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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5년4월 14~

by 이성근 2025. 4. 14.

스스로를 '마루타'라 부르는 고1... 지금 학교는 이 지경입니다

[주장] 사교육의 문을 두드리게 만드는 설익은 고교학점제 유감

윤석열 대통령만 파면되면 엉망진창이 된 우리 사회가 시나브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줄 알았다.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지금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윤 대통령이 정부 기관 곳곳에 꽂아놓은 '윤석열의 아바타'들이 준동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12.3 내란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회 대개혁'이라는 거창한 비전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나름 심사숙고했을 국회의장의 개헌 국민투표 주장도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사흘 만에 철회했다.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며 광장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시민들은 또다시 '내란 세력 척결'을 외치며 '잔인한 4월'을 맞이하고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거다.

시민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갖가지 '내란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불안과 불면, 두통, 스트레스성 소화 장애 등 병증도 각양각색일뿐더러 딱히 약도 없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5.18 학살을 경험한 광주 시민들은 가슴 떨림 증세를 호소하기도 한다. 비상계엄 선포 전의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유일한 치료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란의 충격파는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회적 이슈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모든 언론의 정치 사회면은 온통 내란과 곧 있을 차기 대선 관련 뉴스고, 경제면은 예외 없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발 관세 전쟁 소식이다. 얼마 전 경북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최악의 산불 소식을 제외하면 전무하다시피 하다.

언론이 내란과 같은 초대형 이슈에 천착하는 건 당연하다.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건,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언론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다. 다만, 뉴스가 '획일화'하면서 다른 사회적 이슈들은 잘 다뤄지지도 않을뿐더러 애써 취재하고 보도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 채 이내 내려지고 만다.

'이것' 때문에... 고등학교는 '태풍 전야'

고교학점제 누리집 화면. ⓒ 고교학점제 누리집 갈무리관련사진보기


내란이 지속되는 위기 상황임을 모르지 않지만, 부러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지금 전국의 인문계고등학교는 말 그대로 '태풍 전야'다. 올해부터 전격 시행된 고교학점제 때문이다. 정부는 오랫동안 나름 철저히 준비해 왔다고 했지만, 시행한 지 채 한두 달도 지나지 않아 폐지를 청원하는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언론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이 단신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내란 이슈에 묻혀 시답잖은 소재쯤으로 여겨지는 듯하다며 하소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하고 서민 경제가 파탄이 난 마당에 고교학점제 따위가 무슨 기삿거리냐고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학교 교육이 '풍전등화'라고 하면, 되레 엄살 부리지 말라고 면박을 준다.

고교학점제가 전격 시행된 올해부터 고1 아이들이 졸업하는 3년 동안 모든 학교는 '한 지붕 두 학교' 체제로 운영된다. 고1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고2와 고3은 이전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겪게 되는 익숙한 환경이지만, 올해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당장 1학년과 다른 학년을 이른바 '걸치기 수업'을 하는 교사의 경우, 고교학점제 시행 후 수업 부담이 몇 배는 더 늘었다고 하소연한다. 수업부터 평가까지 모든 내용과 방식이 달라 매시간 혼선을 빚는다. 학년 단위로 수업이 진행되는 고2, 고3과는 달리 고1은 학기제로 운영된다. 정확히는 학년과 학기의 구분은 의미 없고, 학기에 배우는 교과의 이수 여부가 중요하다.

교과의 이수 여부가 기준이므로 생활기록부도 모든 교과에서 학기 단위로 기재해야 한다. 이전엔 대부분의 교과가 학년 단위로 운영되어 학년말 겨울방학을 이용해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하는 게 통례였다. 지금도 생활기록부 작성을 두고 교사가 인공지능에 의존한다거나 아이들 스스로 쓰게 한다는 비난이 적지 않은데, 고교학점제는 이를 더욱 부추길 공산이 크다.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이수 교과를 선택하고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게 한다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지역과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개설 교과 수가 크게 늘어 선택의 폭이 넓어진 건 맞다. 학교마다 필수 교과 이수 학점과 자율 선택 교과 이수 학점이 엇비슷하다. 한국사 등의 필수 지정 교과만 아니면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학교의 현실은 늘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십분 공감한다는 이들조차 이구동성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학교마다 온갖 편법이 난무하게 될 거라는 뜻이다. 학점 관리 방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아이들도 없고, 명확히 설명해 주는 교사도 없다. 한두 학기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뿐이다.

고교학점제의 안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인 '최소 성취 수준 보장제(최성보)'는 시작도 하기 전에 편법이 나오고 있다. 최소 성취 수준에 미도달한 경우, 예방 지도와 보충 지도를 통해 만회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교과별 학업 성취도가 40% 미만인 아이들은 학점당 5시간의 예방 및 보충 지도를 받아야 한다. 2/3 이상 출석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이수 기준이다.

장담하건대, 최성보를 원칙대로 운영할 수 있는 학교는 없다. 학교마다 애초 최소 성취 수준에 미도달한 경우가 없도록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자면 지필평가의 난이도를 최대한 낮추고, 수행평가의 비율을 높이는 건 기본이다. 수행평가 때 기본 점수를 부여하는 방안까지도 모색하게 된다. 꼴찌의 학업 성취도를 40점에 맞추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그런데도 미도달 학생은 나오게 되어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지난 3월 모의평가 한국사 영역에서 최소 성취 수준에 해당하는 20점 미만인 아이가 수십 명이었다. 이른바 '국적 판별 시험'이라고 조롱받을 정도로 쉬운 시험인데도 그렇다. 믿기 힘들 테지만, 명색이 고등학생인데 '체결하다'나 '소지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몰라 묻는 아이가 드물지 않다.

원칙대로라면 그들은 미이수 처리되고 졸업이 불가하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가 최성보다. 학점을 채우지 못해 졸업하지 못한 아이의 보호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결국 학교가 마련한 예방 지도와 보충 지도를 받으면 이수 처리가 된다. 별도의 평가 없이 최소 성취 수준을 달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학기 중이든, 방학 중이든, 예방 지도와 보충 지도만 받으면 이수 처리되다 보니 악용이 우려되기도 한다. 특정 교과의 보충 지도를 중복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고, 이수를 위한 출석 기준인 2/3도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다. 비대면 원격 수업도 출석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운영하는 학교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나름의 배려지만, 편법을 대놓고 부추기는 꼴이다.

고교학점제는 내란에 버금가는 이슈

고교학점제가 이 부박한 현실에서 과연 교육적인 제도인지 재고해 보아야 한다. ⓒ mclee on Unsplash관련사진보기


교과별로 구체적인 최성보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학교가 책임지고 최소 성취 수준 미도달 학생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동시에 '점수 퍼주기'가 의심되면 감사를 진행한다며 을러대고 있다. 시험 문항을 쉽게 출제해도 안 되고, 40점에 못 미치는 아이가 있어도 안 된다는 건, '동그란 네모'를 그리라는 주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고교학점제의 파행 운영이 불 보듯 훤해서일까. 대학에서도 입시 전형을 마련하는 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절대평가인 성취 평가제와 기존의 상대평가를 섞어놓다 보니 '게도 구럭도 모두 잃는' 상황이 됐다. 표준점수도 산출하지 않고 등급이 무의미해지다 보니, 대학이 입시 전형에서 어떤 기준을 반영할지 아직 결정조차 못 내리고 있다.

현실과 상충하는 점을 지적하자면 끝도 없지만, 이 모든 건 고교학점제가 현행 수능 위주의 대입 제도와 '상극'인 까닭에 생겨난 문제다. 고1 아이들은 스스로 '마루타'라고 자조하면서, 대입이라는 결승선은 보이는데 주로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경기장에 선 기분이라고 말한다. 결국 불안한 마음에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여전히 대학의 이름으로 답하는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고교학점제가 이 부박한 현실에서 과연 교육적인 제도인지 재고해 보아야 한다. 고교학점제 대비 전문을 표방하는 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뉴스를 통해 고교학점제의 실패를 예감한다. 지금 일선 학교에서 고교학점제는 내란에 버금가는 이슈다.

서부원(ernesto) 오마이뉴스

트럼프 이념·문화 전쟁, 미국 내 갈등

진보 성향 대학 지원 중단…싱크탱크 예산·인력 대폭 감축

미국의 소리(VOA) 특파원이었던 로버트 로지의 아들 스티브 로지가 지난 3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VOA 본사 건물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래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전 세계 대상 10% 기본관세, 미국이 무역 적자를 보고 있는 57개국에 대한 20~40%대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글로벌 관세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런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는 이념·문화 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표적으로 삼은 싱크탱크는 사실상 조직이 폐쇄됐다. 진보성향을 보여온 대학들은 연방자금 지원 중단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트럼프가 명분으로 내세운 건 연방정부 효율화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다. 결국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무리한 조치로 미국의 소프트파워나 연구·개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숙청 대상 된 싱크탱크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의 이름을 딴 윌슨센터는 최근 예정됐던 강연과 콘퍼런스 등 각종 행사를 취소했다. 대다수 직원은 휴직 처리됐다. 각종 연구 프로그램 자금을 반환하라는 명령도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윌슨센터가 보유한 방대한 분량의 냉전 시기 등에 관한 사료와 디지털 자료의 관리 방안도 미지수다. 현대차그룹-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기여로 만들어진 한국 역사 및 공공정책연구센터 운영도 불투명해졌다.

이는 트럼프가 지난달 연방정부 조직 축소를 위해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른 조치다. 행정명령은 윌슨센터 외에도 VOA(미국의소리)와 RFA(자유아시아) 방송 등을 관할하는 글로벌미디어국(USAGM),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 모두 7개 기관의 기능·인력 최소화를 지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워싱턴의 또 다른 싱크탱크 미 평화연구소(USIP)도 지난달 말 거의 모든 직원의 해고통보를 받았다. 특히 USIP 웹사이트가 폐쇄되면서 그동안 연구소나 소속 연구진이 발행한 각종 보고서 등 연구 결과물도 접근이 불가능해졌다.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북한, 중국 등에서 일어나는) 숙청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USIP가 폐지 수순을 밟게 된 것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의 소장·이사진 강제 해임 및 교체와 연구소 내부 무단 침입이 있은 지 약 2주 만이다.

미 평화연구소(USIP) 전경 / 페이스북

1968년 세워진 윌슨센터는 외교·안보, 기후변화 등의 분야에 특화된 초당파적 싱크탱크로 연방정부 예산과 기부금 등으로 운영돼왔다. 1984년 의회가 설립해 의회의 자금 지원을 받는 USIP는 세계 분쟁의 평화적 해법을 주로 연구하는 독립 비영리 연구소다. 둘 다 행정부 산하 조직은 아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집권 1기 때부터 내세운 워싱턴 기득권 ‘고인 물 빼기(Drain the Swamp)’와 연방 정부 예산·인력 대폭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표적이 됐다. 두 기관에서 한반도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워싱턴 조야의 한반도 논의의 다양성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보수 진영에선 두 기관 리더십에 민주당 성향 인사들이 주로 임명된다는 이유로 비판해왔다. 하지만 사임 의사를 밝힌 윌슨센터 회장 마크 그린은 트럼프 1기 국제개발처(USAID) 처장을 지낸 인물이다. USIP의 핵심 목표도 미국의 가치와 영향력을 세계에 확산하는 것으로 특정 정당의 정치이념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학 ‘길들이기’도

미국 주요 대학들도 트럼프의 집중 공세 대상이다. 특히 공화당과 보수 진영이 진보적 색채를 문제 삼아 공격해온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대학 등 고등 교육기관이 ‘급진 좌파’나 ‘워크’(woke·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깨어 있는 태도)에 물들어 있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컬럼비아대, 펜실베이니아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 4곳이 연방 정부 보조금 지원이 중단 또는 동결됐다. 트렌스젠더 운동선수 관련 정책을 이유로 한 펜실베이니아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은 ‘반유대주의’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연방 지원이 중단됐다. 미 전역 60개 대학을 상대로 지난해 가자 전쟁 반대 시위인 ‘반유대주의’에 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강제 조치까지도 공언해왔다.

학내 반전시위 참석 혐의로 추방 위기에 놓인 한인 학생 정모씨 측 변호사가 지난 3월 25일 (현지시간) 뉴욕 연방법원 앞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캠퍼스 반전 시위의 진앙이었던 컬럼비아대는 가장 먼저 4억달러 규모의 연방자금 지급 취소 처분을 받았다. 결국 컬럼비아대는 학내 중동지역 연구를 시작으로 지역학 프로그램 재검토, 학내 시위 마스크 착용 금지, 이스라엘 연구 교수 충원 등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수용했다. 총장도 물러나기로 했다. 연방자금 지원을 무기로 행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의 정책 변화를 관철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상당수 대학이 재원의 4분의 1 이상을 연방연구지원기금에서 충당한다고 전했다. 돈줄을 쥔 연방정부가 입맛대로 대학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트럼프 취임 직후부터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DEI 철폐 요구에 따라 대학 내 관련 행사 취소, 소수 인종 학생 모임 축소 등도 잇따르고 있다.

일련의 조치를 두고 대학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저해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전 시위에 참가했던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비자 취소도 이어지고 있는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국무부는 지난달 국제 학생비자가 최소 300건 취소됐다고 밝혔다.

하워드 프렌치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최근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미국의 대학들은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귀한 자산이며 미국의 자기 정체성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하는 학문의 자유라는 위대한 전통에서 비롯된다”며 “대학들은 전 세계의 야심 찬 인재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미국의 리더십을 지탱해왔다. 미국 브랜드라는 궁극적인 가치가 파괴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주간경향 김유진 특파원

세월호의 진실을 덮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영화 <침몰 10년, 제로썸> 비평-세월호의 잠수함 충돌설로 거대한 의혹 직조

/빈하용,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지난 4월 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침몰 10년, 제로썸>(이하 ‘제로썸’)에 나오는 주장들을 하나하나 반박하기란 고된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더욱 곤란한 일이다.

영화 속 어떤 주장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비틀고 있다. 세월호 좌현 핀안정기실 내부의 손상이 잠수함 충돌과 관련 있는 듯 말하는 변호사는 자신이 고위직으로 몸담았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2017~2018) 조사관들이 그와 상반되는 조사 결과를 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2018~2022)에서 침몰 원인 조사를 책임졌던 사람은 잠수함 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도출했으나, 이를 심의하는 위원들의 정무적 판단으로 인해 종합보고서에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그 조사의 전제, 방법, 결과 모두 대한조선학회 등 외부 전문가 그룹의 압도적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어떤 내용은 그 발화자의 동기와 의도가 의심스럽다. 그날 세월호의 방향타를 잡고 있었으나 침몰하는 배에 승객을 두고 도주했던 조타수는 현장 주변 영상을 보다가 진실의 잠수함을 발견한 듯 말한다. “잠망경이네.” 그에게 바다에 솟아오른 안테나처럼 보인 것은 맑은 수면에 길게 늘어져 비친 배의 그림자였다. 자신이 해오던 주장이 “지금 증명이 되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그는 사고 당시 자신의 조타 행위에 대한 진술을 2014년에만 여섯 차례 이상 바꾼 바 있다.

또 어떤 내용은 절실한 믿음이 들어간 추측이라 반박조차 어렵다. 참사 직후 방한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참사 당일 백악관에 게양됐던 성조기를 가져와 애도하고 단원고에 목련 묘목을 보내기까지 한 것은 이 사건에 미국이 관련됐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전직 국회의원의 의심을 어찌하겠는가. 핵전쟁 가능성까지 검토한 한국전쟁 당시 미국 기록이 50년이 지나야 공개되는 걸 보면 세월호 참사도 40~50년 지나야 그 실체가 밝혀지리라는 ‘진보적’ 원로 학자의 진단도 반론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배의 문제 지적하면 ‘박근혜 동조자’로 몰아

<제로썸>은 조사위원회 관계자, 선원, 유가족, 정치인, 기자, 학자, 소설가 등의 기대와 절망과 상상을 뒤섞어 거대한 의혹을 직조해 낸다. 세월호는 미국 잠수함이 운항 중이던 바다를 지나다가 충돌해서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대한민국과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동기에서든 이런 의혹을 사실로 믿기 시작하면, 4월 15일 인천항을 떠날 때부터 세월호 선체가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모든 데이터와 문서와 진술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미국 잠수함의 존재를 부인하는 조사기구, 권력기관, 주류 학계, 어용 언론이 한심할 뿐이다.

선사, 선원, 규제기관의 잘못이 수년간 누적돼 위험해진 선체를 침몰 원인으로 지목하는 다수의견, 이른바 ‘내인설’에 대한 <제로썸>의 비판은 명쾌하기 그지없다. 세월호라는 배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은 “박근혜 정부의 결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문제에서 이보다 더 손쉽고 강력한 무기가 있겠는가. 사고 주변 해역에 잠수함이 없었고, 애초에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며, 충돌을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없다는 따위의 반박은 모두 박근혜 세력에 동조하는 일이 된다. <제로썸>은 진실을 진영의 소유로 만드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제로썸>이 제기하는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믿는 부정선거론과 닮았다. 부정선거론 신봉자의 핵심 활동은 부정선거의 증거나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의혹을 계속 의혹으로 남겨두는 일이다. 잠수함 충돌설도 그런 단계에 접어들었다. 공식 조사기구의 시간과 예산을 소진한 후 이들은 잠수함을 찾아다니느라 바쁘지 않다. 누군가 잠수함을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잠수함 충돌설의 고약한 점은 그것을 공적으로 심의해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그 거짓됨을 만장일치로 선고할 ‘헌법재판소’가 없다는 것이다. <제로썸>에 담긴 주장을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검토하고 평의해 온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정리해줄 심판관이 없다. 윤석열의 계엄과 같은 국헌문란 행위는 재발하지 않겠지만 <제로썸> 같은 영화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아니, 사실 우리에게는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에 관해 헌재와 같은 역할을 하라고 설치한 기관이 있었다. 마치 헌재처럼 사참위에도 위원장 포함 총 9명의 위원이 있었다(위원회 종료 시점에는 3명이 사퇴해 6명). 헌법까지는 몰라도, 각종 법률과 규칙과 양심, 그리고 경험법칙과 논리법칙에 따라 증거를 검토해서 사실과 거짓을 판명할 사명이 있는 기관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기관의 세월호 침몰 원인 평의는 한없이 시간을 끌다가 마감 기한에 쫓겨 황급히, 두루뭉술하게 종료됐다.

<제로썸>은 제목만으로 이미 모욕적인 영화

잠수함 충돌설의 주창자들은 조사기구가 의혹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덮어버렸으며, 다시 조사할 수만 있다면 진실이 떠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제로썸> 등장인물 중 몇몇은 바로 그 조사기구에서 핵심직책을 맡아 침몰 원인을 조사했다. 선조위에서는 오직 ‘외력설’을 검증하기 위한 추가 모형시험을 하러 네덜란드까지 다녀왔다. 사참위에서는 내인설을 부정하고 외력설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각종 조사 과제와 연구 용역을 설정했다. 여러 해 동안 ‘잠수함 찾기’에 몰두했으나 그 결과는 내부 위원들도 외부 전문가들도 납득시키지 못했다.

과학의 영역에서 잠수함 충돌설은 기각됐다. 조사 담당자들의 반발 때문인지 사참위는 잠수함 설의 공식 기각을 선언하지 못했으나, 이제 그 미지의 잠수함은 깊은 불신과 이념의 바다에서만 목격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용이나 기각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 검증 혹은 반증을 위한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잠수함 설은 인용이나 기각이 아니라 조기에 각하됐어야 한다. 이것이 사참위 조사 담당자들을 격노하게 했던 대한조선학회의 공식 의견이다(2022년 7월 사참위에 제출).

<제로썸>을 보고서 침몰의 진실을 밝히려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이들은 부정선거론을 접하고서 윤석열을 지키려는 사명감에 북받치는 이들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제로썸>을 통해 계몽된 이들은 대체로 윤석열의 탄핵을 촉구하러 거리에 나섰을 것이나, 사실과 증거를 대하는 태도에서 양측은 슬프도록 닮았다. <제로썸> 개봉 이틀 후 윤석열 파면이 선고된 것은 물론 우연이다. 그러나 부정선거론을 대중에게 알린 영화 <더 플랜>과 누군가 공모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의혹을 퍼뜨린 영화 <그날, 바다>의 제작자가 같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이후 10년, 그리고 11년, 진실을 위한 싸움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제로썸>은 그 제목만으로 이미 모욕적인 영화다. <제로썸>은 잠수함을 밝히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공범들이 “면죄부를 던지면서 없던 일처럼” 해버렸으니 “10년 세월이 허송세월”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제로썸>은 탄압에 맞서고 무관심을 견디면서 한 걸음씩 진실로 나아갔던 참사 피해자들을 욕되게 한다. 이윤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던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을 조롱한다. 계엄을 막아내러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듯 생명과 진실을 찾아 세월호로 향했던 모든 발걸음을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는 어리석은 짓처럼 치부한다.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은 은폐된 진실을 폭로하는 비밀병기가 아니라 힘겹게 건져 올린 진실의 조각들을 다시 가라앉히는 돌덩이가 됐다. “침몰 10년, 당신의 세월호는 끝났습니까”라고 다그치듯 묻는 <제로썸>은 축적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게으른 정의의 수호자로 나선다. 4월 4일 오후 광화문 앞에서 성조기를 두른 채 먼 곳을 응시하던 윤석열 수호자처럼 <제로썸>은 무엇이든 알고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국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세월호의 진실을 덮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전치형·김성수·박상은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집필진/ 주간경향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2018년의 스쿨미투, 20254월의 승소 판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는 뒤늦은 승소의 비애. 2018년 중·고등학생이었던 스쿨미투의 당사자들은 이제 만 20~25세의 성인이 됐으나 무려 8년이 지나는 동안 스쿨미투의 성과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스쿨미투로 공론화된 학교 성폭력 사안의 처리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이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려 온 것처럼, 그들의 기억에서 스쿨미투가 잊히길 바란 것처럼, 학교와 교육청은 8년 동안 모두의 알권리를 빼앗았다. ‘정치하는엄마들2019년부터 스쿨미투 사안의 처리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했고, 교육청의 비공개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진행해왔다. 지난 42일 전 국민의 이목이 대통령 탄핵 심판에 집중됐을 때, 충북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승소했다. 그러나 2018년 스쿨미투를 외쳤던 충북 지역 학생들에게, 지금은 어른이 된 그들에게 이 사실을 전할 길이 없다. 정의를 지연시킴으로써 정의가 아니게 만든 충북교육청의 전략은 탁월했다. 충북교육청은 학생과 피해자 편이 아니었다.

20184월 서울 용화여고 졸업생이 학교 성폭력을 고발했고, 재학생 후배들은 학교 창문에 메모지를 붙여 선배들에게 화답했다. #WITH YOU, WE CAN DO ANYTHING, #METOO(당신과 함께라면,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미투). 용화여고의 창문미투를 시작으로 2018년 한 해 전국 100여개 학교에서 스쿨미투가 일어났다. 하지만 스쿨미투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X(구 트위터) 상에 학교 성폭력 공론화 계정이 등장한 이후이고, 그 시작은 바로 충북여중이었다. 201897일 시작된 ‘#충북여중_미투트윗, 8일에 시작된 ‘#청주여상_미투트윗은 단 5일간(8~12) 각각 948300, 954000건을 기록했다.

2018년 충북 지역 5개 학교에서 스쿨미투가 일어났다. ‘너희는 내 앞에서 자면 안 된다. 나는 남자고 여자가 남자 앞에서 자는 건 위험한 일이다’(청주여상), ‘여자 속옷은 벗기기 쉽게 만들어져야 한다’, ‘여자는 가슴이 크고 엉덩이가 커야 한다’(이상 충북여고), ‘속옷이 내 아내 것과 똑같다’(충북여중), ‘가슴 예쁘지도 않은데 그렇게 뛰지 말라’, ‘얼굴이 사과같이 빨개서 따먹고 싶다’(이상 충주여고) 등 교사들의 상습적인 언어 성폭력이 드러났고, 학생 볼에 뽀뽀하거나 상담 중에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막대기로 엉덩이를 찌르는 등 신체적 성폭력이 고발됐다. 그러나 8년이 지나 받아본 처리 결과는 참담하다. 공립학교 두 곳에서는 해임 조처도 각 한 건씩 있었으나, 사립학교(서원재단)는 가해 교사 8명 중 정직 6개월 2, 정직 3개월 1, 나머지는 견책(6개월간 승진 제한) 조처에 그쳤다. 무엇보다 충북교육청은 가해 교사가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취업제한 5) 판결을 받은 충북여중 사건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8년 만에 확인한 것은 성범죄를 경범죄 취급하는 서원재단과 이를 감싸는 충북교육청의 민낯, 그리고 스쿨미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도 끝나지 않는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활동가/ 주간경향

미혼 남녀 48%결혼 생각 아직비용 부담맞는 상대 없음

인구보건복지협 조사 결과

상대 성별 바라는 조건 달라

미혼남녀 10명 중 4~5명이 결혼 의향이 없거나 망설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남성은 결혼생활 비용이나 소득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꼈고, 여성은 가부장적 문화나 직업 경력 중단을 우려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14일 공개한 제2차 국민인구행태조사 결과를 보면 미혼남성의 41.5%, 미혼여성의 55.4%가 결혼 의향이 없거나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협회는 지난해 1022~44세 남녀 2000(·기혼 각 500)을 대상으로 결혼·출산·양육 가치관을 조사했다.

미혼남성은 결혼 의향이 없거나 망설이는 이유로 결혼생활 비용 부담’(25.4%), ‘독신생활이 좋음’(19.3%), ‘결혼보다 일 우선’(12.9%), ‘기대에 맞는 상대 없음’(12.1%), ‘소득 부족(10.4%)을 꼽았다. 여성은 기대에 맞는 상대 없음’(19.5%), ‘독신생활이 좋음’(17.0%), ‘결혼보다 일 우선’(15.5%), ‘가부장적 가족 문화·관계가 싫음’(12.3%), ‘결혼생활 비용 부담’(11.6%)을 들었다.

결혼 조건에도 남녀 차이가 있었다. 미혼남성의 97.3%는 여성이 육아·가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했으나, 여성의 86.6%만 자신의 육아·가사 참여가 결혼 조건이라고 했다. 남성이 전세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하고 있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두 성별 모두 맞벌이와 공동육아 참여를 원하는 공동 생계부양자 모델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협회는 밝혔다.

·가정 양립과 관련해 미혼여성을 제외한 모든 집단에서 양육을 일보다 우선했다. 미혼여성은 일(50.4%)을 양육(49.6%)보다 좀 더 중요하게 여겼다. 출산에 대해선 미혼남성의 41.6%, 미혼여성의 59.1%가 의향이 없거나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이유는 자녀 양육의 경제적 부담’(34.1%·23.2%), ‘자녀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23.7%·23.6%) 등이었다./이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