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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2009 낙동강 1300리를 가다/ 달성에서(보를 중심으로)-일곱째 날

by 이성근 2013. 6. 7.

 

강정보를 향합니다.  낙동강이 구미를 지나면서 일대의 산업단지에서 풀어내는 독물에 몸이 뒤틀리기시작합니다.  강의 양안을 끼고 구미1.3공단과 기산농공단지 왜관 2산단, 왜관집방산단, 용신공단, 성서3공단, 성서공단 등등 낙동강 최대의 오염벨트입니다.

 강정보가 들어설 지역입니다.  높이 11.5m 길이 450m

 예전에 이 러브보(고무보) 설치를 놓고 부산의 시민사횓단체들과 부산민변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륭의 수질이 악화된 상황에 고무보는 물의 흐름을 저해하여 오염이 가중되고, 그로 인해 하류지역민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소송은 기각 되었지만  수자원의 이용과 관련하여 의미있는 소송이었습니다.   

 다산면의 제외지에 조성된 들입니다 

 멀리 대구의아파트 군단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습니다.

 하반기부터 정비가 시작되니 파종을 금하는 현수막입입니다. 

 의외로 농민들은 차분해보였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동요하지 않는듯도 했고, 일부에서는 이미 보상금을수령했다는 말도 들리고....

 하늘이 흐림니다. 강물도 여기선 탁합니다.

 건너편 화원을 봅니다.  원래는 꽃동산이라 불렸습니다.  이곳 역시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물놀이 인파로 북적이던 곳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발길이 뚝 끊겨버린 상태입니다.  

 화원에서 보면 낙동강과 금호강이 서로 물빛을 달리 한채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호강, 얼마나 아름답고 수려했으면 금호라고 이름붙였을까?     

 금호강이 죽음의 강이란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은 자난 80년 건설된 영천댐 때문입니다.  건립목적 자체가 포항제철의 용수공급으로 17.2km의 도수관이 설치되고, 금호강으로 흐를 물 20만톤이  포철(포스코)로 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유지용수를 배앗겨 버림으로써 제 스스로도 추스릴 수없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자원 공사가 91년부터 임하댐에서 하루 40만톤의 물을 도수로를 통해 30만톤은 금호강에, 10만톤은 추가로 포철에 추가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43km의 도수관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곳곳의수맥이 끊기고 그결과로 멀쩡한 골짜기가 말라버리는 등 시비가 끊기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안동, 포항, 대구, 영천 간에의 물 소유권 싸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철은 민간기업인데 물값을 얼마나 내는지?   그 덕에 낙동강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너무한 짓입니다.  

 문득 옛생각이 스칩니다. 그러니까 1996년 위천문제로 부사니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부산시청 점거 농성후 부산역에서 총궐기를 한다음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신한국당인지 뭔지 집권 여당을 찾아 항의방문  집회를 가지기로 하고, 선발대였던 저는 저물녁 금호강으로 가 탱크로리에 폐수를 담았습니다.  그날 밤 눈래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에 도착하고 거사를 준비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면 신한국당 당사에다  금호강 폐수를 뿌릴 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서 정보가 샌 것인지, 폐수를 실은 트럭은 현장에 가기도 전에 경찰에 탈취당해버렸습니다.  그 허망함이라니, 만일 그때 예정대로  검은 빛의 지독한 악취를 풍기던 금호강 폐수가  신한국당 당사에 뿌려졌다면, 참 볼만했을 것입니다.    

 사문진 나루입니다.  옛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지만  지금 그 명성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가야낙조(伽倻落照) / 금호어적(錦湖漁笛) / 노강월주(老江月柱) / 낙수귀범(洛水歸帆)

작자미상의 盃城十景의 일부입니다. 사문진(沙門津)의 옛 정취를 노래한 시입니다. 그만큼 산천경개가 수려했다는 말이지만,

 

 강정보에서 905번 지방도로를 타고 고령으로 향합니다. 멀리 강변의 뽕나무숲이 눈길을 잡습니다.

 

 흰뺨검둥오리들이 빗속에서 먹이를 구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 50여 개체쯤 되어 보였을까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그들만의 시간, 그냥 눈에 담을 뿐입니다.  저 역시 강물처럼 흐를 뿐입니다.  아직은  

 

 

 노강서원에서 낙동강을 봅니다.

 

 

 생존권 대책없는 4대강 정비사업 반대한다 라는 현수막을 반갑게 봅니다.  강이 엉망이 될 지경인데, 그 문제 제기를  보기는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제방 증고 공사가 한창입니다.

 88낙동대교에서 내려왔던 곳을 뒤돌아 봅니다. 강남레미콘 건물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이 습지 역시 운명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고령과 달성 사이를 오가는 3개의 다리가 집중적으로서 있습니다.  고령교 아래 성산대교에서 강의 위쪽과  아래쪽을 살핍니다.  차량의 이동도 적어 조망하고 살피기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다리가 논다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돈을 들여 다래를 두개 세개 만들다 보니 나타난 현상입니다.  희안한 광경을 목도합니다.  강변에서 바로 모래를 퍼다가 제방을 증고에 붓습니다.  

 강을 건너면 논공면 위천리입니다.  한때 위천공단 예정부지로 일대의 금포리, 위천리 등 4개 마을을 공단부지로 만들고자 했지만 부산.경남의 반발이 워낙 심하여 잣아들었지만 여전히 그 계획은 꿈틀거리며 살아 있습니다.  애초 비산염색단지 밖 산재해 있던 180여 개의 염색공장을 집단화 하여 첨단페수처리시설을 갖춘 공단으로 만들자는 발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300만평 이상의 국가공단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부산.경남의 강력한 반대와 환경부의 반대로 표류하다 최근 그런 그물에 걸리지 않는 100만평 이하의 지방공단으로 선회하여 공단건설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첨단폐수처리장치를하면 수질에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첨단페수는 첨단의 오염물질을 배출합니다.  그러나 기계적 장치가 그 오염물질을 제어하기에는 어림없다는 것이지요   

 

 저녁겸 늦은 점심을 먹으려 인근 식당으로 가서 읽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포기 발언입니다.  할말을 잃습니다.

 

 개경포입니다.  고령과 성주, 합천 드의 인근 농산물과 소금이 집겹되던 잘 나가던 나루였습니다.  1232년 (고려 고종 19년) 몽고군이 쳐들어왔을 때  불심으로 국난을 막아보겠다고 강화에서 제작된 팔만대장경이 인천을 거쳐 하단포에서 이곳까지 배로 실려 온뒤 합천 해인사로 들어갈때 이용된 나루입니다.  당시 영남 일원 승려 1천명이 장경 하나씩 머리에 이고 해인사까지 날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경포(開經浦)로 불렸는데 일제가 개포로 부르게 했답니다.

 그러나 그 절경도 구마고속도로가 지나며 지워버렷습니다.

파란강 푸른 물결 그 몇 굽이든가 / 물구름 깊은 이곳이 신비경 아니던가 /  쪽배에 몸을 실어 만경창파 달려보네 

 현풍에서 도동서원으로 향합니다. 

 이 강변 어딘가에 달성보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길이 570m에 높이 10.5m  절경입니다.  가만보면 보가 들어설 지역은 하나같이 절경 아닌곳이 없습니다. 

 정말 신이 난 것은 골재재취 업자인듯 합니다. 제방 증고에 사용된 골재는 재활용건축재입니다.  지반 안정용으로 쓰인듯 합니다.  

 

 

 

 다람재에서 도동서원과 도동마을을 굽어 봅니다. 강은 이제 합천과 창령을 향합니다.

 

 

 빗발은 점점 거칠어 지고 우산이 뒤집힙니다.  오늘은  저녁연기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저댁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지면 내동 가는 길, 이제 눈이 아픔니다.  눈길 기는 곳 마다 모래 준설이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될 것입니다. 

 

 인근에 목회일을 하는 부부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루사인지 매미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홍수가 일어, 주변 집들을 철거하고 그 집들과이웃해 있던 분교마저 철거했다고 합니다.

 하여 기존의 제방을 산쪽으로 붙이면서 도로의 기능까지 겸하는 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4대강 정비는 이런 사례를  낙동강 본류 전구간에 적용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   

 

 젖은 길을 따라 어둠과 함께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합천으로 향합니다.  

Why Are People Like That - Junior Wel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