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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풀과 나무

한국일보 연재 '아하 생태'에서

by 이성근 2019. 1. 19.

토양은 종자은행연못가 진흙 세 숟가락서 537개 식물 싹 틔워

 

한강 수변부의 토양종자은행에서 싹이 트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아이고메, 이 눔의 풀은 심지도 안헌디 계속 난댜?”

손바닥만 한 밭을 일구는 아버지가 봄부터 잡초를 뽑으며 노상 하시는 말씀입니다. 밭주인은 이 잡초가 밭에서 자라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파종하였거나 모종을 심었을리 없는데요. 잡초는 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자라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나는 자리를 선택하고 이동할 수도 없는데, 이 잡초는 어떻게 밭주인 몰래들어왔을까요? 수시로 밭을 관리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울타리를 넘으려면 은밀한 방법이었어야 하는데요, 이는 바로 씨앗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떤 씨앗은 바람을 타고 몰래, 어떤 씨앗은 밖으로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강아지와 오누이가 산책을 다니는 사이 몸에 찰싹 붙어서 몰래, 또 어떤 씨앗은 오래 전부터 흙 속에 몰래 밭으로 들어왔고, 이를 흙이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씨앗은 맨눈으로 보기에 크기가 작고, 흙에 떨어지면 티가 나지 않는 색을 띠고 있어, 언제, 어떻게 밭으로 들어왔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싹이 나고, 꽃대를 올릴 때에야 비로소 잡초임을 알 수 있으니 참으로 성공적인 침입을 위한 은밀한 작전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종자. 국립생태원 제공

 

보이는 식물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숲이나 잔디밭에서 보는 식물 모임을 식생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식생(때로는 현존 식생이라고도 함)은 지표면 밖으로 표출된 지상부 식생을 의미합니다. 지상부 식생이 수명을 다하거나, 병들거나 다쳐서 쇠약해지면 땅 속에서는 재빨리 다음 세대를 표출시켜 식생을 유지합니다. 이렇게 표출되지 않은 채로 토양 속에 남아있는 다양한 식물 형태를 잠재 식생이라고 합니다. 현재 시점의 식생이나 생태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식물을 찾고자 한다면, 지상부 식생 부분을 연구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의 식생 역사와 식생 변화 요인, 그리고 미래식생까지 예측하고자 한다면, 잠재 식생 연구가 좋은 방법이지요. ‘토양종자은행은 토양 내 혹은 표면에 존재하는 생명력 있는 종자의 모임으로, 잠재 식생의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토양 내 종자를 파악하기 위해 토양을 채취하는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기록된 최초의 토양종자은행 실험은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다윈은 식물의 확산과 새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실험을 계획했는데요. ‘물새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종자를 운송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못의 얕은 물 속에 잠긴 진흙을 세 숟가락씩 퍼서 6개월간 실험을 한 결과, 537개체나 되는 식물이 확인되었죠. 단지 세 숟가락의 진흙에서 발아된 식물이 537개나 되는 것도 놀랍지만, 발아된 식물 중에는 주변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섬에서만 자라는 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윈은 종자가 멀리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물새가 진흙이 묻은 발로 습지를 돌아다닐 때, 점성이 높은 진흙에 종자가 붙어 실험 연못까지 이동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지요. 그러면서 담수 습지식생 조성에 물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다윈의 실험처럼 습지의 토양에는 습지를 가득 메운 식물보다 더 많은 종의 식물이,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종자로 진흙 속에 존재합니다. 이 풍부하고 다양한 식물의 종자는 토양층 표면이나 흙 속에 파묻혀서, 발아하기 적합한 시기를 기다립니다. 기회가 찾아오면 재빨리 발아하여 습지의 식생을 항상 풍성하고 높은 생물다양성이 유지되도록 합니다.

 

물가로 떠밀려온 버드나무 씨앗(흰털)과 종자에서 발아된 새싹들. 국립생태원 제공

 

식물 저장소인 토양종자은행

한강의 물가에 있는 토양 내에는 종자가 1125,000개가 넘게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많은 종자는 자연상태에서는 모두 발아할 수 없습니다. 발아하기 적합한 때를 기다리다가 새, , 곤충이나 토양 미생물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곰팡이에 의해 분해되어 토양 양분이 되기도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모식물체에서 생산된 종자 중 발아에 성공하는 것은 1~3%, 이 중 성숙한 개체로 자라는 것은 1%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왜 쓸모 없는 종자를 이렇게나 많이 생산할까요?

 

화산폭발, 사막, 남극과 같은 환경을 떠올려 보면 짐작할 수 있듯, 식물체는 극단적인 환경의 위협이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종자는 추위, 산불 혹은 가뭄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요. 마치 동면하는 동물처럼 살아있지만 생장을 정지시켜 발아를 미루며 휴면상태를 유지합니다. 휴면기간 동안 씨앗 속의 싹은 단단한 껍질의 보호를 받으며 생존 기간을 연장합니다.

 

토양종자은행에서 발아된 가시박. 국립생태원 제공

 

얼마 전 경남 함안 700년 된 지층에서 발굴된 연 씨앗을 심었더니, 꽃을 피운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연 씨앗이 오랜 기간 살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진흙 속에서도 휴면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종자로 유전자를 다음세대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겁니다. 생산된 수백, 수천개의 씨앗 중 한 개만 발아에 성공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공한 개체는 다시 수백, 수천개의 씨앗을 다시 만들어 낼 테니까요. 1%의 성공을 위한 치밀한 진화의 전략인 것입니다.

 

동물에 의해 종자를 퍼뜨리는 미국가막사리. 국립생태원 제공

 

진정한 투자의 고수는 미국가막사리

종자의 휴면능력은 식물의 생존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탁월한 전략입니다. 휴면상태를 깨고, 씨앗이 다시 활력을 얻어 발아하는 것을 휴면타파라고 합니다. 자연상태에서 종자의 휴면기간은 수일에서 수십년까지 식물에 따라 다릅니다.

 

미국가막사리는 논두렁, 하천 수변부, 연못이나 저수지 주변에서 쉽게 관찰되는 국화과 식물입니다. 이 식물의 종자특성을 살펴보면 식물이 종자휴면전략을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꽃이 지고 난 꽃봉오리에 둥글게 종자를 생산하는 미국가막사리는 동물에 의해 종자를 널리 퍼트리는 전략(동물산포)을 사용합니다. 이 종자는 납작하고 길쭉한 몸통에 뾰족한 뿔이 두 개 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종자 전체에 거꾸로 난 털이 있어서, 동물의 털이나 옷깃에 쉽게 달라붙을 수 있습니다. 꽃받침에서 꽃의 중앙까지 가시 돋힌 종자가 둥글게 자라면, 옆을 스치는 동물에 콕 박혀 멀리로 이동합니다. 하천 산책을 하고 돌아왔을 때, 바짓단이나 소매 끝에 납작한 무언가를 떼어낸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쩌면 미국가막사리였을지도 모릅니다. 미국가막사리 종자의 치밀한 구조는, 근처를 지나는 이동성이 있는 생물을 모두 자신의 종자 산포자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급으로!

 

미국가막사리 종자. 국립생태원 제공

 

미국가막사리 종자는 자신이 붙어있는 생물체가 어디로 갈지, 또 자신이 언제 그 생물에서 떨어져 나갈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꽃봉오리에서도 서로 다른 휴면기간을 가진 종자를 생산한답니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꽃받침에 가까울수록 종자는 통통하고, 꽃 중앙부에서 자라는 종자는 상대적으로 더 납작하고 가시도 더 길며, 가벼운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휴면기간도 종자 모양에 따라 달랐습니다. 납작하고 긴 가시를 가진 종자의 휴면기간이 통통하고 가시가 짧은 종자보다 길었습니다. 왜 일까요? 긴 가시의 종자는 동물 털 깊숙이 박힐 수 있습니다. 깊게 박힌 종자는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 멀리 갈 수 있겠죠! 심지어 종자산포자의 수고를 생각하여 멀리 가야 하는 종자는 가볍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이동기간 동안 휴면상태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미국가막사리는 멀리 가야 하는 종자의 휴면기간을 더 길게 설계하였습니다. 무급의 종자 산포자의 도움으로 충분히 멀리 가서 어딘가 도착했을 때 이 잠자는 미국가막사리 씨앗이 토양에 살포시 안착하여 토양종자은행에 포함될 기회를 갖는다면, 발아율은 20%가 됩니다. 진정 투자의 고수입니다.

 

토양종자은행에서 발아한 속속이풀. 국립생태원 제공

 

토양종자은행에서 꽃을 피운 까마중, 국립생태원 제공

 

자연유지장치의 기능을 수행하는 종자은행

식물의 중요한 생존 메커니즘인 종자와 그 종자가 모여 만든 종자은행은 생태계에 시간적 혹은 공간적 식생의 저장소가 되어 생태계의 장기 안정성을 부여하는 자연유지장치 기능을 수행합니다. 또한 훼손된 생태계에 생물다양성 부여하는 원동력이며, 먹이원 등으로 활용되어 토양생태계 안정성 기여, 과거 종자를 통한 식생 역사 반영, 환경변화에 의한 식생변화 예측 등으로 그 중요성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항상 변함없는 것 같은 주변의 식물을 자세히 보면, 환경변화에 끊임없이 대응하며, 생장을 위한 경쟁을 하고 변화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봄에 가까운 화단에 무슨 꽃이 피어날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흙 속에 숨겨진 생명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화단의 흙을 세 숟가락 퍼서 접시에 담아 물을 뿌려가며 겨울 동안 토양 내 종자를 발아시켜 보는 걸 어떨까요. 다윈보다 많은 식물이 여러분의 접시에서 발아될지도 모르니까요./이효혜미 국립생태원 생태평가연구실 환경영향평가팀 선임연구원

 

꽃가루 싣고 멀리 멀리박쥐는 최고 중매쟁이

 

몰디브의 숲 속에서 박쥐가 꽃을 향해 혀를 내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구상에 자라는 식물은 이끼, 고사리까지 합하면 40만종 가까이 됩니다. 이 중 꽃식물이 대략 35만여 종이니 대부분은 식물은 바로 꽃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꽃식물 가운데서도 약 20%만이 바람이나 물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생물의 중매를 통하여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씨가 씨방 안에 들어 있는 속씨식물이 출현하고 여기에 생물적 꽃가루받이가 결합되면서 식물진화는 총알처럼 빨라졌습니다. 종의 분화가 마치 폭죽이 터지듯 폭발한 것이지요. 생물학적 타가수분에 의하여 유전자 재조합과 새로운 조합이 엄청 다양하게 이뤄졌습니다. 물론 종의 분화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지만 유전자의 새로운 조합이 가장 큰 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식물은 타가수분을 통해 유전자 다양성을 높인다

식물은 효과적인 타가수분을 위해 동물을 중매쟁이로 써먹기 시작한 이래, 이들을 효과적으로 부려먹기 위한 갖은 방법을 고안해오고 있습니다. 적절한 보상 외에도 색과 모양의 발달, 향기내기 등 갖은 속임수에 지금도 여러 동물이 중노동(?)에 끌려들어가고 있습니다.

 

식물이 중매쟁이를 쓰는 이유는 효과적으로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이루어 유전자 다양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지만, 자가수분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곤충의 크기가 작게 진화한 것도 식물에게 여러 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중매쟁이(화분 매개체)에게 적은 사례만 해도 되기 때문에 식물 자체도 작게 진화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충분한 꽃가루받이가 보장 받지 못했다면 아마 식물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을 겁니다.

 

소나무 등 침엽수는 바람에 의한 수분을 하기 때문에 대량의 꽃가루를 생산해 널리 퍼뜨리는 전략을 쓴다. 게티이미지뱅크

 

비생물학적인 타가수분은 대표적으로 바람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봄이 되면 산밑 논에 고인 물에 떠있는 노란 가루를 볼 수 있는데요, 바람에 송홧가루가 날려 온 것이지요. 겉씨식물인 침엽수뿐 아니라, 속씨식물 중에서도 참나무류, 자작나무류 등은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식물들입니다.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식물은 많은 양의 꽃가루를 생산해야 합니다. 이들은 물량공세로 많은 양의 꽃가루를 내어 암꽃에 닿게 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또한 자가수분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구비하고 있는데요. 대부분 침엽수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달립니다. 또한 겉씨식물, 속씨식물 모두 수꽃과 암꽃이 피는 시기가 다릅니다.

 

식물 중매에는 척추동물도 참여한다

이제 범위를 좀 더 좁혀서 척추동물에 의한 꽃가루받이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식물의 꽃가루받이에는 곤충류가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척추동물도 적지 않게 참여합니다.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박쥐는 일단 제외하고 다른 포유류와 새들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박쥐를 제외한 포유류는 약 85종이 꽃가루받이를 하며 여기에는 유인원, 설치류, 몽구스 등이 포함됩니다. 유인원 중에서는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레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꽃가루받이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무는 마다가스카르를 대표하는 식물인 여행자야자나무를 즐겨찾으면서 넥타(꽃꿀물)를 빨아 꽃가루를 옮겨줍니다. 남아프리카에 사는 케이프코끼리땃쥐는 프로테아라는 식물에서 넥타를 찾는데 이 식물은 아주 척박한 땅에서 자라며 많은 넥타를 생산하지요. 케이프코끼리땃쥐는 주둥이가 가늘고 길게 뻗어 있어 넥타를 빨기에 적합하게 진화되었습니다. 척추동물에 의한 꽃가루받이는 열대와 아열대 등 따뜻한 곳일수록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류도 꽃가루받이에 참여하는 척추동물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척추동물 중에서 비교적 많은 종이 식물의 꽃가루받이에 참여하고 있는 동물 집단은 바로 새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대륙의 벌새를 비롯해 호주나 남태평양 섬에 사는 태양새, 꿀빨기새 등이 대표적인데요. 앵무새도 주요한 꽃가루받이를 하는 새에 속합니다. 새들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약 910여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열대나 아열대에서 자라는 것들이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포유류나 새들도 꽃가루받이에 참여하는 종들이 있습니다. 새들은 주로 이른 봄 추위 때문에 아직 곤충이 나오기 전 꽃가루받이에 나서는데요. 동박새, 직박구리 등은 동백꽃이 내는 넥타를 빨면서 꽃가루를 옮겨 줍니다. 새 뿐 아닙니다. 육식동물로 알려진 담비도 꽃가루받이에 참여합니다. 담비는 단 것을 좋아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넥타를 생산하는 꽃을 찾아 와서 꽃가루받이를 해주고 갑니다.


꽃가루받이의 종결자는 박쥐   

척추동물 중 식물 꽃가루받이의 종결자는 박쥐입니다. 전 세계 박쥐는 약 1,350여종에 달합니다. 포유류 중 단연 가장 많은 종을 차지하는데요. 모두 야행성이며 시각, 후각, 청각 외에 초음파를 써서 위치를 가늠하고 먹이를 찾습니다. 대부분 곤충을 잡아먹지만 과일먹이류, 넥타먹이류, 소동물먹이류, 흡혈박쥐 등도 있습니다. 과일을 먹이로 하는 박쥐류는 덩치가 아주 커서 날개를 편 길이가 1.5m를 넘기는 것도 있습니다. 이중 꽃가루받이를 하는 박쥐는 식물의 넥타를 먹는 박쥐류입니다.

 

바나나꽃에서 꿀을 빨고 있는 박쥐. 게티이미지뱅크

 

박쥐가 꽃가루받이를 하는 대표 식물을 들면 바나나, 빵나무라고 불리는 바라밀, 두리안, 카카오, 망고, 파파야, 기둥선인장, 아가베 등입니다. 그러고 보니 열대나 아열대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과일을 생산하는 식물들이군요. 박쥐에 의하여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약 530여종에 달합니다. 앞서 언급한 과일들 이외에 호주의 유갈립투스나 방크시아, 손네라티아(망그로브 식물), 헬리코니아 등도 포함됩니다.

 

이들 식물의 특징을 보면 야간에 꽃이 피고, 많은 양의 넥타를 생산한다는 겁니다. 모양은 종모양, 또는 술이 많은 면도솔 모양 등이 많습니다. 또한 꽃이 달리는 위치는 가지 끝이나 나무 기둥에 직접 달리며, 향긋한 꽃 냄새와는 거리가 먼 역하거나 고기 썩은 냄새를 풍깁니다. 넥타는 농도가 연하여 곤충에게 그리 인기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꽃가루받이를 보장받기 위하여 박쥐뿐 아니라 새나 곤충들도 꽃가루받이에 불러들입니다. 예컨대 아가베의 경우 꽃대를 흔들면 마치 물벼락을 맞은 듯이 쏟아져 내릴 정도로 많은 넥타를 생산합니다. 또한 꽃대는 길게 뻗어 9m까지 도달하는데 꽃은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많이 핍니다. 꽃대가 높게 솟으면 눈에 잘 띌 뿐 아니라 냄새가 멀리까지 펴져나가겠지요.

 

기둥선인장 꽃에 맺힌 넥타. 박쥐는 이 넥타를 먹고 기둥선인장의 화분을 돕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박쥐에 의한 꽃가루받이가 다른 동물에 비해 더 나은 점은 무엇이길래 박쥐-식물로 공생하는 진화를 이루어 왔을까요? 그것은 박쥐에 의한 꽃가루받이 효율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곤충보다 효율이 더 높은데다 꽃가루를 멀리까지 나를 수 있어 식물의 입장에서는 유전자 다양성을 더욱 보장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로서는 이상적인 중매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박쥐에게 꽃가루받이를 맡기기 위해서는 식물로서도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충분한 넥타가 제공되어야 하지요. 따라서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식물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공생관계는 열대와 아열대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박쥐가 없으면 바나나도 없다

박쥐의 조상은 모두 곤충을 잡아먹는 집단이었습니다. 이 집단이 과일을 먹는 집단과 곤충을 먹는 집단으로 나뉘게 됐는데요, 꽃가루받이를 하는 박쥐는 크게 곤충을 잡아먹는 조상에서 진화해온 종류와 과일을 먹는 조상에서 진화해온 집단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공통적인 특징을 보면 시각과 후각이 발달했고 턱이 길어졌으며, 기다란 혀를 갖게 돼 긴 꽃 속으로 주둥이를 깊게 넣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곤충을 먹는 조상에서 진화해온 집단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타나는데, 코 끝에 잎 같은 작은 돌기가 나 있습니다. 되돌아오는 음파로 위치와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반향정위(echolocation)를 쓰며 다른 대륙 박쥐에 비해 크기가 작은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정지비행을 하면서 넥타를 섭취하지요. 반면 동남아, 호주나 아프리카 박쥐는 과일박쥐에서 넥타박쥐로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크기가 아메리카 넥타박쥐에 비하여 큰 편입니다. 구대륙 박쥐는 크게 두 번의 진화 과정을 거쳐 넥타박쥐에 이르렀습니다. 정지비행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넥타를 빨 때는 꽃에 내려앉아야 합니다. 초음파를 쓰지 않아 방향정위를 활용하지 못하므로 특히 시각이 발달하였고 동굴대신 숲 속의 나무에서 지내는 습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척추동물에 의한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식물은 대부분 전적으로 척추동물에게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들 척추동물도 전적으로 특정 식물종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지요. 모든 식물은 넥타를 제공하는 대신 척추동물에게 충분한 기여를 요구합니다. 바로 직접적으로는 열매를 맺어 번식을 돕고, 길게는 유전자 조합을 다양하게 하여 궁극에는 생태계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일조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척추동물이 실제 관련식물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동물보다 훨씬 큽니다. 이들 꽃가루받이 척추동물이 모두 사라진다면 여기에 의존하고 있는 식물의 생산성은 60% 넘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특히 새보다 박쥐의 영향이 커서 새는 46%의 충격을 나타내지만 박쥐가 사라질 경우 관련식물의 84%나 줄어드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박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관련 식물도 매년 2.5%씩 멸종위기종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한국 1.5 고은경기자 /주광영 국립생태원 식물관리연구실 온실식물부 부장

 

90% 넘는 식물과 공생관계곰팡이 없으면 푸른 지구도 없어요

 

침엽수나 활엽수림 아래에서 발생하는 균근성 버섯인 달걀버섯. 식물에게는 양분을 전달하는 대신 식물로부터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공급받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곰팡이(진균fungi)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요? 더럽다, 징그럽다와 같은 형용사가 많을 겁니다. 우리에게 진균은 이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데요. 이유는 아마도 어릴 때 욕실에 피어있는 곰팡이를 보거나 부패해 곰팡이가 낀 음식쓰레기의 냄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냄새를 피우면서 물질을 부패시키는 이러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진균은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더욱이 우리 인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많은 혜택을 주고 있지요.

 

지구 어느 곳에서나 살고 있는 곰팡이

진균은 습기가 있는 축축한 곳이라면 어디든 정착해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하나의 세포 즉, 단세포로 구성된 효모와 같은 형태로 존재하기도 하며, 여러 개의 세포가 연결된 버섯과 같은 다세포 생명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실 버섯은 균사라고 하는 진균 세포의 연속체이자 중합제로, 균사가 점차 중첩되고 두꺼워지며 위로 자라서 버섯이 되어가지요.

 

진균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지구상에 넓게 퍼져 다양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균은 생태계 내 무게나 부피 측면에서 땅속이나 바닷속 식물과도 비교해 상당한 양의 생물량(biomass)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간과되어 있는데요. 이 진균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분해자(decomposer)라는 겁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고분자 물질(분자량이 큰 화합물)은 보다 작은 저분자물질(아미노산이나 탄소 등 분자량이 작은 화합물)로 분해되는데, 그 물질이 쪼개지는 과정에서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침엽수나 활엽수의 고사목이나 그루터기 등에 무리지어 발생하면서 목재를 썩히는 부생생활을 하는 구름버섯. 국립생태원 제공

 

예컨대 곰팡이는 소나무의 거친 나무껍질(수피)이나 나뭇잎(침엽)을 구성하는 셀룰로오스와 리그닌 등의 분해를 주도하는데요. 이렇게 분해된 잔해물을 통해 다른 생명체들은 대사작용으로 에너지를 얻습니다. 물론 곰팡이도 이 분해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고요. 다른 점은 다른 곤충이나 초식동물은 자신의 내부에서 소화효소를 분비해 소화과정을 진행하는데 곰팡이는 다양한 소화효소를 외부로 분비해 소화합니다. 이 효소를 통해서 복잡한 구조의 유기물을 분해해 영양분을 획득하고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생명체가 유지생장하는데 있어서 영양분은 절대적입니다. 식물도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데 토양이나 대기 중에서 손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영양분은 물에 잘 녹지 않는 복합체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은 분해자나 공생자를 통해서 제공되는 영양분이 필요하고, 이 영양분은 주로 식물의 뿌리를 통해서 흡수됩니다.

 

질소는 식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양분 중에 하나입니다. 질소는 대기 중에 풍부하지만 식물이 바로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대두 같은 콩과식물에서는 질소고정세균을 통해서 대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질소를 이온형태로 갖고 있는 암모늄이온과 같은 형태나 공생균(symbiotic funig)의 일종인 균근균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진균은 단백질을 대사하고 무기형태의 질소를 배출해 식물의 뿌리가 이를 쉽게 흡수할 수 있게 만듭니다. 또한 육상 생태계에서는 땅 위나 땅 속에 있는 낙엽이나 나뭇가지 등을 저분자물질로 분해해서 다시 식물이나 다른 생명체에게 전달합니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후룬베이얼에서 관찰한 지의류. 지의류는 곰팡이와 조류가 같이 사는 공생 생물체다. 국립생태원 제공

 

지구상 식물의 약 90% 이상은 진균과 공생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진균들을 앞서 언급한 공생균이라 통칭하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식물의 뿌리에서 특별한 공생관계를 맺는 균류를 균근균이라고 합니다. 이 공생관계는 상호이익이 되는데요, 균근균은 토양으로부터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양분을 전달하며, 식물로부터 광합성 산물인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제공받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공생관계로 진균과 조류(algae)가 같이 사는 공생 생물체인 지의류가 있습니다. 진균은 조류에 피난처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광합성을 통해 생성된 에너지원을 획득하게 됩니다. 사실 옛날 잡채에 고명으로 올려졌던 석이버섯은 실은 버섯이 아니라 지의류입니다. 요새는 그 자리를 목이버섯이 차지했지만요. 석이버섯은 엄밀히 말해 버섯이 아니니까 학문적으로는 석이로 지칭하는 게 맞습니다. 이 같은 지의류는 매우 느리게 자랍니다. 그리고 환경변화에도 취약하지요. 그래서 지의류의 다양성은 대기의 오염정도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생물 지표로도 사용됩니다.

 

극지방에 사는 순록은 겨울 동안 대부분 지의류를 먹으며 생활한다. 그린피스 제공

 

동물들의 먹이와 감염원의 역할

인간을 포함해서 진균의 일부 또는 전체를 음식으로 사용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초식성 동물 중 일부는 식물성 먹이가 부족할 때나 진균이 많이 발생하는 계절에 진균을 먹이원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순록과 같은 동물은 먹이의 상당량을 진균으로 대체합니다. 극지방에 분포하는 순록은 나뭇잎을 얻지 못하는 겨울 동안 대부분의 먹이를 지의류로 대신합니다. 또한 호주의 긴코쥐캥거루와 같은 포유류는 버섯을 주 먹이원으로 삼고, 민달팽이 같은 여러 무척추 동물 역시 진균을 먹이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곰팡이는 다른 생명체에게 병을 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병을 발생시키며 또한 독성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종도 있어 꽤 위험한 편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식물병원균으로 벼에 발병하는 벼 도열병이나 옥수수 깜부기병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감자역병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긴코쥐캥거루. 위키피디아

 

극지방에 사는 새끼 순록. 그린피스 제공

 

동물에게 있어서는 우리에게 몇 년 전 큰 뉴스거리였던 항아리곰팡이병이 있습니다. 주로 양서류에서 발생해 대상 동물의 피부에 침입, 피부호흡을 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양서류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병원성 진균의 생장과 확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온도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온도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균류가 서식하기 적당한 습도 또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에게 부정적인 병원성 진균들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잣나무의 낙엽이 썩기 시작하는 곳에 무리를 짓거나 간혹 2~5개가 뭉쳐서 나며 목재를 썩히는 부생생활을 하는 넓적콩나물버섯. 국립생태원 제공

 

곰팡이의 위기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지구 생태계에서 진균처럼 다양한 역할을 하는 생명체도 많지 않습니다. 미국 환경단체 어스와치는 2008년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체를 5가지 선정했는데 그 중에는 놀랍게도 진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타의 잘 알려진 생명체들을 뒤로 하고 진균이 선정된 것은 분해와 공생 같은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것처럼 진균이 분해와 공생을 통해서 우리 지구를 그리고 거기에 속한 생명체를 지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기 어렵겠지만 지구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진균도 기후변화와 인간에 의해 멸종되어가고 있습니다.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을 2000년에 처음으로 주장했습니다. 인간이 원인이 되어 지구환경 체계가 급격하게 변하게 된 현재 시대를 칭하는 것입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국한된 범위에서 경작이나 벌채 등을 통해서 환경을 변화시켰지만 이제는 그 규모와 충격이 전 지구적이며, 토지이용의 변화, 기후변화, 질소의 침적 그리고 생물종의 비자연적 이동과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진균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약 150만종의 진균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 중 우리가 연구한 건 얼마나 될까요? 7%정도에 불과합니다. 미지의 93%의 진균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으며 더욱이 이 진균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특히 식물종이 멸종되면 그 식물과 특이 관계를 맺던 진균도 사라지게 됩니다. 아직도 많은 균류가 확보되거나 학술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를 감안할 때 전 지구에 걸친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위급한 실정입니다. 이제라도 식물과 동물만큼이나 균류의 다양성 감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진균의 역할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도 있습니다. 자연을 파괴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현재의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생물들과 함께 협력하며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 호모 사피엔스(현명한 인간)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주경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 전임연구원 /한국 2018.11.24. 고은경지자

 

버드나무는 인류와 공생한 식물... 바이오 연료로도 한몫해요

 

경남 창녕군 저지대에 군락으로 분포하는 선버들.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양치질이란 단어의 뜻은 이를 닦고 물로 입 안을 가시는 일입니다. 그 어원을 살펴보면 본래 양지(楊枝), 버드나무 가지나 소금으로 입안을 청소하던 것을 나타낸 행위인데요. 양지질이란 단어는 오래된 한자어로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12세기) 중국 송나라 손목이 저술한 계림유사에도 나옵니다.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하는 방법은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 솔처럼 만들어 양치질을 하거나 뾰족하게 만들어 치아 사이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식이었습니다. 물리적 제거 효과뿐 아니라 살균 및 염증 완화효과가 있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예로부터 즐겨 이용돼 온 것으로 보입니다.

 

버들 양()은 버들 류()와 동일하게 버드나무를 의미하는 글자인데요, 예전에는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여 사용했습니다. 옛 문헌에 남아 있는 양()자가 들어있는 지명을 현재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경기도 양주(楊州), 양평(楊平), 강원도 양구(楊溝) 등이 있습니다.

 

지명에 버드나무를 뜻하는 한자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제로 앞서 언급한 세 지역에는 예전에도 지금도 버드나무 군락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세 지역 모두 유속이 느린 하천의 중하류에 버드나무 군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가 자란 곳은 주변에 반드시 물이 흐르고 토양에는 유기물이 풍부한 게 특징입니다. 이는 물 확보가 용이하고 농사짓기 좋은 땅이라는 옛 사람들이 살기 좋은 조건과 겹치지요. 버드나무 군락이 있는 지역과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한 지역은 상당히 겹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600여종 중 우리나라에는 40여종이 서식

버들의 속명인 살릭스(Salix)는 켈트어의 sal(가깝다)lis()의 합성어로 물 근처에 사는 나무로 인지하고 이름이 지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 종류는 낙엽성 교목, 아교목, 관목, 덩굴성 목본 등 전세계 600여 종이 확인되고 있는데요, 주로 북반구 온대와 한대지역에 분포합니다. 극한 환경에도 강해 북극의 툰드라지역이나 고산지역에서 서식하는 종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염습지, 소금평원 등에서 자생하는 수종도 있지요. 우리나라에는 40여 종류의 버드나무과 식물이 있고, 습지, 산지의 길가, 계곡 및 고산능선 등 다양한 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한랭습윤한 기후 특징이 있는 경북 영양군에 있는 버드나무는 거대 교목으로 성장했다. 국립생태원 제공

 

하천의 중하류, , 저수지와 같이 물 흐름이 느리거나 정체된 곳에 군락으로 발달하는 버드나무 종류로는 선버들, 왕버들, 버드나무 등이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낙동강 배후습지인 창녕 우포늪에 가면 넓은 면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선버들 군락을 볼 수 있고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북 성주군 경산리 성밖숲에 가보면 소규모 하천인 이천의 퇴적 사면부에 거대한 왕버들 군락을 볼 수 있습니다. 선버들, 왕버들에 비해 버드나무는 한랭 습윤한 곳을 좋아하여 산간 지역에 위치한 오래 두어 거칠어진 묵정밭이나 고위도 지방에서 출현빈도가 높습니다.

 

하천의 상류와 같이 물 흐름이 빠른 곳의 물가에 발달하는 종으로는 갯버들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유속이 빨라지고 자갈이나 모래가 자주 움직이는 불안정한 입지특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런 장소에 사는 갯버들은 물리적 스트레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높게 자라지 않는 대신 가지에 탄력을 더하여 세찬 물살에도 부러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지요. 또한 맹아(새로 돋아나오는 싹)를 많이 만들어 침수 시에도 기공을 통한 호흡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하였습니다.

 

경북 김천 수도암 계곡 상류에 갯버들이 자라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이처럼 버드나무류는 물가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은 물가 이외의 장소에도 살고 있습니다. 토양에 자갈이나 굵은 모래가 많아 물이 잘 빠지고 때때로 침식이 자주 일어나는 산지 비탈면에서는 호랑버들, 떡버들, 여우버들 등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들 수종은 크게 자라지 않는 소교목으로 대부분 군락이 아니라 개체수준으로 산재하는 게 특징입니다.

 

높은 산지에서도 버드나무류는 발견됩니다. 한라산 해발 1,200 ~1,600m에서 자생하는 제주산버들, 백두산의 수목한계선을 넘어가는 해발 2,000m 이상의 정상부에 자생하는 콩버들입니다. 이들은 토심이 매우 낮은 암반 위나 계곡부 입지에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고산지대는 저해발보다 기압과 기온이 낮으며 수시로 우박, 번개, , , 바람, 자외선 등에 노출되는 환경특성이 있어 일반적인 식물은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버드나무류는 공통적으로 지하부를 발달하거나 지면에 납작 엎드려 기어 다니듯 자라고 있습니다. 백두산 정상부는 고위도 지방의 극지 툰드라와 환경적으로 유사한데요. 툰드라는 산림한계선으로부터 극지에 이르는 한랭한 지역으로 지하에 1년 내내 녹지 않는 영구동토가 위치해 있습니다. 북극 툰드라에서 자라는 북극버들, 북극콩버들이 형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백두산의 콩버들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산성 버드나무류인 콩버들은 생존하기 위해 지면을 기어 다니듯 자란다. 국립생태원 제공

 

버드나무류가 다양한 환경에서 번성하는 이유  

이렇듯 버드나무류가 지구의 다양한 환경에서 번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대표되는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버드나무류는 암수가 다른 자웅이주 식물입니다. 암수가 한 그루인 자웅동주 식물에 비해 자가생식 확률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근친에 의한 유전적 취약성을 떠안고 가지 않아도 됩니다. 또 버드나무속 식물은 종간에 잡종이 많이 일어나는데요, 이러한 유성생식 능력은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갖게 하며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게 됩니다. 버드나무 종자에는 솜털이 달려 있는데 이것은 바람을 타고 모주(어미나무)를 떠나 멀리 확산될 수 있습니다. 마치 민들레 씨앗에 관모가 있어서 멀리 이동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버드나무는 암수딴그루(자웅이주) 식물이다. 수꽃()과 암꽃(). 국립생태원 제공

 

종자에 의해 멀리 확산 될 수는 있지만 종자의 생명력은 단지 며칠 동안만 이어집니다. 발아하기 적합한 곳에 빨리 안착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어 버리게 되지요. 한 해에 수많은 종자를 생성하지만 뿌리를 내리고 어른나무로 자라는 개체는 1%도 안 됩니다. 버드나무류는 생존을 위해서 유성생식 이외에 무성생식을 하기도 합니다. 눈이 있는 줄기나, 가지를 꺾어 흙 속에 꽂으면 쉽게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개체로 생장하게 됩니다. 자연에서는 부러진 가지나 줄기가 물 흐름을 타고 먼 거리로 이동하여 정착하기도 합니다. 또 수분 스트레스에 강하여 침수되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견딜 수 있으며 침수에 의해 맹아발현이 촉진되는 수종도 있습니다.

 

다양하게 활용되는 버드나무류

요즘은 사람이 먹기 힘든 곡식의 껍질 등을 현대화된 정미 기계로 분리합니다. 반면 예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선별해야 했지요. 그 당시 유용하게 활용된 도구가 바로 였습니다. 곡식을 얹고 위 아래로 흔들어 선별하는 방식으로 이를 수 차례 반복하기 위해선 재료가 내구성도 있으면서 가벼워야 했습니다. 또 만들기도 편해야 했지요. 이런 기능에 적합한 게 바로 키버들의 줄기였습니다. 키버들은 또 고리버들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식물 이름에 접두어 자가 붙을 경우 대부분 인간에게 쓸모가 없거나, 야생하는 것에 붙이는데요 개키버들고리를 만드는데 부적합하여 붙여진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경남 창녕 왕버들은 습지에 살면서 침수 정도에 따라 맹아발생이 촉진된다. 국립생태원 제공

 

버드나무를 의학적으로 활용한 역사는 꽤 오래됐습니다. 2,500년전 그리스의 학자인 히포크라테스는 버드나무 껍질이 진통, 해열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버드나무 껍질에 있는 살리실산 성분이 앞서 언급한 효과를 나타내지만 pH 2.4로 강한 산성물질이며 위장장애를 일으키고 설사를 유발하기에 섭취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18세기 독일 바이엘사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이 조팝나무류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을 아세틸화해 합성물질을 만들면서 부작용이 크게 감소되었습니다. 이 물질이 그 유명한 아스피린입니다. 현재는 통증 억제 역할로 사용되기보다 혈액순환 장애 개선 등에 주로 사용되고 있지요.

 

버드나무류는 수명이 짧고 생장이 빠른 식물입니다. 정부는 버드나무류의 생육특성을 감안해 나무 나이가 15~25년 될 때 바이오연료 공급 목적으로 활용되는 주요 수종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버드나무류는 인류 문명과 함께한 식물입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버드나무류에 숨겨져 있던 유용성의 발굴이 기대됩니다. 버드나무류는 미래에도 인류에게 주목 받는 식물로 자리 매김할 것입니다.

이창우 국립생태원 야외식물부 주임/한국2018.12.08 고은경지자

 

설악엄마이끼물가게발이끼삿갓우산이끼이름도 모양도 참 예쁩니다

#극한 환경서도 생명력 질긴 이끼

15000여종 중 국내 900여종 자생

솔이끼류우산이끼류뿔이끼류

생김새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

 

#화려한 꽃도 달콤한 열매도 없지만

작은 산새애벌레 은신처가 되고

한약재포장재로도 유용하게 쓰여

작고 조용한 생태계 숨은 보물

 

러시아 마가단 툰드라 지역에 이끼가 카펫을 펼쳐 놓은 것처럼 넓게 자라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이끼처럼 조용히 살아라영화 이끼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끼는 야생화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않으며, 과실수처럼 달콤한 열매를 맺지도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이끼는 진정한 뿌리가 물을 흡수해 기관으로 나르는 물관이나 잎에서 만든 양분을 곳곳에 전달하는 체관 같은 관속조직이 없어 비관속식물로 불립니다. 전 세계에 걸쳐 넓게 분포하며 다른 식물들이 생육할 수 없는 남극이나 북극의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갑니다. 이끼는 전세계에 15,000여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 가운데 900여종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선태식물이라하며 솔이끼류, 우산이끼류, 뿔이끼류로 구분합니다.

 

제주도 현무암 바위 아래 살아가고 있는 방울우산대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자라는 환경도 이름도 다양한 이끼

솔이끼류, 우산이끼류, 뿔이끼류 모두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솔이끼류는 잎에 잎맥이 있으며 포자낭이 오랫동안 달리고, 잎이 모여 난 모습이 소나무 잎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산이끼류는 잎에 잎맥이 없으며, 세포 안에 유체라는 기름덩어리가 있고, 포자낭이 우산대처럼 생겼습니다. 뿔이끼류는 엽상체로 땅 위에 퍼지며 자라고 포자낭의 모양이 뿔기둥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솔이끼류 중에서는 특히 동물의 모습에서 유래되어 붙여진 이름들도 많습니다. 사자의 갈기털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사자이끼, 포자낭의 모습이 두루미처럼 생긴 두루미이끼가 있습니다. 새의 깃털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도 있는데요, 봉황새의 깃털처럼 생겨서 붙여진 봉황이끼, 타조의 깃털을 닮아 붙여진 타조이끼입니다. 이외에 잎의 모양이 공작이 깃털을 쫙 폈을 때 모습인 공작이끼도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우산이끼류 가운데서는 지네가 지나가는 것처럼 생긴 지네이끼, 잎의 모양이 닭벼슬처럼 생겨서 붙여진 닭벼슬이끼, 잎의 갈라짐이 게발을 닮아 붙여진 게발이끼 등이 재미있는 이름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산에서 볼 수 있는 깃털나무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이끼는 종에 따라 자라는 생육환경이 다릅니다. 물을 좋아하는 물비늘이끼, 물가게발이끼, 망울이끼 등은 계곡 부 바위나 흙 위에 자라고, 촉촉한 습기를 좋아하는 둥근날개이끼, 들목걸이이끼, 은비늘이끼 등은 그늘진 바위 겉에, 건조한 지역을 좋아하는 지네이끼, 고깔바위이끼, 톳이끼 등은 햇볕이 잘 드는 바위나, 수목의 겉에 자랍니다.

 

특이하게도 강원도 정선, 영월의 동강 등지의 석회암 지역에만 자라는 이끼도 있는데요. 버섯우산이끼, 동강우산이끼, 어라연우산이끼, 조개우산이끼 등이 석회암 지역에 드물게 자라는 석회암 지표이끼입니다. 개구리밥처럼 이끼 중 유일하게 물위에 떠서 자라는 은행이끼라는 종도 있습니다. 습지나 저수지 가장자리에 개구리밥 옆에 숨어 있어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은행잎 두 장을 포개놓은 것처럼 생겨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끼 중 유일한 외래식물인 반달우산대이끼는 화원의 온실 바닥 흙 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중해지역이 고향으로 세계 각지의 화원을 통해 퍼져서 살아가고 있지요. 포자체가 달리는 모습이 반달처럼 생겨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에 있는 솔이끼류인 들솔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설악산 전석지대에 작은 무리를 이루며 서식하는 설악엄마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북방계 이끼

북방계 이끼는 주로 강원도 높은 산이나 한여름에도 찬바람이 나오는 풍혈지역 등지에서 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악산 능선부나 계곡부에 발달해 있는 전석지대(너덜지대)에 설악엄마이끼, 은비늘이끼, 둥근타래잎이끼, 흑조갈래잎이끼, 손바닥가는단풍이끼, 새깃통꼴이끼 등이 작은 무리를 이루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요. 사실 한반도 이끼 연구를 하면서 북방계 이끼를 관찰하고 연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말린주머니이끼, 가시닭벼슬이끼, 가는단풍이끼, 산말린이끼 등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주로 북한지역만 자란다고 합니다. 이 이끼들을 관찰하고 싶어 한반도 인근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이나 우수리지역, 사할린, 마가단 등지를 다니면서 북방계 이끼를 관찰했습니다. 북방계 이끼들은 우리나라에서 만나기 어렵지만 러시아 등 툰드라 지대에는 길바닥 잡초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영월 동강 석회암 지역에는 버섯우산이끼, 동강우산이끼, 어라연우산이끼, 조개우산이끼 등이 드물게 자란다. 국립생태원 제공

참고 -   https://blog.naver.com/cavenia


남방계 이끼는 주로 제주도 낮은 고도의 계곡이나 곶자왈에서 살아갑니다. 제주도의 주요 하천인 효돈천, 무수천, 탐라계곡, 돈내코계곡 등지에는 여인이끼, 제주뿔이끼, 방울우산대이끼, 탐라뿔이끼 등이 그늘진 현무암 바위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주도 효돈천 탐사 중에 우리나라 미기록종인 여인이기를 찾은 적 있습니다. 이 식물은 몇 해전 일본 가고시마 어느 계곡을 탐사하면서 크게 무리지어 자라는 것을 확인했던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자라고 있으면 참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점점 따뜻해지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일본 난대림에 큰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 이끼들 중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있는 종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러시아 마가단 툰드라 지역의 이끼를 탐사하던 도중 만난 한 러시아 연구원이 물이끼 종류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캄보디아와 툰드라에서 만난 이끼

열대우림의 이끼는 나무에 걸쳐져 축축 늘어져 자라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열대우림에서 이끼를 만나는 건 너무나 쉬워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날개이끼 종류 중 가장 큰 이끼는 3정도이지만, 열대우림에서 만나는 날개이끼 종류들은 10넘게 자랍니다. 우리나라의 뿔이끼 종류들은 모두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열대우림에는 나무에 붙어 자라는 뿔이끼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넓게 퍼져 자라는 지의류 같지만 포자가 맺히는 이끼종류입니다. 일본 남부지역에도 자라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종입니다. 제주도 계곡부 조사를 다닐 때는 항상 나무 줄기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따뜻해지는 기후 등의 영향으로 곧 우리나라에도 발견될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캄보디아 열대우림에서는 나무에 붙어 자라는 뿔이끼도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러시아 마가단 툰드라의 이끼는 카펫을 펼쳐 놓은 것처럼 넓게 자라고 있습니다. 주로 물이끼 종류들이 자라고 있는데, 색별로, 크기별로 종류들이 다릅니다. 마가단을 탐사하던 도중 만난 한 러시아 연구원은 작은 습지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장소에서 여러 종의 물이끼를 관찰할 수 있다고 좋아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물이끼가 20여종이 자라고 있지만 산지에서 만나기란 어렵지요.

 

툰드라 조사 시에는 텐트를 배낭에 메고 일주일씩 조사를 나갑니다. 텐트를 설치한 바닥에는 우리나라 멸종위기종인 암매(돌매화)와 작은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암매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한라산 정상부에 극히 드물게 살아가는 멸종위기종입니다.

 

러시아에서 암매와 같이 살아가는 이끼라면 우리나라 한라산의 암매 주변에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백록담 조사를 갔습니다. 거기에서 만난 이끼가 우리나라 미기록종으로 확인된 백록담이끼입니다. 툰드라 지대에서는 푹신한 텐트바닥의 매트처럼 흔히 자라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백록담 날카로운 바위의 틈새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경남 산청군 지리산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가 드문 털귀이끼를 볼 수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에서 이끼를 관찰하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이끼를 보고 싶다면 태백산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태백산에 가면 계곡부 초입부터 전석지대(너덜지대)에 나무이끼, 깃털나무이끼, 타조이끼, 큰엄마이끼 등 대형 이끼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끼 교육이나 탐사를 한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주도 한라산 1,100고지 습지에 가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물이끼 종류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물이끼 종류들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최근 덕유산 인근 백두대간 능선부 습지에서 북한지역에만 보고되었던 잘린잎물이끼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물이끼 종류들을 만난다면 정말 행운일 겁니다. 가야산 정상부에 가면 세계적 멸종위기 취약종인 하늘이끼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야산정상부 절벽 틈 사이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고 있지요. 보랏빛 식물체로 바위 사이에 눈에 잘 보입니다. 지리산은 산이 큰 만큼 이끼 종류도 다양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털이끼가 발견되었는데, 계곡부 폭포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지리산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가 드문 털귀이끼, 털가시잎이끼, 가시지네이끼, 주머니게발이끼 등이 자라고 있어 탐사 때마다 항상 즐겁습니다.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삿갓우산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조용하게 살아가는 이끼의 역할

이끼를 관찰하려면 현미경으로 봐야 합니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작은 이끼 속에는 더 작은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끼의 잎 사이로 작은 애벌레들이 보입니다. 이끼의 잎은 이 작은 애벌레들의 은신처인 것입니다. 산속 계곡을 조사하다 보면 높은 바위에 이끼로 지은 작은 둥지가 있습니다. 작은 산새들이 이끼를 엮어서 집을 지은 것입니다. 이끼로 만든 집은 촘촘하고 질기며 통풍 또한 잘 돼 둥지의 좋은 재료입니다. 이끼는 한약재나 포장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우산이끼, 흰털이끼, 물이끼류 등을 한약재로 이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삼을 싸는 포장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끼는 작고 조용히 살아가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생태계가 원활히 돌아가게 도움을 줍니다./    최승세 국립생태원 자연환경조사팀 전임연구원/한국 2018.09.15


수줍게 피어난, 멸종 위기 선제비꽃우리 아이들도 볼 수 있을까요

# 북방계 식물, 지구 온난화 탓 위기

약용관상용 불법 채취도 한 몫

# 광릉요강꽃 등 관속식물 88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

# 세계 유일 희귀식물 제주고사리삼

자생지 파괴되며 생존에 큰 위협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인 광릉요강꽃은 현재 국내에 약 1,000개체 정도가 생육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떠오르는 식물이 있습니다. 9년 전 6월 우연히 습지 관련 조사 보고서에서 보게 된 멸종위기야생식물급인 선제비꽃입니다. 선제비꽃은 북방계 여러해살이풀로서 국외로는 러시아, 일본, 중국에 분포하고, 국내에는 수원 북쪽 습한 들판에서 자란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원 어디에서도 선제비꽃을 다시 관찰했다는 소식은 없지요. 오래 전 수원에서 채집된 표본만이 한 대학교 표본관에 남아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에서는 경남 양산의 한 습지에서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이 된 겁니다.

 

보고서 속이지만 긴 억새들 틈바구니에서 가녀린 모습으로 수줍게 꽃을 피운 선제비꽃의 자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결국 조사 장비를 챙겨 경남 양산의 조사지역까지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보고서 속에 기록된 자생지 환경을 떠올리며 해당 지역을 한참을 찾은 결과 드디어 선제비꽃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선제비꽃의 색은 흰색이나 연한 자주색으로 다른 꽃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히려 이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제비꽃은 2005년 야생동식물보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멸종위기야생식물급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법정보호종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경남 양산의 한 습지에서 가녀린 모습의 선제비꽃이 피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참고: https://blog.naver.com/joymodem/221006137354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식물들

선제비꽃과 같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인하여 개체 수가 현격히 감소하거나 소수만 남아 있어 가까운 장래에 절멸될 위기에 처해 있는 야생생물을 말합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환경부가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데요. 멸종위기 정도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과 급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국내 생물종은 49,027.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반달가슴곰, 두루미 등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I, 삵이나 검은머리물떼새는 급에 속합니다. 관속식물(뿌리 및 줄기, 잎의 관다발이 발달하는 식물 전체)만 살펴보면 4,518종이 한반도의 복잡한 지형과 기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야생생물법에 보호를 받는 관속식물은 88종에 달하며, 급은 광릉요강꽃, 풍란, 금자란, 암매를 비롯한 11, 급은 가시연, 대흥란, 제주고사리삼을 포함한 77종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인 광릉요강꽃은 난초과 여러해살이풀인데요, 경기도 광릉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국내에는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에, 국외로는 중국, 일본, 대만에 분포합니다. 서식지는 해발고도 300~1,100m 산지 숲 속에서 배수가 좋고, 건조한 곳에서 자랍니다. 현재 국내에는 약 1,000개체 정도가 생육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낮은 결실률과 무분별한 채취의 위협으로 개체수 감소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주로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절벽바위, 나무에 붙어사는 풍란은 바람이 잘 통하고 공기 중 습도를 얻기 쉬운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관상가치가 매우 높아 과거에 무분별하게 채취되면서 남아있는 개체수가 현저히 적은 상황입니다.

 

주로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절벽바위에 붙어 사는 풍란은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무분별하게 채취돼 왔다. 국립생태원 제공.

 

멸종위기 야생생물 급이라고 해서 개체 수가 많거나 그 가치가 낮은 건 아닙니다. 제주고사리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곶자왈에만 드물게 자라며, 세계적으로 11종인 희귀식물입니다. 이 역시 자생지 파괴와 무분별한 채취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물고사리는 물 흐름이 거의 없는 논, 논둑, 수로 등지에 생육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도, 충남, 부산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데요, 논을 비롯한 습지의 매립이 가장 큰 위협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산작약은 약용식물로 개체수가 위협받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식물들이 위기에 처한 이유

우리 주위에 있는 식물들이 왜 위기에 처하게 됐을까요. 일반적으로 식물의 생육을 위협하는 요인은 크게 자연적인 요인과 인위적인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요인으로는 산사태, 산불, 범람, 야생동물 섭식 등이 있고, 인위적인 위협 요인으로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자생지 파괴, 불법채취, 자원의 무분별한 이용 등이 대표적입니다.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자생지나 개체 수가 현저히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식물은 독미나리, 매화마름, 순채, 가시연, 전주물꼬리풀, 황근 등이 있습니다. 또 약용, 관상용, 산나물 이용 등에 의한 불법채취로 광릉요강꽃, 풍란, 한란 등 주요 난초류 식물과 산작약, 백부자, 한라솜다리, 황근, 가시오갈피 등이 위협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위기에 처한 식물들도 있습니다. 기생꽃, 독미나리, 한라솜다리, 조름나물, 선제비꽃 등 북방계 식물들이 쇠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귀한 식물들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요인도 있습니다. 바로 야생화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인데요. 이러한 사진가들의 활동으로 새로운 식물이나 미기록된 식물이 종종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됐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 식물학계에 적잖이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일부 희귀한 종이나 자생지에는 너무 많은 사진가들이 일시에 찾아와 자생지나 식물이 심하게 훼손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10여년 전 전남 고흥의 섬 해안가에선 풍란이 생육하는 100m에 달하는 절벽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기관이나 전문가들은 식물들의 절멸을 막고 보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여전히 한편에서는 이들이 살아가는데 불편을 주는 요인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닙니다. 현재와 같은 생물들의 멸종을 방치할 경우 향후 50년 내에 지구 동식물종의 약 25% 가량이 멸종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식물종에서 세계적으로 약 35,000여종이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주고사리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곶자왈에만 드물게 자란다. 국립생태원 제공

 

되살아나는 식물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는 것은 건강한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일입니다. 국가적 생물다양성 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서식지 보전 및 무분별한 남획과 채취를 방지하는 데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증식복원 대책의 수립과 시행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지난해 말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멸종위기종에 관한 각종 금지조항과 의무사항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이를 위반하면 최대 5,000만원까지 벌금을 물거나 7년까지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금지나 의무사항만을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니라 서식지 보전, 멸종위기종 보호대책수립 등 멸종위기종의 보호와 생존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멸종위기식물에 대한 복원 사업도 추진되고 있는데요, 환경부는 지난해 8월 경북 영양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를 준공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종에 대한 정밀한 생태조사를 통하여 종 정보를 확실하게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이용, 개발, 불법 채취에 의한 위협요인을 감소시키거나 없애기 위한 노력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올해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우리들의 일상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태풍이 한반도를 비켜가다가 제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남부지방도 강한 비가 내렸습니다. 그 소식들 들으니 다시 선제비꽃이 아른거립니다. 선제비꽃은 장마나 집중 호우 시 물에 잠겨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내린 많은 양의 비를 잘 견뎌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선제비꽃을 만나러 조사 장비를 챙겨야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선제비꽃을 볼 수 있을까요. /이희천 국립생태원 경영지원실 실장 /2018.08.25 한국

 

한국의 숲을 무성하게 만든 용병나무들

 

경북 울진에 조성된 금강소나무와 산지습지. 국립생태원 제공

 

생물들은 경쟁과 공생, 번식과 적응을 통해 진화하였습니다. 수만년의 시간 동안 생물들은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자손을 번창하였고 그 배경에는 항상 안정적인 서식처가 존재하였습니다.

 

이러한 안정적인 서식처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숲입니다. 숲을 대표하는 생물은 나무이지요. 나무는 수십~수백년 이상을 살 수 있는 거대 생물체 중 하나로, 집단을 이루며 오랜 기간 살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숲의 나무와 풀은 생산자로서 생물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며 최소 수백년에서 많게는 수천년 서식처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숲은 외부의 급격한 환경 변화를 완화하여 숲 내 서식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생물들은 이러한 안정적 환경과 지속적인 먹이 때문에 숲으로 모여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에 서식하는 구상나무.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숲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데 그 비중이 24% 가량된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의 기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는 과거 민화와 기록에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하는 금송령(禁松令), 연륜이 오래된 소나무인 황장목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아 바위에 새긴 표식인 황장금표(黃腸禁標) 등을 통해 국가적으로 소나무를 보호하였으며 일반인들은 함부로 소나무를 벨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과거의 땔감과 목재는 대부분 소나무를 제외한 나무들이 이용되었고 소나무의 득세가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소나무는 주로 암석이 많은 숲 능선부와 큰 산의 바위 계곡 하류 등으로 햇빛이 많이 들며 다른 나무와 경쟁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주로 자랍니다. 현재는 소나무재선충, 기후변화에 의한 서식처 변화(수종, 기후), 활엽수와의 경쟁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서식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경북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섬노루귀와 너도밤나무가 숲을 이뤘다. 국립생태원 제공

 

다음으로 우리나라 숲을 대표하는 나무는 도토리나무라고 부르는 참나무입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식물도감을 아무리 찾아도 참나무는 없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참나무는 흔히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붉가시나무 등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들을 모두 일컫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불에 타거나 베어내도 뿌리움(맹아)으로 다시 줄기를 내어 숲을 이룰 수 있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살 수 있는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나무류는 과거부터 연료와 목재를 공급하며 우리 조상들에게 사랑 받는 나무였고 -‘(참하다, 참 좋은)이라는 접두어도 여기서 파생되었습니다.

 

참나무류의 도토리는 숲 생태계에서 중요한 먹이원입니다. 많은 동물들이 참나무류에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참나무류 분포를 보면 신갈나무는 참나무류 중에서 가장 높은 지대까지 살아가며 높은 지대로 갈수록 모여서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졸참나무는 신갈나무에 비해 낮은 지역에 살아가지만 우리나라 전체에서 살아가는데요. 특히 광릉 일대의 졸참나무 숲은 500년 이상 잘 보존되어 있지요.

 

비교적 다른 참나무류들이 자라기 힘든 암석이 많은 곳에서는 굴참나무가 잘 자랍니다. 난대지방(남부 일부 지역과 제주도 일대)의 계곡을 따라서 살아가는 늘푸른나무인 붉가시나무는 전국 어디를 가든 만나게 되는 우리나라 숲생태계의 주연이자 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괴된 우리나라 숲을 되살린 주인공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불렸던 우리나라 숲은 일제강점기 수탈과 625 전쟁을 겪으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그 결과 산사태, 홍수와 같은 재해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으며 서식처를 잃은 동물들은 떠나갔고 유기물이 없는 토양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에 1973년부터 정부 주도의 치산녹화 사업이 시작됩니다. 사람이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자연적으로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는 시간보다 빠르게 숲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 겨울 추위에도 강한 리기다소나무는 파괴된 우리나라 숲을 빠르게 복원하기 위해 심어졌다. 국립생태원 제공

 

이렇듯 숲을 빠르게 조성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자라고, 척박한 곳에서 죽지 않으며 토양 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나무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나무가 바로 헝가리 국적의 아까시나무, 미국 국적의 리기다소나무, 일본 국적의 일본잎갈나무 등 입니다. 이들은 비록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였지만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용병들은 강인한 생명력과 토양 내 질소 고정, 유기물 공급, 연료, 벌꿀 생산 등 다양한 역할을 해주었고 목재 또한 생산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주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의 숲들은 1973년부터 시작된 치산녹화사업의 결과물입니다. 숲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는 과거 역사적 산물이며 우리의 노력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숲은 인간의 접근이 힘든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람과 자연이 힘을 합쳐 만든 역사적인 숲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이의 과정. 국립생태원 제공

 

숲은 생물다양성을 이끄는 힘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많은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변할까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구조물은 풍화하고 바래지면서 녹색의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녹색의 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천이라고 합니다. 천이의 과정은 먼저 암석이 지의류, 선태류, 바람 등에 풍화되어 식물이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들며, 그 척박한 토양을 풀과 작은 나무들이 유기물로 안정화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은 나무들은 큰 키 나무와 경쟁하며 서로의 위치를 찾아가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숲은 온대림에 속하며 사막, 툰드라 지대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숲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는 축복 받은 땅입니다. 한 세대의 생애주기가 80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숲이 되기까지는 다음 세대쯤 되어서야 가능할 것입니다.

 

강원 고성군 향로봉 가장자리에 서식하는 왜솜다리.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 숲은 인간에 의해 파괴된 후 새로 생긴 이차림과 자연적으로 생긴 일부 자연림이 합쳐진 곳으로 천이과정이 다양하고 복잡한 편입니다. 여기에 맞물려 난대, 온대, 한대의 폭넓은 기후대와 지형이 만들어내는 고저차이, 지형과 지질학적 특성에 따른 석회암, 화강암, 풍혈지대 등 다양한 서식처가 존재하며 약 2만종의 생물들이 숲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서식처에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복잡하게 엮여 생태계를 형성하며 이는 생물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힘은 숲의 서식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고지대에 서식하는 가시오갈피. 국립생태원 제공

 

기후변화로 사라지는 숲

최근 기후 변화와 인간의 간섭으로 인해 숲이라는 서식처가 사라진다는 보고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기온은 지난 100년간 약 1.5도 상승했으며 이는 전 세계 평균 기온 상승률인 약 0.7도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생물들이 느끼는 1도의 무서움은 어마어마합니다. 해발고도가 160~170m 상승할 때마다 기온이 1도 감소한다고 할 때 높은 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1도가 오를 때마다 160~170m 가량의 서식처 변화를 겪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도가 높은 지역에 적응한 북방계 식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높은 고도에 적응한 식물 쇠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예로 한라산에 말라 죽은 구상나무는 보는 이들에게 공포감을 줄 만큼 참혹합니다.

 

제주도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말라 죽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이와 비슷하게 높은 고도의 분비나무, 주목, 가문비나무의 쇠퇴가 우리 숲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목전까지 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인위적인 간섭에 의한 서식처 파괴는 생물을 고립화시켜 멸종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생물과 무생물은 생태계 시스템 속에서 상호교류하며 살아가는데, 교류의 공간이 고립되거나 멀리 떨어질 때 생물의 멸종 가능성은 높아지게 됩니다.

 

경북 울릉군 울릉도에 피어난 섬국수나무.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와 같이 서식처 다양성이 높은 지역에서 급격한 환경 변화와 서식처 파괴는 생물다양성 감소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0% 이상이 바로 숲입니다. 우리는 반세기 이상 숲을 만들고 잘 보전해 왔습니다. 지금이라도 생물다양성의 근간이 되는 우리 숲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천광일 국립생태원 생태지식문화부 연구원 2018.07.07. 한국

 

이불 밖은 위험한 겨울식물들은 어떻게 추위를 견딜까

잎 떼버리고 가지만 남겨 세포 내 수분 배출량 줄이고 지방산 등 비축 내부 고농도화

겨울에도 잎 푸른 근생엽은 땅바닥에 바싹 붙어 겨울나기바람 추위 영향 덜 받기 전략

봄 오면 싹 틔울 준비하는 겨울눈찬바람건조 등서 보호 위해 발달

보드라운 털생선 비늘 모양 등 형태 다양식물 구별 잣대도

 

겨울을 지낸 후 꽃과 잎으로 피어날 부분을 보호하기 위한 '겨울눈'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다. 껍질이 비늘 모양으로 겹겹이 싸여 있는 갈참나무 겨울눈. 국립생태원 제공

 

자유롭게 집을 옮겨 다니는 동물과는 달리 많은 식물들은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갑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거센 바람이 불고 매서운 한파가 불어 닥치는 한겨울에도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 식물의 숙명이죠.   대신 식물은 제한된 환경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생존 전략으로 스스로를 지켜 왔습니다. 식물이 살아가는 데는 토양과 물, 양분, , 온도, 습도 등 다양한 조건이 필요한데요.

 

지구 곳곳의 환경 조건이 다른 만큼 식물들도 여러 방식으로 적응해 왔습니다. 식물의 지리적 분포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이유죠. 그 중에서도 기온은 식물의 지리적 분포를 제한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식물마다 추위를 견디는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이는 유전적으로 내포돼 있기도 하고 뿌리나 줄기, 잎 등 기관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의 전략들

그렇다면 식물들은 어떻게 겨울을 날까요. 식물이 기온이 떨어지는 환경에 노출됐을 때 적응하는 특성을 내한성이라고 하고, 내한성 가운데서도 동결 현상에 견디는 능력을 내동성이라고 합니다. 한대 지방에 분포하는 식물이나 우리나라처럼 뚜렷한 겨울을 나는 식물들일수록 내한성이 강할 수 있겠죠.

 

내한성과 내동성을 지닌 식물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생리적형태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합니다. 겨울 나기에 방해가 되는 부분을 과감히 떼 버리기도 하고 땅에 바짝 엎드려 영양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줄기나 가지에 다양한 물질을 비축해 어는 점을 낮추는 방식으로 몸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말이죠.

 

식물이 스스로 잎을 떨어뜨리는 행위는 겨울을 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낙엽 활엽수인 윤노리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낙엽이 생기는 이유,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을이면 온 강산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던 단풍은 얼마 지나지 않아 땅에 떨어져 바싹 마른 낙엽이 되죠. 양분을 공급해주던 잎이 떨어진 나무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데요. 이 또한 식물들이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한 전략입니다.

 

기온이 저하되면 식물의 잎자루와 가지가 연결되는 부위에 특수한 세포층인 떨켜가 생성됩니다. 떨켜가 생기면 가지에서 잎으로 수분이 이동되는 것을 막고 결국 말라버린 잎은 땅으로 떨어지죠. 햇볕이 쨍쨍한 여름철에 광합성과 증산(식물의 잎 표면에 분포하는 기공에서 수증기가 방출되는 것), 호흡을 담당했던 잎이 겨울이 되면 오히려 식물의 동해(얼어서 해를 입음)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떼어 내는 것입니다. 떨켜는 잎이 떨어진 가지 부근에서 수분 손실을 방지하는 층 역할을 하는데요. 한겨울 나뭇가지에서 잎이 떨어져 나간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물과 양분이 오가던 통로인 관다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겨울이 되면 스스로 잎을 떨구고 성장을 멈추는 휴지기에 들어가는 식물이 많습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대부분 그렇죠. 이런 현상을 가진 수목을 낙엽활엽수라고 부릅니다.

 

부드러운 털로 덮인 백목련의 꽃눈. 국립생태원 제공

 

봄을 기다리는 식물의 겨울눈

한겨울 나뭇가지를 살펴보면 잎이 떨어진 자리에 둥그스름한 꽃봉오리처럼 생긴 눈이 붙어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겨울을 보낸 후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울 꽃과 잎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인데요. 사람들은 이것을 겨울눈(winter bud)’이라고 부릅니다. 주변에서 솜털이 무성한 목련의 겨울눈이나 노란 꽃이 떨어진 직후부터 생기는 개나리의 겨울눈을 흔히 볼 수 있겠죠.

 

식물은 겨울철 저온현상과 바람, 건조,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저마다 독특한 형태의 겨울눈을 발달시켰습니다. 갯버들은 눈 껍질이 보드라운 털로 덮여있는 반면 갈참나무는 생선의 비늘처럼 눈 껍질이 겹겹이 둘러쳐진 모양이죠. 이처럼 각 종마다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겨울눈의 모양으로 식물을 구별할 수도 있습니다.

 

겨울눈은 봄이 되면 광합성을 하는 잎이 될 잎눈, 꽃으로 피어나 생식작용을 할 꽃눈으로 나뉩니다. 대표적인 겨울눈인 목련의 꽃눈을 반으로 갈라보면 그 안에 꽃술이 될 부분과 꽃잎이 될 부분이 잔뜩 웅크린 채 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울철이 되면 줄기를 최소화한 채 땅에 납작 붙는 '근생엽'도 식물이 겨울을 나기 위한 전략이다. 꽃마리의 근생엽. 국립생태원 제공

 

땅에 꼭 붙어서, 그리고 세포가 얼지 않게

겨울철 등산을 하다 보면 땅에 떨어진 낙엽 사이에서 푸른 잎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잎이 말라버리기 쉬운 계절에 이 식물들은 특이하게도 잎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이런 식물들을 뿌리에서 바로 잎이 나온다고 해서 근생엽(根生葉)’ 또는, 로제트 식물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인 식물들은 땅에서 한참 뻗어 올라온 줄기에 달리지만 근생엽은 뿌리나 땅속 줄기에서 잎이 달려 나와 마치 땅에서 잎이 바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상 지면에 붙어 있는 모습이죠.

 

이렇게 땅에 바짝 붙는 것도 식물들의 똑똑한 겨울나기 전략 중 하나입니다. 땅바닥에 붙어있어 상대적으로 바람이나 추위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고 뿌리와 잎 사이에 수분이나 영양소가 움직이는 통로도 짧죠  이러한 전략을 가진 식물이 얻는 이점은 상당합니다. 잎과 뿌리 부분에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으므로, 빠르게 자라나고 일찍이 꽃을 피울 수 가 있습니다. 한해 농사의 시작이 종자에서부터 시작되는 식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따뜻한 계절이 오면 개망초, 망초 같은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밤에는 달맞이꽃의 노란 꽃이 곧게 뻗은 줄기에 달리기도 하는데요. 자라는 환경에 따라 심지어 2m 이상 자라기도 합니다. 이런 키 큰 식물의 시작도 납작하고 보잘 것 없는 근생엽에서 부터라고 생각하니, 생명의 경이로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줍니다.

 

전반적으로 식물들은 모양을 바꾸지 않고 생리적 변화를 통해 추위를 견디기도 합니다. 생물체의 기본단위인 세포가 얼면 물질이 순환하지 못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조직이 파괴되고 식물이 죽어버리기도 하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식물은 세포 내에 수분량을 줄이고 지방산이나 당, 특정 효소 등 다양한 물질을 생성하고 겨우내 비축해 놓습니다. 세포 내부는 외부보다 고농도 상태가 되고 이에 따라 어는점도 더욱 낮아지죠. 강물이 어는 한겨울이 찾아와도 식물의 세포기관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식물은 다양한 형태적, 생리적 변화를 통해 나름의 전략으로 겨울을 납니다. 자신이 뿌리를 내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은, 우리에게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이를 이겨내는 전략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유난히 추운 올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를 묵묵히 견디는 식물들의 변화를 관찰하며 인생의 지혜를 배워 보는 것은 어떨까요./이창우 국립생태원 식물관리연구실 주임 /2017.12.30. 박세인기자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