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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아이들

형제2 (2005.7.22~2006.9.24)

by 이성근 2013. 6. 8.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애간장을 녹인다는 말을  이 무렵부터  알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때만 해도 그런 일이 닥체게 되리란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애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2005년 8월 큰놈이 자전거를 타다 크게 다쳤습니다.

 그리고 2006년 5월 어린이날을 앞두고 

'지방선거와 어린이 그리고 환경' 이란 제목으로   이런 글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아이의 생일이 지난 토요일이었지만 같이하지 못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큰 아이의 운동회 소식이 전달되었지만 역시다.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늦은 귀가의 밥상머리에서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보다 ‘어린이 행복주간’이란 슬로건으로 진행되는 아동의 권리와 빈곤에 대한 토론을 눈여겨보았다. 어쩌다 어린이 행복주간이란 말까지 등장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슬퍼졌다

 

그리고 막상 현실의 내 아이들이 처한 생활과 환경을 다시 돌이켜 보았다. 그러다 생각하기도 싫은 지난여름의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다. 큰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황망히 사고 현장으로 갔을 땐 아이는  누군가의 신고로 긴급 출동한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 자리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진 자전거와 아이가 흘린 피가 흥근했을 뿐 이었다. 그때 다짐했던 것이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나 공간을 꼭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여전히 개인적 숙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대신 거의 매일 학교 가는 아이에게 당부하는 말이 ‘차 조심 하고’란 말이다. 차를 조심하라는 이 일상적 주문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님에도 우리는 이 주문을 하나의 안전한 장치로 만들어 내는데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생각을 나누지도 못한 채 살고 있다.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방과 후 영어학원이며, 피아노학원 따위에 기를 쓰고 보내야만 뭔가 안심되는 심보인 것이다. 아동의 장래를 위해서라지만 실은 부모들 스스로의 심리적 보상에 다름아니다.

 

아이들이 불상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참 재미없는 세상이다. 즐겁게 뛰어 놀지 못하고 행복해하지 못하는 나라의 아이들과 아이답게 맘껏 뛰어놀고 아동으로서의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의 아이들이 구현하게 되는 세상은 엄청난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때마침 5월 지방선거가 목전이다. 하지만 그 어떤 후보도 아이들의 권리를 고려한 공약에는 인색하거니와 관심도 없다

 

모두가 잘 사는 것을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잘 사는 것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거나 성장 맹신의 그늘이 가지는 어둠을 간과하고 있다. 나아가 수많은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의 목표와 궁국적 적용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를 결여하고 있으며, 그 가장 적나라한 피해는 우리 아이들임에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어린이들에게도 정치적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과연 우리 아이들이 선택할 후보가 얼마나 될 것인지 의문이다.

 

진정으로 이 도시와 세계의 미래를 생각하는 후보라면 태속의 어린이와 자궁 밖 어린이가 사회적으로  유해하거나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요구하는 바램은 거창하지 않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를 의식하지 않고 신나게 강변이나 가로수 우거진 마을길을 달리며 목이 마르면 어디서나 수도꼭지를 틀어 목을 축일 수 있는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제공받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시장이 되고 누가 시의원이 될지는 모르지만, 또 누가 구청장이 되고 구의원이 될지는 모르지만 환경정의 차원에서 어린이를 배려하고 고려한 공약이 채택되기를 희망한다. 또 유권자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런 후보를 발굴하고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5.31 지방선거가 어린이에게 줄 수 선물이 무엇인지 고민할 일이다          

                                           

 해가 바뀌어 2006년 석가탄신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큰애와 작은애의 나이차는 여덟살입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오고

 절기가 가을로 넘어갈 무렵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속을 썩히는것은 여전합니다.

물론 아비로서 부족함도 많습니다.

아무튼 탈 없이 커주었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바램입니다.

 

                                     다음 블로거: 음악과 여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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