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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비대칭 탈냉전 1990~2020

by 이성근 2023. 10. 22.

 

비대칭 탈냉전 1990~2020이제훈 지음 서해문집 펴냄 2023.08

한국과 일본이 다시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한국군이 베트남에 돈 벌러 가서 죽고 죽이던 1965년 가을 세상에 나왔다. 1993년 가을 한겨레신문기자가 됐다.

199811월 첫 금강산관광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서 분단 한반도취재·연구를 필생의 업으로 삼았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시작과 중단, 다섯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여섯 차례의 북한 핵실험, 김정일의 죽음과 김정은의 ‘3세 승계’,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첫 남북미 정상회동 등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기록했다. 반전·반핵·평화의 한반도와 남북 8000만 시민·인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한국사회의 심부에 북한문제라 불리는 식민·전쟁·분단의 상처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아프게 느낀다. 하염없이 후진 일이 많은데, 신기하게 세상의 슬픔이 잘 보였다. ‘낮은 곳에선 세상의 민낯을 더 잘 볼 수 있다.

안다. ‘낮은 곳에서 세상을 보려 했지만 국적·지역·젠더·학력 차별의 양지에서만 살아왔다는 사실을. 시민·기자로서 이런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한겨레정치부 통일외교팀의 선임기자다. 한겨레편집국장과 한겨레21편집장, 한겨레신문사 노동조합장과 사주조합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2차 북핵위기발발 원인에 관한 연구(2008)로 석사학위를,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비대칭적 탈냉전(2016)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은 과정이다(서해문집, 2015)북한학의 새로운 시각: 열 가지 질문과 대답(역사인, 2018) 대전환시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길(오름, 2022) 등에 공저자로 참여했고, 코리안 엔드게임(삼인, 2003) 등을 공역했다

목차

추천사

여는 글: 정전 70, 다섯 번째 평화의 파도를 기다리며

 

1부 비대칭 탈냉전과 한 민족 두 국가의 시작 1990-1997

1 한소수교와 사라진 핵우산

2 남북한 UN 동시·분리 가입

3 하나와 둘 사이의 희비극, 남북기본합의서

4 김일성은 만세 부르고 김영철이 투덜거린 까닭은? 남북기본합의서

5 남북교류협력법, 분단사의 분수령

깊이 읽기 1989년 평양의 문익환과 황석영, 그리고 임수경

6 1992년 대선과 훈령 조작 사건

7 북핵문제, 미국이 남북관계에 심은 트로이목마

8 “한반도에 미군 있어야김정일의 파격 제안 걷어찬 미국

9 북일관계 정상화, 미국은 왜 두 차례나 틀어막았나?

10 한중수교, 동북아의 근본을 재편하다

11 북한이 던진 90일 시한의 핵폭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12 벼랑에서 추는 춤, 공갈과 협상의 앙상블

깊이 읽기 푸에블로호 사건, 북미관계 이상한 공식의 기원

13 벼랑 끝에서 열린 공존의 문,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14 김일성의 죽음, 근친증오의 폭발

깊이 읽기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 ‘귀동냥 외교의 악몽

 

2부 좁디좁은 평화의 회랑으로 1998-2007

1 김대중, ‘고난의 행군북에 손을 내밀다

2 금강산관광, 어느 실향민의 수구초심

3 “김정일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오시오

4 적대에서 악수를 거쳐 포옹으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5 김대중-김정일의 합창, “통일은 과정이다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6 개성공단, 남북협력의 가장 높고 넓은 고원

7 조선인민군 서열 1, 워싱턴에 가다

8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김정일-클린턴 북미정상회담 좌초

9 “북한은 악의 축부시와 네오콘의 도발

10 미국은 왜 2차 핵위기를 만들었나?

11 6자회담, 미국의 회피와 중재자 중국의 출현

12 9·19 공동성명, 한중 협력외교와 동북아 탈냉전 청사진

13 네오콘의 BDA 제재, 핵실험을 부르다

깊이 읽기 미국의 대북정책, 민주당과 공화당은 얼마나 다를까?

14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노무현-김정일이 벼린 평화번영의 꿈

15 포기할 수 없는 꿈, 한반도 종단 철도·도로

깊이 읽기 미국은 왜 남북연결사업에 비협조적일까?

 

310년의 겨울과 2년의 봄 2008-2020

1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과 북한붕괴론

2 금강산관광 10년과 멈춰 선 미래

3 김정일의 죽음, 관계회복 기회를 걷어찬 한국

4 서해 북방한계선(NLL), 한반도의 화약고

5 개성공단의 성민과 숙희들

6 누가 통일을 만드는 공장을 살해했나? 개성공단 폐쇄

7 김정은의 병진노선, 핵실험과 제재의 악순환

8 김정은의 평양시간과 우리 국가제일주의

9 전쟁위기에서 피어난 평화의 꽃, 평창올림픽

깊이 읽기 남북 화해·협력의 마중물, TEAM KOREA

10 문재인·김정은의 외침, “이제 전쟁은 없다” 2018 남북정상회담

11 6·12 북미공동성명, 김정은·트럼프+문재인의 탈냉전 설계도

12 트럼프의 변심, 하노이의 저주

깊이 읽기 북한에도 강경파-온건파 갈등이 있을까?

13 희망은 절망보다 힘이 세다, 2018 남북정상회담

닫는 글: 남북미중 4자회담으로 평화체제의 문을 열자

 

출판사 서평

두 개의 한국에 평화·공존을 묻다

한소수교에서 하노이 노딜까지,

UN 동시가입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

42개 장면으로 보는 남북관계사 1990-2020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질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질문을 조금 연장해보자. 남과 북의 관계가 냉온탕을 끝없이 오가며 풀릴 듯, 도무지 풀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비대칭 탈냉전이라는 렌즈로 1990-2020년의 남북관계사를 돌아본다. 1990년은 탈냉전이라는 이름의 대전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 냉전질서와 그 위에 놓인 한반도 분단체제에 일대 격변이 벌어진 때다. 이 해를 전후로 동·서독이 통일하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연쇄적 체제전환을 맞았다. 반면 한반도에서의 탈냉전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소련·중국(사회주의 진영)과 국교를 맺은 한국 대 미국·일본(자유주의 진영)과 수교에 실패하며 홀로 고립된 북한이라는 비대칭적 탈냉전이 그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기울어진 탈냉전을 바느실로 1990-2020년 남북 사이의 결정적 사건 42개를 한데 엮는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 30년을 한눈에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안에 숨은 맥락(남북의 불신과 북미 간 적대, 북핵문제의 근원과 해법,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미국의 본심)을 포착해 한반도 분단을 입체적으로 인식하는 안목을 선사한다.

당대 최고의 군사전략가로 노태우 정부(1988-1993) 시기 남북회담의 주역이자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1998-2008, 2017-2022)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설계자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이 책을 남북실록으로 평가한다. 실록의 집필자 이제훈은 남북관계의 현장을 빠짐없이 목격하고 기록해온 30년차 저널리스트이자 그 관심과 고민을 학문의 영역으로 확장해온 북한학자다. 그의 시각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 남북 공존과 평화라는 이상을 위해 무엇보다 사실과 현실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어떤 보수보다 보수적이며, 어렵사리 움튼 평화가 매번 뿌리내리지 못하고 짓밟히는 역사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 진보적이다. 이런 균형에 힘입어 이 책은 신실한 민족주의자가 아니어도 남북통일에 동의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이재에 밝은 시장주의자일수록 남북경협의 적극적 지지자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남북관계 30년을 먹기 좋게 정리한 역사교양서인 동시에, 좌우 이념과 무관하게 평화로운 일상을 바라는 한반도 주민 모두를 위한 공존의 길잡이다.

정전 70-절망하지 않는 희망을 위한 남북관계 이야기

3시즌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남과 북 사이로 끊길 듯 말 듯 좁다랗게 난 평화의 회랑을 따라간다. 1(1990-1997)에서는 노태우 정부~김영삼 정부에서 일어난 비대칭 탈냉전 초기의 주요 사건(남북한 UN공동가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한국의 탈냉전과 북한의 고립, 1차 북핵위기 등)을 다룬다. 백미는 남북 평화·공존의 두 수레바퀴(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함을 국제사회가 승인한 UN공동가입과 남북이 통일지향 특수관계임을 규정함으로써 이후 모든 남북합의와 화해·협력의 초석이 되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다. 그러면서도 통일 전 동서독이 체결한 기본조약과의 비교를 통해 남북기본합의서에 내포된 적대를 감지해낸 것은 이후의 남북관계를 내다본 듯 씁쓸한 복선으로 읽힌다.

2(1998-2007)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2차 북핵위기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 펼쳐진 대북포용정책(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6자회담 등)이 중심이다. 1-2부를 통틀어 중요한 발견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본심이다. 성사 직전의 북일수교(1992, 2002)를 두 차례나 막아서고 북핵문제 해결의 분수령이었던 6자회담 합의(9·19공동성명)에 재를 뿌린 행위 등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좌우하는 것이 동맹국의 평화가 아니라 오로지 미국의 패권유지 전략임을 드러낸다. 이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발견은 정치인의 역할이다. 흔히 남북관계의 관건으로 동북아 국제관계의 역학을 들지만,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일치시킬 줄 아는 정치인의 가치에 주목한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북방정책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이루고서도 비대칭 탈냉전의 유혹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성과를 깎아내린 노태우,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의 불쏘시개로만 동원하며 갈지자 행보를 보인 김영삼과 온갖 내우외환 속에서도 화해·협력정책을 밀어붙이며 협력과 평화의 선순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구축해낸 김대중·노무현의 대립항이 그것이다.

3(2008-2020)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9, 그리고 해빙과 동결을 거듭 오간 문재인 정부의 3년이 묶어 전개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북제재를 명분으로 내지른 금강산관광·개성공단 등의 교류협력 중단이 사실상 한국의 자해행위였음을 밝히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냉정히 회고한다. 김정은의 표준시 변경(‘평양시간’) 해프닝과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통해, 2023년 수면 위로 떠오른 북한의 투 코리아노선을 한발 앞서 진단한 대목도 눈에 띈다. 결론에서는 한반도 문제(남북 화해-한반도 비핵화-북미관계 정상화-평화체제 구축)의 해법으로 그간 시도해온 양자(남북·북미)-3(남북미)-6(남북미중일러) 협상이 아닌 남···중의 ‘4자 평화회담 테이블을 제시한다. 이는 미국-중국의 패권다툼이 치열할수록 한반도 문제에서 미중의 합의가 필수조건이 되는 역설적 역학과, 70년 전 조인된 한반도 정전체제 4개 당사국의 결자해지라는 역사적 흐름 모두에서 주목할 만한 제안이다.

 

한국의 보수 우파가 외면하는 역사

이제훈의 비대칭 탈냉전 1990~2020(서해문집, 2023)은 정전협정 70년이자 한·미 동맹 70년을 맞은 올해의 책이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소비에트(소련)와 동구 공산권이 몰락했다. 냉전의 한 축이던 공산권의 몰락이 지구 전역의 냉전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한반도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국은 소련(1990)·중국(1992)과 국교를 맺었지만, 북한은 미국·일본과 수교하는 데 실패했다. 기울어진 탈냉전 구도는 북한 정권을 불안하게 하고 핵게임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이지영 그림

비대칭 탈냉전 1990~2020은 지난 30년 동안 남한과 북한 정부가 적대를 해소하고 평화를 위해 기울인 네 차례의 중요한 시도를 세밀하게 복기하고 패착을 분석한다. 네 차례 시도는 다음과 같다.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1991. 9), 두 달 뒤에 남북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을 때(1991. 12) 빌 클린턴 행정부가 페리 프로세스라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남북이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2000. 6)을 했을 때 2차 남북정상회담(2007. 10)10·4 남북정상선언이 나온 때 2018년에 연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그해 6월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을 때. 이 시도들은 남한의 친미·보수 세력의 방해를 받았고,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중이던 트럼프조차도 변화보다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 군산복합체와 보수 강경파들의 제동에 걸려 회담을 깨고 말았다.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하기도 한 노태우는 북한이 미국·일본 등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하겠다고 공언해놓고,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를 방해하는 뼈아픈 실책을 했다. 이명박은 노무현 정부가 김정일과 함께 내놓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구상의 계승·이행을 거부했고, 박근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성사시킨 개성공단 사업을 백지로 만들었다. 그동안 보수 우파는 냉전을 녹이려는 진보 정권의 성취를 무효화하는 데 진력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동안 남한과 북한이 시도했던 번영과 평화를 위한 노력은 박정희와 김일성이 결단한 ‘7·4 남북공동성명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왜 이 사실을 외면하는가.

동맹의 풍경(나무연필, 2023)을 쓴 엘리자베스 쇼버는 20079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해 1월 한 미군이 홍대 인근에서 출근하던 환경미화원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기지촌 문제가 미군 부대 주변이 아닌 홍대라는 일반적인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은이가 기지촌에서 현장 연구를 시작한 2009, 30~40대 이상의 한국 여성은 접대 일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를 필리핀이나 중앙아시아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 메웠다. 한국 정부는 외국에서 온 접대부의 인권에 더더욱 무심하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기지촌은 1960~1970년대에 급성장해 2만여 명 한국인 성매매 여성들이 주한미군 6만여 명을 상대했다. 기지촌은 윤락행위등방지법에서 암묵적으로 면제되었고, 한국 관료들은 경제에 기여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성 산업을 육성했다. 이때 기지촌과 그곳의 여자들은 부도덕을 표상하는 것에 그쳤다.

19921028, 한 미군에게 윤금이씨가 잔혹하게 살해되면서 기지촌과 양공주는 새삼 한국의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1990년대 초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정점을 찍은 접대부의 수가 급감한 상태였다. 기지촌 문제가 이처럼 뒤늦게 떠오른 첫 번째 이유는 1950~1980년대에는 주한미군에 대한 그 어떤 반대 의견 개진도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신군부에 의해 광주민주화운동이 잔혹하게 진압된 19805월 이후 좌파 지식인 사이에 반미주의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기지촌은 한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접대부는 외세(미군)에 침탈당한 민족의 잃어버린 딸로 재현되었다. 기지촌의 복합적인 성격과 그곳 여성들(주민들)의 개인적 동기와 꿈은 가시화되지 못했고, 한번 결정된 민족주의적 서사는 홍대와 그곳의 클럽을 찾는 젊은 여성에게 부정적으로 적용되었다(‘오염된 딸’).

926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미국은 미··한 삼각 군사동맹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아시아판 나토 창설 계획을 실천에 옮겼고,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신냉전 구도가 들어서게 됐다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대한민국을 성토했다. 과연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일까. 마침맞게도 김성해의 벌거벗은 한미동맹(개마고원, 2023)이 정답을 가르쳐준다.

지은이는 한·미 관계를 고아와 양부모 관계로 본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36년 동안 부모 노릇을 했던 일본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입양아는 잠시 버려진 적이 있다. 1950112,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미국의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과 타이완은 제외된다는 일명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미국의 음모(군수산업을 부양하고 냉전 구도를 확립·확산하는 것)를 몰랐던 김일성은 오판하고 남침했다. 이후의 전황과 휴전 이후의 남북간 체제 경쟁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결론이지만, 잠시 버려졌다가 죽음 직전(전쟁)에 구출된(재입양된) 고아는 그때부터 다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유기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양부모의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고 입양아는 혼과 몸을 바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엘리트들은 일제를 매개로 근대화의 꿈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은이는 여기서 일본 대신 미국을 넣으면 어떨까?”라고 묻는다. 다만 일제는 강압적인 동화정책을 썼기에 조선인들은 쉽게 자신이 식민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나, 간접통치는 식민 상태임에도 자신이 식민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든다. “제국은 외교와 군사 정도만 장악하고 있으면 된다. 정치는 제국의 아바타에 해당하는 토착 엘리트에게 맡기는 게 좋다. 전통·문화·언어도 굳이 제국을 따라 할 필요가 없다. 원주민 사회의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 통제받는다는 사실을 잊거나 덜 민감해진다.” 대통령실이 도청당하고도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라고 천연덕스레 말하는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실 외교 책임자를 보면 지은이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시사인 / 장정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