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감축목표 짐작케 한…문 대통령의 ‘실현가능한 저탄소’
공항 들어온다니 '새 건물' 우후죽순…주민은 몸살
60년 전 아버지처럼 지구의 가장 깊은 바닷속 걸어본 켈리 월시
책으로 배운 생물학, 몸으로 겪은 생물학
기후변화가 훑고 지나간 자리엔 ‘사람’이 있었다…기후난민 확산
기후위기와 ‘한반도 계획’
생태주의자, '돈'에 꽂히다..."화폐는 '이자 붙은 은행 빚'“
10년 뒤 '부산' 물에 잠긴다"…해상도시 건설 추진
뜨거워진 지구’로 아열대 과일 뜨자, 지자체도 발벗고 나서
인천공항 인근 영종도 오성산에 대규모 근린공원 추진
광주 생태보고 황룡강 일원을 국가정원으로
지방정원 지정 거쳐야 지자체가 운영권
기후재앙 생존 보고서 - 바다생태계 (1) 어민들의 이야기
따뜻해진 경남 바다 주인이 바뀌었다
낙동강하굿둑 방류량 늘리니 겨울철새가 돌아왔다… 고니 개체 수 3.4배 증가
탄소배출 줄이는 슬기로운 인터넷 사용법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금융의 지배,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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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는 포유류, 몸집이 커지는 이유
관광명소화" vs. "시대착오적"... 부산 황령산 개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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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만(2017년) → 73만 명…부산 100년 후 ‘인구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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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커피값도 올리나···가뭄·한파에 브라질 커피생산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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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한벌 만드는데 물 7000리터...과잉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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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감축목표 짐작케 한…문 대통령의 ‘실현가능한 저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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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축사 기후위기 대응 메시지 뜯어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현가능한 2030년 감축 목표 공약” “선도적으로 저탄소 경제전환 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한국의 책임을 다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언급했고, 지난 5월 서울 녹색미래(P4G) 정상회의에서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추가 상향하겠다”고 했다.
이번 광복절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언급하며 “실현가능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탄소중립”과 “저탄소”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표현도 함께 썼다. 기후환경단체 등은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의지와 방향이 1년도 되지 않아 흔들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현가능한 온실가스 감축은 얼마나?
문 대통령은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구 서울역사)’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와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코로나를 이길 수 없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운을 뗀 뒤, 지난해 10월 내놓은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이 “환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실천해 온 국민들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선 기업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울 수 있었던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 5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토대로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고 올해 안에 실현가능한 2030년 감축 목표를 공약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직후인 지난해 말, 한국 정부는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 7억910만톤 기준 24.4%를 감축하겠다는 NDC 목표를 제출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2030년 배출전망치 8억5080만t 대비 37% 감축 목표를 제출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목표치 모두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5억3600만톤으로 동일하다. 결국 지난 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한국 등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낮은 나라들에게 상향한 목표를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상향한 NDC를 오는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여러 차례 밝혔다.
<한겨레>가 환경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취재한 결과, 현재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8년 배출량(7억2700만톤) 대비 30% 감축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경우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억톤 초반이 된다. 반면 정의당과 기후운동단체 등은 2010년 배출량(6억6900톤) 기준 50% 이상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배출량은 3억톤 중반까지 내려간다.
이런 상황에서 “실현가능한 감축 목표”라는 문 대통령 발언은, 조만간 정부가 내놓을 감축 목표가 기존 목표치에서 크게 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도 “(NDC 목표 상향은) 우리 경제·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합의를 거쳐 ‘감내 가능한 수준’으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힌 한 바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NDC 대폭 상향 요구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실현가능한”이라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둔 것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과 함께 ‘낙장불입’이라는 파리기후변화협정 체제의 특징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파리협정에서는 한 번 제출한 감축 목표는 뒤로 미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리협정에서는 모든 당사국이 5년 마다 감축 목표를 발표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받아야 한다. 매번 발표하는 목표는 상향·진전돼야만 한다. 정부로서는 ‘실현가능한’ 목표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를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패널티’는 따로 없다.
저탄소는 탄소중립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2050 탄소중립’은 결코 쉽지 않은 목표지만 그렇다고 부담으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며 △친환경차와 배터리 △수소경제 △태양광·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충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앞서가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도적으로 저탄소 경제 전환을 추진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장 ‘탄소중립 경제전환’이 아닌 ‘저탄소 경제전환’라는 표현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헌석 정의당 일자리기후정의위원장은 SNS를 통해 “적절한 수준으로 탄소를 저감하는 ‘저탄소’와 탄소순배출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비슷한 말 정도로 이해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했는데도 아직도 ‘저탄소 경제전환’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아직까지 국정과제로 ‘탄소중립’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공항 들어온다니 '새 건물' 우후죽순…주민은 몸살
가덕도 신공항 후보지 대항마을 '신축 붐', 보상 노린 듯
인구가 500명도 안 되던 작은 어촌 대항마을, 이곳에 올 초부터 건축 붐이 일었습니다. 먼지와 소음이 끊이질 않았고, 주민들이 자그맣게 농사를 짓던 비탈의 땅들은 순식간에 집과 상가로 변모해갔습니다. 모두 동남권 신공항이 특별법을 통해 가덕도로 방향을 틀게 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지난 4월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동남권 신공항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동남권 신공항은 지난 수십 년 간 입지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지난 정부에 김해 신공항 확장이 결정돼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던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중심으로 신공항을 재검토하자는 논의가 커지더니, 지난 3월 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까지 통과되며 가덕도로 굳어졌습니다. 입지에 대한 사전 타당성 검사가 수행되기도 전에 입지가 법안명에 이미 들어가 있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법안입니다.
지난해 부산시에서 제안한 신공항 건립 구상은 이렇습니다. 대항마을을 통째로 가로지르며 주변의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고 짓는 방안입니다. 이 방안이 점점 뚜렷한 모습을 갖춰갈수록, 없어지게 될 마을에 새로 집을 짓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계획대로 공항이 추진된다면 모두 부서질 수밖에 없는 집인데도 말입니다.
부산 강서구청에서 올해 가덕도 동에 허가한 신축 공사 건수는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벌써 110건입니다. 지난해는 41건, 재작년에는 15건에 불과했습니다. 올해가 다섯 달이나 남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폭증했습니다.
신공항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있었던 가덕도의 땅은 이미 해묵은 투기판이었습니다. 가덕도의 사유지 259만7300여 평 중 가덕도에 사는 사람이 가진 땅은 55만 평, 21% 수준에 불과합니다. 올 초부터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필지들도 대부분 '외지인' 땅이다 보니, 원래부터 섬에 살던 주민들은 이번 건축 붐을 보상을 노린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돈 벌을라고 하는 거 아이가! 신공항이 들어온다니까 딱지(보상) 받으려고 하는 행사거든." (대항마을 주민)
염천에 찾아간 대항마을은 평화롭고 조용했습니다. 취재 차량이 돌아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길은 좁고 가파른 경사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사이 곳곳에 갓 지은,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새집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조립식 단층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넓은 필지 한가운데 어색하게 서 있는 집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건물은 지금도 곳곳에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도 집을 많이 지어 올리니 주민들은 먼지와 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생활 불편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불안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경사가 많은 산비탈 마을인 데다, 태풍을 그대로 맞이해야 하는 지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지반들이 다 자갈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다 사라호 태풍 때 무너져서 (새로) 지은 집들입니다. (요새 새로 지은 집들은) 전부 다 조립식 아입디까? 보상용이지. 만약에 공항 안 들어오면 그 집 팔아먹기라도 하겠습니까. 아무도 사러 안 오지." (대항마을 주민)
이렇게 집만 지어놓고 사람이 살기는 할까? 새집처럼 보이는 집들을 다녀봤지만 아무래도 최근에 지은 집이다 보니 빈집이 많았습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임차인을 찾고 있거나 몇 달 째 준공이 나지 않고 있는 집도 있다고 하고요. 입주한 것처럼 보이는 새집도 대부분 사람이 없었지만, 평일 낮시간이니 빈집이라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많은 집들이 위장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토지 수용과 보상 과정에서 실거주를 꼼꼼히 검증하는 추세를 이들도 모르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안 살죠. 일부러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수도를 틀어 놓거든요. 계량기 돌아가라고. 밤에 시간 되면 불도 딱 켜고, 센서를 달아서. 사람이 안 살아도 전기세 나가야 하고, 수도 요금 내야 한다는 건 다 아니까." (대항마을 주민)
이런 집들, 왜 계속 짓게 놔두는 걸까? 지자체도 사정은 있습니다. 실제 공항 계획이 확정돼 토지를 나라가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데, 건축·개발 제한 같은 행위 제한은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활주로의 방향이나 위치는 물론이고 활주로를 몇 개나 만들지도 정해지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건축 허가를 제한하는 거는 국민 사유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기에 맞춰서 적절하게 활용하려고 하다 보니까 지금 당장 못 하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이길근, 부산 강서구청 건축과장)
그들이 보상을 노린 투기꾼이든, 공항에는 관심이 없고 정말로 대항마을의 자연과 풍경을 사랑해서 새로 집을 지었든 간에 차이는 없습니다. 공항이 지어진다면 이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고, 그냥 산보다는 논밭이, 논밭보다는 건물이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원주민들이 더 속을 태우는 건, 살지도 않을 집을 짓고 주민등록만 옮길 사람들 때문에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뜻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항마을 주민들은 지난 6월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마을을 통째로 활주로로 바꾸려는 계획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살아온 집과 터전, 일터를 빼앗길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공항이 들어와서 보상 몇 푼 받는다고 해서, 바다밖에 모르고 살던 사람인데 육지 가서 뭘 하겠습니까? 이 좋은 자리 놔두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 놔두고 어딜 가겠어요?" (대항마을 주민)
"바다만 보고 사는 사람은 어디 가서 살겠노. 몬 산다 우리는. 나가라 카면 죽는다 나는." (대항마을 주민)
이런 상황에서 보상금을 노린 '가짜 주민'이 늘어난다면, 기존 주민들의 목소리가 왜곡될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대항마을의 주민등록상 주민은 올해 들어 급증했습니다. 지난해 8월 411명, 올해 1월만 해도 438명이었는데 8월이 된 지금은 543명입니다. 갑자기 주민이 25% 가까이 늘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실제로 매일 만나는 주민들은 크게 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상을 바라고 주민등록을 옮긴 주민이 있다면 "대항마을 주민들은 신공항을 환영합니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게 됩니다.
"오직 경제적인 이유로 오히려 공항이 들어서길 바라는 분들이 생긴다면 이 마을은 분명히 엄청난 분열에 휩싸이게 될 거라고 봅니다. 보상은 기준에 따라서 할 것이기 때문에 외지인이냐 원주민이냐 차이는 없을 것이고. 상대적인 피해는 결국에는 보상이나 이런 걸 염두에 두지 않으셨던 원주민들이 보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손상우 신공항반대 시민행동)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최근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둘러보고 갔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대항마을 전망대에 올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동남권 신공항 추진이 중요하다"며 말을 보탰습니다. 대망마을 허섭 통장은 "정치인들이 와도 그냥 스쳐만 지나가지, 사진만 찍고. 주민들한테 와서 주민들 애로사항 들어보고 한 사람이 없었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국민의 대표라면, 개발할 땅을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마을에 사는 그 땅의 국민들 이야기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화강윤 기자(hwaky@sbs.co.kr)
60년 전 아버지처럼 지구의 가장 깊은 바닷속 걸어본 켈리 월시
▲ 빅터 베스코보(왼쪽)와 켈리 월시가 20일(현지시간) 찍어 올린 셀피 사진이다.
빅터 베스코보 제공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 두 사람이 마리아나 해구 탐사에 이용한 잠수정 DSV 리미팅 팩터가 모선에서 끌어올려지고 있다.무게만 12톤 나간다./BBC 홈페이지 캡처
60년 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은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 바닥을 걸어 본 열두 번째 인물이 됐다.
위대한 해양 탐험가 돈 월시의 아들 켈리(52)가 20일(이하 현지시간) 남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수심 1만 925m 지점에 4시간 동안 머물렀다. 전체 잠수 시간은 무려 12시간이었다. 해양 탐사계에는 아폴로 우주선에 실려 달에 가 표면을 걸어본 사람보다 지구의 가장 깊은 바닷속을 다녀온 이들이 적다는 얘기가 전해졌는데 이제는 그 수가 열두 명으로 똑같아졌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켈리는 물 밖으로 떠오른 뒤 “대단히 감동적인 여정”이었다고 돌아봤다.
아들이 아버지의 업적을 60년 만에 되밟아 본 것은 미국 텍사스주 출신 금융가이며 모험가인 빅터 베스코보가 펼치고 있는 ‘챌린저 딥’ 프로젝트 덕이다. 아버지 돈은 1960년 1월 23일 스위스 탐험가 자크 피카르와 함께 욕조 모양 잠수정 ‘트리에스테’로 잠수한 뒤 피카르에게 세계 첫 타이틀 을 양보하고 두 번째 영예에 만족했다. 2012년 캐나다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딥시 챌린저 HOV를 이용해 51년 넘게 끊겼던 탐험 행렬을 이었고, 지난해 베스코보를 시작으로 패트릭 라헤이(캐나다), 조너선 스트레웨(독일), 존 람지, 앨런 재미슨(시레나 딥 이상 영국), 지난 7일 미항공우주국(NASA) 전직 우주인이자 여성 최초인 캐스린 설리번, 11일 미국과 영국 산악인 바네사 오브라이언, 14일 존 로스트(미국)에 이어 이날 켈리가 열두 번째 역사를 써내려간 것이다.
이 심해 탐험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m)를 바닷속으로 뒤집어 세워도 그곳에서 2㎞를 더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수압은 1억 파스칼로 측정되는데 가로 2.54㎝에 세로 2.54㎝의 정사각형에 1만 6000 파운드의 충격이 가해진다는 의미다. 60년 동안 기술이 진보해 더 안전해졌지만 베스코보는 자신의 첫 탐사 이후 일곱 차례 모두 동행해 훨씬 자신감을 갖게 됐다.
▲ 60년 전 잠수정 트리에스테를 타고 인류 최초로 바닷속 1만m 아래를 내려가 본 자크 피카르(오른쪽 사진 위)와 켈리 월시의 아버지 돈 월시./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베스코보와 켈리는 이른바 “서쪽 풀”에서 4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이곳은 켈리의 아버지 돈과 피카르가 찾았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 지점을 다시 찾은 것은 베스코보와 켈리 뿐이었다. 해양생물학자인 재미슨 박사는 베스코보와 함께 조금 더 얕은, 챌린저 딥 동쪽에 1만 700m의 시레나 딥을 찾았다.
재미슨 박사는 “사람들은 1960년대와 70년대 인류가 달에 갈 때 왜 바다 탐험가들은 그런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았는지를 묻곤 한다. 그 때도 돈 월시는 마리아나 해구의 바닥에 갔고, 그 몇십 년 동안 우리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올해 베스코보가 마리아나 해구 탐사에 동원했던 잠수정 DSV 리미팅 팩터는 수심 1만 500m로 마리아나와 통가 해구에 이어 세 번째로 깊은 필리핀 해구로 옮겨가 탐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의 존 코플리 박사에 따르면 이곳은 해양 탐사의 굉장한 전기를 제공한 곳이다. 1951년 덴마크의 갈라티아 탐험대가 수심 10㎞ 아래에서 사는 동물들을 그물망으로 잡은 일이 있어서다. 이 일로 그 깊이 아래에서도 인간이 얼마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증명돼 심해 탐사의 전기가 만들어졌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2020-06-21
책으로 배운 생물학, 몸으로 겪은 생물학
남녀, 투자와 선택의 균형
자연계에서 암수를 나누는 아주 경제적인 방법
수컷 개구리는 암컷에게 매력을 과시하기 위해 힘껏 운다. 한겨레 자료
여름날의 산책은 소리가 함께합니다. 선선한 공기가 아직은 기분 좋은 아침, 맴맴 우는 매미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울립니다. 한낮의 열기가 남은 여름밤에는 개구리들의 합창이 귓전에 맴돕니다.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울어대니 도무지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자원을 투자한 쪽이 번식에서 선택 우선권 가져
매미와 개구리의 합창은 한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소리입니다. 이들의 울음은 제법 시끄럽지만 다행히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이들이 그토록 큰 소리로 울어대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간절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삶 속에서, 어서 짝을 찾아 후손을 남기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충실한 결과일 뿐이죠. 그래서 주로 울어대는 쪽은 수컷입니다.
자연계의 기본 번식 전략은 경제성입니다. 투자를 더 많이 하는 쪽이 더 신중한 편이죠. 이성의 상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거나 자신의 매력을 보이려고 기를 쓰는 쪽이 대개 수컷 쪽인 이유는 그들이 번식 자체에 투여하는 에너지가 더 적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유성생식을 하는 개체군에서 암컷과 수컷을 구분하는 기준은, 더 크고 영양분을 많이 포함한 생식세포(난자 혹은 알)를 만드느냐, 작고 유전물질만 포함된 생식세포(정자)를 만드느냐에 달린 일입니다.
난자(알)를 만드는 쪽이 암컷, 정자를 만드는 쪽이 수컷입니다. 포유류처럼 암컷이 임신과 출산과 수유를 책임지는 생물종뿐만 아니라, 어류나 곤충처럼 그저 만나서 생식세포만 체외수정하고 떠나버리는 종에서도 수컷이 구애에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애초에 난자(알)가 정자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기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한 쪽이 번식에서 선택의 우선권을 가지는 거죠. 투자한 게 많으면 실패할 때 잃을 것이 많아지니 좀더 신중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는 성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투입 자원의 상대적 비율에 대한 것이어서, 번식 과정에서 암컷이 만든 커다란 난자(알)에 들어가는 자원보다 수컷이 투자한 전체적인 자원이 더 크다면, 번식에서 선택의 권리는 수컷에게 돌아갑니다.
2010년 브라질의 건조한 동굴에서 발견된 작은 곤충인 네오트로글라(Neotrogla curvata)는 매우 특이한 번식 습성으로 발견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노솜(Gynosome)이라 이름 붙은 네오트로글라 암컷의 성기는 얼핏 수컷의 페니스를 닮았으며, 실제 기능도 이와 비슷합니다. 번식기에 들어선 암컷은 수컷을 발견하면 그들의 몸에 올라타 구멍을 뚫고 지노솜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짝짓기를 시도하거든요. 이들의 짝짓기는 이틀에서 사흘 정도 길게 이어지는데, 이 기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암컷의 지노솜은 미늘 구조로 수컷의 몸에 단단히 결합합니다. 이 결합이 어찌나 단단한지 연구자들이 짝짓기 중인 네오트로글라를 억지로 분리하려 했더니 수컷의 몸이 두 동강 나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불쌍한 수컷 네오트로글라!).
수컷의 목숨 건 어필, 해결책은 ‘함께 울기’
네오트로글라가 이렇게 성별이 반전된 짝짓기를 하는 이유는, 먹이와 물이 부족한 척박한 동굴 환경 속에서 암컷이 알을 만들기 위한 영양분을 얻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수컷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수컷은 정자를 만들어 영양분이 풍부한 정액 주머니에 넣어 보관합니다. 암컷은 수컷의 몸에 달라붙어 생식기를 삽입하고는 수컷의 정자와 농축된 영양액을 함께 빨아들입니다. 영양액은 알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자원으로 사용되지요. 즉, 암컷은 정자에 비해 커다란 알을 만들기는 하지만, 이 알을 만드는 자원의 상당 부분을 수컷에게서 얻습니다. 정자와 영양액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수컷의 자원은 암컷이 알을 만드는 데 쓰는 자원보다 더 큽니다. 그래서 네오트로글라는 번식기에 더 적극적으로 경쟁하는 쪽이 암컷이며, 더 수동적으로 까다롭게 구는 쪽이 수컷입니다. 자연계에서 암수는 매우 훌륭한 경제론자죠.
다시 여름밤 합창의 주인공인 개구리로 돌아와봅시다. 번식에 따른 투자 규칙에 의해 개구리의 짝짓기 선택권은 암컷에게 있습니다. 암컷이 더 큰 알을 낳기에 적극적으로 구애 공세를 펼치는 쪽은 수컷입니다. 수컷 처지에서는 딜레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언제 울기를 시작해야 하느냐는 거죠. 보통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개구리처럼 피식자 그룹에 속한 종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피하곤 합니다. 천적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그야말로 날 잡아먹으라는 광고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짝짓기 철이 되면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가만히 숨어만 있으면 천적이 날 찾기 힘들겠지만 암컷 역시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전자의 명령은 개체의 생존과 후손의 번식이라는 이중 과제를 모두 수행하도록 요구하기에, 수컷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개굴개굴 큰 소리로 힘차게 울어대면 암컷에게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는 데 좋겠지만, 그럼 연못가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천적에게도 자기 위치를 노출하는 격이 될 테니까요. 짝짓기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컷 개구리는 포식자의 눈길을 피하면서 이성에게는 어필하는 전략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모두 다 한꺼번에 우는 것입니다. 홍난파 작곡의 동요 <개구리>에는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아들손자 가릴 것 없이 수컷들이 일제히 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구리라고 해서 텔레파시가 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일 처음 나서서 ‘시작!’을 외쳐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이 ‘최초의 개구리’가 울음을 시작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기저기서 개구리들이 울음을 보태 순식간에 연못 주변은 개구리 울음소리로 꽉 찬 듯 느껴집니다.
암수의 번식 유형이 반전된 네오트로글라의 짝짓기 모습. ⓒ Charles Lienhard, https://www.researchgat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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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의 고민, 끌리는 대로 바로? 조금 기다려서?
이렇게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우는 건 ‘선행음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여러 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이는 경우, 이들의 소리를 듣는 제3자 처지에서는 처음 들린 소리에만 집중하고 이후 소리는 무시하는 선행음 효과가 나타납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들려오면 순간 그 노래에만 신경이 집중돼 나머지 배경 소리가 희미해지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울려면 한꺼번에 울어야 합니다. 물론 가장 먼저 울기 시작한 개구리는 자기 위치가 노출돼 위험하지만, 나머지 개구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해서 마음 놓고 한꺼번에 합창할 수 있으니까요.
암컷도 가장 먼저 울음을 시작한 수컷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이것만이라면 수컷은 다소 위험하더라도 먼저 나서서 울기 위해 경쟁할 것입니다. 암컷은 좀더 생각할 게 있습니다. 암컷에게도 선행음 효과가 적용될 테니 가장 먼저 울음을 시작한 수컷의 소리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올 겁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따라가면 수컷뿐 아니라 천적을 만날 확률도 높습니다. 그러니 암컷은 선택해야 합니다. 가장 매력적인 소리를 따라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 다른 소리에 한 번 더 귀 기울여볼 것이냐. 생태학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암컷은 후자의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행음 효과가 암컷에게는 절대적이지 않은 거죠.
이 과정에서 가장 억울한 것은? 바로 맨 처음 울기 시작한 수컷 개구리입니다. 기껏 위험을 무릅쓰고 먼저 시작했는데, 암컷조차 자신을 반드시 선택해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수컷 개구리들 사이에는 짝짓기 철이 되면 눈치싸움이 벌어집니다. 누군가 먼저 울어야 맘 편하게 울 텐데 선뜻 나서기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지나치게 눈치만 보면 암컷이 이 연못에는 수컷이 살지 않는 줄 알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릴 테니 기껏 기다린 보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가장 성질 급한- 혹은 아차 실수한?- 개구리의 첫 울음을 시작으로 개구리는 일제히 여름밤의 합창을 시작합니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젠더 갈등이 점점 더 극심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한 여성 운동선수의 머리 길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의미 없는 설전이 그토록 빠른 시간 동안 극심하게 증폭되는 과정을 보면서 처음에는 어이없다가 차츰 분노했다가 종국에는 슬퍼졌습니다. 그때 문득 짝짓기를 둘러싼 자연의 보편적인 현상이 떠올랐습니다.
필요한 것은 선임자의 배려심
인간은 개구리처럼 번식하지도, 네오트로글라처럼 접근하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생물학적 번식의 부담은 여성의 몸에 국한됐지만,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 속에서 자식을 부양하는 경제적·물질적 자원의 부담은 남성에게 더 지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 반려를 만난다는 건 매우 복합적인 결합입니다. 문제는 전자는 그대로인데 후자의 부담은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점차 그 기울기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부담을 더 지는 만큼 결정권을 가지는 단순한 경제적 전략이 더 이상 간단하지 않게 된 거죠.
남녀는 서로가 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 부담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여기서 더 이상의 부담을 짊어지는 것을 거부하고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동안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부담(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징병제가 되겠지요)을 전적으로 짊어졌다고 생각하던 남성은 여전히 부담은 그대로인데 선택권도 줄었다고 불평합니다. 내가 훨씬 더 손해 보니 너는 권리가 없다는 주장이 부딪치는 셈이니 격화되는 건 당연하죠.
여기서 잠시 숨고르기를 해봅시다. 이 문제를 현명하게 조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지금껏 이만큼 손해 봤으니 너도 이만큼 당해봐야 한다는 함무라비식 복수심이 아니라, 내가 겪어보니 이만큼 힘들더라 그러니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를 굳이 겪지 않을 방법이 없을지 살펴보자는 선임자의 배려심입니다. 내 다리가 부러져서 아프니 네 다리도 부러뜨려야겠다고 덤벼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결국 둘 다 자리에 주저앉아 같이 지쳐서 굶어 죽어갈 뿐이죠. 내 다리가 부러지면 많이 아프고 힘들다는 걸 이미 겪었으니, 다음에는 나도 너도 이다음 사람들 모두도 다리를 다치지 않게 대책을 강구해보는 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할 길이겠지요. 우리는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니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기후변화가 훑고 지나간 자리엔 ‘사람’이 있었다…기후난민 확산
호랑이가 사는 유일한 맹그로브 숲인 방글라데시 남서부 슌도르본의 마지막 두 유인도는 더는 주민들로 북적이지 않는다. 사이클론이 2년 동안 네 번이나 섬을 덮치면서 이재민 3만4000명이 섬을 떠났다. 기후 변화는 이들 삶의 터전을 앗아갔고 극심한 빈곤에 내몰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주를 선택했다.
“우리의 땅, 동물, 집. 모든 것이 불타버릴 것입니다. 우리에게 또 어떤 것이 있습니까.”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터키 남부 해안의 카칼라르 마을 주민 얀 카카르(56)는 CNN에 이렇게 말했다.
기후 변화가 훑고 지나간 자리엔 사람이 있었다. 기후 난민의 등장이다. 기후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정립돼 있지 않지만, 세계은행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해수면 상승, 폭풍 해일 등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생존을 위협받아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사람들을 기후 이민자로 정의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난민감시센터(IDMC)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실향민은 780만명에 이르고 기후 난민이 분쟁 난민보다 3배가량 더 많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2050년 안에 기후 관련 사건으로 최소 12억명이 실향민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주거 위협은 인프라가 열악한 국가를 더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세계은행은 2018년 보고서에서 기후 관련 조치가 전 세계적으로 취해지지 않으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 3개 개발도상국 지역에서 기후 이민자가 2050년 안에 수천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잇따른 허리케인이 닥친 과테말라에서는 주민들의 미국 이주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이주기구 조사 결과 과테말라-멕시코 국경 근처인 산악 지역 알타 베라파즈와 우에우에테낭고에서는 허리케인으로 집을 잃은 가구의 15%에서 지난 5년 동안 최소 한 명의 가족 구성원이 이주했거나 이주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밝힌 이주 동기 상위 5개 중에는 자연재해와 기후 변화로부터의 탈출이 있었다. 폴리티코는 “기후 변화가 수천명의 이주 동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 여성이 8월10일 터키 안탈리아 마나브갓 지구의 부카크 마을에서 산불로 전소된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울고 있다. 안탈리아 | EPA연합뉴스
기후 난민은 특정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올해 미국, 캐나다, 그리스, 터키에서 산불로 이재민 수만명이 발생했다. 독일, 중국, 미얀마 등은 대규모 홍수로 이재민이 100만명 이상 발생했다. IDMC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에만 미국에서 약 171만명이 재난으로 이재민이 됐다. 산불이 강타한 그리스 에비아섬에서는 수천 헥타르의 땅과 집, 사업체들이 파괴되고 2000명 이상이 대피했다. 터키도 최악의 산불로 8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집을 떠났다. 안탈리아 지방에서는 가옥 최소 77채가 파괴됐고 농장 동물 2000마리 이상이 죽었다. 카칼라르 인근 마을의 농부 나멧 아틱(37)은 “우리의 생활은 숲 그 자체다. 불에 타면 아무것도 돌아올 수 없다”고 CNN에 말했다.
기후 난민은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9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최신 보고서는 21세기 중반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계속 상승하며 극한 고온 현상이 과거보다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빈번하고 강렬해지는 극한기상 현상은 토지 황폐화로 인한 식량 부족, 기아 문제 등을 야기해 이주 수요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후 난민을 지원하는 대응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다. 70여년 전에 마련된 난민의 국제적 정의에 대한 재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마 프란시스 국제난민지원프로젝트(IRAP) 전략가는 “20세기에는 전쟁과 갈등으로 많은 사람이 이동했고 그것은 여전한 현상이지만, 이제는 기후 변화와 관련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동하고 있다”며 “추세를 반영해 법이 재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IRAP는 이에 따라 최근 조 바이든 미국 정부에 기후 난민과 관련해 의회 동의 없이 취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조치를 제안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기후 변화의 타격을 받는 국가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 보호 지위 사용 등을 다뤘다. 기후 변화가 미국법에 따라 난민 지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미 법무부의 의견도 첨부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달 마감 예정인 ‘기후변화에 따른 이주에 대한 부처 간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
기후위기와 ‘한반도 계획’
최근 나온 기후위기에 관한 유엔 보고서는 정말 무섭다. 이 보고서는 지구를 휩쓸고 있는 폭염, 홍수, 산불, 해빙, 극단적 기상 현상의 원인에 대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태워서 이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는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도 알려준다. 국가들이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지킨다 해도 2030년까지 전세계 배출량은 2010년 수준에서 겨우 1%만 감소할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 측면에서 지구가 회복 불가 지점을 넘지 않도록 하려면 이번 10년 안에 전세계 배출량을 50%까지 줄여야 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말대로, 새 유엔 보고서는 “인류에 대한 코드 레드(심각한 위기 경고)”다.
기후위기는 세계 여러 지역에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 시베리아, 그리스, 캘리포니아에서 거대한 산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의 얼음 손실은 심각한 해수면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 독일은 최근 라인강 유역에서 전례 없는 폭우를 겪었다.
아시아에서 기후변화의 주요 영향은 몬순(장마) 주기에 있다. 이번달에만 중국 중부의 기록적인 강우로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해 300명 이상이 숨졌다. 한국도 같은 재앙을 겪었다.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가 한국 중부를 휩쓸어 대전이 침수하고 서울의 한강 유역까지 범람했다. 장마전선이 전례 없이 54일이나 지속됐다. 지난여름 폭우를 겪은 북한은 지금도 홍수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경우 기후변화는 기온 상승과 새로운 곤충 유입으로 농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농업 종사자가 인구의 5% 미만이고 많은 식량을 수입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식량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 정부는 코로나19의 타격과 대중국 무역 급감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북한의 안보·기후 위험에 관한 최근 보고서는 “북한 쌀의 38%와 대두의 30%를 경작하는 함경남도와 평안북도 지역은 2035년까지 해마다 최대 3개월의 심각한 가뭄을 추가로 겪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홍수로 식량 생산이 줄 것이다. 그것은 1990년대 초 ‘고난의 행군’으로 이어진 가뭄과 홍수의 조합과 정확히 같다.
한국과 북한이 혼자서 기후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현재 북한은 산업·농업 생산이 낮기 때문에 탄소 배출이 트리니다드토바고와 비슷할 정도로 매우 적다. 반면, 한국은 세계 10대 탄소 배출국 중 하나다. 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약속하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한국이 그 약속을 지켜도 그걸로 기후변화가 멈추진 않는다.
여기에 남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남북은 지구온난화에 힘 합쳐 싸울 수 있다. 클린에너지의 미래로 함께 전환하기 위한 한반도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군사적 대립, 경제 격차, 정치체제 차이 등 모든 차이점을 제쳐두고 기후변화라는 공동 위협에 집중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범주에서 북한은 현재 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그리 많지 않은 자본이면 북한은 탄소중립 경제로 더 쉽게 도약할 수 있다. 한국은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남북이 이런 전환을 하도록 도울 수 있는 자본을 갖고 있다.
남북은 기후 비상사태를 해결하는 게 다른 의견 불일치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 남북이 한반도를 가르는 비무장지대(DMZ)를 효과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면, 지구 북반구와 남반구를 가르는 똑같이 깊은 간극을 세계가 메울 수 있는 방법 또한 보여줄 수 있다.
개성공단 재개 협력? 올림픽 단일팀 구성? 모두 가치 있는 남북 프로젝트다. 그러나 한반도와 전세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기후 비상사태에 즉시 대처하는 데 필요한 협력에 비교할 수는 없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한겨레 2021-08-15
생태주의자, '돈'에 꽂히다..."화폐는 '이자 붙은 은행 빚'"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⑪기본소득과 신용의 사회화 (1)
"사실 1996년에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역화폐라는 개념을 소개한 이래 이 화폐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어요. (중략) 그러다가 최근에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금융문제의 파장이 넓고 깊은 것에 새삼스럽게 전율을 느꼈습니다. (중략)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사회운동이라도 돈 문제를 우회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어서는 결국 변죽만 울리는 헛된 노력일 뿐이라는 생각이 확실해졌습니다."
2010년 6월 초, 김종철은 향린교회에서 '돈과 자유 - 배당경제학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평소에 가난하게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자고 해온" <녹색평론>이 작년(2009년) 가을부터 뜬금없이 돈에 관한 글을 거의 매호 거르지 않고 게재한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했다.(<녹색평론> 115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218-255쪽)
물건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서민들은 늘 곤궁하고 하루하루의 생존에 허덕이는가? 이러한 '풍요 속의 빈곤'은 구매력의 부족, 즉 서민들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김종철은 "결국 문제는 늘 돈이에요. 물자와 서비스는 넘쳐나는데, 그것을 실제로 획득하는 데 필요한 돈이 없거나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역시 돈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통화제도의 발본적인 개혁과 기본소득 지급에 의한 '배당경제학'의 실현"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통화제도의 발본적 개혁이란 "종래 민간은행에 의한 신용창출제도를 폐기하고 국가나 지자체 같은 공공기관이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며, 기본소득이란 이렇게 발행된 공공화폐를 소득 수준이나 고용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 모두에게 일정액을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이로써 김종철은 '기본소득'이라는 화두를 한국사회에 제기하기 시작했다.
김종철은 '공공화폐 발행과 기본소득 지급'을 '사회신용에 의한 시민배당'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이 실현된다면 '유효수요 부족(구매력 결핍)'에 의한 경기침체와 불황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일반 시민(소비자) 입장에서는 생활상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킴으로써 임금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2011년 11월 <녹색평론> 창간 20주년 인터뷰에서 그는 '성장경제'에서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자신의 구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성장 경제'를 지양하고 '순환 경제'로 가야하는데, 그 순환 경제의 모습은 무엇인가? <녹색평론>은 몇 년 전까지 '농업 중심 사회'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농업 중심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 사회로의 이행은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바로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답을 찾느라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고 최근에야 그 가닥을 잡은 느낌입니다. 저는 우리의 삶을 옥죄는 핵심 원인이 바로 돈(화폐), 즉 금융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강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길게 설명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자 놀이'로 유지되는 금융 권력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도 무기력한 독백일 따름입니다.
실제로 금융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모색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어요. (중략) 예를 들자면, 은행을 공공화하는 거예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에 미국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어요. 은행의 공공화는 중요합니다. 지금 민간 은행이 돈놀이를 통해서 얻는 막대한 이익은 전부 주주에게 귀속이 됩니다. 즉, 공적 이익이 사적 이익으로 전유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민은 빚지고, 중소기업은 망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공공 은행에서는 은행 업무를 통해서 생기는 막대한 이익을 전부 공익 자금으로 만들 수 있어요.
바로 이런 공익 자금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바로 기본소득 같은 획기적인 복지 실험을 할 수 있어요. 기본 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재산 상태, 취업 의사에 상관없이 무조건 일률적으로 일정한 돈을 나눠주자는 것입니다. (중략) 기본 소득은 복지 제도와는 다르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고 관리 비용을 대폭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바로가기 : "모든 시민에게 100만 원씩! 세상이 안 바뀌나 보자!")
'이자놀이'로 유지되는 금융권력을 해체하고, 은행을 공공화하며, 공공은행에서 나오는 이익을 기본소득과 같은 획기적 복지제도에 사용하자는 김종철의 순환경제 구상은 2008년 가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09년 가을 <녹색평론>은 일본의 독립저술가 세키 히로노의 강연 '삶을 위한 경제 - 왜 기본소득과 신용의 사회화가 필요한가'(108호)를 시작으로 2010년 봄에는(111호) 미국의 통화개혁 운동가 리처드 쿡의 강연 '통화개혁과 국민배당 - 경제위기의 해결을 위하여', 113호에는 캐나다의 화가이자 화폐제도 연구가인 폴 그리뇽의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1920년대 사회신용론을 처음 제창한 클리포드 더글라스의 사상을 풀이한 '더글라스의 사회신용론'(마이클 로우보섬)을 실었다. 그리고 115호에 김종철 자신의 강연 '돈과 자유 - 배당경제학에 대하여'를 게재했다.
즉 김종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융개혁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나름대로 현대 금융제도의 문제점과 개혁방안을 숙고했던 것이다. 그는 또 일본에 귀화한 미국인 사업가 빌 토튼의 일본어 저서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정체>((2010년)를 번역해 <녹색평론>에 연재한 뒤 2013년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현대자본주의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기본소득이라는 해법에 도달한 사람은 김종철만이 아니었다. 2009년 경제학자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가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 민주노총의 이수봉, 사회당의 금민 등과 함께 기본소득네트워크를 발족시켰고, 이 조직은 2010년 기본소득 실현을 추진하는 세계 단체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 BIEN)의 제 13차 총회에서 17번째 가입국으로 승인됐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동안 핵 문제에 전념했던 김종철은 2013년 여름 강남훈, 곽노완 등과 함께 기본소득 관련 좌담('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 - 기본소득 왜 필요한가')을 가졌다(131호).
좌담에 따르면 학계에서의 기본소득 논의는 독일에서 경제철학을 공부한 곽노완이 2006년 쯤 한 노동운동단체 세미나에서 처음 제기했다. 당시 곽노완의 발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강남훈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겨울 한 학술대회에서 급진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정책과 대중적인 진보정당운동이 함께 갈 수 있다는 요지의 발표를 하면서 급진적이면서 대중적인 정책의 예로 기본소득을 들었는데, 이때 토론자로 나왔던 이수봉이 연구만 하지 말고 기본소득운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면서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만들었다고 한다. 강남훈은 현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이사장이며 이재명 대선 후보의 기본소득 TF 팀장을 맡고 있다.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알려면 위에 적은 <녹색평론>의 글들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홈페이지(☞바로가기)에 '기본소득이란' '기본소득의 역사'에 관한 상세한 글이 실려 있다.
기본소득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기본소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는 분들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의 '읽기 자료'에 약 20여 권의 책들이 소개돼 있으니 이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 자리에서는 김종철의 문제의식, 즉 이자놀이로 유지되는 금융권력의 실상과 은행의 공공화 또는 신용의 사회화란 무엇인가, 왜 기본소득이 성장경제에서 순환경제로의 이행에 필수 요소인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김종철은 "제가 현대 금융제도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 제도가 강박적으로 경제성장을 사회 전체에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오늘날과 같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은행이 화폐 발행 주체가 돼 있는 상황에서는 공동체의 삶이니 환경이니 하는 것은 전혀 고려사항이 될 수 없고 오로지 경제성장이 지고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자놀이로 유지되는 금융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김종철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아야 한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대부분은 국가가 발행한 것이 아니다. 국가 발행 화폐는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은 은행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른바 부분지급준비제도에 따른 민간 은행의 신용창조에 의해 돈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은행이 만들어낸 돈에는 반드시 이자가 붙어있다. 현대사회의 돈, 즉 은행화폐는 '이자가 붙은 은행 빚'인 셈이다. 이에 따라 화폐 창조 권력을 독점한 민간 금융세력은 막대한 이자 수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반면, 민간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정부, 기업, 개인은 그 빚과 이자를 갚기 위해 끝없는 성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균형의 결말이 1929년, 2008년과 같은 대공황이다.
현대의 화폐는 '이자가 붙은 은행 빚'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선진국에서도 극히 드물다고 한다. 캐나다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99%가 실상을 모르고 있었다. 슘페터에 따르면 1920년대까지 화폐시스템에 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진 경제학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 비밀이 처음 본격적으로 밝혀진 것은 1924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엔지니어, 클리포드 더글라스가 <사회신용론>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민간은행이 '이자가 붙은 은행 빚'의 형태로 화폐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부분지급준비제도'라는 제도 때문이다.
부분지급준비제도란 고객이 은행에 맡긴 예금의 일부만을 중앙은행에 보관해두고 나머지를 대출하는 제도다. 예컨대 은행에 100만원의 예금이 맡겨지면 이중 10%는 중앙은행에 지급준비금으로 예탁하고 나머지 90만원을 대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은행의 대출이 90만원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출된 90만원은 예금의 형태로 다시 은행에 맡겨지므로 여기에서 10%인 9만원이 지급준비금으로 예탁되고 나머지 81만원이 또다시 대출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예금 100만원으로 은행은 900만원까지 새로운 대출, 즉 은행화폐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즉 은행은 고객이 맡긴 예금의 한도 내에서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8-10배의 대출을 할 수 있다. 이것을 은행의 신용 창조라고 한다. 이 때문에 케인스는 부분지급준비제도에 대해 "무(無)에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발행한 지폐나 동전, 즉 정부화폐는 3-5%에 지나지 않으며 은행 대출에 의한 신용화폐, 즉 은행화폐는 95-97%에 이른다.
은행화폐가 정부화폐와 다른 점은 반드시 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산업국가에서 물가의 약 30%가 은행 이자분이라고 한다. 바로 이 이자 상환의 압력 때문에 계속적인 경제성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르그리트 케네디라는 독일 학자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물가의 30-40%가 이자분이며 하위 80퍼센트 소득자들이 상위 10퍼센트 부자에게 지불하는 이자가 하루 10억 유로, 1년 3650억 유로라고 한다. 은행은 신용창조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화폐 발행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독점하면서 이자의 형태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도 이자제도를 통해 돈을 벌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은행화폐라는 부채의 그물에 포획돼 있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영구 성장이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케네스 보울딩이라는 경제학자는 "유한한 세계에서 기하급수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광인이거나 경제학자"라고 말했는데, 유한한 지구생태계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자원과 에너지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 경제성장의 결과 우리는 현재 공황과 기후위기, 코로나 19 팬데믹이라는 지구적 차원의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김종철이 2012년 '성장시대의 종언'을 단언한 이유다. 그의 이 발언은 '경제성장이 끝났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생태적 이유로 더 이상의 경제성장은 불가능한 상황에 몰렸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는 지속 불가능한 성장경제를 끝내고 순환경제로 이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경제성장을 강요해온 금융권력이 해체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
10년 뒤 '부산' 물에 잠긴다"…해상도시 건설 추진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매년 상승하면서 10년 안에 부산도 물에 잠기기 시작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부산처럼 바다를 끼고있는 세계의 대도시들은 방호벽을 둘러치는 등 침수에 대비하고 있는데요. 부산도 첫 시도에 나섰습니다.
리포트 장마철을 맞은 부산 광안리와 해운대 일대. 빗줄기가 멈추지 않고 이어집니다.
요트경기장 주변이 서서히 잠기더니 수영강을 따라 벡스코와 센텀시티에 물이 차기 시작합니다. 그린피스가 예상한 2030년 부산의 모습입니다.
기후 변화로 바다 수위가 오르면서 우리 땅의 최소 5%가 침수되고, 부산 같은 해안 도시는 자연재해에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9일, 8년 만에 나온 기후보고서.
지구의 온도가 1.5도 상승하는 시기를 무려 12년이나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발레리 마송 델모트 /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 공동의장]
"이 보고서의 모든 시나리오는 20년 안에 지구 온도가 1.5℃ 오르거나 이를 넘어설 것으로 지구촌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끼고 사는 나라들은 이미 도시 침수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베니치아는 이미 수중 물막이를 설치하고 있고, 미국 뉴욕은 거대한 섬을 따라 방호벽을 둘러치겠다는 계획입니다. 폭우와 해일 피해를 막는 '바다 방벽'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부산은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물에 뜨는 해상 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UN이 기후 난민을 위해 추진 중인 거주민 3천 명 규모의 해상 도시 시범 모델을 부산에서 구현하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UN과 업무협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내륙을 떠나 해상에서 자급자족하는 환경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완성 단계로 보고 있습니다.
[이한석 / 한국해양대 해양건축학부 교수]
"물이라든지 식량이든지 에너지든지 (해상도시에서) 처리해 주는 거고요.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자급자족하는 해양도시로 가는 출발점이 되는 거죠."
불과 20년 뒤면 부산이 사라질지 모릅니다. 기후 변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당장 '대비'하기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MBC뉴스 윤파란입니다.
‘뜨거워진 지구’로 아열대 과일 뜨자, 지자체도 발벗고 나서
패션프루츠·애플수박·샤인머스킷·파파야…
제주·해남·고창·고성·태안 등 재배 확대돼
“기후변화 대응 아열대 작물 개발·연구중”
남미가 원산지인 패션프루트가 제주에서 자라고 있다. 제주시 제공
패션프루트, 애플수박, 멜론, 샤인머스캣, 파파야….
한편으로 생소하지만, 마트나 시장 진열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요즘 뜨는 과일’ 들이다. 상당수는 동남아 등 (아)열대지방 과일로 알려졌지만, 사실 알고 보면 국내산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아열대 과일을 키울 수 있게 된데다, 요즘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과일은 수익성이 좋아 농가들도 적극적으로 재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들도 소득작물 육성과 보급에 적극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제주는 일찍부터 아열대 과일 묘목을 들여와 소득작물로 육성했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다. 제주시는 최근 소규모 다품종 작목단지 육성을 위해 정예소득 작목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바나나와 애플수박, 패션프루트 등 10개 품목에 102억원을 투자한 제주시는 올해는 키위와 샤인머스캣 두 품목에 23억여원을 투자했다.
이런 노력 속에서 수입산에 밀려 30년 전쯤 사라졌던 바나나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제주지역에서 바나나는 1989년 재배면적이 443㏊나 될 정도로 인기를 끌다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무역협상으로 수입산이 밀려오면서 곧바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게 2006년부터 다시 바나나 재배가 시작돼 지난해엔 제주지역 25개 농가가 국내 생산량의 60%인 1200t을 생산했다. ㎏당 7000원으로 수입산보다 배나 비싸지만, 제주산 수요는 많다. 선적부터 국내 유통까지 한달가량 걸리는 수입산보다 신선도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제주도 내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애플수박이 지지대에 달린 모습이 이채롭다. 제주시 제공
대표적 수박 산지인 전북 고창군은 멜론을 전략 작물로 정했다. 수박 농사를 짓던 정재용씨와 주변 농가들이 1998년 수박에 이은 후작물로 멜론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90여농가, 65㏊ 규모로 확대됐다. 정씨는 “고창은 황토 땅에 게르마늄 성분이 많아 수박, 복분자, 고구마, 땅콩 등 뭐든 심으면 잘된다. 6~7월 수박에 이은 9~10월 멜론으로 명절 특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북 장수군은 애플수박으로 과일 틈새시장에 뛰어들었다. 일반 수박의 4분의 1 크기인 애플수박은 껍질이 얇아 사과처럼 깎아서 먹을 수 있어 최근 대세라는 ‘1인 가구’ 소비기호에 맞고, 음식물쓰레기 양도 적다. 2019년 시범재배를 시작한 장수군에서는 현재 2개 농가가 0.5㏊ 규모로 애플수박 농사를 짓고 있다.
전남 해남군은 생으로 먹는 초당옥수수가 전략 작목이다. 일반 옥수수보다 당도가 높아 초당(超糖)인데, 수분이 많고 식감이 아삭해 과일처럼 날로 먹는다. 열량은 찰옥수수의 절반 정도지만, 섬유질·비타민 등 영양이 풍부해 다이어트 등에 뛰어난 웰빙식품으로 인기가 있다.
경남 고성군은 국내 최대 참다래(그린키위, 골드키위) 생산지다. 2016년에는 일본에 수출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따뜻한 기온과 일조량, 해풍, 질 좋은 황토밭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자라기에 식감이 좋고 당도가 높다고 한다.
2020년 지역별 과실생산 통계(국가통계포털)
충남 태안 안면도의 장영창(61)씨는 500㎡ 규모 시설하우스에서 최근 널리 알려진 패션프루트를 생산하고 있다. 원산지가 브라질인 열대과일로, 열매를 가르면 새콤한 젤리 형태의 과육이 드러난다. 태안산 패션프루트는 미네랄이 풍부하며 당도가 높고, 비타민은 귤보다 26배 많다. 태안로컬푸드 직매장 등에 개당 1000원에 패션프루트를 납품하고 있다는 장씨는 “숙성되면 당도가 매우 높아져 아이들 간식으로도 제격”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한 농장에서 농장 관계자가 익어가는 패션프루트를 살피고 있다. 태안군 제공
역시 태안에 사는 황두순(62)씨는 1300㎡ 규모 시설하우스에서 ‘천사의 열매’로 불리는 파파야를 재배하고 있다. 비타민C와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데다 소화효소인 파파인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건강에 좋다는데, ㎏당 7000원가량에 온라인 등으로 판매한다.
김희준 전북도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장은 “새로운 소득작목을 위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공심채·만감류 등 새로운 아열대 작물을 개발했거나 연구 중이고, 동남아 출신 다문화가정에서 재배·소비하는 작물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박임근 허호준 안관옥 최예린 기자 pik007@hani.co.kr
인천공항 인근 영종도 오성산에 대규모 근린공원 추진
10여 년 간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공원 실효 위기상황까지 처해졌던 영종도 오성산에 그간 지역주민들이 바라왔던 대규모 근린공원이 조성된다. 인천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영종도 오성산 지역에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신청한 ‘오성근린공원 조성사업 실시계획’을 17일자로 승인·고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실시계획 승인에 따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중구 덕교동 산37의4번지 일원 81만6015㎡을 2025년까지 근린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공원에는 산책로, 초화원, 초지원, 습지원, 호수, 어린이 놀이시설, 야영시설(캠핑장), 체험텃밭을 비롯해 야구장, 다목적구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차장, 화장실, 음수장 등 부대시설도 설치된다.
오성산은 2001년 8월 27일 88만㎡의 면적이 공원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이 건설되면서 이착륙 항공기의 시야 확보와 안전을 위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산 정상부터 절개작업이 이뤄져 당초 해발 172m이었던 산이 현재는 해발 52m 이하만 남은 상태다.
인천시는 공항 건설이 완료되면 잘라낸 지역을 공원으로 복원하는 조건으로 공원지역에 대한 점용허가 및 토석채취허가를 했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09년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공원조성계획을 협의해 왔으며, 자동차 경주장, 경마장 설치 등 여러 시설 조성방안이 논의되다가 중단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오성공원의 실효를 1년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공원조성계획을 마무리했고,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실시계획인가 준비가 시작됐다. 공항공사는 올해 8월 26일까지 오성공원의 실시계획인가를 받지 못하면 공원이 실효되는 만큼 서둘러 환경영향평가 등 사전 행정절차를 진행했고, 관련 절차를 모두 마친 후 지난 6월 25일 시에 실시계획인가를 신청했다.
인천시도 제출된 실시계획에 대해 조속한 관계기관 협의 등을 거쳐 이날 실시계획인가를 고시함으로써 오성공원의 실효를 해소하게 됐다. 향후 인천시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협력해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지역주민들에게 보다 많은 수혜를 제공하고 주민·공항공사·인천시가 상생할 수 있도록 사업계획을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유광조 시 공원조성과장은 “오성산이 절개되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많은 환경적 피해를 끼쳤던 만큼 오성공원이 지역주민들에게 휴식과 여가공간을 제공하는 기능에 더해 지역 관광자원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공원 실효 방지를 최우선으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실시계획 승인이 난 만큼 이제는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고,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공항공사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광주 생태보고 황룡강 일원을 국가정원으로
광주시의 최대 환경생태 보고인 황룡강 일원을 국가정원으로 조성하자는 제안이 나와 주목된다.
이 같은 제안은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광산갑)이 광주시와 산림청 측에 했다. 이 의원 측은 산림청과 정확한 위치와 부지 면적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는 내부적으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이 의원 측은 장록습지와 송산유원지 등 황룡강 일원을 국가정원으로 지정함으로써 주변의 생태·역사·문화·관광자원을 엮어 광주 서부권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황룡강과 영산강의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해 미래 광주시와 전남도 통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이 황룡강 부근에는 광주 관문인 광주송정역, 어등산 관광단지, 국내 1호 도심 국가습지인 장록습지, 송산유원지 뿐 아니라 월봉서원과 마한역사문화유적지 등이 있어 황룡강 일대가 국가정원으로 조성될 경우 광주 관광산업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정원으로 지정 받기 위해서는 우선 지방정원으로 지정 받아 3년간 이상 운영한 뒤 더 엄격한 요건을 갖춰 산림청에 신청해야 한다. 지방정원으로 지정받는 일이 급선무인 셈이다.
이처럼 국가정원 지정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 이 의원 측은 의암호 일대에 국가정원을 지정 받으려 하는 강원도 춘천시의 행보를 유심히 들여다 보는 한편 황룡강 상류를 국가정원화하려는 전남 장성군과도 의견을 조율할 계획이다.
이용빈 의원실 김동헌 보좌관은 17일 "광주에는 무등산권을 중심으로 하는 개발은 있으나 강을 중심으로 한 개발은 없다"며 "광주의 소중한 자연자원인 황룡강 일대를 국가정원으로 조성하면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큰 혜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광주시는 이 같은 이 의원의 제안을 받고 장록습지·송산공원·임곡습지 등 황룡강 일대를 관광벨트화하는 용역을 의뢰하기 위해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
광주 광산구 ‘장록습지’가 국립생태원 주관 주민역량강화사업 대상지역으로 선정됐다.국내 유일한 도심 속 국가습지인 장록습지는 수 백종의 생물 서식과 멸종위기 1급 수달, 2급 삵, 흰목물떼새 등 야생동물의 안식처로 자연생태적 원형보전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세옥기자 dkoso@mdilbo.com
광주시 생태환경국 관계자는 "개발보다는 보존에 주안점을 두고 황룡강 일대를 관광벨트화할 수 있는 지를 연구하는 것"이라며 "한달쯤 후 발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이 용역이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개발 프로젝트가 아닌 보존 속 관광벨트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장록습지를 확장하는 차원의 노력이라고 보면 된다는 설명이다. 광주시와 이 의원 측은 용역 결과가 나오면 황룡강 국가정원화 사업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한편, 황룡강은 영산강의 제1지류로 장성에서 임곡을 거쳐 어등산과 송정 등을 거쳐 나주로 흐르는 강이다. 국가하천, 지방1급하천, 지방2급하천으로 나눠져 있으며, 유로연장(流路延長)·하천연장·유역면적은 각각 국가하천이 52.74㎞·9.41㎞·567.37㎢, 지방1급하천이 43.33㎞·34.4㎞·424.07㎢, 지방2급하천이 8.93㎞·3.2㎞·22.23㎢이다. 유역면적 가운데 70∼80%가 산림이어서, 영산강 본류 구간에 비해 유역의 농경지 면적이 매우 작은 편이다. 나주시 노안면에는 범람원으로서 비옥한 나주평야의 일부를 이뤘다. 장성군 북하면 쌍웅리에는 백암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황룡강 상류를 막아 만든 장성호가 있다.
박지경기자 jkpark@mdilbo.com
지방정원 지정 거쳐야 지자체가 운영권
산림청, 국가정원 지정·관리
운영은 지자체·예산은 국비
전남 7곳 지방정원 추진중
정원(庭園)은 사전적으로는 집안에 있는 뜰 또는 미관·위락 또는 실용을 목적으로 수목을 심거나 그밖에 특별히 설계한 땅을 말한다.
우리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는 정원을 식물, 토석, 시설물(조형물 포함)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규정했다.
다만, 문화재와 자연공원, 도시공원, 대지에 조경을 한 공간은 정원에서 제외했다.
법규상 정원은 그 조성 규모나 내용 및 운영주체에 따라 ▲국가정원 ▲지방정원 ▲민간정원 ▲공동체정원 등이 있다.
예외적으로 지방정원이 면적, 시설의 종류, 구성요소 등이 국가정원의 지정요건에 적합한 경우에는 산림청장이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협의, 국가정원으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 운영은 지방자치단체가 하지만 정원관리를 위한 예산은 국비로 지원된다. 지방정원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는 경우에는 국가정원을 국가가 운영한다는 개념의 예외가 적용돼 해당 정원이 소재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정원은 순천만국가정원과 태화강국가정원이 있다. 지난 2013년 4~10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조성한 순천만국가정원은 2015년 9월5일에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됐다. 태화강국가정원은 울산 태화강변에 있는 거대한 도시근린공원으로 십리대숲과 정원 등이 있다. 산림청은 원래 지방공원이었던 이곳을 2019년 7월12일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했다.
지방정원의 경우 광주에는 없고 전남에는 죽녹원(담양)이 이미 등록돼 있다. 또 조성 중인 지방공원으로는 장성군이 추진하고 있는 황룡강정원을 비롯해 남도정원(담양)·다산원(강진)·지리산정원(구례)·화순고인돌정원(화순)·백계산동백정원(광양)·휴펀밸리정원(해남) 등이 있다.
박지경기자 jkpark@mdilbo.com
기후재앙 생존 보고서 - 바다생태계 (1) 어민들의 이야기
기후위기 직격탄에 "더 심각해질 일만 남아“
국립수산과학원의 해양관측 자료에 의하면 현재 기준 52년간 전 지구의 표층 온도는 0.48도 올랐다. 우리나라 연근해 표층 수온은 1.23도 상승했다. 전 세계 평균보다 2.6배 높은 상승률이다. 수온이 오르며 인근 해양에 서식하는 어종의 분포나 생태, 바다 환경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고수온 등 기후위기 피해 속출 = 8월 초 폭염 영향으로 전국 최대 해상 가두리 양식장 밀집지인 경남 전 해역에 바닷물 온도가 31도까지 오르는 고수온이 이어진 바 있다. 이는 지난해 평균 수온보다 5도 높은 수치다. 30도 근처 고수온이 수일 이어지면서 도내 양식 어민들은 속수무책 당했다. 지난 11일 기준 도내 양식장에서 고수온 피해로 526만여 마리가 폐사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온이 25∼27도면 관심, 28도에 도달하면 주의보, 28도가 3일 지속하면 고수온 경보를 발령한다. 양식 품종별로 서식하기 적정한 수온과 한계 수온이 있는데 특히 경남지역에서 양식 비중이 큰 참돔, 넙치류, 조피볼락, 숭어류 중 참돔, 숭어는 한계수온이 31도로 그나마 높은 편이다. 그러나 넙치(29도), 조피볼락(28도)은 고수온에 취약하다.
고수온 피해로 말미암은 양식 어류 폐사는 2010년대 들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남에서 첫 폐사 사례가 나온 시기는 2012년이다. 이 시기 고수온 피해로 도내 양식어류 165만 마리가 폐사한 바 있다. 경남어류양식협회 관계자는 "남해안 전역에 걸친 고수온인 데다 30도 이상이라 면역증강제 등 대책에도 속절없이 폐사했다"며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받던 3년 전 수온 31도 기록도 해를 거듭하고 기후위기가 깊어지면서 더 심각해질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7월이면 한창 재첩잡이에 몰두하고 있을 하동군 섬진강 어가들은 올해 재첩 대신 모래와 자갈만 건지는 상황이 태반이었다. 섬진강 어가들은 지난해 집중호우와 상류 댐 방류로 물살에 재첩이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가거나, 퇴적물이 바닥에 쌓이면서 폐사했다는 설명이다.
하동군에서 재첩 서식지 복원을 위해 지난해 가을 재첩 이식사업을 추진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경남지역은 전국 재첩 생산량의 80%가량을 차지한다. 요충지인 만큼 더욱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해양수산부 수산정보포털 자료를 보면 경남 재첩류 생산량은 2013년 948t, 2014년 897t, 2015년 978t, 2016년 857t, 2017년 637t, 2018년 643t, 2019년 454t, 2020년 227t, 2021년 1∼6월 73t으로 급감했다.
하동지역 한 재첩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50일 이상 지속한 장마로 강에 모래 등 퇴적물이 쌓여 재첩이 깔려 죽는 등 서식지가 사라졌다"며 "재첩잡이하면서 이렇게까지 안 잡힌 적이 없었는데 먹고살 길이 막막함은 물론 지역 명물이 사라질까 무섭다"고 말했다.
도내 홍합 어가에 따르면 올해도 고수온, 빈산소 수괴 등으로 지난해에 이어 홍합 폐사가 이어지고 있다. 홍합도 전국 80%가량이 경남에서 생산된다. 해수부 자료를 보면 경남 홍합류 생산량은 2017년 5만 4934t, 2018년 3만 5450t, 2019년 4만 4796t, 2020년 3만 9083t, 2021년 1∼6월 2만 1713t으로 감소세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서 홍합을 양식하는 ㄱ 씨는 "지난해 빈산소 수괴로 홍합이 대거 입을 벌린 채 폐사했는데 올해도 30%가량이 상품성을 잃었다"며 "지난해 흉작으로 소득 없이 빚을 내 종패를 뿌렸는데 올해도 같은 상황일까 두렵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빈산소 수괴는 매년 5∼6월에 발생해 10∼11월까지 지역적으로 나타나는데 지난해엔 남해안 전역으로 번졌고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철 불청객으로 홍합 양식 어가를 괴롭히고 있다. 수산과학원이 내놓은 이상해황 속보·예보를 보면 빈산소 수괴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발생 횟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2012년 9회, 2014년 14회, 2016년 29회, 2018년 34회, 2020년 37회, 올해 8월 13일 기준 19회 발생했다.
홍합 양식 어민 ㄱ 씨는 "홍합 양식은 바다의 상태에 좌우된다"며 "고수온에 더불어 빈산소 수괴 현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니 홍합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점점 척박해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 8월 고수온이 지속하면서 폐사한 통영시 가두리 양식장 물고기들. /통영시
◇겨울 '진객' 대구 방문 줄어 = 겨울철이면 남해안에 찾아오던 손님인 대구도 점점 뜸해지고 있다. 남해안 수온이 따뜻해지는 탓이다.
대구는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이다. 서식 수온은 5∼12도로 12월부터 4월까지 남해안에 산란하러 회귀한다.
해수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 경남지역 대구 생산량은 2016년 691t, 2017년 670t, 2018년 457t, 2019년 527t, 2020년 474t이다. 2010년(941t) 생산량의 절반으로 줄었다.
경남도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 설명을 종합하면 1990년대 남해안에서 어획량이 급감했던 대구는 2000년대 경남도의 인공수정란, 치어 방류사업 등으로 어획량이 늘기 시작했다. 보통 성어로 자라 알을 낳으러 회귀하기까지 5년가량 걸린다. '진객' 대구의 남해안 방문은 2010년 초 진해만을 중심으로 남해안 각지로 확대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온 상승 등으로 답보하거나 감소세를 보였다.
도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는 "대구는 심해 어종으로 수심이 40m가량인 진해만은 수심은 적합하나 계속된 수온 상승으로 겨울철에도 수온이 12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회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수온 상승으로 국산 명태가 옛말이 된 것처럼 먼 미래엔 남해안 대구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남도민일보 안지산 기자 (san@idomin.com)
따뜻해진 경남 바다 주인이 바뀌었다
20년 전보다 어업생산량 50%↑
한류성 어종 줄고 난류성 늘어
경남의 2000년, 2020년 어획량을 비교하면 총어업생산량은 20년 전보다 50%가량 증가했다. 천해양식어업이 90%가량 늘면서 전체 어업생산량을 견인했고 일반해면어업은 소폭 증감세를 꾸준히 유지했다.
통계청 어업생산동향 자료를 보면 2000년 41만 4458t이던 경남 어업생산량은 2020년 59만 6842t으로 50%가량 늘었다. 일반해면어업 생산량은 2000년 21만 1152t에서 2020년 21만 5529t으로 큰 차이가 없다. 20년간 오차범위 ±20% 내에서 증감을 거듭했다. 반면 천해양식어업은 20년 전 20만 1034t에서 37만 7652t으로 90%가량 증가했다. 인공수정 등 양식기술 발달로 생산량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수년간 경남지역 어종 생산량을 비교하면 한류성 어종 생산량은 줄고 난류성 어종 생산량은 증가했다.
도내에서 생산량이 감소한 한류성 어종으론 대구, 청어가 있다. 대구는 5∼12도에 서식하는데 생산량은 2012년(1604t) 이후 꾸준히 감소, 2020년(474t) 4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수온 2∼10도 연안에서 서식하는 청어 생산량은 2008년(1만 1170t) 정점을 찍은 후 2018년(4469t) 절반으로 줄고 2020년 1350t으로 90%가량 급감했다. 한류성 어종 생산량이 줄어든 것은 수온 상승뿐만 아니라 상품성, 어업 인구 감소 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수온 상승이 이어진다면 결국 한류성 어종을 영영 근해에서 볼 수 없게 된다.
경남도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는 "수온 상승에 따라 한류성 어종의 서식지가 점점 북으로 올라가는 추세"라며 "한류성 어종 생산량 감소가 반드시 수온 상승 여파에 기인한 것은 아니지만 수온 상승으로 수산자원 생태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난류성 어종 생산량은 증가세다. 경남 멸치 생산량은 2020년 12만 4249t으로 2019년 8만 9070t보다 30%가량 증가했다. 갈치 생산량은 2020년 1만 264t으로 2019년 4182t보다 2.5배 증가했다. 다만 대표적인 난류성 어종인 멸치, 갈치는 8∼9월 연안 수온이 서식에 적합한 22∼26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해마다 생산량이 들쑥날쑥하다.
도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는 "수온 상승 등으로 제주에서 보이던 아열대 어종들이 남해안에서도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양식기술 또한 아열대 어종 양식 품종 개발, 종자기술 개발 등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낙동강하굿둑 방류량 늘리니 겨울철새가 돌아왔다… 고니 개체 수 3.4배 증가
지난해 낙동강하굿둑 방류량을 늘리자 을숙도 일대 겨울철새 개체 수가 전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큰고니의 먹이인 새섬매자기 군락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낙동강하굿둑 수문 개방도 낙동강하구 자연에 긍정적 변화를 부를 것으로 기대된다.
16일 부산시 낙동강하구에코센터와 환경부 겨울철조류동시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겨울(10월~3월) 중 월별로 낙동강하구의 고니를 관찰한 결과, 최대 3380마리가 확인됐다. 이는 2019년 987마리보다 3.4배나 늘어난 것이다. 낙동강하구 고니는 최대 개체 수가 2017년 816마리, 2018년 979마리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몇 년 새 종적을 감출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으며 우려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고니의 폭발적인 개체 수 증가는 매우 이례적으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고니 증가는 철새 먹이인 새섬매자기가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낙동강하구에코센터가 생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낙동강하구 일대 새섬매자기 군락의 면적은 82만 6020㎡로 2018년 조사 당시 74만 283㎡보다 12%가량 늘었다. 특히 명지갯벌 내 새섬매자기 군락은 26만 6183㎡에서 36만 327㎡로 35%나 넓어졌다.
새섬매자기 군락의 밀도도 높아졌다. 명지갯벌 내 새섬매자기 군락의 건중량은 2018년 40gDW/㎡에서 지난해 136gDW/㎡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을숙도 남단은 62%, 맹금머리등은 57% 증가했다. 건중량은 생물체를 건조했을 때 면적당 질량을 의미한다. 새섬매자기는 키가 20~100㎝까지 자라는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9~10월 땅속 줄기에서 양분 저장을 위해 팽창된 덩이줄기를 생산하는데, 이것이 겨울 철새인 고니의 주요 먹이가 된다.
낙동강하구 새섬매자기 군락은 2011년만 하더라도 면적이 234만㎡에 달해 어느 정도 규모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후 주변 개발 등의 영향으로 감소 폭이 급격해져 2018년 74만여㎡까지 떨어졌다. 새섬매자기 군락이 급격히 줄어든 시기는 고니의 개체 수가 급감한 시기와 일치한다. 철새의 먹이와 철새 개체 수의 상관관계는 이미 상당 부분 입증됐다.
새섬매자기 군락 확대와 고니 개체 수 증가는 낙동강하굿둑 방류량 증가의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한국수자원공사와 낙동강에코센터는 새섬매자기 복원을 위해 하굿둑 방류량을 늘렸다. 방류량이 늘면 하굿둑 아래 철새 도래지 지역의 염분 비중이 줄어 새섬매자기 복원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그동안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새섬매자기 복원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 왔지만 하구 방류량 증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올해 한국수자원공사와 환경부 등은 방류량을 조정하면서 낙동강 하구 일대에 모종 5만 포기를 심는 등 새섬매자기 복원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향후 낙동강하굿둑 개방이 완료되면 방류랑 증가 효과를 가져와 철새의 부산 방문을 늘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박휘순 연구관은 “연도별 분석을 해 보면 방류량이 늘어난 해에 철새 개체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 확인된다”며 “현재 진행 중인 낙동강하굿둑 개방은 철새 먹이와 철새의 개체 수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탄소배출 줄이는 슬기로운 인터넷 사용법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지난달 16일 김부겸 국무총리(가운데 위)가 참여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특별정상회의가 화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에게도 화상회의가 일상이 된 시대에 탄소중립에 대한 고려는 인터넷 활용에서도 필요하다. 발표자 외에 화면을 끄면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로 북적이는 출근길과 여행이 사라진 요즘.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인터넷이다. 온라인 화상회의는 재택근무의 필수요소가 됐다. 극장엔 못 가도 동영상 실시간재생(스트리밍) 서비스로 최신 영화를 감상하며 무료함을 달랜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오랜 감염병 유행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그러나 이렇게 편리한 인터넷도 탄소중립과는 거리가 멀다. 올해 1월 미국 메릴랜드대ㆍ퍼듀대ㆍ메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 1GB당 탄소 28~63gCO₂e가 배출된다. CO₂e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이산화질소 등 여러 온실가스를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한 '탄소환산량'을 뜻한다. 이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저장ㆍ가공하는 인터넷의 ‘뇌’ 데이터센터 가동에 어마어마한 전력이 드는 탓이다. 특히 데이터 저장보다는 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영향이 더 크다.
드라마를 감상하고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도 탄소배출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간단한 실천으로도 큰 변화가 가능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외출이 줄어들면서 유튜브,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감상이 많은 사람들의 주된 여가가 됐다. 게티이미지뱅
영상 감상은 HD가 아닌 일반화질로
넷플릭스로 1시간짜리 드라마를 보면 약 441gCO₂e의 탄소가 배출된다. 울트라HD 또는 4K 고화질 영상을 봤을 때 기준이다. 만약 하루에 4시간씩 이렇게 영상을 본다면 한 달이면 탄소 약 53㎏CO₂e가 배출될 것이다. 이는 휘발유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구(237㎞)까지 가는 동안 배출되는 탄소와 맞먹는다.
하지만 같은 영상을 일반화질로 본다면 한 달간 배출되는 탄소량은 2.5㎏CO₂e로 줄어든다. 화질을 조금 낮추는 것만으로도 획기적으로 탄소배출량이 감소되는 것이다.
이는 넷플릭스뿐 아니라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특히 유튜브 영상을 1시간 볼 때 배출되는 탄소량은 최대 1,005gCO₂e으로 넷플릭스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시각적 효과가 많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고화질 스트리밍으로 볼 때 얘기다. 영상미도 좋지만, 가끔은 화질보다 지구를 선택해보자.
화상회의 할 땐 발표자 빼고 화면 끄기
화상회의 역시 코로나19 유행 이후 사용이 증가한 대표적 스트리밍이다. 각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동시 생중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상회의 1시간에 평균 157gCO₂e의 탄소가 발생한다. 회의 참석인원과 상관없이 여러 화상회의 서비스의 평균을 낸 수치다. 하루 평균 3시간의 회의를 하는 직장인의 경우 한 달이면 탄소 9.4㎏CO₂e를 배출하는 셈. 차를 타고 서울에서 수원(약 40㎞)까지 갈 때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 소나무 8.2그루가 있어야 흡수되는 양이다.
단지 영상을 끄고 음성으로만 회의하는 변화로 한 달 배출량이 377gCO₂e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는 3년간 매일 밤 스마트폰을 충전하면서 발생하는 것만큼의 탄소를 줄인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음악 여러 번 듣는다면? 스트리밍 말고 다운로드
이미지를 전송하거나 영상을 보는 것에 비하면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는 것은 비교적 적은 전력이 소모된다. 그러나 음악 스트리밍 역시 탄소배출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2019년 영국 글래스고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음악 스트리밍으로 인해 배출되는 탄소량은 점점 늘어 한해 2억~3억5,000만㎏CO₂e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가 아닌, 미국 사용자만 따진 것이다.
연구진은 음악 한 곡을 27번 이하로 들을 거라면 스트리밍을 써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즉, 27번 이상 들을 거라면 CD를 사거나 다운로드를 받는 게 친환경적이라는 얘기다. 최애 아이돌의 음악을 자주 즐기고 싶다면, 스트리밍보다는 직접 음반을 사모으는 재미는 어떨까.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금융의 지배,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정체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⑫ 기본소득과 신용의 사회화 (2)
은행화폐와 신용의 사유화 vs. 정부화폐와 신용의 사회화
'이자가 붙은 은행 빚' 형태의 은행화폐가 맹목적 경제성장을 강요하고 서민들의 삶을 곤궁하게 만들어 온 것이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왜 돈을 빚의 형태로 만들어 내는가? 이자가 붙지 않은 돈을 만들면 되지 않는가?' '이자 수취를 통한 은행의 독점적 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은행의 이자 수입을 공공의 목적에 사용하거나, 은행 대출을 무이자로 할 수는 없는가?'
앞의 문제의식을 은행화폐에서 공공화폐로의 전환, 뒤는 은행의 공공화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제까지 민간 금융세력이 독점하면서 사적 이익 추구의 발판으로 삼아온 화폐와 신용에 대한 통제를 사회 즉 정부에 되돌려 주자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화폐제도개혁 운동가인 리처드 쿡은 2009년 "은행업자들이 화폐창조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최악의 민영화"이며 "부채를 기초로 한 이 통화제도는 그 희생자인 사회가 죽어서야 행전이 끝날 것이다. 지금 세계가 죽어가고 있다"고 절규했는데,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존 금융제도를 혁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녹색평론> 111호 40쪽)
잉글랜드은행 창립, 신용 사유화의 시초
화폐 창조 권력을 둘러싼 민권 대 금권의 대립, 시민.사회.정부 대 금융세력 간의 대립은 1694년 영국의 민간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 창립에서 시작됐고, 300년이 지난 지금도 화폐 및 신용에 대한 통제권은 민간 금융가들의 수중에 장악돼 있다.
1694년 영국의 윌리엄 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민간 은행가들로부터 120만 파운드를 빌리는 대가로 잉글랜드은행 설립을 인가하고 민간 은행가들에게 화폐발행권을 넘겨주었다. 잉글랜드은행 설립은 근대 금융제도의 효시이며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들도 영국의 선례를 따르고 있다. 잉글랜드은행 설립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로마시대 이래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시대까지만 해도 정부가 갖고 있었던 화폐발행권을 민간에 이양했다. 이는 정부재정을 위한 자금도 정부의 화폐 발행이 아니라 민간 금융업자들에게 돈을 빌려(국채 발행) 충당하는 것이다. 즉 공공 목적의 재정 사용을 위해 온 국민이 민간 금융업자에게 이자를 지불하는 셈이다.
둘째, 현재와 같은 은행화폐 관행이 정착됐다. 즉 부분지급준비제도에 의해 '무(無)에서 돈을 창조'하고, 이 대출금에 '이자가 붙은 은행 빚'으로서의 은행화폐가 대세가 된 것이다.
원래 유럽에서도 중세까지 이자놀이(usury)는 사형까지도 받을 수 있는 중대범죄였다. 대부분의 주요 종교에서 돈의 유일한 정당한 목적은 실제의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지, 돈으로 돈을 증식한다는 것은 도둑질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현재의 이슬람은행은 이자 증식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무(無)에서 돈을 창조'하는 부분지급준비제도와 이자놀이가 허용된 것은 신대륙 발견과 원격 무역, 산업혁명 등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했던 반면 자본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카리브해 지역에서의 사탕과 담배 농장 경영,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에 의한 공장제 공업 발달 등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이같은 사업을 위해서는 장기간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까지 유럽은 자본 부족 상태였으며 경제 팽창을 위한 신용 공급을 위해 은행 화폐가 용인됐던 것이다.
민권 대 금권의 대결, 미국의 경우
반면 미국의 경우는 건국 당시부터 20세기 초까지 민권 대 금권, 정부화폐 대 은행화폐의 대결이 이어졌다. 폴 그리뇽에 따르면 1776년의 혁명 이래 미국의 역사는 주로 유럽 국제은행가들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거대한 투쟁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투쟁은 1913년에 시민의 패배로 종결됐다. 그해 연방준비제도법에 서명함으로써 국제 은행카르텔이 미국의 통화를 지배하도록 허용한 윌슨은 대통령 퇴임 후 "나는 속아 넘어가서 나라를 배반하였다"면서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고 한다.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의 하나다. 나는 부지중에 내 나라를 망쳤다. 한 위대한 산업국가가 자신의 신용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우리의 신용제도는 집중화되어 있다. 그리하여 국가의 성장과 우리의 모든 활동은 몇몇 소수인의 손에 장악돼 있다. 우리는 문명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으로 지배되고, 가장 완전히 통제되는 정부의 하나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운 의견에 의한 정부도, 다수의 의견과 투표에 의한 정부도 아니라, 소그룹의 지배자의 의견과 강박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가 되었다."
애당초 미국을 탄생시킨 독립혁명이 통화주권을 둘러싼 대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미국의 건국 시조 중 한 명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식민지인들이 (영국의) 조지 3세와 국제은행가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신들의 돈을 발행할 항구적인 힘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 아메리카혁명전쟁의 주된 이유였다"고 밝혔다.
식민지 시기 미국은 공공화폐(지역화폐) 발행을 통해 번영과 평화를 누렸으나 1764년 이를 시기한 영국의 금융업자들이 의회에 압력을 넣어 식민지의 독자적인 화폐발행을 금지시킴으로써 1년만에 통화량이 반감되고 실업자가 늘어나며 경기 침체가 10년간 계속되면서 결국 독립전쟁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는 인지세법이나 수입 차(茶)에 대한 과세가 독립전쟁의 원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나 실상은 가혹한 통화 압제였던 셈이다. 프랭클린은 "영국의 금융업자들이 식민지의 빈곤을 초래하지 않았더라면 식민지는 차와 같은 물품에 과해지는 소소한 세금 부담쯤은 쾌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독립전쟁의 진정한 원인이 은폐된 것은 미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금권세력의 압력 때문일 것이다.
독립 이후에도 민간 금융세력에 대한 미국 정치인들의 반감과 경계는 계속 이어졌다. 예컨대 3대 대통령(1801-1809년) 제퍼슨은 "나는 은행제도는 우리들의 자유에 대해서 상비군보다도 위험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중략) 통화 발행권은 은행으로부터 되돌려 받아 그 정당한 보유자인 국민에게 반환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민중의 대통령으로 알려진 앤드류 잭슨(1829-1837년)은 "만일 국민이 우리의 통화와 금융제도의 이 엄청난 부정을 알게 된다면 곧바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대통령은 금융가들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중앙은행들인 제1합중국은행과 제2합중국은행을 각각 해산시켰는데 제퍼슨은 중앙은행에의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균형 예산을 유지할 수 있었고, 잭슨은 국가 부채를 완전히 갚을 수 있었다.
링컨과 정부화폐
특히 링컨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전쟁(1861-65년)을 민간 금융업자들로부터의 차입 없이, 즉 은행화폐가 아닌 정부화폐 발행만으로 치러냈다. 당시 연방정부는 거액의 전쟁자금을 신속히 확보해야 했는데, 뉴욕의 은행업자들은 자그마치 27-36%라는 고리대 수준의 이자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링컨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 4억 5천만 달러의 정부화폐를 발행했다. 이 정부지폐는 다른 지폐와 구별하기 위해 뒷면을 녹색 잉크로 인쇄했기 때문에 '그린백'으로 불렸는데, 링컨은 이 이자 없는 정부화폐를 사용하여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린백'의 발행은 정부가 이자 지불의 의무가 있는 은행화폐를 빌릴 필요가 원래부터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 1960년대 미 하원 은행통화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라이트 패트먼 의원의 추산에 따르면 만일 당시 링컨 행정부가 민간은행에 연 5% 이자의 국채를 팔아 전쟁자금을 조달했을 경우, 100여년이 지난 1964년까지 23억 달러를 지불하든가 원금의 약 5배를 차입해야 했다고 한다.
링컨은 전쟁 후에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비용을 조달하고 일반 국민의 소비에 필요한 모든 통화와 은행예금을 정부는 스스로 발행.유통시켜야 한다. 통화를 만들고 발행하는 특전은 정부가 가진 하나의 특권일 뿐만 아니라, 최대의 건설적인 기회이다. 이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납세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이자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돈은 인간의 주인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하인이 되는 것이다."(빌 토튼,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 83~84쪽)
링컨의 시도는 대의정부의 통화발행이야말로 경제적 민주주의의 열쇠임을 말해주고 있다. 반면 영국의 금융세력은 링컨의 통화정책을 다음과 같이 저주했다.
"북아메리카에 기원을 둔 이 악질적인 금융정책이 만약 관행으로 굳어진다면, 그 정부는 자신의 돈을 아무 비용 없이 공급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부채를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부채 없이 지낼 것이다. 앞으로 그들은 상거래에 필요한 돈을 충분히 갖게 될 것이고 세계 역사상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세계 각처에서 두뇌와 부가 북아메리카로 몰려들게 될 것이다. 이 나라는 파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상의 모든 군주국이 파괴될 것이다."(<런던타임스> 1865년)
<런던타임스>의 이 논평은 금융업자들이 정부화폐의 가치와 잠재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높이 평가했음을 말해준다. 정부화폐가 번영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만일 정부화폐를 허용한다면 금융업자 자신들과 기득권 세력은 망할 수밖에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한 셈이다.
이처럼 정부화폐가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이라면, 남북전쟁 이후 왜 미국은 정부화폐를 통화제도의 근본으로 삼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그림자정부' 금융세력의 권력이 정치세력의 힘을 능가할 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전쟁 후 은행가들은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그린백'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했고 1900년에도 '그린백'은 미국에서 유통되는 통화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연방준비제도의 창설, 금융의 지배의 완성
그러나 더 이상 정부화폐의 발행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1873년, 1893년의 공황을 거치면서 은행은 연방정부보다도 강력한 제도가 되었다. 공황은 기본적으로 신용 경색이고 신용 경색을 타개하려면 대규모의 통화를 풀어야 했는데, 연방정부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예컨대 1893년의 공황은 당시 미국 최대의 부호인 J. P. 모건이 사재를 털어 넣음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13년 미국 최대 부호들의 극비 회동에 의해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가 창설됐다. 12개의 지역 연방준비은행과 이를 통괄하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로 구성된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는 미국 중앙은행제도를 관장하는 '기업체'이다.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은 모두 민간 금융가들의 소유이다. 예컨대 이들 중 최대인 뉴욕연방준비은행의 주주는 런던과 베를린의 로스차일드은행, 암스테르담의 워바그은행 등 국제금융자본가들이며 미국 정부는 단 1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1913년 연방준비은행법 통과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찰스 린드버그 2세는 "연방준비은행 시스템은 사적인 것이며, 타인들의 돈을 가지고 최대의 사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이 법률의 통과를 입법부에 의한 최악의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녹색평론> 111호 22쪽)
또한 그 자신이 은행가이기도 했던 하원의원 루이스 맥파든은 연방준비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연방준비은행이 합중국의 정부기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정부기관이 아니다. 스스로의 이익과 외국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합중국 국민을 먹이로 삼는 사적(私的) 신용 독점 기업체이다. 연방준비은행은 외국 증앙은행의 대리인이다. 헨리 포드는 '이들 금융업자들의 목적은 소멸 불가능한 채무를 창조함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오만한 신용 독점에 의해 합중국 정부를 강탈해 왔다는 것이 진실이다."(빌 토튼,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 72쪽)
연방준비제도가 정부 기관인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을 지명한다는 사실 때문인데, 이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5년에 시작된 관례에 불과할 뿐이다. 연방준비제도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금융가들이 관장하는 기구이며,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의 신용을 통제하는 연방준비제도가 창설됨으로써 금융자본의 세계 지배는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인간이 멈추지 않으면 폭염은 끝나지 않는다
당신의 생존을 위해 놓치면 안 될 기후 뉴스
그동안 세계 기후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의 빨라진 시계를 제시했고, 우리나라의 대응 초안도 나왔다.
미래 세대까지 갈 것 없이 바로 당신의 생존을 위해 놓치면 안 될 뉴스들이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보니
지구온난화 원인은 인간 영향 명백
온난화 1.5도 도달 시점 점점 빨라져
이제 남은 눈금은 불과 0.41도
1도 오르면 극한고온 4.8배 증가
우리나라 ‘탄소중립 계획’ 미흡
개인·기업 실천 앞서 정치 결단 필요
과학이 가리키는 것
1. 온난화는 인간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9일 제6차 평가보고서의 제1실무그룹 보고서를 승인, 발표했다. IPCC는 유엔 산하 국제협의체로, 5~7년마다 기후변화 관련 보고서를 내놓는다. 내년 완료될 6차 평가보고서의 4종 가운데 첫 번째인 이번 보고서는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의 기후 정책 수립에 활용될 과학적 근거를 담고 있다. 이 보고서의 처음은 이렇다. “대기와 해양, 토양의 온난화는 인간 영향이 명백하다.” 부산대 이준이 교수, APEC 기후센터 권원태 원장 등 한국 과학자들을 비롯해 65개국 234명 저자가 지난 2013년 5차 보고서 이후 1만 4000편의 검증된 연구 논문을 종합 검토하고 분석해서 내린 ‘과학적으로 확립된 사실’이다.
2. 변화는 광범위하고 빠르다 온실가스의 영향이 없었던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전 지구 지표면 온도(2011~2020년)는 이미 1.09도 올랐다. 국제사회가 파리협정에서 채택한 마지노선 1.5도에서 불과 0.41도가 남았다. 5차 보고서 때 분석(2003~2012년, 0.78도)과 비교해도 속도가 가파르다. 원인별로 보면 온실가스의 온난화 효과가 1~2도고, 나머지는 에어로졸 등의 냉각화나 내부변동성 등이다.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200만 년, 해수면 상승 속도는 지난 3000년, 빙하 감소는 지난 2000년 동안과 비교해도 전례가 없는 규모다.
3. 2040년 전에 마지노선 넘는다 이번 보고서의 핵심은 2021~2040년 중에 1.5도 지구온난화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해당 장의 총괄주저자인 부산대 이준이 교수는 기상청 브리핑에서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에 상관 없이 2040년 이전에 1.5도 온난화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가장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이번 세기 말에는 1.5도 이하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만, 탄소중립을 이루기 전까지 지구 온도는 계속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2030년대 중·후반이면 1.5도를 넘을 것이라는 평가다. 이 시점은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제시한 것(2030~2052년)보다 10년 이상 앞당겨진 것이다.
4. 온난화의 영향은 파괴적이다 지구온난화는 0.5도 상승만으로도 폭염, 집중호우, 가뭄과 같은 극한 기후현상의 빈도와 강도를 두드러지게 증가시킨다. 극한고온 전망을 보면 산업화 이전에는 50년에 한 번 발생했던 수준의 폭염이 지금 수준인 1도 온난화라면 같은 기간에 4.8차례 발생하고 최고 온도도 1.2도 더 오른다. 올 여름 터키, 그리스에 산불 대란을 불러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예견된 재앙이라는 의미다. 1.5도 온난화라면 8.1차례, 2도 상승, 2도 온난화라면 13.9차례, 2.7도 상승으로 더 치솟는다. 강수도 마찬가지다. 온난화가 1도 증가할 때마다 전세계 일일 강수 극한현상은 7% 강화되고, 태풍 같은 열대 저기압도 강도와 풍속이 증가한다.
5. 어떤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 특히 해양, 빙상, 해수면에서 일어날 변화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 동안 되돌릴 수 없다. 남은 21세기 동안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한다고 해도 이미 악화된 해수온과 해양 산성화·탈산소화는 속도의 문제일 뿐 더 나빠질 것이다. 전 지구 평균 해수면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할 경우 2100년까지 최대 2m 높아지고, 수백 년 이상 계속 더 높아지다가 높아진 채로 수천 년 이상 남을 것이다. 산과 극지의 빙하가 최대 수백 년 동안 계속 녹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나리오에서 2050년 이전에 최소 한 번은 9월 중에 북극의 해빙이 거의 다 녹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됐다.
정답은 나와 있지만
6. 지구상에 예외는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폭염 같은 더위의 영향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 1.5도 온난화일 때 호우나 홍수는 아시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북미, 유럽 대부분에서 더 강력해진다. 농업과 식량, 생태의 영향은 전 지구에 미친다. 부산과 같은 해안 도시에서는 극한 해수면과 강우, 하천유량이 조합돼 범람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발생하는 식의 복합 현상도 더 자주, 더 길게, 더 넓은 지역에서 나타날 것이다. 기상청은 12월에 1km 단위의 남한 상세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발표할 예정이다.
7. 탄소중립은 필수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처음으로 미래 사회경제상 변화를 함께 적용한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경로 5가지를 제시했다. 이 중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시나리오라면 2081~2100년에는 온난화를 1~1.8도로 제한할 수 있다고 전망됐다. 가장 많이 배출하는 시나리오일 때는 3.3~5.7도 상승한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탄소중립, 즉 ‘넷 제로’를 이루고 이후에는 오히려 흡수(넷 네거티브)를 해야 가까스로 1.5도 수준의 온난화 억제가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다면 21세기 안에 1.5도, 2도 온난화를 넘어선다.
8. 한국은 약속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11위(2017년 기준), OECD 국가 중 5위의 온실가스 배출 국가다. 국제사회는 이번 보고서를 토대로 올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당사국 총회(COP26)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우리나라는 COP26 전까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목표로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2017년 배출량 기준 24.4%라는 NDC 목표를 제출했다가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의 권고에 따라 상향을 약속했지만 결과는 감감무소식이다.
9. 초안이 나왔다 NDC 목표에 앞서서 탄소중립 정책 방향과 전환 속도를 가늠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이 먼저 나왔다. 올 5월 출범한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 5일 3가지 시나리오 초안을 제시했는데, 환경단체와 경제계 양쪽의 비판을 받았다. 환경단체는 2050년까지 석탄발전 등 탄소 배출을 유지하는 1, 2안에 대해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에너지정의행동)고 밝혔다. 반면 경제계는 산업 부문 감축 목표(2018년 대비 79.6%)가 지나치게 높다는 입장이다. 위원회는 국민 의견을 수렴해 10월 말까지 정부 최종안을 발표한다.
10. 정치가 필요하다 “이번 보고서는 인류에 대한 ‘코드 레드’”(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용감하게 결정을 내리는 일은 우리에게 달렸다(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같은 논평이 일제히 지목하는 것은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은 2018년 기준으로 에너지(86.9%), 산업(7.8%), 농업(2.9%), 폐기물(2.3%) 순이다. 개인과 기업의 실천에 앞서 정치의 결단이 필요하다.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는 기후공약이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까지 이재명, 이낙연, 추미애 등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들이 기후에너지부 신설, 기후정의 기본권을 명시한 헌법 개정 등을 공약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미세먼지 초과사망률은 해운대, 초미세먼지는 동래 최고
부산시보건환경硏 5년간 조사
- 미세먼지는 심혈관질환 사망에
- 초미세먼지는 호흡기에 큰 영향
- 정부·市, 농도 감소 대책만 집중
- 피해저감 대책 등 정책전환 촉구
부산의 미세먼지(PM10) 농도가 상승할 때 초과사망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곳은 해운대구이며, 초미세먼지(PM2.5)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동래구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그동안 정부와 부산시가 (초)미세먼지 정책 수립 때 농도를 낮추는데 행정력을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초)미세먼지와 초과사망률과의 관계를 따져 사망률 등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문제는 부산시보건환경연구원 도우곤(대기환경연구부) 박사와 인제대 정우식(대기환경정보공학과) 교수가 발표한 ‘최근 부산지역 PM10, PM2.5 일평균에 의한 호흡기 및 심혈관질환 초과위험도 분포’ 논문에서 제기됐다.
연구진은 2015~2019년 5년간 (초)미세먼지 농도, 자연 사망자 수 등을 분석한 결과, (초)미세먼지가 10㎍/㎥ 증가할 때 초과사망률은 0.42~0.64% 상승했다고 18일 밝혔다. 미세먼지 농도 상승(0.64%) 때가 초미세먼지 농도 상승 때(0.42%)보다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심혈관질환 사망률은 미세먼지가 1.16%, 초미세먼지가 0.91%로 미세먼지의 영향이 큰 반면, 호흡기질환은 초미세먼지(2.80%)가 미세먼지(1.69%)보다 높아 반대 양상을 보였다.
미세먼지로 인한 구·군별 초과사망률은 해운대구가 0.81%로 가장 높았고 영도구가 0.24%로 가장 낮았다. 2~15위는 ▷남·동구(0.78%) ▷서구(0.73%) ▷동래구(0.7%) ▷금정구(0.69%) ▷강서구(0.64%) ▷연제구(0.58%) ▷중구(0.57%) ▷수영구(0.54%) ▷사하구(0.5%) ▷부산진구(0.45%) ▷사상구(0.44%) ▷북구(0.36%) ▷기장군(0.35%)이었다.
특히 호흡기질환은 연제구, 심혈관질환은 해운대구가 가장 높았다. 65세 이상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 초과사망률은 동래구가 1.56%로 가장 높았고, 기장군이 0.52%로 가장 낮았다.
초미세먼지로 인한 초과사망률은 동래구가 1.02%로 가장 높았고, 북구가 -0.14%로 가장 낮았다. 나머지 구는 ▷부산진구(0.81%) ▷서구(0.63%) ▷중구(0.57%) ▷남구(0.53%) ▷금정구(0.46%) ▷동구(0.41%) ▷해운대구(0.4%) ▷영도구(0.37%) ▷사상구(0.31%) ▷강서구(0.3%) ▷연제구(0.2%) ▷수영구(0.19%) ▷사하구(0.15%) ▷기장군(0.01%) 순으로 낮아졌다.
호흡기질환은 동래구, 심혈관질환은 영도구가 가장 높았다. 65세 이상의 초과사망률도 동래구가 1.09%로 가장 높았고, 연제구가 0.11%로 가장 낮아 전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보건환경연구원 도 박사는 “시는 앞으로 (초)미세먼지로 인해 사망률이 높아지는 지역을 우선 고려해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앞으로 의료 빅데이터를 추가하고 비용편익 분석을 실시해 실제적인 피해 효과를 산정하는 연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초과사망률
기존 사망률 대비 특정 요인의 변동에 따라 기존 사망률에서 증감된 사망률.
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
도시에 사는 포유류, 몸집이 커지는 이유
온난화하면 몸 크기 줄어든다는 법칙 위배
도시화로 음식 구하기 쉬워졌기 때문 추정
코요테가 미국 텍사스 사우스레이크 거리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도시에 사는 동물들은 시골 동물들보다 먹이를 구할 기회가 더 많다.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제공
도시는 동물들 특히 포유류 몸집을 작게 만들 것이라는 가설은 많은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도시의 건물들과 도로는 시골보다 열을 더 많은 가두고 되뿜어 주변보다 온도가 높다. 이른바 도시열섬 효과다. 따뜻한 곳에 사는 동물들은 추운 환경에서 서식하는 같은 종류의 동물보다 몸집이 작은 경향이 있다. “항온동물들은 추운 곳에 살수록 몸의 크기가 크다”는 ‘베르그만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포유류의 몸집은 점점 더 작아져야 한다.
하지만 미국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은 지난 80년 이상 수집해온 100종 이상의 미국 포유류들의 몸 길이와 무게를 측정한 14만500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대치 않은 결론에 도달했다. 곧 도시 서식 포유류들은 시골에 사는 같은 종들에 비해 더 크고 무거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곳에서는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 16일(현지시각)치에 실렸다.
미국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포유류 표본집. 인간의 환경 변화로 동물들에 어떤 영향이 생겼는지 알 수 있다.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제공
논문 주저자인 매기 핸탁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박사후연구원은 “이론적으로 도시 동물들은 열섬 효과 때문에 몸집이 작아져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논문은 베르그만 법칙이나 기후만이 동물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가정할 수 없다는 논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기후와 도시화의 주요 상징인 주거지 인구밀도가 동물 크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기온이 떨어짐에 따라 몸 길이와 무게는 대부분의 동물들에서 증가했다. 여기까지는 베그르만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런 경향은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강했다.
아메리칸 오소리처럼 낮과 밤에 활동을 전환할 수 있는 동물은 도시 지역에 사는 것이 이롭다.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제공
하지만 놀랍게도 도시 동물들은 기온에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몸집이 커져왔다. 이는 도시화가 동물들 몸집을 키우는 데 기후와 똑같이 영향을 끼치거나 오히려 능가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논문 공저자인 로버트 거럴닉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생물다양성정보부장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하지만 도시화는 수천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자연 교란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도시화의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온난화가 많은 동물종을 소형화할 것이라는 경고를 제기했다. 몸집의 소형화가 낳은 결과가 무엇일지는 알 수 없지만 과학자들은 작아진 동물들은 더 작고 적은 새끼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돼, 먹이가 줄어든 육식동물들이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구팀은 논문이 과학자들이 동물 크기의 변화 분석 요인에 도시화를 추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관광명소화" vs. "시대착오적"... 부산 황령산 개발 논란
박형준 시장, 봉수전망대 등 개발 위해 민간업체와 업무협약... 환경단체 즉각 반발
▲ 박형준 부산시장과 최삼섭 대원플러스그룹 회장이 19일 황령산유원지 조성사업을 통한 부산관광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김보성
흉물로 남아 있는 스키돔 정상화를 이유로 부산 황령산 일대 개발이 이루어진다. 한 민간업체와 업무협약을 맺은 박형준 부산시장은 관광 자원화와 보존을 동시에 강조했지만, 환경단체는 "황령산 파괴를 중단하라"며 즉각 반발했다.
도심 속 녹지 황령산, 계속되는 개발 시도
박형준 부산시장은 19일 오전 9시 40분 최삼섭 대원플러스그룹 회장과 황령산 유원지 조성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10여 년 째 방치된 스키돔 시설인 스노우캐슬을 재정비하고, 황령산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꾸미겠다는 의도다. 부산시와 대원은 관광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상호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부산 연제구, 수영구, 남구에 위치한 높이 412m의 황령산은 자연적, 역사적 가치가 크다. 부산의 대표적 녹지여서 '도심 속 허파'로 불리고, 정상에는 조선시대 봉수대(세종 7년 설치)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에도 이곳 역시 개발 논리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07년 최초의 실내 스키돔을 표방한 스노우캐슬이 지어졌으나, 개장 1년 만에 폐장했다. 이후 다른 민간업체 인수로 다른 관광시설 추진 시도가 이어졌다. 105m 전망대, 케이블카, 유원지 추진 사업 등이 계속 언급됐다.
이번에는 부산시장이 황령산 관광개발 사업을 공식화하면서 논란이 더 커질 전망이다. 시는 스키돔 장기 방치 상황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며 황령산의 재생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 발표한 내용을 보면 대원은 황령산 유원지 개발을 위해 정상에 국내 최고 높이의 봉수전망대와 로프웨이(케이블카)를 조성하고, 시는 행정적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양 측은 황령산 전망대가 세계 3대 야경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나폴리, 홍콩, 일본 하코다테 못지않은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본다. 전망대 외에 유원지 개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이날 더 공개하지 않았지만, 여러 시설도 들어설 계획이다. 업체 측은 스키돔 일대를 도심형 관광휴양 시설로 꾸미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30 부산세계엑스포와 연계도 부각한다. 시와 대원은 이 시설이 "경제적 효과는 물론 박람회 유치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을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꿈이고, 2030세계엑스포를 앞두고 누구나 찾아올 관광테마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생태계 파괴 우려에 대해서는 방치된 공간의 재생을 강조하며 "이 사업 전체가 환경 보존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했다.
▲ 황령산ⓒ 김보성
▲ 부산의 황령산 정상 봉수대. 조선시대 만들어진 군사시설이다. 현재 4개 지역에 걸쳐 있는 황령산은 대표적 자연 녹지로 "도심 속 허파"라고 불리지만, 수년째 개발 논리에 시달려왔다.ⓒ 김보성
"관광지 조성하겠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
하지만, 환경단체는 이러한 설명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성근 그린크러스트 상임이사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절차적 문제점부터 언급했다. 이 상임이사는 "시민과 숙의, 합의 과정이 전무하다. 왜 황령산 개발에 이렇게 집중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라면서 "도시 녹지의 생태를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은주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기존 스키돔도 졸속으로 건립돼 후유증이 큰 상황"이라며 "복원이 필요한 곳에 유원지나 전망대, 케이블카 등 관광지를 조성하겠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민 사무처장은 "민간업체의 이익을 위한 개발 특혜에 시민단체 차원으로 대응에 나서겠다"라며 "세계엑스포도 기후위기 등에 발맞추는 상황인데 이런 개발은 정반대 행태"라고 말했다.
구자상 부산생명의숲 대표 역시 황령산 관광개발이 부산시가 말하는 생태도시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스키돔 사태에 대한 반성도 없이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라며 "구태의연한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우리가 보존을 외치는 이유는 개발보다 그 생태적 가치의 공공성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대책위를 꾸리거나 공동대응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개발로 일자리, 경제 활성화가 이뤄졌다면 이미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엘시티나 오시리아 사례처럼 막개발은 민간기업의 배만 불릴 뿐이다. 박형준 시장이 그린스마트도시를 지향한다면 개발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 김보성(kimbsv1)
갈길 먼 화석연료 탈피, 1차 에너지 수요 85% 차지
2019년 소비 증가폭 재생에너지보다 커
비탄소전력 비중 20년 동안 1.5%P 증가
2019년 1차 에너지 수요의 85%는 여전히 화석연료가 차지하고 있다. 20년 동안 재생에너지가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P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탈화석연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정한 목표대로 지구온난화를 1.5도로 막으려면 화석연료를 태양과 바람, 물에서 나오는 무한하고 재생가능한 청정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 목표는 이번 세기 중엽까지 지구시스템이 흡수할 수 있는 양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곧 탄소중립을 이루는 것이다.
‘뉴사이언티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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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달성하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에너지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목재와 같은 전통적인 바이오매스를 제외하면 화석연료는 1차 에너지 수요에서 거의 85%를 차지한다. 1차 에너지는 열 에너지나 전기에너지, 수송연료로 변환하기 전 천연상태의 에너지를 말한다. 석탄, 석유, 가스 등 세 가지 화석연료 가운데 유일하게 석탄 수요만 줄어들고 있다. 2019년 1차 에너지 소비의 증가는 재생에너지보다 화석연료가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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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사용처
에너지 소비는 크게 3개 영역으로 나뉜다. 영역별로 대략 3분의 1씩 차지하고 있다.
첫째 주거나 일터, 여가 장소 등에 쓰이는 건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가 있다. 이들 가운데 77% 정도가 난방에 쓰인다(냉방에는 훨씬 적게 든다). 이 에너지의 10%만이 재생에너지에서 나온다. 여기에는 바이오매스나 목재를 사용하는 난방은 빠져 있다. 나머지 23%의 건물 관련 에너지는 조명이나 전자제품에 쓰이는 전기에너지다. 재생에너지가 약 26%를 감당하는데, 이 비율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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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영역은 산업과 농업이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약 75%는 열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산업 공정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증기를 만들고 건조 및 냉장에 사용한다. 나머지는 기계를 작동하거나 조명을 위한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쓰인다. 철강이나 시멘트 등 고에너지수요 산업의 일부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반면 제지산업은 에너지 수요의 46%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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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영역인 수송 부문에서 화석연료(주로 석유)는 수요의 97%를 담당한다. 주로 자동차 연료나 항공기 연료로 쓰인다.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거나 휘발유와 경유차를 전기차로 대체하고 바이오연료나 수소처럼 대체연료(청정에너지로 생산됐다면)를 사용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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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나
캐나다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가 1인당 에너지 소비로 상위 3개국을 차지하고 있다. 높은 자동차 및 항공기 이용률, 넓은 집과 교외 생활, 냉난방에너지 과다 사용 등이 주요 요인이다.
각국은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충당한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는 1인당 석탄 사용이 캐나다와 미국보다 많다. 남아공과 중국의 1인당 석탄 사용량은 비슷하다.
겨울이 길고 추운 캐나다처럼 스웨덴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저탄소 핵발전이나 수력에서 얻는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은 에너지 믹스에서 상당부분을 원자력에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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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생산
재생에너지 전력생산 용량, 특히 태양광은 최근 몇 년 동안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전기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어 화석연료 생산도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원자력은 감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현재 신규 세계 전력생산 용량의 75%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비탄소 전력의 비중은 2000년 35.2%에서 2020년 36.7% 증가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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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이 수치가 거의 100%에 가까워져야 한다. 이는 풍력 터빈과 태양 전지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재생에너지가 지닌 일일, 계절 변화에 따른 전력 공급의 자연 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한 송전 설비, 배터리와 스마트 그리드 등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
‘뉴사이언티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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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인류의 끔찍한 미래, 우리가 훈련해야 할 것은 '생태적 이성'
이윤이 아니라 생태적 이성이 기준이 되는 일상의 변화
8월 들어 기후위기 관련한 중요한 문서들이 잇따라 나왔다. 5일에는 한국의 탄소중립위원회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반응은 양 극단이었다. 기후운동에 나선 이들은 이 문서가 제목과는 달리 2050년까지 탈탄소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반면에 또 다른 많은 이들은 탈탄소가 아닌 '저탄소'에 목표를 맞춘 이 문서의 시나리오들조차 너무나 큰 폭의 변화를 요구하는 형편이니 도대체 '탄소중립' 자체가 실현 가능한 목표가 맞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며칠 뒤에는 UN 산하 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제6차 보고서를 공개했다. 엄청난 분량이지만, 결론은 냉혹하리만큼 간단하다. 인류에게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아지는 예상 시점을 2040년으로 앞당겨 잡았다. 이 보고서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2050년까지 '저탄소'를 실현하겠다는 한국 탄소중립위원회의 시나리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 같은 부유한 산업국은 2050년보다 더 빠른 시점에 탈탄소 사회로 전환해야만 한다.
한데 IPCC 6차 보고서에 대한 반응도 탄소중립위원회 시나리오의 경우와 비슷했다. 기후재난이 급진전되고 있으므로 더욱 과감하고 신속하게 생태적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물론 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의 심정은 자포자기 쪽에 가까운 듯하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느냐며 회의하거나 자기합리화에 빠진다.
심지어는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이들 가운데에도, 기후변화가 앞으로 계속 가속화한다면 2050년까지 탄소 제로 상태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세워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목소리가 있다. 지구는 벌써 기후과학자들의 예측을 뛰어넘는 재앙의 되먹임 작용을 시작했는데, 지금부터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사고는 자기최면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결론은 지금 당장 생태적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열띤 외침을 향한 냉소가 된다.
과연 그럴까? 탄소 배출을 줄여 온난화를 일정 수준으로 묶어둔다는 목표가 진즉에 현실에 추월됐으므로 탈탄소 노력은 헛된 몸부림에 불과한가? 혹은 2050년까지 탈탄소 사회로 전환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머릿속 목표에 불과하니 그저 손 놓고 멸망을 기다리는 게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인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사회가 훈련해야 할 것, 생태적 이성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선 최악의 미래 상황을 가정해보자. 2050년이 되어도 주요국 중 많은 나라가 탄소 제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래서 지구 전체에 여전히 상당량의 탄소가 배출되는 경우 말이다. 이때 지구 온난화와 이에 따른 기후급변은 IPCC 새 보고서가 예측하는 대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사실 이것은 최악의 경우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인류가 2050년쯤 탄소 제로 상태를 얼추 달성했는데도 지구 대기 시스템이 기후과학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혼돈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이 경우에 인류에게는 '타오르는 지구'에 적응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게 된다.
이 대목에서 오해가 없길 바란다. 이러한 경우들을 상상해보자는 것은 결코 2050년 탈탄소 목표가 실현될 수 없다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나 기후위기 같은 대혼돈 속에서 우리가 항상 새로운 출발점을 가리키는 안내자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과학뿐이다. 따라서 기후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른 미래 전망과 탈탄소 목표 설정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도 위의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리는 까닭은 기후위기의 거대한 양상과 2050년 탈탄소 목표의 막중함이 행동을 촉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럴 의지를 억누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은 당장 어떤 행동에도 나서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좋은 변명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제시한 것과 같은 최악의 미래 상황들에서도 탈탄소 사회로 전환하려고 노력해온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생존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참으로 거대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탄소 제로 상태의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어느 사회에든 기후재난은 닥치겠지만, 이에 맞서서 생존을 확보하고 문명을 최대한 보전할 가능성은 각 사회가 그간 생태적 전환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가령 에너지 전환을 보자. 여기에서 전환의 방향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를 놓고 지금은 재생가능에너지에 100% 의존하는 전력 시스템이 과연 가능하냐, 100%는 고사하고 이게 중심이 되는 전력 시스템조차 가능하냐가 쟁점이 돼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차피 정확히 예견할 수도 없는 그런 미래 기술 수준이 아니다. 핵심은 사회가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새로운 전력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도중에 있느냐, 아니냐다. 그리하여 어떤 경우가 닥치든 새로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역량을 이미 확보하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미래 어느 시점에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몇 %인지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이미 새로운 전력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궤도 안에 들어선 사회라면, 이를 가속화할 수도 있고 어떤 예측 못한 상황이 닥치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반면에 현실의 어려움을 들며 전환을 계속 미뤄온 사회는 기후재난이 예상치 못한 양상을 띨수록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질 것이다. 전환의 기반도, 경험도 쌓지 못했기에 더욱더 전환에 나서지 못하는 지경이 될 것이다.
농업에 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현재 충분히 부각되지 못하는, 기후급변의 가장 심각한 재앙은 식량 위기다. 전 세계 주요 농업 지대 곳곳의 홍수, 가뭄, 병충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존 작물의 생존 조건이나 환경 적응을 추월하는 기온 급상승으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식량 위기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생태적 전환의 최대 과제 가운데 하나는 농업 회생이어야 한다. 지구 온난화의 변곡점이었던 1990년대에 농업을 포기한 대한민국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데 농업에서도 회생의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는 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존 농업의 붕괴가 너무 심각해 식량 자급률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중요한 것은 어쩌면 식량 자급률 몇 %를 달성했는지 자체는 아니다. 농업이 지속적으로 회생하는 과정에 있는가, 아닌가가 더 중요하다. 전자의 경우라면 식량 위기가 더 급박해지더라도 이미 쌓인 경험과 자원을 통해 위기에 필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라면, 1990년대 북한의 기아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 이야기를 도시를 놓고도 할 수 있다. '15분 도시' 같은 구상을 추진해왔기에 도보나 자전거, 대중교통이 이미 중심 이동 수단이 된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 둘 다 최악의 기후위기가 닥치면 예외 없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 그러나 전력난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 시민의 품격을 최대한 유지하며 버틸 수 있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는 확연히 나뉠 것이다. 어느 쪽이 전자이고 어느 쪽이 후자일지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빤하다.
정리하면, 기후위기에 맞서는 생태적 전환에서 중요한 것은 2050년까지 탈탄소화 같은 구체적인 목표의 달성만은 아니다. 물론 이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물신화된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중요한 것,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런 구체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체득하는 역량이다. 탈탄소화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쌓이는 경험과 자원, 새로운 행동양식과 문화야말로 기후위기를 견뎌낼 미래 인류의 최대 무기다.
노동운동의 고전인 K. 마르크스와 F. 엥겔스의 <공산주의당 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문구가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계속 확대되는 데 있다." 여기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자리에 "탈탄소 노력"을 대입해보자. 그럼 이런 문장이 뒤따라 나올 것이다. "탈탄소 노력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태적 전환의 역량이 확대되는 데 있다."
이러한 생태적 전환의 역량에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최근에 회자되는 말들로는 '회복 탄력성' 등이 있다. 하지만 나는 '생태적 이성'이야말로 가장 어울리는 개념이라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이성을 대체하는 생태적 이성, 이것이 갖추어질 때에만 인간 사회는 지구 생태계 위기를 어떤 식으로든 헤쳐 나갈 수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사회가 정작 더 중요하게 훈련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생태적 이성이다.
이윤이 아니라 생태적 이성이 기준이 되는 일상의 변화
한데 아직 답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몇 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몇 % 줄인다는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사회 전체를 바꿔간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런 목표에 따라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일상을 바꾸고 그러도록 계속 채근한다는 게 도대체 있을 법한 일인가? 이런 물음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부정적 답이 향하는 곳이 곧 기후위기 패배주의, 즉 기후급변에 맞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태도다.
그러나 이런 물음에는 의외로 쉽게 대꾸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나날이 거창해지는 어떤 목표에 맞춰 일상을 끊임없이 바꿔가며 살고 있다. 그렇게 살도록 만드는 힘이 너무나 강력한데도 마치 중력처럼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 목표란 자본의 이윤 축적이며, 이는 총량으로는 흔히 경제성장률(GDP)로 표시된다. 자본의 이윤 확보 목표에 맞춰 지금도 우리는 몸과 마음부터 집과 동네, 나라 전체에 이르는 모든 것을 어지러울 정도로 급속히 바꾸며 살아간다.
우리가 결단해야 할 것은 다만 그 목표의 자리에 '자본의 이윤 확보' 대신 '탄소 배출 감축'을 넣는 일이다. 생각보다는 그다지 복잡하거나 낯설지 않은 전향일 뿐이다. 더구나 과거의 그 목표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을 강요받던 삶은 우리 중 다수에게 결코 행복하지도 않았고 미련이 남을 만큼 정답거나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이성에 좇기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생태적 이성을 새롭게 습득해가는 삶은 보기보다는 인내와 고통이 아닌 기회와 해방 쪽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게다가 십중팔구는, 이제껏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그것에 따라야 하는 삶을 살았던 인류 대다수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342만(2017년) → 73만 명…부산 100년 후 ‘인구재앙’
감사원·통계청 대응실태보고서 "16개 구·군 중 강서구 외 소멸“
현재 337만 명가량인 부산 인구가 100년 뒤 73만 명 수준까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됐다. 부산 16개 구군 가운데 강서구만 생존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감사원이 최근 ‘저출산고령화대책 성과분석’과 함께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대응 실태 보고서’에 실린 결과다.
감사원이 통계청과 함께 우리나라의 저출산 추세를 반영해 2017년 기준 30년, 50년, 100년 후 17개 광역시도 및 229개 시군구 인구를 추계 분석한 결과 2017년 342만 명인 부산 인구는 50년 후인 2067년 191만 명(-44.4%), 100년 후인 2117년 73만 명(-78.6%)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부산 인구 감소율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았다. 울산 인구는 2017년 116만 명에서 50년 후인 2067년 68만 명(-41.5%), 2117년 26만 명(-77.4%)으로 떨어진다. 경남 역시 2017년 334만 명에서 50년 뒤 219만 명(-34.3%), 100년 뒤 85만 명(-74.5%) 수준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2017년 5136만 명에서 2067년엔 3689만 명, 100년 뒤인 2117년에는 151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인구 고령화 속도는 가팔라진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17년엔 총인구의 13.8%였으나 30년 후엔 39.4%, 50년 후엔 49.5%, 100년 뒤엔 52.8%로 높아진다. 2047년에는 부산 인구 절반(50.2%)이 65세 이상 고령자가 된다. 이와 함께 감사원이 고용정보원과 미래 인구위험지역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시군구는 약 30년 후인 2047년부터 모두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100년 뒤인 2117년에는 전국에서 부산 강서, 서울 강남 광진 관악 마포, 광주 광산 대전 유성 등 8곳을 제외한 221개 시군구가 소멸고위험단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선 기자 freesun@kookje.co.kr
2047년 강서·기장만 인구증가…12개 구군 20~40% 증발
한반도 재앙적 인구소멸
- 초저출산·고령화 문제 지속 땐
- 부산인구 100년 후 21%만 유지
- 30년 뒤 부산진·연제 ‘소멸위험’
- 나머지 13개 구군 고위험 단계
- 2117년 울산 남·동구 80% ‘뚝’
- 경남은 양산 외 60~80% 감소
사상 유례 없는 인구절벽 속에 지역 소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부산 울산 경남의 인구 감소율은 전국 최고 수준으로 전망돼 ‘인구 쇼크’에 가깝다. 정책의 대전환이 없다면 공동체 인구 기반이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00년 뒤 부울경 시군구 11곳 인구 80% 이상 감소
감사원이 통계청 고용정보원과 함께 미래인구 변화추세를 전망한 결과 약 30년 후인 2047년에는 부산 인구의 23.2% 가 감소하는 것을 비롯해 13개 광역시도에서 2017년 대비 총 500만 명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경기도는 오히려 인구가 6.2% 증가하고, 2047년 인천 인구는 288만 명으로 부산(263만 명)을 추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으로는 부산이 342만 명, 인천은 292만 명이었다. 100년 뒤인 2117년에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을 유지하는 광역시도는 서울 경기 외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인구 변화 추계를 살펴보면, 약 30년 뒤인 2047년 강서구와 기장군만 인구 증가 지역이 된다. 연제와 수영은 2017년 대비 0~20% , 나머지 12개 구군은 20~4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50년 뒤에는 강서도 0~20% 감소로 돌아서고, 수영과 기장은 20~40% , 나머지 지역은 40~60% 줄어든다. 100년 뒤인 2117년에는 강서구도 40~60% 감소하며, 수영 기장 서 동래 북 금정 연제는 60~80%, 중 동 영도 부산진 남 해운대 사하 사상은 80% 이상 주는 것으로 전망됐다.
100년 뒤 울산은 중 북 울주는 60~80%, 남 동구는 8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경남의 경우 100년 뒤 양산만 40~60% 감소, 나머지 16개 시군은 60~80%, 거제는 8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30년뒤엔 전국 시군구 모두 소멸위험지역
현 수준의 초저출산이 지속된다면 2017년 전국 229개 시군구 중 83개였던 소멸위험지역은 불과 30년 후에 모든 시군구로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0.2 이상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진입단계, 0.2 미만이면 소멸 고위험 단계로 본다.
부산에서는 2047년 부산진 강서 연제가 소멸위험 지역으로 진입하고, 나머지 13개 구군은 모두 고위험단계가 된다. 50년 뒤인 2067년에는 연제와 부산진도 고위험단계로 진입한다. 100년 뒤인 2117년에는 부산 강서를 비롯한 전국의 8곳만 생존하게 된다.
2047년 소멸위험지수 상위 20개 시군구에 경남 6곳(산청 합천 남해 의령 함양 고성)이 포함돼 있다. 소멸위험지수 상위 20개 시군구 모두 2017년부터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한 상태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는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까지 국가 전체가 쇠퇴 위기에 빠진다”면서 “지금부터라도 국가의 시스템 전반을 총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저출산 고령화가 초래할 지역 소멸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정유선 기자 freesun@kookje.co.kr
식탁 위협하는 기후위기…고랭지배추도 사라져간다
한낮 뙤약볕이 강원도 태백 매봉산 배추밭을 내리쬐고 있다. 마른바람에 산 정상 풍력발전기 날개가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해발 1303미터,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배추밭에 출하를 앞둔 여름배추가 익어가고 있다.
매봉산 배추밭은 1965년 화전민 정착촌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화전민들은 산비탈의 황무지에 자신들이 먹기 위해 배추를 심기 시작했다. 처음 ‘불배추’(속이 꽉 차지 않는 등 저품질 배추)로 불리기도 했지만, 품종 개량을 통해 아삭거리는 식감을 자랑하는 ‘금배추’로 거듭났다. 1980년 본격적인 산업화로 배추 수요가 급증하며, 부르는 게 값이었던 적도 있다. 2.5톤 트럭 한 차에 3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5톤 트럭 기준으로 300만원 정도의 가격을 받는다.
© 제공: 한겨레 드론으로 하늘에서 본 매봉산 배추밭. 박종식 기자
고랭지 배추는 금배추라 불리며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기후변화 탓에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1.8℃ 오르며 꾸준히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날씨 민감도가 높은 배추 작황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이정만 태백매봉산영농회장은 “기후변화로 작황이 나빠져 대체 작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수년째 나오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말한다. 해발 고도가 높은 지역 특성상 배추 외의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도 쉽지 않다.
© 제공: 한겨레 출하를 앞둔 배추가 익어가고 있다. 박종식 기자
농촌진흥청은 이대로 기온 상승이 이어진다면 2090년 강원도 태백에서 고랭지 배추 재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2010년 7449㏊였던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이 2050년 256㏊로 줄고, 2090년에는 ‘0㏊’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몇년내에 개마고원에서나 고랭지 배추밭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인력난도 버텼던 고랭지 배추지만 전세계적인 기후변화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대로 기후변화를 방치한다면 우리 식탁에서 여름배추가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태백/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anaki@hani.co.kr
기후위기, 커피값도 올리나···가뭄·한파에 브라질 커피생산 감소
브라질이 심각한 가뭄과 이례적인 한파를 겪으면서 주요 농산물의 생산에 경고등이 켜졌다. 브라질산 커피는 생산 감소로 인해 가격이 다음달까지 최대 40%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브라질 커피산업협회는 18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에서 다음달 말까지 커피 제품의 소비자 가격이 35∼40% 인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협회 관계자는 “올해는 1990년대 초 이후 볼 수 없었던 커피 가격 인상 요인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가뭄과 한파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미국 달러화 강세, 생산비용 상승, 국제시장 수요 증가 등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은 이번 여름 크게 줄어든 강우량으로 최악의 가뭄에 직면했으며, 농작물의 작황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의 배경에 가뭄을 동반한 라니냐(동태평양의 저수온 현상)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며 증발도 일어나지 않아 강수량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아마존 등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산림파괴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산림이 없어지면서 습도가 낮아졌고, 이는 브라질의 중서부와 남동부 지역 강수량의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뭄에 더해 최근에는 이례적인 한파까지 발생해 커피 생산에 악영향을 미쳤다. 남극 한파가 최근 몇 주간 브라질 일부 지역으로 유입되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내리는 등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열대 작물인 커피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브라질 정부는 가뭄과 한파로 올해 커피 생산량이 60㎏들이 4880만 포대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22.6% 줄어든 수치다.
생산은 줄어들었으나 국제시장의 수요가 늘고 있고 생산비용 상승과 미국 달러화 강세까지 겹쳐 커피 가격은 급격히 오르고 있다. 커피 수요는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으나 최근 다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네덜란드 은행인 라보방크 인터내셔널은 올해 전 세계 커피 소비량이 60㎏들이 1억6880만 포대 수준으로 지난해 1억6480만자루보다 다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브라질의 기후 변화는 단순히 커피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적 농업국가인 브라질은 그간 옥수수와 설탕, 오렌지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의 농산물 공급을 떠받쳐 왔다. 이 지역의 농작물 생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 전세계 농산물의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김종철의 질문 "우리 사실, 이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은 곤란하잖아요?"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⑮ 성장시대의 종언과 민주주의
지역화폐에서 기본소득으로
2008년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는 김종철이 '성장시대의 종언'을 확신한 결정적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1996년 지역화폐의 발견이다. 지역화폐는 정부화폐와 같은 공공화폐다. 즉 은행화폐와는 달리 이자가 붙지 않는, 순전히 교환수단으로서의 돈인 것이다.
김종철은 2013년 곽노완, 강남훈과의 기본소득 좌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는 지역통화(local currency)운동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한 달 동안은 완전히 흥분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도구만 있으면 앞으로 좋은 세상 만드는 거 문제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순진한 흥분 상태에 있었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놀란 게 기본소득입니다. 이런 아이디어가 있었구나. 알고 보니까 앙드레 고르나 에리히 프롬도 벌써 수십 년 전부터 기본소득을 언급했더군요."(<녹색평론> 131호 7쪽)
2009년 기본소득운동을 알게 된 그가 2012년 녹색당을 통한 정치 참여에 나서기까지에는 중요한 현실적 계기가 있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의 무상급식 돌풍이었다. 지방선거 직후 향린교회에서 가진 '돈과 자유 - 배당경제학에 대하여' 강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저는 예전에는 투표는 빠짐없이 하지만 선거결과에 대해서 별로 기대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지방선거를 보면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아, 선거라는 것을 잘 활용만 한다면 뭐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지방선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배당경제학'의 실현은 먼저 지역 차원에서 시도해볼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선거를 활용하는 방법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중략)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앞으로 풀뿌리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함께 학습을 하여,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이 배당경제학을 주요 선거 이슈로 부각시킨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번에 무상급식에 대해서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처럼 말이죠. (중략) 결국 지역화폐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의 화폐와 병존하는 지역화폐를 각 지역의 사정에 맞게 만들어 그 지역 내에서만 통용되게 하자는 거죠."(<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252쪽)
2010년 지방선거와 기본소득
실제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기본소득의 실현이 가능할 것처럼 흘러갔다. 2011년 가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거부하다 결국 시장직을 물러나는 사건이 벌어졌고, 2012년 봄에는 반값 대학등록금 요구가 거셌으며, 그해 대선에서는 문재인, 박근혜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종철은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기본소득 요구는 한국만의 고립적 현상이 아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독일의 해적당, 그리스 시리자, 이탈리아 오성운동, 영국 노동당 등이 기본소득을 정치적 과제로 내세우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이미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IEN)가 결성돼 기본소득과 관련한 연구와 담론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고, 2004년 바르셀로나 10차 대회를 계기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로 확대됐다.
사실 미국에서도 민권운동의 절정기였던 1960년대 후반에는 기본소득이 실제 정책으로 채택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강남훈에 따르면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에 계획했던 '빈자들의 행진(Poor People's Campaign)'이 바로 기본소득 운동이었다. '모든 미국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 요구였다.
킹 목사는 암살당하기 직전 마지막 연설문에서 "오늘날 사람을 달에 보내는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구상에 두 발로 서게 만들 만큼(기본소득을 보장할 만큼) 충분한 돈이 있다"며 기본소득을 요구했다고 한다. 킹 목사의 주장 이후 폴 사무엘슨,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 제임스 토빈 등 경제학자 1200명이 존슨 대통령에게 기본소득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 논의됐던 기본소득은 일정 소득 미만의 가구에 정부가 현금을 지급하는 마이너스 소득세 형태였다. 1969년 8월 닉슨 대통령이 가구당 연간 1600달러를 보장하는 기본소득 정책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의회에서 두 번 논의 끝에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1972년).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 맥거번 후보도 1인당 1000달러 기본소득 공약을 했다. 즉 1970년대 초까지는 민주, 공화 양당 모두 기본소득을 지지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의 정치적 혼란을 거쳐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기본소득은 잊혀졌다. 강남훈은 "만약 (그때 기본소득 법안이) 통과됐다면 오늘날 미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녹색평론> 131호 25쪽)
2010년 6월 향린교회 강연 이후, 특히 2012년부터 김종철은 '녹색당 전임강사'를 자처하며 화폐제도 개혁과 기본소득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강연을 수없이 많이 했다. 그의 논지는 이제 성장시대는 끝났으며 따라서 성장에 의한 고용 확대도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므로 고용과 소득을 분리해 모든 국민에서 기초 생활을 위한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하며 이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 그리고 화폐금융제도는 자본주의체제의 가장 중요한 공유자산이며 이 제도는 일부 금권세력의 이윤 축적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인간적 생활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또한 <녹색평론>을 통해 기본소득 논의를 계속 이어갔다. '기본소득, 쟁점과 제언'(135호 2014년 3/4월호)을 비롯해 147호(2016년 3/4월호)에서 153호(2017년 3/4월호)까지 일곱 회에 걸쳐 토마스 페인, 헨리 조지, 클리포드 더글라스, 에리히 프롬 등 기본소득 사상가들을, 161호(2018년 7/8월호)에서는 '핀란드, 캐나다, 미국의 기본소득 실험'을 소개했으며, 169호(2019년 11/12월호)에서는 '농민기본소득이 나라를 살린다' 주제의 좌담을 갖기도 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2011년 3월)와 세월호 사고(2014년 4월), 그리고 2016년 초 '기후변화, 옳게 대응하고 있는가' 특집(146호) 등 당대의 핵심 현안에 대한 대응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2015년 3/4월호(141호)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의회' 특집으로 민주정치에 눈을 돌린 김종철은 2016년 가을 촛불시위 이후 2017년에는 민주주의 문제에 전념하게 된다. '촛불과 시민권력'(152호 2017년 1/2월호), '시민주권시대를 향하여'(153호), '시민의회를 생각한다'(154호), '공론조사, 왜 중요한가'(156호) 등이 그것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시민의회, 숙의민주주의 등 시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확립된다면 기본소득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 故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
촛불시위와 민주주의
대부분의 한국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종철에게도 2016년 10월 말 촛불시위에서 2017년 봄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탄생, 그리고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는 기간은 근래 들어 가장 희망찬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과 함께 한반도의 비핵화, 그리고 모든 시민들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 손에 잡힐 듯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희망은 2019년이 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김종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녹색평론> 165호(2019년 3/4월호) 머리글 '침로를 잃은 민주정부,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은 경제성장시대가 끝났거나 끝나가고 있다는 객관적인 세계정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경제 규모와 소비 생활이 축소되어 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평등의 해소와 고르게 나누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혼란 없이 시민적 합의 하에 진행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정치의 공고화"라는 것이 김종철의 정세 판단이자 대응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현실 정치인들에게 '쇠귀에 경 읽기'였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치인들의 믿음은 신앙과도 같다. 이는 이번 대선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거의 모든 후보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재원 마련 등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 실현 가능성을 깎아내리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후적,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대략 이 시점에서 김종철은 공적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다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해 4월과 6월에 자신의 마지막 저서들인 <대지의 상상력>과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를 펴낸 것도 어쩌면 자신의 공생애를 정리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신념의 인간, 외로운 예언자
김종철은 민중적 입장의 지구적 시야를 가진 신념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세계 인식과 문제의식이 아직은 널리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로운 예언자라고 할 수 있다.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 실린 '협동적 자치의 공동체를 향하여'(74-82쪽)에는 김종철이 지향하는 이상세계의 모습이 실려 있다.
그는 우선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는 단순히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적으로 소비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 세계인식의 문제이다. 무엇이 정말 좋은 삶이고, 인간다운 삶인가, 혹은 어떤 사회가 진실로 선진사회인가 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오로지 서구 근대적 발전사관에 의거해 있을 때, 위기 상황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상호부조의 경제를 시급히 복구하려는 노력이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글로벌 자본주의시스템에 대한 계속적인 굴종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이어 1차 대전 직후 짧은 순간 존립했던 바이에른 소비에트공화국 혁명정부의 문화담당 각료로 활동하던 중 반동세력에게 살해당한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 구스타브 란다우어(1870~1919)의 말을 빌려 사회주의란 '새로운 인간관계'라고 규정한다. 사회주의의 기초는 생산력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다. 국가란 "하나의 조건,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이자 행동양태"이며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즉 우리가 서로서로에 대하여 종래의 방식과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지금 당장 국가의 지배를 벗어나거나 심지어 국가를 폐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동적 자치의 공동체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김종철은 서구가 지배하는 근대 산업문명이 조만간 파탄에 직면할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살아 왔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기후위기, 금융위기, 팬데믹 등으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소멸 위기의 지구 문명'이란 확신을 가진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2015년 7월 17일 지역재단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25년 전에 <녹색평론>을 창간하기 전에, 저는 절이나 산속으로 들어가 그냥 칩거하면서 명상생활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뭔가 뜻있는 사회적 프로젝트를 시작하느냐 고민하다가 잡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혼자서 칩거해서 사는 게 재미도 없을 것 같고 자신도 없었어요. 어쨌든 그 무렵의 제 심정은 평소처럼 학교 왔다 갔다 하면서 연구소에서 책이나 읽고 학생들 가르치며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 세상 망할 게 눈에 명확히 보이는데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내는 것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결국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일단 만들고 보니까, 한번 호랑이 등에 타버린 뒤여서, 내리지를 못하겠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조만간 내려와야지요. 내려올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녹색평론>을 거들떠보지 않으면 제가 내려옵니다."(<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54~55쪽)
김종철은 <녹색평론>을 딱 30년, 그러니까 180호까지 만들고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려 했다고 한다. 그는 173호에서 내려왔다. 그것도 지구의 비상사태인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쩌면 그의 사상과 지혜가 가장 필요한 시점에서 그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뿌린 사상의 씨앗은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한 소중한 밀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종철의 뿌린 사상의 씨앗을 싹 틔우고 꽃 피우는 일은 우 우리들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김종철 선생의 주장은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한 이래 일관됩니다. 탄소 중립이니, 기후 정치니 하는 타협적, 정치적 언사들 틈바구니에서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태 문명으로 전환하는 '문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말 해 왔습니다. 김종철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이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우리 사실…이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은 곤란하잖아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청바지 한벌 만드는데 물 7000리터...과잉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마초를 몰래 키우다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자주 보게 된다. 며칠 전에는 한 지상파방송사의 유명 오락 프로그램에서 그 ‘대마밭’과 관련된 내용이 나왔다.
이렇듯 지금은 ‘대마’라고 불리며 마약의 대표 명사가 되었지만, 어릴 적 동네 앞 근처에 널린 게 그 삼밭이었다. 마중지봉(麻中之蓬),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곧게 자란다는 말이 있듯, 삼은 아주 곧게 자라난다. 2m도 넘게 크게 자라고, 더구나 아주 빽빽하고 촘촘하게 자라 삼밭은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숨는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한 삼은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이 항상 입던 삼베의 원료였다. 어릴 적 동네 할머니들께서 길쌈을 하고 삼베를 짜던 모습들은 지금도 선하게 떠오른다.
마당 넓은 집에 동네 할머니들이 함께 길쌈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삼이 2, 3m로 다 자라나면 그것을 잘라내 드럼통에 넣고 장작불을 때서 증기로 쪄낸다. 시꺼멓게 그을린 드럼통에 삼을 넣고 찌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쪄낸 삼의 껍질을 벗겨내 묶음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햇볕에 말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타레들은 마을 냇가 물에 담궈 놓았다 빨았다 하는 과정을 몇 차례 거친다.
그러고는 동네에서 마당이 넓은 집에 동네 아줌마와 할머니 몇 분이 함께 모여 길게 삼줄을 늘어놓고는 풀칠을 하면서 정리 작업을 했다. 내가 어린 나이였고 또 그 일을 직접 할 수 없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삼줄을 일정한 굵기로 잇는 작업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대단히 고된 노동이었을 게다.
그 작업을 마친 뒤 드디어 그 삼베실을 집으로 들여가서 베틀로 삼을 짜는 마지막 작업을 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물레’도 출현하고 베틀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북’이라는 도구도 나온다. 큰어머님께서 베틀에 앉아 삼베를 짜시던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우리 모두 이제껏 이 지구환경을 너무 파괴하며 살아왔다
불과 수십 년이 흘러 바야흐로 ‘풍요의 시대’다. 풍요도 그냥 풍요가 아니라 너무 지나친 과잉의 풍요다. 사놓고도 입지 않는 옷이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버려지는 옷 소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량은 전 세계 선박과 항공 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청바지 한 벌 만드는 데는 7000L의 물을 필요로 하며 33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의류산업에서 발생하는 폐수는 전체 산업용 폐수의 20%에 이른다. 이러한 환경파괴의 총화가 오늘 심각한 기후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자연에 순응했고 자연 그 자체였던 그 유년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번 여름 퍽 무더웠지만, 나는 한 번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살았다. 선풍기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앞으론 더욱 심한 폭염이 올 것이 뻔하니 한번 최대한 견뎌보자는 심산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전력 생산은 이산화탄소 발생이 가장 많은 분야 중의 하나다. 집에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가 없다. 물론 공기청정기도 없다. 육식은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 어릴 적 정말 고기는 명절 때나 제사음식으로 구경할 정도였는데, 공장식 사육과 과잉 축산은 기후위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나는 운전 면허증이 없고 자동차는 물론 없다. 30분 거리 정도는 걸어 다니고 폭염과 혹한이 아니라면 한 시간 정도 걷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터넷도 상당한 탄소를 발생시킨다. 나는 스마트폰도 없고 넷플릭스 같은 건 모르고 산다. 유튜브도 거의 보지 않는다. 양말과 속옷 같은 것은 기워 사용한다. 앞으로 옷은 사지 않을 작정이다. 물티슈를 비롯해 일회용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택배나 배달도 일체 없다. 그렇게 쓰레기 자체가 완전히 나오지 않도록 노력한다.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하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는 모두가 예외 없이 이 지구환경을 지나치게 파괴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환경을 생각하고 자원을 아끼며 오염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의무다.
위대한 사상가 루소는 자연에는 아름다운 질서가 있으며, 이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올바르고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지금 우리의 삶을 모두 되돌려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터다. 그러나 기후위기, 아니 기후재난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그 정신만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러한 정신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 심각한 기후위기 극복도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프레시안
멀쩡한 기자들이 왜 가짜뉴스를 생산할까
[피해자 시선에서 본 가짜뉴스] ②
탈원전 비판이 왜 태양광 가짜뉴스로 이어졌을까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 비판으로 시작된 조중동 등 이른바 보수언론의 에너지 정책 비판은 어느 순간 순식간에 협동조합과 태양광 사업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더 나아가 빛 반사 문제, 전자파 문제 등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태양광 가짜뉴스로 이어졌다.
주한미군 "새만금 태양광, 비행작전에 지장"(2019년 10월 31일 자 <조선일보> 양승식·원선우 기자)
전 세계 태양광 가짜뉴스 전시관이 있다면 아마도 한국관의 면적은 단연코 세계 1위일 것이다. 양승식-원선우 조선일보 기자의 위 기사는 본문 가운데 역대급 명문이 들어있다.
"햇빛발전 패널에 반사된 태양빛이 순간적으로 눈을 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반사된 최악의 경우 조종사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햇빛발전의 모듈은 빛 반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그냥 잠깐 단어 몇 자만 치면 금방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게 공항 태양광이다. 인천 국제공항을 비롯해서 독일 기벨슈타드 공항, 일본 간사이 공항 등등 전 세계 공항 활주로 옆에 건설된 거대한 햇빛발전소를 수도 없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노이하르덴베르크 공항 활주로 옆 햇빛발전소는 그 규모가 약 155만kW에 이른다. 면적만 약 5백만 평, 여의도 면적의 거의 6배에 달한다.
전 세계에 걸쳐 공항의 지붕 또는 공항 옆 햇빛발전소에서 반사된 태양광 때문에 눈이 멀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항공기 조종사 사례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과문한 탓인지 태양광 반사 때문에 공항 옆 햇빛발전소가 문제가 된 사례 또한 없다.
주한미군은 새만금 수상 태양광사업이 군의 비행에는 지장이 없다고 국방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기자와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 모두는 누구나 탈원전 정책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기사나 글을 쓰고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 있다. 태양광 정책이나 협동조합에 대해서도 특혜가 있다거나 문제가 있다면 강하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 기사나 글, 보도자료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전제로 해야 한다. 사실을 왜곡해서 기사나 글을 쓰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면 그것은 폭력이다. 그리고 처벌의 대상, 배상의 대상이 된다.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제3항에서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국 기자와 언론의 이 같은 태양광 가짜뉴스는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지체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대응, 기자와 언론이 바뀌어야 가능
기후위기 시한폭탄은 이미 터졌다. 매일같이 기록을 갱신했다고 들려오는 유럽과 시베리아의 산불과 가뭄, 폭우 등은 어쩌면 새 발의 피일지도 모른다. 메르켈 독일 총리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묵시론의 상황', 더 거대한 종말론의 이상기후 전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상기후와 함께 식량위기의 음울한 쓰나미 도래가 머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조만간 들이닥칠 기후재앙에 대해 대응책을 실천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혁명에 가깝게 줄여야 한다. 탄소배출 제로 사회로 가기 위해 햇빛발전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100% 전환은 필수다. 그리고 지금은 당장에라도 그런 전환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과 각종 정책 대안, 그린뉴딜 전환 시나리오까지 이미 다 제시되어 있는 상태이다.
서구 유럽과 미국 등은 이미 그런 전환 시나리오대로 100% 재생에너지 전환 체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에너지 주권자인 국민들이 앞장서서 풀뿌리 지역에서부터 전환도시 운동을 이끌어나가고 있기도 하다.
서구 유럽과 미국 등의 기후위기 대응이 한국과 비교해 한참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자와 언론의 역할이 크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용어 사용을 중단하고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최초로 선언한 것도 영국의 <가디언>지였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는 태양광이 빛 반사를 일으킨다는 황당한 가짜뉴스가 횡행할 정도로 기자와 언론의 기후위기 인식과 대응이 퇴행의 쳇바퀴만 굴리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은 많은 기자와 언론도 존재한다는 점을 일부러라도 강조하고 싶지만 말이다. 햇빛발전과 협동조합 전반에 대한 공격과 가짜뉴스에 대해 흔히 이른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에 갇힌 한국 언론 때문이라는 지적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지적만 가지고는 가짜뉴스의 범람을 막을 수 없다. 기자와 언론, 국회의원과 정당정치, 관료와 기업의 이른바 권언유착, 기득권 동맹도 깨뜨릴 수 없다.
명백한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미 기득권 동맹의 한 축인 국회의원들이 그런 법을 만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문제의 근원은 한국 언론사의 수익 구조에 있다. 대재벌과 정부의 광고에 의존하는 현재의 수익구조 아래서 언론사는 광고주의 견해를 대변하는 기사를 생산하거나 광고주와의 기사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과 태양광 관련 기업은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자력발전 관련 재벌 대기업과 거대 공기업은 광고를 엄청 자주 많이 한다. 그래서 문제의 근원은 다시 기자들 개개인의 기자정신으로 되돌아온다. 꽉 닫힌 보수-진보의 진영논리건 거대기업 광고에 의존하는 수익구조건 그 속에서 변화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씨앗은 기자라는 직업인뿐이기 때문이다.
그 씨앗이 기후 언론의 시작점이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기후 기사의 발아점이다. 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언론사 수익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인은 하루아침에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잘못된 견해가 잘못된 행동을 낫는다. 그러나 견해를 바꾸면 행동도 바뀐다.
집단 자폐증에서 벗어나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1916년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파울 오이겐 블로일러는 조현병 증상 가운데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바깥 세상과 맺는 관계가 좁아지는데, 그 좁아짐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배제하려는 듯한"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폐증(autism)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1943년 존스홉킨스 병원의 아동정신의학센터에서 일하던 정신의학자 레오 칸너는 열 한 명 어린이 자폐증 환자들을 상세히 관찰한 기념비와도 같은 논문을 발표했다. 1944년에는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 소아과 의사 한스 아스퍼거의 사례연구 논문이 출간되면서 자폐증은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폐증은 1980년대에 들어서 미국 정신의학협회의 정신질환의 진단과 통계 편람에 '소아자폐증'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진단명으로 포함되었다.(<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 자아의 8가지 그림자>(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변지영 옮김, 더퀘스트 펴냄))
자폐증이란 정상의 사회관계를 맺지 못하는 닫힌 자아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집단이 정상의 사회관계를 맺지 못하면 집단 자폐증에 갇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언론과 정치 집단 대다수는 집단 자폐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분법 사고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분법 사고는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모든 불행과 잘못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진보의 이분법 진영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민주주의는 다른 주권자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 없다면 성립 불가능하다. 나와 다른 주장과 견해를 가진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만 비로소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친일이든 반일이든, 친미 사대건 반미 주체건, 독재건 민주건 그런 입장과 견해가 살인과 전쟁, 매국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 한 그런 견해와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동아, 조선의 모스크바 삼상회의 가짜뉴스는 민족을 배반한 매국 친일파를 하루아침에 민족주의 세력으로 탈바꿈시켰다. 우익과 좌익 모두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극심한 좌우 대결은 결국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 6.25 한국전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햇빛에는 '보수 햇빛 / 진보 햇빛'이 따로 없다. 기후에도 '보수 기후 / 진보 기후'가 따로 없다. 기후 시한폭탄이 이미 터진 21세기 초반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그나마 생존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 답을 모른다. 다만 그런 생존 모색의 길은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의 집단 자폐증 증세와 이분법 사고로부터의 탈출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상대방의 존재와 견해를 인정하고 기후 언론의 씨앗이 발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한낱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가짜뉴스 피해자로서 한 번 꿈이라도 꿔봐야겠다.
박승옥 전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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