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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과연 ?

by 이성근 2023. 11. 4.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저자 마이클 셸런버거/ 부키 /2021.04

 

Michael Shellenberger-환경 연구와 정책 단체 환경진보의 설립자 겸 대표다. 환경 연구소 브레이크스루연구소의 공동 설립자 겸 대표, MIT퓨처 오브 뉴클리어 에너지태스크 포스의 고문을 역임했다.

환경 구루” “기후 구루” “환경 휴머니즘 운동의 대제사장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환경, 에너지, 안전 전문가로 2008타임환경 영웅들에 선정되고 그린북어워드를 수상했다. 30년 넘게 기후, 환경, 사회 정의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1990년대에 캘리포니아의 미국삼나무 원시림 살리기 운동과 나이키의 아시아 공장 환경 개선 운동을 펼쳐 성공시켰다. 2000년대에는 청정 에너지 전환 운동인 뉴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도해 대규모 공공 투자를 이끌어 내고, 오늘날 전 세계적 화두인 그린 뉴딜정책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

2019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차기 보고서 전문 검토자로 초빙되었으며, 2020년에는 미국 하원 과학우주기술위원회에 출석해 기후 변화에 관해 증언했다. 또한 미국, 일본, 타이완, 한국,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 전 세계 정책 결정자들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기후 변화의 진실을 찾아서

 

1_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 자연은 회복하고 인간은 적응한다 | 진짜 지옥은 이런 곳이다 | 수십억 명이 죽는다고? |

자연재해 피해 규모를 좌우하는 진정한 요인 | 기후 변화 대책보다 발전이 더 절실한 사람들 |

누가 위기를 부풀리는가 | 기후 종말은 없다

 

2_ 지구의 허파는 불타고 있지 않다

지구의 허파를 구하자 | “그 말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어요” | 환경 식민주의자의 모순된 눈물 |

하늘에서 내려다본 낭만과 가난한 땅의 현실 | 인류 발전의 밑거름이 된 불과 삼림 개간 | 그린피스와 파편화된 숲 |

아마존 기부금 따위 도로 들고 가시오” | 환경 양치기를 넘어서

 

3_ 플라스틱 탓은 이제 그만하자

정말 미안해, 거북아” | 플라스틱의 끈질긴 위협 | 말뿐인 재활용 | 그 많은 플라스틱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거북과 코끼리의 목숨을 구한 발명품 | 사람이 문제다 | 플라스틱은 진보다 | 자연을 지키려면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 |

어떤 이들은 쓰레기 문제보다 더 속상한 일이 훨씬 많다

 

4_ 여섯 번째 멸종은 취소되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 부풀려진 멸종 위기 | 숯이 야생 동물을 위협한다 |

누가 왜 댐 건설에 총부리를 겨누는가 | 환경 보호의 탈을 쓴 새로운 식민주의 | 원주민의 우선순위는 다르다 |

야생 동물이 우리보다 더 소중해?” | 무장 집단이 날뛰는 무법천지 | 그들에게는 석유가 필요하다 | 발전을 위한 동력 갖추기

 

5_ 저임금 노동이 자연을 구한다

패션과의 전쟁 | 고향을 떠나 도시로 | 산업화와 농업 생산성 향상이 숲을 회복시킨다 | “위대한 탈출이 가져다준 혜택 |

부는 힘이 세다 | 나무 연료 사용을 끝내야 한다 | 공장이 떠나면 숲이 위험해진다 |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만든 옷을 입자

 

6_ 석유가 고래를 춤추게 한다

고래의 위기와 그린피스의 등장 | 유전이 발견되고 고래는 목숨을 구했다 | 포경을 사양 산업으로 만든 기술 발전 |

에너지 전환은 어떻게 일어날까 | 가스랜드불타는 물사기극 | 프래킹의 기후정치학 | 야생 물고기 대 양식 물고기 |

계층과 정치에 좌우되는 에너지 전환

 

7_ 고기를 먹으면서 환경을 지키는 법

동물을 먹는다는 것 | 채식주의와 리바운드 효과 | 방목형 축산 대 공장식 축산 | 고지방 식단의 진실 |

동물의 죽음에 생명을 빚진 우리 | 무엇이 동물에게 가장 인도적인가 | 교조적 채식주의자들이 저지르는 오류 |

프렌치 패러독스가 알려 주는 과학 | 가축 혁명과 야생 동물 고기 집착에서 벗어나기 | 선악을 넘어 공감으로

 

8_ 지구를 지키는 원자력

원자력 에너지 최후의 날 |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오해와 진실 | 원자력이 정말 더 위험할까 |

대단히 싸고 안전하고 효율 높은 에너지원 | 원전 폐쇄가 초래한 결과 | “원자력은 자연 보호의 희망이다” |

평화를 위한 원자력 | 원자력을 향한 전쟁 | 원전 반대로 치르는 값비싼 대가 | 원자력 발전은 비싸다? | 핵전쟁을 막는 핵무기

 

9_ 신재생 에너지가 자연을 파괴한다

태양광이 유일한 길이다? | 신뢰할 수 없는 신재생 에너지 | 신재생 에너지가 야생 동물을 죽인다 |

친환경 에너지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꿈 | 신재생 낭비 에너지 | 저밀도 에너지가 불러오는 생태 재앙 |

바람길은 새와 곤충의 것 | 자연산 선호 오류와 스타벅스 법칙

 

10_ 환경주의자와 친환경 사업의 겉과 속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의 돈줄 | 위선으로 일군 환경 운동 | 이해관계로 얽힌 환경 단체의 민낯 | 원자력을 프래킹하다 |

어느 주지사의 추악한 탈원전 전쟁 | 캘리포니아주의 뿌리 깊은 정경 유착 | 친환경은 인터넷보다 더 큰 사업 기회 |

유일하고 실질적인희망이 사라지게 놔둘 것인가

 

11_ 힘 있는 자들이 가장 좋은 해결책에 반대한다

가진 자들의 초호화판 환경 놀이 | 가난한 나라의 성장을 가로막는 환경주의자들 | 가난한 나라의 인프라 구축에 반대하는 선진국 |

맬서스, 처칠, 히틀러가 초래한 인류 역사의 비극 | 진보 좌파의 이념이 된 맬서스주의 |

구명보트의 윤리학: 일부는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 | 맬서스식 인구 폭발과 기아 만연은 틀렸다 |

인구 폭탄이 실패하자 기후 폭탄을 들고 나오다 | 세계 최고 극빈층을 상대로 한신재생 에너지 실험

 

12_ 왜 우리는 가짜 환경 신을 숭배하게 되었나

북극곰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 | 기후 정치가 과학을 위협한다 | 누가 로저 펠키 주니어를 모함했나? |

사이버네틱스와 생태학, 그리고 새로운 가짜 신의 탄생 | 환경주의는 어떻게 종교가 되었나 | 불안은 환경주의를 잠식한다 |

기후 종말론이 마음을 병들게 한다 | 환경 휴머니즘의 길 | 우리에게는 그린 뉴클리어 딜이 필요하다 |

모두를 위한 자연과 번영 이루기: 우리의 불멸 프로젝트 |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가장 간단명료한 이유

 

에필로그: 기후 소식은 생각보다 훨씬 좋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2008타임선정 환경 영웅

침묵의 봄이래로 가장 탁월한 업적” _와이어드

ㆍ 아마존 40주 연속 베스트

ㆍ 아마존, 반스앤드노블, USA투데이베스트셀러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스켑틱추천

ㆍ 조너선 하이트, 스티븐 핑커, 앤드루 맥아피 강력 추천

 

거주불능 지구는 헛소리다

“2030년쯤 문명은 종말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세상은 12년 안에 멸망.” “빠르면 2040년 큰 위기 닥친다.” 지구와 인류의 최후가 임박했다는 경고가 온 세상을 도배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알고 또 믿는 이런 환경 종말론은 과연 사실일까? 유엔 산하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2018년 보고서의 정확한 내용은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묶어 두려면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45퍼센트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상 상승하면 사회가 붕괴하거나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한 나사 기후학자에 따르면 이렇게 특정한 시점을 정해 두고 종말 운운하는 모든 이야기는 한마디로 다 헛소리.

 

타임선정 환경 영웅이자 환경 구루” “기후 구루” “환경 휴머니즘 운동의 대제사장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환경, 에너지, 안전 전문가인 마이클 셸런버거는, 최근 이런 환경 종말론이 득세하는 상황을 보고 심각한 문제라고 느꼈다. 기후 변화와 삼림 파괴, 멸종 등을 둘러싼 분노와 공포를 조장하는 종말론적 환경주의가 해소할 길 없는 불안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념을 유포하며, 실재하는 증거를 호도하거나 부정하고 있기때문이었다. 셸런버거는 30년 넘게 기후, 환경, 사회 정의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미국삼나무 원시림 살리기 운동과 나이키의 아시아 공장 환경 개선 운동을 펼쳐 성공시켰고, 청정 에너지 전환 운동인 뉴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도해 오늘날 전 세계적 화두인 그린 뉴딜정책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차기 보고서 전문 검토자로 초빙되었으며, 미국 의회에 출석해 기후 변화에 관해 증언했다. 이런 그가 보기에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 활동은 진실을 오도할뿐더러 기후 위기 해결을 오히려 방해하는 짓이었다.

 

기후 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에서 최선을 다해 잘못된 정보들을 바로잡고 사실과 과학을 올바로 전달하기로 결심한 셸런버거는, 이를 위해 각종 과학 연구 성과와 데이터, 각 분야 과학자와 환경 활동가 및 현지인 인터뷰, 수십 년간의 경험과 통찰을 총망라한 문제작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기존의 환경 논의, 특히 환경 종말론에 신랄한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환경 운동계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고래를 구한 건 그린피스가 아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곧 세계 종말이 닥친다” “수십억 명이 죽을 것이다” “거주불능 지구가 될 것이다같은 기후 종말론이 얼마나 과장된 주장인지 보게 된다. “인구가 폭발하고 식량이 고갈될 것이다” “태풍, 가뭄, 홍수, 산불 등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얼음이 녹아 북극곰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 “아마존이 곧 불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린피스가 고래를 구했다” “채식을 하면 탄소 배출을 대폭 줄일 수 있다같은 익숙한 주장 역시 과학적 근거나 사실과 어긋남을 알게 된다.

 

플라스틱은 진보다” “경제 성장이 환경 보호다” “자연을 구하려면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우리 직관과 반대되는 중대한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아울러 가난한 나라는 신재생 에너지를 도입하면 부유해질 수 있다” “원자력은 핵폭탄과 다름없는 위험한 것이므로 필요 없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전 세계 모든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깨닫게 된다.

 

사실 고래를 살린 건 그린피스가 아니라, 바로 기술과 경제 발전이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1800년대 중반 유전 개발로 등유가 생산되어 조명 연료 시장에서 고래기름을 몰아냈다. 1900년대 중반에는 식물성 기름이 마가린과 비누 원료인 고래기름을 대체해 고래를 구했다. 바다거북과 코끼리를 살린 것 역시 오늘날 최악의 쓰레기로 지탄받는 플라스틱이 발명되어 거북 껍질과 상아를 대신한 덕분이다. 천연 소재를 사용하자는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자연을 지키려면 우리는 인공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현재 인류는 100억 명을 먹여 살릴 식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에도 불구하고 식량 생산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 따르면 식량 생산량 증가는 기후 변화보다는 트랙터, 관개 시설 개선, 비료 등의 요소에 더 크게 좌우된다. 지난 30여 년간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줄어들었다. 유럽의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보다 23퍼센트 낮다. 미국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5퍼센트 감소했다. 이에 따라 지구 평균 기온도 티핑 포인트인 4도가 아닌 2~3도 상승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성과는 지구 종말을 외치는 기후 양치기들 덕분이 아니라 석탄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룬 덕분이고, 농업과 어업의 산업화와 현대화 덕분이며, 제조업의 발달 덕분이다. 기후 활동가들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기술과 경제 성장의 힘으로 우리는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이 유일한 길이라고?

환경주의자들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온 세상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비싸고, 불안정하며, 특히 에너지 효율과 밀도가 너무 떨어진다. 풍력 터빈의 최대 효율은 59.3퍼센트, 태양광 패널의 최대 생산 전력은 1제곱미터당 50와트다. 반면 천연가스와 원자력은 1제곱미터당 2000~6000와트다. 산업혁명은 석탄의 에너지 밀도가 나무보다 훨씬 높아서 가능했다. 같은 원리로 에너지 밀도가 훨씬 낮은 태양광과 풍력으로는 오늘날의 고에너지 도시 산업 사회와 문명을 지탱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문제는 태양광과 풍력이 날씨에 좌우되는 신뢰할 수 없는 간헐적 에너지라는 점이다. 그래서 태양광 또는 풍력 시설이 대대적으로 들어선다면 그 불안정성을 감당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더 많은 천연가스 발전소가 세워져야 한다. 이 때문에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더 많아지고 전기 요금도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대폭 높인 독일은 2007년 이래 전기 요금이 50퍼센트 늘어났으며, 2019년 요금은 유럽 평균보다 45퍼센트 높다. 신재생 에너지 의존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는 2011년 이후 다른 주에 비해 6배나 빠른 속도로 전기 요금이 올랐다.

 

게다가 친환경이라는 풍력 발전이 도리어 박쥐와 대형 조류, 곤충 등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태양광 발전 또한 넓은 면적이 필요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건설 시 원전보다 자원은 16배 많이 소비하고, 300배나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 낸다.

 

위선적이고 비윤리적인 환경 식민주의

더욱 큰 문제는 환경주의자와 선진국이 여전히 나무와 숯을 주된 연료로 쓰는 가난한 나라들에 비효율적인 신재생 에너지를 강요하면서 화력, 수력 발전을 못 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작 자신들은 화석 연료로 부유한 선진국이 되어 오늘날 자동차와 비행기, 인공조명과 난방을 풍족하게 누리는 삶을 살면서도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발전과 성장은 가로막으려 드는 것이다. 위선적이고 비윤리적인 환경 식민주의.

 

세계은행은 2차 세계대전 이후 20여 년간 댐, 도로, 전력망 등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돈을 개발도상국에 빌려주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들어 세계자연기금이나 그린피스 같은 환경 단체들의 입김이 드세지면서 유엔은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 새 모델에 따르면 가난한 개발도상국은 댐 같은 대규모 전력 인프라 대신 소규모 신재생 에너지를 계속 사용해야만 했다. 1990년대에 이르자 세계은행의 금융 지원 중 인프라 구축 자금은 고작 5퍼센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유엔과 환경 단체들은 이것이 산업 사회가 겪어 온 시행착오를 피하도록 가난한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강변했다. 2018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보고서는 댐, 천연가스, 원자력 등 중앙 집중식 에너지원을 버리고 태양광 같은 탈중앙 집중식 에너지원을 택함으로써 가난한 국가들이 에너지 도약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인류는 신재생 에너지가 아니라 석탄 덕분에 산업화 이전의 유기농 태양 저에너지 사회로부터 해방되었다. 화석 연료가 아닌 신재생 에너지로 산업혁명을 하거나 가난에서 벗어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셸런버거는 이처럼 산업화도 못 한 나라들에 탈산업화를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환경 식민주의를 경계하면서 산업화와 농업 현대화, 특히 제조업의 도입이야말로 번영과 환경 보호를 함께 달성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린피스나 멸종저항의 주장은 틀렸다. 가난한 나라에 에너지 밀도 높은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숲을 위협하지 않는다. 공장이 떠나 버릴 때 숲은 진짜 위기에 빠진다.” 한 기후학자의 말대로 경제 성장을 추구해 많은 이들을 가난에서 건져 내는 일, 기후 변화에 맞서는 일, 이 두 가지는 양자택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기후 변화의 영향이라고 걱정하는 것 중 다수는 실제로는 관리 부실이나 저개발 때문에 생겨난 증상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개발도상국 노동자가 만든 옷을 입을 때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자부심이다.

 

환경 종말론을 넘어 환경 휴머니즘으로

천연자원보호협회, 환경보호기금, 시에라클럽 같은 모든 주요 환경 단체들은 화석 연료와 원전 추방에 앞장서 왔다. 그런데 그들은 동시에 천연가스나 신재생 에너지 회사로부터 돈을 받거나 그 기업들에 투자해 왔다. 돈으로 얽힌 사이인 것이다.

 

탈원전을 추진하면 화석 연료와 신재생 에너지 기업은 수지맞는 장사를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원전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그 막대한 돈이 천연가스와 신재생 에너지 기업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말과 같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환경 운동가 빌 매키번, 정치인이자 환경 운동가로 노벨상을 수상한 앨 고어 전 부통령 같은 인물들도 모두 화석 연료 업계로부터 돈을 받았다.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이 화석 연료 업계로부터 돈을 받는다고 비난하면서 자신들도 뒤로는 돈을 받아 온 것이다. 한마디로 위선이다. 셀레브리티들과 기후 활동가들이 구글 주최로 기후 변화 대응 행사를 한다면서 5성급 리조트에다 제트기, 호화요트, 슈퍼카, 헬리곱터를 동원해 화석 연료를 펑펑 써 댄 것과 다를 바 없는 행태다.

 

오늘날 환경 종말론은 일종의 세속 종교가 되어 버렸다고 셸런버거는 지적한다. 이 종교는 신도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목적뿐 아니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영웅과 악당을 구분하는 기준까지 제공한다. 셸런버거는 우리가 사랑 없는 공포, 구원 없는 죄책감을 설파하며 문명과 인류를 증오하는 비인간적인 이 신흥 종교를 넘어 인류의 번영과 환경 보호가 함께 달성되는 환경 휴머니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후 변화, 삼림 파괴, 플라스틱 쓰레기, 멸종 등은 탐욕과 오만의 결과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 발전 과정의 부작용일 따름이다. 그리고 이 부작용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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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차 환경운동가 마이클 셀렌버거는 2020년 쓴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환경운동가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를 조장하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를 실제보다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환경운동가들은 '문제작'이라 공격하나본데, 대중들이 보기엔 신선한 시선이다.

 

이 주장을 한줄로 줄이면 '환경을 진짜 보호하기 위해선 무조건 개발을 막거나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보다는, 보다 효율적인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기존 에너지 대체 속도를 점점 더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환경 보호 대안으로 원자력발전과 대규모 댐 건설을 제안하는 것도 환경운동가 치고는 색다르다.

 

근거도 제시한다. '고래의 멸종을 막은건 석유산업 발전'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린피스'의 업적처럼 여겨지고 있는 상업적 포경 저지가 알고 보면 정유기술 개발로 등유가 생산돼 고래기름이 필요없어지고, 화학기술 개발로 플라스틱이 나오면서 고래힘줄이 필요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거다.

 

한국의 상황을 놓고 보면 셀렌버거의 주장에 상당히 눈길이 간다. 결국은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그 과정에서 우리가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된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서 싸워야 한다. 기술로 극복해야 한다는 셀렌버거의 주장은 한국 탄소중립 기업에 명분을 준다.

 

셀렌버거의 논거를 하나 더 빌자면 아직도 70억 지구인 중 25억명이 밤낮 없이 나무와 숯을 연료로 쓴다. 선진국 몇 나라가 탄소배출을 아무리 줄여봐야 오늘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선 이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이산화탄소가 내뿜어진다. 산불이라도 나는 날엔, 선진국들이 몇 년 간 쌓아올린 노력이 순식간에 허사가 된다.

 

이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탄소중립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한 후 제3세계에 빠르게 보급해야 한다. 탄소중립 기술이 트렌드 변화의 중심이다. 지구를 위하(for Earth)는 기술이, 인류와 우리 경제를 위한다(for us)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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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라는 착각

환경구루의 한 사람인 마이클 셀렌버거의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 지난해 인기서적에 오른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개인이 쏟는 노력이 그리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지구를 지키려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원전을 폐기해야 한다. 대신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늘려야 한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열대우림을 개발주의자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이런 상식이 거짓이라면? 이 책은 환경문제에 관한 우리의 오해를 지적하며 현재 환경담론의 오류를 고발한다. 많은 환경담론이 종말론적 묵시론으로 치우친 상황에서, 이 책은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현재 지구가 처한 현실이 그리 절망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과연 그런가?

책에서 셀렌버거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다루면서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주장한다. “전 세계 해수면에 떠 있는 모든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은 매년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0.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매년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0.03퍼센트만이 빨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작은 변화일 뿐이다.”

 

하지만 셀렌버거가 제시한 이 수치만으로도 우리는 충격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 해에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플라스틱이 900만 톤이라니! 플라스틱 빨대만 2700톤이라니! 플라스틱 빨대 하나의 무게가 대략 0.6g이므로 총 45억 개에 달하는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900만 톤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고작’ 45억 개라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착각이다. 이 수치만으로도 우리가 일상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고 분명하다.

 

물론 셀렌버거의 주장이 개인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읽힌다. 그보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을 갖추는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지적한다. “해당(특정) 국가에 강력한 쓰레기 수거 및 관리 체계가 갖추어져 있느냐에 따라 쓰레기가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 갈지 여부가 결정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변수다. 그러니 만약 플라스틱이 바다로 향하는 것을 막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 국가로서는 매립지 관리를 철저히 하거나 확실한 소각 방법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 모든 국가가 '일사불란하게' 플라스틱 쓰레기를 제대로관리하고 있지는 않는다.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수거해서 재활용, 소각, 매립 등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처리하는 나라는 없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어디에서나 플라스틱 빨대와 페트병이 도처에 굴러다닌다. 그러다 비가 쏟아지면 하천으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 간다. 국가 차원의 시스템과 관리체계를 바꾸고 새롭게 구축해야 근본적으로 해결이 된다는 원론만을 강조하며 넋 놓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규모의 측면에서 볼 때, 개인의 노력은 과학기술의 집약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만약 쓰고 나면 곧바로 분해돼 사라지는 플라스틱 대용물이 등장한다면, 우리가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이처럼 지난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온 인류가 지혜를 모아 그런 플라스틱 대용물을 만들어내서 언제 어디서 어떤 용도로든 쓸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개인으로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최선책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길 뿐이다. 어떻게든 플라스틱을 쓰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고, 플라스틱 대용물이 있다면 다소 비용이 더 들더라도 기꺼이 그걸 선택해야 한다. 정부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우리가 애써 분리배출한 플라스틱의 상당수가 일반 쓰레기에 뒤섞여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 개개인은 이를 소홀히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힘은 보잘 것 없이 미약하지만, 다수가 함께 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 외로 크다.

 

내가 아이스커피 한 잔 쭉 빨고 버린 플라스틱 빨대가 제주 앞바다의 바다거북 콧구멍을 막아서야 되겠는가!

뉴스펭권 김기정/발행인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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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셀렌버거가 쓴 책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Apocalypse Never)>이다. 이 책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성장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환경문제는 가난의 결과일 뿐 모든 이가 부유해지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셀렌버거가 예전부터 해오던 것으로, 기후 및 에너지 문제는 원자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학자 피터 글릭은 예일기후대응모임(Yale Climate Connections)에 올린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의 서평에서 셀렌버거가 '환경주의와 기후과학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셀렌버거가 상대의 진짜 주장이 아닌 다른 주장을 만들어놓고는 이를 논파하는 오류를 말하는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고 있으며, 원자력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보다 옹호하고, 인신공격을 저질렀다고 썼다.

 

이에 대해 마이클 셀렌버거는 "내 책은 최신 과학 연구 결과와 에너지 기술을 바탕으로 했으며, 이를 근거로 원자력을 에너지원에서 배제하지 말 것을, 그리고 원자력 기술을 옹호하는 이들을 인신공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라고 했다.

 

마이클 셀렌버거와 피터 글릭은 기술만능주의자와 맬서스주의자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과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태도를 보면 이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개 거대 담론은 다 이런 식이다. 죽자고 서로가 각자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모든 이유는 '~을 위함'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은 이들 주장을 듣고 오로지 정치적 편향을 기반으로 한, 편 가름에 동참할 뿐이다. 나는 이들이 왜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오류를 수정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기편끼리만 모여 앉아 상대 논리의 허점만을 파고드는 진영놀이! 현실 정치와 닮았다.

 

지구와 닮은, 지구와 가까운 행성을 찾고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답을 찾는 것은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한 201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셸 마요르의 말에서 해답을 찾는다. "외계 행성은 너무 멀다. 아직 살 만한 우리 행성부터 보존하라."

-----------------김영민 문화기획자 경남도민 2021-07-20

 

 

비판

맬서스주의자와 기술만능주의자 사이의 학술적 논쟁과 충돌은 200년이 넘도록 계속 변화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 탈삼림화(deforestation), 종의 멸종, 인구 압박, 그리고 점점 심각해지는 공중보건의 위기를 중심으로 점점 더 극단적으로,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위의 문제들이 가진 복잡성과 연관 관계가 더 명확해졌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지역적, 국가적, 전지구적 행동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셀렌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또한 이 논쟁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셀렌버거는 이 책을 쓴 이유를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 비이성적이고 과장된 맬서스주의자의 재난에 대한 경고를 반박하기 위해, 우리가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 그리고 더 많은 자연 자원의 활용에 주력한다면 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만능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입장의 허먼 칸, 줄리안 사이먼, 비외른 롬보르의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도가 지나친 기후변화 담론(?)

셀렌버거는 자신을 환경주의 행동주의자이자 긍정적, 인간적, 이성적 환경주의의 적인 과장과 경고를 일삼는 극단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사실과 과학을 세상에 전달하는 이로 소개합니다. 그는 지난 몇 년 사이에 기후변화에 대한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이 도를 지나치고 있기에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지구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논쟁적 주제에 이성적 목소리와 명확한 분석을 추가하는 것은 늘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심각한 오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선, 이 책에는 수많은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가 등장합니다. 셀렌버거는 과학자, “교육받은 엘리트”, “언론인 활동가”, 저명한 환경주의 행동가들이 지구의 종말이 오고 있다는 틀린 사실을 믿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면서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인 원자력 에너지와 끝없는 경제발전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설사 그가 지금 지구가 처한 위기의 본질과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물론 그렇지 않지만 제대로 된 과학적 결과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논리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기술만능주의자가 가진 과도한 단순화, 곧 경제 성장과 이에 따라 등장할 만능의 기술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H. L. 멩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에는 잘 알려진 해결책이 늘 존재한다. 바로 멋지고, 그럴듯한, 그러나 틀린 해결책이다.” 멩켄은 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정확하게 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기후 위기나 팬데믹, 환경 변화와 같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문제에 대해 정확히 필요한 충고일 것입니다.

 

잘못된 과학의 적용, 허수아비 때리기, 사실의 체리 피킹, 인신공격

하지만 이 책의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저자는 여러 주제를 어지럽게 오가며 자신의 경험과 논증, 그리고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는 자료만을 골라 제시하는 방식으로 독자가 그의 주장을 따라가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올바른 과학적 자세인, 데이터와 사실을 바탕으로 이론을 검증하고 주장을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입장을 먼저 정한 다음 그 입장에 맞는 데이터와 사실만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 책에는 논리적 오류와 감정적, 이데올로기적 논증, 허수아비 때리기, 사실의 잘못된 사용과 선택적 체리 피킹, 그리고 과학적 오류와 실수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게다가 이 책은 과학자들과 환경주의자들, 언론에 대한 볼썽사나운 인신공격으로 점철된, 분노로 가득 찬 책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이 책의 오류 중 몇 가지만 지적하려 합니다. 아마 모든 오류를 지적하려면 책을 한 권 새로 써야 할 것입니다. 짧게 말해, 이 책에서 새로운 내용은 틀렸고, 옳은 내용은 이 책이 처음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의 핵심에는 기술만능주의의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장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환경의 문제는 가난의 결과일 뿐 모든 이가 부유해지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이미 논파한 바 있습니다. (여기 여러 예가 있습니다.)

 

원자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장

두 번째 주장은 셀렌버거가 예전부터 해오던 것으로, 기후 및 에너지 문제는 원자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태양광이나 풍력이 아닌 원자력만이 값싸고 안정적인, 풍부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며 원자력만이 인간의 환경 발자국을 줄이면서 고에너지 문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원자력에 대한 경제적, 환경적, 정치적, 사회적 반론을 그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단순하게 무시합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폐기물은 전기 발전에 따른 폐기물 중 가장 안전한 최선의 폐기물에 해당한다. 이 폐기물은 아직 누구도 해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원자력만이 (어쩌면 아프리카 콩고강에 건설을 주장하는 초대형 댐까지)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라 주장하며, 이는 재생에너지 그가 신뢰할 수 없는이라 부르는 가 규모도 작고 간헐적이며, 경제적, 환경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으로 뒷받침됩니다.

 

가난과 환경 문제가 서로 엮여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이는 국제 개발의 기본 상식으로, 초기 UN밀레니엄개발목표(United Nations Millennium Development Goals)와 지금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도 다음과 같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모든 이들이 더 나은, 더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가난, 불평등, 기후 변화, 환경 파괴, 평화와 정의라는 전지구적 위기의 고려가 필요하다. 17개의 목표는 모두 서로 엮여있다.”

 

주류 환경과학과 환경경제학은 다양한 에너지원이 복잡한 환경적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고려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위기평가, 통합환경시스템분석, 생태경제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다루어왔습니다.

 

수많은 허수아비 때리기

셀렌버거는 다른 문제에도 계속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을 사용합니다. (허수아비 때리기란 상대의 진짜 주장이 아닌 다른 주장을 만들어놓고는 이를 논파하는 오류를 말합니다.) 기후 변화 논쟁에서 가장 흔한 허수아비 주장은 과학자들이 기후변화가 최근 극단적인 기상 사태의 원인이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후과학자들은 원인영향의 차이를 철저하게 구분합니다. 이는 귀인 과학(attribution science)”이라는, 오늘날 기후 연구의 가장 활발한 분야입니다.

 

셀렌버거는 사람들이 최근의 극단적인 기상 사태(산불, 홍수, 폭염, 가뭄)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돌리고 있다는 허수아비 주장을 세운 뒤, 이 주장을 반박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캘리포니아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지목한다고 한 뒤 호주의 산불은 호주의 기온이 오르지 않았더라도 발생했을 것이다라는 식입니다. 그가 2019년 아마존 산불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인용하며 언론이 화재를 어떻게 보도하는지에 관해 쓴 내용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아마존 산불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산불은 기후 변화 때문이 아니다라고 제대로 보도했다”. 하지만 셀렌버거는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을 고른 것입니다. 그 기사를 실제로 찾아보면 바로 두 문장 뒤에 영향이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이 산불들은 기후 변화 때문이 아니다. 크게 보면 인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가 산불을 더 크게 만들었을 수 있다. 높은 기온과 건조한 공기는 산불을 더 뜨겁게, 그리고 더 빨리 퍼지게 만들 수 있다.”

 

그는 기후 변화와 극단적 기상 사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연구 또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후 변화는 아직 이런 다양한 극단적인 사건들의 빈도를 증가시키지 않았다는 주장은 15년 전 발표된 연구로 이후 많은 연구가 추가되었습니다. 실제로 허리케인, 폭염, 홍수, 빙하 소멸 등의 극단적인 사건과 기후 변화 사이의 강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9년 미국기상학회(AMS)13개 국가의 과학자 121명의 연구를 포함한, 2018년의 극단적인 기상 사태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서부의 극심한 가뭄과 이베리아반도와 북동아시아의 폭염, 미국 중부 대서양 주의 폭우, 베링해의 기록적으로 낮은 빙하의 크기 등이 극단적인 기상 사태의 예였으며, “이들은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AMS의 편집장인 제프 로젠펠드는 우리는 지금까지 100건 이상의 귀인 연구를 게재했고, 이 분야의 과학적 정당성을 보였다. 귀인 연구는 실제 세상의 복잡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점점 더 유용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 연구들은 기후 변화에 인간의 영향이 있음을 다른 무엇보다도 더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는 생물종의 멸종에 관해서도 심각한 개념적 오류를 보입니다. 이를 다룬 장에는 멸종률, 생태계와 생물학적 기능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지질학적 시간 척도 개념, 그리고 데이터의 오용이 한데 뒤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셀렌버거는 종 부유도(richness)”종 다양성(biodiversity)”을 혼동하고 아래와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펼칩니다.

 

“‘외래종(invasive species)은 실제로 세계의 섬 지역 종 다양성을 평균적으로 두 배가 증가시켰다. 새로 도입된 식물종의 수는 멸종된 식물의 수의 100배가 넘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10종의 고유종 조류가 살던 섬에 이들이 모두 멸종하고 20종의 외래종 조류가 들어왔을 때 그 섬의 종 다양성은 두 배로 증가한 것입니다. 이런 모순은 그가 자신이 인용한 연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숫자만을, 종 다양성이 아닌 종 부유도만을 보았기 때문이며, 외래종이 고유종을 멸종시키고 생태계 안전성을 약화시키며 동식물을 균질화시키는 등의 종 다양성에 미치는 악영향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근거들을 취사선택하거나 오해, 남용한 고전적인 오류들도 있습니다. 셀렌버거는 자기 자신을 감정적 논증이 난무하는 분야에서 과학과 사실을 전달하는 백기사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의 모든 사실, 주장, 논증은 최신 과학 연구 결과에 기반해 있다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이를 무시하는 정치적 우파와 좌파로부터 주류 과학을 보호한다.” 하지만 그의 논증에는 근거의 부적절한 사용과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연구 결과, 자신에게 유리한 연구 결과만의 선택적 사용, 오해, 명백한 실수 등이 가득합니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잘못된 용어 사용의 예 중에는 할 수 있다(can)”, “할 수 있었다(could)”, “할 것이다(will)”, “하게 될 것이다(will likely)” 등이 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고전적인 기술만능주의의 낙관주의를 드러내며 진짜 근거에 의한 주장이 아닌 긍정적으로 윤색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아래와 같이 주장합니다.

 

식량 생산의 경우,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다양한 기후변화 시나리오 하에서도 식량 생산은 현격히 증가할(will)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모든 가능한 기후변화 시나리오 하에서 정말로 식량 생산이 확실히 늘어난다면 이는 참으로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다음의 2018FAO의 보고서를 잘못 옮긴 것입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농축수산물의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 영향은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 더 심각하다. 이러한 효과는 21세기 내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기후변화는 특히 지속가능하지 않는 농업 방식에 있어 더 많은 농지와 물을 사용하게 할 것이며,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특히 불공평하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식량 가용성과 접근성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책에는 그가 과학적 근거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단순히 할 것이다(will)”를 이용해 자신의 낙관주의로 대체한 수많은 예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학자의 말을 잘못 옮긴 예들

셀렌버거가 든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주장의 근거도 잘못 인용한 것입니다. 그는 맬서스주의자들은 원자력 발전소와 원자폭탄을 뒤섞는 전략을 애용한다고 말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폴 에를리히와 앤 에를리히, 존 홀드런이 1977년 출판한 에코사이언스(Ecoscience)”를 이야기합니다. 셀렌버거는 이 책에 서술된 다음과 같은 확실한 사실을 인용합니다. “대형 원자력 발전소의 장수명 방사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천 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 문장이 발전소를 폭탄에 비유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틀린 것입니다. “그 비유는 틀렸다. 발전소는 폭탄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셀렌버거는 이를 통해 맬서스주의 환경론자들은 원자력 발전소와 원자폭탄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는 허수아비를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인용한 문장의 바로 앞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경수로나 열중성자로가 원자폭탄처럼 폭발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그가 에를리히와 홀드런의 저작을 오해한 예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몇 문단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홀드런과 에를리히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비료 사용 확대와 공업화된 농업에 반대하기 위해, 그리고 기근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화석 연료가 부족해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는 이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내용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홀드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경주의자들은 에너지가 바닥날 것이라 주장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바닥날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이는, 사용 가능한 공기, , ,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생물군이화석 연료가 환경, 사회, 건강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바닥나리라는 뜻입니다.

 

그린피스가 아니라 탐욕이 고래를 구했다는 셀렌버거의 주장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그는 펜실베니아에서 발견된 값싼 석유가 고래를 멸종으로부터 구했다고 주장합니다. “드레이크 웰의 석유 발견은 등유 생산으로 이어져고래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 페이지 뒤, 그는 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고래 사냥은 다시 훨씬 더 큰 규모로 재개되었다. 1904년에서 1978, 고래잡이들은 100만 마리의 고래를 사냥했고 이는 과거의 세 배에 달하는 수이다.” 그는 값싼 식용유(아이러니하게도 콩고의 삼림을 벌채하고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팜유입니다)가 고래를 구했다고 말하고서는, 이후에도 고래가 더 많이 사냥당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고래사냥이 오늘날 거의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시장의 힘도, 에너지원의 발견도, 그가 주장한 것처럼 탐욕이나 경제 성장 때문도 아닙니다. 바로 환경 운동가들과 대중의 운동에 의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마지막 장에서 이를 인정합니다.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함으로써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있어 대중의 태도와 정치적 행동은 의미가 있다.” 이는 정확히 그린피스와 같은 환경 운동 집단이 해온 일입니다.

 

과학적 불확실성과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다르다

셀렌버거는 과학에서 말하는 불확실성개념 또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단어를 우리는 모른다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의 의미에서 사용합니다. 그는 빙상과 삼림의 손실, 아마존의 생물종 멸종, 해류의 변화와 같은 파국적인 재해의 임계값을 두고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들 재해가 가진 높은 불확실성과, 이들이 동시에 일어나므로 인해 생기는 복잡성은 이들 시나리오가 말하는 임계값에 대한 논의 자체를 비과학적으로 만든다. 소행성의 충돌이나 초대형 화산의 폭발, 극도로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과 같은 여러 가능한 재해 중 어느 하나가 발생할 가능성이 다른 것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틀렸을 뿐 아니라 별로 위로도 되지 않는 말입니다. 첫째,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과 다릅니다. 둘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와 다른 이들은 이러한 전지구적 재해의 위험도를 평가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이를 제외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우리의 대응이 너무 늦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을 떠난 기후학자인 스티븐 슈나이더는 다른 기술만능주의자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두꺼운 꼬리를 가진 확률분포에 존재하는 이런 극단적인 위기가 일어날 확률을 대비하는 일의 중요성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학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제안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높은 수준의 가능성을 가진 재해를 과학계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즉 과학자들이 기후 위기와 같은 재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들이 종말론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과학, 경제학, 공공정책, 공공보건의 맥락에서 논의돼야 하는 위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논리 오류 중에는 상대의 논증을 반박하기 위해 상대방 개인이나 그의 동기를 공격하는 인신공격의 오류가 있습니다. 이 책에 수없이 등장하는 인신공격의 오류는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신뢰를 떨어뜨릴 정도입니다. 셀렌버거는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은 가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심지어 아예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며 콩고강의 거대한 댐에 반대한다고 공격합니다. 그는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브라우어같은 환경주의 지도자나 주요 환경주의 단체의 재정을 공격하며, 이들이 화석연료 회사로부터 돈을 받아 원자력 발전소의 폐쇄가 친환경적인 것처럼꾸미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또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수많은 환경주의자와 지구물리학 과학자들의 동기와 평판을 공격합니다.

 

정말 언론과 환경 과학자들이 인류애에 반대할까?

셀렌버거의 언론에 대한 반감은 특별합니다.

 

뉴스 미디어, 편집장, 언론인은 자신들의 일상적인 환경 문제에 대한 공포감 조성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자신의 신념과 정의, 진실에 대한 직업적 책임감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환경운동가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언론인으로 위장해 이러한 보도 방식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나는 소셜미디어와 같은 전통적 언론의 외부에서 이런 환경 문제를 보도하는 방식에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이들에 대항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인류에 혐오감을 가진 이들이라 공격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에너지 사용량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것과 같은 즉각적이고 급진적인 기후변화 대책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종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기후변화 활동가, 언론인, IPCC 과학자 등의 주장을 접하면 그들이 진정한 인류애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오히려 그 반대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문명과 인류 그 자체를 위해 맬서스주의자와 종말론적 환경주의자와 싸워야 한다.”

 

그는 결론에서 환경적 재해를 걱정하는 이들은 인간의 문명을 싫어하는 이들이 가지는 일종의 잠재의식이 낳은 판타지놀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선호하는 대안에 반대하는 이들 또한 문명의 파괴를 바란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의 동기를 공격하는 매우 고약한 수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단순한 오류들이 매우 많습니다. 물론 숫자와 인용, 주장이 많은 책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도를 넘어섭니다. 모든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일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물의 양을 나타낸 숫자가 틀렸습니다. “천연가스는 석탄보다 25~50배 가까이 물을 적게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인용한 문서에 나오듯, 그 숫자는 25~50이 아니라 2보다 좀 작은 값입니다. 게다가 그는 풍력이나 태양광에 모든 화석연료나 원자력보다 물이 덜 든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습니다. 기후변화와 극단적인 기상 사건에 대한 논의에서는 지구의 기온 상승과 강우량 변화가 산불이 나는 기간을 늘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수많은 근거들을 무시합니다. 그는 이어 원자력 발전은 공해가 전혀 없다(zero pollution)”는 사실도 아니고 필요하지도 않은 과장된 주장을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더 나은 미래라는 공동의 목표

셀렌버거가 더 나은 미래를 목표로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는 환경과학자나 환경주의 운동가뿐 아니라 제대로된 인간이라면 모두 마찬가지일 겁니다. 의견의 차이는 현재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세상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사고, 과학에 대한 오해, 그리고 전문가들을 향한 분노에 찬 인신공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물론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상태로는 지구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릴 수 있으며 어쩌면 심각한 환경적, 사회적 붕괴가 올지 모른다는 근거들을 믿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종말론적 미래가 반드시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이를 피할 수 있는 행동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는 기술만능주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또한, 무제한적인 경제 발전과 기술의 혁신이 비극적인 미래를 반드시 피할 수 있게 만들어주리라는 점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두 관점이 가진 불균형에 문제의 답이 있습니다. 만약 맬서스주의자가 틀렸다 하더라도 이들의 시도는 어쨌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만능주의자가 틀렸다면 미래는 거의 분명하게 종말론적 세상이 될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래의 환경적, 사회적 재해를 파악하고, 알리고, 이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나는 기후변화, 담수 자원, 환경 분쟁과 같은 과학과 정책이 교차되는 분야에 40년 이상을 종사했고, 여기에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해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깨끗한 물과 공중 위생 설비가 없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를 공급할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는 동시에 기후변화의 영향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배를 곯지 않고 모두에게 충분한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농업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어떤 해결책을 우선시할 것인지, 정부와 각종 기구의 실패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 정책결정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그리고 안타깝게도, 더 효과적으로 빠르게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지를 두고 어떻게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할 것인지를 위한 적절한 노력입니다. 이 책은 이런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