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은이), 박태일, 유병규, 예상한, 한상완 (옮긴이)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06-10 | 원제 The Conscience of a Liberal
2008년 5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진보파 경제학자. 신무역 이론을 개척한 뛰어난 경제학자로서 상아탑의 경계를 넘어서 사회적 여건의 개선에 직접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는 실천적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1953년 미국 뉴욕 주의 주도인 알바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79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스탠포드 대학, 예일대학 및 런던경제 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도 강의하였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뉴욕시립 대학 대학원의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뉴욕타임스」의 고정 칼럼니스트로서 1주일에 두 차례 현실 문제에 대한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크루그먼이 한국에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7년에 발생한 아시아 외환위기 때이다. 크루그먼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에 발표한 논문 「아시아 기적의 신화」에서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기술과 제도의 발전을 통한 생산성 향상 없이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투입에 의존한 것이어서 곧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의 예견은 불과 3년 만에 현실화되었다. 1997년 12월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크루그먼의 예견은 당시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에 따라 국가 간에 재화뿐 아니라 생산요소의 이동 또한 더욱 자유화되는 과정에서 취약한 경제 체질의 국가들이 그에 수반된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 책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의 모태인 아이스켄스 강좌의 강연을 요청받을 당시 크루그먼이 먼저 생각했던 주제가 바로 ‘국제 요소의 이동성’이었을 정도였다. 강좌 당시 유럽연합의 출범이 임박했었는데, 크루그먼은 유럽에서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자로서 개별 국가의 영향력이 크게 감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특히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주목했다. 국제간 요소의 이동성을 자신의 주된 관점인 불완전경쟁과 규모의 경제에서 살펴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크루그먼은 스스로를 ‘현대적 진보주의자’로 부른다. 「뉴욕타임스」의 그의 블로그 명인 ‘진보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2007년 발간된 그의 저서명이기도 하다. 이 저서는 20세기 미국의 부와 소득 격차의 역사를 다루는데, 20세기 중반 어떻게 빈부 격차가 크게 줄었다가 지난 20년간 크게 확대되었는가를 설명한다. 2003년 출간한 『대폭로 The Great Unraveling』에서 1990년대 미국 신경제기에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었음을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진보주의자의 양심』에서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빈부 격차의 감소와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의 빈부 격차의 확대 모두에 있어서 정부 정책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주장하며, 빈부 격차를 확대하도록 만든 정책을 편 부시 행정부를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공적의료보험에 보다 예산을 많이 투입하고 국방비를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뉴딜 new New Deal’ 정책을 제안한다. 그는 재화와 노동시장의 불완전성을 전제하며 정부 당국의 일정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신케인즈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다.
2012년에는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불황을 당장 종식하라! End This Depression Now!』를 출간한다. 그는 재정감축과 긴축정책 수단들이 경제를 순환시키고 취약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금 흐름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소비할 수 없고 충분한 소비가 없으면 시장은 지탱될 수 없으며, 대량 실업이 존재하면 충분한 소비가 가능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공 부문을 통해서건 민간 부문을 통해서건 경제를 자극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할 경우 불가피하게 경제불황이 지속될 뿐 아니라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하는 그의 입장은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2016년 한국에서 진행된 컨퍼런스에서 크루그먼은 “전 세계 경제는 현재 경기부양 정책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재정적인 여력이 높기 때문에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 비중이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라면서 “사회지출을 늘림으로써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서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여 결과적으로 성장을 진작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크루그먼은 학자로서 그간 20여 권의 학술서, 교재 및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을 출간하였고, 200여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뉴욕타임스」와 『포춘 Fortune』을 비롯한 대중적 신문과 잡지에도 수백 편의 칼럼을 기고하며,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는
해설자로서 국제무역을 비롯하여 소득분배, 조세, 거시경제학, 보건, 사회 및 정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이슈들을 다루어 왔다.
옮긴이의 말 선진사회는 구성원들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1장 추억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경제학
불평등의 정치학
새로운 뉴딜정책
2장 길었던 도금시대
계속된 도금시대의 불평등
금권정치
인민주의의 문제점
보수적 지식인들의 지배
뉴딜정책의 기원
3장 대공황시대
중산층 국가의 초상
부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육체노동자들의 황금기
전시의 임금
평등과 전후의 경기호황
4장 복지국가의 정치
급진주의에서 존중의 대상으로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 선거할 수 있는 권리
남부의 특별한 역할
노동조합
평등시대의 정당들
5장 1960년대: 혼란 속의 번영
민권운동과 남부의 이탈
도시의 소요사태
사회복지관련 지출의 폭증
섹스와 마약, 그리고 로큰롤
베트남
1960년대가 남긴 것
6장 보수주의 운동
대중적인 기반 마련하기
경제계에서 기반 구축하기
보수적 지식인 규합하기
닉슨과 대전환
7장 심각한 불균형
승자와 패자
숙련된 기술에 대한 수요
제도: 디트로이트 협약의 최후
사회규범과 소득 불균형: 무분별하게 오른 CEO들의 소득
소득 불균형의 이유
8장 불평등의 정치
당파성의 회복
급진적으로 변모한 공화당
거대한 음모
보수주의 운동의 성장 요인
9장 거대한 착란을 일으키는 무기
우리 마음 속의 캔자스
필라델피아
악의 제국들과 악당들
도덕적 소수
투표권을 거부당한 노동자들
투표를 막아라
착란의 한계
10장 새로운 평등의 정치
불평등의 현주소
이라크와 국가안보에 대한 새로운 정치
인종문제가 점점 효력을 잃고 있을까
캔자스에서 발견한 희망
해답을 찾아서
11장 필수적인 의료보험제도
미국의 순위는 37위!
의료경제학 입문
천천히 다가오는 위기
의료제도 개혁 최대의 걸림돌
2008년은 1993년과는 다르다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실수들
의료제도 개혁으로 가는 길
의료제도 개혁이 가져올 변화
12장 불평등에 맞서기
불평등의 대가
소득 불균형 줄이기: 시장영역 밖에서의 정책
평등의 수학
시장영역 안에서 불평등 줄이기
대압착이 다시 올까
13장 진보주의자의 양심
진보주의와 진보주의 운동
진보주의 운동의 안건
당파성에 대해
각주 해설
감사의 말
중산층의 몰락과 소득의 불평등은 어떻게 발생하는지, 정치적 양극화의 기원은 무엇인지, 나아가 현대 사회체계의 모순과 불균형, 정부의 정책과 시장경제 메커니즘,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영향, 전국민 의료보험 시스템, 미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와 미래 번영을 위한 날카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소득격차가 8.4배로서 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어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한편에서는 의료보험의 민영화 정책을 둘러싸고 많은 우려와 논란이 증폭되는 중이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과 대비해 볼 때, 폴 크루그먼의 저작이 철저히 미국의 국내문제만을 다루지만 그의 분석과 대안은 대한민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몰락과 세계화의 진전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고, 이를 모두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들은 규제완화와 더불어 정부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축소하면서 시장영역 확대를 골자로 하는 개혁에 나서게 되었다. 이들 변화가 세계경제의 건실한 성장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 국가에서 고소득층에 유리한 정책을 도입하고 이로써 소득분배가 악화되거나 개선이 정체된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가 제기한 미국의 문제는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미국 수준의 시장 중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나라들은 그만큼 문제 해결에 드는 노력을 적게 기울임으로써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크루그먼의 이 책은 우리에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세계 최고의 지성, 양극화를 말하다 !
노벨경제학상보다 더 받기가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수상, 경제학자로서 최초로 [뉴욕 타임스]고정 칼럼니스트, [에디터&퍼블리셔] 선정 ‘올해의 칼럼니스트’, 준비된 노벨경제학상 후보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이후로 글을 가장 잘 쓰는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 제프리 삭스와 함께 ‘세계 경제학계의 3대 슈퍼스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3년마다 공동선정하는 세계의 지성 100인 중 6위(2005년)에 이어 2008년 세계의 지성 100인,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경제학자, [뉴욕 타임스] 선정 미국의 최고지성 100인(2002년)…. 늘 화려한 수식어를 몰고 다니는 스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중산층 몰락, 소득 양극화, 의료보험체계의 모순 등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소득이 대폭 늘어난 수천만 미국인들이 도시 빈민가와 농촌의 가난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전례 없이 안락한 삶을 누렸다. 반면, 부자들은 설자리를 잃었다. 부자들은 수적으로도 밀렸고, 부유한 중산층에 비하면 대단히 부유하지도 않았다. 빈민들은 부자들에 비해 많긴 했지만, 사실 전체적으로 그 수가 적었다. 따라서 경제적 공동체 의식이 두드러졌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물질적으로 상당히 비슷한 수준의 풍요를 누렸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산층 중심의 사회로 자리잡은 1950-60년대 미국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돌이켜보니 그 시절이 미국 정치와 경제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잃어버린 낙원이었던 듯하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왜 50여 년 전의 과거를 그리워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미국의 모습이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경제 대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을 시행하면서 구축한 중산층 중심의 사회는 1970년대 이후부터 무너졌다. 정치인들은 좌나 우의 극단으로 치달았다. 계층 간 수입의 불평등은 1920년대 수준으로 악화됐다고 탄식한다. 크루그먼은 “경제 그래프를 보면 극심했던 소득격차가 어느 정도 줄었다가 다시 심하게 벌어졌고, 정치 그래프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극화가 심해졌다가 초당적 제휴의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양극화가 자리잡았다”면서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가 판치는 미국을 통렬히 비판한다.
중산층 중심의 사회는 정치적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
1870년대 이후 대공황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 절대다수의 삶은 열악했다. 이 기간 중에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이 없었고, 보수적인 공화당의 선거자금이 압도적으로 풍부했고, 선거부정이 만연했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여론이 생길 수 없었고,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을 오랫동안 지배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화당은 남북전쟁 때부터 대공황까지 16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12차례나 승리했고, 상원에서는 32차례의 선거 중 27번씩이나 우위를 차지해 다수당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듯 기세를 올리던 보수주의의 깃발은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아 사그라들고,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미국 사회 분위기는 더 나은 방향으로 전개된다. 1920-50년대 미국에서는 부유층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격차가 급감하고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차도 줄어드는 소득격차 축소 현상, 즉 ‘대압착’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산층 중심의 사회로 재편된 것이다. 이 시기 부유층은 소득이나 재산이 눈에 띄게 줄었고, 중산층 가정의 실질소득은 두 배 정도로 늘었다. 부자들의 소득 급감 요인은 바로 ‘세금’ 때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 부자들의 소득을 상당 부분,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거두어간 것이다. 더불어 노동조합의 부활 덕분에 육체노동자들과 중산층들에게 30년 간의 황금기가 도래했다. 크루그먼은 “정부가 고용주의 대변인에서 노동자의 수호자로 입장을 전환함으로써 노조에 활력을 부여했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다. 결국 뉴딜정책은 기업과 부유층에 무거운 세금을 지우고, 노조의 성장을 촉진하고, 상류층의 소득을 대폭 줄이는 등 소득불균형 해소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게 되었다.
뉴딜정책과 대압착 !
뉴딜정책 이전의 사회적 통념대로, 즉 부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고 사회보장제도나 실업보험 혜택을 제공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화한 결과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고 크루그먼은 강조한다. 따라서 뉴딜정책이 더 이상 급진적 개혁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미국인들의 평범한 일상에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압착’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경제호황을 가져왔고, 루스벨트 행정부는 경제 전반에 정부가 간섭하면 반드시 부패정권이 탄생하리라는 기존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저자가 경제사상적 측면에서 케인스주의자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사회안전망 확충과 국민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을 주장한 저자의 논리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강조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1948-70년대까지 민주 공화 양당 모두는 대압착시대의 변화를 수용했다. 혁신적인 세금정책은 상류층의 부를 제한했지만, 부자들에게는 저항할 만한 정치적 힘이 없었다. 사회보장제도와 실업보험, 메디케어는 절대적인 제도로서 자리잡았고, 강력한 노조도 자연스런 미국사회의 일부로서 뿌리를 내렸다. 이런 균형은,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무너졌다.
보수주의 다시 전면에 서다 !
1960년대는 히피, 운동권 학생, 강경탄압주의자, 베트남전쟁과 반전주의자들의 시대였다. 공화당은 문화적 이질감의 대상을 선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격의 대상을 히피와 범죄에서, 낙태와 동성 간의 결혼으로 바꾸고 보수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한편 장기적으로 중요한 사건, 즉 인종문제로 뉴딜연합이 와해되고 보수주의 운동은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다. 1966년 로널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유세를 통해 보수주의 운동에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저자는 닉슨이 인종차별이나 사회변화에 대한 불안감 조성, 외국의 위협에 대한 과대망상 등을 이용해 백인 노동자계층을 뉴딜연합에서 이탈하도록 만듦으로써 오늘날 미국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1970년대 중반 보수주의 진영은 이념과 조직을 갖추고, 입맛에 맞는 언론 조직까지 거느리게 된다. 그리고 나라 안팎에서 연이어 두 가지 위기가 도래한다. 첫째, 베트남 붕괴 이후 세계 각지에서 공산주의가 거침없이 승리하는 듯했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며,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고, 인질구출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둘째, 국내에서는 잘못된 정책과 에너지 파동으로 높은 실업률과 두자릿수 물가상승률을 동반한 스태그플레이션 악몽을 겪게 되었다. 이렇듯 1970년대의 어두운 분위기 덕분에 보수주의 운동측은 민주당의 진보주의 정책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강력해진 보수주의 운동은 곧 뉴딜정책의 성과를 뒤엎는 기회를 얻는다.
저자는 길었던 경제호황이 1970년대 유가 상승과 물가상승 등의 경제위기로 끝났다고 단언한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생산성도 높아지고 더 부유한 ‘국가’가 되었고, PC와 팩스, 휴대전화기, 기타 기술 향상으로 평균소득도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실상을 따져보면 최근 30여 년 동안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생활수준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까발린다. 오늘날 대학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의 임금은 1973년과 비교해서 17%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CEO들의 소득은 1970년대 노동자들의 30배에서 오늘날에는 300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여느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서, 보이지 않는 시장의 힘이 결정적인 역할을 못하는 반증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최대 기업 월마트 종업원들의 평균 연봉은 1만 8,000달러로서 35년 전 GM 노동자들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연봉의 반도 채 안 된다. 저자 외에도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근거로써 불균형이 다시 과거 수준으로 심화되었다고 우려한다. 즉 1970년대 이후부터 사회적 제도와 규범이 무너지면서 불균형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FRB에 따르면 1930년대 CEO 연봉은 노동자들 평균연봉과 비교할 때 40배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 초에는 367배로 급증했다. 이 같은 원인으로서 저자는 이사진 대부분이 CEO에 의해 결정되는 기업의 이사회에서, 역시 대부분의 경우 CEO가 선택한 임금관리 전문가들을 고용함으로써 CEO의 가치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연봉이 비상식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란다.
보수주의 운동은 1960년대 이후 반전, 대안문화,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 젊은 세대와 흑인들의 움직임에 긴장하면서 “백인의 이익과 전통적인 가치관을 수호하겠다”고 자임하며 공화당을 장악하게 된다. 로널드 레이건이 이들 보수주의 운동 진영에서 나온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저자는 보수주의 운동의 뒤에 숨어 이념적 틀을 제공하는 수많은 학자군, 싱크탱크, 각종 연구소, 신문, 로비스트와 정치인들 간의 비열한 유착관계를 폭로한다.
새로운 미래 어떻게 만들 것인가 !
그러나 저자는 각종 통계자료를 토대로 인종차별주의와 사회적 편견 등의 선거 이슈는 최근 들어 쇠퇴하고, 이라크 사태로 공화당의 국가안보 능력은 신뢰를 잃고, 경제적 양극화와 불안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미국 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온 사람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평가한다. 예컨대 1978년 갤럽이 미국인을 대상으로 흑인과 백인의 결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36%의 응답자만이 긍정의 답을 했다. 그러나 1991년 조사에서는 48%, 2002년에는 65%, 2007년에는 77%나 되는 응답자가 이를 인정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측면으로서 동성연애자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고방식도 매우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크루그먼은 1932년과 같지는 않겠지만 민주당,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 성향이 강한 민주당원이 곧 의회와 백악관 모두를 차지함으로써 미국인들이 미완성 상태로 남겨둔 뉴딜정책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전망한다. 즉 정권교체를 통한 전국민의료보험 을 보장함으로써 뉴딜정책의 완성과 사회불평등,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선진국 가운데서 유일하게 민간 의료보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국의 의료체계를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국 의료서비스의 처참함은 극에 달한다. 미국은 일인당 의료비용으로 캐나다나 프랑스, 독일의 거의 두 배, 영국의 2.5배나 지출했으나 기대수명은 가장 짧다. 더욱이 세계보건기구(WHO)는 경쟁력 측면에서 미국의 의료체계를 세계 37위로 평가절하한 바 있다. 반면에 의료보험제도의 위기는 더욱 심해져 보험료 인상의 고통으로 미국의 일반적인 가정에서조차 보험에 들지 않은 가족 구성원 비율이 40%를 넘어섰다. 미국에는 영국이나 독일과 같은 전국민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능력이 없는 자녀들 역시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되고, 건강문제로 일생의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마련이다. 부모의 삶이 큰 난관에 부닥칠 경우 자녀의 신분상승 또는 계층 간 이동성 역시 심각한 위기에 빠지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부유층을 위한 감세제도를 폐지함으로써 국민의 상위 1%에게만 혜택을 주는 특권적 조치에 수정을 가하라는 당부를 한다. 이렇게 마련된 예산 중 아주 일부라도 불평등을 제한하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쓸 것을 주문한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제약회사와 헤지펀드 등의 세제상 허점을 개혁함으로써 세금회피로 줄어든 연간 500억 달러의 세금을 추가로 회수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최종적으로는 여느 선진국과 달리 미국에서만 특이하게 급격히 쇠퇴한 노조를 되살림으로써 진보정책의 목표를 완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속으로
이미 1881년 비스마르크는 오늘날의 복지국가라 부르는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하층 계급을 달래고 황제의 통치를 굳건히 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면서 가장 교육수준이 낮은 무산계급에게도, 국가란 필수적인 것뿐 아니라 복지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도록 해야 한다. 무산계급이 바로 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 그들이 국가를 상류계급 사회만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이익도 대변하는 기관으로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스마르크가 통치한 독일을 선두로 유럽인들은, 미국의 정치체제가 그 비슷한 것이라도 생각할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뉴딜과 같은 정책을 개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영국은 1908년 제한적이나마 노인연금법을, 그리고 1922년에는 국민건강법을 제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나름대로 특색 있는 초기 복지국가 모습을 갖춘 영국·독일·프랑스는 1930년대 후반의 미국이 사회보장제도 비용으로 지출했던 것보다 국내총산생 대비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52쪽
1920년대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이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소득세의 상한선이 24%에 그치고, 아무리 막대한 유산을 받아도 상속세는 20% 정도로 미미해서 부자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없었다. 그러나 뉴딜정책 이후 부자들은 1920년대와 비교해서도, 그리고 현재의 기준으로도 어마어마한 세금에 직면했다. 소득세 상한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때는 63%까지 올라갔고 두 번째 임기때는 79%까지 올랐다(오늘날에는 35%). 1950년대 중반 미국은 냉전 비용 충당을 위해 91%까지 세금을 올렸다. -68쪽
게다가 이렇듯 고율의 세금은 눈에 띄게 줄어든 투기자본에 대한 수익에 부과되었다. 수익이 감소한 이유는 기업 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인데, 이는 기업 이익에 대한 평균 연방세가 1929년에 14%도 안 됐지만 1955년에는 45%까지 올라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 투자자본에 대한 수익에 의지 하는 사람들은 세금으로 많은 소득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을 깨달았다. 상속세의 상한율은 20%에서 45%로, 그리고 60%, 70%, 결국 77%까지 올랐다. 부가 분산된 데는 이런 세율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1929년 미국의 부유층 상위 0.1%는 국부의 20%를 소유했지만, 1950년대에는 10% 정도에 그쳤다.-69쪽
1930년대에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 중 10%를 조금 웃도는 정도만 노조에 가입했는데, 이는 현재 민간부문 노동자들의 노조가입률과 비슷한 수치다. 공황이 발생한 초기 몇 년 간 노조원 수는 계속 감소해 1933년에는 최저를 기록했다.
그러나 뉴딜정책이 시행되자 노조원이 급증했고 노조의 힘도 강력해졌다. 노조원은 1933~38년 사이 세 배나 증가했고, 1947년에는 다시 그 두 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 중 3분의 1 이상은 노조원이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임금도, 명백히 또는 은연중에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같은 수준으로 책정하거나 노동자들을 만족시켜 노조조직자들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정해졌다.-70쪽
루스벨트 행정부의 이념을 따르는 국가전시노동위원회가 마련한 규정은, 당연히 고소득 노동자들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루스벨트의 지령에 따라 표준 이하 임금은 인상되어야 했고, 시간당 40센트까지(지금으로 치면 시간당 5달러와 같다) 고용주들은 위원회 승인 없이 임금을 마음껏 올릴 수 있었고, 시간당 50센트까지는 지역 국가전시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올릴 수 있었다. 반대로 그 이상 임금을 인상할 경우 정부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따라서 고소득 노동자들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먼저 올리려는 경향이 있었다.-74쪽
1936년 대통령 선거 하루 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행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연설을 접하게 된다면 요즘의 진보주의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소심하며 예의바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요새 최저임금 인상 또는 부유층의 세금 인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에 대해 나쁜 감정은 없으며 계급투쟁을 선포하려는 것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막대한 부를 죄인 취급하며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위협하는 적, 즉 산업과 금융 분야의 독점, 투기, 분별없는 은행의 관행, 계급 간의 대립, 파벌주의, 전쟁으로 부당이득을 챙기는 이들과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정부를 자기 사업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적으로 조성된 자금 위에 세워진 정부는 조직범죄단이 만든 정부만큼 위험한 법입니다.
미국 역사상 그들이 지금처럼 한 후보에 대항해 이렇게 힘을 모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 모두는 저를 증오합니다. 그러나 저도 그들과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83쪽
남부 정치인들로서는 가난한 백인들에 대한 의료혜택 제공보다 백인들의 병원으로 흑인들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94쪽
다시 말해 드수자는 4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부류로 보수주의 제도권 안에서 경력을 쌓고 출세한 직업적 보수주의 지식계층이었던 것이다.-153쪽
만약 빌 게이츠가 어떤 술집에 들어가면 그 술집 고객의 평균 재산은 급상승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술집에 이미 앉아 있던 고객들이 실제로 더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어떤 그룹에서 아주 부자이거나 가난하지 않은 평균적인 사람들의 재산에 대해 얘기할 때 일반적으로 평균소득이 아니라 소득의 중앙값을 언급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소득의 중앙값이란 모집단의 반은 그 값보다 소득이 많고, 나머지 반은 그 값보다 소득이 적은 값을 말한다. 그 술집 소득의 중앙값은 평균소득과는 달리 빌 게이츠가 들어왔다고 상승하지 않는다.-160쪽
한때 CEO들의 과도한 보수를 비난하던 언론사는 이제 CEO들의 경영이 천재적이라고 야단이고, 한때 대중들을 선동해 덩치만 크고 비효율적인 기업을 비난하던 정치가들은 이제 선거자금을 기부하는 이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없으며, 한때 엄청난 임원진들의 보너스에 반대해 파업하던 노조는 이제 계속되는 탄압으로 온데간데 없어졌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있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이 1970년대 초 70%에서 현재 35%로 줄어들어 현재의 CEO들에게는 더욱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더 많은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상위층에서 소득 불균형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84쪽
1990년대 말 부시의 세금 감면조치 이전에는 죽은 사람들 중 상속세를 내야 할 만큼 재산이 많은 사람은 전국민의 2%에 불과했다. 소득에서 상위 1%에 속하는 부유층이 상속세의 3분의 2를 내고, 상위 10%에 속하는 부유층이 상속세의 96%를 냈다.-205쪽
극우적 견해를 쓸모없는 불평이나 하면서 낭비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길 수 있는 전략으로 바꿀 수 있었던 능력이 보수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조직들을 만들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알고 있는 '거대한 극우 보수주의의 음모'다.-218쪽
메디케어가 보장하는 내용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지만 메디케어를 지원하기 위한 세금은 대부분 소득에 비례하여 부과되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서만 거둔다. 미국은 소득 면에서 워빈곤 호수(Lake Wobegon, 미국의 가상마을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이상향 - 역주)와는 완전히 반대라는 것을 기억하라. 국민 대부분의 소득수준이 평균 이하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복지혜택을 준다면 국민 대부분에게 괜찮은 거래처럼 보일 것이다.-220쪽
토머스 프랭크(Thomas Frank)는 2004년 발간된 자신의 저서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나?>에서 노동자계층의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난해한 연설에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술수는 언제나 먹혀들고 환상은 통하지 않는 법이 없다. 낙태 금지를 위해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자본이익에 대한 세금인하 혜택을 누리십시오. 미국이 다시금 강력해지도록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탈산업화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정치적으로 옳은 말만 하는 대학교수들을 무시하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전력산업규체 축소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언론에서부터 육류가공까지 대기업화되고 독점화된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테러리스트들에 당당하게 맞서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 혜택을 누리십시오. 엘리트주의를 타파하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부가 집중되고, 노동자들이 힘을 빼앗기며, CEO들이 상상 이상의 보수를 받는 사회체제를 누리십시오." - 계속 --223쪽
이 내용이 얼마나 진실과 가까울가? 나는 처음 프랭크의 책을 접했을 때도 꽤 놀랐지만 지금도 그의 책은 얼마나 보수주의 운동이 기발하게 감정적인 문제를 이용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위선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지를 너무나 훌륭하게 묘사한 글이라고 생각했다.-224쪽
만약 모든 국민들이 의료보험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 고위험 고객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정부 공부원이 보험을 관리한다면 누가 치료비를 내야 할지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치료가 보험약관에서 보장하는 항목에 해당한다면 정부는 그 비용을 지급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의료보험제도는 민간의료보험보다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훨씬 줄어들고 관리비도 훨씬 적게 들 것이다. 예를 들어 메디케어는 재원의 약 2%만을 관리비 명목으로 지출한다. 민간 보험사의 경우에는 관리비용이 15%에 이른다. 매킨지 글로벌의 200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의료보험업계와 외국 정부가 운영하는 보험제도의 관리비를 비교한 결과 미국이 부담하는 추가 비용이 거의 840억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 미국과 캐나다의 의료체계에서 이런 기타비용을 비교한 결과 미국의 총관리비는 (보험사와 의료기관 모두에게 드는 비용) 의료비의 31%인 데 반해 캐나다는 17% 미만이었다. 총관리비를 돈으로 환산하면 3,00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미국과 캐나다 간의 의료비 지출액 차이의 3분의 1에 해당한다.-281쪽
보수주의 운동이 볼 때, 가장 위험한 정부정책은 운영이 잘 되어 복지국가가 국민의 인정을 받게 되도록 만드는 제도다. -289쪽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은 단순히 부러움과 수치심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방식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지는 것은 큰 문제다.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일류 학군들은 줄고 있으며, 부근의 집값은 점점 더 오르는 추세다. 이들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본문 311-312p 중에서
그러나 워런과 티아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1970년대에 비하면 중산층 가정의 사치스러운 지출은 줄어들었다. 빚이 늘어난 이유는 주로 집을 장만하기 위해 더 많은 지출을 하기 때문이며 이는 좋은 학군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312쪽
"결과가 평등한 것보다는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분히 허구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불평등한 결과가 대단히 많은 사회는 어느 정도 기회도 불평등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정말 모든 국민들이 출발선에서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마땅하다고 믿는다면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314쪽
상류층에 대한 세율은 클린턴 시절에 39.6% 밖에 되지 않았던 반면 1970년대에는 70%였고, 1981년 레이건의 감세조치 이후 50%였다. 상류층에 대한 세율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낮다. ...... 결과적으로 영국에서 최고소득층은 거의 48%에 달하는 세율을 적용받는 셈이다. -325쪽
고용에 관해 좀더 알아보기 위해, 미국 최고의 노동경제학자인 버클리의 데이비드 카드(David Card)교수와 프린스턴의 앨런 크뤼거(Alan Krueger)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를 살펴보면,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한 정도로는 실업이 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거센 비난을 받았는데 이는 경제학 원론과도 상충되고, 이념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모든 실증연구 자료등에 따르면 실제로 조정 가능한 최저임금 인상폭 정도로는 실업률이 심각하게 증가하진 않을 것이라고 한다. ...... 동시에 최저임금인상은 저소득층 임금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경제정책 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는 미국 노동인구 중 소득 최하위층 10%에 해당하는 1,3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얼마 전 법제화된 최저임금인상안의 득을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328쪽
Lulu 2011-09-19 편견과 당파성의 정치
“나는 1953년에 태어났다. 우리 세대는 미국에 태어난 것에 특별히 감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이 미국 정치와 경제사상 찾아보기 힘든 잃어버린 낙원이었던 듯하다.
무엇보다 전후 미국은 중산층의 사회였다. 소득이 대폭 늘어난 수천만 미국인들이 도시 빈민가와 농촌의 가난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전에 없이 안락한 삶을 누렸고 대다수 미국인들은 물질적으로 상당히 비슷한 수준의 풍요를 누렸다. 경제적으로 균등햇던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중도노선을 지켰다. 초당적 제휴가 정말로 의미있던 시절이었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미국이 항상 이렇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미국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양당의 싸움으로 얼룩진 나라였다. 당시 우리는 미국이 성숙했기 때문에 두터운 ㅈ중산층이 뒷받침하는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정치적으로 평온한 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자 중산층 중심과 중도노선의 청치가 미국사회 진화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미국은 다시 이전처럼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양극화된 나라로 돌아갔다. 단지 돌아간 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불평등은 1920년대만큼이나 크며 정치적 양극화도 이렇게 심했던 적이 없다.”
이책은 왜 미국이 과거로 회귀했는가, 란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경제학자답지 않게 정치라고 말한다. 전후 미국이 중산층 사회가 된 것도 그 중산층 사회가 와해된 것도 정치가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전후 미국의 중산층 사회는 “루즈밸트 행정부의 전시임금통제를 통해 몇 년이 채 안되는 기간 안에 만들어졌다.” 경제사에선 대공황에 빗대 이를 대압축(Great Compression)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의 확대는 “시기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먼저 이루어졌고 경제적 불평등은 그 뒤를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시대를 만든 것은 모두 정치운동이엇다. 뉴딜이 그랬고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포함한) 운동이 그랫다. 두 운동의 공통점은 이전 시대에 반발한 소수파의 운동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주류가 되었고 시대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와 함께 백악관을 장악한 소수파가 바꾸려 했던 미국은 지금의 미국과 상당히 닮은 모습이었다다. “부시 집권시기의 눈으로 바라본 뉴딜 이전 미국의 정치경제는 마치 할아버지의 흑백사진을 보면서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21세기 초의 미국처럼 뉴딜정책 이전의 미국에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만연했다. 이름은 민주국가였으나 대다수 국민들을 대변하는 데 실패했다. 게다가 부유한 경제 엘리트들이 정계를 장악한 것도 지금과 같다. 뉴딜정책 이전의 시대는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치적 성향을 띠었다.” 저자는 그 시절을 장기 도금시대라 부른다. 19세기 후반을 말하는 도금시대처럼 뉴딜 이전 20세기의 미국도 “불평등과 부유한 엘리트 집단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의 지속이다.”
당연히 그런 과두정치에 반대가 없을 수 없었다. 19세기말 인민주의운동이나 20세기초 윌슨과 테디 루즈벨트의 진보주의운동의 목표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고 미국을 바꿀 수 없었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주류인) 보수주의자들은 불평등 타파를 위해 무엇인가 하라는 요구에 항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햇다. 즉 어떤 정책으로도 뚜렷한 변화를 느낄 정도로 국민소득을 노동자 가정으로 재분배할 수 없으며 설령 누군가 그렇게 하더라도 분명 경제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공황은 소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수파에겐 언제나 위기가 기회가 된다. “우연히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이진 덕분에 그들은 유권자들의 보편적 보수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다. 첫째 이유는 1929-33년의 대재난으로 부수 엘리트 집단과 그들의 이념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기회를 잡은 이전의 급진 소수파는 미국을 바꿔놓았다. “루즈벨트와 트루먼은 하증계급으로의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극적으로 성공시켜 미국을 이전보다 휠씬 평등한 사회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재편성 즉 대압착으로 미국경제는 망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향후 세대가 누릴 경기호황의 기반을 마련했다.”
중산층 사회를 만든 것은 분명 정치였다. 루즈벨트는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 소득을 재분배했고 노조를 보호해 노동자의 힘을 키웠다. 소득재분배와 노조의 힘은 중산층 사회의 원인이엇다.
뉴딜과 전쟁의 승리는 급진 소수파의 이념에 불과했던 것에 정당성을 주었고 그들의 정책으로 득을 본 계층을 지지자로 끌어들엿다. 광범위한 뉴딜 연합의 힘은 뉴딜 이전의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보수주의자들을 체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뉴딜 이전으로 돌아갔다. “지금 우리는 두 번째 도금시대를 살고 있다. 전후 시대의 중산층 사회가 급격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저자가 이책에서 묻는 가장 큰 질문이다. 저자의 답은 뉴딜연합의 해체이다.
민주당의 뉴딜 연합은 “남부와 노조, 도시의 정치집단, 그리고 좌파지식인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이 연합에서 남부가 이탈해 공화당의 거수기가 되면서 뉴딜연합은 무너졌고 공화당 지배가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부가 뉴딜연합을 버린 이유는 민주당이 주도한 민권운동 특히 인종차별철폐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링컨의 당인 공화당은 남부에서 당연히 인기가 없었고 남부연합의 당이었던 민주당을 지지했다. 거기다 가난한 남부는 뉴딜정책의 가장 수혜자로서 당연히 뉴딜연합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전후 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들면서 “부의 재분배를 위한 정책은 더 이상 큰 이익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민권문제를 특히 인종차별을 겨냥했을 때 남부는 뉴딜연합에서 이탈한다.
물론 남부만 민권운동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1967년 닉슨은 오늘날 유명해진 논설 “미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를 발표한다. 이 글은 미국의 모든 혼란을 요약하고 진보주의자들의 관용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1960년대 한창 떠돌던 말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는 과거 강도를 만난 경험이 있는 진보주의자였다. 미국인들이 법과 질서가 무너진다고 생각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민권운동이 일어났을 때 범죄율은 높아졌고 도시는 인종폭동으로 불타올랐다. “백인 유권자들에게 범죄와 폭동은 미국사회의 붕괴를 잘 드러내는 또 다른 지표와 합해졌다. 그 지표는 늘어나는 복지 의존도였다.”
공화당 소수파인 보수주의 진영에 속했던 레이건은 복지여왕이란 과장을 섞어 “복지정책에 신물난 백인 유권자들”을 대변하면서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복지수혜자는 “1966년 10년전의 2배나 되엇고 1970년대 초 또다시 2배 증가햇다.”
미국인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히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반항도 문제엿다. “대항문화운동은 1964년경 일어났다. 바로 초기 베이붐세대가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한 해였다. 청년이 된 베이비 붐 세대들은 그 어마어마한 숫자만으로도 상투적인 구세대의 문화를 깨뜨리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기술적인 발전도 있었다. 피임약 발명으로 이전 어느 때보다도 성적인 시도가 활발해졌다. 젊은이들의 반항으로 많은 미국인, 특히 레이건은 두려워하고 분노햇다.
미국 중산층에게 1960년대으 급변하는 사회규범은 큰 불안감을 조성햇다. 한편 국민들은 강도를 당할까 두려워했다. 실제로 위험해진 도시에서 강도사건이 많아졌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이런 사회 기준에 동조하고 자극받아 낙오자가 될까 두려워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느는 추세였다.”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이 주류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불안감을 이용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원래 보수주의자들이 원한 것은 뉴딜의 무효화, 즉 장기 도금시대로의 회귀엿다. 범죄, 인종문제, 사회규범은 그들의 핵심의제가 아니엇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권력을 잡아야 했고 문화적 반발은 좋은 기회였다. “어떻게 문화적 반발을 이용해야 할지 깨우친 공화당은 이후 반발 대상을 히피와 범죄에서 낙태와 동성간의 결혼으로 바꾸고 보수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원래 보수주의는 공화당에서도 급진소수파에 불과햇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공화당을 장악한 것일까? 돈의 위력이었다.
“새로운 보수주의자라고 알려진 이들은 젊고 무모하며 언론을 잘 다루었다. 그들은 스스로 기존의 틀에 도전하는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다. 보수주의운동은 백인들의 반발과 공산주의에 대한 과대망상이라는 사람드르이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대중적인 기반을 다졌다. 기반을 다진 보수주의 운동은 1950년대에는 ‘새로운 보수주의’라는 보잘 것없는 정치적 주변세력에서 정치계가 신경써야 하는 막강한 세력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대중적 기반의 성장은 표를 모으는데 보탬이 되지 않았지만 돈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다른 종류의 기반을 다짐으로써 큰 도움을 받는다. 이는 바로 보수주의 운동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경제계엿다.”
복지국가의 부담은 실절적으로 거의 기업의 어깨에 떨어졌다. 유럽이나 일본에선 의료보험, 퇴직연금 등의 복지제도가 국가의 책임이었지만 미국에선 기업이 책임져야 했다. 지금과 달리 ‘외국기업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기업들은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화점 같은 중소기업 경영주 처지에서는 노조의 요구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기업들은 외국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작아서 노조가 신경 쓰지 않는 초소형 ㄱ5ㅣ업, 부부가 경영하는 영세상점 등과 경쟁해야 했다. 중소기업들은 노조의 커져만 가는 요구에 분개했고 심지어 위협적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반노조주의자들은 경제계에서 첫 번째로 보수주의 운동의 경고한 지지기반이 되어주엇다. 1960년대부터 노조를 경멸하던 경영주들은 재정적으로 보수주의 운동을 확실하게 후원해으며 그들의 이런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1970~80년대에는 경제계가 노조와 충돌하고 심지어 노조가 무너질 정도로 보수진영이 우세해져 임금 불균형과 정당 간 힘의 균형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보수주의 운동이 정치의 헤게모니를 잡은 것은 이 돈의 위력이었다. 기업의 후원은 정치에만 그치지 않고 지식인들에게도 뿌려졌다. “1970년대에는 보수주의 운동의 지식계층은 진보주의자들이 굼도 못 꿀 정도로 확고한 이념과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보수주의 지지기반에는 언론사들도 있었다.” 정치, 언론, 학계, 싱크탱크를 장악한 보수주의 운동은 “어떤 면에서 1920년대 말 결과적으로 뉴딜정책을 이끈 운동과 비슷한 입장에 처했다. 이념이 만들어졌고 조직도 갖추어졌고 지식인들의 기반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권력을 얻기 위해 보수주의 위기상황이 필요했다.” 그 위기는 베트남과 이란의 위기였고 70년대 세계경제를 흔들었던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1970년대의 어두운 분위기 덕분에 보수주의 운동은 진보주의 정책이 모든 문제의 주범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강력해진 보수주의 운동은 곧 뉴딜정책의 성과를 뒤엎을 기회를 얻는다.” 이후 우리가 아는 지금의 미국이 등장했다.
"레이건은 보수주의 운동진영에서 나온 최초의 대통령이다. 레이건 이후 공화당은 더 극단주의로 흘렀다." 저자는 텍사스 공화당 지부의 강령이 보수주의 운동의 진실한 성향을 잘 나타내준다고 말한다: "주류, 담배, 화기 단속국, 의무감직, 환경보호국, 에너지부, 주택도시개발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상무부, 노동부는 기본적으로 폐지하고 그 외의 연방정부기관도 폐지를 고려한다.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민영화하고 최저임금제를 폐지한다." 여기에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속제 폐지도 있다. "소득에서 상위 10%에 속하는 부유층이 상속세의 90%를 낸다."
공화당이 이 정도로 극단화 된 이유는 무엇인가? "충성스러운 정치인에게 상을 주고 이의를 제기하는 정치인에게 벌을 주는 소수집단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조직들이 존재한다. 이런 조직들은 순종적인 정치인이 선거에 이길 수 있도록 충분한 자금을 대고 선거에서 질 경우 피난처를 제공하며 은퇴 후에도 벌이가 괜찮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다. 또한 이런 조직들은 당의 노선을 따르는 정치인들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내주는 반면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공격했으며 보수주의 지식인과 운동가 집단을 든든히 뒷받침해주었다."
여기에 잡지와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타임스, 폭스 뉴스와 같은 매체도 장악했다. "마지막으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로비스트와 정치인들 간의 유착관계가 있다. 보수주의 싱크탱크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기업로비 그룹은 보수주의 운동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위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은 로비스트들까지 장악했고 "로비활동을 장악하게 되면서 공화당의 노선을 따르는 당원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 그것도 아주 보수가 좋은 자리가 많아졌기 때문에 공화당 안에서의 충성도는 더 높아졌다.
보수주의 운동과 연계된 조직들이 다양해짐으로써 공화당원들은 중도보다는 강성을 띠는 것이 훨씬 유리해졌다. 단지 선거에서 기부금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인 개개인의 재정이 달린 문제였다."
그 결과 "의회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공화당 중도파 의원들은 거의 다 레이건 대통령 이전에 처음으로 당선되었거나 아무리 늦어도 공화당 내에서 깅리치를 중심으로 한 극우파의 승리를 확정한 1994년 선거 이전에 당선된 의원들이다."
그러면 왜 보수연합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는가? 이들의 정책은 명백하게 소수만을 위한 것이고 대다수는 피해를 본다. 더군다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은 극우화되어 가고 있지만 국민들은 약간 좌경화되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계속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남부 백인들이 공화당을 뽑기 때문이라 말한다.
"남부지역일수록 흑인이 더 많을 수록 보수적이다. 인종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다는 결론을 부정하기 어렵다. 정말 알수 없는 것은 남부의 연방의원들이 공화당으로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다. 공화당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은 민주당이 남부 이외의 지역데서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남부에서 늘린 의원숫자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넘긴 의회의석의 순손실분보다 더 컸다. 부시는 남부 백인들의 표가 없었다면 투표용지를 이용한 부정선거로도 백악관 입성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권자들은 극우화된 공화당을 외면했고 점차 민주당으로 표심이 옮겨갔다. 그렇지만 공화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리고 결국 의회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공화당이 남부에서 이기기 위해 인종문제를 교묘히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것의 성공비결의 전부다."
물론 보수연합에 남부만 있을리는 없다. 보수주의 운동이 가치문제를 갖고 놀 수 있게 된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그 연합에 들어갔고 공화당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박빙의 승부일 때 캐스팅 보트를 휘두를 수 있다는 것 이상은 아니며 결정적인 것은 남부의 표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2006년 중간선거(그리고 이책이 나온 후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것을 보수주의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는 징조라 말한다.
"인구통계 변화를 분선한 결과 민주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추세가 변하고 있다. 오랫동안 보수주의 운동의 성공에 필수적이었던 백인들의 반발심을 이용한 정치는 두가지 이유로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으ㅢ 백인들이 줄어들고 있고 백인들 중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작 많이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백인이란 비라틴계 백인을 말한다. 1980년 6.4%에서 2000년 12.55로 급증한 라틴계 인구는 미국의 인종구성을 변화시킨 가장 큰 원인이다. 보수주의 운동은 흑인을 싫어하는 백인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성공할 수있었다. 그러나 이민자들에게도 적대적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흑인에게 적대적이기는 어렵다. 그리고 급증하는 이민자들이 점점 정치세력화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보수주의 운동의 일등공신이었던 인종문제는 점점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보수주의 운동이 확산될 수 잇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과거 노예제도로 인해 인종 간의 긴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긴장이 해소되거나 정확히 말해 공화당이 이를 이용하려 할 때 더 큰 정치적 희생을 치르게 한다면 미국은 복지정책과 소득불균형 완화 정책이 좀더 강한 다른 서방국가들과 점도 비슷해질 것이다."
dhoh78 미국 사회에 대한 진단이지만 왠지 우리의 이야기 같은.. ㅣ 2011-08-25
현재 미국사회의 소득 불균형 상태를 뉴딜정책이 시행되었던 대압착의 시대로 돌려서 중산층 중심의 사회를 만들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미국의 복지수준을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 올릴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들은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빨갱이의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가능하며 대다수의 국민의 행복을 위한 이상적인 방안이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미국은 민주당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며, 민주당이 의회에서도 다수를 확보하며 개혁의 닻을 올리는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개혁의 동력이 잠시 주춤한듯 하지만 오바마와 민주당이 어떤 모습으로 이 상황을 돌파할지 기대해봐야겠다.
미국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을 보는 내내 이상하게도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소득 불균형으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가속화 되는 사회, 재벌과 부자들에게는 감세를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만들어주는 정부와 대통령, 뉴라이트 등 신보수주의로 자칭하며 수구 꼴통의 짓거리를 일삼는 한심한 수구세력, 모든 것이 우리의 얘기인 거 같았다. 한나라당은 미국의 공화당보다 능력도 없는데 이런 자들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서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는 경직되었다. 이러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진보주의자들의 목소리에 서민들이 귀를 기울여야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제 오세훈 시장이 무모한 도전에 서울시민은 그만하라고 중지의 심판을 내렸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천안함 사건도 날조처럼 드러나고 있는데 하는 짓이 어쩜 그리 부시 행정부를 닮은것인지 이명박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이 많이 생겨야하며 국민들의 생각도 변해야한다. 중산층이 잘사는 나라, 그리고 모두가 평등하고 똑같이 사람 대접 받는 사회, 마지막에 저자가 말하듯이 진보주의자가 꿈꾸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민주주의가 올바로 실현되는 대한민국, 나도 그것을 꿈꾼다. 그렇기에 나도 진보주의자인것인가?
최저임금이 많아? 불로소득자 '빨대'부터 제거해야
저소득 노동자 등골 빨아먹는 고소득자가 너무 많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3139만 원에서 연 노동시간 2069시간을 나누면, 시간당 1만5169원이다. 최저임금이 이 금액까지 올라도 국민경제에는 큰 문제가 없다. 2017년 한국의 1인당 GDP는 29,891달러. 1달러를 1050원으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3139만 원이다.
OECD 회원 35개국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1764시간이다. 하루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OECD 평균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은 1년에 220일 일했고, 한국 노동자들은 259일을 일했다. 한국 노동자들이 한 달하고도 10일을 더 일한 셈이다.
최저임금이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올라 나라 경제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떨지만, 국제 비교 관점에서 볼 때 1인당 GDP가 연 3139만 원에 달하는 나라에서 노동자 최저 임금을 연 2100만 원 정도로 올렸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고소득자와 불로소득자의 '빨대' 제거해야
부수적으로 따라올 세금과 사회보험료 인상을 감안하더라도 1인당 최저 소득은 2500만 원 안팎에 머물러, 우리나라 국민경제 차원에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대신 시급한 과제는 하위 소득의 수준이 상승하는데 비례하여 상위 소득을 어떻게 하락시킬 것인가에 있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쌓아야 한다.
평일 아침, 베트남 출장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글을 쓰는 와중에도 삼삼오오 골프채를 들고 출국하는 이들로 공항이 북적인다. 1인당 GDP의 7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최저임금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나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소득 노동자 등골을 빨아먹는 고소득자와 불로소득자가 너무 많다.
지금 대한민국은 저소득자의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서가 아니라, 고소득자와 불로소득자가 보유한 사회적 부가 국민경제 안으로 선순환되지 않아서 문제다.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과 불로소득으로 몰리는 재원을 조세와 사회 정책으로 저소득층에게 돌릴 수 있다면, 국민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최저임금을 1만5000원으로 올릴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 저소득층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바로 국내 소비로 이어져 내수를 활성화시킨다.
'압착'이 필요하다
▲ <미래를 말하다>(폴 크루그먼 지음, 박태일·유병규·예상한·한상완 옮김, 현대경제원BOOKS 펴냄). ⓒ현대경제원BOOKS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자유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한국판은 2008년 <미래를 말하다>(박태일·유병규·예상한·한상완 옮김, 현대경제원BOOKS 펴냄)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에서 미국 경제가 황금기를 누렸던 1940년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의 30년을 이르러 '대압착(the Great Compression)'의 시대라 불렀다.
크루그만은 저소득층의 수입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소득층의 수입을 찍어 내렸다는 의미로 '압착(compress)'이라는 표현을 썼다. CEO와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봉은 2000년대 들어와 400배 차이가 나지만, '황금기'에는 그 차이가 40배를 밑돌았다.
기업 이익에 대한 연방정부의 세금이 1929년에는 14%도 안 됐지만, 1955년에는 45%까지 올랐다. 상속세의 상한률은 20%에서 45%로, 그리고 60%, 70%, 결국 77%까지 올랐다. 그래서 미국 경제가 망했을까. 크루그먼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1920년대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이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미미한 세율로) 부자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 하지만 뉴딜 정책은 실제로 그들의 소득을 상당 부분, 어쩌면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거둬갔다. 상류층이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배신자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임금' 확대해야
IMF 경제위기 이후 유행했던 신자유주의, 즉 고소득층의 소득을 보장해주면 저절로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나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데올로기는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국제 비교는 고소득층과 기업에 대한 중과세와 불로소득 차단으로 마련한 재원을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보장 확대를 통해 저소득층에게 돌렸을 때 국민경제(national economy)가 선순환 사이클에 올랐음을 증명한다.
1인당 GDP가 3100만 원이 넘는 나라에서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인상됐다는 최저임금 수준이 2100만 원에 미달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는 없다. 사회임금(social wage) 확대, 즉 사회복지 강화를 위해서는 고소득층에 대한 중과세와 불로소득 환수가 필수적이다.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가 사회적으로 보장된다면, 기업이나 사업자가 지급하는 직접 임금에 대한 노동자의 의존도는 낮아질 것이다.
윗돌 빼내 아랫돌 쌓아야
"만약 빌 게이츠가 어떤 술집에 들어가면 그 술집 고객의 평균 재산은 급상승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술집에 이미 앉아 있던 고객들이 실제로 더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고 크루그먼은 말했다.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빌 게이츠'의 주머니에 차고 넘치는 사회적 부를 거둬들여 노동자와 서민에게 나눠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재벌을 비롯한 기업과 고소득층이 국민경제에 빨대를 꽂아 누리는 사회적 부를 산업정책과 조세제도, 사회정책을 통해 저소득층에 돌려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1인당 GDP가 3100만 원에 달하는 나라에서 최저임금 2100만 원은 그다지 문제 될 게 없다. 오히려 기업과 부자들의 주머니에 켜켜이 쌓인 사회적 부(富)를 어떻게 하면 아래로 향하게 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 19세기 프랑스 작가 오노레 도미에의 가르강 튀아(Gargantua) 판화, 1831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Sealed With A Kiss - Bobby Vinton(1972)
'세상과 어울리기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워싱턴 룰 (0) | 2018.08.25 |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0) | 2018.08.06 |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0) | 2018.06.17 |
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재특회 (0) | 2018.06.04 |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 (0) | 2018.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