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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21 경향 장도리
또 하나의 가족을 위한 ‘금수저 서비스’1218 경향
ㆍ반려동물 서비스 어디까지 왔나…‘모꼬’가 본 반려동물 세상
올해 세 살인 내 이름은 모꼬다. 굳이 종(種)으로 따지자면 순백색의 긴 털과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몰티즈. 솔직히 순종 혈통은 아니다. 사람들이 작은 개를 선호해 서로 다른 품종을 교배시켜 나처럼 외모는 몰티즈이지만 크기는 작은 무수한 새끼들이 태어났다. 내가 ‘엄마와 아빠’를 처음 만난 건 태어난 지 2개월쯤 됐을 때다. 나는 팔려나가길 기다리는 다른 강아지들과 함께 경기 안양시 동안구의 한 대형마트 안에 있는 펫숍의 케이지에서 살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특히 아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내가 머물던 유리창을 툭툭 건드리는 바람에 힘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아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오후 5시쯤이었을까. 카트를 밀고 식품매장으로 가려던 50대 초반의 한 여성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우리들을 구경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직감적으로 내 엄마가 될 것을 알았다. 엄마도 아주 오랫동안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가 아빠를 데리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건 오후 9시쯤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엄마는 퇴근한 아빠에게 내 이야기를 하며 자꾸 생각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빠는 “당장 가보자”고 했고, 두 분은 그날 나를 입양했다. 엄마·아빠는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고 늘 말씀하신다. 얼마 뒤에 엄마·아빠는 치치라는 이름의 치와와 동생도 데려왔다. 치치는 올해 두 살이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묵는 리조트의 강아지전용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꼬(왼쪽에서 두번째).
나의 하루는 엄마가 깨는 시간부터 시작된다. 엄마는 은행 지점장인 아빠를 위해 매일 아침 6시30분에 밥을 짓는다. 치치는 잠꾸러기여서 부엌에서 소리가 나거나 말거나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오전 8시나 돼서야 깨어나 배가 고프다며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엄마 발을 핥는다. 그러면 엄마는 식탁보를 깔고 밥을 챙겨준다. 요즘엔 정관장에서 홍삼을 넣은 고가 사료를 내놓고, 풀무원과 CJ제일제당, 동원F&B 등 내로라하는 식품업체들도 다양한 사료를 시판한다. 하지만 난 엄마가 직접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다. 엄마는 연어와 닭가슴살, 브로콜리, 당근 등을 넣어 밥을 만들어 준다.
오전 9시, 엄마는 서둘러 나의 머리를 리본으로 묶어주고 치치와 내 옷을 유치원복으로 갈아입힌다. 아파트 17층 집에서 주차장까지 이동할 땐 아이들 유모차와 비슷한 반려동물 유모차를 탄다. 유모차는 모델에 따라 가격이 5만원부터 80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가 밍크털로 된 포대기에 나와 치치를 담아 어깨에 멨지만 지금은 우리 체중이 조금 는 탓에 짧은 거리는 유모차로 이동한다. 승용차에서 우리 자리는 항상 뒷좌석 카시트다. 엄마의 무릎이 아니어서 서운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니 참는 수밖에.
자동차로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분당의 반려동물 유치원엔 친구들과 선생님이 많다. 나와 치치는 그레이하운드 같은 덩치 큰 녀석들과는 잘 안 놀고, 몸집이 비슷한 푸들, 요크셔테리어, 시츄 같은 애들과 어울린다.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그곳에서 뛰어다니고 낮잠도 자고 간식도 먹는다. 선생님은 우리가 봐야 하는 방송이라면서 ‘채널 해피독’이나 ‘도그TV’를 틀어준다. 엄마는 우리가 소심하기 때문에 사회성을 길러주고 넓은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 우리 둘을 합해 한 달에 70만원 하는 유치원비를 기꺼이 낸다. 물론 모든 애들이 유치원에 가는 건 아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애들도 있다. 이웃에 사는 미미라는 이름의 뱅갈 고양이는 다른 애들과 섞이는 걸 질색한다. 그래서 싱글맘인 미미 엄마는 직장에 가 있는 동안 영상통화 자동급식기를 통해 시간에 맞춰 미미에게 사료를 주고 영상통화도 한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까뮈와 꾸미는 이 바닥에선 유명한 전국구 모델 자매다. 둘 다 세 살 동갑 푸들인데, 엄마가 업체로부터 옷을 협찬받아 사진을 직접 찍어 보내면 얼마 후 쇼핑몰에 까뮈와 꾸미의 멋진 사진이 올라온다. 까뮈·꾸미 엄마는 직접 사진을 찍지만 요즘엔 반려동물 사진만 전문으로 촬영하는 스튜디오도 많다.
우리집에는 언니가 둘 있는데 둘 다 외국 유학 중이다. 그러다보니 엄마의 외국행이 잦은 편이다. 엄마는 외국에서 귀국할 때마다 치치와 나의 옷이나 장난감을 잔뜩 사오신다. 엄마가 우리에게 사주는 옷은 거의 모두 이태리제다.
나와 치치는 엄마가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엔 호텔에서 지낸다. 요즘 반려동물 호텔은 일반룸부터 VIP룸까지 차별화돼 있다. 타입에 따라 1박에 3만~15만원씩 한다. 일반룸은 달랑 케이지 하나뿐이지만, VIP룸은 방도 넓고 쾌적한 데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온다. 세심한 피부 관리에 치아 스케일링과 예절교육까지 시켜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가는 병원이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을 보면 나도 모르게 꼬리가 뻣뻣하게 굳는다. 지난번 병원에 갔다가 만난 킹콩이라는 이름의 불도그 친구는 “이제 동물도 암에 걸리면 방사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흥분했다. 증축공사 중인 서울대 동물병원이 스마트 진료 시스템, 방사선 암치료기 등을 갖추고 유전자 검사를 확대하는 등 내년 12월 최첨단 병원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스마트 진료 시스템이 구축되면 보호자는 센서가 달린 목걸이를 통해 반려견의 검사 진행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킹콩은 자기는 반려동물보험에도 가입돼 있다며 자랑했다. 현재 국내엔 삼성화재, 롯데손보, 메리츠화재보험의 반려동물보험이 출시돼 있다.
엄마가 유치원에서 우리를 데려가는 시간은 보통 오후 4~5시. 이때 엄마는 종종 다른 엄마들과 차를 마시면서 양육 정보를 교환한다. 또 반려동물 전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고 각종 정보를 공유한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발과 얼굴을 닦아주고 간식을 챙겨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반신욕을 위한 아로마 입욕제로 목욕한다.
키우던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정성껏 장례를 치러주고 납골당에 안치하는 보호자들이 늘고 있다. 페트나라 제공
아빠의 귀가시간인 오후 9시가 가까워오면 나와 치치는 현관 앞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아빠의 발소리와 냄새는 멀리서도 알 수 있다.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꼬리를 흔들며 깡총깡총 뛴다. 아빠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엄마는 아빠에게 십수년간 키우던 낭이라는 이름의 샴고양이가 암으로 죽어 실의에 빠진 낭이 엄마 이야기를 들려줬다. 낭이는 세상을 떠나기 전 반려동물 호스피스에서 지냈다고 한다. 낭이가 죽자 낭이 부모는 경기 김포의 한 반려동물 장묘업체에서 장례를 치러줬다. 전화를 걸면 운구차가 오지만 낭이 부모는 직접 낭이를 그곳에 데려가 의식을 치르고 화장한 뒤 납골당에 안치했다. 마지막 가는 길을 최고로 해주고 싶어 삼베 수의도 입히고 오동나무로 만든 관에 넣어 보냈다고 한다. 나나 치치에겐 아주 먼 얘기지만, 왠지 슬퍼졌다.
어느덧 시간은 밤 11시. 엄마·아빠의 침대에 같이 누워 잠을 청하면서 이달 말 경기 양평에서 3박4일간 보내게 될 겨울휴가를 상상했다. 지난여름 강아지수영장이 설치된 경기 가평의 리조트에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요즘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반려동물과 사람이 함께 묵는 것은 기본이고 전용 침대와 식사까지 제공하는 펜션이나 호텔, 리조트가 부쩍 많아졌다. 과거 위생과 안전 차원에서 출입을 막았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누구는 유기견(2012년 기준 9만9254마리)이 되고, 누구는 보신탕집으로 끌려갔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고보면 우리 같은 반려동물에게도 인간 세상처럼 금수저, 흙수저가 있는 셈이다. 여하튼, 요즘만 같으면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호스피스·의료보험 서비스까지…반려동물 5년 후면 6조대 시장
ㆍ다섯 집 중 한 집 반려동물 키워
ㆍ강아지 크기 따라 유치원비 차이
ㆍ납골함 두고 10년 넘도록 추모도
ㆍ박인비 반려견 위해 투어까지 불참
고령화와 함께 1~2인 가구 비중이 증가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다. 통계청은 2014년 우리나라 1~2인 가구 비중이 52.7%라고 밝히고, 2035년엔 그 비중이 7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2012년 전체 가구의 18%(약 360만가구)가 총 1000만마리에 육박하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다섯 집 중 한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많이 기르는 종은 역시 개와 고양이였다. 농협경제연구소는 개 440만마리, 고양이 116만마리가 반려동물일 것으로 보고, 기타 동물을 합하면 그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민한 사진작가 제공
반려동물의 숫자만큼이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서강문 서울대 동물병원장은 “반려동물 개념이 1988년 이전엔 밖에서 키우면서 집을 지키거나 잔반을 처리하는 개, 1990년대 후반까지는 장난감 같은 애완동물, 2000년 이후엔 가족 구성원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골프 여왕 박인비 선수는 지난 8월 17년간 기르던 반려견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가족과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의 증가와 비례해 국내 반려동물 시장 성장률도 매년 두 자릿수를 보이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2012년 9000억원에서 올해 1조8100억원으로 시장 규모가 늘고, 2020년에는 5조8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2000년 이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계의 소득 대비 소비는 감소하고 있지만 반려동물 관련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김영각 현대증권 연구원은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적 스트레스 증가에 따른 고독감을 반려동물로 위안받으려는 심리와 인식 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시장이 커지고 지출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서비스는 인간이 누리는 서비스와 다르지 않다. 동물병원, 미용실, 호텔, 스파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전용 유치원은 물론 장례식장이 생긴 지도 오래다.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진흥공단 자료를 보면 전문 반려견 훈련소·유치원은 전국 300여곳에 이른다. 특히 서울 강남엔 유치원만 20여곳에 달한다.
지난 8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강아지 유치원 ‘도그스 101’. 노란색에 검정 카라가 달린 유니폼을 입은 견공 10여마리가 유치원 안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품종도 스피치, 몰티즈, 치와와, 푸들, 포메, 웰시코기, 베들링턴테리어 등 다양했다. 모두 보호자들이 아침에 맡긴 강아지들이다. 보호자가 바쁜 경우엔 스쿨버스가 매일 집으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 준다. 최현진 도그스 101 대표는 “아파트에서 지내는 강아지들이 놀 공간을 마련해주고 사회성을 키워주기 위해 보호자들이 맡긴다”며 “유치원비는 매일 오는 원생의 경우 크기에 따라 한 달 35만~45만원”이라고 말했다.
김민한 사진작가 제공
반려동물이 어엿한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되면서 반려동물 장례업체도 성업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관련 업체는 수백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동물 장묘업으로 등록한 업체는 전국에서 16곳에 불과하므로 선택할 때 주의해야 한다. 해당 업체가 등록업체인지 확인하려면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에 접속해 ‘동물장묘업’을 검색하면 된다. 이들 업체에선 운구차 서비스, 종교별 예식 진행 및 입관, 화장을 해주고, 분골함 또는 납골단지에 담아 유골을 인도하거나 납골당에 안치시켜준다. 가격은 어떤 수의, 관 등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본 20만원부터 1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700기 정도의 납골함을 갖춘 경기 김포의 장묘업체 ‘페트나라’ 박영옥 대표는 “요즘엔 키우던 반려동물이 사망하면 주인들이 휴가까지 내서 장례를 치러주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슬픔을 공유한다”며 “기본인 20만원짜리만 해도 수의와 관, 유골함이 제공되기 때문에 굳이 비싼 용품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박 대표는 이어 “보호자들이 보통 1~2년 정도 납골함을 유지하다 가져가서 유골을 어딘가에 뿌려주거나 묻어주지만 일부는 10년 넘게 납골함을 유지하면서 매주 추모하러 온다”고 말했다. 김포의 또 다른 장묘업체 ‘월드팻’엔 반려동물 묘지도 있다. 이곳에 16년간 동고동락한 시츄를 묻은 정하연 방송드라마 작가는 “나는 원래 사람도, 동물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데려온 시츄 덕분에 무한 사랑을 배웠다”며 “시츄는 2005년 사망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선 반려동물 화장이 불법이어서 미국 공원묘지에 안치했다가 3년 전 이곳에 데려왔다”고 말했다. 토요일마다 묘지를 찾는다는 정 작가는 “그곳에 가는 것 자체가 나에겐 힐링”이라며 “유기견에게도 관심이 생겨 또 다른 시츄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비싼 의료비를 미리 준비하기 위한 의료보험 서비스, 죽음이 가까운 반려동물을 입원시켜 위안과 안락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도 있다. 둘 다 아직 국내에선 시장 규모가 미미한 게 사실. 의료보험 서비스의 경우 현재 삼성화재보험, 롯데손해보험, 메리츠화재보험 등 3개사만 취급하고 있는 초기 단계다. 이들 보험 가입률은 2014년 기준 0.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이 약 20%, 미국이 약 10%인 데 비해 낮은 수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보험시장 역시 전망이 밝다고 본다. 황원경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올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시기 진입, 1인 가족 증가, 사회적 스트레스 증가 등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은 증가할 것이며, 반려동물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향후 반려동물 의료비 부담 해소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연구위원은 또 “금융사들은 이 같은 니즈와 판매 채널의 다양화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관련 상품 개발과 판매상품 라인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세중 보험연구원 연구원도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보험회사들이 향후 반려동물 시장 확대에 대비해 손해율 관리 방안을 수립하고 소비자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스피스는 경기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해마루동물병원 ‘해마루케어센터’가 국내에선 유일하다. 수의사 2명을 포함해 총 9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센터에는 강아지 입원실과 고양이 입원실, 보호자 면회실 등이 마련돼 있다. 안락사·자연사 등 마지막 시간을 앞두고 보호자와 반려동물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별도의 공간도 있다. 치료를 위한 수중 러닝머신, 동물용으로 특별 주문 제작된 고압산소치료기도 갖추고 있다. 김선아 센터장은 “현재 간종양 말기인 비글, 후지(뒷다리) 마비와 신부전증 등 각종 질환으로 힘들어 하는 요크셔테리어 등 5마리가 입원해 있다”며 “아픈 반려동물을 혼자 집에 둘 수 없어 출퇴근 때 데려오고 데려가거나 장기간 입원시키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하루 입원비는 동물 크기에 따라 11만~16만원 선이다.
출근, 약속, 여행 기간 중의 관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서비스도 속속 등장했다. 고급화된 반려동물 호텔, 반려동물이 보는 TV, 정서적 안정을 위한 주인과의 대화 도구, 행동 파악과 안전 점검을 위한 폐쇄회로(CC)TV 등 다양한 시장이 열리고 있다. 반려동물 TV의 경우 국내에선 KT가 ‘도그 TV’를 송출하고 있다. 미국에선 개 100만마리가 이런 전용 TV를 시청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선 개 돌봄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의 건강관리나 분실에 대비한 첨단 장치도 늘고 있다. GPS칩이 내장된 센서를 반려동물에게 장착해 비만도 체크와 운동량 조사를 하기도 하고, 일정 영역 이탈 시 바로 신고를 할 수도 있다.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도 앞다퉈 반려동물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이마트는 2010년 원스톱 쇼핑몰인 ‘몰리스 펫숍’(현재 16개 점포)을 론칭한 바 있다. 이 밖에 반려동물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생애주기별로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소비자와 연계해주는 통합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반려동물 시장 미국은 70조· 일본은 14조원 규모
미국은 2015년 기준으로 전체 가정의 68%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으며, 많이 기르는 동물 유형은 개(56.7%), 고양이(45.3%), 민물고기(14.3%)라고 미국 반려동물산업협회(American Pet Product Association·APPA)는 밝혔다. APPA는 또 미국의 반려동물 산업 시장 규모가 지난해 580억달러(68조1300억원)에서 올해 처음으로 600억달러(70조4800억원)를 넘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역별로는 사료(38.35%), 동물병원(25.91%), 의료 등 관련 제품과 비처방약(23.69%), 반려동물 서비스(8.24%), 반려동물 판매(3.70%) 순이다. 이 중 특히 반려동물 서비스 시장은 전년 대비 9.8% 성장하는 등 매년 가장 큰 폭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반려동물 시장은 지난해 1조4412억엔(13조9721억원)에서 올해 1조4549억엔(14조1061억원)으로 소폭 상승할 것으로 야노경제연구소가 전망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보고서는 2012년 기준 일본 전체 가구 중 16.8%가 개와 고양이 2000만마리를 기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한국보다 앞서 반려동물을 위한 미용·패션·호텔·장묘·보험 등 각종 서비스가 발달했으며 점차 세분화·전문화하는 추세다. 장묘문화만 해도 미국에서는 수백여개의 반려동물 묘지가 있고, 독일 에센과 브라운바흐 두 곳에는 사람과 반려동물을 합장할 수 있는 묘지가 있다. 일본에선 반려동물이 죽을 경우 친·인척까지 초청해 장례를 치르고 추모한다. 또 미리 들어놓은 보험으로 자신의 납골묘 옆에 자리를 만들어놓고 나중에 죽은 반려동물을 안치시키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명태·대구 등 시중판매 수산물 5.3%서 세슘 검출1223국민
대구·명태 등 시중에 판매되는 수산물의 5.3%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137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환경과자치연구소, 부산환경운동연합은 국내 시중 유통 수산물에 대한 방사성 물질 조사 결과 “150개 시료 중 5.3%에 해당하는 8개에서 세슘-137이 검출됐다”고 23일 밝혔다.
조사는 고등어, 명태, 대구, 다시마, 명태곤, 명태알, 미역, 다시마 등을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서울, 부산, 광주 지역 대형할인점과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수산물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분석 결과 150개 중 5.3%에 해당하는 8개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137이 검출됐다. 평균 검출 농도는 0.53베크렐/kg(최대 1.09베크렐)로 나타났다.
수산물에서 검출되는 세슘의 기준치는 현재 우리나라는 없고 독일의 경우 어린이는 4베크렐, 어른은 8베크렐이 기준치다. 세슘이 검출된 시료는 명태(검출률 11.5%)와 대구(〃 13.0%) 각 3건, 고등어(〃 3.3%), 다시마(〃 7.7%) 각 1건이었다. 원산지별로는 러시아산이 6건(13.3%)으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는 2건(3.2%)은 국내산이었다.
지난해 조사와 비교하면 검출률은 6.7%에서 5.3%로 다소 낮아졌고, 검출된 수산물 종류나 원산지 특성 등은 큰 차이가 없었다.
환경과자치연구소 민은주 책임연구원은 “최근 2년 조사에서 세슘이 검출된 일본산 수산물은 없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가 비교적 잘 관리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러시아산의 방사성 물질 검출률이 여전히 높게 나타나 일본산 외의 수입 수산물에 대한 검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예수는 혁명가…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은 위험”1222한겨레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본 예수
그는 목사도 아니고 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철학자이다. 평생을 철학교수로 살았다. 지난 9월 그는 96살의 나이에 <예수>를 썼다. 그가 쓴 <예수>는 1만권 이상 팔렸다. “예수가 누군가를 묻고, 그 예수와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모색하고 경건히 탐구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 이상의 고마움이 없겠다”고 서문에서 겸손하게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그가 예수를 안 것은 중학교 1학년, 14살 때였다. 건강이 나빠 삶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그 겨울 그는 예수를 만났다. “내가 찾은 것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었고, 영혼의 친구로서의 예수였다”고 한다. 그는 고백한다. “예수를 안 뒤 지난 80년 동안 하루도 하나님과 예수는 내 생활에서 떠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예수를 잊거나 떠난 때가 있어도 예수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가까이 있기 때문에 모르는 점이 많았던 예수를 지난여름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예수를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알려주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 주제는 과연 인간 예수가 우리의 신앙적 대상이 되는 그리스도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목사도 아니고 신학 전공도 안한나이 96살, 평생 평신도
김수환 추기경 말처럼 교회는 사회 위해 있는 것이지사회가 교회 위해 있는 것 아니다
지금도 하루 2번 강연, 원고지 40장 써
그가 말하는 ‘친구’는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지성인들이었다.
백살을 그리 멀리 남겨놓지 않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사진)는 놀라우리만큼 건강하다. 1970년대 중반 그가 쓴 에세이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60만 독자가 읽었다. 허무와 죽음, 고독과 절망, 좌절감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절망을 극복하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그의 철학적 수필집은 당시 초베스트셀러였다.
그는 지금도 하루 두 차례의 강연을 하고, 원고지 40장 이상의 글을 쓴다. 대장 내시경은 평생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위 내시경은 20년 전에 딱 한 번 해봤다. 물론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어릴 때 그는 건강의 열등생이었다. 중년까지는 친구들과 비슷했다. 그럼에도 그는 젊은 시절 못지않은 정열과 건강으로 노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의 건강 ‘비결’을 우선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우선 그에게 <예수>를 쓴 이유를 물었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예수>를 쓴 이유는 인간 예수임을 밝히고, 그가 그리스도임을 주변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한국 교회 비정상적 모습 걱정
“나는 독서를 통해 예수를 알았지, 결코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안 것이 아니다. 만약 설교를 통해 기독교 신앙에 접근했다면, 이미 기독교를 포기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통해 예수를 알고, 예수의 인생관, 가치관,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체화했다. 목사들은 예수의 인생과 가치를 알려주기보다는 기독교 지식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지식은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면 교체된다. 또 참된 신앙에 들어가는 데는 열쇠가 필요하다. 그 열쇠는 바로 예수이다. 예수와 나의 관계를 알지 않고는 기독교 주변에만 서성이게 된다. 많은 교인들이 ‘나 교회 다닌다’며 만족한다. 교회에 가서 헌금을 많이 하면 높은 직분도 준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를 만났나?’ 물으면 ‘아직 못 만났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는 인간 예수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책임을 감당한 인간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이어서 한국 교회의 비정상적인 ‘교회주의’를 걱정했다. “오늘날 교회는 사랑의 봉사보다는 소유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좀더 큰 교회, 좀더 많은 신도를 자랑한다. 유럽의 수백년 걸려 지은 큰 성당은 건축미와 예술성은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성당의 건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을 견뎌야 했고, 고귀한 생명과 인권이 유린당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예수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에선 이미 1970년대 버림받아
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이 위험하다고 했다. 기독교는 가족과 병원 같은 많은 공동체를 포함하고 있고, 대표적인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교회는 사회를 위해 있는 것이지, 사회가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바티칸 교황이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1500년 걸렸다. 젊은 김수환 신부가 이런 생각을 했기에 비슷한 생각을 한 바오로 6세가 그를 추기경으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큰 교회가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교회는 참된 기독교 정신을 버렸다.” 그는 1972년에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이미 그때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버림받고 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교회는 한때 700명까지 신도가 있던 대형교회였으나 당시 예배 보는 신도가 20명뿐이었다. 목사는 5명이나 됐는데 예배 보는 내내 목사들은 입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다음주에 들른 영국 런던의 가장 오래된 큰 교회는 일주일 있다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천주교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코펜하겐의 큰 성당은 문을 닫고 도서관과 주민센터로 변했다.” 그는 교회주의에 빠지면 기독교 정신이 버림을 받는다고 했다. 목사의 설교에는 교리와 교권은 있는데 인권은 없어서 지성인들이 교회를 외면한다고 했다. “큰 교회 목사들은 교회에 안 오면 죄인이라고 강조한다. 죄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다. 목사들이 교회만 나오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고, 교회만 나오면 천당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했다
그는 예수의 혁명가적 정신을 강조했다. “예수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도덕적인 인간의 의무를 다하도록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신앙적 은총을 내린다고 했다. 또 정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이는 복이 있으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의 표현은 그 자체가 계명과 교리에 속박됐던 구약 전체에 대한 도전이자, 로마제국의 권력에 대한 항거적인 혁명정신”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한 사람의 통치자를 위해 모든 사람이 노예화되는 것을 정당시하던 당시 시대정신을 뒤엎는 소중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평신도이면서 권위 있는 성경학자이길 원하는 김 교수는 가난한 목수로 일하던 예수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인류를 구원하며 느껴야 했던 인간적 고뇌와 두려움을 성경 곳곳에서 느꼈다고 한다. 그런 예수이기에 평생 함께한다고 했다.
지팡이 보청기 틀니 없이 꼿꼿
그에겐 노인들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지팡이나 보청기, 틀니가 없다. 50살 중반부터 혼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영을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한다. 그것이 그의 장수와 건강의 비결일까? 그는 나이를 먹어도 일을 멈추지 않고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건강을 잊었어요. 아마도 건강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며 “앞으로 1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기자는 대학 1학년 때 그의 ‘철학개론’ 강의를 들었다. 중간고사 문제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차이를 논하라”였다.(그때 그 과목을 C학점을 받아 장학금을 못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고 싶었으나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음식점에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해 예약을 부탁했다. “몇 분 오시냐?”는 질문에 그는 “한 명”이라고 답한다. 문득 그가 지난 세월 익숙해졌을 ‘인간적 고독’에 대해 떠올랐다
2016년 첫 해돋이는 아침 7시26분
김종철의 수하한화]정치의 부재, 공화주의 정신의 결여1223경향
“국회의원이 안되면 보좌관이라도 만나기 위해 의원실을 누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는 주권자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질 것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보험외판원처럼, 옹송그리며, 고개를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습니다. 어르신들과 일정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올 때마다 저는 진한 비애를,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수십 번 국회를 다녔지만, 단 한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밀양 초고압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씨가 최근에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며 쓴 ‘출마의 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계삼은 몇 해 전까지는 고등학교 교사였으나 뜻한 바 있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새 삶을 준비하던 중, 송전탑 건설공사 때문에 삶터를 잃게 된 한 연로한 농민이 분신자결을 하는 충격적인 사태에 마주쳤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일은 접어두고 피해주민들과 함께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고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외롭고, 고통스러운 싸움을 계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부조리, 불합리, 부도덕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송전탑 문제의 진실을 국회의원들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수십 번’이나 국회를 찾았다.
그러나 의원나리들은 흔히 시골의 ‘무지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운명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들은 의원실로 찾아온 시골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아주기는커녕 굴욕감을 안겨주기 일쑤였다. 이계삼은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 앞에서 이 나라의 ‘주권자’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다고 쓰고 있다. 이계삼의 글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짐작하건대 이것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공통적인 태도일 것이다(기억하기도 싫지만,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 어떤 법안 때문에 의원회관을 며칠 방문해야 했던 나 자신도 이와 유사한 불쾌한 경험을 했다).
오늘날 이 나라 정치의 근본문제는 정치가들이 ‘주권자’들의 절실한 인간적 혹은 생활상의 요구에 대하여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는 나라에서 선거를 통해 뽑힌 통치자, 정치가들이 국민 혹은 유권자들의 절실한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기이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서도 그들이 임기 내내 하는 일이란 오로지 다음 선거에서의 재선을 위한 궁리와 술책이다. 유권자들의 절실한 요구를 무시하고 반응을 하지도 않으면서, 또다시 선거에서 이길 궁리를 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게 지금 이 나라의 정치판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심히 불합리한 선거제도 때문이다. 소선거구 지역구 중심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제도하에서는 양당체제를 벗어날 수 없고, 양당 소속 정치인들에게는 그들이 ‘정치가계급’으로서 누리는 특권의 영속화가 늘 최우선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선거는 이른바 망국적인 지역주의와 강력히 결합되어 있다. 지역주의에 깊이 침윤된 선거풍토 속에서는 입후보자의 자질이나 공적에 관계없이 ‘묻지 마’ 투표가 횡행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당선 혹은 재선을 꿈꾸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권자’ 혹은 ‘실력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다. (자신의 지역구 사람들도 아닌) 하찮은 무지렁이들한테 관심을 기울여봤자 별 소득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거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돈이다. 선거에서 이기자면 우선 지명도가 높아야 하지만, 지명도를 보증하는 사회적 성공, 출세, 업적 등등은 불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돈(혹은 부패한 정신) 없이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지식인 사회에서 흔히 운위되는 대의제민주주의의 위기란 별 게 아니다. 오늘날 돈을 가진 자들에 의해 지배·통제되는 선거는 기득권자들의 영구집권을 돕는 메커니즘 이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정치가 공익이 아니라 (재벌과 부유층, 기득권층의) 사익에 봉사하는 도구로 변질·타락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공화주의 정신의 완벽한 결여이다. 공화주의 정신이란 국가가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공유물이라는 인식에 투철한 정신이다. 비단 물질적인 재산뿐만 아니다. 공화체제는 그 구성원들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기본적으로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옹호하는 정치체제이다.
공화주의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려면 금년 3월1일에 퇴임한 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의 예를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재임 중 극히 소박하고 파격적인 생활방식과 지혜로운 국가운영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퇴임 직전에는 한국의 수구언론까지 그에 관한 기사를 썼다). 예를 들어, 그는 대통령관저가 너무 크다고 노숙자들에게 내주고 자신과 아내는 교외의 작은 농가에서 기거하며, 봉급의 대부분을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출퇴근 시에는 관용차가 아니라 오래된 폭스바겐 비틀스를 직접 운전하며, 찾아온 손님들에게는 손수 차를 끓여 내놓곤 했다. ‘정치적 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이런 행동은 실은 그의 공화주의적 신념에 완전히 부합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정치가는 자기가 대표하는 국민들의 다수와 같은 수준과 방식으로 생활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는 기후변화도, 환경파괴도, 전쟁위협도 아니고, 정치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대부분의 정치가는 지위가 높아지면 갑자기 왕이 되려 하고, “붉은 카펫과 자신을 받들어 모시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공화주의 정신을 망각해버린다. 즉 선출된 임시적 공복일 뿐이라는 자각을 결여한 정치가들 때문에 오늘의 정치가 위기에 처했고, 세계가 커다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넥타이라는 헝겊조각을 매는 것을 싫어하고, 빈민가의 소년소녀들이 각자의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많았던 무히카 대통령은 취임 때보다도 퇴임 시에 국민들로부터 훨씬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 퇴임 후 그는 지금껏 살던 집에서 화훼농사를 지으며 농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술원과 예술원은 왜 침묵하고 있나 1028경향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쓸데없는 평지풍파를 일으켜놓은 장본인이 국회에 나와서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고…더 이상 왜곡과 혼란이 없어야 한다”고 또다시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있다. 보편적인 상식을 무시하고 시대착오적인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그것을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이라고 우기는 논리적, 심리적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
또, 제1야당 의원이라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저 행태는 무엇인가? ‘국가수반에 대한 예우’는 지켜야 한다면서 그 모욕적인 발언을 ‘국정 교과서 반대’라고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그냥 무기력하게 앉아 듣고만 있는 저 한심한 모습 말이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박수는 치지 않았다니 참 대단한 무훈을 세웠다고 말해줘야 할 것인가?
대통령(그리고 그 측근들)뿐만 아니라 야당정치가들은 지금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교과서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게 아니라, 국정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1항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명백한 위헌적 행위라는 점이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는 교과서를 갖고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옳은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금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게 있다. 그것은 헌법을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충격적인 것은, 대통령의 기억 상실 증상이다. 일찍이 역사문제에 국가가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료한 견해를 밝힌 것은 현 대통령 자신이었다. 불과 10년 전 당시 야당 대표의 신분으로 그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라는 너무나 지당한 논리를 폈던 것이다(<시사IN>423호). 뿐만 아니라 현 집권당 자신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도 바로 재작년(2013년 11월)의 보고서에서 “(교과서) 국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권위주의 내지 독재국가”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우리나라도 검정제로 발행한 교과서가 국정제로 만든 교과서보다 질적 수준이 제고되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니까 지금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기보다도 전혀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거의 대부분의 역사학자, 지식인, 교양인, 상식을 존중하는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일을 계속 추진한다는 것은 이 정권이 ‘독재정권’이 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것 이외의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반대자들에게 ‘비국민’이니 ‘종북’이니 딱지를 붙이는 게 얼토당토 않는 짓이라는 것은 자기들이 잘 알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다 아는 ‘보수적’ 인사들 다수도 교과서 국정화만은 허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종북’이라는 게 ‘북한 따라하기’를 뜻한다면, ‘종북세력’은 교과서 국정화를 획책하는 자들이지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일 리 없다. 지금 이 나라 대부분의 학자, 지식인, 양식있는 시민들은 학문과 사상과 교육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진실에 도달하려는 학문공동체의 오래된 상식을 지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좌파, 우파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무엇이 진리인지,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가르칠 것인지를 국가권력이 독점하고 있는 ‘북한식’ 체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맹렬히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는 사상과 학문, 언론, 교육의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식 독재체제에서는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비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김창길 기자
해방 후 70년,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정통성’ 문제에 시달려왔다. 왜냐하면 만천하가 다 알 듯이, 다수의 일제부역자들과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중추권력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국익 혹은 공익으로 포장하며 계속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통성’의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친일세력 청산 여부도 중요하지만, 해방 70년이 경과하는 이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상대적이지만 어느 쪽이 더 보편적인 인간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로 전개됐느냐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19와 6월 항쟁, 광주항쟁이라는 민중의 피나는 싸움을 통해서 어느 정도마나 민주주의적 제도와 관행이 성립되어온 남한이 보다 ‘정통성’을 확보한 사회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 교과서 국정화에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이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가 수구 지배세력에 의해서 유린되고 파괴되는 정도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스가 집권을 하자마자 착수한 첫 번째 사업이 독일어사전 변경작업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리하르트 페크룬이 1933년에 편찬하여 반세기 이상 독일에서 가장 널리 애용된 사전(‘도이체보르트’)에는 애초에 ‘국가사회주의(나치스)’에 대한 정의가 “극우적인 독일의 한 정당의 세계관”이라고 돼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수상이 된 후 1934년의 개정판에는 “독일민족민중의 해방을 가져온 세계관. 피와 땅, 충성과 전우애라는 근본개념에 기초하고 있다”라는 설명으로 바뀐 것이다.
독재 혹은 파쇼정권의 특징은 무엇보다 그 반지성주의이다. 그들은 인간문화가 힘들여 쌓아온 이성과 상식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학자, 지식인, 양심적인 시민을 언제나 적으로 간주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내게 가장 궁금한 게 있다. 그것은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이 정권의 반지성주의적, 반문명적인 행태에 대해서 이 나라 최고의 지성인,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고 하는(게다가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고 있는) 대한민국학술원과 예술원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왜 민주주의의 존망이 걸린 이 중대한 상황에서 침묵하고 있는가? 왜 침묵하고 있나
(2) 혐오사회 )더 아프고 거칠게… 약자에 날을 세우다1224 한국
여성을 향했던 혐오의 시선은 인종혐오, 이주민혐오, 동성애혐오 등으로 얼굴을 달리해 우리사회의 소수를 공격하고 있다. 올 한 해 우리 사회에 새겨진 혐오의 그림자를 돌아봤다.
울산 서울의 소득과 소비, 다른 지역과 ‘달라도 너무 다르네~’1224 한겨레
2014년 시도별 1인당 소득, 소비. 자료: 2014년 지역소득
안풍(安風)’ 여론조사를 제대로 읽으면1224 민중의 소리
내년 총선 정당후보 지지도(리얼미터, 12월3주차)ⓒ민중의소리
안철수 신당창당 전후 정당지지율 변화 (에스티아이, 2015년 11,12월 월례조사)ⓒ민중의소리
결국 무당층과 호남 여론이 안철수 신당의 발판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에 반대하지만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새정치연합을 선택해야 했던 여론이 움직이면서 야권재편은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야권지지층이 원하는 야권재편의 방향은 무엇일까?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조사결과도 있다. 에스티아이 조사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견제하기 위해 내년 총선에서 야권이 연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79.7%(야권지지층)에 이르고,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안의원이 새정치연합과 통합하거나 후보단일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66.7%(호남)에 이른다.
범야권후보단일화 관련 여론 (에스티아이, 2015.12 월례조사)ⓒ민중의소리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 졸속·망각에 불신 더한 ‘대한민국의 민낯’ 1229 주간경향
12월 중순 석양에 잠긴 진도 팽목항은 여전히 ‘기억하라 04·16’을 외치고 있다.
인산인해를 이뤘던 진도 팽목항 분향소에는 요즘 찾는 사람이 뜸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자 해경과 군당국이 헬기와 경비정, 특수요원 등을 동원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4월 18일 팽목항에서 희생자 가족들이 사망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신뢰를 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가혹하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며 시민기록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들었다. 그 영화 제목은 <나쁜 나라>다. 나쁜 나라란 단어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처한 정부의 태도가 한마디로 집약돼 있다. 그러나 망각과 졸속에 신뢰까지 잃은 정부는 성심으로 신뢰를 회복하기보다 세월호를 정치화했다. 적반하장이다. 세월호 참사의 ‘망각과 졸속’을 지적하는 사람을 ‘반정부’로 몰아버린 것이다. 지금 세월호의 진실을 찾고, 노란 리본을 다는 행위는 ‘반정부’ 표지로 인식된다. 심지어 합리적 의심조차 ‘종북’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극우단체들은 ‘국론분열 조장하는 좌익 정치집단 세월호 특위를 해체하라’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심지어 세월호 유족을 ‘떼 쓰는 사람’에 비유하고, 야당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극우 인물을 세월호 특위위원으로 임명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청년단체 회원들이 10월 9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문화공원에서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청년불만스테이지를 열어 ‘헬조선 뒤집기’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박수친다, 이 판결(7건)2015년 올해의 판결 한겨레21 12.29
▶ 2차 민중총궐기 집회금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
▶ 긴급조치 9호 위법성 인정해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 인정
▶ 비봉 석면 폐광산에 대해 석면 관련 법의 ‘사전예방’ 강조
▶ 세월호 구조 실패한 123정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인정
▶ 파업 지지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업무방해 방조죄’ 적용
▶ 연예기획사 대표, 10대 성폭력을 ‘사랑’으로 판단
대한민국은 왜 세습에 분노하지 않는가 제944호 2013.01.10
“경영권 세습은 2020년 올림픽 대표팀을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식들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워런 버핏
아버지와 아들, 딸이 삼성에 함께 다니는 경우는 유달리 많다. 어떤 임원의 딸은 삼성에 들어간 뒤 삼성의 엘리트 직원과 결혼해 아버지와 딸, 사위가 ‘삼성 가족’을 이루기도 한다.
2012년 10월 교회 세습을 천명한 서울 동작구 신림동 왕성교회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방인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류우종 기자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수행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왼쪽부터) 한겨레자료
참고 문헌: <중산층이라는 착각>(조준현·위즈덤하우스), <가족·생애·정치경제>(장경섭·창비), <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강준만·인물과사상사)
부끄러운 OECD 통계···한국 노동시간 ‘최상위’, 소득분배 ‘최하위’1222경향
한국이 고용안정성, 노동시간, 소득분배, 남녀 임금격차 등 각종 노동지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세계 최상위권에 속했다.2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보여주는 근속기간의 경우 우리나라는 평균 5.6년에 불과해 관련 통계가 발표되는 OECD 25개국 중 가장 짧았다.
근속기간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정도를 파악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지표이며, 현재의 사용자에게 고용된 기간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이탈리아(12.2년), 슬로베니아(11.6년), 프랑스(11.4년) 등은 근속기간이 우리나라의 2배가 넘었다. OECD 평균은 9.5년이었고, 우리나라 다음으로 근속연수가 짧은 덴마크도 7.6년이었다.
근속기간별 근로자 분포를 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근속기간 1년 미만자의 비중이 31.9%로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10년 이상자의 비중은 20.1%로 역시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사업체 규모별로 근속기간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300인 미만 사업장은 1년 미만자가 많고, 300인 이상에서는 10년 이상자가 많았다. 대기업일수록 고용안정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는 대기업 노조 조직율이 높은 것으로 일부 설명할 수 있다. 2013년 기준 100명 미만 사업장은 1~2%의 조직률을 보인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47.7%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노동조합 가입률은 9.9%에 불과해 29개국 중 4번째로 낮았다. OECD 평균은 29.1%였다. 아이슬란드(83%), 핀란드(69%), 스웨덴(67%), 덴마크(67%) 등 북유럽 국가의 노조 가입률은 모두 60%가 넘어 우리나라의 약 7배에 달했다.
고용안전성을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지표인 임시직 근로자 비중에서도 우리나라는 21.7%에 달해 OECD 29개국 중 5번째로 높았다. OECD 평균은 13.9%에 불과하다.임시직 근로자의 기준은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기간제, 단기기대, 파견, 일일근로를 포함한다.
연간 노동시간은 OECD 최장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2057시간으로 OECD 26개국 중 3번째로 길다. OECD 단순평균 1706시간에 비해 351시간 더 일하고, 가장 짧은 독일 근로자의 1302시간에 비해 755 시간 더 일한 셈이다.네덜란드(1347시간), 프랑스(1387시간), 벨기에(1430시간) 등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는 1500시간에 못 미쳤다.
고용노동부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보고서
자영업자와 가족종사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32개국 중 두번째로 길었다. 우리나라보다 노동시간이 긴 멕시코는 2228시간이다.노동시간 만이 아니라 노년빈곤으로 은퇴 시점 역시 세계에서 가장 늦은 축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남성의 2007~2012년 사이 유효 은퇴연령은 평균 71.1세로, 멕시코(72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유효 은퇴연령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빠져 더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이로, 실질적인 은퇴 시점을 뜻한다. 같은 기간 여성의 유효 은퇴연령도 69.8세로 칠레(70세)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분배지표는 OECD 회원국 중 불평등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국 다음으로 열악했다. 임금분포를 십분위로 나눠 고소득 근로자(D9)의 소득이 저소득 근로자(D1)의 몇 배나 되는지를 측정한 ‘임금 10분위수 배율’은 4.6이었다. 이는 미국(5.2)에 이어 OECD 23개국 중 두번째로 높은 수치다.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은 23.9%로 이 역시 미국(25.3%)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중위소득의 50%에 해당하는 빈곤기준선 미만 계층의 비율인 상대적빈곤율은 2012년 기준 14.6%로 OECD 34개국 중 6번째였다.
성별 임금격차는 OECD 22개국 중 가장 컸다. 성별 임금차이는 남성 중위임금을 100으로 할 때 남성 중위임금과 여성 중위임금의 차이로 정의된다.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차이는 2012년 기준 36.3으로 OECD 평균(14.5)의 두 배가 넘었다. 남성 임금이 100일 때 여성 임금은 63.7임을 의미한다.
한국의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13년 PPP 환율을 기준으로 6만2000달러로 34개국 중 22번째였다.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이 노동생산성 하락을 보이게 한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제조업의 노동 생산성은 지난해 기준으로 취업자 1인당 11만달러로 OECD 26개국 중 아일랜드와 미국에 이어 3번째로 높았다. 반면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4만7000달러로 OECD 26개국 중 21번째에 그쳤다.
들끓는 광주 민심 “안철수, 잘 나와부렀어” 1221 미디어오늘
[르포] 새정치에 싸늘, “광주전남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 "신당도 대안 아냐, 야권 분열 막아야" 반론도
광주 송정역 앞 매일시장 내 한 제분소 사장에게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 분당에 대해서 한 마디 해달라”고 말하자마자 주변 상인 5명이 삼삼오오 모였다. 그들 모두 “틀려먹었다”고 큰 소리를 내면서 새정치와 문재인 대표를 향해 불신을 터뜨렸다. 그 중에서도 목소리가 더 큰 쪽은 ‘신당 우호론자’들이었다. 이들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라는 지적이 나오면 “신당·탈당이 그나마 대안”이라는 주장으로 맞받아쳤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선언한 지 일주일이 지난 21일 광주광역시 송정역 앞 매일시장에서의 풍경이었다.
새정치를 향한 광주민심의 평가는 싸늘했다. 창당·탈당에 비판적인 시민들조차 새정치에게서 정치적 희망을 찾을 수 있으리란 걸 포기했다. 해법은 분분했다. 새정치가 실패했으니 신당을 창당해야한다는 주장과 그럼에도 야권분열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혼재돼있었다. 미디어오늘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 탈당이 가속화된 21일 광주로 내려가 복잡다난한 민심의 현 주소를 살펴봤다.
“광주에선 ‘문재인은 문제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
문재인 대표를 향한 질타는 광주 어디를 가도 들을 수 있었다. ‘밥그릇 싸움’, ‘욕심’, ‘무능’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매일시장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채승주씨(48)는 “(분당 사태는) 문재인 대표가 자기가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밥숟가락 챙기고 측근들 챙기다 보니까 생긴 문제 아니냐”고 지적했다. 직장인 조아무개씨(40)는 “보궐선거같은 승부기회가 4번이나 있었는데 모두 졌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느냐”며 “당 내 분열을 해결할 리더십도 없는 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택시기사 최 아무개씨는 “내가 ‘문재인 대표는 욕심때문에 안된다’했더니 한 손님이 만원을 그냥 주고 간 적이 있고 손님마다 비슷한 얘길 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표에 확실히 등을 보인 광주시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는 새정치에 대한 불신과도 통했다. 새정치는 ‘친노’, ‘무능’, ‘배은망덕함’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과거 20여 년 동안 고 김대중 대통령 및 민주당 전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원 활동을 했던 배아무개씨(65)는 “새로운 사람이 모였던 ‘새정치’를 기대했지만 지금은 ‘친노 패거리’가 모여있는 거 아니냐”면서 “문재인 대표를 대선 후보로 만들어 준 광주·전남 지역을 당선 후엔 개밥에 도토리 취급한다”며 비판했다.
광산구 주민 정아무개씨(44)도 “새정치와 다시 힘을 합쳐봤자 똑같은 결과밖에 나오지 않으니 새 시작을 하려면 다른 팀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양동시장의 상인들은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받았느냐”고 입을 모아 반문했다. 한 혼수이불 상점의 주인은 “광주는 보이는 그대로 낙후돼있고 발전한 게 거의 없다”며 “나주에 공공기관 이전했다고들 하는데 땅값만 올리고 광주권엔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쌀 중간유통업자인 김아무개씨(52)도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대통령됐을 때 (광주가) 크게 바뀐 게 있냐. 이후로는 더 (지역발전이) 없다”며 “선거날이니 투표하러 갈 뿐이지 그 사람을 지지해서가 아니”라고 밝혔다.
“안철수고 누구고 잘 나와버렸어”
신당을 지지한 시민들은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모두 접은 듯 했다. 직장인 조씨는 “이쪽 지역에서 새정치가 낳은 결과물이란 게 없는데 기반이 끝난 것이 아니겠냐”며 “새정치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없다면 그 일은 신당밖에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야권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배씨조차 “혁신은 사람 물갈이를 통해서밖에 가능하지 않다”며 “새로운 당을 꾸며 가꿔서 참신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이들이 안철수 의원에게 같은 기대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광주 시민들은 안 의원을 차선으로 여겼지 여전히 새로운 인물을 갈구하고 있었다. 양동시장에서 가구를 파는 심상호(40)씨는 “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의원 모두 야권 분열에 책임이 있고 함량 미달인 것이 드러났다”며 “안 의원은 사업은 잘하지만 정치에는 미숙한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 광주 송정역 앞 매일시장. 사진=손가영 기자
이 날 광주 시민들은 김부겸, 손학규, 이재명 등 정치적 리더십이 입증된 야권 인사들을 새로운 인물의 예로 거론했다. 심씨는 “인물이 없는 게 호남 정치의 큰 문제”라며 “인물을 길러내면 매번 반복되는 호남 민심 문제도 해결될 수 잇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광주에서는 현재 탈당과 창당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광산구갑 김동철 의원은 지난 20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안 의원의 창당 작업에 함께 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김 의원의 지역 사무실의 간판은 여전히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돼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탈당신고서가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문영주 비서관은 “지방의원 탈당과 당원 탈당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태”라면서 “격려전화도 수차례 받았다.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를 꾀할 수 있는 신당을 만들 것”이라 밝혔다.
▲ 광주 광산구갑 무소속 김동철 의원 사무실. 간판에 여전히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신당·탈당은 편한 소리… 더 큰 싸움에서 질 것”
광주 시민 사이에서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야권 분열은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강고하다. 택시기사일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우리가 다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나중에 어떻게 승리하려고 하냐”며 “정권교체나 여권견제는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인가”라고 답답해했다.
매일시장에서 정육점을 하는 고아무개씨(63)도 “새누리당보다 이쪽이 더 잘해줄 거란 생각에 옛날부터 표심이 생겼던 것”이라며 “원래 표가 부족한데 여기다 더 찢어지는 꼴이다. 최소한 합치기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신당의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택시기사 김씨는 “혼자 만든 당으로 뭘 할 수 있겠나. 신당을 만드는 데 (그 효과에 대해) 별 기대도 안했다”며 “신당이 생긴다면, 돈이나 규모 문제 때문에 결국 안철수, 박주선, 천정배 다 합치게 될 것”이라 밝혔다. 이렇게 되면 실상 기존 새정치민주연합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신당 창당을 지지하는 광산구 주민 임씨(46)도 “새정치와 신당이 크게 다를 것이란 생각은 안하지만 과연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것”이라 말했다.
이처럼 호남 민심의 분열 조짐이 드러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일 거란 지적도 나온다. 전남대 교정에서 만난 졸업생 김아무개씨(27)는 “세대가 바뀌고 호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배출되기도 하지만, 호남은 아직 전통의 힘이 강해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야권분열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던 택시기사 김씨 또한 “솔직히 호남민이 새누리당으로 가진 않을 거고 정의당이나 기권표로 쏠릴 가능성이 더 크다”며 “1, 2월 돼봐야 가늠할 수 있다. 지금은 다 안개속”이라고 지적했다.
박해광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호남민심’과 관련해 “호남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이해가 어떻게 대변되는 게 정당한가에 대한 자기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며 “스스로 명확히 하지 않기 때문에 논의가 끝없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결국 스스로 원하는 게 실현이 되는지 안되는지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논의나 반성적인 고민이 어려운 것”이라면서 “이러한 토론을 활성화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광주 양동시장. 사진=손가영 기자
청년들도 의견을 제시했다. 전남대 교정에서 만난 표영민(27)씨는 “새정치가 아니고서는 의미있는 의석수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창당, 탈당 등으로 분열되는 게 좋다고 생각되진 않는다”면서도 “호남 새정치 의원들 대부분이 지역 유지 출신이라 분열이 어떻게 되든 서민을 위한 정치는 더뎌질 것이다. 노동개악법이나 테러방지법을 야당이 제대로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주제가 큰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졸업생 김아무개(26)씨는 “근본적인 문제는 의원이 호남 시민을 실질적으로 대변하지 못한데 따른 호남민의 소외감”이라면서 “대구에서 일하는 광주민으로서 이제라도 지역감정을 해소해가는 새로운 정치인이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천정배 의원의 신당 창당 움직임은 아직 광주 시민들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21일 만난 광주 시민들 대부분은 천 의원의 신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평가하지 않았다. 양동시장에서 만난 심상호씨는 “천의원의 신당은 총선, 대선에서 완전히 못할 정도로 입지가 낮은 것 같다. 다른 당과 합치는 과정을 밟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시장에서 만난 채승우씨는 “천 의원의 신당은 호남에 머무는 우물 안 개구리 당이 될 것 같다”며 “전국적으로 힘을 넓힐 기반이 작다”고 지적했다.
왜 김무성에게만 관대한가 1221 경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또다시 설화를 빚었다. 지난 18일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하던 중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에게 “니(너)는 연탄 색깔하고 얼굴 색깔이 똑같네”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제임스 피어슨 로이터통신 특파원은 트위터에서 “정말 어이가 없다” “(막말로 악명높은 미국 대선주자) 트럼프 같아…”라고 비판했다. 영국 유학생 곽민수씨는 페이스북에 “영국의 야당 총수쯤이 나에게 ‘너 피부색이 치즈 색깔이랑 똑같구만’이라고 했다면, 사임하라는 여론이 영국 곳곳에서 터져나왔을 것이다. 실제 사임했을 가능성도 크다”는 글을 올렸다.
한국에선 어떤가. 일부 언론이 작은 기사로 다루고 소셜미디어에서 시끄러웠을 뿐 ‘사임 요구’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표면적 이유는 김 대표가 사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였다(그 까닭은 뒷부분에서 언급하겠다).
김 대표의 막말이 ‘뉴스’로 대우받지 못하는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우선 언론에서 김 대표의 정치적 무게와 영향력을 무시하는 측면이 있다. 차기 대선주자 레이스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2017년 최종적으로 새누리당 후보를 거머쥘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이 짙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만 가면 납작 엎드리는 그를 보며 ‘(대통령)감이 아니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김무성이라는 개인과 새누리당이라는 보수정당에 관용적인 잣대다. 김 대표의 별명은 ‘무대(무성대장)’다. 통 큰 보스, 터프한 상남자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미디어는 김 대표의 잦은 말실수를 자질 문제가 아니라 ‘선이 굵은’ 스타일 탓으로 돌린다. 친절하고 너그럽다. 문재인·박원순·안철수 등 야당 지도자들이 김 대표처럼 막말을 쏟아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어떤 이유로도 김 대표의 막말은 면책될 수 없다고 본다. 정치분석가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김 대표는 유권자들의 관점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을 넘보게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유력 대선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은 검증과 비판의 대상이 돼야 옳다. 개인적 성격이나 스타일을 감안해서 봐줄 일도 아니다. 21세기에 마초라는 게 자랑거리는 아니지 않나.
아프리카 유학생의 얼굴 색을 연탄 색에 비유한 데도 놀랐지만, 페이스북에 올린 사과문 내용에는 더 놀랐다. 김 대표는 “친근감을 표현한다는 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한” 발언이었다고 했다. “손녀 같아서” 골프장 경기보조원을 추행했다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 해명을 연상케 한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다짜고짜 반말하며 피부색을 언급하는 것은 친근감의 표현이 아니라 상식·교양·지성 부재의 고백일 뿐이다.
이쯤에서 김 대표의 ‘어록’을 짚어본다. 분야별로 엄선했다. ①여성 폄훼 “아기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 공천을 줘야 하지 않나” “대통령 유고 시 여성 총리에게 국방을 맡길 수 있겠나” ②언론관 (전 비서 구속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에게) “너는 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③노동관 (열악한 아르바이트생 처우를 호소하는 청년에게)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방법이 없다” “쇠파이프 휘두르는 파업만 없었으면 국민소득 3만달러 넘었을 것” ④집회의 자유 “촛불집회,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세계가 복면 뒤에 숨은 IS 척결 나선 것처럼 우리도 복면 뒤 숨은 시위대 척결 나서야” ⑤색깔론 “우리나라 역사학자의 90%가 좌파” ⑥지역주의 “전국이 강남만큼 수준 높으면 선거가 필요없다” ⑦외교 결례 “우리는 중국보다 미국이다”….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실언을 ‘프로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라고 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말실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해 남에게 감추고 싶은 생각을 본의 아니게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김 대표의 말실수를 가벼이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품위 있는 진보’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동의한다. 다만 품위가 진보에만 필요한 덕성은 아니다. 품위 없는 보수 또한 용납하기 어렵다. 김 대표에게만 특별히 관대할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김 대표에게 보스 기질과 남자다움을 입증할 효과적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오랫동안 모셔온 박 대통령에게 충심으로 직언을 해보라. 대통령이 ‘레이저’를 쏘더라도 굴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여보라.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해야 ‘상남자’ 자격이 생긴다. 권력자에겐 쩔쩔매면서, 외국인·여성·노동자·청년에게 함부로 대하는 건 터프한 게 아니라 지질한 거다.
(김민아 논설위원)
‘대선 댓글조작’ 수사하다 좌천 2년째…추락한 검찰의 현주소 2121 한겨레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은 2년 가까이 대구고검 검사로 재직중이다. 대구고검은 이곳을 거쳐간 고위간부 가운데 검찰총장이 된 이들이 많아 ‘명당’으로 통하는 곳이지만 그에겐 유배지나 다름없다. 대검 중수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특수부 요직을 거쳐 여주지청장을 지내던 중 국정원 댓글 수사팀에 발탁되며 승승장구하다 이곳으로 ‘좌천’됐기 때문이다.
“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국정원 직원 압수수색·체포영장 ‘역린’ 건드린 대가로 지방 유배
국정원장 법정구속 끌어낸 증거 대법원에서 결국 파기 환송
검찰 안에서 이름 올리기 꺼려
윤석열의 지난 2년은 대한민국 검찰의 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 후퇴의 신호탄이었다.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은 ‘정치검찰’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장이었다. 당시 정국을 강타한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 검사는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국감장에서 그는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의 집요한 수사 방해 및 외압을 증언했다. 한 여당 의원의 질책성 질문에 윤 검사는 말했다. “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실체적 진실만을 좇는 검사는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던 국민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컸다. 그는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이듬해 1월 정기인사에서 고검 검사로 이동했다. 고검 검사는 부임 1년이 지나면 인사 대상이 되지만, 지난 1월 인사 때도 윤 검사는 대구를 떠나지 못했다.
그가 맡았던 국정원 댓글 사건은 올해 희비가 엇갈리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심에서 선거법 위반 유죄가 인정돼 법정구속됐다. 기뻐할 만도 하건만, 윤 검사는 축하 전화를 받고도 오히려 쓸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의 후배 검사는 “검찰 조직을 위한 ‘항명’이었는데, 검찰 안에서 점차 잊혀가는 존재가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대법원이 2심의 유죄 판단 근거가 된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파기환송한 뒤, 검찰 안에서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윤 검사의 항명 파동 후 검찰 수뇌부는 그를 ‘정치검사’로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됐다. 하지만 그가 처리한 사건들을 보면 이들의 주장은 흑색선전에 가깝다. 윤 검사는 서울지검 평검사 때 당시 김대중 정부 경찰 실세였던 박희원 정보국장(치안감)을 구속했다. 참여정부 때는 대선자금 수사팀에 참여해 안희정, 강금원씨 등 노무현 대통령 측근을 잇달아 구속시켰다. 그는 검찰 수사가 외압에 좌우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그를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에 임명한 것은 이런 성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윤 검사는 내년 1월이면 2년의 ‘의무복무’ 기간을 꽉 채우게 된다. 그가 어디로 이동하는가는 박근혜 정권 하반기 검찰 풍향을 가늠할 척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정권에 밉보인 검사들이 설 땅이 점차 좁아지고 있어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검찰 수뇌부는 소신 있는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찍어내려 하고 있다. 윤 검사와 함께 국정원 댓글 수사에 참여했던 박형철 부장검사도 대전고검에 유배됐다. 최근에는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했던 임은정 검사가 심층적격심사 대상에 올라 퇴출 위기에 몰렸다. 정권의 ‘검찰 길들이기’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보다 더 ‘시스템화’되고 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현 정권은 정권에 밉보인 검사들은 철저하게 응징하고, 충성을 다하는 검사들은 요직에 발탁함으로써 검사들에게 ‘정권을 향해 칼을 겨누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검찰권 행사는 불가능하고,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성 상품화가 왜 나빠요?" 발칙한 그녀들의 고공농성 1221 오마이뉴스
[리뷰] <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 >이 조명한 페미니즘 그리고 페미니스트
▲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 방송 화면 갈무리. 송아영씨는 '토플리스' 시위를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 SBS
대표적인 남성 잡지 <맥심>의 표지에 테이프로 발목이 묶인 여자를 차 트렁크에 실은 남자가 등장하는 나라. 여성에 대한 혐오와 심지어 강간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소라넷> 등이 버젓이 인터넷 공간에서 활개치 는 나라. 15년이 넘게 대학교에서 '성의 이해'라는 강의의 명목으로 남성 중심의 성적 편견을 강의하는 나라. 지난 6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3일에 한 명씩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나라, 그런데 그에 대한 대처는 '스토킹 처벌법'?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 하지만 남녀 성평등지수 115위, 인도, 네팔보다 뒤진 나라 대한민국.
자생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된 그녀들
▲ <SBS 스페셜 - 발칙한 그녀들> 방송 화면 갈무리. 정두리씨는 <맥심>의 표지가 여성을 대상화하여 표현한 것에 반대하며, 자신이 남성의 간을 빼먹는 식의 연출을 감행했다. ⓒ SBS
과연 이런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어떻게 해야만 할까?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답적으로 쉽게 변화되지 않는 남성 중심 사회. 이 사회에서 저돌적으로 안티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이 있다. 지난 20일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아래 <발칙한 그녀들>)은 남성 중심사회에 전사가 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작은 말 그대로 발칙한 그녀들이다. <맥심> 잡지의 표지 모델로 선정된 바 있으나, '여성 납치'가 연상되는 표지를 싣자 해당 잡지의 표지 모델을 더는 거부하기로 선언하며 화제가 된 정두리씨. 하지만 그녀의 남다른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늦은 밤 열리는 파티, 이름하여 '젖은 파티', 그곳에 프랑스 유학 중 잠시 귀국한 정두리씨가 하얀 천사의 복장을 하고 파티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잡지의 발간자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젖은 잡지>.
그녀가 내세운 '젖은'이라는 수식어는,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단어이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젖은' 잡지의 표지는 바로 그녀가 거부한 남성 잡지의 바로 그 여성 납치를 연상케 하는 그 장면을 패러디했다. 소복을 입은 그녀가 남성으로 연상되는 대상의 간을 핥고 있는 모습이다. 즉 이렇게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비'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여성들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젖은' 파티의 주역은 술 취해 흥청거리는 남자들이 없는 여성들이다.
▲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의 방송 화면 갈무리. 성 칼럼니스트 은하선씨는 '섹스 토이'를 이용하여 그동안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양지화하려고 한다. ⓒ SBS
또 한 명의 페미니스트는 독일 유학 중 거침없이 섹스 토이샵을 드나드는 은하선이다. 섹스 토이의 사용 후기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녀는 이미 대학 시절부터 성 칼럼니스트로 시작했다. <이기적 섹스>의 저자로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함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은하선의 오르가슴 투나잇'을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양지로 끌어내고자 애쓰는 인물이다.
<발칙한 그녀들>의 마지막 주자는 지난 2014년 7월 광화문 광장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외친 송아영이다. 그녀가 지금도 여전히 하는 가슴을 드러내는 '토플리스' 시위는 'FEMEN'이란 여성 인권 단체의 시위 방식이다.
이렇게 도발적인 혹은 발칙해 보이는 그녀들과 함께,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괜찮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배우 박철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의 시작은 온화하지만 몹시 조심스러운 박철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래도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는 보통의 남성이고, 대한민국에는 자신과 같은 남성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렇게 '발칙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느냐고. 완곡하게 그녀들의 '발칙함'에 발을 걸고 넘어진다.
정두리의 방식이 또 다른 '성의 상품화' 아니냐고 찌르는 박철민의 생각에, 돌아온 대답은 '성의 상품화'가 왜 나쁘냐는 반문이었다. 밤만 되면 아니 밤이 되지 않아도 남성 중심의 성 상품화는 대한민국을 온통 휘감았다. 여성이 즐길 수 있는, 그녀들의 욕망이 대변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그 누구도 대상화하지 않는 성을 상품화하겠다는 대답. 그녀들의 발상은 말 그대로 '발칙하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그런 '발칙함'의 선정성에서 한 걸음 더 들어선다. 어릴 적 호된 시집살이를 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정두리씨는 남성의 폭력성에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단다. 은하선씨는 대학 시절 '광클'을 해야만 들을 수 있던 '성의 이해' 강의가 알고 보니 여성 폄하 심지어 여성 혐오가 만연한 수업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런데 자신을 제외한 다수의 학생이 웃으며 그걸 듣고 있다는 사실에 더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 2014년 7월 이전 이미 여러 다른 방식으로 세월호에 대한 자기 생각을 표출하였지만, 세상의 외면을 받았었다고 송아영씨는 고백한다.
남성 중심의 세상이 막아선 벽에, 그녀들은 '계란'이 되어 바위 치기를 시작한 것이라고 다큐멘터리는 그녀들의 '페미니즘' 시원을 밝힌다.
그렇게 현실의 문제에서 시작된 그녀들의 페미니즘은 정두리씨의 경우,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내세운 '잡지'와 '파티'와 같은 형식의 모임이 됐다. 은하선씨의 경우에는 내가 써보는 여성 중심의 성 이야기로, 나아가 남성을 만족하게 하기 위한 대상이 아닌 여성의 욕구에 대한 적극적 발견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FEMEN처럼 자신을 무기로 내세우는 방식으로 '발전'해 간 것뿐이다.
남성 중심 사회의 절박한 고공 농성
평범한 남성의 입장을 내세우며, 박철민은 이들의 페미니즘이 또 다른 성의 상품화나 왜곡된 시각이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 규제에도 불구하고 <소라넷> 등의 버젓한 활개와, 그에 반해 등장한 '메갈리안' 페이스북 페이지 삭제 등의 편협한 현실을 마주한다. 거리를 가득 메운 남성 중심의 성 상품화, 결국 크레인에 올라가듯 딸려 가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몸을 내세운 것이라는 그녀들의 이야기.
박철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평범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세계를 넘어, 세상을 감싼 여전히 강고한 '남성 중심의 벽'과 이젠 그 벽을 타고 무성하게 '여성 혐오'의 줄기들이 자랐다. 그리고 그런 줄기들을 끊어 내기 위해 자신이 전사가 된 그녀들의 절박함이 이해될 수밖에 없다.
방송 마지막, 우크라이나의 성 산업을 반대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국제 FEMEN 회원들처럼, 여성 혐오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인 송아영씨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복싱을 배운다. 이처럼 그녀들의 현실은 위태롭다. 발칙함으로 시작된 그녀의 도발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외로운 고공 농성으로 마무리된다.
죽었다던 김정은 애인, 나타나도 정정보도는 없다 1221 미디어오늘
"포르노 보다 처형" 오보 인정은커녕 어뷰징 계속… 확인 어려운 데다 오보 밝혀져도 책임질 필요 없어
국내 언론이 공개 처형당했다고 보도한 현송월 북한 모란봉 악단 단장이 멀쩡하게 살아있음이 확인되고 있는데도 언론은 아무런 후속보도를 않고 있다.
지난 12일 모란봉 악단이 중국 공연을 취소하면서 현송월 단장이 또 한번 언론의 어뷰징 대상이 됐다. 언론에 따르면 현송월 단장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옛 애인으로 알려져있다. 21일 오후, 포털사이트 검색결과 최근 1개월간 현송월 단장과 관련된 기사는 다음 653건, 네이버 699건에 이른다.
조선일보는 “‘미녀 3대장’ 현송월이 이끄는 ‘모란봉악단’ 선발 기준은?…165cm+50kg 기준 맞춰야’”, “‘모란봉악단’ 현송월, 중국 공연서 샤넬 가방 들고 인터뷰… 김정은 ‘옛 애인’의 당당함”, “현송월 건재 과시, 김정은 애지중지했던 애인… 실제 미모보니” 등의 기사로 어뷰징을 하고 있다. 21일 현재까지 조선닷컴 바이라인의 기사는 39건이다.
▲ 지난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 6면 기사
조선일보는 현송월 단장이 공개 처형당했다고 단독보도한 매체다. 조선일보는 지난 2013년 8월 29일 6면 기사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연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을 비롯해 북한 유명 예술인 10여명이 김정은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 판매한 혐의로 지난 20일 공개 총살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현송월과 은하수 관현악단장 문경진 등은 김정은의 ‘성 녹화물을 보지 말 것에 대하여’란 지시를 어긴 혐의로 체포됐으며 3일 만에 처형됐다. 조선일보는 “공개 처형은 주요 예술 단원과 사형수 가족이 지켜보는 데서 기관총으로 진행됐다”며 “사형수 가족은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안다”는 대북 ‘소식통’의 발언도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 이후 현송월 단장 처형과 관련한 기사가 쏟아졌다. ‘김정은, 전 여친 등 10여명 음란물 찍었다고 총살’(MBN), ‘김정은 옛 애인 현송월, 음란물 제작 혐의로 처형… 가족들은 정치범수용소행’(이투데이), ‘北김정은 전 애인 포르노 직접 찍다가 공개총살’(한국일보), ‘이게 정말 김정은 옛 애인 ’현송월 음란물‘ 맞아?’(동아일보) 등이다.
국정원이 현송월 단장의 죽음을 확인해줬다는 보도도 나왔다. 문화일보는 2013년 12월 10일 3면 기사에서 “여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현송월을 포함한 북한 예술인 10여명이 지난 8월 기관총으로 공개 처형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들에 대한 처형은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난 공개 처형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 지난 2013년 12월 10일 문화일보 3면 기사
하지만 조선일보의 단독보도와 ‘국정원이 확인했다’는 문화일보 보도는 1년도 되지 않아 오보임이 밝혀졌다. 지난해 5월 현송월 단장이 조선중앙TV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현송월 단장은 제 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나타나 “우리 군대와 인민을 위하여 예술창작 창조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리겠다”고 연설했다.
당시에도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는커녕 조선닷컴 바이라인으로 “총살됐다던 ‘김정은 애인’ 현송월, 군복 차림 등장…생존 확인”, “음란물 제작 ‘총살설’ 북 현송월 생존… TV에 나와”, “음란물 제작 ‘총살설’, 북 현송월 생존”, “북, 모란봉악단 부각… 김정은, 부인 여동생과 공연 관람” 등의 어뷰징 기사를 내보냈다. 문화일보는 아무런 후속 보도도 하지 않았다.
현송월 처형 보도와 이후 언론의 태도는 국내 언론이 북한 관련 뉴스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언론들은 북한 관련 오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식통’으로 서술되는 익명의 취재원에 확인할 수 없는 내용에다 나중에 오보로 밝혀져도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보를 내고도 정정보도는커녕 아무런 언급도 없이 ‘현송월 미모보니’ 라는 기사를 내보낼 수 있는 까닭이다.
▲ 지난 2013년 8월 현송월 처형과 관련된 국내 언론보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성명서에는 매주 한국 언론을 비난하는 내용이 실린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한 언론사 기자는 “이런 상황은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보를 생산하고 있는 언론사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기자에 따르면 실제 종합편성채널 같은 경우 잦은 오보 때문에 아직도 통일부에 출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기자는 “현실적으로 규제는 불가능하고 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정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과거 남북한 언론인들이 합의한 내용을 참고할 것을 권했다. 지난 2008년 남북 언론인들은 “일부 세력의 민족대결 책동을 비호하고 동족 사이에 불신과 대결을 조장하는 편파 보도, 모략 보도, 왜곡 중상책동을 철저히 배격”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세월호 청문회 대비 입 맞춘 정황, 작성자는 누구? 1221 미디어오늘
복역중인 123 정장에게도 전달됐나… 해경·해수부 아우르는 ‘막후 지휘자’ 존재 가능성
세월호 청문회에 출석했던 해경과 해수부측 증인들이 청문회를 앞두고 답변을 짜맞춘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이 나왔다. 권영빈 세월호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은 22일 정례브리핑 자리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자료’라는 제목의 문건 일부를 공개했다. 이 문건은 ‘대외주의’라는 경고문과 함께 ‘12. 08. 00:00 현재’라고 되어 있어, 청문회를 일주일 앞두고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세월호 참사에 직접 책임이 있는 해경과 해수부는 각각 검찰수사에 대비한 비밀 문건과 특조위 내에서의 행동지침을 담은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청문위원들의 예상 질문을 담은 ‘신문요지’와 그에 따른 ‘답변’을 항목별로 정리해놓고 있다.
▲ 정부 공문서 양식으로 작성된 세월호 청문회 대비 문건.
일례로 문건은 “123정 직원들은 구조된 사람들이 선원인 사실을 몰랐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급박한 상황에서 구조에 집중하느라 선원인지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진술”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또한 “123정이 선원이 포함 됐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간은”이라는 질문에 대해선 “11:10경 구조자중 일부가 선원인 것을 인지하였다고 함”이라고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미디어오늘은 16일 <세월호 침몰 순간, 해경 123정장 의문의 통화 13초> 기사에서 참사당일인 4월 16일 오전 10시 28분에 이미 세월호 2등항해사가 123정장의 휴대폰을 빌려 본인 명의의 제주 소재 유선전화로 전화를 건 사실을 보도한바 있다. 123정장과 승조원들이 처음 구조한 인원이 세월호 승무원인지를 언제 인지했는지의 여부 혹은 이미 승무원인지를 알고 구조한 것인지는 사고 직후 초동대응 문제에서 중요 쟁점의 하나다.
▲ 지난 12월 15일 세월호참사특조위가 1차 청문회를 연 서울 YWCA 건물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케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문건은 또한 “10:17경 유리창안에 승객이 보이는데 구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123정 경찰관에 의하면 선수 좌현 3층 유리창을 깨고 구조한 인원 외에는 갇혀 있는 승객을 보지 못하였다고 함”이라고 모범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특조위는 해당 문건이 30~40페이지 분량이라고 밝히며 그 중 일부분을 공개했다. 이번 문건은 해경이 표면적인 해체 후 국민안전처로 흡수된 이후에도 세월호 진상조사와 관련해 해경과 해수부를 아우르는 막후 지휘자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특조위가 공개한 부분이 실형을 선고받은 123정장에게 예상되는 심문과 답변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이 문건이 복역중인 123정장에게 전달되었는지의 여부도 추후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 정부 공문서 양식으로 작성된 세월호 청문회 대비 문건.
기부금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깜깜... 뭘 믿고 기부하나요 1221 한국
100점 만점 평가에 평균 53점
단체 홈피·국세청 공시도 '깜깜이'
"스임새 많고 인력 부족" 해명 뿐
종교 관련 법인 5곳 최하위 등급
재무현황 요약 부문은 모두 0점
승가원은 전체 순위 4위로 양호
올해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 김유빈(25ㆍ가명)씨는 첫 월급의 일부를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 TV에서 자주 봤던 해외 구호단체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아프리카 어린이에 대한 식량과 의료지원부터 교육 및 주거환경 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호사업 중 자신의 기부금이 어디에 쓰일지 먼저 알아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홈페이지에는 지출내역에 ‘개발도상국 지원’같이 아주 간단한 설명이 금액과 함께 게시돼 있을 뿐이었다. 홈페이지를 구석구석 뒤져 연차보고서를 찾은 끝에 추가로 알게 된 내용도 지난해 각 사업 수혜를 받은 인원 수 정도였다.
기부자들은 기부단체가 모금한 기부금액의 쓰임새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바란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나눔과정 윤리성과 투명성 요구’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부단체ㆍ기관의 회계결산서 공개 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으로 ‘기부금 사용내역(세부 기부 사업별)’이 56.3%, ‘기부금 사용처(시설, 단체, 개인)’가 25.8%로 1,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기부금 사용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는 크지만, 김씨 같은 기부자들에게 기부금 사용처와 단체 활동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는 단체는 매우 드물다.
한국일보는 채원호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ㆍ박종성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지난해 기부 모금액 30억원 이상 45개 단체의 ‘투명성’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53.4점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45개 단체 홈페이지의 ▦기본 정보공개 성실성 ▦재무보고서 접근성 ▦재무현황 요약표 ▦이사회 정보 ▦감사 정보 등 5개 지표를 확정해 총 100점 만점으로 계산했다. 여기에 단체별 국세청 공시자료의 성실도를 5개 지표로 평가(-10점)하고 최근 1년 내 형사사건 입건 등 부정적 기사 여부(-5점)를 반영해 감점한 뒤 최종 점수와 함께 A부터 F까지 등급(15점 간격)을 부여했다.
구체적인 지출내역은 국세청 공시도 홈페이지도 깜깜이
‘지급목적: 국내아동권리지원사업 외, 지급건수: 1, 대표 지급처명: 국내 좋은마음센터 사업장 외’
아동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단법인 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이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한 국내사업 기부금 지출 명세서에 나오는 월별 내역이다. 이렇게만 봐선 어떤 명목으로 누구에게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 쉽게 알 수가 없다. 한술 더 떠 이 단체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 기부금 지출내역을 위와 똑같은 내용으로 12번이나 반복해 기입했다. 내용이 부실한 것은 물론이고 성의도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은 투명성 평가에서 D등급(48.5점)으로 평가됐다. 이 단체는 본보가 취재에 들어간 후인 지난 18일 지급목적을 월별로 ‘국내전문복지 및 아동권리지원사업’, ‘사회개발교육사업’, ‘캠페인사업비’ 등 5개로 세분화해 기입한 뒤 재공시했다.
현재 국세청은 기부금 지출 명세서 작성시 구체적인 지급목적과 대표 지급처를 적도록 하고 연간 1,000만원 이상 지급한 단체의 경우 수혜인원과 금액까지 별도로 적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기부단체들은 왜 이렇게 정보공개에 인색한 것일까. 이에 대해 기부금 규모가 큰 단체들은 “모든 내용을 기록하기에는 쓰임새가 너무나 많다”고, 이보다 몸집이 적은 군소단체들은 “전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이번 조사에서 D등급(46.2점)을 받은 구세군 복지재단 관계자는 “국세청뿐만 아니라 세무서와 구청에도 관련 내용을 보고하는데 일이 중복되다 보니 제대로 기입하지 못했다”며 “기부금품과 후원금을 다 같이 공시에 올리다 보니 일일이 그 내용을 쓰기엔 분량이 너무 많다”고 해명했다.
종교 관련 법인들 특히 점수 낮아
이번 조사에서 최하위 등급인 F를 받은 단체 10곳 중 5곳은 종교 관련 법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독봉사회(-4점), 마리아수녀회(-1점), 한국기독교청년회전국연맹유지재단(2점), 사회복지법인기독교대한감리회(6.7점)는 홈페이지 정보접근 여부와 국세청 공시 여부에서 모두 낮은 점수를 받았다.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일부 큰 단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단체들이 기부금 모집과 후원 방법은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반면 공개된 기부금의 사용내역은 상세하지 않았다”면서 “특히 종교 관련 단체는 공개된 정보의 양이 현저히 적어 매우 폐쇄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평했다.
종교 관련 법인들은 홈페이지의 재무현황 요약 부문에서 20점 만점에 모두 0점으로 평가됐다. 기부금을 포함한 법인 수입과 지출 현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기독교청년회전국연맹유지재단은 홈페이지에 재무보고서나 지출 현황은 물론 이사회 구조 및 내ㆍ외부 감사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전국 66개 지부에서 회원비를 받고 있고 매년 총회를 개최해 결산내역을 회원들에게 공개한다”며 “이와 함께 국세청 공시를 통해 기본 자료를 신고하고 있어 홈페이지에는 굳이 자료를 올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일부 종교 관련 법인들은 전문인력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홈페이지가 아예 없었던 기독봉사회의 경우 “모든 행정 인력을 자원봉사자로 구성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마리아수녀회는 “재단법인 홈페이지는 따로 없지만 수녀회 차원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소액의 기부금품까지 사용처를 따로 밝히고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비슷한 기부금 규모에 같은 종교재단이어도 높은 점수를 받은 곳도 있다.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은 홈페이지 정보공개 성실성 19.7점, 자체결산서 접근성 10점, 재무현황 공개 16.5점 등 총점 77.5점을 받아 전체 45개 조사대상 가운데 4위를 기록했다.
대형 단체에 기부금 쏠려... 지역 풀뿌리 봉사는 고사 위기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대문쪽방촌상담센터에서 주민들이 대한적십자사와 LG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형 기부단체로의 기부금 편중 현상이 심각해 외국에 비해 군소 기부단체들이 지역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부천시 중동에 자리잡은 부천희망재단은 연간 기부금액이 5억원 미만인 군소 기부단체다.
22일 오후 찾아간 재단 사무실은 10㎡(3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었고, 연말이라 직원 3명 모두 기부영수증 발행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중 한 명인 차운호(29)씨 모니터 위에도 기부영수증 작업 화면과 다음주 모금 캠페인에 사용될 팸플릿 작업 화면이 동시에 띄워져 있었다. 차씨는 “각종 홍보물 디자인은 물론 전화응대, 재무처리까지 해야 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다른 직원도 모금 등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서로 돕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슈퍼맨’이 되야 하는 영세단체
공시의무를 가진 공익법인 중 기부금 10억원 미만인 소규모 공익법인은 전국적으로 6,934곳에 달하지만 군소 기부단체의 현실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이중 상위 100개 단체가 전체 7,484개 공익법인 총 기부금의 절반(2조5,925억원)을 차지할 만큼 대형단체로의 편중이 심각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기부단체들은 담당 부서를 세분화하고 홍보담당만 10명가량 두며 인력풀을 가동하고 있다. 반면 군소 단체들은 사회복지 사업에서 활동가가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도 월 100만원대 인건비가 아까워 인력 확충에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직원 층이 얇은 영세 기부단체들은 스스로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회계, 마케팅, 모금 등을 한 명이 수행하다 보니 업무가 과중한 것은 물론이고, 전문성을 키워나가기도 쉽지 않다.
또 영세 단체들은 전문모금가를 육성하거나 영입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회복지 쪽에서는 통상 1명의 전문모금가가 연간 10억원을 유치할 수 있다고 본다. 전문지식과 논리, 상담전략 등을 갖춰 고액기부자들과 1대1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기부컨설팅 업체 도움과 나눔 최영우 대표는 “당장 할 일이 많은 영세 단체 직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속적으로 고액 기부자들을 설득해 모금하기란 쉽지 않다”며 “결국 영세 단체들이 쉽지만 모금액은 적은 대중모금 방식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은 국제공인모금전문가(CFREㆍCertified Fund Raising Executive) 자격증 취득자를 비롯, 비공식 전문모금가까지 10만명가량이 활동하고 있지만 국내는 CFRE 보유자는 단 3명이고 전문모금가 역시 100명 내외로 파악되고 있다.
인력과 전문성 부족은 자연스럽게 서비스 부실로 이어진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가 지난 4월 연간 기부금 10억원 미만 법인부터 5,000억원 이상 법인까지 규모별로 10개 공익법인을 선정해 각각 10만원씩 기부한 뒤 6개월간 기부자 응대 서비스를 평가한 ‘암행기부’ 실험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확인된다. 5,000억원 이상 법인은 ▦상품소개 ▦서류발급 ▦불만접수 ▦기부제안 등 4가지 항목에서 17점(20점 만점)을 받았으나 10억원 미만의 법인은 6점에 불과했다. 비케이 안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은 “인력 사정이 좋지 않은 영세 단체들은 서비스 응대 매뉴얼을 개발할 여력이 없고 서류처리 작업 등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금 효과 좋은 광고는 그림의 떡
군소 기부단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대형 단체들에 비해 단체 활동을 홍보하고 모금을 호소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대중매체 광고에 2억을 투자하면 20억원을 모금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광고 한 편의 위력은 크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영세 단체에겐 그림의 떡이다.
일부 기업과 연예인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기부단체 광고를 후원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대개는 홍보 효과가 높은 유명 기부단체에 집중된다. 한 영세 구호단체 대표는 “출연료는 받지 않더라도 기부단체가 직접 외주업체에 수천만원을 주고 영상을 제작한 뒤 방송을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영세단체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설사 비용을 대 광고를 만든다 해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작은 단체를 방송에 내보내 줄 매체는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기부금 모금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영세 단체들은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방식으로라도 모금을 하자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빈곤포르노는 갈비뼈가 앙상한 기아 아동 등 자극적인 이미지나 ‘엄마가 되어줄게’같은 감정적 문구로 사람들에게 모금을 호소하는 방식이다. 구호사업의 본질을 보여주기보다 사진 연출을 위해 인권을 침해하는 등의 문제가 커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전략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국내 기부 문화에서는 여전히 단골로 등장한다. 한 공익법인 관계자는“문화,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도 굶어 죽기 직전의 아프리카 아동 사진처럼 동정심을 유발할 수 없으면 모금이 잘 안 된다”라며 “아예 우리도 해외구호 단체로 전향하자는 농담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은 거인 키우려면 기부자도 어느 정도 내부투자 용인해야
군소 단체들은 해당 지역에서 풀뿌리 역할을 톡톡히 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부천희망재단의 경우, 생계가 어려워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을 위해 지역의 비영리기구와 연계된 유급 인턴십을 제공한다. 또 범죄 피해자에게 생활비를 지급하고 불우 아동들의 난방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연간 기부금 모금액수가 17억원 수준인 함께걷는아이들도 문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아동들에 오케스트라 활동을 지원한다. 두 단체는 투명성 지표에서 각각 70.6점과 76.5점으로 정보제공에도 적극적이다. 부천희망재단 관계자는 “지역에서 인지도를 넓혀가고 월별 운영보고를 통해 10만원 단위 지출 내역도 상세하게 밝히는 등 투명하게 운영하지만 대형 단체만큼 홍보가 크게 되지 않아 사업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세 단체들을 ‘작은 거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 기부자들도 기부단체가 인력과 시설 등 기부 규모를 키우는 데 필요한 투자는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주성수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장은 “국내에도 미국 포드, 록펠러 재단처럼 기업들이 기업 가치와 부합하는 영세 단체들을 발굴하고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며 “국내 기부자들도 거주하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세 단체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명성 높아지면 기부모금액도 높아져
보건복지부.
‘기부를 요청하는 기관이나 단체를 믿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 같은 이유로 기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무려 응답자의 20.8%에 달했다. ‘기부를 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응답이었다. 그만큼 기부단체의 신뢰성은 모금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다. 한국일보와 함께 공익법인 투명성 평가를 실시한 채원호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연구팀의 분석 결과에서도 투명성이 높아지면 기부모금액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연구팀에 따르면 공익법인들의 투명성 지표 점수가 10% 증가할 때 기부금 수입은 4.9%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단체별 총자산, 고유목적사업비, 기부금 수입규모와 투명성 점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다. 쉽게 말해 공익법인의 재정현황과 지배구조 등을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기부자들이 지갑을 더 많이 열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내ㆍ외부 감사보고서는 물론 임원진의 국외출장보고서까지 홈페이지에 낱낱이 공개해 투명성 지표에서 100점 만점에 92.5점을 기록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부금 수입 역시 5,83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기부금 수입이 1,802억원으로 조사대상 공익법인 중 두 번째로 많은 월드비전의 투명성 점수도 74.75점으로 전체 8위였다. 다만 총자산 규모가 클수록 투명성 지표 점수도 높아진 것은 인력과 재원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형단체가 정보공개에 보다 힘을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번 투명성 조사에서 A등급을 받은 단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한적십자사 단 두 곳에 불과하다. 두 단체는 정부가 직접 운영에 관여하는 공공기관 성격의 단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정부가 관여할 때 더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게 된다는 점에서 국세청이 공시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점검하고 공익법인 홈페이지 정보공개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채원호 교수는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NPO들이 자발적으로 어떤 내용들을 공개할지 보편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며 “군소단체의 경우 인력이 부족해 일일이 공개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민들의 기부금을 통해 운영되는 단체라면 재정현황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부단체 투명성 D등급… 불신 안 걷혔다
본보, 2년째 공익법인 45곳 분석
수천억원 기부금 받는 26곳
공시 양식 안 지켜 분석 못해
사업관리비·모금활동비 항목
'0'으로 기재한 엉터리 공시도
정보 접근 투명성 평균 53점
"신뢰 못해 기부 안해" 21%나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아시아의 한 개발도상국에서 2년 간 파견근무한 A(28)씨는 본부 운영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본부 지원으로 1년에 서너 차례 찾아온 단기 봉사팀은 가시적 성과를 위해 공연과 벽화그리기 등에만 몰두했다. 홍보 효과를 위해 1,000만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연예인을 동원했지만 당장 화장실조차 부족한 판자촌 아이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A씨는 “장기적 안목으로 실질적 도움을 주기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쓰는 돈이 아깝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며 “기부단체 내ㆍ외부에서 운영 효율에 대해 보다 정밀한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 1일 52조원에 달하는 자신의 주식 99%를 자선 사업에 쓰겠다고 발표해 기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기부금 규모는 5년 전에 비해 25%가량 증가한 12조4,900억원으로 우리도 어느 정도 기부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기부단체들의 방만한 실태가 드러날 때마다 단체에 대한 불신 역시 커진다. 한 설문에서 기부하지 않는 이유로 ‘기부를 요청하는 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가 2위(20.8%)를 차지하기도 했다.
국세청이 올해부터 공익법인 공시제도를 강화한 것은 공익법인들에 보다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새 제도에서는 공시대상이‘총자산 10억원 이상이거나 수입 5억원 이상’에서 ‘총자산 5억원 이상이거나 수입 3억원 이상’으로 대폭 확대됐다. 또 수입내역을 상세히 밝히고 ‘고유목적사업 필요경비 세부 현황’항목을 추가해 사업비와 사업관리비를 명확히 구분하도록 했다. 관리당국뿐만 아니라 기부자들도 단체의 살림살이를 낱낱이 지켜보게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가이드스타와 함께 45개 대형 공익법인들의 기부금 사용 실태를 ‘효율성’과 ‘투명성’지표로 살펴본 결과, 기부단체들이 기부자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서 효율성 지표는 단체의 설립근거인 고유목적사업의 총비용 중 순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 쓰인 사업비 비중으로 정했다. 그러나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어린이재단 등 많게는 수천억원의 기부금을 받는 공룡 단체를 포함, 26개 단체들은 공시 양식을 지키지 않아 아예 분석조차 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의 경우 신고한 직원 수와 인건비(급여+퇴직급여)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1인당 연간 인건비가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156만원으로 나와 공시 내용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됐다. 한국해비타트나 마리아수녀회처럼 사업비나 사업관리비 항목을 아예 0으로 기재한 엉터리 공시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 승가원, 홀트아동복지회 등 18개 단체는 모금활동을 위해 사용한 비용을 0으로 기입하기도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어린이재단 등은 각종 대중매체에 버젓이 광고를 내보내면서도 광고선전비를 0으로 신고했다.
정보 접근성을 평가한 ‘투명성’은 낙제 수준이었다. 가톨릭대 행정학과 채원호 교수 연구팀과 숙명여대 경영학과 박종성 교수 연구팀은 45개 단체 홈페이지의 ▦기본 정보공개 성실성 ▦재무보고서 접근성 ▦재무현황 요약표 ▦이사회 정보 ▦감사정보 등 5개 지표를 공동 조사해 100점 만점을 매긴 뒤 15점 단위로 구간 등급을 매겼다. 그 결과 평균은 53점으로 D등급이었으며 F등급을 받은 곳도 10곳에 달했다. 기독봉사회의 경우 32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운용하지만 홈페이지조차 없었고 지난해 1,169억원의 기부금을 받은 유니세프조차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명단이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전문 비영리기구 평가기관만 171개에 달하는 미국이 방만한 기부단체들을 줄줄이 퇴출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는 해마다 부실공시가 발견되는데도 관리 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정작 한 해 성적표에 해당하는 공시자료조차 부실하게 만들면서 연말만 되면 모금을 호소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국세청에 공시자료를 제출한 7,484개 공익법인 가운데 ▦연간 기부금 수입 30억원 이상으로 ▦외부 감사를 받고 있으며 ▦기업ㆍ가족재단 등 대중모금과 거리가 먼 단체를 제외해 대상을 추렸다
모호한 크리스마스 르 디플로 1211
요즘 나는 내가 써왔고 쓰고 있는 단어에 확신이 서지 않아서 말을 더듬거나 뒤집거나 입을 꾹 다무는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흔히 쓰는 말들, 예컨대 행복이나 슬픔, 걱정이나 위로, 정의, 자유, 상식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물론이고, 건강이나 친구, 겨울이나 식사 따위의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할 때조차 '내가 이 단어를 제대로 쓰고 있나, 이 상황에 이 단어가 꼭 맞는가'라는 어쭙잖은 고민에 빠진다. "잘 지내느냐"는 질문을 받는 경우, 잘 지낸다는 게 무엇인지, 상대가 말하는 잘 지낸다는 의미와 내가 생각하는 잘 지낸다는 의미가 같은지 확신할 수 없어 잘 지낸다고 대답하기도 못 지낸다고 대답하기도 미심쩍다. 그렇다고 "그저 그렇습니다"라는 대답도 썩 내키지 않아 말을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에는, 그런 모호한 질문을 던진 상대를 원망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글을 쓰자고 생각한 순간 내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단어는 '산타'였다. 이어 '선물'과 '눈'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곧장 혼란에 빠졌다. 크리스마스가 대체 뭐였더라. 사전에서 크리스마스를 찾아봤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절이었다. 하지만 내게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생일이라기보다 '산타' '선물' '눈'으로 설명되는 단어였다. 그것은 아마 기억 때문일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축적된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들. 그 기억들이 '크리스마스'의 보편적 의미를 슬금슬금 지우고, 혹은 밀어내고 나만의 의미를 만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크리스마스는 산타가 선물을 주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부모가 그런 이야기를 해줄 만큼 살갑진 않았으니까 부모가 가르쳐준 것은 아닐 테고, 글자를 몰랐으니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아닐 테고, 아마 텔레비전을 보고 익힌 것 같다. 사실 내가 안다고 믿는 것, 혹은 으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텔레비전을 통해 익히고 배웠다. 학교에서 용기나 정의 따위를 두루뭉술하게 배운 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면 <2020 우주의 원더키디>가 나왔다. 학교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집중력을 발휘하여 만화를 보면서 '아, 환경오염은 정말 위험하구나' '자원을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고, 주인공 '아이캔'이 어떻게 위기에서 벗어나는가에만 모든 관심을 쏟았지만, 그래도 아이캔이 부정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위험에서 벗어나진 않으니까, 그런 아이캔을 걱정하고 응원하면서 정의나 용기의 어렴풋하나 구체적인 의미를 나도 모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캔의 무모한 용기, 약간 슬프고 아련한 눈빛, 반칙이나 속임수 없이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서 비록 왜곡될 수밖에 없지만, 어쩌면 왜곡되기 때문에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추상적 개념들. 마찬가지로 사랑과 연애와 행복, 평온한 가정 따위는 드라마를 통해 배웠고 유머와 농담은 쇼 프로를 통해 배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쩌면 개념 대부분을 그런 식으로 배워버려서 나는 결국, 여태껏 잘만 써왔던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다며 말을 빙빙 돌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입을 다물어버리는 증세에 시달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글을 쓰려고 문장을 시작했으면서 크리스마스와는 별반 상관없는 문장만 늘어놓는 지금처럼.
만화를 통해 '산타가 선물 주는 날'이 크리스마스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리기 전까지 크리스마스는 내게 아무 의미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대한 정의가 생기자마자 나는 상대적 불만과 불행에 빠져버렸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지 않는 우리 부모님은 참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산타가 아니라 부모를 원망한 이유는, 애초부터 산타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때 젊은 남자가 흰 수염을 붙이고 산타 옷을 입는 광경을 봤기 때문이 아니다.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산타가 정말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짜 산타는 없다'를 먼저 알았는지도 모른다. '눈'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숱한 장면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빨간 목도리를 한 여자와 모직 코트를 입은 남자의 달콤한 로맨스- 때문에 덧씌워진 것이다.
내겐 그다지 행복한 크리스마스 기억이 없다. 늘 불행한 크리스마스를 보냈기 때문이 아니라, 남들이 말하는 혹은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조용히, 평소와 다르지 않게 보냈는데, 그리고 그것은 그것대로 충분히 좋았는데도 나는 정확하게 '좋다' '잘 보냈다'고 말하기를 꺼린다. 이것은, 다른 부모처럼 선물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의 부모를 나쁘고 무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집 애들은 졸업도 하기 전에 대기업에 취직했다는데 우리 집 애는 아직 빌빌거리고 있으니 정말 속이 터진다고 생각하는 부모들과, 누구누구는 크리스마스에 이러저러한 이벤트를 해준다는데 오늘 같은 날에도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나온 내 애인은 대체 뭔가 하고 구시렁거리는 연인들과,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나올 애인조차 없어 크리스마스에 차가운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먹으며 씁쓸해할 것이 분명한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결국에는, 크리스마스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공식 혹은 감옥을 만들어 사람들을 상대적 불행에 빠트리는 이는 누구이며 왜 그런 것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심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모든 단어에 혼란을 느끼는 지금의 나에게 내가 내린 처방은 일단 그것의 근본적인, 단순한 의미부터 파악하고 그것에 가까워지자는, 부디 기본이라도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정의(正義)의 사전적 정의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라면, 진리가, 올바른 것이, 도리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절이다. 문득, 생일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이 주인공의 생일을 축하하기보다 자기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것에 몰두하는 장면과 민망한 표정으로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예수가 떠올라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전국의 모든 산타는 일용직일 텐데 시급을 얼마나 받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산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던데 산타가 말하는 '착한'의 의미는 대체 뭘까 하는 의문도 들고, "말 안 들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준다"고 협박하는 어른과 산타는 없고 산타 흉내를 내며 자기와 협상하려는 어른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물을 받으려고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아이를 떠올리자 약간 통쾌해졌다. 그리고 이전에는 국회의원이어서 못 했을 뿐, 대통령만 되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다고 말하는 대선 주자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천편일률적인, 그래서 믿음이 가지 않는, 매번 반복되나 지켜지지 않는 그들의 공약이 떠올라 다시 혼란스럽다. 당신의 정의와 나의 정의가, 당신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당신의 진정성과 나의 진정성이 과연 같은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나는 그의 과거를 쫓는다. 현재의 말은 바꿀 수 있지만 과거의 말과 행동은 바꿀 수 없다. 교과서에서 배운 용기라는 개념을 아이캔의 모험을 통해 이해한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겨울이면 내 방 창문에 꼼꼼히 문풍지를 붙이는 부모를 보며 말보다 더 진한 사랑을 느낀 것처럼, 사소하나 구체적인 행동은 쉽게 사용하는 언어보다 단순한 진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과거를, 기억을 무시하지 말자. 조각난 채 조작되기도 하는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섬뜩한 무게로 나의 현재를, 나의 의식을, 나의 행복과 불행을, 내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글 / 최진영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부산 산단개발 10년, 고용효과 없었다 2121국제
3곳→17곳 개수 급증 불구, 기존 업체들 산단 간 이동만
새 일자리 창출 취지 못살려…부산 고용률 고작 0.7%P ↑
일부 업체 땅투기 악용도
부산의 산업단지(이하 산단)가 지난 10년간 면적은 4배가량 늘었지만 역외 기업 유치와 신규 일자리 창출 등 내실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부산지역 기업의 80%가 신생 산단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지역 고용률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신규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산업입지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21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2005년 신평장림 신호 등 3개 산단 711만 ㎡에 불과하던 지역 산단이 10년이 지난 올해는 녹산 과학 화전 등 모두 17개로 늘었다. 전체 면적은 4배가량 늘어난 2701만 ㎡에 달한다. 고용 인원은 같은 기간 781개 업체, 2만1026명에서 4754개 업체, 9만7237명으로 4배 이상 뛰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용인원 증가는 대부분 지역 내 기존 기업이 산단으로 이전한 데 따른 것이다. 신규 기업 유치나 일자리 창출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산지사에 따르면 올해 17개 산단에 신규 입주한 기업 348개 중 80%에 달하는 278개 업체였다. 이는 땅값이 평당 800만~1000만 원대로 뛴 사상공업지역에서 유출된 기업들이 신규 산단으로 옮기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기존 고용 인원이 산단 고용 인원으로 신분 변화만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대기업 및 역외 기업 유치를 목표로 개발한 산단이 애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산단이 지역 신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말 부산지역 고용률은 10년 전보다 0.7% 포인트 오른 56.4%에 그쳐 전국 평균 60.2%, 부산 울산 경남의 평균 62.4%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이와 함께 기존 산단이 일부 업체의 부동산 투기 용도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기존 산단에 입주한 업체들이 땅값이 오르면 신규 산단으로 공장을 새로 증설해 이전하고, 기존 산단에서는 임대업을 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왔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상공단 입주 업체들이 미음·화전산단 등으로 이전하면서 사상공단은 5인 이하의 임대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월세만 300만~700만 원"이라고 말했다.
부산고용포럼 김종한(경성대 교수) 상임대표는 "고용 창출의 전방위 효과가 큰 대기업 유치가 전무하고, 기존 제조업체들도 생산자동화 설비 가동 등으로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시는 앞으로 조성될 산단은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 관계자는 "내년부터 신규 산단은 입주 기업의 절반 이상이 역외 기업이거나 역내 업체라도 신·증설을 계획하고 있는 곳만 산단계획을 승인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가건물 짓고 값 올려 되팔기…앞으론 산단 땅장사 못한다
부산시 산단 정책에 메스
- 면적 30% 입주하면 나머지 분양
- 수요자 개발방식 부작용 낳아
- 향후 100% 분양받게 제도 개편
- 불법 사용부지도 환수하기로
부산시가 산업단지(이하 산단)의 고용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존 공급 위주의 산업입지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시는 내년부터 산업입지정책을 '일자리 창출형' 산단 승인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21일 밝혔다.
이와 함께 이달 말 완료를 목표로 부산발전연구원에서 '일자리 창출과 산단을 연계하기 위한 연구 과제'를 수행 중으로, 내년 1월 산업입지 개선 계획을 수립·시행할 예정이다.
■산단, 일자리창출형으로
그동안 시의 신규 산단 개발방식은 공급자 위주와 단순 분양 정책으로 진행돼 왔다. 단순 분양 정책은 민간 개발방식의 하나로, 분양목적의 SPC(특수목적법인)와 토지소유자가 산단 개발을 원하면 시가 승인하는 방식이었다. 신규 산단은 민간 개발방식의 개선책으로 100% 실수요자 개발을 한다. 기존에는 실수요자가 부지 개발을 하면서 최소 면적 30%만 입주하고 나머지는 분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다 보니 10만~20만 평의 소규모 산단이 난립하면서 일부에서는 땅값 상승을 노리고 가건물만 지어 시의 환수 조치를 피하는 눈속임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실수요자가 100% 분양을 받도록 제도를 바꾼다. 일자리 창출 효과와 연계해 개발하는 점도 눈에 띈다. 산단 개발을 원하는 역외 기업을 우선으로 산단 승인을 하며, 기존 역내 업체라도 신·증설 50% 이상이어야 한다.
기존 산단도 수술대에 오른다. 기존 산단은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관리하면서 입주계약, 공장 등록 등에 한정돼 있었다. 공장 용지 외에 사용하더라도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시는 내년에 3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조성이 완료됐거나 조성 중인 32개 산단에 대해 산업입지 전수조사를 하고 불법 사용부지를 환수처리해 일자리 창출로 유도할 방침이다.
■산단 정책, 왜 바뀌었나
시가 산업 용지난 해소를 중점 과제로 삼고 2005년부터 10년간 용지 조성을 한 결과, 산단 용지는 4배가량(711만 →2701만 ㎡) 늘었지만 지역 전체 고용률은 0.7% 상승에 그쳤다. 산업단지 확충이 부산의 고용률 상승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역내 기업의 신규 산단 이전이 주를 이루면서 시의 역외 기업 유치 실적도 미미하다. 12월 현재 12개 산단(실수요자 개발방식의 민간산단)의 역외유치 기업은 28개 업체, 2916명에 불과하다. 이는 산단 전체 입주업체(4754개)의 0.58%이며, 종사자는 전체(9만7237명)의 2.99% 수준이다.
부경대 류장수(경제학부) 교수는 "산단 개발이 고용 친화적으로 나아가도록 일자리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지식산업이다. 제조업의 경우 자동화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첨단산업이면서도 인력 확보가 가능한 연구개발(R&D) 인력을 더욱 늘려야 된다는 것이다. 실제 정보통신(IT) 등 첨단분야에 특화된 산단이 고용 효과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고용포럼 김종한(경성대 교수) 상임대표는 "시는 저부가가치의 제조업 유치 대신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지식 융·복합 산업 유치로 재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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