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수를 매일 적는 이유
술 때문에' 사회적으로 15조원 쓴다
너는 내 집, 나는 네 집으로?…재건축 앞둔 불법 ‘전세 맞교환’
점점 난폭해지는 인플레이션,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IMF 권고 거꾸로?…윤석열 경제공약 ‘3대 리스크’
사회진보 위한 특활비 쟁점을 김정숙 옷값으로 뒤덮어버린 언론
잘못된 사실, 맥락 삭제… 이수정 교수의 위험한 주장
<피고인 #유시민 법정 최후 진술>
그가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수를 매일 적는 이유
ⓒ시사IN 윤무영
2146, 529. 암호 같은 제목의 책이 나왔다. ‘2146’은 2021년 한 해 동안 일하다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숫자다. ‘529’는, 그중에서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이 기록한 죽음의 수다. 언뜻 보면 시집 같은 얇은 책에 그날그날의 날짜와 사고 경위가 건조한 문장으로 적혀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인천 동구 화수동의 한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60대 남성이 지상 13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이런 기록이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숨막히게 이어진다. 시민단체 노동건강연대가 기획하고,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는 이현씨(가명)가 정리했다.
40대 직장인인 이씨는 2020년 12월부터 트위터 계정에 매일 산재 사망사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숨져’ ‘사망’ ‘노동’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를 검색하고, 포털사이트에는 실리지 않는 지역신문과 〈소방방재신문〉, 안전보건공단 속보를 체크한다. 지난해 4월 평택항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러 나섰다가 컨테이너 벽에 깔려 숨진 스물세 살 이선호씨의 죽음 얼마 뒤에 서울의 한 공사 현장에서 청년이 숨졌는데, 역시 아버지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선 이였다. “일하다 죽는 사람들이 선한지 악한지를 떠나서 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며 형제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개개인이 하나의 우주다. 그 우주가 매일같이 무너지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멀쩡하게 사회가 돌아갈 수 있는지 의아했다. 길 가다 보면 교통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의 수가 표지판에 나온다. 일하다 죽는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가.”
책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1월27일에 맞춰 나왔다. 이씨의 트위터 계정이 기록한 죽음의 수는 지난해 529명에 이어 올해 벌써 120명을 넘어섰다. 인터뷰를 진행한 3월14일 하루에만 경남 남해에서 어선이 전복돼 선원 3명이 숨졌고, 삼천포 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 설비점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이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이후에도 죽음의 유형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전히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사람이 죽는다. 위험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이씨는 앞으로 할 일이 많아지리라고 느낀다. 윤석열 당선자가 대선 기간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킨다”라며 시행령 개정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말했다. “오늘 죽은 노동자를 방치한다면 내일 죽을 노동자는 나 자신이거나 내 가족,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지 않더라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것들이 뭉쳐서 만들어내는 연대가 죽음의 구조를 끊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시사인 전혜원 기자
술 때문에' 사회적으로 15조원 쓴다
남자 81% 50대 31% 비용 차지 … "연령 낮을수록 사회적 손실 커, 절주정책 집중 필요"
음주를 둘러싼 다양한 찬반 입장들이 있지만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알코올로 인한 심신의 건강이 위협받는 것은 자명하다. 음주의 영향을 받는 질환이 60여가지나 된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특히 기저질환자에게 음주는 위험하다.
중독에 빠지면 치료하기도 어렵다.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범죄행위를 촉발·유발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기도 한다.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은 2019년 기준 15조원을 넘어섰다.
개인적으로 음주를 건강을 해치지 않고 타인을 위협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 실태를 살펴보고 생활 속 지혜로운 음주관리방법을 찾아본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건강위험요인의 사회경제적 비용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음주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총 15조806억원으로 나타났다. 2015년 13조4212억원에 비해 12.4% 증가했다.
◆의료비 3조4388억원 부담 = 음주에 의한 사회경제적 비용의 비중을 대상별로 보면 2019년 기준 남자가 81.1%, 여자가 18.9%, 50대 30.9%, 40대 24.1%, 30대 이하 19.9% 순으로 나타났다.
생산성저하액이 33.3%로 비중이 가장 컸다. 조기 사망액이 31.7%, 의료비 22.8%, 생산성손실액 8.9%, 간병비 3.0%, 교통비 0.3% 순으로 비용 비중이 나타났다. 음주로 인한 질병 발생 위험도는 2019년 기준 남자는 알코올성 다발신경병증(0.7634), 알코올성 심근병증(0.6782), 정신활성물질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0.6286) 등의 순으로 높았다. 여자는 정신활성물질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0.5393), 알코올에 의한 신경계통의 변성(0.4730), 알코올성 만성췌장염(0.4586) 등의 순으로 기여 위험도가 높았다.
음주로 인한 사망 기여 위험도는 남자는 정신활성물질 사용에 의한 정신행동장애(0.6892), 알코올성 간질환(0.6769), 만성간염(0.6063) 등으로 나타났다. 여자는 정신활성물질사용에 의한 정신행동장애(0.8737), 알코올성간질환(0.856), 식도정맥류(0.8514) 등의 순으로 위험도가 높았다.
◆생산성 저하 후유증 커 = 음주로 인한 직접 부담하는 비용을 보면 의료비가 2019년 기준 3조4388억원으로 남자 63.9%, 여자 36.1%, 70대 이상이 34.0%, 60대가 27.5%를 차지했다.
간병비는 4592억원으로 남자 70.6%, 여자 29.4%, 70대 이상이 36.8%, 60대 24.9%를 차지했다. 교통비는 484억원으로 남자 58.9%, 여자 41.1%, 70대 이상이 30.0%, 60대가 28.4%를 차지했다.
음주로 인한 간접부담 비용은 의료이용에 따른 생산성손실액이 2019년 기준 1조3383억원으로 남자 87.0%, 여자 13.0%, 50대 46.1%, 60대 23.1%를 차지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한 생산성저하액은 5조165억원으로 남자 87.1%, 여자 12.9%, 50대가 32.2%, 40대가 31.8%를 차지했다. 조기 사망에 따른 미래소득손실액은 4조7796억원으로 남자 86.7%, 여자 13.3%, 50대가 31.2%, 30대 이하가 29.1%를 차지했다.
이정미 연구원 등은 보고서에서 "남자와 50대 이하의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절주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알코올, 몸안 전방위 훼손 = 개인의 건강과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활 속 음주관리가 선행돼야 한다.
지난달 31일 남효정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알코올은 7 kcal/g 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나 영양소를 함유하지 않아 '저질의 에너지원' 으로 불린다. 알코올은 영양소가 없어 저장되지 않지만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로부터 에너지 섭취 비율을 감소시키고 다른 영양소의 소화 흡수 저장과 대사에 문제를 일으킨다.
알코올은 간에서의 포도당 신생합성을 방해해 저혈당을 일으킨다. 운동 후에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경우 혈당치가 정상의 30~40%까지 떨어져 포도당을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뇌에는 치명적이다. 신경세포를 파괴해 뇌 지능이 저하되고, 기억상실과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산화되지 못한 알코올 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뇌의 언어와 시각, 운동 중추를 마비시켜 알코올성 건망증이나 일시적 기억상실을 일으킨다.
다량의 알코올 섭취는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고혈압과 부정맥을 유발하고 고중성지방 혈증을 일으켜 죽상동맥경화에 관여하고 심장근육을 손상시켜 심장의 수축능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알코올은 소장에서의 소화흡수를 방해해 식욕부진과 상복부 불편감, 설사 등을 일으키고 나트륨과 염이온, 수분의 흡수도 감소시켜 영양소 결핍을 만든다. 영양소 결핍은 담즙산의 생성을 감소시켜 장과 췌장 기능을 떨어뜨리고 지방변(35~56%)을 보게 한다.
또한 알코올은 남성의 생식 기능을 저해해 고환 위축, 테스토스테론의 분비 저하, 발기 부전, 성적 흥미를 감소시키고 정자의 형태를 변형시킨다.
여성에게는 에스트로겐의 분비를 증가시켜 유방 조직이 커지고 난소 기능을 떨어뜨려 월경 불순이 생긴다.
현명하게 술 마시는 방법을 살펴보면 우선 자신의 숙취 행태를 볼 필요가 있다.
△알코올을 섭취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위 안에 음식물이 없을 때 △15∼30% 알코올 도수인 경우 △탄산음료나 이온음료와 섞어 마시는 경우 △담배를 같이 피우는 경우 △남자 보다는 여자가 술에 빨리 취하게 된다.
◆현명한 음주 습관 키워야 = 음주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피할 수 없다면 적정량을 마시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 최대 주량이라는 것을 갖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알코올 30g △남자는 2잔 △여자는 1잔이 무리가 없다.
공복에 마시지 말아야 한다. 공복에 마시는 경우 위에서 소장으로 배출시간이 짧아져 소장에서 3~4배 빨리 흡수된다.
물을 많이 마신다. 알코올은 대장의 수분 흡수를 억제해 탈수와 갈증을 만든다. 탈수가 되면 혈중 아세트알데하이드 농도가 더 높아져 숙취 증상을 더 심하게 된다. 물을 많이 마셔 알코올을 희석시켜 혈중 농도를 낮춰야 한다.
술은 한가지 종류로 마신다. 알코올의 농도 15∼30% 술이 가장 빨리 흡수된다. 맥주(4∼5%)와 양주(30% 이상)로 폭탄주를 만들어 먹는 경우 가장 흡수가 잘되는 상태가 되어 빨리 취하게 된다. 이온 음료를 같이 마시는 경우 알코올의 흡수가 훨씬 빨라지므로 탄산음료나 이온 음료와 함께 마시지 않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너는 내 집, 나는 네 집으로?…재건축 앞둔 불법 ‘전세 맞교환’
리포트]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단지, 여기저기 빈 집이란 표지가 붙어 있고, 입구는 출입금지 띠로 막혔습니다.
[인근 주민/음성변조 : "1,500가구 되지. 한 50가구 남았지. 2월 28일까지 1차 이주였고..."]
이 단지에서 집주인들의 주소가 대거 바뀐 건 이주가 시작된 지난해 9월쯤이었습니다.
A 씨가 같은 단지의 B 씨의 집으로, B 씨는 반대로 A 씨의 집으로 주소를 옮기는 식입니다.
심지어 3가구가 삼각으로 주소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등기부등본상 이렇게 주소가 옮겨진 건 모두 40가구 정도입니다.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감독 관청은 이른바 '맞전세' 행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시가 15억 원이 넘어 은행 대출이 막히자, 이주를 해야 하는 집주인들이 스스로 세입자가 돼 조합이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집행하는 대출을 악용했다는 겁니다.
대출금은 전부 200억 원이 넘습니다.
[재건축조합원/음성변조 : "같은 단지 내에서 그것도 무슨 더 큰 집도 아니고 똑같은 평수거든요. 대출을 받으려고 가짜 사문서 위조를 한 거죠."]
게다가 이자도 적습니다. 조합 대출금리는 1%대로, 당시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0.7%p 이상 낮습니다. 맞전세 거래자만 이득을 보는 겁니다.
[재건축조합원/음성변조 : "이 돈이 뭔가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줍는 돈이 아니에요. 다른 조합원들이 나중에 시공사한테 이자 쳐서 갚아야 되는 돈이에요."]
일부 조합원들은 시공사도 이런 행위를 부추겼다고 주장합니다. 이 단지와 같은 회사가 시공을 맡은 인근 재건축조합에서도 가짜 전세계약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공사는 "사실이 아니다", 조합은 대출해준 사업비는 집주인이 모두 갚아야 해 피해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도시정비법에는 조합의 대출은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집행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KBS 뉴스 허효진입니다.
점점 난폭해지는 인플레이션,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4일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이 인수위 4차 전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10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밀가루 가격이 30% 가까이 올랐다며 “물가 안정과 서민 피해 최소화를 위해 범부처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의 모습. 연합뉴스
변화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느리다. 하지만 일단 시작된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우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뀌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변화는 수많은 변수가 얽히고설키며 오랜 기간 상호작용한 결과다. 양이 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변혁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은 없지만 과거와 비교해보면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불을 붙인 것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다. 빠르게 번진 바이러스는 우리 일상과 경제 전체를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바꿔놓았다. 그것만이 변혁을 만들어낸 건 아니다. 양질전환의 핵심 촉매제 구실을 했을 뿐이다. 변화는 이미 그 전부터 시작됐고 바이러스가 연료 구실을 했다. 변혁의 기폭제는 또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을 기억했던 사람에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존 변혁의 흐름을 가속화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이래 진행되던 세계화의 퇴조는 이제 명확해졌다. 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우리는 현재 변화의 정점에 있다. 바이러스에 더해 새로운 지정학적, 경제적 변화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전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하다. 가까운 미래는 익숙했던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다.
뉴노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는 불가피하다. 확실히 군사적 대응보다는 낫다. 하지만 제재는 연결을 끊는 행위다. 기존 방식을 버리는 데는 위험이 따르며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충돌은 어떤 것이든 일방의 승리나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상처를 입는다. 폐허에서 꽃이 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전쟁 발발 전 세계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이를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속속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플레이션이 연착륙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믿음이 이제 전쟁으로 확고해졌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뉴노멀’이 되고 있다. 전쟁은 인플레이션 핵심 인자 2개를 폭발시켰다. 에너지와 식량 등 필수재 상품 시장의 혼란을 불렀고, 공급망 단절과 왜곡을 심화했다.
러시아는 에너지, 우크라이나는 곡물의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유럽이 얼마나 러시아 에너지에, 세계가 얼마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에 의존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들이 생산과 수출을 멈추면 그렇지 않아도 고공 행진하던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급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에너지와 곡물은 필수재다. 핵심은 그 부족분을 대체할 대안이 있는지다.
유럽은 부족한 에너지를 미국이나 중동으로부터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생산을 빠르게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에너지 업계가 생산량을 늘릴지도 불투명하다. 산유국과 원유 업계는 과거 유가 폭락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최근 미국 에너지기업 셰브론의 최고경영자 마이크 워스는 “에너지기업들이 이전의 완만한 증산을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실제로 산유국들의 증산 움직임도 있다. 가격이 충분히 높은 상태로 안정된다면 관련 업계는 이익을 늘리려 증산할 수도 있다. 셰일오일의 생산도 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하반기로 갈수록 낮아질 여지가 있다. 다만 그 수준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전쟁이 유가 안정이란 희망을 꺾었다.
곡물은 어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곡물이 세계 곡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이른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앞으로 한두 달 안에 씨를 뿌려야 곡물을 수확할 수 있다. 가능할까? 전쟁으로 농업은 불가능하다. 전쟁이 끝나도 폐허 속에서 다시 농업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부족분을 브라질, 미국, 아르헨티나가 대체할 수 있을까?
2020년 7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농촌 마을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이른다. 로이터
가격 상승 도미노
밀가루 가격 폭등은 ‘아랍의 봄’을 불렀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주식은 여전히 밀이다. 식량 부족은 평형과 안정을 깬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 수급 안정을 위해 식량 수출을 금지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3월9일 보도했다. 밀, 옥수수, 메밀, 귀리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도 필수 곡물에 대해선 자국 우선 공급을 명확히 했다. 곡물 가격 폭등은 가공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용 금속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러시아는 글로벌 니켈의 약 10%를 공급한다.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오른다. 이뿐만 아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세계 3대 리튬 보유국이자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지하자원 채굴 광산을 국유화하는 헌법 개정 초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국민투표 절차가 남았지만 칠레의 사례는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자원의 무기화 바람이 불고 가격 상승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전기자동차 등의 가격 상승도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네온가스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고순도 정제 네온가스는 반도체에 필수적이다. 그것의 3분의 2를 우크라이나 항구도시인 오데사의 한 공장에서 생산한다. 공장이 파괴되거나 항구가 전쟁으로 제 기능을 못하면 반도체 가격은 어찌 될까? 반도체 품귀 현상이 길어지면 수많은 후방산업이 영향받아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전쟁으로 악화일로이던 공급망의 핵심인 물류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사실 많은 국가가 러시아 제재에 일사불란하게 동참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절실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계에서 하나의 고리가 끊기는 것의 파급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정확히 분석했는지는 의문이다.
선박 운임이 치솟고 있다. 해운사로서는 가격을 올리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더 심한 제재가 가해지면 배는 언제든 뜻하지 않게 억류될 수 있다. 전쟁이 격화하면 배가 공격받을 수도 있다. 리스크는 가격을 높인다. 이는 관련 은행, 보험사의 비용을 늘리고 마침내 가격 상승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3월14일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자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시민들이 해변에서 방어벽을 쌓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나르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고순도 정제 네온가스의 3분의 2를 오데사의 한 공장에서 생산한다. REUTERS
불신의 시대
이번 전쟁이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종전은 종착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다. 제재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소한 푸틴이 권좌에 있는 한 그럴 것이다. 전쟁으로 국가 간 사업은 상존하는 위험을 경험했다. 러시아에 진출했거나 러시아와 교역하는 수많은 기업이 타격받고 있다. 거래 상대국, 상대방에 대한 불신은 점차 커질 것이다. 불확실성은 외려 더 심해질 수 있다.
불신은 러시아의 국가부도가 현실이 되는 순간 폭발할 것이다. 연쇄반응이 어떤 식으로 올지 불확실하다. 러시아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은행의 높은 레버리지와 상호 밀접한 연결성을 고려한다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악성부채는 러시아의 부도 외에 러시아와 교역하는 수많은 기업의 부실로도 생길 수 있다.
이번 전쟁이 은행 위기나 20세기 말에 발생한 국가부도 사태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서구 은행에 예치한 3천억달러(약 370조원)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막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많은 나라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보유한 외환을 자국 안에서 운용하려 시도할 것이다. 연기금 등 펀드도 마찬가지다.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자본흐름이 일시에 왜곡될 수 있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이탈리아 정도다. 그렇다고 경제제재의 파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지기는커녕 더 난폭해지고 있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도구가 무력해지는 데 있다. 수요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라면 긴축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공급이기 때문에 고약하다. 긴축은 매우 제한적인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익숙하던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고 있다.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20세기를 이끌었던 세계화 퇴조가 명확해졌다. 세계화의 핵심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교역과 소통이다. 이제 이것들이 곳곳에서 끊기고 있다. 끊긴 교역은 어떻게든 새로운 방식으로 건설될 것이다. 다만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곤궁은 갈등과 전쟁을 낳는다. 갈등과 전쟁은 곤궁을 더한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예측한 2022년 1분기 미국의 실질성장률은 0%다. 중국의 2022년 성장률 목표가 5.5%다. 이마저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 경제대국들의 사정이 이렇다.
역사는 신뢰와 불신이 순환하는 연대기다. 지금은 불신의 시대다. 불신은 불확실성을 높인다. 경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그것이다. 침체가 종말은 아니다. 회복은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당분간 꽃길은 기대하기 힘들다. 고난의 길은 생각보다 길 수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성장, 침체가 함께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오고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IMF 권고 거꾸로?…윤석열 경제공약 ‘3대 리스크’
1) 50조 추경에 고물가 기름 부을라
대출 등 금융지원 포함 ‘50조 맞추기’
(2) 대출규제 풀면 가계부채 눈덩이?
LTV 완화 별개로 DSR 손질엔 신중
(3) 부동산 규제 완화, 집값 자극 우려
보유세 완화 앞서 양도세 카드 먼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 선정에 나선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주요 경제 공약 실행안을 놓고 인수위 안팎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윤 당선자는 대선 기간 동안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50조원 예산 편성, 부동산·대출 규제 완화를 내걸었다. 하지만 최근 물가와 집값이 상승세를 타면서, 윤 당선자 공약과 경제 환경 사이의 ‘엇박자’가 적지 않다. 인수위 내부에서도 금융·부동산 규제 완화 등 ‘윤석열 노믹스’(윤석열 당선자의 경제 정책)의 부작용을 막을 정책의 ‘균형잡기’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① 50조 추경에 고물가 기름 부을라
대표적인 엇박자는 새 정부 출범 직후 추진 예정인 자영업자·소상공인 코로나19 손실 보상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물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선 공약대로 재정 50조원을 추경으로 쏟아부으면 가뜩이나 오름세를 보이는 물가 상승률을 자극할 수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 등으로 지난달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인 2%(전년 동기 대비)를 훌쩍 넘는 4%에 육박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대규모 추경이 물가 상승과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1800조원대 가계 빚(가계 신용) 상환 부담 악화, 내수 둔화를 초래하는 악순환이다. 윤 당선자는 지난달 31일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나 “정권 초에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가면 민심이반 시작”이라며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약이 수정될 조짐도 엿보인다. 윤 당선자는 지난달 말 인수위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불필요한 지출 구조조정으로 대출 지원, 신용 보증, 재취업 교육 지원 등을 포함한 50조원 규모의 손실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을 들은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는 “금융 지원까지 넣어서 50조원이라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추경에 재정 지원뿐 아니라 각종 금융 지원 방안 등을 담아서 50조원보다 훨씬 적은 돈을 쓰고도 ‘50조원 지원 효과’를 거두는 ‘우회로’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② 대출규제 풀면 가계부채 눈덩이?
대출 규제 완화 공약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윤 당선자는 현재 지역별로 20∼70%를 적용 중인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70%로 단일화하고, 청년·신혼부부 등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의 경우 이 비율을 80%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연 8%씩 급증한 국내 가계부채가 대출 규제 완화를 계기로 다시 불어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 발 금리 인상에 속도가 붙으며 가계의 대출 상환 부담도 덩달아 무거워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발간한 한국 정부의 연례 협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가계부채와 집값이 팬데믹 기간 전례 없는 속도로 늘어나 가계 빚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매우 높은 상태”라며 “위험이 커지는 걸 억제하기 위해 대출자 규제 강화, 은행 자본 확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윤 당선자 공약과 정반대의 정책 조언을 내놓은 셈이다. 이 기구는 한국 경제의 핵심 위험 요인으로 집값 상승과 함께 가계 부채 증가를 꼽는다.
인수위가 엘티브이와 더불어 핵심 대출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대출자 소득에 따라 대출액 산정) 규제의 ‘패키지 완화’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디에스아르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커 규제를 완화한다, 안 한다 양자택일 식으로 확정한 내용이 전혀 없다”면서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합리적인 방안이 뭔지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정부에 “대출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지금보다 강화된 디에스아르 비율을 도입해야 한다”며 대출 문턱을 외려 높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③ 부동산 규제 완화…집값 자극 우려
새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이 부동산 시장 안정에 역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넷째 주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강남 4구 아파트값은 전주에 견줘 소폭 오르며 10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인수위가 보유세·취득세 등 각종 부동산 세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당선자 공약 중 다주택자가 집 팔 때 물리는 양도세 중과세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겠다는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낸 것도 이 같은 염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 수요를 부추길 수 있는 보유세 완화가 아니라, 다주택자의 주택 매도(공급)를 촉진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양도세 쪽을 우선해서 손 댔다는 얘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코로나 손실 보상의 경우 사전에 보상 규모를 정해놓을 게 아니라 실제 손실을 따져본 뒤 적정 지원 수준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부동산·가계부채 문제의 경우 주택 공급 확대 등과 함께 대출자 소득과 상환 능력을 고려한 대출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CPTPP 가입 결사 반대 행진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인근에서 열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농어민 총궐기대회의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2022.04.05
푸틴 인형 불태우며 춤추는 조지아인들
27일(현지시간) 흑해 연안국인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인형을 불태우면서 춤추는 반전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2022.3.28
ⓒ연합뉴스2022.04.05
사회진보 위한 특활비 쟁점을 김정숙 옷값으로 뒤덮어버린 언론
특활비 정보공개청구 이뤄진 2018년 이래 옷값 보도량 가장 높아
납세자연맹 “한국 언론, 개인 공격 수단으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
정권교체기 청와대 특수활동비 공개를 둘러싼 보도가 ‘영부인 옷값 논쟁’으로 점철되고 있다. 수년간 특수활동비 공개를 요구해온 시민단체 마저 ‘특수활동비 폐지운동을 변질시키지 말라’고 목소리를 냈지만 가십을 퍼나르는 보도행태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공개가 요구되고 있는 대상이다. 특활비는 외교·안보·수사 등 업무용 이유를 들어 증빙 없이 쓸 수 있고,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예산을 주머닛돈처럼 사적으로 써도 검증받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 온 이유다.
그리고 지난 2월10일 청와대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소송이 제기된 지 3년 만에 청와대의 특활비 사용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018년 청와대에 특수활동비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거부당하자 이를 취소해달라면서 2019년 제기한 행정소송 결과다. 재판부는 공개 이익을 인정하기 어려운 일부 개인정보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2018년 6월1일~2022년 4월4일 빅카인즈를 통해 산출한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보도량 추이
의미가 깊은 선고였지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지난 26일 변호사 신평씨가 SNS를 통해 “김정숙 씨가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사용하여 남편의 임기 내내 과도한 사치를 하였다고 한다”고 주장한 일이 계기였다. 이후 청와대 특활비 공개 논의는 영부인의 옷값과 사치에 대한 가십성 보도에 뒤덮였다.
이는 실제 보도량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납세자연맹이 청와대에 특활비 정보공개 청구를 했던 2018년 6월부터 이달 4일까지 보도량을 살펴본 결과 신 변호사 SNS가 기사화되면서 가장 많은 양의 특활비 관련 보도가 쏟아진 것이 확인됐다. 2018년 7월 ‘MB집사’로 불렸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관여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선고, 2020년 11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으로 불거진 검찰 특수활동비 논란이 불거졌을 때보다도 한층 많은 양이다.
그중에서도 청와대가 특활비 공개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지난달 29일 관련 보도량이 정점을 찍었다. 내용 면에서는 ‘특활비 보도’라기보다 ‘김정숙 옷값’ 보도에 가까웠다. 김정숙씨가 착용했던 호랑이 형태의 브로치를 두고 명품, 가품 논쟁이 불거지면서 ‘논란의 김정숙 여사 브로치, 까르띠에 공식답변은?’이라는 보도가 여러 언론사에서 쏟아졌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김씨를 비꼬면서 사용한 표현들이 정치인 입을 통해 기사화되는 일도 가속화했다. 이학재 전 국민의힘 의원이 “일부에서는 김 여사를 ‘김멜다’라고 부른다”고 말하면서, 기사 제목에도 ‘김멜다’라는 제목이 거리낌 없이 사용됐다. 사치스러운 명품수집광으로 알려진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디 마르코스의 배우자 이름을 빗댄 것이다.
▲빅카인즈로 추출한 26일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보도 일부 제목
이를 둘러싼 정치권 논쟁이 기사화되면서 갈등이 확산되는 상황도 나타났다. 전형적인 따옴표 중계, 공방 보도들이다. 옷값 논란을 지적하는 스피커로는 주로 과거 ‘나는 꼼수다’(나꼼수) 멤버인 방송인 김어준, 김용민씨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등판했다. △‘김정숙 옷값’ 연일 엄호한 김어준 “개인 카드로 산 걸 왜 공개? 尹 특활비가 더 수상”(세계일보) △‘김정숙 ‘옷값’에 문재인 ‘금괴’ 꺼낸 탁현민…“홍위병 자처하나”’(이데일리) △‘나꼼수’ 김용민 “김정숙 의혹 제기, 나올 것 없는 文 대신 보복”(중앙일보) 등이다. 이는 대척점에 선 국민의힘측 발언이 더해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김정숙 여사 옷값 논란을 문 대통령이 200톤 금괴를 보유했다는 과거의 루머에 빗대자,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홍위병이 되길 자처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성 정치인이나 정치인의 여성 배우자를 둘러싼 논란이 가십으로 활용되는 고질적 양상도 확인된다. 지속적으로 김정숙과 김건희(윤석열 당선자 배우자)를 대비하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29일 이데일리의 ‘“김정숙 여사, 옷값으로 수억” 5년만에 또…10년 된 재킷 꺼낸 김건희’ 보도가 대표적이다. 제목에 쓰인 “김정숙 여사, 옷값으로 수억”은 2017년 고 정미홍 전 대한애국당 사무총장이 SNS로 주장했던 내용을 끌어온 것이다. 김건희씨에 대해선 최근 입은 옷이 수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입은 옷과 같다는 내용을 두고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매체는 지난 5일에도 ‘김정숙 옷값 논란 속…김건희 3만원 슬리퍼 ‘품절 대란’이라는 보도를 이어 갔다. 김씨가 찍은 3만원대 흰색 슬리퍼가 화제가 됐다면서 일부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서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는 대목은 어떠한 공익적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대목이다. 여론이 들끓는 사안에 대한 키워드를 뽑고, 현 영부인과 차기 영부인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관심을 유도하는 기사로 보인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일부 보도 제목 갈무리
이런 가십성 보도가 생산되는 동안 정작 특활비 공개 여부를 결정할 청와대, 법·제도를 논의할 책임이 있는 입법부 등의 이야기는 뒷전에 밀려났다. 특활비 공개운동을 해온 납세자연맹이 “특수활동비 폐지운동을 ‘개싸움’으로 변질시키지 말라”면서 강한 어조의 성명을 낸 이유다.
납세자연맹은 지난달 30일 “언론들과 정치권은 한국 사회에 매우 의미가 있는 판결인 특수활동비 공개 승소가 아닌 김정숙 여사 옷값 의혹에 촛점을 맞추며 사회진보를 위한 납세자들의 선의를 진영싸움이나 문재인 대통령 공격으로 호도하고 있다”며 “투명한 정보공개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밑바탕이 되는 점은 특활비 문제의 핵심인데, 한국의 언론들이 정보공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개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 동안 청와대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납세자연맹이 특활비 비공개 근거인 대통령기록물법에 대해 4일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문 대통령은 조만간 임기를 마치게 된다. 지금 언론에 필요한 역할은 정치권이 특활비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만드는 일이다.
납세자연맹은 4일 “국정원을 제외한 모든 부처의 특활비는 차기 정부에서 바로 폐지해야 한다”며 “윤석열 당선인은 앞서 검찰 재직 당시 사용한 특활비에 대해서도 정보를 공개하고, 이런 특권을 누린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임기 시작 후 올해 책정된 특활비 예산부터 영수증을 첨부하도록 해야 한다. 법률을 바꿀 필요도 없이 감사원과 기획재정부 특활비 예산지침만 바꾸면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잘못된 사실, 맥락 삭제… 이수정 교수의 위험한 주장
여성인권 불평등하지 않아” 근거로 ‘성불평등지수’
청소년 출생률·모성 사망률 낮은 영향 커
“성평등 독립부처는 세계 10개국뿐” 틀린 주장도
194개국 중 160개국, ‘성평등 위한 독립부처’ 운용
‘독립부처 형태 증가-위원회는 감소’가 세계 추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여성가족부 폐지 그 대안은?’ 토론회에서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한국 여성 인권이 불평등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우리나라가 유엔에서 보고하는 성차별 지수(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에서 아시아 중 1등 국가인데, 지금처럼 여성인권만 높여달라고 주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 저는 여성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그 대안은?’이라는 주제로 토론회에서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가 한 발언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이 날 행사에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이수정 교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차인순 국회의정연수원 겸임교수, 하나 베커 독일대사관 1등 서기관 등이 참여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이 교수는 ‘성평등정책 추진의 틀, 어떻게’라는 제목의 자료를 띄우고 14분 동안 발표를 이어갔다. 이 교수는 지금 시급한 문제는 여성인권보다 자살률이라고 강조하며 “성차별이 심하다고 하는데 세계경제포럼(WEF)의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GGI)는 156개국 중에 102위다. 하위권이긴 한데, 자살률은 20년 동안 1위다. 유엔이 발표한 ‘성불평등지수(GII·Gender inequality index)’는 전세계 11등이다. 우리나라 여성인권이 꼭 ‘인이퀄’(Inequal·불평등)하지는 않다”고 했다. 이 교수는 발표 말미 한 차례 더 “우리나라 성불평등지수가 (낮은 순으로) 아시아 1등인데, 계속 그것(여성인권)만 주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성불평등 정도가 알려진 것처럼 심각하지 않다는 점을 발표 전·후반에 걸쳐 반복해 강조한 것이다.
이 교수가 이날 인용한 ‘성불평등지수’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각 나라의 △모성사망률 △청소년 출생률 △여성의원 비율 △중등 이상 교육 비율 △경제활동 참가율 등 5개 지표를 토대로 산출한다.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우리나라의 종합 점수는 0.064로, 세계 11위, 아시아 1위다. 결과만 보면 순위가 결코 낮지 않다.
그러나 모성사망률, 청소년 출생률 지표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 점이 이런 결과에 기여한 맥락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출생률(15∼19살 여성 1000명 중 출산한 인원)은 1.4명으로, 조사대상 189개국 가운데 가장 낮다. 모성사망률(여성 10만명 중 출산으로 사망한 인원) 역시 11명으로 적은 편이다.
반면 남성과 여성의 정치·교육·노동 분야의 ‘성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는 구조적 성차별의 현재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여성의원 비율은 16.7%다. 같은 16%대 나라는 저개발국이 포진해 있다. 아제르바이잔(16.8%), 파라과이(16.8%), 리비아(16.0%), 우즈베키스탄(16.4%), 마다가스카르(16.9%), 토고(16.5%)가 있다. 추이도 봐야 한다. 모성사망률·청소년 출생률은 2018∼2020년도 유지·개선됐으나, 같은 기간 여성의원 비율(17%→17%→16.7%), 중등 이상 교육받은 여성 비율(89.8%→89.8%→80.4%)은 외려 지표가 악화했다. 다만 경제활동참가율은 52.2%→52.8%→52.9%로 소폭 개선됐다. 이런 맥락을 보지 않고 결과만 언급하면 우리나라가 성평등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선도 국가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다. 실제 4개(경제·교육·건강·정치) 부문에서 남녀 ‘격차’를 파악해 순위를 도출하는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 세계경제포럼)를 보면, 한국은 전체 156개국 중 102위(2021년 기준)다.
이수정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제가 다 뒤져보니까 여성가족부처럼 완전히 별개의 부처(Ministry)로 독립된 곳은 독일 등 기껏해야 10개 나라밖에 없다. 위원회 형태 등 다양한 부처가 존재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인수위에서 논의되는 ‘위원회 안’(가족·청소년 업무는 다른 부처로 이관하고 성평등 업무는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 위원회에 맡기는 안)이 “아주 근거가 없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유엔위민(UN WOMEN)이 지난해 3월 발표한 ‘각 나라의 성평등 추진체계(Directory of National Mechanisms for Gender Equality)’를 보면, 총 194개국 가운데 160개국이 성평등을 위한 별도 독립부처(부·청)를 두고 있다. 추이를 봐도 독립부처 형태는 늘어나고, 위원회 형태는 감소하고 있다. 독립부처 형태는 2008년 107개국→2013년 137개국→2020년 160개국으로 증가한 반면, 위원회 형태는 20→20→17로 감소했다.
이 교수는 이날 각종 통계를 근거로 들어 여성가족부 대신 인구정책·자살·아동학대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하는 나라에서 왜 이토록 이 문제에 무감한가… 특히 코로나 겪으면서 2030 여성 자살률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늘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2030 여성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으로 꼽히는 △젠더폭력 △채용 성차별 △성별 임금격차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기자 개인을 상대로 욕설, 협박을 비롯한 악성 전자우편을 보내는 경우 수사기관을 통해 발신자를 추적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최윤아 기자
지난 1일 부산 망미초등학교에서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 공동 교육 프로그램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노래하다’가 열렸다. 부산시 제공
부산시가 부산시교육청과 함께 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노래하다’를 진행한다.
두 기관은 지난해 미래 세대를 겨냥해 교육을 통한 엑스포 유치 공감대를 조성하고 자발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공동사업 추진 협력체계를 갖추기로 했으며, 이번 교육프로그램도 그 일환으로 진행된다.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노래하다’는 등록엑스포의 의미와 과거 개최국에서 전시된 발명품 등을 설명하는 시간이다. 시와 시교육청은 그동안 공모를 통해 대상 초등학교 10곳을 선정했으며, 지난 1일 망미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각 학교를 방문해 교육을 진행한다.
실제 교육은 대학생 서포터즈가 부산시 소통 캐릭터인 ‘부기’와 함께 엑스포를 알리고 엑스포 유치 노래에 맞춰 학생들과 율동을 펼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히 전문강사인 ‘엑스포 걸’이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엑스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도 참여해 생생한 연주를 들려준다.
첫 교육이 진행된 망미초 이정아 교감은 “학생들이 10년 후 부산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하게 하는 흥미로운 시간이었고,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가 상상이 아닌 실현 가능한 미래 세상임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교사들과 논의해 교과 과정과 연계한 엑스포 관련 학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이와 함께 오는 7~12월 부산국립과학관에서 ‘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과학문화 융합 특별기획전’도 열 계획이다. 시는 미디어 파사드 형식의 특별전시와 체험프로그램, 특별강연 등으로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 역시 2030년 부산의 주인공이 될 미래 세대가 엑스포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전망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시교육청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노래하다’를 통해 미래 세대들도 엑스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라며, 앞으로 엑스포를 주제로 한 학생 참여형 행사도 계속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피고인 #유시민 법정 최후 진술>
존경하는 재판장님, 말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사 법정의 피고인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법정 밖에서는 마음에 맺힌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으니, 여기서 되도록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19년 12월에,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계좌 정보를 열람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잘못에 대해서 사과문으로 공개 사과를 했습니다. 글과 말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크게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잘못이었습니다. 그런 오해를 하게 된 경위는 이 법정에서 상세하게 밝혔습니다. 이 재판은 입증하지 못할 의혹을 제기한 저의 행위에서 비롯했으니, 검찰과 법원의 귀중한 인력과 예산을 소모하게 만든 점, 납세자인 시민들에게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한동훈 검사는 법정 안팎에서 저를 심하게 비난했습니다.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니 그는 민사 법정에서도 같은 주장을 할 것입니다. 저는 한동훈 검사의 명예를 훼손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를 형사법정에 세운 검찰의 행위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라인홀드 니부어라는 20세기 미국 신학자가 한 말입니다. “개인을 중심에 두고 볼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고, 국가를 중심에 두고 볼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검찰도 그런 것 같습니다. 유시민과 한동훈 사이에 정의를 세우려면 국가권력이 개입해 유시민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입니다. 그래서 저를 기소했고 재판부의 동의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 요구대로 하면 유시민과 한동훈 사이에 정의가 수립됩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2019년 12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 제가 제기했던 검찰의 노무현재단 계좌정보 열람 의혹은 한동훈 검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그가 그런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 3월 31일 문화방송이 소위 검언유착 사건을 보도했고, 저는 4월 3일 문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채널A 이동재 기자와 통화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최측근 검사의 이름이 한동훈이라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제가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거론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문화방송의 검언유착 보도에 따르면 저는 ‘잠재적 피해자’ 또는 ‘억울한 피해자가 될 뻔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이철 씨가 이동재 기자의 위협과 회유에 굴복해 저에게 금품을 주었다는 허위증언을 했다면 제 인생은 끝장이 났을 겁니다. 법원이 무죄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나중 일입니다. 조사를 받으러 검찰 청사에 들어서고, 기소되어 법정에 서는 과정에서, 저는 언론의 먹잇감이 되어 재판도 받기 전에 파렴치한 범죄자로 낙인 찍혔을 것입니다. 언론과 검찰이 손을 잡으면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 무서운 권력이 됩니다.
그런데 문화방송의 검언유착 사건 보도 직후 한동훈 검사는 법조기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보도하면 법적 조처를 하겠다는 문자를 돌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문 방송이 검은 색 실루엣에 ‘모 검사장’이라는 직함을 붙여 보도했습니다. 잠재적 피해자인 저는 마치 비리의 당사자인 것처럼 이철 씨와 함께 이름과 사진과 영상이 모든 언론에 하루 종일 나오는데, 고위 공직자인 한동훈 검사는 중대한 의혹의 당사자이면서도 이름과 얼굴을 장막 뒤에 숨기고 있었습니다. 언론은 아무 권력도 없는 저의 인권을 무시하면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한동훈 검사의 권리는 지나치게 보호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고위 공직자인 ‘모 검사장’의 이름이 한동훈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검사님, 이것이 국가권력이 개입해 형사 처벌해야 할 범죄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문화방송 라디오와 2020년 7월 24일 두 번째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동재 기자의 변호인이 한동훈 검사와 이동재 기자의 대화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는데 거기에 저와 관련한 대화가 아주 많았기 때문입니다. 녹취록을 보니 이동재 기자는 이철 씨를 협박 회유해 저한테 금품을 주었다는 증언을 받아내려고 여러 계획을 세웠고 한동훈 검사한테 구체적으로 다 이야기했습니다. 한동훈 검사를 만난 직후, 이동재 기자는 녹취록에 있는 그대로 이철 씨에게 협박성 서신을 보냈고 이철 씨의 대리인을 만나 저의 비리를 제보하라고 회유했습니다. 검찰은 이동재 기자를 형사 기소했습니다. 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 이동재 기자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녹취록을 보니 고위 공직자인 한동훈 검사는 이동재 기자의 계획을 듣고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부추기는 말까지 했습니다. 고위 공직자의 언행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저는 문화방송의 검언유착 보도와 한동훈‧이동재의 대화 녹취록 전문을 보고,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정보를 열람하였을 것이라는 의심을 더 굳히게 되었고, 두 번째 인터뷰에서도 그런 추측을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한동훈 검사는 채널A 이동재 기자가 저를 해치는 데 필요한 진술을 받을 목적으로 이철 씨를 협박 회유하려는 계획을 알면서도 묵인 방조했습니다. 그래서 이동재 기자와 공범일 수 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관련 증거가 들어 있음이 확실해 보이는 한동훈 검사의 휴대전화를 아직도 열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서 스스로 밝힌 것처럼 소환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명예훼손죄로 형사 처벌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한동훈과 유시민 사이에 정의를 세우는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검사님, 진심 그렇게 믿으면서 저를 기소하신 것은 아니라 믿습니다.
진술할 기회를 주신 재판장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22년 4월 7일
피고인 유 시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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