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카르텔
저자 이은용|사계절 |2019.12.
이은용-1995년 4월 1일부터 기자로 살았다. 2014년 8월 24일 전자신문에서 부당 해고, 박근혜 정부 들어 첫 해직 기자가 되었다. 이후 복직했으나 온전치 못하였고 결국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이후 99퍼센트 시민을 위한 독립 언론 뉴스타파에 합류했다.
어느 날 돌아보니 침묵의 카르텔과 맞닥뜨린 채 ‘이 벽을 어찌 깨뜨려야 할까’ 여기저기 두드려 틈을 찾던 내가 보였다. 무너뜨리지 못한 벽이 많아 뭘 어찌해야 좋을지 찾기 힘들었다. 줄곧 벽을 두드리며 뭘 끼적이다가 죽지 않을까 싶다.
『종편타파』 『아들아 콘돔 쓰렴: 아빠의 성과 페미니즘』 『미디어 카르텔: 민주주의가 사라진다』 『옐로 사이언스』를 냈다. 공저 『최신 ICT 시사상식』과 전자책 『빨강독후』 『안철수, 흔들어 주세요』도 썼다.
목차
머리말 - 침묵의 벽 앞에서 6
1장. 이상한 게이트키퍼 15
# 안규리와 청와대_17 # 더듬이_19 # 게이트키퍼_23
# 거짓말_26 # 이상행동 1_30 # 이상행동 2_32
# 발신자번호표시제한_34 # 벽 안_36
2장. 안 터진 복권 39
# 장관 오명_41 # 오명과 전자신문 1_43
# 엠바고_47 # 허풍선_49 # 호랑이 등에 탄 여우_51
# 균열_53
3장. 편 가르기 61
# 육군사관학교_63 # 오명과 전자신문 2_65
# 배척_70 # 추락_74 # 회유_78 # 정직한_81
4장. 체신 마피아 85
# 오명과 전자신문 3_87 # 지배 구조_89
# 만년 말석_93 # 체신부+정보통신부_95
# 앓던 이_100 # 광화문 세종로_106
# 감시_109 # 포럼2020_111
5장. 삼성이거나 SK, 아니면 LG 119
# 한통속_121 # 꿍꿍이_123 # 초록동색_126
# 유령회사_129 # 침묵_132 # 되돌아온 신문_135
# 다시 삼성_139 # 손바닥 뒤집기_143
# 신개념 뉴스_145 # 자본이 물린 재갈_148
6장. 청탁과 배려 151
# 쌈짓돈 씀씀이_153 # 수상한 전표_156
# 제보자 X_159 # 또 삼성_168 # 채용 비리_173
# 이사장의 지역 안배_176 # 말장난_179
# 정치인_183 # 특별한 배려_189
7장. 비상대책회의 193
# 짬짜미_195 # 고위 품격_200 # 공동정범_205
# 또 침묵_210 # 제보자 Y_212 # 권영수와 최성준_215
# 오비이락_218 # 150억_221
8장. 법조거나 공무원, 아니면 로비스트 229
# 이해충돌_231 # 빈 밥그릇 소송_233
# 동에 번쩍 서에 번쩍_236 # 사라진 법 양심_241
# 특수관계_244 # 제보자 Z_250 # 이상한 벽_253
# 회전문_255 # 구구팔팔 백두산_262
꼬리말 - 남은 벽 앞에서 267
참고문헌 277
출판사서평
“기자로 산 내게 침묵은 벽이었다”: 이은용의 기자외전
2019년 4월 청와대는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9년 세계 언론 자유지수 평가에서 대한민국이 아시아 1위, 세계 41위를 차지했다며 자랑했다. 이 지수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3년 연속 상승 중이며,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는 설명 뒤로 “대한민국에 새 바람이 불었다”는 자찬이 나왔다.
지난 12년간 무엇이 한국 언론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었을까? 또한 지금은 지난 12년과 달리 정말로 자유의 바람이 불고 있을까? 이은용 기자의 새 책 『침묵의 카르텔: 시민의 눈을 가리는 검은 손』은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책은 지은이가 1995년 4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전자신문에서, 그리고 2015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뉴스타파에서 기자로 일하며 부딪힌 벽들에 관한 르포르타주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 후반과 이명박 정부 초반을 지나며 언론의 칼날이 크게 무뎌진 이유와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다.
지은이는 IT, 방송통신 및 과학기술 분야 전문 기자로, 특히 해당 분야 관련 행정기관의 고위 공직자 비리와 행정부-입법부-기업의 유착을 날카로운 눈과 치밀한 글로 고발했다. 그럴 때마다 벽들이 불쑥 솟아올라 기자의 손을 묶고 시민의 눈을 가렸으니, 신문사와 행정기관이 모인 광화문 세종로 일대, 대기업이 숲을 이룬 강남, 검찰과 법원과 로펌이 똬리 튼 서초동 등 모든 취재 현장이 그랬다. 기자의 질문에 딴소리로 답하거나 입 닫고 모르쇠 하는 건 예삿일이고, 기업이 광고비로 신문 지면에 손을 대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전화 한 통으로 기자가 쓴 기사를 지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믿고_볼_언론이_없어서_정의가_숨죽였다]
“기사가 그렇게 나가면 저희가 많이 어렵다”거나 “이번 한 번만 봐달라”는 현장 관계자의 하소연이 그저 말에 머물지 않고 높은 벽이 되어 나타났다. 하소연은 대개 권력과 자본의 가면이었다. (…) 하소연했음에도 “기사가 그렇게 나가면” 권력 입김이 언론사 인사에 닿아 기자가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실제로. 하소연했음에도 봐주지 않으면 기업 광고가 끊겨 기자가 자리를 옮길 수도 있고. 하여 “저희가 많이 어렵다”거나 “이번 한 번만”은 절박한 목소리라기보다 늘 쓰다 보니 버릇이 되다시피 한 말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밑바닥 끝까지. _7~8쪽에서
『침묵의 카르텔』은 가장 높은 곳에 선 기업 주위로 벽처럼 늘어선 행정관료, 공공기관장, 정치인, 변호사, 검찰, 언론인들의 작당을 들춰낸다. 지은이는 벽에 막히고 도랑을 구르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취재한 사건과 그 배경의 전모를 이 책에 밝혔다. 언론사 편집국장 위에 선 정부 고위관료와 방송통신 관련 공공기관장 옆에 선 대기업 임원. 거기에 올라타 호가호위하는 수많은 인물들까지. 이들이 오직 더 힘세고 높은 자리로 가겠다는 목표로 자본과 권력을 휘두르며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는 대한민국 정치-행정-경제의 맨얼굴이 고스란하다.
기자의 정론직필을, 시민의 알 권리를 막는 이 누구인가
『침묵의 카르텔』 1장부터 4장까지는 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살핀다. 지은이는 신문사 데스크와 편집국장, 안규리와 청와대, 오명과 체신 마피아를 헤집으며 권력기관이 언론을 어떻게 흔들고 통제하며, 이를 통해 얻으려 한 것은 무엇인지 밝힌다. 시민의 알 권리는 ‘기밀’이나 ‘보안’ 따위의 딱지가 붙은 대통령 행차에 밀리기 일쑤고,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할 공무원들은 자리보전과 권력 확장에 목매며, 어떤 기자들은 권력이 내주는 모이를 쪼아 먹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정부가 뿌린 보도자료와 뱉은 말을 기자가 뒤집어보는 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갔다.
특히 대한민국 제6대 과학기술부 장관 오명은 20세기 후반 한국을 지배한 육군사관학교 권력이 21세기로 이어진 흐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가 펼친 우산 아래 빼곡하게 모인 관료들은 포럼2020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2020년에 우리 포럼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오면 좋겠습니다”라는 망상을 펼치기도 했다.
[#이상한_게이트키퍼]
(신문사 데스크인) A는 제목부터 딴죽을 걸었다. ‘황우석의 6월’은 안 되겠고 ‘황우석 석좌교수의 6월’이어야 한다는 것. 직함을 제대로 써주는 게 기본이라는 A 주장. “황우석의 6월 행태를 냉철히 짚으려는 거여서 ‘교수’ 없이 가는 게 좋겠다”는 내 뜻. 그리 맞섰다. 2005년 6월 30일 아침. 사달이 났다. 집으로 배달된 전자신문 [기자수첩] 끝엔 “설마 황 교수 스스로 밖으로 나온 건 아니겠지”가 없는 게 아닌가. A가 제 고집대로, 내겐 말하지 않고, 기어이 문장을 들어낸 것. 그 한마디가 사라진 바람에 내용이 황우석 비판에서 찬양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_27~28쪽에서
[#회유와_협박]
2005년 9월 22일 오후 서울대병원 부교수이자 황우석 연구팀의 대변인 역할을 하던 안규리로부터 걸려온 전화. “언론이 무슨 의도로 저희를 이렇게 흔드는 거죠?” 같은 시기에 황우석 연구팀의 가짜 논문을 추적하던 MBC PD수첩 팀에 더해 전자신문까지 팔을 걷고 나서자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 것이다. “조직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이렇게 취재하면 다 도망가고, 아마 주변에 아무도 안 남을 거예요. 이런 팩트는 캐지 마세요.”
얼마 후 ‘발신자번호표시제한’ 전화를 받았더니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실 선임 행정관이었다. “안 교수가 걱정이 많네요. 기사 나갈까 봐서.” 그는 ‘잘 낫지 않거나 고치기 어려운 병을 앓는 환자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애쓰는 황우석팀을 언론이 왜 자꾸 흔드느냐’는 안규리 쪽 주장을 거듭 알렸다. “기사 게재를 다시 생각해주십사” 하며, “우리도 중간에서 힘드니 좀 봐달라”고 했다. 황우석팀 세계줄기세포허브가 지금은 속 빈 강정이지만 앞으로 정부 지원 따위에 힘입어 좋아질 것이니 “조금 더 지켜봐달라”는 덧붙임까지. _34~35쪽에서
[#체신_마피아]
체신부는 오명 말처럼 “만년말석” 중앙행정기관이었다. 한국 정부 부처 가운데 언제나 맨 끝자리. 자연스레 공무원 시험을 치른 이가 일하고 싶은 곳을 고를 때마다 가장 나중 것이 돼 뒤로 처졌다. 그곳으로 오명이 갔다. 1981년 5월 28일 체신부 차관이 된 그는 1987년 7월 13일까지 6년 2개월 동안 차관이었고, 이튿날 장관으로 올라선 뒤 1988년 12월 4일까지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하여 오명은 ‘체신부 연구비를 24배쯤 키운 차관’이자 ‘KT를 만든 관료’이자 ‘만년 말석 체신부 어깨에 힘 좀 깃들게 한 꼭짓점’으로 새겨졌다.
꼭지 뒤로 꼭짓점을 받드는 공무원이 늘어섰다. 그래야 20~30년쯤 공직에 머무르며 자리를 높이고, 앞선 사람이 끌고 뒤선 사람이 미는 덕에 준정부기관이나 기업협회나 법무법인이나 대기업이나 정당 따위에 둥지를 틀고 오랫동안 더 웃을 수 있을 테니까. _93~96쪽에서
삼성이거나 SK, 아니면 LG
5장에서는 기업이 자본을 무기로 언론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보여준다. 광고 중단과 소송으로 겁박하거나 전화 한두 통으로 새로 찍은 신문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게 하고, 광고성 기사를 사주해 지면을 어지럽히는 등, 자본으로 세운 벽이 무섭게 솟구치더니 곧 기업은 권력보다 더 큰 힘을 손에 쥐었다. 어쩌다 기자의 펜 끝이 기업으로 향하기라도 하면 사방의 벽들이 기자를 공격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때 공개된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의 휴대전화 속 유수 언론사 임원들의 문자는 빙산의 한 조각을 드러낸 것일 뿐, 사방에서 기업의 언론 길들이기가 벌어졌다.
[#길들이기_삼성]
2010년 1월 4일. 그해 첫 월요일. 힘 있는 기자가 국제팀에 한 사람 더 유배됐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 쪽에 밝아 2009년 9월 28일 전자신문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이 됐던 기자. 그가 정직당한 건 삼성 때문이었다.
2009년 10월 26일 그가 쓴 칼럼 「반도체 치킨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 현주소를 다시 생각”해보니 삼성전자가 2년여 동안 이어진 산업 불황에도 게을렀다고 꼬집었다. “삼성전자 위상에 어울리는 시장 리더십이 아쉬웠다”는 문장 뒤로 이건희와 이재용 후계 지배 짜임새를 짚었다. 이른바 ‘삼성 존엄’을 건드린 글이 뜨자 삼성전자 홍보 임원이 전화기를 들고 10월 27일 자 45판?서울 배달 판?인쇄가 끝나기 전에 글귀를 바꾸거나 지우고자 했다. _81~82쪽에서
[#길들이기_SK]
2011년 11월 SK가 하이닉스반도체를 사들일 뜻을 분명히 했을 때 전자신문 기자 서동규가 그달 14일 자 기사 「SK “하이닉스 CEO 찾습니다”」를 썼다. 11월 13일 밤. 전일 가판 기사를 본 SK텔레콤 사장이 전자신문 사장 구원모에게 전화해 “공식적으로 하이닉스 대표이사 선임 건을 논의한 적 없다”고 말했다. 구원모는 전자신문 편집국장 E에게 SK텔레콤 사장 말을 전화로 전했다. E는 그날 밤 10시 10분께 SK텔레콤 임원으로부터 “팩트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는 “데스크에게 내용 확인을 다시 요구했고 10시 15분께 윤전기를 멈추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 찍어 배달할 곳으로 나누어지던 모든 신문을 쓰레기로 만든 것. SK 기사를 들어내고 2면을 다시 편집한 뒤 새벽 내내 신문을 새로 찍어 돌렸다. _135~136쪽에서
『침묵의 카르텔』 이은용 저자 인터뷰
IT, 방송 통신 및 과학기술 분야 전문 기자 이은용. 그가 1995년 4월부터 지금까지 기자로 일하며 취재한 사건과, 그 사건의 뒤에서 진실을 가린 채 기자의 취재를 막고 시민의 알 권리를 방해한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을 밝히는 르포르타주 『침묵의 카르텔』 을 썼다. 기사로 기업과 관료의 유착을, 공공기관의 비리를 고발할 때마다 벽들이 불쑥 솟아올라 기자의 손을 묶고 시민의 눈을 가렸으니, 신문사와 행정기관이 모인 광화문 세종로 일대, 대기업이 숲을 이룬 강남, 검찰과 법원과 로펌이 똬리 튼 서초동 등 모든 취재 현장이 그랬다. 기자의 질문에 딴소리로 답하거나 입 닫고 모르쇠 하는 건 예삿일이고, 기업이 광고비로 신문 지면에 손을 대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전화 한 통으로 기자가 쓴 기사를 지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침묵의 카르텔』 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침묵의 카르텔』 을 쓴 이은용입니다. 저는 24년쯤 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99% 시민을 위한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 객원기자로 뛰고 있습니다. 책 속에서 침묵의 카르텔을 ‘벽’이라고도 표현했는데요, 이 벽이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는 짬짜미라고 느껴졌습니다. 권력과 힘이 있는 자는 내리누르는 짬짜미를, 권력에 굽힌 사람들은 내리눌린 형태의 짬짜미로 침묵하는 흐름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밝혀내려는 생각으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침묵의 카르텔을 직시하고 드러내야 반성이 가능하고, 드러내야 개선할 수 있고, 그래야 한국 사회가 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침묵의 카르텔에 관하여 기록하는 작업조차 없어서 그동안 벽 뒤에 숨어 있던 침묵의 카르텔이 그대로 묻히고 말면 힘 있는 몇몇 사람들만 웃고 즐기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만연해지면 우리 시민에게 더욱 큰 피해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삶 주변에 있는 침묵의 카르텔을 밝혀 말해야 하는 까닭이자, 기자를 직업으로 삼은 제가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첫 번째 독자를 분명히 머릿속에 떠올리고 글을 썼습니다. 바로 한국의 관료들입니다. 책 속에도 짧은 문장으로 적긴 했지만, 한국은 헌법으로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해놓았습니다. 국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직업으로요. 그들은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하고, 그러라고 그에 걸맞은 힘도 주었죠. 그러나 현실에서 관료들은 시민을 위해 준 힘을 함부로 전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힘이 시민이 아닌 다른 곳을 위해 쓰이는 모습을 『침묵의 카르텔』 에 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는 관료들, 공무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에 더해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 더 고르고 판판해지기를 바라는 올곧은 시민들이 많이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책의 1장이 2005년 황우석 사태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미 오래 지난 과거라고 여기고 있었는데요, 이 책을 통해 다시 마주한 황우석 사태는 권력의 언론 길들이기가 본격화되는 전조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상황을 한 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2004년에 시작되어서 2005년으로 이어진 사건이었죠. 황우석 씨가 거짓 논문을 발표해서 치료하기 힘든 병,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체세포로부터 치료할 수 있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황우석 씨는 10년, 15년이면 치료법이 완성될 것처럼 이야기했거든요.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성과였겠죠. 그 무렵 황우석을 주인공으로 한 위인전이 쏟아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에게 매료되었습니다. 언론도 그렇고, 권력도 그랬죠. 황우석이 스타 과학자가 되면서 누구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황우석 바라기’만 하던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태는 2005년에 끝난 게 아니에요. 제가 책 서두에 언급한 당시 황우석 팀의 일원인 안규리 씨는 정직 2개월 징계를 받고 끝났습니다. 당시 그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한 탓에 그는 2019년에 삼성전자 사외이사가 되었고, 아직도 서울대 병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제대로 반성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황우석 사태는 끝나지 않고 2019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또 당시에 안규리 교수보다 더 황우석 씨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서울대 수의과대학의 이병천 교수는 지금까지도 실험동물에 대한 학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자신의 연구실에서 아들과 조카를 일하게 한 의혹까지 제기되었습니다. 그 또한 2005년 거짓 논문 사태의 징계로 정직 2개월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우리가 그때 문제를 제대로 바로잡고 온 것인지 의문입니다.
당시 권력이 황우석 주변에 있던 이병천과 안규리를 포함한 책임자들을 단죄하지 못한 것은, 곧 권력 스스로를 비판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MBC 피디수첩과 제가 속한 전자신문 과학기술팀의 보도를 통제하려 했고, 언론을 길들이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도처에서 침묵의 벽이 솟아오릅니다. 기자의 펜이 닿은 곳 중 침묵의 벽이 솟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일 정도예요. 그중에서도 침묵의 카르텔 가장 꼭대기에 앉은 것은 누구일까요?
기업이죠. 기업입니다. 이승만 독재 이후 박정희가 18년간 독재했고 그 뒤 전두환이 7년쯤 더 잡고 있었다고 하지만, 1987년 이후에는 대통령의 권력을 쥘 수 있는 시간이 5년으로 제한되었습니다. 5년마다 바뀌거나, 같은 당에서 한 번 더 집권한다 하더라도 길어야 10년입니다. 그런데 기업은 50년이고 60년이고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지금처럼 대를 이어가다 보면 곧 100년도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의 얄팍한 뿌리를 감안할 때,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기업들은 이승만 정권에 기대어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을 불하받아 탄생하고 성장했습니다. 또 박정희와 전두환의 우산 아래에서 정경유착을 통해 굴지의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랬던 기업이 어느새 한국 사회를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카르텔의 시작과 끝이 기업이라 한다면 그에 가장 충실히 복무하는 것은 기자님께서 『침묵의 카르텔』 의 제1 독자로 생각한 공무원 또는 공무원 출신의 법조, 이른바 로비스트인 걸로 보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제가 경험한 침묵의 카르텔은 아주 잘 짜인 구조, 탄탄한 구조였습니다. 그 꼭대기에 기업이 있고, 그 영향력 아래로 정치인들이 서고, 정치인들이 관리하는 관료집단으로 이어집니다. 관료집단은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에 20~30년씩 관료사회에 머물면서 권력을 갖습니다. 정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말이죠. 침묵의 카르텔은 기업-정치인-관료 삼각형이 아주 잘 맞물려 굴러가는 구조입니다.
30년쯤 공무원으로 일하고 퇴직하면 보통 시민의 국민연금보다 2~3배 많은 금액을 받거든요, 그러니까 단지 경제적 문제가 관료 출신 로비스트들의 동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개개인의 욕심일 테지요. 누군가는 그 욕심이 강합니다. 일부는 로펌이나 기업이 만든 회전문 안으로 들어가 연봉 수억, 수십억을 법니다. 로펌과 기업의 회전문 안에서는 경제적 부를 누리고, 그 안에서 기회를 엿보다 자신과 가까운 권력이 등장하면 정무직 공무원, 장관이나 차관, 청와대 수석 같은 기회를 타고 회전문 밖으로 나오는 생태계가 고위 관료들 사이에 형성되었습니다. 그동안 이걸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더욱 강력하게 회전문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여러 번 회전문을 드나들며 정무직과 로펌을 왔다 갔다 하는 일만큼은 제재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권력에 길든 기자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언론은 “사법-입법-행정” 3부를 감시하는 제4의 권부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기자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오래전부터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절에서 맑게 울리는 목탁 소리 있지 않습니까. 80년대에, 그리고 90년대에도 그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 뒤로는 목탁 이야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만큼 언론이 사회에 맑은 소리를 알리고 전하고, 사회를 올바로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기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맑은 소리가 사라졌고, 어느새 ‘기레기’라는 표현이 더 흔해졌습니다.
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목탁에 견줄 만한 소명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왜 나에게 기자라는 직업을 맡겼을까? 능력이 있고 스펙이 좋아서 일 수도 있겠죠. 스펙 덕분에 좋은 언론사에 가서 월급을 많이 받으면서 일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일단 기자가 되었다면, 사회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에 걸맞은 소명 의식을 갖고 목탁 소리를 울리는 데 애써주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이 책을 볼 시민?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민 누구나 기록할 수 있는, 기록이 가능한 환경이 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텍스트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대죠. 제가 침묵의 카르텔과 부딪히면서 경험한 일을 보다 많은 시민들께서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진실을 기록하는 일에 시민들도 도전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을 할 때는 진실을 기록해야 하며, 또 그 기록이 진실이 아닐 경우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 삶 주변에 있는 침묵의 카르텔은 생각보다 높고 넓습니다. 모든 시민의 곁에 그런 벽이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세상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랍니다. 진실을 지켜주는 사람, 자유 언론을 지켜주는 시민이 되어주십시오. /채널예스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 저자 이규연|김영사 |2019.10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저자 : 이규연 탐사 저널리스트. 중앙일보 탐사기획 에디터, JTBC 초대 보도국장을 거쳐 현재 탐사기획국장으로 탐사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기획 및 진행을 맡고 있다. 2005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탐사보도협회 특별상을, 두 번의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 중앙일보에 입사해 탐사보도 한길을 걸었다. 고려대학교에서 과학학과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미래학을 공부한 것은 저널리스트로서 사회문제와 시대 흐름을 앞서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항상 한발 늦고 뒤늦게 분노했다. 지난 30년은 위법과 합법 사이, 두려움과 정의감 사이에 솟은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홀로 걷는 시간이자 탐사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묻혀 있는 진실을 발굴하고 마지막 한 조각까지 짜 맞추며, 공익 탐정으로 탐사보도의 길을 개척해온 한 탐사 저널리스트의 분투기이며 성장기다. 세상은 무관심으로 파괴된다. 직접 마주한 현장은 생각보다 참혹했고 그곳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밝혀진 진실이 우리를 할퀴더라도 그 진실은 확인하지 않은 의혹보다는 값지다.
목차
프롤로그. 누군가에겐 하나의 사건이 모든 삶이었다
1.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한 사람은 깨울 수 없다
잔혹한 동화가 만들어낸 현실의 법: 조두순 사건으로 본 감형의 조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악성 민원인의 절규: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와 살인 공소시효
잠든 척할 수 없는 시대: 법을 적용받지 않는 법 집행자, 검찰
2. 진실을 땅속에 묻으면 더 큰 폭발력을 축적한다
음란지옥의 불길에 타버린 사람들: 버닝썬 천태만상 속 유착의 고리
가장 뛰어난 예언자, 과거: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침묵의 카르텔
눈 덮인 들판을 함부로 걷는 권력: 십상시 문건이 고백하는 대한민국 권력 서열
3. 강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
분노와 난폭의 차이: 촛불혁명의 아주 멋진 순간
신뢰와 신념의 가속도: 정유라가 탄 말을 추격하는 기수들
부정과 은폐의 무게추: 대통령 탄핵의 전말
4.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음모론의 탄생 공식: [세월X]가 뚫은 물길
미래의 재난을 상상하는 힘: 재난의 올바른 수습이 필요한 이유
팩트 없는 진상의 허상: 다시 가라앉은 세월호
5. 악행 그 자체보다 악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파괴된다
방관의 다리는 언제나 튼튼하다: 독을 뿜어낸 가습기
움직이지 못하는 초인의 꿈: 루게릭병 환자와 나눈 편지
정서적 사다리를 제공받을 권리: 난곡의 2가지 가난
6. 악인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죄의 미미한 시작과 창대한 끝: 이영학이 쓴 인간의 가면 벗기기
실험실 밖에서 과학이 지켜야 할 예의: 황우석 신화와 과학 정치화의 덫
절대악의 칼에 베인 21년: 지존파의 살인공장 혹은 지옥
7. 우리는 언제든 모비딕과 마주칠 수 있다
‘기레기’가 풀어헤친 그날의 기록: 5.18 보도와 기자의 진실
국민의 포기할 수 없는 권리: 감시 사회를 감시하는 자
정보기관의 변신은 유죄: 만들어진 간첩들
8. 두 도시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떠오르려는 해를 사로잡는 법: 10년 만의 평양 취재
승부 없는 통일을 위해: 대동강 변의 변화 탐사
회색 도시의 컬러: 북한 녹화 사업의 두 얼굴
9. 진실도 때로는 다치게 할 때가 있지만 머지않아 치료받을 수 있는 가벼운 상처다
진실을 완성하기 위한 팩트 퍼즐 조각: 북한 식당 종업원의 인권
오보는 책상에서 만들어진다: 대북 제재와 단둥의 실제 물동량
회한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무엇: KAL기 사고 수습 실태
10. 봄은 왔지만 여전히 침묵의 봄이다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함께 사는 사람들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X-이벤트 대비 시나리오의 필요성
한국에서만 덩치를 키우는 괴물: 메르스 창궐의 비밀
11. 스컬리, 진실은 저 너머에 있어요
과학 없이 존재하는 것들: 목격된 UFO
진품을 진단하는 장님: 프레임에 묶인 [미인도]
늙어버린 몽타주: 화성 연쇄 살인 추적
12.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물증보다 강력한 고백: 광주로 간 군인들
왜곡된 역사를 기록하지 않기 위해: 전두환 회고록의 진실
법이 저지른 만행: 인혁당 유가족의 통곡
에필로그. 지옥에서 천국을 상상하는 탐정
탐사 노트
1. 심층의 3차원
2. 논리적인 인터뷰 요령
3. 탐사의 정의
4. 탐사의 구성
5. 공직자 인터뷰 요령
6. 부패 기관 탐사 요령
7. 명예 훼손 책임의 단서
8. 이머징 이슈 포착
9. 탐사 준비의 중요성
10. STEPPER
11. 대통령 어젠다 활용
12. 글쓰기 방법
출판사 서평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무지와 무관심, 기만과 폭력으로 지체된 정의를 불러내기 위해 지옥에서 천국을 상상하는 탐사 저널리스트의 이야기
매일 접하는 뉴스 속에서 진실만을 추출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진실을 가장한 거짓이 난무하고, 실체 없는 허상이 떠도는 시대, 우리는 진실의 숨은 그림을 발견할 수 있을까.
왜 책 제목이 ‘로스트 타임’인가. 스포츠에서 지체된 시간을 뜻하는 ‘로스트 타임’은 사법과 정치, 경제에도 출몰한다.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기만과 폭력으로 누군가의 시간은 사라진다. 그때마다 그 누군가는 가슴을 치고, 목소리는 사라진다. 로스트 타임은 잊힌 시간이며 지체된 정의다. 하나의 사건이 모든 삶이었던 누군가에게 반드시 돌려주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탐사 저널리스트는 사라진 누군가의 시간, 목소리, 삶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직업이기도 하다.
취재 현장에서 늘 최선을 다해왔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항상 한발 늦고 뒤늦게 분노했다. 조금만 더 악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더라면.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갔다가는 발을 헛딛고 굴러 떨어질지도 몰랐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공익 탐정으로 탐사보도의 길을 개척해온 한 탐사 저널리스트의 분투기며 성장기다.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던 36개의 생생한 기록과 분투가 감동적이고 눈물겹게 펼쳐진다. 또한 탐사의 정의, 구성, 인터뷰 방법 등을 정리한 탐사보도 취재 원칙과 요령이 12개의 ‘탐사 노트’에 일목요연하게 담겨 있다.
“악행 그 자체보다 악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파괴된다”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기자 초년병 시절, 사회부 수습 과정을 막 끝내고 과학부로 옮겨 선배들의 일을 거드는 말석에서 이규연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제 손가락이 녹아가고 있어요.” 그의 손가락은 화상 흔적을 남기며 반 마디나 녹아 있었다. 젊은 기자의 촉이었을까. 파고들면 무언가 밝힐 수 있을 거란 직감에 따라 기꺼이 병원비를 부담하며 그에게 정밀 검사를 받게 했다. ‘방사선 피폭으로 추정됨.’ 진단 결과를 들고 그의 일터로 찾아가서 피폭 차단 용구는커녕 방사선 위험에 대한 사전 교육도 없었던 실상을 폭로하는 기사를 썼다.
보도의 후폭풍은 컸다. 보건 당국과 노동 당국이 사건 조사를 시작했고 과학기술부는 방사선 취급 현장에 대한 일제 점검에 들어갔다. 탐사보도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제보자 조선소 용접공은 배상을, 기자는 특종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그는 ‘탐사’라는 이름조자 생소하던 척박한 한국 언론 환경에서 탐사보도 전문 기자의 길을 30년간 개척해왔다.
JTBC의 간판 탐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2002년 미국탐사보도협회 총회에서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을 고발한 보도로 명성을 얻은 [보스턴 글로브] 취재 기자를 만난다. 그의 명함에는 탐사보도팀의 별칭, ‘스포트라이트’가 적혀 있었다. 번개처럼 스친 생각, ‘나중에 탐사보도팀을 꾸린다면 별칭을 이렇게 지어야겠다.’ 13년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탐사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을 꾸렸다.
지옥에서 천국을 상상하며 분투하는 가운데 그가 특히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36개 사건은 한국사회를 뒤흔들며 변화를 만들어왔다. 로스트 타임을 회복해주지 않는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다. “탐사는 로스트 타임을 줄이고, 또한 역설적으로 로스트 타임을 돌려주는 활동이다.” 나태해서, 네거티브 공세가 두려워서,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그 ‘일’을 방기하는 공동체는 탐사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고 결어에 붙인다. 우리 모두에게 공공선을 찾아내고자 하는 공익 탐정의 소망이 자라나기를 기대하는 것, 이것이 그가 이 책의 쓴 이유다.
“참혹하고 추악하더라도 진실을 대면하는 것,
그것이 탐사 저널리스트의 일이다”
정의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탐사는 과거, 현재, 미래에 벌어지는 사건을 추적한다. 하지만 여러 시제 중에서도 현재에 더 집중해야 한다. 때를 놓치면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시간이 생긴다. 지금의 불의를 깨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 탐사의 가치는 불의에 대한 무분별한 공포를 정당한 분노로 바꾸어 정의를 불러내는 데 있다.”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탐사보도 기사는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살인 공소시효법 폐지 논의를 재점화했다. 루게릭병에 걸린 농구선수 박승일의 사연은 현상 보도 기사 일변도의 경향에서 벗어난 내러티브 기사로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인터뷰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5.18 당시 공수부대원에 대한 취재는 시민에 대한 발포 명령과 실행 상황을 가해자의 증언으로 재구성해내면서 광주의 비극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악을 추궁하는 일은 늘 고통스럽다. 시시때때로 선을 가장하여 진짜 얼굴을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악의 뿌리가 우리의 방관을 자양분 삼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의 원인이 무엇이건 정의가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변혁이 어떻게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탐사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탐사 저널리스트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규연은 말한다.
사건의 주체 못할 이면과 사람의 참지 못할 울음이 이끌어가는 드라마들 속에서 우리는 탐사의 쓸모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탐사를 통해 밝혀진 진실이 우리를 할퀴더라도 그 진실은 확인하지 않은 의혹보다는 값지다. 악행 그 자체가 아니라 악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파괴된다. 정의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다시,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희망을 거부하는 명제는 부정해야 한다. 모든 억울함 뒤에 방관이 있다, 사람 없는 사건은 없다. 거미줄처럼 가늘었던 죄는 배를 잇는 밧줄처럼 강해지고 땅속에 묻은 진실은 더 큰 폭발력을 축적한다. 저자 이규연은 다시 독자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탐사해야 하는가.
책속으로
내세울 만한 취재 성과는 적고 로스트 타임을 대면한 기록이 훨씬 많다. 항상 한발 늦고, 뒤늦게 분노한다. 그렇더라도 무력감만을 느끼지는 않는다. 비록 늦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로스트 타임을 줄 수 있었다. 보스턴의 성추행 피해 아동에게 스포트라이트의 탐사 보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면에서 로스트 타임은 상실의 시간이자 회복의 시간이다. --- p.14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한 사람은 깨울 수 없다. 탐사 취재를 하면서 진짜 잠든 사람과 잠자는 척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책임 소재를 묻는 차원이 아니다. 잠든 척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나 비리는 더 교묘하게 은폐되기 때문이다. 힘 있고 교활한 사람이나 집단일수록 잠자는 척을 잘할 가능성이 크다. --- p.44
조용래씨는 아버지 조순제가 녹취록을 남기려 했던 이유가 정치인 박근혜의 검증 필요성 때문이었다고 했다. 2007년 당시나 그 후인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조순제 녹취록을 검증했더라면 최순실 게이트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만시지탄이었다. 최고의 권좌인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치열한 검증이 왜 필요한지, 큰 교훈을 조순제 녹취록은 일깨워준다. 가장 뛰어난 예언자는 바로 과거다. --- p.68
권력의 비참한 말로는 부정 그 자체에서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워터게이트가 그랬다. 도청 장치의 설치라는 부정으로 닉슨이 하야하지는 않았다. 닉슨이 도청 장치 설치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치적인 타격을 우려해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폭발력은 배가됐다. 박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최순실 수사를 검찰에 전적으로 맡겼더라면 탄핵 발의까지 갔을까. 권력을 탐사할 때 부정 그 자체만이 아니라 부정의 은폐에도 주목해야 한다. --- p.107
때에 따라 대중의 상식에 반하는 내용도 보도해야 한다. 그것도 탐사보도의 운명이다.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지 않고 사실 확인을 꼼꼼히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누군가 세상의 진실을 자세히 밝히려고 할 때 이것을 방해하려는 자들이 들이대는 논리가 음모론이다. --- p.126
2008년 2월, 숭례문 방화 사건을 계기로 사고 백서 실태를 탐사해본 적이 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일어난 20개 대형 재난을 검증 대상에 올려놓았다. 취재가 마무리되면서 대한민국의 한심한 민낯이 드러났다. 재난 20건 중 12건은 백서가 아예 없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때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사회나 언론이 아직 선진이라고 할 수 없는 점이 있다. 바로 ‘실패학’이 없다는 점이다. 너무 쉽게 잊는다. --- p.132
외환위기로 촉발된 빈부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질 것이라고 봤다. 그런 병폐가 뿌리 깊게 박힌 달동네를 탐사함으로써 가난의 대물림 실상을 파헤쳤다. 하지만 취재는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 정치인이나 관료는 물론이고 언론조차 이런 명제를 갖고 있었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고 규정하면 정의는, 민주는, 행복은 어떤가.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희망을 잃게 하는 명제와 맞서야 한다. --- p.176~177
‘어금니 아빠’에서 흉악한 살인자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영학의 ‘인간 가면’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되돌려보면 그를 먼저 검증하고 피해자 김양을 살릴 기회는 많았다. 천사로 포장된 사이코패스! 우리가 방심한다면, 제2, 제3의 이영학은 반드시 나타난다. 죄는 처음에는 거미집의 줄처럼 가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배를 잇는 밧줄처럼 강해진다. 아무리 보도라도, 인물이 사건의 중심이다. 사건을 추적하면서 인물의 과거를 추적해야 한다. --- p.197~198
비리는 학력, 재산, 명예, 그 어떤 것과도 관련성이 없다. 탐사보도를 하다 보면 선인과 악인을 모두 만나게 된다. 문제는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상당수는 선과 악, 두 모습을 모두 갖고 있다. 적어도 사회적으로 중대한 해악을 끼치지만 않는다면 악인이라고 규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악이 선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 p.200
숙소로 이동한 기자들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밖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군도, 시위대도 취재에 협조해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취재를 접을 수도 었다. 김창훈 기자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올라간다는 거는 너무 무책임하고 비겁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창성 기자는 기자로서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가 훗날에 당신은 그때, 그 현장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 p.230
X-이벤트는 공포로 다가올 때가 많다. 공포는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X-이벤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공포영화를 자주 보면 면역이 생기듯, X-이벤트를 상상함으로써 대재난에 대한 적응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X-이벤트는 확률적으로 계산돼 나오지 않거나 극히 낮은 발생 확률을 가진 극단적인 사건이다. 현실적인 상황과 비용 등을 감안할 때,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에 대비해 100퍼센트의 예방책과 대응책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짜는 것만으로도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재난에 잘 적응할 수 있다. 때로는 불온한 생각이 세상을 좀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다. --- p.345
유병언은 의혹의 배후가 아니라 의혹의 재료가 됐다. 사체가 발견됐음에도 유병언 생존설이 돌기 시작했다. 시신을 바꿔치기 하고 자신은 도주했다는 것이었다. 유병언 독살설도 나왔다. 재산 환수를 막으려는 세력이 유병언을 죽였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설명을 들어보면 자살이 아니라는 과학적인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유병언 타살설은 심심치 않게,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한번 강하게 짜인 프레임은 과학의 이름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 p.371
베트남전쟁 중 미군이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는 작품이 자주 눈에 띄었다. 베트남전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것도 자국 군인의 베트남 양민 학살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보도가 줄곧 나오고 있다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 탐사 전문기자의 취재 후기를 잊지 못한다. 어렵고 힘겨운 역사 탐사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적어놓고 있었다. “잊힌 역사는 결국 뒤틀려버린다.” 우리가 역사를 잊으면 그 역사는 왜곡될 것이라는 뜻이리라. --- p.407
국가 배상금을 받은 피해자는 모두 77명이었다. 그중 43명이 반환금 때문에 빚쟁이로 몰렸다. “꼬인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법원은 중앙정보부와 국가정보원의 편을 들었습니다. 대법원은 우리를 두 번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법은 약육강식의 정글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법이 강자와 권력의 편에 설 때 정글은 더 참혹해진다. 탐사는 법을 존중해야 하지만 법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법의 이름보다 더 잔혹한 것은 없다. --- p.421
우리 정치와 언론은 지난 국정 농단 사태에서 값진 교훈을 얻었다. 주요 인사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격돌하며,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우리는 측근의 그림자에 눈을 감았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쓰러져 가는데도 단순히 괴질을 앓을 뿐이라며 한동안 발을 뺐다. 버젓이 ‘만들어지는’ 간첩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태해서, 네거티브 공세가 두려워,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검증 대열에 서지 않았다. 공동체는 탐사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 p.430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저자 이주한|역사의아침 |2011.09
이주한-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간사, 식민사학해체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을 역임했다. 2018년 현재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역사비평 가,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맥락, 근원을 입체적 으로 파헤치는 예리한 역사비평을 추구하며, 사실과 사료비판에 엄밀한 역사,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공존하고 대중이 소외되지 않는 열린 역사를 지향한다.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비틀어진 한국사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으 며, 지은 책으로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2011),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2013), 『위험한 역사시간』(2015),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2017, 공저)이 있다.
목차
저자 서문한국사 주류 프레임 블랙박스를 열며
1부노론사관·식민사관 X파일
1장 | 무거운 거짓 가벼운 진실
1. 누가 지식인인가
2. 대한민국 특급 인문학자(?)의 인터넷 강좌 ‘우리 시대의 명강의(?)’
3. 파시즘과 노론이즘
2장 | 정병설, 노론 수호의 총대를 메다
1.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정병설의 수준
2. 대중 위에 군림하라
3장 |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
1. 왜 『사도세자의 고백』에 광분하는가
2. 역사는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3. 사료 비판이 필요한 이유
4. 『한중록』의 노예가 된 정병설
5. 『사도세자의 고백』, 어떤 책인가
4장 | 『사도세자의 고백』 비난에 대한 세부 비판
1. 배경과 맥락이 없는 명제
2. 날조와 조작
3. 혜경궁 홍씨는 왜 『한중록』을 썼나
5장 | 노론사관의 치명적 폐해
1. 독선과 능멸 그리고 죽이기 풍토
2. 노론의 사생아들
3. 노론 천국, 백성 지옥
4. 공상의 역사
5. 마녀사냥
6. 양심과 윤리의 문제
7. 집요한 인신공격의 뿌리 179
8. 토론인가, 전쟁인가 187
9. 유사 지식인들 190
2부노론사관의 뿌리와 가지
6장 | ‘정조 독살설 논쟁’의 진실
1. ‘정조 어찰 공개’ 소동
2. 거짓의 굿판을 거둬라
7장 | 안대회의 정조 독살설 비판
1. 노론 후예 학자들의 고질병
2.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
8장 | 오항녕의 극우 파시즘
1. 십만양병설 논쟁의 핵심
2. 윤휴 죽이기에 나선 성리학자들
3. 노론 바이러스
9장 | 노론사관의 적통 유봉학
1. 정조 시대를 연구한 유봉학의 활약상
2. 뼈아픈 진실, 당쟁
3부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0장 | 뿌리 깊은 역사 전쟁
1. 서로 다른 민족주의
2.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은 한 뿌리
11장 | 한국사의 원형과 진실
1. 침묵의 카르텔
2. 역사가의 책임
300년 전 노론사관과 100년 전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
모든 권력은 역사를 통제하고 조작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도 지배한다.
노론은 주자학朱子學을 유일사상으로 보는 닫힌 세계관 때문에 주자학과 다른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몰아 탄압했다. 양명학陽明學을 이단으로 만들고, 수많은 천주교도를 도살했으며, 위로는 임금을 독살하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신분제를 강요해 노예로 만들었다. 그 결과 조선 후기 사회는 ‘노론 천국, 백성 지옥’이 된다. 뿐만 아니라 노론은 나라를 팔아먹는 데 조직적으로 가담한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은 76명의 수작자受爵者를 분석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최고위직인 후작을 받은 이완용李完用과 이재완李載完, 이재각李載覺, 이해창李海昌, 이해승李海昇 등 왕실 인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수작자는 사실상 ‘노론당인 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권 노론 일색이다. 76명 중 80퍼센트에 가까운 57명이 노론이다.
300년 전 노론사관은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사관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독점하고 있다. 노론 후예 학자들은 해방 이후 학문 권력을 틀어쥔 채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으며, 스승과 기존 학계의 논리를 비판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풍토 때문에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책은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에서 시작하여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모순적인 연구 풍토를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독살설에 대한 논쟁을 통해 노론사관의 뿌리 깊은 독선과 매도, 날조와 조작을 냉철하게 비판했다. 기존 역사학계의 권위주의, 보수성, 학벌 카르텔에서부터 통섭을 거부하는 편협한 학자들까지 문제 많은 한국 역사학계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사도세자의 고백]과 [한중록]에 담신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
2010년 12월 이른바 ‘대한민국 특급 인문학자’ 3명 중 한 사람으로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정병설 교수가 인터넷 강좌 ‘우리 시대의 명강의’ [권력과 인간] 온라인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첫 회인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에서 정병설은 이덕일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덕일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1년 [역사비평] 봄호 [길 잃은 역사 대중화]에 이덕일과 [사도세자의 고백]비판 전문을 게재했다. 이어서 2011년 여름 정병설은 EBS [TV 평생대학 - 역사이야기]에서 같은 내용을 강의했다.
정병설은 왜 이덕일을 공격하는가? 정병설의 책 [한중록]의 사도세자와 이덕일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의 사도세자는 왜 전혀 다른 인물로 그려지는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사도세자는 왜 지금도 노론의 희생양으로 공격받고 있는가?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는 정병설과 이덕일의 상반된 관점에서 시작하여 2009년 2월 발견된 정조 어찰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덕일과 유봉학, 안대회의 논쟁, 십만양병설의 진위를 놓고 벌어진 이덕일과 오항녕의 논쟁 등을 통해 노론 후예 학자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 집요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역사학계에 뜨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덕일이 왜 노론과 식민사관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은 또 어떻게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300년 전 노론사관과 100년 전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석주 이상룡,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겸 민족사학자와 조선총독부 사이의 대립 이후 노론 이데올로기와 식민주의 학문 체계는 해방 후 단 한 번도 해체 과정을 밟지 않고 학문 권력을 틀어쥐었다. 해방 직후의 식민사학 청산 움직임은 반민특위의 좌절과 함께 무너졌고, 이때부터 식민사학계는 절대 학문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과 다른 논리, 곧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재야 사학으로 매도해 배척했다. 그 후에도 전선은 계속 대치하고 있었으나 식민사학은 너무 강고했고 민족사학은 너무 미약했다. 이들의 뿌리가 식민사학뿐 아니라 노론에 있기에 그토록 강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론 후예 학자들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일본인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역사를 공부했다. 그들이 배운 역사는 다름 아닌 한국사 매도다.
2011년 출간된 역사학계 원로 김용섭 선생의 회고록([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과 사회학계 원로 최재석 선생의 회고록([역경의 행운-파란 많은 고난을 헤쳐 나온 한 노학자의 회고록])은 식민사학자들의 모순된 논리와 행태를 여실히 보여?다. 특히 김용섭 선생이 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겪은 일화([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279~283쪽)는 조선총독부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역사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금기가 많다. 왜 금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학문 권력이 자신의 지배력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생생한 증언과 사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식민사학과 노론의 사진死眞을 찢고 사진寫眞을 찍다!
역사 논쟁은 가장 치열한 사상 논쟁이다. 역사적 팩트에 기초해서 치밀한 논증과 추론을 구성하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겸허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런데 노론 후예 학자들은 희한한 궤변을 만들어 노론의 가치를 비판하는 상대를 매장하고 거세한다. 역사 연구의 기초인 사료 비판을 배제한 채 닫힌 사고에 갇혀 학문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움켜쥐고 있는 노론은 자신들과 다른 이론을 내세우거나 연구하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조선 후기부터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고 유지해온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을 철폐하는 일이 한국사의 원형과 진실을 바로잡는 일이며, 한국 사회를 혁신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책속으로
사물을 선과 악, 흑과 백, 천사와 악마,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의 뿌리는 송시열과 노론에서 비롯되었다. 17세기 이후 ‘사문난적斯文亂賊’(주자학을 문란하게 한 도적)이라는 말이 생겨 주류 학문은 나와 다른 타인을 억압하고 유폐하는 폭력적 도그마로 변질했다. 개방성과 역동성, 운동성을 잃고 닫힌 해석에 안주하는 철학과 지식은 필연적으로 권력의 효과적 통제 수단으로 전락한다. 지금 우리 안에 조선 후기 역사가 있고, 그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간섭한다. 왜 그럴까? 노론은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서면서 권력을 향유했다.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다.” “조선 국민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서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이것이 대표적 노론 명가 출신이자 당수인 이완용이 한국 최초 근대 소설로 추앙받는 [혈의 누]의 저자이자 비서인 이인직을 통해 일제 통감부에 전한 노론 당론이다. 중국에 사대하던 것을 일본으로 바꾸자는 것이 노론의 입장이요, 사상이자 이데올로기다. 민초를 중심으로 시대가치를 추구하는 프레임이 노론에게는 없다. --- pp.5~6 「저자 서문」중에서
“자식이 미쳤다고 해서 아버지가 자식을 죽였다는 것은 참 납득하기 어렵다. 당연히 의혹이 뒤따를 만하다. 그런데 [한중록]을 읽어보면 그 경위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아버지 영조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이런 것들로 인해 정신 질환이 깊어졌는데, 죽기 직전에는 아버지를 죽인다는 등 별별 망측한 언행을 다 하다가 그 사실이 영조에게 발각되어 역모 혐의를 받아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덕일은 이런 혜경궁의 논리를 혜경궁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기 위해 꾸민 것으로 보았다. - 정병설, [길 잃은 역사 대중화], [역사비평] 2011년 봄호, 330~331쪽”
이것이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하는 정병설의 핵심 견해다. 이덕일 소장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사료 비판한다. 사석이나 강연에서 “[한중록]에는 사실도 있고, 과장도 있고, 왜곡도 있고, 거짓말도 있다”고 말한다. 어느 것이 사실이고 과장·왜곡·거짓말인지 밝히는 것이 바로 학자가 할 일이다. 반면 [한중록]은 진실을 기록한 글이니 사료 비판 없이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정병설 주장의 요체다.
[한중록]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많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저술할 때부터 비판이 있었다.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가해자의 기록이다. 정병설은 중요한 살인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럴까? “[한중록]을 읽어보면 그 경위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말에 그 답이 있다. ‘앞으로 모든 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그 경위만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무죄다.’ 이것이 정병설의 논리다. --- pp.39~40 「3장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중에서
[사도세자의 고백] 발간 이후 [역사에게 길을 묻다]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이덕일 소장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다.
“사도세자에 관한 기본 사료는 크게 세 가지다. 사관들이 편찬한 [영조실록]과 정조가 편찬한 [어제장헌대왕지문] 그리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이다. 정조의 [어제장헌대왕지문]이 사도세자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라면, [영조실록]은 사도세자에 대한 건조한 기록이다. 이는 세자의 아들인 정조 재위 시에 편찬되었으나 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이 다수 편수관으로 참여한 데서 나온 결과다.
문제는 [한중록]이다. 남편 세자가 뒤주 속에서 갈증과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나약한 여인의 피맺힌 기록이란 선입견이 일반인들은 물론 일부 전문가들까지 사료 비판을 생략한 채 사실로 믿게 만들었던 것이다. 28세에 동갑인 세자를 잃은 그녀가 젊은 과부를 뜻하는 청상과부로서 [한중록]을 썼다고 지레짐작했던 것도 [한중록]을 오독하게 만든 원인의 하나였다. (……) 그녀는 20대의 청상과부로서 [한중록]을 쓴 것이 아니라 일생의 대부분을 권력투쟁의 현장에서 보낸 70대의 노회한 정객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중록]을 쓴 것이었다. --- pp.76~77 「이덕일, [역사에게 길을 묻다]」중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한중록]을 보는 이와 같은 관점과 맥락으로 이덕일 소장은 [사도세자의 고백]을 저술했다. 이에 대해 정병설은 [사도세자의 고백]이 제대로 된 근거와 논지를 갖추지 못해 역사서도, 소설도 못 된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 pp.60~61 「3장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중에서
김용섭 선생의 회고록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에 담긴 내용이다.
“6·25전쟁 이래로 남에서 제기되는 통사의 편찬 문제는, 아직은 깊은 연구에 기초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청산 없이, 우선은 기성의 일제하 세대 역사학자들에게 일임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기성학자들은 일제하 일본인 학자들에게서 역사학을 배우고, 그들과 더불어 학문 활동을 같이해온,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 계열의 학자들이 중심이었다. -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지식산업사, 2011년, 35쪽”
이렇게 해방 후 역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일본인 학자, 즉 식민사학자에게 역사학을 배운 이른바 실증주의 학자들이 해방 이후에도 통사를 편찬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해방과 동시에 해체됐지만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는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와 같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현재 주류 사학계의 뿌리 깊은 역사 전쟁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 pp.273~274 「10장 뿌리 깊은 역사 전쟁」중에서
Murray Perahia, piano
1. Molto moderato 19'02
4. Allegro ma non troppo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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