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xus microphylla var. koreana 회양목과 Korean box tree, 淮陽木
키는 7m에 이른다. 작은 가지는 녹색으로 네모지며 털이 있다. 타원형의 두꺼운 잎은 마주나며 톱니가 없고 뒷면에 약간의 털이 있다. 꽃은 꽃잎이 없이 4~5월에 엷은 황색으로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암꽃과 수꽃이 나와 모여 피는데 중앙에 암꽃이 있다. 수꽃은 보통 3개씩의 수술과 1개의 암술 흔적이 있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길이가 1㎝ 정도의 난형이며 털이 없고 6~7월에 갈색으로 익는데 흑색의 씨를 갖는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부산의 경우 12월~2월에도 발견되며 월말에서 3월 초순 꽃을 볼 수있다.
잎이 좁고 긴 것은 긴잎회양목(for. elongata)이라 하고, 잎이 둥글고 크며 윤기가 도는 것은 섬회양목(var. insularis), 잎에 털이 없고 보다 얇은 것은 좀회양목(B. microphylla)이라고 한다. 번식은 씨를 7월에 채취하여 곧바로 파종하면 이듬해 봄에 발아한다. 회양목은 상록성이고 나무 모양이 아름다우며 양지·음지에서 모두 잘 자라고 추위와 공해에 견디는 힘도 강해 정원수와 경재수(境栽樹)로 각광받고 있다. 목재는 공예용(조각·주판·참빗·바둑판·도장)으로도 많이 쓰인다. 잎은 모발제와 강장제로 쓰고, 잎과 수액에서 향료를 추출한다.
회양목은 선비들이 거처하는 사랑채나 서원에 한두 그루씩 정원수로 심었고, 주요한 옛 쓰임새는 이렇게 작은 목판이나 나무활자였다.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왕조실록을 비롯한 책을 인쇄하는 데 필요한 나무활자는 주로 회양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 점치는 도구, 궁궐을 출입하는 표신(標信), 머리 빗, 장기 알, 각종 공예품 등에도 빠지지 않았다. 또 도장나무라는 회양목의 다른 이름처럼 개인 인장, 관인(官印), 그림이나 글씨를 쓰고 찍는 낙관(落款)을 회양목으로 만들었다. 옛 문헌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황양목(黃楊木)으로 기록되어 있다. 회양목이란 이름은 개화 초기 우리나라 식물의 일제 조사를 실시할 때 새로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근거로서 강원도 회양(현재 북한지역)을 원산지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회양목은 우리나라 자생 나무 중에서 가장 야무진 나무이다. 대부분의 나무는 물을 운반하는 물관세포가 크고, 나무를 지탱해주는 섬유세포는 작지만, 회양목은 물관과 섬유의 지름이 거의 같은 유일한 나무다. 특히 회양목은 물관이 나이테 전체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나무질이 곱고 균일할 뿐 아니라 치밀하고 단단하기까지 하다. 회양목은 가공하기도 쉬워서 상아나 옥을 대신하는 재료다. 중국에서는 황양목이라 부르는 회양목은 늘 푸른 키 작은 나무이다. 회양목은 나무의 조직이 단단한 만큼 아주 더디게 자란다. 중국 명대 이시진의 <본초강목>을 보면 1년에 약 3cm정도밖에 자라지 않는다. 삼은정이나 도산서당 등 선비의 공간에서 회양목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속이 단단한 이 나무의 특징 때문이다. 선비들은 회양목의 삶을 통해 자기 내면을 다스리면서도 자기 뜻을 드러낼 때 사용한 도장의 재료로 활용했다. 그래서 회양목을 ‘도장나무’라고 부른다. 더욱이 회양목은 생원과 진사들이 사용한 호패의 재료였다.
얼핏보면 회양목은 꽝꽝나무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잎이 줄기에 서로 마주나기(대생)인 회양목과 달리 꽝꽝나무의 잎은 서로 어긋나기(호생)로 되어 있다. 잎도 회양목은 좀 단단하고 평평하지만, 꽝꽝나무는 잎이 얇고 뒤로 살짝 뒤집어진 모양이다.
더딘 성장과 관련 여러 이야기들이 전한다 "황양목의 장점은 매우 단단한 대신, 단점은 자라는 속도가 아주 더뎌서 1년에 겨우 1촌(一寸, 약 3센티) 정도 자란다. 그런데 윤달이 든 해(閏年)는 도리어 1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빗대어 ‘진촌퇴척(進寸退尺, 한 촌 전진하고는 한 자=30센티 퇴보)’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자리에 정체되어 전혀 발전이 없는 사람, 또는 아무리 오래 선방에 앉아 참선을 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황양목선이라고 한다.
운허 스님 편 ‘불교사전’에는 “깨달은 곳에 주저앉아서 활용하는 솜씨가 없는 사람을 꾸짖는 말.” 그리고 ‘선학사전’에는 “수행에 정진하지 않아 퇴보한 선승(禪僧)을 가리킴”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모두 진취가 없는 선승을 가리킨다."
"선어 가운데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라는 말이 있다. ‘100척(약 33미터)이나 되는 장대 끝(竿頭)에서 과감하게 한발 더 내 딛으라’는 뜻인데,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안주하면 그 역시 자신을 구속하는 올가미, 집착이 되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내 딛었을 때(進一步)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법은 없다. 그것을 이름하여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최고의 깨달음)라고 한다.”는 ‘금강경’의 법문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수행자든 학자든 정권(政權)이든 간에 현 위치에서 안주하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특히 정신세계는 더욱 더하여 그 자리에 안주하면 정신이 썩고 타락해 버린다. 썩으면 정화 능력을 잃고 퇴보할 수밖에 없는데,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 백척간두 진일보에 대하여 ‘깨달은 이후에는 다시 중생 속으로 내려와서(진일보)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것은 십우도에서 맨 마지막 그림인 입전수수(入廛垂手, 세속으로 내려와 손을 내 밀라)와 같은 뜻으로, 부처가 되었다면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다시 세속으로 들어와서 중생을 제도하라는 것이다. 안주, 집착은 선의 핵심이자 목표인 공(空), 중도, 무집착의 세계를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대혜선사(1089∼1163)도 황양목선을 조롱했다. ‘대혜어록’ 17권 ‘보설’에, 단칠(斷七)이라는 시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루는 여러 관원들과 함께 방장실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손에 젓가락을 든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화두삼매). 그때 노화상(대혜)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자는 황양목선을 하여 도리어 쭈그러들었군”이라고 하였다. 즉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 일에 열중하라는 것이다.
은나라 탕왕은 매일 같이 세수하는 대야에 이런 문구를 새겼다고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인데,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한자리에 정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출처: 법보신문 2012.4.10. 윤창화의 선 병통과 치유 13 . 황양목선(黃楊木禪)에서
봄의 바람에
江으로 가는 물 江으로 가는 모래
정액 냄새 화사한 밤꽃 그늘에서
문득 이름을 잊어버린 애인 하나야
나는 허물어져 강으로 간다
미친 바람이 불고 등불(燈火)이 죽고
헤어진 사람들은 헤어진 땅에서
문풍지를 바르던 겨울이여
죽은 비듬을 털어내는 회양목(回陽木) 둑길에 서면
둑길에는 겨우내 바람뿐이지
아무도 오지 않고
회양목은 회양목끼리 귀를 열어
불려가는 내 음성을 들었으리
꽃다지 피어 흔들리는 밭머리에 서면
낯 익은 것은 겨우내 모두 죽고
못 잊을 것도 겨우내 모두 죽고
아아 혼자 남아서 허공을 떠다니다가
붙잡은 것 없는 빈 손으로 떠다니다가
애인 하나야
끝끝내 나는 허물어져 강으로 간다
이외수 시집 <풀꽃 술잔 나비 >
잘 키운 회용목 분재 (출처: 다음 카페)
Sensitive Kind / Walter Pa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