내가 떠내려가지 않을 수 있는 땅은 아마도 연대였던 것 같고, 특히 청년들과 노동자들의 연대가 나에게는 제일 발을 디디고 서고 싶은 땅이었다.

 

농민들의 발걸음을 묵묵히 따라 밤을 새우며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하는 남태령의 사람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와 걱정의 순간, 무슨 일이 발생하면 금속노조 깃발을 따라가면 안전할 거라는 정보를 공유하는 에스엔에스(SNS) 속 사람들. 이 사람들이 같이 걷고, 밤을 지새우며, 믿은 사람들이 노동귀족이라고 비난을 받던 사람들이었고, 항상 외롭게 그리고 그만큼 무섭게 투쟁을 하던 농민들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생경했다. 이렇게 만날 수도 있는 거였다.

 

정부에서는 노동약자 또는 미조직 노동자라고 이야기하고, 세계노동기구에서는 비표준적 고용(non-standard employment)이라고 부르는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전통적 의미의 조직 노동자들과 함께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 열린 것이다. 노동정책과 관련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여서, 특히 국가의 민주주의 체계 자체를 흔드는 일이어서 가능한 공간이었겠지만, 애써 갈라치기를 하려고 하는 갈등의 주체들이 함께 모인 것이다. 물론 그 정도로 모든 이슈와 뉴스를 삼킬 만한 사건이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인 노동문제 해결이 시작되길 바란다. 누군가가 어젠다를 던지고 이에 집중하는 시대가 아니긴 하지만, 다양한 노동자들의 어젠다가 중요하게 다뤄지기를 바란다.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이미 안다. 노동관계법이나 사회보험 제도 등을 통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전통적인 노사관계에 근거한 노동자들이 많지 않다.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계노동기구는 2025113차 국제노동회의 어젠다 중 하나로 플랫폼 경제에서의 양질의 일자리 실현을 제시하고 플랫폼 경제에 대한 기준 설정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기존의 표준적 고용 형태에서 벗어난 임시직, 파트타임, 대기 근무, 용역 및 기타 다자 고용 관계, 위장 고용 및 종속적 자영업, 재택근무를 모두 포함하는 다양한 비표준적 고용 형태가 디지털 노동 플랫폼의 발달과 함께 두드러지고 있으니 이렇게 새롭게 변화한 노동시장에 부합하는 노동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다. 2024년 말 정부와 여당은 소위 노동약자지원법이라는 것을 발의했다. 해당 법의 한계를 고려하여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쉬운 논의는 아닐 것이다. 너무나 다양한 요구와 현실이 있을 것이고, 정책의 결정은 결국 어느 수준의 합의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변화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양질의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 기준을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순위가 다르고 관심의 수준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기본선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노동자들의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데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과학기술이 중립이지 않으며 무엇을 위한 과학기술이냐가 중요하다는 인식 속에 함께 그 밤을 지새우려는 그 마음이 서로의 삶을 보호하고 지탱할 수 있는 단단한 땅이 되어줄 수 있다.

 

이미 살짝 늦은 것 같기도 하고, 어디에서 어떤 형식으로 논의를 하는 게 좋을지 난감하기도 하지만, 이번의 만남이 해결책을 만드는 긴 여정에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노동시장의 격차가 커지고, 노동자와 자본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액화노동의 세상에서 소위 노동약자를 착취한 주범이라 지목되거나 구시대적이라고 비난받던 그들과 젊은 여성들이 한 공간에서 만났다. 누군가를 위한 정책이거나 누군가에 대한 반면교사로서의 정책이 아니길 바란다. 새해 이러한 만남이 하나의 공간적 공유에 대한 경험을 넘어 다음 사회의 단초가 되길 바란다.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 한겨레 2025.01.30.

 

비상계엄이 부른 혼돈, 파국 아닌 전환의 새길 찾기

전환의 국면은 기존 질서 체계를 뒤흔드는 충격적 사건을 통해 갑자기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사회가 가진 조건과 역량에 따라 전환의 국면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새로운 차원의 길을 열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비상계엄이 초래한 혼돈 속에서 나타난 극단주의 문제와 시간의 정치, 개헌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자.

 

극단주의라는 괴물의 출현

느닷없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격동과 혼돈의 시간이 두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권력 정점에 있는 현직 대통령이 체포, 구속되고, 입법 기관인 국회와 사법 기관인 법원이 물리적 폭력에 의해 침탈되는 등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초유의 일이 혼란스럽게 펼쳐지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판단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지혜(智慧)를 모아 파국이 아닌 사회 대개혁, 나아가 문명 대전환의 길을 찾고 만들어내야 할 때다. 지혜는 말 그대로 이치를 제대로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두 가지 놀라운 현상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는 많은 이들이 주목하듯이 응원봉 집회, 선결제 등 시민들이 보여준 높은 창의성과 역동성이다. 이런 현상은 비록 아직은 미결정 상태이지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놀라운 현상이 또 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을 통해 우리 사회가 그동안 지켜온 공동의 규범과 상식이 가볍게 무시되고 파괴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생결단식 대결과 갈등을 촉발해 우리 사회를 소위 심리적 내전 상태로 내몰고 있다. 입장과 견해의 차이가 긴장과 불편의 차원을 넘어 증오와 분노,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나는 이런 현상을 극단주의의 출현으로 부르고자 한다. 그동안 없던 것이 새롭게 등장했다기보다 잠재되어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서 득세(得勢)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현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언어 사용도 혼란스러운데 대표적인 것이 자유민주주의.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지하는 쪽도, 계엄을 비판하면서 탄핵을 주장하는 쪽도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교과서 개정 등을 둘러싼 논란처럼 이전에도 이념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민주주의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병행 표기처럼 조정과 타협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극단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자유민주의 본질적 가치를 조롱하고 형해화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초래한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된 국회를 범죄자 집단, 괴물, 파렴치한 반국가 세력으로 부르며 비상계엄을 선포해 놓고,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 신념으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보수주의자라기보다 극단주의자에 가깝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척결’, ‘처단’, ‘사형’, ‘해체같은 폭력적 언설들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진보/보수, 좌파/우파가 아니라 극단주의가 문제

민주사회라면 다양한 가치와 견해들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은 양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다. 그런데 극단주의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민주주의의 훼손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를 지속불가능한 상태로 빠트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진보, 보수가 아닌 극단주의에 있다. 맹목(盲目)적 믿음으로 단정(斷定)하고, 선을 그어 편가르기하고, 다양성에 대한 비관용과 배타적 태도를 보이고, 상대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극단주의는 진보/보수, 좌파/우파 같은 단순한 이분법 구도 속에 숨어서 영향력을 키운다. 이런 극단주의의 바탕에는 사상적 빈곤과 사유의 게으름, 집단 이기주의가 함께 도사리고 있으며, 이것이 사리 분별력을 상실한 광신(狂信)과 모리배(謀利輩)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양비론을 비판하면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도 다양성을 질식시키는 극단주의의 한 모습이다.

 

극단주의(extremism)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나 급진주의(radicalism)와도 성격이 다르다. ‘내 생각이 옳다는 강한 자기 확신’(self-confidence)은 지적 능력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집단화 된 우리 편 편향’(myside bias)과 쉽게 결합한다. 이런 경향은 각종 알고리즘 기술과 함께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영향력 확대를 위해 극단주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이런 극단주의가 위기 인식과 결합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위기 인식이 커질수록 호흡은 가빠지고 시야는 좁아지고 판단은 성급해지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확증편향에 기반한 극단주의는 파국적 경로를 선택하도록 만든다. 극단주의가 횡행하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물론이고 창조적 대안의 영역을 질식시켜 전환의 길은 차단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극단주의가 보수와 진보 진영은 물론이고 노동과 젠더, 생태 등 다양한 영역에도 존재할 수 있으며, 전환의 주체 또한 자기 확신과 집단적 신념의 오류에 빠져 오히려 전환을 가로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은 성찰해 봐야 할 지점이다.

 

정치의 시간과 기후위기의 시간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로 헌재(헌법재판소)의 시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헌재의 결정 여부에 따라 대선과 개헌의 시간이 작동할 가능성 또한 커졌다. 이처럼 다양한 차원에서 정치의 시간이 작동하는 가운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기후위기의 시간이다.

 

지난 12일 세계기상기구(WMO)는 보고서를 통해 작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1.55도 상승한 것으로 관측됐다고 밝혔다. 이것은 지난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세계 각국이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설정한 한계선 1.5도를 처음 넘어선 것이다. 세계 과학자들이 산업화 전과 대비해 지구 평균기온이 1.5도를 넘는 상황이 지속되면 지구 생태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라 경고한 만큼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1.5도 상승 제한선을 넘은 것이 작년 한 해의 일시적 현상이면 좋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기후위기의 임계점이 점점 앞당겨질 것이 분명하다.

 

현실정치의 시간에 묻힌 기후위기의 시간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대응 요청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기대에 한참 못미친다. 심지어 지구적 기후위기의 최대 원인 제공자인 미국은 최근 기후위기 대응에 오히려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제47대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 행정명령을 통해 2015195개의 당사국이 참여해 채택한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고, 전기차 의무화 폐지를 지시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지역을 강타한 대형 산불이 수십 일간 지속되면서 많은 지역을 황폐화하고 유례 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국에서 일어난 산불 확산에 통제 불능의 모습을 보이는 데는 건조한 환경과 강풍 등 기후 변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 취임식을 의회 의사당 앞 야외무대에서 실내로 급히 옮기도록 한 북극 한파 또한 기후 변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극단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트럼프 정부는 기후위기의 시간을 애써 외면한 채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 패권 확대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기후 문제는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핵심 과제로 좌/, 진보/보수 등 기존의 이념적 틀을 넘어서 인류 전체가 온몸으로 체감하는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후위기의 시간이 현실 정치의 시간에 묻혀서 전환에 필요한 황금 같은 시간을 그냥 흘러보내는 일들이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목격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전환, 전환 정치가 필요하다

전환의 시대를 맞아 정치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면 적대 정치, 세력 대결 정치로 인해 자기 혁신과 성찰을 소홀히 한 채 전환 정치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다. 정치권 스스로가 갈등 당사자가 된 가운데 불신과 갈등을 자양분으로 삼은 팬덤 정치가 확산되면서 정치 생태계는 더욱 척박해졌다. 기후 변화를 비롯한 지속 가능성 위기의 시대에 현실 정치는 오히려 지속 불가능성을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모습이다.

 

선거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지금의 정치구조로는 기후 문제를 비롯한 지속 가능성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정책의 호흡이 짧고, 정권 교체시 기존 정권과의 과도한 차별화로 정책적 일관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우며, 관료주의의 장벽에 갇혀 정책적 연계성과 통합성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다 기존의 개발 성장체제가 만들어 놓은 관성이 여전한 가운데 상대적 박탈감에 기반한 지역주의가 선거 정치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를 통한 성장동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탕에는 새로운 나라를 향한 유권자들의 소망이 경제 살리기에 있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새롭지가 않다. 개발독재 시절의 경제성장 제일주의 논리가 수십 년을 흘러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사회-경제적 지속 불가능성은 계속 심화되어 왔다. 따라서 기존 기득권 정치 집단 간의 수평적 권력 이동 수준에 머무는 정치개혁은 한계가 있다. 사람을 교체하고 제도를 바꿨는데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데는 심층적인 차원에서 권력이 변함없이 그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전환, 전환의 정치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는 인물 교체, 제도 개혁의 차원을 넘어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와 인식체계 등 다차원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전환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도 중요한 문제다. 리더십은 당면한 핵심과제와 처한 맥락 및 조건 등에 따라 달라야 한다. 공고한 기득권 체제가 만든 유리천장을 깨트릴 송곳 같은 리더십, 갈라지고 흩어진 영역을 아울러 포용하는 리더십, 새로운 차원의 비전을 제시하고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리더십 등 다양한 유형 가운데서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리더십을 필요로 하나? 지금의 시대 상황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 있으면 정말 다행이고 만약 없다면 찾고 만들어야 한다. 우리 유권자 시민들의 안목과 역량만큼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리더십을 찾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체 리더십 없이 급조된 외부 대선 후보 영입한 집권당

이번 12.3 내란 사태를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 공감은 하지만 흔쾌하지는 않다. 제도를 탓하기 전에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이 가진 극단주의적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전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현 대통령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반복해 왔고 결국 지금 사태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이런 특이한 리더십이 어떤 과정을 통해 등장했는가다. 국민의힘당 내에서 경험 축적과 검증 과정 없이 선거를 앞두고 외부에서 급히 후보를 영입해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당대표도 외부에서 영입하는 등 자신들의 정치 리더십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정당으로서 기본 역할조차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런데 해당 정당은 지금의 사태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은 전혀 없고 남 탓 하기 바쁘다.

 

중앙집중화된 권력의 폐해나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헌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정치권은 책임있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정당법, 선거법 개정에 대한 요구를 외면한 채 정치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데는 민주당의 책임도 크다. 민주주의가 다양성에 기반한다고 하는데 당내의 다른 목소리들을 배제하면서 팬덤정치에 기대고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은 두 정당이 보여준 공통된 모습이다. 이러다 보니 정당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권력구조를 바꾸면 과연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물론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어떤 기준으로 바꿔야 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누구나 알듯이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다. 결국 우리가 당면한 핵심 과제와 현실적 조건에 맞는 권력구조를 채택하고 이것이 가진 장점은 높이고 단점은 줄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치 생태계가 건강하게 자리잡고 시민사회의 의식과 역량이 확장되어야 한다.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 논의를 기대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사회 대개혁에 대한 목소리와 함께 국민주도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매우 중요한 일이고 반갑다. 국민주도 개헌은 국민들의 주권적 권리를 헌법에 반영시키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돈보다 생명을 이야기하고 국가 대개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지만 구체화되지 못했고, 촛불시민들의 열망은 결국 수평적 권력 교체로 흡수되어 버렸던 경험을 잘 살펴봐야 한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사회 대개혁, 나아가 문명 대전환을 위해서는 선거를 통한 리더십 교체, 헌법과 법률 개정 등 제도적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 저변을 흐르는 가치 및 인식 체계의 변화가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주어진 안건에 대한 투표 행위자에 머물러선 안돼

이러한 측면에서 앞으로의 개헌 논의는 위기를 전환으로 바꿔내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개헌 국면을 맞아 수많은 사회적 의제들이 표출될 텐데 이것을 모으고 꿰어내고 숙성시켜서 핵심 가치와 과제를 찾고 정리해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개헌 논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야 할 제7공화국의 미래상을 놓고 함께 고민하고 상상력을 발전시키면서 우리 시민사회의 사회 정치적 의식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앞으로 개헌 과정에서 국민은 주어진 안건에 대한 투표 행위자에 머무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의사결정 과정은 물론 의사형성 과정에서부터 적극 참여하면서 의견을 표출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이 충실하게 이루어질 때 극단주의가 일으키는 대립과 갈등의 폐해는 최대한 줄이고 기후위기의 시간은 민감하게 읽어내서 전환과 차원 변화를 통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규호 생명학연구회 부회장 | 시민언론민들레 2025.01.25

 

서부지법 폭동 군중의 증오는 만들어진 것이다

118일 오후 150분께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법 앞 인도에서 일단의 군중이 윤석열! 윤석열!’을 연호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을 태운 호송차가 그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법원에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그들은 손에 들고 있던 태극기를 흔들거나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었다. 집회 주도자의 선창에 맞춰 윤석열을 석방하라’ ‘불법 영장, 체포 무효등의 구호를 외쳤다. 손에는 주로 위조 공문, 불법 체포’ ‘Stop the Steal’이라는 손팻말이 들려져 있었다. 가끔 탄핵 반대, 이재명 구속이란 손팻말도 보였다.

 

주목을 끈 것은 그날 집회 참여자들의 표정과 분위기였다. 필자는 서부지법에서 공덕역 방향으로 약 20~30m 떨어진 곳에 서 있었는데, 공덕역에서 서부지법 쪽으로 시민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왔다. 긴장된 표정으로 상당히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후 2시에 피의자 심문이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던 만큼 서둘러 서부지법 앞으로 가려던 것으로 보였다. 도로가에는 경찰 버스들이 차단막을 치고 있었고, 그 앞으론 정복 경찰들이 도열해 이들의 도로 진입을 막고 있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한 시민이 도로 쪽으로 가려다 막히자 경찰들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대통령을 불법 체포했는데 왜 우리가 법을 지켜!” 필자의 눈에는 경찰이 23중으로 그냥 서서 도로 진입을 차단하고 있을 뿐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탄핵 찬성 집회는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의 현장 같던 분위기였다면 그 집회엔 불안과 분노 같은 게 팽배했다. 판사가 영장을 기각해주길 기대하는 분위기도 일부 있었다. 주로 노인층이 많았고, 20~30대 젊은층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히 반헌법적·불법적이었고, 몇차례의 소환 불응에 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했는데 이들은 어떤 연유로 이곳에 모여들어 불법 영장, 체포 무효를 외치는 걸까. 또 전광훈 목사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도 법원 판결로 사실무근임이 드러났는데도 믿지 않으려는 걸까. 누군가에 의해 선동당하는 군중이란 게 바로 모습이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필자는 다른 일정이 있어 현장을 떠났다.

 

필자가 그곳에 있을 때만 해도 집회는 서부지법 양편의 인도에서만 이뤄졌다. 다음날 새벽 서부지법이 군중에게 처음 뚫렸던 후문 쪽에는 시위대가 별로 없었다. 참석 인원은 대략 2천여명으로 추정됐다. 나중에 극우 유튜버들의 생중계 동영상과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해보니, 시위대는 오후 3~4시께 급격히 불어났다. 전광훈이 주도했던 광화문 집회 인원들이 서부지법으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 뒤부터 시위대는 서부지법 건물을 빙 둘러싸고 구호를 외쳤다. 다음날 새벽 259분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군중 사이에선 격한 분노의 감정들이 쏟아졌다. 일부 시민은 판사에게 쌍욕을 해대며 밤길 조심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후문 쪽에선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지다 결국 경찰 방어선이 무너졌다. 한 청년은 수신호로 들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동영상을 확인해보면, 경찰은 비폭력을 유지하며 시위대의 진입을 막고자 노력했다.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경찰은 시위대에 애원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경찰이 일부러 길을 터줬다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없는 것으로 보인다. 서부지법 정문이 뚫린 것도, 시위대가 정문 옆의 창문을 깨고 난입한 뒤 건물 안쪽에서 경찰을 협공하자 물러난 것이었다.

 

법원 난입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일부가 7층 판사실까지 올라가 특정 판사를 찾는 모습은 정말 섬뜩했다. 법정과 판사실 문을 하나씩 발로 차며 어딨어?”라고 소리지르며 수색까지 했다. 분노와 증오를 넘어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당시 법원 내부에 피신했던 직원은 눈빛들이 너무 정상이 아니어서 상대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무법천지처럼 돌아다니는 시위대가 너무 처참해서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전국공무원노조를 통해 한겨레에 전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21세기 한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갑자기 발생할 수 있었을까. 필자가 동영상을 찾아보며 그날 사건을 굳이 복기한 것도 그 연유를 알고 싶어서다. 동영상에 비친 일단의 군중은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 그날 서부지법은 군중의 광기가 표출된 일대 사건임이 분명하다. 기자 생활 30년 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난동을 부리는 이런 섬뜩한 군중을 접하기는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군중의 분노와 증오심을 만들어내고, 종국에는 이런 폭동까지 유발한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군중의 분노와 증오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들의 구호와 주장들이 상식적 수준에서 바라볼 때 너무나 터무니없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이 이를 믿게 된 것은 누군가 지속적으로 거짓 정보를 참인 것처럼 선전해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거짓된 정보라도 끊임없이 머릿속에 주입하고, 특히 사회적 공인이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면 거짓 정보도 참처럼 보이게 된다. 공인의 인정을 계기로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부정선거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광훈 같은 극우 정치꾼들과 극우 유튜버들이 20204월 총선 때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했으나 주변부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변방에서 떠돌던 음모론이 정치 공론장으로 격이 갑자기 올라간 것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관의 체포·구속 문제도 유사하다. 윤 대통령과 변호인들이 법적 절차마다 불법 딱지를 붙이며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국민의힘 주류가 동조하면서 이들의 주장이 마치 다퉈볼 만한 사안이거나 심지어는 진실인 것처럼 둔갑한 것이다.

 

군중의 분노와 증오는 누군가에 의해 유도된 것임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은 정당한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하며 때로는 편지로, 때로는 영상으로 극렬 지지층을 자극했다. 경호처의 호위무사들은 위력을 과시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떼로 몰려와 사수대를 자임했다. 마치 윤 대통령의 불응과 거부가 정당한 행동인 양 비쳐지도록 했다. 엄동설한에 관저를 지켜온 극렬 지지층은 결국 그가 체포되자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석동현 변호사 같은 이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같은 말까지 공공연히 꺼냈다. 특히 폭동 사태가 발생한 18일은 오전부터 상황이 극적으로 돌아갔다. 법 집행을 무시해오던 윤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에 직접 출석하겠다고 갑자기 발표했다. 그의 출석 소식이 알려진 것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기 불과 3시간 전인 오전 1055분께였다. 극렬 지지층은 일말의 기대를 안고 서부지법으로 급하게 오게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40분간이나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극렬 지지층은 밤늦도록 서부지법을 에워싸고 구호를 외치거나 북을 치며 판사를 압박했다.

 

군중이 흥분에 휩싸이면 집단적인 군중심리에 빠져들어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군중 속 개인은 난폭해지기 쉽다. 다수가 함께 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익명의 뒤에 숨을 수 있어 무책임해진다. 그날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자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지면서 이성을 잃은 이들이 속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부 극단주의 성향의 개인들이 선두에서 손짓을 하며 조직적으로 유도한 정황도 보인다. 청년층은 이런 유혹에 더 취약해 파괴적 행동에 참여할 위험이 있다.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날의 폭동은 유도되고 만들어진 정황이 상당하다. 윤 대통령도 폭력은 안된다고 주장하니 그가 그날 밤 폭동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시민들이 이런 군중으로 돌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23일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 변론에 출석한 윤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그가 의도한 술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날 주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직접 증인신문을 하며 자신의 행동대장김용현과 말 맞추기에 나섰다. 질문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을 먼저 얘기하고 김용현의 대답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썼다. 김용현에게 증언을 이렇게 하라는 신호를 준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잡범이 아니라 통 큰 대도임이 분명하다. 공개 법정에서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 맞추기를 시도하니 말이다. 윤 대통령 쪽은 군 사령관들의 증언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사실마저도 뻔뻔스럽게 부정했다.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한 게 아니라 요원을 끌어내라고 했다는 궤변까지 동원됐다. 마치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는 듯하다. 윤 대통령 쪽은 이런 식으로 헌법재판소를 농락해 대통령직 파면을 어떻게든 모면해보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와 변호인단이 한사코 내란죄 수사를 헌재 탄핵 재판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탄핵 재판에서 이겨 대통령직을 유지하면 내란죄 수사도 유야무야시킬 수 있다는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꿈을 꾸기엔 국회에서의 증언과 검·경 및 공수처의 수사로 이번 내란 사태의 진실이 너무나 많이 드러나 있다. 하루빨리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이번 폭동 사태는 우리나라에서도 극우 세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단초가 될 위험이 있다. 주변부에서만 맴돌던 극우 세력이 공론장을 흔드는 무시못할 세력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과거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시기 득세했던 극우 세력이 반공주의에 기반한 것이었다면 이번 폭동의 주도자들은 극우 대통령의 탄핵 반대와 부정선거 의혹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특히 법원에 난입해 건물 집기를 마구 파손하고 방화까지 시도했으며, 심지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를 공격하려 했다는 점에서 극단주의화하고 있다. 이 세력은 극우 개신교 일파라는 조직력과 극우 유튜버라는 선전도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극우세력의 득세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시킬 잠재적 위험성을 갖고 있다.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보수든 진보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인과 시민이라면 극우 세력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그들이 세를 불리는 것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정치 윤리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 주류가 이런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 주요 정당이 극우 세력에 사실상 포획되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

박현 논설위원 | 한겨레 2025.01.26

 

 

민주주의 킬러, GDP 킬러

윤석열의 계엄령 사태가 초래한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할부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라는 우울한 문장으로 끝을 맺었던 국제경제전문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의 칼럼(포브스, 2024126) 제목은 윤석열의 필사적인 곡예가 한국의 지디피(GDP·국내총생산) 킬러인 이유였다.

 

칼럼 제목처럼 12·3 내란사태가 한국 지디피의 살인자라는 사실이 속속들이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실질 지디피 성장률은 0.1%로 집계됐다. 이는 내란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의 전망치인 0.5%보다 0.4%포인트나 낮아진 것이다. 한은은 정치 불확실성 확대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민간 소비에 악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내란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의미다. 0.5% 성장률을 가정했을 때 4분기 실질 지디피는 575770억원이지만 성장률이 0.1%일 때는 5728550억원이다. 22220억원이 감소한 것이다.

 

내란사태의 영향은 지난해 4분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올해 성장률을 1.9%로 전망했는데, 최근 이를 1.6~1.7%로 하향 조정했다. 역시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경제심리 위축이 성장률을 0.2%포인트 낮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성장률을 1.9%로 가정한 실질 지디피는 23324130억원인 반면, 1.7%로 가정하면 23278350억원에 그쳐 45780억원이 줄어든다. 내란사태로 인한 지난해 4분기 지디피 감소분과 올해 예상되는 지디피 감소분을 합치면 68000억원에 이른다. 7조 가까운 지디피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청구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란사태 전 1400원 안팎을 오르내리던 원-달러 환율은 내란사태 다음날인 124일 단숨에 1410원까지 치솟았고, 이후 상승세를 지속해 147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글로벌 강달러 등의 영향 외에 정치적 이유로만 오른 환율 상승분이 30원 정도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경기를 떠받치고 서민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했지만 고환율 탓에 한은은 지난 16일 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 안정세로 접어들었던 물가도 환율 상승 탓에 다시 들썩거리고 있다.

 

고용 쇼크도 일어났다. 지난해 12월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52000명이 줄어들었다. 취업자 수가 감소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2월 이후 처음이다. 한은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12월에 88.4에 그쳐 11월에 비해 무려 12.3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의 하락폭이다. 1월 들어서도 3.0포인트 반등하는 데 그쳤다.

 

대외신인도도 갉아먹고 있다. 정부는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에 한국의 국가 시스템이 차질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하려 애쓰지만, 신용평가사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당장 국가신용등급에 변동은 없겠지만 국가 이미지 실추는 피할 수 없다. 페섹은 칼럼에서 현대 아시아에서 계엄령 시행자를 떠올릴 때, 투자자들은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타이, 그리고 이제는 한국까지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법 폭동사태는 한국은 불안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켰을 것이다.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고 거침없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와중에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사실도 불안감을 키우는 지점이다. 지난해 1127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 신정부의 보편관세 가능성, 후발국의 기술 추격 등을 거론하며 향후 6개월이 우리 산업의 운명을 가르는 골든타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겨우 일주일 뒤에 내란사태가 터졌다. 세계 경제의 질서가 바뀔지도 모르는 이 6개월의 골든타임 동안 우리 정부와 국회가 적확하고 밀도 있는 대응책을 펼쳐나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인가?

 

망상에 사로잡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후퇴시킨 민주주의의 킬러는 국민들이 생계와 일상을 영위하는 터전을 파괴하는 경제 킬러이기도 하다. 하루라도 빨리 내란사태를 법적·정치적으로 마무리하는 것만이 국민의 고통과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다.

안선희 | 논설위원 | 한겨레 2025.01.26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일까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들은 원자재보다 완제품을 수출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컴퓨터, 자동차, 항공기와 같은 제품을 수출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할리우드, 힙합, 민주주의와 같은 문화를 수출하는 것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미국 민주주의가 완성된 시스템은 아니다.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부유층이 의회 자리를 사들이는 현상, 특정 정당에 유리한 선거구 재조정, 고착화된 양당제 등 명백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를 고취하려 애썼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두번째 취임식에서 미국의 원칙이 아니라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데 더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가격을 낮추고 전략 비축분을 다시 채우며 미국 에너지를 전세계에 수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자동차를 밀어주고, 미군을 강화하며, 파나마운하를 되찾겠다고도 약속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민주주의 홍보를 중단하는 것은 어쩌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이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탄핵했지만, 미국 의회는 트럼프가 법을 위반했음에도 두차례나 탄핵에 실패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도 미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시민 참여와 낮은 경제적 불평등을 이루어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자리를 내려놓지 않으려 시도했던 전과자다. 법을 어기고 백악관에 머물려 한 혐의는 유죄 판결을 받을 만큼 강력했지만 2024년 대선 승리로 사건은 사라졌다. 감옥을 피하는 것이 대선에서 승리하려 했던 주요 동기였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했다면, 그는 선거가 도난당했다며 나라를 분열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그는 승리했지만, 득표율은 49.9%로 거의 60년 만에 가장 적은 차이로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부터 독재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일에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행정명령을 발표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행정명령은 새로운 일이 아니며,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대통령 권한 확대에 협력해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출생 시민권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헌법 자체에까지 도전했다. 202116일 의회 폭동 가담자들을 사면하며 연방 정부를 공격한 이들에게 처벌이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메시지도 전달했다.

 

트럼프는 정부 규제 기관을 대폭 축소해 미국인의 안전을 지키는 기관들을 무력화할 계획이다. 연방 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보수적인 주 정부, 기업, 종교기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트럼프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혁명은 공공기관 파괴를 목표로 한다.

 

트럼프는 노동자의 영웅을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자신 주위에 크렘린 스타일의 과두제를 형성했다. 일론 머스크는 그의 내각에 선택된 억만장자 중 가장 부유하고 눈에 띄는 인물일 뿐이다.

 

미국 민주주의는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위대한 제도를 해체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트럼프의 첫번째 임기를 견뎠다. 그의 두번째 임기도 견뎌낼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는 국가의 근본을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 규범이 계속 약해지고 있다. 2028년 대선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헌법의 임기 제한 규정을 무시하며, 비상사태를 선포해 집권을 연장하거나 자신이 지명한 후계자를 독재적으로 백악관에 들일 수 있다. 자신의 후계자가 패할 경우, ‘선거가 도난당했다202116일의 폭동보다 훨씬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이미 분열된 미국을 완전히 붕괴시킬 수 있는 전국적 반란이 될 것이다. 미국 최악의 시나리오는 쿠데타, 최선의 시나리오는 내전이라는 뜻이다.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 한겨레 2025.01.26.

 

마음으로 필사하는 사회계약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당시 서구 사회의 변화에 탈신비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술과 마법의 힘에 의존하고, 인간의 이해를 넘는 신비한 영역을 인정하던 시대를 지나, 무엇이든 설명하고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합리적·과학적 신념이 퍼져나가던 시대의 흐름을 포착한 말이었다. 그가 언급한 관료제는 오로지 합리성과 법에 의해 권위를 확보하는, 신비함이 벗겨진 의사결정 기계다. 베버는 어디까지 옳았는가.

 

훌륭한 합리성에서는 모종의 신비함이 느껴진다는 역설은 차치하고라도, 신비에 대한 감각은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합리성만으로 확보할 수 없는 정당성을 국가 제도에 부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법원이다. 법원은 여전히 법복을 입고 있는 법관이라는 세속적 성직자들이 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권위에 힘입어 사회의 현존 질서를 지탱하는 법률의 의미를 새겨주는 성스러운공간이다. 삼권분립하에서 민주공화국의 최후의 보루, 기본권의 마지막 수호자 같은 주술적인현판이 달려 있는 하나의 세속적 신전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독립성뿐 아니라,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된다는 인간의 원초적 정의감과 두려움이 역사적으로 응축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근대적 모습의 신성을 불러일으키는 제도가 사법부다. 그 신전의 제사장들인 법관은 오로지 법, 그리고 따지고 보면 신비한 개념인 양심에 따라서만 판결한다. 개개의 판결이 부당하다 생각되어도 사법부 전체는 그 개별성을 훌쩍 뛰어넘는 독립성, 중립성, 합리성, 그리고 자유와 질서의 상징이었다.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의 꽃 중 하나이자 현 정국 중심에 있는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5공화국까지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헌법위원회가 현행 헌법에서 헌법재판소로 재설계되자, 초기 헌법재판소는 당시 권위주의 정권의 막대기였던 사회보호법 5조 보호감호에 대한 위헌 선언, 억울한 이들이 호소할 곳 없었던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등 적극적 판단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헌법재판의 가치를 각인시켜왔다. 행정수도 이전 등 사회적 논란의 한가운데 있던 사안들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2017년 대통령 탄핵 결정과 같이 제6공화국에는 헌법적 이슈에 대해 비가역적 최종 판단을 내릴 권위가 있는 신성한기구가 있다는 사회적 신념이 자리 잡아 왔다.

 

2025119일 새벽의 사건이 유난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현대 국가의 한 성역, 사회적 약속이라는 성스러운 휘장이 둘러쳐진 공간의 경계가 무너진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이 국회가 침범당한 2024123일 밤과 법원이 침범당한 119일 이후 말을 잃어가는 것은 탈신비화의 맨얼굴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비함이 극복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부정되고 폭력적으로 파괴됐을 때 무슨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직감한 것이다.

 

그러나 파괴적 탈신비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정치인들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일들을 사법화했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엔 자기애적 찬사를, 반대의 경우엔 유감과 비판을 넘어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노골적 언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에겐 정쟁의 방책으로 치부될지 몰라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사회계약은 조금씩 훼손되어 갔다.

 

자유로운 시민들은 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현실의 사법부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 민주적 원리에 따라 구성된 제도가 아닌 것도, 역사적으로 늘 민주주의 편에 서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순간에도 정의를 세우지 않고 상처받은 시민들을 싸매주지 않았던 판결들이 머리에 떠오르며 망설임을 강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과 시민들은 사법부에 권위를 부여한다. 그것이 사회계약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재판관 자격 논쟁과 법리 논쟁에서 보듯이 이데올로기적 충돌의 시대에 신비함의 외투가 벗겨진 권위에는 힘이 없다. 결국 현대에도 신성함의 감각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으로 남아 있다. 그마저도 아니라면 노골적 폭력만이 남는다. 그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아니라 억압하고 파괴하는 힘일 뿐이다.

 

국가를 강조해 온 보수도, 국가를 비판해 온 진보도 제도가 무너져가는 모습에 당황했다. 공화주의적 제도를 지탱하려는 의지는 보수와 진보가 다를 이유가 없다. 최근 헌법 필사가 유행이라고 한다. 수도사들이 경전을 조심스레 필사하듯 우리 마음에 필사해둔 사회계약은 무너지지 않는다. 기후 위기와 전쟁의 가능성에 직면한 후대의 시민들에게 찢어진 사회계약서까지 남겨줄 수는 없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경향2025.01.26.

 

반사회적 의견광고의 숙주 매체

청년 백골단과 자유민주 민병대는 반란군을 체포하라.” “불법, 좌익, 용공 헌법재판소를 심판하라!”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이나 탄핵반대 집회장에서 뿌려지는 전단지 내용이 아니다. 조선일보 지면을 가득 채운 의견광고다. 광고주에게 돈을 받고 지면만 내줄 뿐이라고 발뺌할지 모른다. 하지만 광고는 지면과 함께 독자의 신뢰를 광고주에게 파는 행위이기도 하다. 길거리 전단지보다는 영향력 있는 언론에 실린 광고에 더 믿음이 가는 이유다. 불량식품은 생산자뿐 아니라 판매자도 처벌받는다. 광고나 콘텐츠도 다르지 않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9배스킨라빈스 핑크스타광고가 여자 어린이가 진한 화장을 한 채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입술을 근접 촬영해 보여줘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켰다는 이유로 CJ ENM 등에 법정제재인 경고를 내렸다. 세계적으로도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추세다. 독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 혐오표현을 삭제하지 않은 페이스북 등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또한 유럽연합은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해 서비스 사업자가 혐오와 차별 표현, 허위 정보 등 불법적 정보를 걸러내지 않을 경우 글로벌 매출액의 6%까지 과징금을 매길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의견광고에 대한 신문사의 관여와 책임의 정도는 플랫폼의 유해콘텐츠에 대한 그것보다 훨씬 무겁다.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신문사가 적극 관여해 유치한 당사자이므로 광고내용을 확인하고 심의해 편집할 권한과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서부지원 침탈폭동은 극단적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이나 극우집단, 유튜버들의 선동에 더 큰 책임이 있지만 언론의 의견광고도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확성기 노릇을 한 매체도 공동정범이다. 표시 광고법에서 부당광고는 실제로 기만당했다는 입증 없이 그럴 가능성과 우려만으로도 제재한다. 의견광고가 직접적으로 폭동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긴 어렵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점에서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현존하는 위험이다. 의견광고는 비싼 광고비를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시민들이 공적 담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기도 한다. 그렇다고 민주적 기본질서 자체를 파괴거나 공동체를 훼손하는 것까지 용인하진 않음은 물론이다. 특히 공론장을 형성하는 핵심기반인 언론이 표현의 자유에 기생해 반사회적 의견 광고를 퍼뜨리고 부추기는 현실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공적 책임을 얽어매는 단단하고 야무진 제도적 고삐가 필요하다.

 

첫째, 의견광고는 광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지어 광고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일상과 미래까지도 그 자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공공의 적이다. 상품이나 서비스 광고는 이용 소비자나 경쟁기업으로 영향이 제한된다. 반면 의견광고는 공공의 질서와 안녕 나아가 사회적 체제와 제도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에게 훨씬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둘째, 의견광고는 광고와 피해의 인과관계 및 피해 주체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법적 구제가 쉽지 않다. 그만큼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규제를 통한 보호가 필요하다. 셋째, 사회적 법적 실체가 명확한 매체사에 책임을 부과하는 게 실효적이기 때문이다. 광고 내용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광고주에게 있지만 조직적 체계가 없는 일시적 단체나 개인 모임인 경우도 많은 의견광고는 광고주의 소재 파악이나 책임 주체의 범위를 특정하기가 그리 단순하지 않을 수 있다. 유럽연합 등이 유해콘텐츠에 대해 플랫폼에 책임을 지우는 까닭이다. 사실상 심리적 내전 상태에 이를 만큼 갈등과 대립이 깊어진 우리 사회에서 증오와 적대감을 부추기는 의견광고를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정연우 경향신문 독자위원장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명예교수 | 경향2025.01.26.

 

몽매한 망상이 활보 못하게

학생들에게 줄곧 상상력이 지성이라고 말해왔다. 독서와 토론, 경험과 성찰을 토대로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풍부하고 구체적인 상상력을 기르는 것이 고등교육 수혜자의 시민적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부, 경험, 성찰로 구체화되는 상상력의 반대편에는 무지한 망상이 있다. 망상을 장착한 사람은 당면한 문제 앞에서 곧잘 자신을 피해자로 착각하는 자기연민에 빠지고, 자기보다 취약한 존재를 발명하듯 찾아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자주 비열해진다.

 

트럼프는 유명해진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중임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번 취임식에서 자국민 보호는 못하면서 불법 이민자에게만큼은 피난처를 제공해왔기에 미국의 사회적 질서가 무너진 것이라는 거짓 선동과 자기연민을 쏟아냈다. 이것은 저임금과 제도적 보호 밖에서 일해온 수많은 이주노동자 덕분에, 20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엄연한 사실에 대해 무지한 발언이다. 다 가졌으면서도 다 뺏긴 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인지 오류, 망상의 결과이기도 하다. 정권 잡은 여당과 대통령이 합심해 흩뿌리는 부정선거, 반국가세력, 빨갱이, 중국인 등의 언설이 판치는 작금의 한국 상황을 보면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로 자기를 소개하면서도 더 나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상상력을 공유해준 여성이 있다. 그녀가 제안한 소외된 시민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은 광장의 수많은 2030 여성들에 의해 메아리쳐 갔으며, 보수 원로 정치인조차 이 울림이 미래 한국의 희망이라며 상찬했다. 그녀들과,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도 중 절반이 넘는다는 2030 남성을 굳이 대비시키지는 않으려 한다. 광장의 그녀들 옆에서 함께 입김 뿜으며 구호를 외친 청년 남성도 있고, 이름조차 끔찍한 백골단 명단 엔 청년 여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 차이는 그러므로 성별이 아니라 희망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독재 타도를 외쳤던 1987년 이후에도, “탄핵을 소리쳤던 2017년 이후에도 공기처럼 느껴질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상상했을 소외된 시민에게 귀 기울이지 않은 사이, 한국 사회에는 허울 좋은 빈말만으로도 정권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해진 반지성주의 정치 생태계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올 것이 온 것처럼 부정선거, 반국가세력, 카르텔, 페미니스트 등에 대한 망상으로 자유민주주의 철학을 온전히 위반한 자가, 신성한 법정에서조차 자유민주주의 신념으로 살아왔노라고 감히 입을 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2025, 이번에야말로 광장의 구호 너머 구체적 상상력으로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행할 탄탄한 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시작은 광장의 그녀가 가르쳐줬듯, 소외된 시민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경청이다. 이들만큼 어제보다 더 정의로운 오늘, 오늘보다 더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할 미래, 구호 너머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매 순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상들을 차근차근 실행해낼 때 몽매한 망상이 다시 활보하지 못할 민주사회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경향2025.01.26.

 

인과성 왜곡

내 전공은 역학(疫學)이다. 오랫동안 물리학의 역학(力學), 명리학의 역학(易學)에 밀려 존재감이 없었는데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역학조사와 함께 전 국민에게 조금은 낯익은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천공스승, 건진법사, 아기보살 같은 분들이 나타나면서 역학(易學)에 또다시 밀리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말대로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다.

역학조사라는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보건학의 분과학문으로서 역학(疫學)의 본질은 인과성 규명에 있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파헤치는 것이다. 질병의 원인이 뭔지 찾아내야 예방을 할 수 있고, 질병이 호전된 것이 정말 지금 투약 중인 신약의 효과인지 확인해야 치료제로 인정할 수 있다. 이런 일을 역학이 한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척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면 굳이 이를 직업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인이 있는데 사실은 그 요인 때문이 아니라 제3의 혼란 요인에 의해 결과가 나타났을 수도 있고, 원인과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의 시간적 선후관계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예컨대 커피를 많이 마실수록 암 발생이 많아지는 현상을 관찰하고 커피를 암의 원인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담배를 피웠고 암의 진짜 원인은 커피가 아니라 담배였다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당뇨병 환자와 정상군을 비교했더니 정상군의 비만율이 더 높은 것을 보고 비만이 당뇨병의 보호 인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당뇨병 때문에 체중이 줄거나 당뇨병을 진단받은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체중 감량을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후견지명(後見之明)으로 연구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을 할 수 있지만, 막상 연구 시작 단계에서 오류의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여 연구를 설계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이런 복잡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역학에서는 방법론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원인적 연관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들을 발전시켜왔다. 이 기준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시간적 선후관계다. 원인은 결과에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앞선 예시처럼 막상 연구를 하다 보면 판단이 어려운 경우를 종종 만난다.

 

인과성 규명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으로서, 인과성의 고리를 의도적으로 꼬아버리는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이다. 계엄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그 정도로만 살살 했다는 내란세력이 그 주인공이다. 국회를 폐쇄할 생각도 없었고,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는 포고령의 문구도 어차피 계엄이 금방 해제될 것이니 굳이 일부러 수정하지 않았단다. 그들은 이런 궤변을 생각해낸 자신들의 명석함에 스스로 반해버린 듯,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실패한 결과를 두고 마치 그것이 원인이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분명한 원인은 계엄령이고, 그것이 원래 목표로 했던 결과는 민주주의의 종결이다. 계엄 포고령에 적힌 대로 의회와 정당 활동이 중단되고 집회·시위·결사,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사라진 세상이 바로 그 원인이 초래했을 결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결과는 다른 원인에 의해 초래되었다. 그날 밤 국회 앞에서 군인들을 막아선 시민들, 국회 담장을 넘어 적극적으로 계엄령 해제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한 군인들이 없었더라면, 이 칼럼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데이비드 흄이 정립한 인과론의 핵심은 -사실적(反事實的·counter-factual) 조건이다. 시공간적으로 연접한 두 사건에서, 만일 선행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뒤이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 그 선행 사건을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 경향2025.01.26.

 

“AI 100대 기업, 한국은 0”

오픈AI가 거대언어모델(LLM)의 챗GPT를 선보인 게 2022년 말이다. 그 후 인공지능(AI)은 우리 일상뿐 아니라 기술·산업·과학까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변화 물결이 됐다. 19세기 말 금을 찾아 미국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행렬처럼, 오늘날 세계는 AI라는 금맥을 선점하기 위한 인적·물적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AI 경쟁은 쩐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지난 24일 올해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구축에 최대 650억달러(93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 해 자본지출 전망치보다 70%나 늘어난 것이다. 지난 21일엔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일본 소프트뱅크, 미국 소프트웨어기업 오러클이 스타게이트라는 합작사를 설립하고 최대 5000억달러(718조원)를 투자키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큰 AI 인프라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달 초 데이터센터 건설에 800억달러(115조원) 투자를 예고했다. 빅테크들의 각축전에는 과도한 투자로 인한 손실보다 과소 투자로 경쟁에 밀리는 걸 더 우려하는 기류가 깔려 있다.

AI 소프트웨어는 중국 추격에 실리콘밸리 기업도 긴장하고 있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첨단 반도체 사용이 제한된 속에서 개발한 추론 특화 모델 딥시크-R1’이 오픈AI, 메타, 앤스로픽 같은 미국 기업들의 최신 모델과 비슷한 성능을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수준일까. 국회 도서관이 국내외 언론 기사와 정부 발표 자료, 해외 통계, 특허 등을 반영해 만든 글로벌 AI 100대 기업에 국내 기업은 한 군데도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기업이 59(오픈AI, 앤스로픽, 구글, 메타, 테슬라, 피겨AI, 엔비디아, AMD, 인텔 등)로 압도적 1위를 점했고, 중국도 알리바바·바이두·애지봇 등 10개를 보유했다. 영국(7)과 캐나다·프랑스(5)가 그 뒤를 잇고, 노르웨이·독일·일본·대만·아랍에미리트연합(UAE)·사우디아라비아·호주도 1곳씩 뽑혔다. ·중뿐 아니라 국가와 기업 간 AI 패권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인터넷 선진국, 반도체 수출대국으로 디지털 강국이던 한국의 AI 시대 존재감은 뚝 떨어졌다. 국가·기업·과학기술 다 분발해야 한다.

박재현 논설위원 | 경향2025.01.26.

 

 

도사·목사와 내란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 국면 초기에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개명 뒤 최서원)씨가 무당이라는 소문이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에게까지 거론되며 널리 확산되었던 일이 있다. 당시 필자를 포함한 종교학자들 다수는 이런 현상에 비판적이었다. 우선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박근혜식 영성에는 분명 독특한 종교적 코드가 있었지만, 현실의 무속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무속 논란은 민속종교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이용해 정권 비판 여론을 결집하는 작용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태와 아무 관련이 없는 실제의 무속인들을 차별적인 시선과 폭력적인 언어에 노출시킨 고약한 전술이었다.

 

다시 돌아온 탄핵 정국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조금 다른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이번 탄핵 대상은 자격 없는 인물의 조종을 받으며 국정을 망치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대통령이 아니라, 군대를 동원하여 민주공화정 체제를 붕괴시키려 시도한 내란 우두머리다. 당선 이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의 주변에는 종교 비슷한 수상한 무언가와 연관된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포착되었다. 그리고 내란을 기획한 인물 가운데 하나는 사주명리학을 특기로 하는 현직 역술가이다. 과거의 무속 논란에서는 암시적인 정보와 소문의 형태로 유포되었던 수상한 종교성이 이번에는 구체적인 이름과 얼굴을 가지고 실체화되어 있다.

풍설과 사실이 뒤섞인 정보를 종합해 보면, 그들은 차원계를 왕래하며 얻은 진리로 대통령에게 영감을 제공하기도 하고, 풍수지리술로 대통령실과 관저의 입지 선정에 관여하는가 하면, 관상을 보며 인사에 개입하거나, 해몽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일정을 조정하고, 점복으로 내란의 성패를 예측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서두에 밝힌 이유로 무당이나 무속인이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나는 종교학 연구의 관행에 따라 내부자의 언어를 존중할 것을 제안한다. 스스로도 영적인 사람이라 말하는 영부인 김건희는 자신과 영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류의 인물들을 도사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도교의 전문종교인인 도사와 혼동될 위험이 있으나, 한국 문화의 맥락에서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대상 집단이 실제로 사용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적합한 용어다.

 

한 사람의 비선실세가 아니라 여러명의 도사들이 대통령에게 부적절한 영향을 미친 것이 만약 사실이라 해도, 이제 와서 보면 그들의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사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을 결심하게 한 직접적인 계기는 풍수나 해몽이나 사주풀이나 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당이 참패한 22대 총선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자유통일당은 중국 혹은 북한이 민주당과 결탁하여 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해킹했다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설파하였다. 비상계엄을 통한 국회 봉쇄와 선관위 침탈이 실패로 돌아가고, ‘우두머리 윤석열을 포함한 내란 참여자들이 수사를 받는 현시점에도 전 목사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대한 협박과 테러를 선동하고 있다.

 

주류 개신교계로부터 의혹의 눈길을 받아온 전 목사이지만, 극우 세력을 앞세운 보수의 재집결 과정에서 그의 영향력은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복음주의 계열 교단의 일부 목사들마저 열성적인 신자들의 극우 정서에 호응해 윤 대통령을 정치적 메시아로 추켜세우며, 선거를 기반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는 물론, 헌법과 법률에 대한 신뢰 붕괴에 일조하고 있다. 기존 세상의 질서를 상대화하는 기독교 전통의 묵시종말론은 교묘한 상징 조작을 통해 윤 대통령의 폭거와 극우 세력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담론에 동원되고 있다.

 

극우 정치가 기독교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것이 아니듯, ‘도사들이 공유하는 종교성도 그 자체로는 해로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극단적인 사고나 행동을 하는 상대를 주술과 종교에 빠져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유효한 비판이 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인 것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 행위에 개입하고 있는가를 포착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시민의 여론과 전문가의 조언보다 도사들의 영적 메시지를 더 신뢰하게 되었는가,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법원을 습격한 폭도들의 일부가 되었는가. 한국 사회가 다시는 자격 미달의 정치지도자를 선출하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내란과 폭동의 공포에 떨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들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인식과 실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종교를 악용하여 권력자와 대중을 조종하며 잇속을 챙기는 인물들에게 속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믿는 자들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비평이다.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 한겨레 2025.01.27.

 

경계해야 할 금리인하 만능론

금융위기에는 공식이 있다.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장기간에 걸쳐 부실 가능성이 높은 부문에 부채가 늘어나다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발생한다. 금융위기 발생 경로는 다음과 같다.

 

6단계로 닥쳐오는 금융위기

구조적 문제로 성장률이 하락할 때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늘리면 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위험한 대출을 하다가 부실채권을 감추려고 추가적인 대출을 남발하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로 좀비기업이 발생한다. 결국 한계에 달해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파산하는 것이다. 실물 경제가 좋을 때 발생하면 곧 회복이 가능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성장률이 하락할 때 발생하면 장기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 경제는 현재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계와 기업이 원리금을 갚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막대한 부실채권이 발생했지만, 이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금융위기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단계에 와 있다. 금융위기의 공식에 맞춰 한국 경제의 상황을 돌아보면, 어떤 형태로든 금융위기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단계; 새로운 성장동력 찾지 못하고 하락하는 성장률

수출 대기업 위주로 성장한 한국 경제는 시간이 지나면 한계에 도달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미 대마불사를 믿고 무한정 확장하는 재벌들에게 방만한 대출을 일삼다가 계열사들의 연쇄 도산으로 금융위기와 함께 외환위기를 맞은 바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 특수가 발생한 덕분에 평균적으로 5% 정도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 특수가 끝나고 중국이 오히려 우리의 경쟁자가 되어 해외시장을 잠식해 가는 과정에서 성장률은 다시 한 계단 하락했다.

미국에서 2000년 이후 새로운 기술 기업들이 등장해서 현재는 시가 총액 상위 종목을 온통 차지할 정도로 혁신적인 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2000년 이후 새로운 대기업의 출현을 보기 어렵고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이 커 나가지 못하고 있다. 기존 대기업들은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는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장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의 독립적인 연구보고서에서 모두 20년 후에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지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로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내수 침체는 불가피하다

 

2단계: 미래 위험에 눈감은 금리인하 만능론

경기 순환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사용한다. 반면 한국처럼 근본적으로 구조적 문제가 있을 때는 구조개혁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 부서의 관료주의와 정관경언 유착으로 인해 대기업 지원을 우선시 하는 정책적 경향으로 인해, 부실채권을 과감히 정리하여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솎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경영이 어려워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금리인하를 손쉬운 정책수단으로 채택해 왔다. 국제적으로도 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한국은행도 미래의 위험에 눈감은 채 금리를 낮추고 과잉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3단계: 금융기관 장삿속으로 부동산 부문에 위험 대출 집중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은 예대 금리차에 의존하는 은행들에게 자금 운용에 있어 새로운 대출처를 찾아 나서게 했다. 한국은행의 과잉 유동성 공급, 금융위원회의 관리 소홀과 함께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편승해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확대했다. 대출 확대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먼저 대출을 확대한 금융기관의 수익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다시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2금융권까지 경쟁적으로 대출을 확대했다.

이런 이유로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20243/4 분기말 기준 1112.1조 원에 달하게 되었다. 기업 대출도 폭증했는데, 부동산업과 건설업 대출액이 500조 원을 상회할 정도로 부동산 편중 대출이 극심하게 발생했다. 총 기업대출의 1/4이 부동산 관련 업종에 집중된 셈이다. 한국은행 보고서가 지적하듯이 부동산업과 건설업은 한국 경제의 장기 생산성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다른 부문에 비해 낮은 비효율적인 부문이다. 경쟁력을 높이는 생산적인 부문의 대출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성장이 어려운 경제에서 금리를 인하하고 과잉 유동성이 공급되다 보니, 은행들은 넘치는 자금을 처리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금리를 낮추는 원래 의도는, 위험하지만 더 생산적인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벤처캐피털이나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담당하는 금융회사가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부동산 대출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했다면, 우선적으로 벤처캐피털 시장을 활성화하고 스타트업 전문 대출회사를 육성해야 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 인하는 비효율적인 부문에 대한 대출만 늘린 셈이다. 이러한 대출이 결국 금융위기의 위험을 높인다.

23일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전 금융권 PF사업장 합동 매각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개별상담 부스를 찾아 주요 PF사업장 현황에 관해 문의하고 있다. 2025.1.23 연합뉴스

한국은행과 금융관료들이 금융위기에 원천적 책임져야

이렇게 보면 금융위기의 책임 소재를 밝힐 수 있다. 구조적 개선은 외면한 채 과잉 유동성을 공급한 한국은행과 무분별한 부동산 관련 대출을 방관한 금융위원회가 금융위기의 원천적 원인 제공자가 된다. 더욱이 가계부채와 부동산 관련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경고음이 지속적으로 울렸지만,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과잉 부채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 다시 소비와 고용을 위축시키고 있고, 내수 침체가 지속되면서 금융위기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금리 인하의 목소리가 높다. 부실화 정도가 심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조직의 안위만 생각하는 관료주의에 빠진 한국은행과 금융관료들의 입장에서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인들 역시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건전성을 유지하는 자율적 규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금융시장에서 금리 인하 만능론이 금융위기를 불러오게 된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 시민언론 민들레 2025.01.27.

 

한국보다 더 못 믿을 러시아 여론조사

표현의 자유' 탄압 사회에선 정확할 수 없어

시사 방송뿐 아니라 일상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 지지도다. 전쟁을 벌이면서도 지지도가 85%를 웃돌고, 서구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왜 푸틴을 지지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솔직히 이럴 때마다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러시아는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서 지지도를 묻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자유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독재 사회 분위기와 환경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한다.

 

러시아 여론조사는 기본적으로 새빨간 거짓말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기본적으로 다 거짓말로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다. 대놓고 하는 거짓말인 경우도 있고 심하게 왜곡된 데이터을 바탕으로 한 경우도 있다. 명태균 게이트가 우리에게 보여 주듯이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 중 하나가 영국 정치인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통계자료를 통해서 보는 여론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조작하기도 쉽다.

 

러시아에서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왜 조심스럽게 봐야 하는지 몇 가지만 짚어 보겠다. 우선 여론조사를 제대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환경과 응답자의 심리 상태가 전제 조건이다. 질문에 대해 진지한 답을 얻으려면 사회적, 법적 책임이라는 압박이 없어야 하고, 응답자가 잘못된 답변을 해도 그로 인한 피해가 없을 거라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크게 문제가 안 되지만 러시아에서는 수치 왜곡의 첫 번째 원인이다.

 

북한서 김정은 지지하나요?” 여론조사 가능할까

현재 러시아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지금 러시아에서는 인터넷에서 댓글은 물론 좋아요한 번 잘못 눌러도 감옥 갈 수 있는 상황인데, 사람들이 무슨 용기로 전화나 ARS 설문조사에서 자기의 정치적 입장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누가 전화하는지도 모르니 내 개인정보 다 털어 놓는 것이 무섭고, 자칫 정부가 싫어하는 답을 솔직하게 내놓았다가는 바로 감옥행이니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니 응답자는 자신이 실제로 생각하는 답을 내놓기보다 질문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를 봐서 답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독재 사회에서의 전형적인 살아남기 방법이다. 전쟁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완곡어법으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 푸틴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누가 털어놓겠나. 북한에 가서 김정은을 지지하시나요?’ 질문을 던졌을 때 아니오라는 답을 할 사람이 한 명도 없듯이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지나친 스팸전화도 문제다. 러시아가 한국보다 광고 전화, 보이스피싱 등의 범람이 훨씬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조사랍시고 전화가 오면 사람들은 사기 아니냐는 인식이 있어서 전화 대화는 신뢰도가 낮다. 이런 부분은 그 자체로는 큰 의미는 아닐 수도 있으나 복합적으로 보면 영향을 안 미칠 수 없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한국보다 대면 길가 인터뷰가 훨씬 더 자주, 훨씬 더 많이 사용되고 인용돼 왔다. 물론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전면 금지되었지만.

 

왜곡 질문' 통한 윤석열 지지율 40%여론조사

유도 질문이나 왜곡된 질문을 통해 원하는 답변을 끄집어내는 여론조사도 심각한 문제로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탄핵 정국 중에 윤석열 40% 지지율이라는 어이없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불법 논란에 불구하고라는 문구를 넣는 등 언어 꼼수를 사용한 편향된 질문으로 답을 유도하는 경우도 이런 왜곡의 사례다. 해외 언론에서 공개되는 러시아 여론조사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한 것들이다. ‘푸틴을 얼마나 많이 지지하시나요?’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지지하시나요?’는 서로 매우 다른 질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음 번에 러시아 국민들의 99%가 푸틴을 지지한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면 결과만 보지 말고 질문부터 먼저 살펴 볼 것을 권한다.

 

얼마 전에 러시아 진보 언론에서 화제가 된 여론조사가 있다. 러시아에서 상대적으로 큰 여론조사 회사에서 전쟁이 길어진 상황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조사를 했는데, 보도된 결과만 놓고 보면 마치 온 국민이 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여론조사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첫 번째 질문은 푸틴 대통령이 현재 진행 중인 반나치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하고 계속 진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였다. 이에 대해 압도적으로 가 나왔다. 하지만 바로 뒤에 따라오는 질문은 푸틴 대통령은 지금 당장 아무 조건 없이 특별군사작전을 끝내겠다고 선언하면 당신은 이를 지지하실 건가요?’였다. 역설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압도적으로 가 나왔다. 모순 그 자체다.

 

질문에 따라 드러냈다 감췄다 하는 속마음

결과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지금 상황도 엄청 지지하는데 당장 끝내겠다고 하면 그것도 꼭 지지하겠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런 서로 모순되는 답이 나올 수 있을까? 간단하다. 이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전쟁에 대한 자기 자신의 솔직한 생각이 아니라 전쟁에 대해 질문자가 듣고 싶은 답을 해 준 것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런 모순을 통해 우리는 응답자의 솔직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푸틴에 대한 충성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에 응답자는 사회적인 정답을 읊은 것뿐이고, 두 번째 질문에서 비로소 숨은 마음을 슬그머니 드러낸 것이다. 전쟁을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쟁을 지지한다고 올바른 답을 하지만, 같은 의미의 질문도 워딩만 약간 바꾸니 전쟁이 지금 당장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여론조사 회사에 대한 중앙 정부의 강력한 통제도 문제다. 현 러시아 설문조사 회사는 독립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 수준이다. 정부 예산을 받으려면 정부가 듣기 달콤한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안 하면 바로 폐쇄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웃기는 사례도 많다. 푸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우리 국민은 A라는 정책을 다 지지한다고 말하면 며칠 후에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는 한결같이 국민 모두 다 이 A라는 정책을 100%에 가깝게 지지한다고 나오는 것이다. 현 러시아에서 여론조사는 여론이 아니라 정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수단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독재 체제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 2025.01.27.

 

 

사나운 개를 대행하는 교활한 쥐새끼들

한 코미디 프로에서 나온 국가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 우리를 웃프게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똑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체주의자들이야 국민은 항상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이지요. 국가는 국민을 위해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충성과 희생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해줘야 할 일. 그 첫째는 안전이요, 둘째는 먹고 살게 해주는 일입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건 지배자들이 국민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던 왕조시대나 독재시대에 어울리는 소리입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지금의 민주주의 시대에는 가당치도 않은 헛소리입니다. 국민의 안전과 살림살이를 알뜰히 챙기지 않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즉각 갈아치우든지 쫓아내야 합니다.

 

국가는 지혜와 용기, 절제가 어우러지는 공동생활의 터전

플라톤이 꿈꾼 국가도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완전한 존재인 신은 공동생활이 필요하지 않으며, 동물은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질이 없기 때문에 인간만이 국가를 이룰 수 있는데, 따라서 그가 생각했던 가장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은 가장 바람직한 인간을 닮은 것이었습니다. 이성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머리의 지혜, 기질이 이성의 지시를 받는 가슴의 용기’, 그리고 지혜와 용기에 의해 욕망이 조절되는 손발의 절제가 가장 이상적인 인간인 것처럼, 국가 역시 머리의 지혜에 상응하는 통치(지배자)계급, 가슴의 용기에 상응하는 군인(수호자)계급, 손발의 절제에 상응하는 민중(생산자)계급이 각자 자신의 직분대로 충실히 살아가는 사회가 가장 좋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이처럼 인간의 이상이 국가의 이상으로 실현된 상태가 바로 철인왕 정치라고 했습니다. 군인(수호자)계급은 국가를 수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에 그 선발에 있어서 강한 힘과 용감하고 기개있는 정신의 소유자여야 하고, 통치(지배자)계급의 경우는 수호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덕망이 높은 사람, 또한 올바른 이성과 지혜를 지닌 철인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이들 3계급의 절제, 용기, 지혜의 덕이 조화를 이룰 때 정의(正義)의 덕이 실현되고, 어느 한 계급이라도 자기 것이 아닌 직능을 침범할 때 부정(不正)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가장 지혜롭고 이성적이고 덕망이 높아야 할 통치계급

지금은 계급을 3개로 나눌 수 있는 단순한 사회도 아니요, 계급이 세속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나라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통치계급을 투표로 뽑는 민주주의 시대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 의지로 자신이 원하는 계급에 속할 수 있습니다.(혹은 그래야만 하는 사회입니다) 통치계급 중에서도 투표로 뽑힌 자들은 일정 기간 동안만 통치자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통치 계급이 사회 구성원 중에서 가장 지혜롭고 이성적이고 덕망이 높은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플라톤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 못할 때, 즉 철인왕의 자리에 있어야 할 자가 무지하고 포악하고 자신의 욕망만 추구할 때 그 국가공동체는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장차관과 고위 관료들의 해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인계급이 기개를 잃어버리고 오직 자신들이 수호해야 할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용기만 있을 때 그 나라는 재앙을 맞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재앙이 부른 환난을 헤쳐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2500~2600년 전 플라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시대에 중국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의 국가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통치자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창고가 풍족해져야 비로소 백성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넉넉해져야 명예와 부끄러움을 안다고 믿었던 그는 다양한 민본 경제정책을 실시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개혁의 첫 작업을 사서(社鼠·창고의 쥐새끼)와 맹구(猛狗·사나운 개)를 퇴치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자들, 즉 통치계급에 속한 자들이 때로는 교활한 술수로 자원의 합리적인 배분을 방해하고, 어떤 놈은 공권력의 사나운 협박으로 백성들을 갈취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눈으로 해석하면 사나운 개는 검찰이요, 교활한 쥐새끼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모피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전을 앞세우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자들, 숫자와 장부를 움켜쥐고 배타적인 재정 및 금융정책권과 예산배정권을 무소불위의 무기로 휘두르는 자들입니다.

 

가장 사나운 개가 끌어주고 교활한 쥐새끼가 밀어주고

그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사나운 개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크고 사나운 놈이 통치계급의 맨 꼭대기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궁지에 몰리니, 그동안 창고를 지키는 척하면서 야금야금 파먹던 쥐새끼 중 제일 교활한 놈이 그 뒷감당을 하겠다고 나선 형국입니다. 관중의 제나라 때가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이 바로 사서맹구의 세상입니다.

이것이 플라톤이 그토록 경계해 마지않았던 중우정치의 실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라톤은 중우정치로 타락하는 민주정치, 통치가 아닌 착취를 하는 과두정치, 탄압과 폭력을 수반하는 참주정치 등도 경계했으니, 사실 우리 국가가 중우정치를 넘어 (검찰 모피아 국힘당 등의) 과두정치, 심지어 (김건희와 무당들의) 참주정치의 문턱에 서있었던 건 아닌가, 몸서리까지 쳐집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힘이 세다는 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신념입니다. 현명한 이를 뽑지 않거나 심지어 쫓아내고, 마치 황새를 왕으로 옹립하는 개구리 떼처럼 탐욕스럽고 잔혹한 이를 우두머리로 뽑아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 가끔 벌어지더라도, 결국 중우정치나 과두정치나 참주정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다만 국가가 나를 위해 해 준 것이 뭐가 있냐~’ 외치기 전에,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나를 위한 국가가 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시민들이 더 많아져야겠지요.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시민언론 민들레 2025.01.28

 

이재명 대 반이재명전에 헌법 대 반헌법

조기 대선 전망 속에 나오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들에서 두가지가 눈에 띈다. 우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약진이다. ‘가장 놀란 사람은 김 장관 본인일 것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전광훈 목사와 함께 자유통일당을 창당한 전력, 부정선거론 주장, 노동계·시민사회·야권 혐오 발언 등으로 극우의 대명사로 꼽히는 그가 여당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로 집계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확장성 제로(0)인 그가 실제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될 거라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김문수의 급부상은 격앙한 윤석열 지지층이 잔뜩 응집돼 있음을 가늠해볼 지표로서 의미가 있다. 윤석열의 잡아떼기와 지지층 독려, 수사·영장 절차 논란 부각이 나름 효과를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둘째는, 12·3 내란사태 직후에 견줘 윤석열 탄핵 찬성과 민주당 지지율은 낮아졌어도, 선거 향배를 가를 중도층에서는 탄핵 찬성과 정권 교체론이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에스비에스(SBS)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 23~25일 실시한 무선전화 면접조사에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소추를 인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59%, ‘기각해야 한다37%였는데, 중도층만 놓고면 인용 65%, 기각 30%로 격차가 벌어졌다. ‘정권 재창출이냐, 교체냐질문에도 전체적으로는 43% 50% 응답이지만, 중도층에서는 36% 55%로 정권 교체론이 압도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그럼에도 보수의 반격을 무시할 수는 없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내란에 사과하지 않고 사실관계마저 부인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선동해왔다. 야당, 언론, 수사기관, 사법부를 모두 부정하고 흔들어대는 철면피 전략이다. 윤석열은 정권 재창출도 가능할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대선 후보 윤곽이 잡히고 대선 날짜가 다가올수록 여야의 격차는 더 좁혀지는 게 선거의 경로이기도 하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8차례 전적을 봐도, 진보 진영의 3차례 대선 승리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잡은데다 이회창·이인제의 여권 분열까지 있었기에 당선됐고, 문재인 또한 박근혜 대통령 파면에 따른 조기 대선에서 홍준표·안철수·유승민의 보수 분열까지 더해져 승리했다. 노무현은 대선 전날 정몽준의 단일화 파기라는 위기를 딛고 극적으로 당선됐다.

반면 보수는 외적 변수뿐 아니라 자체 변신 등 다양한 스토리로 5차례 승리했다. 야권 분열의 수혜로 대통령이 되거나(노태우), 아예 진보개혁 후보가 보수 둥지로 들어가거나(김영삼), 중도개혁 이미지의 아웃사이더를 후보로 세우거나(이명박·윤석열), 공고한 지지기반을 보유한 후보가 파격적 변화로 외연 확장에 나선 경우(박근혜) 등이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해 4~6월 대선이 치러질 경우,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권 재창출을 시도할 것이다. 그 핵심은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일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고, 의회 다수당이 행정부까지 차지할 경우의 위험성을 선전하면서 선거를 이재명 대 반이재명구도로 밀고 가는 전략이다. 이미 헌법과 민주주의 파괴 행위인 계엄을 여당 대 야당’,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정쟁화하면서 논점을 흐려왔듯이, 대선도 이재명 공포 마케팅으로 치르려 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승리를 위해 당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꾸고, 이준석과 한동훈을 당 대표로 뽑고, 이명박·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영입한 정당이다. 이번에도 계엄·탄핵 페이지는 어물쩍 넘기면서, 대선 후보는 본선 경쟁력을 고려한 선택을 하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변치 않을 사실은 국민의힘은 내란 우두머리를 배출·옹호한 정당이고, 계엄을 해제하던 국회 본회의장에 소속 의원 절대다수가 부재했던 당이며, 부정선거 주장과 법원 폭동에도 딱 부러지게 선을 긋지 못하는 당이라는 점이다. 이 점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 국가의 거대 정당이라고 할 수 없고, ‘과거는 잊고 미래로는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윤석열의 자폭으로 치러지게 될 이번 대선의 기본 성격은 민주 대 반민주’, ‘헌법 대 반헌법’, ‘반내란 대 내란이다. 국민의힘이 123일 밤부터 지금까지 보여온 퇴행과 반동을 버리고 민주, 헌법, 반내란의 편에 분명하게 서지 않은 채 이재명은 막아야 한다’ ‘민주당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핑계일 뿐이다.

황준범 | 논설위원 | 한겨레 2025.01.30.

 

에게 생선을 넘기겠단 고양이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시장에서 비롯되고

이 말은 참여정부 최고권력자의 심경 토로였지만, 이제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천조국미국에선 백악관부터 이런 장면이 버젓이 펼쳐졌다. 지난 20(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을 알리는 취임식장. 단상에 이른바 빅테크 거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구글 CEO, 아마존 창업자, 메타 CEO. 이들 자리는 심지어 국방장관 등보다 앞섰으니, 트럼프 2.0의 현실이다. 민주당 정부가 반독점 차원에서 구글을 쪼개니 마니 하던 게 바로 엊그제다.

 

바야흐로 돈의 시대다. 밥 먹여주고, 일하게 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싶다, 솔직히. 그럼에도 막 내놓고, “돈벌이가 제일 중요해라고 해버리면 너무 저속하지 않나.

이런 풍경이 불편한 반대편에 선 이들은 견제구를 날려본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고별사에서 권력이 아주 소수 초부유층의 손에 위험하게 집중됐다고 말했다. 소수 특권층에 의한 과두제(oligarchy)’를 개탄한 것이다. 앞서 독일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회고록에서 트럼프를 부동산 개발업자의 눈으로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자라 직격했다.

 

어쩌면 이런 걱정은 21세기엔 낡은 유물일 수 있다. 그들의 말은 미국 동부(워싱턴, 뉴욕)나 서부(캘리포니아)에서, 또는 유럽에서 좀 배운 먹물들이나 귀담아듣는 지경에 이른 듯싶다. 난 종종 미국을 정확히 알려거든 중서부까지 가보라고 권한다. 동부, 서부는 과다 대표돼 진실을 왜곡해서다. 민주당 일파나 CNN이 보는 세상은 온전한 미국이 아님이 이번 대선에서 또 증명됐다.

정의니, 불평등이니 하는 고상한 구호보다는, 트럼프 책 제목처럼 거래의 기술이 더 찬양받는 시대다. 다수 대중은 빈부격차야, 젠더갈등이야 어찌되든 자기 주머니나 장밋빛 미래에 더 관심 있는 표정이다.

 

이런 장면을 보며 문득 30여년 전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봉사활동차 서울 봉천동의 달동네를 방문했다. 비가 와서 공친 날 일용직 아저씨는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도 있고, 냉장고도 있었다. 사실 좀 충격이었다. 요즈음엔 지방에 가봐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널린 게 벤츠, BMW. 과시소비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 경제력이 이만큼 올라왔다.

그러나 먹고살 만해졌다고 부조리가 사라진 게 아니다. 핵심은 계층 간 불평등이다. 한국 사회가 이만큼 올라선 원동력은 평등의식이라고, 이게 K민주주의를 지탱하고 키워온 힘이라고, 난 믿는다.

 

미국 보수들은 한동안 음모론에 빠졌다. 예컨대 피자게이트같은 거다. 비뚤어진 잣대로 비난하다가 정권을 바이든에 내줬다. 마치 선거부정론에 매몰된 12·3 비상계엄 일당 같다. 반면 미 민주당 진영은 ‘PC’(정치적 올바름)에 빠져 일을 그르쳤다. 임신중지 등 진보의 가치를 앞세우기 급급했다. 자연스레 서민들 밥그릇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 결과가 트럼프 재집권이다. 우리 86세대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시민의 삶을 투영한 시장의 선택은 종국에는 옳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시장을 주무르는 거대 자본, 그와 결탁한 정치·행정권력은 전혀 다른 것들이다. 권력을 선뜻 시장에 맡겨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0057월 노무현 대통령이 저런 말을 했을 때 걱정과 비판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참여정부 청와대 실세인 한 인사는 2006년 어느 날 취재팀에 이렇게 털어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가보니, 책상에 두 개 보고서가 올라와 있더라. 하나는 인수위 거고, 다른 하나는 SERI(삼성경제연구소) 거였다.” 바로 참여정부 실패의 뿌리는 재벌과 관료의 태클을 넘지 못해서라는 회한이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1995정치는 4, 관료와 행정조직은 3, 기업은 2라고 했다. 솔직히 이 나라 꼴은 아직도 비슷하다. 게다가 경제권력이 4처럼 행세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제어하면서 불평등을 줄이는 게 정치의 책무다.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습니다.” 요즘 미국을 보니 얼마 전 여의도 정가에서 들려온 이 말이 제법 와닿는다. 그러나 아무 쥐나 잘 잡는다고 꼭 좋은 고양이는 아니다. 다음 정권은 그 누가 됐든, ‘시장통 살찐 고양이가 되지 못하게 시민들이 쥐덫이라도 놓아야 할 것이다.

전병역 경제에디터 | 경향 2025.01.30.

 

부끄러움과 상식을 회복하자

2025년 첫 달이 지나간다. 새로운 계획과 희망보다는 심란한 뉴스가 가득한 새해 첫 달이었다. 국외적으론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으로 경제 및 안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국내적으론 지난해 123일 현직 대통령의 친위쿠테타 시도와 이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대통령 지지자들의 난입과 난동 등으로 정국 불안정이 이어지고 있다. 상식보다는 음모, 이성보다는 분노가 극단적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치를 뒤흔드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음모, 분노, 탐욕, 기회주의, 불안감이 얽히고설킨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리성과 일관성의 복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정치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시점에서 여야 정치와 극단적 지지층의 행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로남불이다. 자기편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이 나오면 불복과 인신공격으로 대응하고, 반대편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에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낯 뜨거운 언행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런 내로남불은 다수 국민에게는 정치 불신을 심화시키고, 극단적 지지층에는 상대를 더 악마화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비 언론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전통 미디어 매체가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어 불을 더 지피고 있다. ‘내편네편을 가르고, 네편을 비판할 때는 합리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내편 비판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합리적 기준으로 일관성 있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언론이 해야 할 본연의 일이다. 내편에 유불리를 따지고 취사선택을 한다면, 언론이 아니라 특정 패거리의 선동 매체일 뿐이다.

A가 잘못됐다는 지적에 B도 그렇게 했다고 답하는 정치인은 더 이상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B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인지, B도 그랬으니 괜찮다는 양시론인지, 아니면 국민을 우롱하려는 심산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런 정치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위선과 기만 그리고 그런 술수를 통한 자신의 사익 추구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이런 정치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고,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

 

한국 정치를 이처럼 몰고가는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반헌법적 친위쿠데타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스스로 부정했고, 이후에는 파렴치범처럼 거짓과 기만으로 사법체계를 농락함으로써 검사로 평생을 지낸 자신을 부인하는 짓에 서슴없다. 2024년에 상연된 <조커: 폴리 아 되>라는 영화에서처럼, 극단적 지지자들에게 부추김을 받고 또 스스로 그런 지지자를 부추기는 조커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아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극단적 지지층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에 기대어 기회주의적 언행으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부끄러움과 상식을 회복하길 바랄 뿐이다.

 

상식을 회복해야 할 사람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 역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표의 측근 인사가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일을 법원이 확정한 것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법부가 유력한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소추 인용 여부도 여론이 중요하지 헌법 위반 여부라는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과 도전인 반헌법적 친위쿠데타라는 엄중한 현실을 오직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라는 맥락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접근하고 있다는 의심과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지금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은 대통령 탄핵 결정이 이뤄지기 전에 자신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하고 이를 위해 적극 협조하는 것이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언행 없이, 은행장들을 소집하고 정책 기조를 갑자기 바꾼다고 자신에 대한 거부감이 해소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 그동안 국민의힘 2중대 같았던 이재명 민주당이 아예 국민의힘 본체가 되기 위해 정책 기조를 바꾸겠다는 것인지, 대통령이 되는 데 도움만 된다면 경제정책이 백묘든 흑묘든 상관이 없다는 실용주의인지 헷갈릴 뿐이다.

대통령 탄핵과 내란 재판이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 정치권은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근본적 대책을 제시하는 정책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이 혼돈의 시기를 넘어 새로운 시대에 무엇이 바뀔 것인지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이 희망을 품게 하는 책임있는 정치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경향 2025.01.30.

 

조선일보의 '대한민국 때리기'는 끝을 모른다

조선일보의 대한민국 때리기는 끝을 모른다.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이 뿌리째 흔들어놓은 대한민국을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윤석열을 벌하려는 사법 체계에 악착같이 흠집을 내려 하고 있다. 전혀 근거가 없음을 넘어 내란 동조 세력의 일방적 주장을 부풀리고 있을 뿐이다. 마치 민족배반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의 행정, 입법, 사법을 모두 심판할 수 있는 듯한 오만을 부린다. 가소로운 허세일 뿐이다. 조선일보가 언론계의 내란 수괴라는 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최근 이어지는 사설 제목만 보더라도 조선일보의 흉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통령 탄핵·체포에서 구속까지 이어진 초유의 사태>(1.20), <법원이 법원 난입 사태에 생각해야 할 것>(1.21), <공수처가 지금 하는 것은 수사가 아니라 정치>(1.23), <공수처·법원이 합작한 총체적 사법 혼란>(1.27) 등으로 날로 편파적인 성격이 더해간다. 정작 평지풍파를 일으켜 대한민국의 근본을 흔든 범죄자를 탓하기보다 단죄하려는 사법 기관을 헐뜯는 조선일보의 속셈은 뻔하다. 자신들이 이번 내란 범죄의 배후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119일에 정당한 법 집행을 한 서울서부지법에 폭도들이 난입하여 일으킨 폭동에 대한 인식이 참으로 안일하다. 국가기관 침탈과 파괴는 물론이고 방화 시도까지 있었다. 조선일보는 폭동 다음 날인 120일 자 사설에서 우리 법체계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드러냈다며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음흉하게 폭도들 편을 들고 있다. 121일 자 사설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난동 사건을 법원의 책임으로 돌린다.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 부정이라는 사법부의 엄중한 인식에 마지못해 그 말 그대로다라며 단 한 줄로 맞장구치는 데 그친다. 사설의 대부분은 사법부를 공격하는 데 쏟아붓는다. 난동자들이 저지른 폭동에 대해 항변할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합리화한다. 당일 폭도들은 법원 공격에 그치지 않고 경찰과 언론에 대해서도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다. 조선일보에는 이번 난동자들을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의례적인 표현조차 찾기 어렵다. 대한민국이 불만 세력들의 공격 대상이 돼버려도 좋다는 식의 논리 전개다. 과연 대한민국의 신문인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가 속한 반대 진영에서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면 어떤 보도 태도를 취했을까 상상해 본다. 자유 민주주의 헌정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홍위병이니 공산 혁명 세력이니 들먹이며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광분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린 만큼 관계 기관을 총동원하여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적 전반에 암약하고 있는 배후 세력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여 다시는 이런 사태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흥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함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유는 그들의 편이 아닐 뿐 아니라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123일 자 사설에서는 공수처가 출석 요구에 계속 불응하는 윤석열 피의자에 대해 구인을 시도한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이미 공수처의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워야 시원하겠느냐며 선동하던 조선일보다. 피의자가 출석 요구를 거부하면 구인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법적인 순서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잡범을 다루듯 했다고 비난한다. 이제는 피고인이 된 윤석열이 헌법재판소나 공수처에서 보여준 태도는 잡범에도 이르지 못함을 국민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윤석열 피고인이 내란 우두머리가 아니라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건희 씨가 우두머리가 아니냐는 말이 그저 농담으로 들리지 않게 된 현실이다.

 

조선일보는 공수처와 법원이 합작했다고 시건방진 단정을 한다. 윤석열 피고인이 12.3 내란을 일으키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망상적 사고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선일보의 근거 없는 단정도 같은 사고방식인 듯하다. 윤석열 일당의 논리만을 추종하며 일방적으로 트집을 잡는 행태를 보인다. 특히 윤 피고인의 부정선거에 대한 확신 과정을 보면서도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합리화해 가는 꼴이 너무나 윤석열과 닮았다.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의 정체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기관을 부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법치를 부정하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노골적인 협박을 통해 내란 잔존세력을 선동하려는 흉계이다. 기회주의적인 자세로 꿩 먹고 알 먹으려는 비열한 자세인 셈이다. 윤석열이 파면돼도 자신들은 보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을 챙기려는 천박한 계산이다.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 마치 살아있는 정권과 맞서는 투사인 척하면 그만이다. 조선일보가 일제와 독재정권에 아부하며 써먹은 못된 버릇의 되풀이다. 청산되지 않은 더러운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그리하여 다시 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이득우 언소주 정책위원·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단장 |시민언론민들레 202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