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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4.12.16~

by 이성근 2024. 12. 16.

소중한 것을 지키려 가장 소중한 빛들었다

응원봉은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빛이다. K팝 팬들이 흠집이라도 날까 애지중지 보관하던 응원봉을 높이 들고 탄핵 집회에 나서며 신선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아이돌 팬덤이 나서면 얼마나 큰 응집과 행동력이 발휘되는가.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들은 그립감이 좋으며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높이 들기에 적합한 을 기본적으로 소지하고 있다. 길바닥 밤샘은 익숙하며 구호·함성·파도타기는 특기다. 모든 일정을 다 참여하고 싶은 올출(ALL)’ 욕구, 본능적으로 중앙 1열에 자리 잡는 적극성, 그리고 자신이 가진 정보와 재화를 조건 없이 나누는 연대 의식이 높다. 매일 밤 국회 앞 탄핵 집회 현장의 하늘은 K팝 응원봉이 뿜어내는 형형색색 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를 본 기성세대는 시대의 전환이라고 나직이 말했다.

오색 빛깔 응원봉, 진짜 민주주의 같지 않나요?

그룹 NCT 팬인 서예민씨(25)는 이번 집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손에는 직접 만든 탄핵 스티커를 붙인 직육면체 모양 응원봉인 믐뭔봄이 들려 있었다. 마치 이번 집회를 위해 탄핵봉으로 새로 태어난 듯 보였다.

믐뭔봄은 다른 팬덤 응원봉과 달리 투박하고 각이 져서 돈가스 고기 망치로 불리는 등 홀대를 받아왔어요. 그런데 이번 탄핵 집회에서는 세 보이는 디자인과 강한 발광으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죠. 드디어 쓰임을 찾았다고 기뻐하는 팬들이 많아요.”

서씨는 X(옛 트위터)에서 같은 팬덤 동료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 현장에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작은 빛이라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응원봉에 탄핵 관련 문구를 붙이거나 붉은 띠를 두르는 등 봉꾸’(응원봉 꾸미기)도 적극적이다. 처음 집회를 경험한 그는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새로 알았다.

집회에서 본 오색 빛깔 응원봉은 마치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집약체처럼 보였어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다른 색깔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우리 뜻을 펼 수 있구나새삼 깨달았어요.”

그룹 워너원 팬덤이자 멤버 김재환의 개인 팬인 윤이나씨(36)는 응원봉을 두 개 소지하고 있다. 워너원의 응원봉은 봉우리에 숫자 1이 있어 일명 ‘1찍봉이라고 불린다. 김재환의 개인 응원봉은 바람개비 모양으로 파란빛을 내는 옵션을 장착하고 있어 ‘1찍봉과 함께 들면 시국 아이템으로 안성맞춤이 된다.

제 응원봉을 보고 중장년층 어른들이 신기해하셨어요. 게다가 같은 팬덤 봉끼리 하이파이브하듯 부딪치면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 어디서 샀냐’ ‘얼마냐’, 엄청나게 물어보셨어요.”

매일 밤 국회 앞 탄핵 집회 현장의 하늘은 K팝 응원봉이 뿜어내는 형형색색 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를 본 기성세대는 시대의 전환라 말했다.

응원봉에 대한 기성세대의 관심은 지대하다. 현장의 한 시민단체는 지난 7일 집회 도중 우리도 응원봉이 누구의 팬덤인지 배워야 한다며 때아닌 응원봉 강의를 열기도 했다. 각각의 응원봉이 호명될 때마다 해당 팬덤의 참가자들이 환호했다.

해당 단체의 관계자는 즉흥적으로 준비한 강의라고 밝혔다. 그는 계엄령 포고 이후 금요일(6) 밤부터 응원봉이 하나둘 보이더니 이제 촛불집회가 아닌 응원봉 집회라고 불릴 정도로 많아졌다. 주최 측은 기성세대도 어떤 응원봉이 어느 팬덤의 것인지 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2030 여성이 주도해 만들어낸 응원봉 물결을 두고 시대의 전환을 상징한다며 대통령 탄핵 가결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을 보며 앞으로의 집회는 자기 생각을 취향대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응원봉은 언제부터 집회에 등장했을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 때부터라는 것이 참가자들 사이 정설이다. 당시 시민들은 특정 세력에 의해 동원된 정치 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장수풍뎅이 연구회’ ‘콜드플레이 예매 성공자 연합등 이색 모임명이 적힌 깃발을 들었다. 그때 민주팬덤연대를 비롯한 몇몇 모임도 나타났다. K팝 팬덤에 각자 응원봉을 들고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들이 단단한 결속력으로 집회마다 참여하자 아이돌 덕후들이 나라 걱정하면 큰일 난 것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워너원 워너블의 너블봉’. 윤이나 제공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따르면 계엄령 선포로 집회가 시작된 12월 첫주 응원봉검색량이 그전 주에 비해 1923.40%나 증가했다. 응원봉은 정기적으로 리뉴얼을 거치며 기수별 버전이 출시된다. 응원봉이 탄핵 아이템으로 변모하며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집 안에 모셔두었던 구 버전 응원봉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거나 시위용으로 쓴다면 무료 대여해주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응원봉은 별도의 보관함까지 구입해 둘 정도로 팬들이 애지중지하는 굿즈다. 가격은 보통 4만원대이나 9만원대도 있다.

스스로를 아이돌 덕질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직장인일 뿐이라고 말하는 윤씨는 이런 상황이 터지니 내가 즐기던 취미도, 당연한 일상도 파괴될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여의도가 넓고 복잡해 우왕좌왕할 수 있지만 응원봉만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집회에 참석할 수 있다며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하기를 바랐다.

우리는집회에 최적화된 프로들이다.

K덕질과 시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행위는 흡사한 지점이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장에서 만난 K팝 팬덤도 우리는 집회 환경에 매우 익숙하다’ ‘시위에 특화된 집단이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연말에 열리는 콘서트, 가요 시상식 방청을 위한 혹한기 야외 대기는 이들에게 예삿일이다. 연말엔 사녹이라 불리는 사전 녹화가 주로 새벽에 이뤄지는데, 선착순 입장이라 전날 밤부터 노숙도 불사한다. 시위에 참석한 한 아이돌 팬은 과거 MBC <가요대제전>은 매년 12월 임진각에서 이원생중계를 해왔다. 영하 20도 추위 속 공연과 비교하면 이번 집회는 일도 아니다라며 웃음 지었다. 응원봉뿐만 아니라 한겨울 야외라는 가혹한 환경, 든든한 옷차림, 방한용 핫팩, 바닥의 한기를 막을 방석, 카드나 휴대폰 결제가 불가능한 경우를 대비한 현금, 본인 확인을 위한 신분증 등 방송 녹화장과 집회 참가의 여건과 모든 준비물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K팝 팬덤은 세대를 넘어오면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집단으로 진화했다. 박선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들을 소셜미디어를 통한 자기표현에 능하며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는 세대라고 정의했다.

팬덤의 이름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거나 기부하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어요. 글로벌 팬덤으로 확장되면서 국제적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 필리핀 독재 통치 반대 운동에도 K팝 팬덤이 있었어요. 또 각종 환경 캠페인을 펼치고 2021년에는 기후위기에 대항하기 위한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을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발 시렵다는 혼잣말에 현장에서 처음 본 주변 사람이 발에 붙이는 핫팩을 말없이 건냈다. 백지원 제공

K팝 팬덤의 특징인 나눔 문화도 이번 집회에서 빛을 발했다. 몬스타엑스 팬인 KBS 청주 지역국 리포터 백지원씨(33)는 응원봉 몬둥이를 다부지게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주변 팬들과 나눠 먹기 위한 간식을 넉넉히 준비했다.

콘서트나 행사가 있는 날은 그날 처음 만나는 이들을 위한 선물을 항상 챙겨요. 이번 집회에서도 핫팩, 간식, 방석 심지어 간이의자까지 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집회 현장 인근 여자 화장실에 생리대까지 준비해 챙겨두시는 팬분도 계셨고요.”

오피스 밀집 지역이라 주말이면 대부분 문을 닫는 서여의도 소재 카페들도 지난 주말 문을 활짝 열었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이 참석자들을 위해 커피, 각종 간식을 선결제해둔 덕분이다. 이 역시 K팝 팬덤의 넉넉한 나눔 문화에서 비롯된 풍경이다.

화염병은 촛불이 되었고 촛불은 응원봉이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대신 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시가 구호와 함께 집회장에 울려 퍼졌다. 집회를 주최하는 기성세대는 그 변화를 적극 수용하며 탄핵플리(탄핵 집회 플레이리스트)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9일 집회 현장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다만세가사를 외워 왔으니 틀어달라 요구했다는 후기도 들린다. 2007년 발표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2016년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며 대학가 첫 시국선언을 시작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의 투쟁가로 불린 이래 민중가요로 자리 잡았다.

K팝 팬덤의 집회 현장을 직접 체험한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자신들이 심취한 하위문화 요소를 정치적 집회를 이용해 즐기는 풍경이 정말 흥미로웠다집회를 주도하는 세대가 바뀌고 있음을 몸소 느꼈다고 평했다.

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1980년대 민중 저항 정신이 깃들어 있던 집회는 촛불집회를 통해 범시민 문화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젊은 세대가 K팝 어법으로 집회를 축제와 평화 분위기로 만들기 시작했죠. 광장이란 원래 그런 장소죠. 다양한 정체성과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경향 매그진

분노를 멈추라"는 조선일보가 유발하는분노

"우리 사회에 가 너무 많다"며 국민들에 훈계

내란 사태, 아직 분노가 필요한 상황에서 '타협' 얘기

조선일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계속될 이유 보여줘

탄핵이 가결된 뒤 처음 나온 16일 월요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1면의 머릿기사를 탄핵 관련 기사들로 내보냈다. <윤석열 1차 소환 불응> <야당의 국정안정협의체거부한 여> <“민주주의 살렸다, 이젠 경제 민생 살려야”> 등의 제목들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신문만은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를 머릿기사로 올렸다. 바로 <“우리 사회에 가 너무 많다”>는 기사를 큼지막하게 실은 조선일보다.

원로인터뷰 시리즈의 첫 번째로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을 만난 조선일보 기자는 경남 양산 통도사의 서문암을 찾아 국회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랑 속에 빠진속세에서 떨어진 적막한 산사에서 노스님으로부터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서 분열과 갈등이 염려된다” “타협하고 경청하는 인성교육과 인욕(忍辱)이 절실하다는 가르침을 전했다.

조선일보의 눈에는 대통령과 내란 세력에 의한 위헌 사태를 국민들과 함께 헌법기관인 국회가 바로잡은 것에서 분노와 화에 빠진 우리 사회가 무엇보다 먼저 보이는 듯하다. 그런 국민들에게 분노와 화를 멈추고 평정을 찾으라고 훈계하는 듯하다. 차마 자신들의 입으로 그런 말을 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인지 산사의 종교 지도자를 찾아 그의 권위를 빌어 대신 국민들을 나무라는 듯하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보도는 우리 사회의 중대한 사태 때마다 이 신문이 보여왔던 태도를 다시 한 번 드러낸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논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얘기하듯 세속의 문제를 산사로 끌고 들어와서는 노스님의 말까지 이용해 결국 불가의 가르침까지 왜곡하고 있다. 세속의 절실한 문제를 호도하면서 동시에 산사의 청정한 법어(法語)’까지 모독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불교에서의 가르침은 분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일 수 없다. 다만 분노를 제대로 사용하고, 지나친 분노는 억제하라는 것이다. 분노할 일에는 오히려 분노해야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불가의 교훈일 것이다. 불가에서 지헤를 불에 비유해 혜화(慧火)’라고 한 것도 이와 통하는 이치다. 조선일보의 이 인터뷰에서 성파 스님이 말했듯 '성내는 마음 진심(瞋心)'이 경계해야 할 것인 이유는 그것이 정당한 이유가 아닌 탐()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분노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광장의 국민들의 분노에 대해 이제 타협하고 경청하라면서 분노를 멈추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국회에서의 탄핵 가결은 내란 사태 해결의 끝이 아닌 겨우 시작일 뿐인 상황에서 분노와 화를 멈출 때인지는 여기서 짚지 않기로 한다. 다만 조선일보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이제 그만 화를 멈추라고 할 만큼 자신들이 그동안 국민들의 정당한 분노와 화를 제대로 봤으며 제대로 보도했는가, 라는 것이다.

단적인 보도의 하나가 탄핵 표결이 이뤄지던 14일의 탄핵 집회 교통 체증 기사였다. 이날 여의도 국회 앞에 20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탄핵 가결을 요구하며 주권자의 분노를 표출할 때, 조선일보의 인터넷판은 탄핵 찬반 집회로 서울의 교통체증이 심하다, 썼다. 내란 심판 민심의 열기를 교통 체증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었다.

조선일보의 계엄 사태 보도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 신문에 대해 우호적인 인물들로 구성된 독자권익보호위원회조차 지적을 했다. 13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12월 독자권익위에서 위헌적 계엄 사태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를 전하는 조선일보의 톤이 지나치게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탄핵안 표결에 집단 불참한 여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날카로운 비판이 있어야 마땅했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이 회의에서 한 위원은 편집국이나 논설실의 어떤 바이어스(bias·편향)로 인해 조선일보 전체가 일종의 집단 사고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같은 집단 사고의 하나가 성파 스님 인터뷰 기사에서도 보인다. 조선일보의 기자는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 없이는 통합도 평화도 올 수 없다. 언론에 더욱 필요한 것은 분열과 갈등을 제대로 주목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분열과 갈등을 분노로써 제대로 노출하지 않고는 그 해결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인터뷰에서 경청과 타협을 얘기하고, “사회 전체에 분노, 화가 많다면서 슬그머니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몰고 간다. 국민들의 뜻을 받든 국회 탄핵 가결 과정은 정치의 한 부분이 작동된 것을 보여줬지만 이 신문은 정치인 전체상대에 대해선 욕심이라 하고 자신은 사명감이라고 한다며 정치인 모두를 똑같은 집단으로 매도한다.

김상수 작가는 페이스북에서 조선일보 사회부장의 지난 2009년 발언을 소개했다. “조선일보를 대표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리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 시킬수도 있습니다.” 김 작가는 "그렇다면 몰상식과 불공정의 이 불량품을 제조한 조선일보는 이것을 수거 처리하는 데 제대로 일조(一助)해야만 한다"고 질타했다.

조선일보는 김 작가의 말대로 '내란 사태' 혹은 그 사태의 근본원인인 '윤석열 사태'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는가.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의 계엄 준비설을 음모론 취급해온 조선일보는 지난 5일 주필 칼럼 <‘계엄 준비설제기김민석이 맞았다>에서 민주당에 사과했다. 이 칼럼이나 자사에 비판적인 독자권익위의 의견을 지면에 실은 것에서 조선일보가 책임 지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노와 화를 그만 멈추라는 '국민들에 대한 훈계'는 조선일보에 그같은 책임 의식은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조선일보'이며, 앞으로도 '조선일보'일 듯하다. 적잖은 국민들이 조선일보에 대해 분노와 화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빠졌다는 극우 유튜브 보니야당 절반 간첩탄핵 기각 확실

주요 6개 극우 유튜브 모니터아직도 윤석열 승부사칭송 한가득

15일 전국주일연합예배에서 연설하고 있는 전광훈 목사. 전광훈TV 갈무리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빠졌다는 보수 유튜버들은 이번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해 뭐라고 하고 있을까. 사실상 탄핵을 받아들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이 포기하지 않겠다”, “끝까지 싸우겠다등의 메시지를 내자 이들은 탄핵 기각을 예상하며 윤 대통령을 승부사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정상국가 대 종북세력의 대결로 규정해 듣는 사람을 애국자로 만드는 서사도 부여했다. 근거는 없지만 지지자 입장에서 듣기 좋은 주장들만 가득했다.

전광훈 목사 야당 200석 중 절반은 간첩, 광장 모여라

구독자 154만 명 유튜브 신의한수는 지난 15<전광훈 목사, 중대발표!> 영상을 게시했다. 전광훈 목사는 영상에서 탄핵은 이재명이 한 짓이라며 지금 야당 거의 200석 중에서 절반은 간첩이라고 말했다. 국회 장악에 실패했던 계엄군에 대해 이번에 시켜보니 개판이더라고 한 전 목사는 헌법재판소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혁명을 완성했다. (탄핵) 인용 혹은 기각은 결국 광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전 목사 옆에 앉은 참가자는 한쪽에는 북한 지령을 받은 이재명과 이재명 배후의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의원), 그 다음 국회에 침투해 있는 박선원(민주당 의원) 간첩이 활동하고 있다인원 동원은 민노총(민주노총)이 한다. 여기 계신 광화문 애국 동지들은 이 민노총과 11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데이터 집계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신의한수는 129일부터 1215일까지 3000만 원 이상의 슈퍼챗을 받았다.

홍창기TV 16일자 영상 갈무리. 영상 제목은 "(속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주심은 정형식! 이 임명한 헌법재판관! 이재용 석방, 보수단체 지원! '법리대로 한다!' 트럼프 측근, 지지! 한동훈, 조기 대선 올인?"이다.

윤 대통령에 대해선 보수언론마저 헌정질서를 어지럽혔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기성 언론에 대한 분노도 엿보였다. 언론사 뉴데일리와 정식 제휴를 맺고 있다고 밝힌 유튜브 홍창기TV’(구독자 46만 명)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짜뉴스가 쏟아졌다. 그때도 메이저 언론들이 (가짜뉴스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한동훈이 보수 유튜브에 빠지지 말라, 상업적인 애들이라 했다던데 메이저 언론들은 광고 안 하나. 메이저 언론들은 유튜브에 영상 안 올리나. 유튜브에서 우리가 가짜뉴스 하면 다 수익창출 정지된다고 언성을 높였다.

라디오 하차한 배승희·고성국, ‘탄핵 기각확신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했다가 YTN라디오에서 하차한 배승희 변호사는 탄핵 기각이 확실시된다고 주장했다. 16일 유튜브 채널 배승희 변호사’(구독자 133만 명) <헌재 긴급 입장문! 탄핵 심판 간파한 > 영상에서 배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씀, 정말 손이 떨린다. 눈물이 난다. 윤석열 대통령 아직 현직 대통령이라며 국민의힘이 거리로 나가서 이 탄핵은 잘못된 것이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선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국민들에 전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국TV 17일자 '내란죄 프레임 박살 논리' 영상 갈무리.

배승희 변호사와 같은 이유로 KBS라디오에서 하차한 고성국씨는 종북 주사파가 탄핵 가결을 만들었다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고성국TV’(구독자 112만 명) 17일자 <내란죄 프레임 박살 논리> 영상에서 고씨는 종북 주사파들은 박근혜 대통령 옆에 있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윤 대통령에게)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죽이려 했던 게 김건희 여사라며 김 여사 특검법이 결국 탄핵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 고도의 정치적 공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종북 주사파들 중에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계엄을 내란죄로 몰아 8년 전처럼 탄핵시킬 수 있다고 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용석 변호사 헌법재판소·용산에 화환 좀 보내달라

강용석 변호사는 2021년 개설된 유튜브 인싸it’에서 정치평론을 하고 있다. 강 변호사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승부라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우리가 응원해서 당선시켰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명 방어전이라 생각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지금 저들은 자기들이 이긴 줄 알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일종의 (대통령 임기) 중간평가인 셈이라고 말했다.

인싸it 유튜브. 16일자 '착각의 늪에 빠진 당 대표라는 것들' 영상 갈무리.

강 변호사는 시간이 우리에게 그렇게 불리한 건 아니다. 지금부터 헌재에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기각하라는 화환을 보내거나 윤 대통령을 응원하는 화환을 용산에 보내시라. 그리고 주말마다 광화문에 나와 여러분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혀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선포를 놓고 윤 대통령이 ‘10수 앞을 내다보고 있다고 평가한 유튜버도 있다. 구독자 71만 명 유튜브 채널 젊은시각은 지난 8일 라이브에서 3일 나온 대통령 담화문을 평가하며 눈이 뜨인다고 말했다. ‘젊은시각이렇게까지 민주당과 처절하게 좌파 종북세력을 콕 집어 싸워온 대통령은 처음이라며 “‘북한공산세력’, ‘종북반국가세력이라 딱 집어 말한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놓쳤던 말 그대로 대통령의 절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젊은시각우리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다이승만 대통령은 다섯 번, 박정희 대통령은 네 번의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수호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종북 주사파가 누구인지, 민주당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등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도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 체포를 직접 지시했다는 정황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6월 김진표 국회의장 회고록에서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관련 음모론에 빠져있다는 내용이 나오자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대통령님께 정말 유튜브 좀 그만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재령 기자 ryoung@mediatoday.co.kr

선거부정윤석열 담화, ‘주류가 된 극우

음모론자 천군만마 된 담화, 공론장 올라온 선거부정 음모론

국가 시스템 부정으로 이어질 수도유튜브, 머릿속 지배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일각의 주장으로 치부된 선거부정 음모론을 정치인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꺼내든 순간이었다.

윤 대통령 담화문 음모론자에 천군만마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담화를 통해 선관위에 보안취약점이 발견됐고 해킹에 의해 선거결과가 조작될 수 있기에 계엄을 선포했다고 밝혔다 선거부정을 단언하지는 않았지만 의혹이 충분한 것처럼 주장해 선거부정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음모론자들 입장에선 대통령이 반응했다는 것은 천군만마와 같으며, 음모론 확대재생산에도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 형성됐다부정선거 음모론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부정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구독자나 슈퍼챗을 위해 자극적인 주장을 하는 보수성향 유튜브가 정치·종교 팬덤과 결합되면서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졌다이에 더해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이야기했다. 이는 (음모론자들에게 부정선거 음모론이 사실이라는) 일종의 증거가 됐다고 했다. 엄 소장은 선거에 대한 불신이 심해지고, 투표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보수층은 선거를 믿지 못하고, 중도·무당층은 투표 참여 동기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더 플랜. 프로젝트 부

김어준이 시작해 보수층이 재확산

미디어를 통한 선거부정 음모론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는 방송인 김어준씨다. 김어준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한 201218대 대선부정 음모론을 제기하는 영화까지 만들었다. 투표지분류기가 분류를 못한 미분류표에 박근혜 후보 표가 문재인 후보 표보다 1.5배 많았다며 인위적으로 개표기를 조작하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선거부정을 주장하는 이들의 집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등 후폭풍이 잇따랐다. 다만 민주당에선 선거부정 음모론에 거리를 두며 조작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한동안 잠잠했던 선거부정 음모론은 반대 진영에서 부활했다. 2020년 총선 결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대패하면서 여권 일각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됐다. 이들은 사전투표 결과가 보수정당 후보에 불리하게 나온 점을 의혹 제기하며 투표분류기를 해킹해 조작이 이뤄진다는 주장, 사전투표함 보관 과정에서 조작이 이뤄진다는 주장 등을 했다.

보수진영의 선거부정 음모론은 극우 유튜버뿐 아니라 기성 정치인까지 가세하면서 세를 키웠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부정투표 음모론자들과 공개 토론에 나서며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라고 수차례 비판하고 나섰지만 황교안 전 국무총리, 민경욱 전 의원이 합류하면서 음모론은 오히려 지지세를 얻었다.

김준일 평론가는 김어준 시기에 접어들면서 음모론이 나름 체계화되고 논리적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과거 보수진영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없었던 것은 선거에서 더 많이 승리했기 때문인데, 최근 보수진영의 패배가 잦아지면서 현실 부정을 하게 됐다음모론에서 중요한 지점은 책임 있는 이들이 동조하는지 여부인데, 보수진영에서 황교안(부정선거부패방지대 총괄대표) 등 인사가 이에 동조하면서 (음모론이) 공론장으로 올라왔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음모론을 이야기한 것도 굉장히 강력한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담화를 통해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극우 유튜버들과 황교안 전 총리 등은 선거부정을 확인하기 위해 계엄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이 탄핵은 진실을 감추기 위한 공세로 치부하고 있다.

지난 15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영상. 사진=가로세로연구소 방송화면 갈무리

얼토당토 않은 선거부정 음모론

이들 음모론은 사실로 볼만한 여지가 없다. 윤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점검 결과 선관위가 해킹에 취약하다고 주장했지만 국정원의 점검은 이례적으로 망을 개방한 특수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해킹에 취약점이 있는 것과 해킹이 이뤄져 선거부정이 일어난 건 아무 연관성도 없다.

선관위는 지난 12일 입장을 내고 부정선거에 대한 강한 의심으로 인한 의혹 제기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과 다름없다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제기된 부정선거 주장은 사법기관의 판결을 통해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고 했다.

더구나 선관위는 지난 총선 전 국정원 지적사항에 보완조치를 했고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검증 받았다. 선관위 선거정보시스템 보안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김승주 고려대 교수는 SBS 유튜브에 출연해 선관위가 국정원이 지난해 발견한 취약점과 윤 대통령이 발견한 문제점에 대한 조치를 완료했다수개표를 도입했고 현장에서 참관인이 이 과정을 지켜본다고 했다.

극우 유튜브에 심취한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극단적 주장을 하는 유튜브에 동조해 음모론적 주장을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봉규TV는 지난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이 애청자라고 했다. 당시엔 일방적 주장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윤 대통령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를 포함한 보수성향 시사 유튜버들이 초청돼 논란이 됐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 회고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를 누군가 기획했다는 음모론을 믿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는 인사에서도 이 같은 색채가 드러났다. 김채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김채환의 시사이다채널을 운영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군인의 생체 실험을 지시했다는 주장, 중국 공산당이 박근혜 퇴진 시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등의 주장을 해 논란이 됐다. 이후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민영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등 유튜브에서 극단적이거나 강경한 발언을 한 인사들이 주요공직 및 산하기관장을 맡게 됐다.

엄경영 소장은 부정선거 음모론 자체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에겐 터무니없지만, 극우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에겐 음모론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윤 대통령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 중 하나는 유튜브로 보인다고 했다.

윤수현, 금준경 기자melancholy@mediatoday.co.kr

부자 86% 시간 지나도 굳건저소득층 69% 계속 빈곤

통계청, 2017~2022년 소득이동통계 발표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최바울 통계청 경제사회통계연구실장이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17~2022년 소득이동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전년대비 2022년 소득분위 상승이나 하락을 경험한 사람은 34.9%로 상향 이동한 사람은 17.6%, 하향 이동은 17.4%로 나타났다. 2024.12.18. ppkjm@newsis.com

우리나라 고소득층 10명 중 8(86%)은 시간이 지나도 상위 소득을 유지하고 저소득층의 69%는 계속 하위 소득인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은 2017~2022년 소득이동통계를 18일 발표했다. 통계청은 국세청 소득자료 등 데이터를 결합해 표본 약 1100만명의 소득을 조사했다.

2022년에 소득분위가 전년과 비교해 올라가거나 내려간 사람 비율은 34.9%이다. 1년간 소득분위가 바뀐 사람의 비율은 202035.8%, 202135.0%로 줄곧 감소하고 있다.

2022년 소득분위가 상승한 사람은 17.6%10명 중 2명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에서 계층 고착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소득 하위 20%(1분위) 10명 중 7(69.1%)1년 후에도 그대로 1분위에 머물렀다. 소득 상위 20%(5분위)86.0%가 이듬해 같은 분위를 유지했다.

20171분위에 속한 저소득층 중 2022년까지 1분위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31.3%를 차지했다. 여자보다 남자가, 노년층보다 청년층이 1분위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대비 2022년에 1분위 머무른 비율은 여자가 35.0%26.1%인 남자보다 높았다. 연령대별로는 청년층이 15.2%로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했다. 중장년층은 38.6%였고 노년층은 80.6%10명 중 8명이 5년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남성보다 여성의 소득분위 이동이 잦았다. 남녀 이동 비율은 각각 34.0%, 36.0%이다. 여성은 상하향 이동 모두 18.0%로 남성 상하향 이동 각각 17.2%, 16.8%보다 높았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xunnio410@donga.com

유럽 언론,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통령보다 더 강하다

온라인 사이트의 뉴스 배치를 잘 바꾸지 않는 스위스 언론사들도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를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김진경 통신원이 유럽의 언론과 한인 사회 분위기를 기록했다.

한국의 계엄 사태를 담은 기사가 124일 스위스 일간 타게스 안차이거1면에 실렸다. 김진경

124일 수요일 오후 3(현지 시각),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사 내 편의점 신문 가판대. 한 여성이 스위스 일간 타게스 안차이거1면 기사를 읽고 있다. “한국 윤 대통령, 계엄령 선포했다가 몇 시간 후 해제라는 제목의 기사 밑에는 국회 앞에서 군인과 시민이 대치 중인 모습을 찍은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다가가서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70대 스위스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 여성은 대답 대신 대체 이게 무슨 소동인가? 대통령이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건가? 앞으로 한국 정치는 어떻게 되는 건가?”라며 연이어 되물었다. 그는 현재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정치적 사건이 스위스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관련 없는 먼 곳의 얘기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스위스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니 모른 척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는 유럽 시각으로 123일 낮 동안 일어났다. 어지간한 일로는 온라인 사이트의 뉴스 배치를 잘 바꾸지 않는 스위스 언론사들도 이 일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저녁이 되자 주요 언론사 웹사이트에 관련 논평들이 실렸다. 일간 NZZ무책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을 6시간 동안 혼돈으로 몰아넣다-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보다 더 강하다라는 제목으로 사태를 정리하고 전망했다. 그 내용을 보면 스위스가 한국의 정치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은 완전무장한 북쪽 이웃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김정은의 테러 정권은 한국을 파괴할 생각에 기뻐할 것이다. 북한 군인들은 현재 러시아 군대와 함께 귀중한 전쟁 경험을 얻고 있다.” , 한국의 위기는 북한에 기회이고, 현재 러시아 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 중인 북한이 힘을 얻는다는 건 마음 졸이며 이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나머지 유럽 국가들에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앞서 스위스 여성의 한국의 정치적 사건이 스위스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나타내는 우려다.

NZZ는 또 다른 기사 한국 국가 위기: 국회, 대통령 탄핵 절차 개시(124)’에서도 이 사태가 북한과 러시아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한국은 오늘날까지 북한과 공식적으로 전쟁 중이다. 계엄령 선포는, 비록 몇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았더라도,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손에 뭔가를 쥐여준 것이다. 최근 몇 달 동안 김정은은 남쪽 이웃에 점점 더 심각한 위협을 했고 (···) 동시에 우크라이나와의 싸움에서 러시아 지도자 푸틴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은 중무장한 북한에 맞서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군사 억제력이 필요하다. 이럴 때 한국의 정치적 위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이용할 수 없게 돼 안심

언론뿐 아니라 유럽 시민들의 우려이기도 하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독일인 닐스 트레빙 씨는 한국 사태에 대한 시각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과거에나 있을 수 있었던 일이 발생한 걸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행위가 당혹스러웠다. 이제 상황이 일단락되어 북한이 이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안심이다.”

한국의 정치 위기에서 과거사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는 스페인인 호세 두아르트 씨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한국 상황에 대해 1981년 스페인에서 발생한 쿠데타 미수 사건이 겹쳐졌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독재자로 오래 군림했던 프랑코가 1975년 사망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후안 카를로스 1세를 국왕으로 하는 왕정복고가 이뤄졌는데, 프랑코 지지자들의 바람과 달리 국왕은 군부독재 체제를 계승하지 않고 스페인을 입헌군주제로 전환해 민주화를 추진했다.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빠르고 순조롭게 이뤄져 스페인의 기적이라고도 불렸지만, 쥐고 있던 권력을 놓아야 했던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했다. 1981223일 오후 6, 무장군인 200여 명이 마드리드의 하원 의사당에 난입해 총리와 의원 350여 명을 인질로 붙잡고 천장에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상황을 타개한 건 국왕이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TV 카메라 앞에서 헌법 질서를 유린하는 쿠데타는 반역이며 자신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왕의 지지를 받지 못한 세력은 힘을 잃었고 이튿날 새벽 이들의 시도는 실패한 쿠데타로 종료됐다.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호세 두아르트 씨는 아주 어릴 때 일이지만 부모님이 숨죽여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단 몇 시간이었지만 서울 시내에 헬리콥터와 무장군인들이 진입하는 장면을 보며 그때의 두려움이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한국 상황을 보도한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기사 계엄령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후 한국 야당이 대통령 탄핵안 제출(124)’에는 댓글이 약 70개 달렸는데, 그중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댓글(아이디 ‘Kaito Kid’) 역시 1981년 쿠데타 미수 사건을 언급한다. “(한국 상황이) 우리 23-F(223일 쿠데타의 별칭)보다 더 나쁜 건 장군이 주도한 게 아니라 대통령이 스스로 일으킨 쿠데타이기 때문이다. (···) 다행히 당시 스페인처럼 군부가 적극 가담하지도 않았고, 의원들이 겁을 먹거나 국민이 굴복하지도 않았다. 이제 할 일은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던 윤 대통령을 해임하는 것이다.”

계엄 사태는 실시간으로 스위스 한인 사회에 전해져 큰 파장을 일으켰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라이브 방송 덕이다. 취리히에 거주하는 최우리씨는 현재 수사 진행 중인 사건들을 덮기 위해 이런 일을 감행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라고 말했다. 조윤희씨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 계엄을 직접 겪은 교민이다. 회사에서 뉴스를 보고 떨려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는 그는 퇴근 후 국회 계엄 해제 표결 결과를 봤지만 아직 안심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온 민주주의인데···. 늦은 시각 추운데도 국회 앞으로 나가준 시민들이 정말 고맙다라고 말했다. 심리상담사로 일하는 이주혜씨는 유럽에서 수십 년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계엄에 대한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 상처를 다시 헤집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니···”라며 개탄했다. 사회복지사 황효빈씨는 한류 덕에 먼 타국에서도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울 때가 많은데,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내렸다는 말에 순간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국 국민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냥 두지 않을 것임을 알고, 고국을 믿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위상에 먹칠을 한 사건이지만, 계엄 선포에서 해제까지 시간이 짧았고 그 과정에서 국회와 국민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국회와 국민이 한국 대통령 권력의 한계를 보여주다(타게스 안차이거124)” “윤 대통령은 한국 시민사회가 얼마나 굳건하며 국가의 정치 엘리트에 맞서 싸울 국민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더 잘 알았어야 했다(NZZ같은 날)” 등의 보도는 현 한국 상황을 보는 세계의 시각에 우려와 함께 희망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시사인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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