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룰>(앤드루 바세비치 지음, 박인규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3). ⓒ오월의봄
원제 Washington Rules
저자 앤드루 바세비치 ANDREW J. BACEVICH는 1947년 미국 일리노이 주 출생. 1969년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뒤 23년간 미 육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예편 후 프린스턴 대학에서 미국 외교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8년부터 보스턴 대학에서 미국 외교사와 대외 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가톨릭 보수파’를 자처하는 바세비치는 2000년대 초까지만 네오콘과 비슷한 입장이었으나 2001년 9·11사태 이후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겪으며 미 안보 정책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이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의 원인을 부시나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같은 네오콘 세력으로 지목하였으나, 바세비치는 미국의 시스템 자체가 원인이라고 진단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미국의 안보 정책이 19세기 말 이후 줄곧 전 세계에서 미국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정책 목표에 따라 추진되었음을 폭로하기도 하고 현재 미국이 모든 문제를 군사적으로 풀려고 하는 군사주의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파헤치며 미국 안보 정책 비판가로서 대중적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저작으로는 《미국 제국: 미국 외교의 실상과 결과AMERICAN EMPIRE: THE REALITIES & CONSEQUENCES OF U.S. DIPLOMACY》(2002), 《미국의 새로운 군사주의: 미국은 어떻게 전쟁에 유혹됐나THE NEW AMERICAN MILITARISM: HOW AMERICANS ARE SEDUCED BY WAR》(2005), 《힘의 한계: 미국 예외주의의 종말THE LIMITS OF POWER: THE END OF AMERICAN EXCEPTIONALISM》(2008)가 있으며 《힘의 한계》는 2007년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그의 외아들에게 헌정되었다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는 말
1장 CIA와 SAC, 준전쟁의 전사들
대통령을 움직이는 세력들|제국의 건설자들|앨런 덜레스: 위대한 백인
담당관|커티스 르메이: 우리는 지금 전쟁 중|새로운 안보국가의 음과 양
2장 냉전 용사들의 환상
케네디, 워싱턴 룰을 더 강화하다|누가 통제권을 갖는가|냉전 용사들의 치
욕|낭떠러지를 향해|베트남과 케네디의 죽음|베트남전쟁은 왜 일어났나
3장 되살아난 신조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명예로운 평화|베트남을 망각하다|올브라이트
의 등장과 퇴장
4장 성 삼위일체가 재편성되다
미군의 세계 주둔은 더 확대됐다|전쟁의 재발명|속도는 최고의 무기|수
렁에 빠진 이라크 원정
5장 여전히 전쟁은 계속됐다
부시도 오바마도 똑같은 공범일 뿐|워싱턴 룰의 궤도 수정|퍼트레이어스
의 전쟁 교훈|증강, 질문을 지워버리다|반란진압작전 세력의 어젠다|오
바마의 아프가니스탄전쟁|오바마의 현상유지 결정
6장 워싱턴 룰, 누가 이익을 보는가
워싱턴 룰, 이익 보는 세력들|돌아오라 조국으로|새로운 성 삼위일체|대
중의 책임도 있다|선택을 해야 할 시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미주
책속으로
오늘날 미국인들은 한반도에서 전투가 중단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나먼 동북아시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 미국 국민은 미군이 일본과 몇몇 서유럽 국가들에 한국보다 더 오랜 기간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미군 병사를 해외에 보내는 것은 미국 영화를 수출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그저 미국이 하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p.6「한국어판 서문」
취임 직후 즉각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주요 보좌관들은 이 컨센서스와 여기에서 도출된 네 가지 주장에 충성을 맹세했다. 해리 트루먼 이래 모든 대통령이 이 주장들에 충성을 맹세해왔으며 오바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첫째, 누군가 세계를 조직해야만(또는 형성해야만) 한다. (…) 둘째, 오직 미국만이 세계 질서를 처방하고 집행할 능력이 있다. (…) 셋째, 미국에게 주어진 임무 중에는 국제 질서를 규정할 원칙들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그 원칙들은 당연히 미국적 원칙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들은 보편적 타당성을 지닌다. (…)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의) 극소수 깡패국가들이나 불평꾼 국가들을 빼놓고는 모든 국가들이 이와 같은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p.38
해리 트루먼이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는 것은 가장 명목적인 의미에서만 그럴 뿐이다. 1945년 여름쯤이 되면 원자폭탄을 사용해야 한다는 모멘텀이 너무도 강력해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1961년 존 F. 케네디의 (쿠바의 카스트로 제거를 위한) 피그만 침공 결정, 1965년 린든 존슨의 미 지상군 베트남 파병 결정, 그리고 심지어 2003년 조지 W. 부시의 이라크전쟁 결정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경우에서 대통령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이미 결정해놓은 것을 추인했을 뿐이다.--- p.52
어떤 사건이 미국의 평화 추구 노력을 방해했을 때, 예를 들어 1962년의 미사일 위기, 1979년 이란 샤(국왕)의 축출,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 9ㆍ11테러 공격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워싱턴의 권력자들은 언제나 이러한 사건들을 난데없는 것으로, 아무런 역사적 맥락도 없이 발생한 것으로 묘사한다. 미국은 피해자 아니면 죄 없는 방관자이며, 미국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들은 지금 문제가 되는 사건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p.122
9ㆍ11 이후 미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펼 수 있을 것이다. 문구용 칼로 무장한 19명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미 본토에 대해 1812년 이래 가장 치명적이 타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공항의 보안이 허술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면 미국은 공항의 보안 강화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테러가 발생한 지 24시간도 채 되기 전에 이라크 침공을 외치고 나섰다. 이라크는 9ㆍ11테러와는 전혀 무관한 나라인데도 말이다.--- p.140
동남아시아의 촌구석,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그곳의 운명에 워싱턴 룰의 존폐가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1965년이 될 때까지 베트남에서 미국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었다는 것은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의 근간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워싱턴의 시각에서 봤을 때, 미국의 신뢰도가 의문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 기존 전략을 유지함으로써 온갖 특권을 누려왔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가능성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베트남전쟁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전쟁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진 전쟁이었다고.--- p.148
한마디로 베트남전쟁의 실패는 워싱턴 룰을 누더기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사이공이 함락된 지 5년이 채 안 돼 워싱턴 룰이 원상복구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또 그로부터 10년 안에 미국의 신조와 성 삼위일체가 완벽하게 복구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할 만하다. 이제 되돌아보건대 베트남의 유산과 관련해 놀라운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변한 것이 없느냐에 있다. 그토록 치열하게 기억됐던 전쟁이 그토록 철저하게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한 경우는 별로 없다.--- p.176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은 전체주의에 대한 미국의 저항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세계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 열심히 싸운 보답으로 내일은 덜 열심히 싸워도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1년 로널드 레이건이 말한 ‘악의 제국 Evil Empire’이 해체됐음에도 워싱턴에서는 방심하면 위험하다는 경고만이 계속 흘러나왔다. (…) 실제로 워싱턴 룰의 옹호자들은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새로운, 이전보다 더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가속되는 세계에서 위험은 도처에 있었다. 빨갱이들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인류가 나아갈 길을 비추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이 필요했다.--- p.190
냉전 초기에 형성된 워싱턴 룰은 처음에는 봉쇄 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워싱턴의 공식 목표는 도미노 효과를 방지하는 것, 즉 한 나라가 공산화됨으로써 다른 나라들의 연쇄적 공산화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9ㆍ11이후 새롭게 개정된 워싱턴 룰은 미국식 도미노 효과를 촉진하겠다는 것, 즉 이슬람 세계의 한두 개 나라를 강제로 ‘해방’시킴으로써 대중동 지역 전체에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p.226
현대의 미국 대통령들이 반드시 짊어져야 할 비공식 의무 가운데 하나는 미국 국민들에게 “우리는 왜 싸워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시는 전임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이데올로기적 용어들을 동원했다. 그는 틈만 나면, 2001년 9월 11일 시작된 세계적 투쟁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미국의 오랜 약속을 오늘에 계속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p.255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해 오슬로로 떠나기 며칠 전,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 3만 명의 추가 병력을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 이렇게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을 강화함으로써 오바마는 사실상 긴 전쟁을 추인하는 셈이 됐다. 이와 함께 이제 ‘오바마의 전쟁’은 오바마 행정부를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 될 것임이 분명해졌다. ‘퇴로’, ‘탈출구’등이 논의됐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지난 60여 년간 형성돼온 미 국가안보 정책의 기본적 접근 방식을 진지하게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오바마가 사실상 포기했다는 것이다.--- p.294
워싱턴 룰의 영속화로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 워싱턴 룰은 다음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윤과 권력과 특권을 제공한다. 그들은 누구일까? 선출직 또는 임명직 관리들, 기업 간부와 기업을 위한 로비스트들, 군 장교들, 여러 국가안보기구의 요원들, 언론인들, 대학과 연구기관의 정책전문가들이 그들이다. 매년 펜타곤은 미국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의 돈을 쓴다. 이 돈이 미국 정치의 윤활유가 된다. 각 당의 정치자금을 채워주고 유권자들에게 일자리와 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퇴역 미군 장교들이 무기회사나 자문회사에 고용돼 크게 이윤이 남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자금줄이 된다. 싱크탱크들로 하여금 기존 관행에 대한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정책들을 끊임없이 옹호하도록 하는 데 사용된다. 이제 ‘군산복합체’란 말로는 국가안보의 현상 유지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수많은 집단들을 다 표현할 수 없다.--- p.305
미국의 목표는 가장 미국다운 미국이 되는 것이다. 이는 독립선언서와 헌법에 표현돼 있으며, 이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온갖 어려운 경험을 하며 재해석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인류를 구원한다든가, 특정한 세계 질서를 구현한다든가 또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세계의 경찰관이 된다는 것 등은 미국 국가경영의 적절한 목표가 될 수 없다. 미국의 목표는 미국 국민들이 국내에서 “더 완벽한 연방”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결정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을 방해하는 어떤 정책도 잘못된 것이며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p.317
한마디로 말해, 미국에게 구원이라는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구원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킹 목사가 제시한 악의 목록은 약간 수정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속죄해야 할 악은 셋이 넘는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치유되어야 한다는 ? “돌아오라 조국으로, 미국으로!” ? 그의 주장으로 볼 때 킹 목사는 여전히 미국인이 따라야 할 예언자라 하겠다.--- p.318
오늘날 미국이 직업군인과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계약자들에게 의존하는 이유는 그것이 적정한 비용에 원하는 정책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본다면 이 조합은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9ㆍ11이후의 성적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단지 워싱턴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야망을 충족시켜주면서 동시에 미국 국민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만 이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325
어린이 50만 명의 목숨 값은 얼마일까?
[인문견문록] 앤드루 바세비치 <워싱턴 룰>
원래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대한 서평을 쓰려했다. 그런데 칸트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현재 대부분의 전쟁은 미국과 연결되어 있는데 미국을 이야기하지 않고 평화론을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의 대외정책을 말하지 않고 평화론을 설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일 듯하다. 다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책들을 살펴본다. 미국의 대외정책 관련 책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책 하나를 집었다. 앤드루 바세비치의 <워싱턴 룰>(박인규 옮김, 오월의봄 펴냄)이다.
<워싱턴 룰>의 저자인 앤드루 바세비치(Andrew J Bacevich)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보통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책상물림 강단좌파가 많은 편이다. 바세비치는 이들과 다르게 미국 군인의 엘리트코스인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오랫동안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1970년대 초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독일에서 근무했다. 가톨릭 보수파로서 철두철미 미국주의자였던 그는 부시의 이라크침공을 계기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선다. 가톨릭 보수파이자 군 장교 출신이라는 경력은 그의 책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준다. 유명세로만 따진다면, 1차 걸프전 참전 군인에서 평화운동가로 변신한 켄 오키프(Ken O'Keefe)도 만만치 않지만 바세비치 같은 고위급 장교 출신은 아니다.
바세비치는 이 책을 무슨 의도로 쓴 것일까?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워싱턴 룰>을 쓴 가장 큰 목적은 미국 국민에게 미국 국가안보 정책의 진정한 핵심을 규정하는 행동 방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세계에 대한 개입주의, 이를 작동시키기 위한 세계적 힘의 투사, 그리고 이를 위한 미 군사력의 세계적 배치라는 이 행동방식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생겨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바세비치가 <워싱턴 룰>을 쓴 목적은 군사적 개입주의에 중독된 미국의 대외적 행동양식을 해부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정부의 행동을 분석하기에 앞서 미국인의 심리적 집단의식을 헤집는다. 그는 미국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해 있는 두 가지 요소를 거론한다. 하나는 "미국만이 세계를 이끌고, 구원하며, 해방하고 궁극적으로 변형시킬 임무와 특권을 갖는다"는 미국의 신조(American Credo)다. 다른 하나는 성삼위일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미군사력의 세계적 주둔, 군사력에 의한 세계적 힘의 투사, 세계적 개입주의가 그것이다.
미국적 신조와 성 삼위일체(Holy Trinity), 이 두 가지를 바세비치는 '워싱턴 룰'이라고 부른다. 미국적 신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력, 즉 성 삼위일체가 필요하고 성 삼위일체의 막대한 비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신조가 필요하다. 이 두 요소는 맞물리면서 서로를 강화한다. '워싱턴 룰'의 또 다른 의미는 정보부서와 국방부서가 전쟁위기를 선동하면 정부는 무기생산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방산업체에 퍼붓는 것을 말한다.
'워싱턴 룰'의 워싱턴은 지리적 워싱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워싱턴 룰'의 워싱턴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국가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는 조직과 인물에 대한 총칭이다. 바세비치는 워싱턴의 범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물론 정보파트와 국방부는 당연히 포함된다. "워싱턴의 범위는 거대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 방위산업체와 대기업, TV방송국과 뉴욕타임스 같은 고급신문들, 나아가 대외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나 하버드 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 같은 준학술조직을 포괄한다."
워싱턴이 의미하는 바가 너무 광범위해서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나 CNN 같은 주류언론이 전쟁시스템의 일부라니? 너무 나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노암 촘스키까지도 진보성을 인정한 신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을 국제면으로 흡수한 언론인데 워싱턴의 일부라니? 아니 cnn은 이라크전쟁 전 후세인을 인터뷰해서 보수파로부터 적과 내통한다는 비판까지 받은 미디어인데 워싱턴일 수가 있을까? 바세비치는 미국의 주류언론과 학술기관조차도 전쟁에 복무하는 기관이라고 말한다. 이런 전쟁 친화적 시스템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미국이 영구 전쟁국가로 변모하는 데에는 앨런 덜레스(Allen Dulles)의 중앙정보국 CIA와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의 전략공군사령부 SAC의 역할이 지대했다.
덜레스는 1953년부터 1961년까지 CIA 국장으로 근무했다. 그의 지휘하에 CIA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모사데그 정부를 전복시키고 샤를 국왕에 옹립한다. 또한 과테말라의 좌파출신 대통령 야코보 아르벤즈 구스만을 군부 쿠데타를 조종해 축출한다. 이때부터 덜레스는 전 세계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안에 CIA 조직을 심어두었다. 미국 정부가 나서기 곤란한 일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행하는 조직이 CIA였다. 제3세계에서 발생한 수많은 쿠데타의 배후에는 CIA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르메이는 1947년부터 1957년까지 전략공군사령부를 지휘했다. 2차대전에서 공군사령관을 역임한 르메이는 도쿄 대공습과 원폭 공격을 지휘했다. 전쟁이 끝나고 전략공군사령부를 맡았지만 변변한 수준의 무기도 없었던 기관을 1950년대 초반에 55개 기지와 20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는 곳으로 변모시켰다. 르메이의 목표는 소련의 확증파괴였다. 1957년 공격 목표는 무려 3200개나 되었다. 목표 대상을 극대화시킨 후 무제한적인 예산을 배정받았다.
엄청난 국가 예산은 소련으로부터의 방위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들의 전쟁위기 선동에 정부는 끌려다녔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막대한 예산을 배정하는 것뿐이었다. 전쟁수립계획조차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아니라 전략공군사령부의 권한이 되었다.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들은 전 세계의 인지 가능한 모든 공격 목표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군사력과 그 전력의 세배에 해당되는 예비군사력까지 확보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아이젠하워 정권의 말기가 되면, '워싱턴 룰'은 미국 정부 내외부에서 확고하게 뿌리내린다. 중앙정보국과 전략공군사령부가 확립한 관행들이 신성불가침의 원칙이 되었다. 이후 아이젠하워는 군산복합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그 유명한 고별 연설을 하며 물러난다. 아이젠하워는 군산복합체의 부상을 경고했지만, 막상 그의 재임 시 군산복합체의 군수경제의 덕을 보았다. 군수경제로 미국 경제는 호황이었다. 소련의 위협을 선동하고 지금보다 더 많고, 더 좋은 무기가 필요하다는 군산복합체의 선동에 미국 정부는 그대로 따랐다. 전투기, 탱크를 생산하는 방산업체들이 번성하고 노동자는 이들 기업에서 일하게 된다. 실업률은 낮았고 인플레이션도 안정적으로 관리되었다. 아이젠하워 재임 시 국방예산은 미국 정부 지출의 50%를 넘었다. 비록 고별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위험성을 지적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재임 시의 호황은 군산복합체 덕분이기도 했다.
군산복합체에 휘둘렸던, 그러나 나중에는 후회한 아이젠하워가 물러났으니 좀 변화가 있어야만 했다. 패기만만했던 후임 케네디는 달랐을까? 젊은 나이라는 대중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케네디는 취임 이후 덜레스를 유임시키고 르메이는 참모차장에서 참모총장으로 진급시켰다. 또한 케네디 정부에서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중앙정보국과 전략공군사령부에 밀리기만 하던 육군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앞선 두 정부에서는 육군의 역할이 미미했다. 이런 사실은 예산상으로도 확인된다. 1958년 방위예산 중 육군의 몫은 23%에 불과했다. 육군에게는 핵전쟁에 대비한 인계철선의 역할만 주어져 있었다. 드디어 육군은 '유연반응(flexible response)'라는 신개념 전략을 들고 나왔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맥스웰 테일러(Maxwell Taylor)는 예편 후, <불확실한 트럼펫(The Uncertain Trumpet)>(국내 미출판)이란 책을 출판한다. 그는 이 책에서 핵무기에 의존해 전쟁을 피하려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한다. 그는 아이젠하워 시기 확립된 핵무기에 의한 대량 보복전략은 전면적 핵전쟁이나 타협 두 가지 대안만을 제공하기에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능한 모든 범위의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즉, 지상전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을 통해 육군은 다시 자신의 지분을 챙길 수 있었다. 군산복합체에 끌려다니던 케네디는 아이젠하워가 제한한 방위비 지출의 상한선을 풀었고, 소련과의 '미사일 갭'이라는 가공의 프레임을 맹종해 지상 발사 대륙간탄도탄의 생산에 매달렸다. 국가방위에 대한 케네디의 강박은 이후 쿠바 침공으로 나타난다.
책의 후반은 전반에 기술된 내용의 연속이다. 국내에서는 진보적 정책을 폈던 린든 존슨이지만 무리하게 베트남전쟁을 확대한다. 미국의 베트남 참전이 대대적인 반전운동을 불러오면서 '워싱턴 룰'도 일시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반격을 통해 금방 권력으로 돌아온다. 이들에 의해 베트남전쟁은 전쟁을 선호하는 미국의 체질 탓이 아니라 단순한 실수로 정리된다. 클린턴 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울브라이트는 '미국의 신조'의 완벽한 부활을 의미했다. 미국이 주도한 제재의 결과 이라크 어린이 50만 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변한다. "어려운 선택이었죠. 그러나 나는 아니 우리는 그런 정도의 희생을 치를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50만 명의 목숨 값과 맞먹는 가치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대다수 분석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제재와 침공은 석유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고 말한다. 석유는 어린이들의 목숨 값이었던 것이다. '워싱턴 룰'은 뒤에 오는 부시 정부에서 더욱 확대되고 심화된다.
바세비치는 '워싱턴 룰'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에 대해 이렇게 나열한다. "가족 일원의 전사로 인한 상실감, 전투에서 물리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참전용사들의 고통, 비밀과 은폐와 뻔뻔한 거짓 속에 운영되는 거대한 관료기구의 존속, 군산복합체가 희소한 국가자원을 몽땅 빨아들이면서 일어나는 국가적 우선과제의 왜곡, 전쟁과 전쟁준비의 부산물로 일어나는 환경파괴, 극소수 병사들이 영구전쟁의 부담을 지는 한편 대다수 시민들은 이들을 존경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이들의 희생을 무시하거나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는데 따른 뼈대만 남은 시민문화 등등." 도대체 이런 희생을 하면서 왜 전쟁을 치르려는 것일까? 바세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워싱턴이 이 신조와 성 삼위일체에 집착하는 것은 이것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관성으로 포장된 편협한 자기 이익 때문이다." 즉, 누군가에게는 남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바세비치가 말하는 누군가의 목록은 이렇다. "선출직 또는 임명직 관리들, 기업간부와 기업을 위한 로비스트들, 군 장교들, 여러 국가안보기구의 요원들, 언론인들, 대학과 연구기관의 정책전문가들이 그들이다. 매년 펜타곤은 미국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의 돈을 쓴다. 이 돈이 미국 정치의 윤활유가 된다. 각 당의 정치자금을 채워주고 유권자들에게 일자리와 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퇴역 미군장교들이 무기회사나 자문회사에 고용돼 크게 이윤이 남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자금줄이 된다."
토크빌이 격찬하던 민주주의 국가가 어쩌다 이런 나라가 되었는지 답답하다. 그런데 더욱 답답해지는 것은 미국의 이런 '워싱턴 룰'에 제대로 맞선 정치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거의 없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 윌리엄 풀브라이트(William Fulbright)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쟁으로 들끓던 당시에 베트남전쟁 참전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는 끊임없이 외국에 개입해야 한다는 미국의 믿음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숙고했다. 그는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처리하는 것은 미국의 의무도 아니며 권리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그는 미국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몇몇 사람들이 워싱턴 룰에 의문을 표시했지만 풀브라이트처럼 비중 있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리비아, 시리아에 개입해 중동을 지옥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책은 깊은 내공으로 써내려간 전쟁국가에 대한 보고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아무리 기득권세력들이 '워싱턴 룰'로 똘똘 뭉쳐 있다고 해도 어째서 불합리한 신조를 맹종하는 세력이 강고하게 유지되는 것일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쓴 전비만 최저 3조 달러에서 최대 7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의 노숙자는 한국인이 상상도 하지 못할 수준이다. 다음은 2011년 12월 21일 자 <엘에이(LA) 중앙일보>에 나온 기사다. 현재도 별반 나아진 것은 없다.
"미국에서 보호 시설, 차량, 버려진 건물, 공원 등에 사는 노숙 어린이가 지난해 160만 명에 달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립노숙가정센터가 19일 발표한 '어린이 노숙 문제 해결을 위한 대국민 행동 촉구'에 따르면 2007년 이래 계속된 경기불황으로 청소년 노숙 인구는 28% 급증해 작년 어린이 45명 중 1명에 달했다. 이 같은 추세는 미국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몇몇 주의 상황은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숙 어린이 절반이 6개 주에 살고 있으며 특히 미국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인 조지아 앨라배마 캘리포니아에 몰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집 없는 어린이의 42%는 6세 미만이며 3분의 1은 만성질환이 있는 홀어머니와 살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어린이 160만 명을 노숙으로 몰아놓고도 전쟁을 할 수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바세비치는 미국 대중들에게 만연한 '시민정신의 부재'를 한 가지 원인으로 말한다. 그는 "미국인들은 집단적 책임보다는 개인적 선택을, 장기적 웰빙보다는 즉각적인 욕망의 충족을 더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1973년부터 실시된 모병제는 일반 시민과 워싱턴 양자를 모두 만족시킨다. 시민들은 자율이라 믿고 워싱턴은 제국적 야망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징병제가 아니기에 베트남전쟁 같은 징병거부는 발생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군복무에서 벗어났고 이를 '자유'라고 착각한다.
바세비치의 장점은 미국의 전쟁을 몇몇 부도덕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라크전쟁이 발생하자 많은 지식인들이 부시와 네오콘을 비판했다. 그들은 부시와 네오콘의 무리수와 일탈이라는 관점으로 전쟁을 바라보았다. 바세비치는 이라크 침공 같은 미국의 정책을 미국에 내재한 논리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해한다. 부시 한 사람, 네오콘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좋은 국가 미국을 특정한 세력이 납치했다는 것이다. 군수산업체, 첩보계, 학술기관, 언론이 각자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미국을 영구 전쟁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세비치의 정당한 논변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허전하다.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도대체 왜 발생한 것일까? 수정주의 이론에서처럼 후진국이 시장과 자원공급처로 중요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다른 요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이클 헌트(Michael Hunt)는 미국 대외정책에 있어서 문화의 문제를 제기한 학자였다. 역사연구자 김정배의 논문 '미국의 제3세계정책'의 일부분을 인용해본다. "헌트에 의하면 인종주의, 반혁명, 자유제국 건설이라는 미국 이데올로기는 미국의 역사와 함께 형성되고 발전되었으며 그것이 미국인의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을 지탱해주는 세계관이며 미국이 세계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정당화했다." 즉, 헌트는 미국에 내재하는 심리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제3세계의 급진주의를 분쇄하는 핵심적 요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헌트가 말하는 심리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사실이라고 해도 이 신념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삼아 행동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결국 바세비치가 말하는 군산복합체 즉 워싱턴이 아닌가? 헌트의 설명은 행동적 층위에서의 설명이기는 해도 좀 더 심층적 근원적 층위에서의 설명이 되진 못한다.
이런 식의 설명은 제국주의를 전쟁을 좋아하는 전(前) 자본주의적 사회계급들이 자본주의사회에서도 살아남아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슘페터의 견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슘페터는 "사회가 순수한 자본주의가 되면 제국주의적 충동을 일으킬만한 토양은 사라진다"고 까지 말했다. 위대한 경제학자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공회 경상대 교수는 논문 '데이비드 하비의 제국주의론 비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론적 분석을 결여한 채 노골적인 침략행위 자체만을 두고 '제국주의적'이라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옹호 이데올로기, 또는 자본주의 순치 가능성을 인정하는 카우츠키식의 개량주의와 논리적으로 쉽게 맞닿을 수 있다."
김공회 교수의 지적은 미국의 '행태'에만 초점을 맞추면, 폭력적 미국이란 '본질'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쁜 행태는 좋은 정부와 좋은 시민에 의해 교정될 가능성이 남겨져 있다. 김공회 교수의 관점을 따른다면 바세비치도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김 교수의 논리를 따르면 '폭력'은 미국의 일탈적 요소가 아니라 미국의 본질을 구성한다. 그런데 그의 논문을 몇 편 들여다보아도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찾기 힘들었다. 김 교수에게는 너무 자명해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 룰'만으로는 왜 미국이 워싱턴에 포획되어 움직이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백>(이원태 옮김, 삼인 펴냄), 윌리엄 엥달의 <전방위지배>(유지훈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와 촘스키의 저서, '글로벌리서치'의 칼럼에서도 미국이 왜 나쁜 행동을 반복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자본주의 내적 논리 자체가 제국주의를 초래한다는 월러스틴의 주장은 상황을 과도하게 일반화하기에 충분한 답변이 되기는 어렵다.
워싱턴을 설명하기 위해 로자 룩셈부르크, 힐퍼딩, 홉슨 등을 끌어들이는 것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다. 자본주의가 만성적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비자본주의 지역으로 확장해 출구를 찾는다는 로자, 군사주의와 결합해 국경을 넘어가는 금융자본을 설하는 힐퍼딩, 과잉생산, 과잉자본을 없애기 위해 국내의 공공소비, 민간소비를 증진시키자는 홉슨 등의 주장을 21세기 미국의 행태와 연결시키기는 무리인 듯하다.
영국 트로츠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영구 군비경제론을 주장했다. 군비증강이 경제 전반의 이윤율 저하 경향을 지연시킨다는 이론이다. 1920년대 말 소련에서 전시경제체제가 등장하자 뒤이어 일본, 이태리, 독일, 영국도 뒤따라간다. 미국도 2차 대전이 발생하자, 곧 전시경제체제로 전환한다. 전시경제체제는 경기부양이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과학 연구자 최일붕의 글 '국제 사회주의경향의 기원'에 나온 내용을 인용해 본다. "이 군비 증강 드라이브가 경제 부양 효과를 낸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났다. 그래서 1944년 1월 GE(제너럴 일렉트릭) 사의 찰스 윌슨은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상시전쟁경제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말한 '의도되지 않은 역사적 결과'였던 것이다."
중국 국방대학교 교수이자 군사전략가 차오량의 설명이다. 차오량은 미국이 영구 전시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차오량은 전쟁의 동기는 '달러 지키기'라고 말한다.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무너진 후, 미국은 가상에 근거한 금융산업으로 지탱하게 되었다. 금융산업을 지탱해주는 것은 달러이며 달러를 지키는 것이 미국의 제1의 목표가 되었다. 1971년 달러의 금 태환 포기는 달러의 가치를 위태롭게 했지만, 1973년 모든 석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케 함으로써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를 지켰다. 석유와 연결된 '페트로 달러'의 출발이었다.
차오량은 1971년 이후 '10년의 달러 약세, 6년의 달러 강세'라는 달러 가치의 순환을 통해 세계의 부를 미국이 빨아들인다고 말한다. 차오량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달러 강세를 시작하기 직전 지역위기를 의도적으로 고조시킨다. 그래야 해외를 떠돌던 달러들이 미국으로 재유입된다. 밀로세비치에 대한 소문의 대부분이 거짓으로 판명 난 유고전쟁은 당시 막 시작하려던 유로화에 큰 타격을 입혔다. 달러의 라이벌이 될 수도 있는 화폐였기 때문이다. 산유국가의 전쟁은 석유가격을 올리고 거래결제를 위해 달러 수요를 증가시킨다. 후세인은 석유거래에 유로화를 사용하려 했다. 이것이 이라크 침공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미국이 세운 이라크 임시정부의 첫 번째 포고령은 이라크의 모든 석유대금 결제는 유로화가 아닌 달러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라크전쟁이 달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언제나 전쟁 중인 이유를 몇 가지 살펴보았다. 토니 클리프의 '영구 군비경제론'과 차오량의 '달러 패권론', 두 이론은 영구전쟁국가 미국을 설명해준다. 그런데 만약 '두 이론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바세비치의 '워싱턴 룰'의 "워싱턴세력이 미국을 납치해 전쟁중독으로 만들었다"는 전제는 수정되어야 한다. 위대한 미국을 위싱턴세력이 납치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가장 효율적 생존전략이 전쟁이기 때문이다. /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2018 .8.25 프레시안
Vem Vet - Lisa Ekdahl
'세상과 어울리기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파트 공화국 外 (0) | 2018.09.09 |
---|---|
도덕의 기원 外 (0) | 2018.09.04 |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0) | 2018.08.06 |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0) | 2018.07.19 |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0) | 2018.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