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오면 늘 마음이 심란하다. 그리고 전전긍긍이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나 만의 증후군이다. 올해는 이사장의 배려와 이사들의 밀린회비 납부로 그럭저럭 ㄴ길 수 있었다. 올해의 추석 준비는 얼마전부터 아내가 일 나가는 관계로 아버지를 비롯하여 삼촌 내외의 참여로 마무리 되었다.
어머니와 숙모가 재료를 다듬고 삼촌과 아버지 내가 전을 붙이고 튀김을 만들었다.
아버지와 삼촌이 정구지 지짐 (부추전)을 굽고 오징어며, 새우, 고구마를 튀기고 있다.
처음 해보는 튀김은 불 조절이 중요함을 알게되었다.
고구마튀김에서 부터 새우, 오징어, 들깨꽃대 순이었는데
초반에는 노릇하니 잘 구워져 보기에도 좋았는데 갈수록 타들어 갔다.
한마디로 요령이었다.
저녁 아내의 합류로 추석 차례상 준비는 마무리 되었다. 그냥 쉬게할려고 하였지만 전에 없던 일이라 아내는 퇴근 후 본가로 와서 맏며느리의 의무를 다했다. 제수용으로 준비했던 문어며 담치가 문제가 생겨 급히 새로 사러가는 일도 이밤에 있었다. 16호 태풍 말라카스의 영향으로 남부지방 전역이 구름에 가린 보름달을 봐야 했지만 그 보름달이 어디 가는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구름 속의 달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밤에 산책에 들었다. 성암사 솔숲에서 부엉이가 울었고 그 울음이 반가웠다.
산왕거미 집을 짓는 추석 전야, 삼촌은 최근 아버지가 일으켰던 길 잃고 오두마니 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검진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치매를 한사코 부정했지만 조기발견을 통해 자식들의 걱정을 해소하는 것이 좋다고, 단지 검사하는 것 뿐이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이른바 노인성 치매 senile dementia를 의심한 것으로 노인성 치매란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이 65세 이후 다양한 원인에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인지 기능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나타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치
치매는 전 세계적으로 65세 이상 노인에서 5~10% 정도의 유병률을 보이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약 8.2~10.8%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치매 유병률은 연령 증가에 따라 함께 증가하여 65세 기준으로 나이가 5세 많아질 때마다 2배씩 증가하여 65~69세의 연령층에서 약 2~3% 정도지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70~74세에서 4~6%, 75~80세에서 약 8~12%, 80세 이상에서는 20%가 넘는 노인들이 치매에 걸리게 된다.
일단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검진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하고 설득하자 아버지는 검사를 받아 보기로 하였다. 사실 나 또한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다는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 집안에 그런 병력을 가진 사람도 없거니와 평소 아버지의 활동을 비추어 보자면 단순한 한순간의 방향장애로 여기고 싶다. 그렇지만 어쨌든 여든을 앞두고있는아버지의 나이를 고려하자면 방심도 금물이란 생각에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다면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그리고 본인 스스로는 어떤 심경일까.
여주꽃이 밝게 핀 추석 아침, 문득 어디든 꽃이 피면 꽃을 찾아오는 곤추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호랑거미가 대문간 옆에 자리 잡았다.
본가 근처 문현동 터줏대감 집으로 기록되는 진남로 198번길 6-15 기와집, 아버지 말에 따르면 주변의 건물이 한나도 없을 때부터 있던 집이다. 집 주위로는 이대와 은행나무, 감나무, 동백, 벚나무가 집을 에워 싸고 있다. 앞뒤 분별없는 주거정책과 아파트의 입지로 갇힌 형국이지만 이 집 앞으로 동천으로 유입되는 가칭)문현천이 흘러 내렸다. 그 시절 이 골짝기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도 드믄드문 남아있다.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겸한 종친회의가 있었다. 오는 10월에 있을 묘사 일정이며, 집안 친족들의 이런 저러 이야기가 오갔다. 갑자기 족보 이야기가 나와 설절 펴기도 했다. 경주 이씨와 합천이씨 간의 항렬과 전주이씨와 경주이씨와의 관계 등 나아가 웃대 조상들이 현재 고향땅에 정착하게 된 계기라든지, 그리고 증조부와 파평윤씨 집안과의 혼인 이후 양 집안간의 이야기 등이 있었다. 예컨데 윤씨집안과의 혼사는 그야 말로 정략적 결혼이었다는 것이다. 훤칠하고 잘생긴 정조부가 윤씨집안의 못생긴 딸에게 장가를 든이유는 가난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억눌린 내심 불만이 엉어리 진 게 대를 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유년의 한때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돌아신 조부가 그들을 대하던 태도였다.
막내 여동생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손들은 일어선다. 12시를 전후한 때이다. 우리집 아이들도 외가로 가자며 조른다. 보통 술판이 오후ㅡ2~3까지 이어지는데 다들 일찍 자리를 뜬다.
명절은 조상숭배나 기억의 차원을 넘어 산업화 시대 집안 식솔들의 만남이다. 준비와 마무리에 남녀 노소 구분없이 나눈다면 명절만큼 유익한 시간도 없겠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더디 간다. 그런점에서본다면 우리집은 상당히 개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명절의 일정은 한결같다 . 본가에서의 일박, 그리고 처가에서의 일박 하여 통상 3일을 보낸다.
김해 한림도 가을이 가까이 와 있었다.
고라니의 발자국, 장모는 고라니의 피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주인공과 새벽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피해의 실체를 확인했다. 놈은 유유히 사라졌지만 농사짓는 농민의 마음은 그 존재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장인 김주보의 문전옥답, 하지만 이곳에서의 농사도 올해가 마지막이라 했다. 화포천 반달농장 프로젝트 수행 당시 논을 팔았기 때문이고 이제 힘에 부쳐 농사 지을 여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쌀을 사먹는다는 것, 그동안 잊고 살았지만 현실이 된다.
논두렁을 걸으며 콩밭에 터 잡고있는 곤충들을 살펴보기도했다. 무당거미를 비롯하여 사마귀 섬메뚜기 등이 지천이었다.
처가집의 명절 또한 늘 일정한 모습이다. 큰처남은 우리 식구가 도착하기전 그의 처가집이 있는 삼랑진으로 가고 늘 막내처남과 장인 장모가 있는 형태다. 더욱이 올해는 막내처남이 다리가 아파 술도 자제 했다. 산책에 나섰다 가을벌레들의 울음소리를 녹음하고 있자니 장인이 데리러 왔다. 술 한잔 하자고
문득 장인의 처지를 뒤돌아 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식 섭취가 좋지 못했고 그것이 안스럽기까지했다. 이번 방문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술도 간혹 들고 군것질도 하는 모양인데, 장모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50년 이상 부부로 살아오며 내외 구분이 심했던 전근대적 삶이 지속되었다. 일의 구분도 명확했다. 장인은 주로논농사 중심이고 장모는 밭농사와 새끼들 챙기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그 와중에 쌓였던 섭섭함이 장모의 장인 대하는 태도에서 읽혀졌다. 아들 딸의 관심도 더 고생한 것으로 기억되는 장모에게 집중되는듯 했다. 내가 어디까지를 개입하고 관여해야 할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그나름의 세월에 묻어난 결과이리라.
저녁을 먹고 조카들과 산책에 나선 길, 어린 조카들이 멸종위기 관심보호종인 멧밭쥐를 발견했다. 우수리멧밭쥐라고도 한다. 성체의 몸길이는 5∼6cm에 불과한데 발견한 놈은 새끼였다. 성질이 매우 온순하여 새끼나 어미들을 잡아다 기르면 단시일 내에 친숙하게 되어 손바닥에 놓아준 비스켓이나 사과도 잘 먹는다 고 한다.
화본과나 사초과 식물의 60∼100cm 되는 높은 잎집[葉鞘]에 야생 조류들의 보금자리처럼 둥우리를 틀고 사는데, 참 간만이었고 하필이면 길가로 나와 톡톡 튀고 있었다.
올해의 달보기는 2015년 보름과 비슷했다. 작약산 능선에서 솟아오른 달이 희뿌옇게 화포천에 어린 그런 보름밤이었다.
딱히 재미있을 리도 없는 평범한 일상처럼 명절이 흐르고, 나는 언제나 처럼 밤마실에 나섰다.
그렇게 배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장인은 처가집이라고 왔는데 술 한잔 받아주는 이 없는 사위가 안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장인과 술을 나누고 나는 다시 마을 산책에 들었다. 어색한 침묵이나 마냥 테레비젼 보기 보다 훨씬 의미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소쩍새가 곳곳에서 울었다. 하지만 그소리는 명절 특유의 간만에 북적이는 시골집의 사람 소리속에 묻혀 선명하지 못했다
어둠과 마주하여 보았던 한림의 밤 풍경
늦은 밤 작은 처남은 큰애를 데리고 김해를 다녀왔다. 군입대를 앞둔 조카에게 20대가 견지해야 할 자세나 도전정신 등을 일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처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내 20대 시절 누구도 그런 코치나 지도는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새벽 산책을 다녀오도록 잠에서 깨지 못했다. 고라니가 장모의 텃밭을 습격한 다음이다.
그 사이 장모는 우리집 막내가 요청했던 정구지 김치를 위해 텃밭에서 정구지를 베 왔다.
장모의 외손주에 대한 마음씀이다.
아침부터 예고된 비가 내렸고 점심 전에 이 집의 아들 .딸은 떠났다. 평소와는 달리 조금 이른 귀가였다 . 아내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는 부담도 있어 서둘러 차를 몰았다.
석류가 익어가는 계절처럼 , 알알이 박힌 그 무엇을 이 가을에 나누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모두들 건강할 일이다.
Paul Mauriat - Serenade to Summertime여름날의 세레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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