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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내일 -경향
12.1 ~5 경향 장도리
잡지엔 ‘먹물’들의 욕망이 담겨 있다 1127 시사저널
광복 후 나온 잡지 분석한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한국의 현대사를 알 수 있는 유물 전시장에 가보면 당시 사람이 즐겨 보던 책을 전시해놓은 코너가 있다. 그 속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잡지다. 자극적인 제목, 선정적인 사진이 담겨 있어서다. 특히 시사 잡지에는 당시 정치 상황이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제목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내용을 보고 싶지만 여러 유물 중 하나로 흘낏 보기만 하고 돌아오기 바쁘다. 그런 독자를 위해 한국 근현대 문학사와 문화사 연구를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는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1945년부터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는 한국 현대 문화사를 잡지를 통해 엿본 결과물을 내놓았다.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이다.
천 교수는 2년여 동안 한국 잡지사를 개괄하고 도서관과 박물관을 드나들며 수백 종의 잡지를 검토했다. 1945년 12월1일 발간된 ‘백민’을 시작으로 ‘민성’ ‘개벽’ ‘사상’ ‘현대문학’ ‘씨알의 소리’ ‘뿌리깊은 나무’ ‘새마을’ ‘문학과 지성’ ‘야담과 실화’ ‘선데이서울’ ‘보물섬’ ‘키노’ ‘페이퍼’ ‘월간 잉여’ 등 민족지·정론지·문학지·노동지·오락지·예술지·만화잡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126종의 잡지를 살폈다. 그러는 중 각 잡지의 창간사가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잡지 창간사로 읽는 한국 현대 문화사
천 교수는 시대의 문제의식이 잘 반영되었는지, 우리 문화사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는지, 독특하거나 흥미로운 문장인지 등에 따라 신중히 가려낸 창간사를 통해 당시의 문화적·문학적·역사적 지형도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잡지를 창간하는 일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퍼뜨리고 싶다는 욕망, 잡지를 중심으로 앎과 삶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 관여한다. 이 욕망은 권력욕이나 인정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먹물’에게 그렇다. 그래서 창간사에는 어떻게 세상을 ‘취재’ ‘편집’해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창간 주체의 방향이 천명된다. 고로 대개 창간사는 ‘선언’이다.” 천 교수는 잡지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며 잡지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출판인은 출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지식인 잡지의 창간사를 보면 우리나라 참여적 지성의 전통이 무엇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잡지사(史)는 문화의 연표다. 잡지는 신문 등 일간지에 비해 자본이 적게 들고, 분야와 독자가 한정돼 있으며, 뜻이 통하는 단 몇 사람의 주체만으로도 발간할 수 있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회 환경 아래 특정한 독자층의 이익 내지 기호를 대변하는 누구나 창간 가능한 매체. 그래서 잡지는 어떤 매체보다 쉬이 시류를 타고 사조에 즉각 반응하며, 태어나기도 사멸하기도 쉽다. 과거 속에 사라진 잡지는 정치 또는 문화적인 압력을 제 안에 새긴 채 표준화석처럼 당대를 증언하고, 살아남은 잡지는 그 자체로 문화사에서 적자일 수 있었던 이유를 증명한다. 역사, 특히 현대사를 논할 때 잡지가 주요 사료가 되어온 이유는 그래서다.”
70년 전 광복 이래 이념과 자본, 권력 쟁투가 일으킨 큰 파랑에 따라 잡지는, 시대마다 모습은 다를지언정, 앎과 각성의 매개체로서 지성사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잡지의 본질이 말하고 듣고 나누는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종이 매체의 영향력이 급격히 축소되어가는 지금, 잡지도 지성사도 종말을 앞두고 있을까. 천 교수는 ‘잡지’ 이면의 ‘잡지스러운 것’을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세계를 문자와 활자, 문학이란 행위로 포착해 해석하고 변혁하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그 방법은 언제나 특정한 지적 장치와 유형으로 틀 지워져 있다. 종이 잡지는 그 틀의 하나였던 것이다. 영원한 플랫폼이나 ‘매개’(미디어)는 없다. 당장의 패자처럼 보이는 네이버나 페이스북, 구글도 지금과 같은 형태와 위세를 영원히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미디어 역사, 나아가 문화사의 법칙이다. 그러니 ‘잡지스러운 것’도 끝없이 모양을 바꾸고 다른 ‘매개화’를 겪을 것이다.”
잡지 통해 현대사의 ‘제목’ 엿봐
광복 후 70년 동안 잡지는 수난과 번영이 교차하는 영욕의 세월을 보내왔다. 종이의 생산과 분배는 언제나 이 땅 출판문화의 중요한 물질적 변수였다. 책을 만들 만한 질 좋은 종이가 언제나 풍부했던 것도 아니고, 제지업이 종이 수요를 충분히 감당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출판·언론계는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 초까지 늘 종이 부족에 시달렸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박정희 정권 때는 물론, 심지어 1990년대에도 신문 용지나 교과서 용지 수급에 실패한 상황이 있다. ‘용지난’은 이제는 사어가 되다시피 한 말인데 옛 신문과 잡지에는 꽤 자주 ‘용지난’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그래서 지배 권력은 종이 공급을 언론·출판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이용했다. 1940년 동아일보·조선일보를 폐간시킨 조선총독부의 핑계도 ‘용지 부족’이었다. 물론 미군정도 용지 공급을 통제했고, 미군정 법령 제88호의 표면상 제정 명분도 용지 부족이었다. 반면 ‘신천지’ ‘민성’ 등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발간될 수 있었던 것도 일제가 남긴 풍부한 재고 용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 교수는 1970년대를 기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창기가 쓴 창간사를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권유한다.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사는 1970년대 후반에 바라본 한국 문화의 ‘현재’에 대한 총론이라 할 만하다며.
“우리의 살갗에 맞닿지 않은 고급문화의 그늘에서 시들지도 않고 이 시대를 휩쓰는 대중문화에 치이지도 않으면서, 변화가 주는 진보와 조화롭게 만나야만 우리 문화가 더 싱싱하게 뻗는다고 생각한다.”
종편의 두 얼굴, TV조선과 JTBC 12.3 미디어오늘 |
개국3년차 종합편성채널의 명암(明暗) |
종합편성채널 개국 3년, 우리 눈앞에 TV조선과 JTBC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으로 공영방송이 공론장 기능을 상실한 뒤 마주한 종편의 두 얼굴이다. TV조선이 극우보수 세력을 대변하며 시사보도중심 편성으로 살아남았다면, JTBC는 지상파 편성전략을 따라가며 ‘손석희’라는 영향력 1위 언론인을 영입해 보도경쟁력을 높였다.
두 종편채널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최고시청률만 봐도 알 수 있다. TV조선은 2013년 9월 4일 ‘이석기 체포동의안 가결’ 보도를 했던 뉴스특보에서 평균시청률 5.59%(닐슨코리아, 수도권유료가구)를 기록했다. 2014년 4월 28일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 현지에서 특집으로 내보낸 JTBC <NEWS9>은 평균시청률 5.47%를 기록했다.
TV조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전 북한특수부대 장교의 발언을 내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받았다. JTBC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소식을 전하며 김재연 통진당 대변인을 출연시켜 편향적 의견만 반영했다며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통보받았다. 법정제재수위는 같지만 내용은 딴 판이다.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의결현황에 따르면 종편4사의 뉴스·시사보도 심의제재건수는 모두 135건으로 이 중 TV조선이 66건으로 가장 빈번했다. “김한길 대표는 바지사장”, “안철수는 새철수”와 같은 막말에 의한 품위유지 위반이 많았다. 그러나 건수에 비해 징계 수위는 낮았다. 반면 JTBC는 제재건수가 15건으로 제일 적었지만 타사에 비해 징계 수위는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박창신 신부와의 인터뷰가 불공정했다는 심의결과를 두고는 정치적 외압이란 비판이 많았다.
▲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 TV조선 '뉴스특보'의 한 장면.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상파의 공론장 기능이 약해지자 이를 대체하는 JTBC가 나타났고, TV조선은 지상파가 제공하지 않던 편향에 의한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종편의 성장으로 지상파의 존재가치는 더욱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월 27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실시한 방송사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JTBC는 24.6%로 KBS를 제치고 신뢰도 1위를 차지했다. 종편도입 반대진영에서 보면 예상치 못한 ‘돌연변이’다.
TV조선 역시 예측을 뛰어넘은 ‘돌연변이’다. 윤성옥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팀이 지난 11월 3일부터 16일까지 종편채널 편성표를 분석한 결과, TV조선은 뉴스·시사프로그램을 보름간 5100분 편성했다. KBS 1TV(2975분)의 1.7배 수준이다. TV조선은 2013년 168억 원 적자로 종편 4사중 가장 적은 적자폭을 나타냈다. <강적들>, <황금펀치> 등 스튜디오 중심의 저비용 시사토크쇼를 집중 편성한 결과다.
반면 JTBC의 2013년 제작비는 2001억 원으로 2012년 대비 389억 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TV조선 제작비의 3배다. JTBC는 2013년 1540억 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히든싱어>, <유나의 거리> 등 예능·드라마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TV조선의 전략을 두고 “조선일보의 영향력마저 약해지는 상황에서 시사보도의 집중배치를 통해 제작비를 줄이고 보수 세력의 담론을 형성하고 언론사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평가했다. JTBC의 채널전략에 대해선 “공정보도와 적극적 투자를 통해 종편이란 테두리에서 빠져나오는 게 살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라 설명했다. 개국 3년차 JTBC와 TV조선의 모습은 지상파의 영광을 잊게 만들거나, 또는 지상파의 영광을 그립게 만든다.
국보법 제정 66년, 사이버 공안법으로 진화12.2 미디어오늘
2014년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종북 몰이로 사이버상 표현의 자유 침해
제정 66년을 맞은 국가보안법(국보법)이 사이버 상 북한 관련 게시 글에 대한 검열체계로 작동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이버 상 여러 단체들이 올린 북한의 정치·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개하는 글, 언론에 보도된 북한 정부의 입장, 역사적 사실로서 북한정치지도자의 항일 무장 투쟁 관련 글 등을 경찰로부터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어서다.
일례로 서울신문이 지난 6~7월 김정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구두공장 및 과일농장 등 강원도 내 경제 현장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논평 없이 전달한 기사들을 실었는데 경찰은 이 기사를 친북 관련 보도로 보고 지난 8월 26일, 해당 언론사에 삭제를 요청했다.
공안당국은 국보법 7조(찬양·고무)를 근거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통망법) 44조 7항(불법정보의 유통금지)에서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정보 제공자, 게시판 관리운영자에게 해당 정보를 삭제하도록 조치해왔다.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 2009년~2014년 8월까지 ‘친북’, ‘종북’ 표현물로 적발해 방심위에 삭제 요청한 게시물 수는 4643건이다. (자료 = 2014 국보법 적용 실태 보고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2014년 8월까지 경찰이 게시물 작성자, 관리자에게 요청해 삭제된 게시물 수는 20만6404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경찰이 ‘친북’, ‘종북’ 표현물로 적발해 방심위에 삭제 요청한 게시물 수는 4643건이다. 또한 방통위의 삭제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고발 조치된 게시물 수는 2009년~2013년까지 425건이다.
경찰은 국보법 7조와 정통망법 44조를 근거로 ‘업무협조요청’이라는 형식의 공문을 보내 정보작성자와 관리자에게 삭제를 요청해왔다. 경찰의 이런 ‘업무협조요청’을 이행하지 않으면 경찰청장이 방통위에 해당 게시물에 대한 삭제를 요청한다. 작성자, 관리자가 방통위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수사당국은 이들을 형사재판에 회부한다. 형사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더라도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으면 동일한 사법절차는 반복될 수 있다.
인권운동사랑방과 노동전선은 각각 2011년 초 자유게시판에 북한 관련 게시 글을 지워달라는 경찰의 업무협조요청을 받았다. 두 단체는 이에 응하지 않아 방통위에 고발조치 당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 결과에 따라 방통위 삭제 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뒤 2014년 10월 대법원에 상고했다.
정록 활동가는 1일, 2014년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 발표에서 “국보법 7조는 자의적으로 공안당국에 의해 휘둘러진다”며 “게시물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 민주적 기본질서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지 판단과 고민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단지 북한과 관련된 의견이나 정보라는 이유 하나로 삭제 명령이 내려졌다”고 비판했다.
▲ 2009년~2014년 8월까지 경찰이 게시물 작성자, 관리자에게 요청해 삭제된 게시물 수는 20만6404건에 달한다. (자료 = 2014 국가보안법 적용 실태 보고서)
국보법 사건으로 기소돼 무죄선고가 나오자 해당 단체의 게시 글을 문제 삼아 재차 삭제를 요청한 사례도 있다. 2012년 초, 서울지방경찰청 등 6개 지방경찰청은 노동해방실천연대 게시판에 올라온 150여건의 글을 지워달라는 업무협조공문을 보냈다. 방심위 심의를 거친 후 방통위가 다시 삭제 명령을 내렸지만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경찰은 이 단체 회원 4명을 이적단체 혐의를 이유로 기소했다가 무죄가 나오자 같은 해 9월 다시 자유게시판을 문제 삼고 게시물 3개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 게시물을 지우지 않자 수사당국은 작성자에 대해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기소 했다. 1심과 2심에서 벌금 300만원 형이 선고됐고 노동해방실천연대는 지난 10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언론사에도 게시물 삭제 요청이 있었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지난 8월 26일 서울신문에 ‘업무협조의뢰’라는 공문을 보내 친북 관련 글 6개를 삭제해달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경제 현장을 방문했다는 이 기사들은 이미 연합뉴스가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던 내용이었다. 문제가 커지자 경찰은 일선 경찰의 미숙한 업무처리였다고 해명했다.
정록 활동가는 “과거에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 노동·농민 운동 등 거의 모든 민중운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국보법이 기능했다면 최근에는 (사이버 상)북한 관련 사안으로 국보법 적용 범위를 좁히고 있다”며 “동시에 북한 관련 사안으로 국보법 처벌을 받는 일이 큰 문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상에서 북한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본권 침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록 활동가는 “게시물 삭제 명령은 국보법이 사이버 상에서 작동하는 검열·처벌 체계로 기본권을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앞으로도 어떤 글이 어떤 기준으로 삭제되는지 수집하고 문제제기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2014 국보법 적용 실태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 참여한 국보법폐지국민연대 등 참가자들은 “이명박 정부 이후 국보법 사건은 양적으로 매우 증가해왔고 80% 이상이 인터넷 공간에서 의견을 말한 사건들”이라며 “2014년은 국정원과 검찰의 서울시공무원 조작간첩의 여파로 사건 수는 줄었지만 공작의 정도와 정치 개입력으로 보면 박근혜 정부에서 국보법 체제는 질적으로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찌라시 정권'의 국기 문란, 그 유구한 역사 12.4 프레시안
[한반도 브리핑] 정윤회 사건과 미국의 리크게이트
미국의 이라크전과 관련, '리크게이트'라는 사건이 있었다. 미국이 허위사실에 입각해서 이라크 공격을 단행했다고 주장한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주재 미국대사에 대해서 2003년 미국 언론은 윌슨 대사가 부인인 CIA 비밀요원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다고 폭로했다. 상식적으로 사건의 본질은 이라크 공격이 허위사실에 입각한 것이냐 아니냐가 되어야 한다.
정윤회 사건과 미국의 리크게이트
하지만 복잡하게 얽히면서 전개된 공방은 결국 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공개한 것에 대한 문제로 모아졌다. 미국정부는 조지프 윌슨 전 대사를 궁지로 몰아넣게 위해서 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흘렸다. 그 비밀요원은 윌슨 대사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알린 사람은 당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칼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이었다. 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언론에 알릴 경우 연방법 위반으로 최고 10년 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비밀요원의 이름을 알린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갔다.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칼로브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감옥을 선택했다. 언론인은 자신의 임무를 다했으나 미국 정부는 부도덕했다. 칼로브는 조지프 윌슨을 궁지에 몰기 위해 온갖 비열한 수단을 다 동원했던 것이다.
이 리크게이트라는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페어게임>(Fair Game)과 <거짓 혹은 진실>(nothing but truth)이라는 영화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가 표현과 언론의 자유이다. 이 조항이야말로 미국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대표국가로 만든 조항이다. 그런데 두 영화에서도 진실을 말한 사람들이 감옥에 간다. CIA 요원에 의한 대한 기밀보호는 미국법에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CIA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낙마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낙마했다. 김 후보자가 해외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라, 관료조직에 신선함을 불러 넣어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던 국민들도 제법 있었다. 이런 입장에서는 그의 낙마가 좀 아쉬웠을 수 있다. 언론에서는 김 후보자의 낙마를 좀 의외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미스테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사퇴는 미스테리가 아니다. 그의 CIA 관련 사실을 가지고 쉽게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김종훈 씨 논란도 이런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두 영화를 보고 '리크게이트'를 이해한다면 김종훈 씨 사퇴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이고 CIA와 관련이 있다. 그의 사업으로 볼 때 CIA의 기밀과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떤 또 다른 CIA와 관련성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가정이지만 CIA가 김종훈 씨의 시민권 포기를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포기의 대가로 한국의 미래부 장관보다 더 큰 것을 희생으로 요구했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기자에게 정보 소스를 밝히기 위한 압박수단으로 신문사에 엄청난 벌금을 부과한다. 실제 리크게이트에서도 <뉴욕타임스>에 벌금을 부과했다.
김종훈 씨의 장관 임명으로 생길 수 있는 정보 유출 가능성을 막기 위해 CIA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본다면 CIA가 전지전능하다고 보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일 게다. 박근혜 정부는 김종훈 후보자의 CIA 관련 사실이 얼마나 민감한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감이 없었다. 이런 사례에서 보수정권의 안보에 대한 무감각과 무능을 엿볼 수 있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사건에 대해서 청와대는 문서유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 공화당 정권이 리크게이트 사건에서 보여줬던 부도덕한 모습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권력 암투이기 때문이다.
NLL 허위사실 유포와 '찌라시'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새누리당은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서 온갖 허위 사실을 유포하였다. 안보를 정치에 이용한 것이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선거본부장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읽었다. 국가기밀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는 물음에 대해 찌라시에서 본 것이라고 둘러댔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건 의혹에도 찌라시가 등장한다. 청와대 보고서가 찌라시를 모은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2014년 5월 8일 새누리당의 윤상현 수석부대표는 2012년 대선 기간 동안 그렇게 정치공세를 했던 NLL에 대해서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와서 보면, 야 정말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했냐, 안했냐. (그걸 두고) 여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것을 기억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란 말 한 번도 쓴 적 없다. 김정일이 포기란 말을 4번 쓰면서 포기란 단어를 유도했다.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께서 NLL를 포기할 수 있겠나.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어떻게 우리나라 영토를 포기할 수 있었겠나. 그것은 아닐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뛰어넘고 남포에 있는 조선협력단지, 한강 허브에 이르는 큰 틀의 경제협력사업이란 큰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2014.5.8)
윤상현 의원의 말은 마치 대선 때 민주당이 주장했던 것을 반복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윤 의원이 뒤늦게 인정한 것처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오히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포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정권은 국가 1급 비밀인 남북 정상회담의 대화록을 공개하였다. 아무리 선거가 급하고 승리에 목말라도 정치지도자라면 국익과 국가기강 유지를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새누리당은 안보를 중요시 여기기보다도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 능숙했다. 허위사실 유포로 국기를 흔들어 놓고 찌라시 핑계를 대는 습관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에 대한 청와대 문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청와대 안보기구 비대화와 공직기강 해이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청와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가 기형화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는 노무현 정부 시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실, 박근혜 정부가 신설한 국가안보실이라는 세 개의 안보부서가 모두 존재하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 기능이 너무나 복잡하고 비대해져 버렸다. 심플한 조직이라는 튼튼한 안보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원칙은 이미 무너졌다. 그 결과는 불행하게도 안보무능으로 이어진다.
2014년 5월 20일 중국어선을 단속하기 위해 NLL을 넘어온 북한 함정에 경고사격을 하였다. 북한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우리 함정에 보복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서해는 긴장이 고조되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5월 22일 북한이 우리 함정을 향해 2발의 포를 쐈다는데 그 순간 120억 원을 들여 구입한 대포병레이더인 '아서'가 가동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북한이 어디서 무슨 포를 쏜 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한테 조롱당하는 꼴이 되어버린 어처구니없는 안보무능상황이 발생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포를 쏘지 않았고, 물제비가 발생한 것을 가지고 "북한이 포를 쏘았다"며 남한이 억지를 부린다고 말했던 것이다.
또 2014년 봄, 추락한 무인기가 발견되자 북한제로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송골매'라는 우리 무인기 전력을 공개해 버렸다. 북한 무인기에 공중이 뚫렸다는 안보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졸속 조치였다. 그리고 나서 송골매는 북한 영공을 침범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자가당착적인 변명을 덧붙였다. 부서진 화장실 문 조각을 북한 무인기로 성급히 발표하기도 했다. 82차례 무인기 오인신고가 있었을 때와는 달리 서둘러 발표한 것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공직기강은 해이해졌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대한 의혹은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인사에 대한 논란이 유난히 심했다. 이 모두 비선의 개입이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청와대 국가안보 기구들이 비대해졌지만, 공직기강의 해이, 비선의 인사개입과 국정농단은 기구의 비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에 무능하게 대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월급 절반 월세로" "아이 학원 끊었죠" 서민들 커지는 비명 12.4 한국
월세의 공습 (상) 저무는 전세 시대
서울 동작구의 다가구 주택촌. 다가구주택의 경우 전세에서 월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한층 키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푸르지오아파트(105㎡)에서 3억5,000만원에 전세를 살고 있던 회사원 K(36)씨는 얼마 전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20만원을 내는 보증부 월세로 바꿔서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월세 전환율이 4.8%에 불과하다며 굉장한 선심을 쓴다는 투였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타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K씨가 부담했던 주거비는 연 이자 3.5%로 받은 전세자금대출 1억원의 이자가 전부. 월 30만원에 못 미쳤다. 하지만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면서 보증금 3억원을 돌려 받아 대출금 1억원을 갚고 손에 쥔 돈은 2억원에 불과했다. 이 돈을 은행 예금에 넣어둬 봐야 세금 떼고 받을 수 있는 이자는 2%가 채 안 된다. 매달 120만원의 월세를 부담하는 반면 이자 소득은 3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타면서 주거비 부담이 30만원에서 90만원 가량으로 3배 이상 폭등한 셈이다. K씨는 “다른 전세를 물색해 봤지만 전세금이 껑충 뛴 데다 물량마저 거의 없어 포기했다”며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서 두 아이가 다니던 학원을 모두 그만두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에서 올라와 서울 삼성동 인근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L(29)씨. 인근 오피스텔에 저렴한 전세를 구해볼까 발품을 팔았지만 터무니 없이 높은 보증금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결국 보증금 1,000만원에 월 85만원에 인근 I오피스텔에 입주했다. 관리비를 포함하면 그가 한 달에 주거비로 지출하는 금액만 100만원 내외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고스란히 주거비로 지출해야 하는 현실에서 저축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처지다. 그는 “죽어라 일해서 번 돈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기분”이라며 “돈을 모을 수 없으니 내 집 마련은커녕 언제 전세로 갈아탈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월세 시대. 하지만 여기에 세입자들의 선택은 사실상 배제돼 있다. 자발적으로 월세를 택하는 세입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세입자들은 임대시장 환경 변화, 그리고 집주인들의 요구에 월세로 떠밀리는 것이 현실인 탓이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대다수 전세의 월세 전환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기 보단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월세 시대의 그늘이다.
지난 2월 비극적으로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는 생전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내고 살았다. 난방비를 포함한 관리비가 월 20만원 가량이었으니 매달 주거를 유지하는 데에만 70만원 정도가 들었다. 어머니의 월수입은 150만원 정도. 이른바 소득대비 임대료비율(RIR: Rent to Income Ratio)이 관리비를 제외하고도 33%에 달했다.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RIR이 30%를 넘고 주거비를 제외한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할 경우 주거 빈곤 상태로 불린다. 송파 세 모녀와 같이 임대료 과부담으로 주거 빈곤에 빠진 가구는 서울 지역의 경우 7.6%에 달하는 26만7,000여 가구로 추정된다. 월세 시대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면 송파 세 모녀처럼 주거 빈곤으로 내몰리는 사례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월세의 고통은 저소득층과 소형주택 임차인들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시내 거주 7,500가구를 대상으로 주거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가장 저소득층인 소득 하위 20% 임차인이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할 경우 RIR, 즉 주거비 부담은 20.4%에서 33.8%로 급등할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우리는 그 동안 전세제도 덕분에 주거비 부담 비중이 20%대에 머무를 수 있었다”며 “월세로 넘어가면 소득 수준에 따라 비율이 30% 후반까지 치솟게 될 것이어서 월세 시대는 저소득층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계의 소비지출 가운데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슈바베 지수(Schwabe Index) 역시 월세 비율이 확대되면서 더 높아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9.7%였던 이 지수는 2010년 10.1%, 2013년 10.4%, 그리고 올 3분기 10.8%까지 치솟았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월세물건이 많아져 서울 지역의 경우 요새 월세전환율이 대체로 5% 내외에 머물고 있지만 대출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월세 임차인의 주거부담은 자동적으로 커진다”며 “정서상 월세는 그냥 날리는 돈이라는 판단이 들기 때문에 금전적 여유가 부족한 저소득층의 소비는 더욱 위축된다”고 말했다.
경쟁률 26대1 '환경미화원 苦試' 12,2 한국경제
60세 정년에 칼퇴근 보장
연봉 3000만~3300만원
대졸·석사 출신까지 지원
채용 비리도 끊이지 않아
지난달 14일 강원 강릉시 강남축구공원에서 열린 2014년도 강릉시 환경미화원 공개채용 체력검사에서 지원자들이 모래주머니를 메고 100m 달리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대표적인 기피 직업으로 손꼽히던 환경미화원의 인기가 상한가다. 최근 계속되는 경기 불황과 실업난 탓에 정년과 칼퇴근이 보장되는 환경미화원 같은 직종의 경쟁률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서울 구로구가 지난달 낸 환경미화원 6명 채용공고엔 121명이 지원해 20.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13 대 1) 경쟁률을 훨씬 웃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52.9%(64명)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47.1%(57명)였다. 전체 지원자 중 고졸 학력이 55.4%(67명)로 가장 많았지만 대졸자도 13.2%(16명)에 달했다.
재수·삼수는 기본…여섯번 도전 끝에 합격도
광주광역시가 지난달 환경미화원 1명을 채용하기 위해 낸 공개모집엔 22명이 지원했다. 이 중 40%가 넘는 9명이 대졸 이상 학력자였고, 석사도 1명 있었다. 경북 포항시가 지난달 환경미화원 16명을 선발하는 시험엔 415명이 몰려 25.9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최종 합격자 중엔 여섯 차례 도전한 끝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선발하는 환경미화원 채용 경쟁률은 최근 10 대 1을 넘는 것은 기본이다. 각 지자체에 속한 환경미화원은 공무원에 준하는 무기계약직으로, 정년 60세가 보장된다. 환경미화원의 초봉은 월 122만원(기본급 기준)으로 9급 공무원과 같다. 하지만 특수업무수당, 작업장려수당 등 각종 수당을 합치면 초봉은 연 3000만~3300만원 정도로, 9급 공무원에 비해 많다. 올해 100인 이상 민간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초봉(3336만원)과 비슷하다. 체력만 있으면 만 18세부터 60세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이 치열한 이유다. 환경미화원 채용 시험은 1차 서류전형을 거쳐 2차 체력실기, 3차 면접으로 진행된다. 체력시험은 모래주머니를 들고 달린 뒤 기록을 재는 방식이다.
거리 청소 업무만 담당…기피 직종은 옛말
지자체 소속 환경미화원은 민간 청소대행업체에서 근무하는 환경미화원에 비해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지자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쓰레기 처리업무 중 가장 기피하는 음식물쓰레기 수거는 민간 업체에서 담당한다. 지자체 소속 환경미화원은 거리 청소 업무만 맡는다. 이렇다보니 한 번 채용하면 정년까지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채용공고를 찾기도 쉽지 않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과거 청소부로 불렸던 환경미화원이 기피 직종이라는 건 옛말”이라며 “환경미화원 채용공고 발표 시점에 대한 문의가 연중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경미화원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채용을 둘러싼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천의 한 구청장은 환경미화원을 뽑는 과정에서 특정인을 채용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지난 10월 입건됐다. 경기 안산시에선 한 시의원이 환경미화원 채용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 1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순경·9급 공무원 등 하위직 공무원 인기 폭발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순경, 9급 공무원 등 하위직 공무원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 8월 실시한 제2차 순경 공채시험에선 역대 최다인 6만1297명이 원서를 냈다. 올해 1차 시험(5만5609명)과 비교해도 10% 이상 증가했다. 지난 6월 치러진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에는 16만9425명이 원서를 제출해 지난해(16.8 대 1)보다 높은 평균 19.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역대 가장 높은 경쟁률이다.
재자연화와 단죄 절실하다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 12.4 민중의 소리
‘녹조’로 물든 4대강 항공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저런 물속에 물고기들이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이것이 재앙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끝없는 보수공사로 혈세가 줄줄 센다는 뉴스가 나왔다. 4대강 보 4곳에 농지가 침수돼 물을 빼려고 265억을 추가 투입한다는 소식도 전해졌고, 강에는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해 죽음의 강으로 만들어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토목공사의 폐해와 하천 정비사업과 관련한 토건 마피아의 실체를 파헤친다. 아울러 한반도 대운하 계획과 4대강 사업이 우리 생명의 보금자리인 하천 생태계를 어떻게 위기에 빠뜨렸으며, 망가지고 있는 4대강을 재자연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개발사업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토목공학 전문가 가톨릭관동대학교 박창근 교수와 ‘운하반대교수모임’ 정책위원장으로 4대강 반대 활동을 펼친 수원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인 이원영 교수의 대담집이다. 저자들은 4대강 사업이 왜 탐욕의 결정판인지 조목조목 따진다. 특히 정확한 사실을 근거를 바탕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있어, 읽다보면 자연스레 분노를 치밀게 한다.
예를 들면 저자들은 4대강 사업이 ‘고인 물이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22조 원을 들여 확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낙동강의 경우 4대강 사업 이후 균열이 생긴 보가 대여섯 개씩이나 되는데, 안전을 위해서 세웠다는 시설물 자체가 안전을 위협하는 형국이 됐다고 주장한다. 또 수질의 경우 4대강 사업 이후 깨끗해지기는커녕 ‘녹조 현상’이 문제시되고 있으며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4대강은 보를 세우고 물을 가둬서 물 부족을 해소한다고 했지만 정작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8억 톤의 물에 대한 사용 계획이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4대강 사업은 운하사업의 1단계라고 말한다. 수심을 유지하고 뱃길을 확보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지금 4대강이 몸살을 앓는 것은 결국 운하를 만들려다 보니까 생긴 문제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대화체로 서술돼 직접 옆에서 듣는 것처럼 이해가 쉽고, 더욱 잘 읽힌다.
정부 주도 사업이자 공공사업으로서 규모가 큰 분야가 바로 토목입니다. 정치인들이 리베이트를 받기도 쉽죠. 근본적으로 비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대규모 토목사업이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이후에 공업단지 조성사업, 간척사업, 신도시 개발사업 등이 있었지요. 그 과정에서 학계, 정부 관료, 토목 사업자 간에 소위 ‘토목 마피아’ 관계가 형성되었고요.
- 본문 중에서
저자들은 이제라도 4대강을 재자연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생태하천을 조성한다며 결국 인공형 하천을 만드는, 쓸데없이 혈세를 낭비하는 하천 정비사업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4대강 사업과 잘못된 하천 조성사업이 자연은 물론 사람까지 망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흘러야 할 강을 더 이상 돈을 들여서 훼손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정부와 지자체의 전시용 행정과 토건업체를 위한 돈벌이로 전락한 하천 조성사업에 매년 3~4조 원씩 들어가는데, 그 돈을 복지나 민생에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다시는 4대강 사업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선 4대강 사업 홍보를 위해 앞장서서 이론을 만들어낸 학자들과 언론, 4대강 사업을 찬성했거나 담당했던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들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동강 맥주 맛있다는 말이 어떻게 북한 찬양인가”12.2 미디어오늘
‘종북’ 몰린 황선·신은미씨, 보수언론 왜곡보도 비판…“조선일보, 반론취재 전화 한 통 없었다”
통일 토크콘서트’를 진행하다 ‘종북’으로 몰린 재미교포 신은미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왜곡보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신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1일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를 비롯해 최희준 TV조선 <뉴스쇼 판> 앵커 등 9명을 명예훼손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황 대표와 신씨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내고 “북녘에 흐르는 물줄기가 깨끗하다,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새 지도자(김정은)가 나타났으니 변화가 있을 거라고 북한 주민은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 어떻게 북한을 고무·찬양한다고 할 수 있나”라고 되물으며 “우리는 직접 보고 경험한 북한 동포들의 다양한 생활과 생각을 알리는 것이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토크콘서트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재미교포인 신씨는 최근 여섯 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황 대표는 2005년 평양에서 아이를 낳아 주목을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1월 17일 황 대표가 진행했던 인터넷 방송 발언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했고 북한에 대한 찬양ㆍ고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11월 24일자 조선일보는 <이번엔 종북 인터넷방송…김정일 사망 땐 상복입고 진행>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황씨는 지난 4년간 230회에 걸쳐 ‘채널6·15’라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종북·반정부·반미적 색채의 방송을 했다”고 보도했다.
▲ 주권방송 화면 갈무리.
22일자에선 신은미씨를 두고 “북한사회를 인권·복지국가인 것처럼 묘사했다”고 보도했다. 21일자 TV조선 시사토크프로그램 <황금펀치>에 출연한 최단비 변호사는 신씨의 발언을 두고 “찬양고무죄는 반국가단체나 지령을 받은 자를 찬양해야 하는 것인데 북한에서 개발한 맥주가 맛있다거나 북한에서는 산모를 비행기로 데리고 온다더라는 식의 표현으로 국가보안법을 교묘하게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와 신씨는 기자회견에서 “TV조선을 비롯한 언론들은 우리가 진행한 콘서트를 종북 토크쇼라고 허위 왜곡 보도했다.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느니, 3대세습을 찬양했다느니, 북한통전부의 지령을 받았다는 등 하지도 않은 말을 조작하며 우리를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언론들의 왜곡보도를 바로잡고 건전한 통일문화행사가 이뤄지기 바라는 마음에 최초 왜곡보도를 한 TV조선과 조선일보 기자를 검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형사고소가 불기소처분되면 민사소송도 제기할 것이라 밝혔다.
이들의 법률대리인인 김종귀 변호사는 “서울고등법원의 최근 민사판결문에 따르면 종북은 대한민국 정체성과 헌법을 부정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며 “종북콘서트라는 기사제목부터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언론을 통해 북한 정권을 찬양했다, 미국에서 북한 찬양 강연을 하고 있다는 식의 허위사실이 보도됐다”며 “향후 조선일보를 상대로 추가적인 고소가 준비되어 있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조선일보측은 우리의 반론을 듣기 위한 취재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른 언론사에 대해서도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 MBN 화면 갈무리.
신은미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만 5천 새터민들이 고향 땅에 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못 만나게 하는 국가가 어디 있나. 통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권의 시작이다”라고 강조한 뒤 “어린 시절 대한민국 국위선양을 위해 힘썼고, 그 공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찬에 초대받기도 했다. 지금도 북한의 현실을 보고 느낀 대로 전하는 것이 국위선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 씨는 “박 대통령도 2002년 방북 당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대통령의 마음과 저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공식면담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통일콘서트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며 향후 대구·전북·부산에서 토크콘서트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서북청년단 재건위 대관취소에 담당자 멱살잡이 난동 1128 미디어오늘
행사강행...서울청소년수련관 “운영규칙에 어긋나”...재건위“박원순이 막으라 했나”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이하 재건위)가 서울청소년수련관의 대관취소에도 재건총회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재건위 회원들은 청소년수련관 직원의 멱살을 잡고 밀치기도 했다.
재건위는 28일 재건총회를 열겠다며 지난달 서울청소년수련관에 대관을 신청했으나 서울청소년수련관은 지난 27일 재건위의 대관을 취소했다. 정아무개 서울청소년수련관 총괄부장은 “담당직원이 서북청년단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행사대관신청을 받았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성향이 강한 단체의 행사를 여는 것은 운영규칙에 어긋나 대관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재건위는 28일 오후 예정대로 행사를 강행하겠다며 ‘서울청소년수련관’에 입장했다. 대강당이 잠겨있자 재건위 회원들은 건물 1층 카페에서 행사를 강행했고, 이를 막으려는 정아무개 총괄부장의 부장의 멱살을 잡고 밀쳐 넘어뜨렸다.
정 부장이 “카페 영업을 방해해선 안 되지 않느냐”고 말하자 재건위 회원들은 “서울시장 박원순이 시켰냐”, “저 놈 빨갱이가 분명하다”, “간첩 아니냐”고 소리쳤다.
사태는 안찬서 중부서 형사과장이 경찰력을 동원하면서 마무리됐다. 재건위 회원들의 수련관 입장을 저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안찬서 과장은 “정부의 주요기관건물이 아니고 개인 간의 계약문제에서 발생한 일이라 막을 수 없다”며 “대신 폭력이 발생할 경우 공권력을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폭력을 당한 정아무개 총괄부장은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신당역 인근에 다른 장소를 마련해 안내했으나 재건위가 막무가내로 행사를 강행했다”며 “충돌이 우려돼 건물 내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일찍 귀가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 생각이지만 재건위 회원들이 일부러 충돌을 일으킨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 서북청년단 재건위 소속 회원들이 28일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서북청년단채건총회'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이창우 전 한양대교수.
이날 재건위는 총회에서 손진 전 대한민국 건국회 회장을 서북청년단 총재로,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을 고문으로 임명했다. 재건총회에서 맹천수 바른사회시민연대 대표는 “서북청년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적화통일을 분쇄하는 구국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위가 물리력을 동원하면서 행사를 강행한 이유에 대해 맹천수 바른사회시민연대대표는 “혈세로 운영되는 건물이면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성관 재건준비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우리 헌법을 수호하고 안보를 지키는 등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며 “종북좌익 규탄, 북한 자유화 촉진, 공권력 회복운동, 건국절 제정, 이승만 대통령 동상 건립 사업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북청년단은 해방 이후 좌익척결을 내세운 이승만 정권의 지원 아래 1946년 11월에 결성됐으며 전국에서 폭력, 암살 등 무차별적 테러를 감행한 단체로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진 이름이었다. 재건위는 지난 9월 시청광장의 세월호 참사 리본을 훼손하려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풍진 세상, 농민은 어떻게 살라고?" 12.2 프레시안
[김성훈 칼럼] 민생 경제와 '3農'의 새 파라다임을 찾아서
이제 한 달이 지나면 갑오년(甲午年)이 가고 을미년(乙未年)이 온다. 그 다음 해는 병신년(丙申年)이다. 을미년엔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한·중 FTA(자유무역협정)까지 완전히 체결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경제영토가 세계의 73퍼센트(%)로 확대됐다는 흰소리가 박근혜 정부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40여 개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했던 이명박 정권 때의 데쟈뷰(기시감, 旣視感)가 떠오른다.
갑오년의 기시감
새 정부가 들어서도 이태 동안에 벌써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연방과 터키, 중국과의 FTA를 타결함에 따라 마치 우리나라 국정운영 주체들이 FTA에 신들린 것 같다. 미국, EU, 중국, 인도 등 세계 최강국들과의 자유무역(관세철폐) 협정이 타결되었으며 금상첨화로 환태평양 12개국과의 동반자 협정(TTP)마저 가입한다면, 대한민국은 실질적으로 세계 최다 FTA 체결 국가로 우뚝 선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세계 농업강국들에 완벽하게 포위 예속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업-농촌-농민' 3농 부문을 이들의 단골 사냥감으로 내주고서도 농업을 가리켜 "미래성장산업"이라 읽는 것이 우리나라 국정운영의 리더십 스타일이다. '창조경제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학습한 결과가 그러하다. 사람을 놓치고 민생을 생략한 것이 창조경제의 허구성이다.
▲ 지난 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중 FTA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되었다고 공식 선언했다. ⓒ청와대
그렇다면, 장차 우리나라 민생경제와 농업, 농촌, 농민, 3농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10년 후 2025년쯤엔 식량자급률이 15% 수준이나 유지될까. 60년 후 다시 갑오년 2074년에는 우리 민생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이미 전봉준·손병희 때의 갑오 동학농민혁명 백성들이 즐겨 불렀던 노랫말("가보세(甲午歲), 가보세, 을미적(乙未賊) 을미적 대다가, 병신(丙申)이 되면 못가리")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노랫말은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사대 당쟁과 암우(暗愚)한 지도층, 그리고 외세의 각축으로 민생은 날로 피폐해지고 국력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마침내 500여 년의 조선왕조가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학농민혁명 진압을 구실로 일본, 청국 군대가 한반도에 진주했고 청일전쟁을 일으켜 연달아 노일전쟁까지 승리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조선반도를 삼킬 수 있게 되었다. 나라 안에서는 일본제국에 부화뇌동하는 정치집단이 생겨나고, 나라 밖에서는 1905년 6월 일본 총리 가쯔라다로(桂太郞)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 W.H. 태프트 미 육군장관 사이에 이른바 '가쯔라-태프트 비밀협약'이 체결됐다.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을 지배한다는 밀약이었다. 일사천리로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마침내 1910년 8월 22일 일·한 합병이 이루어졌다. 나라와 백성 할 것 없이 병신(病身)이 돼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이완용 당시 학무대신(후에 총리) 등 친일파는 "선진국 일본에 합병 귀속되는 것이야말로 국익(國益)에 크게 도움이 된다"라고 역설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불후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설파했다.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은 미국 케리 국무장관을 만나 대망의 '집단자위권'을 허락받고 일조유사시에 한반도에 진격할 명분을 얻어냈다. 한국은 '전시작전권'을 한사코 더 오래 미군이 맡아달라고 '군사주권(軍事主權)'을 내주었다. 이 와중에 중국은 법을 고쳐서라도 일조유사시에 해외파병을 합법화하려든다.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정·경·학·문화·생활 전 부문에 대미 일변도의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럴 때 만약 우리나라에서 미합중국 국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금 '대한민국(R.O.K.)을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합병하자는 안이 국민투표에 붙여진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과연 이완용 식 "국익에 큰 도움이 된다"라는 주장을 잠재울 수 있을까? 섣불리 그런 제안(국민투표), 그런 결과를 예단한다는 것은 국가 주권과 애국심에 불타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에게 모욕감만 안긴다.
그러나 연달은 FTA로 인해 우리나라 민생과 3농 부문의 국정 운영이 바야흐로 방향타를 잃고 몰락의 길에 들어서 있어 대한제국 말기 때의 쇠약해진 모습을 노출하고 있음이 정말 안타깝다. 특히 농촌 방방곡곡 도처에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노령층과 부녀자들의 한숨소리만 높다. 쌀값과 각종 농산물가격 그리고 농가소득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이다. 농업을 ICT와 연계 복합화하고 스마트화 하자는 사설이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말씀의 실체인지, 허약한 농민들을 무한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농업문제는 시장 경제에 맡길 수 없다"는 후보 시절의 말과 어떻게 다른지 도무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사료곡물을 포함한 식량자급률은 23%대로 떨어졌고 주곡인 쌀의 자급률은 86% 대로 물러났다. 축산업 또한 영연방 국가들과의 FTA 체결로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風前燈火) 격이다. 그나마 돈이 되는 식품 제조 가공 무역업은 대부분 대기업 독과점 자본들에 의해 장악되어 식품 제조·가공 산업이 80조 원대로 크게 신장하였다. 소위 국산 식품이 많이 수출될수록 외국 농수산물과 식재료의 수입 물량만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실제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의 순(純) 발전과는 완전히 유리된 채 외국의 농부들, 외국의 농업 메이저와 국내 수입·가공·무역업자들만 살찌운다. 그리고 그것을 '창조농업'이라고 읽는다. 예컨대, 쌀 개방에 따라 중국·미국산 수입 쌀로 가공한 떡볶이 기업이 200만 달러를 수출한 것이 이 정권하에선 '창조경제'의 좋은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라면, 믹스커피, 초코파이, 떡류, 막걸리 등을 수출하는 것과 3농의 민생증진 사이에 희미한 연결고리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민초들은 묻는다.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이 누구를 위하여, 누구의 이익 증대에 보탬이 되는가! 단순히 국민총생산액(GDP)에의 기여도를 높이고 외국산 GMO 식재료를 사용한 식품산업이 우리 농가 소득을 얼마나 높였는가를. 도대체 낙수(trickle-down) 효과라도 일어났는가. '국익'이란 허울뿐이고 농어민들에겐 '그림 속의 떡'이다.
도리어 GNP와 수출액이 높아가는 곳에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농촌 경제는 신음하게 된다. 숨 쉴 공기(미세먼지), 마실 물만 탁해지고 국민들이 먹는 음식의 안전성(安全性)이 위협받는 현실이다. 국내 소비자 서민들의 가계와 소득 그리고 식생활의 안전망마저 바람 앞의 등불이다. 대기업, 기득권자들만 잘 살게 하는 정책이 과연 국가 이익이며 미래성장산업이란 말이던가. 민생경제와 삶의 질(quality of life)로 따져 본, 참다운 민생 지표는 마이너스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과연 되풀이되는가!
달라져야 할 농정기구와 농정 패러다임
이제 새 농정, 새 비전, 새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농가 인구는 이제 총인구의 5.7%로 줄어들었고, 농림업 생산액은 국가 총생산액의 2.1%로 추락했는데도 웬 농림축산 관련 행정 및 공적기관은 그렇게도 경직되고 넘쳐 나는가. 쓸데없이 벌리는 전시 위주 사업과 조직분화 그리고 조직 인원은 왜 그렇게 늘어만 나는가. 어차피 우리 농업이 미국 유럽 중국과 하나의 경제 통상권으로 통합돼 가는 마당에, 그들이야 여전히 월급 수당 연금을 챙기겠지만 '농업-농촌-농민' 3농은 명맥이나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들 농업 관련 기관들을 개편하고 축소하여 절약되는 각종 비용과 예산을 WTO가 허용하는 농가직접지불 방식으로 되돌린다면,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민단체에 의해 신자유주의 경제 횡포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농가 호당 월 50만 원 기본소득안"의 실현이 가능할지 검토해볼 일이다. 그 길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구농(救農) 대책일지 모른다. 갈수록 민생과 3농 발전과는 거리가 멀어지진 영혼마저 없는 공직자들에게 국민 세금을 좀먹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먹혀들고 있다.
국내 농축산업 자급률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수입량이 그 몇 배로 폭주하면서 농촌에 농가와 농민들마저 급속히 줄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예 명실상부하게 '농식품'(輸入部)로, 농협은 'NH은행'으로, 그리고 기초 및 도 단위 농업협동조합과 농수산물유통공사는 그냥 개별 회사체제로 전환시키자는 주장이 더 '창조경제'적으로 들린다. 농촌진흥청과 농어촌공사 사업 중에 비(非) 농업, 非 농민, 非 농촌 부문을 과감히 도려내 본래 설립 때의 이름(정명, 正明)에 걸맞는 고유 기능만 남기고 대폭 축소 개편한다면, 비록 고육책이지만 농가 기본소득 재원(財源)을 더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마치 15년 전 IMF 하 농조·농조련·농업진흥공사를 축소 통합해 이 땅에 수세(水稅)를 완전히 폐지하고, 농·축·인삼협 중앙회를 축소 통합해 농업 금리를 대폭 인하했듯이, 현재의 농림축산 식품 관련 모든 공적 조직과 기능을 엄정히 재평가하여 새로이 재단(裁斷)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명실공히 3농 부문의 '창조경제'가 아니겠는가.
동서고금에 농정이란, 본래 현장(local) 중심, 농민 중심 행정이었다. 그러니만치 농림축산 관련 예산과 권한을 대폭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여 지역주민의 자치에 맡겨야 옳다. 중앙농정을 축소정비, 절약하여 지역농정에 이양해 농가실질소득을 높이자는 주장은 도리어 WTO(세계무역기구)체제에 부합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과 세원(稅源)을 현재와 같은 8:2 체제에서, 선진국처럼 2:8 체제, 아니면 적어도 5:5 체제로라도 만들어 진정한 지방자치제를 정립하는 것이 더 선진적이다. 이른바 지방분권제 확립이 3농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지금 미래 성장산업으로 농업을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대기업들을 불러들여 기업적 농축산업과 종자사업, 6차 산업마저 맡기려는 기도가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그럴 바에야, 아예 사람(농민) 중심의 행정과 권한 그리고 예산과 세수(稅收)를 지자체에 넘기고 중앙정부는 기업적 공장식 농축산업과 유통, 식품제조가공업, 특히 수입업무나 관장케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잔류 농민들은 월 기본소득을 보장받으면서 중앙정부의 획일적 농정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협동농업, 즉 진정한 농민협동조합으로 거듭나게 하여야 한다. 깨어 있는 소비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직거래, 꾸러미 사업, 로컬푸드, 슬로우푸드, 기타 농외소득 사업으로 3농을 자생케 하는 것이 선진국 형 창조 농정의 바람직한 모양새다.
▲ 11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쌀값 안정과 한·중 FTA 중단 등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땅에 농부·서민으로 태어나서
그동안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45여 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최근의 대형 FTA 타결로 순(純) 국민총생산액은 추가적으로 매년 3~4%씩 늘고 순수출액도 크게 늘었어야 했는데 웬일인지 GDP나 수출액 증가는 FTA 하기 전보다 더 더디고 수입량만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경제영토가 73%로 더 늘어난 것이 아니고 도리어 수입 영향이 92% 이상 확대돼 농촌 경제의 파탄부터 불러들이고 있다.
그 결과가 다름 아닌 안전성이 결여된 수입 농산 식품의 홍수 범람이며, 농촌 경제 침체, 서민 경제 악화이다. 순풍순우(淳風淳雨)하여 고추·마늘·양파·배추 농사를 잘 지어봤자, 뭐하겠는가. FTA가 아직 체결되지 않았는데도 중국산 김치가 20여만 톤이나 수입돼 관련 농산물가격이 풍비박산 2년 째 반 토막이다. 이제 FTA 좀비들이 판치는 완전 수입 개방 세상이 되면 농민들에겐 뭐 하나 돈 되는 것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아직 한중 FTA가 국회비준도 되지 않았는데 지레 올해의 가을 쌀값과 농산물가격들은 꽁꽁 얼어붙어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심지어 고사리, 도라지, 더덕, 약초 농사마저 흔들흔들 추락직전이다. 현행 40% 관세 하에서도 외국산 쇠고기와 돼지고기, 낙농제품들이 이미 시장의 과반을 점령했는데 이제 영연방국가들과 FTA가 발효되면 우리나라 농축 산업은 사라질 날만 카운트다운 해야 한다. "뭐 돈 되는 것 없소?" "해 볼만한 품목은 뭐가 남았소?" 농부들은 산과 내와 들에서 서로 묻고들 있다. 이 시대, 이 땅에 농부 서민으로 태어나서 요즘처럼 무기력하고 무위무능한 무(無)존재의 신세가 된 적이 또 언제 있었던가! 농민들은 차라리 '자조, 자립, 협동'의 새마을 깃발아래 "우리도 이제 잘 살아보세"라고 아침마다 곡괭이 들고 들과 밭에 나가 노래 부르던 박정희 시대가 그립다. 그 영애의 시절이 왔는데 봄볕은커녕 엄동설한이 1년 열두 달 365일인가!
"을미적 을미적 대다가는 병신된다"하더니 2015~6년 을미·병신년이 오기도 전에 밤 보따리를 싸야 하나? 아니, 싸야할 보따리도 없는 고령층·부녀자 3농은 송두리째 밀려나야 하나? 농업이 미래 첨단 기술 집약 산업이라고 국내 농업과 유리된 농산물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해 정부는 대기업을 불러들여 정부 보유의 쌀, 보리, 콩 등 곡물 종자 사업마저 GMO(유전자조작 생물체)로 만들어 황금 종자 사업이라며 널리 퍼뜨린다면, 그것이야말로 3농을 더 빨리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농(農)'자 붙인 좀비족들은 행여나 하고 개방찬가를 읊조리며 정부와 국회, 기업 주변 언저리를 어정대고 있다. 가련할 손, 농투성이 농민들일랑은 태평가나 부르며 텅 빈 가슴을 달래야 할까 보다.
"이 풍진 세상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네 마음이 족할까…."
성장 없는 시대 ‘가계살림의 재구성’ .12.02ㅣ주간경향 1103호
저성장시대에 본격 진입한 한국경제, 소득의 대부분을 임금에 의존하는 가계는 정부ㆍ기업에 비해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이 암울한 저성장 터널을 지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소비·금융·부동산 등 가계 경제활동을 근본부터 다시 재점검하라고 말한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박영걸씨(52·경기 용인시)는 내년 경제만 생각하면 숨이 탁 막힌다. 정부나 언론에서 말하는 경제전망보다 체감경기가 훨씬 나쁘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안 좋은 얘기만 들린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한국이 따라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저성장시대에 진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소비자들이 최근 문을 연 제2롯데월드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기로 들어서면서 소비도 함께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 김창길기자
무엇보다 한국 경제를 떠받쳐왔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마저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증권·조선업계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것도 불안감을 키운다. “삼성전자가 애플이나 중국 기업들에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고. 대기업들마저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는데 내년에는 더 힘들 것이라는 말들이 많아요. 어떻게 이 험난한 파고를 헤쳐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비단 박씨만 품고 있는 게 아니다. 거의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마치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한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경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 흐름이 꽤 길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저성장시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시중에 돈을 풀고 부동산 규제완화 등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강달러에 치이고, 엔저에 밀리고, 중국에 쫓기고 있는 게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가계는 가계대로 힘들어졌다. 국내 가계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은 가격 하락으로 자산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이자소득으로 생활하는 은퇴생활자들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1000조를 넘어선 가계부채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사방을 둘러봐도 빛이 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의 국면. 이런 저성장기에 가계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생존전략으로 이 험난한 위기의 시대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소비와 재테크, 부동산 등 가계 경제활동의 근간이 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저성장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가계의 생존전략을 모색해 봤다.
사실 획기적인 비법은 없었다. 전문가들의 조언은 ‘신용카드는 한 장만 쓰고, 소비 눈높이는 낮추면서, 부동산·주식 비중을 낮추고 현금 비중을 늘려라’로 요약할 수 있다.
너무 평범하다고? 그래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진리가 숨어 있다.
■소비-신용카드는 한 개만
저성장시대에는 소비 눈높이를 대폭 낮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건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래서 소득을 늘리기가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면 본능적으로 줄이는 게 소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를 줄이는 데도 전략이 필요하다. 고득성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이사는 “저성장기에는 소비도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소비의 동선을 따라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받아 사용했다”면서 “자신에게 꼭 맞는 신용카드를 한 개만 갖고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갑 속에 수두룩하게 들어 있는 카드부터 없애라는 얘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전문가들은 저성장시대에는 가계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자산 비중을 줄이는 게 좋다고 말한다. | 연합뉴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박사는 “지금까지는 소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이를 믿고 무의식적으로 소비지향적인 생활을 해 왔지만 저성장시대에는 그런 행동경제는 통하지 않는다”면서 “소득은 꺾였지만 소비성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게 요즘 사회다. 소비의 현실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 연구위원은 “교육 등 미래를 위한 투자 성격의 소비가 많은 게 한국 가계의 특징”이라면서 “앞으로는 이런 미래 기대수익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 교육비에 대한 과도한 지출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 재테크-고수익보다는 지키기로
직장인들 사이에 한때 ‘10억원 만들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저성장기에는 ‘10억원 만들기’ 같은 꿈이나 목표는 망상에 가깝다. 저성장기는 기본적으로 돈 버는 게 힘든 시대다. 고수익보다는 안정적인 투자가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저성장기에는 투자의 개념을 짧은 시간에 얼마를 버는 것보다 지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최소한의 수익을 얻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돈이 마르면 주식도 위험하다.
김연준 하나은행 서현역 골드클럽 PB센터장은 “금융투자 형태도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도 보수적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수익률이 높은 이머징마켓에 투자하는 펀드가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채권처럼 안정적이면서도 장기간 투자하면 은행금리 못지않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상품이 유망하다”고 말했다. 김학균 투자전략팀장도 “주가도 많이 오르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적립식 펀드에 가입해 주가가 떨어져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취약한 국민연금을 보완할 장치 마련도 필요한 것으로 꼽혔다. 안기돈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20년 이상 가입한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수령액은 89만원에 불과해 너무 취약하다”면서 “저성장기 부동산을 줄이고 개인연금에 적극적으로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부동산-닥치고 현찰
한국 가계자산 구성의 특징 중 하나는 부동산 비중이 평균 75%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금융위기 직후 국내 주택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가계의 실질 자산규모도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시대에 적절히 대비하기 위해서는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빨리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큰 부동산보다는 현찰 보유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부동산은 사놓으면 무조건 돈이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좋다”면서 새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자는 월수입의 20% 이상을 주택 구입에 필요한 이자를 물지 않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저성장시대에는 부동산이 제일 먼저 직격탄을 맞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연금도 대안으로 꼽혔다. 고득성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이사는 “60세 이상 은퇴자라면 주택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주택연금에 하루빨리 가입하는 것이 좋다”면서 “현재 3억원짜리 주택의 경우 70세에 가입하면 매달 103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부동산’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수익형 부동산 투자가 제시됐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리얼투데이 양지영 팀장은 “저성장기에는 소득이 창출되는 수단이 확 줄어들기 때문에 부동산의 경우 운용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가 좋다”면서 “소형 빌라·상가 등 적은 투자로 장기간 월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 투자로 자산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창업·재취업-창업보다는 재취업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81.5세다. 60세에 정년퇴직을 한다고 해도 임금소득 공백기간이 점점 길어질 수밖에 없다. 소득 공백기간을 최소화하려면 재취업을 하든지, 창업을 하든지 해야 한다. 저성장시대에는 창업보다는 재취업이 유리하다. 창업을 하더라도 수요가 위축돼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저성장시대에는 재취업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불가피하게 창업을 해야 할 때는 자신의 능력과 경험 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아이템을 찾는 게 좋다.
김천규 충남대학교 창업교육센터 산학협력중점교수는 “누가 창업해서 성공했다고 하면 아무 생각없이 따라서 창업하는 ‘철새 창업’이 적지 않다”면서 “적어도 창업하기 전 최소 2년 정도는 현장조사를 하고, 자기가 뭘 잘할 수 있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과 연결해 창업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귀농 등 공동체 문화
귀농도 저성장시대의 생존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농촌생활은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도시처럼 소비성향도 높지 않다. 상대적으로 적은 소득으로 도시에서 누리는 소비수준 이상을 누릴 수 있다. 이준엽 현대경제연구원 박사는 “농촌 거주자들의 소비생활은 자연친화적이면서 소비를 덜하는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 공동체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뿐 아니라 건강한 삶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어 저성장시대에 도시 소비자들이 본받을 만한 생활패턴”이라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꼭 귀농을 하지 않더라도 도시에 살면서 지역공동체에 적극 참여하는 게 좋다”면서 “저성장시대에는 아등바등 돈을 벌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단절된 아파트 이웃과 공동체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유지하면서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찾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찍고 동성애로…‘애국 기독교’ 오지랖은 왜 넓은가 1126한겨레21
지난 20일 열린 서울시민인권헌장 마지막 공청회는 “사회자 바꿔라”를 외치는 사람들의 실력 행사로 토론도 없이 종료됐다. 공청회를 저지하던 한 사람이 행사장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성소수자 차별 금지’ 반대, 서울인권헌장 공청회 저지
복지·교육 분야서도 노골적인 ‘약자 혐오’ 목소리 높여
아는 사이가 아니다. 이해관계도 없다. 그런데 뜨겁다.
2014년 6월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막아섰고, 8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충돌을 빚었고, 11월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가 토론도 못하고 종료됐다. 때때로 “아멘”을 외치는 이들이 중심이 돼 한 일이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작된 보수 기독교의 동성애 반대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새로운 현상이다. 세상이 연결돼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자신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 이토록 뜨거운 열정이 솟아난 적이 있을까. 한번 달궈진 열정은 쉽사리 식지 않는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오래 지속될 미래의 시작에 가깝다. 선을 넘으면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의 뜻이든, 알라의 이름이든, 부처님의 말씀이든 선을 넘으면 누군가 우는 사람이 생긴다. _편집자
이날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었다.
11월20일,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가 열리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오후의 햇살은 초겨울 서울을 감싸고 있었다. 서소문 서울시청 별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적잖은 이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1시40분, 별관 4층 강당은 이미 사람들로 빼곡했고, 외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사회자 바꿔라!” “사회자 바꿔라!”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가 예정된 시간이 20분 남았다. 사회자를 바꾸라는 소리에 이런 말들이 섞였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사람은 안 돼!” “동성애 지지하는 사회자 바꿔!” 강당을 메운 300여 명은 “동성애 동성혼 조장하는 거짓인권 OUT!” 같은 팻말을 들고 이따금 박수를 치면서 소리를 키웠다. 사회자가 나오기 전에 연단은 거부의 목소리에 점거됐다. 강단 한편에서 “시작도 못하게 하느냐”고 외치는 목소리가 단말마처럼 나왔지만, 이내 “사회자 바꿔라!” 구호에 묻혔다. 공청회에 참석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10여 명은 그렇게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을 향해 “동성애자 더러운 것들 나가!” 외치는 이도 있었다.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선포할 예정인 서울시민인권헌장에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포함시킬지를 놓고 벌어진 일이다. 경찰은 있었지만, 강당 밖에서 방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성애 합법화=성경의 불법화
서울시민인권헌장 마지막 공청회를.저지하는 사람들 앞에 망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회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국 교회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황에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때 적극적으로 막아서지 않았던 미국과 영국 교회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고 지금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성경은 불법한 책이 되고… 성경 말씀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서 반대 의사를 온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침묵은 죄악입니다.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은 대가를 치를지라도 성경의 진리를 입으로 말하고, 글로 쓰고, 내 삶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제 다 함께 모입시다!”
이런 휴대전화 문자나 카톡 메시지를 받고 모인 이들이 가득한 공간, 사회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나타났다. 그가 공청회를 진행하려 했지만, 마이크를 잡기조차 어려웠다. 연단에 올라와 그의 면전에서 “박래군씨, 동성애 지지하는 분 아니야?” 끝없이 추궁하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마이크를 뺏어 던지는 사람, “나가라”고 외치는 목소리. 공청회 진행을 막으려는 사람들로 연단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렇게 그곳에서 동성애는 십자가가 되었다. 부인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마치 일제강점기 기독교인이 강요당한 ‘십자가 밟기’처럼 말이다. 앞서 인용된 문자의 내용엔 성경이 인용됐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의 뒤통수에 대고 “마귀들”이라고 내뱉는 소리도 들렸다.
이날만이 아니었다. 목요일엔 공청회 저지, 월요일엔 옥외집회, 화요일엔 국회 포럼이 잇따라 열렸다. 11월17일 서울역에서는 민족복음화운동본부, 에스더기도운동 등이 주최한 ‘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집회가 열렸다. 평일 오후 1시에 열린 집회에 1천 명이 넘는 이들이 모였다. 1부 시민단체 집회, 2부 예배 순으로 진행된 이 집회에서 민족복음화운동본부 총재인 이태희 목사는 “공산주의나 이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동성애”라고 말했다. 그의 설교 제목은 ‘동성애는 멸망받을 큰 죄악’이었다. 이날 행사에선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 대표가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제정하여 동성애를 옹호·조장·확산하려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낭독했다. 그가 이끄는 에스더기도운동은 동성애 반대에 열성적인 단체다.
북한 선교와 동성애 반대의 만남
“알바할 시간에 나왔는데!” 서울시청 별관 강당 앞뒤를 오가며 “동성애 안 돼!”를 외치던 한 여성이 했던 말이다. 성소수자들이 모인 쪽을 가리키면서 옆 사람에게 “저 사람들이 동성애자래”라고 신기한 듯 쳐다보며 말하는 그의 억양엔 북한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에스더기도운동은 북한 선교를 열심히 하는 단체다. “‘거룩한 나라, 북한구원 통일한국, 선교한국’을 위해 기도하는 초교파 기도운동입니다. …갈수록 만연해가는 음란, 낙태, 동성애를 막아서며 거룩한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거룩운동입니다.” 이렇게 동성애 반대에 열심인 기독교 단체 활동은 동성애 반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북한 선교와 동성애 반대는 이들의 믿음 안에서 그렇게 만난다. 2000년대 후반,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시위하던 이들의 주요 구호엔 “북한 인권 외면하고 동성애 옹호하는 인권위 해체하라!”가 있었으니 그리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화요일인 11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제1회 탈동성애 인권포럼’이 열렸다. “기독교 신앙을 통해 동성애 탈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모임이 ‘국회’에서 열린 것이다. 동성애자였다고 하는 이요나 목사(홀리라이프 대표)가 주도하는 흐름이다. 이날 포럼을 주최한 홀리라이프,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선민네트워크 등은 가칭 ‘탈동성애인권기독교협의회’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이제 성소수자 차별 금지와 관련된 법과 조례를 막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원하는 법을 만드는 시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시 서울시청 별관 강당, 공청회 진행을 둘러싸고 일촉측발의 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공청회 진행을 원하는 이들이 있는 곳을 향해 노년의 남성이 뱉었다. “×구멍 새끼들!” 흥분한 순간에 내뱉은 단어는 그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동성애 반대 논리는 단순한 ‘동성애=죄악’의 주장을 넘어서 동성애가 확산되면 세금이 낭비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11월17일 서울역 집회를 알렸던 에스더기도운동 홈페이지 배너에는 ‘동성애자 증가→에이즈 확산→100% 국민혈세→세금폭탄’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감염인에게 제공되는 약값으로 혈세가 낭비된다” 같은 경제 논리가 강조되는 것이다. 공청회가 열린 이날도 “내 세금!”을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하는 특혜 논리와 맥락이 다르지 않다.
‘혈세’ 걱정하는 애국 기독교 단체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예수재단 임요한 목사가 세월호 특별법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임 목사는 동성애 반대에도 열심이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세월호 주최 쪽이야?”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있던 성소수자가 들었던 말이다. ‘삭제되는 것은 논란이 아니라 인권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던 그에게 그렇게 추궁한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나라 망친다”는 소리가 적잖게 들렸던 이날, 공청회 무산을 주도한 사람들 중 임요한 목사가 있다. 예수재단 대표인 그는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졸속 입법 즉각 중단하라’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지난 7월16일, 단원고등학교 2학년 생존자 학생 40여 명이 국회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을 찾아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까지 걸어온 날, 그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이렇게 애국 기독교 세력을 자처하는 이들의 ‘반대’는 동성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6월7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보수 기독교 단체와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막아섰다. 얼핏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을 조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개신교 단체의 동성애 반대는 그렇다 쳐도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나서긴 어색한 분야 아닌가? 이들의 연대 배경엔 군형법 문제가 있다.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도 처벌하는 옛 군형법 제92조 5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나오기 전,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군형법이 개정되면 국방력이 약화된다”고 주장하며 동성애 반대에 나섰다. 2011년 학생인권조례 반대운동을 통해 보수교육단체와 연대도 강화됐다. 이렇게 이미 인적으로 얽혀 있던 보수와 기독교 우익의 고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선택된 민족! 선진민족! 선한민족!’ 서울시민인권헌장 등에 성소수자 차별 금지 항목이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단체 중 하나인 선민네트워크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 걸린 구호다. 가난한 나라에서 급속한 경제개발을 이룬 한국은 주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이고, 한민족은 선민이란 것이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성공은 개신교 신자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서 시작됐다는 논리가 있다. 선민네트워크는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광화문광장에 건립되기를 국민 여러분께 청원합니다”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선민을 자임해 사회가 정화되기를 원하는 이들의 성명서 목록은 이렇다. “쓰레기 무상급식을 중단하고 서민계층 청소년의 ‘하루 두 끼’ 보장하는 올바른 급식제도를 실시하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신속히 진행하라!” 한동안 동성애 반대를 외쳤던 이들이 내세운 “종북 게이”라는 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다.
11월20일 오후 2시30분, 여전히 아우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서울시는 가까스로 공청회 종료를 선언했다. 그러나 강당을 메운 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서울시청 앞에서 예정된 집회가 열리기 전까지, 이들은 자리에 남아 발언을 이어갔다. 서명지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서울시민인권헌장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는 이야기,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토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이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일어나 애국가를 부르던 이들은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4시로 예정된 집회까지 시간이 남았다. 누군가 “(애국가) 4절까지 부릅시다”라고 외쳤다. “동성애 반대!” 하면 “아멘”으로 답하고, “공청회가 무산되었습니다” 하면 “할렐루야”로 답했던 이들의 또 다른 면이었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고 애국가
‘댓글사역 부탁합니다.’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처럼 중요한 일정이 끝난 다음에 당부하는 메시지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에 동성애 반대 입장 댓글을 달아달라는 것이다. 주로 교인들 네트워크를 타고 퍼지는 이런 문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서울시청 같은 기관의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리고, 관련 부서에 항의 전화를 하는 일도 빠지지 않는다. 빗발치는 항의 전화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무산됐고, 집회 신고가 반려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동성애 반대 매체인 khTV 동영상 ‘동성애 실태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에서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6월7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행사를 막아서는 기독교인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일성 주체사상파 주사파라고 하죠. 반국가적인 일을 꾀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동성애를 많이 지지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선전전에 능한 겁니다. 인터넷, SNS… 성경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에 아주 약한 겁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거에서 지면 지는 겁니다.” 이렇게 이용희 대표와 안희환 밝은인터넷세상만들기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이 인터넷 활용을 강조하면서 이들은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세력이 되었다. 온라인 소통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집단도 찾아보기 힘들다.
2007년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차원에서 주로 진행됐다. 한기총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성명을 내고 대형 교회 목사들도 반대운동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벌어진 양상은 조금 다르다. 교회연합체 차원보다는 작은 단체들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활발해졌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 교회가 위기에 직면한 2000년대 이후 한기총의 공격적 반공주의는 기묘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며 “위기의 원인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적에서 찾는 흐름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종북 공세’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 교회의 새로운 고난으로 동성애를 생각하는 이들도 생겼다.
동성애 반대 논리의 저변엔 가족의 가치, 청소년 보호가 깔려 있다. 1970~80년대에 시작된 미국의 보수적 이데올로기인 가족의 가치가 21세기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국제인권규범의 시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12년 3월7일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저는 당신들의 편에 섭니다. 그리고 모든 국가들과 사람들에게 당신들 편에 함께 서라고 요청합니다.”
더불어 지구촌 곳곳에 동성혼 합법화 추세도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이들은 한국만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용희 대표는 앞선 동영상에서 “이미 동성애가 벌어졌던 나라들을 보면서 우리가 실수하지 않고 좋은 나라로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매우 미국, 서구 지향적이었던 한국 기독교가 동성애 반대 논리 강화를 위해 미국, 서구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가 애국과 결합해 동성애, 종북, 병역거부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적들이 된다.
잊을 수 없는 경멸의 눈빛
11월20일, 서울시청 강당에서 10여 명의 성소수자는 쏟아지는 비난의 언어에 둘러싸여 있었다. 서울시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한 성소수자 시민에 대해 서울시는 충분한 보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성소수자만의 문제로 가둔 한국의 진보세력도 그곳에 없었다. 한국 기독교의 다른 의견을 보여줄 기독교인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인권의 원칙과 표밭의 현실에서 갈등하다 끝내는 현실의 편에 서왔다. 지금 박원순의 서울시도 그런 시험대에 올라 있다.
서울시청 별관 앞 길에선 공청회가 끝나자 삼삼오오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보였다. 이전에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이들과 몇 번을 맞섰던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노동권팀장은 “그냥 길에서 봤다면 친절한 이웃으로 보였을 사람들”이라며 “‘김 집사’ 같은 호칭이 어울리는 이들이 보였던 경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북청년단’이 기다리는 명령 12.1 시사인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이들이 있다. 서북청년단은 해방 직후 있었던 정치 테러의 대명사인데, 이 단체 이름이 2014년 다시 등장하다니. 음산하고 으스스한 대한민국이다.
“난장판이 된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지탱하겠다는 살신보국(殺身報國)의 정신으로 서북청년단 재건의 깃발을 올리는 바이다.” 2014년 10월27일자 서북청년단 재건 취지문 중 일부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어떤 이는 해방 정국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살육한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것은, 살인 집단 지존파를 재건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광기를 욕하기는 쉽다. 문제는 이들을 잉태한 우리 사회의 ‘지금’을 말하는 것이다.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해방 직후 벌어졌던 정치 학살을 숭배하는 이 경악스러운 이름에는 2014년 대한민국이 담겨 있다. ‘우익 테러 집단’의 등장이 가능한 사회,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이다. 폭력의 조건은 적대다. 폭력을 가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우리’가 아닌 ‘적’이어야 하고, 제거되어야 할 ‘악’이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 내내 증오와 배제를 본질로 하는 적대의 정치는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은 나라를 흔드는 세력이며 없애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사회를 가득 채운 이 적대의 기운을 서북청년단은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돌아보자. 2년 동안 박근혜 정권은 정치를 하지 않았다. 공격을 했다. 상대의 목을 졸랐고, 뿌리를 잘랐다. 전교조는 법적 지위를 박탈당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교원노조를 탄압하는 나라가 되었다. 철도 파업 과정에서 민주노총 본부는 경찰이 휘두른 오함마(대형 망치)에 부서졌다. 민주노총 설립 이후 수많은 총파업이 있었지만 그 어떤 정권도 본부를 뜯을 생각을 하진 않았다. 심지어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을 해산시키는 청구가 정부의 이름으로 헌법재판소에 접수되었다. 합법 정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원칙 따위는 없었다. 야당을 공격하기 위해 국가 기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신나게 뿌려댔고,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것 같아 보이자 검찰총장까지 개망신을 주며 내쫓았다. 종북, 좌익, 빨갱이라는 단어가 다시 언론을 채웠다.
ⓒ난나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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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월호.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아이들은 “사랑해. 정말 사랑해” 문자를 보내며 죽었고, 부모들은 길바닥에서 그 문자를 쥐고 통곡했다. 그 속에서 진행된 지난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슬로건은 “박근혜를 지키자”였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키자는 것이었을까? 5월9일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밤새 오한에 떨며 대통령 좀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10월29일 국회 연설을 하러 온 대통령에게 유가족들은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모두 차갑게 버려졌다. 나라에게 내쫓긴 난민의 꼴이었다. 이 모습을 본 서북청년단은 생각했을 것이다. 저 불순한 유가족들로부터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이들은 가장 먼저 세월호 농성장으로 향했다.
서북청년단 총회에 참석했던 그때 그 대통령
“사상이 건전한 여러분이 나서야 한다.” 1947년 12월10일 서북청년회 총회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젊은이들의 엉덩이는 들썩였을 것이다. 청년들은 모두 “제주도 하나 없어진다고 해도 대한민국 존립에는 아무런 이상 없다”라는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무력 충돌이 발생한 제주도는 이승만에게 ‘빨갱이의 섬’이었으며, 제주 사람들은 죽여도 될 존재였다. 이 연설을 듣고 제주도로 내려가 학살에 가담했던 서북청년회원 박형요는 말한다. “이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들을 마구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겠습니까? 이 대통령이 ‘죽이지 말라’고 했으면 제주도에서와 같은 학살 사태가 있을 수 있습니까?”
2014년 서북청년단은 이승만 시절 그랬던 것처럼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들은 불순한 세력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국민이 아니라는 명령 말이다. “외부 세력이 세월호 특별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대통령의 목소리에 누군가의 엉덩이가 들썩인다.
츌처
정윤회가 누구길래 12.1 시사인
인천 아시안게임 때의 일이다. 승마 경기장에 다녀온 사진팀 기자가 “다른 경기장은 객석이 비었는데, 승마 경기장만 사람이 북적였다. 취재진이 더 많은 것 같았다”라고 보고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아들의 경기를 보러 나온 탓도 있겠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으로 입길에 오르내리던 정윤회씨도 주요 변수였다.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씨는 이 정부 초반부터 ‘숨은 실세’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문고리 권력 3인방’이라 불리는 청와대의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제2부속실장이 그의 눈과 귀, 손과 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여권 안에서조차 터져나오곤 했다.
하지만 정씨의 행적은 좀처럼 기자들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정씨의 딸이 승마 대표선수로 출전한다니 행여 그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취재진이 몰린 것이다. 이날 정씨는 끝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정씨가 11월28일자 <세계일보> 보도를 계기로 대대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파견된 아무개 경정이 올 1월6일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정씨가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2차례씩 소위 십상시(중국 후한 말 전횡을 일삼은 환관)라 불리는 박 대통령 측근(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 인사 4명)들과 만났으며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을 퍼트리도록 했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정씨는 그동안 이들과의 만남을 부인해왔고 청와대 역시 이번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미 충격적이다. 일단 청와대 공식 보고서에서 정씨를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그리고 그와 만나는 이들을 ‘십상시’라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찌라시 내용’을 정리한 수준이라 하면서도, 공식 문건이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이 정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풍문이나 모아 보고하는 수준이라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정씨의 국정 농단이 이미 청와대 민정 라인이 걱정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를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 기류도 심상치 않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경정은 보고서를 제출하고 한 달 뒤 돌연 경찰로 복귀 발령이 났으며, 보고 라인에 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3개월 후 물러났다.
이쯤 되면 청와대가 부인만 하고 넘어갈 수위를 넘어섰다. 소통령, 홍3트리오, 형님 정권 등 권력을 사유화하는 비선 논란은 대부분 정권 3년차에 불거졌다. 이를 피하려면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와 의혹 해소가 필요하다. 3년차 신드롬이 시작되면 정권은 급속도로 힘을 잃을 것이고, 국민은 또 달갑지 않은 뉴스들을 견뎌야 할 테니까.
경제 영토 3위 되면 살림살이 나아질까요 12.1 시사인
정부가 배포한 한·중 FTA 참고 자료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FTA의 효과에 대한 정부나 연구소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한·중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산업별로 따져봤다 지난 11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방문한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한·중 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했다. 상당수 언론은 ‘한국의 경제 영토가 세계 3위 수준으로 넓어졌다’고 환호했다.
기본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란, 수출산업 종사자들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내수산업의 희생을 요구하는 제도다. 언론이 ‘경제 영토’ 운운하며 요란한 반응을 보여도 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경제 영토가 3위’라는 것도 결코 자랑할 일은 못 된다. 참고로 경제 영토 1위는 칠레이고, 2위는 페루다.
일각에서는 한·중 FTA 덕분에 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대 1.25%나 높아질 것(5년 이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FTA에 대해 대다수 시민은 관심이 없거나 냉소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토록 떠들썩하게 체결된 한·미 FTA나 한·EU FTA로 우리 경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체감한 시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AP Photo중국 쓰촨성 쑤이닝의 한 LED 공장. 전기·전자 제품의 경우 국제 협정에 따라 관세가 없었기 때문에 한·중 FTA에 따른 수출 확대 효과도 없다.
지난 2007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 같은 국책 연구소들이 합동으로 한·미 FTA가 만들어낼 장밋빛 전망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0.6% 상승(10년 동안 6%)하고, 연간 수출도 23억 달러나 확대(10년 동안 230억 달러)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장밋빛’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황당한 수치다. 국책 연구소들의 추정에 따르면 한·미 FTA ‘덕분에’ 수출이 10년 동안 230억 달러 늘어난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실제로 수출이 증가한 규모가 무려 2조2121억 달러다. 직접적인 비교는 곤란하겠지만, 한·미 FTA에 따른 ‘10년간 수출 증가 추정액(230억 달러)’이 같은 기간 실제 수출 증가 규모의 1%(230억 달러/2조2121억 달러×100)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수출 1%포인트 올리겠다고(이를 최근의 경제성장률로 환산하면 ‘성장률 0.018%포인트 더 올리겠다’고), 한·미 FTA로 나라 전체를 북새통으로 만든 것이다.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처럼 FTA의 효과에 대한 정부나 관변 연구소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한·중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자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한·중 FTA로 관세율이 하락하면서 대중국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국내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고용도 증가할 것이다. 정부가 배포한 한·중 FTA 참고 자료는 그런 기대로 가득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중 FTA가 발효될 경우, 관세 절감 효과(관세 인하로 낼 필요가 없어지는 자금 규모. 그만큼 상품을 싸게 팔 수 있다)가 연간 54억4000만 달러(약 6조원)에 이른다. 관세 절감액이 1조원 남짓한 한·미 FTA의 5.8배, 1조5000억원 남짓한 한·EU FTA의 3.9배다. 기대할 만하다!
그런데 앞으로 한국산 제품을 중국에 어느 정도 더 수출할 수 있을까? 수출을 많이 해야 관세 절감액도 늘어날 것이다. 만약 FTA로 인해 중국산 수입이 대폭 증가하는데 대중국 수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으면, 국내 경기와 고용은 오히려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산과 중국산의 경쟁력 문제다.
일단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산 제조업 상품은 중국산을 도저히 능가할 수 없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의 임금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지만 아직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기술 경쟁력은 어떤가? 만약 한국이 중국에 대한 기술 격차를 유지하거나 더 크게 벌릴 수 있다면 대중국 수출을 더욱 확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경향은 그렇지 않다. 상당수 품목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크게 좁혀졌거나 사실상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나온다.
ⓒ연합뉴스샤오미의 스마트폰(위)은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 제품을 꺾었다.
한국 업체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이미 급감하고 있다. 거꾸로 중국 제품들은 한국 시장으로 치고 들어온다.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꺾은 샤오미 제품들이 한국 시장으로 범람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 10년 동안 컴퓨터 부문 34%포인트, 신발 31.7%포인트, 휴대용품 12.8%포인트, 안경 9.5%포인트, 섬유제품에서 5.4%포인트 감소했다.
그동안 여러 FTA에 우호적이었던 경제 전문지가 한·중 FTA에 대해서만은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서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제조업 상품 1만2000여 품목 중 83%(1만여 개)가 한·중 FTA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야말로 한국 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는 제조업이 “중국 제조업발 쓰나미에 쓸려 내려가는” 사태다.
자동차는 ‘최대 수혜 품목’이라더니…
국내 대표 제조업들의 대중국 수출 전망만 봐도 대충 계산이 나온다. 좋은 이야기부터 먼저 하면,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수출은 한·중 FTA로 상당한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합성수지 제품에 5.5~6.5%, 기초 유분과 중간 원료에 2%의 관세율을 적용해왔다. 이 부문에서 관세가 사라지면 대중국 수출 역시 확대될 것이다. 아스팔트(5.6%), 윤활유(5.4%), 윤활기유(윤활유의 기초 원료·6%) 등의 관세가 인하되거나 철폐되면, 정유업계의 수혜 규모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수출산업들은 큰 이득이 없다. 우선 반도체·컴퓨터 등 전기·전자 제품의 경우, 국제 협정(ITA:정보기술협정)에 따라 원래 관세가 매겨지지 않았다. 관세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한·중 FTA에 따른 수출 확대 효과 역시 있을 리 만무하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그나마 한·중 FTA의 ‘최대 수혜 품목’으로 기대되던 부문이다. 수입 자동차에 대한 중국의 관세율이 무려 22.5%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중 협상에서 자동차는 양허(수입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동차에서 한·중 FTA 이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이니, 자동차 수출 확대 효과 또한 당연히 없다.
ⓒ시사IN 신선영 11월20일 농민단체 회원들이 서울광장에 모여 ‘한·중 FTA’ 반대 시위를 벌였다.
철강 수출에서도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우리라 전망된다. 먼저 중국이 철강을 ‘초민감 품목’으로 분류해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했을 가능성이 높다(박근혜 정부가 한·중 FTA의 세부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직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설사 ‘민감 품목’으로 한 단계 낮춰 분류해서 앞으로 10~20년 사이에 관세를 점진적으로 폐기한다 해도 중국의 철강 기술력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고 있어 한국의 수출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농업 부문에서는 정부의 장담과 달리 국내 농가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측은 한·중 FTA에서 농산물 개방을 최소화(역대 FTA 중 최저 개방)했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전체 농산물 품목 1611개 중에서 1030개(216개 품목의 관세는 한·중 FTA 발효와 함께 즉시 폐지되고 나머지는 점차 인하)가 더 개방되지만, 나머지 581개는 ‘초민감 품목’으로 합의해서 관세 인하 대상에서 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초민감 품목’에 쌀을 비롯해서 고추·마늘·양파 등의 양념 채소류, 소고기·돼지고기·사과·배 등 신선 농산물 같은 주요 품목이 들어가 있다. 이처럼 다른 FTA에 비해 농산물의 관세 철폐 제외 대상(관세를 제거하지 않는 품목)이 많기 때문에 농가에 대한 타격 역시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인 성과만으로 농가들에게 예상되는 피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비교적 급속하게 관세가 인하되는 참깨·콩 등은 국내 수요가 꽤 큰 농산물이다. 가공품의 관세도 급속히 줄어든다. 중국산 김치나 다진 양념 같은 가공품이 한국 시장을 밀물처럼 엄습할 것이다. 살아 있는 소나 돼지(소고기·돼지고기는 관세 인하 대상이 아니지만)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길도 열렸다. 중국산과 경쟁 관계에 있는 농산품의 관세율은 꽤 높은 편이었다. 높은 관세를 낮은 관세로 돌리는 과정에서 농가에 가해질 충격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10~20년의 시간을 둔다고 해도, 중국 농산품의 가격 경쟁력을 한국산이 따라잡기는 힘들다.
한·중 FTA가, 이미 한·칠레, 한·미 등 각종 FTA로 피폐해질 만큼 피폐해진 한국 농업에 결정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권투 시합을 할 때 잽을 많이 허용한 선수는, 경기 후반에 이르러 약간의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실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중 FTA 체결로 인한 우리 농수산업 생산이 2020년에는 최대 20%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3조3600억원으로, 정부가 집계한 한·미 FTA에 따른 농업 피해액 8150억원의 4배가 넘는 액수다. 한·중 FTA 체결로 인한 농업 피해가 이렇게 큰 것은 중국산 농산품의 가격 경쟁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산 농산품에 대해 이미 100~500%에 이르는 높은 관세율을 적용해왔다. 그런데도 중국산은 이미 우리 농산품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기본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는 정부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한·중 FTA가 사실상 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과 농민들은 혼란에 빠져 있다. 정부가 기본적인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법규 검토가 필요하다거나 중국과 미공개를 약속했다는 등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국민과의 소통에 약간이라도 관심 있는 정부라면 협상문 전체가 아니더라도 품목별 관세율 변화 내역 정도는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 정부의 경우, 다른 나라와 FTA를 추진할 때 대내 협상과 대외 협상이라는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서 대내 협상은 FTA로 이익을 보는 산업 대표와 손해를 보는 산업 대표, 그리고 정부 및 의회 대표가 모여서 FTA 협상 범위와 피해 대책 등을 미리 협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합의 사항은 의회에서 법률로 제정되어 협상단의 협상 권한을 통제하는 데 활용된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 FTA 이후에도 양자 간 혹은 다자간 FTA를 다수 추진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미국 수준의 대내 협상 절차를 보장할 법률 역시 필요하다. FTA로 이익을 보는 산업 종사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FTA로 손해를 보는 산업 종사자들이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교한 제도적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FTA의 긍정적 효과만 일방적으로 홍보하면서 잠재적 피해자들의 반발을 억누르기에 바쁜 한국 정부는 결코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노점과의 공존, 안 되는 걸까 12.9 주간경향
“법대로 단속” “생존 위해 영업” 지난 11월부터 서울 강남구청을 시작으로 지자체와 노점상들의 겨울전쟁이 시작됐다. 단속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집기나 판매물품 파손에 따른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두 합법화해 세금을 걷으면 해결될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업형 노점, 생계형 노점이 따로 있고 수입규모도 노점형태도 천차만별이다. 상가 등 일반 상인들의 불만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노점상의 겨울전쟁은 끝낼 수 없는 것일까, 그 속을 들여다봤다.
노점의 겨울은 단속과 함께 온다. 시민들이 겨울 거리의 노점에 대해 호떡이나 붕어빵, 컵에 담긴 어묵 국물을 떠올릴 때, 노점상들은 예고된 단속 일정에 대비할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단속은 단속반과 노점상 모두 맨 얼굴을 드러내게 만든다. 법·제도의 이름으로 영업을 막으려는 쪽이나,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가려는 쪽이나 밀리고 밀어내는 동안 만큼은 ‘투쟁’이라는 인간의 본 모습에 더없이 충실해 있다. 합법과 불법의 다툼은 그 다음의 일이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지나는 인파의 한가운데로 어묵 등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노점이 성업 중이다. | 이상훈 선임기자
물론 단속이 겨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은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잦은 단속을 벌이는 계절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연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한 해 동안의 노점 단속 예산을 모두 집행하고, 또 그만큼의 실적을 바탕으로 다음해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점상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기초지자체일수록 겨울이 오는 것도 빠르다. 단속 예산규모에서 수위를 다투는 서울 강남구청을 필두로 곳곳의 지자체들이 11월부터 강경한 단속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세금 낼 수도” “얼마나 번다고…” 엇갈려
노점상들에게 ‘대목’이라 할 수 있는 초겨울이 단속의 대목이기도 한 현실은 소모적인 충돌만 되풀이하는 결과를 낳는다. 단속에 필요한 용역인력을 쓰는 비용은 물론이고, 단속과정에서 파손된 집기나 판매물품 등의 비용 소모도 적지 않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노점문제를 합법과 불법의 두 영역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현실의 노점과 노점상은 합법과 불법 양편에 모두 발을 디디고 있기 때문이다.
“노점 하는 사람들한테 세금 내면 단속 없애준다고 해봐요. 그럼 백이면 백 다 세금 낸다고 할 걸!” 노점상인 김모씨(54)는 단속과 강제집행이 지긋지긋하다. 서울 강남대로에서는 11월 들어 이미 두 차례 단속반이 들이닥쳐 강제집행을 실시한 바 있다. 11월 27일에도 또다시 단속이 예고돼 노점상인들이 전날 밤부터 밤새 농성하며 노점 주변을 지켰다. 27일은 겨우 강제집행 없이 넘어갔지만 단속 때문에 생기는 물리적·정신적 비용을 감안하면 ‘세금에 도로점용료 내고’ 합법적으로 장사하고 싶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11월 19일 용역인력을 동원한 강남구청의 강제집행 과정에서 용역반과 노점상 양쪽 모두 부상자가 나오는 등 충돌은 어김없이 불상사를 낳았다. 양쪽 다 몸을 사린 27일에는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노점상들은 단속인력이 철수한 뒤에도 한참 동안 농성을 풀지 않고 경계하는 태세였다. 노점을 닫은 채 모여 있는 노점상인들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지나가던 대학생 이학성씨(26)가 기자에게 “떡볶이 뒤엎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봐도 어느 순간부터는 동정심조차 안 들더라”고 말하는 모습을 김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김씨 말대로 노점상 전부가 ‘전면 합법화’라는 해결책을 원할까.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솔직히 말해 이 장사 하면서 세금까지 내야 되면 얼마가 남겠어요. 단속 피하는 재주는 다 있고 어쩌다 걸려도 과태료 5만원 내면 땡인데…. 노점이라고 다 같은 노점이 아니라니깐.” 서울 서대문구·마포구 일대를 돌며 저녁시간대에 화물차 뒤칸에서 순대와 만두류를 파는 노점상인 박모씨(49)의 의견은 정반대였다. 박씨의 표현처럼 “한 점 부끄럼 없이” 밝힌 박씨의 한 달치 노점 수익은 대략 180만~210만원 수준이다.
만두를 찌는 찜기 사이로 올라오는 김을 맞으며 박씨가 말했다. “먹는 게 그래도 마진이 많이 남으니까 한 건데, 요 정도 벌어 가지고는 입에 풀칠이나 하지 뭘….” 박씨 말대로라면 노점도 저마다 수익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늘 있을 수밖에 없다. “명동 같은 데 있는 노점들 봐요. 그 사람들한테는 세금 나와 봤자 푼돈일 거라고요. 단속도 폼만 내는 거고…. 반대로 나는 세금 더 내느니 단속 걱정 있더라도 차라리 지금이 나은 걸.” 이른바 ‘기업형 노점’과 영세한 ‘생계형 노점’ 사이의 거리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얘기다.
상권에 따라 수십만원~억대 수입 극과 극
과연 기업형 노점과 생계형 노점 사이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자신들의 수입을 밝히기 꺼려하는 것은 노점상인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상인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줄여 말한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그나마 객관적으로 이들의 수입을 파악해줄 수 있는 납품업자에게 문의했다. 노점을 비롯해 일반 분식집까지 어묵과 국물 재료 등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자 이모씨(44)는 어묵 하나만으로 한정해도 노점 한 곳당 월 매출은 수십만원에서 최대 800만원대까지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가격 매기기에 따라 다르지만 어묵 한 꼬치에 500원으로 잡으면 국물 재료까지 해도 재료비는 30% 정도거든요. 많이 나가는 데는 겨울 동안 한 달에 거의 100㎏ 가까이도 나가니까 순수익만 해도 500만~600만원 되겠죠.”
이렇게 ‘대박’을 치는 노점은 건물에 매장을 갖고 있는 분식집보다 잘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수는 상권당 많아야 한두 곳에 불과하다. 서울지역의 경우 강남, 종로, 명동, 신촌 등 인파가 몰리는 상권에서나 ‘억대급 연봉’이 가능할 뿐 대부분의 노점은 도시노동자 평균임금(2013년 기준 월 329만9000원)에 못 미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어묵 외에도 계란빵, 붕어빵, 호떡 등 간단한 조리를 거쳐 파는 음식 재료를 납품하는 박씨는 거래 노점 80여곳 중 월 납품액이 100만원을 넘기는 곳은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메뉴는 달라도 마진율은 거의 60~70%로 비슷하니까 재료비로 100만원도 안 나간다는 말은 순수익 200만원이 될까말까 한다는 얘기지.” 단속에 걸렸을 때 내야 할 과태료, 매대 이용료 및 보관료 등을 합하면 순수하게 노점상에게 떨어지는 돈은 더 적어진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이 분식을 판매하는 한 노점 포장마차를 찾아 음식을 사 먹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노점 1번지’로 불리는 서울 명동에 자리 잡은 노점들은 기업형 노점의 대표격이다. ‘복지회’라는 이름을 달고 조직된 270여개의 노점들은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몰려드는 상권의 특성상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점 공간을 점유한 상인이 가족들에게만 물려줄 정도로 알짜배기인 이 상권 노점의 매출규모는 폐쇄적인 노점상 조직의 특성상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명동 한가운데 거리는 들어갈 꿈도 못 꾸지. 좀 떨어져서 남산 가는 주변에 있던 공사장 펜스에다 ‘벽걸이’식 액세서리 노점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두 달 동안 1000만원 정도는 남겼던 것 같아.” 과거 직접 노점을 꾸리기도 했던 납품업자 권모씨(50)의 말로 미뤄 상권 중심부를 장악한 기업형 노점의 수익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소모적 단속 말고 신사협약부터 맺어야”
전국 단위로 노점의 분포와 매출규모 등을 파악한 자료는 아직 없다. 서울시가 파악한 서울시내 노점 수는 지난해 기준 약 8800곳에 달한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노점 영업이 증감하는 폭이 큰 데다 축제나 대형 행사 등 이벤트 위주로 영업하는 노점의 수는 집계하기조차 어려워 현실적으로 정책 대상이 될 노점의 수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여기에 일반 상가 건물에 매장을 갖고 있거나 임대 중인 상인이 매장 앞 보도를 이용해 노점을 여는 식의 영업형태까지 있다. 노점상인들의 구성은 천차만별인 데 비해 노점정책은 강경 단속과 암묵적 인정 사이에서만 왔다갔다 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만 놓고 보면 (노점상들이) 불법인 거 우리가 잘 알죠. 그런데 강제집행해도 얼마 안 있으면 또 그 자리에 들어와버리니까 사실 예산 낭비인 면도 있어요. 그렇다고 전면 합법화하면 일반 상인들이나 주민들 민원에다가 법령에 조례에 엄청 복잡해져서 들들 볶일 텐데, 그건 그거대로 정착할 때까지 문제 많을 거예요.” 익명을 요구한 한 구청의 관계자도 속내는 복잡했다. 그는 오히려 법이 현실을 그대로 다 담을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서 물리력을 쓰지 않기로 하는 양쪽 간의 신사협약을 맺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노점단체 관계자와도 의견이 통했다. 전국민주노점상연합의 최인기 사무처장은 “일단 소모적인 단속만이라도 멈추고 서로 조금씩이라도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은 서로가 너무 불신이 커 한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거리를 불법점유한다는 인식을 조금만 전환하면 거리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금이 노점상들의 아킬레스건인 건 맞아요. 인정 안하는 것도 아니고, 자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대기업들은 더 많이 탈세하고, 일반 상가의 상인들도 길에다 비품 내놓고 도로 무단점유하는 부분도 많잖아요. 형평성 차원에서 그 정도만이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노점을 보는 시민들 인식은 ‘긍정과 부정 사이’
지난해 2월부터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일대에 ‘컵밥 단속’이 시작됐다. 컵밥은 종이컵 모양의 일회용 밥그릇에 밥과 반찬을 담아 간편하게 먹는, 노량진의 대표적인 노점 음식이었다. 컵밥 노점은 단속을 피해 수주에서 수개월간 자리를 떴다가 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불만이 커진 당사자는 다름 아닌 주머니가 가벼운 고시준비생과 재수생들이었다.
“값도 싸지만 공부할 시간 아낀다는 것 때문에 길거리에 서서 후다닥 컵밥을 먹는 거였거든요. 매일은 아니라도 한 번씩 먹기엔 나쁘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없어졌을 땐 뭔가 씁쓸했죠.” 다행히 지금은 시험에 합격해 노량진을 떠난 임지연씨(28)는 컵밥 노점이 사라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일반 식당에서도 컵밥 메뉴를 팔기도 했는데, 가격을 올려서 파는 걸 보니 ‘이 돈 주고 사 먹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컵밥 외에도 떡볶이, 토스트 등 간단한 요깃거리 음식들도 자취를 감췄다. 단속이 뜸해진 틈을 타 돌아온 노점을 임씨의 코가 먼저 반겼다. “골목을 돌아서 노점 음식 냄새가 나니까 저도 모르게 침이 넘어가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노점을 바라보는 인식이 임씨처럼 호의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점상들도 피부로 느낄 정도로 여론은 악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지역을 서울 서초구에서 관악구로 옮겨 영업 중인 노점상인 신모씨(62)는 자리를 옮긴 이유로 노점 주변 상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민원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곱창이랑 순대볶음을 주로 저녁시간에 파는데, 주변에 상가가 별로 없는 주택가 주변에서 장사를 해도 경찰이 오더라고요. 신고 들어왔으니까 (장사를) 접든가 옮기든가 하라데요.” 경찰이 직접 과태료를 부과하진 않지만 반복되는 민원과 신고에 신씨는 결국 자리를 옮겼다.
딱히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노점단체 회원들과의 논의 끝에 ‘경쟁’ 때문에 여론이 나빠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신씨가 이전에 자리 잡았던 골목 주변으로도 품목은 다르지만 노점이 늘었던 바 있다. “알고 보니 제가 영업 안하는 낮시간에도 고물상부터 해서 각종 ‘차장사’ 트럭들이 늘었더라고요. 그러다 주민 차량이랑 사고도 나고 주차 시비도 생기고 그랬다니까, 그러면 자연히 민원이 많아졌겠죠.” 그렇다고 해서 영업할 자리를 옮기기는 쉽지 않다.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고, ‘자릿세’를 안 내도 되는 구역을 찾다보면 또다시 노점이 몰려 경쟁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에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노점문제도 더 해결이 안 되는 거겠죠. 이 바닥도 부익부 빈익빈인데 일부 기업형 노점들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이 영세 노점에도 쏟아지니까….” 한 노점단체 관계자는 그나마 노점 조직에서는 영업시간과 교대제 등 규약이 있는데 그마저도 거부하며 탈회할 경우 경쟁 과열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거리만의 규칙’마저 사라진 곳에 따가운 시선만 남은 셈이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12.9 주간경향
평생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전전하며 사회철학자가 되었던 에릭 호퍼는 자서전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경우 약자가 살아남을 뿐 아니라 강자를 이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약자들에게서 분출되는 강렬한 에너지는 그들에게 특수한 적응력을 부여해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패자들이 새로운 세상의 개척자가 되는 것을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지켜본 호퍼의 체험적 증언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글 속에서도 호퍼의 이 같은 말이 타당할 수 있는가. 당장 한국 사회에서 약자들은 강자에게 번번이 패하고 있지 않은가.
호퍼의 말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은 점점 더 뒷걸음질치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법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 장악에 맞서 파업을 했던 YTN 해고자들에게 패소판결을 내려 이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막았다. 방송인이 공정방송을 지키겠다고 일어선 의로운 행위가 해고의 사유로 인정되는 일이 법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다. 역시 대법원은 언젠가는 일터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6년의 세월을 버텨온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지금 그대로 길바닥으로 내버렸다.
차갑기만 한 법 앞에서는 26명의 죽음조차도 아무런 반향이 없었고, 법은 더 이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이라고 다를까.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불완전한 특별법을 받아들였건만 막상 진상규명의 앞길은 짙은 안개 속이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은 이제는 세월호를 잊어야 한다는 강자의 논리 앞에 갈갈이 찢겨지고 말았다. 2014년 한 해를 마감해 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억울하고 설움받는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줄 모르는 사회는 이미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정지된 사회이다. 그러면 이래도 약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이제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실제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좌절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돌아보면 힘없는 민초들, 그리고 그들의 편에 섰던 깨어 있는 지성들의 시련과 좌절은 언제나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민초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살아남았고 다시 힘을 추슬러 일어났으며,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낫게 바꾸어 왔다. 이 나라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까지 반세기가 걸렸고, 독재정권 시절의 온갖 조작사건들이 바로잡히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걸리지 않았던가. 시간이 걸리지만 가야 할 길을 놓치지 않고 걷다 보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세상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은 암담해 보이지만 역사에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긴 호흡으로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나 자신을 추스르고,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손을 더 굳게 잡을 때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 앞으로 갈 수 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한결같고 끈질긴 삶의 태도가 절실한 세월이다.
시인 김수영은 <풀>에서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며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김수영의 걱정처럼 다시 날이 흐리면 풀뿌리가 누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풀뿌리만 지켜진다면 풀은 머지않아 다시 일어날 것이다. 흐렸던 날이 가면 풀은 다시 바람보다 먼저 웃게 될 것이다. 호퍼가 했던 말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약자를 이토록 유린하는 시대가 천년만년 갈 수 있겠는가. 다들 힘을 내자. 유창선-시사평론가
노래출처: 광주지인
Stormy Monday Blues / BOBBY BLUE B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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