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로 지구가 달라진다
코로나19탓 중국 온실가스 배출량 25% 줄었다
극단적 귀차니즘? 7년째 같은 자리 지킨 동굴 도롱뇽
그린 뉴딜’ 열풍···왜 한국만 잠잠할까
"그린 뉴딜로 양극화 해결할 수 있다"
산림과학원 “붉가시나무는 산소공장”…산소발생량 소나무의 2배 이상
고래가 열대바다 찾아 장거리 여행하는 것은 피부미용 때문
석탄발전이라는 이름의 폭탄돌리기, 그리고 한전
“잠 못 들게 하면 …” ‘빛 공해’ 위반 땐 과태료 30만원
심해 잠수 부리고래의 범고래 회피법 '쉿'
백상아리와 범고래가 만나면 물범이 ‘웃는다’
생물 종 절반은 '기생충', 박멸 아닌 보전 시급
인권이 기후정치를 가능케 한다
도심 내 숨은 땅 알려주면 나무 심어드려요”
초미세먼지 연평균 기준 충족하는 곳…제주 한라산이 유일할 수도
한국 지금 기온이 코로나 전염력 가장 강할 때"
나 하나로 지구가 달라진다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부모는 그를 헌신적으로 지지한다. 어머니 말레나 에른만은 스웨덴 왕세녀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를 만큼 인기 많은 국민 오페라 가수이지만, 딸의 뜻을 존중해 해외 공연을 중단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스반테 툰베리도 유럽 여행을 떠나며 비행기가 아닌 전기차를 고집했다.
비행기로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몇 날 며칠 동안 자동차로 이동하던 스반테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화물차와 고속도로, BMW로 가득 찬 그곳에서 그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솔린차를 전기차로 바꾸든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도 미국에서 머리가 띵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10월 말 비영리 저널리즘 취재를 위해 열흘 동안 출장을 갔을 때다. 어느 호텔을 가나 조식에 나오는 모든 접시, 컵, 포크, 나이프가 일회용이었다. 쓰레기통은 하나뿐이었다. 먹다 남은 베이컨이 담긴 접시와 오렌지주스가 담긴 컵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자 직원이 다가왔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눈앞의 쓰레기통을 가리켰다. “All? In here?(여기에 다 넣으라고요?)” 이번에는 내가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분리수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국인 5000만명이 아무리 분리수거를 잘해도 미국인 3억명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까지 들었다. 순간 울음을 터뜨린 스반테 툰베리가 떠올랐다. ‘스반테는 그 자리에 5분 동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포기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살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스톡홀름을 향해 전기차를 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돌아와 다시 이 책을 읽었다. ‘나 하나로 지구가 달라질까’ 하는 의문 속에서도 오늘도 꿋꿋이 개인 컵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낸다.
시사인 나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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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탓 중국 온실가스 배출량 25% 줄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이 측정한 중국의 이산화질소 농도. 2019년과 올해 춘제 연휴기간을 비교한 것으로 노란색에 가까울수록 높은 농도를 나타낸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ERA)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공장 조업을 중단하고, 교통을 통제한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에 비해 25%가량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는 지난 3일부터 16일 사이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보다 약 1억t가량 줄어든 3억t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영국의 환경문제 전문사이트 카본브리프(Carbon Brief)에 지난 19일 발표했다. CREA는 이산화탄소 1억t은 같은 기간 세계 전체에서 배출되는 양의 약 6%에 해당하는 수치이자 칠레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나라들의 한 해 배출량과 맞먹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국가다.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의 25%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연구기관은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감한 것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해 중국 내 공장 조업 중단과 교통, 통제 등으로 인해 석탄·석유 사용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정유 생산이 감소하고 석탄 발전과 철강 생산도 크게 줄어든 상태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당초 지난달 24~30일이었던 춘절(춘제) 연휴를 지난 13일까지 연장했으며 연휴 후의 공장 조업 재개도 연기한 바 있다. CREA에 따르면 이 기간 중국 석탄발전소의 일일 발전량은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철강 생산량은 5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온실가스뿐 아니라 미세먼지의 원인물질이기도 한 이산화질소 배출량도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CREA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중국의 이산화질소 배출량이 36%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대기오염물질인 이산화질소의 배출량 감소 역시 중국 내 화석연료의 사용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의 대기환경에는 도움이 된 것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면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올해 약 1%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다시 늘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CREA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 대규모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정부 지출을 늘리는 등의 경기부양책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전반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극단적 귀차니즘? 7년째 같은 자리 지킨 동굴 도롱뇽
10년 ‘단식’에 100년 장수…에너지 절약 위해 움직임 최소화
세계 최대의 동굴 척추동물인 동유럽의 올름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기간 꼼짝 않고 먹이를 기다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이레이 발라스 외, 프로테우스 프로젝트 제공.
유럽 남동부 석회암 동굴에 사는 ‘올름’이란 도롱뇽은 여러모로 특이한 동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척추동물로 길이가 40㎝에 이르는 이 양서류는 색소를 잃은 살구색 피부와 겉으로 드러난 나뭇가지 모양의 아가미 등이 독특해, 17세기 처음 발견했을 때는 ‘홍수 때 떠내려온 용 새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동안 밝혀진 이 도롱뇽의 삶은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로 진행된다. 암컷은 12년마다 한 번씩 알을 낳고 수명은 100년이 넘는다. 도롱뇽을 위협할 천적도 경쟁자도 없다.
서식지인 캄캄한 동굴 개울에는 평균 수온 10도의 지하수가 연중 흐르는데, 이곳에 도롱뇽의 먹이인 동굴새우와 다슬기가 아주 가끔 나타난다. 물론 도롱뇽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10년을 버틸 수 있다.
게이레이 발라스 헝가리 에오트보스 롤란대 행동생태학자 등 헝가리 연구자들은 10년 전부터 동부 헤르체고비나 동굴에서 이 도롱뇽의 생태를 연구했는데, 잠수할 때마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조사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도롱뇽을 목격했다. 이 도롱뇽이 지난번 본 것과 같은 개체일까? 연구자들은 도롱뇽의 이동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 특정 액체를 도롱뇽의 지느러미에 주입해 어떤 개체인지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후 주기적으로 어떤 도롱뇽이 어느 곳에 사는지 알아봤다.
연구자들은 ‘동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올름이 자기 자리를 극단적으로 고집하는 행동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표지를 한 도롱뇽 37마리를 다시 포획해 확인한 결과 100일이 지날 때까지 10m 이상 움직인 개체는 10마리에 그쳤고 20m 이상 이동한 개체는 3마리에 불과했다. 도롱뇽은 평균적으로 1년에 5m를 이동했는데, 가장 멀리 이동한 개체는 230일 동안 38m를 움직였다. 대부분 여러 해 동안 이동한 거리는 10m 안쪽이었다. 그러나 도롱뇽 한 마리는 극단적으로 한 장소를 고집해, 2569일(7년) 뒤에도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울름은 긴 몸을 이용해 뱀장어처럼 빠르게 헤엄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움직임은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게이레이 발라스 외, 프로테우스 프로젝트 제공.
늘 물이 흐르는 개울에 사는 커다란 동물이 이토록 꼼짝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이 도롱뇽은 긴 몸을 뱀장어처럼 휘두르며 재빨리 헤엄칠 능력도 있다. 시력은 퇴화했지만, 화학물질, 자기장을 감지하고 청각이 발달해 다양한 소통을 하고 방향감각이 뛰어나기도 하다.
혹시 도롱뇽이 평소엔 동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하필 조사가 이뤄질 때만 원래 장소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발라스는 ‘사이언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동굴 안에 더 좋은 곳이 있고, 더 많은 먹이가 있는 곳이 따로 있다면 올름도 뱀장어처럼 돌아다니겠지만, 동굴은 그렇지가 않다. 도롱뇽이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굴 지형은 단조롭고 먹이 분포도 균일하게 희박해 도롱뇽이 여기저기 움직여 봤자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연구자들은 “도롱뇽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도롱뇽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목록에 ‘취약’ 종으로 올라 있다. 연구자들은 “낮은 번식률에 더해 극단적인 장소 집착이 동굴 수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이 도롱뇽을 매우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인용 저널: Journal of Zoology, DOI: 10.1111/jzo.1276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그린 뉴딜’ 열풍···왜 한국만 잠잠할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기후위기는 불공평하다. 빈곤층과 장애인에게 먼저 찾아오고, 더 치명적이다. 이들은 주로 저지대와 상수도 미보급지역, 상습 침수지역에 모여 산다. 노인과 어린이, 야외 노동자와 농민도 기후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계층이다. 폭염으로 열지수가 높아지면 취약계층의 사망률이 올라간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하는 65세 이상의 고령층을 조사했더니 여름철 혹서기에 호흡기계 및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보건사회연구 2014, 폭염으로 인한 기후변화 취약계층의 사망률 변화 분석)
기후위기의 몸통은 경제 시스템
2016년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 산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발표한 ‘한 달간의 폭염지옥’ 가상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마침 시나리오의 배경은 올해 2020년이다.
1주차에는 때이른 무더위에 가뭄이 지속된다. 2주차에 첫 사망자가 발생하고, 3주차에는 수인성 전염병이 돈다. 동시에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폭증한다. 불쾌지수로 인한 사건·사고도 급증한다. 4주차에는 우발적 살인이 늘고 온열 질환 사망자가 잇따른다. 아열대 기후에서 유행하던 콜레라와 말라리아가 대유행한다. 농업 등 1차산업 피해 확산으로 물가는 폭등하고 식수 부족으로 고통받는다. 말 그대로 한반도 전체가 폭염지옥에 갇힌다. 재난안전연구원은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정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재난안전연구원의 시나리오는 경고에 그치고 말았다. 지난해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0’에서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점수는 전체 61위 가운데 58위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 부문에서 어떤 진전도 보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1위다. 온실가스 감축은 실패했다. 2017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보다 2.4% 증가한 7억914만 톤으로 집계됐다. 파리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5억3600만 톤으로 줄여야 하지만 대안을 찾지 못했다.
한국이 정체된 사이 국제사회는 답을 찾고 있다. 해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설득력 있는 대안은 마련했다. 바로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다. 미국은 ‘그린 뉴딜’, 유럽은 ‘유러피언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이라고 부른다. 그린 뉴딜은 온실가스 감축 구호가 아니다. 경제·산업 시스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온실가스 감축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불평등을 해소하는 개혁 정책이다.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의 몸통이 온실가스가 아니라 경제시스템에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은 저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지구온난화의 주역은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며 “우리는 왜곡된 경제시스템을 개혁해 세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린 뉴딜은 환경운동가 사이에서 오가는 추상적 환경 담론이 아니다. 미국 최연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민주당 하원의원 64명과 상원의원 9명이 제출한 ‘그린 뉴딜 결의안’에는 정의로운 전환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 제로 달성과 재생에너지 100% 전력 생산, 미국 시민 모두를 위한 수백만 개의 좋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번영 보장, 지속가능성을 위한 인프라와 산업투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올해 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버니 샌더스와 조 바이든을 비롯한 민주당 후보들이 잇따라 그린 뉴딜 공약을 발표하면서 그린 뉴딜은 미국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그린 뉴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선라이즈 무브먼트를 비롯한 청년 기후변화행동 그룹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미국 시민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2018년 조지메이슨대학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센터와 예일 프로그램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원 92%와 보수당원 64%가 그린 뉴딜에 지지의사를 표명했고, 무당파의 80%가 그린 뉴딜에 지지의사를 밝혔다. 정치적 성향과 무관 미국 시민의 90% 이상은 기후변화 정책을 위한 협치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eco America 2018)
미국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과 에드 마키 의원이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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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한국 정부
유럽의 그린딜은 미국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그린딜에 합의한 유럽연합(EU·폴란드 제외)은 올해 온실가스 감축 관련한 입법 논의를 진행하고 구체적인 실행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그린딜에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0(제로) 달성, 환경친화적 상품·기술 기업 지원, 공정·포용적인 전환 전략이 담겼다.
그린 뉴딜이 국제사회 주요 의제로 떠오른 지금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기후 관련 대응 방안은 단 두 개에 불과하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개선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범부처 이행 점검·평가 체계 구축이 전부다. 온실가스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 비용과 피해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월 5일 환경부가 공개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검토안도 ‘구체성을 담보하지 못한 공허한 수준’에 그친다. 정부는 이 검토안을 토대로 올해까지 LEDS를 확정해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할 예정이다. LEDS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담아야 한다.
LEDS 검토안은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대비 40∼75% 감축하는 내용으로 5개의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제로 실행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석탄발전과 내연기관차도 2050년까지 유지하도록 설계했다.
정부는 기후위기를 아직까지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다른 분야와 기후 분야를 비교해보면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이 드러난다.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 당시 정부는 즉각적으로 위기 대응 시스템을 가동했다. 당시 일본 수출규제의 범위와 강도를 고려했을 때 위기로 불 수 없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정부는 한·일 경제 전쟁을 운운하며 한 달 만에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7조8000억원 투자, 관련 기업 세금 감면과 관세 인하, 화학물질 인허가 절차 단축 등 전방위적인 지원 방안이 담겼다. 추경을 통해 일본 수출규제 대응 예산 2732억원도 투입됐다. 지난해 기후변화대응과 관련해 책정된 예산은 총 792억원(에너지 및 자원 572억원·환경개선 220억원)에 불과하다. “일본 수출 규제 사태를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위기’라고 인식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그린 뉴딜을 위해 쏟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김병민·위기에 대응하는 한국의 자세·그린 뉴딜 한국 네트워크)
기후위기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은 지금처럼 국제사회로부터 ‘기후 악당’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기후위기 대응 체제로 돌아서면 한국은 경제산업 분야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예컨대 EU의 그린딜 계획이 2021년에 시행되면 당장 한국은 ‘탄소 국경세(무역 대상이 되는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토대로 새로운 관세)’를 물게 된다. 국내 석유화학·철강·자동차 수출업체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EU는 한국의 전체 수출량의 8.5%(2018년 기준)를 차지하는 교역 대상이다. 국내 환경오염 방지뿐만 아니라 수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저탄소 공정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2025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휘발유·경유차 판매금지에 들어가는 유럽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
거대 정당 총선 공약에도 없어
이런 상황에서 그린 뉴딜은 한국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데 유효한 전략일 수 있다. 그린 뉴딜로 바뀌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동시에 새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 동력을 끌어낼 수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공개한 스탠퍼드·UC버클리 대학 공동연구팀의 ‘한국에서 그린 뉴딜 에너지 정책이 전력공급 안정화와 비용, 일자리, 건강, 기후에 미칠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144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도 그린 뉴딜의 경제 효과를 분석한 바 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청정에너지 경제로의 전환은 청정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효율, 환경 관리의 세 가지 주요 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320개의 고유한 직종을 생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른바 ‘녹색 일자리’의 시간당 임금은 전국 평균 임금보다 18% 이상 높다고 분석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그린뉴딜경제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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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각에서 보면 그린 뉴딜은 환경보다 경제 비중이 높은 정책이다. 총선 공약으로 그린 뉴딜을 들고 나온 정의당이 ‘그린 뉴딜 경제전략’으로 네이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의당은 재생에너지 전환과 탈탄소 인프라 구축, 200만 호 그린 리모델링, 전기자동차 시장 활성화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린 뉴딜을 총선 1호 공약 내세운 녹색당도 탈탄소 경제로의 대전환을 강조한다. 이유진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은 “경제 전환을 추진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밀려나는 이들이 생겨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과 녹색당은 이번 총선을 ‘기후위기’ 선거로 만들자는 입장이지만 주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입장은 미온적이다. 그린 뉴딜은 탄소세 도입과 전기요금 현실화가 뒤따르는 만큼 당장 표를 얻는 데 불리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지난해 3월 ‘한국형 그린 뉴딜 제안’ 보고서를 냈지만 공약 발표는 뒤로 밀리고 있다. 이에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그린 뉴딜 공약은 아직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은 앞서 자유한국당 시절 탈원전 정책 폐기를 통한 전기요금 인하를 총선 1호 공약으로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는 정반대 노선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그린 뉴딜은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다툴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생존의 길”이라며 “절체절명의 사안이 표심 잡기에 밀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그린 뉴딜로 양극화 해결할 수 있다"
2020년 4월 총선 선거판에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 등장했다. 녹색당은 그린 뉴딜을 총선 제1공약으로 내세웠고, 정의당도 정책 공약으로 채택했다.
그린 뉴딜. 낯설지 않다. 2008년 그린 뉴딜(녹색 뉴딜)은 한국 경제를 이끌던 주류 정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 성장(녹색 뉴딜)’을 새로운 국정 기조로 제시했고, 4년간 5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96만 개를 창출할 것을 약속했다. 당시 정부는 녹색 뉴딜이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 성장 정책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에는 ‘녹색’이 없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되레 증가했고, 질 나쁜 단기 일자리가 양산됐다. 감사원은 23조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의 이수 치수 효과가 미미하다고 밝혔다.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0.21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은 ‘생태계의 창조적 파괴’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시민에게 녹색 뉴딜은 토목사업으로 각인됐다. 이명박 정부의 ‘삽질’로 ‘녹색’ 구호는 생명력을 잃었다. 환경시민단체는 이명박 정부에게 ‘녹색’을 도둑맞았다고 토로했다.
4대강 바닥에 묻혔던 녹색 뉴딜은 12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린 뉴딜’이다. 명칭은 같은데 전혀 다르다고 한다. 무엇이 다를까. 왜 지금 그린 뉴딜일까. 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58)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18일 서울 종로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린 뉴딜,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2020년 한국의 그린 뉴딜은 무엇인가.
“그린 뉴딜은 단순히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살리겠다는 생태학적 구호가 아니다. 인간의 삶의 방식, 에너지 자원과 산업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대전환은 탄소 감축을 위한 신산업과 순환경제를 육성하고 농업·운송·식품을 포함한 전 분야에 걸쳐 이뤄진다. 요약하자면 기후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적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는 대전환 전략이다. 기후위기 시대, 성장 동력을 잃은 한국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다.”
-부의 양극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하다. 탄소 감축 공법 개발을 위한 연구 시설과 생산 공장도 새로 지어야 한다. 공장뿐만이 아니다. 탄소 저감 공법을 도입해 기존 건축물도 손봐야 한다. 에너지 전환으로 재생에너지라는 새로운 산업이 확대된다. 이 모든 과정에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창출된다. 과거보다 질 좋은 일자리다. 좋은 일자리는 안정적인 세수 확보로 이어진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사회복지를 늘릴 수 있다.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자가 늘면 조세 개혁을 할 수 있는 동력도 생긴다. 노동자와 생태주의자의 이상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이른바 ‘녹색 이야기’는 대중 속으로 쉽게 파고들지 못한다. 당장 오늘 하루 먹고살기 힘든데 10년, 20년 뒤 일을 왜 지금 걱정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기후위기가 내 손자세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손자가 아니라 자식세대가 걱정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문제가 됐다. 처음부터 기후위기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지구 온난화였다. 그러다 기후변화로 불렸고, 지금은 기후위기가 됐다. 2030년이 지나면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도 기후위기를 막지 못한다. 2030년 이후에도 나는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 세상의 멸망을 보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은 늘 절박한 문제라고 호소한다. 그래도 대중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산업구조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한국은 화석연료 기반 산업이 주류다. 노동시장도 조선·철강·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 종사자들이 핵심이다. 대전환을 통해 주류 산업의 전환이 이뤄지면 일자리를 잃는다. 자동차만 해도 전기자동차로 교체되면 기존 노동인력 60%가 실직하게 된다. 기존 산업 종사자 입장에서는 대전환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일자리를 유지할 시간이 짧아진다. 원자력이나 화력발전 업계와 같은 기존 주류 에너지 업계에서 재생에너지 괴담을 퍼뜨려 에너지 전환 속도를 늦추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후위기는 몇십 년 후 문제이고 일자리는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미치니까 기후위기를 인정하지 않거나 고민을 미뤄두는 것이다.”
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권호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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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문제라면 그럴 수 있겠다.
“일방적으로 기존 산업계, 종사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실 이는 한국의 사회안전망 수준이 낮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다. 산업 구조 재편으로 실직하더라도 사회안전망이 촘촘하다면 후손과 미래를 생각해 대전환에 동의할 텐데 지금은 노동자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사회구조 문제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도 어렵다.”
-그린 뉴딜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린 뉴딜은 정의로운 전환을 전제로 한다. 전환 과정에서 탈락하는 노동자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에너지 취약 계층을 보호하면서 전환을 진행해야 한다. 사라지는 산업군들 이른바 ‘좌초 산업’ 문제를 풀지 못하면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밀려난 이들을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에 우선 배치하고 전환에 앞서 정부가 재교육 과정을 밟도록 지원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하는 이들에게는 과세 수준을 높이고 반대인 집단에는 세금을 적게 부과한다. 탄소세를 신설하고 거기서 마련한 재원으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그린 뉴딜은 아직 주요 사회적 논제가 아니다. 정부도 그렇고 정치권에서도 주류 어젠다로 다루지 않는다.
“미국은 이번 대선에서 그린 뉴딜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유럽은 그린딜이란 이름으로 이미 진행 중이다. 우리는 아직이다. 정부는 기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지 않는다. 특히 관료들은 여전히 ‘국제사회 압력에 굴하지 않고 더 많이 탄소 배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따오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하는 권리를 가져오면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다. 전 세계가 그린 뉴딜로 가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사고는 애국이 아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이다. 그린 뉴딜에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경제위기를 맞는다. 10년 안에 세계적인 대변혁이 이뤄질 것이다. 유럽에 탄소 국경세가 생기면 수출에 타격을 입는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이런 변화는 치명적이다. 서둘러 대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기술 혁신을 이야기하는데 세상의 변화는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필요성에서 온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는 흐름이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킨다. ‘온실가스 제로’라는 거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기술적·경제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고, 우리는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산림과학원 “붉가시나무는 산소공장”…산소발생량 소나무의 2배 이상
붉가시나무 군락지.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남해안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난대상록성 참나무류인 ‘붉가시나무’가 국내 주요 산림수종인 소나무 보다 2배 이상 많은 산소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붉가시나무의 특성을 연구한 결과, 40년생 붉가시나무 군락지 1㏊에서 나오는 산소발생량이 연간 12.9t으로 측정됐다고 24일 밝혔다. 이는 국내 주요 산림수종인 소나무 군락지 1㏊에서 발생하는 연간 산소량 5.9t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은 양이다. 또 성인 1명이 1년 간 호흡하는 데 필요한 산소량 257㎏을 기준으로 하면 50명이 호흡할 수 있는 양이다.
현재 국내에는 경남과 전남,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에 1824㏊의 붉가시나무 자연 군락이 있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산소량을 단순 계산하면 연간 9만1000명이 호흡하는 데 필요한 산소가 공급되고 있는 셈이다.
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는 연구를 통해 붉가시나무 도토리가 같은 가시나무속의 다른 나무 보다 많은 양의 항산화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에 따르면 붉가시나무 도토리의 페놀성 화학물 함량은 1g당 75∼80㎎으로, 가시나무나 개가시나무 등의 총 함량 30∼60㎎ 보다 높았다.
손영모 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장은 “붉가시나무는 위도상 난아열대 지역에 주로 서식하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반도 남부와 중부지역까지 점차 생육지가 북상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해당 수종에 대한 증식과 육성, 관리 연구를 통해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임업인 소득증대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고래가 열대바다 찾아 장거리 여행하는 것은 피부미용 때문
찬 바다서 어려운 피부세포 재생 위해 최장 1만1천㎞ 왕복
규조로 흰색 부분이 누렇게 변색된 북극해 주변 범고래
고래는 몇개월에 걸쳐 수천킬로미터를 여행하는 장거리 여행가로 알려져 있다. 북극 해역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고래가 열대 해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이유를 놓고 먹이 때문이라는 분석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설이 제시돼 왔다.
오리건대학 해양포유류연구소의 해양생태학자 로버트 피트먼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그 이유를 피부 건강에서 찾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개나 고양이 등 다수의 동물이 털갈이하듯 고래도 끊임없이 피부세포를 재생하는데, 찬 바다에서는 이것이 어려워 따뜻한 물을 찾아 수천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62마리의 고래에게 위성 추적기를 부착하고 8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북극해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4종의 범고래 모두 왕복 최장 1만1천㎞에 이르는 장거리 이주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대 해역까지의 이동 과정은 빠르고 쉼 없이 직선으로 이뤄졌다.
대상 고래들 중 한 마리는 5.5개월 사이에 두 차례나 열대 해역에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과정에서 북극해에서 새로 태어난 범고래 새끼도 확인해 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서 반드시 따뜻한 해역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파악했다.
연구팀은 "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열대나 아열대 해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 재생을 위해 따뜻한 바다를 찾았다가 새끼를 낳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분만을 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극해 주변에서는 고래의 흰색 배 부분이 미생물인 규조(珪藻)로 덮여 누렇게 변해 있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 찬 바다에서는 체온 유지를 위해 피부 가까이로는 혈액을 보내지 않아 피부세포가 정상적으로 재생되지 않는데, 이 바람에 피부에 붙어있는 규조도 떨어져나가지 않아 남아 고래의 배 색깔까지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북극해에서 배가 흰 고래들은 최근에 따뜻한 해역을 다녀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북극해 주변 수온과 범고래 이동 경로
벨루가로 알려진 흰고래도 여름에 담수와 해수가 섞이는 하구 주변에 모여드는데 이 역시 피부 재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제시됐다. 하구 주변은 벨루가가 원래 서식하던 곳보다 수온이 높고 얕다. 처음에는 새끼를 낳아 기르기에 적당해 모여드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바다표범처럼 피부세포 재생을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고래목 중 연 단위로 피부재생을 하는 종은 벨루가가 유일한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북극해 주변의 고래가 열대해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피부재생 때문인 것이 사실이라면 연 단위 피부재생이 "고위도 해역 고래목의 일반적인 규칙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를 `해양 포유동물 과학`(Marine Mammal Science) 최신호를 통해 발표됐다. [연합뉴스]
석탄발전이라는 이름의 폭탄돌리기, 그리고 한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 일대가 몇 달씩 불타오르고,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기후 피해에 관한 뉴스를 듣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에는 이러한 재해가 머지않아 우리의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본은 이미 본격적인 이동을 시작했다. 글로벌 투자·금융기관들은 속속 석탄 채굴과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신규 프로젝트 금융이나 지분 투자 중단을 선언하고, 투자 대상 기업에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에이피지)을 포함해 총자산 규모가 4경5천조원(미화 39조달러)에 이르는 전 세계 450개 기관투자가들이 참여하는 주주행동 이니셔티브인 ‘클라이밋 액션 100+’가 대표적이다. 주요 대상은 탄소배출에 책임이 있는 세계 100대 상장기업으로, 한국 기업으로는 한국전력, 포스코,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포함되어 있다.
에이피지는 이미 10년 전에 석탄화력 신규 투자를 중단하였다. 투자 대상 사업을 두고서는 기후변화 위험에 대한 정밀 실사를 진행하고, 기업들이 탄소감축 전략을 세우고 시행하도록 주주로서 요구하고 있다. 투자팀은 태양광, 풍력, 효율 개선, 에너지 저장 등 청정에너지 관련 투자처를 끊임없이 발굴한다. 에이피지가 유별난 것이 결코 아니다. 전 세계 금융권이 이런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대해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등을 돌리고 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를 비롯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향후 10년 내에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투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다음 단계는 탄소배출이 높은 상품에 대한 수입 제한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석탄발전에 여전히 신규 투자를 강행하고 있는 기업이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 전력 공기업 한전이다. 한전은 현재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에서 석탄발전 사업 투자를 추진 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투자자 관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지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해당 사업의 기존 투자자 이탈이 뚜렷하다. 인도네시아 자와 9, 10호기 사업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2019년 말에 탈석탄을 선언하면서 투자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베트남 붕앙-2 사업은 아태지역 대표적인 전력기업인 중화전력(CLP)이 탈석탄 선언과 함께 매각하는 지분을 한전이 매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며, 이후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개발은행 등이 투자를 철회하고 빠져나갔다. 이것은 결국 무슨 의미인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석탄발전은 투자 가치가 없는 “폭탄”과도 같은데, 이 “폭탄 돌리기”의 와중에 한전과 한국의 공적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이를 떠안고 있다.
둘째, 한전 경영진과 이사회가 과연 주어진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주로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도네시아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한전의 입장은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입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 정도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전은 부정적인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투자금액을 살짝 낮추는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전 경영진과 이사회는 기업가치의 현저한 훼손이 예상되는 투자를 대놓고 법령을 우회하면서 강행하는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신의성실의 의무에 심대한 위반이다.
에이피지는 지난 몇 년 동안 한전 지분의 상당 부분을 처분하였다. 한전이 에이피지의 투자 대상으로서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전이 해외 석탄발전 투자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옳은 결정이었다는 확신이 들어서 더욱 씁쓸하다. 공기업인 한전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이번 해외 석탄발전 사업 투자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 및 결과가 우리 사회와 산업계 전반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재고해야 한다는 것을 한전의 주주로서, 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지적하고 싶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 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부서장 /한겨레
“잠 못 들게 하면 …” ‘빛 공해’ 위반 땐 과태료 30만원
환경부, ‘빛 공해방지법’ 하위법령 입법예고
야간 서울 도심 전경. 서울시 제공
‘빛공해’를 유발했을 때 부과하는 과태료가 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랐다. 또 지방정부 공무원을 대신해 빛 공해를 단속하는 전문기관이 만들어진다. 환경부는 이런 내용의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빛공해방지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27일부터 40일간 입법 예고했다. 지난해 11월 법 개정에 따른 후속 조처다.
빛 공해는 과도한 야간 조명으로 쾌적한 생활이 방해받는 현상을 이른다. 밤의 빛은 멜라토닌 호르몬의 합성을 억제해 여성의 유방암, 남성의 전립선암 발생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7년 빛공해를 ‘발암물질’로 규정했고, 한국은 2013년부터 법으로 규제 중이다. 관련 법은 조명 기구의 종류와 지역에 따라 빛 방사를 허용하는 시간과 조도 기준을 둬 규제한다.
환경부의 이번 입법 예고안은 빛 방사 기준의 위반 여부를 따지는 전문 검사기관을 지정하는 요건과 절차 등이 담겼다. 빛 공해를 단속해야 하는 지방정부에 인력이 부족한 경우, 이 전문기관에 단속을 의뢰할 수 있다. 전문기관은 조도·휘도 등을 측정·검사하는 장비와 기술인력을 갖춰야 한다. 전문기관의 지정과 관리는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이 맡는다.
최초 위반 시 부과하는 과태료 액수도 기존 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렸다. 위반이 3차례가 되면 금액은 100만원으로 올라간다. 개선명령, 사용중지나 사용제한 같은 행정조치의 이행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다.
하미나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관은 “늘어나는 빛 공해 측정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역의 검사 역량을 강화하고, 빛 공해 검사에 필요한 장비 개발 및 기술인력 양성 등 관련 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심해 잠수 부리고래의 범고래 회피법 '쉿'
해저 450m까지 ‘눈 감고’ 쥐죽은 듯 잠수…해군 소나에 떼죽음도
긴 잠수를 마치고 수면에 오른 혹부리고래. 이들에게 수면은 범고래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나타차 아길라 데 소토, 스페인 라 라구나 대 제공.
떼지어 물속으로 은밀하게 접근해 빠른 속도로 공격하는 범고래는 백상아리도 혼비백산 도망치는 바다 최상위 포식자다(▶백상아리와 범고래가 만나면 물범이 ‘웃는다’). 범고래에 대항하기 위해 향고래는 몸집을 키웠고 들쇠고래는 큰 무리를 이뤘다.
그러나 같은 이빨고래 무리인 부리고래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덩치도 작은 데다 먹이를 찾고 동료와 소통하는 고주파 신호음도 귀 예민한 범고래의 가청범위 안에 들어있다.
그런데도 부리고래가 멸종하지 않고 범고래에 잡아먹히면서도 수백만년 동안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범고래의 부리고래 사냥 장면 호주서 첫 목격). 부리고래는 극단적인 잠수행동으로 범고래를 따돌리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리고래의 회피 전략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고래의 잠수행동을 알 필요가 있다.
범고래 2마리가 부리고래(앞)를 공격하고 있다. 웰러드 외 <플로스 원> 제공.
부리고래가 범고래 무리로부터 공격당하는 모습. 옆구리가 크게 뜯겨나갔다. 웰러드 외 <플로스 원>
혹부리고래와 민부리고래는 잠수의 ‘달인’이다. 보통 1000m 깊이에서 1시간 이상 심해 오징어를 사냥하는데, 3000m까지 잠수하기도 한다. 향고래처럼 크지도 않으면서 이처럼 깊이 오래 잠수하는 생리적 미스테리가 최근 밝혀지기 시작했다(▶3천m 잠수 부리고래의 비밀 밝혀져).
그러나 깊이와 시간뿐 아니라 부리고래의 잠수행동도 특별하다. 고래는 박쥐처럼 물속에서 ‘끼리리릭∼’하는 단속적 고주파 음을 낸 뒤 반사파를 감지해 물체를 파악한다(반향정위).
그러나 부리고래는 칠흑처럼 어두운 수심 450m에 이를 때까지, 또 잠수를 마치고 수면으로 오를 때도 반향정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눈을 감은 채’ 잠수하는 것이다. 신체의 한계에 이르는 긴 잠수를 마치고 신속하게 수면에 떠오르는 다른 고래와 달리 부리고래는 완만한 각도로 느리게 상승하는 것도 수수께끼다.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타차 아길라 데 소토 스페인 라 라구나 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이 혹부리고래 14마리와 민부리고래 12마리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해 조사했다.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7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부리고래의 독특한 잠수행동은 포식자인 범고래를 회피하기 위해 진화한 것 같다”고 밝혔다.
부리고래의 잠수 행동. 세로축은 수심이다. 검은 선은 고래가 반행정위를 끄고 조용히 헤엄치는 구간을 가리킨다. 수직으로 잠수하고 완만하고 임의의 각도로 떠오른다. 왼쪽 푸른 막대그래프는 반행정위의 빈도 분포이다. 나타차 아길라 데 소토 외 (2020)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조사 대상은 두 해역에 사는 서로 다른 무리에 속하는 2종의 부리고래였는데, 두 마리가 수심 450m까지 소리를 죽이고 잠수한 뒤 750m 수심에 모여 사냥을 하는 일관된 행동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이 “충분한 적응 가치가 있어 수백만 년 전에 진화한 행동일 것”이라고 밝혔다.
심해 사냥을 마치고 수면으로 떠오르는 행동의 전모도 드러났다. 사냥을 마치고 수면으로 향할 때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향고래 등 다른 심해 잠수 고래는 수면 위에서 기다리는 새끼와 동료와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주파 음을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떠오르는 각도도 완만하고 방향도 임의로 정했다. 향고래 등은 거의 수직으로 최단 시간 안에 떠오른다. 왜냐하면 범고래는 부리고래가 심해에서 사냥하는 고주파 음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부리고래가 떠오를 때 소리를 죽이고 임의의 방향을 잡는다면 범고래는 마지막 고주파 음을 엿들은 뒤 지름 1㎞, 면적 3.1㎢ 해역 어느 곳에서 부리고래가 수면에 나타날지 알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범고래의 시야와 속도를 고려하면 수면에 떠오른 부리고래를 잡을 확률은 1.2%에 지나지 않는다”고 계산했다. 10마리 무리가 집단사냥하더라도 성공률은 12%에 그친다.
이런 범고래 회피 행동에는 커다란 대가가 따른다. 힘들게 1000m 심해까지 내려가느라 많은 힘을 썼다면 최대한 오래 머물며 사냥하는 것이 득이지만 은폐를 위해 사냥시간의 35%를 허비한다는 것이다.
카나리제도에서 물 위로 뛰어오르는 민부리고래. 가슴지느러미를 몸에 난 홈에 집어넣으면 어뢰와 같은 유선형이 돼 빠른 속도로 잠수할 수 있다. 나타차 아길라 데 소토, 스페인 라 라구나 대 제공.
또 다른 대가는 해군의 수중음파탐지기(소나)에 의한 피해이다. 심해 잠수가 유일한 피난처인 이 겁많은 고래는 거의 들릴 듯 말듯한 소음에도 범고래가 나타났을 때처럼 공포에 휩싸여 반향정위 장치를 끄고 도피하는데, 그 과정에서 해안에 좌초해 떼죽음하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부리고래가 들을 수 있는) 중간 파장의 해군 수중음파탐지기가 방대한 해역에 걸쳐 소음을 내기 때문에 부리고래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보호대책을 촉구했다.
인용 저널: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19-55911-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백상아리와 범고래가 만나면 물범이 ‘웃는다’
최상위 포식자는 범고래, 최대 혜택은 백상아리 먹이 물범
범고래는 집단 사냥에 능하고 덩치도 커 바다 생태계에서 백상아리를 제치고 최고 포식자 자리를 차지한다. 로버트 피트먼,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 제공.
자연다큐멘터리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리는 백상아리와 범고래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모두 바다의 대표적인 포식자이지만, 백상아리가 무서운 폭군 이미지라면 범고래는 종종 영리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장기간의 현장 연구 결과를 보면, 바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자리는 범고래에 넘겨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백상아리는 범고래의 모습만 비쳐도 혼비백산 그 해역을 오랫동안 떠날 정도로 공포에 떠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위험 효과’는 생태계 먹이사슬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살바도르 조르겐센 미국 몬테레이 만 수족관 박사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16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백상아리와 그 주 먹이인 코끼리물범, 그리고 범고래를 수십 년 동안 장기 연구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캘리포니아의 대 패럴론스 국립 해양보호구역에서 2006∼2013년 동안 백상아리 165마리에 무선추적장치를 부착해 추적했고, 27년 동안 범고래와 물범을 관찰했다.
범고래(회색), 백상아리(초록색), 코끼리물범*보라색) 서식지(D). 왼쪽은 패럴론 섬에 각각이 찾아오는 시기. A 물범, B 백상아리, C 범고래. 조르겐센 외 (2019)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두 해양포식자가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고, 그것을 관찰할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조사 해역에선 매년 봄과 가을 코끼리물범이 패럴론 섬에서 새끼를 낳는데, 회피능력이 떨어지는 어린 물범을 사냥하기 위해 범고래는 봄과 가을, 백상아리는 가을에 섬을 찾는다. 두 바다 포식자는 매년 가을 조우할 가능성이 있다.
연구에 참여한 백상아리 전문가인 스콧 앤더슨은 1997년 10월 그런 드문 광경을 목격하는 행운을 안았다. 그는 “고래 관광선을 타고 있었는데 무선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다가가 보니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죽여 간을 뜯어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범고래 두 마리가 머리를 물 밖에 내밀고 킥킥 소리를 낸 뒤 물속으로 사라졌는데, 이는 먹이 사냥에 성공했을 때 내는 소리”라고 몬테레이 만 수족관이 누리집에 올린 글 ’거인의 충돌: 백상아리 대 범고래’에서 밝혔다.
무선추적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런 만남을 3차례 더 확인했다. 2009년 11월 범고래 무리가 3곳에서 따로 물범을 사냥했다. 당시 바다에는 17마리의 무선추적장치를 단 백상아리가 있었다.
백상아리는 강력한 해양 포식자이지만 범고래와 맞닥뜨리면 피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런 위험 회피는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범고래는 2시간 반 동안 바다에서 사냥했는데, 이를 본 백상아리는 몇 시간 안에 모두 자취를 감췄다. 연구자들은 “태그를 단 백상아리가 모두 살아있었지만 범고래가 다른 백상아리를 잡아먹었거나 공격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조르겐센 박사는 “범고래를 만나면 백상아리는 자신이 선호하는 사냥터를 즉각 떠나 최고 1년 동안 다시는 그곳에 돌아오지 않는다. 범고래가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도 그렇다”고 수족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도피한 백상아리는 다른 바다의 코끼리물범 사냥터로 갔음이 확인됐다.
패럴론 섬을 찾는 백상아리는 길이가 5.5m에 이르는 대형 상어이다. 범고래는 길이가 6∼8m로 더 크고 지능이 높으며, 무리를 지어 소리로 소통하면서 사냥전략을 편다. 조르겐센 박사는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먹이로 사냥하는지 아니면 경쟁자로서 겁을 주어 쫓아내는지는 불확실하다”며 “그러나 1997년 사례에서 보듯이 백상아리에 1t이 넘는 영양덩어리인 간이 들어있다는 것을 범고래가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평균적인 범고래(위)와 백상아리의 크기 비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한편, 범고래의 출현으로 가장 크게 덕을 보는 동물은 백상아리의 주식인 코끼리물범으로 나타났다. 앤더슨은 “남동 패럴론 섬에서 한 번식철에 약 40마리의 물범을 백상아리가 잡아먹는데, 범고래가 모습을 드러낸 뒤로 물범이 죽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범고래가 출현하면 백상아리에 의한 물범의 포식률은 4∼7배 작아진다고 논문은 밝혔다.
포식자는 직접 잡아먹는 방식으로만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먹이 동물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활동을 축소하고 서식지를 바꾸는 식으로 대응하고, 이것이 생태계에 연쇄효과를 일으킨다.
캘리포니아의 코끼리물범 대규모 번식지. 범고래가 찾아와 한 두 마리가 희생되면 몇 달 동안 주요 포식자인 백상아리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범고래에 놀란 백상아리는 이미 다른 상어가 있는 덜 선호하는 비좁은 사냥터로 이동할 수밖에 없고, 이는 100∼3000㎞의 장거리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하는 백상아리에게는 부정적 영향을 준다.
조르겐센은 “우리는 보통 대형 포식자의 사냥이 바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알아볼 때 공포와 위험 회피가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번 연구로 공포 효과가 백상아리 같은 대형 포식자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끼쳐 덜 선호하지만, 더 안전한 사냥터로 방향을 틀게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alvador J. Jorgensen et al, Killer whales redistribute white shark foraging pressure on seals, Scientific Reports (2019) 9:6153, https://doi.org/10.1038/s41598-019-39356-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생물 종 절반은 '기생충', 박멸 아닌 보전 시급
개체수 조절 등 생태계 기능 막대, 멸종 이전 ‘글로벌 기생충 프로젝트’ 필요
물고기의 혀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자리 잡은 등각류 기생충. 기생충은 지구에서 가장 흔한 생물이지만 열에 아홉이 종과 생태에 관해 알려지지 않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갯강구나 쥐며느리와 함께 등각류에 속하는 갈고리벌레과의 ‘시모토아 엑시구아’(Cymothoa exigua)는 물고기의 혀를 잘라내는 기생충이다. 아가미를 통해 물고기 입으로 들어간 뒤 혀의 혈관을 절단해 혀가 잘려나가면 그 자리에 들어가 나머지 혀 근육과 자신을 연결해 혀 구실을 하며 산다.
다른 많은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이 동물이 어떻게 번식하고, 물고기에는 어떤 해를 끼치며 생태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구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기생충이 생태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며, 이들이 멸종하기 전 최대한 많은 종을 밝힐 ‘글로벌 기생충 프로젝트’를 지구 차원에서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숙주를 죽이지 않고 더부살이를 하는 ‘기생’은 특별은 삶의 방식이 아니다. 생물학자들은 알려진 생물 종의 적어도 절반은 기생생물이라고 본다. 데이비드 휴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생물학자 등은 지난해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기생은 이제까지 진화해온 생물의 생활사 가운데 가장 흔한 형태여서, 육식이나 초식 같은 다른 형태의 먹이활동보다 훨씬 빈번하게 출현했다”고 적었다.
꿀벌에 기생하는 기생벌. 곤충에는 알려지지 않은 종이 많지만, 그 곤충 속의 기생충은 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생충 하면 흔히 회충, 촌충 등 포유동물의 장내 기생충을 떠올리지만 기생생물에는 말라리아 원충 같은 원생동물, 이나 모기 같은 곤충, 흡혈박쥐와 뻐꾸기 같은 포유류와 조류, 겨우살이 등 기생식물을 비롯해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까지 매우 다양한 생물이 들어있다. 지구의 생물은 300만∼1000만 종이고, 이 가운데 조사된 종은 140만 종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70만 종의 기생생물이 지구에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보수적인 추정일 뿐, 알려지지 않은 곤충을 모두 포함하면 지구의 생물 종은 훨씬 많다고 알려진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곤충이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며 “지구의 곤충 종은 200만∼3000만 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곤충 몸속엔 다시 진드기, 곰팡이, 세균 등 더 작은 생물이 산다. 또 이 가운데는 특정 종의 곤충에만 사는 종도 있어 생물 종은 훨씬 더 늘어난다. 브렌단 라르센 미국 애리조나대 생물학자 등은 2017년 지구의 생물을 10억∼60억 종으로 추정하고, 그 대부분을 세균이 차지할 것으로 보았다. 예컨대, 갑각류에 기생하는 선충만도 8000만 종에 이를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포유동물의 장내 기생충인 간흡충(간디스토마).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생생물 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생태계 속에서 그만큼 다양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먹이 그물에서 기생생물의 역할은 지대하다. 앤디 돕슨 미국 프린스턴대 생물학자 등은 “미국 캘피포니아와 멕시코 바하의 염습지를 조사한 결과 어느 지점이든 생물 종의 40% 이상이 기생생물이었으며, 이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생물 종의 60%에 얹혀사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2008년 미 국립학술원 회보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기생 종을 포함하니 기존 먹이 그물이 4배로 복잡해졌다”며 “기생생물은 먹이 그물의 구조를 지탱하는 숨겨진 ‘암흑물질’”이라고 적었다.
기생충은 숙주가 지나치게 번창하는 것을 조절하는 생태계 서비스도 한다. 또 최근에는 척추동물의 장내 기생충이 유해한 중금속을 제거해 주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척추동물은 몸속에 흡수된 카드뮴, 아연 등 중금속을 담즙으로 둘러싸 독성을 완화하는데, 고농도의 중금속에 잘 견디는 장내 기생충이 담즙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척추동물 몸속 중금속의 30∼50%까지 제거한다는 것이다.
기생충은 생물 진화를 이해하는 데도 기여한다. 최근 주목받는 숙주의 뇌 조종 기생충이 그런 예다. 찰스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을 발견한 영국의 자연사학자 알프레드 월러스가 1859년 발견 좀비 곰팡이는 숙주인 개미의 행동을 조종해 자신의 후손을 퍼뜨린다. 이 곰팡이에 감염된 열대 개미는 개미 통로 위에 드리운 풀잎 끄트머리에 올라 잎을 물고 죽는다. 사체에서 나온 곰팡이 포자는 통로를 오가는 개미 머리 위에 떨어진다.
좀비 곰팡이에 감염된 열대 개미. 개미 통로 위에 곰팡이 포자를 뿌리기 위해 풀잎 끝을 물고 죽는다. 휴스 외 (2019)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숙주의 뇌를 조종하는 기생충은 이 밖에 쥐를 고양이 오줌 냄새에 끌리게 해 잡아먹히도록 유도하는 기생충 톡소플라스마 곤디, 메뚜기 등을 번식지인 개울물 속으로 자살하도록 이끄는 연가시 등 다수의 사례가 알려져 있다.
이처럼 중추신경계를 조종하는 기생충이 뇌 진화를 촉발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마르터 델 주디시 미국 뉴멕시코대 진화심리학자는 지난해 과학저널 ‘계간 생물학 리뷰’에 실린 논문에서 “기생충의 숙주 하이재킹은 수억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며, 그동안 20차례 이상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며 “이런 조종에 대항해 숙주 동물이 두뇌에 대한 접근 제한, 조종 비용 늘리기, 신호 복잡화 등을 통해 두뇌가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기생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한 것은 세계적인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최근의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포함해 사람과 야생동물 모두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글로벌 바이러스 유전체 프로젝트’가 지난해 10년을 목표로 12억 달러가 투입돼 시작됐다. 목표는 신종 감염병의 원천인 포유류와 조류 바이러스의 85%를 규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넘어 기생충 전반에 대한 조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콜린 칼슨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미발간된 생물학 분야의 연구를 동료 비평을 듣기 위해 미리 공개하는 누리집인 ‘바이오 리시브’ 1월호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글로벌 기생충 프로젝트’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쥐의 뇌를 조종해 고양이에 먹히도록 유도하는 톡소플라스마 원생생물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현재 기생충학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등 지구 차원의 변화에 따라 기생충에 대한 이해가 시급하게 필요하지만, 정작 자료는 부족한 심각한 괴리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기생충 열에 아홉은 알려지지 않았다”며 “장내 기생충만 하더라도 지구 전체의 기생충을 (학술지에) 기재하려면 536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은 “척추동물의 장내 기생충은 대략 10만∼35만 종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85∼95%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인체의 유전체를 규명한 글로벌 프로젝트인 ’휴먼 게놈 프로젝트’처럼 기생충이 사라지기 전 서둘러 이들의 분류학적, 생태학적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인권이 기후정치를 가능케 한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의로운 전환'은 정치적 권리 주체의 문제
이제 기후변화, 기후위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기상 관측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매년 찾아오는 폭염, 한파, 태풍과 같은 이상기후를 정리해 기상청은 '이상기후 보고서'(2010~19)를 발간했다. 몇 해 전부터 알래스카와 시베리아에 산불이 빈발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작년 9월부터 시작된 호주의 산불이 얼마 전에야 겨우 잡혔다. 이미 물에 잠기기 시작한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은 연안 대도시들의 미래가 되고 있으며, 기후변화가 초래한 농작물 피해는 식량위기로 이어져 아프리카와 아랍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한국사회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를 꼽기도 한다.
이미 세상이 이 모양인데 앞으로 10년 안에 탄소배출을 절반 이하로 줄이지 못하면 더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고 한다.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체 뭘 해야 하나? 방법이 있기는 한 건가? 게다가 각자 살아남기도 버거운 세상에서 지구를 구하자고? 기후운동이 종말론적 예언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라면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들이다.
방법은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기후변화에 대응해 온 국제사회의 노력은 저탄소 녹색산업을 육성해,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에서 벗어나 녹색성장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재생에너지 산업지원과 에너지 효율화,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녹색 상품, 자본 시장이 그렇게 형성됐다. 기후위기에 맞서 뭐라도 하고 싶은 개인들에게 놓인 선택지는 녹색산업의 소비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고 채식을 하고 전기차를 이용한다. 착한 소비니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친환경 산업으로 자본만 배를 불리고 불평등은 심해졌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더 늘면서 시장이 해결할 거라던 기후변화는 이제 기후위기가 되었다.
기후위기를 막을 방법은 있다. 지난 해 유럽연합은 '유럽그린딜'을 발표했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는 '그린뉴딜'을 전면에 내세운 샌더스가 유력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의당과 녹색당이 21대 총선 정책으로 '그린뉴딜'을 발표했다. 정책의 실제 집행가능성을 비롯해 여러 차이점들이 있으나, 대체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사회적 전환을 추구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2050년 탄소 순배출 제로 또는 탈탄소 사회를 목표로 에너지, 교통, 산업, 주택 분야에서 포괄적 전환을 시작하고 그 과정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하겠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착한 소비자가 될 뿐이지만, 기후위기에 맞서 한국 사회를, 세계를 바꾸기 위한 집단적 정치적 실천으로서 '그린뉴딜', 아니 '거대한 전환'이라는 기획과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물론 '그린뉴딜'에도 여러 한계들이 있고 더 토론될 여지가 많은 정책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더 이상 시장이 아닌, 정부의 전면적인 개입과 계획에 따른 포괄적인 경제사회 시스템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린뉴딜'은 소비자 실천이 아닌, 경제사회 시스템 자체를 재구성하자는 정치적 기획이다.
그 '전환' 누가 할 것인가
한국에서 '그린뉴딜'은 이제 막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다만 정의당과 녹색당의 총선 정책으로 등장한 그린뉴딜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정책패키지'처럼 보인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과 부정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문제의식으로서 '정의로운 전환'이 아니라 산업구조 변화 과정에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과 안전망 제공으로 협소하게 제안되거나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전환을 바란다면, '그린뉴딜'은 산업정책이 아닌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세력화 전략이자, 정치적 기획이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고용과 사회안전망 지원을 넘어, 이 '거대한 전환'의 정치적 주체를 세우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2월 18일 두산중공업이 1천여 명을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근 수 년 간의 심각한 경영난을 그 이유로 들었다. 매출의 대부분이 석탄발전과 핵발전 부문에서 나오는데 기후위기의 심화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발전 부문에서 석탄과 핵발전은 줄어들고 재생에너지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실직 위기에 처한 두산중공업 노동자들과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재생에너지 발전산업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투쟁을 시민들과 함께 벌일 수는 없을까? 핵폐기장, 송전탑,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연장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싸움은 언제나 지역이기주의 또는 지역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 싸움이 지역이기주의가 아닌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한 싸움임을, 자본의 이윤에만 목매 자연과 인간을 희생시켜 온 에너지 산업을 바꾸는 싸움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런 문제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만 생각되었다. '정의로운 전환'은 오히려 경제적 이해관계야말로, '지구를 구하기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대다수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맞서는 싸움과 공동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연결하는 강력한 고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경제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을 호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전환을 이뤄낼 권력도 힘도 없다. 일터에서, 거주지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정치적 권리, 삶의 권리를 박탈당해 온 이들에게 기후위기에 맞서자는 호소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은 다시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가 된다. 전환 과정에서의 불평등과 배제 이전에 이러한 전환에 참여하고 결정할 권리, 정치적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데 가장 중요한 주체인가? 아니면 정책적 배려, 고려 대상일 뿐인가? 즉 '거대한 전환'을 누가 할 것인지,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권리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렇다면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이 세계를 바꾸기 위한 정치경제적 권리 투쟁과 기후위기에 맞서 이 세계를 바꾸기 위한 싸움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 기후운동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청소년/청년 세대의 활동은 이를 잘 보여준다. 평등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고 배제되어 온 이들이 기후운동의 중심에 나서면서 '미래 세대'가 아닌 기후위기 시대 '현 세대'로서, 정치적 주체로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기후운동의 주도 세력이 된다면? 자본이 모든 걸 틀어쥐고 있는 일터를 환경과 인간 중심의 일터로 재구성하기 위한 투쟁이 역으로 조직되고, 이는 개별 기업 수준을 넘어선 사회적 투쟁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 국경을 넘어서는 정치적 권리의 쟁취
지난 1월 20일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기후위기로 임박한 위험을 피해 온 사람들을 강제로 돌려보낼 경우 인권침해 상황에 노출'된다며 이들을 난민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기후위기로 인한 환경난민의 '지위'를 유엔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남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의 주민 이와네 테이티오타가 뉴질랜드에서 추방될 위기에 놓이자 유엔에 진정을 했고,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임박한 위험'을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해 난민 '자격'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유엔의 뒤늦은 기후난민 '지위' 인정과는 별개로 키리바시는 국토의 대부분이 침수 위협에 놓이자 정부차원에서 '존엄한 이주' 정책을 추진해왔다. 국민들이 난민이 아닌 동등한 정치공동체의 성원으로 다른 국가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기후위기로 국가가 사라지면 공동체 성원의 '정치적 권리'도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키리바시의 국민들은 기후위기의 책임을 다른 국가들에게 함께 질 것을 요구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조직해야 하는 '정치적 권리'는 국경을 넘어서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정록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프레시안
도심 내 숨은 땅 알려주면 나무 심어드려요”
제주도, ‘도심 속 나무 심을 자투리 땅 찾기‘ 공모
3월 1일부터 4월 15일까지 신청 접수 … 도로‧주차장‧공터 등
제주도가 ‘숲 속의 제주 만들기 500만그루 나무심기’ 사업의 일환으로 ‘도심 내 나무 심을 자투리 땅 찾기’ 공모를 추진하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도시 열섬현상 등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도는 나무 한 그루가 연간 35.7g(에스프레소 1잔)의 미세먼지를, 1㏊의 숲이 경유차 27대가 일 년 동안 내뿜는 미세먼지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나무가 공기 내 미세먼지를 줄이고 도심 열섬현상을 완화시켜 산소를 공급하는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나무를 계속 심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을 만한 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직접 참여로 자투리 땅을 함께 찾아 나무를 심는다는 계획이다.
관심 있는 도민은 응모 신청서에 나무를 심을 장소와 신청 사유 등을 기재, 관할 공원녹지과로 신청하면 된다. 전화나 팩스, 우편, e-메일 모두 신청이 가능하며, 오는 3월 1일부터 4월 15일까지 신청 접수를 받는다.
신청 대상 토지는 우리 주변 도로나 주차장, 마을어귀 골목, 개인 소유 집 주변 공터 등 노는 땅이면 된다. 도 관계자는 “원하는 수종과 신청 이유, 사연 등이 있으면 더욱 좋다”며 “주민들이 직접 심을 나무 나눠주기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의사항은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공고문(공고 제2020-594호, 2020.3.1.)을 참고하거나 제주시 공원녹지과(064-728-3573), 서귀포시 공원녹지과(064-760-3035)로 문의하면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초미세먼지 연평균 기준 충족하는 곳…제주 한라산이 유일할 수도
대설(大雪)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6일 제주 한라산 1100고지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뉴스1(제주도 제공)
.바람이 잔잔해지기만 하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 중국발 대기오염 영향에다 국내 오염물질까지 더해지다 보니 초미세먼지(PM2.5) 오염 수치가 연간 환경기준인 ㎥당 15㎍(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을 달성하기도 쉽지 않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2018년 전국 380여 개 대기측정망 중에서 15㎍/㎥를 달성한 곳은 사실상 전무하다. 15㎍/㎥를 기록한 곳도 측정이 겨우 몇달 동안만 이뤄진 곳이다.
환경부가 최근 내놓은 올해 국내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 목표가 환경기준치를 웃도는 20㎍/㎥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가 15㎍/㎥ 아래를 유지, 연평균 기준을 달성한 곳이 국내에도 있다. 바로 제주도 한라산이다.
제주대 강창희(화학·코스메틱스학과) 교수팀이 지난해 1년 동안 제주도 서귀포시 색달동 한라산 1100고지에서 6일 간격으로 24시간씩 1년간 초미세먼지 농도를 분석한 결과, 연평균 값으로 12.7㎍/㎥(원소 성분 분석용 필터 시료)와 13.1㎍/㎥(수용성 이온 분석용 필터 시료)가 측정됐다. 연간 환경기준 기준 15㎍/㎥ 이하였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강 교수팀이 국립환경과학원에 최근 제출한 '중국 남서 기류 유입에 따른 한반도 남부지역 대기 경계층 제주도 한라산 미세먼지 조성 분석'이란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한라산 1100고지에서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모습. [사진 제주대]
.한라산 1100고지는 서귀포시 중문동과 제주시를 연결하는 1100 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고지이며, 해발고도가 1100m인 데서 붙은 명칭이다. 한라산 1100고지에서도 지난해는 2월 말과 3월 초에 이어진 고농도 상황 때에는 30㎍/㎥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강 교수는 "도시대기 측정망에서는 24시간씩 365일 연속 측정하지만, 한라산은 고산지역 여건 탓에 6일 간격으로 측정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연평균치 이내인 것은 확실하다"며 "국내 다른 고산지역에서는 이처럼 1년 내내 측정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지난해 도시대기측정망에서 측정한 데이터는 정리 중이지만, 2018년보다 전국적으로 초미세먼지 농도가 악화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8년의 경우 국가 배경농도 측정소인 백령도나 울릉도에서도 연평균치가 17㎍/㎥로 환경기준치를 웃돌았다. 또, 제주에서도 제주·서귀포 시내는 18~21㎍/㎥를 기록했다. 국가 배경농도 측정소이면서 해발고도가 낮은 제주도 서쪽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서도 16㎍/㎥를 기록했다. 이나마도 4~12월 측정치뿐이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고산평야의 모습. 연합뉴스,
.강 교수는 "1100고지는 지상에서 대략 1㎞ 높이에 위치한 대기 경계층보다 높아 국지 오염원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라며 "이곳에서도 중국에서 기류가 유입될 때는 영향을 받지만,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산지의 경우 중국에서 오는 편서풍의 영향을 직접 받는 데다 서울 등 수도권 오염물질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한라산만큼 공기가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강원도 평창은 2018년 연평균치가 23㎍/㎥를 기록했고, 동풍의 영향을 받는 동해·삼척·강릉은 18~20㎍/㎥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현행 국내 초미세먼지 환경기준이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한국 지금 기온이 코로나 전염력 가장 강할 때"
입춘을 하루 앞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오촌댁에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둘러보고 있다. /사진 = 뉴스 1
코로나19가 기온이 8.72도일 때 감염력이 가장 강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8일 의학 논문을 사전발표하는 플랫폼인 '매드아카이브(medRixv)'에 따르면, 지난 22일 중국 광저우의 중산대학교 연구진이 코로나19에 영향을 받는 전 세계의 모든 도시를 조사해 코로나19의 전염에는 기온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이 각 도시의 평균 기온과 확진자 수, 감염 속도 등을 분석한 결과 기온이 낮을 때에는 평균 기온이 1도씩 증가할 때마다 누적 확진 사례 수가 0.83건씩 증가했다. 반대로 기온이 높을 때에는 평균 기온이 1도씩 증가할 때마다 누적 확진 사례 수가 0.86건씩 감소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쉽게 전염되는 기온의 경계선은 8.72도다. 각 도시에서는 기온이 8.72도일 때 코로나19의 전염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8.72도 이상으로 기온이 올라가면 서서히 전염력이 감소했다.
현재 한국 기온이 0도에서 10도 남짓을 오가는 만큼 코로나 전염력이 가장 강할 때라고 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연구결과는 온도가 코로나19 전염을 크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부분적으로는 왜 우한시에서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고 밝혔다. 이어 "기온이 낮은 국가와 지역은 강력한 통제 조치를 해야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봄이 오면 코로나19 증가세가 주춤해질지는 미지수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의 전염병 전문가 윌리엄 샤프너 교수는 "미국에서는 추운 계절에 바이러스의 전염력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나. 습한 열대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열대지방에서 1년 내내 바이러스가 번성하는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7일(현지 시간) 미국 매체 포브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계절이 따뜻해지는 것과 코로나19의 상관관계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추울 때 전염력이 강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19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인턴기자,
We'll meet again my friends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꺼야) / Isla 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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