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 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위대현 옮김 l 두번째테제 l
안드레아스 말름-스웨덴의 정치생태학자이자 기후 활동가로 스웨덴 룬드 대학교 인간생태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자본주의와 생태계 위기의 연관성을 파헤치는 저작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왔다. 말름의 박사 학위논문은 2016년 《화석 자본》으로 출간되었고 그해 아이작 도이처 기념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이 폭풍의 진보The Progress of This Storm》, 《송유관을 폭파하는 방법How to Blow Up a Pipeline》, 《흰 피부, 검은 연료White Skin, Black Fuel》(공저), 《불타는 세계에서 싸우기Fighting in a World on Fire》 등이 있고,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가 있다.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7
1 과거의 열기 속에서: 화석 경제의 역사를 향하여 11
2 결핍, 진보, 인류의 본성? 증기력 발흥에 관한 이론들 40
3 흐름의 끈질긴 생명력: 석탄 이전의 산업 에너지 65
4 ‘저 군중 속에 강력한 에너지가 있다’: 위기 중에 동력을 동원하다 96
5 전환의 수수께끼: 여전한 수력의 장점 125
6 흐름이라는 공유재로부터의 탈주: 미완으로 끝난 수력의 확장 153
7 도시로 가는 차표: 증기가 지닌 공간상의 장점들 190
8 믿을 수 있는 힘: 증기의 시간상 장점들 257
9 ‘규제는 필요 없고 오직 연료만’: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석탄으로부터 권력을 도출하다 301
10 ‘가서 저 연기를 멈추자!’: 증기에 맞선 저항의 순간 347
11 길게 뻗은 연기: 화석 경제가 완성되다 386
12 인류의 기획이라는 신화: 대안 이론을 찾아서 393
13 화석 자본: 부르주아 소유관계의 에너지 토대 431
14 세계의 굴뚝, 중국: 오늘날의 화석 자본 505
15 흐름으로의 귀환? 전환을 가로막는 장애물들 563
16 마개를 뽑을 시간: 권력-동력의 배출물인 CO₂에 관하여 598
감사의 말 607
미주 610
옮긴이의 말 676
찾아보기 685
출판사 리뷰
기후 재앙이 다가온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19세기 영국의 면직물 작업장에서 현재 중국의 최첨단 자동화 공장까지
단순히 기술 발전이나 효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화석연료 체제의 기원을 살피며
우리가 맞이한 이 비상사태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도를 모색하다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은 화석연료 체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작업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 온 환경 사상가이자 기후 활동가 안드레아스 말름의 첫 번째 저작이다. 이 책은 2016년 출간된 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해 아이작 도이처 기념상을 수상했다.
저자 안드레아스 말름은 스웨덴 룬드 대학교 인간생태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급진적인 환경 사상과 기후운동 관련 저작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독창적인 화석 자본과 전시 공산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저자는 기후 위기 시대를 벗어나는 급진적 전략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번에 처음 국역된 《화석 자본》은 저자의 대표작으로, 스웨덴의 정치생태학자 알프 호른보리의 지도하에 받은 박사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맞이한 기후 위기에 대한 방대하고도 치밀한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화석 자본》에서 안드레아스 말름은 우리를 산업혁명기 영국의 면직물 작업장으로 인도한다.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 위기 사태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그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 모든 일들은 산업혁명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자본가들의 꿈이 부풀었던 자본주의의 초창기, 희망에 찼던 앤드루 유어나 찰스 배비지 같은 이들의 기계와 제조업에 대한 찬미와 당대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맬서스-리카도적 패러다임, 수력 기술자 로버트 톰의 실패와 증기기관의 인기에 따른 제임스 와트의 엄청난 성공 등, 그 당시의 기계 발명가 및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의 다양한 논의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그동안 이러한 세계를 만들어 온 배경과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살피기 시작한다. 그 탐구를 마친 끝에 저자는 위기를 해석하는 다양한 주장들, 특히 인류세로 대표되는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시각에서 현재의 비상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급진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의 승리와 화석연료 체제의 완성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화석연료 체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영국의 산업혁명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의 흐름을 이용하는 수차에서 재고로 땅에 묻혀 있는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으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변화가 단순히 증기기관이 발명되어 기존 기술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제공했고 이에 맞춰 자본가들이 열렬하게 이윤을 추구하면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까? 당시 수력을 활용한 자본가들은 여러 어려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수력은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흐름을 이용했기에 그 자연력이 끊이지 않았고, 경관을 이용했기에 CO₂ 배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는데, 주로 산골에 위치한 수력 작업장들에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성실하게 일하게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노동자들은 기계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기 어려워했고, 자신의 노동력을 제약하는 것 또한 극도로 싫어했기에 일이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다지 저렴하거나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던 증기력이 등장한다. 제임스 와트가 고안하여 유명해진 증기기관은 에너지의 재고인 석탄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동성을 큰 특징으로 했다. 비용으로 볼 때 증기기관은 그다지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수력에 비하자면 노동을 통제하고, 자본이 노동에 비해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이동성을 제공해 주었다. 동력원의 변화를 통해서 자본은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도시로 작업장을 이동시킬 수 있었으며,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그저 ‘도우미’ 수준으로 격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통제되지 않던 노동자들이 공간상으로, 시간상으로 통제받게 되면서 이렇게 제임스 와트의 발명은 자본가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이러한 축복은 노동자들에게는 곧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이에 따른 노동자들의 처절한 싸움이 이어진다.
말름은 이러한 모습들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당시의 기술, 사회, 문화적인 다양한 양상들을 살펴보고 흔히 제시되는 설명, 즉 석탄이 더 저렴해서 그렇게 되었다거나 혹은 풍부한 에너지를 통해 기술 발전의 결과로 그렇게 이행했다는 식의 주장들을 반박한다. 사실 수력에서 증기력으로의 전환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사회적인 모순과 그 기원을 가진 특수한 현상이었고 여기에서 자본이 승리하면서 비로소 지금의 세계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수력 자본가들의 좌절과 증기력 자본가들의 승리, 시간을 지배하는 고된 노동과 공간의 집중화를 불러온 기계의 힘에 저항한 차티스트 운동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기록과 저항을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승리하게 되는 이 폭력의 역사가 이렇게 우리에게 드러난다.
저자는 화석연료 체계의 등장과 지구온난화의 역사적 기원을 밝히면서 기존의 학설을 비판적으로 뒤엎는다. 다음으로 현재 세계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CO₂ 배출량 문제와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서 중국의 석탄 사용 및 제한이라곤 없는 자본의 이동성을 분석하고, 재고를 사용하는 화석연료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태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공학적 해결책으로는 부족하며, 우리에게는 좀 더 세계적이고 급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인류세인가 자본세인가?
방대한 본문 중에서 저자는 특히 스승인 정치생태학자 알프 호른보리의 기계물신주의 논의를 소개하며, 권력-동력을 동시에 의미하는 단어 ‘Power’에 대한 탐구와 기계 및 증기와 관련한 물신주의 논의의 확장을 통해 현 사태를 빚어낸 화석연료 체제의 본질을 밝힌다. 사물에 불과한 기계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개념을 제공하고 거기에 따르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것이 현대까지 기계에 대한 자연화를 불러온 기작인 것이다. 말름은 더 나아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의 일반 공식을 제시했던 것처럼 ‘화석 자본의 일반 공식’을 제시한다. 이 공식은 자본주의와 화석연료 소비의 관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또한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독자들이 인류세 및 지구공학 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접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말름은 최근 각광을 받는 인류세 논의를 비판하면서 오히려 과학적으로 더 정확한 용어로 ‘자본세’를 제시한다. 인류세 논의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이 문제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게 하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자본주의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위기에서 보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 이 위기에서 벗어날 구명정은 소수 특권층에게만 주어져 있을 것이고, 그들은 이러한 위기조차도 이윤을 위한 출구로 이용한다. 이러한 불평등한 세계에서, 저자는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자본에 정확하게 책임을 지게 하고, 파국이 얼마 남지 않은 비상사태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전시 공산주의’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설적이지만 일단 세계적인 위원회를 꾸려 이 위기에서 벗어날 강력한 생산수단의 통제와 에너지 흐름을 이용하는 전환으로 이행해야 한다. 에너지의 재고를 소비해 연기로 날려 버리는 화석연료 체제에서 벗어날 급진적 대안은 이렇게 드러난다.
이 불타오르는 세계를 어떻게 식힐 것인가?
《화석 자본》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여러 저작 중에서도 급진적이며 강렬한 주장을 담아 여러 환경 사상가 및 활동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19세기 잉글랜드 산업과 기술에 관한 다양한 사료와 저작들을 남김없이 분석하며, 특히 환경 문학을 선취한 영국 노동자들의 활동에서 드러난 기관에 대한 ‘증기 악마학’과 석탄을 차지하기 위한 공유지의 강탈과 인클로저 등 그간의 전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화석 자본의 세기를 우리에게 밝혀준다. 19세기 영국 맨체스터부터 중국의 배출 폭발까지, 화석연료의 승리부터 재생 에너지로의 다급한 전환의 필요성까지, 자본의 끝없는 이윤 추구와 이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까지. 이 연구는 세계를 불태우는 자본의 중심을 화석연료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이 불타오르는 세계를 어떻게 식힐 것인지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제안한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이 경제질서로부터의 탈피, 이 화석연료 체계로부터의 탈피밖에 해결책은 없다. 우리에게 닥친 비상사태에 맞서는 노동자들과 모든 이들이야말로 이러한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증기력에 확실한 이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증기력이 승리하게 되었다면, 생산력(또는 기술) 결정주의 역시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생산관계, 특히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가 증기력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던 것이지 그 역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이는 더욱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인류세 서사에서의 인과관계 주장은 더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아니 차라리 형이상학적인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이후 우리는 이 주장을 그러한 측면에서도 고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일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명시적 저항을 짓밟으면서 증기력을 도입했다면, 이게 바로 종 수준의 기획이 표출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론은 실제 자료에 기초해서 내려져야 한다.
영국 면직업계에서 증기력의 발흥 과정은 기존의 이론적 틀들이 심각한 오류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전환 당시를 모든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여전히 수력은 풍부했으며 저렴한 채로 남아 있었다. 이 패러다임의 핵심적 논리는 실제 역사적 과정의 가장 명백한 측면들과 분명히 모순된다. 적당한 작업장의 장소가 ‘너무 적었’다거나 또는 ‘더이상 찾을 수 없었’다는 주장이나 증기의 확산이 ‘생태적으로 더 선호되는 상황이었다’라는 말은 완전히 이 패러다임 내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점이 기록을 통해 분명하게 증명되었다. 리카도-맬서스식 패러다임이 자신들의 입장을 과연 방어해낼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 또 하나의 정리를 덧붙일 수 있다. 자본이 가는 곳에는 어디나 배출이 즉시 그 뒤를 따른다. 이게 바로 탄소 누출의 계급적 내용이다. 그러나 노동이 항상 새로운 확장 지역에서 이전 지역에서만큼의 강도와 열정으로 부활한다는 보장은 없다. 도리어 세계화를 겪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노동은 구조적으로 약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분쟁과 배출의 역사적 궤적은 서로 갈라지고 있다. 자본이 끝없는 공간적 조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자리를 이탈하고, 세계의 노동계급을 약화시키며, 쇠약해진 노동운동의 주변을 돌며 춤추고 있는 동안, CO₂ 배출량은 바로 그 똑같은 동역학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또는 세계화된 자본이 더 강력해짐에 따라 CO₂ 배출량의 증가 역시 더 급격해진다.
산업혁명기인 1850년대 영국 면직물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노동을 무릎꿇리기 위한 자본의 선택이 기후위기 기원
주목받는 생태정치학자·기후활동가 안드레아스 말름
‘화석 경제’의 시작을 찾아 19세기 초 영국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면서 네덜란드 기후학자 파울 크뤼천(1933~2021)이 제시했던 ‘인류세’(Anthropocene)란 개념은 이제 널리 자리를 잡았다. 인류세란 말은 인간이 그 본성적인 탐욕으로 말미암아 지구라는 행성을 더이상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지적하고, 종(種)적인 차원에서 그 책임을 묻는 접근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인류세란 새 지질시대의 시작점은 과연 어디일까.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산업혁명을 일으켰을 때? 인간의 흔적이 자연에 본격적으로 퇴적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이는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 기후위기의 기원인가 따지는 논쟁과 맞닿는다.
스웨덴 출신 정치생태학자·기후활동가 안드레아스 말름(46)은 2016년 펴낸 자신의 첫 책 ‘화석 자본’에서 기후위기의 근원을 찾기 위해 독자들을 1820년~1830년대 영국으로 데려간다. 공장의 탄생 등 면직업종에서의 비약적인 생산력 발전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직후, 자본주의 경제의 첫 구조적인 경기 침체가 일어났던 시기다. 지은이는 이 시기에 수력에서 증기력으로 동력 전환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오늘날 기후위기의 근원인 ‘화석 경제’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전모를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석 경제는 인간이란 종 전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종 내부의 모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이 새로운 지질시대는 인류 전체가 아니라 화석 경제를 선택한 특정 주체의 이름으로, 곧 인류세가 아닌 ‘자본세’(Capitalocene)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먼저 지은이는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눠본다. 태양에서 기원한 일부 에너지원은 생물권을 통과하여 흘러가는데, 인간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이 ‘에너지의 흐름’을 낚아채 쓸 수 있다. 이를테면 바람, 하천의 흐름 등이다. 어떤 에너지원은 인간이나 동물이 가진 근육이 지닌 힘의 형태로 생명체에 깃드는데, 이는 ‘동물력’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전 과거에 주어진 태양에너지를 품고 있는 ‘에너지의 재고’가 있는데,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가 여기에 해당한다. 화석연료의 출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에너지를 더 소비하려는 (종적 차원에서) 인간의 욕망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핍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추동해 결국 화석연료를 불태우게 되었다는 식(리카도-맬서스식)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 인구의 증가 등이 이런 설명을 뒤따른다.
1835년께 뮬 방적기를 이용하고 있는 영국 면직업 공장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나 19세기 초 영국이란 현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력 방적기를 발명한 리처드 아크라이트(1732~1792)가 제시한 길에 따라, 애초 영국의 면직업은 수력(수차)에 기대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참이었다. 1784년 제임스 와트(1736~1819)가 석탄의 열에너지를 물리적인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회전식 증기기관을 만들어냈으나, 이것이 곧바로 ‘화석 경제’의 시작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수력에 견줘 비용은 높고 생산성은 낮았기에 증기력은 한동안 수력을 대체하지 못했다. 수차에 자동장치를 적용해 대규모 생산을 추진한 로버트 톰의 기획에서 보듯 수력에서도 혁신이 있었다. 화석 경제는 증기력 자체가 아니라 다른 핵심적인 원인에 기대어 등장했고, 또 같은 원인에 따라 오늘날까지 우리의 평시 활동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 지은이의 핵심 주장이다.
그것은 시간·공간적 측면에서 노동을 복종시키기 위한 제조업자(자본가)들의 선택이었다. 50%에 달하는 초과이윤을 얻던 면직업은 1825년 12월이 되면 이윤율이 5% 이하로 떨어지는 “자본주의 최초의 구조적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구조적 위기는 여러 차례 노동조합의 결성과 파업, 대중 봉기에 불을 붙였고, 공장법 제정, 차티스트 운동 등과 맞물려 1842년 총파업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1848년에 이르면 이런 움직임들이 ‘평정’되고 “영국 자본주의는 교착상태를 벗어나 지속적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구조적 위기’ 동안 제조업자들은 수력 대신 증기력을 ‘선택’함으로써 노동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1784년 제임스 와트와 매슈 볼턴이 개발하여 특허를 획득한 증기기관의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증기기관의 발명자 제임스 와트의 전신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선 “증기는 그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닌 공간상의 이동성 덕에 선택되었다.” 수력을 쓰려면 공장을 벽지인 하천 근처에 세워야 했고, 이는 노동자를 조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위해 정착촌도 건설해주고 ‘인간관계’에 묶여야 했다. 그러나 ‘에너지의 재고’라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증기력을 이용한 공장은 도시 등 인구 밀집지에 지어져 손쉽게 노동력을 조달할 수 있었고, 노동자를 공장 속에서 기계 부품처럼 다루는 것을 가능하게 해줬다. 시간의 측면도 중요했는데, 노동시간을 하천의 유량과 유속에 맞춰야 하는 수력과 다르게 증기력은 언제든 자본가가 원하는 대로 공장을 돌릴 수 있게 해줬다. 당시 ‘하루 10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공장법 제정 운동은 수력에 치명적이었으나, 증기력은 노동시간 규제 기류에 적응하면서도 작업 속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이윤을 챙겼다. “증기력은 제조업자들에게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노동자라는 멍에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다.” 이런 측면에서 지은이는 당시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권력-동력’이라고 짚는다. 자본은 동력을 통해 권력을 얻은 반면, 노동은 권력 없는 동력이 된 것이다.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화력발전소 굴뚝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스웨덴 출신 정치생태학자이자 기후활동가 안드레아스 말름은 ‘인류세’ 대신 ‘자본세’란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생태철학을 구축해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결국 ‘화석 경제’는 결핍을 이겨내기 위한 생산력 고도화 등 에너지원 그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노동을 무릎꿇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은이는 “기후변화가 인간적(anthropogenic)이라는 점을 인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사회적 원인을 가진다(sociogenic)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역사적 기록이 이처럼 명백히 보여주는 ‘종 내부의 모순’에는 눈감은 채 “무차별적으로 우리라고 지칭하는” 인류세 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인류가 아니라 자본축적의 지질학”이라면, 이 시대의 이름은 ‘자본세’ 말고 다른 것일 수 없다. 지금의 행동 역시 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터, 지은이는 과거 증기기관의 마개를 뽑으려 했던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자며 말한다. “가서 피어나는 저 연기를 멈추자!”(Stop the smoke!)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마르크스주의로 본 화석연료 경제의 기원
이 책은 자본주의와 화석 연료 경제의 기원에 대한 훌륭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며 기후 운동가라면 누구나 읽어 봐야 할 필독서다.
말름은 화석 연료 경제가 시작된 19세기 초 영국에 주목한다. 바로 그때 그곳에서 에너지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선택한 첫째 에너지원은 흐르는 물이었다. 영국 면방직 공장의 기계는 흐르는 강물에서 물레방아를 통해 동력을 얻었다.
제임스 와트가 복동식 증기기관을 발명한 1784년 이후로도 수십 년 동안 수력은 증기기관에 비해 훨씬 저렴한 에너지원이었다. 1833년에 이뤄진 영국 정부의 공장 조사에서도 공장주들은 “수력이 훨씬 저렴하다”고 답했다.
“절대적인 용량, 운동의 균일함, 에너지 효율, 그 어느 측면에서도 기관은 수차를 압도하지 못했다. 실상은 차라리 그 정반대에 가까웠다.”
그러나 수력의 수많은 장점에도 자본가들은 숙련된 노동력을 더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면 도시에 공장을 짓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알게 됐다.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대처(해고, 대체인력 투입 등)하는 데에도 노동력이 풍부한 도시가 유리했다.
말름은 지하에서 캐낸 석탄이, 강에 인접해야 하는 수력과 달리 자본가들에게 “시공간적 자유”를 부여해 “도시로 가는 티켓”이 됐다고 지적한다.
당시 증기기관의 생산력은 수력에 한참 못 미쳤지만 자본주의적 경쟁 시스템과는 더 잘 어울렸다. 5장 ‘전환의 수수께끼’에서 말름은 당시 수력 엔지니어들이 여러 공장에 물을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장치를 얼마나 훌륭히 설계했는지 보여 준다. 거대한 저수지와 수문, 수로는 당대 증기기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안정되고 강력한 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을 다른 지역에도 적용하려 했을 때 자본가들은 전체 투자 비용 중 얼마를 분담해야 하는지를 두고 다퉜다. 증기기관은 전체로 보아서는 비용이 더 많이 들지만 경쟁 속에 있는 자본가들은 “남들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한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1843년, 수력 엔지니어 로버트 톰)
이는 오늘날에도 자본가들이 경쟁 때문에 기후 위기를 멈출 진지한 조처를 추진하지 않는 이유다. 요컨대, 말름이 보여 주고자 한 것은 자본가들이 자본주의적 경쟁 관계를 확립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화석 연료로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지배자들은 이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것으로 포장했지만, 말름은 당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보호하고(종종 기계 도입에 반대하며)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격렬히 싸웠음을 보여 준다.
말름은 21세기에 들어 화석 연료의 최대 연소처가 된 중국에서도 당시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맨체스터가 1840년대에 ‘세계의 굴뚝’이었다면, 21세기 초에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주로 세계적 이동성을 지닌 자본이 중국을 장악하여 자기 공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 노동자들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인구가 많은 도시 중심에 도달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본 사람들에게 말름의 책은 특별히 의미가 있을 듯하다. 말름은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는 누구나 경험적으로 이해했을 법한 사실들을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힘쓴 듯하다. 말름의 책과 함께 《자본론》 1권의 15장 기계와 대공업에 관한 장을 읽으면 특히 흥미로울 것이다.
말름은 일부 ‘마르크스주의자’의 “생산력 결정주의”를 비판한다. 그러나 말름 자신이 이 책에서 여러 차례 인용했듯이 마르크스 자신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말름이 인류세 개념을 일축하는 것이나 노동계급의 잠재력에 관해 회의를 표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 점이 이 책의 탁월함에 큰 흠이 되지는 않는다.
말름 자신이 소개한 1842년 영국 총파업의 경험은 21세기에도 재현될 수 있다. 패배의 경험과 약점이 있음에도 오늘날의 세계 노동계급은 여전히 화석 연료 산업을 중단시킬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화석 연료를 캐고, 자동차, 기차와 항공기를 몰고, 발전소를 운영하는 것은 바로 전 세계의 남녀 노동자이다.
우리 모두의 임무는 그 잠재력이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다./장호종 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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