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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저어새 이야기

by 이성근 2017. 11. 6.

우리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저어새매년 봄 1천여 쌍 고향 서해 갯벌 찾아와

보금자리에 모여 자는 저어새를 찍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6초 정도 열었다. 물에서 한 다리로 선 채 잠든 새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  

잠자리로 날아든 새는 200마리가 넘었다. 물이 9m 넘게 차오른 어깨사리 만조 시간은 저녁 77. 갯벌에 물이 미처 차지 않은 오후부터 저어새가 인천 영종도 갯벌 매립 지역으로 날아들었다. 지난해 전세계에 남은 저어새 수는 3356마리(2016년 저어새 동시센서스)에 불과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이 새를 적색자료목록 위기종에 올렸고, 환경부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으로 지정했다. 한때 저어새의 개체 수는 300여 마리만 남기도 했다. 이제 가까스로 멸종 위기를 벗어난 신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저어새를 보려면 유엔사 관할 구역인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비도나 석도까지 들어가야 했다  

저어새 1천여 쌍이 봄마다 우리나라를 찾는다. 저어새는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나 무인도에 둥지를 만들어 번식한다. 새끼와 함께 대만이나 홍콩으로 날아가 겨울을 보내고 온다. 새의 고향은 서해 갯벌이고, 국적은 대한민국인 셈이다. 이번에 함께 월동지로 날아간 새도 내년 봄 다시 고향 서해 갯벌을 찾을 것이다.

   

  

저어새는 부리로 서로 목을 문지르며 구애행동을 한다.

 


부리와 머리를 날개에 파묻은 채 쉬는 저어새.

 

갯벌에서 쉬는 저어새 무리. 저어새는 썰물 때 갯벌에서 부리를 좌우로 저어가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는다.



장거리 여행을 위해 어린 새의 비행 연습도 한창이다. 다 자라지 않은 새는 날개깃 끝에 아직 검은색이 남아 있다.

 

저어새 H96. 새의 이동 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락지를 달았다.

 

사람이나 천적의 접근을 싫어하는 저어새의 잠자리에 가로등 불빛이 비친다.   한겨레21 11.2


한국의 저어새가 대만에서 대접 받는 이유?

 

아오꾸 습지에 저어새들이 하얗게 내려 앉아 쉬고 있다.

 

탐조문화가 시작된 나라는 영국이고, 그 문화가 전파되어 기틀이 잡힌 나라는 미국과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이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는 어떨까? 서구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일본이 가장 오랜 탐조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경제력과 인구를 바탕으로 태동하고 있다. 가장 뜨거운 나라는 따로 있다. 바로 대만이다. 튼실한 탐조 문화와 탐조 인구를 바탕으로 철새를 단순히 보는 것을 뛰어넘어 생태관광산업으로 발전시켜, 아시아의 탐조 문화를 이끌어 가는 다양한 활동을 선도하고 있다.

 

대만 국제탐조 행사 버다톤

지난달 말 타이완생태관광협회가 주최하고 타이완 교통부 관광국에서 후원하는 국제탐조 행사 ‘2017버다톤’(Birdathon)에 초청받아 대만의 탐조 문화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행사는 대만 남쪽 지역 타이난과 쟈이 일대에서 주말에 개최되었는데, 행사에 앞서 따쉐산과 아리산을 탐방하며 고유종을 관찰할 기회도 주어졌다. 초청받아 온 사람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미국·영국 등에서 탐조 관광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기자도 일부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행사를 하면, 정부관계자, 학자, 생태보호활동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데 비해, 실제 생태 관광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초대된 것은 매우 큰 차이였다.

 

대회에는 가족팀·청년팀·학생팀·외국팀 등이 참여했고, 24시간 스스로 새를 보고 그 기록을 제출해 철새를 가장 많이 관찰한 팀이 우승을 한다. 올해는 24시간 동안 160여종을 관찰한 팀이 우승했다. 과연 대단한 자원과 실력이다. 그리고 그 기록과 내용은 대회 홈페이지(http://en.taiwanbirdathon.org.tw)에 차곡차곡 잘 정리가 돼 있다. 한국의 철새 행사는 인터넷에서 검색이 잘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나고 나면 그 자료를 다시 찾기 정말 어렵다.

대회를 지켜보니 중요한 두가지가 관찰됐다. 하나는 저어새 사랑, 두번째는 고유종 자부심이다.

 

행사가 개최된 타이난과 쟈이는 동북아 특산종인 저어새의 최대 월동지이다. 전세계 3천여 마리 중에 2천여 마리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행사의 중심에는 항상 저어새가 있었고, 가는 곳마다 저어새의 보호를 강조했다. 저어새 생태 전시관도 따로 있고, 저어새 생태투어안내 자료도 잘 구비되어 있었다.

 

여기서 큰 아쉬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대만 사람들이 사랑하고 전세계인의 관심을 갖는 매우 중요한 새인 저어새의 고향이 바로 우리나라다. 한국에서 4~10월까지 경기서부 해안과 섬에서 번식을 하는 저어새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방치 수준이다. 민간단체가 자체 예산 또는 제한된 지자체 예산을 받아 몇몇 곳을 보호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저어새가 타이완에서 대접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우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한국에서도 생태관광으로 얼마든지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만의 고유종인 스윈호꿩이 아름다운 깃털 색을 자랑하고 있다.

 

그 많던 크낙새는 어디로 갔을까

대만은 섬나라이다보니, 고유종의 수가 많다. 고유종이란 그곳에만 있는 새이다. 전세계 탐조관광의 큰 흐름 중에 하나는 고유종을 보는 것이다. 27종의 고유종을 가진 타이완은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관리와 홍보도 매우 잘 되어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고유종 6, 특이종 7종을 관찰하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고유종이 있는가? 크낙새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20여 년전 광릉수목원에서 마지막 모습을 뒤로 하고 발견되고 있지 않다. 북한에는 아직 생존해있다고 전해진다. 1종의 고유종은 생태관광 측면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관광비용 대비 종수 적어 너무 비싼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산을 갖고 있을까? 우리는 동북아 고유종의 중요한 거점으로 철새 자원을 활용하기에 매우 좋은 위치에 있다. 예를 들면 세계의 탐조인들이 꼭 보고 싶어하는 새 중에 두루미가 있다. 철원에는 두루미 개체수도 많을 뿐더러, 서울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 재두루미 수천 마리도 함께 있고, 운이 좋으면 우리나라 7종의 두루미 가운데 4~5종을 한번에 볼 수도 있다(전세계 15).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경험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이 철원에 두루미를 보러 갈 수 있는 방법은 개인적으로 생고생을 하는 방법 뿐이다.

 

우리나라의 탐조관광은 생태교육과 생태관광 사이에서 표류하다가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예산을 받아 어린이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면 안정적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생태관광은 산업이고 사업이다. 사업성이 없다고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대만 고유종 새들을 모두 담은 퍼즐.

 

탐조 생태관광의 선순환에 도전해보자

대만에서는 협회가 아이디어를 내고 정부는 판을 만들어주고, 만들어진 판에 민간 탐조 관광 회사가 들어오는 여느 다른 산업과 다르지 않은 형태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정부·협회·업계 삼위일체의 협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탐조관광의 중심에 서고 있다. 볼거리가 많을 뿐만 아니라 보러 오는 사람들을 받아줄 관광산업으로서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우리도 키우자. 공익적 보호활동에만 치우치다가 정부 예산이 불가피하게 확보되지 못했을 때, 밀려오는 개발을 막을 방법이 없다. 철새로 돈을 벌어보자. 아주 건전한 돈을 벌어 철새를 지키는 선순환에 도전해보자./ 헌겨레 11.3 ·사진 이병우 탐조여행가·에코버드투어 대표

 

대만에서 촬영한 저어새. 위키미디어 커먼스



우정사업본부가 전쟁의 상흔을 지우고 야생동물의 피난처로 새롭게 태어난 DMZ의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한 ‘DMZ의 자연’ 시리즈 우표. /우정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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