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2.10.17~플랫폼 독점 폐해 확인한 카카오 먹통

by 이성근 2022. 10. 17.

계엄문건조현천 왜 지금 귀국할까

국정감사 언론 보도의 문제점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위기 극복 회복탄력성 덴마크 1, 한국 30

성장을 죽여야 인플레 잡는다

미국 '동해' 대신 '일본해' 고집이유 추적해보니

카카오톡'에 무릎 꿇은 이통3RCS 참패의 역사

"북핵 이젠 눈감아줘야"NYT 기고문에 미국인들 반응은

이탈리아 국민소득 제쳤다" 축포?1년 만에 추월당해

내가 알던 그 IMF 맞아?”빈곤·식량위기에 소방수 역할

'PBR 역사적 저점' 코스피 저평가 심화

플랫폼 독점 폐해 확인한 카카오 먹통, 재발 방지책 세워야

태풍이 동해안으로 향하면 다행’?

BTS 부산 콘서트외신 집중 조명대체 불가 슈퍼스타

테루엘은 존재한다!"지방 소멸과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

라임 사건김봉현은 어떻게 무죄를 받았나

낮엔 김학의 수사, 밤엔 김봉현 술접대받은 검사

죄수와 검사 - 외전 "공무원에 뇌물 줬다" 자백, 검찰은 덮었다

조국 아들 대리시험 증거에 소설 쓴 기레기들믿지 않는 댓글들

 

계엄문건조현천 왜 지금 귀국할까

5년째 도피전 국방부 장관 고발여당과 교감 가능성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문건작성 사건의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63)이 조만간 귀국한다. 그는 201712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행적이 묘연했다. 최근 갑자기 자진 귀국 의사를 밝혔다. 조 전 사령관은 계엄문건 작성과 관련해 내란음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는 귀국 즉시 체포돼 수사를 받게 된다.

2018720일 당시 청와대가 공개한 국군기무사령부 작성 계엄문건세부자료 / 청와대사진기자단

 

조 전 사령관이 귀국하면 내란음모로 충분히 기소하고 유죄를 받을 수 있다고 봤다. 그를 조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수사 내용을 보면 그랬다.” 계엄문건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2018년 진행한 군·검 합동수사단의 수사 내용을 잘 아는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정권이 바뀌고 상황도 달라졌다. 조 전 사령관이 자진해 귀국하겠다는 배경에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 사건은 단순히 조 전 사령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고리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 박근혜 정부의 주요 인사 여럿이 얽혀 있다. 이들 모두 합수단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조 전 사령관의 에 이들의 사법처리 여부가 달려 있다.

 

계엄문건 작성을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다소 다툼의 여지가 있다. 다만 조 전 사령관은 문건 작성 과정에서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기무사의 정치 관여 활동, 기무사 자금 유용 등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합수단은 수사 당시 조 전 사령관의 자금 사용처가 담긴 장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뜻밖의 사건이 파생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탄핵 국면에서 작성

기무사는 20172~38쪽 분량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여기에 딸린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작성했다. 201612월 국회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시점이었다.

 

문건에는 탄핵 선고 이후 전망되는 상황이 서술돼 있다. 대규모 시위대의 청와대·헌재 진입 및 점거 시도, 화염병 투척 등 과격양상 심화, 사이버상의 유언비어 난무, 집회·시위 전국 확산 등의 내용이다.

 

중요시설과 광화문·여의도 등 집회 예상 지역 2곳에 기계화사단 6, 기갑여단 2, 특전사 6개 이상 등 병력을 배치하는 계획도 담겼다. 언론보도를 통제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를 무력화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문건에 포함됐다.

 

계엄문건은 20187월 이철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군인권센터 등이 공개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시를 내렸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꾸려진 데 이어 민간 검찰까지 합류해 군·검 합동수사단이 출범했다.

 

합수단은 201811월 계엄문건의 작성 경위와 의도, 추가 준비행위 여부 등 구체적인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을 조사해야 내막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가 귀국 등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했다. 육사 출신인 조 전 사령관은 2014년 중장으로 승진해 기무사령관에 오른 뒤, 정권이 바뀌고 20179월 예편했다. 그해 12월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조현천 귀국 의도는?

이에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을 기소중지 처분했다. 내란음모 혐의가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이 아니라 향후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하면 수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지난 914일 조 전 사령관이 자진 귀국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미국 현지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계엄문건 작성의 최고 책임자로서 문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자진 귀국해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왜 지금일까. 그가 귀국 의사를 밝히기 직전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는 계엄문건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힘 측은 계엄문건이 단순 검토보고서여서 불법성이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기무사가 내란음모를 꾸민 것처럼 송 전 장관 등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전 정권을 겨냥한 것이다.

 

눈에 띄는 건 국민의힘 TF에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도 민간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그는 조 전 사령관의 지시로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해 합수단의 수사를 받았다. 조 전 사령관이 귀국하면 그도 다시 수사 대상이 된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7TF1차 회의에서 과거 기무사 참모장 시절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를 앞두고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검토한 계엄령 사안에 대해 쿠데타 등 정치적 몰이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라며 아직 다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런 내용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군인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 임무로 알고 있고 지금까지 그렇게 수행해왔기 때문에 이번 실태조사에서 정확히 규명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2014108일 조현천 당시 국군사이버사령관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참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조 전 사령관의 귀국은 현재 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입장문에서도 최근 기무사가 작성했던 계엄문건과 관련해 당시 국방부 장관 등이 검찰에 고발되고 문건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2018년 합수단에 보낸 우편 진술서를 통해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절차를 검토한 것에 불과하고 실행계획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조 전 사령관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인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라며 기획 입국을 의심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도 2018·2019년 국민의힘이 동일한 사안으로 자신을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며 이번 고발에는 조 전 사령관을 귀국시켜서 봐주려는 모종의 음모가 작동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조 전 사령관의 내란음모, 국민의힘 측의 고발 등 계엄문건을 둘러싼 사건 2개는 최근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에 배당됐다. 검찰은 기존 합수단의 수사 자료 등을 검토하는 한편 조 전 사령관 측과 귀국 일정 등을 조율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의심되는 정황들

조 전 사령관이 받는 주요 혐의는 내란음모다. 내란음모가 성립하려면 2명 이상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는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고,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돼야 한다. 계엄문건이 실제 실행을 위한 계획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합수단의 2018년 수사결과 계엄문건이 실행을 위해 작성됐다고 볼 수 있는 수상쩍은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우선 기무사는 계엄문건 작성 과정에서 TF를 구성했는데,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로 계엄문건과는 전혀 무관한 이름이다. TF로 인사명령을 내고 예산도 책정했다. 부대원들은 인터넷과 인트라넷이 연결되지 않은 별도의 컴퓨터로 작업했다. TF 운영 종료 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초기화했다. 계엄문건 작성을 은폐하기 위해 비밀리에 움직였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계엄문건의 본래 제목은 언론에 공개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시행방안이 아니라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제목으로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조 전 사령관은 20172~3월 계엄문건에서 계엄임무 수행군으로 편성된 20사단장과 8사단장을 만나기도 했다. 기무사는 20175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일에 해당 문건을 온라인시스템에 훈련비밀로 등재하려 했으나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훈련비밀로 등록하면 훈련 때 다른 부대원들이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문건의 존재가 드러날까봐 우려한 것으로 합수단은 의심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문건 작성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나왔다. 계엄문건은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도록 했다. 그러나 현행 계엄 관련 계획에는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 역할을 수행토록 한다고 돼 있다. 계엄문건에는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했을 때 체포 등 대응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따라야 한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문건 의혹을 수사한 군·검 합동수사단이 2018117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 대회의실에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데 계엄문건 작성에 앞선 201610월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방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에게 북한 급변 사태를 가정해 계엄을 선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행정관은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지정하는 방안,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에 대응하는 방안 등도 김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 기무사의 계엄문건에 담긴 내용과 유사하다. 또 육군본부 작전과도 20172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조 전 사령관도 부하 간부에게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건의할 경우 국회를 해산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고, 이를 계엄문건에 실제 반영했다는 진술도 합수단은 확보했다. 청와대와 기무사 사이에 지시 등 접촉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조 전 사령관은 201611~20172월 모두 4차례 청와대를 방문했다. 세 번은 김 전 실장을 만나 대북 관련 보고 등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자리에서 계엄문건이 논의됐을 여지가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나흘 전인 2016125일에는 김 전 실장을 만난 뒤 다른 인물을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기무사는 201611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국면별 대비방안’, ‘현 시국 관련 국면별 고려 사항’, ‘통수권자의 안위를 위한 군의 역할등 문건 3개를 작성했다. 이 문건들에 계엄 선포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됐다.

 

합수단은 김 전 실장을 참고인 중지 처분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황교안 전 국무총리,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검찰수사가 재개되면 이들도 수사 선상에 오른다.

 

황 전 총리는 계엄문건 작성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다. 그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20173월 황 전 총리가 참여한 공식행사에 조 전 사령관이 4차례 참석한 정황을 합수단이 포착했다. “조 전 사령관이 황 전 총리에게 계엄문건을 보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당시 합수단의 판단이었다.

 

계엄문건 작성 즈음에 박씨의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집회에는 계엄령선포촉구 범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등장했다. 이들은 계엄령을 선포해 촛불 반란군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군대여 일어나라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과거 기무사가 보수단체를 관리하면서 정권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동원했다는 점에 비춰, 기무사와 이 단체 간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성명불상의 이 단체 대표도 참고인 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기소는 불가피

합수단은 수사 당시 조 전 사령관을 내란음모로 기소할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정부 관계자는 군에 정통한 사람들은 문건만 놓고 봐도 이건 실행계획이다라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이 나서서 계엄문건을 공개한 지난 정부 인사들을 고발하고, 조 전 사령관의 입장도 궤를 같이하는 만큼 실제 내란음모로 기소될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 전 사령관이 기소 자체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내란음모 외에 다른 혐의들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계엄문건 작성 과정에서 이를 숨기기 위해 문건 작성과 상관없는 위장 TF를 만들어 인력파견, 예산 신청 등의 공문을 작성하고 이를 사용한 혐의가 있다. 이런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는 내란음모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이기도 하다.

 

합수단은 앞서 같은 혐의로 소강원 전 참모장과 기우진 전 5처장, 전 모 중령 등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 전 중령은 최근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의 선고 유예를 확정받았다. 조 전 사령관이 계엄문건 작성을 지시한 만큼 공범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이 밖에 조 전 사령관은 직권남용, 정치 관여, 업무상 횡령 등 혐의도 받는다. 기무사가 201610~12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집회 18회 개최, 칼럼·광고 54회 게재 등에 관여한 혐의다. 20161월 기무사 요원들이 한국자유총연맹 선거와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토록 한 것으로 합수단은 의심했다. 기무사가 20167~9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찬성 의견을 유포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자금 3000만원을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20163~5월에는 기무사 계획예산과장 등에게 근거 없이 돈을 마련하라고 지시해 대외정책 첩보 소재 개발비명목으로 3000만원을 챙긴 혐의도 수사 대상이다. 이들 혐의 가운데 일부는 지모 전 기무사 참모장과 공모했다. 지 전 참모장은 20194월에 기소됐다. 따라서 조 전 사령관도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이 사용한 자금의 흐름 추적에도 주력했다. 조 전 사령관의 동선과 접촉 인물 등을 특정해 문건 작성 경위를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사령관의 부관을 상대로도 조사를 벌였다.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의 자금 사용처가 담긴, 그의 부관이 작성한 장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사령관은 주로 현금을 썼다고 한다. 장부에 적힌 내용에 따라 별개의 사건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국정감사 언론 보도의 문제점

정책에는 저작권이 없다는 말이 있다. 멋진 정책을 만든 사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언론, 시민단체, 학자, 정치인이 정책을 내놨다. ‘최저임금 1만원’, ‘기본소득’, ‘전국민 고용보험과 같은 정책들 말이다. 최저임금 1만원에 도달했다고 처음 그 정책을 말한 사람에게 저작권이라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어떻게든 찾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어떤가? 기본소득으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인 이재명 의원도 원조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정말 저작권료를 주어야만 한다면 차라리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무어에게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책에는 저작권이 없다. 그래서 그 정책을 만든 사람은 저작권료가 아니라 명예와 보람을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명예와 보람이라도 누릴 수 있게끔 언론이 도와줄 필요가 있다. 누가 어떤 정책을 만들었는지, 또는 누가 어떤 정책을 만들기 위한 자료를 발굴했는지 특정 사람을 정확히 지명해서 밝힐 필요가 있다.

 

국감시즌이다. 선거를 제외하면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때다. 간혹 국회의원들이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하거나, 싸우기만 한다는 비판을 듣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싸우는 것도 국회의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선거 때와 국감 때 노는 국회의원은 없다. 혹시 한국 정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국감 때 나오는 자료들을 꼼꼼히 보기를 추천한다. 대단히 훌륭한 자료와 정책이 넘쳐난다.

 

그런데 문제는 국감시즌에 의원발 멋진 자료들이 보도되는 잘못된 관행이 있다. 어떤 의원이 발굴해낸 자료가 그 국회의원이 발굴한 자료가 아니라 특정 언론사의 취재로 밝혀진 것처럼 보도가 된다. 물론 그 의원이 낸 보도자료를 취재하기는 했다. 다만 출처가 어떤 의원인지는 정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많은 방송 뉴스에서는 아무개 의원에 따르면, 이런 문제가 드러났다고 기술하지 않는다. 출처 없이 방송을 만들고 말미에 그 의원이 문제를 지적하는 인터뷰 정도가 나온다. ‘선수들은 정책을 다룬 뉴스에 의원 인터뷰가 실리면 , 저 의원이 발굴한 자료구나라고 알 수는 있다. 그러나 보통 시청자들은 이 사회의 문제점을 발굴한 것은 의원이 아니라 그 사실을 보도한 언론처럼 느껴진다. 왜 이런 이상한 관행이 생겼을까? 방송사는 좋은 이미지를 얻어서 좋고, 의원들도 자기 얼굴이 TV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다.

 

특히, 국감 시즌 의원발 뉴스가 [단독]이라는 말머리를 달고 보도가 되는 일도 많다. 이러한 단독은 국감에서 질의하기 전까지 시간차 단독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이 국감에서 질의할 내용이 어떻게 하면 하나의 언론사의 단독 기사가 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의원실에서 보도자료를 발송할 때, 선택에 따른 결과다.

특정 정책이나 자료를 모든 언론이 볼 수 있도록 보도자료를 풀로 풀 수도 있지만 특정 언론사에게만 제공할 수도 있다. 특정 언론사에만 전달하면 좀 지면을 키워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물론 단독으로 제공받은 언론사는 [단독]이라는 말머리를 달 수 있어서 좋다. 문제는 단독으로 제공 받은 방송사조차도 제공 받은 자료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처를 명시하지 않고 자료를 제공한 의원의 인터뷰로 출처를 갈음하는 경우도 많다.

 

정리해보자. 국회발 자료 중 좋은 자료가 의외로 많다. 특히, 국감시즌에는 국회의원실에서 좋은 자료와 정책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을 보도할 때, 이러한 자료를 발굴한 의원의 이름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은 일은 안 하고 싸움만 한다고 오해하는 이유는 이러한 언론의 보도 탓도 있지 않을까? 내가 싸움하면 언론에 크게 보도된다. 싸움의 주체로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좋은 자료나 좋은 정책을 잘 찾아 발굴하면, 정책의 주체로서 존재감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일이 정책보다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 정치 주체로서는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기자명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이재명 친일국방에 여권 색깔론’‘친일망언까지

한일 군사협력 50여년에 이번같은 훈련은 없어

닥치고 한미일한국의 한반도 주도권 상실 우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연일 최근의 한미일 훈련을 극단적 친일국방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중단을 요구합니다. 이재명 대표는 자위대를 군대로 격상시키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자는 것이 일본의 목표라며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은 일본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하는 행위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날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는 자극적인 주장까지 했죠.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이러자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에게 색깔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1일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극단적인 친일이 아니라 극단적인 친북이라며 한반도에 욱일기가 걸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인공기는 걸려도 괜찮다는 말씀이냐고 말했습니다.

논란에 윤 대통령도 가세했습니다. 11일 출근길 문답에서 윤 대통령은 핵위협 앞에 어떤 우려가 정당화될수 있겠냐고 말해, 한미일 훈련에 대한 국민의 우려 자체를 무시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6일 출근길 문답에서도 강력한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국민생명과 안전을 빈틈없이 다 잘 챙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전 정부들은 북한 위협에 대비할 때 한미동맹을 강조했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을 크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특이하게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합니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왜 그럴까요?

불이 나면 불을 끄기 위해 이웃이 힘을 합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가장 (크게) 동북아에 직면한 위협이다. 그 위협을 위해 이웃 국가와 힘을 합친다는 건 전혀 이상한 문제가 아니다.”(11일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

일본이 우리 집의 불을 끄려고 온 착한 이웃일까요? 아니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나쁜 이웃일까요? 한국과 일본은 같은 편일까요.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기 전에 차분히 따져볼 문제입니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한미일 동맹은 없다

먼저 간단한 퀴즈 하나 풀어보겠습니다.

)한미일 동맹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한미동맹이 있고 미일동맹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동맹관계가 아닙니다. 한국은 한미와 미일이 동맹이므로 일본과도 협력해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미일 동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미일 동맹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기자들도 기사에서 한미일 동맹이라고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한미일 동맹 강화 콕 짚은 백악관’(2022.5.19 JTBC)

, 한미일 동맹 재차 강조’(2021. 3.4 KBS)

윤 대통령의 외교 데뷔한미일 동맹이 돌아왔다’(2022.6.30 머니투데이)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동맹과 안보협력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나라끼리는 먼저 군사 교류 활성화로 협력 기반을 구축하고 동맹 형태로 발전합니다. 군사 교류에는 군 인사 교환 방문, 상호훈련 참관, 함정과 항공기 교환 방문, 군사교육 교류 등이 있습니다. 동맹은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 집단 방위, 군사정보 교환, 무기체계 상호운용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동맹은 군사협력보다 휠씬 상위 개념입니다

 

-일 군사협력은 50년이 휠씬 넘었습니다. 1967년 양국 군 인사 교류를 시작해, 1980년대까지는 두 나라 군 인사들이 오가고 부대 교류 행사를 정례화하는 등 군사 교류 수준이었습니다. 양국은 1999년 이후 동해와 한·일 중간수역에서 한-일 수색구조훈련(SAREX)을 격년제로 했습니다. 이 훈련은 조난 선박 발생 시 한국 해군과 일본 자위대 간의 공동 대처 능력을 키우는 인도적 목적의 비전투 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모두 6차례 하고 양국 관계 악화로 201712월 이후 중단됐습니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20164·9월 북한의 4·5차 핵실험 이후 한-일 군사협력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20166월 하와이 근처에서 한··일 미사일 탐지 추적 훈련을 처음 실시했습니다. 이후 훈련은 박근혜·문재인 정부 때 모두 6차례 실시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자, 그해 10월 한··일 국방장관은 북한 미사일 경보 훈련과 대잠수함전 훈련을 지속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일 군사훈련은 문재인 정부 때 한··일 국방장관들이 약속한 사항이라고 주장합니다.

 

황교안 대행도 엄두 못낸 동해 3국 대잠전 훈련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가 실시한 한··일 훈련들은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와도 많이 다릅니다. 201710월 훈련까지 한국 해군 함정은 우리 동해상에서, 미국과 일본 함정 각 1척은 일본 근해에서 각각 북한 미사일을 탐지·추적해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201712월 훈련때 한국 해군은 우리 동해상, 미국과 일본 함정 각 1척은 일본 근해에서 각각 북한 미사일을 탐지·추적했고, 미국 이지스함 1척은 미 본토 인근 태평양 해상에서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당시는 한··일 함정이 지금처럼 동해 공해 한곳에 모이지 않고 멀리 떨어진 자국 근처 바다에서 각자 미사일 표적을 탐지 추적해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특히 독도가 있어 예민한 동해에선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20174월 제주 남방 한·일 중간수역에서 첫 한··일 대잠전 훈련이 있었습니다. 대잠전 훈련은 잠수함을 탐지·파괴하는 훈련입니다. 당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때였지만 독도가 있는 동해에서는 3국 대잠전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풀리면서 한미일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과 3월 미국과 일본 정부가 한··3국 군사훈련을 한반도 수역에서 하자고 거듭 제안해왔으나 당시 문재인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한··3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정의용 한국 외교장관한테 한··3국 군사훈련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정 장관은 여러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했습니다.

 

·일 정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도발적인 군사 동향에 맞서 한··3국의 굳건한 대응 의지를 과시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3국 군사훈련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 위협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중국, 러시아도 견제하려는 데 있을 겁니다. 한국이 한··3국 군사훈련을 거절한 이유는 이 훈련이 동북아의 지정학을 바꿀 중대 변화로 여겨져온 데다 일제 강점기를 거친 한국사회에 일본 자위대와 함께 하는 훈련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도 일본과의 훈련에는 신중했습니다. 2017110일 미국과 일본이 제안한 한미일 대잠수함전 훈련이 국민 여론과 중국의 반발을 우려한 한국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한국, 미국, 일본 등 3국이 참여하는 대잠수함 훈련에 대해 한국이 시기상조라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에 대한 반발 여론 때문에 새로운 한미일, 한일 협력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사드 한국 배치 결정으로 긴장관계에 있는 중국의 반발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북한 핵위협이 한미일 군사훈련의 엑셀레이터였다면, 독도 문제와 과거사는 브레이크입니다. 안전운전을 하려면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섬세하게 잘 다뤄야 하듯이, 한미일 군사협력도 북핵 위협과 과거사, 독도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동안 독도가 있는 동해에선 한미일이 모여 훈련을 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처럼 한미일 훈련을 급발진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한달 뒤인 올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3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일 미사일 경보 훈련과 미사일 탐지 추적 훈련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지난 930일 한··일이 동해 공해상에서 사상 최초로 대잠전 훈련을 했고 지난 6일에는 한··일이 동해 공해상에서 미사일 방어 훈련도 했습니다. 2주 연속 동해상 한··일 훈련은 처음있는 일입니다.

 

외교안보실세 김태효의 2017년 칼럼

윤석열 정부는 왜 이럴까요. 외교안보의 실세로 꼽히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한··일 협력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습니다. 김태효 차장이 20179월 조선일보에 쓴 칼럼 제목이 '··일 안보 협력 말고 다른 길은 없다'입니다.

 

칼럼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국가 존립이 걸린 안보 문제에서 한국의 가장 긴밀한 파트너는 미국과 일본이 돼야 한다. 세 나라가 북한의 군사 도발 위협에 한목소리로 대처하면 대북 억지력이 커지고 북한의 오판 가능성이 작아진다.”

문재인 정부는 안보 협력으로 일본과 신뢰를 쌓고 협력의 관행을 정착시켜 가다 보면 과거사 문제의 해결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는 역발상(逆發想)을 꾀해야 한다. 작년에 체결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으로 양국이 북한에 관한 군사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 7년간 보류돼 온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조속히 체결하여 대북 억지력을 배가하고 한반도의 돌발 상황(contingency)에 공동 대처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김태효 차장의 한·일 관계에 대한 몇몇 주장들은 논란이 됐습니다. 김 차장은 2001년 자신의 논문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역할 : ·일신방위협력지침을 중심으로'에서 한반도 유사시 재한 일본인의 대피 및 구조활동은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허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을 허용하는 듯한 주장입니다. 일본이 19세기 말 동학농민전쟁때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군대를 보냈고, 이후 국권 상실과 민족의 수난으로 이어졌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자국민 보호 등을 앞세워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경박한 역사 인식으로 국민을 현혹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최근 나오는 한미일 훈련에 대한 우려는 합리적 의심입니다. 일본은 북한 위협을 내세워 재무장을 가속화하고 미국을 배경으로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군사협력시스템을 만들려고 합니다.

 

친일 국방 논란에서 미국 관련 이야기는 빠졌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한국-일본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왔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이며 역내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기 때문입니다. 한미일 협력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는 올 2월 발간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드러났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5대 전략 목표, 10대 행동 계획을 제시했는데 이 가운데 7번째 행동 계획이 한미일 협력 확대였습니다. 한미일 훈련은 북핵 위협 대응뿐만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인도태평양전략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동맹을 무척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한미동맹의 일부라고 여길 겁니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저와 바이든 대통령의 생각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치한다고 느꼈다.”(윤석열 대통령, 521일 한미정상회담 뒤 기자회견)

-중 전략 경쟁이 심화할수록 한-미 간에 입장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것이 우리 외교의 가장 큰 당면한 도전이고 과제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미국과 생각이 일치한다고 못박았습니다. 미국에 더 확실하게 밀착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선택을 했고,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훈련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훈련을 서두르다 보니 논리가 앞뒤가 안맞는 경우도 생깁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이 심각하다며 930일 동해에서 한미일 대잠전 훈련을 벌였습니다. 그동안 국방부는 북한이 에스엘비엠을 수중 바지선에서 쏜 적이 있지만 실제 수중 잠수함에서 발사할 능력이 있는지는 확인이 안 돼 에스엘비엠 운용국에 넣지 않았습니다. 북한 에스엘비엠을 놓고 실전 운용 능력이 없다고 했다가 심각한 위협이라고 오락가락합니다.

 

한미일 훈련의 속도와 폭 조절해야

북한이 최근 핵 위협 수위를 높이며 7차 핵실험 가능성을 높여가는 엄중한 상황입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한미일 훈련에 대한 문제제기와 우려를 허황된 소리라고 폄하하고 무시합니다. 안보를 책임진 정부 여당의 자세가 아닙니다.

정부는 한미일 훈련의 속도와 폭을 조절해야 합니다. ‘닥치고 한미일 훈련은 능사가 아닙니다. 야당과 언론의 문제 지적의 빼대는 미국과 일본이 짠 중국 견제 전략에 한국이 무작정 끌려가면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이 약해지고 한반도 위기관리도 어렵게 되고 일본의 한반도 개입 가능성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인 한국의 주도성과 주권성이 훼손될 우려입니다. 이는 그동안 전문가들 논의에서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입니다. 북핵 위협을 내세워 한미일 군사협력을 급발진하는 윤석열 정부는 잠시 멈추고 이런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고 하는데, 안보 상황이 심각한 지금일수록 대통령실과 여당이 야당에게 초당적 협조를 요청해야 합니다.

[논썰] 브레이크 없는 윤석열식 한··일 훈련 폭주. 한겨레TV

 

민주당도 친일 국방이란 자극적 네이밍에서 벗어나 날로 심각해지는 북핵 문제의 대책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구상과 정책을 내놓기를 바랍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담대한 구상을 냈으니 이재명 대표도 구상을 가다듬어 이재명표 평화정책을 내놓았으면 합니다. 서독 총리를 지낸 독일 통일의 주역 빌리 브란트는 평화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평화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야가 남북관계에서 말꼬리 잡는 정쟁을 넘어 평화 만들기정책 대결을 펼치기를 기대합니다.

한겨레 권혁철 기자

 

위기 극복 회복탄력성 덴마크 1, 한국 30

세계는 지금 다양한 위기로 몸살을 앓는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초인플레이션으로 세계경제는 거대한 침체를 앞두고 있다. 빈번해진 자연재해를 비롯해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는 이제 일상이 됐다. 각국은 이런 위기에 어느 정도 노출됐고, 회복 역량은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

 

국제재해보험사 FM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북유럽 덴마크가 위기 극복 역량이 가장 높은 나라로 조사됐다. 최근 발표된 ‘2022FM글로벌 회복탄력성(Resilience Index) 지수에서 덴마크는 종합점수 100점으로 1위에 올랐다. 한국은 30위에 그쳤다. 이 조사는 기업이 벌이는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위험을 경제 리스크 질 공급사슬의 세 범주 15개 세부 항목으로 나눠, 세계 130개 국가·지역의 위험 노출 정도와 회복탄력성을 평가해 순위를 매겼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평가하는 세부 항목이 2개나 포함됐다.

 

공급망 관리 측면에서 최고점을 얻은 덴마크를 비롯해 스웨덴(7)과 노르웨이(8) 등 북유럽 3국이 10위권에 들었다. 2위는 경제 분야 리스크가 낮은 스위스가 차지했고, 생산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은 룩셈부르크가 3위에 올랐다. 부패와 정치 리스크가 매우 낮고 생산성이 높은 싱가포르가 4, 보건 분야 지출이 가장 많고 사이버 위험이 가장 낮은 미국이 6위였다.

 

한국은 사이버 위험과 부패 정도가 덜한 반면, 기후변화와 화재 위험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한국은 2021년 전국 단위 홍수 위험 지도를 펴내 기후변화 대응력 순위가 36계단 뛰었다. 또 영국은 기후변화 위험 노출도가 111위로 매우 높지만, 상대적으로 대응 역량이 우수하다(17)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에서는 경제가 발전한 해안 도시에 비해 내륙의 회복탄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박중언 부편집장 parkje@hani.co.kr

 

 

성장을 죽여야 인플레 잡는다

최근 미국 FOMC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이해하려면 인플레이션의 원인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 근본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대인플레이션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하지만 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은 줄지 않고 있다.AFP PHOTO

 

인플레이션을 낮추는(잡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지상 과제다. 적어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여러 차례 밝혔던 바에 따르면 그렇다. 그의 말은 연준이 심지어 경제성장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인플레이션과 싸울 것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물론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면서도 실업률(성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이 때문에 파월 의장은 물가를 잡는 것이 실업문제보다 더 중요한 목표라는 점을 확실히 다져두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최근 미국의 실업률은 3.7%로 당분간 물가에만 집중해도 되는 사정도 있겠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중 한 놈만 팬다고 해서 싸움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면 사실 연준은 실업률을 늘려야만할지도 모른다. 인플레이션 잡기가 고약한 일이 되는 이유다.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 이유를 알려면, 일단 인플레이션의 원인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의 두 가지 원인

물가가 오르는 건 대개 두 가지 때문이다. 수요가 너무 많거나 공급이 너무 적거나. 너도 나도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의 값은 그 물건의 공급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오르게 되어 있다. 그러니 물건값이 오르지 않도록 하려면 해당 재화(및 서비스)의 수요를 줄이거나 공급을 늘려야 한다. 공급 부족으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비용 상승에 의한(cost-push)’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석유나 원자재 등의 공급이 원활치 않아 가격이 오르면, 이로 인한 추가 비용은 최종적으로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반영된다. 반면 수요가 너무 많아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견인한(demand-pull)’ 인플레이션이다. 수요와 공급 중 어느 측면이 물가 상승에 더 큰 책임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원인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한 정책이 성장에 갖게 되는 함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총생산물을 하나의 상품이 대표한다고 가정하고, 이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각각 총수요와 총공급이라고 부르자. 이 경우 이 상품의 생산 수량은 국내총생산(GDP)이 된다. 그래프는 총수요나 총공급 중 하나를 고정하고 다른 하나를 변화시켰을 때 물가와 성장에 어떤 영향이 생기는지를 간단하고 분명하게 보여준다.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의 경우를 보자(그림 1참조). 공급이 줄어 총공급곡선이 총공급 0’에서 총공급 1’로 이동하면 이로 인해 가격(물가)P0에서 P1으로 상승하고(인플레이션 발생) 동시에 총생산(GDP)Q0에서 Q1으로 줄어든다(성장 둔화). 만약 총공급을 늘릴 수 있다면, 즉 총공급곡선을 원래대로 총공급 0’으로 옮길 수 있다면 반대로 물가는 하락하고 성장은 늘어날 것이다.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굳이 성장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의 경우는 다르다(그림 2참조). 총수요곡선이 총수요 0’에서 총수요 1’로 이동하면(총수요 증가), 물가는 P0에서 P1으로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총생산은 Q0에서 Q1으로 상승한다(경제성장). 인플레이션이 경제성장과 같이 가는 경우다. 인플레이션을 줄일 목적으로 총수요곡선을 원래대로 총수요 0’으로 돌려놓으면 물가는 내려가지만(P1에서 P0), 성장도 둔화된다(Q1에서 Q0).

 

정리해보자. 인플레이션이 비용 상승에 의한 것이라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 이때 물가는 내려가고 성장은 증진된다. 인플레이션이 수요 증가 때문이라면 총수요를 줄여야 한다. 물가는 하락하지만 성장률 또한 떨어진다. 이때는 물가와 성장,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주로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정책과 미·중 패권싸움,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고 이에 따라 곡물, 원자재 및 석유 가격이 올라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는 의견은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은 조금도 줄지 않고 있다. 9월 발표된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소비자물가지수의 약 40%를 차지하는 주거비 급등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코로나 국면에서의 회복과 함께 그동안 시장에 넘치도록 풀어놓은 현금을 통한 소비 증가로 발생한 수요 견인 형태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주로 수요 견인에서 비롯되었다면 연준에겐 비용 상승의 경우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물가를 잡기 위해 총수요를 줄이면 성장을 희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공급망 붕괴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총수요를 공략할 필요성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공급망이 붕괴된 원인이 경제 영역이 아니라 정치 영역(국가 간 분쟁·전쟁)에 더 가까운 탓이다. 게다가 총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총수요를 공략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총공급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보다 총수요를 훨씬 더 많이 떨어뜨려야 한다. 이래저래 총수요가 핵심 요소다.

 

물가를 위해 성장을 희생시켜라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의 8월 물가상승률이 예상치인 8.0%를 웃도는 8.3%로 발표되자, 9FOMC에서 결정될 기준금리 상승폭을 최소 0.75%포인트, 최대 1%포인트로 예측하고 있었다. 연준은 0.75%포인트를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FOMC 위원들의 미국 성장률 기대치가 대폭 낮아졌다. 지난 6월 위원들은 미국의 올해 성장률 기대치를 ‘1.5~1.9%’로 봤다. 이번엔 ‘0.0~0.2%’로 낮췄다. 내년 전망 역시 ‘1.3~2.0%’에서 ‘0.5~1.5%’로 줄였다. 불황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커진 것이다. 이번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1%포인트가 아니라)만 올린 것은 성장에 대한 배려때문에 살살 가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온다. 그러나 FOMC가 정말 불황을 우려해서 0.75%포인트만 올렸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파월 의장 스스로 지금은 물가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밝혀왔기 때문이다. 무엇은 당연히 성장을 포함한다.

 

살펴보았듯 총수요를 낮춰서 인플레이션과 싸울라치면 대개 성장을 반드시희생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성장을 배려한 탓에금리를 0.75%포인트만 올렸다는 것은 큰 실수가 될 수 있다. 이 정도의 금리 상승으로는 성장을 겨우 조금만둔화시키는 데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당장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공급망이 갑자기 회복되리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미 유가와 원자재 가격은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떨어지는 중이다. 집중할 곳은 총수요다. 총수요를 줄이려면 성장에 대한 기대치 또한 확 낮춰야 한다. 사람들은 의 소득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할 때 소비보다는 저축에 나선다. 그럼 성장을 얼마나 희생시켜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까?

누워버린 필립스곡선

 

논쟁이 진행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올리비에 블랑샤르나 래리 서머스 하버드 대학 교수는 실업을 크게 늘려야, 즉 성장을 크게 후퇴시켜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장을 어지간하게 줄이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이 같은 전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누워 있다는 연구들과 긴밀히 연결된다.

 

필립스곡선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서로 상반되게 움직이는 속성을 나타내는 그래프다. 물가를 내리려면 실업률을 늘려야(경제성장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그림 3그래프의 실선). 필립스곡선이 누워 있다는 것은 두 변수가 반대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서로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그림 3그래프의 점선).

 

예컨대, 인플레이션을 X%포인트 낮추고자 할 때 증가시켜야 하는 실업률의 크기를 보자. 기울기가 평평한 아래쪽 점선으로 된 곡선(편의상 직선으로 그렸다)의 경우엔 기울기가 가파른 위쪽 곡선보다 훨씬 더 실업률을 크게 증대시켜야 한다. 그래프로 알 수 있듯이 필립스곡선이 많이 누운 경우(점선)라면 실업률을 크게 줄여도 인플레이션이 급증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한 단위 낮추기 위해서는 실업률을 아주 많이 늘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성장을 아주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그만큼 불황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열심히 쫓아가고있다. 아직 실업률이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른다. 연준이 성장에 타격을 입히면서까지 인플레이션과 싸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연준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하원 435(전체 의석)과 상원 100석 중 35석을 뽑는 118일 중간선거에 전력을 다하는 정치권이 실업률 급증을 그냥 두고 볼 가능성 또한 희박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은 이미 정치로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도권은 아직 인플레이션의 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1980년대 초,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리는 대담한 인상으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움켜쥘 수 있었다.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와 연준 건물을 봉쇄해 농성하는 등 격렬한 시위가 있었고, 볼커가 호신용으로 권총까지 갖고 다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느슨한 금리인상으로 싸움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식으로는 총수요를 충분히 줄일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돈은 아직도 시장에 많이 풀려 있고 투자자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현금을 잔뜩 쥐고 언제든 시장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양적긴축(QT)은 진행이 느리기 짝이 없다. 학자금 대출금 탕감은 그 자체에 대한 찬반과 관계없이 많든 적든 시장에 추가적인 유동성을 제공하는 효과가 있어 적어도 총수요 감축의 방향으로는 작용할 수 없는 정책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증세를 들고나왔지만 얼마나 유동성을 흡수해 총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또한 물음표다.

 

미국 금리인상의 폭탄은 사실 다른 나라들이 얻어맞는 중이다. 금리인상으로 달러화가 초강세가 되면서 각국 통화는 달러 대비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이는 수입물가를 밀어 올려 해당 국가에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야 오히려 타격이 덜할 수 있다. 강달러로 수출시장에서 큰 재미를 못 볼 수는 있겠지만 브레턴우즈 시대를 거친 이후 미국이 수출로 먹고산 적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말이다.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사진)1980년대 초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린 적이 있다.EPA

 

뒤쫓으면 잡을 수 없다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더 근본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기대인플레이션의 변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안정적이었던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은 수준에 성공적으로 묶어놓았다. 어쩌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진행된다 해도 이를 지속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준의 적극적 역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겨온 결과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촉발되어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이어지고 있는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경제주체들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더 높은 수준으로 수정하도록 만들고 있다. 높아지는 기대인플레이션은 시장의 기대를 벗어난 충격이 있어야 낮출 수 있다.

 

지금은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다. 날아오르는 인플레이션을 하염없이 뒤쫓기만 하다가는 커지는 기대인플레이션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기대인플레이션은 자기충족적(self-fulfilling)이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순간, 가격은 그 기대를 반영해 높게 형성되고 이렇게 결정된 높은 인플레이션은 다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끌어올릴 것이다.

 

이번 미팅 이후 증시는 폭락 중이다. 어차피 FOMC 위원들이 성장률 전망을 대폭 낮춘 것이 시장에 알려졌을 테니 당분간 시장의 혼란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농담 삼아 이번에 2% 포인트를 올리는 게 어떨까 주위를 떠보기도 했지만 미팅이 끝나 결과가 나온 지금, 아예 이참에 적어도 1%포인트 또는 그 이상의 금리인상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시장이 뻔히 기대하고 있는 수준을 따라가 충족시키는 정도로는 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을 쏴서 잡을 수 없다면 바주카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맞다. 기꺼이 인정한다. 이거 뒷북이다.

시사인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미국 '동해' 대신 '일본해' 고집이유 추적해보니

인도태평양 사령부, 7함대, 태평양함대 등 '일본해' 사용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일본해' 명명

2014년 승인된 미국지명위원회 성명에 이유 설명

미군 고위 장성이 또 다시 동해를 '일본해'로 불렀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미군 7함대의 칼 토머스 사령관은 14(현지시간) 보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담에 출연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에 대한 질문에 7함대 소속 로널드 레이건호가 '일본해'에서 한미, 한미일이 대특수전 연합훈련을 한 것이 북한을 자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수년간 미 항공모함이 일본해에서 작전을 하지 않았고, 한국도 방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코로나19와 한국의 이전 정부가 현 정부와 다른 (대북) 접근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미군 7함대의 동해상에서의 기동과 관련한 언급을 하면서 동해라는 말은 쓰지 않고 '일본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해 사용했다.

 

7함대 사령관 뿐 아니라 7함대 대변인도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

해일리 심스 대변인은 올해 412일 성명을 통해 핵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의 동해상 작전 사실을 알리면서 '일본해'라고 표기했었다.

연합뉴스

 

인도태평양사령부도 마찬가지다.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지난 4일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보도 자료를 통해 인태사령부 산하 주한 미 공군과 한국 공군이 서해에서 연합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 해병대 소속 F-35B 전투기와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F-15, F-2 전투기가 이날 '일본해' 상공에서 양자 훈련을 했다고 소개했다.

 

인도태평양 사령부 산하 태평양 함대 역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었다.

태평양 함대는 지난해 1015일 동해상에서 미 해군 구축함 채피호와 러시아 구축함이 서로 접촉한 사실을 전하는 "채피호는 일본해의 국제수역에서 통상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보다 앞선 616일에도 "미 군함 라파엘 페랄타호가 일본해에서 통상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미군 뿐 아니라 정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의 경우 올해 325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관련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4년 이상 만에 처음으로 김정은이 우주까지 갔다가 일본해로 떨어진 ICBM을 발사했다는 사실은 큰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었다.

 

미국은 정부 지침에 따라 동해를 일본해로 공식 표기 또는 명명중이다.

201499일 승인된 미국지명위원회(US BGN)의 성명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일본해가 관습명칭(conventional name)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일본해가 광범위하고 현재 사용중(widespread and current usage)이라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미군 당국과 정부 당국은 동해 표기를 요청하는 우리 군과 정부의 요구를 묵살해오고 있다.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카카오톡'에 무릎 꿇은 이통3RCS 참패의 역사

12. 4G LTE 성장기

LTE 네트워크 인프라와 손안의 PC로 불리는 스마트폰 대중화가 가속화되자 유선에서 해방돼 무선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도구는 서드파티에서 제작한 플랫폼에 연결돼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줬다. ,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든지 인터넷 세계가 열렸다.

그 중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는 커뮤니티분야였다. 본래 통신이 소통을 위한 목적이 컸기 때문에 그에 따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했던 트워터와 페이스북, 링크드인의 폭발적 성장은 전세계 소통방식을 완전히 뒤바꿀만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모바일 시장에 한 획을 그을 모바일 커뮤니티 서비스가 조용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게임 창업자이자 NHN 공동대표를 역임한 김범수 의장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설립한 아이위랩의 카카오 서비스군중 카카오톡이 일명 대박을 쳤다.

 

당시 해외에서는 비슷한 모바일 채탱 서비스인 위챗이 있었으나 유료였고, 국내서는 이통사의 문자 서비스가 있었으나 이 역시 유료이자 문자수 제한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아무런 제한 없이 인터넷만 연결돼 있다면 모두가 무료였다. 이같은 선풍적 인기에 201091일 아이위랩은 현재의 카카오'로 사명을 변경하기에 이른다.

 

카카오톡의 약진은 이통사 입장에서 눈엣가시나 다름 없었다. 이통사의 문자 서비스는 유료였고 그에 따른 수익이 컸으나 카카오톡으로 인해 매출 하락을 감당해야 했다. 단순한 메시지 서비스인 문자'와는 달리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PC 메신저에서 다루는 모든 서비스를 망라했다.

 

그렇다고 체면을 챙겨야 하는 이통3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스타트업 수준의 카카오를 무턱대고 공격할 수 없었다. 또한 이통사에서도 새로운 통합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리치커뮤니케이션서비스(RCS)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살얼음판 눈치게임은 201264일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전면전 양상으로 확전됐다. 카카오톡이 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 도입을 위한 보이스톡테스터를 모집한다고 알렸기 때문.

 

보이스톡 역시 인터넷망을 통한 무료 음성통화였기 때문에 이통3사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문자를 넘어 음성은 기간통신사업(MNO)에 중대한 수익원이었다. 게다가 당시 카카오톡의 가입자는 무려 4600만명에 육박하는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보이스톡은 이미 일본에서 상용화돼 큰 인기를 끌었고 전세계 확산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 [사진=다음커뮤니케이션]

정치권으로 번진 모바일 인터넷 전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연내 보이스톡을 국내 상용화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이통사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문자에 이어 핵심 수익원인 음성까지도 빼앗길 판이었다. 망투자 축소와 요금인상 등을 이유로 mVoIP 전면 도입 저지에 나섰다.

 

당시 SK텔레콤과 KT는 상위 요금제에 대해 mVoIP를 제한 허용해왔다. 데이터의 일정량만 mVoIP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이후에는 차단했다. 하지만 LG유플러스는 입장을 달리했다. 이전까지만해도 전면적 제한 정책을 펼친 LG유플러스는 전 요금제에 mVoIP 제한을 풀겠다고 선언했다.

 

상황은 이통사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는 mVoIP 서비스에 대해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애플이 6월 개최된 애플세계개발자대회(WWDC) 2012에서 와이파이망에서만 사용 가능했던 영상통화 서비스 페이스타임3G 네트워크 구동 계획을 발표하면서 음성뿐만 아니라 영상통화까지도 위협받게 됐다. 그나마 애플 디바이스간 소통방식이라는 점이 위안거리였다.

 

결국 보이스톡 사태는 정치권으로 번졌다. 614일 전병헌 의원(당시 민주통합당)과 민간단체로 구성된 망중립성이용자포럼이 공동 주최한 카카오톡 보이스톡 논란과 망중립성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나선 당시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이통사들이 고의적으로 보이스톡 패킷을 누락시켜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일본은 손실률이 거의 없지만 국내의 경우 고의적으로 누락시켜 손실률이 16.66%에 이른다는 게 근거였다. 게다가 전면 허용이라고 선언한 LG유플러스는 실제로 보이스톡 서비스를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통사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굳이 통화품질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제한시킬 이유가 없다고 항변했다. SK텔레콤은 속도는 낮추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패킷 유실이 있을 수는 있지만 비난을 무릅쓰고 인위적 조작에 나설리 만무하다는 것. KT도 카카오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엄포를 놨다. LG유플러스도 약관변경 신청을 위한 사전 준비 과정에 있다고 해명했다.

 

불똥은 방통위에도 튀었다. 단말기 보조금 제한과 통신사 요금 결정에는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mVoIP에 대해서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우유부단한 망중립성 원칙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방통위가 아닌 수수방관위라고 비난했다.

 

이통사와 카카오의 날선 공방에 한껏 움츠린 곳은 앞서 mVoIP 서비스를 도입한 플랫폼 기업들이었다. 사실 다음은 마이피플, NHN라인을 통해서 mVoIP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하지만 카카오톡 대비 적은 가입자와 활용률 때문에 보이스톡 논란에서는 일정 부분 자유로웠다.

 

6222차 토론회로 카카오톡 보이스톡논란과 통신산업의 비전 토론회가 개최했다. 이 날은 이석우 카카오 대표가 참석한 1차 토론회와는 달리 이통사들이 전면에 섰다.

 

대체적으로 망투지비용을 음성과 문자 등으로 회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mVoIP의 확산은 회수에 어려움을 겪게 해 망 투자 위축을 불러올 것이며, 그에 따른 통신서비스 품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면 허용에 나선 LG유플러스도 동일한 입장을 견지했다.

 

방통위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것. 다만, mVoIP 확산이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한발 물러섰다.

 

각각의 입장을 전달한 이통사와 카카오는 712일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미래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통신망 주제 토론회에 참석한 것. 이날 KT는 보이스톡 등 mVoIP가 본격화될 경우 이통사가 최대 2조원 가량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간 구체적 매출 감소 데이터가 없다는 지적을 정면돌파한 셈이다.

 

이날 역시도 두 진영의 입장차만을 확인하기는 했으나, 유의미한 발언도 있었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mVoIP를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대신 데이터 중심의 요금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결과적으로 이 제안은 현실화되기는 했으나 당시 SK텔레콤과 KT는 동의를 전제로 짧은 기간에 요금제를 전면 개편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날벼락씨

깊어지는 갈등 양상

 

양측의 날선 공방은 713일 방통위 발표로 희비가 갈렸다.

 

방통위가 이날 발표한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은 유무선으로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는 망 과부하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한도 내에서 제한적으로 트래픽을 관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mVoIP를 일정 요금제 이상 가입자에게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 해석했다.

 

카카오뿐만 아니라 다음과 NHN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만 전면에 나서 방통위와 대적할 수는 없었다. 대신 시민단체가 나서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방통위 기준안이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또 다시 양측이 맞붙었다. 719일 권은희 의원(당시 새누리당) 주최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 전면 허용, ICT 산업에 약인가? 독인가?’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은 기존 대비 한층 더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이통사는 공유지 비극을 주장했다. 제한된 공유자원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쓰다 결국은 파멸로 가게 된다는 의미였다. 네트워크망을 공공재로 생각해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결국은 생태계 파괴가 예견된다는 것. 망 트래픽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사업자에 대한 적절한 대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음과 카카오는 단순히 매출 감소를 이유로 mVoIP를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며 오히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온다면 그만큼의 안정된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해줘야 한다고 맞불을 놨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필름산업이 망한 것처럼 신규 서비스는 일정한 파괴를 수반한다고 강하게 밀어 붙였다.

 

또한 망중립성 이용자 포럼을 결성한 시민단체는 방통위에 이통사 mVoIP 차단 행위에 대한 공식적인 유권해석을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를 제출했다.

 

913일 앞서 페이스타임에 대한 3G 네트워크 이용을 발표했던 애플이 아이폰5’ 공개와 함께 공식적으로 이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전 대비 한발 더 나아가 LTE에서도 페이스타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깊어진 갈등 양상과는 달리 초기 mVoIP 사용률은 높지 않았다. 이통사의 음성통화 품질 대비 mVoIP의 품질이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것. 예를 들어 전 요금제에 mVoIP를 허용했던 LG유플러스의 경우 2012111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지난 7월 초 모든 요금제에 mVoIP를 허용했으나 실제 사용자는 전체 가입자의 0.5%에 불과하며, 이용량도 3MB 미만의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의외의 불똥은 국제전화 사업자에게 튀었다. 통화품질이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로밍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기 때문에 mVoIP는 해외 음성통화 사용자에게는 실속 있는 대안이었다.

 

KT, 데이터무제한 요금제 가입 50만명 돌파 [사진=KT]

LTE 음성·데이터 무제한 시대패러다임 전환

 

mVoIP 허용 관련 이통사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간의 갈등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으나 기존 요금에 따른 패러다임을 바꾸는데는 일조했다. 망 무임승차에 따른 이통사의 어려움은 지속되기는 했으나 정권 교체에 따른 압박을 감내하기 어려웠다.

 

2013년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거버넌스 변화부터 예견됐다. 정보통신부 해체에 따라 각각 흩어진 통신부문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되면서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갔다. 대체적으로 미래부는 기존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 과학기술부가 하나로 통합된 형태였다. 그만큼 거대 거버넌스가 정립된 셈이다.

 

미래부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에 따라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을 수립해야만 했다. 그 중심에는 이동통신가입비 폐지와 알뜰폰 서비스 활성화뿐만 아니라 mVoIP 확산도 주된 내용으로 다뤄졌다. , 정부 방침이 기존 시장 자율에서 국가 개입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미래부 역시 전 요금제에 mVoIP 허용을 유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먼저 대안을 내놓은 곳은 SK텔레콤이었다. 2013321일 망내 무료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mVoIP 전면 개방을 포함한 ‘T끼리 요금제를 출시했다. 가입자간 무제한 음성통화 시대가 열린 셈이다. SK텔레콤의 파격적 행보에 KTLG유플러스의 긴장감은 더 팽배해졌다. 결론적으로 양사 역시 망내 무제한 음성통화 요금제를 출시해 뒤를 이었다. 데이터 중심의 요금제 전환의 첫 발은 이렇게 형성됐다.

 

하지만 미래부는 계속해서 밀어 붙였다. 124일 미래부는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을 발표하면서 mVoIP 요금 조건은 기본적으로 사업자 자율 결정이기는 하나 이용자 편익을 위해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다만, SK텔레콤과 KT34 또는 44 요금제 등 저가 구간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상위 요금제에 허용하기는 했으나 데이터 제한이 따랐다. 양사는 면밀한 분석 없이는 전면 개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 사이 mVoIP 통화품질을 점차 향상됐다. 이통사가 LTE를 고도화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품질도 오른 셈이다. 게다가 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체 서버와 솔루션 등을 개발해 도입하고 외부 솔루션까지 추가하면서 더욱 활용도를 높여갔다.

 

지속적인 공방이 장기화되면서 그에 따른 피로감도 상당했으나 이통3사가 20144월 가입자간 무제한 음성통화에 이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까지 출시하면서 갈등이 자연스럽게 와해됐다. 문자에 이은 음성에서까지 이통사가 무제한 길을 열자 이를 우회하고자 했던 mVoIP에 대한 필요성이 약해진 것. 보이스오버LTE(VoLTE) 활성화로 음성통화 품질이 높아진 것도 주효했다.

 

게다가 2015mVoIP 전면 허용을 선언하자 더 이상의 대립은 필요성이 약해졌다. 오히려 음성 수익에만 기댔던 국제전화 시장이 위기에 봉착했다. 이후 카카오톡은 페이스톡을 도입하고 영상통화까지도 섭렵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가 2012년 선보인 RCS 서비스 '조인' [사진=SKT, KT, LG U+] [사진=이통3]

카카오톡 대항마이통3, RCS '침몰'

 

사실 이통사는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시장이 열릴 것이라 전망하고 그에 따른 만반의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이동통신업체들이 문자 메시지를 대체하기 위해 구상된 리치커뮤니게이션서비스(RCS)가 대표적이다. LTE는 기존 음성과 문자, 데이터를 IP를 통해 처리할 수 있었기에 RCS가 지향하는 바를 실현하는데 기반 인프라를 제시해줬다.

 

글로벌이동통신표준화기구 3GPPRCS 단말기 간의 신호연결 처리 및 서비스 데이터를 전송하는 미디어 처리와 품질, 과금방식 등을 IMS 규격을 통해 정의했다. 단말과 서비스 서버 구간인 사용자와 네크워크 인터페이스, 두 개 이상의 서비스서버 사이의 구간인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인터페이스로 구분된다.

 

RCS의 가장 큰 특징은 카카오톡과 라인 등 메신저 서비스와는 달리 별도의 가입절차 필요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단문 메시지부터 사진과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전송할 수도 있고, 데이터 공유까지도 가능했다. 상대방의 상태 정보 확인과, 보이스오버LTE(VoLTE)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RCS가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때는 201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글레스(MWC) 2012에서다. 당시 이통사들은 새로운 서비스로 RCS를 소개했다. 국내서는 이통3사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와 협력해 RCS 상용화를 위한 표준화 작업을 진행했다.

 

이통3사는 RCS 도입을 통해 카카오톡과 라인 등에 빼앗겼던 사용자를 다시 찾아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이통3사로서는 이용자의 사용패턴뿐만 아니라 메시지와 같은 비정형 데이터를 인공지능(AI) 등에 이용할 수 있도록 비식별 데이터로써의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서비스였다.

 

초기 RCS 도입 이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요금제가 지목됐다. 이통3사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RCS 도입에서도 요금 설계를 두고 고심했다. 당시 RCS가 무료화된다면 이통사가 연간 15천억원에 달하는 SMS 수익을 포기해야만 했다. , RCS를 도입하더라도 카카오톡과 같이 무료가 아닌 유료화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RCS 서비스는 2012년 상반기를 넘어 하반기로 상용화가 지연됐다. 이통사에서는 RCS의 유료화를 통해 가입자 유치가 어렵기 때문에 요금제를 신설하기보다 일정 사용량을 주고 이를 차감하는 형태도 고민했다. 요금제 수위에 따라 총량을 달리하는 방법도 고려했다.

 

다만, 카카오 보이스톡도입에 따른 영향으로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었던 이통3사는 2012년 하반기 RCS 브랜드 명칭을 '조인(Joyn)'으로 확정하고 같은해 1226일 대대적인 상용 서비스에 돌입했다.

 

우선적으로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의 스마트폰에서 조인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 iOS기반은 2013년 초부터 이용이 가능했다. 요금제는 유료화로 결정됐지만 프로모션 기간을 2013531일까지 설정해 이 기간동안은 대부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조인'은 한 때 330만명의 사용자를 모을 정도로 눈길을 끌었지만, 결과적으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2015년 서비스 종료라는 비운을 맞게 됐다.

 

업계는 '조인'의 실패 요인으로 초기 유료화 시도를 거론했다. 이미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기에 서비스 차이가 크지 않은 두 서비스 성패가 갈렸다는 것. 게다가 이통3사가 조인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도 한몫했다.

 

결정적으로 이통3사가 2015년 문자 메시지 무료화를 선언하면서, 조인은 동력을 잃게 된다. 사실상 중소기업에서 개발된 기존 메신저 서비스에 대기업인 이통사가 참패했다.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삐삐' 무선호출기()청약 가입했던 시절

'삐삐' 무선호출기()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삐삐' 무선호출기()’012 vs 015’ 경합과 몰락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 이런 사람이야!"

카폰자동차다이얼전화()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 1세대 통신(1G)

 

삼통사 비긴즈

삼통사 경쟁의 서막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 2이동통신사 大戰

 

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선경·포철·코오롱각축전2이통사 확정

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1이통사민간 탄생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라붐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5.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3 이동통신사 찾아라PCS 선정 개막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

이동통신 5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

6.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브랜드 ‘SKY’ 탄생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

‘SK텔레콤+신세기통신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

7. 3세대 이동통신(IMT-2000)

 

‘SK·한통·LG·하나로’ IMT-2000 도전춤추는 정부

하나로통신 007 작전정부·재벌허 찔렸다

SK텔레콤·한국통신 IMT-2000 입성LG·하나로 탈락'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

8. 3G 시대 개막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

'011·016·019010 통합' 논란번호이동 패닉

유선망 2위 사업자 파워콤인수전하나로 vs 데이콤 격돌

휴대인터넷 세상 열겠다와이브로 출항기

9. 3G 삼국정립

 

SKT ’T 브랜드탄생 vs KTF ”(SHOW)를 하라

악법도 법이다LGT IMT-2000 사업권 반납

SK텔레콤, 하나로 품다유무선 통합 1위 도전

KT-KTF 합병이석채 회장 통합KT 시대 개막

‘LG 삼콤사텔레콤·데이콤·파워콤 = LGU+ 통합 출범

10. 아이폰 쇼크

 

(51) ‘이통사 중앙집권화단일 표준 플랫폼 위피몰락

(52) ‘아이폰3년을 못봤다

(53)’아이폰' 스마트폰 깨우다옴니아·베가·옵티머스, 그리고 갤럭시

(54) 모바일 OS 잡아라, 심비안 하락안드로이드·iOS 부상

(55) 3G 데이터 무제한 시대무적칩을 아시나요

(56) ‘와이파이·블루투스재조명3G동반성장

11. 4G LTE 시대 개막

 

(57) SKT·LGU+ 국내 최초 LTE 상용화과도기 설왕설래'

(58) “LTE를 사수하라국내 첫 주파수 경매승자의 저주

(59) ‘별정4알뜰폰 비긴즈

(60) KT 2G 종료 삼고초려'

(61) LTE 가입자 100만 돌파질적 성장

(62) "쓸데없이 크다?" 갤럭시노트 '반전'LTE 대화면 시대 활짝'

12. 4G LTE 성장기

(63) LTE 2고속도로 개통올아이피 시대 도래

https://www.inews24.com/view/1528741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북핵 이젠 눈감아줘야"NYT 기고문에 미국인들 반응은

뉴욕타임즈 홈페이지 캡처

미국 뉴욕타임스가 핵 비확산 전문가인 미들베리 국제연구소(MIIS) 제프리 루이스 교수의 기고문을 지난 13(현지시간) 게재했다.

 

'북한 핵무기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제목의 글이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미국의 30년 노력이 설득력이 없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한반도 전쟁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래와 같은 논리를 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 국가들이 핵무기를 휘두르지 않는 한 그것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중략) 인도가 1998년 한해에만 수차례 핵실험을 할 때 까지도 미국은 눈감았다. 미국은 인도와 다른 분야에서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그 핵실험들에 눈을 감아주는 실용적 모습을 보였다. (중략) 트럼프 행정부가 3년 전에 (북핵 문제에) 이 접근법을 취했다면, 우리는 오늘날 완전 다른 곳에 있게 됐을지 모른다. 북한이 무장 해제는 안했겠지만 우리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다른 조치들을 모색했을 수도 있고, 북한으로부터 좋은 행동을 약속받았을 수도 있고, 더욱이 북한에 제재 완화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북한으로부터는 군축 움직임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 이것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무기를 비축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하다."

 

15일 현재 루이스 교수의 글에는 260개 가량의 댓글이 달려 있다. 댓글에 나타난 위치 정보상 대부분 미국인들이 쓴 댓글이다. 뉴욕타임스가 모든 댓글을 사전 승인한 뒤 게재하고, 댓글 창도 한시적으로 열어놓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고 할 만하다.

 

북핵 문제에 대해 타성적 관념에 빠져있는 미국인들이 이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루이스 교수의 글이 그가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생각할 수 없는' 제안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은 북핵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어떻게 보는지 댓글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연합뉴스

 

JK(The OP)

북핵 문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한 직접적인 결과임을 잊지 말자. 이란과 북한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Phil(LA)

'악의 축'을 기억하는가? 조지 부시는 3개 나라를 그 무시무시한 이름의 그룹에 집어넣었고, 그 중 가장 약한 나라를 즉각 침략했다. 나머지 두 나라 가운데 한 곳은 현재 핵보유국이고 다른 한 나라는 핵무기를 추구하고 있다. '(evil)'이라고 지목한 이유는 그 두 나라를 괴롭혀서 화해로 이끌어내 위해서였던가? 그랬다면, 그 반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인가?

Holmes(샌프란시스코)

우리 모두는 왜 북한 사람들이 미국을 싫어하는지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동안 미국은 북한 전역의 도시, 마을, 촌락을 폭격하고 불태웠다. "공군에게는 그 것이 가장 쉬운 선택이었다. B-29는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으니까. 그 당시 폭격은 오래 지속됐고, 여유로웠고, 무자비했다. 미국 지도자들조차도 그렇게 평가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략 공군 사령관이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공군 대장)1984년 공군 역사편찬 관리에게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우리는 (북한) 인구의 20%를 죽였다'고 말했다." 딘 러스크 전 국무장관은 미국이 "북한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 서있는 모든 벽돌"을 폭격했다고 말했다(워싱턴포스트 2015324일 기사)

연합뉴스

 

Mark McIntyre(LA)

나는 마지못해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라는 것에 동의한다. 북한은 누가 좋든 싫든 세계 핵클럽 회원이다. 김정은은 북한 체제의 초석인 핵과 미사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할아버지 김일성의 꿈은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협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남북한간의 포괄적인 안보 협정을 마련하라. 그렇다면 제재 완화는 북한의 행동과 협력에 바탕을 둘 수 있다. 현재의 자세는 아무 소용이 없고, 위험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다.

RI(코네티컷)

북한을 핵 강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회유책이 될 수 있다.

Zack(노스캐롤라이나)

북한은 공격받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 이후 북한이 다른 나라를 공격한 횟수(0)에 대비해 미국이 다른 나라를 공격한 횟수를 모두 세어볼까?

참고로 루이스 교수의 기고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김정은은 좀 더 유연한 미국의 태도에서 기회를 엿볼 수도 있다. 그는 핵무기가 자신을 표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기꺼이 관계를 맺었고 결국 바이든 대통령과도 기꺼이 관계를 맺을 것이다. 북한의 핵클럽 가입을 못 본채 하는 것은 쓰라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 관료들은 김정은이 폭탄을 잇따라서 만들 때 '김 위원장의 핵 프로그램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손실을 줄이고 현실을 직시하며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때다."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이탈리아 국민소득 제쳤다" 축포?1년 만에 추월당해

지난해 1인당 GNI35710달러 vs 34980달러이탈리아 작년 강한 성장세올해는 대만에 추월 위기

AFP=뉴스1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서 이탈리아를 제친 지 1년 만에 다시 역전을 허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대만에 19년 만에 추월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6일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목 GNI34980달러로 이탈리아의 35710달러보다 730달러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는 20201인당 명목 GNI32930달러로 집계되면서 경제 규모 면에서 주요 7개국(G7)인 이탈리아(32380달러)를 근소한 격차로 눌러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작년 신년사에서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G7 소속 국가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시 1년 만에 역전 당하며 일시적 앞지르기에 그친 것이다.

(출처 : 세계은행 통계) © 뉴스1

 

이탈리아는 2020년 코로나 사태 초반 유럽 지역의 극심한 확산세로 인해 큰 충격을 받으면서 마이너스(-) 8.9% 급격한 역성장을 기록했다.

반면 2021년에는 6.7% 강한 성장세를 달성했다. 3월을 기점으로 백신 접종률이 크게 확대되면서 내수가 빠르게 회복되고, 다른 유로존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되면서 상품·서비스 양쪽에서 수출 덕을 봤다.

 

우리나라는 2020-0.7% 성장하면서 국제적으로 가장 선방한 국가 반열에 들었다. 문제는 20214.1% 회복하며 이탈리아보다 낮은 반등 폭을 보였다는 점이다. 올해도 이탈리아를 제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관광 대국인 이탈리아는 지난 여름 관광 제한이 풀리면서 1~7월 국제 방문객이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57% 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기 하강으로 수출이 고전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우리나라 2.6%, 이탈리아 3.2%로 제시했다. 환율도 이탈리아에 유리하다. GNI 통계는 달러로 환산하기 때문에 자국 통화 가치가 낮을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올해 유로화는 달러 대비 13.7%, 원화는 20.1% 평가 절하됐다. 이에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성장세가 가팔랐던 것은 맞지만, 아직 본격적인 선진국 대열에 들기는 멀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탈리아는 '강대국의 최소'라고 불리곤 한다.

 

올해는 환율과 수출 부진 탓에 대만이 우리나라를 제칠 수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된다.

IMF가 이달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보면 올해 한국과 대만의 1인당 GDP33592달러, 35513달러로 각각 나타났다. 1인당 GDP 기준 우리나라가 대만을 넘어섰던 때가 지난 2003년이다. 이 전망이 현실화하면 19년 만의 재역전이다.

뉴스1 김혜지 기자

 

 

내가 알던 그 IMF 맞아?”빈곤·식량위기에 소방수 역할

국제통화기금(IMF)은 매년 봄과 가을 24개 이사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총회(국제통화기금위원회·IMFC)를 연다. 사실상의 주주 총회다.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진 올해 10월 총회에서는 크게 2가지 변화가 두드러졌다.

국제통화기금(IMF) 블로그 캡처© 제공: 한겨레

 

국제통화기금위원회는 지난 14(현지시각) 발표한 의장 성명서를 통해 우리의 우선 순위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싸우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안정 역할을 강조하고, 정부의 재정 정책은 고물가에 어려움 겪는 취약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재정·통화 정책의 일관성에 방점을 찍었다. 중앙은행이 발등에 떨어진 불인 고물가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올리는데, 정부가 돈을 푸는 엇박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과 1년 전 성명서에서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을 강조했던 것과 딴판이다.

 

이는 달라진 경제 환경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착화한 저성장, 저물가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엠에프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에 경제의 수요에 불을 지피는 확장 정책을 권고해 왔다. 예를 들어 이 기구는 지난 201210월 펴낸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재정의 승수 효과(정부 지출의 생산 증대 효과)가 우리가 추산했던 것보다 2배 이상 컸다는 연구 결과를 최초로 발표했다. 정부 지출을 죄는 재정 긴축 및 건전성 강화 조처가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다는 의미다. 더는 낮추기 어려운 정책금리를 대신해 재정 확장 정책을 각국에 권고해온 배경이다.

 

그러나 이 기구는 이번 보고서에선 코로나19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영국·일본 등의 대규모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각국 정부의 재정 부양책이 수요 회복을 촉진해 결과적으로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는 이야기다. 이런 시각을 반영해 아이엠에프는 각국이 고물가에 대응하려면 통화 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하고, 재정 정책은 통화 정책의 긴축 효과를 떨어뜨려선 안 된다며 달라진 정책 권고를 내놓고 있다.

 

환율과 국제수지·금융 안정 등을 지원하며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소방수역할을 자처해온 아이엠에프의 역할 확대도 눈길을 끈다. 이 기구는 중·저소득 국가 140여곳의 빈곤 감소, 기후 변화 대응 등을 위해 최장 20년간 장기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재원인 회복·지속가능성기금(RST)을 올해부터 운용하는 데 이어, 식량위기 대응을 위해 최장 1년간 자금을 빌려주는 별도 대출 창구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아이엠에프 총재는 14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비료 가격을 내년의 잠재적 위험으로 언급했다높은 식품 가격에 직면한 국가에 긴급 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외환위기 당시의 구조조정을 계기로 부정적 인식이 강한 아이엠에프가 최근 저소득국 채무 탕감, 자본이동 규제 강화와 같은 이례적인 조처를 넘어서 식량위기와 불평등 완화, 기후 변화 및 디지털 전환 대응 등 전방위로 보폭을 넓히는 셈이다. ‘경제 위기 소방수세계 경제의 해결사로 변신을 꾀하는 모양새다. 이 기구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저소득 국가 지원 역할을 하는 세계은행 출신의 현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원래 하던 일이나 잘 하자며 아이엠에프의 역할 확대와 진보 쪽으로의 전환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고 귀띔했다.

워싱턴/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PBR 역사적 저점' 코스피 저평가 심화

코스피지수가 2200선을 넘나들며 널뛰기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연저점 경신 행보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이 역사적 저점을 이루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직전 저점이었던 7월 초와 지금을 비교하면 금리와 환율은 훨씬 더 높아졌고 국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은 낮아졌다. 수요 위축 우려는 그 때나 지금이나 같지만 금리의 레벨과 앞으로 도달할 최종금리(터미널레이트)를 고려하면 지금이 더 부담스럽다는 분석이다.

 

16일 케이프투자증권에 따르면 현재 코스피200 종목 가운데 약 35%에 해당하는 70개 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전체에서 하위 5% 미만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코스피200 기업의 PBR가 다른 기업들에 비해 낮다는 의미다. 또 절반 이상(106개 기업)PBR 하위 15% 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중 PBR0.5배 이하인 기업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상장사 10곳 가운데 4곳의 주식이 실제 가치의 절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2019년 미국·중국 간 무역분쟁 당시(40%)와 비슷한 수준이다.

 

약세장이 길어지면서 코스피 시장의 밸류에이션 하락이 지속되고, 연초 1.18배 수준이었던 코스피 12개월 선행 PBR0.86배 수준까지 내려왔다. 2006년 이후를 기준으로 볼 때 하위 1.93% 수준이다. 해당 기간 중 현재 PBR 수준을 밑돈 기간이 전체의 약 1.93%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손주섭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200 기업 가운데 2006년 이후 최저 수준의 PBR를 나타내고 있는 종목은 전체의 10% 수준인 20개에 이른다""이들 종목은 신규 상장 등으로 하단을 가늠할 수 있는 과거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거나 과거의 하단을 이미 뚫고 내려간 종목으로, 저평가보다 주의해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업종별로 보면 반도체, 소프트웨어는 지난달 역사적 저점을 경신했다. 운송, 소매·유통, 화장품·의류, 증권, 필수소비재 등은 과거 저점에 근접했다. IT가전, 건강관리, 조선, 보험, 기계 등의 현 위치는 저점에서 크게 동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향후 주식시장 환경도 투자자들에게 녹록지 않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만들었던 환경과 변수들이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인플레이션 목표에 도달하기 전까지 금리 인하 기대를 제한할 전망이다. 달러 강세 압력은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차와 미국 이외 지역 간의 경기 차가 해소되기 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코스피 변동성지수는 아직 정점을 지나지 못했다""외국인 순매도 여력까지 고려하면 코스피지수는 기술적 관점에서 추가 하락할 수 있는 여력을 남겨 두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 뉴스 최두선

 

플랫폼 독점 폐해 확인한 카카오 먹통, 재발 방지책 세워야

카카오톡 등에서 15일 오후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장애가 장기화하면서 불편이 이어지는 가운데 16일 오후 경기 과천의 한 카카오T 주차 사전무인정산기에 시스템 장애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경기 성남 판교의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등 카카오 계열 플랫폼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극심한 혼란상이 빚어졌다. 시민들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물론, 경제 생활 전반에 대혼란이 일어났다. 편의점·식당 등에서는 카카오페이 결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카카오택시 서비스 접속 오류로 승객과 택시 기사들이 불편을 겪었다. 고객 예약이나 물건 배송 등에 카카오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상공인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안전신문고등 카카오톡을 활용한 각종 공공 서비스도 중단됐다. 화재 사고 하나로 인해 시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장시간 광범위하게 중단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사고는 지난 15일 오후 발생한 SK C&C 데이터센터 화재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데이터센터에는 카카오, 네이버,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등이 입주해 있다. 네이버의 경우 이번 화재로 검색·쇼핑·뉴스 등 서비스 일부에서 오류가 발생했지만 데이터센터를 이원화해 운영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장애를 복구했다. 그러나 상당수 카카오 계열 서비스는 16일 오후까지도 먹통이고, 완전한 복구는 언제쯤 될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 서버에 저장 중인 데이터가 손실됐다면 피해와 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정보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초연결 사회에서 온라인망이나 플랫폼이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카오톡은 거의 전 국민이 상시 이용하는 플랫폼인 데다 휴대폰을 통해 송금과 결제를 할 수 있는 카카오페이도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는다. 카카오 등 대형 온라인 업체들이 서버를 어떻게 운영해왔고, 백업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해왔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화재가 난 이유는 물론 평소 방재 대책이 허술하지 않았는지 등을 소방당국과 경찰은 조사해 재발방지책을 만들어야 한다. 카카오와 SK C&C가 시스템을 최대한 신속하게 복구하고 소비자들의 피해를 보상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사태가 일깨운 또 다른 사실은 카카오톡이라는 독점적 플랫폼 사용의 위험성이다. 카카오톡은 메신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의 각종 정보를 수집했으며, 이를 토대로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개인 데이터 과잉 수집과 오·남용, 유출 등의 위험도 있다. 차제에 플랫폼 대기업에 의존하는 개인의 삶과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온라인 자율규제 체계도 재고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서비스는 주요 정보통신 기반 시설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KT와 같은 국가 기간 망사업자는 안전 감독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포털 등 부가통신사업자는 사기업이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상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의 대상에 카카오와 네이버 등 거대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을 포함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경향사설

 

 

태풍이 동해안으로 향하면 다행’?

전국신문 전국방송이라지만 실상은 서울신문 서울방송

2022923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있는 풀빌라. 태풍이 지나간 뒤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한겨레 자료

 

20229역대급일 거라 예상했던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뒤 일부 누리꾼이 음모론을 제기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에 불리한 이슈를 덮으려 언론이 별거 아닌 태풍을 놓고 초대형이라는 호들갑을 떨었다는 겁니다. 재난 대응은 지나친 것이 모자란 것보다 백배 낫다는 점에서 호들갑이라는 진단에 동의하기도 어렵지만, 이런 시각에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상 유기된 지역 언론

힌남노가 별거 아니라는 말은 태풍의 직격탄을 맞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벌어진 비극에서 보듯,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곳의 피해는 컸습니다. 이런 음모론에는 자기 주변에서 피해가 보이지 않으면 없는 일이라 여기는 특별시거주민의 지독한 서울 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반대로 서울에 쏟아진 폭우를 놓고 포항 분들이 별일 아니라고 한다면 서울 주민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욕을 먹어도 언론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동안 지역을 외면한 보도를 해오며 서울 중심주의를 부추긴 주범이 바로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전국신문, ‘전국방송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서울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하는 서울신문과 서울방송입니다. 다른 지역 소식은 양념처럼 조금 곁들일 뿐이지요.

 

서울에 영향이 없으면 재난 주관 방송사조차 재난 방송을 하지 않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입니다. 태풍이 서울로 오다 경로를 틀어 동해안으로 향하면 다행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행태도 여전합니다. 지역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하는 보도가 나오지만, 보기 좋은 일회용 기획 아이템으로 소비할 뿐 꾸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안타까운 건 서울 사람, 서울 언론만 서울 중심주의에 빠진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도 지역은 없습니다. 지역민들조차 대통령과 국회를 중심으로 한 중앙정치만 바라볼 뿐 지역 이슈에 관심이 없습니다. 지역 현안의 해법도 오직 서울에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세한 개천 용을 통해 각종 이권과 허가를 더 많이 따내는 데 머물러 있지요.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지만, 더 빠르게 소멸하는 건 지역 언론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언론계에서 자주 쓰는 말이 뉴스 사막입니다. 종이신문 퇴조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 기반 언론사가 줄줄이 문을 닫는 바람에 지역 뉴스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커뮤니티가 늘어났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이건 그나마 지역마다 하나씩 제대로 된 신문이 살아 있던 미국의 배부른 걱정입니다. 한국은 지역 뉴스와 관련해선 이미 광활한 사막이 된 지 오래입니다.

 

지금 지역 언론은 열악한 처지로 사실상 유기된 상태입니다. 지역 주민의 관심은 떠났고 디지털 전환에는 실패했습니다. 지역 주민도 지역방송이 자체 제작한 콘텐츠는 외면하고 동네 이슈를 다루는 지역신문을 구독하지 않습니다. 공적 지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2005250억원 규모로 조성된 지역신문발전기금은 매해 예산이 축소돼 2022년엔 80억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지역 언론들 연횡이 아니라 합종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다보니 지역 문화와 여론을 조성하는 지역 언론의 본령과는 갈수록 거리가 멀어집니다. 언론윤리를 내버리고 지방자치단체나 기업과 유착하는 사례가 늘어납니다. 포털사이트가 지역 언론 몫으로 할당한 ‘11제휴 매체 자리를 놓고 지역 언론끼리 치고받고 싸우기도 합니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는 지역 언론인이 많지만, 이들의 피와 땀은 좀처럼 눈에 보이는 결실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소멸 위기에 내몰린 지역과 지역 언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중국 전국시대의 외교 전략인 합종연횡에 열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합종은 초강대국 진나라에 맞서 힘없는 나머지 여섯 나라가 뭉쳐야 한다는 논리이고 연횡은 여섯 나라를 갈라치기해서 진나라와 일대일로 교섭하게 하는 전략이지요.

 

처음 여섯 나라는 힘을 합쳐 진나라에 맞섰지만, 나중엔 약한 나라들과 손잡지 말고 강한 진나라의 보호를 받으라는 꼬임에 넘어가 하나둘 동맹을 깨고 진나라와 화친을 맺습니다. 결과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바와 같습니다. 여섯 나라는 진나라에 하나씩 잡아먹히고 천하는 진나라에 의해 통일됩니다.

힘센 진나라가 서울이고 힘없는 여섯 나라는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지금 모든 지역은 서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시혜성 예산과 지원을 끌어와 살아남겠다는 연횡의 유혹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째 애타게 서울만 바라보며 발전을 기다린 짝사랑의 결과는 어떤가요?

 

발상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 지역에 필요한 건 연횡이 아니라 합종입니다.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힘을 합쳐 서울에 맞서야 합니다. 지역끼리 서로 빼앗으려 하지 말고 힘을 모아 서울이 독점하는 자원을 빼앗아와야 합니다. 지역이 각자도생의 관성을 버리고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지역 공멸이라는 예정된 결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밀양·당진·횡성의 주민들이여, 연대하자

서울로부터 차별과 착취를 당한다는 점에서 모든 지역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공통점이 연대의 구심점이 될 수 있습니다.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초고압 송전탑 건설로 재산권과 건강권을 침해당하는 경남 밀양, 충남 당진, 강원도 횡성의 주민들은 아픔을 공유합니다. 혼자서는 약하지만 같은 아픔을 가진 지역들이 어깨동무하면 서울을 움직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역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역 언론이 지역 시민사회 간 연대의 매개체로 나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지역 언론들끼리 나누고 도우며 튼튼한 네트워크를 맺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역 언론은 눈앞의 작은 이권을 우리 지역으로 끌어오겠다고 아우성치는 지역 이기주의 언론이 아닙니다. 서울과 지역 간 수직적 차별에 맞서고 지역과 지역 간 수평적 연대를 만들어가는 언론입니다. 풀뿌리는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풀뿌리 언론도 경쟁이 아닌 연대와 협업에서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한겨레21

 

BTS 부산 콘서트외신 집중 조명대체 불가 슈퍼스타

·영 등 주요 외신 집중 조명

 

룹 방탄소년단(BTS)의 부산 콘서트에 대해 외신들도 소식을 전하며 방탄소년단의 문화·경제적 영향력을 조명했다.

방탄소년단은 15일 부산 연제구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비티에스 옛 투 컴 인 부산을 열었다. 이번 콘서트는 대면 공연을 비롯해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티브이(TV) 생중계 등으로 전세계 229개 국가와 지역에서 관람했다.

 

15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비티에스 옛 투 컴 인 부산공연 장면. 빅히트뮤직 제공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부산의 대규모 군중이 방탄소년단의 문화·경제적 영향력을 입증했다라는 기사에서 방탄소년단의 부산 공연은 2030세계박람회 개최 후보지로 대한민국 제2도시인 부산을 알리는 행사였다전세계 수만 팬이 (부산을) 찾아 대체 불가한 문화적 슈퍼스타이자 경제적 영향력을 지닌 방탄소년단의 역할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방탄소년단은 미국과 유럽의 주류 소비자에게 다가서기 이전에 아시아 전역에 물결을 일으킨 한류의 중심이었다현대경제연구원은 2018년 발표한 자료에서 방탄소년단이 2014~2023년 창출할 수 있는 경제 효과가 56조원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15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며 펼친 비티에스 옛 투 컴 인 부산콘서트 무대에서 한글 캘리그래피, 한복, 부채, 창호문양, 오방색 등 한국을 상징하는 무대 연출이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2030세계박람회 부산 개최를 응원하기 위해 무료로 진행된 이번 콘서트는 5만 이상의 팬을 끌어모았다티켓이 없어도 수만의 팬이 부산 각지에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콘서트 생중계를 시청하고 방탄소년단의 색깔인 보라색으로 물든 시내 랜드마크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열린 15일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야외주차장에 마련된 특설무대 위로 화려한 불꽃이 솟아오르고 있다. 1만여명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화상으로 생중계되는 공연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음악 매거진 <엔엠이>(NME)는 방탄소년단 부산 공연을 단 한번뿐인 행사라고 소개하며 방탄소년단은 놀라운 열정과 노력으로 지난 9년 동안 한국 문화를 세계 무대에 올렸고, 부산 공연도 그들에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어 “‘마 시티무대에선 광안대교와 해안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한국 전역을 자세히 알렸고, ‘아이돌무대에는 탈춤이 곁들여졌다고 호평했다.

 

15일 오후 방탄소년단의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라이브플레이가 열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팬과 시민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방송사 <엔비시>(NBC)글로벌 슈퍼스타 방탄소년단이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에 힘을 보태며 부산에서 무료로 콘서트를 열었다부산의 거리, 다리, 해변은 방탄소년단의 상징 색깔인 보랏빛으로 물들었다고 전했다. 부산 타워, 광안대교, 스타디움 주변 거리 등을 포함한 도시의 주요 랜드마크가 보랏빛을 띠었고, 멤버 사진이 공연 공식 상품과 전광판, 지하철 자동문에도 등장했다고 전했다.

 

15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비티에스 옛 투 컴 인 부산공연 장면. 빅히트뮤직 제공

 

미국 뉴스통신사 <유피아이>(UPI)도 콘서트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며 공연을 며칠 앞두고 전세계 수만명의 팬이 부산에 모이면서 시내 랜드마크가 보랏빛으로 물드는 등 부산이 방탄소년단 쇼케이스장으로 변모했다고 묘사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테루엘은 존재한다!"지방 소멸과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

'촌 동네' 상원의원의 질문 "지역소멸의 '주체'는 누구인가"

영어가 안 통하는데?"

 

스페인 동부 내륙지방, 작은 도시 테루엘(Teruel)의 첫 인상은 생소함이었다. 말 그대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은 유럽 취재 전 기간을 통틀어 처음 겪은 일이었다. 간단한 영어 질문에도 점원들은 난처한 듯 손을 저었다.

 

광활하고 붉은 황무지, 소박한 성당과 자그마한 구도심, 동양인은커녕 영어에도 익숙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동부 관광도시 바르셀로나, 혹은 스페인 중심에 위치한 수도 마드리드에서 각각 내륙으로 약 400킬로미터()가량 들어오면 펼쳐지는 풍경이다.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지만, 고속철도(AVE)를 이용해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 대도시에서 테루엘까지는 4~5시간이 소요된다. 직행 노선이 없어 인근 도시 사라고사(Zaragoza)를 우회해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특히 마드리드와의 직통 노선이 없는 곳은 스페인 소자치주중에서도 테루엘이 유일하다. 반면 70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AVE를 통해 2시간 30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

 

그야말로 '촌 동네', 테루엘주는 스페인 북동부 아라곤 광역자치주 내의 소자치주다. 서울의 24배 이상 가는 면적(14804제곱킬로미터)14만여 명의 시민이 흩어져 산다. 취재진이 방문한 테루엘시는 그 중 4만여 명이 모여 살고있는 테루엘주의 주도다. 공항과 역이 있고 소규모 관광 상권도 형성돼 있다.

 

변방의 중심인 꼴이지만, 도시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정체돼 있다. 마땅한 주요 산업이 없는 상황에 지역 청년들의 선택은 공항 등 몇 없는 일자리에 취직하는 길과 아예 지역을 떠나는 길 정도로 한정된다. 대학이 없으니 많은 젊은이가 떠나고, 일자리가 없으니 다시 그중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한다. 인구의 유출은 다시 각종 사회 인프라의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

 

낯익은 메커니즘에 도시의 인상이 생소함에서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감소하는 인구, 황량하게 방치되고 있는 인구 대비 넓은 면적, 열악한 인프라와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까지, 테루엘의 모습은 한국에서 익히 보아온 도시들, 소위 말하는 소멸위기의 지방 도시들을 닮아있었다.

테루엘주는 스페인 북동부 아라곤 광역자치주 내의 소자치주다. 서울의 24배 이상 가는 면적(14804제곱킬로미터)14만여 명의 시민이 흩어져 산다. 취재진이 방문한 테루엘시는 그 중 4만여 명이 모여 살고있는 테루엘주의 주도다. 공항과 역이 있고 소규모 관광 상권도 형성돼 있다. 프레시안취재팀

 

"테루엘은 존재한다(Teruel Exist)" 소멸과 싸우는 지역의 이야기

다만 이곳엔 한국의 지역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지역 정치인들이 있다. 베아트리체 마틴(Beatriz Martin)은 테루엘주에서도 시골 마을인 부에나(Bueña) 출신의 지역·여성 정치인이다.

 

"전체 인구가 100명 남짓한 작은 고향 마을"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살아야 했다. 12살 무렵 마을의 학교가 문을 닫으며 처음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인근 도시 사라고사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후엔, 상경하는 대신 "얼마 없는 지역의 일자리"를 선택해 고향 주에 남았다. 오전엔 BMW 대리점에서, 오후에는 테루엘 공항에서 일했다.

 

그가 고향 마을 부에나에정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바로 '정치'였다. 2019년까지만 해도 "전혀, 아무런 정치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는 그는, 2022년 현재 테루엘 지역 유권자 그룹 '테루엘은 존재한다(Teruel Exist)' 소속 현직 스페인 상원의원이다.

 

교육과 일자리 문제로 "청년이 고향에 정주하지 못하는 현실"을 몸소 체험해온 마틴은 소멸위기 지역의 청년이자 여성으로서 "지역소멸이라는 현실이 지역민인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끝없이 고민했고, 그 고민이 그대로 출마의 이력이 됐다.

 

 

'테루엘은 존재한다'의 창립 멤버이자 현직 고문인 아마도 고데드(Amado Goded)"지역현실에 대한 마틴의 고민과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의지" 단 두 요소를 "마틴을 스카웃한 이유"라고 밝혔다.

 

마틴의 보좌관 디에고 로라스 지메노(Diego Loras Gimeno)도 마찬가지의 이력을 지녔다. 지난 2019년 마틴의 선거 캠프에 합류한 디에고에겐 "그 전까지 별다른 정치활동 경력이 전무"했다. 다만 대학 때문에 마드리드로 이주한 후에도 그는 고향살이를 꿈꿨고, 그래서 테루엘주에서 일어나는 시민운동에 꾸준히 참여했을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역에 정주할 수 없는 지역민'으로서의 고민과, 그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정말로 그것뿐인가요?"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의원실의 '이력'에 질문을 던지자, 오히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 사람의 다소 독특한 정치행보엔 지역 시민운동의 맥락과 스페인 선거법이 보장하는 제도정치 내의 정치적 다양성이 함께 결합돼 있다.

 

'테루엘은 존재한다'"지역소멸의 책임을 묻겠다"는 모토 아래 22년간 지속된 테루엘 지역의 '유권자 그룹(Agrupación de electores)'이다. 지역정당(local party)과 비슷해 보이지만 정당이 아닌 일종의 시민 연대체다. 스페인 선거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시민 서명이 충족될 경우 이들에게 특정 선거에 대한 입후보 자격을 부여한다.

 

지역민들의 이슈에 밀착하여 펼쳐온 시민운동은 오랜 기간 지역민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신뢰"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그 신뢰를 투표에 반영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겹쳐져 마틴과 같은'이력 없는 정치인'을 탄생시켰다.

 

1999, 철도와 의료 헬리콥터, 정신건강 센터 등 지역 인프라의 확충을 주장해온 3개 시민운동 플랫폼과 지역 곳곳의 반상회 연맹체인 '이웃협회'가 모여 '테루엘은 존재한다'를 결성했다. "테루엘 전체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창립 과정"을 거쳐, 유권자 그룹은 기어코 "지역민들이 지역소멸 현상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를 부여했다.

 

바로 정치, 그것도 한 지역의 의사를 중앙에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정치로서의 정치다. 시민운동가가 아닌 상원의원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은 당위를 넘어 실질적인 효과를 지역에 선사한다.

 

마틴은 하원에서 올라오는 여러 제정 법률을 "오로지 '시골'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수정하는 일"을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2020년 팬데믹 국면에서 그는 "도시 중심으로 설계된 방역정책, 도시의 기업들만을 위해 책정된 기업 지원 기준들을 시골의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수행했다.

 

"도시 사람들은 슈퍼마켓이라도 갈 수 있게 하면서 시골 사람들을 위한 예외 조항이 없는 방역정책", "노동자 수와 기업 규모만을 기준으로 책정돼 지역 기반 기업들에는 해당되지 않는 지원정책"에 제동을 걸어 법안을 새롭게 조정했다.

 

아마도 고문은 이러한 과정을 일종의 "싸움"이라 표현했다. 중앙이 표방하는 규모의 경제에 밀려 사라져가는 지역이슈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일. 30년 이상 지역운동에 매진해 온 그는 실제로 그 '싸움'을 통해 하나 뿐인 지역의 철도를 지켜냈고, 의료 헬리콥터를 끌어왔다.

 

마드리드에서 테루엘까지의 4시간 철도 노선, 단 한 대의 헬리콥터로 운영되는 응급 의료 시스템 등은 대도시의 입장에선 있으나마나할 정도의 미미한 인프라겠지만 지역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변화"였다.

 

<프레시안>은 지난 820일 스페인 아라곤주 테루엘 현지에서 유권자 그룹 '테루엘은 존재한다(Teruel Exist) 소속 아마도 고데드(Amado Goded) 고문을 만났다. 프레시안취재팀

"소멸의 '주체'는 누구인가" 중앙의 책임을 묻는 '비워진 스페인' 운동

 

'테루엘은 존재한다'2019년 시작된 스페인 내륙 소멸위기 지역들의 연합 시민운동인 '비워진 스페인(España vaciada)'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에는 '텅 빈(Empty) 스페인' 운동으로 알려진 해당 활동에 대해 질문을 건네자 "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비어있는' 게 아니라 '비워지고 있는' 스페인이라는 게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굳이 능동형 형용사를 사용한 이유는 지금 스페인이 '누군가에 의해서' 비어지고 있음을, 다시 말해 누군가에 의해서 지역이 사라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누군가'를 명확히 하는 데서 운동과 정치의 방향성이 선명해진다. "우리 지역만의 부흥이 아닌, 비워지고 있는 스페인의 모든 지역들"을 위한 정당한 권리회복이 이 운동의 목적이 된다. 아라곤 광역자치주 테루엘주의 상원의원인 마틴이 의회에서 카스티야 이 레온 광역자치주의 소리아주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 국내로 치면 경상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의회에서 전라도 지역의 소멸위기를 지적하는 셈이다.

 

"우리는 같은 아라곤주의 대도시 사라고사보다, 건너편 주인 카스티야 이 레온의 소멸위기 지역 소리아의 사람들과 정치적으로 더 가깝습니다.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까요. 유감스럽게도 소리아에는 '테루엘은 존재한다'와 같은 지역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없으니, 같은 입장의 도시인 테루엘 출신 의원이 그들을 위해 연대하는 건 당연합니다."

14804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테루엘주의 면적 대부분은 광활하고 붉은 황무지로 이루어져 있다. 넓은 땅이지만, 현지 시민들은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프레시안취재팀

 

테루엘과 소리아의 정치적 연대는 특히 매년 각 지역 간의 예산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정된 지역예산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가'를 두고 지역과 지역이 싸우는 구도는 그간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지역 문제로 지적돼 왔다. (관련기사 "서울에 '착취'당하는 지역청년의 삶, 어떤 후보도 말하지 않는다")

 

테루엘과 소리아는 '더 많은 예산을 우리 지역에 달라'고 싸우는 대신, 혼자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두 지역 간의 연대를 통해 '지역을 위한 파이를 넓히자'고 주장한다. 연대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법을 발의하고 통과시킬 수 있는 힘도 강화된다. "지역 간의 연대가 지역정치의 강화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고, 지역의 반대급부는 다른 지역이 아닌 '중앙'이 된다.

 

아마도 고문은 이렇게 '중앙 대 지역'의 구도를 재편하는 일이야말로 중앙에 의한 '지역 악순환'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의 예산은 인구에 따른 투자가치로 정해집니다. 인구가 적으면 투자가치가 없다고 평가되고, 이는 지역 인프라의 몰락으로 이어지죠.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인구는 더 줄고, 투자가치는 다시 줄어듭니다. 악순환이고, 모순이죠. 특정 지역을 넘어 모든 지역에 대한 투자 자체를 전향적으로 확대해 이 악순환을 깨야 지역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테루엘 역(Teruel Station)의 모습. 작은 역사에는 주말마다 고향을 찾는 소수의 시민들, 혹은 스페인 관광객들이 들락거린다. 과거 테루엘주의 주요 산업이었던 광산 채굴 산업 등이 중단되면서 테루엘주의 상위 자치구 아라곤 광역자치주는 테루엘을 지나가는 철도 노선을 폐지하려 했으나, 테루엘주의 시민 플랫폼들이 이를 막아냈다. ⓒ프레시안취재팀

 

지역''의 정치를 통해 지역정치를 강화하는 일. 다만 이 아이디어에는 한 가지 선행조건이 필요하다. 테루엘과 소리아를 동시에 대의하는 의원을 한 명이라도 배출하는 일이다.

 

아무런 정치 이력 없이도 '신뢰와 의지'를 갖춘 채 정치에 뛰어든 마틴의 존재 뒤엔 30여 년 동안 이어진 테루엘 지역의 시민운동이, 그리고 그 시민운동을 제도정치와 연결하는 스페인의 정치 제도가 배경으로 자리한다. 유권자 그룹은커녕 지역정당의 창당조차 법으로 금지된 한국의 선거제도로는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다.

 

지난9<프레시안>만난 백인식진주같이대표는'지역정당의창당'목표로모인 국내 지역정당 네트워크의경우에도"지역정당 자체가 위법인 지금 상황에 이슈를통한연대활동은이루어지기가 쉽지 않다"평했다.정치의 형식이 정치의 내용적 확장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물론 한국의 입장에선 훌륭한 모델로 보이는 '테루엘은 존재한다'이지만, 이들 또한 의회에서의 힘, 언론노출도 등 여론을 만들어내는 힘이 "상원의원 한 명의 힘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말한다. 현존하는 방법은 하나, 연대의 저변을 더 넓혀내는 일이다. 마틴은 "언젠가는 한국의 지역과도 연대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피켓을 들고 기념 사진을 촬영 중인 '테루엘은 존재한다' 멤버들. 왼쪽부터 베아트리체 마틴(Beatriz Martin) 상원의원, 디에고 로라스 지메노(Diego Loras Gimeno) 의원 보좌관, 아마도 고데드(Amado Goded) 고문. ⓒ프레시안취재팀

한예섭 기자/이상현 기자 | 프레시안

 

 

라임 사건김봉현은 어떻게 무죄를 받았나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회장이 92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흥주점 1호실 술값은 합계 536만원(주대 240만원+추가 요금 296만원)이고, 그중 주대는 술값 190만원(기본 술값 120만원+추가 술값 70만원), 맥주 30만원, 음료 등 20만원이고, 추가 요금은 여종업원 비용 96만원(8×12만원), 새끼 마담과 웨이터 비용 25만원, 보도 아가씨 3명 비용 140만원, 밴드 비용 35만원이다.”

 

○○○(마담)에 따르면, 유흥주점 소속 여종업원의 경우 10분 단위로 1명씩 교체하여 들어가므로 접대 등을 위하여 특별히 여성 접객원을 많이 두고자 하는 경우에는 외부에서 속칭 보도 아가씨라고 부르는 여성을 요청하는데, 비용은 기본 3시간에 40만원이고, 시간 초과 시 시간당 10만원씩 추가된다.”

 

피고인 김봉현(‘라임 사건핵심으로 꼽히는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수사기관에서 피고인 이○○(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으로부터 후배 검사 3명과 함께 갈 것이니 이 사건 유흥주점에 방을 잡아달라는 연락을 받고 ○○○(마담)에게 미리 보도 아가씨를 요청하였다고 진술하였고, () 보도 아가씨 비용은 합계 140만원(3×40만원+2×10만원)이므로, 기본 비용 120만원은 2019.7.18 20:50부터 23:50까지, 추가 비용 20만원은 23:50부터 술자리가 끝난 2019.7.19 00:50경까지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유흥주점을 포함한 소위 텐프로 유흥주점들은 협의회를 구성하여 술값, 직원 월급, 예약 방식 등에 대하여 협의 결정하고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하는 등 텐프로 유흥주점의 술값 계산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일하다.”

 

라임 검사 술접대 사건으로 불린 1(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박영수 판사) 판결문의 일부다. 21쪽에 달하는 해당 판결문에는 접대를 한 김봉현 전 회장과 검사 출신 이○○ 변호사, 접대를 받은 현직 나○○ 검사의 행태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1심은 직무 관련성 없이 1회 향응 금액이 100만원이 넘어야처벌하는 속칭 김영란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술자리 참가자가 더 있었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어” 1인당 향응 가액을 939167원으로 판단했다. 모두 무죄를 받았다.

시사인 김은지 기자

 

낮엔 김학의 수사, 밤엔 김봉현 술접대받은 검사

시사IN취재 결과 라임 술접대 의혹당시 자리에 동석한 유 아무개 검사는 김학의 3차 수사팀 소속으로 확인되었다. 낮에는 김학의 사건을 수사하고 밤에는 술접대를 받은 셈이다.

라임 사태와 관련해 현직 검사들에게 술접대를 했다고 폭로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연합뉴스

 

지난해 1016, 수감 중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20197월 전관 출신 변호사를 통해 현직 검사 3명에게 1000만원 상당의 술접대를 했다라고 폭로했다. 이른바 라임 술접대 의혹이다. 서울남부지검은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지시로 검사 향응수수 사건 수사전담팀을 운영 중인 상태였다.

 

김 전 회장의 폭로로 지난해 12, 검찰은 특수부 검사 출신 이 아무개 변호사, 나 아무개 검사 등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20197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룸살롱에서 총 536만원 상당의 술접대가 이뤄진 것으로 보았다. 검찰은 이 술자리에 동석한 유 아무개 검사, 임 아무개 검사 등은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유 검사와 임 검사는 밤 11시 이전에 귀가했는데 그 시점까지 계산된 금액이 모두 481만원이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원이 모두 5명이었으니, 481만원을 5로 나누면 1인당 접대 금액은 962000원이다. 형사처벌 기준인 100만원에서 38000원 부족하다. 검찰의 이른바 ‘99만원 불기소계산법이다.

 

기소를 면한 유 아무개 검사는 시사IN취재 결과 2019년 당시 김학의 3차 수사팀 소속으로 확인되었다. 대구지방검찰청 소속이었던 유 검사는 20194~83차 수사팀에 파견되어 김학의 전 차관 뇌물수수 의혹의 수사와 재판을 맡았다. 낮에는 윤중천이라는 스폰서와 밀착한 김학의 전 차관의 뇌물 범죄 혐의 수사와 재판에 참여하고 밤에는 강남 룸살롱에서 술접대를 받은 셈이다.

 

함께볼기사

누가, , 어떻게 김학의 사건을 덮었나

성접대 무죄의 이유 검찰의 지각 기소

피의자가 검사라 애써 수사하지 않은 사건

를 읽고 배심원이 되어주세요

 

지난해 1026, 검찰은 유 검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의 휴대전화를 확보할 수 없었다. 유 검사는 압수수색 이틀 전인 1024일 베이비페어 박람회에 갔다가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주장했다. 라임 술접대 의혹 관련자들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거나 바꿨다. 이 아무개 변호사는 1017일 휴대전화를 분실했고, 나 아무개 검사는 1017, 임 아무개 검사는 1025일 휴대전화를 교체했다고 각각 주장했다.

 

택시 이용내역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유 검사는 검찰 조사 때 처음에는 김봉현을 만난 사실이 없고 술접대를 받은 사실도 없다라고 부인했다. 검찰은 술접대가 있었던 718일 유 검사가 심야 시간에 체크카드로 택시를 이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티머니택시 시스템부를 압수수색해 동선을 확인했다. 그 결과 유 검사가 718일 밤 1059분 강남 룸살롱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1118분 관사 부근에서 내린 것을 확인했다. 유 검사는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다. 택시 이용내역이 그렇게 나온 것은 정말 왜 그렇게 나왔는지 모르겠다라고 진술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검사와 스폰서의 관계가 2020년인 지금 우리나라 검찰에서 더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김학의 전 차관의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는 지난해 1028일 유죄를 선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531일 나 아무개, 유 아무개, 임 아무개 검사의 징계 청구를 대검찰청에 요청했다. 714일 현재 징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사인 고제규·김은지 기자

 

죄수와 검사 - 외전 "공무원에 뇌물 줬다" 자백, 검찰은 덮었다

지난 4'죄수 K'가 뉴스타파를 찾았다. 김형준 전 부장검사에 대한 스폰서 의혹 등으로 구속된 게 201695. K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94일 만기 출소했다. 이제 감옥에서 나온 지 딱 한 달이 되자마자 뉴스타파 취재진과 마주앉은 K. K는 뉴스타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밝혔다. 이름 김희석, 그는 신분을 공개한 뒤 당당하게 얘기하고 싶은 진실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회피했다는 한 뇌물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2016년부터 검찰 수사를 받으며 김형준 전 부장검사 말고도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공무원이 또 있다고 수차례 진술했지만, 검찰이 이를 덮었다는 내용이었다. 김형준 전 검사 스폰서 사건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의 전형이었다면, 김 씨는 자신이 자백한 뇌물 사건이 검찰의 자의적인 수사와 기소 관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를 통해 처음으로 신분을 드러낸 죄수 K 김희석 씨. 김 씨는 검찰이 묻은 한 뇌물 사건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출소 한 달만인 지난 4일 뉴스타파를 찾았다.

 

죄수 K 김희석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에 뇌물 줬다"

사건은 7년 전인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희석 씨는 한 게임업체의 실소유주였다. 국내 게임을 해외로 수출하고 소개하는 등 일을 하는 회사였다.

2014년과 2015년은 게임업계엔 '활황기'였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 힘입어 여러 게임산업 지원책이 나왔고,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도 앞다퉈 게임 개발과 지원에 나섰다. 김희석 씨의 회사에도 여러 제안이 왔고, 그중에는 대구 공공기관인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이하 대구산업진흥원)과 경기도청이 있었다. 대구산업진흥원의 팀장급 직원이었던 A 씨와 경기도청의 과장급 공무원 B 씨였다.

 

실제로 김희석 씨가 A·B 씨와 나눈 이메일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게임 사업과 관련한 여러 사안을 논의했다. 특히 A 씨와는 대구 경산시에 있는 경북테크노파크 안에 게임 제작과 수출을 지원하는 '글로벌게임 콘텐츠 허브 센터'를 만들고, 센터 운영을 김희석의 회사가 맡는 방안이 논의됐다. 경기도청 과장이었던 B 씨와는 경기도청 지원으로 게임수출센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얘기했다. 김희석 씨는 "B 씨가 경기콘텐츠진흥원에 얘기해주겠다고 해서 직접 일산 쪽으로 센터 자리까지 보러 다녔다"고 말했다. 이들은 같이 해외 출장도 갔다. 뉴스타파는 김희석 씨와 A·B 씨가 함께 찍은 여러 장의 중국 출장 사진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공공기관과 사업을 진행하는 건 아직 규모가 크지 않던 김희석의 회사로서는 여러 이점이 있었다. 사무실을 무상으로 임대 받고 각종 예산이 지원된다는 점이 유형의 이득이라면, 공공기관과 협업으로 회사 인지도가 올라가 추후 사업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형의 이득이었다. 김희석 씨는 함께 출장을 다니며 친해진 AB 씨가 이런 이득을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가 말하길 '저희가 보냈던 제안서대로 자금, 예산을 잡아서 지원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행비 명목의 금전이 들어가니 그런 부분들을 저보고 좀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B 씨는 그 당시에 경기도 전체의 투자에 관련된 업무를 보는 OOOO과의 과장이었고요. 힘이 있는 사람이었죠. 김희석 / 죄수 K

김희석 씨가 뇌물을 줬다고 지목한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왼쪽)와 경기도청 공무원 B.

"'허위 시나리오' 만들어 뇌물 사실 은폐했다

 

하지만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에게 섣불리 돈을 건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이미 지난 2010년 국세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다가 적발된 적이 있는 김희석 씨는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뇌물을 줘야 했지만, 동시에 이후 뇌물 의혹을 받게 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놔야 했다. 이를 위해 김 씨는 AB 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고 한다. 바로 김 씨와 A·B 씨 사이에 오래 전부터 투자금을 명목으로 한 사전 금전거래 내역이 있었던 것처럼 꾸민 것이다. 김 씨와 A·B 씨 사이에 실제로 돈이 오가더라도 뇌물이 아닌 투자금 입금·상환 목적의 거래인 것으로 보이려는 의도였다. 김 씨는 이를 '허위 시나리오'라고 불렀다.

김희석 씨는 "당시 내가 주로 중국에서 거래하던 레노버 계열사 중 하OOO이란 회사가 있었는데, 그 회사가 중국 내에 상장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장을 추진할 때 비공식적으로 주식을 조금 매입해서 하면 이득이 남는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AB 씨에게 먼저 '나한테 차명계좌로 송금해주면 일정 부분 이자를 주고, 그 다음 한두 달 내로 원금을 반환하겠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금전거래를 만들어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서로 입을 맞출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내자'고 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즉 뇌물이지만, 원래부터 금전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 내가 구상을 해서 그들한테 제안을 한 것이다"고 부연했다.

 

실제 김희석 씨의 차명계좌 내역을 보면, 2015년 초 대구 공공기관 직원 A 씨가 아내의 명의로 수천만 원을 차례로 입금한다. 같은 시기 경기도 공무원 B 씨는 본인과 아내, 모친 명의로 수천만 원을 김 씨 차명계좌로 넣는다. 그리고 이후 김 씨는 차례로 웃돈을 언져 돈을 다시 되돌려 보낸다. 김 씨가 말한 이른바 '허위 시나리오' 대로 주식 투자 명목의 투자금 입금·상환이 있었던 것처럼 계좌 거래 내역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AB 씨한테 제가 먼저 차입 형태로 (돈을) 받았고요. 그다음에 바로 한두 달 내로 소정의 이자와 원금을 돌려줘 버렸고요. 그 뒤부터 이제 약 한 6개월에서 8개월 기간 안에그들이 필요한 돈을 얘기할 때마다 제가 돈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보내줬었죠. 그러면서 또 히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주식 매매가 잘 됐습니다.' 이런 허위의 문자나 이메일을 몇 차례 보내놓고 '증거를 갖고 있자' 이런 형태로 해서 좀 꾸몄었습니다. 김희석 / 죄수 K

김희석 씨의 차명계좌 거래 내역에 따르면, A·B 씨가 먼저 김 씨에게 돈을 입금하고, 이후 김 씨가 이들에게 돈을 돌려보내는 구조였다. 김 씨가 말한 '허위 시나리오' 그대로였다.

 

이렇게 김희석 씨는 A·B 씨에게 계좌로 돈을 보내는 한편, 현금으로도 뇌물을 줬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공무원들과 금전 거래에서는 송금보다는 현금으로 뇌물이 공여되는 게 통상적이다. B 씨에게는 한 8천만 원 정도 준 것으로 기억하고, A 씨에게는 한 7천만 원, 7천만 원에서 한 9천만 원이다"고 말했다. 다만 현금으로 준 뇌물에 대해선 현금 인출 내역 외의 물적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일산 술집에서 수백만 원 향응 제공"... 법인카드 기록과 사진

김희석 씨는 대구산업진흥원 직원 A , 경기도청 공무원 B 씨에게 향응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기억은 매우 자세했다. B 씨에게는 2015년 당시 자신이 거주하던 경기도 일산 근처의 '카페'(별도의 독립 룸 없이 운영되는 유흥주점의 일종)에게 술 접대를 했다고 설명했다. B 씨와 함께 갔다는 카페의 상호명도 또렷이 기억했다.

 

김 씨는 "최소한 다섯 차례 정도 갔다. 양주를 먹었고, 여성 접대부 앉혀서 같이 술을 먹었던 것은 맞다. 최소한 한 번 먹을 때마다 아무리 적게 먹어도 100만 원에서 120만 원이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희석 씨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에 따르면, 김 씨가 B 씨와 금전거래를 하던 2015년 초중순 해당 술집에서 여러차례 술값이 결제된 기록이 있었다. 술값은 모두 수백만 원에 달했다.

김희석 씨가 B 씨에게 향응을 제공했다고 지목한 경기도 일산의 술집. 현재는 다른 곳으로 상호가 바뀌어 있었다.

 

김희석 씨는 일산에서 A 씨에게도 술 접대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초 A 씨가 서울 출장을 왔을 때 왔다고 한다. 장소는 B 씨를 접대했다는 일산 술집의 바로 옆 다른 술집이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 저장돼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총 두 장으로 모두 대구산업진흥원 직원 A 씨가 한 여성과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한 사진에서 둘은 몸을 맞대고 있기도 했다. 사진의 촬영일자는 201527일이었고, 촬영 장소는 일산의 한 부대찌개집으로 확인됐다.

대구산업진흥원 직원 A씨가 여성접대부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이 찍힌 시간은 새벽 3시쯤이었다.

 

김희석 씨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에 따르면, 김 씨는 이 부대찌개집에서 201527일 새벽 3시쯤 카드 결제를 했다. 그리고 바로 1시간 전인 27일 새벽 2시 일산의 한 유흥주점에서 37만 원을 카드 결제했다. 대구산업진흥원 직원 A 씨와 함께 이 유흥주점에 갔다가 함께 부대찌개 집에 온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다. 김 씨는 212일 이 유흥주점 사장에게 150만 원을 따로 송금한 것까지 합하면, 187만 원을 이날 술값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술집에서 먼저 1차 향응 접대를 하고, (B 씨가) 아가씨하고 같이 나가고 싶다고 해서. 아가씨랑 같이 데리고 나와서 같이 와서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김희석 씨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가 일산의 부대찌개집에서 사진이 찍히기 직전 한 술집에서 카드 결제를 한 기록이 있다.

 

대구 공공기관 직원과 경기도청 공무원에게 뇌물과 향응을 제공했다는 김희석 씨의 사업은 2016년 초까지 계속 순항했다. 김 씨의 회사는 바랐던 대로 대구경북테크노파크와 계약을 체결하며 게임센터를 차렸고, 억대의 운영 자금까지 지원받았다. 이 사실은 당시 여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 씨에 따르면, 경기도청과도 게임수출센터 건 계약 직전까지 일이 진행됐다. 하지만 김형준 전 부장검사 스폰서 사건이 터지며 모든 사업이 무산됐다고 한다. 김 씨는 "내가 검찰 수사의 타깃이 되지 않고, 김형준 사건이 아니었다면 다 잘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A·B 씨 뇌물 수수 부인"이미 2018년 검찰 조사서 소명 끝내"

현행법상 뇌물 수수액이 3천만 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앞서 말한대로 김희석 씨는 AB 씨에게 2015년 최소 7천만 원에서 최대 9천만 원까지 줬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공소시효는 2025년까지다.

 

뉴스타파는 현재 대구산업진흥원을 떠나 한 사기업에 재직 중인 A , 여전히 경기도청에 재직 중인 B 씨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A 씨는 김희석 씨와 금전 거래를 한 건 맞고, 접대 사실도 인정했다. 하지만 뇌물을 받은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금전 거래는 단순 투자 목적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A 씨는 "김희석 씨가 중국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면 돈을 불릴 수 있다고 해서 통장으로 돈을 주고, 현금으로도 돈을 줬다. 그 뒤에 김 씨가 '계좌가 몇 개 더 있으니 주식을 더 살 수 있다'고 해서 친구한테 돈을 받아서 그 돈도 김희석 씨 통장으로 넣었다. 투자금을 입금할 때는 내 이름으로 하면 문제가 생기니 아내 계좌로 하라고 김희석 씨가 말했다. 그렇게 해서 5~6천만 원을 보냈다가 다시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와 술집은 간 적 많다. 서울에 가면 김 씨가 항상 술을 산다고 했다. 1차는 내가 내고, 2차는 김 씨가 자기가 잘 아는 곳이 있다며 데려가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B 씨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금전 거래와 접대는 있었지만, 뇌물은 절대 없었다는 얘기다. B 씨는 "내가 투자했던 돈을 일부 돌려 받았다. 사실 나는 사기성으로 당한 것이다. 어느 바보가 뇌물을 자기 명의 계좌로 받고 하겠냐. 술은 나도 샀다. 먹은 적은 있다"고 말했다.

 

A·B 씨는 또 이미 2018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한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한 소명도 마쳤다고 말했다. A 씨는 "제가 그 당시에 김희석 씨와 대화한 녹음파일이 있었는데, 그것도 검찰에 들려줬다. 투자금 관련해 내가 계속 돈을 돌려달라고 한 거다. 친구 돈도 걸려있었기 때문에 전화도 몇십 통 걸었다. 김 씨에게도 돈을 돌려받아서 친구한테 넘겨준 통장 이력도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2018년 검찰에서 잠깐 와서 확인 좀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검찰청에 가서 소명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번 참고인 조사를 받은 후 다시 검찰로부터 연락이 온 적은 없다고 부연했다.

전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와 경기도청 공무원 B 씨는 이미 2018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한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뇌물 수수 의혹을 모두 소명했다고 밝혔다.

 

검찰, 뇌물 공여자 조사 없이 사건 종결"굉장히 이례적인 수사 방식"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검찰은 2018A·B 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면서 김희석 씨는 불러 조사한 적이 없다. 김 씨는 이미 2년 전인 2016년 검찰 조사를 받으며 A·B 씨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했다. 즉 검찰은 뇌물을 줬다고 자백한 '뇌물 공여 피의자' 김희석 씨는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뇌물 수수 의혹을 받는 A·B 씨의 해명만 들은 게 전부였다. 대질 신문도 없었다. 취재 결과, AB 씨는 뇌물 수수 의혹과 관련해 입건도 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사 출신인 김정범 변호사는 '일반적인 수사 방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뇌물을 줬다고 하는 사람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면 그 부분에 대해 전부 다 조사를 해야 한다. 뇌물 수수 의혹을 받는 사람은 '돈을 받은 적 없다' 혹은 '돈을 받았지만 뇌물은 아니다'라고 할 것인데, 이러면 당연히 대질 신문도 할 수밖에 없다. 또 뇌물 수수 의혹을 받는다는 사람의 가족 등 주변 계좌까지 다 보는 게 일반적인 뇌물 수사다. 그런데도 뇌물 수수 의혹 당사자를 한 번 불러 참고인 조사하고 혐의 없음 처리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고 말했다.

김희석 씨는 검찰이 자신이 자백한 '공무원 뇌물 사건'을 한 번 덮은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서울서부지검에서 덮었고, 대검찰청에서도 덮었다. 계속 수사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검찰 조사에서 그 증거를 남기기도 했다. 검찰은 제 자백을 토대로 수사보고를 만들고도 수사하지 않고, 계속 묻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죄수와 검사 외전> 2편에서 검찰이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김희석 씨의 공무원 뇌물 사건을 덮고 묻었는지 보도한다.

 

죄수와 검사 - 외전 검찰, 조직보호 위해 공무원 뇌물 덮었나

앞선 기사에서 뉴스타파는 죄수 K, 즉 김희석 씨가 검찰에 자백했다는 공무원 뇌물 사건의 실체를 보도했다. 무엇보다 우선 뇌물 공여자의 자백이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상당했다. 계좌를 통해 돈이 오간 흔적이 있고, 접대와 향응의 증거도 있었다. 무엇보다 검찰은 김희석 씨의 자백이 신빙성이 있다며 계좌 추적을 통해 수사보고서까지 만들어 상부에 보고했다. 물론 뇌물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뇌물이 아니라 투자와 관련된 금전 거래였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어쨌든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하는 사건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검찰은 여러 차례에 걸친 김희석 씨의 자백과 수사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 김 씨의 최초 자백이 있은 지 거의 2년이 지난 뒤에야 당사자들을 불러 참고인 조사만 했을 뿐 아예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뇌물 사건 수사에 필수적인 뇌물 공여자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김희석 씨의 자백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은폐됐는지를 다룬다.

 

첫번째 은폐, 20167

20164월 게임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김희석 씨는 동업자였던 한 모 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였다. 횡령 혐의를 수사할 때 수사기관은 당연히 횡령한 돈의 사용처를 규명한다. 사용처에 따라 횡령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희석 씨의 경우도 그랬다.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서부지검 박정의 검사는, 201676일 이루어진 2차 피의자 신문에서 이렇게 물었다.

박정의 검사 : 계좌의 거래 내역을 보면, 특정 개인 B , 문 모 씨, 조 모 씨 등에게 이체된 내역이 많이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박정의 검사 : 계좌의 거래 내역을 보면 특정 개인 B , 문 모 씨, 조 모 씨 등에게 이체된 내역이 많이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김희석 : B 씨는 작년에 경기도청 과장으로 근무했던 대학 선배입니다. B 씨에게 지급한 돈은 2015년경 경기도가 14억 원을 지원하며 모바일 게임센터 설립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B 씨가 저의 회사가 프로젝트 사업자로 선정되게 도와주겠다고 하여서 선급금으로 지급한 돈입니다.

박정의 검사 : 선급금이란 무슨 뜻인가요.

김희석 : 계약 체결에 대한 선급금이란 뜻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4천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박정의 검사 : 그럼 경기도와 위 계약을 체결하였나요.

김희석 : 아니요,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선급금은 현재까지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김희석 뇌물 사건 2차 피의자신문조서 중 (2016.7.6)

말은 '선급금'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뇌물을 줬다는 자백이다. 공무원이 민간사업자에게 프로젝트에 선정되게 해주겠다며 '선급금'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검찰이 처음으로 공무원 뇌물 사건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김희석 씨는 또 다른 뇌물 사건, 즉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의 A씨에게 뇌물을 준 사실도 털어놨다. 역시 2016762차 피의자 신문에서다.

박정의 검사 : 계좌 이체를 한 위 8개 계좌 중 한 명이 대구은행 C 씨가 실제 명의자인데, 누구인가요.

김희석 : C 씨는 당시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의 와이프입니다. 20155월경 저의 회사가 경북테크노파크와 게임센터 구축 MOU 협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위 협약이 확정되면 2016년 경산시 등에서 44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A 씨가 '인맥이 많으니 44억 원을 지원 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진행비를 달라고 해서 돈을 줬습니다.

박정의 검사 : 진행비 명목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 말로는 에산 지원을 받으려면 관련 부서나 유력 인사에게 힘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경산시 시장, 부시장을 만나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김희석 뇌물 사건 2차 피의자신문조서 중 (2016.7.6.)

 

이번에도 마찬가지, 표현은 '진행비'지만 뇌물을 줬다는 자백이었다. 공공기관의 직원이 소속 공공기관의 사업과 관련해 민간업자에게 "인맥을 써서 예산을 받게 해줄테니 돈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희석 씨의 2차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201676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914호 박정의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나온다. 이날 김 씨는 박정의 검사에게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와 경기도청 공무원 B 씨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했다.

 

그렇다면 김희석 씨는 대체 왜 자신의 범죄 혐의를 순순히 자백한 것일까.

제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게 불거질 거면 한 번에 다 같이 터는 게 법률적으로도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공무원들한테 줬던 것들을 한 번에 털어서 한 번에 기소되고, 그래야 제 양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취지로, 어차피 계좌를 까면 다 나오게 돼 있기 때문에 제가 먼저 선제적으로 AB 씨한테 한 금전 지급에 대해 진술을 하게 됐습니다.

 

김희석 / 죄수 K

 

횡령 수사에서는 횡령 자금 사용처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어차피 누구에게 돈이 갔는지는 들킬 수밖에 없다. 김희석 씨로서는 기왕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니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자백하고, 재판을 받는 게 양형상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한꺼번에 털지 못할 경우, 검찰이 뒤늦게 뇌물 공여 혐의를 수사하면 이미 형을 살고 있는 상태에서 추가 기소를 당해 형기가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검사 입장에서도 공무원 뇌물 수수 사건은 주목도가 높아 언론에 보도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인사상의 가점도 높다. 더군다나 이미 뇌물 공여자의 자백이 나왔고, 계좌 추적을 통해 돈이 흘러간 증거도 확보한 상태여서 수사의 성공 가능성도 크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던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정의 검사는 더 이상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해 묻지 않았다. 위와 같은 문답이 있었던 201676일의 2차 신문 이후 이루어진 두 차례의 신문, 729일과 824일 신문조서를 뉴스타파가 확인한 결과, 관련 내용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형준 노출 막기 위해 안간힘 썼던 검찰

그 이유로 짐작되는 건 바로 김희석 씨의 사건에 김형준 부장 검사가 얽혀있었다는 점이다.

김희석 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동업자의 고소장에는 김형준 부장 검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164월 고소인 측은 김희석 씨가 관리하던 비밀 장부를 근거로, 그가 횡령한 돈 가운데 1,500만 원이 김형준 검사에게 건너갔다고 주장했다.

 

수사를 맡았던 마포경찰서는 이런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김희석 씨와 회사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사건을 지휘하고 있었던 서부지검은 경찰의 영장 신청을 반려했다. "고소인 조사와 피고소인 조사까지 마친 뒤 영장을 신청하라"는 명분이었다. 물적 증거를 압수한 뒤 피고소인을 불러 추궁을 하는 일반적인 수사기법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경찰이 검찰의 지휘대로 피고소인을 조사한 뒤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또다시 영장을 반려하며 아예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라고 지휘했다. 당시 검찰은 이미 김형준 검사의 연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부지검이 대검에 김형준 부장검사의 비위첩보를 보고한 게 2016518,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라고 지시한 게 519일이다.

 

김희석 씨의 횡령 사건 수사를 공무원 뇌물 사건으로 키우다보면 언제든 김형준 부장검사의 이름이 튀어나올 수 있었다. 공무원에게 건넸다고 김희석 씨가 자백한 뇌물이든, 김형준 부장 검사에게 건너간 돈이든 모두 똑같이 김 씨가 횡령한 회사 자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김형준 부장검사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이 뇌물 공여자인 김 씨가 자백한 공무원 뇌물 사건까지 덮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 경기도청 공무원 B , 김형준 전 검사, 김희석 씨. 2016년 김 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검찰은 어떻게든 김형준 전 검사의 비위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기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에 대한 검찰 조사가 단순 횡령이 아닌 공무원 뇌물 사건으로 번진다면, 김형준 전 검사의 존재도 언제든 노출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은폐 : 20169

201695일 아침, 김형준 검사 스폰서 사건이 한겨레 신문 1면을 장식했다. 검찰이 그렇게 노출을 막아보려고 했던 김형준 검사의 뇌물 수수 사실이 언론에 폭로된 것이다. 이를 한겨레 신문에 제보한 것은 김희석 씨였다. 당초 기대와 달리 김형준 검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데다 김형준 검사가 자신을 '팔아넘기려' 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김희석 씨는 검사들에게 김형준 검사에게 뇌물을 줬다고 여러 차례 진술했지만 검찰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검찰은 기왕 폭로가 이루어졌으니 '김형준의 노출을 막아야 한다'는 부담을 털고 김희석이 자백한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을까.

 

20169월 김희석 씨의 횡령 사건은 서울서부지검 권찬혁 검사에게 재배당된 상태였다. 김형준 검사가 전임 박정의 검사와 그 부장검사였던 김현선 검사를 접촉한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권찬혁 검사도 이 공무원 뇌물 사건을 수사하지는 않았다.

 

뉴스타파는 권찬혁 검사가 작성한 김희석 씨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모두 확인해봤지만 어디에도 대구 공공기관 직원 A 씨나 경기도 공무원 B 씨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신문조서를 보면 권찬혁 검사는 횡령금의 다른 사용처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물어보면서도 유독 이 두 사람에게 간 돈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권찬혁 검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휘부들하고 좀 상의를 좀 해봐야지만 내가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너무너무 하고 싶다. 이런 얘기까지 했었습니다. 권찬혁 검사가 '하지만 피의자 신문조서에서는 남기지 않겠다.' 왜냐하면 지휘부의 지시나 이런 것들을 정확히 명확하게 받아야지만 조사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김희석 / 죄수 K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피의자 신문조서에 넣어 버리면 공식 기록이 된다.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될 위험도 있다. 권찬혁 검사는 대신 내부용 수사보고서를 만들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서울서부지검의 수사보고서를 보면, 권찬혁 검사는 대구 공공기관 직원 A씨와 경기도 공무원 B 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김희석 씨의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수사보고서에는 또 계좌 압수수색을 통해 A 씨의 아내와 B 씨에게 수천만 원의 돈이 흘러간 사실도 첨부되어 있다. 이렇게 신빙성이 있다는 취지의 수사보고서를 만들어 윗선에 보고까지 했으면서 권찬혁 검사는 굳이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관련 내용을 넣지 않은 것이다. 아직 '지휘부의 지시'를 받지 못해서라는 게 권찬혁 검사의 얘기였다고 한다.

 

2016922일 작성된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권찬혁 검사실의 수사보고서. 김희석 씨의 뇌물 공여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적혀 있다.

 

권찬혁 검사가 말한 '지휘부의 지시'가 어떤 방향이었는지, 김희석 씨는 곧 알게 된다.

201695일 구속 이후 김희석 씨는 서울서부지검과 대검찰청을 오가며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자신의 횡령 사건은 서부지검에서, 김형준 부장검사와 엮인 뇌물 사건은 대검 특별감찰팀에서 수사했다. 김희석 씨는 대검 특별감찰팀의 윤병준 검사에게도 공무원 뇌물 사건을 털어놨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제가 '같이 털자 어차피 뇌물 공여니까 내가 형준이한테만 뇌물을 준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사람들한테만 줬으니 다 털고 싶다'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윤병준 검사가 얘기하기엔 '지휘부에서 원치 않는다, 일단 김형준과 김희석 간의 친구 간의 일탈로 이렇게 프레임을 짜서 이번 건은 수사를 해야 된다'라고 명확히 들었습니다. 지휘부에서 원치 않는다고. 왜냐하면 그 당시에 뇌물 관련 사건에 등장하는 검사가 10여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전부 다 대검찰청에서는 감찰을 제대로 안 하고 김형준과 저와의, 삼십 년 친구 간의 일탈로만 마무리 짓고 싶었던 것으로 저는 생각을 합니다.

김희석 / 죄수 K

 

'가족 인질극'에 수사 불원 자필진술서까지 썼다

서울 서부지검은 결국 김희석 씨에게 '수사를 원치 않는다'는 취지의 자필 진술서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권찬혁 검사가 저를 불러서 '이 부분은 지금 대검에서 수사를 안 하는 것으로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 수사를 지금 하지 않겠다. 그러니 김희석 씨가 협조해서 지금 현재 그 뇌물 사건, 김형준과의 뇌물 사건 재판 중이기 때문에 이 수사는 추후에 하는 것을 원한다고 자필을 한 장 써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간단하게 한 3줄 자필로 써가지고 권찬혁 검사한테 전달한 사실이 있습니다.김희석 / 죄수 K

 

스스로 뇌물 사건을 자백했지만 오히려 검찰의 사건 은폐에 협조해야 했던 김희석 씨,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자필 진술서까지 쓸 만큼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했을까. 김희석 씨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로부터 가족과 지인을 보호해야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그 수사보고서를 보시면 가족이 나오죠, 22명 정도였나요. 아내, 처남, 친동생 그 다음에 제 친구, 지인들한테 제가 비자금을 만들어서 송금해 준 내역들이 다 나오지 않습니까. 그걸 바꿔 말하면 검찰은 언제든지 이들을 공범으로 기소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이 계좌 내역 있는 사람들을 다 같이 기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협조하면 협조하면 김희석 씨 혼자 단독으로 기소 해줄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제가 거기서 무너져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에 저를 단독 기소해 주십시오.' 김희석 / 죄수 K

 

가족을 인질로 삼아 사건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검찰의 수법은 <죄수와 검사> 두 번째 시즌에서 보도한 '한명숙 위증 교사 사건'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지난 4일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희석 씨. 김 씨는 수차례 검찰에 공무원 뇌물 사건을 자백했지만,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지금 수사를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자필 진술서까지 강제로 써야 했다고 증언했다.

 

세 번째 은폐 : 201710

횡령 혐의로 6년 형, 김형준 검사에 대한 뇌물 공여 혐의로 벌금 천만 원 형을 선고받은 김희석 씨는 감옥에 갇혀 있던 201710월 대검찰청으로 출정을 나가게 됐다. 앞서 김형준 검사 사건을 조사했던 대검 특별감찰팀의 윤병준 검사실이었다. 이때 김희석은 다시 한 번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수사를 부탁했다.

 

이에 대해 윤병준 검사는 "내가 2014년 수원지방검찰청 특수부에 있었으니 특수부 검사들한테 얘기를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주요 수사 대상 중 하나인 경기도청 공무원 B 씨는 수원지검 관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윤병준 검사는 김희석 씨가 보는 앞에서 수원지검 특수부 후배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기본적인 수사가 다 돼 있고 계좌 압수수색까지 다 했으니 어느 선까지 수사를 할 것 인지만 정하면 된다. 자료를 보내줄 테니 한번 진행해봐라"라는 게 통화 내용이었다는 게 김희석 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개월 뒤 다시 출정을 나갔을 때 윤병준 검사는 김희석 씨에게 "수원지검 측에서 부담이 돼서 안 된단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뭐가 부담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김희석 씨는 몰라도 된다"라고 답변했다는 게 김희석 씨의 주장이다.

 

어디까지나 일방적 주장일 뿐이지만, 이같은 정황은 20202월 김희석 씨가 윤병준 검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뒷받침된다. 편지에는 "나는 제대로 수사할 거라 믿었어요. 윤 검사도 약속했고, 그랬기에 특경죄도 법정에서 자백하고 끝냈지요. 윤 검사님, 지금 윤 검사님의 양심은 어디를 항햐고 있나요"라고 적혀있다.

 

검사들의 묵묵부답

뉴스타파는 김희석 씨가 제보한 공무원 뇌물 사건을 덮은 세 명의 검사에게 모두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서울서부지검에서 처음 김희석 씨의 횡령 사건을 수사했던 박정의 검사는 현재 울산지검 소속으로 미국에 파견을 가 있다. 박 검사는 "수사 도중 김희석 사건이 다른 검사(권찬혁)에게 재배당돼 이후 사건 진행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현재 전주지방검찰청 형사3부장인 권찬혁 검사 역시 "당시 원칙대로 수사하여 처리했고 이후 파견으로 청을 옮겼기 때문에 진행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현재 대검찰청 수사지원과장으로 근무 중인 윤병준 검사는 대검 대변인실을 통해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만을 밝혀왔다. 재차 입장을 묻기 위해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김희석 씨의 뇌물 자백을 덮었다는 세 명의 검사에게 연락했지만, 제대로 된 입장은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네 번째 은폐 : 20184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죄수와 검사> 세 번째 시즌에서 보도한 것처럼 김희석 씨는 20184월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 소속이었던 김영일 검사실을 드나들던 브로커 죄수 이 모 씨를 통해 다시 한 번 공무원 뇌물 사건을 제보했다.

 

2017년도 12월 경에 제가 서울구치소에 있는데 10년 전에 인천지방검찰청에서 만났던 브로커 죄수 이00이 저한테 접근을 해서 자기가 김영일 검사실 자주 왔다 갔다 하는데 '사건이 좀 필요하다, 사건을 좀 제보해 달라. 그러면 내가 사건 제보 값으로 1억 원을 줄게.' 이렇게 저한테 제안을 했었습니다.

김희석 / 죄수 K

김희석 씨는 브로커 죄수 이 모 씨가 붙여준 접견 변호사에게 2016년 서울서부지검이 작성한 수사보고서의 일부를 넘기고 6천만 원을 받았다. 뉴스타파는 <죄수와 검사> 세 번째 시즌에서 실제로 돈이 오간 입출금 기록을 공개한 바 있다.

 

이후 김 씨는 사건을 제보받은 김영일 검사가 매우 흡족해 한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중간에서 '거간꾼' 노릇을 한 브로커 죄수 이 씨는 그 대가로 김영일 검사로부터 출정과 전화 통화 등의 편의를 제공받았다. 이른바 '삼각 거래'. (김희석 씨는 자신이 거래에 응해 돈을 받은 것은 죄수와 검사 사이에 벌어진 사건 거래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자수와 함께 고소를 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김영일 검사 역시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김영일 검사는 뉴스타파 질의에 대해 브로커 죄수 이 씨를 통해 사건 제보를 받은 건 맞지만 수사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받은 수사보고서 한 장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계좌 추적 내역, 돈을 받은 당사자들의 이름이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페이지를 넘겼다는 김희석 씨의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2018년 김희석 씨로부터 뇌물 사건을 제보받았다는 김영일 검사도 수사를 하진 않았다. 김영일 검사는 "제보를 받은 건 맞지만 수사 가치가 없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검찰의 선택적 수사... 이번에는 경찰에 자수

정리해보면 김희석 씨는 모두 네 번에 걸쳐 스스로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했지만 검찰은 이를 수사하지 않았다. 김희석 씨가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지목한 대구 공공기관 직원 A 씨와 경기도 공무원 B 씨는 2018년 한 차례 참고인 조사만 받았을 뿐 입건된 적조차 없다. 뇌물 공여자인 김희석 씨에 대한 피의자 신문 조사나 대질 신문도 전혀 없었다.

서울 서부지검은 뉴스타파 질의에 대해 "뇌물 공여자인 김희석 씨를 20174월 수사과, 6월 권찬혁 검사실에 소환해 조사했지만 김희석 씨 본인이 진술을 거부했으며, 이후 관련자 진술과 계좌거래 내역 등 관련 물적 증거를 추가로 확인하는 등 종합적으로 검토해 혐의없음 처분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희석 씨는 "20174월 소환 당시에 검찰은 전혀 수사 의지가 없어 출정 조사도 10분 만에 끝냈으며, 6월 소환 당시에도 수사를 원치 않는다는 자필 진술서만을 요구했다"며 검찰의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뉴스타파와 통화한 한 현직 검사는 "공무원 뇌물 사건을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장기 미제 사건을 빨리 털어버리기 위해 형식적인 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죄수와 검사 - 외전> 1편에서 보도한 것처럼 검사 출신인 김정범 변호사도 "김희석 씨의 뇌물 공여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면, 당연히 피의자 조사나 대질 신문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참고인 조사만 하고 끝냈다는 것은 일반적인 뇌물 사건이라면 허용되지 않는 수사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서 다른 검사가 조사하지 않은 뇌물 사건을 또 다시 제보받았음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수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고 범죄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스스로 자수한 '삼각 거래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김희석 씨는 또 다시 검찰에 공무원 뇌물 사건을 진술했고 이를 빨리 수사해달라는 변호인 의견서까지 제출했지만 검찰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김희석 씨는 뉴스타파 보도 직후, 검찰이 네 차례 은폐했던 공무원 뇌물 사건을 이번에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다시 자수할 예정이다

뉴스타파 심인보 홍주환

 

 

조국 아들 대리시험 증거에 소설 쓴 기레기들믿지 않는 댓글들

조국 부부 대리시험 검찰 증거 공개 아빠 준비됐다. 문제 보내주면 나는 아래에서 위로

언론보도 내용 부정 언론개혁 필요댓글도조국 측 아들 학교폭력 피해자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재학중이던 아들 조원씨 시험을 대신 풀어준 구체적 정황증거가 공개됐다. 이런 가운데 관련 기사에는 해당 기자를 비난하거나 이를 소설로 치부하는 의견이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전 장관 측은 아들 조씨가 학교폭력을 당해 케어 필요성이 있어서 대리시험에 응했다는 취지의 엉뚱한 내용으로 해명한 바 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 심리로 열린 아들 조씨 입시비리와 대리시험 관련 조 전 장관 부부 재판에선 검찰의 증거조사 내용이 공개됐다. 아들 조씨가 수강 중이던 과목의 온라인 시험 문제를 사진으로 찍어 가족 단체 채팅방에 올리면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가 같이 풀어준 것이다.

3일자 채널A 보도화면 갈무리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2022.09.04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689

 

(비회원) 2022-09-04 11:35:45 IP삭제

BEST 정확하게 기사나 쓰고 비판하세요~ 시험 자체가 오픈 북에 온라인 협의 가능했다는 말을 왜 뺐는지, 그리고 한 가지만 물어 보죠. 기자님 부모는 대학 갈때, 그 어떤 도움도 안줬습니까? 혼자 독학해서 자기 돈으로 학비 내고 대학 갔어요? 사건이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부모의 재력이나 학력이 자식 입시에 절대적 도움이 된다는 한국의 추잡한 현실부터 지적하시죠. 흙수저로 태어난 아이는 더 이상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는 이 현실!!

 

제대로 된 기자라면! 지금 쯤 해야 하는 건, 조국 사태를 통해서 본 한국 사회의 민낯을 취재하고 어떻게 개혁해 나갈 지를 기사로 적으세요! 기자란 분들이 할 줄 하는 게 철 지난 마녀 사냥 밖에 없어. 정말 기자들 수준 더러워서 못 봐주겠습니다.

답글 12 186 113

 

(비회원) 2022-09-04 12:27:35 IP삭제

BEST 믿지 않기 때문이라기 보단 너희 기레기들의 기계적 중립도 유지 못하는 쓰레기 성향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야. 한동훈 딸내미 나경원 아들 내미 딸내미에 대해서도 그렇게 열심히 기사를 썼어봐.

답글 2 145 46

 

(비회원) 2022-09-04 11:13:21 IP삭제

BEST 맞지 몇년전에도 나왔던 이야기였는데 그때 잠잠하니까 다시 끌고오네 .. 완전한 오픈북이고 온라인 협의도 가능한거였으니 상관이 없는 문제였는데 어차피 기소못함 이거 근데 지금 시점에 이게 뭐가중요함? 다른 더 중요한게 넘치고 넘쳤는데 기소도 못하는걸로 기스내기 열심히 하는 행동이 너무 이기적임 이렇게 할꺼면 민간인 신분으로 하던가 국정 운영에 힘써야 할 시점에 이런거에나 짖고 있으니 그저 세금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나라 진짜 망조구나 하는 생각도 듬 그냥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가 슬프다

답글 3 130 67

 

S (비회원) 2022-10-04 12:07:27 IP삭제

장슬기.

930, 이에 관한 변호인 측 서증조사가 있었다.

뭐하냐?

당일 법정에 출석해 재판 방청하며 취재는 당연히 안 했을 거고,

그러면 방청한 이들에 전화라도 돌려야지? 전화, 안 돌리냐?

무책임한 받아쓰기와 짜깁기, 몰염치적 모른 척, 계속 할 거냐?

 

맹자가 일찌기 말했건만,

無羞惡之心 非人也이라고.

非人也!

답글 작성 1 0

lal○○○ (비회원) 2022-09-06 14:35:03 IP삭제

재미 교민들 미국 시험 시스템에 무지한 검찰의 망상

 

(기사 원문)

http://www.thebriefing.co.kr/news/newsview.php?ncode=179579087015030&fbclid=IwAR0Llud6hNaDv2yi_oH7RP6KHKg0HSBARzJGXFfMdUkQSmaoR4-DJyPiu_8

 

기소 조국 아들 시험은 격주 5회 온라인 퀴즈’...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는 단순 과제 평가

재미 교민들 미국 시험 시스템에 무지한 검찰의 망상

노트만 참고해도 충분히 풀 수 있는 과제평가형 시험

수업계획서 상 평가 배점도 5회 퀴즈 통털어서 10%

교민들, 조지워싱턴대 학장 등에 배경 설명 및 문의 메일

 

ratemyprofessors.com

 

(* 조국 전 장관 변호인은 6일 밤 본 기사의 내용이 사실과 일치한다고 알려왔습니다. 담당교수명은 Geoffrey McDonald 교수이며 수업계획서에 기재된 평가 항목이 기사와 같고, 5회의 격주 퀴즈의 배점이 10%로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조지워싱턴대학의 성적사정업무를 방해했다고 혐의에 포함시킨 온라인시험은 2주에 한 번씩 5회 실시하는 온라인 퀴즈(bi-weekly online quizzes)로 시험이라기보다 과제 평가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국 전 장관의 아들 조 모군이 수학한 조지워싱턴대학의 교육과정에 대해 잘 아는 다수의 미국 교민은 여러 경로로 확인한 결과 조 군이 2016년에 수강한 Global Perspectives on Democracy는 시간 강사인 Geoffrey McDonald 교수가 진행했던 수업으로 이 수업의 평가는 2개의 5장 분량 에세이, 두 개의 250자 분량 아티클 코멘트(article commentaries), 출석, 5번의 격주 온라인 퀴즈, 그리고 재택 기말시험(take home final)로 이루어져 있었다보통 5번의 격주 온라인 퀴즈 전체의 배점은 10%를 넘지 않는다고 밝혔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이 혐의를 제기한 시험은 20161031일과 125일에 치러졌다는 온라인 시험은 두 개 모두 객관식 10개 문항의 시험으로 Global Perspectives on Democracy 수업평가계획에 있는 격주 온라인 퀴즈에 해당한다.

 

 

이들은 퀴즈는 학생이 수업을 잘 따라오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강의 노트만 봐도 충분히 답할 수 있는 쉬운 내용이라 검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부모 뿐 아니라 누구에게 특별히 물어보고 할 필요 자체가 없는 평가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퀴즈를 보는데 007작전하듯 부모가 시간을 맞춰 기다리고 있다가 문제를 보내면 문항을 분담해 답안을 작성해 다시 보내는 식으로 했다는 것은 미국 대학의 시험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검찰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평가 배점은 에세이 40%, 기말시험 40%로 이루어지고 출석과 간단한 과제평가들을 모두 합쳐 20% 정도로 5번의 온라인 퀴즈에 배정된 점수가 10%를 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퀴즈를 잘 봤다고 A학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업계획도 확인하지 않았거나, 확인을 하고도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중 한 교민은 중앙일보가 조지워싱턴 대학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학생이 시험에서 허가받지 않은 누군가,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상의를 했을 경우 학문 진실성(academic integrity) 위반행위로 처리해왔다"는 내용은 오픈북 테스트의 경우 교실에서 치르는 sit-down exam에 해당하는 것으로 격주 퀴즈의 경우 특별한 학칙이 있을 수 없고 전적으로 담당 교수 재량이라고 말했다.

 

또한 재택 기말시험(take home final)5장 분량의 에세이보다 긴 분량을 요구하는 시험으로 이 경우라도 담당 교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료 참고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지워싱턴대학의 학장, 부학장,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팀 토드 엘리엇 스쿨 학사자문국장에게 사태의 배경을 설명하고 해당 시험의 학칙이나 규정 등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사실 조회 여부에 대해 문의하는 메일을 보내놓았다고 밝히고, “중앙일보의 경우 미국 대학은 크리스마스와 뉴이어 홀리데이로 전화조차 받지 않는데 어떻게 인터뷰를 했는지 궁금하다고 중앙일보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이에 앞서 한 네티즌은 커뮤니티에 미국의 교수 평가사이트인 ratemyprofessors.comGeofrrey McDonald 교수의 강의 평가를 소개한 바 있다. 이 페이지를 보면 학생들의 평가에 위에서 얘기한 내용이 그대로 확인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강의에 대해 강의 품질은 5, 난이도는 2점으로 평가하면서 A학점을 받았다고 밝힌 한 학생은 온라인 퀴즈는 노트를 보면 너무 쉽다(Online quizzes are a breeze if you take notes and do readings)”고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더브리핑 고일석 기자 2020-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