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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12.10~15

by 이성근 2018. 12. 9.


            12.10 중앙-한겨레


               기호-경인

                  인천-경향

               대구-경인

                  1212 인천-대구

                 중앙-한겨레

                   경향-국민

                     1212 내일-1213 중앙





                  1213내일-1214 중앙














국가부도의날당시 한국언론의 태도는 12 9 미디어오늘

[리뷰] ‘국가부도의 날국민 알권리 무시하고 IMF체제 이용해 노동자 권리 무시한 언론

난 절대로 안 속아.”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윤정학(유아인)은 영화 속 대한민국이 IMF 체제를 받아들이기 직전, 뉴스 속에서 한국 경제는 괜찮습니다라고 반복해 말하는 경제 관료들을 보면서 속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는 경제 관료들이 IMF 구제금융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데 재벌 기업을 위해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그 관료들의 무능력함에 수십억원을 배팅해 돈을 버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에서 한국언론과 경제 관료 불신을 그대로 전달한다.

 

 

영화가 실제 한국이 IMF를 받아들였던 과정보다 과장돼있고 디테일한 팩트들이 뭉개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중앙일보는 이 영화가 반기업·반미 정서를 부추긴다면서 당시 경제관료들이 IMF로 가기보다 대안을 모색했고, 미국과 협의는 필수적이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이 영화에 팩트 파산의 날이라고 혹평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그러나 영화 속에서 사실가장 확실한 사실은 영화 내내 나오는 한국 방송뉴스와 신문기사다. 영화 속엔 실제 방송뉴스 화면이 다수 포함돼있고 신문 기사도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보도가 조선일보 199738한국경제 위기 아니다라는 캉드쉬 IMF총재 인터뷰다.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수많은 기업 부도가 일어나는데도 한국경제는 안전하다는 기사를 줄줄이 쏟아냈다.

 

조선일보 1997526금융대란설이라는 사설에서는 삼미와 한보그룹 부도 이후 금융계와 재계에 파장이 커지자, 부도방지협약을 만든 후 금융대란설이 나돈다며 당국은 툭하면 악성루머를 퍼뜨려 혼란을 야기시키는 전문적인 루머날조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해 차제에 이를 뿌리 뽑아야 할 것이라고 썼다.

 

199738일과 918일 조선일보 지면.

 

조선일보 뿐일까. 한겨레21무식한 언론에 책임을 묻는다’(1998212)에서 인용한 IMF 직전 보수언론의 기사 제목을 보자.

 

경제위기감 과장말자’(중앙일보 111일치 사설), ‘경제 비관할 것 없다’(조선일보 113일치 기고), ‘외신들의 한국경제 흔들기’(동아일보 1110일치 사설). ‘DJ의 양심수론’(조선일보 112일치 사설), ‘국민신당 청와대 자금지원’(중앙일보 115일치 1), ‘김대중씨의 양심수 석방론’(동아일보 112일치 사설).

 

한겨레21의 기사를 보면 한겨레 역시 IMF체제에 맞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쓰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한겨레21은 이 기사에서 1997112일자 한겨레신문이 정부가 채권시장을 조기개방 해 미국이나 일본과 우리 금리가 차이가 나 자금유입이 기대돼 효과가 있을 것이며 외국인 주식투매는 무뎌질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을 외부필진의 이름으로 실었다고 지적했다. 해당 기사에서 주동황 광운대 신방과교수는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 기사는 당국의 강력한 부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탓에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언론은 세계경제의 흐름을 읽어내는 레이더가 되지 못했고 경보음 발령시기도 놓쳤다. IMF 구제금융 뒤에는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IMF 구제금융 이전의 보도뿐만 아니다. IMF 체제 이후 수많은 정리해고 속에서도 언론은 IMF를 핑계대면서 정리해고를 부추겼다. 중앙일보 정리해고 다툴 시간 없다’(1998111)에서 정리해고제의 도입은 IMF측과의 약속사항일 뿐 아니라 구조조정과 감량경영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대절명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라고 썼다.

 

이런 식으로 보수언론은 정리해고가 IMF의 요구조건이라며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캉드쉬 총재가 정작 한국에서 노동계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리해고제 도입이 IMF 조건은 아니다정리해고제는 반드시 노··3자 합의에 따라 도입돼야 한다고 밝힌 점은 보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련기사: 미디어오늘 언론-DJ 정리해고 장단 맞추기’)

 

그 외에도 IMF 시기에서 언론은 제대로 된 예측도, 분석도 미리하지 못했고 당시의 외신 보도에도 눈을 뜨지않고 기존의 논조만 반복했다. 언론은 IMF 직후 원인분석에도 실패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재정국 차관(조우진 역)은 어쩌면 당시 진짜경제관료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언론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재정국 차관은 그 놈의 알권리가 뭐가 중요합니까라면서 제대로 된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려고 하지도 않고, IMF를 이용해 노동자들 쉽게 자르는 환경과 재벌기업 위주의 경제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한국에서 IMF는 신자유주의를 본격 도입하는 신호탄이 됐다.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기업은 일본처럼 평생고용을 중심으로 한 가족주의 경영에 기반했다. 따라서 사람 자르는 기업주는 재계에서도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 받았고, 기업주들도 스스로 자기 직원 자르는 구조조정을 부끄러워했다.

 

실제 울산에 있던 섬유업체 선경인더스트리가 199610월 한국 최초로 전사원 구조조정에 들어갈 때 그 회사 임원들은 퇴직금 외에 최고 60개월치 월급과 퇴직 후 2년간 자녀장학금을 지급하는 파격적 조건에도 내보내는 직원들에게 미안해 했다. 1997124000여명을 구조조정한 제일은행 홍보실이 만든 눈물의 비디오도 은행은 떠나는 동료들을 향해 눈물을 쏟았다. IMF 20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와 정반대로 구조조정 못하면 오히려 무능한 기업주라는 평판이 정석이 됐다. 이렇게 IMF는 기업주에게 직원 자르는 부끄러움을 지워줬다.

 

일부 언론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실제 경제관료들과 다르다며 영화를 비판하지만 영화 속 재정국 차관은 경제관료보다는 언론을 비유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경제관료와 한국언론을 동시에 소화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코미디의 몰락, 안 웃기는 코미디

소수자 혐오·철 지난 개그소재에 피로감미디어 환경 변화 따라가지 못해

코미디 프로그램 폐지는 코미디언 실직의미근본적인 시스템 바뀌어야

 

KBS ‘개그콘서트끝을 알리는 밴드 연주를 들으며 주말을 떠나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개그콘서트가 방영되는 일요일 저녁이면 너도나도 TV 앞에 둘러앉았고, 월요일이면 각각 학교와 일터에서 어젯밤 나온 유행어를 따라하며 깔깔댔다. 개그콘서트 전성기 연출을 맡았던 서수민 PD는 이 프로그램을 ‘4인용 밥상에 비유했다. 부모와 자녀 세대 취향에 맞춰 다양한 코너들을 한 상에 올린다는 의미였다.

 

끼니때에 맞춰 밥상에 둘러앉는 가족은 갈수록 줄고 있다. 4인 가족이 표준이라는 기준도 과거의 것이 됐다. 2018년 현재 공개 코미디 포맷의 프로그램은 밥상 잃은 반찬 신세가 됐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MBC ‘개그야등 지상파 코미디를 대표하던 프로그램들은 사라졌다. 지상파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그콘서트 시청률은 전성기 시절 4분의1 수준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20~30%대에 육박했던 개콘 시청률은 201315% 안팎으로 떨어진 뒤 2015년에 이르러 9%대를 기록하며 두 자릿수가 붕괴됐다. 시청률이 4%대까지 떨어졌던 지난 8월 언론은 개콘의 몰락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유료 케이블채널의 경우 tvN ‘코미디빅리그가 최근 비지상파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화제성 측면에선 큰 반향이 없다.

 

코미디가 위기라는 철 지난 문제의 근본 이유는 결국 웃기지 않다는 데 있다. 몇 년 전만해도 매주 개그콘서트를 애청했다는 한 시청자는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어서 개그콘서트 방영 시간대에 TV를 안 봤다개그 스타일이 이제 유치하다. 억지로 웃음을 짜내는 우스꽝스러운 개그가 웃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국갤럽이 매월 발표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순위에서 개그콘서트는 지난 2015년까지만 해도 대체로 상위 10개 프로그램에 꼽혔으나, 201620위권으로 하락, 지난해 결산에선 상위권에 오르지 못했다.

 

과거 시청률이 20%대에 육박했던 KBS ‘개그콘서트는 지난 84%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20년 가까이 변화 없는 포맷과 상대방을 비하하는 개그 코드가 미디어 환경과 시청자 기호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직면했다. gettyimagesbank·그래픽=이우림 기자

 

거부감 높이는 소수자·외모 비하코미디언들 시청자 눈높이 높아졌다

개그콘서트 시청률과 선호도가 하락세에 놓인 시기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의 비하·혐오 논란이 표면화된 시기와 겹친다. 2015년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공영방송 KBS 개그 프로그램에서 노골적으로 외모 차별주의를 내비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해 방영된 코너 사둥이는 아빠 딸에선 여성 혐오 표현 중 하나인 김치녀표현을 사용하거나 아버지가 딸의 외모를 비하하며 차별대우하는 내용이 개그 소재로 등장했고, ‘도찐개찐’(표준어는 도긴개긴)에서는 여성 코미디언과 오랑우탄 모습을 비교하며 도찐개찐이라 외치거나 여성 몸매를 대리운전에 비유해 앞 뒤가 똑같다고 비하해 비판 받았다.

 

한국양성평등진흥원과 서울YWCA가 지난 3월 진행한 ‘2018년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보고서는 개그 프로그램이 구태의연한 모습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그콘서트의 경우 올라옵show’ 남성 출연자들이 무대에 올라온 여성 방청객 몸을 잡아 흔들며 내 여자야라는 말을 한 대목이 여성을 소유물로 간주하면서 함부로 대하거나 동의 없이 신체접촉하는 장면 등은 성희롱, 성폭력을 정당화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봉숭아학당은 여성 코미디언 얼굴을 만지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례, 아내가 남편이 벌어온 돈을 성형에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확산한 사례가 비판 받았다.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하나였던 '도찐개찐'은 여성 개그맨 외모를 오랑우탄과 비교하며 비하한 사례로 비판 받았다.

 

 

익명을 전제로 입을 연 전·현직 코미디언들도 기존 개그 코드의 한계를 호소했다. A씨는 시청자들이 과거에 비해 눈높이가 높아졌다과거 열풍이었던 이봉원 선배의 시꺼먼스같은 코너를 지금 하면 흑인 비하 논란을 받을 것이다. 얼마 전에도 한 코미디언이 시커멓게 분장했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고 전했다. B씨는 예전에 몰라서 했던 개그를 이제는 알아서 못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과거 소재로 사용하던 것들을 못하게 되니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거침없이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TV 프로그램 위기가 코미디언 생존 문제로코미디도 바뀌어야 산다

다만 현재 코미디의 위기를 코미디언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지상파 공개 코미디에 의존해 온 한국 코미디 시장이 변화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지닌 한계가 있다. 이른바 코미디의 위기는 곧 지상파의 위기와 맞닿는다는 것. 한 코미디언은 공개 코미디라는 형식이 처음 생긴 1999년에는 15~20개 코너를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시도였다. 지금까지 거의 20년 째 같은 포맷으로 진행하다보니 시청자들이 볼 때는 식상함을 느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코미디언은 요즘에는 유튜브나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구미에 맞는 것들을 볼 수 있지 않나.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이길 도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소위 안 팔리는상품이 되면서 붕괴된 기존의 신인 육성 시스템은 악순환을 낳고 있다. 방송사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경쟁 구도에 놓여 있을 때에는 지금에 비해 신인들이 자라날 수 있는 시스템이 돌아갔다. KBS의 경우 지난 2005~2006실력파 코미디언 발굴을 위한 순수 아마추어 개그 프로그램을 표방한 심야 시간대 개그 프로그램 개그사냥이 있었다. 신인 코미디언들이 개그사냥에서 무대 훈련과 실력 검증을 거치면 메이저리그인 개그콘서트에 오르는 식이다. 인기 코미디언으로 꼽히는 김원효, 김지민, 박성광, 최효종, 김준현 등 KBS 20기 초반 기수들이 이 시스템을 통해 데뷔했다.

 

그러나 코미디 시장이 활력을 잃으면서 신인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 개그콘서트는 저조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 900회 특집을 기점으로 김대희, 신봉선 등 ‘OB의 귀환을 시도했으나, 시장 변화를 이겨낼 만한 한 수가 되지는 못했다. 한 코미디언은 시청률이 높지 않다보니 모험을 하기 어렵고 얼굴이 알려진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상황이다. 선배들도 프로그램을 위해 이것저것 병행하다보니 집중하기 힘들고, 후배들은 어차피 스타가 될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생각에 선배들 따라 프로그램 나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고인 물이 되고 있다는 것.

 

등용문이 사라진 코미디언들에게 코미디 프로그램 위기는 생존의 위기다. 지난해 SBS 웃찾사 폐지로 코미디언 150명이 실직했다. 전직 코미디언은 다른 공채 직군은 월급이라도 받으며 살아가는데 코미디언들은 1년이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프로그램이 없어졌을 때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마흔 넘어 사회로 나와 취업하려고 하면 누가 알아주나. 취업도, 결혼도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사람이 적어서 목소리를 못 냈고 부당해도 부당하다 말 할 수 없었다. 노조도 없지 않느냐사람들 재밌게 해주려고 한 죄 밖에 없는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방송사가 너무 가혹했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개그맨 홍윤화, 김민기 부부는 유튜브 채널 '홍윤화 김민기 꽁냥꽁냥'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유튜브 '홍윤화 김민기 꽁냥꽁냥' 갈무리

 

TV 공개 코미디 시장의 한계를 체감해 방송사 밖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코미디언들도 있다. 과거 공연의 성지였던 서울 대학로나 홍대 일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비롯한 공연 코미디들이 관객을 만나고 있다. ‘까브라더쑈’, ‘용진호쇼’, ‘홈쇼핑 주식회사’, ‘투깝쇼등이다. 저글링, 마임, 비트박스 등 이른바 논버벌(non-verbal) 퍼포먼스로 국제 코미디페스티벌에서 각광받고 있는 코미디그룹 옹알스는 최근 부산코미디페스티벌에서 ‘K코미디스타상대상을 받았다. 팟캐스트 기반으로 성공한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나 홍윤화 김민기 꽁냥꽁냥’, 이홍렬의 풀벌 이야기’, 이수근의 우리들만의 리그등 유튜브 진출 사례도 부쩍 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 사례는 전체 코미디언들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콩트가 어려워졌을 때 이를 살린 것이 개그콘서트라면 이제는 지금 시대에 맞는 형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평론가는 유튜브 개인 방송을 끌어안는 형식의 날 보러 와요’(JTBC)가로채널’(SBS) 같은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실시간 방송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에 집중하면서 코미디언을 활용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중문화 분야를 취재해 온 서병기 헤럴드경제 선임기자도 한국 코미디에 대한 논의가 단순히 개콘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맞춰져선 안 된다고 본다코미디는 공개 코미디 외에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한국에는 대중적이지 않다. 다양한 장르를 활성화하고 OTT, MCN 전략으로 해외까지 진출할 수 있는 거점 전략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 한겨레12.7

수온 10도 상승, 신진대사 빨라지는데 산소농도는 낮아져 떼죽음

적도보다 고위도 지역 멸종률 커현재 지구온난화와 같은 메커니즘

 

 

» 고생대 바다를 점령하던 삼엽충도 페름기 멸종사태로 지구에서 사라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적도 바다의 수온이 10도나 높아졌다. 바닷속의 산소농도는 80%나 줄었다. 삼엽충 등 바다 생물들은 숨을 헐떡이며 죽어갔다. 해양생물종의 96%가 멸종했다. 지구에 다양한 생물이 다시 들어차기까지 수백만년을 기다려야 했다. 사상 최악의 페름기 대멸종 사태의 모습이다. 당시의 여건이, 정도는 다르지만 현재의 기후변화 사태와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구에 살던 생물 대부분이 사라진 대멸종 사태는 지금까지 5번 일어났다. 고생대 때 3, 중생대 때는 공룡시대를 끝장낸 백악기 말 멸종사태 등 2번이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고생대와 중생대를 구분 짓는 계기가 된 25200만년 전 페름기 말의 대멸종 사태이다.

 

» 페름기 대멸종 사태 때 위도별 멸종률 차이를 나타낸 그림. 세로축이 멸종률, 가로축은 가운데가 열대, 양쪽 가장자리가 극지방을 가리킨다. , 도이치, 워싱턴대 제공.

 

이 사태로 고생대 바다를 지배하던 삼엽충, 바다나리, 산호 등 거의 모든 생물종이 사라졌다. 육지에서는 양서·파충류, 포유류형 파충류 등 70%가 멸종했다. 종자고사리 등 석탄기와 페름기 동안 지구를 울창하게 덮던 식물들도 사라졌다.

 

페름기 멸종사태의 원인을 두고 오랜 논란이 벌어졌다. 바다 산성화, 중금속과 황화수소 독성, 산소 고갈, 고온 등의 가설이 나왔지만,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산분출로 인한 환경변화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관련 기사: 대멸종 부른 100만년 동안의 '레몬즙 산성비').



지난 5억년 이래 최대의 화산분출을 기록한 시베리아 분출지역. 검은 부분은 용암이고 점선 부분은 화산재가 쌓인 응회암층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베리아에 한반도 10배 면적의 용암대지를 형성한 이 분출은 석탄기 동안 쌓인 석탄층을 뚫고 올라와, 화산 분출물과 석탄이 타면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로 방출해 극심한 온난화를 일으켰다(최덕근 2018, ‘지구의 일생

 

그런데 지구온난화가 어떻게 다양한 생물의 멸종으로 이어졌는지, 그 지리적, 생물종별 차이는 무언지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스틴 펜 미국 워싱턴대 해양학과 박사과정생 등 미국 연구진은 당시의 대륙분포를 고려한 기후모델과 고생물학 화석 데이터베이스, 현생동물의 대사 관련 자료 등을 종합한 연구 끝에 대멸종 사태의 주원인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산소 부족이며, 이로 인해 적도보다 극지방 쪽으로 갈수록 멸종률이 컸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7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대멸종 사태를 겪으면서 바다나리, 삼엽충 등이 지배하던 고생대 바다는 어류, 조개류, 새우 등이 번성하는 중생대 바다로 바뀌었다. 사진은 바다나리 화석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수온이 상승하면 해양동물의 신진대사도 빨라져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한데, 더운물은 충분한 산소를 간직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들은 질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연구책임자인 펜은 멸종에 이르는 메커니즘을 화석기록을 바탕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멸종 원인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당시 지구는 모든 대륙이 하나로 붙은 초대륙 판게아상태였다(한반도는 둘로 나뉘어 적도 부근에 있었다). 연구자들은 판게아에 맞춘 기후모델로 시베리아 대분출로 인한 영향을 계산했다. 분출 직전의 지구 온도와 산소농도는 현재와 비슷했다. 그 결과 지구의 온도는 시베리아 분출과 함께 극적으로 올라 적도의 바닷물 온도가 1015도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심해저인 바다 밑바닥의 절반에 무산소 상태가 빚어졌다. 전체적으로 바다의 산소농도는 80% 감소했다.

 

penn2.jpg » 대멸종 사태로 빚어진 초대륙 판게아(회색) 주변 해역의 수온 상승. 펜 외 (2018)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런 환경변화가 해양생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갑각류, 물고기, 조개, 산호, 상어 등 61종이 다양한 산소농도와 온도에 얼마나 민감한지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적으로 멸종 정도를 추정했다. 공동 저자인 커티스 도이치 워싱턴대 교수는 자기가 살던 서식지에 그대로 남아있던 생물은 거의 없었다. 도망치거나 죽거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생물은 적도에서 먼바다에 살던 종이었다. 극지방으로 갈수록 멸종률이 커졌다. 도이치 교수는 열대바다 생물은 이미 꽤 덥고 낮은 산소 환경에 적응한 상태여서 다른 곳으로 이주해 나갈 수 있었지만 차고 산소가 풍부한 바다에 적응한 생물은 도망갈 데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또 무산소 해역이 방대했지만, 그곳엔 이미 많은 생물이 살던 곳이 아니어서 멸종사태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것으로 보았다. 이와 함께 멸종의 절반 이상은 수온 상승과 그로 인한 산소 부족이 이유였지만 바다 산성화 등 다른 요인이 추가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암모나이트 상상도. 고생대의 대표적 바다 생물이었지만 2개 속만 빼고 멸종했다. 노부 타무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연구에서 주목되는 건, 페름기 멸종사태의 상황이 현재의 기후변화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펜은 지구온난화가 특별한 대책 없이 현재대로 진행된다면 2100년에 해수 온도는 페름기 말 온난화의 20% 수준에 이를 것이고, 2300년이면 3550% 수준에 이를 것이라며 인류가 일으킨 기후변화 아래서 대규모 멸종사태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논문을 논평한 리 컴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시베리아 용암분출은 화석연료의 연소에 해당하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산소 감소는 이미 해양에서 관측되고 있는 사실이라며 “(페름기 대멸종 사태가)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교훈은 분명하다. 화석연료를 지속해서 태워 발생하는 위험을 줄이거나 역전시키지 못한다면 페름기 말과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pe5.jpg » 고생대 페름기 말 대멸종 사태와 이후 새로 퇴적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퇴적층의 경계층. 중국 귀저우에 있는 지층으로 아래는 멸종사태 이전의 화석이 있는 석회암이고 경계층 위는 미생물로 이뤄진 석회암이다. 경계 부위는 바다 산성화로 침식됐던 흔적이 보인다. 조너던 페인 제공.

 

도시에서의 두 죽음 한겨레21 1241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시정비법)에서 규정하는 도시정비사업이다. 법은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은 엄청난 부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는 쫓겨난다. 이렇게 쫓겨난 이 가운데 한 명이 한강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단독주택에서 10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박준경(37)씨가 124일 서울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아현역과 이대역 사이에 위치한 아현2구역에 살던 그는, 지난 96일 강제집행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난 뒤 재건축 구역에 있는 빈집을 전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재건축 지역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아현2구역 재건축조합 관계자들과 철거 용역들이 1130일 박씨를 끌어냈다. 박씨의 흔적이 발견된 건 사흘 뒤였다. 박씨가 망원 한강공원에 두고 간 신발과 옷가지, 유서가 발견된 것이다.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 마포구 아현동 ○○○-○○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저는 이대로 죽더라도 어머니께서는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회원과 고생하시며 투쟁 중이라 걱정입니다. 어머니도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저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빈민해방실천연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은 박씨의 죽음에 대해 사회적 타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간사업 성격이 강한 재건축은 재개발과 달리 철거민 이주대책 관련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법은 정비기반시설도로·상하수도·공원·주민의 생활에 필요한 열·가스 등의 공급시설이라고 규정한다. 박씨가 세상을 떠난 124일 밤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인근 지하에 매설된 열수송관이 파열되며 손아무개(68)씨가 숨졌다. 딸과 예비 사위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를 몰고 귀가하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벌어지면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풍경이 어김없이 펼쳐졌다. 감사원이 지난 9월 지역난방공사에 열수송관 위험도를 측정하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관리 상태가 엉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시정 조처를 요구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전국의 열수송관 2164가운데 686(32%)20년 넘은 노후 배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에 나섰다.

 

오늘도 곳곳에서 도시정비사업이 진행된다. 새로운 사업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 도시환경과 주거생활의 질은 높아진 것일까. 무엇을 정비하는 게 먼저일까.

 

기온이 인류 생존의 승패를 전적으로 결정한다



25200만년 전 페름기

화산 활동으로 온실가스 배출

해수면 온도 40도까지 오르며

해양 속 산소, 80%가량 유출

4%를 제외하고 생물 대멸종

고위도 생물일수록 적응 못해

 

25200만년 전인 고생대 페름기 말기, 지구상의 초대륙 판게아에서는 화산활동과 지진활동이 극심하게 일어났다. 현재의 시베리아에 해당하는 지역 화산에서 나온 온실가스가 지구 평균기온을 상승시켰다. 100만년 동안 지속된 분화를 통해 100~400에 달하는 용암이 지상에 흘러나왔다. 해수면 온도는 약 40, 대기 중의 온도는 약 50~60도까지 치솟았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때로 추정한다.

 

판게아란 대륙 이동설에서 현재의 대륙들이 아직 분화되기 전, 하나의 커다란 대륙을 이루고 있을 때의 이름이다. 독일의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가 붙인 이름이다.

 

기온이 올라가고, 온실가스 농도가 늘어남에 따라 산소 농도가 낮아졌다.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 산소가 부족해지자 고생대 바다의 주역이었던 삼엽충, 산호, 방추충 등은 완전히 멸종했다. 지상에서는 많은 곤충류와 파충류들이 사라져버렸다. 바다와 해양의 식물들도 대부분 멸종을 피하지 못했다. 전체 생물종 가운데 화산활동으로 인한 극심한 기후변화를 견뎌내고 후손을 남긴 종은 단 4%. 96%의 생물종은 페름기 말기의 대멸종 때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대멸종으로 인해 지구는 사실상 텅 빈 상태가 되었고, 새로운 종의 진화도 장기간 발생하지 않았다. 이른바 새로운 종이 나타나지 않는 생명의 사각지대(Dead Zone)’가 약 500만년 동안이나 이어진 것이다.

 

학계에서는 페름기 말기의 대량멸종은 지구에서 생명체가 태어나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5번의 멸종 가운데서도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힌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 사상 최대의 멸종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대멸종(Great dy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억년 전부터 25200만년 전까지 이어진 페름기는 선캄브리아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이어지는 지질시대 가운데 고생대의 마지막 시기로 이첩기(二疊紀)라고도 부른다. 바다에는 삼엽충, 산호, 원생동물인 방추충이 번성했고, 지상에는 양치식물과 원시 파충류들이 먹이사슬을 이뤘던 시기로 추정된다. 원생동물은 짚신벌레처럼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단세포동물을 말한다. 진화의 단계에서 가장 초창기의 동물로 추정된다.

페름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시기가 공룡이 번성하기 시작한 중생대의 첫 시기인 트라이아스기(삼첩기·三疊紀)이다. 대멸종 시기에 살아남았던 원시 파충류들이 공룡으로 진화하면서 중생대의 주역이 될 기회를 잡게 됐다. 중생대 내내 공룡들을 피해다니기에 급급했던 포유류의 조상이 중생대 말 공룡들의 멸종 이후 신생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과 비슷한 과정인 셈이다.

 

지구 사상 최악의 멸종 사태가 일어난 페름기의 대멸종에 대해 학계에서는 대체로 화산활동과 기온 상승, 산소 부족 등이 원인이 됐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소행성의 지구 충돌이 멸종을 가속화시켰다는 주장 정도다.

 

그러나 당시 화산활동으로 인한 극심한 기후변화가 지역별로, 생물종별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 워싱턴대 해양학과와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7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페름기의 대멸종에서 주된 원인은 산소 부족 현상이었으며 고위도 지방의 생물들일수록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고생대 당시 판게아를 모사한 지구기후시스템 모델과 현재 생존해 있는 생물종들의 신진대사 모델 등을 통해 지구온난화와 저산소 현상이 생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시베리아의 화산 분출 직전 지구 기온과 산소 농도는 현재와 비슷했지만 분출 이후 평균 해수면 온도는 10도 이상 치솟았다. 이로 인해 해양에 간직돼 있던 산소가 80%가량 유출돼 버렸다. 연구진에 따르면 당시 지구의 적도 부근 열대 지역에 살았던 해양동물들은 고위도 지역의 동물들에 비해 산소 농도가 낮아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다. 물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산소의 양이 줄어드는데 열대 지역에 서식했던 동물들은 기후변화 전에도 수온이 높고, 산소 농도가 낮은 환경에 적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수온이 낮고, 산소 농도가 충분한 고위도 지역에 살던 동물들은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수온이 높아지면 해양동물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필요한 산소량도 늘어나기 때문에 고위도 지역의 동물들은 멸종을 피할 길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또 갑각류, 어류, 패류, 산호, 상어 등 현존하는 61종의 해양생물이 수온과 산소 농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분석했다. 워싱턴대 해양학과 커티스 도이치 부교수는 수온과 산소 농도가 크게 변화했을 때 이들 생물의 반응에 대해 원래 서식지에 그대로 서식할 수 있는 생물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죽음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인류세’(人類世)라는 지금

페름기 말기 기후 상황과 비슷

동물 멸종 속도, 추정보다 빨라

이대로라면 2300년 해수 온도

페름기 말기 상승분의 50% 수준

 

문제는 페름기의 대멸종 때와 유사한 현상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특히 대기 중 온실가스가 증가한 페름기 말기의 기후 상황이 현재와 매우 비슷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했다. 해수 온도 변화가 대멸종의 방아쇠가 된 저산소 현상을 일으킨 것처럼 현재의 온실가스 증가와 해양 온도 상승이 6번째의 대멸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학계에서는 이미 지구의 지질시대가 홀로세를 지나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에 접어들었으며 인류 때문에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주장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류세란 199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 제안한 개념이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플라스틱, 핵실험의 흔적, 대량생산·소비된 뒤 버려진 닭뼈 등이 인류세의 대표적인 지질학적 특징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류세는 학계에서 공인된 개념이 아니지만 생물종 멸종의 속도가 인류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 결과들에서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온이 인류 생존의 승패를 전적으로 결정한다.

멕시코 국립자치대와 미국 스탠퍼드대 공동연구진은 지난해 7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기존에 학계에서 추정했던 것보다 동물의 멸종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척추동물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약 27600종에 대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3분의 1가량의 동물종에서 개체 수가 최고 절반까지 줄어들었다는 내용이었다. 1900~2015년 육식 포유류 177종은 개체 수가 80%가량 감소했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있지 않은 종에서도 개체 수 감소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다른 연구들에서는 16세기 이후 척추동물 320종이 멸종했으며, 척추동물의 멸종 속도가 앞으로 100배 이상 빨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온 바 있다.

 

이번 논문의 제1저자인 워싱턴대 해양학과 박사과정생 저스틴 펜은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에서 2100년쯤 해수 온도는 페름기 말기에 상승했던 수준의 20% 정도 오를 것이고, 2300년에는 페름기 말기 상승분의 35~50%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연구는 인류로 인한 기후변화로 페름기 말기의 대멸종과 같은 메커니즘의 대멸종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국제노총 세계 최악의 보스투표, 이건희 삼성 회장 21위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의 세계 최악의 보스(World’s Worst Boss ) 투표에 오른 10명의 후보. 아랫 줄 왼쪽 두 번째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ITUC 홈페이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전 세계 최악의 보스’ 2위에 뽑혔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은 해마다 온라인 투표를 통해 뽑는 세계 최악의 보스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위에 올랐다고 9일 밝혔다. 이 투표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통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회사의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다.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기업 업무를 아웃소싱해 부당한 노동 조건으로 내몰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올해 최종 후보에는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10명이 올랐으며,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6(현지시간)까지 투표가 진행됐다.

 

1위는 52%의 압도적 득표율로 유럽을 대표하는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의 마이클 오리어리 최고경영자가 뽑혔다. 라이언에어는 지난 8월 유럽 곳곳에서 임금 및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파업이 있었다.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지난 30년 동안 오리어리는 회사를 저임금, 저비용 모델 위에서 운영하며 노동자들을 착취해왔다면서 노조를 만드려는 직원들을 해고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의 득표율로 2위에 올랐다. 국제노총은 삼성에 대해 첨단 기술로 유명한 회사지만, 150만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을 하청업체와 자회사의 거대한 그물망에 얽어맸다면서 삼성의 노조 와해 문건을 언급했다.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 온 삼성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파괴공작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어왔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 직접고용 협상을 타결하는 등 사실상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포기하면서 연이어 노조가 생겨나고 있다. 국제노총은 삼성이 최근 노조와 대화를 시작했다면서 노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의 성과로 꼽았다.

 

3위에는 노동자를 로봇처럼 대한다는 평가를 받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가 뽑혔다. 그 외 상습적인 성추행·성폭행 사실이 폭로된 하비 와인스타인 미라맥스 설립자,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 등 유명 CEO들이 최악의 보스에 이름을 올렸다.

 

국제노총은 163개국 331개 회원조직에서 2700만 명이 가입된 세계 최대 노동조직이다. 투표 결과는 지난 7(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 총회에서 발표됐다. 이번 총회에는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과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참석해 각 노총의 조직화 성과와 국내 노동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공장 폐·부산물로 난방·자재 생산생태산업단지 눈길

산업부, 심포지엄서 소개“24226억 경제 효과·일자리 성과

공장을 가동하며 냉난방을 돌리거나 부산물로 새 제품을 만드는 생태산업단지가 주목받고 있다. 일례로 SK인천석유화학은 내년 11월부터 청라지구에 거주하는 4만가구에 난방용 열에너지를 공급할 예정이다. SK인천석유화학의 파라자일렌(PX) 생산공정에서 버려지던 열에너지를 회수해 활용하는 방식이다. 지난 9월 인천시, 인천종합에너지, 청라에너지 등과 지역 냉난방 열원공급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내년 3월 공사에 들어간다. 이를 통해 공급되는 열원만큼 기존 발전소 가동을 줄이면 연간 약 27000t에 달하는 액화천연가스(LNG)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고 연간 5t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기대된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0‘2018 생태산업단지 및 청정제조 확산 심포지엄을 통해 위의 사례처럼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폐·부산물을 재이용해 순환시스템을 구축한 친환경 산업단지들을 소개했다.

 

정부는 2005~201681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생태산업단지를 육성해왔다. 현재까지 사업화가 완료된 235건의 과제를 통해 24226억원의 경제적 효과와 온실가스 854t 감축, 일자리 992명 창출 등의 성과를 거뒀다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또 관련 분야의 37개 대표기술을 확보하고, 베트남 호아칸 산업단지에 생태산업단지 적용 타당성 컨설팅을 수행하는 등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국내에서 지역거점형 사업으로 참여한 사례도 소개됐다. 충청권에서는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폐황산을 전처리·제조 과정을 거쳐 친환경 응집제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매년 약 9000t에 달하는 폐황산을 재이용 중이다. 전남권은 화학·발전사업에서 발생하는 폐단열재와 석탄재(fly ash) 등을 활용해 기능성 건축자재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간 21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산업부는 생태산업단지 사업을 내실화하고 자발적 생태산업개발 사례를 확산시켜 제조업의 저탄소·친환경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지역 상생모델 발굴과 해외진출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6개 광역시 집값, 115개월간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다

전국 집값 안정세라는데시장의 현실은?

감정원 서울, 지난달 상승률 0%9개 시·도는 24개월 연속 하락

여전한 오름세 속 숨고르기정부 대책에 시장 양극화, 반등 가능성도

서울 집값은 과연 추세적 하락세일까, 지방 부동산시장은 죽어가고 있는 걸까.

 

외견상 전국의 집값은 안정을 찾고 있다. 10일 한국감정원 부동산통계를 보면, 서울의 전달 대비 주택매매가격 상승률(91.25%100.51%110.20%) 및 아파트매매가격 상승률(91.84%100.58%110.05%)‘0’에 수렴되고 있다. 같은 기간 전국의 주택매매가격 상승률(0.31%0.19%0.13%) 및 아파트매매가격 상승률(0.30%0.13%-0.03%)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의 부동산 플랫폼인 리브온(Liiv on)’ 통계를 보더라도 집값 흐름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시장의 파고는 이처럼 잦아들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6대 광역시의 아파트 등 주택가격은 길게 보면 10년째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 집값도 여전히 낙관할 수 없다. 원래 11~12월은 전통적 비수기이기도 하다. 지금의 하락세가 추세적이라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자칫 정책당국이 부동산시장이 안정됐다고 판단해 공급확대 약속 및 수요 억제책을 느슨하게 펼 경우 반등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이다. 시장도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 의지를 살피고 있다.

 

6개 광역시 115개월 무하락

KB국민은행은 전국 151개 시··34495개 표본주택(201811월 기준)을 대상으로 19862월부터 주택 관련 통계를 수집, 분석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주택통계 시계열자료에는 394개월간(9개 시·도는 200310~지난달까지 182개월)의 분석 결과가 담겨있다.

 

시계열자료를 보면, 주택(단독주택·아파트·연립) 매매가격은 전국이 63개월 연속, 서울이 52개월 연속 상승 중이다. 6개 광역시(광주·대구·대전·부산·울산·인천)는 최근 115개월 동안 단 1개월도 하락하지 않았다. 9개 시·(강원, 경남·, 세종시, 전남·, 제주, 충남·)만이 24개월 연속 하락했다.

 

아파트 매매가격 역시 전국은 63개월 연속 무하락(보합 1개월), 서울은 52개월 연속 상승, 6개 광역시는 74개월 연속 무하락 중이었다.

 

전국 집값은 여전히 오름세에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인 것이다. ‘서울-지방 양극화서울-9개 시·도 양극화가 맞다. 지방은 조선업이 붕괴된 경남 거제, 통영 등의 하락률이 컸고, 지진 등 여파로 주거환경이 파괴된 포항과 지역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미 등을 중심으로 집값이 하락했다. 9개 시·도의 하락폭도 지난 2년간 주택이 마이너스 2.64%, 아파트가 마이너스 5.05%였다.

 

11~12월은 전통적 하락세

11~12월 하락 안정세는 어쩌면 매년 벌어지던 일일 가능성이 있다. ·전학, 인사 등의 요인으로 이사수요가 많은 1~2월에 거래도 활발하고 주택 매매가격도 뛰는 반면, 11~12월은 움직임이 적고, 그에 따라 매매가격도 하락한다.

 

19862월부터 지난달까지 394개월 동안 주택 및 아파트 가격이 오른 달과 하락한 달, 변화가 없던 달(보합)을 분석해 보면, 11~12월 중 전국 주택가격은 36개월 동안 올랐고, 27개월이 하락했다. 서울은 오른 달이 31개월, 내린 달이 30개월로 비슷했다.

 

아파트가격은 전국이 36개월 상승하고, 26개월 하락했다. 서울은 하락한 달이 32개월로 오른 달(29개월)보다 많았다.

 

3개월 내리고 7개월 올랐다

주택매매시장에선 지난 394개월 사이 3개월 내리면 7개월이 오르는 ‘3·7원칙이 작동했다. 전국은 108개월 떨어지는 동안 258개월 상승했고. 28개월은 보합을 유지했다. 그사이 전국 주택가격은 188.27% 상승했다. 서울은 134개월 하락하는 사이 234개월 올랐고, 26개월은 잠잠했다. 그사이 주택가격 상승률은 232.20%였다. 6개 광역시는 101개월 하락, 271개월 상승, 22개월 보합으로 상승률은 181.69%였다. 9개 시·도는 분석대상 182개월(200310~201811) 52개월 하락, 127개월 상승, 3개월 보합으로 그사이 36.75%가 상승했다. 아파트 매매가격 흐름도 비슷했다. 전국은 110개월 하락·267개월 상승·17개월 보합(376.94%), 서울은 141개월 하락·232개월 상승·21개월 보합(481.43%), 6개 광역시는 95개월 하락·274개월 상승·25개월 보합(383.72%)이었다. 9개 시·도는 182개월 중 43개월 하락·136개월 상승·3개월 보합으로 그사이 58.46%가 올랐다.

 

분양가상한제 및 원가공개 해야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눈치보며 버티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부동산정책 방향에 따라 집값이 하락하거나 반대로 오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팀장은 강남 재건축 고분양을 잡지 못하고, 강제 수용한 공공택지에서조차 원가와 상관없이 시세를 고려한 분양을 계속 허용하면 주택시장 안정은 먼 이야기라며 다주택자 임대소득 종합과세, 공시가격 현실화와 함께 강력한 분양가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확대가 시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수당만 100여가지급여 산정 미적분보다 더 어렵다

시대에 뒤떨어진 호봉제 아직도 채택비율 10곳 중 6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으로 낮은 기본급·많은 수당 체계 부작용 속출

직무급제 도입으로 임금체계 단순화해야



현대자동차 수당은 100여종에 달한다. 크게 연월차·휴가·생산성 향상·직급·가족 수당 등으로 구분되고 세분화하면 더 복잡하다. 지급받는 근로자도 다 알지 못할 정도다. 임금구성 뿐만 아니라 호봉제와 연봉제, 직무급제를 혼용하는 등 복잡한 임금체계는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복잡하고 성과반영이 어려운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시장의 저성장·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호봉제 임금체계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어서다. 기본급 인상 대신 우후죽순 생겨난 수당으로 인해 임금체계가 복잡해지면 인사·노무관리 비용 증가는 물론 직원 평균 급여가 수천만원이 넘는 기업이 최저임금 위반으로 적발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임금체계를 단순화하고 성과중심 문화 도입을 위해 직무급제 확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제도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 10곳 중 6(8월말 현재 59.2%)은 호봉제다. 직무급제 도입 기업(100인 이상 사업장)비율은 200941.7%를 기록한 후 201148.9%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1년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올해 8월 현재 37.3%. 숙련도, 경력, 보유 자격 등 개개인의 역량을 중시하는 직능급제는 같은 기간 43.5%에서 33.8%로 약 10%포인트 감소했다.

 

각종 수당으로 도배한 복잡한 임금체계는 기업경쟁력마저 훼손하는 만큼 기본급·수당 등 임금구성체계와 호봉제·직무급제 등 임금결정체계를 동시에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반적인 급여체계를 선진화·단순화 할 필요가 있다. 노사간 모두 알기 쉽게 만들고 성과급 등은 별도 계약으로 지급할 수도 있다기업들이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임금체계로 인해 오히려 기업에게 문제가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임금체계가 복잡한 나라는 없다지난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에는 각종 수당을 신설하는 등 급여체계를 복잡하게 만든 이유는 있지만 지금은 환경이 다르다. 임금체계를 단순화 하고 호봉제’, ‘무늬만 연봉제등 임금체계에 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지구 온난화 지속 땐10년 뒤 기후, 300만년 전으로 역주행 1212 한겨레

미국 연구팀 보고서

2030년 기후 플라이오세 중기와 같아져

현재보다 기온 2~4도 높고 해수면 높아

2150년엔 13도 높고 빙하 없던 에오세로

동아시아 등 9% 지역, 미지의 기후 겪을 것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대표농도경로 RCP 8.5) 기후가 지역별로 어느 시기의 과거와 유사한지를 보여주는 그림. 2100을 넘어서면 과거 어느 시기에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기후가 동아시아 등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모사됐다. 제공

 

지구 온난화가 현재대로 진행되면 2030년에는 지구 기후가 300만년 전의 플라이오세 중기로 역주행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 연구팀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2150년의 기후는 따뜻하고 빙하가 거의 사라졌던 5천만년 전의 에오세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10(현지시각)치에 보고했다.

 

연구팀은 브리스톨대, 컬럼비아대, 리즈대, 나사 고다드우주연구소, 국립대기연구소 등과 함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5차 보고서가 제시한 미래 기후 예측과 에오세 초기, 플라이오세 중기, 마지막 간빙기(LIG·129~116천년 전), 홀로세 중기(6천만년 전), 1859년 전의 산업혁명 이전 시기와 20세기 초기 등 과거 지질연대의 기후와 비교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배출을 전혀 감축하지 않는 것을 상정한 대표농도경로 8.5(RCP8.5) 시나리오와 온실가스 배출을 어느 정도 감축하는 대표농도경로 4.5(RCP 4.5) 시나리오로 나눠, 영국 기상청 해들리센터 모델(HadCM3), 고다드우주센터의 모델(GISS), 미국 대학연합이 운용하는 전지구 모델(CCSM) 등 세가지 기후모델을 이용해 시뮬레이션했다.

 

논문 주저자인 존 윌리엄스 위스콘신 매디슨대 교수 연구실의 대학원생인 케빈 버키는 과거의 관점에서 미래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일찍이 인류한테는 미지의 땅이다. 우리는 놀라운 속도로 매우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어 수세기 안에 지구가 먼 과거로 역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생존하고 있는 모든 동식물은 에오세와 플라이오세에 생존했던 조상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인간과 우리에게 친숙한 동식물이 이 빠른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변화 속도는 일찍이 지구상에서 어떤 생명체도 경험해보지 못한 빠르기이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2007년 윌리엄스 교수 연구팀이 20세기 초반부터의 기후 역사 기록과 미래 기후 예측을 비교한 선행 연구에 이은 것이다. 연구팀은 좀더 먼 지질학적 과거까지 조사하고 비교를 확장하기 위해 기후 조건에 좀더 강화된 데이터를 삽입했다.

 

6500만년 전부터 미래의 2200년까지 지구 기후 변화. 오른쪽 끝부분은 온실가스 배출 4가지 시나리오(대표농도경로)에 따른 예측을 나타낸다. <PNAS> 제공

 

윌리엄스 교수는 우리는 과거를 척도로 삼아 미래를 이해할 수 있다. 미래는 우리가 한평생 경험하는 어떤 것과도 다를 것이다. 사람들은 세계가 지금으로부터 5년 뒤, 10년 뒤에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워한다. 지구 역사의 지질학적 유사성을 이용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5천만년 전인 에오세에는 지구 대륙이 좀더 가까이 붙어 있었고 지구 평균 온도는 오늘날보다 섭씨 13(화씨 23.4) 높았다. 공룡들은 곧 사라졌고 고래나 말 조상 같은 초기 포유류가 전지구로 퍼져나갔다. 북극은 오늘날 미국 남부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슷한 습지대였다.

 

330~300만년 전인 플라이오세에는 남미와 북미가 붙어 있었고 기후는 건조했으며 해륙교를 통해 동물들은 대륙들로 퍼져나갔고 히말라야가 생성됐다. 기온은 오늘날보다 섭씨 1.8~3.6(화씨 3.2~6.5) 높았다.

 

연구팀이 RCP 8.5RCP 4.5 두 시나리오와 세 가지 모델을 결합해 분석한 결과 지구 기후는 RCP 8.5 시나리오에서는 2030년까지, RCP 4.5 시나리오에서는 2040년까지 플라이오세 중기와 비슷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어느 정도 감축하는 RCP 4.5 시나리오에서는 기후가 플라이오세 중기와 같은 상태가 유지됐지만, RCP 8.5에서는 기후가 계속 따뜻해져 2100년이면 에오세와 비슷해지기 시작해 2150년이면 완전히 에오세와 같아지는 것으로 나왔다.

 

모델들은 기후변화가 맨처음에는 대륙 중심부에서 시작해 차츰 바깥쪽으로 확산한다고 모사했다. 기온은 올라가고 강수량은 늘어나며 빙하는 녹고 기후는 극 주변까지 따뜻해진다. 윌리엄스 교수는 위스콘신주의 매디슨이 같은 위도의 워싱턴주 시애틀보다 따뜻해진다. 이번 세기에 지구 평균기온이 3도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면 매디슨은 지구 평균의 거의 두 배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RCP 8.5 시나리오에서는 지구의 9% 지역에서 지질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기후가 출현할 것으로 전망됐다. 9%에는 주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미대륙 연안 등 지역이 들어간다.

 

버키는 우리는 관측 데이터에 근거해 배출 시나리오의 극단 상황을 추적해본 것이다. 하지만 너무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등 기후 온난화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RCP8.5RCP4.5의 중간 정도에 머물 수 있다면 극단의 상태가 아니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한국인이 은퇴후 살고 싶은 나라 1위는?

푸르덴셜생명 설문조사"생활비 월 300400만원 필요할 듯"

 

"한국인 60% 은퇴후 해외 살고싶다호주·캐나다 선호"

서울과 5대 광역시에 사는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4%는 은퇴 후 해외 거주를 원한다고 답했다.

 

희망 국가는 호주가 84(16.8%)으로 가장 많았고 캐나다(14.4%), 미국 하와이·(11.8%), 뉴질랜드(8.8%) 순이다. 희망 거주 국가를 선택한 이유는 날씨 등 자연환경(49.2%), 여가 생활(41.4%), 문화·라이프스타일(32.8%), 의료·복지시스템(20.8%) 등을 복수 응답으로 꼽았다.

 

해외 생활에서 우려되는 점은 언어 등 의사소통 어려움(49.0%)을 비롯해 가족·지인들과의 교류 감소나 한국보다 높은 물가 등이 예상됐다. 예상 생활비는 월 300400만원(26.8%), 200300만원(26.4%), 400500만원(17.8%) 순으로 응답했다. 한국 생활비는 월평균 200300만원으로 예상됐다. 노후자금 마련 수단으로는 국민연금(64.8%)과 퇴직연금(36.8%) 등 제도적 연금 의존도가 높았다. 이어 예금(40.4%), 저축성보험(29.6%), 연금보험(27.8%)을 꼽았다.현재 직장에서 은퇴 예상 연령은 평균 60.9세다. 이후에도 일을 더 해 최종 은퇴는 연령은 평균 65.2세로 예상했다. 기대 수명은 평균 83.2세로 나타났다.

 

'포르노 합법화' 지역의 충격적 장면, 이 소녀들 어쩔 건가 1212 오마이뉴스

[주장] 르포 다큐 두 편이 '웹하드 카르텔' 한국에 남긴 과제

최근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디지털 성범죄' 영상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불법 유출 동영상'을 올리는 웹하드 업체와 이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의 실소유주가 사실상 동일했다는 '웹하드 카르텔' 정황이 드러난 것. 이들이 그동안 여성의 인권을 짓밟으며 수익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비단 한국만의 일일까.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 포르노는 합법이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의 대부분은 포르노를 합법화시켰거나 어느 정도의 규제만 두는 편이다. 양진호의 '웹하드 카르텔'이 여러 미디어를 통해 폭로되자 어떤 이들은 "국내에서도 포르노를 합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전에도 '리벤지 포르노' 혹은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공론화될 때마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 나왔던 주장이다. 합법적인 '포르노'가 있으면 불법 몰래카메라가 근절된다는 뜻일까?

 

웹하드를 떠도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과 포르노 합법화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정말 포르노를 합법화시키면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해결될까? 다큐멘터리 영화 <핫 걸 원티드>(Hot Girls Wanted, 2015)는 여성 인권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포르노가 여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잘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달 포르노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의 숫자는 넷플릭스, 아마존, 트위터의 방문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미국 내에서 합법화 된 시장이니 더욱 널리 퍼진 것이다.



영화 <핫 걸 원티드>의 한 장면.Netflix

특히 다큐멘터리는 미국에서 '포르노 업체'들이 어린 10대 여성을 노리는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업자는 구인공고에 "마이애미행 비행기표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매력적인 문구를 적어 넣는다. 업자는 "매년 18세가 되는 소녀들이 생기고 그들 중 누군가는 포르노를 촬영하게 된다"고 무심하게 말한다. "잘 대해주기 때문에 포르노 배우가 되는 것은 꽤 멋진 일"이라고 말하는 한 어린 배우의 말은 의미심장 하게 느껴진다.

"당신이 꿈꾸는 삶은 돈도 벌고 즐기면서 멋진 섹스도 하고 유명해지는 거죠?" 영화에 소개된 한 포르노 업체의 광고 문구다. 산업이 합법화되어 있다보니 법적인 제재도 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만 간다고 한다.

 

영화 <핫 걸 원티드>의 한 장면.Netflix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19세 스텔라 메이(Stella May)는 포르노 배우가 된 지 이제 한 달째다. 우연한 계기로 엄마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는 '피임을 제대로 하고 있냐'고 걱정하지만 메이는 피임약도 먹지 않고 콘돔도 쓰지 않고 있었다.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법안을 통과시켜야만 간신히 포르노 촬영 중 콘돔 사용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콘돔 없는 포르노'가 인기가 있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은 법망을 피해 '콘돔 사용 의무화'가 시행되지 않는 마이애미 주 같은 곳에서 촬영을 한다는 씁쓸한 현실도 영화엔 담겨 있었다.

 

포르노 합법화는 부작용이 크다. 이제야 '국산 야동'이라는 이름의 성폭력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문제의식 없이 이를 유희거리로, 자신의 성욕을 푸는 도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이 되어버린 여성의 몸

사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착취를 매개로 하는 산업은 '웹하드 카르텔'뿐만이 아니다. 번화가에서, 작은 골목골목에서 수시로 발견할 수 있는 성매매 산업 역시 그 일환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015년 발간한 '조직범죄 단체의 불법적 지하경제운영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성매매 산업 규모는 최대 376천억 원으로 추정된다.

 

영화 <트릭: 더 다큐멘터리>(Tricked: The Documentary, 2013)는 미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연 30억 달러(한화 약 34천억 원) 규모의 '성매매 카르텔'의 실태를 밝히는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서 매춘을 알선하는 업자(pimp)는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한다. 미국이 성매매가 합법화된 곳인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놀랍게도 네바다 주를 제외하면 처벌의 정도를 달리할 뿐 미국에서도 매춘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는 미국 전역에서 성행 중이다. 영화에 등장한 <뉴욕타임스> 기자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매춘 여성과 포주가 단순히 동업관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트릭: 더 다큐멘터리> 포스터.Netflix

"미국 전역에 매춘업 여성이 많은 건 알았는데 포주와 매춘부가 동업 관계라고만 생각했어요. 그 이상의 관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매춘 여성들과 그곳에서 빠져나온 여성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얘기를 나눠보니 동료 개념이 아니더라고요. 포주들이 여자들을 멋대로 뒤에서 조종하면서 폭력을 행사한 것에 불과했어요."

 

다큐멘터리에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러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 여성은 포주와 고객이 체포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본인은 수시로 경찰서를 드나들어야 했다고 고백한다. 더 큰 문제는 챙겨주는 사람도 재활 프로그램을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포주한테 '넘겨지는' 것이다. 이들이 사회로 복귀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한국은 다를까. '돈 쉽게 벌려고 그런 거니까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느냐' 등 한국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향한 비난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찌들 대로 찌든 범죄자인 동시에 학대받고 조종 당한 피해자"라는 미국 지방 검사보 알리슨 제닝스(Allison Jennings)의 말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 업계는 오로지 여성의 약점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 역시.

 

이 다큐멘터리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면 성매매 업계를 지탱하는 큰 축, 포주와 구매자들이 당당하게 인터뷰에 응한다는 것이다. 1년에 50차례 이상 성을 구매한다는 노년의 남성은 이를 "행복을 추구할 권리"라고 표현한다. 인터뷰에 응한 포주 중 한명은 자신이 성노동 여성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강조해서 항변한다. 여성이 성매매 카르텔에 진입하고,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그들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가 무엇이 중요할까.

그에 반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경찰에 의해 구출된 피해자들은 공포 혹은 자괴감을 지속적으로 표출한다고 한다. 아마 이 다큐를 통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씁쓸한 단면이다. 한국에서도 남성 집단 내에서 성매매가 문제의식 없이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 측면과 닮아 있기도 하다.



영화 <트릭: 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Netflix

한국 사회에서도 그렇듯, 미국에서도 성매매 산업은 공권력만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영화에서 덴버 지방검사인 미치 모리세이(Mitch Morrissey)"때로는 1급 살인사건보다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기소를 해도 무효가 되고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들(성매매 당사자)이 매춘부나 약물 중독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사건을 담당할 인력도 부족한 상태다. 성매매 여성들이 직접 경찰과 협력한다면, 사건 해결이 좀 더 쉬워지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케이스는 많지 않다.

 

양진호의 '웹하드 카르텔'을 밝혀내는 데 있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사성)와 진실탐사그룹 '셜록', 그리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이 문제는 아직 뿌리 뽑히지 않았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4년째이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횡행하는 성매매 산업도 마찬가지다. 아직 우리는 이야기할 것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올해 '웹하드 카르텔'의 충격적인 진실을 목도한 우리에게 남긴 과제다.

 

GP철수 검증현장"오솔길, 역사적 대통로 되길"

 



분식회계해도 상장폐지 못하는 나라 1212 프레시안

[기자의 눈] 한국증시는 금융당국이 깔아준 투기.도박판

코스피 상장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수조원 대의 분식회계 혐의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가 11일부터 거래가 재개됐다. 거래 재개 첫날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매매 거래가 중지된 지난달 14일 종가 334500원 대비, 무려 17.79% 급등하며 394000원에 마감했다.

 

하지만 45000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했다고 금융당국이 최종 결론을 내리고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상장폐지 심사는 형식적으로 하고 불과 한달도 안돼 거래를 재개하도록 허용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 증시의 양대 바이오기업 삼성바이로로직스와 셀트리온이 모두 분식회계 혐의를 받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연합뉴스

 

분식회계 인정 않고 소송 걸어도 상장유지해주는 나라

하긴 한국의 금융당국의 수준으로 볼 때,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들은 거의 없었다. 시가총액 25조 여원으로 코스피 시장에서도 5위에 해당하는 대형주를 상장폐지하는 것은 투자자 보호나 증시에 줄 충격을 고려할 때 금융당국이 상장폐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를 살펴보자. 5조 원대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상장폐지를 면하긴 했으나, 13개월 동안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이와 비교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누가 보더라도 '봐주기'나 마찬가지였다.

 

이때문에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흉이 '대북 리스크'가 아니라 한국의 금융당국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원래 상장하려고 했다는 나스닥 시장에서 분식회계가 드러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난 2001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인 에너지기업 엔론이 15000억 원 정도의 분식회계 혐의로 하루아침에 파산한 사건은 분식회계에 대해 미국의 금융당국이 얼마나 엄격한 처벌을 하는지 보여준 교훈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분식회계에 가담한 아서앤더슨은 세계 5대 대형법인으로 꼽혔으나 공중분해됐고, 당시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은 징역 24년을 선고 받았다.

 

미국 금융당국이 이렇게 분식회계에 대해 엄격한 것은, 분식회계가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사기행위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혹할 정도의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 한국의 상장폐지 심사는 기업의 계속성이나 재무 안정성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해도, 상장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면 상장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회계전문가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금융당국이 자기 부정을 하듯 상장유지 결정을 서둘러 내줘 '삼성공화국'에 굴복한 사례라고 지적한다.

 

분식회계를 한 기업에 대해 상장 유지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최소한 재무제표를 수정·공시하는 절차를 거쳐야 마땅하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오히려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판단한 금유당국의 판단이 잘못됐다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마당에 상장을 유지시키는 결정을 했다는 것은, 법과 원칙이 삼성 앞에서는 멈춘다는 '신화'를 재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분식회계를 해도 상장폐지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기업들이 분식회계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거래가 재개된 이날, 10조 원의 코스닥 시가총액 1위 업체인 셀트리온헬스케어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 혐의로 감리에 착수했다. 이 소식에 셀트리온헬스케어는 12%, 모기업 셀트리온은 10% 넘게 급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함께 양대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의 계열사마저 잇따라 분식회계 혐의를 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 표현하면 바이오업계에서 분식회계를 하지 않는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할까.

 

금감원이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분식회계를 의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시가총액 30조 원에 달하는 코스피 3위의 상장업체 셀트리온의 제품 국내 판매권을 갖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이 판매권을 셀트리온에 매각해 생긴 218억 원을 '매출'로 처리했다.

 

금감원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이런 회계처리로 갑자기 적자에서 흑자로 바뀐 것으로 판단했다. 판매권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매출로 잡은 일반적이지 않은 회계처리를 한 의도에 주목하고 있다.

 

어떤 기업이 제품을 팔면서 적자를 봤는데, 무형의 자산 매각 수익을 영업외 수익이 아니라 영업 이익처럼 회계처리해 흑자로 바꿨다면, 금융당국은 이를 기업가치를 부풀리기 위한 고의적 분식회계로 판단한다.

 

12일 분식회계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3형제'의 엇갈린 주가 향방은 한국증시가 투기.도박판인 것을 보여준다. 거래 재개 첫날 급등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하락세이고, 전날 급락했던 '셀트리온 3형제(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는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도 분식회계 혐의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한국 증시의 수준이다.

 

나경원 등장에 인적쇄신은 '오리알' 신세 1212 프레시안

"쇄신 의지 변함없다"지만나경원 "지나친 쇄신 걱정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가 추진해온 당내 인적 쇄신 작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 친박계, 잔류파의 지원을 받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 데 따라 비대위 지도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 데 이어,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이 '조강특위 안()보다 쇄신 범위를 축소 조정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다.

 

심상정 "이제 나경원이 응답할 때주말까지 입장 달라"

"손학규·이정미 단식 중단하도록 민주·한국당에 호소"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장이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거듭 민주·한국 양 당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 체제가 된 한국당을 향해 심 위원장은 "주말(16)까지 기본적 입장을 제시해 달라"고 압박했다. 손학규·이정미 두 야당 대표의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에도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났다.

 

심 위원장은 13일 오전 기자 간담회를 열어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단식이 오늘로 8일째를 맞았다""이번 주를 넘기면 열흘이 넘게 된다. 특히 고령인 손 대표(71)의 건강을 고려할 때 저는 다음 주까지 단식이 이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운을 뗐다.

 

심 위원장은 "선거제도 개혁의 대전제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원칙조차 끝내 합의되지 않아 두 대표가 국회에서 실려나가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대한민국 국회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한국당에 호소드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대원칙과 로드맵에 대한 큰 틀에서의 (합의) 처리를 통해 두 대표가 단식을 풀고 다음 주부터 정개특위 논의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심 위원장은 특히 "이제 한국당이 응답해야 할 때"라며 "나경원 원내대표가 당선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고 의원들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뜻을 존중하지만, 그럼에도 단식 등 상황이 엄중하고 그간 한국당 내 정치 일정으로 인해 논의가 지체된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당은 주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큰 기본적 입장을 제시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이라는 일부 보도를 봤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원내대표는 개인이 아니다. 전임자인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공감·동감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개특위가 제시한 3개 안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제로 한 안"이라며 "이것을 위원장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여야 간사가 합의해 만든 것이고, 정개특위는 논의를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수년 간 정개특위를 통해 논의하고 공감해 온 토대 위에서 이번에는 대단원, 결실을 맺자는 것이 이번 정개특위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신임 나경원 원내지도부가 그간의 여야 협의 경과를 이어받고 존중해 달라는 취지의 당부다. 그는 "수년 간의 논의·공감을 원천적으로 부정한다면 그것은 선거제도 개혁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나 원내대표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연동형 비례제 도입은 권력구조 개편과 같이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데 대해서도 "권력구조와 관련이 있다는데 대해 동의하지만, 지금과 같은 대결 구도의 국회 하에서 막중한 무게를 갖는 논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음을 이미 확인했다. 그래서 이번 정개특위를 구성할 때 민주당 한국당이 '일단 국회가 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을 합의하고 잘 합의된다면 그게 개헌 논의를 여는 문이 될 것'이라는 공감이 있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나 원내대표가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잘 받아서 '국회에서 가장 효과적인 논의 방법으로 '선거제도 선()합의, () 개헌 논의'를 결정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그는 민주당 일각에서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라도 일단 합의를 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과 관련해 '16일까지 한국당이 입장을 제시하지 않으면 4당만의 합의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나 원내대표가 지난 11일에 선출됐고, 한국당의 노력과 입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4당 합의'를 거론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고, 한국당이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을 명분을 주는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의원정수 확대 반대여론이 연동형 반대 명분이냐"

심 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서도 "민주당 최고위원회 입장이 나름 의미가 있지만, 민주당과 야3당만 합의해서 선거제도가 개혁될 수 있다면 진작 됐을 것"이라며 "선거제도를 포함함 정치개혁은 특위에서도 사실상 합의제 식으로 운영된 전통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당의 동참이 중요하다"고 한국당을 포함한 합의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민주당·한국당을 포함한 '큰 틀의 합의'의 핵심 내용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원칙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민주당이 최고위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수용 입장을 재확인한 데서 머무르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 선거제도 개혁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다뤄 달라""'왜 우리만 갖고 그러냐'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은 민주당이 '20년 수권' 과제를 해결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질 때 가능하고, 또 다양한 협상 수단을 가동할 수 있는 집권 여당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확고한 의지 없이는 선거제도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어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을 논의할 수 있도록 빨리 선거제도 개편(방향 확정)을 해달라는 촉구문이 와 있는 상황"이라며 "선거구획정위원회가 4월까지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게 법정 시한이다. 그러면 최소한 12월에는 큰 틀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아무리 늦어도 2월 임시국회까지 (법 개정을)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를 포함한 일부 민주당·한국당 의원들이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면 의원 정수가 늘어나니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데 대해 심 위원장은 "의원 정수를 늘리든지 지역구 의원을 줄이든지 둘 중 하나는 결단해야 비례성 강화 개혁이 진정성을 갖게 되는 것인데, 우리 야3당은 '의원 정수를 확대하고 세비 조정을 포함한 과감한 국회 개혁 방안을 내놓고 국민 앞에 엎드려서 좋은 정치를 위해 받아달라'고 하자는 입장인데, (만약) 정수 확대를 하지 않고 비례성 강화를 하겠다고 한다면 저희가 그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러면 지역구 의석 축소 결의를 해 줘야 책임 있는 입장"이라고 반론했다.

 

심 위원장은 "'국민이 반대할 것이니 정수 확대는 어렵다'고 하는데, 거꾸로 묻고 싶다. 국민이 '국민을 닮은 국회'로 개혁하라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비판적인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을 한 번이라도 한 적 있는지 묻고 싶다"고 역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국민들 의견을 경청하고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 변화하는 모습을 약속한다면 국민은 마음을 여실 거라 믿는다"면서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과감한 국회 개혁 방안을 동시에 운영위원회에서 결의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그렇게 해도 국민들이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국민 핑계를 대며 (이를) 연동형 비례제 반대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그것은 특권·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한국당 빼고 4당만이라도 논의하자" vs. 손학규 "내가 보름은 견디겠지"

심 위원장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12월 중 한국당을 포함한 원내 5당의 기본 방향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 기본 방향에 우리는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단식농성을 풀고 우선 정개특위를 가동해서 논의를 본격화하자는 게 우리 당 제안"이라며 "3당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당을 설득해 합의를 해 오라'고 주장하는데, 노력은 하겠지만, 어제 나경원 원내대표 등과 얘기해 보니 한국당 내 선거법 관련 논의가 아직 충분치 않고 연동형 비례제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 분위기"라고 전했다.

 

홍 원내대표는 "한국당과 합의 도출을 시도해 보겠지만, 만약 여의치 않으면 야3당과 민주당만이라도 연동형 비례제를 중심으로 한 선거법 개정에 대해 정개특위를 가동해서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손학규·이정미 대표의 단식농성장을 찾아 이같은 입장을 재차 전달했으나, 두 대표는 이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 대표에게 "우선 4당이라도 합의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원칙으로 하는 것을 기정사실화시키면서, 그것을 가지고 나중에 한국당을 설득하든 압박하든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게 맞지 않을까"라며 "빨리 정개특위를 가동하자. 정개특위를 무력화시키려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에 "누가 (정개특위를) 무력화시키나"라고 반발하며 "이런 프레임이 나오는 게 우려스럽다. 책임 있는 결단으로 큰 틀에서 먼저 합의하고 정개특위에서 논의해야지, 정개특위 무력화라는 말만 떠들면 불신이 커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원내대표는 손 대표를 만나서도 "정개특위가 활성화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으나 손 대표는 "정개특위가 결정을 할 수가 없지 않느냐"며 부정적 의견을 말하고 "내가 얼마나 더 살겠다고. 오늘이 만 7일째인데 보름이야 안 견디겠느냐. 보름 안에 해결을 해 달라"고 했다.

 

양대 국제기구 "개별 정부로 극복 어려운 위기 다가온다"

"2의 대공황 막기 위한 글로벌 대응 나설 때"

국제경제기관 중 국제통화기금(IMF)와 함께 가장 권위 있는 경제전망을 발표해온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각국 정부가 개별적으로 대처하기 힘든 글로벌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7월부터 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맡고 있는 로랑스 분(49)은 지난달말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책결정자들을 상대로 향후 경제위기 가능성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돌아와, 관련 내용을 최근 언론 인터뷰(원문보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설명했다.

 

10년 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제2의 위기에 대한 경고가 권위있는 국제경제기구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08106일 뉴욕증시가 폭락세를 보이자 트레이더들이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AP=연합

 

10년 전 위기 극복하느라 각국 정부 대응 수단 고갈

그는 지난달 발표된 올해 분기별 마지막 OECD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글로벌 경제둔화가 예상보다 훨씬 심할 경우, 주요 경제국 정부들은 동시에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OECD는 세계 경제가 해가 갈수록 둔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2.9%로 예상되지만, 2020년에는 2.1%로 뚝 떨어지고, 유로존은 올해 1.9%에서 2020년에는 1.6%로 더욱 감소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내년 예상 경제성장률을 낮춰 잡는 전문가들이 많아지고 있다.

 

세계경제를 둔화시키는 주요 악재들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중국 경제의 경착륙을 꼽았다. 유로존의 정치적 위기도 세계경제를 둔화시키는 요인에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OECD는 이탈리아의 해묵은 정치불안에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노란조끼' 시위로 격량에 빠진 프랑스의 정치분열을 예로 들었다. 문제는 10년 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새로운 금융위기가 닥칠 경우 각국 정부 단위로 대응할 수단이 거의 고갈된 상태라는 점이다.

 

각국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은 전통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등 통화완화 정책과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하지만 10년 전 위기를 극복하느라 주요 경제국들은 이미 금리를 더 이상 낮추기 힘든 수준으로 내렸고, 국가부채가 급증한 상태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최소한 내년 9월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할 계획이고, 심지어 지난해말부터 금리인상을 거듭해온 미국마저 필요할 경우 금리인하로 경기부양 효과를 발휘할 만큼 금리를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다.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더 어렵다. 유로존의 경우 국가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0%가 넘는 곳이 여러 곳이다. 결국 분 이코노미스트는 "각국 정부가 미리 공조해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전면적인 경제위기가 닥쳐서 대응하는 방식은 효과가 없어, 글로벌 경기부양책을 미리 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IMF의 수석 부총재 데이비드 립턴은 더욱 심각한 경고를 했다. 지난 1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경제세미나에서 그는 지난 2년간 각국 정부에게 "해가 떠있을 때 지붕을 고치라"고 권고해왔지만, 완벽하게 위기를 예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폭풍을 몰고올 구름이 쌓이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 역시 "각국 정부가 개별적으로 향후에 닥칠 경기둔화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각국 정부들이 예상가능한 문제들에 함께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발표한 IMF <글로벌 금융안정성 보고서>"2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막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향후 닥칠 금융위기는 저금리로 만들어진 값싼 통화팽창, 치솟는 채무 부담이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주요 선진국들의 초저금리 정책이 지속된 것이 향후 금융위기의 에너지를 축적시켜왔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돈만 번다면 실형쯤이야"범행동기 싹 자른다 매일경제

주가조작 부당이득 산정기준 마련

 

적발해도 환수못한 불법이익

올해 유사판결 20여건 달해

피해 개미, 소송통해 구제 길

"초범이면 집행유예, 재범도 징역 2~3년 살고 나오면 주가조작으로 벌어놓은 수십 억원으로 편하게 삽니다. 정부에서 이 돈을 몰수하지 않는 건 주가조작을 하라는 말 아닌가요?"

 


주가조작에 대해 증권가에 팽배한 인식이다. 실제 주가조작 범죄자들은 주가조작 혐의을 벗지 못하더라도 부당이득 환수만 당하지 않으면 성공으로 여기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자본시장법상 부당이득산정체계 개정에 나선 것은 주가조작 범죄자의 수익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할 경우 허술한 법으로 인해 범죄자 양산을 부추기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해치는 상황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법원이 주가조작 범죄에 대해 `부당이득금 산정 불가`를 이유로 추징금 0원을 선고하는 사례는 최근 더욱 늘고 있다. 증권범죄를 전담하는 서울남부지검에 따르면 시세 조종 등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부당이득 산정불가 사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20141건에서 201511, 201612건을 기록한 뒤 지난해에는 21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올해도 약 20건의 유사판결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문제는 기본적으로 부당이득금 산정은 어려운 데 반해 법규정은 구체적이지 못한 데 기인한다. 그간 검찰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과 연계해 부당이득액 산정방법으로 단순차액방식과 이벤트스터디 방식을 써왔다. 위반행위로 인한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빼는 방식과 시세조종, 허위공시 등의 주가조작사건이 없었을 경우 주가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법원 입장에서는 당국의 자의적인 추정액을 정확한 인과관계 없이 인용해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산식이 없는 상황에서 추정금액을 인용해 죄를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해 바이오주 주가조작사건이 발생했을 때 부당이득금을 산정할 경우 금감원의 테마감리이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대형 제약사의 연구임상결과 등으로 인한 개인·기관·외국인의 투자의향 변화는 제외해야 한다. 해당 범죄와는 독립적인 사건이라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경우 주가 10, 100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내기는 어렵다.


범죄자들은 법의 허점을 활용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금액산정에서 크게 반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 경제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주가조작사건은 피의자가 유무죄를 인정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 부당이득금이나 피해액 산정을 방해하는 게 변론의 핵심"이라며 "여러 가지 주가변수를 감안해 당국의 계산이 잘못됐다는 시각만 확실하게 할 경우 가장 중요한 추징금이 사라지면서 높은 성공보수를 얻게 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범죄자들이 재판에서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식으로 형량을 줄이면서도, 부당이득액 추정치는 너무 크다는 식의 억울함을 주장해 형기는 줄이고 돈을 택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결국 법원은 지난 5월 로케트전기 사건처럼 많은 증권 범죄에 대해 징역형이라는 형벌을 내리면서도 부당이득금은 `0`원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올해에도 지난 2월 장병권 전 홈캐스트 회장 등이 이른바 `황우석 테마주`와 관련한 거짓 정보를 시장에 흘려 주가를 올린 뒤 251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사건 1심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 2016년 주가조작으로 41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디웍스 글로벌` 사건, 2015년 시세 조종으로 85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위지트 사건`에서도 법원은 "주가조작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익금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검찰은 자본시장법 내에 부당이득금을 산정하는 공식을 법령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산정이 어려울 경우 필요시 추정액도 가능하다`는 문구를 넣어 범죄수익환수안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러 방안을 통해 주가조작 범죄자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산식을 법에 넣는 방법, 쉽게 수익을 추정할 수 있고 또 집행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법원에서 비상식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법조항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회에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부당이득금 산정 규정을 명문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박 의원 발의안에 따르면, 부당이득액 산정방식은 기본적으로 그 위반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진 거래로 발생한 총수입에서 그 거래를 위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으로 하되 유형별로 대통령령에서 산정방식을 정하도록 하였다. 박 의원은 "자본시장법에 직접 부당이득 산정기준을 규정함으로써 법적 분쟁의 여지를 줄이고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과 함께 철저한 범죄수익 박탈로 불공정거래행위와 시장질서교란행위를 근절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아직 정부안이 확정되지는 않은 만큼 박 의원 안을 참고해 더 좋은 대안이 있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입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학생 교복은 왜 이렇게 작아졌을까? 허밍튼포스트코리아

교복이 옛날에도 작았던 건 아니다

 

막힘없이 쭉쭉빵빵, 코르셋 재킷, 쉐딩스커트

현재 여학생 교복 광고에 쓰이는 문구들이다. 라인이 잡히고 몸에 딱 붙을 만큼 작게 제작된 탓에 현대판 코르셋으로 부르기도 한다.

 

짧고 타이트한 교복은 추운 겨울을 더 춥게 만들 뿐만 아니라 행동에 제약을 가져온다. “짧은 길이 때문에 배가 보여서 팔을 드는건 상상도 못해요.“ ”허리라인은 들어가고, 엉덩이는 부각되도록 나와요.” ”학생다운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현대판 코르셋을 입는 여학생들의 불만이다.

 

KBS 드라마 '학교1'(1999)'학교 2017'(2017)에 나온 여학생 교복

 

한국 여학생들의 교복이 처음부터 이렇게 작았던 건 아니다. 과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여학생 교복이 급격하게 작아진 건, 2000년대 중반 이후 부터다. 셔츠와 자켓, 치마 모두 짧아졌다.

 

그런데 교복을 입는 학생들의 신체는 어떻게 변했을까?

 

디자인: 허프포스트코리아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만 13~18세의 여성 청소년의 평균 신체사이즈 변화 (한국인 인체치수조사)

 

한국인 인체치수조사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만 13~18세의 여성 청소년의 평균 신체사이즈는 해가 갈수록 크게 변했는데, 키와 몸무게 뿐만 아니라 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에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1979년 평균 키는 153.76cm이었는데 2015년에는 158.8cm로 성장했고 몸무게는 48.23kg에서 53.6kg으로, 가슴둘레는 80.91cm에서 84.9cm, 허리둘레는 64.6cm에서 69.2cm로 늘어났다. 학생들은 커졌지만, 교복은 더 작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교복제조업체들은 이렇게 작고 불편한 교복을 만드는 걸까? A교복 브랜드 관계자는 과거에도 큰 사이즈를 제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여러 사이즈를 제작해 판매하면 작은 사이즈들의 판매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보니 작은 사이즈를 더 많이 제작하는 방향으로 변했다점차 그 방향으로 경향이 강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먼저 작은 교복을 원했다는 이야기다. 작고 짧은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걸그룹 아이돌의 영향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성평등에 관한 수업을 연구하는 초등 교사들의 모임인 초등성평등연구회의 B교사는 사회적으로 외모에 관한 기준을 더 몰고갔기 때문에 아이들이 원하게 됐다고 생각한다이러한 경향은 유독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바디포지티브 운동가인 박지원 씨 또한 우리 사회는 외모지상주의가 심하고 미디어에서 편향된 외모를 많이 보여주기 때문에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기 쉬운 환경이다. 사회의 전체적인 시선들이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교복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러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편안한 교복 공론화를 진행중이다. 2019년부터 교복 규정을 개정하여 2020년에는 서울시의 모든 학교가 편안한 교복을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초등성평등연구회 B교사는 교복을 학교 자율에 맡기거나 개인 자율에 맡기면 많이 변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최근에는 생활복이라고 부르는 활동하기에 편한 옷이 있다. 광주교육청은 제도적으로 일반 교복이 아닌 생활복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교복이나 생활복을 이중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복으로 단일화 하는것이 좋을 것 같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사연 비디오 에디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70년의 교착 1214 시사인 제586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법은 요원하다. 국제사회는 두 국가 해법을 외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미국이 새로운 중동 평화 구상을 내놓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동에는 국경이 반듯한 국가가 많다. ‘기하학적 국경 획정이라고 부른다. 이게 왜 신기한가? 대개 산맥과 강줄기 등 자연지리를 따라 문화적 공동체가 분포하고, 그를 바탕으로 국가가 형성된다. 국경은 삐뚤빼뚤한 경계가 자연스럽다. 기하학적인 직선 국경은 그 나라가 누군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생겨났음을 뜻한다. 이란과 이집트 정도를 제외하면 중동에는 20세기 이후 등장한 신생국이 많다.

 

중동의 많은 국가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등장했다. 국가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제국의 백성들은 국가또는 국민이라는 생경한 정체성을 갑자기 부여받았다. 혼란스러웠다. 하나의 민족 공동체가 창졸간에 분리되기도 했고, 반대로 견원지간의 부족과 종파가 느닷없이 한 나라로 묶이기도 했다. 인구 3000만명이 넘는 자존심 강한 민족 쿠르드는 네 나라로 찢어졌다. 반대로 레바논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다양한 종파와 종족이 한 국가 안에 편입되었다.

 

작위적 국가 형성의 부작용이랄까? 분쟁의 씨앗은 여기저기 뿌려졌다. 쿠르드 독립운동은 터키와 시리아와 이라크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레바논과 시리아는 내전의 땅이 되었다. 국가 형성 과정에서 동일 집단의 원치 않는 분리 사례나, 이질적 공동체의 병합 사례는 지금까지도 중동 분쟁의 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곳에서 국가란 얄궂은 주제다.

 

AFP PHOTO 1123일 가자 시 동부 교외에서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이스라엘 군이 쏜 최루탄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

 

중동에서 국가 건설이 시작된 지 얼추 100년이 된 지금도 나라 없는 이들이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얽히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이 땅의 아랍 선주민들은 유대 국가의 2등 국민이 되든지,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난민이 되어야 했다.

 

논쟁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의 정체성이 여타 아랍 부족과 뚜렷이 구별되지는 않았다. 샴 지방(레반트라고도 함)이나 미스르(지금의 이집트) 또는 아라비아 반도에 흩어져 사는 여느 아랍인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은 후천적으로, 시오니즘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생겨났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다.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나라 없는 이들의 투쟁 동력이기도 했다. 19485월 이스라엘 건국 이후 1993년 오슬로 협정까지 근 반세기 동안,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이스라엘 타도를 목표로 했다.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공격적인 구호도 내걸었다. 요르단 강에서부터 지중해까지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을 팔레스타인이 반드시 되찾겠노라는 다짐으로, 이스라엘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냉전 해체는 변곡점이었다.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은 1991년 마드리드 다자 회의에서 처음으로 공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2년 후 오슬로 협정은 기존 틀을 바꾸었다. 시오니즘을 신봉해온 이스라엘은 영토와 평화의 맞교환이라는 과감한 변화를 수용했다. 소련의 위협이 없어지면서 이제 미국이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를 낮출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했다.

 

팔레스타인 역시 미국의 압도적 힘을 의식했다. 전통적 지지 세력이던 소련의 해체는 두려운 변화였다. 이제는 일부 지역에서나마 국가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렀다. 판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불거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위기의식이 오슬로의 두 국가 해법(Two state solution)’을 태동시켰다.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전제로 하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AFP PHOTO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가운데)1115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집행위원회를 소집했다.

 

자연스레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개념이 핵심 주제가 되었다. 국가 구성의 3대 요소인 주권, 영토, 국민 모두에서 만만찮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오슬로의 두 국가 해법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국가 구성 요소를 실제로 구현하는 게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먼저 주권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다. 대개 국제사회의 승인을 통해 구체화되곤 한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주력은 아랍연맹 그리고 범이슬람권 국가들이다. 팔레스타인은 특히 아랍의 힘을 통해 다자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냉전기에 아랍은 변함없이 팔레스타인 편이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 멸절 투쟁을 벌일 때도 이들은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아랍 처지에서는 식민주의의 질고를 진 팔레스타인을 편드는 게 당연했다. 이른바 팔레스타인 대의(Palestine cause)’였다.

 

힘 잃어가는 팔레스타인 대의

그러나 최근 아랍의 팔레스타인 대의가 약해지고 있다. 이란의 부상 때문이다. 아랍의 맏형을 자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이스라엘 멸절 투쟁을 하던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영토 분리를 통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기로 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보수 아랍 왕정의 주적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노선도 이런 흐름에 한몫 거든다. 아랍 주류의 미묘한 태도 변화는 팔레스타인 정치권의 위기의식을 가중시키고 있다.

 

남은 두 요소는 국민과 영토다. 영토는 현재로서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구 안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정착촌을 철수할 의지가 전혀 없다. 서안 지구와 이스라엘을 가르는 경계 안쪽을 묘하게 파고들어 와 있는 장벽도 문제다. 팔레스타인의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간 통행 보장도 무망한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집권 파타와 가자 지구를 장악한 하마스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예루살렘 문제도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대사관 이전으로 크게 논쟁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투명하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Reuter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26일 유엔본부에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영토 요소는 지도를 펼쳐놓고 따져볼 수라도 있다. 서로 양보를 하려 하지 않아서 그렇지 구체적으로 논의를 진전시킬 수는 있는 쟁점이다. 반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서 더 뿌리 깊은 난제는 국민 요소다. 하나의 국민 정체성을 가진 팔레스타인 국민을 기대할 수 있을까? 회의가 적지 않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미묘하게 달라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각과 처지가 지난 70년 동안 굳어졌다. 언뜻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투쟁하며 똘똘 뭉친 단합 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속살은 사뭇 다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크게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 서안과 가자 지구 등 자치 지구 주민, 그리고 동예루살렘 거주민 등으로 나뉜다.

 

 

먼저 이스라엘 국적을 지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로 독립한다고 해도 신생국 국민으로 기꺼이 이동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보인다. 이미 이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생활 기반을 닦은 사람들이다. 정서적으로야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하지만, 열혈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가 아닌 이상 생업을 포기하고 신생국가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다.

 

애매한 사람들은 동예루살렘 거주민들이다. 동예루살렘은 현재 이스라엘이 관할하고 있으나,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를 만든다면 팔레스타인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들은 일단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한다. 그러면서도 생활 근거지가 주로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독립에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지금은 중간자적 신분이지만, 후일 팔레스타인 국민으로 확정되는 순간 이들 역시 생활 터전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동예루살렘 프렌치힐에 잇닿은 아랍 마을 이싸위야에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에서 일하는 교수와 직원들이 적지 않게 살고 있다.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을 원한다. 그들은 점령 체제로 인해 이스라엘의 수탈이 지속되는 현 상황을 혐오한다. 주권국가 수립의 주축이 바로 서안 지구 주민들이다. 이 안에도 원심력이 작동한다. 서안 지구 주요 도시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7대 부족 간의 경합과 합종연횡이라는 권력의 분쟁 요소가 있다. 유력 부족 원로들의 내밀한 의사표시에 따른 정치적 결정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 보수파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한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이라는 공공의 적을 앞세워서 서안 지구 부족들의 협력을 이끌고 있지만 막상 독립하게 되면 분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존심 강한 부족들끼리 내전에 준하는 분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이어진다. 서안 지구의 집권 세력 파타와 가자 지구를 장악한 하마스 간 분쟁은 아예 이야기를 꺼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극우 시온주의자들이 농반진반으로 여덟 국가(서안 지구 7대 부족+가자 지구) 해법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예 부족 단위로 조각내놓아야 딴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다소 무례한 언설이다.

 

요르단과 국가연합모델 거론

팔레스타인 리더십의 무능과 탐욕도 비관적 전망을 더 무겁게 한다. 노쇠한 마무드 아바스 정부로는 거센 도전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평이 현지의 중론이다. 미래 대안이 있느냐도 회의적이다.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독립했을 때 과연 정부 구성과 권력 배분 과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질지 팔레스타인 대중조차 회의적이라는 소문도 걸린다.

 

그나마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주권, 영토, 국민 이슈가 모두 난제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이 와중에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안이 있다. 미국이 연말 혹은 내년 초에 새로운 중동 평화 구상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정을 볼 때, 어쩌면 완전히 판을 깨버리는 친이스라엘 정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코마 상태에 빠진 두 국가 해법을 되살릴 극적 요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지만 워싱턴에서 살짝 흘러나온 국가연합모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즉 미국과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을 즉시 독립국가로 승인하고 유엔의 정회원국으로 받아주는 동시에 요르단과 국가 대 국가로 연합하는 모델이다.

 

이 아이디어는 나름대로 역사적 맥락이 있다. 1967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기기 전까지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은 요르단 관할이었다. 지금도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이슬람 성지인 하람 알샤리프(황금의 돔 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곳)는 요르단이 관리한다. 요르단과의 국가연합은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명시한 당시 유엔안보리 결의안 242호도 충족시킬 수 있다.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으로 독립하고 이후 요르단과 국가연합의 형태로 묶으면 된다.

 

요르단 왕실은 이 모델을 일축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라는 주장이다. 내심 계산은 복잡할 것이다. 만약 국제사회가 오슬로 협정처럼 이 국가연합 모델을 지지해준다면, 그래서 막대한 물적 지원을 요르단에 약속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르단 처지에서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가 부담스럽지만 한 번쯤 검토해볼 만하다. 국가의 격을 올릴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오랫동안 주권국가로 독립하려 준비해온 상황에서 맥 빠지는 아이디어다. 반면 이스라엘 측은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지만 내심 국가연합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팔레스타인 국가와 긴 국경을 마주하는 것보다야, 1994년 평화협정을 맺은 요르단 왕실을 매개로 안정 국면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쪽이 더 나을 수 있다.

 

중요한 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공공연히 찬반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속내는 복잡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는 70년 동안 독립을 열망해온 역사가 있다. 국제적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국가연합이라는 우회로를 택하라니, 내키지 않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자신들이 세울 나라가 평화 가운데 지속 가능한 성장을 구가하려면 리더십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만약 국가연합이 리더십 안정을 가져다줄 더 나은 방법이라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국가연합 모델은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와 완전히 다른 구상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높다. 지금처럼 교착된 상태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치열한 사유와 고민을 쏟아부을 값어치도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은 곧 중동의 평화이고, 중동 평화는 곧 세계 평화와 연결되어 있다.

 

·팔 분쟁의 뿌리는 역설투성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대립하고 있다. 기독교권의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들이 함께 지내왔던 아랍과 이상하게 엮여 원수가 된 드문 사례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을 대표하는 갈등은 무엇일까? 대부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하 이·팔 분쟁)을 떠올릴 것이다. 19485월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 이래 70년간 이·팔 분쟁은 국제정치의 핵심 주제였다.

 

·팔 분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일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 재편 과정에 이스라엘 건국이 맞물리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처럼 보인다. 좀 더 길게 잡으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분할해 재편한 유럽 열강의 개입을 기원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는 더 오랜 역사가 뒤에 있다. 바로 유럽-지중해권에 널리 퍼져 있었던 반()유대주의, 그리고 이로 인해 촉발된 시온주의(Zionism)이다.

 

유대인들의 역사관은 독특하다. 자신들은 결코 멸절되지 않는다는 역사 인식이다. 고대 근동의 수많은 제국들이 명멸을 거듭할 때, 유대 민족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사라지지 않는 대신, 유일신 야훼의 뜻에 어긋날 때는 형벌을 받아 약속의 땅을 떠나야 했다고 믿었다. 이른바 디아스포라’, 이산(離散)의 시기다. 흩어지되 소멸되지 않고 신이 부과한 형극의 기간이 지나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다는 회복론도 함께 믿는다. ‘알리야(aliyah)’, 귀환의 시기다.

 

AP Photo 54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자 이스라엘 군인들이 최루탄을 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원형은 고대 이집트 비돔(Pithom)에서 파라오 통치하에 살아가던 히브리 공동체였다.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모세의 출애굽은 알리야의 원형이다. 유대 민족에게는 특정 공간, 야훼가 준비한 이스라엘 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의 서사가 있다. 약속의 땅, 에레츠 이스라엘(Eretz Ysrail, Land of Israel)’에 대한 갈망이다.

 

마지막 이산은 로마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성전은 파괴되고 유대 민족은 흩어졌다. 이후 나름대로 유대 공동체를 유지하긴 했지만 회복과 귀환을 생각하기에는 삶이 바빴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고 물경 2000년 동안 디아스포라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오랜 기간 회당에 모여 토라를 읽으며 정체성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흩어진 유대인들은 주로 중동부 유럽과 북아프리카 및 아라비아 반도 등에 터를 잡고 살았다.

 

오랜 디아스포라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기독교계 유럽은 언어와 종교가 다른 유대인들을 불편하게 여겼다. 반유대주의의 출현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4세기경으로 잡는 홀로코스트 역사학자 라울 힐버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힐버그는 정치적 격변기마다 일종의 희생양으로 유대인들이 이용된다고 본다.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을 다룬 3단계는 개종-축출-박멸이었다. 개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쫓아내고, 계속 걸리적거리면 마녀사냥 등의 방법으로 어떤 형태로든 없앴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유대인이 개종하기도 했다. 유럽인의 정서에는 마태복음 2725절 이야기가 각인되었는지도 모른다. 예수의 무죄를 이야기하는 로마 총독에게 유대 군중은 이렇게 외친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

 

EPA 2017112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밸푸어 선언 100년을 맞아 영국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아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중세 이후 유대 가문들이 부를 축적하고 자본을 독점하면서 세간의 질시가 심해졌다. 봉건 영주와 결탁한 일부 유대 가문은 교회가 금기시하는 다양한 일들을 도맡았다. 특히 고리대금업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수전노 샤일록이 대표하는 유대인 이미지가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다. 정치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대중의 혐오를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정치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사례가 빈발했다. 19세기 말부터 반유대 정서는 더욱 넓게 확산되었다. 1881년 제정 러시아 당시 유대인에 대한 약탈과 조직적 학살(포그롬)은 비극의 일단이다. 1894년 프랑스의 한 포병 장교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과 내통한 간첩으로 몰렸던 드레퓌스 사건은 반향이 컸다.

 

드레퓌스 사건에 위기의식을 느낀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제 알리야, 즉 귀환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언론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1896년 저작 <유대 국가>를 통해 나라를 세우자고 제안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대 국가 건설이 필요하다는 시온주의 사상과 목표가 담겼다. 헤르츨은 이듬해 1차 시오니스트 대회를 열었고, 국가 건설이라는 꿈을 현실의 주제로 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디아스포라 내 초정통파 종교인 집단의 다수가 시오니즘에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희구해온 종교인들이 가장 앞장서서 반길 듯한데 실상은 달랐다. 초정통파 랍비들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형극의 시간을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작위적으로 구원을 앞당기려는 시도를 일탈로 해석한 것이다. 이 시각으로 보면 헤르츨의 시오니즘과 유대 국가 수립 운동은 일종의 거짓 메시아 운동이었고, 자칫 이산의 시기를 더욱 길게 하는 행위일 뿐이었다.

 

결국 시오니즘의 동력은 유대교 정체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속주의에 입각한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였다. 시오니즘의 초기 주창자들은 유대 정체성의 핵심인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서사를 도구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종교 외피를 입은 세속주의자들의 기획이었다고나 할까? 시오니스트와 초정통파 종교인들 간의 이러한 인식 차는 오늘날까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정체성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AFP PHOTO독일 나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자행했다.

 

주류 종교인들의 반대에도 시오니스트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헤르츨은 먼저 오스만 제국과 독일에 유대 국가 건설을 타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협상 상대를 영국으로 바꾸어 영국 식민지 중 몇몇 곳을 후보지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영국은 사이프러스와 시나이 반도 등을 제안했으나 틀어지고, 이후 우간다 안과 아르헨티나 안도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19057차 시오니스트 대회는 귀환(알리야) 서사를 완성시킬 곳은 팔레스타인임을 확인하고 이곳에서 건국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1차 대전 시기, 전쟁 비용이 급했던 영국은 유대인의 대자본이 절실했다. 시오니스트들은 이를 건국의 기회로 삼았다. 로드차일드 등 유대인 명망 가문이 대영 외교에 나섰다. 마침내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의 고향으로 인정하고 재건을 지원하겠다는 영국의 방침이 발표되었다. 191711월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의 선언이다. 선언 직후 영국은 오스만튀르크 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유대 국가 건설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긴장했다. 비록 밸푸어 선언에 선주민의 시민권과 종교적 자유가 명시되어 있었지만 영국이 시오니스트 국가를 세워주려 한다는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온주의 등장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팔레스타인 민족주의가 태동하게 된다.

 

위임통치를 하던 영국은 골머리를 앓았다. 유대인 이주가 늘어날수록 팔레스타인 측의 불만과 시위는 거세졌다. 두 민족의 공존을 성사시켜보려던 영국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좌고우면하던 영국의 행태는 팔레스타인과 유대 양측을 모두 자극했다. 시위는 격화되고 영국은 속수무책이었다. 2차 대전 이후 1947년 영국은 결국 위임통치 권한을 포기했다. 시오니스트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은 아랍의 반대로 거부되었다. 결국 시오니스트들은 1948515일 이스라엘 독립을 전격 선포하고 건국의 꿈을 실현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날은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이주자들에게 빼앗긴 대재앙의 날(al Nakbah)이 된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보호했던 아랍 사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유대주의는 원래 기독교계 유럽에서 기승을 부렸다. 반면 아랍 이슬람권에서 반유대주의 정서는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15세기 기독교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를 평정하며 무슬림을 완전히 몰아냈다. 이때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도 함께 축출했다. 쫓겨난 유대인이 주로 흘러들어간 곳이 북아프리카 아랍 사회였다. 이곳에서 아랍인과 유대인은 함께 지내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비시 괴뢰정부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을 압박해 유대인 축출을 요구했을 때에도 아랍 사회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보호하고 나섰다. 파시스트들의 유대교 탄압에 함께 저항하면서 희생을 감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불과 수년 안에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반유대주의를 피해 자유를 찾고자 했던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자 유대인과 아랍인이 원수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고토 회복을 주장했지만, 아랍 팔레스타인에게는 이스라엘이 무도한 침략자였다. 유대인의 귀환은 기독교권의 멸시와 박해로 인해 시작된 것인데 정작 갈등은 이슬람권과 빚고 있다.

 

통곡의 벽에 서서 몸을 흔들며 황금의 돔 사원과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전 산(하람 알샤리프)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하는 유대 종교인들을 보면, 영락없는 유대교와 이슬람의 갈등이다. 그러나 이 갈등 뒤에 있는 더 오랜 분쟁의 씨앗은 바로 천년 넘게 지속된 기독교권의 반유대주의였다. 홀로코스트는 루터의 후예들이 저지른 일이며, 포그롬은 정통을 자처하는 정교의 후예들이 저지른 짓이다. 심지어 밸푸어가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주장도 있다. 밸푸어 선언 당시 영국 정부의 저의는 유대인 보호가 아니었다는 사료들이 나오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아비 슐라임 교수는 밸푸어가 작곡가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와 나눈 대화에서 유대 국가를 빨리 세워줘야 유럽 내 유대인들이 다 한곳으로 모여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다.

 

기원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팔 분쟁은 당사자 간 역사적 구원(舊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기독교권의 멸시와 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그간 큰 어려움 없이 지내왔던 아랍과 이상하게 엮여 원수가 되어버린 드문 사례다. 현재에만 시선을 두면 역사의 궤적을 놓치기 쉽다. 면밀히 과거를 읽어내지 못하면 현 상황에 포박된다. 마치 지금의 갈등관계가 과거로부터 유구한 것이며, 또 미래에도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오류가 발생한다. 이 오류는 상황을 고착화하고, 결국 어떤 형태로든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 의지를 반감시킨다. ·팔 문제의 또 다른 문제는 현재 상황이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압도한다는 데 있다. 어쩌면 꽉 막힌 이·팔 분쟁의 해법은 상상력을 발휘해 역사적 맥락을 재현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선물처럼 주어질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이·팔 갈등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먼 역사적 기원부터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1997년 말, 미국은 왜 한국을 집어삼키려 했나? 1212 시사인 제586

- 199711, 어떤 세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사실상 국가부도상황으로 몰아붙였다. 그들은 한국이 돈줄을 찾을 때마다 번번이 날뛰며 방해했다. ‘어떤 세력은 누구였나? ‘범행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지난 1997년 말,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시달린 끝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그는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비상대책팀을 이끈다. 영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일까?

 

국가부도의 날이 실제로 닥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떤 세력이 한국을 사실상 국가부도상황으로 몰아붙였던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다. 불가항력적으로 범한 실수가 결코 아니었다. 매우 거칠었지만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는 의지를 과시하며, 한국인들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드는 함정으로 밀어넣었다. 어떤 세력은 누구였을까? ‘범행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빌린 돈을 정해진 시일까지 못 갚는 상황을 부도라고 부른다. 개인이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가 100억원을 올해 마지막 날까지 은행에 상환해야 하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국가부도다. 그 뒤에는 아무도 한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일체의 거래 네트워크에서 퇴출된다. 개인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현대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국가부도는 엄청난 참사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1997년 말, 한국이 IMF 구제금융 신청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그래도 채권자가 한국 돈(원화)을 사용하는 국내 법인이라면 다행인 편이다. 정부는 자국 통화를 찍어낼 권한이 있다. 부작용이 크겠지만, 한국 정부라면 100억원을 새로 발행해서 은행에 지급하면 된다. 실제로 정부가 국내 채권자에게 빚을 갚지 못해 국가부도를 초래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해외, 예컨대 미국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로부터 1000만 달러를 빌렸다가 못 갚으면 어떻게 될까? 1000만 달러를 한화로 환산하면 대충 110억원. 골드만삭스는 절대 그 110억원을 받지 않는다. 달러로 빌렸다면 달러로 갚아야 한다. 물론 중앙은행(한국은행)1000만 달러 이상의 외환이 보유되어 있다면 그 달러를 골드만삭스에 상환하면 된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500만 달러에 불과하다면? 외환 부족으로 인한 국가부도 위기가 전개될 것이다.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나라다. 수출입에 경제의 존망이 걸려 있다. 수출입 거래로 주고받는 돈은 원화가 아니라 달러, 유로 등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축통화다. 은행과 기업이 해외 업체들로부터 빌리고(외채) 상환할 때도 기축통화가 사용된다. , 한국 기업이 해외 업체의 물품을 매입하거나 외채를 갚으려면, 갖고 있는 원화로 국내 금융기관에서 달러부터 사야 한다. 그 금융기관 역시 궁극적으로는 중앙은행(한국은행)에서 달러를 공급받는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면 기업과 은행들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원화로 달러를 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달러 없이는 해외의 석유와 소비재, 원자재 등을 매입할 수 없다. 외채를 갚을 수도 없다. 경제주체들이 더 많은 한국 돈을 주더라도 일단 달러를 사려고 몰려드는 와중에 달러의 가격(환율)’은 폭등한다(원화 가치의 폭락).

 

이런 사태가 1997년 여름부터 그 이듬해 초까지 동아시아 전역(중국 제외)에서 전개되었다. 그해 8월 타이 바트화의 폭락(바트 대비 달러 환율이 폭등)으로 시작된 외환위기가 인도네시아와 타이완, 말레이시아 등지로 번지더니 가을쯤 한국에 본격 상륙했다. 그해 여름에는 달러당 800원대 후반이던 환율이 10월 말부터 거침없이 치솟더니 1110일에는 1000원을 돌파해버렸다. 당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이미 100억 달러 이하로 움츠러들어 있었다. 해외 채권자에게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1년 내로 만기가 도래하는 외채) 규모만 250억 달러(한국은행이 12월 중순에 추산)에 이르는 형편이었다. 가진 달러보다 나가야 할 달러가 훨씬 크면 국가부도가 불가피하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달러를 구해 그 공백을 메워야 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연합뉴스 1997123일 임창열 경제부총리(가운데)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오른쪽)는 캉드쉬 IMF 총재(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IMF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하나는, 일본이나 미국 같은 우방국에 국가 대 국가로서 달러를 빌리는 것이다. 좀 높게 책정되겠지만, 이자만 지급하면 된다. 다른 하나는 국제기구인 IMF에서 차입하는 방법이다(구제금융). 김영삼 정부는 어떻게든 IMF 구제금융만은 피하고 싶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IMF의 공식 목표 중 하나는, 외환위기에 빠진 국가에 달러 등 기축통화를 제공해 세계무역을 촉진하는 것이다. 외채로 인한 국가부도 방지다. 그러나 이 조직은 늦어도 1980년대 이후에는 악랄한 빚쟁이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달러를 빌려주는 대신 구제금융 조건이라는 것을 내걸면서 해당 국가의 경제 시스템을 바꾸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채무자에게 강요하는 신체포기 각서와 비슷하다. 신체포기 각서에 서명한 채무자는 자기 몸에 대한 천부의 권리를 잃는다. IMF의 채무국은 경제 주권을 박탈당한다.

 

한국에 돈 빌려주지 마라

김영삼 정부는 당초 일본으로부터 달러를 차입하려 했다. 일본은 당시에도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으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엄청난 돈을 투자한 상태였다. 그런 나라들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사태는 일본으로서도 피하고 싶었을 터였다. 당시의 국가부도 위기가 일시적 외환파동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런데 양국 정부가 접촉할 때마다 어떤 세력이 나타나 길길이 날뛴다. 뜻밖에도 한국과 피를 함께 흘린 동맹국, 미국의 클린턴 정부다.

 

기자는 외환위기로부터 4년여 뒤인 2002년 봄 김영삼 정부 당시의 최고위 경제 관료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가 털어놓은 경험담. “19971119, 일본 미쓰카 히로시 대장성(재무성의 전신) 장관을 만나 협조 융자를 부탁했다. 미쓰카 장관은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며 문서를 보여줬다. 미국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보낸 편지였다. 한국에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되어 있더라.”

 

AP Photo 1997년 미국 정부는 한국을 국가부도 상태로 몰아붙였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왼쪽)과 클린턴 대통령.

 

그해 1119일은 국가부도 위기 국면의 분수령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타이 바트화 위기 직후인 19978월부터 거듭해서 일본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일본은 그때부터 미국의 눈치를 봤다. 미국 심기를 거스르면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지원할 용기는 없었다. 그해 9월 초, 일본은 아시아통화기금(AMF)’ 창립을 제안한다. 일본이 1000억 달러를 출연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국제기구다. 일본 정부로서는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국제기구를 통해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방식이 덜 부담스럽다고 판단했을 듯하다. 이 기구가 설립되었다면, 해외의 채권자들은 ‘1000억 달러라는 상환 자금이 보장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아시아에 대한 빚 독촉을 자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도 까다로운 구제금융 조건 없이 필요한 외환을 확보했을 것이다. AMF 설립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914일 자정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대장성 국장은 자택으로 걸려온 살벌한 전화를 받는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폴 블루스타인의 저서 <징벌(Chasten- ing)>에 따르면, “로런스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이었다. 그는 대화할 분위기가 아닐 정도로 화를 냈다. ‘나는 당신이 내 친구인 줄 알았어라며 서머스가 으르렁거렸다.” 결국 일본의 AMF 창립 시도는 좌절되었다.

 

미국은, 한국이 외환 파동을 조용히 마무리 짓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돈줄이었던 일본에 대한 압박은, 한국을 어떻게든 국가부도 위기로 밀어넣으려는 적극적 의도를 품고 있었다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은 AMF의 좌절 직후인 10월에도 일본에 협조 융자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다. 결국 IMF 외에는 모든 길이 막혔다. 1116, 장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극비리에 방한해 서울시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강경식 경제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등과 만난다. 그 회동의 결과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한국의 IMF()이 사실상 이뤄졌다”. 양측은 사흘 뒤인 1119,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19971217일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시위를 벌이는 한국 노동자들.

 

1119일 아침, 강경식 경제팀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발표 내용을 보고해서 수락받았다. 여기서 급반전이 일어난다. 강경식 부총리 등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경질되었다. 신임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오후 5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 종합대책안을 발표하면서 한국이 IMF에 꼭 갈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으로 급파한 최고위 경제 관료들에게 가냘픈 희망을 걸고 있었다. 미쓰카 장관은 루빈 재무장관의 편지를 핑계로 그 희망을 걷어차고 만다. 미국 정부에 대한 한국의 모처럼의 반항이 하릴없이 최종적으로 꺾이는 순간이었다. 이틀 뒤인 1121, 임창열 부총리는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한다.

 

1126일부터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시된 한국 측과 IMF 실무협상단의 주요 의제는 지원금 규모와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구제금융 조건)이었다. 미국 재무부는 데이비드 립턴 차관을 파견해서 노골적으로 협상에 개입했다. 립턴은 아예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고 사실상 협상을 감독했다. 그의 요구는 한국 경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블루스타인 기자의 <징벌>에 따르면, IMF 실무협상단은 한국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에는 소극적이었으며 립턴의 수많은 제안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분개하기도 했다”.

 

일주일여 지속된 협상의 결과가 123일 발표되었다. 구제금융 규모는 550억 달러. 한국 대표단은 협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날 협약서에 서명하러 방한한 캉드쉬 총재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행사 일정표를 잠시 훑어본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협상을 하러 왔다.” 의전 관료들은 땅이 꺼지는 기분을 느꼈을 터이다. 블루스타인 기자에 따르면, 캉드쉬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루빈 미국 재무장관과 통화했다. 그는 미국의 압박 아래 놓여 있었다. 협약서의 구조조정 내용이 미국 정부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IMF를 실효 지배하는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협약서 따위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돈이 실제로 나올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해외 채권자들 처지에서는 그런 협약서를 믿고 한국의 원리금 상환을 연기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따라 협약 체결 이후 한국의 국가부도 위기는 오히려 더욱 격화되었다. 협약 체결일인 123일엔 1달러에 1230원 정도였던 환율(원화 대비 달러 가치)이 중순 들어서는 하루 10%라는 믿기 힘든 속도로 올랐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50억 달러 미만으로 줄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자본시장 개방

한국으로서는 더욱 급진적인 경제 구조조정안을 내놓는 수밖에 없었다. 15대 대통령 선거 전날인 1217, 임창열 부총리는 김기환 경제협력특별대사를 미국으로 파견한다. 김기환 대사가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에게 제시한 ‘IMF 플러스, 123일의 IMF 협약서에 더 과격한 구조조정안을 추가한 내용이었다. 비로소 만족한 서머스 부장관은 다음 날 립턴 차관을 다시 한국으로 보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이행 여부를 확약받는다. 그 이후에야 미국은 한국에 대한 지원을 다른 선진국들에 시사하면서 협조를 부탁한다. 달러 환율은 12231995원을 정점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이튿날, IMF는 한국에 대한 100억 달러 조기 지원을 발표했다. 비로소 한국은 국가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한국의 IMF행을 강요했던 걸까? 로런스 서머스 부장관이 반긴 ‘IMF 플러스구조조정안에 정답이 들어 있다. ‘IMF 플러스의 핵심, 즉 미국이 그토록 원했지만 한국이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놓지 못하고 망설인 것은 자본시장 개방이었다. 한국의 자본시장(주식과 채권을 거래하는 시장)은 외국인에게 1997년까지 닫힌 상태였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 보유 한도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특정 대기업 주식 중 25% 이상을 매입할 수 없었다. 외국인이 대기업 경영권(원칙적으로는 50% 이상의 지분이 필요하다)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하는 장치다. ‘IMF 플러스로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외국인도 한국 기업의 주식(과 경영권)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경영자나 주주의 의사와 상관없이 특정 기업을 인수하는 적대적 인수합병도 허용되었다. 외국인이 한국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자유롭게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게 하려면, 외환관리법도 전면 개정되어야 했다. 외국인이 기업을 인수한 뒤 대량해고 등으로 그 가치를 높여 되팔려면 정리해고 자유화도 필수적 장치였다. ‘IMF 플러스로 추가된 조항들이다.

 

한편 IMF는 기업 부채비율을 낮추고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개혁도 추진했다(김대중 정부가 부채비율 200%-BIS 8%’로 구체화). 당시 한국의 주식시장은 그리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기업들은 주식 발행이 아니라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 기업의 (은행)부채비율이 400~500%로 꽤 높았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지나치다고 여겨질 만큼 많이 투자했다(과잉투자). 1990년대 초·중반에 경제성장률 7~9%0%에 가까운 실업률을 달성했던 비결이기도 하다. 당시의 은행 역시 기업 대출에 주력했으므로 BIS 비율이 2~3% 수준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BIS 비율은 은행이 위험 투자를 많이 할수록 낮게 평가되는데, 기업 대출은 미상환 가능성이 높은 위험 투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BIS 비율을 높이려면 주택 등을 담보로 잡고 가계 소비에 대출하는 것이 최고다. 이런 상황에서 부채비율 200%-BIS 8%’의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기업은 주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은행은 기업 대출을 대폭 줄여라.” 이로써 당시까지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이었던 은행-기업 관계가 해체되었다. 빌려서 많이 투자하던 기업 경영 관행도 끝났다.

 

기업집단들은 계열사 주식이나 회사 자체를 매각해서 마련한 돈으로 은행 부채를 갚아야 했다.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다. 마침 IMF의 요구에 따른 고금리 정책으로 1998년 들어 시중 단기금리가 연간 20~30%에 달할 때였다. IMF의 명분은 금리를 극도로 높게 설정해야 달러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높은 금리는 1차적으로 기업 운영과 가계를 위협한다. 경제주체들은 현금을 구하기 위해 주식, 부동산 등 보유 자산을 마구 시장에 내다팔았다. 이로 인해 자산 가격이 대폭 떨어졌지만, 그 시장에서 매수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은 외국자본밖에 없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이나 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50% 가까이 올라간 것은 이때부터다.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을 때 유력한 용의자는 그 사건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클린턴 정부가 한국을 국가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이유 역시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다. 미국 경제의 축이 금융산업으로 이동 중인 시기였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들은 미국 재무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루빈부터가 미국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공동회장 출신이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씨티그룹 회장을 지냈다. 금융산업이 수익을 내려면 장사할 곳과 상품이 많아야 한다. 월스트리트에게 한창 고성장 중이던 한국 등 동아시아의 자본시장은 무척 탐나는 제물이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자본시장을 닫고 있었다. 투자하고 싶은데 투자할 수 없다. 어떻게 개방시키지? 미국 정부는 그 수단을 갖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당한 국가에 달러를 빌려주는 대신 경제구조 변혁의 권한을 얻는 IMF. 미국 클린턴 정부에겐 동기와 수단이 모두 존재했다. 블루스타인 기자는 미국 정부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미국 재무부의 해외 담당 부서는 오래전부터 금융부문 개방을 한국에 요구해왔다. 해외 은행의 한국 진출은 물론 한국 기업이 해외 금융시장에서 자유롭게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외국인들이 구입할 수 있는 주식 비율 한도도 확대하라는 것이었다. 재무부의 한국에 대한 압력 뒤엔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미국 금융기관들의 로비가 있었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이후 21년이 흘렀다. 그 무서웠던 시간 역시 <국가부도의 날> 같은 영화로 만들어져 역사적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크게 늘렸다. 지난 9월 말 현재 4030억 달러로 세계 8위다. 일종의 보험이다. 지금도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금융자본주의 질서에 포섭되었다. 한국 기업들의 최고 경영 목표는 어느새 성장보다 주식 가치 높이기로 바뀌었다. 기업 주식이 자유롭게 사고 팔리며 누구든 돈만 있으면 경영권을 획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재벌들 역시 주식 가치 올리기에 골몰하게 되었다. 주주의 인기를 얻어야 경영권도 유지할 수 있다. 대신 총투자율이 떨어지면서 경제성장률과 고용률은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했다. IMF와 국내 개혁파 경제학자들은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한국 기업들의 방만한 과잉투자를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지나치게 투자하는 편이 아니었다면 고도성장과 외환위기의 빠른 극복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이제민 연세대 교수는 저서 <외환위기와 그 후의 한국 경제>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전의) 설비투자는 결국 (외환위기 이후) 생산과 수출 능력을 늘려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바탕이 되었다. 한국은 그때의 투자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면서 외환위기로부터 탈출했던 것이다.”

 

노동시장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훨씬 불안해졌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노동시장 유연성이 커지니 중산층이 해체될 수밖에 없다. 2018년의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다.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패권국가의 의도에 따라 한국과 그 시민들의 운명이 삽시간에 바뀌었다는 점이다. 패권국가가 어느 나라든 앞으로 그런 시도가 다시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은 지금 중국에 대해 일종의 경제구조 변혁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첫 출근 앞두고 설레던 김용균 가방 속 컵라면에 울컥1216 국민일보

지난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20대 비정규직 김용균(24)씨의 유품과 생전 모습이 공개됐다. 숨진 김씨가 메고 다니던 가방엔 고장 난 손전등과 건전지, 컵라면이 담겨 있었다.

 

2년 전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작업 중 숨진 열아홉 살 김모군의 유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컵라면은 20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지난 13일 유가족과 함께한 현장조사를 통해 김씨의 유품을 확보했다. 민주노총 등은 운전원 대기실에서 발견된 김씨의 유품을 15일 공개했다.

 

유품엔 그의 이름이 적힌 작업복과 검은색 탄가루가 묻어 얼룩덜룩해진 수첩, 매번 끼니를 때웠던 컵라면 3, 과자 1봉지가 들어있었다. 면봉과 휴대전화 충전기, 동전, 물티슈, 우산, 속옷, 세면도구, 발포 비타민, 쓰다만 건전지와 고장 난 손전등, 탄가루가 묻어 검게 변한 슬리퍼도 있었다.

 

동료들에 따르면 휴식 시간이나 식사 시간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낙탄을 치우는 작업에 투입된 김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밤에 헤드랜턴 없이 위험한 컨베이어 속으로 몸과 머리를 들이밀어야 했다. 때문에 손전등을 사비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마저도 고장난 상태였다.

 

불규칙한 작업 지시 때문에 매번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김씨는 2016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전동차에 치여 숨진 김모군(19)의 열악했던 근무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지난 9월 첫 출근을 앞두고 자택에서 찍은 동영상도 공개됐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김씨의 자택에서 찍은 영상에서 김씨는 새 양복과 넥타이, 새 구두를 신고 수줍게 서 있다. 양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 듯 이리저리 몸을 돌려 보더니 수줍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첫 출근을 앞둔 사회 초년생의 설레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이 영상은 많은 이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조선·동아 사흘째 김용균을 위한 지면은 없다

사흘째 김용균씨 소식 한 건도 보도 안해한겨레·경향·서울신문 1면 보도

24살 청년 김용균씨가 산재 사고로 숨진 지 4일째다. 하지만 김씨 장례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김씨 죽음과 관련한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서다. 왜 신고가 늦어졌고 왜 사고 뒤에도 방치됐는지 등 책임 소재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김씨 원청회사인 한국서부발전은 용균씨 죽음을 은폐하려 언론동향부터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9월 김씨는 태안 화력발전소 설비 하청업체 한국서부발전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생애 첫 직장에서 밤샘 근무를 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14일 자 9개 중앙일간지 가운데 한겨레와 경향, 서울신문이 1면에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12면에 이 소식을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사설로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김씨가 숨진 11일부터 14일 현재까지 김씨 관련 기사를 지면에 단 하나도 보도하지 않았다.

서울신문은 1면 머리기사에 용균씨 죽음 은폐하려 언론동향부터 챙겼다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1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김용균씨 추모 촛불집회 사진도 함께 실었다.

 

신문은 서부발전이 지난 11일 김씨 사망사고 이후 작성한 보고서에는 언론보도 동향 항목이 있었다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의 죽음을 원청인 서부발전이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서부발전은 사고 신고를 40분가량 늦게 해 이 시간에 대책회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조치 내용항목에 오전 350분에 경찰에 신고하고 오전 435분에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에 신고한 것으로 나와 있다고도 했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에 “4년 전에도 똑같은 컨베이어 참변변한 게 없다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한겨레도 1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용균씨 추모 문화제가 사진도 1면에 실었다.

 

한겨레는 김씨 말고도 지난 2014년에 충남 보령화력발전소에서 홀로 근무하다 숨진 딸아이 아빠 30대 초반 박아무개씨 사연도 보도했다. 한겨레는 날짜와 장소만 달랐을 뿐, 두 사고는 닮은꼴이었다. 박씨의 죽음 뒤 4년이 흘렀지만, 위험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비상정지장치(풀코드)만 설치됐을 뿐이다. 그조차 21조 근무 체제가 도입되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억울한 죽음이 반복됐다고 썼다.

 

신문은 1면에 이어 3면에서 “2명 중 1명이 또 다른 김용균사고 현장 무서워서 못간다’”“‘21내부지침 있었지만원청·하청업체 스스로 뭉개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경향신문도 1면에 그가 스러져도혼자컨베이어벨트를 돌았다라는 제목을 달고 김씨와 같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향신문은 김씨는 전날 새벽 혼자서 근무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었고, 벨트를 비상정지시켜줄 사람이 없어서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20대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공분을 일으켰다. 위험한 작업은 21조로 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게 사망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 ‘위험의 외주화가 근본 문제라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김씨의 죽음 뒤에도 동료들은 똑같이 혼자일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김씨의 사망 소식 이후 사흘 연속 한 건도 이 소식을 지면에 보도하지 않았다.

 

기부요? 내 코가 석 잔데... 1216 머니투데이

[기부의 계절-]불투명한 운용·기부금 악용에 불신 커져불경기에 기부도 '꽁꽁'

'기부 한파'가 매섭다. 불경기에 기부 단체 불신이 더해지며 온정의 손길이 줄어들고 있다. 기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며 '기부 포비아(phobia·공포증)'란 말까지 생겨난 상황. 전문가들은 기부 문화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16일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희망 2019 나눔캠페인' 모금액은 약 89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2억원가량 줄었다. 기부 문화가 움츠러들며 연말 기부에 참여하는 손길도 얼어붙은 것. 목표액(4105억원)에 도달할 경우 100도를 가리키는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도 21.7도에 머물렀다. 3년 전인 2015121539.9도를 기록한 것과 비교했을 때 18도 이상 낮은 셈이다

 

기부의 '큰손'도 사라지고 있다. 1억원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신규 가입자 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큰 폭으로 줄었다. 2016422명이었던 신입 회원 수는 지난해 338명으로 감소했다. 올해 신규 가입자는 11월 말 기준 186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줄어든 온정의 손길,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서"

장기간 이어진 경기침체는 기부 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주요인으로 꼽힌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지난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6.7%에 불과했다. 2011(36.4%)과 비교하면 9.7%P나 감소한 수치다. 기부 경험이 없는 이들은 기부하지 않은 이유로 '경제적 여유가 없다'(57.3)는 답변을 가장 많이 내놨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직격타를 맞은 영세 소상공인들도 기부에 난색을 보인다. 주머니 사정의 여의치 않아 이웃을 도울 여유가 없어서다. 서울 마포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30)"내 코가 석 자"라며 "주위를 살피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지속적인 불황으로 개인은 물론 기업의 기부 참여가 줄면서 사회 전반의 기부 문화가 침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낸 기부금은 어디로?"'못 믿을' 기부 단체

기부가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불신'(不信)으로 분석된다. 최근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유용하는 사건이 잇따르며 기부 단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것. 딸의 수술비로 기부받은 후원금 12억원으로 호화 생활을 한 어금니 아빠이영학 사건, 기부 단체가 결손 가정 아동 기부금 127억원을 횡령한 '새희망씨앗'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국내 최대 법정 모금단체인 공동모금회도 내부 비리 사건이 터지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2010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경기지회 한 간부가 3300만원의 국민 성금을 유흥비로 탕진한 사실 등 공동모금회 관련 각종 비위가 밝혀지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깜깜이 기부' 역시 기부 문화 위축을 부추기고 있다. 기부금을 낸 사람들은 기부금이 실제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에 따르면 기부자 중 61.7%가 기부금 사용처를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기부금 사용처가 투명하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60.7%에 달했다.

 

현행법상 기부 단체의 기부금 모금액과 활용 실적 정보는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5억원 미만이거나 수입금액과 해당 사업연도에 출연받은 재산의 합계액이 3억원 미만인 공익단체는 결산서류를 공시할 의무가 없다. 사회복지법인, 종교법인, 학교, 장학재단 등은 자산 규모와 관계없이 공시의무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재 공익법인 34000여 곳 중 공시의무가 있는 곳은 8900여 곳. 전체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부자들은 규모가 큰 단체에 기부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불투명한 기부금 운용과 이에 대한 불신은 기부에 대한 거부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대학생 박모씨(22)"기부해야겠다는 마음보다 제대로 전달될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든다"면서 "내 돈이 허튼 데 쓰일 바엔 차라리 기부하지 않는 게 답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해 '기부자의 알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 관계자는 "기부자가 모금에서 사용까지 관련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무엇보다 기부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기부 단체의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의 계절-]한파·불경기에 기부 필요성 강조기부과정 전반을 신중하게 살핀 후 기부 결정해야

기부자는 사회적 효과를 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소비자이자, 직접 투자자다. (중략) 선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면 당신의 만 원을 '' 내야 한다.(김종빈 '당신의 기부금은 잘 쓰이고 있습니까' )

한파와 불경기 속에서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기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이나 물건을 냈다고 해서 기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정성이라도 '' 전달해야 비로소 기부가 완성된다.

 

기부상자 속 쓰레기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사회자원을 재분배하는 기부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다. 자신이 가꾼 재능을 전하거나 직접 땀을 흘리는 봉사활동을 비롯, 여러가지 기부형태가 있다. 이 중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부 방법은 금전적 기부와 물건을 선물하는 물품기증이다. 특히 물품기증은 자신이 아껴 썼지만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손때 묻은 물건을 필요한 이웃에게 '나눔'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부 행위로 꼽힌다.

직장인 이재영씨(27)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지 않는 옷을 골라 상자에 담는다. 기부단체를 통해 기증하기 위해서다. 지난주에도 맞지 않거나 잘 입지 않는 옷을 모아 보냈다. 이씨는 "아끼던 옷들을 깨끗하게 세탁해 기부하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정확히 누구에게 전달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름다운 세상만들기에 사용하겠다'라는 메시지와 기부영수증을 받으면 무척 보람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이씨같지는 않아 문제로 지적된다. 당장 버려야 할 쓰레기를 기증하는 사람도 많아 나눔의 의미가 퇴색될 때가 많다. 지난 10일 권태경 아름다운가게 간사가 라디오에 출연해 어려움을 토로한 이유다. 권 간사는 해당 방송에서 "(물품) 10개를 받으면 7개를 버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권 간사에 따르면 누렇게 된 속옷이나 겨드랑이에 땀이 찬 옷은 물론, 기름때가 씻기지도 않는 에어프라이기가 들어오기도 한다.

 

실제 아름다운가게에 따르면 지난해 들어온 기부 물품은 무려 2000만점이 넘지만, 이 중 67%(1460여만점)가 쓰이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폐기해야 할만 한 물건은 기부 품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대체로 기부의식이 부족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권 간사는 "내 친구, 가족에게 줄 수 있는 물건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깜깜이 기부도 그만

물품기증을 할 때 이웃이 쓸 수 있는 물건을 건네야 하는 것처럼, 금전적 기부에서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내가 내민 기부금이 잘 쓰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깜깜이 기부'를 하고 있어 건전한 기부문화 확산을 막는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국민 12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에 따르면 53.3%가 기부 경험이 있고, 연 평균 38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했다. 하지만 기부자 중 61.7%가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라는 목적 자체와 기부금을 내는 단체·프로그램이 영리 목적이 아닌 사회적 효과를 의도하기 때문에 막연히 좋은 일에 쓰일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종빈 CSR(기업사회공헌) 포럼 총괄 간사는 저서 '당신의 기부금은 잘 쓰이고 있습니까'에서 "'좋은 일'이라는 점 때문에 단체와 프로그램이 미숙하고 실수나 잘못이 있더라도 (기부자들이) 관용을 베풀고 느슨한 잣대를 적용한다"고 지적했다. 이때문에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이나 소외 아동·청소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5만명의 기부자에게 128억원을 받아 챙긴 '새희망씨앗' 사건처럼 기부금을 횡령·유용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는 기부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정기 후원을 받고 있는 한 사회복지단체가 매달 후원자에게 보내는 사용내역 메시지. /사진= 유승목 기자

정기 후원을 받고 있는 한 사회복지단체가 매달 후원자에게 보내는 사용내역 메시지. /사진= 유승목 기자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 사회복지 단체에 정기 후원 중인 직장인 윤모씨(28)는 오랫동안 단체의 활동을 지켜본 뒤 기부를 결정했다. 윤씨는 "대학시절 해당 단체의 소식을 들을 기회가 많아 기부를 결정했다""매달 후원금 사용내역을 확인하면 내가 낸 돈이 잘 쓰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고, 해당 단체도 감시자가 있으니 더 열심히 활동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전문가들은 한국 기부시장이 소수단체 쏠림이 크기 때문에 기부단체를 비롯, 기부과정 전반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익법인을 감시하는 '한국 가이드 스타'에서 단체의 재정 투명성 등을 평가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김종빈 CSR 포럼 총괄 간사는 "기부는 자원의 '치료적 미세 분배' 기능을 담당한다""위기의 순간, 가장 빠르게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 근거한 직접 참여가 핵심이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왜 전쟁을 하는가? 1215 프레시안

[전쟁국가 미국·1-] 미국의 군사주의와 동아시아

세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물론 패권이 교체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며 경제 대국이다.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 자국 주변에 대한 미국의 군사 패권을 견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30분 내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 규모 역시 아직은 미국이 중국을 앞서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쇠퇴는 분명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 군사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에너지 자원의 보고 대중동지역을 미국의 통제권 아래 두겠다는 네오콘의 야망은 백일몽임이 판명됐다. 2001년 아프간 침공 이래 18년째 '긴 전쟁(Long War)'을 벌이면서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65백만 명의 전쟁 난민이(2차 대전 이후 최대) 유럽으로 몰려들면서 유럽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유럽 정치의 극우화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오늘의 미국을 '혼돈의 제국'이라 부르는 이유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2016년 정치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2차 대전 후 미국 지배 엘리트가 추구해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더 이상 미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음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식 체제와 가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11025일 자 <뉴욕타임스>"미 국민의 89%는 정부가 올바른 일을 할 것이라고 믿지 않고, 74%는 미국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84%는 의회가 하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다"고 보도했다. 이 무렵 아랍의 민주화를 외치며 궐기했던(아랍의 봄) 중동지역의 청년들은 더 이상 미국식 체제를 자신들의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2차 대전 이후 경제, 군사, 정치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를 이끌었던 미국의 패권(Hegemony)은 몰락했다. 헤게모니란 피지배자들의 자발적 동의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2003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는 '동의 없는 지배' '일방적 강제'일 뿐이다. 따라서 미국의 세계 지배는 지속 가능성이 없거나 대단히 희박하다.

 

반면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나아가 구매력 기준 GDP로는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차머스 존슨은 2000년 발간한 저서 <역풍(Blowback)>을 통해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동아시아의 경제적 부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이러한 변화의 거의 마지막 과정으로 향후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이제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 2차 대전 후 일본에서 시작된 경제 기적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동남아 국가들,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으로 확대됐다. 마지막 남은 곳이 북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체제가 완성된다면 북한도 그 기적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의 세계 경제는, 나아가 세계의 미래는 동아시아가 이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천하의 대세다.

 

문제는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인 반면 정치안보 측면에서는 가장 불안정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북핵 위협, 보다 근원적으로는 중국과 미국(그리고 일본)의 대립에 있다.

 

한편 16세기 이후 서구의 경제적 흥기가 군사력의 우위에 바탕을 둔 데 반해 동아시아의 경제적 부상은 군사력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다. 군사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누리고 있다. 전쟁 없는 세계의 공동 번영은 가능할 것인가? 향후 세계의 미래를 판가름할 중대한 문제이다. '전쟁국가 미국'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는 19세기 중반, 서구 세력이 동아시아를 침탈한 이래 세 번째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첫 번째 전환기는 1876년 개항, 두 번째 전환기는 1945년 해방이다. 첫 전환기는 일제 식민지로 귀결됐고, 두 번째 전환기는 분단과 전쟁을 초래했다. 국제 정세의 변화에 주체적 대응을 못한 탓이다. 정세 변화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세 변화에 무지했고 과거에 안주한 탓이다.

 

1989년 탈냉전 이후의 세 번째 전환기에도 주체적, 창조적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외세에 휘둘리며 집안싸움이나 벌이는 못난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전쟁국가 미국'의 실상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전쟁 당시 38선 경계표시판 프레시안 자료사진

 

서구의 세계 지배와 군사력

 

현재 미국은 전 세계를 자신의 작전 구역으로 삼고 있다. 북부사령부(북미), 남부사령부(중남미), 인도태평양사령부(동아시아), 유럽사령부(유럽), 중부사령부(중동 및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사령부(아프리카)가 그것이다. 이들 6대 지역 사령부 외에 핵무기를 관장하는 전략사령부, 우주를 관할하는 우주사령부, 사이버공간에서 작전하는 사이버사령부까지 있다. 그야말로 인류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이 미군의 작전 구역이다.

 

미국의 군사비는 대략 한해 7000억 달러 정도다. 여기에 핵무기 통계는 잡히지 않는다. 핵무기는 국방부 관할이 아니라 에너지부 관할이기 때문이다. 미 군사비 전체 규모는 대략 1조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다른 모든 나라들의 국방비를 모두 합쳐도 미국 국방비에 미치지 못한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나라는 없었다. 왜 그럴까? 미국의 보수파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다음 발언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서유럽이 세계를 장악한 것은 이념이나 가치관 또는 종교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무력을 조직적으로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만 비서구인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를 간명하게 요약했다. 서구의 세계 지배는 군사력의 우위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군사력에 의한 세계 지배로 서구는 자유와 번영을 누렸고 비서구는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우리는 흔히 서구를 자유, 민주, 인권 등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선진 사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구가 번영한 바탕에는 비서구에 대한 잔혹한 지배와 통제가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미를 차지했고, 영국은 인도와 말레이를,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집어삼켰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수 천 만 명의 원주민이 유럽인들에게 도살당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아프리카를 분할 지배했고, 중국을 반()식민지화 했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과 대만, 만주를 먹었다.

 

16~19세기 동안 1500~3000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아메리카 등의 담배, 설탕, 목화 농장에서 죽도록 일을 했다.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약 2000만 명의 중국인을 아편 중독자로 만들었다. 중국이 아편 판매를 금지하자 전쟁으로 응수했다. 벨기에가 지배한 콩고의 고무농장에서는 최대 10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죽어나갔다.

 

이른바 서구 선진국들이 말하는 자유, 민주, 인권, 자유무역 등은 그들 사회 내부, 또는 서구 국가들 간에만 통용되는 가치였다. 영국이 식민지 인도의 자유, 민주, 인권을 보장했을까?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무역 관계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었나? 전혀 아니다. 자본주의 선진국에게 식민지란 원자재의 공급처, 그리고 자국 생산품이 소비처였을 뿐이다. 식민지가 원자재를 공급하고 종주국의 생산품을 소비했던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었다. 무력에 의한 강제 때문이었다.

 

미국엔 2개의 국방부가 있다     

'국방'이란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다. 즉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자국의 주권,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에는 국방부가 두 개 있다. 기존 국방부 외에 국토안보부가 있다. 국토안보부는 20019.11 테러 이후 만들어졌다. 국토안보부야말로 '국방'이란 말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그러니까 미국은 2001년이 돼서야 자국 방어에 눈을 떴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는 뭘 하는 곳인가? 미국의 군사 역사학자 앤드류 바세비치는 기존 국방부는 '군사력투사부(Department of Military Projection)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즉 외국에 대해 미국의 군사력을 적용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미국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서다. 즉 미국 국방부는 2001년까지는 자국 방어가 아니라 외국을 지배, 통제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식민주의에 반대하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제 질서를 추구한다고 천명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쟁 또는 비밀공작을 통해 미국에 저항하는 정권을 전복하고 미국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워 왔다. 이란, 과테말라, 칠레 등 50개국이 넘는다. 영토 정복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무력에 의해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킨다는 점에서 미국의 행태는 19세기 서구 식민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미국의 행태를 신식민주의라고 부른다. 또는 제국주의적 반식민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군사력을 대폭 강화한 나름의 명분이 있기는 하다. 소련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세계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실상은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복원을 위해서는 군사력 증강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핵위협, 재래식 전쟁, 그리고 비밀공작을 통해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켜 왔다. 이를 군사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의 패배와 최근 대중동전쟁은 미국의 군사주의가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군사주의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전쟁, 또는 전쟁 준비가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요소로 굳건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군산복합체가 그것이다. 냉전 이후 전쟁의 상업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민간 기업이 무기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전쟁 수행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2013년 미국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CIA 직원이 아니었다. 부즈 알렌 해밀턴이라는 민간회사의 직원이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업무 중 약 70%를 민간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2004년 이라크의 팔루자 전투에서 블랙워터라는 용병 기업이 악명을 떨친 적이 있다. 이라크 전투 요원의 3분의 2 가량이 이 같은 용병 기업의 민간요원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전쟁은 최고의 장사인 셈이다.

 

우리는 미국을 제대로 알고 있나   

미국을 안다는 건 세계를 아는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미국이 세계를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세계를 알아야 한국을 알 수 있다.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알아야 세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20세기 초 한국이 식민지가 된 것도, 해방이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것도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의 좋은 면만 보려 한다. 어두운 면에는 눈을 감거나 아예 모른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미국은 천사, 북한은 악마다. 왜 유독 한국은 미국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않는가? 심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한국은 미국이 만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나라도,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지켜준 나라도, 1950년대까지 먹여 살린 나라도 미국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이 학문적, 사상적으로 미국에 예속됐다는 점이다. 사회학자 김종영(경희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 당 미국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2012-13년 미국의 해외 유학생은 중국이 235597명으로 1, 인도가 96574명으로 2, 한국이 7627명으로 3위다. 인구 대비 유학생 수는 한국이 중국의 7.8, 인도의 17.5배에 이른다. (<지배 받는 지배자>, 돌베개, 2015)

 

정확한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 공무원 박사 학위자의 97%가 미국 학위자라는 통계도 있다. 같은 친미 국가인 일본만 해도 한국만큼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는다. 김종영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미국 유학생은 19568명으로 7위다.

 

미국은 자국이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일한다고 자처한다. 베트남과 전쟁을 벌일 때도,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도 '우리 의도는 좋았어(We meant well)'라고 말한다. 결과가 나빠서 그렇지, 원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수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미국 유학을 통해 이 같은 사상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에서 미국 비판은 거의 불가능하다. 비판을 해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남재희 전 장관이 자주 쓰는 표현으로 한국은 '미국이라는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노는 손오공'인 셈이다.

     

           

지난 20033,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훈련중인 미군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이 세계에서 대만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서구가 아닌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경험도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로막는다. 중남미는 물론이고 인도,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들은 모두 서구의 식민지 경험을 했다. 따라서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탈에 대한 뼈아픈 경험을 온몸으로 느낀다. 반면 한국은 미국에 의해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미국이 고마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론의 역할도 한몫했다. 제도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치 권력,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현상 유지에 봉사한다. 기득권에 포획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 단위로 현실을 전하는 언론이, 몇 십 년만에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한미동맹은 굳건해야 하고, 주한미군 철수는 절대 안 된다는 얘기만 줄곧 해댄다. 이러한 제도언론의 집중 포화가 국민으로 하여금 거대한 변화의 실상에 눈 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삼성의 결탁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한 언론사 간부가 삼성 미래전략실 부사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화제였다. '저희는 삼성의 눈으로 사회를 봅니다'라고 했다. 삼성 돈을 받다 보면 삼성의 눈으로 사회를 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은 아닐까?

 

미국과 함께 살아가려면    

미국을 제대로 알자는 것은 미국을 무작정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미국을 타도하자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중국과 베트남이 미국을 타도하려 했던가. 아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에 참여해서 자신의 정당한 생존권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중국은 1972, 베트남은 1995년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고, 이후 미국이 만든 세계 질서 속에서 경제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들어 북한이 미국과 벌이고 있는 비핵화 협상도 바로 중국, 베트남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과 함께 살아야 한다. 미국의 정당한 국익은 존중하되 부당한 요구는 거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사드 배치 등으로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역사의 긴 안목으로 보면 어떤 강대국도 영원할 수 없다. 19세기를 호령했던 대영제국도 100년 만에 쇠퇴했고 일본제국은 50년 만에 몰락했다. 미국도 쇠퇴의 길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 막강한 군사력이 초래할 전쟁의 위협이 특히 우려스럽다. 미국의 군사주의가 초래할 혼란과 전쟁의 위협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전쟁국가 미국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선도할 청사진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전쟁국가화, 그리고 동아시아 대립의 결정적 계기였다. 따라서 남북의 화해는 한반도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중대한 사업이다. 요컨대 세계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한반도가 관건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어진다. 첫 회는 미국 건국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 미국은 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했고, 멕시코전쟁으로 영토 확장을 마무리했으며, 스페인전쟁으로 아메리카를 넘어 세계로의 진출을 시작했다. 동아시아는 미국의 새로운 서부였다. 그리고 1차 대전을 통해 세계의 최대 채권국으로 등극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의 제국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먼로 독트린, 명백한 운명, 문호 개방, 민족 자결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2차 대전. 2차 대전으로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가에 등극한다. 미국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을 두고 '좋은 전쟁', '굿 워(Good War)'라고 한다. 독일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라는 완벽한 적을 무찔러 세계의 해방자가 되는 한편 전쟁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엔(UN)과 국제통화기금(IMF) 설립 등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구축한다.

 

세 번째는 한국전쟁.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영구 전쟁 국가'가 된다.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복원하기 위한 군사주의 프로젝트 NSC-68의 실행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은 우리 생각보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쟁이다. 베트남전쟁보다 훨씬 중요한 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보다 미국 역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한국전쟁이다.

 

네 번째는 1953년 이후 미국이 제3세계에 대해 벌인 반혁명 전쟁을 다룬다. 이란 비밀공작과 베트남전쟁, 쿠바 피그스만 침공이 그것이다. 1953~65년 미국의 군사력은 절대적 우위를 누린다. 군사력 2위인 소련에 비해 최대 40배에 달했다.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세계에 자국의 의지를 강요했다. 미국식 제도와 가치를 제3세계에 이식시키려 했다. 이게 군사주의다. 외교나 협상 대신 군사력을 앞세운다. 그러나 실패했다. 미국이 제대로 반성을 했더라면 군사주의를 포기할 소중한 기회였으나 미국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섯 번째, 1945~1975년 동아시아 30년 전쟁(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리고 미국의 주요 전장은 중동지역으로 옮겨간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과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계기였다. 아프가니스탄전쟁과 걸프전쟁이다. 특히 1979~1989년의 1차 아프간전쟁은 그 실상이 대중에게 가장 덜 알려진 전쟁이다. 미국의 전략이 미 지상군 병력을 동원한 재래식 전쟁에서 대리인을 앞세운 비밀전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프간전쟁은 겉으로는 소련의 침공에 대한 아프간의 저항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아랍의 무슬림 전사들을 동원해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전쟁이었다. 30억 달러의 자금이 투입된 미 중앙정보국(CIA) 역사상 최대의 비밀공작이었다. 미국과 사우디가 자금을, 미국이 무기를 공급하고 파키스탄 정보국(ISI)이 무슬림 전사의 훈련과 작전을 담당했다.

 

당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유도한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은 카터 대통령에게 "각하, 드디어 소련에게 그들의 베트남을 선사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미국이 베트남의 수렁에서 고전한 것처럼 소련을 아프간이란 수렁에 빠뜨렸다는 얘기다.

 

아프간전쟁은 소련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된다. 당시 소련은 도대체 적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 전쟁을 '유령의 전쟁(Ghost War)'라고 불렀다. 아프간전쟁은 오늘날 중동지역 혼란의 씨앗이 된다.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과격파 이슬람 무장세력이 이 전쟁을 통해 양성됐기 때문이다. 그 숫자는 대략 12만을 헤아린다.

 

이들은 냉전이 종식된 후 총부리를 미국으로 돌린다. 알 카에다, IS가 그들이다. 당시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는 미국의 아프간 공작에 대해 "당신들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있다"고 일갈했다.

 

1991년 걸프전쟁은 중동지역의 석유통제권을 위한 전쟁이었다. 또한 베트남전쟁 이후 지상군 동원을 꺼렸던 이른바 '베트남 증후군(Vietnam Syndrome)'을 극복한 전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지 못했던 네오콘은 이후 줄곧 이라크의 정권 교체를 줄기차게 요구한다.

 

여섯 번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 대중동전쟁을 다룬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뿐만 아니라 이란 이슬람정권까지 전복시켜 북아프리카에서 아프간, 파키스탄에 이르는 대중동지역을 미국의 통제권 아래 두고자 했다. 세계 에너지 자원의 보고를 통제함으로써 서유럽,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도 지배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2006년 가을이 되면 실패임이 분명해지고 네오콘은 퇴장한다.

 

미국은 194112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계기로 2차 대전에 뛰어들어 세계 패권을 장악했다. 반면 9.11테러를 빌미로 시작한 대중동전쟁은 미국의 쇠퇴를 재촉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미국의 쇠퇴에 대해 미국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자신의 금을 탕진했고, 이라크 침공으로 세계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헤게모니를 잃어버린 것이다.

 

한 예비역 대령의 편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조문 논란을 1216 경향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으로 많은 고초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장례식이 지난 11일 끝났지만 뒷말이 계속되고 있다. 주로 현역 군인들이 정권 눈치를 봐 한 사람도 빈소에 조문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서 열린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안장식에는 현역 준장인 이태명 육군 헌병 실장이 현역 장성 대표로 참석했다. 육군에서는 장성 출신이 사망하면 군 대표로 현역 장군이 돌아가며 조문하는 관행이 있다. 이 준장은 이 전 사령관이 육군 53사단장이었을 때 사단 헌병부대장을 지낸 인연이 있다.

 

이재수 전 사령관 시절 부하였던 현직 안보지원사령부 영관 장교도 여러명 조문했다고 한다. 예비역 장성 씨는 이 전 사령관 빈소에 현역 군인들이 정권 눈치를 봐서 조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하나의 매도라며 만약 정권 눈치를 보고 조문을 기피했다고 핑계를 댔다면 군인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군 정보당국이 조문자가 누구인지를 감시해서 현역들이 조문을 기피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안보지원사는 누가 (이 전 사령관 빈소에) 조문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 사안이라며 안보지원사는 과거 기무사가 하던 음성적 관행을 하는 조직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같은 조문 논란을 보고 최근 김 모 예비역 대령(육사 41)이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 10월 말 전역한 김 전 대령은 이 전 사령관 빈소에 현역 군인이 조문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일부 예비역들에 대해 질타했다. 보수·우익 정권시절 자신들이 현역 시절 했던 모습을 되새겨보라는 취지였다.

 

김 전 대령은 야전부대 연대장으로 근무하면서 2009529일 군 통수권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했던 일로 인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재수 전 사령관의 조문과 관련해 군인의 의리 등을 말하는 보수언론 기사를 보고 기무부대와 많은 악연을 가졌던 당사자로서 자신이 겪은 일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딸에게 보냈던 편지를 소개했다.


딸에게 보낸 편지

OO. 아빠가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우리 가족에게는 공지된 이 사실이 약간 문제가 되었다. ,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으로 아빠의 심정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국민장이 529일로 결정되었다. , 니가 523일 새벽 7시가 좀 못된 시각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한 사람을 데리고 네가 사는 곳에 와서 아빠를 만나려고 했다는 니 꿈 얘기를 듣고 집을 나서서 9시쯤에 부대 일직사령의 전화보고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등산중 추락, 사망 추정... 이 날의 충격은 지금껏 선명하다.

 

529일 아침에 사무실에 앉아서 대통령의 유해를 운구하는 차량이 봉하마을을 출발하여 서울 경복궁으로 이동하는 것을 시청하다가, 사단 회의에 소집되어 가기 전에 연대 참모중 인사과장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구해다오. 조문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으니 연대장 실에서 참배하겠다. 사진과 향불이면 될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부대에 돌아오니 연대장실에 영정과 촛불, 향이 준비되어 있었고, 작전과장이 나를 수행했다. 작전과장은 당번실 옆에 조그만 빈방이 있으니 그 곳으로 옮겨서 다른 사람들도 참배하고 조문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내가 대답하지 않았다. 난 혼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와 진리를 들고 세상에 나아갔다. 아빠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은 이 나라에서는 힘이 센 세력과 한 편이 되어야 좀 편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가 그렇고, 최근의 현대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힘이 센가, 누가 권력자의 편에 서 있는가? 이것이 판단의 기준이며, 힘이 센 자들이 힘 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힘 없는 편에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힘 든 것인가를 깨닫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로 진행된다.

 

,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는가? 자식들을 힘 센자의 편에 세워야만 그 자식들이 밥먹고 할말을 하고 살게 된다는 것을 수백년간 역사에서 보았고 수 십년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 뻔한 상식과 경험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 스스로 그 문제해결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육사에서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관생도 신조를 가르친다. 그런데 현대사에서 험난한 길을 걸은 사람들은 육사출신들에 대항하여 목숨걸고 싸우며 투옥되고 죽임을 당한 운동권 사람들이다. 세명의 대통령, 수십명의 장관과 총리를 배출하고, 장군의 대부분을 탄생시킨 육사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현실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비현실이며, 그 가치는 완전하게 전도되고 조롱당해왔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한명은 죽었고 두명은 감옥에 갔다. 그 들은 육사가 만든 이상이며 모두가 추구하는 모범 자체였다. , 그들의 불행한 삶이 군인들에게 어떤 자극을 주고 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2009529일 경복궁에서 거행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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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은 힘 센자의 편에 서려는 의지로 가득한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그 열망이 남보다 더한 사람들이라는 내 생각이다. 노무현의 존재를 보고서, 이제껏 힘센자들이 느낀 심정은 이질감이면서 불편함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모욕이었다. 군의 장군들이 전역하여 만드는 성우회는 집단적으로 노무현을 무시하고 대들었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당신들이 고작 했던 일이 남의 나라의 지휘를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것이냐며 부끄러운 줄 알라는 호통을 들었다.

 

실상, 우리 역사에서 국방비를 가장 많이 투입한 시기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이다. 그가 국방비를 줄이면서, 자주 국방을 주장했다면 안보의 속성을 무시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는 독립국가의 안보에는 감당해야 할 부담이 명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방향으로 군인들이 책임감을 가질 것을 명령한 군 통수권자였으며 국가 예산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그런 그를 존경하는 아빠는 그가 죽은 순간, 그를 애도하고 그에게 미안하고 그가 짊어졌던 그 무게를 덜어주지 못한 것 때문에 울었다.

 

국민장이 진행되던 날, 조기를 게양하라는 단순한 지시를 받았고 아빠 혼자서 그에게 절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나는 아빠처럼 그를 추모하고 싶은 부하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어서 아빠 사무실의 영정과 촛불을 당번실 옆으로 옮기고 조문하고자 하는 군인들에게 자율적인 참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공지토록 했다.

 

65일 오후에 사단장의 전화를 받았다. 사단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오후 410분쯤 사단장실에서 만나 나눈 대화는 대략 이런 것이다. 사단장은 연대장이 사단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정치적인 행위를 했다는 것이고···. , 노무현 대통령을 아주 존경하고 좋아하며 국민장을 치루는 날 그를 조문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사단장은 정치적 행위를 하려거든 군복을 벗고 하라고 했고···. 난 정치적인 행위에 대한 판단은 따져볼 것들이 있으며, 이런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더 이상 서로 할 말이 없었고···. 아빠의 행위는 육해공을 통틀어서 단 한군데만 일어난 일이며 청와대에도 보고 되었다고 한다.

 

OO. 이 나라에는 노무현이 수 천명이 더 필요하다

 

보수정권에서의 조문 댓가

김 전 대령은 노 전 대통령 조문 이후 군 생활은 불이익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특전사령부에도 근무했고, 미 중부사령부 파견근무도 했던 그는 해외파병 부대장 지원에서는 명백한 이유도 없이 탈락했다. 이후 보직도 받지 못하고 대기근무만 1년 가량 하다가 급기야 부대 회식자리에서 육사 후배이기도 한 기무부대장(중령)으로부터 넌 사상이 불순하다며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상관 폭행에다 군기문란에 해당하는 중대 사안이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킨 기무부대장을 군 수사기관에 고발했고, 이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간신히 보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현역 장군들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단 한명도 조문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그때는 왜 보수언론이 침묵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군인이 정치적 사안에 개입한게 문제지, 보수·우익에 충성하는 게 정치중립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고도 했다.

 

라멘·소바·캔디후쿠시마에서 온 가공식품

 

서울 시내의 한 일본 식품 전문점에 다양한 일본 음식들이 진열돼 있다. (위 사진의 제품들은 후쿠시마산이 아님.) / 백철 기자

 

저희는 안전하다고 믿어서 수입한 겁니다.”

한 일본 식품 수입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이 업체는 올해 두 차례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식품첨가물을 수입했다. 최근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라멘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우리는 지금껏 후쿠시마 물건을 수입했다고 항의를 받거나 한 적은 없다. 일본에서 방사능 검사를 받고 수입했고, 국내에서도 검사를 통과했기에 우리 제품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식품 어떻게 국내 들어오나

20139,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등 8개 현(후쿠시마, 군마, 토치기, 치바, 이바라키, 이와테, 아오모리)의 수산물 수입을 완전히 중지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대량 유출된 직후였다. 이미 후쿠시마 등 13개 도·27개 품목의 농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조치도 내려진 상황이었다.

 

가공식품의 경우 전면 수입 금지조치는 없었지만 2011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후부터는 국내 수입절차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201151,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및 주변 13개 도·현에서 난 식품을 수입하려면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방사능(요오드, 세슘) 검사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13개 도·현은 후쿠시마 등 8개 현에서 야마가타·니가타(이상 두 현은 후쿠시마현 서부), 가나가와·시즈오카·도쿄도(후쿠시마 남부 해안가), 나가노현을 더하고, 아오모리현을 제외한 것이다. 이 외 지역에서 만들어진 일본 식품들도 방사능이 오염되지 않은 지역에서 제조 및 가공되었음을 입증하는 내용의 증명서를 제출하게 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일본 식품은 각 지방 식약청에서 방사능 검사를 받는다. 그 전에 먼저 사람의 오감을 이용해 조사하는 관능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제품의 냄새, 색깔, 포장상태 등을 보고 해당 식품이 국내에 유통돼도 괜찮은지 판단하는 절차다. 수입업자가 신고한 제품의 성분과 제품의 실제 성분이 일치하는지 표본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관능검사가 끝나면 지방 식약청 건물 내에 있는 시험분석실에서 일본 식품에 대한 방사능 표본조사가 진행된다. 식약처는 일본 식품에 대해서는 전수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식품의 표본을 채취한 뒤 방사능검사기에 돌려 세슘과 요오드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일본에서 이미 방사능 검사를 마친 식품도 예외 없이 국내 검사절차를 밟는다. 그 결과는 식약처 홈페이지의 방사능 검사현황란에 업데이트된다.

 

우리나라의 방사능 기준치는 세슘의 경우 100베크렐, 요오드는 300베크렐이다. 베크렐은 방사성 물질이 1초에 한 번 붕괴하는 것을 표현한 단위다. 기준치를 넘은 경우에는 당연히 반송된다. 또한 기준치 미만이라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될 경우 식약처에서 실질적으로 국내 유통을 막고 있다.

 

식약처는 기준치 미만이라도 방사능이 검출될 경우 수입업체에 플루토늄, 스트론튬 등을 추가로 검사한 결과인 기타 핵종 검사증명서를 추가로 첨부케 한 뒤 다시 수입절차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기타 핵종 검사증명서를 요구받은 업자들 중 지금까지 증명서를 제출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미량이라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제품이 국내에 유통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전한 불안감, 수입되는 후쿠시마 식품

식약처의 철저한 일본 식품 검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낮아지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2014년부터 한국소비자연맹과 함께 식품 중 방사능에 관한 인식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에는 일본산 수산물을 사지 않았거나 구입 빈도가 줄었다는 응답이 64.4%였다. 지난해 조사결과에서는 이 비율이 85.2%까지 늘어났다.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규제에 대해서는 2014년 조사부터 90% 이상이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조사결과에서는 응답자의 92.5%가 수입규제 강화에 답했다.

 

가공식품에 대한 불신은 수산물보다는 적다. 지난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본산 화장품 및 가공식품을 구입하지 않거나, 구입 빈도를 줄였다는 응답은 70.4%로 수산물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보다는 약간 낮게 나왔다. 하지만 절대적으로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쿠시마 라멘 사태가 터졌다. 유통사인 홈플러스에서 후쿠시마 라멘을 매장에서 전량 철수시키면서 논란은 일단락된 모양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확인해본 결과 지금도 후쿠시마 등 8개 현에서 만들어진 가공식품들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라멘, 소바 등 일본의 대표 음식은 물론이고 스낵류, 캔디, 와사비, 식품첨가물 등도 있다. 베이컨 등 술안주, 파스타 소스 등 각종 양념류도 보인다.

 

라멘·소바·캔디후쿠시마에서 온 가공식품.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에는 수입식품의 정보를 검색하는 기능이 있다. 제조사 이름에 후쿠시마 및 8개 현의 이름을 넣어 봤다. 실제로 후쿠시마 및 8개 현에서 생산된 것만 추려도 지난 2년간 최소 342건의 가공식품 등이 국내에 들어왔다. 제조사명에 지명을 쓰지 않은 제품들까지 고려하면 342건보다 더 많은 수가 국내에 유통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화제가 된 후쿠오카 라멘의 정확한 명칭은 키타카타 라멘이다. 애초 후쿠시마현의 명물로 소문난 제품이었다. 그 외에도 참깨 드레싱, 밀크 캔디, 딸기향 식품첨가물 등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검색됐다.

 

수산물 수입이 완전 금지된 8개 현에서 만든 수산물 가공식품도 다수 눈에 들어왔다. 수산물 가공식품 수입 횟수가 가장 많은 곳은 후쿠시마현 북쪽의 이와테현이다. 이와테현에서 만든 연어 후레이크, 꽁치 조림, 정어리 데리야키 등이 국경을 넘어 국내에 유통됐다. 후쿠시마현 남쪽인 이바라키현에서는 냉동 간장절임 연어알 제품이 국내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먼저 수출을 금지한 품목도 공교롭게도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이다. 지난해 6월부터 일본은 4차례에 걸쳐 자국 상품의 출하를 제한했다. 출하가 제한된 제품의 생산지는 이와테현, 니가타현, 미야기현, 군마현이다. 모두 후쿠시마와 맞닿은 곳들이다.

 

일본 방사능 위험 지금은 줄었나

후쿠시마 등 8개 현은 2011년부터 방사능 피해를 가장 크게 본 것으로 손꼽혀 왔다. 이바라키·치바현은 후쿠시마 남부 해안가, 미야기·이와테·아오모리현은 후쿠시마 북부 해안가다.

 

후쿠시마현 남서쪽의 토치기현과 군마현은 내륙지역이라 과거에 민물고기만 한국에 수출한 적이 있다. 201111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방사성 물질 오염지도에 따르면, 사고 직후 방사성 물질이 가장 많이 퍼져나간 곳이 토치기·군마현이었다.

 

7년 전에 비해서는 방사능 오염도가 많이 줄어들긴 했다. 올해 12월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방사성 지도에 따르면 핵발전소 사고가 난 후쿠시마현 오쿠마정의 경우 아직도 시간당 8마이크로시버트에 해당하는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 국내 피폭 기준치는 연간 1밀리시버트(1000마이크로시버트). 이를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대략 0.2마이크로시버트가 나온다. 다만 오쿠마정에서 30이상 벗어난 지역은 시간당 방사선량이 0.2마이크로시버트를 밑도는 곳이 많다.

 

시민단체에서는 일본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간사는 일본 정부의 발표를 우리 시민들이 그대로 믿을 이유가 없다. 후쿠시마와 그 주변 지역은 산악지역이 많기 때문에 제염(방사능 오염물질 제거)이 완전히 됐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의 한 실장급 인사는 여전히 후쿠시마 일대가 방사능으로 오염됐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일본은 토양의 특성 등으로 인해 우리보다 자연 방사성이 낮게 나온다. 그런데 후쿠시마현에서 아직도 피폭기준치 방사선량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해당 지역이 오염됐다는 것을 나타낸다일본 정부에서 열심히 제염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사고가 났을 때보다 방사선량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2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계무역기구(WTO)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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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식품 공포심은 왜

원자력 전문가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두 번에 걸쳐 방사능 테스트를 거치는 만큼 일본 식품에 대해 막연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원자력 학자는 후쿠시마산 라멘 사태에 대해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냐보다 중요한 건 어떤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검출됐느냐다라며 두 번이나 방사성 검출이 안된 것으로 판명난 제품이면 안심해도 되는데 후쿠시마라는 단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승숙 여성원자력전문인협회 회장은 전문가들이 사실전달에만 그쳐서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의 인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팩트를 전달하겠다고 열심히 활동한다 해도 오히려 반감만 얻을 수 있다.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전문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특히 방사능 문제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의 신뢰도가 떨어진 것이 문제라고 봤다. 이 교수는 핵마피아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국내 원자력 최고 전문가들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테스트한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원전 비리가 나오고, 원전사업과 연결된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하니 신뢰도가 떨어진다원전 마피아들은 윤리성이 없는 집단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박혀 있다 보니 전문가들의 정보가 권위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전문가들이 잃어버린 신뢰성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공개로 투명성을 높이자

한편, 시민단체에서는 지금보다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경숙 간사는 지금은 원산지 표시가 국가명만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 있고 지역명은 의무가 아니다. 일본 식품에 대해서만큼은 현 단위까지 원산지 표시를 하는 등 보다 자세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에서 국내에 수입되는 모든 수입식품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또한 식약처 홈페이지에는 수입식품 방사능 검사현황이 매일 업데이트된다. 방사능 검사현황에서는 일본의 어떤 현에서 만든 식품을 검사했는지 나오지만 업체명과 상품명은 나오지 않는다. 식약처와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만 들여다봐서는 소비자가 내가 산 일본 식품의 정확한 출처까지 알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식품 중 방사능에 관한 인식조사도 식약처가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은 자료다. 지난해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45.5%후쿠시마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일본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답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을 통해 내용의 일부가 공개되거나, 인식조사에 관여한 한 전문가가 학회 등에서 발표하면서 그 내용이 알려진 게 전부다.

 

특히나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 수입 금지조치에 대해 일본 정부로부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당한 상태다. 환경단체, 원자력 전문가 너나할 것 없이 우리 측의 WTO 패소를 우려하고 있다. 지금도 일본 식품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WTO 패소로 인해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이 들어오면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올해 2, 1심에서 일본 정부에 패소했다. 이덕환 교수는 우리가 패소했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수산물 수입 금지조치가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정부에만 요구를 해서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자유무역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무역규제를 하면 할수록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뿐이라는 얘기다. 대신 이 교수는 수입업자를 상대로 한 소비자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국제기준에 맞게 무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 식품 수입을 원천금지할 수가 없다. 하지만 수입업체가 후쿠시마 등 몇 개 현의 물건을 수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간섭할 수는 없다소비자들이 수입업자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원산지를 속여서 수입하는 업자를 퇴출시킨다면 소비자의 불안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산 수산물 WTO, 첫 단추를 잘못뀄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에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 재개를 중단하고 방사능 오염 폐기물 수입을 금지시키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산 수입식품은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 등장했다. 식품뿐 아니라 방사능 오염 고철, 폐기물, 시멘트 등의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7년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첫 단추를 잘못 뀄기 때문이다.

 

의외로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과 2012년에는 식품보다는 폐기물과 화물이 논란이 됐다. 20125월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이 일본에서 수입한 석탄재에서 최소 검출치 한계를 초과한 세슘이 검출됐고,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재활용 원료로 일본에서 수입한 폐배터리와 폐플라스틱에서 한계치 이상의 세슘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은수미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은 일본에서 수입한 폐플라스틱 등에서 최소 한계를 초과한 세슘-134와 세슘-137 등이 검출됐다고 지적했다. 박원석 당시 정의당 의원은 후쿠시마 원전 반경 250이내 지역에서 국내로 반입된 컨테이너 및 벌크화물 336713건 중 3.7%만 관세청의 방사능 검사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일본산 식품에 대한 논란이 적었던 이유는 일본이 자체적으로 후쿠시마와 인근 몇 개 현에서 생산된 농산물 27개 품목에 대해 출하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산물은 예외여서 계속 수입됐다.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당시 중국, 러시아, 대만 등 많은 나라가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지만 한국 정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농산물도 일본이 출하하지 않은 것이지 한국 정부가 막은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일본이 막았지 한국은 한 게 없다?

일본산 식품에 대한 논의는 2013년부터 국회에서 활발해졌다. 20138월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해양 오염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정부는 96임시특별조치를 시행했다.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 생산하는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였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전수검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쿠시마를 비롯한 인근 현의 모든 식품을 잠정적으로 수입 중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당시 무소속 의원은 원전사고 후 식약처가 단 한 차례도 일본 현지실사를 하지 않았다며 식약관 파견과 현지실사를 주문했다.

 

일본산 식품을 원산지를 속여 수입하려다 적발된 경우도 있다. 201114030만원어치의 일본산 명태를 중국산으로 둔갑시켜 수입하려 한 게 대표적이다. 김현미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8월까지 15349만원어치 일본산 식품을 국내산, 중국산 등으로 원산지를 속여 수입하려다 적발됐다. 이런 지적에도 후쿠시마와 인근 현에서 생산된 식품과 수산물 유입은 꾸준히 증가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후쿠시마산 식품은 원전사고 직후인 2012년에는 전년 대비 32.6% 줄었으나 201521.5%, 201652.1% 증가했다. 2011년 수입량 급감도 일본의 출하 금지 영향이 크다.

 

후쿠시마뿐 아니라 일본산 식품 수입 전체규모도 증가했다. 남인순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원전사고 이후 2017년까지 일본산 가공식품과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 등의 수입 추이는 201275099톤에서 2017164916톤으로 증가했다. 6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별다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손쓰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20135, 한국의 수입 규제조치가 위생 및 식품위생(SPS) 협정위반이라며 한국 정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20182월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방사능 측정장비를 이용해 수산물 방사능을 검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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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정부 대응 촉구해야

WTO는 한국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봤다. 후쿠시마 인근 8개현 수산물 수입 금지와 일본산 식품에 기타 핵종물질 추가 요구 등의 목적과 위험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설명을 듣지 못했고 한국 민간전문가위원회는 후쿠시마 인근 해저토와 심층수 채취 조사를 하지 않았으며 한국 정부가 20149월 수입 규제 검토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활동 및 기록이 없고 검토 중단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송기호 민주당 통상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꾸려진 민간전문가위원회가 방사능 위험 보고서 작성이라는 최종 절차를 끝내지 않고 해체된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WTO민간전문가위원회는 한국 정부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았을 뿐이다. 송 부위원장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특별임시조치를 대외적으로도 임시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한국은 해당 조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임시가 아닌 통상의 조치를 해야 했다. 통상조치를 하기 위해서는 WTO가 규정하는 위험평가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위험평가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통상조치도 못 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WTO에서 패소한 직후인 4월 상소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지만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이기도 해 비공개가 원칙이다. 때문에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국회의원도 경과보고나 정보보고를 받아볼 수 없다.

 

이에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간사는 정부가 바뀌었지만 이미 이전 정부에서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에 지금 바로잡기가 더 힘들어졌다. 민간전문가위원회가 일본 현지 조사만 제대로 했어도 이 상황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7년째 같은 걸 요구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남인순 의원실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한국 국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들었다“1차에서 패소했기 때문에 상황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자꾸 의원들이 발언을 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에 계속 대응을 주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TO2심제로 이번 상소가 최종 판결이다. 최종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국 정부가 설정한 조치가 유지된다. 만약 한국이 WTO에서 최종 패소하게 된다면 후쿠시마 인근 8개현의 수산물이 내년부터 수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최종 패소하더라도 일본산 모든 식품이 전면 수입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일본 식품 어디서 왔나 찾는 법 알려드립니다

     

   

한 일본음식 전문점의 스낵 코너 /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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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서울 시내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 들렀다. 수입식품 코너에서 후쿠시마현에서 만든 가공식품은 찾을 수 없었지만, 후쿠시마 주변 현에서 만든 물건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식약처는 후쿠시마 및 주변 8개현(후쿠시마, 치바, 군마, 이바라키, 토치기, 미야기, 이와테, 아오모리)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중단하고 있다. 현장의 홈플러스 직원도 일본산이라는 것만 알지 어느 현에서 나온 것까지는 저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공장 위치 다를 경우 구글 지도로 확인       

식약처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식품의 경우 수입신고서에 현별로 표기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식품위생법에서는 원산지 국가명만 표기하도록 되어 있기에 소비자가 해당 식품이 어느 현에서 왔는지 알기는 어렵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한자만 읽을 수 있다면 일본 식품이 어느 현에서 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제품마다 구체적인 방식은 다르지만 일본 식품은 일반적으로 제품 뒷면에 제조자(製造者)를 표기한다. 제조자의 주소와 옆의 표를 대조해보면 해당 식품이 후쿠시마 및 주변 현에서 온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사진1>처럼 제조자의 본사와 제조공장의 위치가 다른 경우도 있다. 이 돈가스 소스의 경우 제조사의 위치는 도쿄다. 하지만 제조소(製造所)는 군마현으로 나온다. 군마현은 후쿠시마현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한국에 지사가 있는 일본 회사의 제품은 일본어로 표기된 정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제품에 표기된 정보만으로는 어느 현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 이럴 때는 한글표시정보에 나온 제조원을 직접 검색해야 한다. <사진2>의 혼다시(조미료) 제품은 제조원이 아지노모토사의 가와사키 공장이다. 제조원의 영문명을 구글에 검색하면 공장의 주소가 나온다. 이 혼다시는 도쿄 남쪽의 가나가와 현에서 만들어졌다.

             

식약처의 방사능 조사 결과 확인하기         

식약처는 인터넷을 통해 모든 수입식품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방사능 검사 결과도 매일 올리고 있다. 다만 소비자가 쉽게 찾기 어려울 뿐이다. 모든 수입식품에 대한 정보는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foodsafetykorea.go.kr)에서 볼 수 있다. 전문정보 탭에서 수입식품 검색을 고르면 국내에 수입된 모든 수입식품을 볼 수 있는 페이지가 나온다. 제조국가에 일본을 입력하면 최근 1년간 국내에 수입된 모든 일본 식품의 정보를 볼 수 있다.

 

왼쪽부터 돈가스 소스, 혼다시, 야키소바 면. / 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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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일본 식품의 경우 한글표시정보의 제조원이 영문이 아닌 한글로 적힌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한글표시정보에 나온 식품명을 식품안전나라에서 검색한다. <사진3>의 야키소바면의 경우 제조원이 한글로 이츠키 식품이라고 적혀 있다. 식품안전나라에서 야키소바면을 검색하면 이츠키 식품의 영문명이 ‘ITSUKI FOODS’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구글에 검색하면 이츠키 식품의 홈페이지가 나온다.

 

영문 홈페이지가 있는 경우 ‘contact’란에 사무실과 공장의 위치가 나온다. 영문 홈페이지가 없는 경우 홈페이지 하단 또는 회사정보’(?社情報), ‘지도’(?) 탭에 회사 정보가 나온다. 이츠키 식품의 경우 지도란에 회사와 공장 주소가 나온다. 이츠키 식품의 공장은 규슈의 구마모토현 동남부에 위치해 있다.

 

업체의 위치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거리도 알 수 있다. 아지노모토사의 가와사키 공장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구글 지도에 들어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입력한다. 도착지에는 위에서 검색한 아지노모토사 공장의 주소를 입력한다. 자동차로는 273가 떨어져 있다. 직선거리를 알고 싶으면 아지노모토 공장 위에 우클릭을 한 뒤 거리 측정을 누른다. 그리고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좌클릭을 하면 직선거리로 229가 떨어져 있다고 나온다.

 

식약처는 일본 식품에 대한 방사능 조사 결과를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식품안전나라가 아닌 식약처 홈페이지의 정책정보란의 방사능 검사현황을 누르면 수입식품의 방사능 검사 현황이 매일 업데이트되어 있다. 수산물, 축산물 이외 식품의 방사능 검사 현황은 일본산 수입식품 방사능 검사현황파일에 올라와 있다.

 

1210일자 파일을 확인해 봤다. 이날 식약처는 1건의 농산물, 69건의 가공식품 등을 검사했다. 후쿠시마현에서 만든 제품은 없었지만, 치바현에서 만든 과자, 이바라키현에서 만든 혼합제제, 아오모리현의 청주, 토치기현의 소스 등이 방사능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다만 해당 식품의 상품명, 제조업체 등은 알 수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선 부족하게 느끼실 수 있지만, 저희로서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식품안전나라에서는 수입식품의 원재료 정보까지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벼랑 끝 사회

지난 8일 강릉선 KTX 탈선 사고가 났다.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 15층짜리 대종빌딩이 안전 최하등급의 붕괴 위험 건물로 확인됐다. 같은 날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0대 청년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그다음 날 가락동 헬리오시티 내 혁신학교 지정 관련 주민간담회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한 주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나흘 사이 벌어진 이 사건은 각각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유로 발생한 상호 독립된 사건이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완전히 고립된 사건은 아니다. KTX 탈선 사고는 그전 3주간 발생한 10건의 열차 사고를 대표한다. 삼성동 빌딩 사태는 6개월 전 용산 상가건물 붕괴의 다른 얼굴이다. 태안 사고는 2년 전 구의역에서 숨진 19살 청년의 죽음을 재현한다. 학력을 저하시키고 결국 아파트값도 떨어뜨리는 혁신학교를 막겠다고 교육감을 폭행한 것은 지난해 강서구 장애인학교를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의 폭력적 행위와 같은 동기를 갖는다.

 

사실 이 사건들은 수평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우연이 이렇게 반복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네 사건 모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내는 것이 곧 선이라는, 이 사회에 확고히 뿌리박힌 물질주의적 도덕률을 기반으로 한다. 적은 비용으로 위험과 불안을 전가할 수 있다면, 위험은 굳이 피해야 할 나쁜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죽음의 공장이 계속 가동되는 이유이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던 15층 빌딩이 실제로는 훼손된 기둥으로 위태롭게 지탱돼왔던 것과 같이 한국 사회도 탈선·균열·죽음이라는 부실한 기둥에 기대어 버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네 사건은 하나의 사건이다. 정권교체는 사회구조 문제를 드러내는 방법만 바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