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현실로… 4대강 보 개방 이후 멸종위기 조류가 돌아왔다
탈탄소 산업 전환에 5년간 13조7000억 든다
도시에서 나무로 살아간다는 것은
국립공원, 팔공산 품에 안길까
로드킬·매연 신음하는 지리산…“오대산 선재길처럼”
독일 헌재 “온실가스 감축 부담, 미래세대로 넘기면 위헌”
남쪽 살던 회색곰, 온난화 타고 북극곰 안방 노린다
지리산 둘레길 289㎞ ‘국가 숲 길’ 됐다
친환경 소재? 옷은 안 사는 게 ‘최고의 친환경’
한국의 신기후체제 리더십을 되짚어볼 때
산림 탄소 정책 헛발질, 산림청 규탄한다
한국인은 22개 도시 권역에 몰려산다…대도시화, 유럽보다 심각
미·유럽이 가장 도시화? 실제론 북아프리카 1위
기진맥진 여름 철새 쉬어가는 어청도는 ’족제비 천국’
전문가는 ‘모른다’ IAEA·미국은 ‘괜찮다’
“균형발전은 하향식·나눠주기식 아닌 국가 차원 큰 그림 통해 모색해야”
연령·소득·교육수준 높을수록 ‘친환경행동’에 많이 참여했다
탄소중립도 진영논리? 4대강 파헤친 ‘녹색성장’ 못 버리는 국민의힘
원폭만큼 치명적인’ 미군의 부산항 세균실험
그 많던 부산 중앙대로 나무 어디 갔나 했더니…
소비자주의 대 생태주의
기후위기에는 '위기답게' 대응하라
아까시나무 꽃 피면 산불이 끝난다'는데 5월 산불 급증...왜?
‘광릉숲길 어린이정원’ 문열어
기대가 현실로… 4대강 보 개방 이후 멸종위기 조류가 돌아왔다
합천창녕보에서는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 7마리 부화
지난 4월15일 합천창녕보 인근에서 발견된 흰목물떼새 성조. 환경부 제공
4대강 보 개방 이후 수변 지역에서 멸종위기 조류의 모습이 잇따라 관찰되고 있다. 이번엔 합천창녕보 상류 모래톱에서 흰목물떼새의 부화가 확인됐다.
환경부는 2일 낙동강 합천창녕보를 개방한 이후 상류에 조성된 모래톱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흰목물떼새의 둥지 2곳과 새끼 7마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난 4월 합천창녕보 수위 조절에 앞서 이곳 일대의 생태계 조사 영향 조사를 진행하던 중 보 상류 구간에 흰목물떼새가 번식중인 것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흰목물떼새의 둥지와 새끼 보호를 위해 합천창녕보 수위 운용 계획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애초에는 수위를 해발 9.2m에서 10.5m로 높일 예정이었는데, 10.3m 수준으로 낮추기로 한 것이다.
몸 길이가 19∼21㎝ 정도인 흰목물떼새는 하천변의 모래톱이나 자갈밭에 알을 낳는데, 하천이 개발되고 모래톱이 감소하면서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국내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고 세계적으로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세계적색목록’(레드리스트)에 최소관심 종으로 등재됐다.
환경부는 4대강 보 개방으로 수변에서 멸종위기 조류인 흰목물떼새 등 물떼새가 살아가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환경부는 2017년 6월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3년여 동안 낙동강 합천창녕보를 모두 83일 동안 완전 개방했다. 보 개방 이후인 지난해 5월에도 합천창녕보 상류 모래톱 구간에서 번식중인 흰목물떼새 4마리와 둥지 2곳이 관찰됐다. 올해에는 흰목물떼새와 유사한 생태적 특성을 지닌 조류인 꼬마물떼새의 성조(어른개체)와 둥지도 함께 발견됐다.
지난 4월15일 합천창녕보 인근 둥지에서 부화한 흰목물떼새 새끼새의 모습. 환경부 제공
환경부는 “해당 구간은 합천창녕보 개방 전까지 흰목물떼새의 서식이 확인되지 않던 지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흰목물떼새의 번식이 확인된 모래톱은 합천창녕보 개방 뒤 낮아진 수위로 인해 조성된 공간으로, 보 개방이 번식 공간의 증가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합천창녕보 이외의 다른 보 개방 구간에서도 멸종위기 조류가 여럿 발견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낙동강 창녕함안보 상류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흑두루미가, 12월에는 영산강 죽산보 상류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황새가 발견됐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탈탄소 산업 전환에 5년간 13조7000억 든다
경희대 ‘산업 전환방안’ 정부 용역 보고서…비용 첫 추산
배출량 따라 예산 배정 땐 경북·경기·인천·전남 등 많아
기후위기로 퇴출 수순을 밟는 산업의 종사자와 경제적 타격을 입는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위해 5년간 약 13조7000억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경북도, 전남도, 충남도, 경기도, 인천시가 관련 재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의로운 전환은 탈탄소 경제로 가는 산업 전환 과정에서 탄소경제에 의존하던 산업 종사자와 지역이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한국 정부는 ‘공정한 전환’이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에 드는 비용 규모나 할당 비율이 대략적이나마 추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일 경희대 산학협력단이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연구용역으로 작성한 ‘그린뉴딜 관련 산업의 공정한 전환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이 심층면접(FGI)을 통해 전문가 33인에게 ‘그린뉴딜 예산 중 몇 %를 공정전환기금으로 배정해야 하느냐’고 물은 결과 응답자 32명 중 16명이 “10~20%값이 적정”하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이 가중평균은 18.69%로, 5년간 약 13조7000억 규모”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7월 73조4000억원 규모의 그린뉴딜 예산을 발표하면서 ‘신재생에너지 확산기반 구축 및 공정한 전환 지원’ 항목에 2020~2025년 9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정의로운 전환에 필요할 것으로 본 것이다.
연구진은 유럽연합(EU)의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JTM)’을 활용해 예산이 지역별로 얼마나 할당돼야 하는지도 분석했다. 탄소집약도, 고비용 전환업종 종사자수 등 경제적 기준, 지역 낙후도 등 사회적 기준을 고려해 지역별 재원 할당 비율을 도출했다. 경제적 기준에선 객관적 기준이 모호한 고비용 전환업종의 선정 기준에 따라 4개 시나리오가 도출됐는데, 가장 많은(43%)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업종별 탄소집약도가 전 산업 탄소집약도의 2배보다 높은 경우’(시나리오 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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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2를 기준으로 지역별 배분을 계산한 결과 경상북도 1조6385억원(전체의 11.6%), 경기도 1조5830억원(11.55%), 인천광역시 1조4392억원(10.5%), 전라남도 1조4263억원(10.40%), 충청남도 1조840억원(7.91%) 순으로 재원이 할당됐다. 연구진은 “(다른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해도) 다소 차이는 있으나 경북, 전남, 충남, 경기도, 인천광역시의 재원 할당 비율(8~16%)이 높게 산정됐다”고 밝혔다. 경북, 전남, 충남은 산업 부문의 지역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연구진은 소멸되는 산업 종사자들의 직업훈련과 관련해 “인위적으로 일부 업종을 줄이는 것인 만큼 100% 중앙정부 재원을 사용하는 게 타당하다”고 제언했다.
오형나 경희대 산학협력단 교수는 지난 1일 녹색전환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13조7000억원은 그린뉴딜 안에 들어가 있는 예산보다는 훨씬 규모가 큰 돈”이라며 “지자체는 지역의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실행 가능한 안을 만들고, 중앙정부에서 그것을 한 번 거를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도시에서 나무로 살아간다는 것은
23번째어떤 것은 살아남았고, 어떤 것은 사라진 뒤에야 존재가 드러났다.
서울 덕수궁 돌담길을 지키던 플라타너스 20여그루는 간신히 톱질을 피했다. 뿌리가 ‘담장에 금을 가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베려던 시의 계획을 시민들이 막아섰다. 나무는 50여년 동안 서울 한가운데서 1987년 6월항쟁의 벅참을, 2002년 월드컵의 붉은 환희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의 노란 슬픔을, 2016~2017년 촛불의 물결을 내려다봤다.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이라 노래하던 시인의 마음과 시민의 마음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90년가량 대전시 옛 충남도청 건물의 담장 구실을 하던 향나무는 잘려나갔다. 2006년 일부가 불탄 뒤 전국에서 비슷한 나무를 구해 복구할 만큼 시민의 애정을 받았지만, 금세 172그루가 사라졌다. 잘려나간 건 나무가 아니라 백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도시에서 나무로 산다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사람보다 너끈히 오래 살 것 같지만,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은 ‘수명’(樹命) 혹은 ‘목(木)숨’을 쉬 허락하지 않는다. 21년 전, 청와대 들머리인 서울 경복궁 돌담길에서는 44그루의 아름드리 가죽나무가 잘려나갔다. 많게는 수령 70~80년에, 높이가 20m, 둘레 2~3m였던 고목의 ‘증발’은 시민의 마음을 허하게 했다.
2009년에는 세종대로의 터줏대감 구실을 하던 은행나무 29그루가 자취를 감췄다. 광화문광장 공사 탓이었다. 겨울이면 알전구를 두르고 연말연시를 느끼게 해주던 나무들이었다. 이들은 정부서울청사와 옛 의정부 터로 절반씩 나눠 이식됐다. 10년여가 지났지만, 어떤 나무들은 여태 적응하기 힘든 듯 여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긴 이파리를 지상에 떨군다.
제법 알려진 나무들이 이럴진대 뭇나무들의 시련은 더하다. 해마다 무자비한 가지치기를 견뎌야 한다. 잔가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 ‘바리캉식’ 가지치기는 광합성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어온 나무의 진화와 경영 전략을 간단히 뭉개버린다. 나무는 아래쪽 잎은 크게, 위쪽 잎은 작게 만들어 최대한 고루 햇빛을 받으려 한다.
재개발·재건축의 위협도 마주해야 한다. 한국에 사는 메타세쿼이아는 아파트의 재개발·재건축 기한이 곧 수명이다. 수백, 수천 년을 살아 미국의 한 국립공원에서는 ‘셔먼 장군’이라고 불린다는 나무다. 차가운 돈의 합리성을 사람들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나무들도 고스란히 함께 겪는 셈이다.
그러나 나무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때론 인간이 만든 건축물을 훌쩍 뛰어넘어 한 도시의 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자카란다는 몽환적인 색과 향기로 이 도시를 규정해버린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도열한 플라타너스 역시 방사형으로 뻗은 이 도시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중국 베이징대 앞 도로를 초록 터널로 덮어버리는 회화나무도 마찬가지다. 기품있게 가지를 드리운 모양 덕에 선비나무 혹은 학자수, 영어로도 스칼러 트리(Scholar tree)로 불리는 이 나무는 대학과 무척 어울린다.
<랩걸>을 쓴 생물학자 호프 자런은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디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고 했다.
우리 도시가 인내심을 지니고 나무와 마주했으면 싶다. 이 봄 서울에서, 부산에서, 여러 도시의 길가에서 숨 막히는 보도블록 아래 지하철과 지하상가와 지하주차장, 얽히고설킨 상하수도관과 각종 케이블을 뚫고 피해 필사적인 뿌리내리기를 하고 있을 플라타너스와 느티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를 응원한다. 이 가로수들이 대구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다나 광주 푸른 길의 느티나무처럼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시간여행을 하길 기대한다.
(*제목은 탁기형 작가의 에스엔에스에서 따옴)
국립공원, 팔공산 품에 안길까
대구시·경북도, 팔공산 국립공원 재추진
대구시와 경북도 등이 30일 경북도청 화백당에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한 대구·경북 상생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경북도 제공
대구시와 경북도가 9년 만에 팔공산 국립공원 지정을 다시 추진한다. 만일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전국 23번째 국립공원이 된다.
대구시와 경북도 등은 30일 경북도청 화백당에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한 대구·경북 상생업무협약’을 맺었다. 시와 도는 ‘팔공산 도립공원 보전·관리방안 연구용역’ 등을 통해 팔공산 국립공원 지정을 재추진하기로 하고, 다음달 환경부에 팔공산 국립공원 지정 건의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국립공원 지정을 신청하면 환경부는 타당성 조사를 한다. 이어 주민설명회, 공청회,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국립공원 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팔공산(면적 125㎢·해발 1193m)은 1980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나눠 관리하고 있다. 팔공산에는 국보 2점과 ‘갓바위’라 불리는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등 보물 28점 등 지정문화재 91점이 있다. 또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하늘다람쥐 등 생물 5295종이 살고 있다. 팔공산 국립공원 지정은 지난 2012년에도 추진됐다가 주민과 상인 등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은 500만 시·도민과 함께하는 대구·경북 상생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며 “앞으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해 경북도와 대구시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지정된 국립공원은 지리산 등 모두 22곳이다. 국립공원 전체 면적(6726㎢)은 국토 전체 면적(10만399㎢)의 4% 정도이며, 한해 국립공원 탐방객은 4400만명에 이른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로드킬·매연 신음하는 지리산…“오대산 선재길처럼”
시민단체·불교계 ‘성삼재·정령치 도로 전환연대’ 발족
“연 45만대 통행…걷는길 어렵다면 셔틀버스만 운행을”
해마다 100만명이 찾는 지리산 성삼재 도로의 비좁고 굴곡진 산악 구간. 김인호 시인 제공
지리산 관통도로도 오대산 선재길이나 설악산 백담사길처럼 차량 통행을 통제하고 셔틀버스만 다니게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남 구례, 전북 남원의 시민단체와 불교계 등 16곳은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산림비전센터에서 ‘성삼재·정령치도로 전환연대’를 발족했다. 전환연대에는 지리산생명연대, 지리산종교연대, 구례군농민회, 전북녹색연합, 기후위기남원시민모임, 진주환경운동연합, 실상사, 화엄사 등 단체와 사찰 16곳이 참여했다.
이들은 출범선언문을 통해 “1988년 구례 성삼재와 남원 정령치를 거치는 길이 37㎞의 산악도로가 생기면서 지리산 탐방객이 2배로 늘고 생태계는 491개로 조각났다”며 “연간 차량 45만대가 통과하면서 로드킬이 속출하고 매연·소음·냄새가 만연해 생태계가 몸살을 앓아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기후위기가 닥치면서 ‘미래세대도 국립공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절박함으로 이들 도로의 대안을 찾아 실행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몰려든 차들이 주차장을 이룬 지리산 성삼재 도로. 지리산사람들 제공
출범식 뒤 이들은 성삼재·정령치 도로의 녹색전환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에서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지금 같은 생활방식으로는 ‘22세기는 없다’고 하는 미래세대의 외침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참석자 일부는 “국립공원 취지와 생태환경 보존을 고려하면 당장에라도 포장을 뜯어내고 원형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탐방 관행이나 주민 의견 때문에 당장 폐지할 수 없다면 탈탄소시대에 걸맞게 이용 방식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이용 규모·시간·속도 제한 △국립공원 도로화 △일반차량 출입 통제 △전기버스 운행 등을 제시했다.
차량 통행을 최소화해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줄인 오대산 선재길이나 설악산 백담사길도 대안 사례로 검토했다.
오대산 국립공원에서는 지난 2002년 월정사~상원사 구간을 포장하려는 사업계획이 세워졌는데 불교계와 지역민이 가로막아 사업은 무산됐다. 대신 2013년 1400년 전 숲길을 복원한 선재길이 열려 명품 숲길이 됐다.
지리산 성삼재 관통도로에 빼곡하게 주차된 차들. 지리산사람들 제공
설악산 국립공원에서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백담사 6.5㎞ 구간의 일반차량을 통제한다. 대신 1996년부터 마을버스 10대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편도 2500원을 받고 탐방객을 나른다. 향토기업 마을버스는 16명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해마다 33만3000명을 운송하며 흑자를 내고 있다. 주유와 출력 등을 고려해 아직 경유버스를 사용 중이나 친환경버스로 전환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대표는 “성삼재와 정령치는 백두대간 마루금의 연장선에 있다. 한반도 생태축의 핵심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뜻이 아무리 좋아도 지역민, 지자체 등이 외면하면 실행하기 어려운 만큼 공감을 얻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지리산의 관문인 성삼재·정령치 도로는 애초 일제강점기에는 목재 수탈, 한국전쟁 전후에는 빨치산 토벌에 쓰인 좁은 산길이었다.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방문한 외국인을 위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 등 68억원을 들여 너비 8m 규모로 포장도로를 건설했다. 이후 주차장을 1991년 성삼재(262대)와 1993년 정령치(67대)에 설치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독일 헌재 “온실가스 감축 부담, 미래세대로 넘기면 위헌”
기후변화법에 2030년 이후 감축계획 불충분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 안겨 기본권 침해”
한국 청소년들 소송에 영향 줄 가능성 주목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들이 지난해 3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소극적으로 규정한 현행 법령이 청소년의 생명권과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등이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자유의 기회는 세대별로 비례해 나눠져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미래 세대에 일방적으로 이전돼서는 안 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9일(현지시각) 독일 기후변화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했다.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관련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며, 이를 ‘미래 세대의 기본권 침해’로 판단한 것이다. 이 판결은 독일 환경단체 분트(BUND), 미래를위한금요일, 그린피스 등이 제기한 위헌 소송에서 나왔다. 이들의 주장은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변화대책을 문제삼아 위헌 소송을 제기한 한국 청소년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국제 판례가 드문 상황에서 이번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결정이 한국 헌법재판소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다.
독일 기후변화법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하고, 이 목표에 맞춰 각 부문에 연간 배출량을 할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 헌재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데 충분치 않다.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정한 기후변화 억제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 이후에 더 급격하게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독일 연방의회에 “올해 말까지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화한 조항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독일 헌재는 결정문에서 “기본법(독일 헌법)은 현 세대가 생명의 자연적 기초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이후 세대가 그것을 보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설명자료에서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이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하기 때문에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모든 유형의 자유에 영향을 준다. 감축 부담을 2030년 이후로 넘기는 것은 젊은 세대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기에는 현재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가 너무 낮기 때문에, 2030년 이후 미래 세대의 부담이 클 수 있다는 판단이다.
소송을 제기한 독일 환경단체와 법률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독일 기후소송에서 전례가 없는 역사적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기후변화 대응 행동을 크게 강화시켜 줄 것”이라고 환호했다. 미래를위한금요일의 활동가로 이 소송에 참여한 루이자 노이어바우어는 영국 <가디언> 등 외신에서 “많은 이들을 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날”이라고 했다. 변호인단에선 “헌재가 독일 정부의 따귀를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내 전문가 사이에도 지금까지 나온 국외 기후소송에 견줘 진전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네덜란드·아일랜드 대법원, 프랑스 법원 등 세계 주요국 사법기관이 기후변화가 정치와 정책의 영역이 아니라 국민 기본권 침해와 관련된 사법 영역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이번 독일 헌재 판결은 국가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를 기후변화로부터 똑같이 보호해주지 못하면 기본권 침해가 된다고 인정한 것이 특히 새롭다.
이때문에 이번 판결이 한국 기후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현재 세대가 온실가스를 충분히 줄이지 않는 것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 독일 연방헌재 논리는, 지난해 3월 같은 이유로 소송을 낸 한국 청소년들에게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 진다. 청소년 쪽 법률대리를 맡은 윤세종 기후솔루션 이사(변호사)는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도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높이지 않는 한국의 상황이 독일과 유사하다. 감축 목표라는 구체적 영역에서 헌법적 심사를 했다는 점이 가장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청소년들과 한국 정부로부터 각각 의견서를 제출받은 헌법재판소는 국내외 연구자료를 수집하는 등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수 최우리 기자 jsk21@hani.co.kr
남쪽 살던 회색곰, 온난화 타고 북극곰 안방 노린다
북극곰과 회색곰 사이에서 태어난 새로운 곰의 모습. 최근 온난화로 두 곰의 서식공간이 겹치며 이종교배가 늘고 있다. 독일 오스나브뤼크동물원 제공
북극곰은 바다표범 같은 기존 사냥감이 기후변화로 줄어들어도 재빨리 다른 종류의 먹이를 먹기 어려운 신체 구조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틈을 타 먹이 종류를 가리지 않는 회색곰이 북극으로 치고 들어올 가능성이 커지면서 생존공간을 두고 한판 대결이 벌어지거나 반대로 두 곰 간의 교배로 ‘제3의 곰’이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밴더빌트대 연구진 등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지난 수천년간 북극곰이 바다표범의 부드러운 고기를 먹기에 최적화된 신체 구조를 유지해 왔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알래스카대 북부 박물관이 소장한 북극곰의 두개골과 이빨의 마모 상태를 치과용 전자장비로 확인해 이런 사실을 규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부드러운 고기가 주식인 북극곰은 두개골이 앞뒤로 삐죽하게 길어졌다. 동시에 어금니는 작아졌다. 질긴 음식을 많이 씹으면 어금니가 발달하는데, 북극곰의 서식 환경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극곰을 위한 부드러운 먹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북극곰은 생존을 위해 10일마다 몸무게 50~70㎏짜리 바다표범 한 마리를 잡아먹어야 하지만 바다표범의 서식지이며 북극곰의 사냥 장소이기도 한 얼음이 최근 빠르게 녹으면서 예전 같은 풍족한 식사를 하기가 힘들어졌다. 북극의 온난화 속도는 지구 다른 지역보다 두 배 빠르다는 게 과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극보다 남쪽에 살던 회색곰이 북극곰 영역을 침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회색곰 입장에선 예전에는 추워 엄두도 내지 못하던 북극권이 온난화로 살 만한 땅이 됐기 때문이다.
회색곰은 먹을 수 있는 동물의 종류도 다양한 데다 딱딱한 식물 줄기도 잘 씹는다. 먹성 좋은 회색곰이 대거 북극으로 치고 올라가 북극곰을 밀어내려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극곰과 회색곰의 생활 영역이 겹치는 현상은 이미 조짐이 나타났다. 그런데 일단 그 양상은 두 곰 간의 ‘전쟁’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2006년 캐나다에서 북극곰과 회색곰의 외모를 섞어 놓은 곰이 발견됐는데, 북극곰과 회색곰의 짝짓기로 탄생한 새로운 종류의 곰이었다. 2017년 연구에서도 회색곰 DNA가 섞인 새끼 8마리를 낳은 암컷 북극곰이 확인됐다. 과학계에선 북극곰과 회색곰 사이에서 태어난 곰을 ‘피즐리(pizzly)’ 또는 ‘그롤라(grolar)’라고 부른다. 연구팀을 이끈 라리사 드산티스 밴더빌트대 생물학과 교수는 미국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를 통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새로운 곰의 두개골이 생물학적 구조에서 북극곰보다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없던 동물까지 만들어버린 기후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지리산 둘레길 289㎞ ‘국가 숲 길’ 됐다
지리산 둘레길에 자리잡은 남원 와운마을 천년송 모습. 서부지방산림청 제공.
서부지방산림청(청장 조준규)은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 둘레길이 산림청 심의를 거쳐 국가숲길로 지정됐다고 3일 밝혔다.
지리산둘레길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조성한 총 거리 289㎞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전북 남원시(47㎞), 전남 구례군(72㎞), 경남 함양군(24㎞)·산청군(69㎞)·하동군(77㎞) 등 3개도 5개시ㆍ군(20개 읍ㆍ면) 120여개 마을을 잇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숲길이다.
국가숲길 지정 기준은 산림생태적 역사·문화적으로 가치가 높고 총 연장이 50km 이상이어야 한다. 또 탐방객 수가 3년 평균 30만명 이상과 국가숲길 지정 이후에 노선의 추가가 가능해야 한다.
지리산둘레길 관리기관인 서부지방산림청과 운영기관인 사단법인 ‘숲길’은 국가숲길로 지정됨에 따라 홍보를 강화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화할 방침이다. 동시에 장기적으로 지자체 숲길과 연계를 통해 노선을 추가하고 안내센터 정비 등 편의시설을 대폭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서부지방산림청 전재희 주무관은 “국가숲길로 지정된 만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서비스 확충을 통해 이용 만족도 향상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친환경 소재? 옷은 안 사는 게 ‘최고의 친환경’
패스트패션 거부하고 새 옷 안 사는 노쇼핑 문화
의류산업,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0% 차지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 의류산업에서 해마다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세계 전체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옷을 만들 때 들어가는 물의 양은 연간 1조5000억ℓ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생산되는 옷 중 상당수는 ‘패스트 패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빠르게 생산·판매된 뒤 몇 번 입지 않고 버려지기 일쑤다.
지난 1월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변에 “안 입는 옷이 있는지, 옷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 보겠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기후위기와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최소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불필요한 옷 소비, 패스트 패션 문화를 지양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 옷을 사지 않는 노쇼핑족도 등장했다. 한 계절이 지나면 폐기물이 되는 옷을 보며 과도한 옷 소비를 멈추기로 마음 먹은 이들이다.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와 유튜브 등에는 쇼핑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록하거나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물이 여럿 올라와 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자녀를 둔 강경미(39)씨도 노쇼핑족이다. 2016년께부터 새 옷을 사지 않고 있다. 강씨는 “아이를 낳고보니 사야하는 옷과 물건이 이전의 10배는 되는 것 같았다. 입고 버릴 때마다 이 옷이 당장 집에서는 나가지만 지구 어딘가에 쌓일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이어 “내 아이가 커갈 환경을 오염시키는 데에 일조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사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어린이집 교사 조성아(34)씨는 5년 전부터 얇은 티셔츠 정도만 가끔 구매하다가, 올해 들어선 새 옷을 전혀 사지 않고 있다. 조씨는 “지난해 텀블러 쓰기, 고체샴푸 쓰기 같은 나름대로 생활 속 챌린지를 수행했다. 환경에 도움이 되려고 한 일인데 제품을 살 때 딸려오는 에코백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이게 과연 친환경인지 의문이 남았다. 그때부터 의생활을 포함해 불필요한 소비 자체를 멈춰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새 옷을 사지 않는 ‘노쇼핑’ 족 이해나(34)씨(사진 상단)와 조성아(34)씨(사진 하단). 사진 속 옷들은 친구와 교환한 옷, 중고 옷, 아버지의 셔츠와 동생의 바지 등이다.
이들은 새 옷을 사는 대신 버리지 않고 오래 입거나 지인과 나눠 입고, 중고제품을 사는 편을 택한다. 2018년 말부터 옷쇼핑을 안 한다는 직장인 이해나(34)씨는 가족·지인과 옷을 교환하거나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한다. 이씨는 최근 유튜브에 ‘3년차 노쇼핑러 옷장 공개’ ‘2년 옷 안 사고 버틴 방법’ 등의 콘텐츠를 올리며 노쇼핑 노하우를 소개했다. 그는 “내게 어울리지 않던 옷이 친구에게 찰떡처럼 어울릴 때 옷이 주인을 만났구나 싶어 즐겁다”고 했다. 조씨도 “옷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다양한 스타일링을 시도하게 된다. 자켓 같은 경우, 받쳐 입는 상의나 하의에 따라 전혀 다른 옷처럼 보이기도 한다. 친구들보다 옷이 많지 않은데 오히려 ‘옷이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고 했다.
의류 폐기물을 줄이자는 뜻에서 시도한 변화였지만 뜻밖의 효과도 있다. 쇼핑을 해야 자신의 취향을 알 수 있다는 통념과 달리, 소비를 줄이면서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가지고 있는 옷을 최대한 활용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나를 찾아가게 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지, 어떤 색이 잘 받는지, 내 체형과 취향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동안 내 취향이 아니라 유행이나 광고에 휩쓸려서 산 옷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의생활 속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하는 스타트업 ‘다시입다연구소’는 지난해 7월 옷장 속 입지 않는 옷이 얼마나 되는지 사람들에게 물었다.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는 “평균적으로 10벌 중 2벌(21%) 정도의 옷이 옷장 속에 묵혀 있다. 의류 소비 문화를 환경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한국의 신기후체제 리더십을 되짚어볼 때
문재인 정부 에너지기후 리더십의 시작과 끝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구체성이 결여됐고, 한국 정부의 환경 철학 부재만 드러낸 계획이라고 촌평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22~23일, 지구의 날을 맞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소집한 기후정상회의(Leaders Summit on Climate)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11월에 열릴 글래스고 기후총회(COP26)까지 가는 신기후체제 감축목표와 이행방안 협상 과정에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는 것이다. 파리협정 재가입 조치 이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기후위기 리더십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앞으로 기후대응과 에너지전환을 둘러싼 협력과 경쟁의 지정학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고, 한국 정부가 취할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후정의 관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주제가 있다. 기후정상회의에서 환영받지 못한 의제, 바로 화석연료확산금지조약(Fossil Fuel Non-Proliferation Treaty)에 관심이 필요하다. 화석연료를 땅속에 그대로 놔두자는 기후운동 진영의 핵심 주장을 국제조약으로 체결하자는 흐름이 최근 각광받고 있다. 파리협정을 포함해 지금 같은 방식으로 1.5도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101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기후정상회의에 참여하는 각국 정상들에게 화석연료확산금지조약 검토를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파리협정은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를 직접 규제하지 않는다.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가 결성한 넷제로 생산국 포럼(Net Zero Producers Forum)이 밝힌 순환탄소경제(circular carbon economy) 같은 '선 배출 후 처리' 접근이 들어설 틈새를 막지도 못한다.
반면 새로운 조약은 공급단계에서 화석연료를 체계적으로 등록·통제·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탄소감축에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첫째, 화석연료 신규 채굴 및 개발을 금지한다. 둘째, 1.5도 기후과학을 반영하고, 국가별 기후위기 책임, 각국의 화석연료 의존도와 전환 역량을 고려하여 현행 생산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한다. 셋째, 재생에너지 백퍼센트, 화석연료 탈피 경제 다변화, 정의로운 전환 등 전환계획에 투자·지원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은 탈탄소 국제협력의 기본 규범으로 손색이 없다.
글로벌 이니셔티브가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고 있지만, '구' 기후체제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현재까지 밴쿠버, 바르셀로나, 로스앤젤레스 등 일부 지방정부만 화석연료확산금지조약을 승인한 상황이지만, 화석연료 연소를 원천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화석연료확산금지조약이 보편화되는 것이야말로 신기후체제를 살리는 정공법이다.
5월 30~31일, '2021 P4G 서울 정상회의'가 열린다.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는 "전 세계 공공·민간 기관의 협력 확대를 통해 녹색성장과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 가속화를 위한 다자협력 네트워크"로 한국, 덴마크, 네덜란드, 베트남,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케냐,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참여한다. P4G 정상회의에서 한국 정부의 리더십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현 정부 임기가 1년 남은 상황에서 국내 전환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을까.
탈탄소 에너지전환은 누가 집권하든 주요 국정과제로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 시점은 예정대로 후속 계획을 수립하고 추가 정책을 집행하는 것과 함께 정부 집권 평가를 동시에 진행해야 할 타이밍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문재인 행정부는 차기 정부에 남길 유산을 정리해야 한다. 당연히 정부 자체 내부 성찰도 필요하지만, 외부의 비판적 평가가 훨씬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취임 100일을 맞이한 바이든 정권의 국내외 기후위기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데, 그린피스 미국의 보고서(Climate Progress Report)가 흥미롭다. 바이든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기후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선거공약과 정책제안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는 충분하지 않고 아직 부족하다고 결론 내린다.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 부분은 50점 중 12점, '그린뉴딜 실행' 부분은 50점 중 18점으로 100점 만점에 30점에 불과하다. 물론 임기가 많이 남아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충분해 점수는 좀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경우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7년 (탈핵)에너지전환 선언으로 시작해서 2020년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으로 이어지는 정치과정과 정책흐름을 돌아보면, 대체로 타이밍을 놓치고 뒤늦게 뭔가를 계획하거나 발표한다는 인상을 준다. 전환경로의 세부 쟁점도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과 자연보다는 자본과 개발에 친화적인 경로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체계적으로 평가할 기회가 생기면 명확해지겠지만, 현 정부의 전환 수행평가에 후한 점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전체 구상 없이 시작했지만 중간에 손 놓고 있다가 마지막에 달리는 느낌이다. 정치쟁점화를 경계한 나머지 기후에너지 정책에서 정치의 실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2017년)와 국가기후환경회의 국민정책참여단(2019~2020년)이 전부인 것처럼 비춰진다. 각종 위원회와 포럼에 참여하는 학계·시민사회 소속·출신의 연구자·활동가의 역할 또한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21대 국회 과반 의석으로 뒷받침될 그 질주의 끝을 성공과 실패 중 어느 하나로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임기 중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한국사회 자체의 동력보다는 국제사회 거시환경의 압박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웃픈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환연구가 제시하는 것처럼, 진단·분석, 처방·관리, 맥락·과정 등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지지·성과, 시행착오, 저항·고착, 한계·모순, 향후 과제·대안을 풀어낼 수 있다.
'저탄소녹색성장'에서 '창조경제'를 지나 '탄소중립 그린뉴딜' 시대에 들어섰다는 점은 확실하다. 앞으로 정책 브랜드는 바뀌겠지만 기후위기 리더십은 더 강력해져야 한다. 강력한 리더십은 비판적 팔로워십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아가 리더십-팔로워십 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시민사회와 지역사회의 커먼즈(commons, 공유) 창출·방어·확대의 권리보장과 역량강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지난 4년 동안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파트너 국가가 갑자기 부상할 일 없겠지만, 에너지기후 커먼즈의 활성화 또한 정부 집권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끝으로, 5월에 출범할 '탄소중립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기후위기를 막고, 국가 민주화가 에너지 민주화를 가능케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의 방향을 처음으로 설정한 현 정부의 실정을 두루 살피지 않고서 앞만 보고 간다면 학습 기회를 잃게 되어 '녹색성장위원회'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는 '살벌한 진실'도 기억하길 바란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프레시안
산림 탄소 정책 헛발질, 산림청 규탄한다
- 생명의 가치 짓밟는 탄소계산 숫자놀이 멈춰라
- 벌목으로 돈 벌이 하려는 산림정책 백지화하라
작금의 기후위기 상황이 도래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 활동에 있다. 책임 주체 역시 인간이어야만 한다. 목재로서 경제적 가치를 넘어 수자원 함양으로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고,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생명을 품는 생명다양성의 근간인 나무와 숲에 인간이 야기한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기후파국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도 채 남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각국 정부에 적극적인 행동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부터 문재인 정부는 그린뉴딜, 탄소중립과 같은 담론을 발표하며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현 의지와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UN에 제출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전력 다음으로 국외/산림 분야에서 상당량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는 수송 분야와 산업계의 감축량 보다 더 많은 양을 차지한다. 산림청은 탄소 중립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토 산림면적에 72%를 차지하는 30년 넘게 자란 ‘늙은’ 나무를 베고 ‘어린’ 나무를 심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자연림을 비롯해 국립공원과 보호지역에 있는 숲도 포함된다.
오래 된 숲이 탄소를 더욱 잘 흡수하고, 토지를 있는 그대로 두었을 때 제 역할을 잘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세계적으로 속속 발표되고 있음에도,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결과가 진리인양 전국 대규모 산림파괴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뻔뻔하게 탄소중립이란 이름을 붙여 혹세무민하는 산림청의 작태에 말문이 막힌다. 산림청의 탄소계산 숫자놀이는 숲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의 가치를 짓밟고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인간의 산업, 경제, 소비 활동에서 대대적인 변화 없이 멀쩡한 나무를 베어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산림청의 계획은 국민을 우롱하는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은 산림청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2050 탄소중립 산림부문 추진전략 기존안 전면 철회하고, 수정 과정에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하라
- 무분별한 벌목으로부터 나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벌기령(목재수확 시기)에 손대지 마라
- 2050 탄소중립 산림부문 추진전략 기존안에 포함된 벌채 예정지, 해당 지역 생태 조사 계획 여부, 신규 조림 예정지, 조림 수종, 목재 판매 임업회사 정보 등 해당 계획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라
환경운동연합은 산림청이 나무를 오직 탄소 흡수 도구 및 자원으로만 간주하는 처참한 생태감수성에 매우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 산림청이 탄소중립이라는 미명으로 전국의 숲을 파괴하는 것을 결코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국내외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 대응할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한국인은 22개 도시 권역에 몰려산다…대도시화, 유럽보다 심각
영국 96곳·이탈리아 84곳 모여살아
런던 1200만명·로마 400만명 수준
한국 수도권에 2400만명이나 집중
면적 감안해도 밀집도 매우 높아
“코로나시대 대도시화 완화 고민을”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 서울의 한 아파트.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유럽연합(EU), 유엔 인간거주계획(UN-Habitat) 등 6개 국제기구가 나라마다 제각각인 도시 기준을 표준화하기 위해 5년에 걸쳐 만든 도시 개념을 유엔이 최근 공식 채택했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도시 권역’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모두 22개 도시 권역에 인구가 밀집돼 있으나 영국(96곳)·이탈리아(84곳)·스페인(81곳) 등 유럽 주요국은 한국보다 4배가량 많은 도시 권역에 인구가 흩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분류한 한국의 도시 권역은 모두 22곳이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강원도에 4곳, 영남에 8곳, 호남에 6곳, 충청권에 3곳이 있다. 제주도의 제주시도 도시 권역으로 분류됐다. 특히, 서울·인천·수원 등을 중심으로 경기 파주·안산·여주까지 포괄하는 대규모 도시 활동 권역이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쪽으로 춘천 권역, 원주 권역과 거의 닿아 있는 수도권 도시 권역에는 2015년 기준으로 2382만7천명의 인구가 거주한다. 이 지역 인구 중 도시 거주자 비율은 92%에 달한다.
부산(김해) 권역에는 413만3천명이 거주하며 도시 거주자 비율 역시 92%로 나타났다. 인구 221만3천명이 모여 사는 대구 권역과 인구 159만8천명인 대전 권역은 전체 인구가 도시 거주자로 분류됐다. 광주 권역(인구 161만7천명)의 도시 거주자 비율은 94%였다.
국토 면적은 한국의 2.4배이며 인구는 1500만명가량 많은 영국에는 전국에 96곳의 도시 권역이 형성되어 있다. 또 면적은 3배이며 인구는 한국보다 1천만명 많은 이탈리아 전국의 도시 권역은 84곳이다. 전체 인구가 한국보다 약간 적지만 국토 면적은 5배인 스페인은 81곳의 도시 권역이 있다.
세 나라의 수도를 보면, 런던 권역(인구 1195만4천명)의 도시 거주자 비율은 82%, 로마 권역(인구 413만1천명)은 64%, 마드리드 권역(인구 661만4천명)은 80%로 분석됐다. 한국은 유럽보다 대도시 중심의 도시화 추세가 훨씬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거대 도시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이탈리아 밀라노나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등에서는 통근·쇼핑 등 일상생활을 위한 이동 시간을 15~20분 이내로 줄이는 분산형 도시 개편 실험이 전개됐다. 한국도 대도시 중심의 도시화 완화 대책을 고민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미·유럽이 가장 도시화? 실제론 북아프리카 1위
EU 통계국, 유엔 새 기준 따른 분석 보니
전세계에서 도시 거주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각국의 공식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남아메리카의 도시 거주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84%로 가장 높다. 북아메리카와 북유럽(각각 82%), 서유럽(79%)도 도시화가 많이 이뤄진 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각국의 통계와 실제 현실은 영 딴판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유럽연합 통계국(Eurostat)이 최근 지적했다. 통계국은 ‘국제 비교를 위한 도시, 마을(타운), 농촌 개념 규정을 위한 방법론 가이드’ 2021년판을 내놓으면서, 유엔이 최근 새로 채택한 도시 개념에 따르면 도시 거주자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은 뜻밖에도 북아프리카로 분석됐다고 소개했다.
유럽연합 소속 지역 및 도시 정책 총국(DG REGIO)의 세부 분석 결과를 보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전체 인구 중 83%가 도시(58%)와 마을(25%)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 거주 인구는 전체의 17%에 불과했다. 도시 인구 비중이 두번째로 높은 지역 또한 예상과 달리, 서아시아(81%)였다. 이어 남아메리카와 중앙아시아(80%), 카리브해지역(79%), 동아시아(77%) 차례로 나타났다.
공식 통계 기준으로 도시화 비율 2~4위인 북아메리카, 북유럽, 서유럽은 새 기준에 따르면 도시 인구 비중이 각각 72%, 75%, 68%였다. 특히 서유럽은 전체 19개 지역 중 도시 인구 비중이 남아프리카(66%)에 이어 두번째로 낮았다. 동유럽의 도시 인구 비율도 서유럽과 같았다. 세계 전체로는 인구 중 74%가 도시(48%)와 마을(26%)에 살며, 나머지 26%는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나라마다 도시기준 제각각…5년 만에 표준화
유럽연합 통계국은 “공식 통계와 새 분석 결과의 차이가 큰 것은, 각국이 통계 작성 때 기준으로 삼는 도시 개념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계국은 “유엔 회원국들이 현재 사용하는 도시 개념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라며 “예컨대, 중남미의 코스타리카에서 도로가 포장된 지역이면 도시로 간주되고 말레이시아에서 도시는 현대적인 화장실을 갖춘 주택들이 모인 지역으로 인식된다”고 소개했다.
인구 규모에 따라 도시를 규정하더라도 세부 기준이 제각각이긴 마찬가지다. 전세계 84개국은 인구 5000명 이상인 행정 구역을 도시로 규정하는 반면 아프리카 말리는 3만명, 한국과 일본은 5만명 이상이어야 도시로 분류한다. 중국과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은 인구 규모뿐 아니라 인구밀도도 도시 분류에 적용한다. 두나라에서 도시로 분류되려면 1㎢당 인구밀도가 1500명을 넘어야 한다.
이렇게 제각각인 도시 개념을 통일하기 위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유엔 인간거주계획(UN-Habitat),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등 6개 기구가 협력해 지난 5년 동안 대규모 연구 작업을 진행했다. 실무 기준 마련과 실제 도시 권역 분석 작업은 유럽연합 소속 조직인 통계국, 지역 및 도시 정책 총국, 합동 연구센터(JRC)가 주도했다.
도시 개념 정리 및 분석 작업은 3단계로 이뤄졌다. 첫번째 작업은 전세계를 ‘도심 구역’(어번 센터), ‘도시 구역’(어번 클러스터), ‘농촌 구역’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인구가 1500명 이상인 1㎢ 면적의 기본 단위들이 서로 이어져 총인구 5만명 이상을 이루는 공간이 ‘도심 구역’으로 분류된다. ‘도시 구역’은 인구 300명 이상인 기본 단위들이 모여 총인구가 5천명 이상인 공간이다. 두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 ‘농촌 구역’이 된다.
개념 자체는 간단하지만, 전세계의 실제 인구 분포를 확인하는 데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위성 사진을 이용해 전 지구를 1㎢ 면적 단위로 나눴다. 이어 각 단위의 인구를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계산했다. 또 기본 단위들이 모여 5만명 이상의 도심이나 5천명 이상의 도시를 이루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두번째 작업은 앞의 분석을 바탕으로 각국의 개별 행정구역(또는 통계 작성용 기초구역)을 도시, 마을(타운), 농촌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행정구역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 ‘도심 구역’에 몰려 사는 곳은 도시로 분류됐다. ‘도심 구역’이나 ‘농촌 구역’ 거주 인구가 모두 전체 인구의 50% 미만, 다시 말해 도심, 도시, 농촌 구역이 혼재된 행정구역은 마을로 분류된다. 전체의 50%를 넘는 인구가 ‘농촌 구역’에 살면 농촌이 된다.
“도시·농촌 균형개발에 기여할 것”
전세계의 도시를 확인하는 마지막 단계는 ‘도시 권역’(실제 기능하는 도시 영역)을 정립하는 작업이다. 한 도시의 인근 지역 중 인구의 15% 이상이 해당 도시로 출근하는 지역까지 포괄한 구역이 도시 권역이다.
유럽연합 통계국은 “전세계 공통의 도시 개념 정립 및 실제 도시 구역 분류 작업은 도시와 농촌의 특성에 맞춘 정책 개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도시와 농촌의 균형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유엔이 2015년 설정한 ‘지속가능 개발 목표’의 정확한 이행을 측정하는 데도 새 도시 개념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기진맥진 여름 철새 쉬어가는 어청도는 ’족제비 천국’
번식지 이동 철새 정거장…마을 앞마당서 태연히 대낮 사냥
족제비의 귀엽지만 암팡진 얼굴. 쥐와 작은 새들을 노리는 무서운 사냥꾼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는 시골 동네에서 족제비를 흔하게 봤다. 닭장을 털어가서 미움도 많이 샀지만 사람들은 뜰 안에 들어온 족제비를 ‘복 족제비’라 부르며 해치지 않았고 족제비도 인가 근처에서 함께 살았다. 족제비가 있으면 집 주변의 쥐들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어청도 마을. 어청도는 서해 고군산군도의 63개 섬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는 외딴 섬으로 전북 군산에서 약 70㎞ 떨어져 있다.
집 울타리와 밭을 돌담으로 쌓아 족제비가 서식하기 적합하고 밭에는 새들이 많이 찾아온다.
족제비는 시골의 돌담이나 인가 근처 농작물 경작지, 냇가의 큰 돌 밑 같은 곳에 구멍을 파고 서식했지만 1970년대 새마을 사업 등으로 서식 환경이 변하면서 농촌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 마을 뒤로 자리 잡은 야산, 돌담으로 쌓아둔 집 울타리와 밭의 경계 등 족제비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특히 어청도는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서 겨울을 보내고 4~5월에 한반도를 거쳐 번식지를 향하는 다양한 철새들이 잠시 머물고 가는 최고의 정거장이다.
족제비는 잰걸음으로 뛰어다니다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피는 습성이 있다. 어청도에서 만난 족제비 중 가장 큰 개체다.
벌떡 일어나서 더 멀리 살펴보는 족제비.
먼 길을 이동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딱새(왼쪽)와 큰유리새(오른쪽)의 깃털이 부스스하다. 족제비의 사냥감이다.
족제비는 2∼3월에 교미하여 약 37일 정도의 임신 기간을 거치고 3∼5월에 한배에 1∼7마리, 보통 4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는다. 철새들의 이동 시기와 족제비의 새끼를 기르는 시기가 맞물린 이때 족제비가 좋은 사냥감을 그냥 내버려 둘 리 없다.
희귀한 나그네새 진홍가슴(왼쪽)과 붉은가슴울새(오른쪽)도 족제비의 표적이 된다.
일반적으로 야행성인 족제비는 밤에 홀로 사냥하지만 이곳 어청도에서는 예외다. 먼 거리를 날아와 지친 새들이 땅에 앉아 있을 때가 족제비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낮에도 사냥한다. 족제비가 대낮에 흔히 목격되는 이유다.
바위를 타고 소리 없이 대륙검은지빠지 곁으로 다가서는 족제비.
희귀 새인 대륙검은지빠귀가 족제비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고 소리를 낸다.
흔하지 않은 흰눈썹붉은지빠귀가 경고 소리에 몸을 움츠리고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족제비는 어청도에서 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어청도의 하늘을 매가 지배한다면 족제비는 땅을 지배한다. 족제비는 영리하고 용맹하기도 하다. 숲 속을 은밀히 숨어다니며 몰래 숨어 있다가 사냥감을 급습하기도 한다. 사람과 마주치면 잠시 빤히 쳐다보고 살피는 습성이 있다.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이다. 사냥감 새를 노려보다 새들이 눈치를 채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물러서는 약아빠진 행동을 한다. 다음 공격을 위한 족제비의 영리한 전략이다.
새를 사냥한 족제비.
잡은 새를 야무지게 입에 물고 빠르게 은신처로 향한다.
하늘의 포식자인 매도 새를 사냥했다.
재빠른 발걸음으로 빠르게 질주하고 바위나 물체의 곡선에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족제비의 걸음걸이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풀숲에서 움직이면 마른풀 밟는 소리가 사냥에 방해되기 때문에 주로 숲 가장자리와 돌담 아래에 몸을 숨기고 발소리가 나지 않는 물체를 선택해 움직이며 은폐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이용하여 사냥과 이동을 한다.
이동은 발소리가 나지 않는 곳을 고른다. 족제비의 치밀함이 보인다.
바닷가 모래밭을 배회하다 정박한 배에 올라타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탐색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사냥감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족제비를 상대할 천적도 없으니 족제비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사냥 잔치가 벌어진다.
날쌔게 움직이는 족제비의 짧은 다리와 긴 허리가 이채롭다.
유연한 허리를 이용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어청도 마을 길은 족제비의 앞마당이다.
족제비의 몸길이는 수컷 28∼40㎝, 암컷 16∼32㎝이고, 꼬리 길이는 수컷 12∼22㎝, 암컷 8∼20㎝이다. 암컷보다 수컷이 더 크다. 족제비는 귀여운 얼굴이지만 야무지고 굳세며 동시에 사납고 잔인한 야생성도 지닌다. 족제비의 이빨은 매우 날카롭다. 한 번 물면 사냥감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작지만 탐욕스러운 포식자로서 활동적이고 주식인 들쥐, 집쥐를 비롯해 어류, 갑각류, 파충류, 곤충, 새, 새 알뿐만 아니라 열매 등을 먹고사는 잡식성 동물이다.
심기가 불편한 족제비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이빨을 드러낸다.
검은 눈동자가 아주 영특하게 보인다. 작은 귀는 둥근 쪽박 모양으로 위로 서 있어 소리를 듣기에 제격이다. 주위를 살필 때는 두 발로 일어서 사방을 살펴보고 경계도 한다. 눈 주위는 검은색, 코는 밤색이고 주둥이의 위아래 입술과 턱의 흰색이 귀여움을 더한다. 족제비는 이제 환경변화로 인해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다.
새들이 족제비에게 수난을 당하는 어청도의 봄, 그런데도 어청도에 머물렀던 새들은 역경을 헤치고 번식지로 날아가 후대를 이어갈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전문가는 ‘모른다’ IAEA·미국은 ‘괜찮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2차 처리를 통해 기준치 이하로 만들겠다고 하지만 방사성 물질의 총량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2018년 8월 도쿄전력은 이미 신뢰를 잃은 적이 있다. 검증이 필요하다.
2021년 4월13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저장탱크들. 계획대로 탱크를 더 만든다 해도 2022년 여름에는 한계에 봉착한다.ⓒKyodo News
일본 정부가 4월13일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국내외 자료와 언론보도를 바탕으로 관련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왜 지금 갑자기 바다에 버린다는 건가?
시작은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고농도 오염수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오염수란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투입된 냉각수에 원전 건물의 갈라진 틈으로 유입되는 지하수가 섞인 것을 말한다. 당시 도쿄전력은 고농도 오염수를 저장할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농도가 더 낮은 오염수 1만t을 ‘긴급 시의 어쩔 수 없는 조치’라며 바다에 방출했다. 국내외에서 비난이 일었다. 2013년에도 지하 저수조와 탱크에 저장한 오염수가 새는 사고가 잇따랐다.
2014년부터 지하수를 퍼 올려 바다에 내보내고, 2016년부터 땅을 얼려 지하수 유입을 줄이려 노력했지만, 지금도 오염수가 하루 평균 140t 발생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2013년부터 ‘다핵종 제거 설비(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 이하 ALPS)’를 통해 방사성 물질의 농도를 낮춘 물을 탱크에 보관해왔다. 탱크는 점점 늘어나 현재 1047개에 이르는데, 여기에 보관된 물이 올해 4월 기준 125만t으로 도쿄돔(도쿄에 있는 일본 최초의 돔 구장)을 다 채울 정도가 되었다. 계획대로 탱크를 더 짓더라도 2022년 여름 이후엔 한계에 봉착한다고 도쿄전력은 주장한다.
전문가들이 포함된 경제산업성 산하 논의기구는 각각 2016년 6월과 지난해 2월, 오염수를 바다로 내보내는 게 가장 빠르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논의기구는 해양 방출 외에도 오염수를 깊이 2500m 이상의 지하에 주입하거나, 시멘트와 혼합해 지하에 매장하는 방안, 수소로 환원해 배출하는 방안 등도 검토했다. 하지만 새로 부지를 확보해야 하고, 관련 규제나 모니터링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추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해 9월 집권한 이래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했고, 지난 4월7일 기시 히로시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장을 만났다. 기시 회장은 반대 의사를 재차 표명했지만 스가 총리는 4월13일 해양 방출 결정을 강행했다.
4월13일 오염수 배출을 결정한 각료 회의에서 스가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AFP PHOTO
안전한가?
“해양오염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라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현재 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를 앞서 언급한 다핵종 제거 설비(ALPS)를 통해 정화함으로써 방사성 물질의 농도를 일본 국내 규제 기준치 이하로 만들어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ALPS로도 없애지 못하는 방사성 물질이 ‘삼중수소’인데,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삼중수소 식수 기준인 1L당 1만 베크렐을 크게 밑도는 1L당 1500베크렐로 만들어 내보낸다. 삼중수소를 기준치 이하로 내보내더라도 해당 물질이 해양생물의 체내에 쌓여 인간에게도 피폭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이를 ‘생물농축’이라고 하는데, 경제산업성은 물 상태의 삼중수소가 체내에 쌓이지 않고 물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몸 밖으로 빠져나가며, 체내에 유입되더라도 인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세슘의 300분의 1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모른다’는 게 중론에 가깝다.
도쿄전력은 이미 신뢰를 잃은 적이 있다. 당초 도쿄전력은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은 ALPS로 정화해 국가의 기준치를 밑도는 것처럼 설명했으나, 2018년 8월 〈교도통신〉의 보도로 후쿠시마 제1원전 탱크에 저장된 오염수의 약 80%(현재는 70%)에서 세슘·스트론튬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이를 ‘처리 후 오염수’라고 홍보해왔다.
도쿄전력이 이번에 바다에 내보내겠다는 ‘처리수’는 이미 한 번 ALPS 등으로 처리한 오염수를 한 번 더 처리한 물을 말한다. 도쿄전력은 2차 처리를 통해 기준치 이하로 만들겠다고 하지만, 어떤 방사성 물질이 어느 정도 잔류하는지 그 총량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방류될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이 실제로 기준치 이하인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는 방류 뒤 모니터링 과정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대응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 하루 만인 4월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잠정 조치와 함께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잠정 조치’란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최종 판단을 내릴 때까지 일본이 방류를 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가처분 신청을 의미한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도 일부 엇박자가 나왔다. 4월19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일본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와 정보를 공유하고,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하며, IAEA 검증 과정에서 한국의 참여를 보장한다면’ 오염수 방류에 대해 “굳이 반대할 건 없다”라고 말했다가 다음 날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는 불가능하진 않아도 만만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 등이 반발하고 있지만, IAEA는 해양 방출을 지지한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논의기구 보고서에 대해 “기술적으로 실시 가능”하며 국제 관행에도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미국도 일본의 조치를 지지한다. 최근 방한한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4월18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국제사회에 정보를 빠르고 투명하게 제공하도록 노력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해 “미국이, 이미 진행되고 있고 명확한 규칙이 있는 과정에 뛰어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아사히신문〉은 문 대통령의 제소 검토 지시를 두고 재보선 참패, 정부 지지율 하락을 거론하며 “배경에는 국내 여론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도 있는 듯하다”라고 썼다.
이번에 결정한 오염수 방류는 2년 뒤에 시작될 예정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2011년 4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조치 뒤 “해수 및 수산물 분석 결과,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거나 평상시 수준 이내로 검출되었는데, 동태평양 방향으로 진행하는 일본 동북해역 해류의 특성에 따라 국내 해역에는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평가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2018년 〈해양과학(Ocean Science)〉에 실린 가나자와 대학의 야오이 이노마타 연구팀 논문을 보면, 2011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원전에서 흘러나온 세슘137이 섞인 오염수는 대부분 구로시오해류를 타고 북태평양으로 이동했지만, 일부는 동중국해를 거쳐 동해로 유입되었다. 이렇게 해서 세슘137이 포함된 오염수는 1년 만에 동해에 진입했고, 4~5년 만인 2015~2016년 동해의 세슘137 농도는 사고 전의 두 배가 되었다./시사인 전혜원 기자
“균형발전은 하향식·나눠주기식 아닌 국가 차원 큰 그림 통해 모색해야”
경향신문이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문재인 정부 4년,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주제로 진행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진종헌 공주대 교수,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조영태 서울대 교수, 마강래 중앙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국가균형발전이 국가적 어젠다가 된 지도 십수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균형발전은 여전히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역이 주체가 되어 지자체와 주민, 지역 기업과 인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발전 전략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방문한 광주형 일자리 현장에서도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만 지역 청년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다. 그래야만 수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거듭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 완화와 불균형 해소의 체감도는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균형발전은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이라도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4주년을 앞두고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진종헌 공주대 교수(지리학)가 머리를 맞대고 균형발전 정책의 실태와 대안을 고민했다. 이들은 “저출산·고령화·부동산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서가 균형발전 정책에 있다”며 “하향식, 나눠주기식이 아닌 국가 차원의 큰 그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좌담회 전문.
- 참여정부 시절부터 지속된 균형발전 정책을 평가한다면.
마강래 교수 = 과거 정부에서 많은 균형발전 정책을 쏟아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계속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런 정책이 없었다면 수도권 쏠림이 얼마나 더 심해졌을까 싶다. 전후 비교가 아니라 정책의 유무를 비교해야 한다. 그만큼 수도권으로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는 흐름이 강하다는 것이고, 더 많은 정책이 필요하다.
조영태 교수 = 정책을 많이 펴왔고 그 결과가 그나마 이 정도인 거다. 균형위가 정부 내에서 너무 힘이 없었던 게 아닌가.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균형위에 대해 모르고 어떤 정책을 효과 있게 펼쳤는지도 잘 모른다. 정책 효과도 필요하지만 균형위의 위상 제고도 필요하다.
김사열 위원장 = 균형위가 출범한 지는 오래됐지만 저도 작년에 위원장으로 취임해보고 ‘이렇게 해서 중요한 일들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생각했다. 프랑스, 일본은 균형위 같은 조직이 국가기관으로 돼 있어 힘이 실린다. 제가 80여명 균형위 식구들과 같이 머리를 짜고 전문가들 의견을 들어보니 결국 지역에 일자리가 있고 거기가 살 만해야 한다.
진종헌 교수 = 참여정부에서 균형발전 정책을 어젠다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효과도 있었다. 2016년까지 수도권 인구 순유출이 나타났다. 혁신도시 등 참여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효과였다. 이번 정부에서는 하향식 정책이 아닌 시대 상황에 맞게 다르게 접근해보고 분권과 균형을 같이 추구하자는 쪽이다. 분권 강화를 통해 균형발전 효과를 근본적으로 높이는 전략이다. 그러나 당초 목표보다는 효과가 부족했다. 수도권 집값 폭등 등으로 균형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다른 차원의 정책이 필요한 시기다.
- 수도권 인구 비중이 2019년 말 다시 50%를 넘었다.
조 교수 = 보육환경이나 일자리, 부동산 등은 지역별로 다른데도 출산율은 지역 전체가 떨어지고 있다. 생명체로서 사람도 생존 본능, 재생산 본능이 있는데 언제 재생산 본능이 발현되지 않고 생존 본능이 더 강해지나 봤더니 경쟁이 너무 심화되면 그렇더라. 그 경쟁이 물리적 밀도와 굉장히 관련이 있다. 수도권에 인구의 50~51%가 주민등록돼 있다. 25~34세 청년들은 56%가 수도권에 주민등록돼 있고 실제로는 60%가 넘을 거다. 이 좁은 공간에 너무나 많은 청년이 모여 있고, 이들이 느끼는 경쟁은 엄청날 거다. 수도권으로 자원이 다 집중됐고 지방은 자원의 총량이 적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목적지’가 수도권 하나밖에 없다. 싱가포르, 홍콩 출산율이 정말 낮은데 우리가 그런 도시국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 교수 = 저출산 문제가 밀도의 문제이고, 밀도에서 파생하는 경쟁의 문제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베이비부머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제가 정의하는 베이비부머는 195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포함한다. 1685만명에 해당하는 거대 인구다. 은퇴 후 부부 기준으로 월 240만원의 적정 생활비가 필요하고, 최소 생활비는 174만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소 생활비에도 못 맞추는 베이비부머가 대부분이다. 작년부터 1955년생이 고령인구로 편입됐고, 앞으로 20년간 거대 인구 3분의 1이 지속적으로 고령인구가 된다.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가 고민해야 하는데, 베이비부머 설문조사를 해보면 이촌향도 세대가 큰 비율을 차지한다. 50~60%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고, 여건이 되면 농촌으로 가고 싶다고 답한다. 수도권만 해도 이촌향도 베이비부머가 430만명 정도다. 이 중 10%만 지방으로 이전해도 43만명이고, 30%면 130만명이 넘는다. 이분들이 비수도권으로 이주하게 되면 행복감이 제고되고, 균형발전에도 기여하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 서울 집을 팔고 지방으로 가면 당장 자산상 손해가 생길 텐데.
마 교수 = 10년 전만 해도 베이비부머가 주택 규모를 줄이거나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할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는 집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하다. 고령자 복지가 취약하니 스스로 집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다. 만약 귀촌을 하게 되면 수도권에 보유한 집을 팔 수도 있지만 임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임대차시장에 주택이 공급되면 전·월세 가격이 크게 내리고 매매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인터뷰를 해보면 지방으로 가고 싶다는 욕구가 많은데 결정을 못한다. 지역이 어려워지고 있고, 일자리도 없고, 소일거리라도 하고 싶은데 그걸 할 수 있는 게 대도시, 수도권이라 망설인다는 거다. 대한민국에 유용하지만 잉여화되고 있는 가치가 세 가지 있다. 베이비부머, 비수도권, 지역 중소기업들이다. 이 3자를 결합해 미래에 활용할 시나리오를 만들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비수도권으로 귀향하고 지역 중소기업과 결합하는 형태다. 베이비부머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기실현을 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 비수도권이 될 수 있다.
정부에선 지방의 거대 도시권 형성을 추진하고 있는데.
진 교수 = 국토의 공간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1970~1990년대 기업은 서울에 본사, 지방에 공장을 뒀다. 그러나 2000년대 넘어오면서 과거의 분업 체계가 약화되거나 대체되는 상황이다. 혁신적인 첨단 산업은 공장을 굳이 먼 지방에 세우지 않는다. 서울 인근에 반도체 공장 많지 않나. 수도권 중심으로 성장하는 첨단 산업이 공간적으로 압축적으로 나타나면서 전통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그 산업들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한다. 지방의 산업·일자리 비중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혁신적 자원을 일부 나눠주는 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17개 광역시·도에 나눠주는 것보다 지방에 산업 생태계에 기초한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부·울·경 메가시티 전략도 그런 차원이다. 부산, 울산, 경남에 따로 만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균형발전 정책을 광역시·도 기준으로 해도 중복이 나타난다. 초광역 단위, 메가시티로 묶게 되면 중복되는 부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각 도시의 기능들을 특화시키고 연계해 권역 전체가 하나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메가시티가 새로운 균형발전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 메가시티 전략의 일환으로 가덕도신공항도 추진되는데 타당한가.
진 교수 = 부·울·경이 메가시티를 지향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갖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국제 경쟁력을 위한 요소가 공항과 항만이다. 김해공항이 그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면, 미래 발전 전략에 따라 새 공항 계획은 당연히 도출될 수 있다.
마 교수 = 수도권은 서울·경기·인천이 묶여 산업 생태계도 잘 구축돼 있지만 지역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가덕도 논의가 어려운 게, 인프라에 대한 경제성을 분석할 때 과거 트렌드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이다. 지역은 어려워지고 있기에 경제성 분석을 하면 당연히 경제성이 안 나온다. 경부고속도로도 그런 식으로 분석했으면 짓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상위 위계를 가진 인프라는 지금은 경제성이 낮지만 기본적으로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
- 문 대통령이 균형발전을 위한 초광역 프로젝트 추진을 언급했는데.
김 위원장 = 지역의 자생적 몸부림을 국가가 적극 도와줘야 한다. 최근 메가시티 지원 범정부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초광역적 사업, 지역 균형과 관련된 사업은 적극 발굴하고 미흡한 내용이 있으면 채워서라도 기회를 줘야 한다. 가덕도신공항과 비슷한 곳이 대구·경북 신공항, 광주 신공항이다. 이들 지역은 군사공항이 같이 있다. 군사공항 공간이 많아 민간공항으로 발전할 여지가 적다. 부산·울산은 그림을 보니 김해에 국내·군사공항을 두고 가덕도에 국제공항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의 지혜라고 봐야지, 특정 지역 일을 방해하고 수도권 입장에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문 대통령도 가덕도신공항 완성이 2028년이라고 했다. 이 정부에선 사업이 타당한지 검증 정도가 끝날 텐데 너무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평가한다면.
마 교수 = 큰 의미가 있지만 힘을 모을 공간이 어딘지 구체적으로 모른 채 많은 지자체에 나눠주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혁신도시지만 혁신이 없었다. 혁신을 이루려면 일자리 중심으로 대학, 공공기관, 민간이 협업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반쪽의 성공이지 않았나. 2차 공공기관 이전이 필요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지역 목소리를 담아 계획을 세우되 국가 차원의 혁신 시스템, 큰 그림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균형발전의 공간적 단위가 어딘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진 교수 = 효율성과 형평성 두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도 중앙에서 나눠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공평함이다. A지역에 큰 기관을 주면 다른 지역에도 하나씩 줘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효율성이 부족해진다. 이전되는 기관이 지역의 산업 생태계에 부합하는지를 덜 따질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선 효율성을 더 따져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기관, 경쟁력과 자원에 맞는 기관이 가야 한다. 공간 단위는 17개 광역시·도가 아니라 초광역 메가시티를 지향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에 새롭게 중심이 만들어진다.
조 교수 = 우리가 가진 자원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또 나누는 게 좋을지가 먼저 연구돼야 한다. 그 중심에는 청년세대가 들어가야 한다. 청년세대가 원하는 방향은 어떤 모습인지 연구해야 한다. 이번 정부가 딱 1년 남았는데,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해 첫 삽 뜨는 것보다 공부를 해놓고 다음 정부가 받아쓸 수 있게 해야 한다.
- 현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역점을 둘 부분은.
진 교수 = 성과가 많진 않았지만 의미 있는 정책들을 많이 했다. 생활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지역발전투자 협약제도도 시작했다. 다음 정부가 본격 시행하도록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지역과 중앙정부가 수평적으로 대화하려면 지역의 협상력이 있어야 한다. 재정 분권과 같이 가야 한다. 중앙과 지역이 어떤 사업을 할 때 50 대 50으로 투자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김 위원장 = 지역에 기회를 줘야 한다. 잘되는 곳만 기회를 주면 정의롭지 않다. (사업 타당성 검토 시) 균형발전 지표를 만들고 제3의 점수를 넣어 조건이 더 어려운 곳에 기회를 줘야 한다. 이를 정부 부처가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 228개 시·군·구를 대상으로도 불균형 문제 해소를 시도하고 있다. 경남 함양에서 인구 감소로 초등학교가 없어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학생을 데리고 이주하면 일자리와 집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조 교수 = 인구정책을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가 주로 하는데 인구의 과도한 집중 문제를 고려한다면 균형위가 중심이 돼야 한다. 기성세대가 아닌 밀레니얼 세대, Z세대의 눈으로 미래 비전을 담아야 한다. 제가 있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게 스타벅스다. 도시가 일자리와 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국민들이 원하는 게 들어가야 한다. 베트남 정부의 인구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데, 경제발전은 한국처럼 하되 인구는 한국처럼 안 되게 도와달라고 하더라.
마 교수 = 지방 도시 답사하면서 젊은층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우리 동네에 스타벅스가 없다’는 것이다. 특정 브랜드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지방에서는 좌절감과 열등감의 요인이 된다는 거다. (인구 유출을 막는)인구 댐을 구축하는 게 지역에서 중요한데 신산업의 도심 지향성,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공간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 가장 뜨거운 이슈인 저출산·고령화와 부동산 문제의 원인은 불균형 발전이다. 부동산 문제도 부동산정책만으로는 풀 수 없다.
이주영·박은경 기자 young78@kyunghyang.com
연령·소득·교육수준 높을수록 ‘친환경행동’에 많이 참여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국내 대표 식품제과업체들의 제품에 포함된 불필요한 플라스틱 트레이 제거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우리나라 국민들은 나이가 많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친환경행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반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고 환경보전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은 적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계간지 ‘환경정책’에 실린 ‘우리나라 국민의 환경인식, 환경태도, 환경실천 현황 및 구조적 관계성 분석’ 연구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5일 밝혔다. 조사는 2012~2017년 국민환경의식조사 자료를 토대로 환경의식 변화 추이를 분석했다.
5점 척도를 기준으로 환경관심도는 보통(3점) 이상인 3.49점, 환경보전 중요도는 3.97점이었다. 특히 환경 중요도의 경우 ‘중요하다’와 ‘매우 중요하다’를 합친 비율이 2017년 기준 78.6%에 달했다. 국민들은 환경을 위해 개인적 불편을 감수할 의사도 있었다. 자발적 절전이나 절약 감수 3.85점, 지구 환경을 위한 불편함 감수 3.69점, 느린 운송 및 배송시간 감수 3.46점 등 모든 관련 문항에서 3점 이상의 평균 점수를 보였다.
하지만 ‘과거 1개월간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긴 친환경행동’ 빈도수에 대한 답은 평균 3.29개에 불과했다. 자동차 이용 줄이기, 물 소비 줄이기, 1회용품 소비 줄이기 등 친환경행동의 8개 항목 중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친환경행동의 빈도수는 연령별로는 60대가 3.6개, 20대는 2.8개였고, 교육 수준별로는 대졸이 3.1개, 대학원 이상은 3.7개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친환경행동은 소득이 높을수록, 연령이 높을수록 친환경행동에 참여 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교육수준의 경우 친환경태도 및 친환경행동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정(+)의 상관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환경교육을 통해 환경의식을 높여 친환경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결과”라고 덧붙였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탄소중립도 진영논리? 4대강 파헤친 ‘녹색성장’ 못 버리는 국민의힘
정부·민주당, 이달 중 탄소중립법 국회 처리 목표
국민의힘 ‘MB 때 만든 녹색성장법 고쳐쓰자’ 주장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월15일 녹색성장과 관련한 국내 첫 상설전시관인 녹색성장체험관 개관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 KT빌딩 1층에서 `꼬마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한국계 미국인 조너선 리(오른쪽 두번째,한국명 이승민)군 등 참석자들과 개막버튼을 누른뒤 박수로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정부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곧 출범한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중 국회에서 탄소중립위원회 법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탄소중립 목표를 법으로 명시하는 입법 과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암초를 만났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집권당이던 이명박 정부 시절 제정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녹색성장법)을 개정해서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뇌물·횡령죄로 징역 17년이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때문에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탄소 감축 관련법을 폐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과 정의당, 환경단체 등은 녹색성장법이 환경·생태적 가치를 우선 고려한 기후변화 대응법이 아닌 ‘녹색’을 경제성장 도구로 이용한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법이라고 본다. 고쳐 쓸 수는 없고 완전히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P4G 정상회의도 ‘녹색성장’ 사용…여전히 유효”
지난달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법안소위원회에서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관련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서 임이자 환경법안소위 위원장(국민의힘)은 “법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다. 녹색성장법이 활성화되고 발전해야 하는데 죽어있는 법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미 탄소중립기본법(가칭) 제정안이 여러 개 제출된 상황에서 2010년 만들어진 녹색성장법 존치를 주장한 것이다. 한 간담회 참석자는 “임 의원이 마무리 발언을 하며 ‘녹색성장법, 이 좋은 법이 있는데 왜 없애려고 하느냐. 왜 전문가들이 이런 말을 안 하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임이자 의원실은 <한겨레>에 “올해 초부터 녹색성장 개념과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고 발언 내용을 확인해줬다. 그러면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기후변화 대응을 한 당은 우리 당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이달 말 주최하는 ‘P4G 서울 정상회의’의 G도 녹색성장(Green Growth)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외국에서는 탄소중립이 정쟁의 대상이 아닌데, 민주당과 정부가 탄소중립을 자신들만의 공으로 가져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녹색성장법과는 성격이 다른 탄소중립법 제정을 ‘공을 가로채려는 정쟁’으로 본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 7명 중 녹색성장법 존치를 언급한 전문가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준원 한국법제연구원 경영지원실장은 “녹색성장법이 현재 국회 정무위 소관으로 돼 있으나 이럴 경우 기후·환경 관련 시대 변화에 적절하게 따라가지 못할 우려가 있어 환노위로 옮기길 권했다. 그러려면 법을 폐지하고 신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연구위원도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녹색성장법은 ‘저탄소’를 말하지만, 현재는 ‘탈탄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녹색성장법으로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기후변화센터의 김소희 사무총장은 국회에 제출한 사전 진술서에서 녹색성장법을 대체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8월15일 오전 경복궁에서 열린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 경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포했다. 연합뉴스
환경단체 “MB 시대 유산…국민의 힘, 시대전환 부정”
국민의힘이 포기하지 못한다는 녹색성장법은 2010년 1월 제정됐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으로 선포했다. 이어 2009년 2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가 출범했다. 녹색성장법에 따라 온실가스 에너지 목표 관리제를 도입하고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및 거래 관련 법률이 공포됐다. 2012년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에서 펴낸 ‘녹색성장 4년을 말하다’ 자료를 보면, 당시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법에 대해 “기후변화와 에너지 대책, 지속가능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경제·산업·국토·환경·국민행동 전반을 종합적으로 규율하는 법령”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환경단체 평가는 다르다. 2012년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 자료를 보면, 김형국 1기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것이 물이고 그만큼 시급했던 기후적응책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이 녹색성장 용어를 선점하며 최초로 법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 법에 담긴 성장중심 철학때문에 4대강 사업과 같은 토목사업을 떠받치는 도구로 쓰였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때문에 환경단체에서는 녹색성장법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평가해왔다. 2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황인철 집행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탄소중립 로드맵도 매우 실망스럽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만들어진 녹색성장법은 기업중심 시각, 경제적 관점에서의 성장을 주로 이야기한 법이어서 조속히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소영·안호영·한정애 의원, 정의당 심상정·강은미 의원,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이 탄소중립기본법을 새로 발의한 상태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원폭만큼 치명적인’ 미군의 부산항 세균실험
오바마는 대통령 훈령으로 ‘생물학적 제제’와 독소를 활용한 생물방어전략을 명시했다. 이 장소로 한국이 선택되었다. “위험한 생물학 시료 분석 실험에 한국이 가장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미군의 맹독성 생화학물질이 반입되었던 부산항 8부두.ⓒ시사IN 조남진
4·7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박형준 부산시장은 당선 바로 다음 날인 4월8일 오후 2시, 부산시 청사에 처음으로 출근했다. 1층 ‘기다림의 광장’에 시민 100여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 인파가 아니었다. 첫 출근을 한 박 시장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려고 모인 부산의 유권자들이었다. 그들이 가져온 상자 수십 개가 광장 한편에 길게 쌓여 있었다. 상자에는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찬반 부산시 주민투표 실시 요구 서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2016년, 부산항 8부두의 미군 전용시설에 세균실험실이 설치·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4년여가 지난 2020년 말, 시민사회단체들은 세균실험실의 폐쇄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취지로 ‘주민투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결성하고 부산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20만여 명이 서명했다. 부산시 인구가 2021년 3월 현재 337만여 명이니 서명운동에서만 시민의 6% 정도가 ‘세균실험실 폐쇄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의견에 동의한 셈이다.
이날 오후 부산시청 1층 로비로 들어선 박형준 시장 일행은 기다림의 광장에 늘어서 대기하던 시민들을 힐끗 쳐다본 후 발길을 돌려 옆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버렸다. 박형준 시장에게 서명부를 전달하고 부산시 차원의 책임 있는 답변을 기대했던 추진위 관계자들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자리는 즉석 기자회견장으로 바뀌었다. “20만명에 가까운 부산 시민이 걱정하며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한 문제라면 시장이 나서서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하는데 첫날부터 외면했다. 권한대행 체제를 벗어나 박형준 시장 임기가 시작된 만큼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찬반 주민투표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촉구한다.”
한국에서 세균실험 관련 사고가 터진 것은 2015년이다. 경기도 오산의 미국 공군기지에 세균실험 목적으로 배송된 ‘살아 있는(활성) 탄저균’에 군인과 시민들이 노출되었다. 이로 인한 논란이 한창이던 2016년, 부산으로 이전한 주한 미해군 사령부가 8부두에서 군사용 세균실험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해 봄, 리신과 포도상구균, 보툴리늄 등 맹독성 생화학물질 3종이 페덱스 우편을 통해 부산항 8부두로 반입되었던 것이다.
당시 부산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그럴 만했다. 맹독성 물질들은 극소량이 누출되더라도 대참변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보툴리늄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로 불리며 단 1g만으로도 100만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미군 전용 8부두가 위치한 부산 남구에는 28만여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8부두 반경 500m 거리에 자리한 감만1·2동, 우암동, 대연동 등에 주민이 몰려 살며 초·중·고교와 대학교 등 교육시설도 밀집해 있다.
당초 주한미군 측은 8부두 세균실험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2015년 오산에서 탄저균 노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이 보인 첫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주한미군은 “탄저균 반입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후 한·미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모두 15차례에 걸쳐 국내 주한미군 부대에 탄저균이 반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주한미군 측은 “더 이상 한국에서 세균실험을 실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2016년 부산 8부두로 맹독성 물질을 반입하면서 이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되자 미군은 또 다른 해명을 내놓았다. “부산항 8부두에 도입되는 ‘주피터 프로그램’ 장비들은 이미 성능 검증을 완료한 상태로 검사용 샘플을 활용한 추가적인 실험이 불필요하며 부산항 8부두에서는 어떠한 검사용 샘플들도 사용되지 않을 것임.” 주한미군은 주피터 프로그램에 대해 ‘생화학전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독성물질을 탐지·분석·경고하는 방어용 시스템’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미군 측의 이 해명 역시 거짓이었다. 지난해 10월 이재정 의원이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16년 이후 미군은 부산항 8부두로 리신, 포도상구균 톡소이드(병원균의 독성을 제거하고 면역을 발생시키는 능력만 남긴 물질) 등을 반입·실험했다. 더 나아가 2019년과 2020년에는 미군 방위산업체 배틀리 사가 주한미군기지 세균실험실에 근무할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공개 구인광고까지 냈다.
세균실험을 둘러싼 주한미군의 잇따른 거짓말과 주민을 무시하는 태도로 인해 부산 시민의 불안과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부산항 8부두에 세균실험 시설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주한미군은 “부산항 8부두를 생물학 실험 장소로 선정한 것은 대규모 인구가 밀집한 부산 지역의 시민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생뚱맞은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군 역시 생화학전 연구시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미국 내에 군사용 세균실험실을 설치하는 장소가 유타주의 사막 한복판 등 인구밀도가 극도로 낮은 지역인 것을 보면 말이다(예컨대 더그웨이 연구소).
4월8일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찬반 부산시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회원들이 부산시청 기다림의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주한미군은 2019년 12월 부산항 8부두에서 세 종류의 독성물질 반입과 관련된 현장 설명회를 열었다. 시설은 공개하지 않았다. 구두로 “장비들이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위해 독성물질을 2나노그램씩 극소량 샘플로 반입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생물학에 무지한 일반인을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면역학 전문가인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대 교수는 “독성이 없는 톡소이드 형태라면 굳이 2나노그램이라는 극소량으로 수십 개씩 나누어 반입할 이유가 없다. 기본 생물학적 소양에서 볼 때도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해명이다”라고 지적했다(37쪽 인터뷰 참조).
주한미군이 부산항 8부두 세균실험실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면서 지난해부터 부산 남구 주민뿐 아니라 부산·경남 전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저지 행동에 나섰다. 8부두 실험실로 출근하는 미군을 상대로 출근 저지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부두 인근을 지나는 차량들도 경적을 울리며 세균실험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또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마크 시멀리 군수참모부장, 페덱스 사 등을 생화학무기법과 감염병관리법 위반 혐의로 부산지검에 고발했다. 지난해 8월에는 부산의 주한 미해군 작전사령부 건물 앞에서 시민 1000여 명이 원탁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17년 10월24일 브룩스 당시 주한 미군 사령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부산항 8부두를 검열하고 있다.ⓒ세균전부대 추방 부산시민 제공
세균실험 사고의 치명적인 피해
이 자리에서 8부두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찬반을 묻는 부산 시민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안이 채택됐다. 현행법상 공공 주민투표는 주민 5%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한다. 주민투표 실시 요구 서명은 지난해 10월19일부터 올해 2월5일까지 100일 동안 부산시 전역에서 이뤄졌다. 그 결과 시민 19만7747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현행법상 주민투표 실시는 정부와 지자체의 허가사항이므로 추진위는 서명 명부를 부산시에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부산시는 “부산항 8부두 미군 시설은 국가 사무에 해당해 지자체가 개입할 수 없다”라며 주민투표 실시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위험하고 은밀한 세균실험이 부산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부산항 8부두에서 버젓이 이뤄지는 세균실험은 이른바 주피터 프로그램의 실행 사항 중 하나일 뿐이다. 용산, 평택, 오산, 군산, 부산, 진해 등 국내 대다수의 미군기지에서 주피터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주한미군 측은 주피터 프로그램에 대해 북한의 생화학전에 대응하기 위해 독성물질을 탐지·분석·경고하는 방어용 무기 시스템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생물무기 측면에서 ‘방어’란 ‘개발’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2017년 주한미군은 북한의 특정 소도시에 침투해 세균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을 설정해 모의 시가전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 장면은 한때 인터넷 동영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이 훈련은 2018년 주피터 프로그램 마무리를 앞두고 최종 점검을 하기 위한 단계였다. 이로 미뤄볼 때 주한미군의 세균실험이 단지 방어용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한반도가 미군의 세균실험 최적지로 떠오른 시기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시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령 2호 훈령으로 “미국의 생물방어전략이 ‘생물학적 제제(백신, 혈청 등 생물이 생산한 물질로 만든 약품)’와 독소를 활용하기 위한 강력하고 생산적인 과학적 시도로 수행되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강력한 생화학무기 대응 프로그램인 주피터를 시행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장소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한국이 주피터 프로그램의 최적지가 된 이유는 이 작전 수행 책임자인 미 육군 에지우드 생물화학센터 소속 피터 이매뉴얼 박사가 2014년 12월16일자 미국 군사잡지 〈화학·생물·방사능·핵 포털(CBRNe Portal)〉과 나눈 인터뷰에 잘 드러나 있다.
“주한미군이 있고, 위험한 생물학 시료를 미국 본토가 아닌 곳에서 분석 실험이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설치하기에는 한국이 가장 우호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건 실험이 가능하다. 또 실험에 실패하더라도 어느 정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미국 국방부에서 매년 미국 의회에 예산을 요구하는 항목인 국가생화학무기방어체계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가 주피터다. 미군은 2013년부터 서울 용산 기지 및 경기도 오산 기지를 시작으로 한반도 전역의 미군기지에서 주피터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체결한 조약이 바로 2013년 10월의 ‘생물무기 감시포털 구축 협약’이다. 이후 한국에서 탄저균, 두창, 페스트, 야토 등 10여 종의 맹독성 생물학 작용제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2018년까지 국내 기지 대부분에서 주피터 체계를 완료한 주한미군은 이를 보완하는 센토(CENTAUR)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주피터와 통합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국내 주피터 및 센토 체계의 성공적 구축은 한반도가 미국 생물무기 방어전략의 중심 무대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주한미군의 관련 시설들에서는 전 세계 미군기지가 취급하는 생물무기 시료에 대한 검출·검증 작업이 미국 본토를 대신해서 진행된다. 주피터 및 센토 프로그램 시행 과정에서 살아 있는 병원체를 한국으로 보내 분석하는 작업은 방위산업체인 배틀리 사가 담당한다. 미국 정부와 고액 계약을 맺는 100대 방산기업 중 하나인 배틀리는 한국 내 주피터 프로그램을 주도했고, 센토 운영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배틀리가 운영하는 해외 미군기지 세균실험(생물무기)에서 2018년에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지아공화국 주둔 미군기지에서 17㎞ 거리에 자리한 생물학 실험실에서 사망자 73명을 낸 안전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발생 초기 비밀에 부쳐졌던 이 사고는 조지아공화국 전임 안보장관의 양심선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고 시설은 미국과 조지아공화국 정부 사이의 합의서에 따라 오직 미군 및 미국 외교관만 출입할 수 있는, 면책특권이 부여된 곳이었다. 이 시설의 경우, 비밀 군사 프로그램을 위해 인간의 혈액 시료와 독성물질 등이 반입되어 생물무기 개발에 활용되었다고, 조지아 전임 안보장관은 폭로했다.
이 시설에 대한 조사 결과, 곤충을 이용한 생물무기 개발 정황도 드러났다. 수년 전 동유럽을 휩쓴 지카바이러스를 지닌 모기와 이 실험시설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러시아 측은 주한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 등 전 세계 25개 미군기지에서 유사한 생물무기 실험이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의 자금 지원을 받아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군사용 세균무기 실험 도중 실수가 생기면 주변 민간인 거주지가 가공할 피해를 당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우희종 교수는 “자연계의 병원체와 달리 지속적으로 생물무기로 개발된 병원체의 위험성은 잘 알려져 있다. 화학무기인 사린 신경가스의 경우, 1700t으로 서울 인구의 50%를 사망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생물무기로 개발된 탄저균은 단 17㎏으로 동일한 효과를 낼 정도로 치명적이다”라고 말했다.
1968년, 미국 유타주 사막지대에 자리한 미 육군 세균실험기관인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안전사고가 났을 때, 인근 목장들에선 실험실에서 날아온 포자로 인해 4000여 마리 양이 떼죽음을 당했다.
역사상 세균실험실에서 유출된 포자로 가장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사건은 구소련에서 발생했다. 1979년 모스크바 동남쪽 1500㎞ 지점에 위치한 작은 공업도시 스베르들롭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의 군 실험실에서 유출된 탄저균 포자로 약 2개월 동안 수많은 시민이 사망했다. 사건 직후 소련 당국은 스베르들롭스크의 한 도축업자가 탄저병에 걸린 소를 도축해 암시장에 내다팔다가 일어난 사고였으며 사망자는 모두 68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연구에 참여한 생물화학자 켄 알리백 박사는 미국으로 망명해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군사용 탄저균 실험 중 포자가 공기 중에 유출돼 인구밀집 지역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서 근처 도자기공장 직원 등 최소 2000명 이상의 스베르들롭스크 시민들이 사망했다.”
군사용 탄저균이 일반인을 덮친 재앙은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당시 미국 의회 건물과 주요 언론사에 탄저균이 묻은 우편물이 도착했다. 이 사건으로 모두 5명이 사망하고 22명이 감염되었다. 범인은 미군 생물방어연구실험실에서 근무하던 인물로 밝혀졌다.
부산시의 대응과 경기도의 대응
2015년 5월 미국 국방부는 활성 탄저균을 세계 곳곳의 미군기지 세균실험실로 배송했다. 그해 5월27일, 한국의 오산 미공군기지에서는 미국 공군 5명, 미국 육군 10명, 미군 군속 3명, 한국인 시민 4명 등 모두 22명이 활성 탄저균에 노출돼 격리치료를 받고 실험실을 일시 폐쇄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지속되는 미군 세균실험에 대해 주한 미군부대 인근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 이유다. 그러나 부산시는 8부두 세균실험실에 따른 시민들의 불안엔 속수무책이다. 대책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생물테러 대응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식의 사실상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것이 고작이다. 독성 생물물질 탐지장비 구입용으로 예산 1억5000만원을 책정하기도 했다. 부산 시민단체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주민투표 추진위 전미봉 상황실장은 “주피터 프로그램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주피터 프로그램을 부산시가 실질적으로 나서서 보장해주는 데서 더 나아가 시민 예산으로 지원까지 해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세균실험 시설에 대한 부산시의 이런 대응은 경기도와 대비된다. 경기도는 2015년 오산 기지에서 발생한 활성 탄저균 반입 및 노출 사건을 계기로 ‘경기도 주한미군기지 및 공여구역 환경사고 예방 및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경기도 소재 주한미군과 비상 연락체계를 구축하고, 각종 환경 관련 정보의 공유는 물론 환경오염과 사고 시 상호 통보, 현장 접근, 공동조사, 치유 조치 등에 관한 협력사항 등을 정해두었다. 또 미군 시설에 의한 환경사고로 주민들의 생명·안전·재산·자연환경의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주한미군에 피해 배상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재정 의원은 “주한미군 세균실험에 대한 경기도의 대응은 지자체가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아주 의미 있는 사례다. 부산시도 미군의 8부두 세균실험에 대응해 시민 안전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직선거리 300여m 아래로 부산항 8부두 시설이 내려다보이는 남구 우암동 달동네에서 미군 세균실험실 철폐 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연우암공동체’ 손이헌 대표(66)는 이렇게 말했다. “미군 말대로 세균실험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하지 왜 하필 부산에서 하는가? 8부두에서는 바람이 바로 우리 동네로 불어온다. 우리 세대야 살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유사시 자녀와 손주들에게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동네 주민 수백 명이 뭉쳐 138일째 8부두 근처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현재 사람들이 산다. 그러나 1942년 단 한 번 탄저균 실험을 진행한 영국의 그뤼나드섬은 이후 약 50년 동안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불모지로 남겨졌다.
시사인 정희상 기자
그 많던 부산 중앙대로 나무 어디 갔나 했더니…
부산 중구와 동구 중앙대로에 심긴 나무 1만 8000그루가 옮겨진다. 서면~충무 BRT공사에 따라 버스 노선, 승강장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공사 구간에 포함된 중앙화단을 정리하는 것이 목표다.
4일 부산시 건설본부는 "중앙대로 화단의 관목을 이식하는 'BRT 조경공사'를 지난달 8일부터 시작해 이번 달 내 마무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식 대상은 부산진구 서면부터 서구 충무까지 8.6km BRT 공사 예정 구간에 놓인 중앙분리대 화단의 관목이다.
서면~충무 BRT 구간 중앙화단
1만 8430그루 강서구 등 이식
공사 완료 뒤 이팝나무 재이식
부산시에 따르면 이식되는 나무는 꽃땡강, 홍가시, 피라칸사스 등 관목류 총 1만 8430그루다. 이 중 1만 5230 그루가 강서구 신호동 일대로 옮겨진다. 그 외 1400그루는 중구 충장대로 화단, 1000그루는 동래구 금강공원, 800그루는 중구 대영로 화단으로 이식된다.
강서구 신호동 일대에 관목류 이식이 완료된 모습. 부산시 제공 강서구 신호동 일대에 관목류 이식이 완료된 모습. 부산시 제공
관목이 이식되는 강서구, 중구 등 화단에는 띠녹지가 조성된다. 띠녹지란 가로수 밑의 소규모 녹지대다. 높은 가로수만 있어 사이사이 빈 곳을 높이 1m이하인 관목류로 메우면서, 다양한 높이의 나무가 있는 입체적인 화단이 조성되는 것이다.
서면~충무 BRT 공사가 완료되면 나무가 사라진 기존 구간에는 새로운 녹지공간이 만들어진다. 부산시 건설본부에 따르면 BRT 공사 이후 이팝나무 261그루와 철쭉 묘목 3만 5250 주를 서면부터 충무까지 전 구간에 걸쳐 이식할 예정이다. 이팝나무의 경우 중앙 버스 승강장 양 구간에 이식한다. 특성상 무성하게 자라지 않아 안내판 등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그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철쭉은 승강장 주변에 미관을 위해 심기로 했다.
부산시 건설본부 관계자는 "도로 공사 등으로 인해 벌목이나 이식이 필요한 수목이 생기면 최대한 이식을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BRT 공사 이후 현장 여건에 따라 시민들에게 적절한 녹지공간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소비자주의 대 생태주의
코로나19와 함께 어쩌면 세상은 변곡점을 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경제의 변곡점, 소비의 변곡점, 자본주의의 변곡점, 그리고 생태의 변곡점. 지인과 함께 길을 걷는데 상가의 점포들이 한 집 걸러 하나씩 문 닫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숨 섞인 소리로 지인이 말했다. “채소와 생선가게 같은 집 빼고 이제 공산품 파는 곳은 죄 망해가네요. 도대체 누가 인터넷을 만들었대요? 거기다가 코로나까지 한 방을 날렸으니….” 아침에 ‘알리익스프레스’라는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거기 빠져서 한참 시간을 죽인 나로서는 가슴이 뜨끔했다. 중국의 거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가 만든 이 플랫폼에는 세상의 거의 모든 물건이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올라와 있으니, 누군가의 말마따나 소비자의 ‘개미지옥’이요, ‘악마의 앱’이라 할 만했다.
플랫폼기업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런 상황은 더 싸고 더 빠른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합세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상품들의 개미지옥에 빠진 소비자를 업고 플랫폼은 생산자와 배송노동자의 출혈을 강요함으로써 거기서 중개수수료라는 막대한 불로소득을 취한다. 소비자들의 취향이라는 것도 사실은 인공지능과 첨단 추적시스템과 신속한 물류에 의해 조종된 결과이고, 깜짝 놀랄 만큼 싼 가격도 결국은 생산자와 노동자에게서 뽑아낸 이득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의 계산기 안에는 없는 항목들이다.
소비자의 올바른 행동양식을 생각하자니 랠프 네이더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네이더는 1960년대 미국에서 <어떤 속도로도 안전하지 않다>는 책으로 자동차의 결함을 비롯한 수많은 생산품의 문제를 고발하고, 소비자 보호와 환경 문제에 일대 각성을 일으킨 인물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기업 환경과 법적 제도가 크게 개선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가 ‘네이더 돌격대’라는 소비자 행동주의까지 일으키며 한 일이란 게 삐거덕거리는 자본주의 기업시스템에 세련되고 안전한 ‘체제 안의 도덕’을 부여해준 것 말고 무엇이 있을까. 덕분에 기업들은 사회적 역할이라는 면죄부와 장기적 성장이라는 실리를 동시에 얻게 되었다.
대량생산이라는 산업적 이념을 넘어 이제는 안전과 효율의 후기산업사회 이념까지 동시에 성취한 듯 보이는 플랫폼기업의 기초에는 기술 자본주의가 있다. 소비자 취향과 구매패턴과 배송의 최적화된 계산은 낭비를 줄이고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믿음을 실현시켜주는 것 같다. 기술은 이제 전기차, 수소차와 같은 신기술을 통해 우리의 환경 감수성까지 만족시켜준다. 이런 기술의 마력에 취한 소비자들에게는 거리의 매연이 화력과 원자력 발전소의 굴뚝으로 옮겨가고, 정유공장 자리에 중금속 폐배터리가 산처럼 쌓일 미래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도로 건설과 구매 보조금으로 들어갈 막대한 세금도 신성장 동력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쯤에서 이반 일리치라는 이름을 다시 호명하지 않을 수 없다. 작고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그 이름을 끊임없이 거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리치는 실제로 생태주의를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공해와 오염과 ‘살충제’를 말하는 환경운동가들을 비웃기까지 했다. 환경오염은 기업의 각성과 안전의 확보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며, 자연을 낭비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성장과 소비 체제에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체제로 인해 환경만 피폐해진 것이 아니라, 자연을 낭비하거나 타인의 삶을 낭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삶까지 피폐해졌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쿠팡’과 ‘알리익스프레스’ 앱을 만지작거리고 전기차 가격을 검색하던 나의 손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서 파는 물건들은 내게 처음부터 필요했던 것이 절대 아니었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경향
기후위기에는 '위기답게' 대응하라
기후위기 못 본 채하는 한국 정부
"국회는 인간의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가뭄, 홍수, 폭염, 한파, 태풍, 대형 산불 등 기후재난이 증가하고 불균등한 피해가 발생하는 현재의 상황을 '기후위기'로 엄중히 인식하고, 기후위기의 적극적 해결을 위하여 현 상황이 '기후위기 비상상황' 임을 선언한다."
다른 나라 국회가 아니라, 놀랍게도 한국 국회의 선언이다. 지난 해 9월 24일, 국회는 재적 의원 258명 가운데 252명의 찬성으로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전국 수백 개의 단체들이 연대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2019년 9월부터 이를 요구하고, 작년 6월 226개 모든 기초지자체 모여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한 이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영향인지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이 개념이 가진 여러 ‘함정’들은 일단 논의로 하자―을 천명하였고, 11월 국무회의에서 그 의미에 대해 "기후위기를 엄중히 인식하고 필요한 대응과 행동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고 직접 설명하였다.
이런 선언과 설명을 듣고 있으면, 한국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탄소중립'을 향해 어려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라 믿고 싶어진다. 그러나 정부가 탄소중립을 위한 전환을 위해서 제대로 움직여 나가고 있을까? 최근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추진전략> 이행을 위한 신규 과제를 제시했는데, 법무무의 "형사사법절차 완전 전자화"와 여성가족부의 "성범죄자 신상정보 모바일고지 확산"도 포함되어 있다. 대체 '탄소중립'이 뭐라 생각하기에 이러나, 정신이 아득하다. 주무부처가 아닌 곳에서, 새로운 길을 가려다 보니 겪는 시행착오라고 해두자.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주무부처들이 내는 어처구니없고 치명적인 엇박자들이 너무 많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수치를 내놨을까 싶다"고 발언하며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고 해 구설수에 올랐다. 여기서 '수치'라는 것은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신임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초청으로 개최된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들이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치를 말하는 것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과거에 약속한 것보다 강화된 수치를 내놓았다. 미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52% 감축, 유럽연합은 1990년 대비 55% 감축, 영국은 1990년 대비 68% 감축하기로 했다. 일본도 2013년 대비 46% 감축을 약속했다. 선진국들의 새로운 목표가 1.5도 목표 준수를 위해 충분한지 자신할 수 없지만, 과거보다 진전된 것은 분명하다. 이런 노력을 두고 한정애 장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후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다른 나라 정상들과 달리 상향된 NDC를 내놓지 못했다. 임기말까지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연말까지 앞당겨 제시하겠다는 어색한 약속으로 어물쩍 넘어갔다. 국제 사회가 한국의 기존 NDC가 너무나 무책임한 목표라고 반복해서 지적해왔기에, 그 자리에서 강화된 목표치를 내놓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납득하기 어려운 연설과 그 해명은 아찔하다. 감축 목표량은 동일하지만 과거 부적절한 감축 기준을 바로잡은 것만으로 "1차 상향"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주요 국가 정상이 참여하는 외교 무대 위에 섰다. 쉬쉬하며 넘어갔지만, 외교참사라 불러야 할 일이다. 레임덕 대통령이라더니, 청와대 참모진이나 정부 관료들이 모두 손을 놓았다고 해석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한정애 장관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변명하려다 빚어진 말이다. 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이 새로운 수치를 약속하지 못한 것은 얼마나 감축할 수 있을지 '계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표치를 마련하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해야 할 순간에 다른 국가를 탓하거나 의구심을 표하는 주무부처 장관이라니.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부족하다는 취지의 위헌 판결을 내놓았고, 독일 연방정부는 일주일 만에 목표를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이미 선진적인 목표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에 즉각 반응하여 강화된 목표를 내놓았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과한 기대일까.
2019년부터 기후운동이 2050년 ’탄소중립‘을 주장했을 때, 실현불가능하다며 정부는 듣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천명하고 나서자 마지못해 수용했지만, 온갖 기술관료적 장애물을 가져다 놓고는 어떻게 하면 못한다고 답할까 궁리하는 듯이 보인다. 특히, 정부는 당장 10년 뒤인 2030년 감축목표를 탄소중립 실현 경로 위에 올려놓는 것마저 거부하고 있다. 이미 여러 전문가, 단체 그리고 정당들이 기후위기 해결과 기후정의 원칙에 부합하는 2030년 목표―최소한 2010년 대비 50% 감축, 기후정의 원칙을 따를 경우 2017년 대비 70% 감축―를 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현가능성을 따지고 기업의 피해를 걱정하며 뭉개고 있다.
정부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목표를 설정하고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만을 하겠다는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지금까지 하던 것은 그대로 한다. 건설을 시작한 민간기업들의 석탄발전소는 그대로 짓도록 놔두고, 이미 결정한 해외 석탄발전소의 공적 금융 지원도 지속하기로 한 정부가 절박하게 탄소중립을 추진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 그저 해야 하면 좋은 것, 언젠가 해야 할 일 정도로 여기는 것, 혹은 기업들의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로 간주하는 정도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인가.
심지어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공항을 짓겠다는 결정 앞에 '기후위기'는 그냥 말일 뿐이다. 기후위기 결의문을 채택한 그 국회가 몇 달되지 않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그 법 통과를 독려하기 위해서 가덕도까지 방문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시간 30분 이내의 국내선 비행 운항을 금지하기로 한 프랑스 의회의 대응과 극단적으로 비교된다. '기후위기'는 공적인 정책결정의 기준이 되지 못함을 실감한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들에게는 경제성장, 기업의 이익, 그리고 선거정치가 기후위기보다 훨씬 절박하고, 기업들의 불만을 달래고 그린뉴딜이라는 허구적인 이름 아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노동자와 시민들의 삶과 정의로운 전환을 보살피는 것도 더 중요한 과제다.
이번 달 말에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을 이름에 달고 개최하는 국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연설을 하게 될까. 장담컨대 강화된 2030년 감축목표 수치 제시는 없을 것이다. 대신 연설에 한 줄 넣기 위해서 정부는 100명 규모의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주당은 국회에 계류된 기후위기대응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대규모로 꾸리는 탄소중립위원회에는 이번에도 노동자 대표는 초청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원회에 참가하는 이들이 어떻게 시민사회를 대표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는지 알 길이 없다. 또한 민주당이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기후위기대응법안이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녹색성장법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며,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제안한 '기후정의법'과 얼마나 가까운 지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도 P4G 정상회의에서 대통령 연설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뭐 어떤가? 달리 P4G가 그린워싱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비상사태를 비상사태처럼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에너지를 행동에 쏟아 부을 수 있다."
북미의 작가이자 활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최근 번역된 저서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재앙 대 그린뉴딜>에서 한 말을 기억하자. 기후위기의 진실을 인정하고, 공적 결정과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껏 해오던 대로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눈감고, 정부가 귀를 닫으며, 국회가 딴 소리를 하니, 시민들이 기후위기 진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한재각 기후정의 연구활동가/ 프레시안
아까시나무 꽃 피면 산불이 끝난다'는데 5월 산불 급증...왜?
2017년 5월 강원도 삼척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피해지.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예로부터 ‘아까시나무 꽃이 피면 산불은 끝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이는 5월로 접어들면 산불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5월 산불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5월의 경우도 산불 발생 위험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6일 산림청 산불통계분석 결과를 보면, 1년 중 5월에 발생한 산불 비율은 1990년대 6%, 2000년대 7%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10%대로 높아졌고, 지난 2019년에는 전체 산불 중 15%가 5월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월에도 100㏊ 이상의 산림이 불에 타버리는 사례가 잇따르는 등 그동안 3∼4월에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100㏊ 이상의 대형산불이 2017년 5월에 2건, 2020년 5월에 1건 각각 발생하는 등 5월에도 대형산불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의 분석 결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5월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핵심 이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과학원은 전남대 정지훈 교수팀과 광주과학기술원 윤진호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지난 40년간(1981∼2020년) 한반도의 봄철 산불에 미치는 기후·기상인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최근의 기후변화로 서태평양지역의 해수온도가 상승하면서 동아시아지역의 5월 기온이 올라가고, 이로 인해 형성된 따뜻한 공기가 한반도 지역의 산림 속으로 유입되면서 산불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는 산림 내 낙엽의 건조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산속의 낙엽을 모두 긁어다가 땔감으로 활용했지만, 요즘은 낙엽이 떨어지면 그대로 쌓이고, 이게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대형 산불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낙엽이 5월까지도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산림과학원 산불·산사태연구과 권춘근 연구사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5월정도가 되면 산림 속 낙엽이나 마른 나무가지 등이 물을 머금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낙엽 등이 바짝 마른 상태를 유지하면서 5월에도 산불이 빈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는 5월 산불의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왔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평년보다 다소 습윤한 상태였지만, 4월 중순 이후 라니냐(해수면 온도가 주변보다 낮은 상태로 일정기간 지속되는 현상)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건조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서태평양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고, 동아시아 지역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주변으로 강한 동서 바람이 불고 습도가 낮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5월 산불에 철저하게 대비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광릉숲길 어린이정원’ 문열어
릉숲길 어린이정원. 국립수목원 제공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광릉숲길 어린이정원을 개장했다고 6일 밝혔다.
광릉숲길 어린이정원은 광릉숲과 수백 년 된 전나무숲, 봉선사천을 바라볼 수 있는 광릉숲길 안에 ‘요정 친구들의 숲 정원’이라는 주제로 만들었다. 정원은 어린이날인 지난 5일 문을 열었다. 국립수목원은 기존 숲의 환경을 그대로 이용해 나무를 한 그루도 베지 않고, 광릉숲의 수백 년 된 전나무의 고사목을 활용해 어린이정원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숲의 어린이들이 생태계에 흥미를 느끼도록 도깨비부채, 흰말채나무, 으름덩굴, 관중 등 교·관목 16종과 초본 10종의 자생식물을 심었다.
국립수목원 정원연구센터 송수정 연구사는 “광릉숲길 어린이정원은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라며 “방문한 어린이들이 자연을 즐기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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