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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12.2~12.12 독한 시민’이 되자

by 이성근 2019. 12. 15.

혁신하는 자가 이긴다 경향 2019.12.02

임종석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경향 2019.12.02.

검찰의 청와대 수사는 총선을 앞둔 선거개입이다한겨레 2019.12.02.

깡패국가들에 감연히 맞서라  경향 2019.12.03.

김진표 총리설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우려 한겨레 사설

곤장 100대에 처해질 수능 성적 사전 유출 노컷뉴스 2019-12-03

산재와 계급 대물림 경향 2019-12-03

울산 고래고기 사건 경향 2019-12-03

김진표 총리? 감동도 메시지도 없다 한겨레 2019-12-04

나라를 어지럽히는 검찰 경향 2019.12.05

 

풍수지리와 미세먼지 경향 2019.12.05

우리가 김용균이다 한겨레 2019.12.05.

70안보팔이이제 그만 미디어오늘 2019.12.07.

민주당이여, 제발 노무현의 꿈을 기억하라 한겨레 2019.12.08.

성명서 발표한 법조기자들에게 경향 2019.12.08.

가난한 노인, 빈곤한 정책의 나라 한겨레 2019.12.09.

 

검찰, 그들만의 나라 경향 2019.12.10

민중에 등을 돌린 전문가들 한국 2019.12.10.

역대급 군비증강 해놓고 에 평화 말할 수 있나? 프레시안 2019.12.11.

민주노총 때려 김진표 구하려는 치졸한 발상 한겨레 2019.12.11.

독한 시민이 되자 경향 2019.12.12.

미친 집값, ‘불로소득 청와대한겨레 2019.12.12



 

혁신하는 자가 이긴다

일부 언론은 황교안 대표의 단식 이후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반등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은 그 직전에 잠깐 빠졌던 2~3%포인트를 다시 회복했을 뿐이다. 6개월 전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5월 말에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2%였는데 며칠 전인 11월 말 지지율은 23%6개월 동안 딱 1%포인트 올랐을 뿐이다(이하 갤럽 자료 기준). 중간에 많이 올랐다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소위 조국사태가 정점으로 달려가던 10월 중순에 27%를 찍은 것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이었다. 자유한국당에 가장 유리한 판국에서도 민주당 지지층 2~3%를 빼앗아 오는 것에 그쳤고, 이들은 한 달 만에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왜 오르지 않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 요인의 결합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 국정농단과 탄핵을 거치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자유한국당은 아예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거대 보수정당이 이런 처지에 놓였다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암울한 현실이다. 둘째, 이런 현실을 타개하려면 자유한국당은 앞장서서 보수의 혁신을 해나가야 할 텐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답이 없다보니 자꾸만 태극기부대를 곁눈질하면서 퇴행한다. 특히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시대착오적이다. 황 대표는 원외이자 당내 세력 부재의 한계를 절실히 느낄 것이다. 결국 그의 선택은 장외투쟁으로 일관하는 것인데, 그가 당 대표로 재임한 10개월 동안 국민들이 기억하는 것이라곤 장외투쟁밖에 없을 정도이다. 1야당의 대표로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이지 못했다. 나 원내대표 역시 원내대표 1년간 오직 투쟁 일변도의 선택만 해왔다. 그의 선택을 보다보면 15년 전 4대 개혁입법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데자뷔가 겹친다. 강경투쟁과 종북좌파 몰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그때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몇 가지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내부 분열과 투쟁이 심각했으나 지금의 민주당은 너무 안 싸워서 문제다. 당시에는 과거사법, 사학법, 언론법 등 사안별로 각당과 계파가 조금씩 입장이 달라서 여당은 여러 개의 전선을 동시에 막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선거법과 공수처법으로 전선이 단순하다. 여당으로서는 비교적 수비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당시 박근혜 대표는 지금의 나 원내대표가 가지지 못한 아빠 찬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뭘 해도 무조건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때와 같은 전략은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실 지지율이 변하지 않는 것은 다른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6개월 전 민주당 지지율은 39%, 엊그제 지지율은 38%이다. 조국사태로 민심 이반이 가장 심각했을 때 36%까지 내려간 것이 전부이고 금방 회복되었다. 11월 마지막 주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8%, 자유한국당 23%, 무당층 24%, 나머지 정당 모두 합쳐 15% 남짓이고, 이것은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패턴이다. 자유한국당의 반대쪽 끝에 서있는 청와대와 민주당이 더 이상의 합의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패턴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36%를 지켰으니 마지노선을 확인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공연히 중도적인 모습을 보였다가 지지층 이탈만 불러올 것을 걱정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당장 기댈 데가 태극기부대 밖에 없어서, 민주당은 지지층 이탈이 걱정돼서 각각 자신들의 영역에 머문다. 그러는 사이 민생은 엉망이 된다. 아마도 외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199개 법안 필리버스터에 공감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민식이법원포인트 국회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여당의 정치력에 점수를 줄 국민이 몇이나 될까. 여야가 합의한 데이터 3법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회가 성장을 얘기하고 민생을 얘기할 때 공감해줄 국민이 몇이나 될까. 24%의 무당층은 갈수록 더 실망하고 불신을 쌓아간다.

 

정확히 4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새누리당이 여당이고 20대 총선을 5개월 앞둔 201511월 마지막 주 자료이다. 지지율은 새누리당 40%, 새정치민주연합 23%, 무당층 30%이다. 여야가 바뀌었을 뿐 지지율은 지금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총선 결과는 어찌 되었나. 민주당 123, 새누리당 122, 국민의당 38석이다. 그 당시 민주당은 대선에서 박근혜를 도왔던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영입하는 등 파격적인 혁신으로 지지율 격차를 뒤집었다. 지금 양당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38%이든, 23%이든 지금 가진 것은 총선에서는 의미가 없다. 마침 보수정권과 진보정권 창출에 모두 기여한 경험이 있는 김종인 이사장은 이번에 중도 빅텐트를 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진보, 중도, 보수 중 누가 혁신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19.12.02 20:53


  임종석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 왜 정치를 떠나겠다고 결심한 건가.       

“2000년 만 34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50대 중반쯤엔 정치를 그만하고 싶었다. 정치는 나 말고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그게 통일운동이다.”

      

- 전격적이었다. 언제 결심했나.        

불쑥 결심한 게 아니다. 특히 최근 국면을 거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인간의 품격이라고 할까,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조국사태최근 국면이라고 표현했다. 조국사태를 겪으며 86 진보 꼰대들의 이중성, 위선, 언행 불일치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그는 국회 운영위에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내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비난하자 대부분 인생과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의원님이 말씀할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했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건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처럼 들렸다. 조국 법무장관 지명은 그가 청와대를 나온 뒤의 일이다. 바깥에서 그는 조국 법무장관 기용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조국은 법무장관으로 갈 게 아니라 총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 종로 지역구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었나 

지역구 때문이 아니다. 사실 이대로 가면 종로 공천 가능성은 60% 이상이었을 것이다. 괜히 정세균 의장에게 불똥이 튄 것 같아 미안하다.”

    

- 총선을 건너뛰고 서울시장 후보로 갈 계획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시장도 제도권이다. 이번에 그것도 함께 버린 거다.”

      

- 불출마 선언이 86용퇴론에 불을 붙인 셈이 됐는데 

“86 출신 다른 의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집사람에게 그 고민을 얘기했더니 각자가 감당할 몫이라고 하더라.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 누구와 상의한 적이 있나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의 갈등설도 나온다 

아무런 갈등이 없다. 양 원장은 2016년 나를 문재인 후보 캠프로 끌어들인 사람이다.”

    

- 총선 때 여기저기 지원 요청이 올 텐데 

정치를 떠난다고 했는데 지원 유세를 나가는 건 이상하지 않나. 딱 자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 통일운동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가 

남북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에 한계가 있다. 통일이 먹거리요, 일자리요, 성장이다. 2004년 설립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통해 남과 북이 공동 이익을 볼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갈 계획이다.”

       

- 그런데 북한 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기대 이상으로 내놓았다. ·경제 병진정책에서 핵을 내놓기로 결심하고 군부를 어렵게 설득해 왔다. 미국은 북한 문제를 풀려는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 빼고는 아무도 없다. 백악관·행정부·의회·언론 모두 북한을 불량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불량집단과 무슨 딜(deal)이냐고 한다. 이대로 내년 봄 키리졸브 훈련이 재개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3월까지가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는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유재수 감찰중단 의혹에 대해 누가 윗선이 나 아니냐고 물어보더라. 난 유재수의 유자도 모른다. 그런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우리가 만났을 때는 김기현 울산시장 선거 건이 불거지기 전이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친박계 공천으로 몰락했다. ‘친문계인 임종석의 불출마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주류의 자기희생은 향후 여권이 가차없는 인적쇄신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통일 관련 얘기를 많이 했다. 나는 통일과 정치가 다른 영역인가, 물에 금을 긋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박래용 논설위원 경향 2019.12.02.

 

검찰의 청와대 수사는 총선을 앞둔 선거개입이다

경찰이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수사를 통해 선거를 앞둔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수사권 남용이며 선거개입 행위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가 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며 검찰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이런 명제가 가능하다. “검찰이 총선을 5개월 앞두고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수사를 통해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수사권 남용이며 총선에서 여권을 불리하게 만들기 위한 명백한 선거개입 행위다.” 실제로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총선에서 여권 전체에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이런 말에 검찰은 아마 펄쩍 뛸 것이다. 지금 진행하는 수사는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으며,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검찰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자가당착이고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민감한 시기에 정치적 파장이 있는 사안에 대해 수사를 하는 데 어찌 정치적 셈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울산시장 비서실장 비리 수사의 경우도 경찰 입장에서 보면 도랑 치고(토착비리 척결) 가재 잡는(선거에 영향)’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검찰 수사를 보면 도랑을 치기보다는 가재를 잡는 데 더 역점이 있어 보인다. 울산시장 측근들에 대한 경찰 수사의 정치적 의도가 2~3할쯤 된다면 검찰 수사의 정치적 의도는 7~8할은 돼 보인다. 그런데도 선거를 앞둔 경찰 수사는 직권남용에 선거개입이지만, 검찰이 하면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며 선거개입이 아니라는 말을 검찰은 어떻게 그리 당당하게 할 수 있는가? ‘검로경불’, 검찰이 하면 로맨스고 경찰이 하면 불륜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했다. 이런 태도야말로 한국 검찰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오만함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게다가 경찰의 불륜이 조그만 불장난 정도라면 검찰의 불륜은 나라 전체를 태울 수 있는 위험한 불장난이라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검찰이 총선 결과에 관심이 없다는 식의 발뺌을 한다면 그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다. 검찰이 정치 풍향에 얼마나 민감한 조직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게다가 내년 4월 총선 결과는 검찰의 앞날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예를 들어 총선 다음날 아침 신문들에 일제히 이런 기사 제목이 실렸다고 상상해보자. ‘여당 총선 압승공수처법 등 단독 통과 가능해져검찰 개혁 탄력받을 듯’. 검찰의 현재 아군은 공수처 설치 등을 반대하며 단식농성까지 벌인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이다. 공수처법안이 국회 신속처리안건에 올라있긴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극력 반대하면서 20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그런데 다음 총선에서 검찰의 아군인 자유한국당이 참패를 당하고 여당이 검찰 개혁 법안을 단독 통과시킬 수 있을 만큼 압승을 거둔다면? 검찰로서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총선에 개입해야 할 동기가 명백한 셈이다.

 

검찰의 수사 진행 과정을 들여다봐도 정치적 의도가 물씬 풍긴다. 검찰은 자유한국당이 이미 지난해 3월에 고발한 사건을 18개월 동안이나 묵혀오다가 갑자기 수사 주체를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기고 청와대를 향한 전방위적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수사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수사를 빨리 끝내고 싶으면 초스피드로 진행하고 아니면 한없이 질질 끌고, 검찰 쪽 사람이 관련된 비리 사건은 봐주기 수사로 일관하지만 평소 밉게 보인 사람에 대해서는 없는 죄도 뒤집어씌우려는 태도, 이런 검찰의 고질적 병폐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이번 사건이다. 바꿔 말하면 앞의 18개월은 검찰의 명백한 직무유기요, 뒤의 행위는 자의적 검찰권 행사의 전형적인 예다.

 

검찰은 사건을 묵힌 이유에 대해 지난 3~4월 경찰에서 진행한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수사가 검찰에서 최종적으로 무혐의로 종결된 뒤 수사를 시작했다며 그 뒤로도 경찰의 비협조로 수사가 늦어졌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사안의 성격상 경찰의 선거개입 혐의 수사를 김 시장 측근들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릴 때까지 굳이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 자유한국당에 고발당한 황운하 대전청장이 그동안 울산지검에 빨리 수사를 매듭지어달라고 요청해온 점에 비춰보면 경찰의 비협조로 수사가 늦어졌다는 설명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검찰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출입기자들에게 보냈다는 해명문 중에는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김기현 시장 수사라고 표기한 점이다. 경찰은 김 시장의 동생과 비서실장에 대해서만 수사했을 뿐 김기현 시장 본인에 대해서는 수사한 적이 없다. 동생의 경우 한 건설업자가 고발해서 수사에 착수했고, 이른바 청와대 하명수사와 관련이 있는 사건은 비서실장 비리 혐의 수사 한 건이다. 더욱이 경찰은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동생과 함께 고발된 김 시장에 대해서는 피고발인이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전환하고 소환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검찰은 마땅히 김기현 시장 동생·비서실장 수사라든가 김기현 시장 측근 수사라고 써야 옳은데도 시종일관 김기현 시장 수사라고 표기했다. 그것이 단순한 실수일까? 평소 스스로 정확하고 엄밀하다고 자부하는 검찰이 그럴 리는 없다. 이런 표현법에는 사건의 의미를 왜곡하고 부풀리려는 고의적 의도가 숨어 있다. 검찰은 따지고 보면 김기현 시장 측근 수사는 바로 김기현 시장 수사나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문하고 싶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문재인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는 문재인 대통령 수사인가? 사실 검찰은 내심 그렇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검찰이 김기현 전 시장 동생과 비서실장 비리혐의에 대해 이례적으로 99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불기소 처분 결정문을 남겼다는 대목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검찰이 부정부패 혐의에 대해 그토록 신중하고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노심초사했는가. 수사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 기소를 남발했다가 재판에서 무더기로 무죄 판결이 나도 나 몰라라 하는 검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리는가. 따라서 검찰이 이례적으로 장문의 불기소 처분 결정문을 남긴 데는 이례적인 동기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경찰의 선거개입 혐의 수사를 위한 명분 쌓기용 성격이 짙다.

 

이 사건은 애초 울산 지역에서 벌어진 이른바 고래고기 환부 사건등을 둘러싼 검-경 갈등을 빼놓고는 그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 고래고기 환부 사건은 2016년 초 경찰이 시가 40억원에 이르는 불법 고래 포획·유통업자를 일망타진하면서 압수한 밍크고래 27톤가량을 울산지검 황아무개 검사가 일방적으로 고래고기 유통업자들에게 돌려준 사건이다. 환경단체가 20179월 황 검사를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으로 경찰에 고발하자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황 검사를 피고발인 신분으로 수사하려 했다. 경찰이 감히 분수도 모르고검사를 수사하려 나선 것이다. 게다가 당시 울산경찰청장은 평소 검찰 저격수로 이름난 황운하 청장이었다. 검찰이 경찰과 황 청장에 대해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이후 검찰은 사사건건 경찰이 하는 일에 딴죽을 걸었다는 것이 현지 취재기자들의 전언이다. 김기현 시장 측근 비리혐의 경우도 현지에 워낙 소문이 무성해 검찰 스스로 내사를 할 정도였는데도 막상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검찰은 압수수색 청구 등에서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검찰은 평소 눈엣가시 같은 황 청장을 어떻게든 손봐주려고 불기소 처분 결정문부터 장문으로 써놓았고, 그 뒤 사건을 종결짓지 않고 질질 끌다가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향한 공격의 흐름 속에서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금 청와대와 경찰의 선거개입이라는 프레임을 짜 놓고 그 프레임에 모든 것을 짜 맞추어 몰아가는 양상이다. 그리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검찰에 맞장구를 치며 여론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찰의 무리수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경찰이 청와대에 울산 수사 상황을 몇 차례 보고한 것이 범죄행각을 뒷받침하는 대단한 증거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대목도 그렇다. 김 시장 측근 비리 수사는 이미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때부터 정치쟁점화돼 있었다. 자유한국당이 매일 각종 집회를 여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시끄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손을 놓고 상황 파악을 안 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도 검찰과 보수언론은 모든 것을 청와대와 경찰의 은밀한 범죄행위로 일방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울산시장 측근 비리혐의 수사 진행 과정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있다. 황운하 청장이 수사가 개시된 뒤 얼마 안 돼 경찰청의 권유로 수사지휘 취소 결정을 하고 수사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경찰청 훈령에는 수사하는 경찰관 본인이 내가 수사하면 공정성을 의심받으니 수사에서 빠지겠다고 하면 경찰청의 승인을 받아 수사 라인에서 빠지는 제도가 있다. 자유한국당은 경찰의 김기현 시장 비서실장 사무실 압수수색이 있자마자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경찰을 공격했고, 특히 황 청장 개인을 타깃으로 삼아 집중 공격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난처해진 경찰청이 황 청장에게 수사지휘 취소 결정아이디어를 냈고 황 청장은 이를 따른 것이다. 황 청장은 그 뒤로 나는 그 사건 수사에 대해 전혀 보고도 받지 않고 지시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그 말의 진실 여부는 확인해보면 금방 드러날 것이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황 청장이 수사 라인에서 빠졌다면 검찰이 몰아가는 청와대와 경찰의 은밀한 범죄행위라는 프레임의 한 축이 무너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말하는 대로 울산시장 비서실장 비리혐의에 대한 수사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관심을 집중한 사활적 사안이었다면 당연히 청와대-울산경찰청장의 핫라인이 가동돼야 옳다. 그런데 수사 진행 상황 보고는 울산경찰청 수사과에서 경찰청 수사국으로 실무자들이 올리는 수준이었다. 그 보고가 설령 청와대에 전달됐다 한들 얼마나 은밀한 범죄행각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김기현 전 시장이 측근 비리 수사 때문에 낙선했다는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울산 지역에서는 시장은 물론 5곳의 구청장·군수 선거에서 모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광역의회도 비례대표 의원을 포함해 전체 22석 가운데 17석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고 자유한국당은 5석에 그쳤다. 당시 민심이 이미 자유한국당에서 떠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김 전 시장이 측근 비리 수사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며 선거무효 소송을 내겠다고 하는 것은 소가 웃을 노릇이다.

 

검찰 정상화의 요체는 각 수사기관끼리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 등도 수사기관 상호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의 비위 혐의 수사를 위해 다른 수사기관이 검찰청을 압수수색을 할 수도 있어야 정상적인 나라다. 만약 검찰의 이번 수사와 관련해 검찰청을 압수수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누가 하명했는지부터 시작해 경천동지할 내용이 숱하게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 수사 착수 때부터 이미 작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년 총선 때까지 청와대를 향한 총공세를 질기게 이어갈 것이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도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고, 울산 사건에 대한 수사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심각한 상처를 입고, 여권 전체가 선거를 앞두고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지금 검찰은 자기 권력의 축소에 대항해 결사항전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거개입 혐의 수사를 빌미로 검찰이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참으로 역설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이런 비판에 대해 혐의가 있으니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수사기관이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수사를 통해 선거를 앞둔 특정 정치세력을 공격하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수사권 남용이며 선거개입 행위이다.” 이 말이 경찰에만 해당되고 검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검찰은 계속 우길 것인가. ‘검로경불의 허구성에 이제 국민이 눈을 돌려야 할 때다. / 김종구 편집인 한겨레 2019.12.02.

 

깡패국가들에 감연히 맞서라 

전 세계에서 국제협약을 제일 안 지키고 세계평화를 자주 위협하는 불량국가는 어디인가? 단연코 미국과 일본이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은 핵탄두 장착용 중·단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고자 중거리핵전력조약을 체결했으나, 트럼프는 올 2월 탈퇴 뜻을 밝혔고 푸틴도 맞대응을 했다. 이는 실제 조약 파기로 이어져 핵무기 경쟁이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트럼프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미국 이익에 반한다2017년 탈퇴를 선언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려고 전 세계가 마련한 약속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위인 미국이 깬 것이다.

 

미국의 이런 행태는 뿌리가 깊다. 하워드 진이 쓴 <미국 민중사>를 보면, 미국 정부는 인디언과 400여건이나 조약을 맺고 서명했지만 단 한 건도 안 지켰다. 해마다 수만명이 살상되는 지뢰를 제거하는 협정에 100여개국이 서명했는데 미국은 하지 않았다. 국제적십자에서 집속탄 사용 중지를 각국에 호소했지만 미국은 거부했다. 집속탄은 수천개 알갱이탄이 쏟아져 인명을 대량살상하는 무기로 미국은 베트남전과 걸프전에서 이를 사용한 전력이 있다. 1999년 로마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미국은 상설 국제전범재판소 설립에 반대했다. 미국 군 지도자들이 법정에 설 수도 있음을 두려워한 것이다.

 

미국은 핵폭탄을 실전에 사용한 유일한 나라다. 한국인은 일본인 다음으로 원폭 피해를 많이 입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징용자가 많아 한국인은 피폭자 7만명, 사망자 4만명에 이르렀다. 미국은 정치경제적 이득을 노려 베트남, 그레나다, 파나마, 이라크,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 수십개국을 침공하거나 공작을 벌임으로써 독재정권을 수호하거나 선거로 집권한 정부를 전복했다.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등은 북한, 이라크 등을 깡패국가’(rogue state)라 불렀으나, 미국의 지성 촘스키는 군산복합체인 미국이 바로 깡패국가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전쟁 명분을 조작하거나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작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였다. 청일·러일·중일·태평양전쟁이 모두 그랬다. 태평양전쟁 때도 진주만을 기습한 뒤 포고문을 전달하는 수법을 썼다.

 

방위비 분담금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둘러싸고 한··일이 갈등하고 있는데 두 상대방이 이런 나라임을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미관계는 혈맹이라며 동맹이 깨지면 큰일날 줄 아는데, 트럼프에게 혈맹은 없다. 이슬람국가(IS) 퇴치를 위해 함께 피 흘려 싸운 쿠르드를 배신하고 철군한 걸 보라.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은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모두에 자해행위라고 썼다.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트럼프가 쥐고 있다우리는 미국에 필요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안보 컨설팅 회사 대표인 피터 자이한을 인터뷰해 방위비 50억달러? 참 싸다고 크게 보도했다. 그는 한국은 일본을 절대 못 이긴다일본과 손잡지 않으면 국가 생존이 위태롭다컨설팅했다.

 

보수언론이 그런 논조를 펴왔는데도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96%가 방위비 증액에 반대했다. MBC 조사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 감축해도 상관없다는 의견이 55%였다. 보수언론은 이런 여론은 전혀 부각하지 않고 정부의 협상 자세를 나무라며 힘을 뺀다. 연애든 협상이든 매달리는 쪽이 불리해진다. 두 나라가 협상할 때 국민의 반대가 큰 쪽이 협상력도 커진다. 이는 정치학자 퍼트넘의 양면게임(Two Level Game) 이론으로,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내세우면 상대방의 양보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의 GSOMIA 강요는 한··일 동맹을 굳히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완성해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웃인 북한이나 중국과는 관계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빅터 차의 칼럼을 통해 한·미동맹이 고장 나면 퍼펙트 스톰이 닥칠 거라며 겁을 주었다. 그러나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요구가 동맹국을 모욕하고 미군을 용병으로 격하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전담금수준이다. 협상이 결렬돼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한다면 오히려 자주국방의 기회가 올 수 있다.

자주국방이 군비 증강으로 나아가서도 안된다. 문재인 정부 국방예산은, 무기 구입을 강요하는 미국 탓이기도 하지만, 집권 2년반 만에 10조원이나 증가했다. 폴 케네디는 모든 전쟁의 승자는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였으며 군사적으로 가분수인 나라는 패배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냉전이 사라진 지구의 5대양 6대주에 함대와 군대를 전개해놓고, 남북한은 군비경쟁의 질곡에 빠져 있다. 한반도만이라도 군비감축에 바탕을 둔 평화 정착으로 나아가야 한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안보를 통한 평화보다 평화를 통한 안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 여론도 방위비를 더 부담하면서까지 미군 주둔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니 지금이 주둔군 감축에 참 좋은 기회다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김진표 총리설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곧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 후임으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력하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 후보자로 공식 지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김 의원이 그동안 보여온 행보가 촛불 민심을 계승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종교투명성센터는 지난달 27김진표의 총리 지명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김 의원은 종교인 과세법을 누더기로 만든 장본인이고 그 공으로 개신교계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표창장까지 받았다고 지적했다.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의원은 20178월 종교인 과세의 2018년 시행을 코앞에 두고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고 철회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기획재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에서 종교인 과세 범위를 대폭 축소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재부 출신인 김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신교단체는 20185종교인 과세가 비교적 무난하게 정착하는 데 많은 애를 썼다며 김 의원에게 감사패를 줬다.

 

앞서 경실련은 26차기 국무총리는 경제구조 개혁과 국민 통합에 적합한 인사가 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경실련은 차기 총리는 우선적으로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구조 개혁과 민생경제 회복에 나설 수 있는 인사라야 한다지금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김진표 의원 등 후보자들이 이런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매우 강한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또 약탈경제반대행동은 론스타 사건 관련자 김진표의 국무총리 임명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성소수자 차별을 선동하는 자는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통인 김 의원이 총리 적임자라는 의견도 우리 사회엔 물론 있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경제정책 경험이 많은 것은 맞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을 통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진하는 마당에 그가 지금도 내각의 사령탑으로 적임자인지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그의 총리 기용은 개혁을 중단하고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잘못된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김 의원은 경제부총리 시절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청와대는 4선인 김 의원을 인사청문회에서 야당도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안전한 카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가 총리 자질의 최우선 조건일 수는 없다. 이번 개각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 국정운영 방향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후임 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정책기조를 이어가면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물이 바람직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진표 의원의 국무총리 임명을 많은 국민이 반대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문 대통령은 김 의원의 총리 기용에 왜 비판과 반대가 많은지 다시 한번 숙고하길 바란다./한겨레 사설

 

 

곤장 100대에 처해질 수능 성적 사전 유출

조선시대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꼽힌 과거시험에서도 기상천외한 부정행위가 횡행했다. 조선 숙종 때 과거시험 부정행위 사건인 '기묘과옥'에선 합격자 35명 가운데 15명이 시험지 바꿔치기를 하거나 시험 감독자를 매수해서 답안지를 고치다가 발각됐다. '임진과옥'으로 불린 부정행위에선 시험 출제 관리들이 친구 아들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시험문제를 사전 유출했다 적발된 기록이 있다.

 

시험 출제와 관리 기술이 발전하지 못 한 탓으로 돌릴 과거의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시험 출제와 관리에 첨단 과학 기술을 도입한 상황에서도 수능 성적 사전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4일로 예정된 대입 수능시험 성적 통지일을 앞두고 3백여명의 수험생들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수능 성적을 미리 확인한 사실이 드러났다. 성적 발표를 앞두고 초 긴장상태의 수험생들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당 학생들은 웹 브라우저에서 제공하는 개발자 도구 기능을 이용해 클릭 몇 번으로 평가원에 보관중인 자신의 성적을 손쉽게 빼냈다고 한다.

 

일 한 수험생 커뮤니티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미리 출력하는 방법(왼쪽)이 공개되면서 수능 성적 공식 발표를 이틀 앞두고 일부 수험생이 수능 성적을 확인하는 일이 벌어졌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성적 사전유출은 'N수생'만 가능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험생 50만명의 대입 시험을 주관하는 평가원의 허술한 관리체계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무엇보다 대입 면접고사나 논술고사가 치러진 시점 이전이었다면 수능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근본적인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평가원에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그동안 학원가에서는 매해 수능 시험 뒤 미리 수능 성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고 한다.

 

사실 평가원의 보안 시스템의 문제는 이번만이 아니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 평가원의 중등 교원 임용 시험 관리 실태를 감사한 뒤 전산 보안 관리와 시험 채점 업무 등에서 부적절한 사례를 발견했다고 지적했다. 왜 허술한 시스템을 방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평가원은 이미 지난 1992년 문제지 유출 사건과 2014년 출제 오류 사건 등으로 시험 출제 관리에 신뢰를 추락시킨 바 있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2020학년도 수능 채점결과 발표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가뜩이나 최근 대학 입시는 형평성과 공정성의 측면에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강한 불신을 받고 있다. 관리 부실로 빚어진 이번 사건에 대해 적절한 조사와 문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세종은 과거시험의 부정행위에 연루된 응시생이나 관리감독자에 대해선 곤장 100대에 3년간 중노동을 시키는 등 엄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시험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지영한 논설위원 CBS노컷뉴스 2019-12-03

 

산재와 계급 대물림

20191121일 경향신문이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명단을 1면에 게재했다. 1면을 꽉 채운 명단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구구절절한 어떤 말보다도 강력했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1200명의 명단이 가리키는 이정표는 무엇일까? 신문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실업이 문제고 최저임금이 중요한데 왜 산재일까?

 

사실 산재는 노동운동이나 노동연구에서도 주변부에 속한다. 고용이나 임금 문제에 비해 당사자 수가 적은 데다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논문도 사회학자보다 의료인이 쓴 게 많다. 산재추방운동은 현재 노동안전보건운동으로 불리는데 당사자운동에서 대책위 구성 같은 지원활동을 거쳐 노조활동의 일부가 됐다가 최근에는 건강권운동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1987년 김성애의 투신자살을 계기로 전개된 인천지역 산재노동자들의 경인국도 가두시위가 당사자운동에 해당한다면 1988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사건과 원진레이온 산재피해의 진상조사에는 외부 전문가가 대거 결합했다. 또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출범 이후 노동운동 차원에서 전개됐다가 최근에는 산재 당사자와 활동가가 결합한 반올림같은 단체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운동 주체에서도 알 수 있듯 산재 문제는 노동운동의 차원을 넘어선다. 노동을 넘어선,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자 노동권을 넘어선, 인권의 문제다. 1200명의 명단이 독자들에게 준 깊은 울림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고용과 임금에도 노동자 생존이 걸렸지만 계급 문제, 진영 간의 다툼으로 비치면서 외면받는 게 현실이다. 비정규직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면서도 구의역 김군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의 무참한 죽음엔 쉽게 공감하는 게 사람들의 심리다. 당위적 운동이 아닌 존재론적 인간, 진영을 넘어선 보편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독자들과 공명하겠다는 게 경향의 속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산재 문제 또한 계급의 영역이다. 어느 학자는 반올림운동을 일컬어 노동자 육체의 총체적 저항이라고 했다. 돌려 말하면 산재는 노동자 육체의 숨겨진 미래다. 운이 좋아 피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자로 사는 한 노심초사 대비해야 할 숙명과도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재는 노동자 자녀의 숙명이기도 하다. 계급사다리가 걷어치워진 지금 가난하지만 성실한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게 됐다. 가난은 나태와 무능력의 상징이 됐으며 엄친아라는 단어의 유행은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성격도 좋을 것이라는 암시가 됐다. 매스컴에서는 연예인 엄친아의 조건으로 부모의 배경과 재력을 들고 있으며 부모의 그것은 자식의 상품성을 보증하는 잣대가 됐다. 일하며 공부하는 고학생은 성실의 표본이 아니라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상징이 됐고, 가난은 곧 죄의 다른 말이 됐다.

 

최근 한 아이돌그룹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제작자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어느 기사에서는 그를 유전자부터 남달랐다고 표현했다. 부친은 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고 친척 형은 유명 게임업체 의장, 외삼촌은 전 국회의원이다. 이들이 좋은 유전자의 출처라면 1200명은 좋지 않은 유전자의 소산이거나 출처인 셈이다. 좋은 유전자와 좋지 않은 유전자가 아예 분리돼 섞이지 않고 살아가면 그나마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좋은 유전자의 배경에는 좋지 않은 유전자의 희생이 있다는 게 문제다.

 

1999622일 대우중공업 노동자 이상관이 산재사고로 입원 중 강제퇴원조치를 당한 뒤 음독자살했다. 강제퇴원조치는 ‘IMF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 대책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 532억원을 줄이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당시 공대위는 공단 이사장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임명된 이사장은 1993년 노동부 국장으로 있을 때 불법취업 외국인이 임금체불이나 산재보상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강제출국 조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서울고법이 불법취업 외국인에게도 산재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판결한 뒤 하루 만의 일이다. 톨게이트 노동자와 관련해 기시감이 드는 일이다.

연좌제를 끄집어내려는 게 아니다. 거꾸로 연좌제가 없어졌으니만치 유전자, 엄친아 운운하며 계급대물림을 비호하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 조국사태를 겪으면서 다른 언론사와의 차별성을 진영논리를 넘어선 보편적 정의를 지향하는 것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쉽지 않은 길이다. 최초의 진영논리는 계급전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투를 빈다. 지금의 진영논리는 많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정의의 지향이 오히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위한 계급전선에도 보탬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경향 2019-12-03

 

울산 고래고기 사건

고래고기는 한국인이 먹은 지 오래됐다. 선사시대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고래 무리가 그려져 있고, 경상도에선 제사상에도 올랐다. 지금은 울산(장생포)과 포항(구룡포)의 명물이다. 수육·육회·구이··탕으로 먹는 고래고기는 지방이 많은 꼬리 살이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체로 혀에 남는 맛은 쫄깃함, 느끼함, 고소함이다.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밍크고래는 소매가 8000만원, 15만원선에 팔린다.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는 1986년 세계적으로 포획을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조사·연구 목적의 포획에 국한하고, 혼획(그물에 걸려 죽거나 좌초·표류)한 고래만 해경에 신고한 뒤 수협을 통해 유통·해체·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값비싼 고래도 합법고기불법고기로 갈라지는 셈이다.

 

20164월 장생포 고래시장이 떠들썩해졌다. 울산경찰청이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유통한 4명을 사법처리한 지 한 달 만에 울산지검 검사가 고래고기 압수품 27t 21t(30억원 상당)을 업자에게 되돌려준 일이 벌어졌다. “불법 구분이 어렵고, DNA 검사도 오래 걸린다며 고래축제에서 팔 수 있게 환부(還付)지휘서를 내준 것이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부임한 것은 다음해 7월이다. 고래 압수품이 가짜 유통증명서로 환부된 사실을 뒤늦게 안 경찰은 반발했고, 환경단체는 검사를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앞서 고래연구소는 환부된 고기가 불법이라는 유전자 분석을 내놨고, 업자의 변호사가 울산지검 검사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이 변호사를 겨눈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기각했다. 전관·향검(鄕檢환경 문제가 뒤엉킨 고래고기 사건이 검경의 수사권 충돌로 번진 격이다.

 

세상의 눈이 다시 울산 고래고기에 꽂혔다. 2018111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 2명이 울산에 간 이유를 두고서다. 환경단체가 고래고기 사건을 규명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 지 이틀째 된 날이었다. 작금의 진실 공방은 당시 울산시장 측근 비리를 보러갔는지, 고래고기 사건을 탐문했는지가 핵심이다.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오는 9일 황 청장이 출간하는 책 제목에도 고래가 나온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도 물음표 많은 미제로 남아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2019-12-03

 

김진표 총리? 감동도 메시지도 없다

20055, 노무현 정부의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오마이뉴스> 주최 네티즌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이 대화에서 대학 등록금 문제에 관한 질문에 김 부총리는 국립대도 서서히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재정이 넉넉하면 국립대 등록금 인상을 안 해도 되지만 그러면 국민 세금이 올라가지 않겠는가라고 답변했다. 국민 세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건 잘못이다, 그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라는 시각이다. 요즘은 웬만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도 그런 주장을 펴진 않는다.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니까, 지금은 생각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20179월 김진표 의원은 <제정임의 문답쇼>에 출연했다.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정치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 젊은 나이에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뛰어드는 건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 정 하고 싶으면, 자기 분야에서 업적을 쌓고 성공하고 인정받은 후에 그걸 발판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란 각 분야에서 성공한 50~60대가 해야 잘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70대인 김 의원이 보기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정치하면 봉사, 젊어서 정치하면 치부라는 인식의 밑바닥엔 청년들에 대한 무시와 폄하가 깔려 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전형적 꼰대 의식이다.

 

정말 의아스러운 건, 그런 인사를 국무총리로 발탁하는 게 조국 법무부 장관 파동으로 젊은층의 상실감이 크고 공정과 정의의 열망이 폭발하는 시점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여당은 내년 봄 총선에서 20, 30대 젊은층을 전략지역에 최우선 공천하겠다고 법석이다. 그런데 정작 국무총리엔 젊은 사고와는 담을 쌓은 듯한 노정치인을 기용하는 걸 국민은 어떻게 바라볼까. 인사는 단순히 사람 하나 바꾸는 게 아니다. 그걸 통해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가 더욱 중요하다. 특히 국무총리는 더욱 그렇다.

 

왜 굳이 김진표 의원을 국무총리로 기용하려 할까.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은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는 두 갈래로 대통령 인사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우선, 좋은 외부 인사를 찾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고위 공직에 나서는 사람은 이제 인사청문회에서 망신을 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칫하면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한다. 정치인 말고 누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할까. 또한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고위 공직 임명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됐다. 김진표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일 뿐 아니라, 보수 색채로 인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거부감이 적다. 총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을 듯싶다. 당내 중진이 입각하면 그 자리를 참신한 인사로 채울 수 있으니까 총선 물갈이효과가 커지게 된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 신선하고 의미 있는 인사로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그런 인사를 통해서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촛불 민심을 이어받아 변화와 개혁의 길로 가리라 기대했다. ‘개혁을 지향한다고 꼭 보수적인사람을 기용해선 안 된다는 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초기 통일부 장관에 중앙정보부 출신의 강인덕씨를 앉혔다. 보수 진영을 설득하면서 대북 화해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인 김진표 총리로 보수 진영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착각이다. 정말 통합을 메시지로 내세우려면 아예 중도 또는 보수 쪽에서 좋은 인사를 발탁하는 게 훨씬 낫다. ‘김진표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반대를 최소화하고 여당의 총선 물갈이에 도움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인사가 그렇게 정치적 고려만으로, 국회와 정당 사정에 귀 기울이는 식으로 이뤄지면, 국민은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젊은층 요구에 응답한 세대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야당이 주장하는 국민 통합이라 하기도 어렵고, ‘경제 전문가란 자평은 과거 경제부총리 시절의 공과를 통해 이미 다 드러난 마당에 김진표 총리카드는 어떤 감동도 메시지도 주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가 남은 2년반 동안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 가려는지 알기 어렵고, 오히려 잘못된 신호를 줄 가능성이 높다.

 

조국 사태이후 좋은 사람 찾기가 훨씬 어려워진 건 맞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지금처럼 가면,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인사 공방은 훨씬 격해질 거란 예상도 틀리지 않다.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좋은 사람을 찾고 설득하면, 국민에게 희망을 줄 만한 국무총리 한 사람 구하지 못하겠는가. 한겨레 2019-12-04

 

 

 

나라를 어지럽히는 검찰

정확한 진상이야 알 수 없다. 쏟아지는 언론보도를 좇는 것도 힘들다. 싸움은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복잡하지만 양상은 대개 두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부산시 경제부시장 유재수가 뇌물을 받는 등 범죄 혐의가 짙은데도 그에 대한 감찰이 청와대에 의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은 청와대로부터 관련 첩보를 받은 경찰이 무리한 수사 끝에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를 낙선시켰다는 것이다. 다들 아는 것처럼 의혹의 핵심은 모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겨냥하고 있다. 이건 물론 검찰이 짜놓은 판이다.

 

공방이 오가는 중에 청와대에 파견 나와 일했던 검찰 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무거운 부담을 느낀 탓이겠지만, 그 실체가 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죄송하고 가족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전해질 뿐이다. 게다가 검찰과 경찰은 죽은 자의 휴대전화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희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밀번호를 걸어둔 최신형 아이폰이라 들여다볼 수 없다면서도 그런다. 아무튼 검찰 수사로 시국은 난국이 되었다.

 

윤석열 총장이 취임한 건 지난 7월 말이었다. 겨우 넉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검찰은 빠르게 윤석열 검찰로 재편되었다. 그동안 했던 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거악의 핵심인 것처럼 수사력을 집중하는 거였다. 청와대가 가장 심각한 부패집단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대통령에 대한 충정으로 주변의 부패세력을 내치기 위해서인지 아무튼 검찰은 청와대 주변만 맴돌고 있다.

 

당장 청와대 압수수색만 해도 그렇다.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무마했다고 폭로한 사람은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다. 그는 자신이 소속되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 때문에 지난해 1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결과는 별게 없었다. 검찰은 이번에도 김태우의 입에 기대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청와대 직원들도 범죄를 저지르면 수사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정 최고책임자의 집무실이 이렇게 쉽게 털리는 건 차원이 다르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마구잡이로 휘둘러도 되는 칼이 아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 물론 합리적인 판단도 거쳐야 하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아무 때나 영장을 통한 강제수사를 해선 안된다. 증거인멸 우려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앞뒤를 살펴야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여러 대학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검찰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대학들은 조국 일가 때문에 업무방해 등의 피해를 입은 기관들이었다. 그래도 그냥 영장 들고 쳐들어가는 방식을 반복했다. 대학들은 범죄기관 취급을 당했지만, 가장 힘센 기관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영장을 통한 강제수사 이전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먼저다. 검찰에서는 학문의 전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피해 기관에 대한 도리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들에 관련 자료를 임의 제출받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때 가서 강제수사를 해도 된다. 강제수사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그렇다. 이미 지난해 12월 엇비슷한 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게다가 지난 몇 달 동안 조국 사태의 한복판에서 검찰을 예의주시했던 터였다.

      

검찰이 지목하는 것처럼 어떤 청와대 직원이 범죄와 관련되었다면 수사의 단서, 그것도 자신의 감옥 문을 열게 될 자료들을 컴퓨터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지는 않을 거다. 유재수, 김기현에 조국까지 세상을 매일처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러니 청와대 압수수색은 형사법상 증거 확보를 위한 법률행위가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정치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고, 나아가 직접 정치를 하는 행위는 심각한 일탈이다. 문제는 그런 일탈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다.

 

검찰이 왜 난리를 치는지, 왜 나라를 어지럽히는지 짐작하는 건 쉽다. 당장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올라 있으니, 이 판을 흔들고 싶을 게다.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의 지적처럼 지난 16개월 동안 전화 한 통화 없던 검찰이 갑자기 청와대 하명 사건 운운하고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참 지난 다음에 법원 판결을 통해 검찰의 의혹 제기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져도, 검찰로서는 손해 볼 게 전혀 없다. 수사과정에서 특히 검찰이 흘리는 온갖 이야기들이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는 지금의 언론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 인권의 수호자, 법률 전문가로서의 역할은 다 제쳐두고 자기 조직의 기득권을 위해 정치적 퍼포먼스를 남발하고 있다.

 

록히드 사건의 주임검사로 검사들의 상징처럼 존경받았으며 일본 검사총장(한국의 검찰총장)을 지낸 요시나가 유스케가 평소 강조했던 말이다.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면 안된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은 오물이 고여 있는 도랑을 청소할 뿐이지 그곳에 맑은 물을 흐르게 할 수는 없다.” 한국 검찰, 특히 윤석열 검찰은 온통 거꾸로다.

청와대와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한 검찰청이 매일처럼 싸우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사실 청와대가 만든 것이다. 구체적으로 꼽으라면 얼마 전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또 법무부 장관이었던 조국에게 무거운 책임이 있다. ‘윤석열 검찰을 낳은 것은 청와대였고, 지금 윤석열 검찰문제를 풀 수 있는 것도 유일하게 청와대뿐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경향 2019.12.05

 

풍수지리와 미세먼지

한번 터 잡은 마을에 대대로 살아가는 농경사회에서 살기 좋은 땅, ‘명당을 차지하려는 욕망은 누구나 강했다.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영화적 상상이 화성 이주를 시도하는 우주시대에도 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을 발휘하는 이유일 것이다. 부귀의 땅을 찾는다는 단편적 의미로 변질되어 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이 높아졌지만, 풍수지리(風水地理)는 현대학문인 생태학(風水)과 지리학(地理)이 결합한 융·복합과학이라 할 수 있다. ‘왕을 만드는땅에 대한 탐욕이 아닌 사람 살리는 땅으로 풍수를 바라볼 때 이 경험과학에 기초한 심층생태학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로 바람을 피하고 물을 얻는 즉, 삶의 터전에서 최우선으로 피할 것과 얻을 것을 조합한 이름이다. 사계절이 반복되는 우리나라에서 과거 농사를 지으며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 가지는 기근과 혹한이다. 이 기근을 막을 물을 얻는 곳과 혹한을 견딜 바람을 막는 곳’, 바로 배산임수와 좌청룡우백호라는 말로 함축되는 땅이 바로 명당인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화를 면하고 조금이나마 평안하게 살기 위한 곳을 안내하는 지침으로, ‘잘되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지 말자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적 장소는 그리 많지 않고 보통 어딘가는 부족하기 마련이다. 물이 모이는 곳은 필히 빠져나가는 곳이 있기에 대체로 바람막이가 취약한 방향이 생기게 된다. 이 부족의 보완이 풍수의 비보(裨補), 보통 찬바람을 막아줄 숲을 마을 외곽에 조성하게 된다. 마을숲은 외부의 찬바람을 막고 마을 안의 온기를 유지하는 곳으로, 모두를 위해 잘 보호되어야 했기에, 많은 전래동화의 소재가 된 토테미즘적 숭배사상이 생겨난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던 경험과학은 이제 생존이 아닌, 더 잘 살기 위한 선택으로 바뀌었고 비과학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 전통지식을 밀어낸 일등공신은 단연 미세먼지의 주범인 화석연료이다. 문제는 여기서 나타난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지역은 분지형 도시 즉, 바람을 잘 막는 곳이다. 보통 미세먼지 농도는 발생량이 월등히 높은 서울과 경기가 높아야 하는데, 백두대간이 가로막은 강원도 영서지방 소도시들이 자체발생 미세먼지가 적음에도 농도가 높은 날이 많은 이유다. 내부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을 가두는 것에 더해, 서쪽에서 불어온 외부 오염물질까지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기에 그렇다.

 

이제 겨울의 공포는 북풍한파가 아니라 미세먼지가 된 지 오래고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은 모두를 전문가로 만들 정도다. 그리고 설익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도심에 숲을 조성하고 외곽 숲을 간벌하여 밀도를 낮추는 것이다. 오랫동안 외부의 바람을 막고자 숲을 조성해 왔는데 이제 반대로 숲을 조성해 미세먼지를 내보낸다? 숲은 추울 때는 바람을 막고, 미세먼지가 많을 때는 바람을 불게 하는 신박한능력을 지닌 것일까? 안타깝게도 추울 때 미세먼지 농도가 덩달아 높다. 과거 땔감의 채취는 숲의 밀도를 낮췄고, 밀도가 낮아진 숲은 바람을 더 잘 막아왔다. 도심 주변의 숲은 더 이상 연료공급원이 아니니 밀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레 바람이동이 빨라지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숲의 밀도를 낮추는 간벌작업을 미세먼지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밀도가 낮은 숲을 도심에 만들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환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작업을 미세먼지 저감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하늘을 보며 남 탓하기 바쁜 계절이다. 비록 3분의 1이 중국발이라 하지만, 역으로 3분의 2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분지에서 미세먼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외부의 깨끗한 바람을 얻는, 장풍득수(藏風得水)가 아닌 득풍득수(得風得水)를 위한 도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줄 단기 방안은 없다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경향 2019.12.05

 

우리가 김용균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3년 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그때 우리는 3년 뒤 오늘의 문 정권을 기대했을까? 말은 촛불정권이라는데 민생과 관련되는 재벌정책, 조세정책, 부동산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에서 지난 정권과 어떤 차이를 보여주었나?

 

그런데 이상했어요. ‘김용균법이 만들어진 다음에 현장 태안 분소에 갔는데 용균이 동료들이 다 술 먹고 힘 빠져 있고 화가 나 있었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용균이법안에 용균이가 안 들어 있다고, 그래서, 거기서 알았죠. 너무 엉망이 되었구나. 위험의 외주화 막겠다고 산업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하위 법령인 시행령에서 다 완화시킨 걸 그때야 알게 됐어요.”

        

월간 <작은책> 최근호(201912월호)와 한 인터뷰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김용균재단 대표)씨가 한 말이다. 하루 평균 다섯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김용균처럼 비극적 서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통계 숫자에 묻힌다. 1년 전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보도됐을 때 수많은 동시대인이 함께 분노했고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조사위원회는 사고의 근본원인이 위험의 외주화, 다단계 하도급에 있다고 밝혔고, 제도 개선을 정부에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토대로 제도를 개선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국회 공방을 거친 뒤 김용균법이 통과됐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중대재해기업 엄중처벌 조항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허술한 법이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시행령에서 이를 더 완화해 김용균을 제외시켰다. 김용균법에 김용균들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문재인 정부가 행동으로 부정한 셈이 됐다.

 

공자님은 말은 항상 지나치고, 행동은 항상 미치지 못한다” “군자는 말의 지나침을 부끄러워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의 집권세력은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이 반대인 모습을 보인다. 그들보다 더 자본친화적, 노동배제적인 자유한국당이 오른쪽에 버티고 있으므로 노동존중등 말과 이벤트로 그들과 차별성을 보이면 그만이라는 듯, 실제는 별 차이가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뒤 3일째 되는 2017512일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 앞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노동자들은 대통령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2년 반이 지난 오늘 노동자들은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박대성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은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 감옥에 갇혀 살지 말고 공항에 와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라고 요청했다.(<오마이뉴스>) 법외노조 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듯이, 더도 말고 대법원 판결대로 해달라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요구도 문재인 정부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취임 직후 공항공사 노동자를 찾아갔던 대통령의 행보와 함께 우리들로 하여금 촛불정권이니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갖게 했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도 희망고문으로 끝났다.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에서 말했듯이, “한 계급에게서 빼앗지 않고는 다른 계급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은 명료한 제로섬 산술이다. 최저임금 인상분을 영세업자들을 수탈하는 재벌기업한테서 충당하거나 자영업자들의 버거운 임차료를 임대업자에게 매긴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정책이 동반됐어야 했는데, 이미 열악한 상태에 있는 자영업자들에게서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연히 역풍이 불었는데 이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뒷걸음질쳤다.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3년 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그때 우리는 3년 뒤 오늘의 문 정권을 기대했을까? 말은 촛불정권이라는데 민생과 관련되는 재벌정책, 조세정책, 부동산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에서 지난 정권과 어떤 차이를 보여주었나? 서울 아파트 값은 더 치솟았고, 교육정책은 정시 40%로 정하는 또 한차례의 시소게임으로 그만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현 집권세력에게서도 왜 집권했느냐?”고 묻고 싶을 만큼, 집권의욕만 보일 뿐 정치철학이나 정책지향을 찾기 어렵다. 불온한 시선을 갖고 있어서겠지만, 이른바 문 대통령의 복심’ ‘측근’ ‘실세라 불리는 사람이 적잖은데 그들과 그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민주건달로 보인다. 과거에 잠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는 인물들인데 그 도덕적 우월감이 더 위험하다.

 

국회는 언제나 그랬듯이 여야 대치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만 삼성보호법에서 보듯이 재벌을 위해서는 한통속이다. 무엇보다 의원들 자신이 ‘20 80으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20’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도 모두 ‘20’에 속한다. ‘80’을 위한 민생정책을 추진하려면 자유한국당의 반대는 물론 행정의 벽까지 돌파해야 하는데 그런 의지를 오늘의 집권세력 중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이념의 추종자 김진표 의원이 차기 국무총리가 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지난 정권 아래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려고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던 오늘의 집권여당은 테러방지법 폐기안을 제기했어야 마땅했다. 오늘 필리버스터로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정책정당의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테러가 아니라 전쟁과 폭정이듯이, ‘80’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조국이다!”가 아닌 우리가 김용균이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한반도의 위상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다. 오히려 시리아에 가깝다. 구미의 주류 미디어에 의해 의식세계를 점령당해 시리아보다 미국이나 유럽을 더 가깝게 느끼듯이, ‘20’에 속한 정치인, 연예인, 전문가집단이 등장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80’의 의식세계는 온통 ‘20’의 것들로 채워져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공감과 감정이입을 통한 연대는 진보의 중요한 가치인데, ‘20’의 욕망, 가치관을 가진데다, ‘80’은 보이지 않으니 관심을 가질 수 없고,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니 연대도 불가능하다.

 

서초동 집회가 부럽더라. 왜 노동자들이 죽는 문제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나오지 못할까. 우리도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이지 않나. 한해에 몇천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는 거니까. 그리고 그게 매년 반복되니까. 만일 노동자가 죽는 일로 그만큼 사람들이 모이면 분명 사회가 달라질 것 같은데 말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대표변호사의 안타까운 술회가 내 가슴을 적신다. 산재사망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덜 나오도록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우리가 김용균이다!”라고 외칠 수 있기 바란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대표 한겨레 2019.12.05.

 

70안보팔이이제 그만

덕수궁이 보이는 조선호텔 창가에서 한 중년 신사가 서울의 이른 아침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중대 임무를 띠고 잠입한 그는 22년 전 탱크를 앞세우고 서울을 침공해 폐허로 만들었다. 신사가 들었는 조선호텔 1814호실은 귀빈용 특실이었다. 신사는 미국 부통령이 묵고 간 뒤 처음 이 방에 투숙한 귀빈이었다. 룸메이드 구춘자씨는 신사의 방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구씨는 꽁초 끝에 찍힌 담배의 이름을 읽고 깜짝 놀랐다. 말만 들은 북한 담배 영광이었다.

 

그날 밤 정부 인사들이 극비리에 차량을 몰고 그를 찾아왔다. 신사를 태운 링컨콘티넨탈은 197253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고급 요정 오진암 앞에서 멈췄다. 10여명의 손님이 전체를 독점한 요정은 경비가 삼엄했다. 조리사 17명 중 11명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무형문화재 38호인 황혜성 여사와 그의 제자들이었다. 밀실 앞에 이르면 버선의 선처럼 아름다운 기생들이 상을 받아 들었다. 얼마 안돼 밀실에서는 방아타령 선율이 흘러나왔다. 흐느끼는 허스키는 가수 이미자 목소리 같았다. 황 여사는 존슨 대통령, 뤼브케 독일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음식을 장만하고 조리사들을 지휘했다.

 

1개월 뒤 19727410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발표를 듣고 황 여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날의 주빈이 평양의 밀사로 서울에 왔던 북한 총리 박성철이었다. 그는 1950년에도 인민군 15사단장으로 서울 침공에 앞장 선 인물이었다.

 

19721012일 오전 10,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첫 회의가 열렸다.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100일만에 처음으로 열린 회의는 공동성명 이후의 남북한의 제문제를 협의했다. 12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계속된 첫회담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합의사항을 성실이 이행함으로써 남북간의 오해와 불신을 풀것을 골자로 하는 공동발표문을 발표했다. 4시간25분간의 회담을 마치고 자유의집 앞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악수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이른바 7·4 남북공동성명은 이렇게 도무지 화해할 수 없어 보였던 두 세계의 만남이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다시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요정 오진암은 호텔로 변신해 요즘 한층 뜨는 동네 익선동의 터주대감처럼 버티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은 이렇게 1970년대 초부터 화해 분위기로 옮겨갔다. 한반도도 이런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 순 없었다   

한반도 긴장이 화해 분위기로 옮겨가면 우리 정부로선 재정 여력도 생기고 인근 국가와 동맹국과 불필요한 마찰도 줄어든다   

5배로 올려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방위비 협상 카드를 접하고도 여러 언론이 안보팔이를 새삼 재개했다. 주한 미 대사의 형편없는 언론 플레이도 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3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장병 격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주한 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면 큰 일 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 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주한 미군 감축은 여러 차례 진행됐다. 미국의 핵우산을 쓰고 있다가 벗어나기도 했다. 그래도 한반도엔 아무 일도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주둔했던 미군을 처음 감축한 건 197010월이었다. 당시 경기지역 현장을 취재했던 한 기자는 도시가 붕괴하는 걸 목격했다고 썼다. 기사 곳곳에 불안과 공포가 깊이 묻어 났다. 미군 부대 캠프 카이저가 있던 경기도 운천은 양키들의 전시 달러로 세워진 군표 누각이었다. 캠프 카이저는 미군 철수 1호 부대다. 양키들의 수송 트럭이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진 뒤 폐허가 됐다고 썼다.

 

한창 때는 하룻밤에 맥주 100상자를 소비했던 환락은 가고 나이트클럽과 카바레는 출입문에 못질을 했다. 950명의 한국인 부대 종업원도 한꺼번에 실업자가 되고 들끓었던 600여 명의 술집 종업원들은 쑥고개(평택)와 동두천, 용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베트남 전쟁에 올인했던 미국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은 연일 죽는 소리를 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미군 감축이 있었지만 이 땅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측 방위비 협상대표가 이 점을 꼭 새겼으면 좋겠다. 이정호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2019.12.07

 

민주당이여, 제발 노무현의 꿈을 기억하라

선거제도 개혁안, 검찰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이후에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여전히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 몇 자리를 더 얻겠다고, 끊임없이 개혁안을 후퇴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의 타협 가능성에 미련을 두고 있다.

 

그러나 타협이 잘되면 개혁과는 거리가 먼 누더기 입법이 될 것이고, 타협이 안되면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칠 뿐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자유한국당과 타협을 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국회 의석을 배분한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준연동형으로 축소시킨 장본인도 민주당이다. 정당득표율의 50%만큼만 의석을 우선배분하는 준연동형은 이미 많이 후퇴된 안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40% 연동형 등 더 후퇴된 제안들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런 장면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본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기회만 있으면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31217일에는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4년 실시될 17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은 당시 한나라당에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그래서 2004년 총선 전에 큰 틀의 선거제도 개혁을 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57월에는 한나라당에 선거제도 개혁만 한다면 대연정도 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에게 선거제도 개혁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되니까,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꼭 선거제도는 좀 고치고 싶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이것은 꼭 하고 싶다. 그래서 이 대연정의 제안은 소위 말하는 반대급부의 내용이고, 진정으로 제안한 것은 선거제도 고치자는 것입니다.”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내놓더라도 선거제도를 꼭 바꾸고 싶다는 노무현의 꿈은 정치다운 정치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 염원은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이제는 기회가 왔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해도 민주당의 의지만 있다면,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공수처법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는 왜 잔머리를 쓰는가? 내년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데, 비례대표 몇 자리를 더 얻겠다고 개혁안을 후퇴시키려 하는가?

 

합의 처리가 관행이니 하는 얘기는 하지 말라. 아무런 근거 없는 관행보다 중요한 것은 헌법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49조는 국회는 헌법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라고 못 박고 있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니까, 합의가 필요하다는 엉터리 같은 얘기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야구게임의 룰을 야구선수들끼리 합의해서 정하는가? 사실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의 룰은 국회의원들끼리 정할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기구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2015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입을 권고했다. 이런 권고를 따르는 것이 맞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은 국민들을 속이려는 것이다. 결국에는 비례대표 몇 자리를 더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닌가? 그러나 연동형개념이 도입되면, 정당득표를 많이 하면 의석을 더 얻을 수 있다. 민주당도 내년 총선에서 정당득표율을 더 끌어올리면, 비례대표 의석을 더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정정당당한 것이지, 선거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꼼수로 의석을 더 얻겠다는 것이 노무현 정신을 따른다는 정당이 할 일인가?

 

9일에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된다는 것도 시기를 미룰 핑계가 될 수 없다. 이미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확고하게 밝혔다. 원내대표 후보자 가운데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찬성한다는 후보가 없다. 그렇다면 누가 되든, 개혁에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는 역사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해야 한다. 문희상 의장은 역사적 책임감을 갖고 9일 본회의에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유치원3법의 순으로 법안을 상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면, 11일 본회의에서 선거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개혁입법을 완성시켜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어차피 며칠을 가지 못할 것이다.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언제까지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겠는가?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통과되면, 자유한국당은 저절로 흩어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로지 용기와 결단, 책임의식뿐이다. 제발 노무현 대통령의 꿈을 기억하기 바란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한겨레 2019.12.08.

 

성명서 발표한 법조기자들에게

MBC <PD수첩> ‘검찰기자단편이 방영된 이후, 중앙언론사들의 법조출입기자단이 반박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에 따르면, <PD수첩>법조기자의 취재 현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과 오류투성이라고 한다.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적인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말 유감이다. 이런 성명서를 발표하는 패기가 유감스럽다.

 

기자들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기사를 쓰는가? 오래된 언론학 교과서가 물었던 질문이다. 시대나 나라에 따라, 언론사에 따라, 기자에 따라 답이 다를 테니 위험한 일반화는 참기로 하자. 하지만 일반 독자를 가장 먼저 떠올리며 기사를 쓰는 기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조사에 의해 쉽게 확인된다. 기사 초고를 읽을 담당 차장이나 부장의 얼굴을 떠올린다는 답도 많았고, 경쟁사 기자가 생각난다는 답도 있었다고 한다. 광고주를 고려한다는 답도, 취재원을 생각하게 된다는 답도 많았다. 연구차 만났던 한 기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연차가 쌓일수록 일반 독자는 준거집단에서 점차 멀어진다는 말이었다. 고려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아진단다. 이런 말도 했다. 특정 업계를 취재 대상으로 삼을 경우, 기사를 쓸 때 자꾸 해당 업계 관계자들이 기사를 읽는 상상을 한다는 것이다. 자주 보아온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계속 볼 사람들이기 때문에.

 

법조출입기자단의 성명서를 읽으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기자들은 누구를 염두에 두며 이 성명서를 썼을까? <PD수첩> 제작진일까? ‘일반 독자들일까? 혹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그들은 아닐까?

 

<PD수첩>은 아주 새로운 내용도, 놀랄 만큼 심층적인 내용도 별로 없다. 검사들은 기자들을 이용해서 여론을 한쪽으로 유도하거나 수사를 용이하게 하려 하고, 기자들은 적당히 협조하면서도 친한 검사들을 활용해 호시탐탐 특종을 노린다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내용이었다. 기자들이 취재원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서 이해관계까지 함께하는 현상은 출입처 제도의 어두운 면이라는 비판을 오랜 기간 받아왔고, 특히 신진 언론사들에 진입장벽이 터무니없이 높은 청와대와 법원·검찰은 애초부터 원성 자자한 출입처였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몇몇 인터뷰와 자료들, 그리고 구태를 개선하자는 제안 정도에 발끈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성명서 내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얼굴을 가리고, 음성을 변조하는 것도 모자라, 가명에 대역 재연까지 써가며 현직 검사와 법조기자를 자칭하고 나선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의 허구성은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취재원 보호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해명을 할 필요도 없다. 법조기자 본인들이야말로 실존인물인지도 알 수 없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수도 없이 인용하지 않았던가? ‘한 시민의 의견은 또 얼마나 많이 등장하던가? “전체 법조기자단을 범죄 집단처럼 묘사해 특정 직업군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했다는 구절도 있다. 내게는 <PD수첩> 속 법조출입기자들이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이유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무력한 존재들로 보였다. 우리는 관습대로 하루하루를 성찰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을 범죄자라 부르지는 않는다.

 

 

성명서가 법조출입기자단 일동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소속 22명 이름으로 발표된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KBS, MBC, 경향신문, 한겨레 등의 소속 기자들은 성명서 발표에 동참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법조기자단 단체카톡방에 팀장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성명서는) 법조기자단 일동이라고 나갑니다. 의견 없으시면 5분 뒤에 성명서 발송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공지된 후 일부 기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22명의 성명서가 되었다고 한다.

 

성명서에는 자신들의 땀내 나는 외곽 취재를 몰라준다는 서운함도 있다. <PD수첩> 취재진의 땀내는 무시하는 이중성이 마음에 걸리지만, 사실 이건 맞는 얘기다.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법조기자도 많다. 꽤 오랜 기간 기자상 심사에 참여했는데, 법조기자들이 발굴한 훌륭한 기사들도 많았다. 문제는 능력 있는 개인이 오래된 관습과 기형적 구조라는 강력한 자장을 떨쳐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출입처의 폐해로 향한다. 마침 KBS가 출입처 제도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우선 검찰만이라도, 그리고 우선 성명서에 불참한 몇몇 언론사만이라도 이 흐름에 동참했으면 한다.

그리고 성명서를 발표한 기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PD수첩> 내용 일부에 대해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이 보도를 법조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계기로 삼겠다는 겸허하고 의지에 찬 성명서를 다시 써달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일반 독자들이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성명서를 써주었으면 한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경향 2019.12.08.

 

가난한 노인, 빈곤한 정책의 나라

지난주는 한국의 불평등 문제나 복지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국제포럼들이 유독 많았고 나도 어쩌다 여기저기 참여하게 되었다. 화려한 장소에서 어색하게 포용국가를 논하고 다음 장소로 바삐 이동하는데, 경찰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절망적인 부양의무제 폐지외침이 하늘로 솟았다. 그곳을 도망치듯 지나친 뒤 참석한 다음 토론회는 더 어색했다. 유럽학자들의 조언으로 가득 찬 토론회를 마치고 그들과 함께한 만찬장에서 그런데 한국 노인빈곤율은 왜 이렇게 높나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그 순간 목구멍에 뭐가 턱 하니 걸려들더니 내가 지금 여기 앉아 뭐 하고 있나 싶었다. 세계 10위권 내외의 경제대국이지만 노인 자살률 1, 노인 상대적 빈곤율 1위의 가난한 노인들이 가득한 이 나라에 어떤 정책이 필요한 것인지, 노인이 부자인 복지국가에서 온 그들이 사실 어찌 알겠나.

 

우리나라는 온갖 사회문제를 종합세트로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노인빈곤은 이제 곧 고령자로 진입할 베이비붐 세대의 규모까지 고려하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올해 20주년이 되고 기초연금액도 최대 월 30만원까지로 인상되어 우리나라에도 그럴듯한 제도들이 있지만 가난한 노인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유럽 복지국가들이 실행했던 사회정책들을 그대로 가지고 올 수도 없을뿐더러 복지제도의 원칙만 고수하다 보면 정책도 빈곤해진다.

 

가난한 노인들의 문제를 마냥 원칙만을 고수하며 천천히 해결되길 기다릴 수는 없다. 구멍이 난 곳부터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의 66% 이상이 1인가구이고 소득이 그야말로 0원인 가난한 사람들이 30%나 된다. 재산도 소득도 없이 홀로 사는 빈곤한 노인들을, 부양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반적인 부양 기대나 부양 의무감 수준이 낮아지고 있는 와중에 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족의 의무를 강요할까. 정부는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약속을 책임감 있게 이행하라.

 

두번째 구멍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문제다. 현재 1인가구 생계급여는 2019년 기준 월 51만원인데 최빈층 노인 40만명은 기초연금 30만원을 받아도 이것이 소득으로 인정되어 다음달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된다.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기초연금이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니 정책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순적 상황은 공공부조제도의 보충성 원리 때문인데, 최빈층이 기초연금을 못 받고 오히려 빈곤선 위의 노인들은 혜택을 받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의 본질은 형평성보다 최빈층의 여전한 빈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학자들은 부조의 보충성의 원리원칙을 주장하며 궁극적으로 생계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원칙에 따라 불 끄는 방법을 고수하다가 집이 다 타버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정책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논의를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생계급여를 전면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더디니 노인 대상 범주형 공공부조를 도입하여 기초연금액과 우리나라 노인빈곤의 특성이 고려된 좀더 높은 수준의 노인빈곤선을 설정할 수 있다. 둘째는 기초연금의 소득인정액을 빈곤 수준에 따라 다르게 책정하여(슬라이딩 방식)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이 합산된 최종수급액을 다양화함으로써 최빈층의 소득 수준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설계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에 따라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만을 대상으로 일정 금액의 부가급여를 책정하는 방식 또는 기초연금을 사회수당으로 규정하여 별도지급액으로 인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무엇이 되었든 사람이 제도보다 앞서야 한다. 복지선진국들의 멋들어진 정책보다는, 설령 누더기가 되더라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국형 정책 개발과 다양한 시도가 더 중요하다. 정부는 노인빈곤을 재난 수준의 문제로 인식하고 과감하게 해결해주길 바란다.

이승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겨레 2019.12.09.

 

검찰, 그들만의 나라

능력 유무나 지위 고하에 관계 없이 공무원은 세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개인의 이익만 챙기는 자다. 공무원을 해서는 안되는 경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잘 먹고 잘 산다. 민원인에게 갑질을 하고 재직하는 동안 든든한 노후대책도 세워놓는다. 극소수이지만 이들 때문에 공직사회 전체가 욕을 먹는다. 두 번째는 조직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자다. 힘이 센 부처나 기관일수록 이런 공무원이 많다. 세 번째는 나라의 이익을 챙기는 공무원이다. 모름지기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라면 개인의 이익은 제쳐놓고 조직에서 배신자 얘기를 듣더라도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공무원이 많아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들 삶도 평안하다.

 

법무부 외청인 검찰청 소속 공무원인 검사들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사익을 추구하는 검사들이다. 이들은 스폰서를 두고 수시로 접대를 받는다. 사건 처리를 대가로 뇌물을 챙긴다. 뇌물의 종류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공명심(功名心)에 무리한 수사를 하고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한다. 권력자와 결탁해 사건을 조작하고 편파 수사를 한다.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죄를 짓고도 법 지식을 활용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다음은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검사들이다. 이들은 거악을 척결해야 한다는 정의감과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경찰은 수하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사는 완전무결한 존재여야 하므로 검사의 비리는 최대한 감추고 소극적으로 수사한다. 그 결과 김학의 사건처럼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 일이 생겨난다. 한국의 검사 대다수가 이 부류에 속한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사람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고 말했다.

 

조직 논리만 거스르지 않아도 명예와 부()가 따라오지만 이를 스스로 걷어차는 검사도 있다. 내부고발로 왕따를 자처하며, 검찰의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 경찰을 수사 파트너로 존중하고, 검찰도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 조직보다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진정한 공익의 대변자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미증유의 총력 수사로 검찰사를 새로 쓰고 있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전방위 수사로 부인과 동생을 구속하고 조 전 장관까지 낙마시켰다. 지금은 유재수 감찰 무마하명수사카드로 청와대와 여당에 맹폭을 가하고 있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다. 검찰은 나라의 이익을 위한 수사라고 주장한다. 윤석열 총장은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악역을 맡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과거 대선자금 수사나 국정농단 수사처럼 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검찰 조직 수호를 위한 무력 시위이자 국회 시즌을 겨냥한 정치 개입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을 추진하며 검찰에 비판적인 쪽에는 칼을 들이대고, 공수처법 반대 등 검찰 편을 드는 쪽의 비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리와 불법이 양적·질적으로 여당에 결코 뒤지지 않는 보수야당에 검찰이 이처럼 관대할 이유가 없다.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을 사고 있는 의원, 촛불시민을 짓밟기 위한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한 세력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꽃피던 지난 4월 공수처법 등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의원 감금 사건은 겨울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검찰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수사는 수사대로, 개혁은 개혁대로 추진돼야 한다. 검찰의 흑역사를 생각하면 정권을 상대로 한 윤석열 검찰의 도전은 평가받을 일이지만 이것이 검찰개혁을 중단하는 이유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숱하게 개혁안이 나왔지만 검찰의 DNA는 그대로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검사들의 문화도 달라지지 않았다. 묵혀둔 사건을 갑자기 꺼내고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는 등 거악을 척결하는 일이라고 판단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습성도 여전하다.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해 별건수사를 벌였다는 뒷말도 많다.

현재의 검찰 시스템으로는 검찰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양립하는 건 불가능하다. 검찰의 힘이 세질수록 도리어 부정부패가 증가하고, 법의 권위는 추락하며,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자신만 옳다는 독선과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검찰은 수사·기소권을 독점하며 막강한 권한을 유지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는 집단최면에서 깨어나야 한다. 엄동설한에 검찰만 계절이 바뀐 줄 모르고 벌거숭이로 칼춤을 추는 것 아닌지 윤석열 총장 이하 2000여 검사들은 되돌아볼 일이다.

오창민 디지털뉴스편집장 경향 2019.12.10

 

민중에 등을 돌린 전문가들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지식층

민주주의의 신호를 잃어버린 대중

신뢰 회복은 학계와 전문직 사회에 달려

한동안 트럼프 대통령 쪽에 불리하게 돌아가던 미국 하원 탄핵조사 청문회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헌법학자들이 증인으로 나온 날이다. 전날까지 전현직 대사 등 관료들의 증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우크라이나 측에 부당한 요구를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굳어진 상황이었다. 백악관과 공화당은 스탠퍼드 법대 교수 파멜라 칼란을 표적으로 삼아 반격을 시작했다. “당신이 누구길래 국민의 절반을 깔보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하는 거야?” 언론 인터뷰에서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고문이 물고 늘어졌다. “예일대 학위 3개를 가지고, 엘리트끼리 어울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한심하다(deplorable)고 멸시하는 자들, 그래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거야.” 칼란 교수는 투표권의 권위자로 오바마 정권 때 진보 진영이 연방최고법원 판사로 강력히 밀던 스타 학자다. 반대편 전문가를 그의 주장이나 논리가 아니라, 성품이나 경력을 가지고 비방하는 것은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데 트럼프 측이 엘리트 지식인을 향해 계급문제를 걸어 공격할 때는 상당한 울림이 있다.

 

진정한 전문가의 권위는 어떤 분야든 여야를 넘어서고 진보와 보수 모두에 통해야 한다. 그런 인정을 받는 전문성이 사라지고 있다. 반대되거나 불리한 의견을 피력하는 순간 그의 권위는 한쪽에서 추락한다. 지금은 정치적 진영에 따라 뉴스의 가치가 다르고, 학문의 이론이 다르고, 역사와 진실마저 달라지는 세상이다.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데도 전문적 지식을 동원해 해결할 수가 없다. 여론조사 전문가 리처드 에델만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전문가 의견을 쓰거나 전문가를 악마화하면서 사실은 지식을 자급자족하는 자기 인용 (self-reference)의 세계가 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무지하거나, 소셜미디어 때문에 마음대로 전문가를 고를 수 있게 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신의 원인은 전문가 쪽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등을 돌린 것은 민중이 아니라 엘리트 지식인들이 아니냐는 뜻이다. 우선 지식과 논리 대신 분노, 공포, 증오 등 감정을 동원하는 전문가가 크게 늘었다. 자기 견해를 관철하기 위해 이성 대신 감성에 호소한다는 것은 전문가란 개념에 모순되지만, 요즘엔 더 흔한 스타일이 됐다. 이날 청문회에서 칼란 교수는 대통령선거 후엔 트럼프 호텔이 있는 거리도 피해서 걷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군주제와 대통령제를 설명하면서 트럼프가 아들 이름을 배런(Barron)이라고 지을 수 있지만 남작(Baron) 작위를 주지는 못한다고 말해 공격의 구실을 주었다. 심지어 진보는 모여 살고, 보수는 흩어져 사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자기네들도 서로를 견디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과거 인터뷰발언을 추궁당하자,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말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격한 감정을 동원하며 문화전쟁의 전사 노릇을 하면서도 일반 사람들의 걱정거리에는 무감각하다. 지식 엘리트층이 그냥 그대로 지배계급이 된 것은 민중의 신뢰를 잃은 더 큰 계기다. 특히 트럼프의 미국뿐 아니라, 영국, 폴란드 등에서 전문가와 학계의 진보엘리트들은 계급담론을 우익 포퓰리즘 정권에 빼앗겼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영국 보수당의 법무장관 마이클 고브는 자기네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면서 계속 틀리기만 하는 전문가들, 이젠 국민이 질렸다(People had enough of experts)”라고 말해 큰 반향을 불렀다. 경제적 신분 추락과 교육의 격차 등 이른바 현실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잘못된 처방이 불만인데, 전문가들은 여전히 관념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만, 과연 국민이 그런 민주주의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돼 왔다. 그래도 국민이 주요 국면에서 방향을 크게 틀리지 않고 판단해온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엘리트 큐 (elite cue), 전문가들이 대중에게 보내는 신호 때문이다. 학계와 전문직 사회의 내부 소통이 신호등을 다시 켜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본다./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한국 2019.12.10.

 

역대급 군비증강 해놓고 에 평화 말할 수 있나?

내년부턴 50조 원으로 동결하자

국방비가 기어이 50조 원을 돌파했다. 국회가 10일 본회의를 열어 2020년 국방예산을 정부안과 비슷한 수준인 501527억 원으로 의결한 것이다. 이는 올해보다 액수로는 34556억 원이, 비율로는 7.4%가 오른 것이다. 우리나라 국방비가 50조 원을 넘어선 것도 건국 이래 처음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규모의 국방비 증액이 남북관계와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에 미칠 영향을 주목해야 한다며, 국방비 동결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문제의 심각성이 비해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실망감''배신감'은 다르다

최근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최악의 상황에 빠졌고 회복하기도 힘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다수 전문가들과 언론은 그 주된 원인을 '하노이 노딜'의 여파에서 찾는다. 작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올해 2월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진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북미협상 중재 및 촉진 역할에 한계가 드러났고 남북경협 역시 하나도 제대로 이뤄진 없기 때문이다. 이게 주된 원인인 것은 맞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이러한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선의' 부족보다는 역량 부족 및 한미관계의 현실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이에 따라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여러 차례 실망감을 토로해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토록 남북관계가 악화된 이유를 설명해주진 못한다. 또 한 가지 주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작년에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단계적 군축" 추진과는 반대로 남한의 역대급 군비증강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품고 있다. 일종의 근친 증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4월 판문점과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군 수뇌부를 총출동시켜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시켰다. 그만큼 군사 문제 해결에 의지를 갖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거꾸로 흘러갔다. 그러자 김정은은 올해 725일 실시된 미사일 발사를 지도한 자리에서 "남조선 당국자"를 향해 "하루빨리 지난해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을 전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김정은의 권언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8월 중순에 실시된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에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안정화 작전'까지 포함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북한 점령'을 의미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814일 국방부는 '2020-2024년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5년 간 무려 290.5조 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때 '김정은 참수 작전' 운운하면서 도입 결정된 F-35가 문재인 정부 들어 착착 들어오고 추가 구매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던 북한군 수뇌부는 김정은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위신이 땅에 떨어진 김정은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최근 북한의 언행은 분명 유감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원인의 작지 않은 부분을 문재인 정부가 제공한 것은 아닐까? 이는 김정은의 위신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한의 대규모 전력증강은 재래식 군사력을 줄여 경제건설에 쓰겠다는 계획부터 중공업의 비중을 낮추고 경공업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경제정책과 비핵화에 대한 판단에 이르기까지 김정은 정권의 국가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단계적 군축"에 합의하지 말았어야

문재인 정부는 말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자주국방 능력을 확보하고 주변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군비증강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의 엄청난 국방비 투입에 힘입어 한국은 이미 세계 7위의 군사 강국으로 올라섰다.

 

2006년 한국군 주도의 한미군사훈련을 목도한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국 국방장관에서 보낸 편지에서 "지금 당장 전작권을 전환해도 문제가 없다"며 한국군의 우수한 능력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3년 동안 400조 원 가까이 국방비를 써왔다. 그런데 아직도 부족하다고? 정부의 국방비 증액 논리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국방비를 증액해 대규모 군비증강에 나설 계획이었다면 차라리 북한과 "단계적 군축" 추진에 합의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러한 합의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사상 최초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극도의 불일치'"단계적 군축" 합의를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가장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이 국방비 증액일 것이다. 2017GDP 대비 2.5%였던 국방비를 5년 후에는 2.9%로 늘리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한 기회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와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쓰여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거듭 호소하고 싶다. 2021년부터는 국방비를 50조 원 정도로 동결하자고 말이다. 이렇게 해도 상당한 수준의 군비증강은 가능해진다. 동시에 북한에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늘릴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2019.12.11.

 

민주노총 때려 김진표 구하려는 치졸한 발상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진표 총리설에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가 아니다. 고 김기원 교수가 생전에 역설했듯이 개혁과 반개혁의 문제가 김진표 논란의 본질이다.

 

약탈경제반대행동(1122), 경실련(26), 종교투명성센터(27), 참여연대(122),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2), 민주노총(3),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3), 지식인선언네트워크(4), 한국여성단체연합(4),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5) 등등. ‘김진표 총리설에 반대하는 성명이나 논평을 낸 단체들이다. 그리고 이들 단체가 포함된 41개 시민사회단체들이 11일 청와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김진표 총리 후보 반대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래픽 고윤결, 사진 연합뉴스

 

지난주 시민사회에서 김진표 총리설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청와대가 김진표 카드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경제신문이 민주노총을 제물 삼아 김진표 구하기에 나섰다. ‘민주노총 협박 통했나? 김진표 총리 카드 재검토설’(한국경제 124), ‘총리 인선은 민노총이 좌지우지, 광주형 일자리는 낙하산 일자리’(조선일보 7), ‘민노총이 반대하면 총리 못한다고?’(동아일보 8).

 

이들 신문이 김진표 총리설에 반대하는 많은 단체들 가운데 유독 민주노총만 콕 집어 부각시킨 의도는 뻔하다.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 민주노총을 제물로 삼아 김진표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민노총이 이제는 총리 인선까지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니 민노총의 나라라는 것이 과장이라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과장도 이런 과장이 없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이 불편한 관계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52시간제,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주요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에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고 정부와 여당은 민주노총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이 총리 인선을 좌지우지하고 민주노총 협박 때문에 총리 인선을 못한다고 주장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진표 총리설에 반대하는 것은 진영 논리가 아니다. 고 김기원 교수는 생전에 한국사회에서는 진보-보수의 구분과는 별개로 개혁-수구의 구분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진보와 보수는 균형을 이뤄야 하는 관계이지만 개혁과 수구는 수구를 물리치고 개혁으로 나가야 하는 관계라고 했다. ‘김진표 논란의 본질은 바로 개혁과 반개혁의 문제다.

 

김진표 의원은 6일 자신이 반개혁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왔던 우리 경제의 여러 개혁 조치들의 중심에 항상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금융 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상속·증여세 강화, 30대 재벌 중 16개를 정리한 재벌 개혁,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을 예로 들었다. 모두 김 의원이 참여한 일들이 맞다. 다만 그가 실무책임자였던 재정경제부 국실장 때의 일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진표 의원을 비판하는 근거는 그가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라는 정책결정권자 시절 이후 4선 의원까지의 긴 세월 동안 보여온 언행이다. 법인세 인하 추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 승인, 종교인 과세 반대, 성소수자 배제, 낙태 금지, 전술핵 재배치 주장 등이다. 이건 보수가 아니고 반개혁이다. 시대를 앞서가기는커녕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 것이다. 이런 그가 총리를 맡으면 개혁이 중단되고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을 세 축으로 하는 사람 중심의 포용적 성장을 내세웠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다만 방향은 옳았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부작용이 부각됐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준비 부족과 관리 능력 부재 탓이 컸다. 임기가 절반이 지나도록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조급해질 만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공정·정의·포용·평화와 거리가 먼 인사를 총리로 기용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 정책 기조를 이어가면서 임기 후반기 미진한 과제를 강력히 추진할 개혁적이면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물이 필요한 때다.

 

여권 일각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진표 카드가 중도 확장이나 보수 기독교계 표심 잡기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대단한 착각이다. 김진표 의원을 총리 시킨다고 안 올 표가 오지 않는다. 실망한 촛불 시민만 떠나갈 가능성이 크다.

안재승 논설위원 / 한겨레 2019.12.11.

 

독한 시민이 되자

요즘처럼 사회가 꽉 막혀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 장 남은 달력.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할 시점인데, 여기저기가 파헤쳐 놓은 공사판이다. 답답함의 근원은 최근 뉴스에서 불쑥불쑥 마주치는 불신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깊지 싶다.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가 연일 표출되고 있다. 지난달 19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신뢰한다고 말한 지 3주가 지났을 뿐이다. ‘신뢰의 무게란 얼마쯤일지 생각하게 된다. 하명수사 의혹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은 불신의 끝판왕이다. 사망한 수사관의 휴대전화 쟁탈전이 벌어지고, 서로를 못 믿겠다며 기초적인 조사에도 응하지 않는다.

고교생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선 지난달 말 교육부의 대입 개편안 발표가 당황스러웠다. 지난해 온 사회의 숙의 끝 결정된 기본틀을 설마 흔들지 않겠지 생각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1년도 안돼 뚜렷한 근거도, 명분도 없이 뒤집을 수 있는 건가. 배신감이 들었다. ‘유치원 3’ ‘어린이생명안전법등 민생입법에 대해선 아예 말문이 막힌다. 들끓는 여론 속에 만들어져 당장이라도 시민 삶을 바꿀 줄 알았던 법안들이 국회 파행 속에 흥정과 거래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지켜봐야 했다. 그래놓고 시한 넘긴 예산안은 속기록, 브리핑도 없이 국회의원들이 알아서 잘 심사했으니 믿어달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나. 믿을 사람이 없고, 입법·사법·행정부 모두를, 이 나라의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믿을 수 없다. 이러니 새해엔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도 없다. 대체 우리 사회는 왜 이 모양인가. 신뢰의 붕괴, 신뢰 실종이라고 쓰려다 멈칫했다. 신뢰라는 것이 애초 있기나 했을까.

 

생각해 보면 법과 제도는 교과서에서나 지키라고 배운 것이었다. 실생활에선 그대로 지키면 나만 손해본다는 생각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뼈저린 삶의 교훈이다. 불법주차, 세금탈루, 위장전입, 부동산 다운계약서 등 불법과 탈법, 합법의 칸막이가 얼마나 낮은가. 반칙을 위한 촌지와 뇌물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정작 수많은 위법사안에서 피라미만 걸리고, ‘큰 도둑들은 활개치는 장면들을 수없이 목격하며 불신은 커져 갔다. 며칠 전만 해도 1년 넘게 2억원 이상 국세 고액·상습체납자들 체납액이 54000억여원에 이르고, 이들 상당수가 재산을 숨기고 호화 해외여행까지 한다는 기사가 나오지 않았나.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의 저자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불신은 과거의 경험, 특히 제도나 시스템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경험에서 온다고 했다. 우리의 저신뢰는 심각한 상황이다. 영국의 유명한 싱크 탱크인 레가툼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2019 세계번영지수에서 한국의 종합순위는 상위권(29)이었지만, 사회자본(공적·사적 관계, 제도에 대한 신뢰, 규범, 참여 등)167개국 중 142위로 바닥권이었다. 튀니지, 우간다, 벨라루스 등과 비슷하고, 카메룬, 베네수엘라보다 낮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신뢰 상위국가들처럼 감히 반칙을 생각할 수 없는 엄격한 규칙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재열 교수는 미국의 정치학자 셰보르스키의 말을 인용해 민주주의는 불신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도록 시스템으로 권력을 분산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권력분산의 룰 대부분이 국회에서 결정되고, 그 열쇠를 국회의원들이 쥐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20대 마지막 국회에선 어린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눈물을 계속 봐야 했다. 애원하고 무릎 꿇고 빌며 아이 이름을 건 어린이안전법안들의 통과를 바라던 눈물이,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결정으로 법안 무산 위기에 처한 직후엔 우리 아이들을 이용하지 말라” “이게 대한민국 정치 현실이라니 이 나라가 진짜 싫다는 절규로 변했다. 민식이·하준이 법이 그제 겨우 통과했을 뿐, 부모들은 또 눈물을 삼킨다. 자녀들을 가슴에 묻은 세월호 부모들은 진실만이라도 밝혀달라 애원했지만 국회가 두 번 바뀌도록 진척된 건 거의 없다.

눈물을 걷고 독해져야 한다. 각종 약속들을 독하게, 끈질기게 지켜보고, 약속을 어겼을 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독하게 처벌하고 심판해야 한다. 불신이 갉아먹은 사회자본만큼 가중처벌도 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의 싹을 틔울 수 있다. 선거의 해. 여야를 막론하고 더 이상 악어의 눈물, 참회와 반성에 속으면 안된다. 새해엔 독한 시민이 되자. 고비마다 대한민국 사회를 이만큼 굴려온 99%는 약하지만 강한, ‘시민들의 힘이었다    송현숙 논설위원 경향 2019.12.12.

 

미친 집값, ‘불로소득 청와대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닌 불로소득 주도 성장만 나타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11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 1급 이상 전·현직 참모 65명의 집값이 지난 3년간 평균 32천만원 올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던진 경고다.

 

청와대는 이런 조롱에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현실과 평균 상승률 40%에 이른 청와대 참모들의 부동산 시세는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을 부끄럽게 만든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김수현 전 정책실장마저 9억원짜리 과천 아파트가 재건축단지로 19억원으로 뻥튀기됐다니, 배신감을 느끼는 이도 많을 것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말했다. “강남권이나 세종시, 경기도의 재건축단지 등 가격이 급등하는 곳에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이것은 정부 관계자들이 가격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부양이나 투기를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을 쓰는 게 아닌가.”

 

청와대 참모가 제 배 불리려 정책을 왜곡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참모들 중에는 재산이 느는 사람도 있고 준 사람도 있고, 소수를 일반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청와대 관계자 발언은 어처구니없다. 자신의 재산은 늘지 않았다고 했던 이 관계자는 제 재산은 이자 등이 붙어서 올랐을지 모르겠으나 평균 3억원은 얼토당토않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니 기가 막힌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국민 불안과 우려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처신해야 했다. 그 위치가 국민 뜻을 헤아려 발언하라는 자리 아닌가.

 

재산을 신고한 전·현직 비서실 공직자 76명 가운데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보유한 65명을 대상으로 했으니, 소수 일반화가 아니다. 더 심각한 건 다주택자가 늘어난 것이다. 집을 두 채 가진 이가 13, 세 채 가진 이가 5명이다. 2017년에 견줘 5명이 증가했다. 집 여러 채 가진 이들을 불편하게 해 팔도록 만들겠다며 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집을 팔았다. 그런데 집값 폭등의 수혜자이면서, 두 채 이상 집을 가진 참모가 늘어난 청와대라면 국민은 부동산 정책의 이중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안 산 게 바보라며 집안 싸움이 한창이다. 집 팔라는 정부 말에 콧방귀 뀌며 갭투자하고 임대사업자 등록해 수억원을 벌었다는 사람도 많다. 12일 국토교통부 통계로도 집값 상승은 확인된다. 지난해 서울 집값은 1년 전보다 6.2% 올랐다. 20173.6%보다 상승세가 더욱 가팔랐다. 이젠 서울 아파트는 언감생심, 빌라나 협소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도 줄을 섰다. 늦었지만 더 오르기 전에 뛰어들려는 이들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제대로 하는 걸 겁내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든다. 문재인 정부 들어 17번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조세 저항’ ‘보유세 폭탄론을 걱정하며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찔끔 보유세 인상’ ‘일부 지역 핀셋 분양가 상한제로 투기꾼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며 대응한 탓에 결과적으로 뒷북만 쳤다.

 

문재인 정부 1년 때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정말 집값 잡을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주식으로 돈을 벌자, 한 대학이 그에게 재단 운영을 맡겼다. 그런데 손해를 봤다. 대학이 당신 주식은 이익을 봤는데 왜 우린 손해냐고 물었다. 케인스는 재단은 내 경제학 지식을 총동원해 운영했고, 주식은 마누라 하라는 대로 했다고 답했다.” 어처구니없는 답변이다. 집권 2년차에 다른 고위 인사에게 호언장담한 집값은 왜 못 잡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홍콩 등 다른 나라에 비하면 덜 올랐다. 아직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경실련 발표 집값 상승 순위 10위 안에 들어갔다.

 

지난 2년여 동안 집값 폭등 사실을 감추고 거짓 보고로 대통령과 국민을 속인 자들을 문책할 것을 요청한다는 경실련의 요구는 좀 과할 수 있다. 하지만 능력 부족, 예측 착오, 정책 실기로 망친 건 따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규제 해제 탓, 일부 투기 가수요. 한가한 말을 할 때가 아니다. 국유지에 토지임대부 주택을 때려 짓든지, 보유세를 억소리 날 만큼 물리든지 뭔가 하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민심은 계속 인내하지 않는다.   신승근 논설위원 한겨레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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