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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일 하기 싫은 날(11.1.6)

by 이성근 2013. 6. 9.

 

 

사업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며칠째 헛돌고 있다.  무작정 떠나보기로 했다. 부전역에서 경전선과 동해남부선중  귀가시간을 맞추어 보니 영천이 적당했다.

 오전 11시 부전역사 계단에는 항상 이렇게 몇 사람이 앉아 있다.  무료급식 때문이다.  어떤 종교단체에서 12시 못되어 역전을 배회하는 노숙자들이나 배고픈 행인을 위해 베풀고 있다.  사실 추위 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배고픔이다.  어떤 목적으로든 한끼 식사를 나누어 준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시인 고은의 만인보에는 그런 장면이 무수히 나온다.  품삯 따위는 호강이다.  그저 먹여만 달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대한도 울고 간다는 소한, 그 명성 답게 수온주가 곤두박질하였다.  이 추운 날 해빛은 무엇보다 큰 선물이다.  그들은 그 빛을 즐기고 있었다.

 울산을 지나며 눈 쌓인 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주쯤 지나자 들판에 까마귀들이 지천이었다.  포항 일대에 폭설이 내려 입에 오르더니 근처 지방이 이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포항에 내린 적설양을 짐작할 만 했다.  부산에 이만큼의 눈이 내렸다면 해 본다. 아마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난리법석에도 우리집 막내는 좋아라 손뼉치고 좋아했을 것이다. 눈에 선하다.  

 영천역에서 내려 영천시장으로 향한다.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역전에서 주요 명소를 보고 시간을 가늠해 보았지만  턱없이 부족해 가장 영천다운 곳을 선택한 ㄱ소이 시장이었다.  영천 최대의 시장이지만 날씨만큼이나  썰렁하다. 

 진배기 할매국밥집에서 열차 타고 오느라 놓친 점심을 먹는다.  진배기가 뭐냐고 물으니 찐짜배기란 뜻이었다.  그 진짜란 무엇일까 .  사골 국물이 진하다.  대신 고기는 아주얇게 썰어 넣어 씹는 맛은 덜했다.  요즘 국밥기행을 생각 중이다.  부산에는 흔한 음식이지만 부산을 벗어나면 만나기 힘들다.  대신 영천은 소머리 국밥이 유명하다. 옛부터 유난히 객주집이 주막이 많았을 뿐 아니라 경상도 최대의 우시장이 있어  쇠고기 부산물이 많았다.  아무튼 진배기 할매국밥은  새우젖이며 양파 ,마늘, 땡초는  있어도  정구지(부추)는 없었다.   뭔가 허전하다 싶었는데.... 

 영천 돔베기장터로 알려진 공설시장을 돌아다 보았다.  돔베기는 또 뭔가 ?  돔베기는 상어고기를 토막내 솥에 쪄낸뒤 간을 전문적으로 맞추는 간잽이가 저염 소금으로 간을 알맞게 맞춘 뒤 장기간 숙성시켜 먹던 경상도 전통음식이다.  그리고 안동을 중심으로 돔베기가 없으면 제사를 지낼 수 없다고 할 만큼 제례에 중요한 음식이다. 얼마전 영천시는 안동간고등어를 벤처마킹해 돔베기를 상표등록하고 전통식품으로 지정했다.  영천은 가장 큰 돔베기 공급처다. 또 그 중에서도 양재기라 부르는 귀상어를 최고 친다.

 상어고기

 산적으로 만들어져 제사상에 오른다                                                                                            사진출처: uneile.egloos.com

 웃기는 노릇은 돔베기시장이라고 확인하고도 막상 돔베기 파는 어물전은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대신 황태포만 구해왔다.

 시장통이 썰렁했던 것은 구제역 때문이다.  지난 연말 부터 전통시장을 폐쇄했는데 그 기간이 종료시 까지다.  대책없는 일이다. 지난 연말 안동에서 발생된 이후 1월들어 모두 전국 130곳에서 우후죽순처럼 퍼지고 있다.  발생 농가의 소 .돼지는 전량 살처분 된다. 얼마전에는 생매장이 문제가 되기도했다. 

 구제역이란 ?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우제류)에 감염되는 질병으로 전염성이 매우 강하며 입술, 혀, 잇몸, 코, 발굽 사이등에 물집(수포)이 생기며 체온이 급격히 상승되고 식욕이 저하되어 심하게 앓거나 죽게 되는 질병으로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A급질병(전파 력이 빠르고 국제교역상 경제피해가 매우 큰 질병)으로 분류하며 우리나라 제1종 가축전염병 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제역은 처음 맞이하는 ‘악몽’이 아니다. 2000년 이후 4번째다.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MB께서 '긴급'구제역 대책 장관회의를 연데요. 그동안 무엇하다가 이제서야 긴급이라 하나요? 4대강예산, 형님예산 날치기할 때는 전광석화 같더니, 긴급 구제역 대책 장관회의에서 앞의 두 글자는 빼세요!”라고 지적했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축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롯데마트가 미국 소갈비를 수입한 뒤 대대적인 판촉에 나섯다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말 ‘통큰 치킨’을 팔다 영세상인들이 반발하자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주무부처인 농림식품부에서는 웹사이트에 구제역속보를 만들어 실태와 구제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구제역 조기 종식을 위해 국민이 지켜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설 명절에 구제역 발생 지역이나 축산 농가 방문을 자제해 주세요.

2. 부득이하게 축산 농가를 방문할 때 차량 소독은 물론 사람도 분무형 소독기 등으로 소독해야 합니다.

3. 포천에 방문할 때 소독 등으로 불편하실 수 있으나 꼭 필요한 조치이므로 적극 협조 부탁드립니다.

4. 연휴기간 동안 해외 여행을 가는 경우 현지 농장 방문이나 동물과의 접촉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5. 해외에서 돌아오실 때는 고기류 등 축산물을 가지고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6. 귀국 후 72시간이 경과되기 전에는 국내의 축산 농가 방문을 자제해 주세요.  라고 ... 대단한 대책이다.

 

현재 해당 농가는 물론 국민들도 공포를 느끼고 있지만 정부와 검역당국은 백신접종과 살처분 외에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5일 현재 82만 6000여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 됐다.  동물단체들은 이 중 73만여 마리의 돼지가 생매장됐다고 주장한다.   "...홍하일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위원장은 “구제역이 처음 발견됐을 때 초기에 잘 대처했어야 하는데 실패한 것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키웠다”고 진단했다.  홍 위원장은 사태를 이렇게까지 악화시킨 주 원인을 “국가축산정책과 검역시스템의 실패”에서 찾았다.

 

국가축산정책은 크게 병원균 대책, 숙주 대책, 감염경로 대책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정부가 공장제 축산을 장려하면서 숙주인 가축의 수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소농 형태를 장려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정책이 결정됐으면 가축의 수가 늘어난 것에 비례해 지방 검역 예산이나 인력도 증가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며 “말로는 검역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검역 예산과 인력은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관리해야 할 곳은 늘어나는데 검역인력과 장비, 검역 시스템은 과거 수준이니 이번처럼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재앙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번 구제역 파동은 예고된 ‘인재’라는 얘기다.

 

홍 위원장은 “장비와 인원이 옛날 수준이라는 얘기는 그만큼 방역체계가 부실하다는 말”이라며 “얼마나 부실한가 하면 정부가 백신 대책을 내놨지만 접종할 인력이 모자라 수의과 학생들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 열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는 이런 악조건에서 겨우 겨우 막아왔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해진 상황까지 온 것”이라며 “그동안 여러 차례 이 부분에 대해 지적했지만 정부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 이 같은 재앙을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이번 구제역 파동의 책임을 농가의 실수로 몰아가려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미디어 오늘 에서)

 

 기차 시간이 남아 역전을 돌다 여인숙에 눈이 간다.  여인숙(旅人宿 )이라 ? 규모가 작고 값이 싼 여관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모텔, 여관 또는 호텔이지만 예전엔 다 여인숙이었다.   민박의 다른 이름이었다.  장사가 되나 싶었지만  찾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가격은 15,000원  이란다.   아날로그 시절이 이곳에서는 유효하다.  기본적 가구인 텔레베젼 조차 고물상에 가서 뒤져야 할 만큼 오래됐다.  우물도 있고 펌퍼도 있다. 

 비맞는 여인숙

                     이용한

그대 없는 별에서 오늘도

숙박계를 써고

지난친 추억과 일박을 한다.

이번 세상은 너무 가혹해

티끌 속을 날아 다니는 것도 힘들군

그 옛날 토벌대를 피해

개마고원을 타박타박 넘는 것 만큼이나

더 이상 쫒기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부양할 가족도 없는데

나는 왜 아직도 사춘기처럼 아프기만 한가.

나는 왜 자꾸 속초 앞바다가 그리워지는가

이 비 맞는 여인숙에서

밤이면 독감처럼 파고드는.....'

엽서만한  그리움

아직도 추억의 뒷골목을 윤회하는

지구의 악몽

그 옛날 강원도에서의 내 꿈은 우편배달부였던가

그대 집 앞에 걸려 있는 낡은 우편함

끝내 편지 한 장 전하지 못하고

이렇게 나,  느티나무처럼 늙어서

흐릿한 눈속을 뒤덮는

크다란 적막

이 쓸쓸한 유배지에서

다 끝난 망명정부처럼 나는 웃고 있네 

 

 밀물여인숙 3

                        최갑수

창밖을 보다 말고

여자는 가슴을 헤친다

섬처럼 뛰어 오른 상처들

젖꼭판 위로

쓰윽 빈배가 지나가고

그 여자, 한 움큼 알약을 털어 넣는다.

만져봐요. 나를 버텨주고 있는 것들, 몽롱하게 여자는 말한다

네 몸을 빌려

한 계절 꽃 피다 갈 수 있을까 

몸 가득 물을 기어 올릴 수 있을까, 와르르 세간을 적시는

궃은 비가 내리고

때 묻은 커튼 뒤

백일홍은 몸을 추스린다

그 여자도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이곳에 왜 오는지를

비가 비를 몰고 다니는 자정 근처

섬 사이 섬 사이

두엇 갈매기는 날고

밀물여인숙

조용히 밀물이 들때 마다

(문학동네 1997년 여름시 당선작)

 

 

 오래된 여인숙에서

                              송경동

사랑을 잃고
가을바람에 날리는 거리의 검정 비닐처럼
길을 헤메다
하루 저녁
어느 낯선, 외등 하얀, 오래된 여인숙 명부에
가늘어진 이름 석 자
다소곳이 적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생수 한 병 요쿠르트 하나 수건 한 장 받아들고 들어가
깨진 벽 유리처럼 구겨진 커튼처럼
녹슨 창살처럼 벽지무늬가 다른 네 벽 처럼
우두커니 섰다가, 한순간 무너져
때 탄 이불보로 입막고
흐느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씨팔년 더러운 년 나쁜 년 치사한 년 퉤퉤 하며
마지막 자위를 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삶이 왜 잠깐
들렸다 가는 여인숙처럼 미련 없는 것이어야 하는지를
세상이 왜 무엇도 가져갈 것 없이 다만
잠시 쉬었다 가는 여인숙 같은 것이어야 하는지를
왜 또 저 하늘에는 저렇듯 많은 정거장들이 빛나고 있는지를
비루한 여인숙
가끔은 어느 절간이나 성당보다
더 갸륵하고 평온한
내 영혼의 안식처 

 

*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2009 창비시선

 이미 한물간 시절이 아직도 연탄 보일러  온기로 연기를 피워내고 굴뚝에는 고드럼이 붙었다.

 누군가의 춥고 외로은 밤이 저렇듯 하얗게 타다 갔을 것이다.

 시나브로 우리는 시설 좋고 편한 모텔을 이용한다만  모텔과 여인숙이 이웃한 이곳에서 묘한 감정의 여운이 있었다

 다시 영천역전, 

 영천이 별의 도시 라고 한다.  보현산 천문대 때문인가  

 

 

 

 

 16:33 부전행 무궁화를 타고 귀가한다.   무엇을 생각하고 정리했는지 별로 남는 것이 없다.   아마도 또 밤을 샐 모양이다.  

 

 


                         째즈명곡: 출처-다음블로그 음악과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