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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당한거 복수하나…간부들이여 내 저녁 빼앗지마”1028 한겨레
저녁 있는 삶] ④ 야근 강요하는 사회
해마다 취업 준비생 수십만명이 줄을 서는 대기업 빌딩들은 날마다 불야성이다. 텔레비전 광고에는 불 꺼지지 않는 사무실에서 강장제를 마셔가며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 ‘건강하게’ 그려진다. ‘초장기 심야노동’에 시달리는 30대 대기업 사원들(입사 8년차 1명, 4년차 2명)의 인터뷰 내용을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오너→이사→부장 ‘눈치 피라미드’에
오늘도 연쇄 살인적 야근
팀장 ‘윗분들 몰라?’ 한마디에
한가지 기획안 최소 4종류 작성
대기업 경영기획실에서 6년째 일하는 서영표(34·가명)씨는 회사가 오직 ‘오너’에 충성하는 ‘눈칫밥 조직’이라는 것을 입사 3년 만에 깨우쳤다. 입사 초기 에이(A)급 인재로 인정받아 대리급 이상만 간다는 핵심 부서에 발령받았지만 출근은 ‘칼’ 같이 해도 퇴근시간은 기약하기 어려운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비(B)급 사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개인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회사에 환멸을 느낀 그는 이직 계획까지 세웠다.
# 플랜-디(D)
팀장: “영표씨, 이번 신제품 판매 전략건 말이야, 플랜-디까지 만들어 놓지?”
영표: “팀장님, 플랜-에이가 유력하다고 들었는데 이 밤중에 플랜-비도 아니고 플랜-디까지는….”
팀장: “윗분들 몰라? 만약을 대비해야지, 만약을. 부장님 결재 중에 먼저 퇴근할 것도 아니잖아. 시간도 남는데.”
자정을 넘기면서 ‘퇴근’을 기다리다 또 날벼락이다. 내 근무시간을 계산해 본다. 새벽 출근시각은 명확한데 퇴근시각은 들쭉날쭉이라 계산이 쉽지 않다. 1주일에 한 번은 새벽 2시를 넘기고, 주말에도 출근한다. 확실한 건 1주일에 40시간 노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이 내게는 무용하다는 사실이다. 소처럼 일해도 그게 나와 회사를 키우는 믿음이 있을 때는 견딜 만했다. 생산직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 문제라는 기사를 볼 때도 내 얘기는 아니라고 자위했다. 하지만 내 노동시간이 회사 ‘오너’나 ‘윗분’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쓰이고 있다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자, 내가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게 됐다.
‘오너’에게는 ‘비정규직’에 불과한 임원들은 하루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임원들 눈에 들려는 부장·과장·팀장도 마찬가지다. 노동시간의 많은 부분이 ‘문서 이동’에 소비된다. 각 팀장들이 올린 플랜-에이를 과장이 취합해 부장에게 보고하면, 부장은 임원들에게 전달하고, 임원들이 이를 승인하고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밤이고 새벽이고 서로가 서로를 기다려야 한다. 팀장·과장·부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플랜-비·시·디를 만들라는 무가치한 지시로 무료한 시간을 때운다. 새벽까지 ‘이 짓’을 하고 있으면 욕설이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른다. 에이급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임원들은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고 들어온 최고 인재들이 디급 기획안을 만드는 사이 디급 사원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피해자다. 이사는 오너의 눈치를, 부장은 이사의 눈치를, 팀장은 부장의 눈치를, 사원은 팀장의 눈치를 보는 이 거대한 ‘눈칫밥 피라미드’에서는 오너의 작은 손짓만으로 무수한 ‘야근 피해자’가 양산된다. 나 역시 ‘매장 안에 얼음으로 된 구조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팀장의 농담 한마디에 야근을 자처해 ‘혹서기 매장 관리 대책’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정식으로 보고하면 ‘미친놈’ 소리 듣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번 말씀하신 것”을 위해 보고서를 쓴다. 팀장은 내가 뛰어난 보고서를 쓸 때보다 자신의 지질한 농담 한 마디를 기억할 때 기분이 더 좋아보인다.
# 몰락
팀장: “영표씨, 고생이 많아. ‘불금’인데 술 한잔 하지.”
영표: “말씀은 감사한데 월요일 보고 자료를 만들어야 해서요.”
팀장: “쉬엄쉬엄해. 월요일 자료는 주말에 만들면 되지. 내일 점심 먹고 천천히 나와서 마무리해. 나도 나올 거니까.”
퇴근은 둘째 치고 꼭 법으로 정했으면 하는 게 하나 있다. ‘기러기 아빠’들은 보직을 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을 필리핀에 유학 보낸 팀장은 집에 갈 이유가 없다. 집엔 아무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주고, 저녁도 함께 먹어주고, 주말에 등산도 가주는 사원들이 회사에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에 임원 보고가 몰려 금요일은 업무가 많다. 그런데도 팀장은 ‘불금’을 외치며 회식을 강행한다. 토요일에 개인적으로 할 일이 없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40~50대 간부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회사를 집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꽤 된다. “난 열심히 일하고 새벽에 들어가는 게 제일 좋아”라는 부장의 말은 “가족들은 내가 일찍 들어가는 걸 별로 반기지 않아”라는 말로 들린다.
간부들, 사원 주말까지 ‘압류’하지만
초과근로수당 신청은 꿈도 못꿔
A급 사원은 효율적 업무처리 접고
B급 사원 되기로 결심했다
젊은 시절 간부들한테서 시간을 ‘도둑질’ 당하느라 가족에게서 소외된 이들은 보복이라도 하듯 사원들의 시간을 빼앗는다. 일을 하는 건지, 팀장의 벗이 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회사에 있다 보면 가족들과의 편한 시간은 1년 내내 손에 꼽을 정도가 된다. 아버지가 자동차 사고로 입원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나는 일을 했다. 결혼식이 코앞이지만 청첩장을 3장밖에 못 돌렸다. ‘나쁜 남자’보다 더 나쁜 게 ‘바쁜 남자’라는데, 요즘은 ‘혼인신고는 천천히 하자’는 여자 친구가 나중에 이혼 가능성까지 생각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친구들과의 편한 술자리도 명절처럼 띄엄띄엄 찾아온다. 같은 대학을 나와 비슷한 규모의 회사에 취직한 친구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밤 9시에는 끝날 테니 ‘치맥’이나 먹자고 약속하면 밤 10시가 되어서야 한명씩 모여든다. 술은 좋아하는데 퇴근이 늦은 여자 팀원은 늦은 새벽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우리들 모두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순간 이런 ‘몰락’을 상상이나 했을까.
# 덫
과장: “백 팀장, 요즘 일이 없나봐?”
팀장: “무슨 말씀이신지….”
과장: “오늘 부서장 회의에서 우리 부서 사무실 불이 가장 먼저 꺼진다던데? 어쩔 거야?”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한 부서장은 징계 대상이라도 된 것처럼 팀장을 쪼아댄다. 인사부서는 출퇴근 시간 입력 시스템을 이용해 사원들의 평균 퇴근시간과 평균 야근시간을 분석한다. 사원들이 경쟁 기업을 압도할 수 있는 창의적 기획안을 작성하는 대신 야근시간에만 신경 쓰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건만, 팀장도 부장도 오너도 우리 회사의 실적이 항상 목표치에 미달하는 진짜 이유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밤 9시가 넘어서도 사내 메신저에 로그인 상태인 수백명의 직원들이 있지만 이들 가운데 누구도 초과근로수당을 신청하지 않는다. 어느 부서의 누가 철없이 초과근로수당을 신청했다며 “그만한 연봉 받으면 됐지 수당을 또 신청하다니 염치가 없다”고 욕하는 팀장 옆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지식’이다. 회사는 1년치 봉급을 주고 1년치 노동을 산다. 1일이나 1주일 단위의 법정 노동시간은 ‘연봉’이라는 말 앞에 무력하다. 입사 초기 말만으로도 부자가 된 것 같았던 ‘연봉 ○천만원’은 결국 덫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난 에이급 인재였다. 입사 2년 만에 핵심 부서로 발령도 났다. 출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며 동기들의 부러움도 샀다. 하지만 업무를 일찍 처리하고 퇴근하는 나에게 “일이 없냐”고 묻는 팀장의 짜증난 얼굴이 반복되면서 지독한 정체가 시작됐다. 일을 최대한 오래, 비효율적으로 하는 비급 사원이 되기로 결정한 것은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쳇바퀴 같은 날들을 살다 보면 고3 수험생 시절이 생각난다. 군 생활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때는 반복되는 생활을 끝낼 수 있는 ‘디-데이’가 있었다. 월급으로 먹고사는 내게는 더 이상 이런 생활을 끝장낼 수 있는 디-데이가 없다.
임금노동자 45% 7시 넘어 퇴근”…인천, 밤 9시에도 20만 명 야근 중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국가별 연간 노동시간에서 항상 ‘최상위권’에 속한다. 지난해에도 1인당 216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 통계에서도 드러나지 않던 한국 사회 장시간 노동의 민낯이 드러났다.
<한겨레>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의 노동시간조사분석팀(서울대 사회학 박사과정 김보성·이상직)이 ‘2013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통계청)에 나타난 주당 노동시간을 ‘나인투식스’(9시 출근 6시 퇴근)라는 일반적 노동 패턴에 대입해 환산한 결과, ‘불야성’을 이루는 장시간 야근 실태가 확인됐다.
전체 직장인(임금노동자) 1743만3454명 중 882만2865명(45.7%)은 저녁 7시 전에 퇴근할 수 없었다. 밤 9시 이후 퇴근자는 260만6816명(15%)에 이르는데, 밤 9시 이후 퇴근은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1시간 이상을 일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주당 연장근로 시간이 15시간에 달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장근로 시간(12시간)을 훌쩍 넘는다.
야근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인천으로, 이 지역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 106만4370명 가운데 20만3447명(19.1%)이 밤 9시까지 퇴근을 하지 못했다. 인천은 밤 10시(15만9587명, 15%), 밤 11시(7만4845명, 7%), 밤 12시(5만6238명, 5.3%) 야근 인구 비율도 전국 1위다. 인천에 이어 밤 9시 야근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은 충남(13만3793명, 18.4%), 대구(14만2101명, 17.4%), 경북(12만3100명, 15.3%), 경기(66만8603명, 15.2%) 차례였다.
야근 인구 비율이 높은 것은 이런 지역들에 위치한 국가산업단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인천 남동공단, 대구 성서공단, 경북 구미공단, 경기 반월·시화 공단 등은 완성차 업체의 협력업체 등 영세중소사업장이 밀집해 있다. 연장·휴일근로 등에 대한 관리·감독이 느슨하다는 지적을 받는 곳들이다.
심야 근무가 만연하면서 근로기준법이 허용하는 주당 최장 노동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이들은 전체 직장인의 17.2%(285만363명)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연장근로 시간을 12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연구원인 김재광 노무사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대책을 쏟아내면서 노동시간을 연장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껍데기뿐인 ‘8시간 노동’을 실질적으로 달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소득 부모들, 어쩔 수 없이 ‘밤까지 노동’1012
초등학교 5학년 첫째와 2학년 둘째, 돌이 갓 지난 셋째까지. 다둥이 아빠 박창민(45·가명)씨는 저녁 시간에 ‘투잡’을 뛴다. 조경회사 현장감독으로 일하면서 받는 월급 200만원은 다섯 식구 살림에 턱없이 부족하다.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 뒤 밤 9시부터 자정까지 대리운전을 한다. 그렇게 하루 15시간을 일하고 집에서는 잠만 잔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대리운전 수입이 월 100만원에서 반토막이 났다. 피겨 선수가 되고 싶다는 첫째의 꿈은 못 이뤄줄 것 같다”고 했다.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저소득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초과근로를 하며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려면 ‘임금 현실화’부터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한국전력 직원들 중에는 초과근로를 통해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단전원으로 업무를 바꾸는 아빠들이 적지 않다. 송태수(45·가명)씨는 6년 전 전기요금 고지서 발송과 전기계량기 검침 업무를 하다가 전기를 끊는 단전 업무로 갈아탔다. 송씨는 일주일에 두 차례 밤 11시까지 초과근로를 하고 많게는 월 100여만원을 더 받는다. 그는 “월 200만원으로는 먹고 살 수만 있지 큰아이 언어치료 비용을 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고용전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전일제 노동자 임금 중간값의 3분의 2 이하)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25.1%로 미국과 함께 가장 높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동자 3717명을 조사한 ‘노동환경실태 결과 보고서’(2013)를 보면, 이들의 평균 임금은 196.5만원에 불과하다. 박준도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은 보고서에서 “월 180만원을 받으려면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200만원을 벌기 위해선 밤늦게까지, 휴일에도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조사에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노동자는 10.5%(265명)에 달했다
맞벌이 느는데…‘육아 보장 않는 사회’ 그대로 1013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맞벌이 가구 수는 배우자가 있는 1178만가구 중 505만가구(42.9%)에 달했다. 맞벌이가 절반 가까이나 되지만, 배우자 한명에게 가사와 육아를 전적으로 맡기는 ‘외벌이 시대’의 패러다임은 변화가 없다. 회사에 오래 머물러야 ‘인정’받는 장시간 노동은 전형적인 외벌이 패러다임이다. 이는 주로 ‘야근’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부부가 동시에 야근할 경우, 저녁에 어린 자녀들이 방치된다는 점에서 야근은 맞벌이 부부의 ‘주적’이다. 이 때문에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할 나이지만 영유아 자녀가 많은 30대 가구의 맞벌이 비율(40.6%)은 전체 비율(42.9%)보다 낮다.
아빠의 경우
‘과거’에 머물러 있는 회사에서 ‘현재’를 사는 맞벌이 아빠들은 ‘미래’를 생각하면 퇴근이 두렵다. 어쩌다 ‘이른 퇴근’을 하려고 해도 ‘진급할 생각이 없나’, ‘여유가 많은가’라는 주변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운사에 다니는 명철(가명·35)씨는 “아내가 야근을 뺄 수 없을 때는 내가 일찍 퇴근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그래, 너는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식의 비아냥에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고 했다.
수훈(가명·36)씨는 지난해 동기들이 과장으로 올라갈 때 혼자 ‘유급’됐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과장이 상무 눈에 들어 탄탄대로를 달리는 걸 보면, 5살 딸을 씻기고 재우는 것만이라도 하고 싶어 저녁 8시까지만 야근을 한 내가 잘못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박봉에 고용 사정이 열악한 이들만 머리를 싸매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 심한 전문직들도 고민의 수위는 비슷하다. 6살·3살 아이를 둔 종합병원 의사 서준(가명·39)씨는 퇴근이 늦는 아내 대신 일찍 퇴근할 때마다 진료과장 등 선배 의사들한테서 모멸감을 느껴야 한다. 서준씨의 아내 역시 산부인과 의사다. 산모의 상황에 따라 퇴근 시간이 엉망으로 꼬인다. “의사들의 경우 과장 직급 정도 되면 젊었을 때부터 아내가 전업주부를 하며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회식이나 행사에 빠질 때마다 직장에서 내 위치가 사라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한 공기업에서는 보다 못한 어느 직원의 아내가 ‘우리 남편 야근 좀 그만 시키라’는 글을 고객게시판에 올렸는데, 그 남편을 색출해 징계한 일도 있었다. 이 기업에 다니는 한 직원은 “이 직원만 아내 단속도 못하는 ‘진상’이 됐다”고 했다.
■ 엄마의 경우
5살 아이를 키우는 최선민(가명·33)씨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다. 주말에만 엄마·아빠 얼굴을 보는 아이는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등 발달이 더뎠다. 그는 “야근 대신 집에서 일을 하겠다고 했더니 50대 남자 팀장이 ‘나는 집에서 한 일은 일로 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최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임신 전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열정을 쏟았던 회사였기에 ‘배신감’은 더 컸다.
3살 난 아이를 둔 박영미(가명·35)씨는 “회사에서 유일한 여자 간부는 애를 시댁에 맡겨놓고 한달에 한번 보러 간다. 남자들은 그 간부를 놓고 ‘독하다’고 욕하면서도, 자기들은 팀 회의를 저녁 7시에 잡고 워크숍은 금·토 1박2일로 잡는다. 아이를 봐주는 친정엄마가 아프기라도 하면 당장 회사를 그만둬야 할 판”이라고 했다.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는 직장에서 맞벌이 엄마는 늘 퇴출의 기로에 선다. 전문직인 민영(가명·39)씨는 “몇 번이고 그만두려고 했었다. 다행히 시부모님이 도와주셔서 버티고 있다. 주변 동료는 늦게까지 일하다 임신 6개월째에 유산을 했다. 그 동료는 ‘애 낳지 말고 살라’는 상사의 말에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고 씁쓸해했다.
■ 수요일만 가정의 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연구원인 김재광 노무사는 “1970~80년대 산업화 시절의 성장모델인 장시간 노동 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노동자 개인의 삶과 가족 복지의 향상을 목표로 노동시간 단축 논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하는 곳이 많다. 왜 수요일만 가정의 날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노동시간 단축을 어떤 특정한 날을 만들어 접근하면 아빠는 그날만 가족과 함께 하고 다른 날은 엄마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둘째 갖고 싶은데, 남편은 오늘도 야근”1016
직원들이 회사에서 야근을 하느라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건물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기 김포 새도시에 사는 안홍연(37·가명)씨는 지난해 결혼 6년 만에 어렵게 첫아이를 얻었다. 더 늦기 전에 둘째를 낳고 싶지만 밤 11시가 넘어 퇴근하는 남편과 부부관계를 갖는 게 쉽지 않다. 배란일을 따져도 한달에 한두번 관계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한겨레>가 김포새도시 주부들이 모이는 포털사이트 카페의 30~40대 전업주부 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절반 가까이가 ‘남편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평균 1.6명의 자녀를 둔 이들의 평균 나이는 36.5살이었다.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부부관계 횟수를 묻는 질문에 응답한 55명 가운데 25명은 ‘한달에 한번’ 정도 부부관계를 갖는 ‘섹스리스’에 가까웠다.
야근과 장시간 노동은 맞벌이를 하지 않는 전업주부들의 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설문에 응한 이들의 남편들은 평균적으로 아침 7시3분에 현관문을 나선 뒤 밤 9시12분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0시간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1주일에 남편이 ‘칼퇴근’한 횟수는 평균 1.5회에 불과했다.
수면시간을 빼면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1~2시간에 그쳤다. ‘우리 사회는 가족 간 대화가 부족하다’며 마치 가족 구성원들이 대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비판하는 것은 늦은 퇴근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부족한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실제 남편이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45.4분에 불과했다. 아내와 남편의 대화 시간은 그보다 적은 39분이다.
특히 서울지역 전셋값이 오르면서 외곽의 새도시로 이주한 젊은 부부들은 통근시간까지 길어져 이중고에 시달린다. 김포새도시에 사는 주부 송윤아(33·가명)씨는 “서울 광화문까지 광역버스를 타고 통근하는 남편이 앉아서 갈 수 있도록 일부러 버스가 출발하는 기점에다 집을 구했다. 남편이 편하다고는 하는데 덕분에 버스에서 보내는 것만 왕복 3시간”이라고 했다.
응답자 가운데 16명(27.1%)은 남편의 평균 퇴근시간이 밤 11시 이후라고 답했다. 자정을 넘겨 집에 들어온다고 답한 이도 9명(15.3%)이나 됐다. 설문에 참여한 주부들이 희망하는 퇴근시간은 저녁 6시51분으로 실제 평균 퇴근시간(밤 9시12분)보다 2시간21분 이르다.
‘칼퇴근’한 남편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상당수는 ‘같이 저녁을 먹고 싶다’고 답했다. ‘설거지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아이들의 잠자리를 나눠서 봐줬으면 좋겠다’ 등 양육 분담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남편의 장시간 노동으로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는 전업주부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낮았다. 가족의 ‘삶의 질’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100점 만점에 평균 59.6점을 줬다. 낙제점이다.
한겨레 김동춘 칼럼] 그들의 ‘국가’ 안보 1028
박근혜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는 것을 무기 연기했다.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반환할 것인지가 명시되지 않았고, 한국 쪽은 반환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 핵미사일 사용 가능성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었기 때문에 전쟁 억제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 한국군이 작전권을 갖고 있으면 북이 소형 핵이나 미사일로 공격을 감행하고, 미군이 작전권을 갖고 있으면 겁이 나서 공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것이 군사주권의 포기가 아니고 효율성의 문제라고 강변한다. 효율성이 문제라면 아예 한국군을 미군에 직접 편입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전작권 전환으로 정국이 안정되면 경제도 안정된다”고 이 정권의 속내를 드러냈다. 북한이 아닌 국내 비판세력을 ‘안보’ 위협 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사실상 ‘북한’으로 간주하여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를 동원한 것이 아닌가? 북한보다 수십배의 국방비를 더 지출하고 있는 경제 대국 남한이 정전 60년이 지나도 스스로의 안보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는 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명, 그리고 언제 어떤 조건에서 스스로 국방을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즉 이 정권의 불안은 결코 객관적인 군사적 고려에서 나온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설사 한국이 장차 국방비를 10배 더 지출하더라도 작전권 환수는 안 되는 것이고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질 것이 없다. 결국 현 보수세력의 태도가 원인이다. 특히 권력의 창출과 유지 과정에서 큰 약점을 갖고 있어서 국민을 설득할 수 없고 내부의 거센 저항을 피할 수 없는 정권은 내외부의 위협을 과대포장하고, 언제나 외세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런 정권은 언제나 미국의 만만한 ‘고객’이다.
전시에 군사주권을 갖지 못하면, 정권 안보는 보장될지 모르나 국가는 백성의 생명을 책임지지 못한다. 조선 왕조와 노론 세력은 정권 안보를 위한 동학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를 불러들였고, 결국 청과의 패권경쟁을 위해 한반도에 진주한 일본군은 수십만명의 농민, 의병들을 처참하게 학살했다. 6·25 발발 직후 작전권을 미군한테 넘긴 이승만은 수천수만명의 남한 주민들이 아군인 미군의 총격과 폭격에 희생되어도 미국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못했으며, 그 대가로 권력을 보장받았다. 그래서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정권 안보’에 매달리면 국민들은 버려진 존재가 된다.
지금은 어떨까? 미국은 과거부터 동아시아에서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남한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들어가면 우리는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고, 안보를 경제적 이익으로 접근하는 미국이 막대한 액수의 무기 구입과 주둔비 분담을 요구하면 꼬투리가 잡힌 한국은 그들의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줄 수밖에 없고, 남북 대화나 경제 교류조차 사사건건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북·중과의 긴장으로 발생할 경제 손실은 미국이 아닌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 통일은커녕 이 땅이 전쟁터가 안 되면 다행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조선조의 인조와 서인 세력은 ‘정권 안보’의 불안 때문에 반대세력을 사찰하고 잔혹하게 탄압함과 동시에 명나라에 대한 사대(事大)에 더욱 집착했고, 명나라의 온갖 요구에 끌려다니다가 나라 경제를 파탄 상태로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정권 불안을 덮기 위한 그 시대착오적인 외교노선 때문에 새 패권국 청나라의 보복 공격을 받아 수십만명의 백성들을 어육으로 만들었다. 국민 주권이 없던 시절의 역사가 오늘 이 ‘국민’ 주권의 시대에 반복되고 있다. 이 정권이 진정으로 국가 경제를 걱정한다면 군사주권을 되돌려받아 중국,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친박의 안간힘? 박 대통령 ‘7시간 의혹’ 또 대리 해명 1028 한겨레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인 김재원 의원이 세월호 당일인 4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및 조치사항을 공개했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인 김 의원은 28일 국정감사 마지막날 자료를 내어,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7차례에 걸쳐 유선으로 필요한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또 “이른바 대통령에 대한 ‘7시간 의혹’은 근거가 없는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행위로 드러난 것인만큼 더 이상 대통령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영위원회는 청와대가 피감 기관으로,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한다.
김 의원은 이날 ‘7시간 의혹’과 관련한 청와대의 답변 자료를 받았다며, “정치 공세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소재지 설명이 안 된 측면이 있어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자세한 7시간의 소재에대해 밝힐 것을 요구했다. 김 비서실장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10시에 서면 보고를 받고 15분 뒤 안보실장에게 전화해 단 한명의 피해도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전 10시 30분에는 해경청장에게 “특공대라도 투입해 구조하라”고 지시하는 등, 계속해 서면과 유선으로 보고를 받았다. 오후 1시15분에 구조인원에 대한 잘못된 보고가 올라가자, 오후 3시에 중대본으로 갈 것을 지시했고, 오후 3시30분에 전 비서관 회의를 소집했다는 얘기다. 정확한 위치는 밝힐 수 없으나, 관저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도 재차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김 의원의 질의를 ‘친박 의원’으로서 청와대의 난처한 상황을 해명해 주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똑같은 자료를 요청했는데, 김재원 의원에게만 답이 갔다. 프린트로 자료를 모두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김기춘 비서실장은 “서면은 기록물로 관리해야 해 드릴 수 없었고, 오늘 김재원 의원에게는 말씀을 드린 것이지 서류를 제출한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 갔다. 김재원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계 핵심 인사로,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에서 대변인을 역임했다. 2012년 대선 때도 캠프 대변인으로 임명됐던 바 있으며, 검사 출신으로 오래도록 캠프의 법률 문제를 맡아 온 ‘해결사’다. 지난해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에게 “앞으로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할 생각이오니 혹시 오해가 있으시면 꼭 풀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보낸 문자가 사진기자에게 찍히는 바람에 공개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세월호 사태 때는 강경 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7월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특별법 협상을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거부하고 나서, 당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수석부대표는 원내대표 밑에 있는 수석인데, 수석이 당을 흔들고 있다. 김 수석부대표가 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고 비판한 바 있다. 9월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세월호 특별법 중재안을 내놓을 뜻을 비추자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잘 알지 못하면서 내부분란 일으키지 말라”고 단칼에 거절해 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102일 만에… 팽목항 울린 귀환 1028 한국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월호 선체에서 단원고 여학생으로 추정되는 실종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실종자를 찾지 못하고 잠수수색만 벌인 지 102일만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세월호 인양 대신 수색작업을 계속할 것을 결정한 다음날 극적으로 발견된 것이기도 하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28일 오후 4시 59분부터 잠수수색에 돌입한 잠수부가 오후 5시 25분쯤 세월호 4층 중앙 여자 화장실에서 실종자 1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실종자의 부패가 심해 성별이나 옷차림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여자 화장실에서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여성의 시신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현재 수심 40m가량 아래 바닷속의 유속이 빨라 세월호 선체 안에 있는 시신을 인양하지 못하고, 시신이 유실되지 않도록 안전한 상태로 조치하고 철수했다. 대책본부는 다음 정조시간인 29일 오전 4시 30분쯤에 다시 잠수부를 투입해 인양할 계획이다. 정확한 신원은 시신을 인양한 뒤 DNA 검사를 거쳐야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DNA 검사에는 약 12시간이 소요돼 신원은 29일 오전 시신이 인양되면 같은 날 오후쯤 나올 예정이다.
102일만의 실종자 발견 소식에 실종자 8가족이 있는 진도체육관은 한바탕 눈물로 술렁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인양이 진행되는 과정을 전해 들으며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수색을 중단하고 인양에 동의할 것인지를 논의했으나 투표 결과 5가족이 인양에 반대함에 따라 27일 수색작업을 계속해달라는 요구를 밝혔었다. 수색작업을 더 할 곳이 남아있다는 것이 가족들의 주장이었는데 추가 실종자가 발견된 선체 4층 화장실도 수색을 요구한 장소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당분간 선체 인양을 추진하기보다는 수색작업을 계속해야 할 명분이 높아졌다.
앞서 마지막으로 세월호 실종자가 발견된 것은 지난 7월 18일 오전 세월호 식당칸에서 수습된 여성 조리사였다. 이후 102일만에 실종자가 추가 발견되면서 세월호 참사 사망자는 295명, 남은 실종자는 9명이 됐다.
日 혐한서적 누가 읽나… 독자 절반이 60세 이상1028 한국
망한론 발간 두 달 만에 20만부 돌파, 만화 혐한류는 100만부 넘게 팔려
日 출판계 혐한혐중 거부 움직임
헤이트스피치·배외주의에 반대, 심포·북페어 열리고 모임 결성도
지난달 하순 도쿄에서 서점거리로 유명한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의 명물서점 중 하나인 쇼센(書泉)그란데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사과성명을 발표하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발단은 이 서점 트위터 운영자가 신간 판매를 늘리려고 일주일 전에 올린 선전문구였다. 대상이 된 신간은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櫻井誠)가 쓴 ‘대혐한(大嫌韓)시대’라는 책이었다. 트위터 운영자는 이 책을 홍보하며 ‘이웃나라가 싫은 분, 왜 미움 받는지 알고 싶은 분이나 식민지 지배, 승전국이라는 착각, 영토문제, 반일 등에 의문을 품고 있는 분에게 추천’이라는 문구를 트위터로 날렸다. 그러자 이 서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항의 메시지가 빗발쳤다. 신간 홍보를 위해 이 같이 민족을 차별하거나 특정 국가에 대한 증오를 드러낸 문구를 사용해도 되느냐는 지적이었다. 재특회는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인종ㆍ민족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아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극우단체다.
비판이 쇄도하자 서점은 다시 트위터를 통해 “특정한 주장을 지지하는 것 같은 표현이 있었다”며 “다양한 생각을 취급하는 장소인 서점으로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깊이 반성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책, 대혐한시대
● 한국 증오서적 이상 판매 열기
‘대혐한시대’는 책 표지에 홍보문구로 ‘한국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며 더 이상 정상이 아닌 반일 국가와는 교류할 수 없다’고 선전하고 있다. ‘비정상의 반일 바람이 불어 닥치는 한국’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명) 문제의 새로운 국면’ ‘재일(在日)이라는 비정상의 반일집단’ ‘새 시대를 여는 행동하는 보수운동’ ‘아시아주의와의 결별’ 등 책 목차만 봐도 일본을 비판하는 한국에 대한 비난과 자신이 이끌고 있는 재특회의 필요성에 대한 선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쇼센그란데 서점의 사과 소동이 말해주듯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거리낌없이 쏟아내고 민족차별적인 행동을 새로운 보수운동으로 미화하는 이런 책에 대해서는 일본 여론도 따가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소동도 한몫을 해 지금 이 책은 일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다. 9월 하순 출간 직후부터 일본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몇 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지금도 3위에 올라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부터 한국에 대한 혐오감, 중국에 대한 증오를 그대로 드러낸 혐한혐중(嫌韓嫌中) 책들이 기세 좋게 팔리고 있다. 아사히신문의 올 초 보도에 따르면 당시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런 책들이 세 권이나 들어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한국을 논한다는 뜻을 담아 산케이신문 출판부에서 낸 ‘망한론(茫韓論)’이라는 책은 지난해 말 발간돼 두 달 만에 20만부를 돌파했다. 2005년 처음 나와 시리즈물로 이어지고 있는 ‘만화 혐한류’는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올해 상반기 논픽션 부문 주간베스트셀러에는 ‘한국인이 말하는 치한론(恥韓論)’ ‘범한론(犯韓論)’ 같은 혐한 서적이 10위권에 무려 7종이나 들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극우단체 ‘재일(在日)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회원들이 올해 3월 도쿄 이케부쿠로역 근처 도시마공회당에서 열린 집회를 마치고 일본 국기와 욱일승천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 혐한서적 주요 독자 60세 이상 장ㆍ노년층
마이니치신문이 최근 일본 전국의 16세 이상 2,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독서여론조사에서 혐한혐중 서적이나 잡지의 관련 특집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는 사람은 13%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이 45%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10대 후반은 3%, 20대는 8%였다. 혐한혐중 책이나 잡지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읽지 않았다는 사람들에 비해 역사나 지리 관련 책을 좋아하고, 주간지도 즐겨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책들이 잘 팔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복수로 답한 전체 응답자 중 49%는 한일ㆍ중일 관계를 나쁘게 한다고 봤다. 한국이나 중국에 대한 불안이나 불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30%, 이런 책이 팔린다는 것이 한심하다가 18%, 일본에 대한 불안이나 불만의 배출구 되고 있다는 응답이 17%를 차지했다. 자유 의견으로는 ‘한국, 중국이 더 심한 반일 기사를 쓰고 있으니 반격해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가 대 국가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사로 차별이 일어난다’는 비판이나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 사사키 도시하루 주임연구원은 이 조사 결과에 대해 “혐한혐중 책은 고정 독자층이 구입하고 있는 것 같다”며 “비슷한 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독자가 한정돼 있어 밀리언셀러가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주관하는 일본 시마네현청의 ‘다케시마 자료실’에 비치된 잡지들에 혐한 기사들이 실려 있다. 마쓰에=연합뉴스
● “숨죽였던 차별의식 한일 냉각 기화로 불거져 ”
밀리언셀러가 나오기 힘들다는 말은 맞을지도 모르지만, 일본 출판계에서는 최근 1년 사이 이런 책을 내기만 하면 수만 부, 조금 바람을 타면 수십만 부 팔린다는 통념이 굳어져가는 게 사실이다. 양서(良書)의 보급을 추구한다면 내지 말아야 할 이런 책들이 시류를 타고 팔리다 보니 출판계의 고민도 깊어진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단행본과 잡지 편집자, 필자들이 모인 일본출판노동조합연합회(출판노련) 회원들은 지난 5월 하순 서점 직원을 대상으로 한국, 중국을 비난하는 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잘 팔리는 책은 주문해서 팔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론과 “(혐한혐중 책은)누군가를 공격하고 싶다는 욕망을 선동한다”며 “(상대를)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그쪽이 훨씬 편하고, 기분도 좋고, 자신들만 훌륭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비판이 엇갈렸다.
이 같은 책을 내거나 파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 일부 출판인들이 행동에 나설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출판노련은 지난 7월 도쿄에서 ‘혐중혐한 서적과 헤이트스피치’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기조강연에 나선 사람은 기고가 가토 나오키(47). 그는 간토(關東)대지진 후 도쿄에서 뜬소문으로 한국인, 중국인이 대량학살 당한 것을 지진 발생 때부터 시간 순으로 기술한 ‘9월, 도쿄 거리에서’라는 책을 올 초 출간해 반향을 일으켰다.
가토는 이 자리에서 “퇴근 길 석간 신문에서 한국을 나쁘게 묘사하는 기사를 읽고 기분전환하는 데 익숙해져 가는 지금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의 앞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90년 전 사건(간토대지진 학살)이 지금의 인종차별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책을)읽은 독자들도 ‘이것은 옛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가토는 일본인들의 내면에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던 민족차별 의식이 과거사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국,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은 지금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고 해석했다.
● 혐한혐중 거부 움직임 서서히 확산
지난 5월 출판사 가와데쇼보우신샤(河出書房新社)의 20, 30대 직원 네 명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모아 ‘지금, 이 나라를 생각한다-‘혐(嫌)도 아니고 망(茫)도 아닌’을 부제로 ‘지금 읽어야 할 책’이라는 도서 기획을 선보였다. 저명인사 19명에게 지금 일본을 성찰하기 위해 좋은 책을 추천 받아 18권을 소개한 것이다. 이 중에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인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가 고른 김항 고려대 연구교수의 ‘제국 일본의 문턱’이나 일본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의 ‘헤이트스피치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이 포함됐다.
이들의 제안에 호응해 이 제목을 달고 기획 코너를 만든 서점이 일본 전국에서 200곳을 넘었다. 참가 서점 중에는 이름난 대형서점인 기노쿠니야, 쥰구도, 마루젠 등도 있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마루젠 나고야 사카에점 부점장은 “서점은 다양한 책이 있는 곳”이라며 “한국, 중국 비판에 치우친 책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던 참인데 이런 기획 안내가 왔다”고 반겼다. 중소출판사 모임인 ‘한겐(版元)닷컴’도 ‘반헤이트스피치’를 제목으로 한 또 다른 북페어를 11개 출판사 26권의 책으로 인터넷에서 진행했다.
지난 3월에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혐한혐중 서적의 인기는 문제라는데 공감한 젊은 출판인 약 20명이 모여 ‘헤이트스피치와 배외주의에 가담하지 않는 출판인 모임’을 결성했다. 모임을 주도한 이와시타 유(岩下結)는 아사히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모임을 이런 비판 흐름을 만들어 가는 “신호탄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왜 보수와 진보 사이 골은 깊어만 가나? 1028 프레시안
[이정전 칼럼]<96> 불행한 한국 노인, 호통치며 병드는 이유
지하철 노약자석에 젊은이 셋이 나란히 앉아서 낄낄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한 노인이 들어오더니 이들에게 소리쳤다. "이봐, 여기는 노약자석이야. 일어들 나라구." 그 젊은이들은 노인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노인은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태도로 보아 외국인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그 노인이 노약자석 옆 벽을 가리키면서 "이 사람들아! 여기 노약자석이라고 쓰인 게 안보여? 엉? 빨리 일어나지 못해!" 호통을 치자 그제 서야 젊은이들은 머쓱해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중국말이 들려왔다. 외국인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 굳이 그렇게 화를 버럭 냈어야 했을까. 지하철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짜증 내고, 불평하고, 화를 내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얼마 전 국제노인인권단체('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가 세계 노인 복지 지수를 발표하였는데, 조사 대상 96개국 중에서 지상 최고 ‘노인 천국’은 노르웨이였고 스웨덴, 스위스, 캐나다, 독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50위로 필리핀(44위), 베트남(45위), 중국(48위)에도 뒤졌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1인당 GDP) 수준은 이 주변 국가들보다 4~13배 더 높다. 돈만 보면 우리 국민은 이 주변 나라들의 국민들보다 훨씬 더 행복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국제노인인권단체의 보고서에 의하면, 우선 우리나라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 연금 수금율에서 우리나라 노인은 96개국들 중에서 바닥권이었고 특히 노인의 소득 수준이 중‧장년층에 비해 크게 뒤진다. 보고서는 "한국은 상당한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노인 47.2%가 중간 소득의 반도 안 되는 수입으로 생활 한다"고 했다. 순전히 육체적으로만 본다면 우리나라 노인의 건강 지수는 10위권 안에 들지만 정신적‧심리적 측면을 고려하면 42위로 곤두박질친다. 그만큼 우리나라 노인들은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매우 불행하다. 보고서에 의하면, 50세 이상 우리나라 노인들 중에서 '내 인생이 의미 있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35~49세 연령층에서 그렇게 응답하는 비율의 70%에 불과했는데, 이 비율은 아시아에서 꼴찌라고 한다.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에서는 오히려 노년층에서 '인생이 의미 있다'고 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
이런 조사 결과는 그 동안 국내에서 실시된 조사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연령별 행복지수를 조사해본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선진국의 경우 청소년 시절에는 행복지수가 높고, 나이가 들면서 행복지수가 낮아지다가 중년기에 가장 낮고, 노년기에 접어들어 행복지수가 다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대체로 선진국의 경우 연령별 행복 지수는 'U자 형 곡선'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 반대다. 청소년 시절에는 행복지수가 아주 낮다. 입시 지옥, 취업 걱정, 세대 갈등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미면서 행복지수는 차츰 올라가서 중년기에 최고에 이른다. 하지만, 은퇴하고 노년기에 접어들면 행복지수는 하락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연령별 행복지수는 선진국과는 달리 '엎어진 U자 형 곡선'을 그린다. 청소년기와 노년기에 자살률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국제노인인권단체 보고서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많은 우리나라 노인들이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들은 삶의 의미와 행복을 약간 다르게 보는 것 같다. 예를 들어보자. 자녀를 둔 부부보다 자녀를 두지 않은 부부가 더 행복하다는 것이 많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다. 그렇다면, 자녀는 부모의 행복을 갉아먹는 애물단지인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만일 다시 태어나 같은 삶을 산다고 했을 때에도 자식을 가지겠느냐고 물으면 자녀를 가졌던 부부들 대부분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한다. 많은 부모들이 이 세상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 자녀라고 말한다. 자녀를 기르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자녀를 가지지 않은 부모들은 자녀 없는 것에 쓸쓸함을 느낀다. 물론, 행복하면 삶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고, 삶이 의미 있게 느껴지면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행복과 삶의 의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선택한다고 한다. 그만큼 삶의 의미가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우리나라 노인들이 행복하지도 못하면서 삶의 의미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행복에 관한 이런 일련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청소년과 노인들이다. 이들은 지금 잔뜩 화가 나 있다. 취업도 잘 안 되고, 결혼하기도 어렵고, 미래도 불투명하니 젊은이들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노인들은 어떤가? 그들은 과거 어른으로서 대접도 잘 받았고,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가나보다도 못한, 지지리 가난한 후진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 올린 주역들이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허나, 막상 일선에서 물러나고 보니 할 일도 별로 없고,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쌓아놓은 돈도 없다. 집에 있어봐야 어른으로서의 권위도 서지 않고, 밖에 나가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화딱지만 난다. 화딱지 나는 사람은 화풀이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하는 곳에 일베 회원들이 일부러 찾아가서 피자를 돌려 먹는다거나 보수 꼴통 노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을 무조건 빨갱이로 몰거나 '종북몰이'를 하는 것도 화풀이의 한 방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화가 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며, 나와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을 용납할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입각해서 지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에 드느냐 아니냐에 입각해서 지식을 받아들인다. 특히, 화가 난 사람들은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 특정 정치인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노인에게는 그가 진짜 빨갱이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가 빨갱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고 그를 빨갱이로 매도하면 속이 후련해진다. 어느 학자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싸가지 없는 사람은 보수 진영에도 아주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사이의 골이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
의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수와 진보 사이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보다는 행복한 사람들이 남을 더 잘 배려하며, 남을 더 잘 도와주고, 남에게 더 관대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책임이 매우 크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행복추진위원회까지 만들어서 표를 긁어모아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제까지의 정치 행태를 보면 이 정부의 집권 기간에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지기는 틀린 것 같다. 세월호특별법 입법과정에서 보았듯이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키우고 있고, 국민의 아픈 마음을 보듬기는커녕 덧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사우디의 석유전쟁, 4차 석유위기?1026 프레시안
지난 6월 이후 국제 유가가 30퍼센트(%) 이상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이 아닌 증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미국을 등에 업은) 사우디가 러시아 및 이란을 상대로 석유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나아가 이번 석유전쟁이 4차 석유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석유 증산으로 유가를 더욱 떨어뜨려 시리아 및 핵문제 등에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을 경제적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것이죠. 러시아와 이란은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유가 100달러 이하로 내려갈 경우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과연 사우디의 속셈은 무엇이며 유가 하락은 어디까지 계속될까요?
(☞ 오바마의 새로운 석유전쟁)
(☞ 막오른 ‘3차 석유대전’… 사우디의 유가 끌어내리기 도박)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한때 떨어졌던 국제 유가는 2011년부터 4년간 배럴당 110달러 선에서 안정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여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면서 북해산 브렌트유의 경우 지난 6월 최고 115달러에서 10월 16일에는 83달러까지 내려갔습니다. 30% 이상 떨어진 셈이죠(두바이유를 주로 수입하는 한국의 경우 올해 초 100달러에서 14일에는 87달러로 20%가량 하락).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는 감산은커녕 지난 9월 하루 생산량을 10만 배럴(8월 960만 배럴에서 970만 배럴로) 늘렸습니다. 이달 초에는 일본 등 아시아 고객에 대한 판매가격을 배럴당 1.2달러, 북미에 대해서는 0.4달러 깎아줬습니다. 그리고 감산 계획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1980년대 초반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대규모 감산을 했다가 시장점유율을 빼앗겼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 사우디 측의 입장입니다. 사우디가 증산을 계속하는 한 유가는 더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에는 70달러 선으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사우디의 최근 행태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 토마스 프리드먼은 미국과 사우디의 러시아 및 이란에 대한 석유전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4일 자 칼럼 '석유전쟁?(A Pump War?)'을 통해 "나 혼자만의 상상인지 또는 미국·사우디 대 러시아·이란의 세계적 석유전쟁이 실제 진행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분명한 것은 미국과 사우디가 30년 전 소련에 대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석유 증산 공세로 러시아와 이란을 죽이는 것, 즉 모스크바와 테헤란으로 하여금 국가 예산을 충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유가를 낮춤으로써 이들을 파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신문 <프라우다>의 4월 3일 자 톱기사 '오바마는 사우디가 러시아 경제를 파괴하기를 원한다'를 예로 들면서 러시아도 미국과 사우디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985년 가을 사우디가 석유 생산량을 무려 5배나(하루 200만 배럴에서 1000만 배럴로) 늘리면서 유가를 32달러에서 10달러로 끌어내려 소련 경제를 붕괴시킨 전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991~94년 러시아 총리 대행을 지낸 예고르 가이다르는 2006년 11월 13일의 한 연설에서 "소련 붕괴의 시작은 야마니 사우디 석유장관이 석유 증산을 발표한 1985년 9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날을 기점으로 사우디는 유가 지지를 포기했고 (중략) 6개월간 생산량을 4배 늘렸으며 (중략) 소련은 연간 2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으면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 이라크 인근 송유관 개수작업 현장. ⓒ연합뉴스
사우디의 석유 증산 공세로 소련 경제를 목 조른 것이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겁니다. 특히 프리드먼은 최근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석유 생산이 크게 늘어난 만큼(미국의 석유생산은 최근 6년간 70%가 증가해 사우디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으며 조만간 사우디를 추월할 가능성도 있음) 미국과 사우디가 힘을 합치면 에너지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러시아 및 이란의 '석유 독재자(petro-dictator)'를 쳐부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프리드먼의 주장이 미국·사우디 대 러시아·이란 간 석유전쟁론에 불을 지핀 것입니다.
(☞A Pump War?)
그러나 프리드먼의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와 현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첫째, 1985년의 석유전쟁은 소련을 겨냥한 미국과 사우디의 합작이 아니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붕괴시키려는 미국과 영국의 공격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소련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것을 사실이지만 전쟁의 실상은 영국·미국 대 사우디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현재 사우디와 미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당시보다도 훨씬 복잡합니다. 특히 이집트, 시리아, 이란 문제 등에서 사우디는 미국과 생각을 달리하는 만큼 사우디가 미국의 정책목표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3차 석유위기의 진실
프리드먼이 말한 1985년의 석유전쟁은 3차 석유위기로 불립니다. 1,2차 석유위기는 잘 알려져 있는 반면 3차 석유위기의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유가 하락에 의한 위기였기 때문입니다. 1974년의 1차 석유위기는 4차 중동전쟁의 와중에 OPEC가 (이스라엘 편을 든)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한 석유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가량 폭등했습니다. 2차 석유위기는 1979년 이란혁명에 따른 석유 수출 중단으로 일어났습니다. 유가가 12달러에서 최고 4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3차 석유위기는 1985년 9월 영국의 원유 가격 자유화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석유 카르텔'인 OPEC를 붕괴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1차 석유위기의 중요성은 유가 폭등뿐만이 아닙니다. 국제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가 이른바 '세븐 시스터즈'로 알려진 서방의 석유대기업에서 OPEC로 바뀐 것입니다. 1974년 이후 국제 유가는 OPEC의 합의에 의해 결정됐고, 자유 시장론자인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대처 총리는 이를 매우 못마땅해 했습니다. 당시 레이건은 OPEC를 죽이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초 북해 유전을 개발하면서 나름의 석유무기를 갖게 된 대처 총리는 1985년 9월 원유 가격 자유화 방침을 밝힙니다. OPEC에 정면 도전한 것이죠. 레이건은 내심 대처를 응원했고요. 이에 대해 사우디는 그렇다면 가격전쟁을 해보자며 무자비한 증산에 돌입합니다. 앞에 말한 9월 13일이 그날입니다. 1980년대 초까지 하루 8900만 배럴을 생산하던 사우디는 1981년 이후 유가 하락세를 막기 위해 200만 배럴까지 생산을 크게 줄였던 터였습니다. 그러니까 1000만 배럴로 늘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죠. 그 효과는 두 달쯤 후부터 나타났습니다. 11월 32달러였던 유가는 한 달 후, 10달러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러시아와 일부 걸프 국가들은 6달러에 판매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유가 하락은 한국 같은 에너지 수입국에게는 희소식입니다(80년대 후반 우리가 누렸던 이른바 3저 호황, 즉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에 의한 호황이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죠). 하지만 미국 같은 석유 생산국에게는 반드시 좋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미국의 석유생산을 비롯한 관련 업체들이 도산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유가가 생산비에도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2월부터 도산 위기가 현실화됐습니다. 또한 유가가 낮아지면서 수입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집니다. 핵심 전쟁 물자인 석유의 자립도가 낮아지는 것은 전략적으로 미국에 유리하지 않습니다. 당시 미국의 수입 석유 의존도는 50%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또한 심해 유전으로 채굴 비용이 비싼 영국도 사우디와의 가격전쟁을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 W. 부시가 1986년 4월 사우디를 방문해 파드 국왕과 무려 나흘간 비밀 회담을 한 끝에 석유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1986년 초 9달러까지 내려갔던 유가는 그때부터 오름세로 돌아섰고 그해 9월, 18달러 선에서 안정됐습니다.
결국 3차 석유위기는 소련의 붕괴를 겨냥한 미국과 사우디의 합작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OPEC 붕괴를 위한 영국과 미국의 공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대신 소련경제에 타격을 가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사우디와 미국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나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정책에 불만이 많습니다. 우선 미국이 30년 동지였던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을 방관한 것에 사우디는 크게 놀라고 분노했다고 합니다. 수니파의 수장을 자처하는 사우디의 최대 숙적인 시아파의 맹주 이란과 핵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불만입니다. 시리아의 (시아파) 아사드 정권 제거에 소극적인 반면 최근에는 (수니파) 이슬람국가(IS) 공격에 적극 나선 것도 내심 불안합니다. 지정학적 목표만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엇갈립니다. 바로 셰일혁명에 의한 미국의 석유 증산입니다. 내년이면 미국의 산유량이 사우디를 추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향후 10년간 미국의 주요 석유 수출국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사우디 아메리카'를 자처하는 미국이 사우디의 석유 패권에 도전하는 형국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보를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가 미국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 형편은 못 됩니다. 그래서 사우디의 최근 행보는 미국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면밀한 계산에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입니다. 유가를 낮춤으로써 러시아와 이란에 일정한 압력을 가하고 미국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한편, 미국산 석유의 국제시장 진입을 제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수출이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와 이란은 유가가 최소한 100달러는 넘어야 재정적자를 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가 하락이 이들 나라에 압력 수단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 유가가 80달러가 되면 미국 소비자 한 가구당 연간 6백 달러의 감세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반면 유가 8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미국의 셰일 석유는 수지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올해 1986년 이래 최대 석유생산을 기록했으며 이에 따라 대외 수출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수출시장을 잠식하는 셈이죠. 그러니까 사우디는 유가 하락으로 미국의 지정학적 목표와 소비자들에 대한 경제적 혜택을 주는 대신 국내 석유산업의 피해는 감수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얘깁니다.
(☞ Saudi Arabia tests US ties with oil price)
앞으로 석유 가격은?
그렇다면, 앞으로 석유 가격은 어떻게 움직일까요? 최근 유가 하락의 원인은 경기 침체에 따른 유럽 및 중국 등의 수요 감소, 그리고 미국의 비약적인 증산(최근 6년간 70%) 때문이라는 데에는 모든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우디의 증산이라는 변수가 개입한 것인데, 사우디의 증산이 장기간 계속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유가가 8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사우디의 재정수지 역시 위험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 내부에서도 증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고 합니다.
일단 사우디는 11월 26~27일에 있을 OPEC 회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의 시장점유율 확보 의지를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다른 회원국들을 자국의 뜻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OPEC의 하루 생산량은 3000만 배럴로 세계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어느 정도 줄일지, 특히 각국의 할당량(쿼타)가 어떻게 정해질지가 관건입니다. 회원국 간에도 쿼타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카타르는 9월 인도분 원유 가격을 8월 대비 6.25~6.75달러 인하했다고 합니다. 고객(쿼타) 확보를 위한 인하 경쟁으로 이달초 사우디의 1.2달러에 비하면 훨씬 인하 폭이 큽니다. 따라서 향후 유가 전망은 11월 OPEC 회의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The Saudi oil war against Russia, Iran and the US)
▲ 10월 15일 자 <러시아투데이> 기사 갈무리. ⓒrt.com
11월 24일에는 이란 핵협상을 위한 P5+1회의가 열립니다. 이란은 2012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석유수출 제재 조치로 이전보다 하루 1백만 배럴 생산이 감소했는데 과연 사우디의 석유 증산이 핵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입니다. 이 두 회의가 사우디의 향후 행보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러시아의 한 분석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유가가 76~77달러 선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원유 생산 단가가 대략 그 수준이기 때문에 더 큰 대립과 희생을 피하려면 이 선에서 멈출 것이라는 얘기죠.
마늘 한 접당 2만5000원? 답답합니다 1024 프레시안
올해에는 공동체밭과 개인밭 두 곳에서 마늘농사를 지었더니 그야말로 마늘 풍년이다. 두 곳 모두 작황이 좋아서 씨알도 굵고 대만족이다. ‘김한수와 아이돌’의 마늘과 양파공동체에서 각자 몫으로 나눈 마늘이 여섯 접 남짓하고 가좌농장의 개인밭에서 거두어들인 마늘도 일곱 접쯤 된다. 한 해 자급자족할 마늘을 빼고 여기저기 나눔을 한다고 해도 꽤나 많이 남는다.
이를 어찌한다,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흑마늘을 만들어 먹을까 아니면 장아찌를 담글까. 그래도 너무 많다. 고심 끝에 가까운 벗들에게 마늘을 팔기로 했다. 전부터 내게서 이런저런 작물을 사고 싶어하는 벗들이 많았지만 자급밥상을 위한 소규모 농사를 짓다 보니 도무지 팔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기 마련인 감자나 고구마를 비롯해서 땅콩, 옥수수, 당근, 양배추, 토마토 등속은 우리 식구 먹을 걸 대기에도 바빴다. 그런데 드디어 팔 수 있는 작물이 나온 것이다. 도시농업에 입문한 지 꼭 6년 만이다. 얼추 가늠해보니 네 접을 팔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팔 수 있는 작물이 생기면 꼭 좀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벗들에게 연락을 하니 반색을 하며 당장 보내달란다. 알았다고 답을 한 뒤 전화를 끊으니 아뿔싸, 정작 중요한 가격을 제시조차 하지 않았다. 마늘을 팔겠다면서 가격도 정하지 않다니, 매사에 엄벙덤벙하기 일쑤인 스스로의 아둔함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쨌건 그제서야 인터넷을 통해 생협에서 파는 마늘 값을 알아보았다. 한살림과 아이쿱생협과 여성민우회생협의 마늘은 한 접당 2만 5000원 안팎이었다. 답답하다. 차라리 그냥 줬으면 줬지 추호도 그 값엔 팔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 수확한 마늘 가운데 일부. 씨알이 아주 실하다. ⓒ귀농통문
우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에 소속된 우리들은 우리가 키운 작물들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검정 비닐과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유기순환 생태농업을 견지해왔기에 그만한 자부심이 없다면 외려 이상한 일이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기계를 동원해서 로타리도 치지 않고 밭을 농기구만으로 일구어왔다. 모든 게 흙을 살리기 위함이다. 생태뒷간을 지어서 자가퇴비를 만들고, 집에서 모은 오줌과 막걸리를 섞어서 웃거름을 주고, 손수 만든 난각칼슘과 효소를 섞어서 엽면시비를 해온 것도 자연에서 얻은 만큼 자연에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작물도 되도록 강하게 클 수 있게 인위적인 개입을 최대한 삼갔다. 어지간히 가물지 않고서는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도록 물을 대주지 않았고,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천연농약의 사용도 자제했다(물론 진딧물은 예외다).
그 덕분에 우리가 키운 작물을 먹어본 노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려가며 이구동성으로 이상하게 옛날 맛이 난다고 입을 모은다. 옛날 맛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그러해야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서 찾아보기 어려운, 작물 고유의 자연스러운 맛이 옛날 맛이다. 하지만 유기순환 생태농법이 아니고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맛이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그간의 지난했던 노고를 생각하면 더더욱 마늘을 그 값에는 도저히 팔 수 없었다. 농기구로 밭을 일구고, 왕겨와 볏짚과 낙엽으로 보온을 하고, 오줌을 모아서 웃거름을 주고, 두어 차례 김매기를 하고, 낙엽으로 멀칭을 하고, 마늘쫑을 뽑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함의 연속이었다. 마음 고생은 또 어떠했는가. 무탈하게 겨울을 잘 견디고 있는지 겨우내 무시로 농장에 들러 밭을 둘러보고, 봄가뭄이 지속되었을 때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몸고생보다 마음고생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
나는 좀더 규모있게 농사를 짓는 지기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들 또한 그때까지 값을 정하지 못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올해 마늘과 양파 값이 워낙에 똥값인 데다가 현지의 농민들이 마늘과 양파 수확을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한 끝에 한 접당 5만 원으로 값을 책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밑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질 않았다. 나는 그 즉시, 마늘을 사기로 예약한 벗들에게 전화를 넣어서 값을 알려주었다. 혹시라도 비싸다고 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벗들은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더이상 뒷말이 없었다. 순간 뭉클했다. 제값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간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오히려 벗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나중에 마늘을 받아서 먹어본 벗들은 엄지손가락을 쑤욱 치켜세우며 좋은 마늘을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해왔다. 나는 그런 벗들의 반응에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 농기구로 밭을 만드는 공동체 회원들. 흙을 살리기 위해 되도록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몽글몽글한 흙의 떼알구조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 ⓒ귀농통문
어쨌건 그렇게 해서 마늘 네 접을 20만 원을 받고 팔았다. 시중가격보다 서너 배는 비싸고 생협과 비교해도 두 배나 높은 값에 판 셈이다. 그러나 제값에 작물을 팔았다는 보람보다는 복잡한 감정이 앞섰다. 시중에서 마늘 한 접이 만 원에 팔린다면 현지에서는 2000원쯤에 거래가 된다는 얘기다. 사실 전업농들은 평당 생산비용이 우리보다 훨씬 많이 든다. 비닐에 농약에 화학비료 같은 농자재 값은 말할 것도 없고 농기계 사용비용에 인건비에 운반비까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돈이 무한정 들어간다. 그러니 마늘이 그 값에 거래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 마늘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니 마늘과 양파 주산지마다 밭을 갈아엎다 못해 항의시위가 봇물을 이루고 있었다.
가족의 목숨줄이 달린 수확을 포기한 채 생으로 갈아엎어야 하는 농민들의 절망과 분노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나는 차마 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일반 노동자들이 해마다 되풀이해서 1년치 월급을 떼어먹힌다면 오늘날 농민들의 처지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을까. 아마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농민들처럼 사방에서 목숨줄을 끊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누구도 농민들의 얘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농가를 돕자는 이벤트성 행사가 번개장터처럼 열릴 뿐 대다수 도시 소비자는 마치 횡재를 하기라도 한 양 싼 값에 내심 반색한다. 사실 도시의 삶은 농촌 수탈을 근간으로 유지되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농촌을 수탈하지 않고서는 저임금 구조 속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삶은 유지될 수가 없다. 일반 노동자들에게 유기농산물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언제가 본 해외 다큐멘터리에서 극빈의 삶을 이어가는 멕시코 노동자의 가족이 1달러짜리 파프리카와 햄버거 앞에서 고민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병을 앓는 가족들을 위해 간절히 야채를 사고 싶었던 아이들의 엄마는 결국 살기 위해서 피눈물을 머금고 햄버거를 사고 말았다.
그러나 그건 먼 이국땅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땅에서도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실업자가 차고 넘치는 와중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천만 명을 웃도는 구조 속에서 그건 필연일 수밖에 없다. 그건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농촌을 수탈하지 않고서는 먹고 산다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내게서 마늘을 산 벗들은 다들 먹고사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선뜻 지갑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에게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피폐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에게 건강을 위해서 유기농을 먹으란 얘기는 내게 몸에 좋으니 산삼을 사먹으란 얘기나 다름없다.
▲ 왕겨와 볏짚과 낙엽으로 보온하는 모습. 낙엽은 구청에 전화해서 받는다. 어떤 이들은 가로수에 농약을 치기 때문에 탐탁찮게 여기는데 미생물이 다 분해하기 때문에 마음을 놓아도 좋다. ⓒ귀농통문
언제부터인가 이 땅은 타인의 노동을 수탈하는 데 익숙해졌다. 도시가 농촌을 수탈하고, 자본을 독점한 세력이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구조 속에서, 이 땅의 지식인과 언론은 소비가 미덕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사람들의 의식을 마비시켜왔다. 생산자가 소비자로 전락하는 순간 수탈은 정정당당해진다. 소비자가 왕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든 소비자는 무기력해진다. 소비자는 애오라지 소비자일 뿐 생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대비해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과거에 우리는 어지간한 것은 스스로 해결했다. 이사는 친구들과 했고 도배는 아버지들이 손수 했다. 큰 병이 아니고서는 스스로 치유법을 찾았고 김장과 장담그기는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포장이사를 소비하고, 도배사를 소비하고, 병원을 소비하고, 마트를 소비하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자기 살도 자기가 빼지를 못해서 숀리 같은 이를 찾아 가겠는가. 심한 경우에는 형광등도 갈 줄 몰라서 출장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혼자서 해야 정상인 공부도 이제는 학원이라는 상품을 소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비가 중심인 사회의 가장 무서운 함정은 우리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의식을 마비시킨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경쟁지상주의가 힘을 얻는다.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만 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은 소비할 권리가 없다는 논리는 점점 공고하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가난은 개인의 무능함이나 천성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얘기가 권위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그 얘기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단박에 꿰뚫어볼 수 있다.
▲ 볏짚과 왕겨와 낙엽을 걷어낸 밭에 오줌을 섞어서 웃거름을 주고 있다. 고도넷 회원들은 대부분 아파트 화장실에서 오줌을 모은다. 농장에서도 생태뒷간이 있어서 오줌을 모을 수 있다. ⓒ귀농통문
후배 가운데 도배사가 있다. 20년 전에 그 후배는 일당 15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기술이 일취월장한 지금은 되레 12만 원을 받는다. 1급 용접공은 한 때 35만 원의 일당을 받았지만 이제는 25만 원을 받는다. 20년 전 100만 원의 월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지금도 100만 원을 받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전에 100만 원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정규직이었지만 물가가 몇 배가 뛰어오른 지금 100만 원을 받는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세상을 지배하는 논리는 ‘실업자나 비정규직은 경쟁력을 갖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며 억울하면 지금부터라도 스펙을 쌓으면 얼마든지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기 여부를 떠나서 야만도 이런 야만이 없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밀양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향해서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이기주의자라고 서슴없이 몰아붙이는 이 사회를 과연 무어라 이름 붙여야 할까.
농촌을 수탈하지 않고서 살기 위해선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도시를 지배하는 의식에 맞서 저항하고 과감히 결별해야만 한다. 당연히 소비를 중심으로 짜여진 의식구조도 해체하고 생산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서로의 노동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서로의 삶을 보살필 수 있다.
눈이 많이 왔던 작년 겨울에 칠순을 넘긴 경비아저씨가 혼자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중년의 아낙네 하나가 사납게 눈을 흘기며, “위험한데 저 뒤쪽은 왜 눈을 안 치우나 몰라”하고 부러 큰 소리로 게두덜거리는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최근에는 음식물쓰레기를 분리수거함에 쏟지 않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분리수거함 옆에 내려놓고 사라지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무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의 관리비에는 경비아저씨의 인건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보다 더한 권리를 행사할 권한이 있으며 경비아저씨는 어떠한 경우에도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지 않다면 이러한 일상적 폭력을 자행한다는 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 마늘과 양파 사이사이에 낙엽을 끼워 넣는다. 일명 낙엽멀칭이다. 풀이 올라오는 것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고 봄가뭄에도 도움이 된다. ⓒ귀농통문
일찍이 공자는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소비자부터 없애야 한다고 설파해왔다. 청소부도 노동자고 일용직도 노동자이며 의사나 판사도 노동자다. 학생도 노동자고 선생도 노동자이며 고위공직자나 대통령도 노동자다. 우리의 의식이 모든 노동자가 동일한 임금과 대우를 받는 걸 당연시 여기게 될 때 세상은 비로소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위험한 일을 하는 건설노동자들이 의사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면 그때는 이미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그때는 도시가 더이상 농촌을 수탈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고 어쩌면 모든 농민은 공무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모든 농민들은 더이상 화학농법으로 땅을 수탈하지 않고 유기순환 생태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게 분명하고 도시민들은 누구나 걱정없이 일상적으로 유기농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도 마늘 한 접에 5만 원 받은 걸 마음놓고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들어서 부쩍 가슴에 다가오는 시 한 편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는 청년시절부터 좋아해왔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울림 속에 어쩌면 위에서 얘기한 즐거운 꿈을 꿀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공무원들 ‘부글부글’…“퇴직하면 굶으란 말이냐” 1028 미디어오늘
새누리당 연금개편안 본회의 상정시 전면 투쟁 예고…“정부 여당 거짓말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며 발표한 공무원 연금 개편안에 대해 공무원노동조합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본회의 상정 시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어 정부와 공무원의 싸움이 정국을 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 공무원연금개혁 태스크포스팀은 연금 지급 시기를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늦추고 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을 산정에 포함시켜 고위직의 지급액을 더 줄이고, 하위직 공무원의 지급액은 덜 줄이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새누리당 안 대로라면 2031년부터 모든 공무원은 65세부터 연금을 받고 재정안전화 기여금(상위 4.0% / 중위 3.0% / 하위 2.0%)를 떼게 된다. 결국 연금액 자체는 현행보다 낮아져 현행 5급 공무원이 받았던 254만원은 173만원으로, 9급 공무원은 167만원에서 130만원으로 줄어든다.
공무원노조, 교원단체총연합회, 사학연금공동대책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50개 단체로 이뤄진 공적연금개악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김성광 위원장은 2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공무원들이 퇴직하면 5년 동안 도둑질을 해먹으라는 소리와 같다”고 비판했다. 정년이 60세인데 65세부터 연금을 지급하는 방안은 공무원들의 노후 보장을 책임지지 않고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김 위원장은 또한 “공무원 입직자들이 퇴직할 때쯤 공무원연금이 사라질 것”이라며 “결국 국민연금으로 가는 것이다. 이럴러면 공무원연금법을 왜 운영하는지 모르겠다. 공무원은 민간 급여의 70% 수준이고 노동기본권과 정치적 자유도 제약을 받고 정년도 실제 보장받지 않고 평균이 51세”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한구 새누리당 공무원연금개혁 TF 위원장은 28일 의원총회에서 “앞으로는 공무원집단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해주는 건 적절치 않다. 차별 둘 일이 없다”며 “새로운 공무원들의 은퇴 시기가 되면 이제는 공무원연금이라고 해서 국민연금과 다를 게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재정건전성을 공무원연금 개편안의 명목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서도 “거짓말이다. 연금법을 개악하고 난 뒤 공무원의 사기 진작 방안을 내놓을 것이고 예산도 더 들어갈 것”이라며 “결국 말장난이다. 사적 연금 활성화 대책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노조 등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 유럽정상회의를 앞두고 “사적연금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자본시장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재벌 보험사 등의 배를 불리는 사적연금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공무원연금이 희생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OECD 가입국가의 GDP 대비 지출율이 2007년 기준 평균 1.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0.6%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복지 국가에도 가보지도 못하고 이런 개악안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 11월 1일 예정돼 있는 공무원 교원 100만 총궐기 대회 포스터
정용천 공무원노조 대변인은 “공적연금 운영은 검토도 안 하고 공무원 연금 재정을 줄여서 거기에서 돈을 빼보자는 것”이라며 “OECD 평균만큼 재정 지출을 하면 이해를 하지만 바닥 수준이다. 국민 정서를 호도하면서 죄다 내놓으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등은 28일부터 삭발투쟁을 시작으로 오는 11월 1일 공무원 및 교원 100만 총궐기 대회를 열고 새누리당 공무원연금 개편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정부가 28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시작해 각 지방을 돌며 공무원연금 제도 개선 의견을 수렴하는 ‘국민포럼’에 대해서도 보이콧 및 원천봉쇄 방침을 내렸다.
공무원연금 개편안에 대한 반대는 국회 본회의 상정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등은 1단계로 새누리당 개편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고, 2단계로 박근혜 정권과 공무원 노동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신임 투표를 진행할 에정이다. 마지막 3단계는 개편안이 소위를 통과할 경우 ‘연금 개악안이 통과될 시 전면 투쟁으로 전환한다’는 대의원 대회 조항에 따라 총파업 체제로 전환하고 본회의에 상정하면 조합원 투표를 실시해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프락치와 인권 운동가... 강철 김영환의 진짜 얼굴은? 1028 오마이뉴스
[주장]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증언 방청기... 전향과 인간에 대한 예의
▲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위원은 지난 21일 통진당 해산 심판의 증인으로 나섰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친북' 주사파 대부에서 '반북'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강철' 김영환. 지난 21일 오전 10시, 김영환을 보기 위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를 찾았다. 그는 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의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강철.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86년경, 대학 시절 때였다. 어느 때부턴가 새벽마다 동아리 방에 품성과 대중성을 강조한 팸플릿이 뿌려졌다. 당시 학생 운동권을 사로잡았던 그의 <강철서신>이었다. 20여 년 전, 그를 직접 만난 적도 있다. 시사 월간지 기자로 일하던 1991년 초였다.
'자민통과 한민전'이라는 예민한 주제의 기획 기사를 쓰던 나는 김영환을 인터뷰하기 위해 노량진역에 붙어 있던 역전 다방에서 만났다. 그때만 해도 김영환은 운동권의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그의 얼굴에서는 <강철서신>에서 강조하던 정직, 신의가 느껴졌다. 공안 기관의 감시를 받으며 활동했던 비합(법) 활동가에게서 느껴지는 경계심과 신중함도 풍겼다. 역전다방에서의 만남 이후 수개월 뒤, 강철은 반잠수정을 타고 북으로 밀입북했다. 이때 김일성 주석을 접견하고, 노동당에 가입했다. 김영환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점부터 반북으로 돌아서게 된다.
23년 만에 법정에서 다시 만난 '강철'
가을비가 내려서 그런가, 시월 중순치고 쌀쌀한 날씨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법정 안에는 희대의 증인이 출석했기 때문인지 방청석이 꽉 찼고,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목이 말랐지만 참아야 했다. 물병과 우산도 검시대에 맡기고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불그스레한 빛깔의 법복을 입은 재판관 9명이 입정했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법정 경위가 제지했다. 허가받은 기자만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다. 가운데 앉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최근 국정감사가 끝난 뒤 열린 오찬 모임에서 "(진보당 해산 심판 건을) 올해 안에 선고할 것"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먼저 청구인 정부 측 대리인을 맡은 공안검사와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의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가 제출한 서면 요지를 20여 분간 진술했다. 그리고 오전 10시 28분경 "증인신문, 김영환 앞으로 나오시죠"라는 헌재 소장의 지시에 따라 김영환이 증인 신문석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뭐냐?"는 판사의 질문에 "북한 인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김영환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대로 말하며, 만약 거짓말이 있다면 위증의 벌을 받을 것을 맹세"하고 자리에 앉았다. 청구인 측 검사의 증인 신문에서 김영환은 자신의 과거 운동권 경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자신은 1985년 NL 계열, 주사파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강철서신>의 작성이 NL의 확산에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김영환의 이력은 극좌에서 극우로 널뛰기한다.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사건으로 1986~1988년 3년 6개월 징역형을 받아 1988년 출소, 1991년 밀입북하여 김일성 면담, 1992년 민족민주혁명당(아래 민혁당)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1997년엔 민혁당 해산 주도, 1999년 공개적인 '사상전향서'를 국정원에 제출 후 공소 보류 처분으로 석방, 그리고 현재는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영환의 의심 "민혁당 잔류 세력 전향 않고, 폭력 혁명 추구"
▲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재판정의 진보당 간부들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16차 변론에 참석해 재판을 기다리는 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당 간부들. ⓒ 진보정치 백운종
그는 과거 민혁당 관련자 재판에서 자신이 한 진술 중에 '형식적 위증'(김영환은 1999년 하영옥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진술한 것이 편의상 위증한 것이지만 지금 헌재에서 진술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형식적 위증'이라는 말을 사용했다)이 있었음을 여러 차례 인정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날 재판에서 통합진보당 지도부, 국회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통합진보당 측 대리인 변호사들은 김영환이 국정원과 연계된 '프락치'라는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주사파를 일망타진하고 함정 수사를 하기 위해 국정원과 연계해 위장된 민혁당 활동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김영환은 법정 증언 중에 "대학 시절에 데카르트의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태도를 지녔다"는 말을 했다. 필자도 이런 김영환의 입장에 서서 세 시간이 넘는 증언을 청취하며, 기록했다. 나의 관심사는 '주사파 대부'라 불리던 인간 김영환의 진면목이었다. 그의 말대로 북한 인권운동가인가, 아니면 통합진보당 변호인의 추정대로 프락치인가?
김영환은 1991년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고, 그 다음 해인 1992년에 지하 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창당했다. 민혁당의 3대 노선은 '주체사상, 자주 민주 통일, 북한식 사회주의'라고 했다. 또 수령론을 신봉해야 조직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조직의 총책이었던 김영환이 지금은 주체사상을 유일 이념으로 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가 이처럼 남쪽 독재정권 타도에서 북한 독재 정권 타도로 전향한 이유는 뜻밖에 단순하다.
"1989년 동유럽 붕괴, 1990년 독일 통일, 1991년 방북을 통해 사회주의와 북한 체제에 대해 실망했다. 더욱 결정적으로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고루한 정도가 아닌 용납할 수 없는 인권 탄압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1991년 방북해서 김일성 주석과 당 간부들이 주체 사상에 대해 무지한 것을 확인한 뒤, 전향을 결심하기 오래 전부터 그는 이미 전향을 숙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1989년부터 사회주의체제에 관해 크게 회의를 느꼈고(아마 작은 회의는 더 오래 전부터 시작했겠지만), 주체사상의 '수령'을 직접 만나고 나서 실망했음에도, 1992년에 주사파 운동조직 민혁당을 만들고, 그 산하에 다양한 알오(RO, 혁명 조직)를 만들며 조직을 확대한 이유는 무얼까? 김영환은 이에 대해 법정에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통합진보당 측 대리인 변호사의 의심, 국정원 프락치 가능성
통합진보당 측 대리인들은 특히 이 대목에서 강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한마디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대리인 단장인 김선수 변호사는 증인 반대신문에서 사실상의 전향 후에도 민혁당을 창당하고 활동한 것에 의혹을 제기했다.
- 문: 증인은 1999년 10월 4일 국정원에서, "1991년 5월 북한을 방북하여 북이 인민의 자주성이 억압되는 사회이고, 김일성 주석은 주체사상을 잘 모르며, 북한이 관료주의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었다"는 취지로 반성문을 작성한 사실이 있나?
- 답: 있다.
- 문: 증인은 그러한 사실을 1991년에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1992년 3월 16일 민혁당을 창당하고,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등의 글을 14회 게재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였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 답: 1989년 동구권 멸망 때부터 기존 노선에 회의를 가졌고, 1991년 북한 방문 후 기존 노선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겠다고 확신을 했는데, 혼자 빠져나오는 것보다 함께 변화를 도모하고자 하여 계속 활동하였다.
1991년 밀입북 이후 북한 체제와 주체 사상을 회의한 김영환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북을 고무하고 찬양한 것에 대해 변호사들은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고 봤다. 그래서 이재화 변호사도 증인 반대 신문을 통해 '민혁당 위장 활동'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 문: 생각이 바뀌었음에도 민혁당을 창당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계속 쓰고 활동한 것은 국정원과 연계하여 민혁당으로 위장 활동하려 한 것 아니냐?
- 답: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얘기다. 그럴 동기와 이유도 없다. 내가 쓴 글을 보면, 미세하게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행간을 통해 변화된 사상을 얘기하려고 했다.
▲ 정당해산 청구 원천무효 지난 21일 '강철 김영환'이 증인으로 출석한 헌법재판소 앞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기각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 국민운동본부 회원들. ⓒ 진보정치 백운종
변호사뿐 아니라 김이수 재판관도 증인 김영환이 전향 후에도 '북한 지령'을 충실하게 따른 이유에 대해 신문했다.
- 문: 전향을 결심한 시기는?
- 답: 최종적으로 북한 정권 타도와 북한 민주화를 결심한 것은 1995년이었다.
- 문: (1995년에) 전향을 결심하였음에도 민혁당을 1997년에 해체하고, 그 후에도 왜 북한지령에 따른 활동을 했나.
- 답: 연계를 끊게 되면 북한이 하영옥을 비롯한 민혁당 간부들과 접촉해서 다른 연결선을 갖게 되고, 민혁당원 사상 전환의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공작 막기 위해 해체 하지 않고, 북한에도 해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나는 180도 전향했지만, 너는 절대로 변할 리가 없다?
통합진보당 측 대리인 변호사들은 자신의 전향은 정당하게 여기면서, 과거 동지들의 생각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변했을 리가 없고, 변할 수도 없다고 단정하는 이율배반적 논리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아래는 이에 대한 이재화 변호사의 반대 신문이다 .
- 문: 증인도 민혁당 활동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는데, 이석기 등 그 당시에 활동했던 이들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증인처럼 바뀔 가능성도 있는데, 무슨 근거로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고 단정하는가.
- 답: 조건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는 생각이 바뀔 수 없다. 그들을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그들을 접촉한 주변 사람들 이야기, TV 공개토론, 세미나, 과 동창회 발언 등을 종합해 보건대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문: 꼭 공개적으로 전향을 해야 생각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나? 현장이나 공당에서 계속 활동하면서도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 답: 이석기의 알오(RO) 같은 조직은 생각의 변화를 자유롭게 표현할 분위기가 아니다. 설령 생각이 바뀌어도, 바뀐 생각을 공공연히 얘기하기 어렵다.
한 재판관은 이와 관련 증인 김영환에게 "일부에서는 (여전히) 북을 추종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똑같이 활동하던 다른 사람들은 왜 전향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에 관해 김영환은 매우 감성적인 해석을 했다.
"수십 년간 자신의 인생, 활동, 모든 것을 규정했던 사상 노선을 부정하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북의 진실에 눈 감고 귀 막는 것이다. 조직원끼리는 친형제보다 더 끈끈한 관계인데, 이탈하는 순간 관계가 소원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철저히 고립되는 걸 두려워한다."
본인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남들은 그럴 리 없다고 주장하는 김영환은 과거의 '동지'들은 주체 사상과 폭력 혁명론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 증언했다. 그뿐 아니라 김선수 변호사의 반대 신문 과정에서 민혁당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이정희 대표도 지하 조직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 문 : (2012년 8월 6일자 <뉴데일리> 기사를 제시하며) 위 인터뷰에서 "이정희는 어쨌든 지하조직원으로 가입했겠죠"라고 대답했는데, 맞나?
- 답: 맞다. 나는 지하당을 활동했고, 운동권 활동 방식을 안다. 민혁당 계열이 핵심요직을 확고히 장악한 통진당에서 이정희가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건... 내가 객관적으로 추론할 때 민혁당 혹은 이름을 바꾼 어떤 조직이 있다면, 그 지하조직에 어떤 식으로든 가입해서 활동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성 얘기를 한 것이다.
- 문: 추측이었나?
- 답: "가입했겠죠"라고 추측한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뉴데일리> 인터뷰와 관련, 지난 8월 22일 김영환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김영환은 재판 내내 방청석에서 증언을 청취하던 통합진보당 간부(유선희 최고위원, 민병렬 최고위원, 안동섭 사무총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도 여전히 과거의 이념과 노선을 추구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전향한 혁명가가, 자신이 보기에 전향하지 않은 '동지'들에게 전향을 강요하며 옛 동지들의 면전에서 이들을 권력 기관에 고발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다.
전향과 인간에 대한 예의
▲ "올해 안에 선고"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은 지난 17일 헌재 국정감사가 끝난 뒤 열린 오찬 모임에서 "(진보당 해산 심판 건을) 올해 안에 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진보정치 백운종
사실 전향 자체가 선악은 아니다. 지동설이라는 객관적 진리로 다가선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은 위대한 전향이다. 특히 진보를 추구하는 이는 수시로 변하고, 전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도 수구 보수가 되고, 퇴물이 된다.
하지만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전향을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중요하다. 이재화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트위터를 통해 "(전향은 개인적 자유지만) 보수건 진보건 인간은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 김영환, 그에겐 아무런 철학도 논리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단지 수구 세력이 원하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저렴함만 느껴졌다"며 김영환의 증언 방식을 비판했다.
회의, 의심은 금지된 것을 대상으로 할 때 진정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교회가 천동설 주장할 때 목숨 걸고 지동설 주장하고, 독재 정권이 반공을 말할 때 감옥갈 각오하고 '통일이 국시다'라고 말하는 게 진정한 용기다.
전향을 한 뒤 처벌을 받는다면 모르겠지만, 전향한 대가로 감옥갈 일을 면제 받는다면, 그 전향의 순수성을 누가 믿겠는가? 자신이 정말 인권 운동가이고, 혁명가라면 설령 좌에서 우로 전향을 했다 하더라도 사상의 자유를 법정에서 외쳐야 하지 않을까? 전향에도 품격이 있어야 할 것이다.
3시간 넘게 김영환의 법정 증언을 들은 뒤 처음 던진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김영환은 인권운동가인가, 고급 프락치인가? 지금으로서는 역사의 법정에서, 양심의 심판관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일로 보인다.
19년 전 딱 한번 본 신해철, 그에게 내 뒤태 쪼로록 내보이며 종종 걸음으로 나왔던 그 찰나의 2분! 1028 경향
신해철이 떠나 갔네요. 무한궤도 안으로 빠져들어간 그는 마치 얄리를 만나러 간 양, 거침없이 떠나 갔어요. 신해철은 우리의 기대처럼 그 안에서 존재할까요.
살아생전 병아리마저 날아오르기를 바랐지만, 미약한 삶의 존재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끈은 끝내 놓치고 말았네요.
돌아보면 평생 그를 딱 한번 봤어요. 유명 스타와 초심 기자의 만남은 즐거울 리 없습니다. 제 기억 속 신해철은 유쾌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아래 사진이 그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을 기록한 19년 전 기사 입니다.
톱스타이던 그가 날 얼마나 마음 졸이게 하던지... 힘없는 새내기 기자는 한 두시간 여 기다린 것 같아요. 그리고 2분간의 너무 짧은 인터뷰~ 당시는 속상했고, 한동안 헛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아쉬움 속으로 달아나네요. 동갑내기 의 사망 소식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참 그는 많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제가 그 앞에 여전히 작아짐을 느끼는 것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여전히 제 스스로를 각성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는 2008년 '쾌변독설'에서 당시 시대를 가르는 많은 말들을 남겼습니다. 말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을 등진 것이 거침없이 이뤄진 것처럼 말이죠.
- 일단 우리 대중들은 싸가지가 없어요. 인터넷 보세요.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뮤지션을 우상으로 떠받들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안해준다는 얘기죠.(인터넷 문화에 대해)
-물개 불알 뜯어다 먹고 온갖 정력식에 대해서는 개난리를 치는 나라가…. 아랫도리 일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이 많고 각종 매춘에서부터 변형된 목욕문화에다가 밤거리는 온통 개판이 되어 있는데, 연예인들은 똥도 싸지 말고 섹스도 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 거죠.(‘황수정 최음제 발언’ 논란을 두고)
-성기를 넣었네 뺐네 그걸 논하고 있어야 하니까. 국가 공권력이 국민들에게 세금을 받아서 유부남, 유부녀가 성기를 넣었나 뺐나 그런 것을 조사해야되냐고요. 휴지나 줍고(웃음). 뭐하는 짓이냐고 이게.(간통제 폐지에 대해)
-저는 클래스가 나눠진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클래스가 나눠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게 더 문제라고 봐요. 한국사람들은 조사하면 다 중산층이라고 하잖아요. 없는 놈은 자존심 상해서 중산층이라고 하고, 있는 놈은 해코지 당할까봐 불안해서 중산층이라고 하고, 무슨 이런 나라가 어딨어요? 전 국민의 99%가 중산층이고 빈곤층은 전재산 30만원도 안 되는 전두환밖에 없잖아요.(계급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일단 많이 화가 났었구요. 저도 라디오에서 카우치 보고 뭐라고 그랬죠. 공중파에서 코너 하나를 만들어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깽판치고 나오는 건 좋은데 남의 앞길을 막아버린 건 문제가 있죠.(카우치 성기 노출 사건을 두고)
-대부업 자체가 불법은 아닌데 그걸 연예인들이 광고한다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죠. 대부업도 광고시간대라든가 채널이라든가 이런 것을 제한하는 성격을 가지고 얘기를 해야겠죠. 대부업이 꼭 사람들한테 폐를 끼친다고 할 수는 없는 건데, 급한데 대부업의 도움받아서 자기 인생 잘된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급할 때 누가 100만원 꿔준다고 하면 얼마나 좋아요.(연예인 대부업 광고 논란에 대한 생각을 밝히던 중)
-악플은 범죄 아닌가요? 내가 우리 집에 침입한 불량배한테 ‘동네 사람들 이 새끼 좀 봐’하면서 때렸으면 침입한 놈이 먼저 문제가 있는 거지.(악플 다는 사람들을 추적해서 공격하겠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나도 그처럼 각성을 하며 세상살이를 할 수 있을 까요. 동갑내기란 사실이 여전히 부끄러운 나는, 이 부끄러움으로 세상 살이에 좀 더 진중한 액션을 더해야 할 듯 합니다. 엄숙주의가 아닌, 스스로의 행복이 남들의 행복과 동일시되는 그 무엇을 향해 조금도 면밀히, 세밀히...
신해철, 당신 잘가오!
‘600만 비정규직 시대’…지난해 대비 정규직과 차별 확대 1028 민중의 소리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처음으로 60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이들의 복지 수준은 지난해보다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607만7천명으로 지난해보다 13만1천명(2.2%)이 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600만명을 넘어선 것은 2002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유형별로는 ‘시간제 노동자’가 203만2천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4만8천명(7.9%)이 늘어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자발적 ‘시간선택제 노동자’와는 다소 다른 개념인 ‘시간제 노동자’는 1주일에 36시간 미만을 일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현재로서는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관련한 통계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통계청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 후 내년 상반기 중 관련 통계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비정규직 유형인 ‘한시적 노동자’는 350만8천명으로 1년 전보다 7만6천명(2.2%)이 늘었다. 한시적 노동자란 근로계약기간을 기준으로 한 기간제·비기간제 노동자를 말한다.
파견·용역·일일 노동자 등 ‘비전형 노동자’는 211만2천명으로 10만2천명(-4.6%)이 줄었다. 성별로 보면 여자(53.5%)의 비중이 남자(46.5%)보다 높게 나타났다. 남자는 282만6천명으로 1년 전보다 2.4% 늘었고, 여자는 325만1천명으로 2.0% 증가했다. 연령대별로는 40대(21.3%)가 가장 많았고, 이어 50대(21.1%), 60세 이상(19.5%), 20대(17.9%), 30대(17.2%) 순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과 20대는 1년 전에 비해 각각 11.1%와 5.8% 증가한 반면, 40대(-2.0%)와 30대(-1.6%), 50대(-0.8%)는 감소했다.
교육정도별로는 고졸(8만4천명, 3.2%)과 대졸 이상(7만2천명, 3.8%)에서는 1년 전보다 비정규직이 증가했고, 중졸 이하(-2만5천명, -1.6%)는 감소했다.
더욱 열악해진 비정규직 복지수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임금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23만1천원으로 1년전보다 2.3% 증가했다. 그중 정규직의 임금은 260만4천억원으로 2.3% 늘었지만 비정규직은 145만3천원으로 1.8% 증가에 그쳤다. 즉,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더욱 확대된 것이다.
퇴직금이나 시간외수당 등 근로복지 수혜 측면에서도 비정규직의 여건은 이전보다 악화됐다. 정규직의 퇴직금 수혜율은 82.0%로 0.2%가 증가한 반면, 비정규직은 39.5%로 0.4%가 떨어졌다. 시간외수당과 유급 휴일 측면에서도 정규직의 수혜율이 각각 0.4%, 0.7%가 오른 반면 비정규직은 0.6%, 1.0%가 내렸다. 임금 노동자의 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38.1시간으로 1년전보다 0.1시간 줄었다. 정규직이 40.1시간으로 0.1시간 줄어드는 동안 비정규직은 33.8시간으로 0.3시간 감소했다. 임금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2.5%였다. 정규직 노동자의 가입률은 16.9%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3.1%보다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美 조사단장, 천안함 함미 인양 순간 “수중폭발로 선체 파손” 보고1028 민중의 소리
토마스 에클스 미국측 조사단장, 함미 인양 날 침몰원인 상부 보고해
에클스 미국 측 조사단장이 4월 15일 상부에 보고한 이메일 전문, 미 해군 공개 문서 갈무리ⓒ민중의소리
2010년 3월 26일(아래 현지시각) 발생해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 사건에 관해 당시 미국 측 조사단장이었던 토마스 에클스 전 미 해군 소장은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던 순간인 같은 해 4월 15일, 이미 수중 폭발에 의한 침몰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제대로 천안함 침몰에 관한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내린 그의 이러한 결론은 그 후 5월 20일, 우리 국방부가 발표한 천안함 침몰사고 원인에 관한 공식 발표와도 그대로 일치하고 있어 당시 구성된 민간 합동조사단이 들러리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재미 잠수함 전문가인 안수명 박사가 미 해군으로부터 정보자유법에 의거해 받은 문서를 민중의소리가 분석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천안함 침몰 사건에 관해 미국 측 조사단장이었던 토마스 J. 에클스 소장은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던 날인 2010년 4월 15일 오후 1시 38분(한국 시각) 당시 상관이었던 존 M. 버드 미 해군 중장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수중 폭발(UNDEX, An underwater explosion)이 선체가 파손된 좌현(port) 쪽에서 일어났다”고 밝혔다.
그는 이 이메일에서 “이것은 비접촉의 근접 기폭 폭발로 믿어지며, 아직 어떤 대상(platform) 이 그 상황을 일으켰는지는 말할 근거는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배의 왼쪽 용골 아래에서 폭발했다”고 밝혔다. 이어 에클스는 “선체의 지름으로 볼 때, 이는 (선체 아래) 1에서 3미터 사이에서 폭발한 것으로 보이나 실질적인 조사가 요구된다”고 적시했다.
에클스는 이어 “현장에서 한국 연락장성(LGEN)을 만났으며 독도함으로 돌아올 예정이고 그가(한국 장성) 한국 지도자에게 첫 보고를 하는 것을 돕기 위해 10분 정도 미팅을 가질 것”이라면서 “그는(한국 장성) 계속 그것이 어뢰냐고 물었지만, 그의 전문가와 나는 모두 어뢰인지 기뢰인지는 이 조사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이메일은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으로 인양된 직후 작성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에클스는 같은 내용의 이 메일을 이날 오후 3시 38분경 당시 미 7함대 상륙군사령관이었던 해군 소장 리처드 랜돌트(Richard D. Landolt)와 당시 주한 미해군사령관이었던 피터 구마타오타오(Peter A. Gumataotao)에게도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에클스가 이날 미 해군 당국으로 보낸 이 이메일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이 내용은 공교롭게도 그 다음 날인 16일 한국 국방부에서 당시 민간합동 조사단 공동 단장이었던 박정이 해군 중장과 윤덕용 교수가 발표한 내용과 그대로 일치하며 이후 한 달여 후인 5월 20일 우리 국방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 발표와 그대로 일치했다.
함미 인양한 순간, 침몰 원인을 파악했다?
에클스가 이 이메일을 보낸 4월 15일 오후 2시 전후의 천안함 함미 인양 상황은 당시 오전 9시부터 진행된 인양 작업이 함미 물빼기 등을 완료해 바지선에 실은 직후였으며 이 당시 천안함을 바지선에 고정했던 장치가 풀려 다시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당일 오후 2시 43분경 YTN 방송은 “현재 거치대 파손이라는 돌발 변수에 부딪쳐 있는데 현재 해난구조대 대원들이 함미 안에서 시신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국방부는 오늘 오전 비공개 브리핑에서 함미를 바지선에 올려놓는 대로 민군합동조사단 38명이 바지선에 탑승해 1차 현장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에클스 조사단장이 이메일을 발송한 당시 천안함 인양 상황을 보도하는 YTN, YTN 보도 영상 갈무리ⓒ민중의소리
따라서 이러한 보도를 고려하더라도 에클스 단장은 인양된 함미 부분을 육안으로 한번 훑여본 후 자신이 이메일 제목에서 언급한 대로 이런 “민감하고(sensitive) 중요한(important)” 결론을 이미 내리고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음 날인 16일 윤덕용 민간 합동조사단장은 국방부에서 “천안함 바닥면 근처에는 선체의 좌측에서 큰 힘이 작용해 선체를 포함한 철판들이 안쪽으로 휘어 있고 우측에는 파손이 생겨서 열려 있어 마치 우측에서 폭발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며 “이런 형태의 파손은 외부 폭발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 전문가 판단”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정황상 윤 조사단장이 말한 당시 전문가는 에클스 단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번 문서 분석 과정에서 에클스는 한국 측이 이러한 사실을 그 다음 날 발표할 것이라는 보고를 상부에 하면서도 당시 박정이 한국 국방부 측 조사단장이 함미 인양 당일 저녁 연락관을 보내 에클스에게 다음 날 기자 회견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에클스는 “4성(star) 장군이 언론 접촉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거부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16일 당일 윤덕용 민간조사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외부폭발 원인이 기뢰인지 혹은 어뢰인지 최종적인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함수를 인양하고 잔해물을 수거한 뒤에 세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었다. 그러나 이후 5월 20일과 9월 13일 발표한 최종 조사 결과에서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됐고,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었다.
이는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던 날에 에클스가 침몰의 원인으로 주장한 내용과 수심 깊이만 다소 차이가 있고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북한 어뢰에 관한 언급만 없을 뿐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 이에 관해 당시 천안함 민간조사위원이었던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물속에 있던 천안함의 함미를 그것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건 발생 20일 만에 인양해 막 바지선으로 올려놓던 순간 에클스 단장이 이미 이런 결론을 내렸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라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추후 모든 조사 과정과 활동이 이 에클스 미국 조사단장이 내린 결론을 꿰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이어 “함수는 여전히 물속에 있고 인양된 함미를 그저 한번 훑어 본 순간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은 에클스가 주장하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의 일”이라며 “미국이 단순히 천안함 사고 원인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협조, 혹은 인양에 대한 도움을 주겠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사건의 처음부터 매우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합조단의 최종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에클스 단장의 글, 자료 22128쪽 갈무리ⓒ미 해군
합조단의 최종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호주 해군 안전시스템 소장의 글, 자료 2336쪽 갈무리ⓒ미 해군
에클스 “개인 의견 개진한 것일 뿐… 추후 조사과정에서 진실로 밝혀졌다” 주장
한편, 이에 관해 지난 2013년 9월, 미 해군을 전역하고 현재 워싱턴 D.C에서 군수 선박 제조 및 시스템 관련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토마스 에클스 전 미 해군 소장은 27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이메일은 천안함 침몰 원인에 관한 개인 의견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에클스 전 미국 측 조사단장과의 전화 인터뷰 요지이다.
기자:이미 귀하에게 이메일로 미 해군이 공개한 자료를 보냈다. 당시 한국 시각 4월 15일, 이 이메일을 작성해 상부에 보고한 사실이 있는가?
에클스:그렇게 한 것으로 안다. 다만 시간이 언제이었는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자:그런데 당시 이메일 작성 시간이 4월 15일 오후이다. 막 천안함이 바지선으로 인양된 직후인데 어떻게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는가?
에클스:평택에 있는 천안함을 본 적이 있는가? 천안함을 본다면 누가 봐도 그러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후 모든 조사과정과 실험에서 그와 같은 결론으로 나왔다.
기자:질문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어떻게 당시 막 인양된 천안함 함미만을 막 본 순간에 그러한 결론을 내렸는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떻게 천안함 밑 1-3미터 아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론은 결국 최종 결론이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짜맞추기 의혹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클스: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천안함을 누가 봐도 외부에서의 압력(에클스는 over pressure condition이라고 말함)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비조사에서 나는 전문가로서 당시의 내 개인적인 의견을 전했을 뿐이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그러한 점이 드러난 것으로 안다.
기자:당시 이 이메일을 보낸 순간 천안함 함미(wreckage)를 본 것은 맞는가? 그날 언제부터 바지선이나 현장에 있었나? 박정이 중장과 윤덕용 교수도 그 자리에 있었나?
에클스:아마 확실하지는 않지만, 박 중장은 있었고 윤 교수는 당시 현장에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하루 종일 보트(boat)에 있었다.
기자:한국 시각 당일 오후 1시 40분경에 그러한 민감한 내용을 이메일로 보고한 다른 이유라도 있는가?
에클스:블랙베리로 보낸 것일 수도 있고 시간은 미국 시각인지도 모른다. (이에 기자가 여러 문서의 시차(13시간 차이)를 이야기하며 되묻자 그제야 정확한 시간은 모르나 오후쯤 보낸 것은 맞는다고 대답함) 다시 강조하지만, 그것은 나의 개인 의견이었다.
기자:바로 그 점 때문에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다. 그 개인 의견이 결국 귀하도 알다시피 한 달 후인 5월 20일 조사결과 발표와 이후 9월 13일 최종 조사결과 발표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바로 이 점을 질문하는 것이다. 똑같이 결론이 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클스:무슨 의미의 질문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기자:(다시 질문 내용을 언급하며) 비유해서 말하자면 귀하는 거의 아마 신의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에클스:그러한 언급은 어처구니(ridiculous)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내 개인 의견을 전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천안함을 보아도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기자:일부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의견을 내 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리고 아직도 많은 한국 국민들은 천안함 침몰 사건에 관한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 귀하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인터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천안함의 함미만을 본 순간 인양하는 당일, 어떻게 비접촉 외부 폭발이라고 결론을 내렸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천안함 침몰 사건의 결론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 다른 할 말은 없는가?
에클스:나를 비롯해 한국 관계자는 물론 다국적 관계자들이 모든 조사과정에서 컴퓨터 모델링을 비롯해 많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여러 실험과 검증을 통해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규명했다고 본다. 지금도 그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박정희의 엽색행각’ 기사 펌질만 해도 유죄? 1030 미디어오늘
재판부 “사실확인노력 안 했다”… 전직 방통위원 책 “궁정동 드나는 여인 100명도 넘어”도 거짓?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훼손하거나 모욕했다는 이유로 고발장과 검찰 수사가 빈발하면서 박 대통령을 비롯해 동생 박지만씨,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혹을 제기했던 일반인들의 처벌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조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최근 모두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기소당한 뒤 속전속결로 유죄확정 판결(대법원)을 받았거나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수난을 치르고 있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차영민 부장판사)는 지난 7월 3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정규씨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도 지난 5월 16일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고창규씨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을 확정 판결했다.
이들이 선거법 위반 혐의사실은 대선 기간 중인 2012년 9월 미주한인신문 ‘한겨레저널’에 실린 ‘[김현철 칼럼] 박정희의 승은 입은 200여 여인들’이라는 글을 퍼와 다음 아고라(박정규)와 트위터(고창규, 트위터 닉네임 ‘노루귀’)에 옮겼다는 것이다. 원로언론인으로 알려진 김현철씨가 쓴 글의 주요 내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부녀를 포함한 여성 200여 명을 일회용품 내지 소모품으로 취급해 성노리개로 삼았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문제의 여성은 김삼화라는 영화배우로 갓 결혼해 애도 있는 여성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를 옮긴 고씨와 박씨는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가 아버지의 이런 행위에 대해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의 한 장면.
재판부는 이 글의 내용과 이 글을 퍼나른 이들의 행태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런 의혹이 어떤 이유로 사실무근인지에 대해서는 재판부 스스로도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고창규씨와 박정규씨는 법정에 △원글 작성자인 김현철씨로부터 본래 한겨레저널에 기고한 칼럼 △‘김삼화가 박정희와의 관계 자세히 고백. 노이로제 걸려있어’라고 기재된 김현철의 메모 △김현철씨가 직접 문제의 여성에 대해 진술한 게 담긴 동영상 △김씨가 지난해 11월 11일 작성한 사실확인서 △김삼화에 대한 영화데이터베이스 자료화면 출력 자료 등을 제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연합뉴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제의 여성이 언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불려갔는지, 언제 미국으로 이민가게 됐는지 구체적 일시가 나타나있지 않고, 메모에도 문제 여성과 박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은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동영상에서도 김씨가 문제여성에 대해 프라이버시 때문에 인적사항 공개를 못한다고 진술할 뿐 칼럼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실확인서 역시 김삼화의 실명이 직접 언급된 것을 제외하고는 위 동영상 내용과 대동소이하다”며 “이 자료들 외에 별도의 구체성 있는 소명 자료를 제출하고 있지 않는 이상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로서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재판부는 고창규씨와 박정규씨가 모두 의혹의 진실여부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플로리다 지역 한인신문 한겨레저널에만 게재됐을 뿐 국내 어론에 보도된 적이 없어 칼럼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충분히 품을 만한 점이 있었는데도 사실확인에 소홀했다며 미필적 허위사실 공표의 고의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재판부는 두 피고인이 박정희의 여인들의 실체에 대해 사실확인 노력을 한 뒤 그런 언론의 칼럼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다.이를 두고 피고들은 정치재판이고 반발하며 재심을 청구하거나 미국 법원을 통해 재판의 틀을 바꾸겠다며 비판했다.
고창규씨는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법원은 글쓴이인 김현철씨의 자료도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전형적인 권력 눈치보기식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고씨는 “정권이 바뀌면 무조건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며 “박정희가 성문란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이 얘기를 한 사람에게 ‘이것을 봤느냐’는 식의 질문을 하는 썩은 재판부에 맡길 수 없다”고 밝혔다.
박정규씨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한 질문은 ‘당신이 직접 봤느냐’는 것이었다”며 “언론 보도 스크랩 조차 위조로 본다면 언론자유도 침해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더구나 해당 언론에 대해서는 정작 조치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김현철씨가 미국 시민권자이며 김현철씨에 대해 제재 조치를 거치려면 반드시 미국을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 검찰이 언론자유를 침해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날테니 그런 그 글을 옮긴 사람만 처벌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박씨는 특히 “칼럼이 허위사실이라면, 정확히 어느 대목이 거짓인지 짚어야 하나 모조리 다 허위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허위사실이라는 증거를 밝히지 못한채 허위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재판 아니겠느냐. 아부하기 위한 재판”이라고 성토했다. 재판부의 판단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인들이 정말 허위의 사실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김충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22년 전인 1992년 집필한 저서 <남산의 부장들>에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연예인 여성들과 몰래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는 증언이 나와있다.
지난 2012년 11월 27일 출간된 '남산의 부장들' 개정증보판.
김 전 위원은 저서에서 1980년 1월 25일 육군고등군법회의 김재규(8대 중정부장) 재판에서 박선호(80년 5월 사형집행)가 증언한 내용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궁정동 식당을 가리켜 어느 검찰관이 ‘그 집은 사람 죽이는 곳이냐’고 질문아닌 질문을 했다. 그 집은 그런 집이 아니다. 대통령이 오시는 곳이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연예인이 드나든다. 그 명단을 밝히면 시끄러워질 것이다. 거기에서 있었던 일을 폭로하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한달이면 열 번이나 그곳에 왔다”
김 전 위원은 “당시 박선호는 예비역 대령으로 중정 의전과장이나 역할은 각하를 위한 채홍사였다”며 “또한 김재규는 80년 1월 15일 강신옥 변호사에게 박정희 사생활 몇가지를 얘기했다”고 다음과 같이 전했다.
“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은 100명 정도 된다. 임신해서 낙태한 사람도 있고…. 징징 울고 불응하겠다고 해서 배우 K모, H모 양은 오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간호여성이 임신해서 애먹기도 하고…”
김 전 위원은 박선호에 대한 변호인 접견 메모 일부라며 이렇게 제시하기도 했다.
“부장님(김재규)에게 도저히 더 하기 힘드니 그만 두겠다고 했다. (다녀간) 여자들에게도 보안상(좋지 않으니) 물러나야겠다고 했다. 1년 동안 하느라고 했습니다마는 더는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장님은 ‘궁정동 일을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리면서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당일에도 심수봉씨가 현장에 있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고발 또는 검찰 수사 및 재판을 받는 사건이 결국 이렇게 유죄로 이어지는 것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한 장면.
벌금형이 확정된 고창규는 인터뷰에서 “이 정권의 간보기는 끝났다. 1년차 2년차 들어와 인터넷 감시와 탄압이 상시화하는 것을 넘어 이젠 공인들이나 외신기자도 고발과 기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이들까지 고발당하면 일반인은 글을 못쓴다. 숨죽이고 몇 년 지나고 쓰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위축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씨는 “이는 온라인 상에서의 ‘공안’ 탄압으로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온라인에서 벌어진 일을 오프로 끌어내 처벌하는 것을 독재정권보다 더 심하다”고 평가했다.
1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현재 항소심 진행중인 박정규씨는 “대통령을 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며 “이 세상에 욕 안먹는 대통령이 어디있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을 하니 당연히 욕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대통령 욕한다고 검찰이 수사한다는 것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을 위한 수사라고밖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그런데 법원마저 그에 영합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며 “결국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전 국민을 단속해서 대통령 명예만 지키면 된다? 1030 미디어오늘
[언론포커스] 변호사가 보는 신공안시대의 ‘사이버망명’
이른바 ‘사이버망명’이 줄을 잇고 있다. 유사한 사례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국내업체에만 적용된 성인인증제도로 인하여 44%에 달하던 판도라티브이의 시장점유율이 3.7%로 떨어지면서 그 빈자리는 해외업체인 유튜브가 메웠다. MBC 작가의 이메일 내용이 수사기관에 의해 광범위하게 수집되었다는 보도 이후, 다수의 이메일 서비스 이용자들이 대거 지메일 등 해외업체가 운영하는 이메일 서비스로 옮겨가는 일도 벌어졌었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텔레그램 망명은 그 규모나 사회적 파장 면에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된 다음카카오는 회사의 존폐문제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처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감청영장의 집행을 거부하겠다고 나섰고, 사이버 사찰 논란이 2014년 국정감사의 핫이슈가 되고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작된 사이버공안시대
문제의 출발은 지난 9월 16일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취지의 대통령 발언이다. 이틀 후 검찰은 “인터넷을 실시간 모니터링 해 허위사실 유포자를 적발, 엄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 대표가 ‘사이버 유언비어 엄단 유관기관 대책회의’에 참석했음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SNS 서비스 이용자들의 텔레그램으로의 대규모 망명이 시작되었다. 논란이 커지자 명예훼손은 실시간 감청의 대상이 아니라는 등의 해명이 있었으나 망명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몇 마디 억지해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오히려 불신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이러한 불신의 시작은 검찰의 사이버 명예훼손 엄단 방침 발표였음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일단 발표 시점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보다 큰 문제점은 사이버 명예훼손을 엄단하기 위해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겠다는 발표내용이 이용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명예훼손 범죄의 적발을 위해 실시간 감청, 즉 통신비밀보호법상의 통신제한조치가 가능하지 않다는 법령의 규정에 입각한 해명을 했다. 그러나 이 해명으로는 카카오톡 등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적 대화 내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사기관에 의해 수집될 수 있다는 이용자의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했다.
▲ JTBC <뉴스9> '박 대통령, 수사·기소권 부여 '반대'' 9월 16일 보도화면 갈무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정부의 강경 태도
인터넷상에서의 명예훼손이 타인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어 표현의 자유, 통신의 자유 등 개인의 기본권에 일정정도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실시간 모니터링이라는 선제적 수사 방식이 과연 가능하고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검찰은 이와 관련하여 인터넷 상 허위사실 유포로 인하여 연예인, 학생 등이 자살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고 있어 공익수호의 의무가 있는 검찰이 이를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검찰은 명예훼손 행위를 적발하기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이라는 수사방법이 오히려 헌법상 보장된 통신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인터넷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이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서는 처벌할 수 없는 범죄의 유형이다. 단순한 허위사실의 유포는 처벌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허위사실의 유포가 개인의 인격권 침해로 이어지고 이러한 점을 피해자가 인식하여 시정을 요구한 경우에 한하여 공권력을 발동하여야 한다는 것이 입법자의 의도로 보인다. 이러한 의도에는 당사자의 요청 없는 명예훼손 수사 및 처벌이 가져올 결과, 즉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대원칙인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일반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 또한 고려되었다고 본다.
더구나 제3자인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해당 표현행위가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로 인하여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된 것인지를 당사자의 진술이 없는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이러한 점이 수사기관의 선제적 인지 수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수사기관의 선제적 인지수사에 의해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이 내려진 사례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명예훼손 엄단 강조하는 정부 태도는 국민 겁박용?
이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선제적 수사가 용이하지도 않고,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이버 망명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지난 15일 ‘사이버 사찰’ 논란에 대해서는 적극 해명하되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엄정 대응한다는 기존 방침은 유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정부의 강경태도를 보면, 개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대응 때문이라는 공개된 발표와는 다른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실제 많은 국민들이 이번 사이버 검열 엄포에 대해 대통령과 정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이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자기검열을 강화시키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에서 발췌했습니다.)
월급쟁이 절반 한달 200만원도 못번다 1030세계
1900만명에 육박하는 임금근로자 가운데 절반가량은 한 달 월급이 200만원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박·음식업과 농림어업 종사자는 임금 200만원 미만이 80%를 넘었다. 반면에 출판·영상,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근로자는 고임금을 받아 산업별 임금 격차가 두드러졌다.
30일 통계청의 ‘2014 상반기(4월) 지역별 고용조사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 1873만4000명 중 49.6%가 월 200만원도 못 받았다. 임금이 200만원에서 300만원 미만은 24.8%, 300만원에서 400만원 미만은 13.1%, 400만원 이상은 12.4%였다. 산업별로 임금 200만원 미만이 차지하는 비율은 숙박·음식업점업이 84.3%, 농림어업이 83.6%로 매우 높았다. 이들 두 산업은 임시·일용자 비중이 80% 안팎이다. 여기에 교육 정도가 농림어업의 경우 중졸 이하 70.2%, 숙박·음식점업은 고졸 53.3%였다.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서비스업(건물청소, 경비, 여행사 등)도 200만원 미만이 76.0%로 많았다.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 또한 68.0%가 월 200만원도 못 받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밖에 ▲협회·단체, 수리·기타 개인서비스업(66.0%) ▲예술·스포츠·여가 관련 서비스업(64.7%) ▲부동산업·임대업(64.0%) 등도 60%를 넘었다.
반면에 출판·영상·방송통신·정보서비스업은 200만원 미만이 22.4%로 가장 낮았다.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도 임금 200만원 미만 비율은 22.9%, 금융·보험업이 25.4%에 불과했다. 공무원들이 주로 맡는 공공행정·국방·사회보장행정(35.6%)과 제조업(38.3%), 건설업(39.2%), 운수업(39.3%)도 낮은 편이었다. 이들 산업에는 대졸 이상 비율이 80%대이고, 상용근로자도 80∼90%대에 이른다.
직업별 임금 수준을 보면 관리자는 월 400만원 이상이 69.9%나 됐다. 전문가·관련종사자가 임금 400만원 이상이 두 번째로 많았지만 22.4%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들 중 절반 이상(53.6%)은 100만원에서 300만원 미만을 받았다. 이에 비해 단순노무자는 임금 400만원 이상이 0.2%, 농림어업숙련종사자는 2.8%, 서비스종사자는 4.5%에 불과했다.
직업별로 성별 취업자 비율을 보면 관리자는 남자 비율이 88.7%, 여자 비율이 11.3%로 격차가 가장 컸다. 다만, 지난해보다는 남자 비율이 0.2%포인트 정도 줄었다. 기능원·관련 기능 종사자(87.3%),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종사자(86.5%)에서도 남자 비율이 높았다.
올해 상반기(4월) 전체 취업자는 2568만4000명이었다. 산업별로는 제조업(16.7%)과 도·소매업(14.6%), 숙박·음식점업(8.0%) 종사자가 가장 많았다.
내년 초등 <사회> "박정희 독재 감추기 심각" 1030 오마이뉴스
[분석] 올해 교과서와 내년 적용 '실험본' 교과서 비교... 교육부 관료가 기획
▲ 초등<사회5-2> 실험본 교과서(오른쪽)와 올해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표지. ⓒ 윤근혁
내년부터 전국의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배울 예정인 <사회> 교과서가 이전 교과서에 비해 '박정희 미화, 독재 감추기가 심각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국정교과서인 이 교과서의 편찬기획자 4명은 모두 교육부 관료들이다.
이런 사실은 30일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과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들이 내년 적용 초등 <사회 5-2> 실험본 교과서와 올해 같은 과목의 교과서를 입수해 해당 내용을 비교,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실험본은 정식 적용 전 시범학교에 먼저 배포하는 교과서인데, 이 내용 가운데 일부는 수정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유신 헌법 등 독재 행위를 주도한 주체를 이전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명시한 반면, 실험본은 '박정희 정부' 또는 '정부'로 바꿔치기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서술로 보인다.
사라진 박정희 책임... "박정희→(박정희) 정부"로 바꿔치기
이를테면 이전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다"(114쪽)고 서술한 반면, 실험본은 "박정희 정부는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다"(145쪽)고 돼 있다. 유신체제에서의 국민 탄압에 대해서도 이전 교과서는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에 강하게 맞섰다"(114쪽)고 표현했지만, 실험본은 "정부는 유신 헌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였다"(145쪽)고 적었다.
주체를 빼놓는 서술 방식은 이 뿐만이 아니다.
▲ 분석 결과. ⓒ 윤근혁
이전 교과서는 "유신 헌법에 의해 대통령 선출은 간접선거의 형태로 바뀌었다"(117쪽)고 이른바 '체육관 선거'의 원인을 '유신 헌법'으로 분명히 했다. 하지만 실험본은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지 않고 간접 선거로 선출하였다"(147쪽)고 적어 '유신 헌법'이란 말을 삭제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서술에서도 이런 방식은 그대로다.
이전 교과서는 "계엄군에 의해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115쪽)고 시민을 죽인 주체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실험본은 "군인들을 동원하여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149쪽)고 표현해 희생자가 생긴 원인을 에둘러 표현했다.
지난해 독재 미화 논란을 빚은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교과서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발포에 대항해 시민군을 결성, 총을 들고 저항했다. 이 과정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됐다"고 서술한 바 있다.
<실험본>은 논란이 된 초판 <교학사> 교과서처럼 "일본은 군대를 늘려 의병들을 '소탕'했다"(94쪽)거나 "일본은 쌀을 '수출'하는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를 개발하였다"(96쪽)로 서술하기도 했다. 교학사 교과서 논란 당시 역사학자들은 '소탕'은 '학살'로, '수출'은 '수탈'로 각각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험본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다음처럼 평가하고 있다.
"박정희는 국민들이 잘 사는 것을 나라의 가장 큰 목표로 삼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발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를 실시하였다."(144쪽)
▲ 실험본 교과서 144쪽. ⓒ 윤근혁
이에 대해 분석에 참여한 교사들은 "박정희의 독재 정치에 대해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발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라고 한 편찬진의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라면서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발전'이 상반된 개념이 아닌데 마치 이것이 상반된 것처럼 엉뚱하게 서술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험본에서는 이승만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표현을 썼지만, 박정희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교사들 "초등학생 눈과 귀 막는 <사회> 교과서"
한희정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연구원(서울유현초 교육과정부장)은 "이전 <사회> 교과서도 이명박 정부시절 집필되어 독재 미화 논란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해 서술된 실험본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면서 "특히 박정희에 대한 미화와 독재 감추기는 학생들의 눈과 귀를 막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실험본 교과서의 집필진 등에는 교사과 교수들이 참여했지만 편찬기획진은 4명 모두 교육부 직원들이 독차지했다. 이들은 현직 교육부 과장과 연구관, 연구사 등이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초등 <사회>는 국정교과서이기 때문에 교육부와 정권이 제멋대로 내용을 고칠 수가 있으며 이를 견제할 장치도 없다"면서 "박정희 독재 미화 정도가 심각해진 실험본의 내용이 바로 교육부가 추진하려는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미래"라고 지적했다.
정치 싫다던 신해철이 노무현을 지지한 이유1029 오마이뉴스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 줄 유일한 후보"... 서거 후엔 칩거하기도
정치에 '정'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던 그가 한 정치인을 위해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002년 12월 대선을 며칠 앞두고 신해철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유세 현장에 나타났다. 몸에 두른 노란색 어깨띠는 온통 검은색인 그의 옷차림과 다소 어울리지 않았다. 신해철은 이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야 말로 화합과 발전과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 줄 유일한 후보"라며 "현명한 선택"을 부탁했다.
"정치에 '정'자만 나와도 멀찍이 돌아다녔는데..."
▲ 지난 2002년 12월 5일 여의도백화점앞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 문성근, 신해철, 허운나 의원이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배우 명계남의 소개로 마이크를 잡은 신해철은 4분 40여초 동안 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지 조목조목 밝혔다. 연설은 그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신해철은 "저는 정치나 사업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싶었고 지금도 정치에 '정'자만 나와도 100미터, 200미터씩 멀찍이 돌아다녔다"고 운을 뗀 뒤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고집은 버리기로 했다"며 지지연설에 나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우린 어렸을 때부터 남을 밟고 일어서고, 경쟁하고, '네가 남의 머리를 밟지 않으면 남이 너의 머리를 밟고 일어선다'는 협박 속에 살았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맹수들이 서로 물어뜯는 맹수 우리하고 똑같다"고 일갈했다.
또 보수정권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정권은) '이딴 식으로 하면 북한이 쳐내려온다', '이렇게 하면 나라 망한다', '미군 철수 하면 어떻게 된다', 끝없이 협박을 던졌습니다만, 수십 년 동안 그들이 부르짖은 늑대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연설을 마무리하며 신해철은 "자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를 돌릴 것이냐, 앞으로 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며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 줄 유일한 후보인 노무현"을 지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때문에 신해철에게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충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모든 대외 공연을 취소하고 한 달 여 동안 칩거에 들어가기도 했던 그는 같은 해 6월 21일에 치러진 노무현 추모콘서트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완전히 삭발 한 채 나타났다.
그 자리에서 신해철은 "노무현을 죽인 건 이명박, 한나라당, 조선일보가 아닌 바로 나와 우리들"이라며 "저는 가해자기 때문에 문상도 못 갔고, 조문도 못했고, 담배 한 자루 올리지 못했지만 할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어 마지막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올리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되돌려 줄 수 있는 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위해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목숨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대표곡 '그대에게'를 불렀다. '그대에게'를 선곡한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탄 보다는 앞으로의 있을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북한 로켓 발사 경축"... 거침없는 발언으로 자주 화제
신해철은 침묵하지 않는 연예인이기도 했다. 그는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이유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해 자주 화제가 됐던 인물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신해철은 자신이 진행하는 인터넷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을 두고 "전 국민이 영어를 하게하고 싶으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가 호주하고 캐나다와 함께 영국 연방으로 들어가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같은 해 신해철은 진중권 교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 등과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MBC <백분토론>에 출연해 정부의 '촛불 집회 과잉 진압' 등을 지적했다. 당시 400회 특집으로 마련된 백분토론에서 그는 '가장 토론을 잘하는 비정치인 1위'로 뽑히기도 했다.
방송에서 신해철은 '올해 가장 화나게 했던 뉴스'로 '정치인 관련 뉴스'를 꼽고 "여당야당을 막론하고 국회의원 여러분이 보여준 모습은 청소년들이 보기에 모범적 모습이 아니다"라며 "국회 자체를 유해 장소로 지정하고 뉴스에서 차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뒤에 앉은 방청객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또한 2009년에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두고 '경축한다'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후에 진중권이 진행하는 생방송 프로그램 '진중권의 이슈 인 이슈'에 나와 "홈페이지에 썼던 말 전체는 일일이 비꼰 것이며, (인공위성 발사를 두고) 우리 사회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측면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2002년 신해철의 노무현 후보 지지 연설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신해철입니다. 이 자리 노 후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도 정치에 '정'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분이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정치가 좋아서, 정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모인 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는 뿌리 깊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저 역시 정치나, 사업이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싶었고, 지금까지 정치에 '정'자만 나와도 100미터, 200미터 멀찍이 돌아다녔습니다마는 이번 선거에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저 자신이, 지금까지 길지 않은 삶입니다마는, 지켜온 가치를 버리고 이 자리에 서기까지 괴로움도 있었습니다만, 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 우리 모두를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더 큰 것을 위해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작은 고집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의 삶을 회상해보면,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의 삶도 그랬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린 어렸을 때부터 이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이렇게 배워왔습니다. 남을 밟고 일어서고 경쟁하고 네가 남의 머리를 밟지 않으면 남이 너의 머리를 밟고 일어설 것이고, 그리고 대학에 못 들어가면 네 인생은 '떡'되고 이걸 안 하면 너 혼자 낙오될 것이다 하는, 끝없는 협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사람하고 사람이 살아가야 될 이 대한민국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맹수들이 서로 물어뜯는 맹수 우리하고 똑같습니다. 이게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박수)
우리는 모두 경제, 경제, 경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사나, 모든 삶의 가치를 하나로만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집에 100억, 200억이 쌓여 있는 집이라도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없고 부모가 서로 뺨 한번 부비지 않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행복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역대 보수정권이 우리에게 했던 협박들, '이딴 식으로 하면 북한이 쳐내려온다', '이렇게 하면 나라 망한다', '미군 철수 하면 어떻게 된다', 끝없이 협박을 던졌습니다만, 수십 년 동안 그들이 부르짖은 늑대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한 안정이었습니까. 그들의 안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안정입니까, 정권을 위한 안정입니까. 국민 생활을 위한 안정입니까. 우리 민초의 삶은 정권들 아래서 바람에 흩날리면 흩날리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우리의 삶은 젖어 갔는데 그들은 줄 창 지금까지 안정을 외쳤습니다.
자,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택할 길은 두 가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를 돌릴 것이냐, 앞으로 갈 것이냐. 저는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야말로 화합과 발전과 그리고 또 하나,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 줄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통일 뒤, “내 땅 돌려주든지, 아니면 돈을 내라”1306호] 2014.10.29. 시사저널
독일 통일 이후 재산권 반환 소송 봇물
한반도에서 갑자기 통일이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통일 담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독일의 통일 과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의 한 독일법 전문가는 “올해 초 ‘통일 대박론’이 제기된 이후 독일 통일과 관련된 정부 부처의 연구 발주가 크게 들어났다. 독일 통일과 관련한 학술 대회도 많이 개최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의 통일 연구자들에게 독일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25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학습서 같은 존재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큰 소유권 분쟁은 오늘날까지도 독일 사회에서 계속되고 있어 그 경위를 살펴보는 일이 시급하다. 통일이 현실이 됐을 경우 많은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89년 12월22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 서베를린 시민들이 동베를린 시민들을 끌어올려주면서 통일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해결 재산, 민사 아닌 공법으로 해결
그런 면에서 주목해야 할 법안이 하나 있다. 1990년 9월29일 동·서독 통일 계약과 동시에 발효된 재산법(VermG)이다. 이 법은 소유 체계와 개념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 법의 핵심은 동독 체제에서 보상 없이 국가에 수용된 재산, 이른바 ‘미해결 재산’의 해결이다. 동독에서는 소련이 군정 통치 중이던 1945년 토지 개혁이 일어났고, 이후 동독 통일사회당(SED) 독재 아래서도 재산 몰수와 전용이 반복됐다. 게다가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재산 몰수 문제 해결을 동독 정부가 기피하면서 통일 직후 독일에서는 원소유자에 대한 재산 반환과 보상 문제가 불거졌다.
독일은 미해결 재산 문제를 민사 소송이 아닌 공법상의 행정 절차로 해결했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연방 미해결재산문제해결청(BaroV, 현 BADV: 미해결재산문제 및 서비스청)이 설치됐고, 동독의 국유 재산에 해당하는 인민 재산의 사유화를 전담하는 신탁청(THA)이 생겼다. 미해결 재산에 대한 반환 신청 기간은 재산법 발효 2년 3개월 후인 1992년 12월31일까지로 극히 짧았다. 이에 대한 불만이 먼저 터져 나왔다. 미해결재산문제해결청의 엘렌 핸들러 기획실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 점은 법적 평화를 조속히 확립하고 동독 지역에 대한 개발 지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접수된 재산 반환 신청은 총 81만5159건이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핸들러는 “재산 1건의 상세 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토지·건물·가구 등 재산상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 속속 드러나 현재까지 반환 청구 대상이 된 재산은 모두 237만 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2010년까지 모든 미해결 재산 문제를 처리하기로 한 당초의 목표는 2018년까지로 늦춰졌다. 미해결 재산 문제는 통일 직후 옛 동·서독 주민들 간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특히 부동산 소유권 해결이 지연되면서 서독의 원소유자들은 “내 재산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불만을 품었고, 동독의 현재 소유자는 “내가 살며 가꿔온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날아가게 생겼다”는 불안에 떨었다.
특히 동독 주민들은 ‘원소유주’라는 불청객의 방문을 두려워했다. 동독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피터 키르세이는 자신이 아끼던 주말별장을 순식간에 빼앗겼다. 1956년 구입한 이 건물의 원소유주는 서독에서 통보를 해왔다. “반환을 하든지 아니면 50만 마르크를 내라.” 어마어마한 요구에 그는 별장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재산법이 동독에 적용되자 옛 주인은 일확천금의 기회라고 여기고 동쪽으로 넘어왔다. 반면 국가로부터 얻은 집이나 주말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동독인들은 수십 년간 익숙해진 공간을 갑자기 빼앗기는 재앙을 수없이 맞았다. 서독 주민들은 자신이 원주인이거나 원주인일지도 모를 땅을 되찾기 위해 변호사와 사설탐정, 부동산업자들을 고용했고, 이들은 동쪽으로 넘어가 토지대장과 거래대장을 뒤지며 신종 사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동독 지역민들의 불만, 극우주의로 표출
신탁청에 의해 “동독의 재산이 서독으로 넘어간다”는 불만도 있었다. 독일 작센 주의 폭트란트 지역에 위치한 베르네스그뤼너 맥주 양조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양조장에는 서독으로 망명한 상속자들이 있었지만 동독 내 상속자가 사망하자 1974년부터 국영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통일 이후 크리스티안 볼프 등 10명의 서독 상속자들은 이 기업에 재산 반환 청구를 했지만, 미해결재산청은 지분의 51%에 대한 권리만을 인정했다. 나머지 49%는 통일 이후 이 기업에 1200만 마르크를 투자한 신탁청에 돌아갔다. 볼프는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이 지역 주민들에게 “가족형 중소 맥주 기업의 전통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해 큰 지지를 얻었고, 당시 언론에서는 서독의 대형 양조기업의 인수 시도에 저항한 그를 두고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베르네스그뤼너 사는 소유권 소송 끝에 지난 2002년 신탁청의 지분을 인수한 비트부르거 사에 넘어갔다. 비트부르거 사는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양조기업이다. 이 일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작센 지역 극우주의자들의 선동 소재로 쓰였다. 경쟁 관계에 있는 도시의 맥주는 팔지도 않는 독일인들의 유난스러운 ‘맥주 애향심’을 악용한 것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동·서독의 통일을 시끄럽게 했던 미해결 재산 문제는 대중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동안 동독 재산의 소유권은 소리 없이 거대 투기 자본에 흡수되어갔다. 특히 국제 금융 위기와 유로존 위기로 베를린 지역의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인근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지역의 농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치솟는 농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동독 지역 농민들은 과거 서독에서 몰려오던 불청객을 떠올리며 ‘제2의 몰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통일 직후에도 임대차보호법, 노동 재산의 사유화를 통해 삶의 터전에 머무를 수 있었던 사람들이 통일 후 20여 년 만에 또 밀려나고 있다. 통일 직후부터 차곡차곡 쌓이며 옛 동독 지역에 퍼진 박탈감과 분노는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되고 있다. 2010년 옛 동독에 속하는 작센-안할트 주에서 발생한 극우주의 범죄는 119건에 불과했다. 2002년 이후 최저 기록이다. 그러나 이후 불과 3년 만인 2013년에는 두 배를 훨씬 넘는 279건의 사건이 발생했다. 통일을 이야기할 때 ‘대박’의 이면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통일 대비해 객관적인 공공 행정 준비해라”
엘렌 핸들러 독일 미해결재산문제청 기획실장
통일과 함께 발생한 재산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은 ‘미해결재산문제청’(현 BADV: 미해결재산문제 및 서비스청)을 설치했다. 지난해 말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BADV는 지금까지 동독 정부가 몰수한 재산에 대해 제기된 237만3717건의 반환 신청 중 99.75%에 해당하는 236만7684건을 처리했다. 시사저널은 BADV의 엘렌 핸들러 기획실장에게 미해결 재산 문제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독일 통일에서 미해결 재산 문제가 불거진 원인은 어디에 있나.
미해결 재산 문제는 나치 집권기(1933~1945년), 동독의 소련 군정 위탁 통치기(1945~1949년), 독일 통일사회당 집권기(1949~1989년) 등 크게 세 시기 동안 동독에서 이뤄진 재산 몰수를 대상으로 한다.
미해결 재산 문제를 해결하는 대원칙은 무엇인가.
먼저 반환이 보상에 우선한다. 즉, 몰수된 재산의 반환이 불가피한 경우에만 보상이 이뤄진다. 두 번째로 투자가 반환에 우선한다. 예컨대 반환 대상인 부동산에 투자가 계획되어 있다면 먼저 투자가 이뤄진 다음 반환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인 이익 조정이다. 40년간 동독 체제와 동독법을 믿고 산 사람들이 재산을 다시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반환이 안 되는 경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본성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예를 들어 대지에 고속도로가 생겼거나 저수지가 만들어졌거나 공동주택이 지어진 경우에는 대지를 반환하는 게 불가능하다. 두 번째로 현재 소유주가 해당 재산을 동독법상 정당하게 구매한 경우 그 소유권이 부당하게 취소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반환이 불가능하다. 세 번째로는 반환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다. 대지에 구청·주차장·탁아소 등 공공시설이 지어진 경우에는 반환이 불가하다. 몰수 재산에 대한 반환 신청이 접수되면 이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검토해 반환 또는 보상 여부를 결정한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의 소유권 개념은 서독과 어떻게 달랐나.
동독에는 모두의 소유물인 인민 재산과 개인의 사유 재산이 있었다.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 중 유일하게 사유 재산이 허용된 나라였다. 이 재산은 거래가 자유로웠고 통일 후에도 그 소유권이 인정되었다. 그 밖에 개인의 소유도, 공공의 소유도 아닌 조합 재산이 있었다.
거꾸로 동독 주민이 서독의 미해결 재산에 대한 반환을 청구한 것도 있나.그런 경우에는 사적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재산법은 동독 영토 내의 재산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미해결 재산 문제가 옛 동독 지역의 부동산 거래에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관할 관청에서 사려는 부동산에 대해 미해결된 재산 문제가 없음을 증빙하고 토지 거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부동산의 소유권을 확인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공문서인 토지대장이 있다. 동독 시절에도 여기에 모든 재산상의 변경 사항이 기록되었다.
통일이 될 경우 한국은 토지대장 소실과 지번 체계 차이 등으로 문제가 예상된다. 토지대장이 없는 경우엔 어떻게 하나.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서류를 모두 모으되, 소유관계를 증명할 서류가 없을 경우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즉, 현재 소유 상태를 그대로 인정한다.
한국이 만약 통일될 경우 미해결 재산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미해결 재산 문제를 결정하는 객관적인 공공 행정이 갖춰져야 하고, 다자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환 청구 권한, 근거, 불허 사유, 보상 액수를 법으로 정해야 한다.
네이버 댓글엔 뭔 일이 있었나 1028 시사인
“이거 예상 밖인데요? 아무래도 더 상세하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1차 분석 결과를 받아든 트리움의 김도훈 대표는 묘하게 흥분된 목소리였다. 1차 분석으로 손에 쥔 그래프는 누가 보기에도 결론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프로젝트였다. <시사IN>과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회사 트리움은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 분석(<시사IN> 제367호 커버스토리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에 이어, 양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의 여론 지형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포털 사이트는 거의 모든 인터넷 이용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공간이다. 이 분석은 흥미롭다기보다는 그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직관을 데이터로 뒷받침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직관이란 이런 식이다. 네이버는 보수, 다음은 진보, 보수가 “네이버는 평정됐다”(이명박 캠프 진성호 뉴미디어분과 간사)라고 선언하던 2007년 네이버의 보수 결집, 그 직후 다음의 진보 대항 결집, 정치 성향에 따른 포털 선택, 2012년 대선과 같은 대형 정치 이벤트가 있을수록 뚜렷해지는 포털 여론 양극화….
<시사IN>과 트리움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해마다 정치 분야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20개씩을 추출했다. 각 기사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 5개씩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1년에 댓글 100개, 7년치 댓글로 700개, 두 포털을 합쳐서 1400개다.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는 독자가 스크롤을 내려 최다 추천 댓글을 확인할 때, 최다 추천 댓글이 자신의 성향과 일치하면 의견을 강화하고 반대되면 약간이라도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소한 효과가 충분히 누적되면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분석 대상 댓글을 각각 ‘여당 성향’ ‘야당 성향’ ‘중립 성향’으로 분류해 추이를 그려 보았다. 그 결과가 아래쪽 <그림 1>이다.
당장 몇 가지 통념이 깨져나간다. 첫째, 2007년은 물론 2008년까지도 네이버는 ‘평정’되지 않았다. 네이버의 여론 지형에서 보수 결집이 확인되기 시작하는 것은 2009년이다. 둘째, 결집은 네이버보다 다음이 먼저다. 다음의 진보 우위는 2008년에 시작되어 2013년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셋째, 이번 분석에서 가장 의외였던 대목으로, 네이버의 보수 우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대선이 있던 2012년의 네이버는 양극화가 강화되기는커녕 보수, 진보 양쪽 여론이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좁아진다.
야권 성향 이용자의 다음 결집은 2008년 이후 흔들린 적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네이버였다. 네이버는 정치 성향으로 선택하거나 외면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생활밀착형 포털이다. 뉴스 페이지라고 해도 보수의 일방적인 놀이터가 되기 힘들 정도로 이용자가 많다.
더 상세한 데이터가 필요했다. 흥미로운 패턴을 보여준 2008~2013년의 네이버로 분석 대상을 좁혔다. 월 단위 여론 동향을 보아야 그림이 보일 것 같았다. 분석 대상 기사를 한 해에 20개에서 한 달에 20개(월간 최다 조회)로 12배 늘렸다. 이제 분석 대상 댓글은 한 달에 100개, 6년 합계 7200개로 늘어났다. 개인의 이용 경험을 일반화하는 인상 비평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해 포털 여론 지형도를 그려보는 시도다.
1기:그랜드 크로스는 촛불의 유산인가
월 단위로 상세 분석한 데이터를 분기별로 모아 정리한 결과가 24~25쪽 <그림 2>이다. 그래프를 보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네이버의 여론 흐름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보수가 처음으로 우세를 잡은 1기(2008년), 보수 우세가 압도적으로 유지되는 2기(2009~2010년), 보수 우세가 완화되면서 경합세가 나타나는 3기(2011~2013년)다.
1기 중에서도 2008년 2분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휘몰아치던 시기다. 이때에는 ‘최다 조회 기사·최다 추천 댓글’의 74%가 야당 성향이다.
반전은 3분기부터 일어난다. 2분기에 정점을 찍은 촛불집회의 기세가 꺾이고, 대책 없이 밀리던 보수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금강산 관광을 갔던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도 3분기(7월11일)에 있었다. 3분기 들어 야당 성향 댓글의 비중은 51%로 떨어지고, 4분기가 되면 23%까지 떨어진다. 반면 여당 성향 댓글은 22%(2분기), 38%(3분기), 49%(4분기)로 올라간다. 2008년 4분기에 온라인 여론 지형의 ‘그랜드 크로스’가 일어났다. 이후 네이버의 보수 우위는 15분기 연속으로 이어진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은 6월19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들었다”라며 대국민 사과를 하던 장면이었다. 시민의 역량은 최대치를 발휘하고 있었고(바꿔 말하면 시민의 자발성에 더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시점이었고), 대통령의 사과와 정책 전환 약속까지 받아냈다. 정말로 집권 1년차 정부를 끌어내릴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때가 집회를 매듭지을 최적기였다.
하지만 당시 야권은 치명적인 리더십 공백을 겪고 있었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촛불집회장에 나오면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시민들에게 쫓겨나다시피 했다. 민주노동당(현재는 정의당과 통합진보당으로 분화) 인사들은 무대 위에 올라갈 자격을 얻었지만, ‘질서정연한 퇴각’을 기획할 권한도 의사도 없었다. 시민사회가 주축이 된 범국민대책본부는 집회를 이끈다기보다는 얹혀간다는 평가가 정확했다.
집회를 매듭지을 힘은 누구에게도 없는데 시민의 에너지는 들끓고, 리더십을 재구성할 전국선거마저도 한참을 남겨둔 상황. 촛불은 이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립되면서, 격해지고, 결국 사그라졌다.
‘그랜드 크로스’의 시기에 보수는 집요하게 촛불집회의 취약점을 파고들면서 담론을 형성했다. 이 시기에 처음 등장한 키워드가 ‘촛불좀비’다. 좀비는 떼로 몰려다니며 공포와 혐오를 주고, 무엇보다 뇌가 없다. 보수가 보는 촛불집회의 풍경이 이랬다. 6월 한 기사의 최다 추천 댓글은 “이번에 좀비들 봐라. <PD수첩>, 공기전염론, 600도설에 죄다 푸득푸득 낚여가지고”라고 썼다.
특히 박왕자씨가 금강산에서 피살된 7월 이후 ‘좀비’는 보수가 진보를 조롱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박왕자씨 관련 기사의 한 최다 추천 댓글은 “초 하나씩 준비해라 좌빨 좀비들아. 오늘부터 금강산 원정이다”라고 쓴다. “왜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총을 맞은 사건에 촛불좀비들은 분노하지 않는가”라는 논리가 곳곳에서 변주된다. 바탕에는 “너 친북이지?”라는 질문이 깔려 있다.
ⓒ연합뉴스 용산참사, 박왕자씨 금강산 피살, 박근혜 대통령 당선(왼쪽부터 시계 방향) 때 네이버에서 여당 성향 댓글이 우위를 보였다.
촛불좀비론 외에도 이중잣대론(“쇠고기 협상은 노무현 정부에서 했는데 왜 지금 난리냐”)이 틀을 갖춘다. 정권 퇴진 구호가 촛불집회 후반으로 갈수록 전면에 등장하면서, 진보를 ‘습관성 정권퇴진 선동세력’으로 낙인찍는 논리도 등장한다. 정권 퇴진은 헌정체제를 중단하자는, 그야말로 비상한 시국에서 꺼내야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카드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진보 일각의 극단주의 그룹은 ‘정권퇴진론의 일상화’라고 할 만한 습관적 퇴진론을 보여주었다. 이는 보수 담론에 좋은 먹잇감을 제공했다.
보수의 주력 담론은 촛불에 대한 비판과 조롱으로 형성되었다. 온라인에서 이런 담론상의 우위는 이후로도 2년 넘도록 공고하게 이어진다. 적어도 담론 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2008년에 진정으로 중대한 시점은 촛불이 아니라 ‘촛불 이후’였다.
2기:보수의 압도 속에 일베의 맹아 탄생
2기(2010~2011년)는 보수의 태평성대라 부를 만하다. 최다 추천 댓글의 80% 이상을 보수가 차지하는 압도적인 우위를 누렸다. 전체 8분기 중에서 80%를 밑도는 경우는 한 번(2010년 3분기,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 직후다)뿐이고, 90%를 넘긴 적도 두 번 있다(2010년 1·2분기). 정권이 휘청거릴 만한 메가톤급 이슈가 터져도 네이버 여론은 요지부동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 2분기 여당 성향 댓글 비중은 83%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3분기에는 85%로 더 올라갔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시기는 강력한 지역주의 코드인 ‘홍어’라는 딱지 붙이기가 추천 댓글에 본격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보수는 몇 가지 무기를 정교하게 벼려낸다. 이중잣대론, 무임승차론, 선동론 등이다. 하나같이 진보에 붙이는 딱지다. 온라인 보수의 눈에 비친 진보는 “노무현이 한 건 뭐든지 업적, 이명박이 한 건 뭐든지 죽일 일”로 간주하는 이중잣대를 쓴다. 진보는 “세금을 축내 제 앞길만 챙기는” 무임승차자들이고, “선동꾼들의 말에 휘둘려 습관처럼 정권 퇴진을 외치는 뇌가 없는” 이들이다. 한때 진보가 갖고 있던 지적·도덕적 우위는 철저하게 해체된다.
이 시기의 최다 추천 댓글에 무임승차 혐오 코드와 지역주의 코드, 이중잣대론 등이 체계화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이 고스란히 일베식 논리 구조의 뼈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시사IN>은 일베 분석(제367호)에서 ‘무임승차 혐오’를 일베가 가진 논리 구조의 핵심 코드로 지목한 바 있다. 이 시기의 네이버는 훗날 일베를 뒤덮게 될 코드들의 맹아를 보여준다.
그렇다고는 해도 부자연스러운 궤적이기는 하다. 2009년 1분기에 여당 성향 댓글의 비중은 85%로, 직전 49%에 비해 36%포인트나 치솟는다. 분석 대상인 6년 24분기 중에 댓글 성향의 변화폭이 가장 큰 시기가 여기다. 더욱이 2009년 1분기는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시기다. 정권에 대형 악재가 터진 바로 그 시점에, 네이버의 여론은 압도적 보수 우위로 전환되었다.
부자연스러운 대목은 또 있다. 2009년 이후 최다 추천 댓글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찬양이 부쩍 눈에 뜨인다. 분노와 냉소가 주를 이루는 온라인 공론장에서 대통령 찬양이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촛불집회에 크게 혼쭐이 난 이명박 정부가 국가정보원 등을 통해 전방위적 온라인 여론전을 기획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09년 1분기 이후의 그래프 궤적과 댓글 내용을 보면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대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시기 댓글과 추천의 유입 경로 분석은 추후에 남겨진 숙제다.
인위적 개입의 가능성을 고려한다 해도, 이 시기 야당과 진보 엘리트가 대항 담론 생산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네이버에서 야당 성향 누리꾼은 네이버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저 여론전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손에 쥔 무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3기의 여론 지형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3기:보수 우위에서 혼전으로…
보수 우위가 요지부동이던 네이버 여론 지형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11년 1분기다. 이 시기에 야당 성향 댓글의 비중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7%), 여당 성향 댓글 비중이 돌연 63%로 떨어진다. 2분기에는 야당 성향 댓글이 18%로 올라가고, 여당 성향 댓글은 49%까지 떨어진다.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절반 아래로 내려왔다.
이 시기는 이명박 정권의 인기가 바닥을 기면서 야당이 다음 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던 때다. 2011년 4분기에는 야당 성향 댓글 비중이 21%를 기록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20%를 돌파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승리한 것이 이때다(2011년 10월). 이 선거 직후 ‘안철수 현상’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나꼼수 열풍’도 절정기를 구가했다.
ⓒ시사IN 자료 2008년 촛불시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안철수 현상(왼쪽부터) 때 네이버의 야당 성향 댓글이 증가세를 보였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선전하면서 야당 성향 댓글의 상승세도 잠시 주춤했지만, 결국 2012년 3분기에 재역전이 일어난다. 무려 16분기 만이다. 야당 성향 댓글 36% 대 여당 성향 댓글 32%로 나타났다. 대선 국면에서 네이버의 보수·진보 여론이 거의 비등한 선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다는 분석 결과는 기존 통념을 뒤흔든다.
“포털의 성향 자체가 양극화되었다”라는 통념이 옳다면, 대선과 같은 치열한 전쟁 국면에서 네이버와 다음의 양극화는 더 두드러져야 한다. 하지만 대선 국면에 접어든 네이버에서는 야당 성향 댓글이 최다 추천까지 치고 올라올 정도로 힘을 발휘했다. 이런 현상이 다음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 다음의 진보 우위는 대선 때인 2012년에도 공고하다. 다음이 진보 성향 이용자들이 의식적으로 구축한 진지라면, 네이버는 일상적 생활공간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결국 네이버에는 40% 가까운 야권 성향 이용자가 잠재되어 있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안철수 현상이나 대선과 같은 초대형 이벤트가 발생하면 이 잠재 야권층이 고개를 드는거죠. 이건 두 가지를 보여줍니다. 첫째, 적절한 계기만 주어진다면 네이버의 진보 이용자도 움직입니다. 둘째, 2009~2010년의 일방적 보수 우위는, 진보 이용자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담론 전쟁에서 할 말이 없어서 나온 결과일 수 있습니다.” 김도훈 대표의 분석이다.
촛불집회나 대선과 같은 ‘빅 이벤트’는 별다른 담론 없이도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일상적인 국면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때는 누가 더 공감대 높은 담론(그것이 정제된 언어로 드러나든 욕설에 가까운 거친 댓글 아래 숨어 있든 간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여론전의 양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일상 국면에서 쌓아 올리는 신뢰와 불신이 결국은 큰 선거의 결과도 결정한다.
야권 지지 여론은 철저하게 이벤트에 의존한다. 야권 지지층이 힘을 내는 장면은 촛불집회, 안철수 현상, 대선 단일화 국면 등으로, 모두 외부 변수다. 2011년에는 야권 성향 이용자들이 먼저 나서서 추천 댓글로 안철수를 ‘발굴’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야당과 진보 엘리트가 공론장의 담론을 이끄는 모습은 6년 내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야권이 담론을 주도한 사례로 거론되는 무상급식 이슈조차도 온라인 여론 지형에서는 별다른 반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2010년 2분기). 40%의 잠재 지지층을 고려하면, 보수의 인위적 개입 하나만으로는 이런 ‘완패’를 설명하기 힘들다. 문제는 네이버 이용자가 아니라 담론 공급자였다.
보급 없이 맨손으로 싸워야 하는 보병들
분석 결과, 네이버의 보수화는 흔히 생각하듯 ‘보수 누리꾼의 분탕질 효과’ ‘진보 누리꾼의 환멸과 이탈’ ‘보수 세력의 조직적인 개입’과 같은 원인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와 같은 통념은 어쨌든 네이버 이용자, 즉 수요자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이었다. 이용자는 고정되어 있고, 일관되게 보수 성향을 보일 것이라고 쉽게 가정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분석은 야당과 진보 엘리트, 즉 ‘공급자의 실패’를 네이버 보수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한다. 야당의 리더십 실패는 촛불집회의 지리멸렬한 결말로 이어졌다. 이는 촛불 이후 여론 지형의 거대한 반동으로 귀결되었다. 담론 생산능력 파산은 야권 지지층을 갈수록 외부 이벤트에만 의존하도록 강제했다.
여론전이라는 전투에서 누리꾼은 보병이다. 이들이 전장에 나가려면 설득력 있고 매력 있는 담론이라는 군수품이 필요한데, 그것을 생산해줘야 하는 야당과 진보 엘리트가 지독한 기능장애에 빠져 있었다. 군수품을 보급받지 못한 보병들은 2년 동안 몰살당하다시피 하다가, 급기야는 군수품을 자체 조달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분석 결과는 보수에게도 희소식이 아니다. 마치 ‘촛불좀비’라는 한마디로 간단하게 진보를 제압할 수 있었던 2009년처럼, 2013년 이후에는 보수 성향의 주장들이 한 단어로 제압당하는 흐름이 관찰된다. ‘일베충’이다. 촛불의 극단화 현상이 보수에게 ‘촛불좀비’라는 무기를 쥐여주었듯이, 일베로 대표되는 보수 담론의 극단화 현상이 이제는 보수의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보수 역시도 매력 있고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만한 긍정적인 담론 생산에 실패하면서, 2009~2010년의 ‘영광’을 가져다주었던 조롱과 냉소에 갈수록 더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 역시 진보가 반이명박 정권퇴진론에 습관적으로 의존하던 모습과 판박이다.
성공하는 담론은 열광적 지지자를 끌어들이고, 담론은 이들의 열광에 떠밀려 점차 극단화된다. 이 경로에 접어들면 다수 대중의 감수성과는 멀어지는 ‘그들만의 논리’를 재생산하게 된다. 진보의 ‘민주화’ 담론은 이런 경로를 거쳐서 촛불집회 이후 결정적으로 담론 공간의 주도권을 박탈당했다. 보수의 군수창고에는 아직 ‘성장’과 ‘반북한’이라는 재고가 조금 남아 있다. 하지만 신규 생산이 멈추고 기존 담론의 극단화 경로로 접어든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기득권 이익공동체 ‘6대 핵마피아’ 11.04ㅣ주간경향 1099호
강원도 삼척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찬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주민투표 결과 반대여론이 우세하게 나왔지만 정부는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원전 반대 주민들은 원전 유치 당시 만들어졌던 주민서명부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찬성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반대 주민들을 비난하고 있다. 삼척 사회가 원전 건설을 놓고 찬반 양론으로 분열돼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삼척에서 볼 수 있듯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이나 폐로, 수명연장 문제 등과 같이 관계자의 이해가 대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금은 삼척에 폭탄이 떨어졌지만 원전을 둘러싼 갈등은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다. 내일은 우리 동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들의 정확한 판단을 위한 정보 제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이다. <주간경향>은 원전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핵발전소의 경제성 유무, 고리원전의 폐로와 같은 핵발전소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한 분석기사를 연재할 계획이다. 필자인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랫동안 원전 문제를 연구해온 원자력정책 전문가이다. 그 첫 번째로 오랫동안 국민들을 기만해 온 핵마피아의 이권구조를 파헤친다. <편집자 주>
강원도 삼척 시내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삼척시 주민들은 지난 9일 자체 주민투표를 실시해 원전 유치신청 철회를 결의했다. | 경향신문 독자 제공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3년 7개월의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완전 복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12만5000여명의 지역주민들은 여전히 피난생활을 하고 있고, 배상 및 오염제거 등의 사고수습비용은 최소 1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만약 이런 대규모 핵발전소 사고가 국내에서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토면적은 좁고, 인구밀도는 높은 국내에서 후쿠시마 같은 원전사고가 발생한다면 국가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대참사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이미 허위로 판명된 ‘싸고 안전하다’는 신화를 앞세워, 오히려 핵발전소의 확대를 외치는 이익공동체가 있다.
이른바 ‘핵마피아’들이다. 핵마피아는 핵발전소의 지속적인 추진을 통해 기득권의 확대·재생산을 꾀하는 개인 및 집단을 가리키는데, ▲담당부처의 정부 관료 ▲전력회사·산업계 ▲중앙·지방의 정치인 ▲관련분야의 연구자 ▲은행·보험 등의 금융기관 ▲신문·방송 등 6가지를 들 수 있다.
정권 요구에 취약한 관련부처 관료들
첫 번째 핵마피아는 담당부처(특히 산업자원부)의 관료들이다. 만약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철저히 전례(前例)주의를 답습하는 한편, 공무원 인사에 영향력을 미치는 정권(정치인)의 요구에는 취약한 게 이들의 특성이다. 따라서 관료들은 정권의 경기부양책 실시 요구에 부응하여 주요 수단으로써 핵발전소의 조기(早期) 건설을 빈번히 이용해 왔다. 핵발전소(100만㎾급) 1기당 건설비는 약 5조원에 달하여 산업계 전반에의 파급효과가 재정지출에 의한 공공사업 못지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액의 건설비는 소비자의 전기요금으로 충당되므로 형식적으로는 재정지출의 부담도 전혀 없다. 이 때문에 핵발전소의 건설 목적도 전력공급이 아니라 건설 자체로 변질된 채, 전력의 공급과잉→요금인하→전력 부족→발전소 건설→공급과잉 같은 악순환이 거듭되는 구조적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마피아는 전력회사다. 전력회사도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분산형 발전원보다는 대용량의 핵발전소 건설에 적극적이다. 현행의 전기요금제도가 건설 및 발전 등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총괄원가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익사업의 원활한 실시라는 명목으로 투자비에 일정의 이익률(사업보수)까지 보장해주고 있다. 즉, 투자비가 클수록 이익도 늘어나는 요금구조이므로 전력회사는 핵발전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국책’이라는 명목으로 관료가 핵발전소의 추진을 결정하면 전력회사는 금융기관을 통한 융자 및 사채(社債)를 통해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핵발전소 건설은 건설업 및 중공업 같은 기업들에도 이익이 된다. 전력회사는 비용이 늘면 이익도 증가해 굳이 계약가격을 최대한 낮추려는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핵마피아는 중앙과 지방의 정치인들이다. 한전의 인증기업들, 특히 건설업체들은 핵발전소의 건설을 촉구하기 위해 중앙·지방의 정치인들에게 정치헌금 및 선거 협력 등의 제공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그 대가로 핵마피아의 정치인들은 국책 또는 지역(활성화)정책이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핵발전소 건설 및 유치를 강력히 추진한다.
네 번째 마피아는 학계다. 관련분야의 연구자들이 공학기술의 세분화를 이용하여 연구과정 및 결과에 관한 정보의 폐쇄성(비밀주의)을 강조하는 분야가 핵공학이다. 게다가 핵발전소의 급격한 확대과정에 따른 전문가의 부족이 연구자의 수직적인 서열체제, 회전문 인사, 연구비(예산)의 편중 등과 같은 왜곡현상을 가져왔다. 특히 핵발전소의 추진과 안전규제라는 대립하는 분야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회전문 인사는 고질적인 병폐이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서 밝혀졌듯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핵심부문인 안전 전문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이 규제·감시해야 할 대상인 한전·한수원 및 산업부로부터 수백억원대의 용역을 수주하였다.
수백억 용역을 둘러싼 핵공학계 폐쇄성
이러한 유착관계는 퇴직공무원 및 공기업 퇴직자들이 낙하산 재취업 때까지의 일시적인 신분(석좌·특임교수)을 확보하려는 경향, 그리고 대학 법인화의 추진 등으로 점점 늘고 있다. 퇴직자들은 혈세와 전기요금을 이용하여 관련학과의 교수에게 자신들의 보수까지 포함한 거액의 연구용역 및 기부강좌를 의뢰한다. 심지어 연구기관의 책임자급들은 퇴직 후 실체가 불확실한 연구소의 설립을 통해 근무했던 기관으로부터 거액의 연구용역을 받기도 한다.
한편, 연구용역 등을 의뢰받은 교수 또는 연구자는 직접 용역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과정후 박사급의 연구원들 또는 기업(엔지니어링 관계)에 재위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담당자는 외부연구비의 획득으로 대학 및 연구소의 업적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또 비정상적으로 고액인 강연료·원고료 등의 수입도 이들에게 매력적인 유혹이다.
은행·보험업계도 마피아의 일원이다. 현행 요금제도에서는 원금과 이자가 100% 보장된다. 전력회사에 저리융자를 해주고 주식·사채의 구입에도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홍보비·협찬금 획득에 목을 매면서 핵마피아의 홍보지를 자임하는 신문·방송 등의 매스컴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원자력문화재단은 세금과 전기요금으로 이사회의 시간수당을 일인당 100만원이나 지불하는 한편, 매년 홍보예산(2014년 57억원)으로 뮤지컬 및 백일장 등을 개최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원자력의 프로파간다를 일삼고 있다. 설비용량이 더 많은 화력에도 문화재단이 없는 만큼 백해무익의 원자력문화재단을 즉각 폐지하여 관련예산을 안전대책비에 보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국내 핵마피아들은 임기응변적인 안전대책에 급급하면서도 마치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불안해소는커녕, 핵발전소의 점검 미비 및 기록의 부적절한 관리, 고장·불상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정부의 공적 지원이 없다면 핵발전소가 시장의 가격경쟁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는 발전원이라는 점도 이미 국제적 상식이다.
그런데도 국내의 핵마피아들은 싸고 안전하다는 신화(神話)의 허구성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소아병적인 적대 또는 방어자세를 보인다. 왜냐하면 불편한 진실이 자기부정으로 이어져 이익공동체의 약체 또는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공포심 때문이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
무소속 주민의 마을은 어디에… [2014.11.03 제1034호] 한겨레21
서울시는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세워 마을만들기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2012년 9월 센터 개소식에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 뉴시스
마을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우리는 결핍된 것을 욕망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이런 구절을 읽으며 무한 감동을 받는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에 나오는 마을 이야기를 읽고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다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나의 현실은,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에서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으로 편도 1시간20분을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서울 사당동에 살다가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안양으로 이사한 지 어느덧 15년, 비산동에서 그토록 숱한 밤을 보냈지만, 여전히 낮의 안양은 낯설다. 이런 삶터와 일터의 분리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을 사업 이름엔 ‘아이’ ‘부모’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긴 도시라는 점입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4분의 1가량이 2년 내에 집을 옮긴다고 그래요. 그래서 5년, 10년이면 마을 전체가 물갈이되는데 마을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답이 없어요.”(<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중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집으로 가는 심야버스, 서울시 마을만들기 정책을 홍보하는 광고가 들린다. 역시나 세입자로, 정주할 집이 없는 사람은 ‘나의 마을은 어디인가?’ 떠올린다. 활동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서울 공덕동 주민인가, 주민등록증이 보증하는 안양 시민인가, 몇 해 전까지 주말 밤이면 밤마다 마실을 나갔던 서울 이태원 사람인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 주민은 버스 창가에 기대 ‘마을에 친구가 있으면 이렇게 외롭진 않겠지’ 생각한다.
“성인 남성은 아버지로, 성인 여성은 어머니로 그리고 아이들은 무성적인 존재로 좋은 밥과 간식거리를 제공받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게 상상되는 것은 아닌지.”(<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중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나는 마을이 무섭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서울로 이주한 뒤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서로가 서로를 아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익명성이 가득한 도시의 공기는 40대가 돼서도 여전히 목숨 같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 더욱 안전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마을 사람이 되려고 해도 40대 비혼 남성이 이웃과 만날 접점이 있을까? “결혼은 안 하세요?” 같은 질문에 시달릴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마을의 주민이 되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비혼자는 마을공동체의 취약계층이다. 마을공동체 활동 현황을 종합한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지도에 나오는 사업 이름만 봐도 핵심은 ‘아이’ ‘부모’ 등이다.
“제가 걱정되는 건 이렇게 마을을 이야기할 때 ‘다름을 아우르는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들만의 마을’을 꿈꾼다는 것입니다. 사실 동성애자들도 동성애자들끼리 모여 사는 마을을 꿈꾸곤 하거든요. 저는 이런 마을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모두 같기 때문에 눈치 볼 일이 없는 마을이 아니라 서로가 다 달라도 그것 때문에 눈치 볼 일이 없는 마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중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현실의 마을은 불화하는 장소
‘마을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부제를 단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는 다양한 분야의 지역·인권 활동가들이 모여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을 꼽으라면, 충북 청주 ‘생활공동체 공룡’의 주방장인 박영길씨가 한 말이다. “우리는 성미산이 아닙니다. 파전 하나를 부쳐 먹으면서도 싸움이 나요.”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의 모범으로 꼽는 성미산 마을처럼, 아름다운 마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마을은 불화하는 장소다. 게다가 성소수자가 아니라도 마을에서 삭제된 존재는 많다. 불안정 노동에 지친 이들은 휴일에 쉬기 위해서 집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의 거주 공간은 외곽의 외곽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공론장에서 지워지기 십상인 계층이다.
“마을에 아무리 좋은 말을 갖다 붙여도 지금의 마을은 불안하다. 이웃끼리 얼굴 알고 수다 떨며 잔치도 열고,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건 서로의 관계가 좋을 때이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충돌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 얼굴과 수다와 잔치는 고통으로 변한다.”(<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중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그래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을만들기 사업에 오히려 주목했을 것이다. 서울시는 2014년 9월, 654개 마을공동체 사업에 133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주민이 마을공동체 사업 계획서를 내면 심사를 통해 지원이 결정되고, 사업의 진행을 돕는 과정이 이어진다. 뉴타운 개발보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물론 낫다. 그러나 과연 마을 ‘만들기’가 가능한가? 마을공동체 ‘사업’은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도 적잖다.
“결국 (서울)시에서 시장이 생각하는 마을 이미지를 이식시켜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마을 ‘만들기’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인 거잖아요. 마을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인데, 그냥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중 권단 ‘옥천살림’ 활동가)
“박원순 시장이 되자마자 서울에 있는 지역활동가 그룹들 몇 군데서 ‘공룡’으로 내려왔어요. 우리 지역에 와서 사진도 찍어가고 아이디어도 모으고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오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가다가 쫄딱 망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나마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을 만들기가 근근이 유지되고 그러면서 거품도 좀 빠지고 실제의 모습들이 이제 막 드러나고 있는데, 그렇게 돈을 확 풀어버리면 그마저 깨져버린다고. 위험한 도박이라고. 그래도 계속 와요. 두세 달 전부터는 도시농업 팀이 오더라고요.”(<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중 박영길 청주 ‘생활공동체 공룡’ 활동가)
“행정이 마을화돼야 한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 사무처장은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뭔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정된 지원사업을 놓고 지역단체들이 갈등하는 경우도 있다. 김상철 사무처장은 “재원이 큰 통에 물처럼 담겨 있어서 필요한 이들이 알아서 떠 먹어야 한다”며 “재원을 관이 배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이 토론하고 논의해서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실제 동네 사정에 밝지 않다”며 “행정이 마을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을만들기 사업이 말하지 않는 이면도 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도시 빈민을 위한 공공주택 재개발 문제가 박원순 시정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을에 눈길이 쏠리는 사이 공공성의 필수적 측면이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자사고 6개교 최종 지정취소 1031 한국
숭문고·신일고는 2년간 지정취소 유예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연합뉴스.
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인 서울시내 14개 자율형 사립고 가운데 6곳이 최종 지정취소됐다.
서울시교육청은 31일 "지정취소 대상 학교 8개교 가운데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 등 6개교를 지정취소하고, 숭문고와 신일고는 지정취소를 2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지정취소 처분을 즉각 취소하라며 시정명령을 내렸고, 해당 학교들은 법적 대응에 착수했다. 서울교육청은 이날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를 열어 종합평가 결과와 지난 29일 7개 자사고(우신고 제외)가 제출한 '자율형 사립고 운영 개선 계획'을 토대로 자사고 지정취소 여부를 심의해 지정취소 자사고를 선정했다.
선정 기준은 ▲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의 심의 의견 ▲ 종합평가 점수 및 순위에서 지정과 취소의 경계선상에 있는 학교 ▲ 자사고 운영 개선 계획의 차별성 ▲ 서울교육 발전을 위한 교육청과 학교의 상호 협력 의지 등이다.
서울교육청은 지정취소 처분을 2년간 유예한 신일고와 숭문고에 대해서는 2016년 해당 항목에 대한 개선 결과를 평가해 지정취소 여부를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신일고와 숭문고는 서울교육청에 자사고 운영 개선 계획을 내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신입생 선발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들 학교 측은 "법인 차원에서 논의한 끝에 학생 선발권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는 취지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을 일부 인정했다"며 교육청 방침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서울교육청은 "2016학년도 입학전형부터는 면접 없이 추첨으로만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서울 각 고교가 '수평적 다양성'을 구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울자립형사립고교장연합회 교장들이 일부 자사고 지정 취소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주형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교육부는 이에 대해 자사고 6개교에 대한 지정취소 처분을 즉시 취소하고 그 결과를 오는 17일까지 보고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교육부는 서울시교육감의 재평가에 따른 지정취소가 재량권의 일탈·남용이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다. 나아가 자사고 측의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새로운 절차에 따라 소급해 자사고 측에 불리하게 평가를 진행한 것은 행정절차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정취소 협의를 반려했음에도 이를 시정해 협의를 재신청하지 않고 지정 취소를 강행한 것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서울시교육감이 지정취소를 취소하지 않을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지정취소를 취소 처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는 이날 오전 서울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지정취소는 위법이므로 즉시 법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지정취소된 6개교는 전날 소송대리인을 선임하고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에 착수했다.
盧 대통령, 주한미군에 불만 토로하자…1031 프레시안
[군사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비극] <4> 한국대통령의 국군통수권(3)
만약에 한국 대통령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해도 될까?
물론 해도 된다. 법적 지위는 연합(combined) 사령관이기 때문에 미군 대장이라도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 공동의 부하다. 부하에게 뭔 지시인들 못하겠는가? 일일이 지시하기 귀찮다면 우리 합참의장에게 "연합사령관에게 이것 조치하라고 전달해라"라고 해도 된다. 연합사령관은 미 합참과 태평양사령부의 지시를 받는 예하부대 사령관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 합참의장도 똑같이 지침을 준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
우리 국회의장이 연합사령관에게 "국회에 출석하여 보고하라"고 해도 될까? 아무 문제가 없다. 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 자격으로 매년 미 상원에 출석하고 미 국방부와 미 의회 감사를 받는다. 우리가 방위비분담금을 주한미군에 주고 있으니까 회계 감사를 하겠다고 하면 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한국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이 보장되는 동등한 주권 행사이다.
이런 모든 게 법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의미의 그 '연합사령부'라는 명칭을 근거로 우리 보수안보세력들은 "동등한 주권이 행사되는 연합사령부에 주권의 문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억지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앞의 회에서 소개한 전쟁 위기 상황에서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이 연합사령관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였는가? 지시는커녕 눈치만 봤다. 미국이 전쟁을 벌일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한국 대통령이었다. 연합사령관은 항상 미 본토로부터 작전지침을 받으면서 우리 합참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합참의장이 연합사령관과 동등한 자격으로 가끔 협의만 하는 정도다.
2005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와 한미군사위원회(MCM)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CONPLAN)을 만든다"는 양국 합의를 위반하고 연합사령부에서 급변사태 대비 작전계획(OPLAN)을 작성하여 북한을 자극하는 빌미를 만든다는 첩보가 청와대에 들어왔다. 이에 청와대가 "작전계획 작성을 중지하라"고 연합사에 통보하자 연합사령관인 리언 라포떼 대장은 "이러면 동맹 깨자는 것"이라고 노골적인 협박성 발언을 하면서 미 정부 지침대로 작전계획 작성을 강행하려 했다. 그래서 한미 간에 갈등이 벌어졌다.
같은 시기에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임무와 무관한 동북아 분쟁 개입 위주로 전략과 교리를 수정하려 했다. 그 유명한 '전략적 유연성'이다. 이를 국방부와 합참이 제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나 주한미군의 이런 일방적 조치를 항의했다. 그제서야 럼스펠드 장관 지시로 추가적인 검토가 중단되었다. 우리 국방부와 합참은 마치 남의 일처럼 방관만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가 주한미군에 뭔 불만을 전달하기라도 하면 라포떼는 "이런 수모는 처음"이라는 둥, "동맹 깰거냐"는 둥 노골적으로 언론에 불만을 말하며 한국 정부 간섭을 배제하려고 했다. 미국 50명의 대장 중 한 명에 불과하고 태평양사령부 예하부대장에 불과한 자가 남의 나라에 와서 하는 말을 보라. 이것이 어떻게 연합사령관인가? 오히려 대한민국 총독에 가깝지 않은가? 그걸 보고도 연합사령부에 주권의 문제는 없다고 하니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주장이다.
심사가 거슬린 리언 라포떼는 이런 말도 했다. "한국정부에 정보를 주면 북한에 흘러가는 것 같다"며 군사정보가 청와대와 한국 합참에 누설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2004년에 윤광웅 청와대 국방보좌관을 만난 라포떼가 "북한이 우리 작전계획을 알고 있는 것 같다"며 마치 청와대가 그 주범이 아니냐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것이다. 하도 기가 막혀 이 일이 있고 난 다음 청와대·NSC는 "앞으로 대통령이 연합사령관을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마치 "너 혼자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말 안 듣는 연합사령관이 어떻게 연합사령관인가? 그런데 앞으로 우리가 연합사령부에 감사를 하겠다, 국회에 출석해라, 우리 합참의 작전지침을 받으라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당장 미군 빼겠다"고 나올 것이다. 그러면 한국 대통령은 기절을 한다-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퇴거 앞둔 독거노인, '국밥값' 남기고 목숨 끊어1031 프레시안
세 들어 살던 집이 매각돼 퇴거를 앞둔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31일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따르면,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주택 1층에 살던 최모(68) 씨는 지난 29일 오전 10시께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최 씨는 49.5㎡(15평) 남짓한 이곳에서 SH공사의 독거노인 전세 지원금 5700만 원을 받아 전세금 6000만 원을 주고 생활해 왔다.
그는 이 집이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는 상황을 알고는 지난 28일 SH공사 측에 "내일 퇴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퇴거 당일 연락이 닿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SH공사 직원이 경찰에 신고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최 씨는 결혼을 하지 않고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약 3개월 전 모시던 노모가 세상을 뜬 후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최 씨가 발견된 옆 방 테이블 위에서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라"고 적힌 봉투와 10만 원 가량의 현금을 발견했다. 경찰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들을 위해 식사나 하라며 돈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이 밖에도 자신의 장례비로 추정되는 100여만 원, 전기·수도요금 고지서와 이에 해당하는 돈도 '빳빳한' 새 돈으로 구해 남겨놓았다. 그가 이렇게 남긴 돈은 총 176만 원에 달했다.
경찰은 "특별한 직업이나 모아놓은 재산이 없던 최 씨가 집을 비워져야 할 처지에 놓이자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집에서 발견된 돈은 그의 조카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노컷뉴스 사설]급식도 성적순? 경쟁이 아니라 학대다 1031
학교가 학생들을 공부기계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어제 오늘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밥을 먹는 것도 성적순으로 하는 기가 막힌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북의 한 초등학교 3학년 학급에서는 시험 점수에 따라 1등부터 꼴등까지 차례로 급식이 이뤄졌다. 정기시험 결과가 나오면 급식 순서가 바뀌고, 성적이 하위권이면 밥을 먹는 순서도 뒤로 밀렸다. 부산에 있는 한 초등학교도 점심시간 전에 문제를 풀게 한 뒤 다 푼 순서대로 밥을 먹게 했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공개한 내용이다.
물론 이런 황당한 일이 극히 일부 학교의 특별한 사례이겠지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경쟁심을 자극해서 성적을 올리겠다는 의도라지만 공부를 못해 뒷전에 서서 급식을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의 가슴에 남을 좌절감과 상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이건 교육이 아니라 아동 학대나 다름없다. 아이들은 물론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이런 교육 행태에 대해 '선생님이 하는 일이니 불만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학부모의 고백이다.
학교 현장의 성적순 줄 세우기 행태는 이 뿐이 아니다. 마산·창원 지역의 한 중학교 도서관에는 전교 석차 순서로 학생들의 자리가 지정돼 있었다. 또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전교 50등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 투명한 ‘유리부스’ 자습실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끼지 못한 학생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했다. 자습실의 책상도 성적순이었다. 자율학습 강제 참석이나 명문대 합격자 명단을 적은 현수막 걸기, 주말 등교 강요, 선행학습 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학교 교육에 경쟁이 없을 수 없지만 성적순 줄 세우기는 결코 정상적인 학교의 모습이 아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실망하지 않고 잘 따라올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는 게 학교가 해야 할 일이다. 지나친 경쟁심을 유발하거나 수치심을 줘서 성적을 높이려는 발상은 극히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모습일 뿐이다. 교육당국은 철저한 실태조사를 통해 그릇된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성인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 대한 평가는 5점 만점에 2.49점이었다. 이런 낙제점 평가는 학교가 입시 학원으로 전락하고 성적순 줄 세우기 관행이 일상화 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을 전적으로 학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학벌 지상주의에 매달리게 한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서민 이웃’ 동네가게 40·50대 여성이 이끈다 1031 한겨레
30개 업종 58%가 여성…사업자 4년 새 5.6% 늘어
패스트푸드·휴대폰 급증하고 문구 피시 뚝 떨어져
서민의 이웃인 “동네 가게”들은 대형 매장이나 기업 체인점에 밀려 날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최근 국세청이 내놓은 30개 생활 밀접 업종 사업자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 자영업자 연령과 남녀 분포
국세청이 집계한 2013년 12월말 현재 30개 업종 사업자는 132만9012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이 58.4%, 남성은 41.6%다. 특히 40대, 50대 여성의 비율이 전체의 39.8%다. 동네 가게 주민 10명 중에 4명은 중년 여성인 셈이다. 전체 연령 분포로 보면, 자영업은 30-50대가 주도한다. 30살 미만은 전체의 5.6%이고 60살 이상은 13.3%다.
사업주의 남녀 분포를 보면, 대부분은 상식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꽃가게, 화장품가게, 미용실, 옷가게, 일반 음식점, 노래방, 일반 주점은 역시 여성이 주로 한다. 반면 남성이 주로 하는 사업은 이발소, 철물점, 자동차 수리점, 안경점, 피시방, 휴대폰 판매점 등이다. 다만 과일가게(남녀 비율 60 대 40)와 목욕탕(53 대 47)의 경우 남성 사업주가 더 많다는 건 약간 뜻밖이다.
남녀 성별 구분 못지않게 연령별 구별도 뚜렷하다. 50대 이상이 주로 하는 사업으로는 이발소, 철물점, 세탁소, 목욕탕, 식료품가게, 여관이 있다. 40대 이하 젊은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업은 안경점, 피시방, 휴대폰 판매점, 교습학원, 화장품가게, 미용실 등을 꼽을 수 있다.
■ 휴대폰 판매점, 편의점 늘고 피시방, 문구점 줄어
전국의 자영업자 수는 2009년 125만9100명에서 2013년 132만9012명으로 5.6% 늘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일반 음식점 사업자로 전체의 35%인 46만2839명이다. 2009년에 비해 5.4% 는 것이다. 4년새에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패스트푸드점으로 증가율이 64.1%에 달한다. 편의점(56.5%), 휴대폰 판매점(56.1%), 실내장식가게(35.3%), 과일가게(30.2%), 화장품가게(23.7%)도 많이 늘었다. 대신, 문구점(-21.4%), 피시방(-18.8%), 서점(-17.5%)은 많이 줄었다.
30대 업종 전체의 인구 천명당 사업자 수는 2009년 25.3명에서 26.2명으로 늘었다. 가장 많은 일반 음식점이 2013년말 현재 1천명당 9.14명이고, 옷가게(1.75명), 부동산중개업소(1.55명), 미용실(1.57명), 식료품가게(1.19명), 일반 주점(1.19명)도 인구 1천명당 1명이 넘는 업종이다
30개 업종별 사업자 연령, 남녀 분포 (2013년 12월말 기준, 단위: %) | ||||||||||||
업종 | 남성 | 여성 | 30 미만 | 30 미만 | 30대 | 30대 | 40대 | 40대 | 50대 | 50대 | 60 이상 | 60 이상 |
합계 | 41.6 | 58.4 | 2.3 | 2.2 | 9.5 | 9.0 | 12.7 | 19.7 | 11.2 | 20.1 | 5.9 | 7.4 |
슈퍼마켓 | 52.0 | 48.0 | 1.5 | 1.0 | 8.6 | 5.6 | 18.3 | 17.2 | 16.8 | 16.2 | 6.9 | 8.0 |
편의점 | 47.8 | 52.2 | 3.7 | 2.4 | 14.6 | 9.3 | 15.3 | 20.2 | 10.3 | 15.3 | 3.8 | 5.0 |
정육점 | 58.1 | 41.9 | 2.2 | 0.7 | 13.8 | 5.0 | 18.3 | 13.0 | 16.0 | 16.5 | 7.8 | 6.8 |
과일가게 | 60.2 | 39.8 | 2.2 | 0.9 | 8.0 | 4.4 | 16.3 | 12.4 | 21.7 | 14.9 | 12.0 | 7.2 |
화장품가게 | 16.3 | 83.7 | 1.3 | 6.3 | 4.3 | 21.4 | 5.4 | 31.0 | 3.8 | 19.9 | 1.5 | 5.2 |
옷가게 | 26.6 | 73.4 | 2.8 | 5.3 | 6.5 | 16.1 | 6.7 | 22.1 | 6.6 | 20.8 | 3.9 | 9.1 |
가구점 | 64.9 | 35.1 | 1.7 | 0.9 | 10.1 | 5.4 | 21.7 | 13.0 | 21.2 | 12.2 | 10.0 | 3.7 |
서점 | 54.8 | 45.2 | 1.1 | 1.3 | 6.1 | 7.6 | 17.2 | 18.8 | 19.6 | 13.1 | 10.8 | 4.4 |
안경점 | 83.8 | 16.2 | 2.8 | 1.7 | 23.9 | 7.3 | 31.9 | 5.0 | 19.6 | 1.5 | 5.7 | 0.6 |
문구점 | 47.8 | 52.2 | 0.9 | 1.1 | 5.7 | 6.7 | 14.5 | 20.2 | 17.3 | 17.3 | 9.4 | 6.9 |
철물점 | 72.5 | 27.5 | 0.7 | 0.3 | 4.8 | 1.6 | 14.7 | 7.9 | 29.0 | 11.1 | 23.4 | 6.6 |
꽃가게 | 37.2 | 62.8 | 1.3 | 2.4 | 4.8 | 8.8 | 11.5 | 23.4 | 13.2 | 21.8 | 6.5 | 6.4 |
여관 | 45.3 | 54.7 | 0.9 | 0.5 | 5.2 | 2.9 | 8.6 | 8.2 | 13.8 | 21.1 | 16.8 | 22.0 |
일반 음식점 | 35.1 | 64.9 | 2.7 | 2.1 | 8.8 | 6.9 | 10.4 | 19.5 | 9.4 | 26.7 | 3.9 | 9.6 |
패스트푸드점 | 45.6 | 54.4 | 4.6 | 2.2 | 15.5 | 11.2 | 15.9 | 23.6 | 8.0 | 14.0 | 1.6 | 3.3 |
일반 주점 | 32.3 | 67.7 | 4.3 | 3.2 | 11.3 | 8.9 | 9.4 | 24.4 | 5.5 | 25.4 | 1.7 | 5.9 |
제과점 | 49.4 | 50.6 | 1.4 | 1.9 | 13.1 | 10.8 | 21.6 | 20.8 | 10.5 | 13.6 | 2.7 | 3.3 |
부동산 중개업소 | 57.0 | 43.0 | 0.6 | 0.5 | 4.8 | 4.0 | 14.0 | 20.8 | 21.4 | 15.4 | 16.2 | 2.2 |
예체능학원 | 43.5 | 56.5 | 2.8 | 4.5 | 16.9 | 18.3 | 15.6 | 21.4 | 6.2 | 10.1 | 2.1 | 2.1 |
교습학원 | 48.2 | 51.8 | 0.8 | 1.9 | 13.8 | 16.2 | 23.2 | 25.3 | 9.1 | 7.2 | 1.2 | 1.2 |
자동차 수리점 | 88.1 | 11.9 | 1.5 | 0.3 | 16.7 | 2.2 | 39.4 | 4.8 | 24.9 | 3.6 | 5.6 | 1.0 |
노래방 | 33.3 | 66.7 | 2.4 | 1.8 | 5.5 | 3.9 | 8.3 | 19.7 | 12.2 | 33.8 | 4.9 | 7.5 |
PC방 | 71.5 | 28.5 | 6.4 | 1.7 | 37.0 | 9.4 | 20.2 | 8.6 | 5.7 | 5.5 | 2.2 | 3.3 |
세탁소 | 65.3 | 34.7 | 1.1 | 0.6 | 4.1 | 2.6 | 13.7 | 12.3 | 31.7 | 15.5 | 14.8 | 3.8 |
이발소 | 81.1 | 18.9 | 0.0 | 0.2 | 1.4 | 1.5 | 5.2 | 5.0 | 28.8 | 8.9 | 45.6 | 3.3 |
미용실 | 11.3 | 88.7 | 0.6 | 3.0 | 5.5 | 20.8 | 3.6 | 36.8 | 1.0 | 22.9 | 0.6 | 5.3 |
목욕탕 | 53.1 | 46.8 | 0.8 | 0.8 | 4.5 | 2.6 | 8.0 | 8.5 | 18.4 | 19.4 | 21.3 | 15.6 |
식료품가게 | 45.0 | 55.0 | 1.3 | 1.0 | 5.9 | 4.4 | 11.2 | 12.4 | 13.2 | 18.7 | 13.4 | 18.5 |
실내장식가게 | 76.4 | 23.6 | 2.0 | 0.9 | 16.9 | 5.6 | 32.6 | 10.5 | 21.1 | 5.5 | 3.8 | 1.2 |
휴대폰 판매점 | 69.3 | 30.7 | 13.9 | 3.8 | 34.3 | 11.9 | 15.4 | 8.3 | 4.0 | 4.4 |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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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출처: 광주지인
This Land is Nobody's Land / John Lee Hoo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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