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 짧아진 노동시간, 더 평등해진 남녀 7.7 한국
6시간만 일하는 사람들
오후 4시 반이면 학교로 데리러 오는 아빠 덕분에 초등학교 1학년 유니는 학급에서 가장 일찍 귀가하는 아이 중 한 명이 됐다. 빗길 퀵보드를 타고 하교하는 유니를 위해 헬멧을 씌워준 토미 오팅예씨가 딸을 안은 채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6시간 근무 ‘라테파파’ 오팅예씨
아이들 저녁도 직접 해 먹이고
아내와 번갈아 자유시간 가져
잊고 지내던 취미 생활도 시작
“양육 책임 부부가 똑같이 져야”
7세와 11세 두 딸을 둔 토미 오팅예(40)씨는 오후 4시가 되면 스톡홀름 동부의 함마르비 셰스타드에 위치한 초등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그가 일하는 IT기업 브라트가 6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 덕분이다. 쿵스가탄의 회사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로 30분을 달려 도착하면, 방과후교실에서 뛰어놀던 둘째 딸 유니가 격하게 달려 나와 품에 안긴다. 반 친구들 중 가장 일찍 귀가한다는 기쁨의 표현이다. 유니의 친구들도 부러움에 우루루 몰려나와 ‘라테파파’(한손에 라테를 들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끄는,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 오팅예씨를 반긴다. 스웨덴 정부 소속 연구재단의 기금 담당 부서장인 아내와 번갈아 아이들을 데리러 오지만, 아내는 하루 8시간 근무하는 터라 픽업 시간이 더 늦다. 이들 부부는 아빠가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면 엄마가 오후에 픽업해 돌보고, 다음날은 순서를 바꿔 ‘교대제’ 형식으로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이른 시간 학교로 데리러 오는 유니(오른쪽 세 번째)의 아빠 토미 오팅예(왼쪽)씨를 보고 친구들이 교실 밖으로 몰려나와 이것저것 묻고 있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노동시간 줄여야 아빠도 ‘컴백홈’
“2015년 브라트로 옮겨오기 전 회사에서는 하루 12~14시간씩 일했어요. IT업계는 정글 같아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도 별로 없고,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죠. 저희 부부에게는 자녀 양육의 책임을 똑같이 나눠진다는 게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회사 시스템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오팅예씨는 “매주 월요일엔 늦게 출근하고 화요일엔 일찍 퇴근하는 식으로 근무해야 했으니 여간 눈치가 보인 게 아니었다”며 “출근하면 ‘아, 나 좀 늦었어. 그런데 내가 어제 늦게까지 일한 거 알지?’ 끊임없이 어필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6시간 근무제는 삶의 모든 것을 바꾼 ‘게임체인저’였다.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가는 일까지 하루에 다 할 수 있고, 자녀들과의 관계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 전에는 아침마다 늦잠을 자거나 꾸물거리는 아이들을 재촉하느라 언성을 높이고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일쑤였다. 짧은 대답과 퉁명스런 표정에 아빠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은 이제 아빠와 여유 있고 따스한 아침시간을 보낸다. 오후에는 아이들을 하교시켜 20~30분이면 만들 수 있는 스파게티 미트볼이나 팬케이크를 해 먹이고, 날씨가 좋은 날엔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어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외식을 하기도 한다.
미술을 좋아하는 큰 딸과 농구선수가 꿈인 둘째 딸 덕분에 그림과 농구라는, 20여 년간 잊고 지내던 취미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한 사람이 아이들을 돌보는 저녁에 다른 한 사람은 체육관에 가 운동을 해요. 운동을 마친 사람이 오후 8시쯤 귀가하면 미리 준비해 놓은 저녁식사를 부부만 따로 먹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스웨덴 전통과는 차이가 좀 있죠.” 스웨덴의 가장 평등한 부부 중 하나라고 자신하는 오팅예씨는 “짧아진 노동시간 덕분에 보다 평등한 가사ㆍ육아 분담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비가 오는 평일 오후 4시 반. 토미 오팅예씨가 학교 앞에 도착해 큰 딸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11세인 큰 딸은 이제 혼자서 등ㆍ하교를 하기도 한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노동시간 단축이 저절로 양성평등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국내 한 은행이 늘어난 개인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남녀 직원 별로 분류해봤더니, 남성 직원들이 외국어 공부 등 자기계발에 여가 시간 대부분을 사용한 것과 달리 여성 직원들은 가사와 육아에 주로 쓴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젠더 갭은 여전했던 것이다. “스웨덴에서도 종종 보는 일이에요. 스웨덴이 국제 비교에서는 양성평등 1위 국가이지만, 여성이 더 가사일을 많이 하는 게 여기서도 흔한 일이죠.” 오팅예씨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부부 둘이서 해도 힘든 일이고,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잘 맞춘다는 건 남녀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라며 “가정에서든 회사에서든 노동시간 단축의 핵심 목표 중 하나가 양성평등”이라고 강조했다.
율리아 벤델린 오스 CEO는 "육아를 통해 익히는 멀티태스킹 능력은 고도의 숙련기술"이라며 "기업으로서도 육아에 주도적인 아빠 직원을 뽑는 것이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비스뷔=박선영 기자
함께 벌어 함께 키운다 ‘2.0 모델’
부부 중 한 사람(주로 남편)은 풀타임으로 일하고 그 배우자(주로 아내)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네덜란드의 ‘1.5 모델’과 달리, 스웨덴은 남녀 모두가 동일하게 노동시간을 단축해 풀타임으로 일하는 ‘2.0 모델’이다. 높은 고용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성평등 이슈가 제기되는 네덜란드와 차별되며, 스웨덴이 성 평등한 노동의 ‘최종적 대안’으로 꼽히는 이유다. 스웨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전일제 맞벌이 부부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로, 전체 부부 중 전일제 맞벌이 비율이 68.3%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이 비율이 20.6%에 불과하다. 이 숫자는 가사노동 분배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국이 남성 가사 분담률 16.5%로 OECD 최하위인 반면 스웨덴은 남성들이 가사노동의 절반에 육박하는 42.7%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7.3%포인트의 여전한 차이에 스웨덴 여성들은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여전히 성차별과 젠더 이슈가 중요한 사회 의제라고. 스웨덴 여성들이 함께 살아가는 건 훨씬 더 열악한 조건의 다른 나라 여성들이 아니라 자신보다 7.3%포인트 가사 일을 덜 하는 스웨덴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초등생 남매를 키우는 광고회사 오스의 크리스토퍼-로빈 모린 예술감독은 아내가 항공기 승무원이다. 일주일에 3일은 비행을 나가고 야간 비행도 잦다. 이 기간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도맡아 하는 건 남편의 몫이다. “극히 평등한 젠더관”에 따라 아내가 집에 머무는 때에도 요리는 똑같이 나눠서 한다. 모린 감독은 아이를 낳고 4개월 육아휴직을 썼으며, 남은 휴직기간은 아이를 돌볼 일이 있을 때마다 꺼내 쓰고 있다.
#전반적 노동시간 단축 효과
여성만을 위한 지원은 불평등 불러
직업 당연시… ‘주부’라는 말 안 써
20년 전 男 육아휴직은 승진포기
지금은 당연한 권리 성평등 누려
오스 CEO인 율리아 벤델린(45)씨도 뮤지션 남편과 평등하게 집안일을 나눠 하며 15세 아들 펠레와 12세 딸 니케를 키웠다. “남편이 아주 요리를 잘해서 음식은 전담했고, 저는 요리 젬병이라 세탁을 맡았죠.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우리 세대는 대체로 이렇게 평등하게 가사를 분담하죠. 하지만 20~30년 전에는 아니었어요. 변화를 만들어 낸 거예요.”
벤델린씨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는 게 중요하다”며 “’도와줘서 고마워’ 같은 말은 베이비시터 아닌 아이들 아빠에게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웨덴도 20년 전에는 육아휴직 하는 아빠들을 출세 포기한 사람이라고 비아냥댔어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문화가 바뀌었죠. ‘이건 문제야.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한 여성들 덕분에요. 자꾸 이 얘기를 꺼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 아직도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는 게 이상한 겁니다.”
벤델린씨는 “우리 부부를 보며 ‘저 집은 남편이 요리를 다하더라. 나쁜 엄마’라고 흉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평등한 관계에 만족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요즘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을 안 쓴 아빠를 보면 다들 가여워 해요. ‘뭐라고? 엄마만 그걸 했다고? 오, 넌 정말 많은 걸 놓쳤네’라고 말하죠.”
월요일 오전 스톡홀름 거리에서 홀로 유모차를 밀고 다니며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 스웨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들 '라테파파' 덕분에 스웨덴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OECD 최상위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양성평등, 고부담-고복지의 핵심고리
부부 합산 18개월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스웨덴은 세계 최강의 양육시스템을 갖춘 국가다. 육아휴직 18개월 중 3개월은 반드시 아빠가 사용해야 엄마도 나머지 기간을 쓸 수 있으며, 아빠가 사용하는 휴직기간이 길수록 더 많은 보너스가 지급된다. 9개월씩 동등하게 쓰는 부부는 전체 육아휴직자의 14%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빠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육아휴직급여는 15개월간은 임금의 100%, 3개월은 80%를 받도록 돼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단체협약을 통해 전 기간 100%에 근접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초면에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직업일 정도로 사회적 아이덴티티를 중시하고, 주부(Hemmafur)라는 단어 자체를 금기시할 정도로 직업 있는 여성을 권장하는 문화다. 고용률 76.3%인 스웨덴에서 15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프랑스 50%, 독일 55%, 네덜란드 57%보다 높은 61%(세계은행, 2016)인 건 당연한 귀결이다.
고부담-고복지 국가인 스웨덴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하는 정책들은 매우 중요하다. 소득 30~50%의 세금이 막대한 복지 재원을 조달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여성친화적 육아정책을 시행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일을 하게 해 더 많이 걷은 세금으로 복지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웨덴 사무직노동자연합의 아만다 플로린 홍보 담당 책임자는 “스웨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식으로, 법정 노동시간인 주당 40시간보다 적은 평균 38시간 정도를 일하고 있다”며 “섬머타임 기간에는 35시간만 일하는 게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만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이 없는 대신 공공보육과 육아휴직 제도, 단체협약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육아기 여성이 풀타임 노동자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초과근로 시간도 연간 200시간을 넘길 수 없으며, 한 달 최대 50시간이 넘어선 안 된다.
광고회사 오스의 CEO인 율리아 벤델린(왼쪽)씨가 종강 기념으로 학부모들이 주최한 가족동반 피크닉 에서 딸 니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스뷔=박선영 기자
지난달 1일 스웨덴 고틀란드섬의 주도 비스뷔. 오후 4시가 넘자 발트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공원 잔디밭으로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피크닉 가방을 든 채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날은 벤델린씨의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종강을 기념해 기획한 방과 후 가족 피크닉 행사가 열리는 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늦둥이 막내부터 고등학생 누나와 오빠까지 총출동해 부모들과 함께 야구 경기를 하며 짧은 스웨덴의 여름을 즐겼다. 학교 행사가 있다고 하면 자유롭게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스웨덴 직장문화 덕분에 목요일 오후 4시의 공원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6시간 근무제를 시작한 후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엄청 늘었죠. 이제 다 커서 변성기인 아들은 ‘엄마, 왜 벌써 왔어요?’ 멀뚱하니 묻지만, 저녁이면 다 같이 모여 소리 내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요.” 엄마를 꼭 빼닮아 활달한 열두 살 딸 니케는 스웨덴 전통 티타임 문화인 ‘피카타임’을 예찬하며 “집에서 가족들끼리 갖는 피카가 너무 좋다 보니 베이킹에도 푹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스웨덴 고틀란드섬 비스뷔의 한 초등학교 피크닉 행사에서 학부모와 자녀들이 한데 어울려 야구경기를 하고 있다. 목요일 오후 4시 반의 풍경. 비스뷔=박선영 기자
“기업가로서도 남성의 육아 참여는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만 출근을 못한다면 회사의 직원들이 그 일을 나눠 해야 하고, 그러면 여성 고용이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겠죠. 아빠와 엄마가 똑같이 육아를 분담하지 않으면 사회 전반에 불균형이 생겨나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엄청난 역량 개발의 기회입니다. 기업가들은 동시에 서너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고도의 숙련기술이 육아 경험에서 나오고, 많은 업무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험 자체가 도움이 된다는 걸 인식해야 해요.”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45분으로 OECD 최하위다. 통계 작성 이래 10여 년간 1~3위를 오르내리는 한국의 최장 노동시간은 집안일 안 하는 남성을 만드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다. 벤델린씨는 “변화는 느리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수십 년을 노력했어요. 하룻밤에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일단 아빠들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행복에 ‘감염’될 수 있는 기회를요.” 스톡홀름ㆍ비스뷔=한국일보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4년마다 한달 호텔서 회복 휴가… “근로자 건강이 곧 회사의 미래”
힐링 프로그램 운용하는 독일 기업
불규칙한 생활하는 독일 관제사 로터씨
비용도 회사 부담… 복귀 땐 가뿐
독일 한 공항의 관제탑.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독일 뮌헨공항에서 관제사로 근무하는 옌스 로터(39)씨는 2~3일마다 밤낮이 바뀌는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
독일에서 2번째로 복잡한 공항인 뮌헨공항은 하루 1,100여 편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며, 6명씩 3개 조가 24시간 관제탑을 지킨다. 관제사들은 오전 5시45분~오후 1시15분에 근무하는 오전조, 오후 3시30분~10시45분 오후조, 오후 10시30분~오전 6시 야간조 근무를 돌아가면서 한다. 10일 뮌헨에서 만난 로터씨는 “낮 근무를 이틀 하다가 밤 근무를 하면 잠들기가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비행기 이착륙을 관리하는 일이다 보니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스트레스가 큰 로터씨는 3년 8개월마다 1개월씩 ‘힐링 프로그램’을 갖는다. 회사가 호텔을 빌려 한 달 동안 온전히 로터씨의 힐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낮에는 요가ㆍ스포츠 프로그램 등 로터씨에게 특화된 맞춤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로터씨는 “회사에서 근로자별로 스트레스를 측정해서 회복휴가를 보낼 주기를 정한다”며 “2주 정도 힐링 프로그램을 하다보면 몸과 정신이 회복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3년 8개월마다 1개월씩 힐링 프로그램을 갖는 관제사 옌스 로터(뒷줄 오른쪽)씨와 가족. 뮌헨=박재현 기자
독일에서 번아웃은 병으로 간주된다. 독일 루드비히샤펜에 위치한 화학업체 바스프의 직원들은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워크앤라이프센터를 찾는다. 워크앤라이프센터는 근로자들의 건강과 근무환경은 물론, 일ㆍ가정 양립을 총괄 관리하는 바스프 내 조직이다. 2016년에는 5,600여명의 직원이 이 센터에서 심리치료와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번아웃으로 진단한 직원은 그날 바로 병가를 보낸다. 진단에 따라 병가 기간이 달라지는데 최대 42일 동안 유급 병가가 보장된다. 복귀할 때는 의사와 해당 직원의 상관이 회의를 갖고 노동시간, 근무환경 등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 필요한 경우 환경을 개선한다. 시빌레 외스트라이혀 워크앤라이프센터장은 “일을 많이 해 걸린 병이니 회사가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직원들의 건강은 곧 일의 효율과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약 휴가기간 중 질병 등으로 아프면 그 날짜만큼 추가 휴가를 제공한다. 크리스티앙 지엔틀 바스프 홍보팀 직원은 “휴가 중에 아팠다고 해도 회사 업무의 영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진단서만 제출하면 휴가를 더 준다”고 설명했다.
독일 바스프 워크앤라이프센터의 가족 사무실. 직원들은 필요할 때마다 이 사무실을 예약해 자녀를 돌보며 일을 할 수 있다. 바스프 제공
‘근로자의 건강이 곧 회사의 이익’이라는 독일 기업의 인식은 구체적인 연구사례들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2006년 독일 정부 산하 직업안전건강청(BAUA)은 ‘토니 머스터만’이라는 종업원 20명의 인쇄업체를 대상으로 사례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2년 간의 실험 결과, 주기적인 의사 진단과 상담으로 직원 병가율을 9.5%에서 7%로 낮추자 총 근로시간이 첫 해에 2,660시간, 두 번째 해에 1,960시간 많아졌고, 야근은 줄면서도 약 2만4,500유로(약 3,100만원)의 이익이 발생했다. 직원들의 건강이 생산성을 높이고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최장 시간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은 건강에 대한 위협이 심각하다. 지난해 6월,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에서 주당 40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있는 근로자 1,575명을 조사한 결과 근로시간과 질병은 비례해 나타났다. 주당 근로시간이 51시간 이상인 근로자들은 주 40~50시간 근로자들에 비해 불안증상 47%, 우울 34%, 번아웃 28.6%, 스트레스 지수 13.8%가 더 높았다.
외스트라이혀 센터장은 “노동자가 건강을 해치면 부서, 회사가 흔들립니다. 회사가 잘 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게 노동자의 건강이에요. 건강한 직원이 곧 건강한 회사를 만듭니다”라고 강조했다.
독일 ‘근로시간 계좌제’… 저축한 추가근무 시간 언제든 꺼내 써
나 없어도 회사는 굴러간다
#1
500인 이상 대기업 89%가 운용
육아나 여행에 써… 삶의 질 높아져
모았다가 3년 일찍 퇴직한 경우도
회사는 호황기 일땐 근로 늘리고
불황기에는 공장 가동 줄여
#2
9시간 근무 원칙 독일 관광버스 기사
목적지 못 가도 시간되면 운전대 놔
엄격한 노동시간 적용 등 밑받침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얀 부어크(맨 왼쪽)씨 가족. 부어크씨는 초과근무로 근로시간 계좌에 저축해 둔 시간을 빼서 일찍 퇴근해 세 아이를 돌보는 데 사용하고 있다. 뮌헨=박재현 기자
독일 뮌헨에서 제약사 바이엘 영업직원으로 일하는 얀 부어크(40)씨는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5살 엠마, 3살 요나스,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야콥. 부어크씨는 매일 오전 7시30분에 요나스와 야콥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엠마를 유치원에 보낸 다음 오전 8시에 제약영업을 시작한다. 일주일에 이틀은 오후 6시에 퇴근하지만, 이틀은 오후 3시까지만 일하고 금요일엔 재택근무를 한다.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가 병원에서 밤근무를 하는 날 일찍 퇴근해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기 위한 것이다. 주당 40시간을 일하도록 돼 있는 부어크씨는 야콥이 태어나기 전 1년 동안 주당 45시간씩 일하며 저축해 놨던 시간을 요즘 일찍 퇴근할 때 꺼내 쓰고 있다. 휴일인 10일 뮌헨의 2층짜리 자택에서 만난 부어크씨는 연신 거실과 방을 오가며 정신없이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근로시간 계좌제가 없었다면 육아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시간 계좌제란 노동자가 회사와 계약한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한 만큼 자신의 계좌에 저축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는 제도다. 하루 8시간 일하도록 돼 있는 직원이 10시간을 일했다면 2시간을 계좌에 기록해 두었다가 휴가를 쓰거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 장기계좌의 경우 쌓아 둔 시간만큼 조기 퇴직도 가능하다. 초과 근무를 했을 때 추가 수당을 받지 않는 대신 일을 쉬거나 줄이는 경우에도 똑같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 독일에서는 전체 기업의 44%, 근로자 500명 이상 대기업의 89%가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을 만큼 일반적이다.
노동자 회사 지역까지 윈-윈-윈
노동자 입장에서 근로시간 계좌제는 가정을 돌볼 여유를 주는 동시에 노동 부담을 감당할 만하게 만드는 마술지팡이와도 같다. 독일 자동차 업체에서 일하는 한 근로자는 “추가 근무가 많지만 어차피 나중에 다 쓸 수 있는 노동시간이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일한다”며 “동료 중에는 2주 동안 가족 여행을 다녀온 사람도 있고, 차곡차곡 모아 3년 일찍 퇴직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경기에 따라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어 요긴하다. 요한 프레이 BMW 인사 담당 대외협력팀장은 “근로시간 계좌제가 있기 때문에 회사가 경기에 따라 숨을 쉬듯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황기에는 숨을 들이마시듯 근로시간을 하루 10시간까지 늘려 수요를 맞추고, 불황기에는 숨을 내쉬듯 공장 가동을 줄인다. 프레이 팀장은 “덕분에 불황기에 회사 경영이 어려울 때도 숙련된 노동자를 해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피터 캐머허 BMW 종업원협의회 대변인은 지역사회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계좌제를 이용해서 장기 휴가를 가는 게 독일에서는 일상이 됐습니다. 그렇게 여가에 지출하는 소비가 지역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이죠. 근로시간 계좌제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출산율을 높이고 지역경제까지 윤택하게 만드는 제도입니다.”
계산 철저한 독일, 불안한 한국
독일 뮌헨 로펌에서 하루 6시간씩 파트타임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정희영(39)씨는 점심을 먹지 않는다. 점심시간 때 일하는 대신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오후 2시30분에 퇴근한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이보다 더 일찍 퇴근해야 하는 날은 계좌에 저축해 놓은 시간을 빼 쓴다. “아이가 낮 12시15분에 학교가 끝나서 점심을 챙겨줘야 해요. 교대조로 일하는 아이 아빠 일정에 따라 제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날은 오전 11시30분에 퇴근하고, 대신 다른 날 더 오래 일해요.” 정씨는 “일찍 퇴근하기 위해 회사 승인을 받을 필요는 없다”며 “일찍 집에 가도 계좌에서 꺼내 쓰는 걸로 생각하는 문화여서, 내가 자리에 없다는 표시만 하고 가면 된다”고 말했다. 사후에 일한 시간을 팀장에게 보고하면 계좌에 근로시간이 쌓이거나 빠진다.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활동 중인 이지원 노동전문 변호사는 “독일에서는 기본적으로 노사 신뢰가 강합니다. 출퇴근 시 카드를 인식해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회사도 있지만, 손으로 써내는 회사도 많아요. 추가근무도 엄격한 검증은 불필요하고 노동자가 했다고 보고만 하면 근로시간 계좌에 올려줍니다. 그렇다고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올리는 사람도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추가 근로나 조기 퇴근 등을 일일이 관리자가 감시하고 확인해야 한다면 근로시간 계좌제는 관리비용이 너무 커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우려하는 시각이 없지 않다. 2012년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기존 보상휴가제(대체휴가제)를 근로시간 계좌제로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상정된 적이 있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이 의원은 “20대 국회에 다시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돼도 노사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유령법안’이 되기 십상이라는 예측이다. 근로자가 노동시간을 부풀리려 하거나, 회사가 초과 근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경우 계좌제는 있으나마나다. 이 변호사는 “신뢰와 함께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과 문화가 있어야 근로시간 계좌제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원 바이에른주 노동전문 변호사. 이 변호사는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노동자 보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뮌헨=박재현 기자
한국에서 계좌제 성공하려면
신뢰는 서로 믿자는 말만으로 쌓이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 엄격하게 노동자를 보호하는 관련 법과 제도가 밑받침이 돼 굳건한 신뢰가 형성됐다. 예컨대 독일의 관광버스 기사는 하루 9시간 이상 운전이 법으로 금지돼 있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도 버스를 세우는 일이 있다. 버스에 장착된 GPS가 기사의 운전시간을 실시간으로 회사에 전송하고, ‘9시간 운전’을 어기면 회사가 관할 지방 정부로부터 경고ㆍ징계를 받기 때문에 기사가 운전대를 잡으려 해도 회사가 막는 상황이 종종 연출된다. 근로시간 계좌제도 사업장별 노조에 해당하는 종업원협의회가 상시 감시한다. 이 변호사는 “회사의 위반사항이 있으면 종업원협의회가 이사회에 안건을 상정해 징계한다”고 말했다. 제도를 어긴 관리자는 산별노조가 나서서 고발한다.
법 체계와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는 근로시간 계좌제를 도입하려면 법 개정과 함께 여러가지 선결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지금처럼 보장된 연차휴가조차 쓰지 못하는 장시간 노동 문화에선 계좌제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근로시간 계좌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과 함께 법정 근로시간과 휴가 보장 등 노동자 권익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장치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독일과 달리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 할증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회사는 추가 수당 대신 휴가를 주면 비용절감 효과가 있지만, 노동자 입장에선 계좌제를 반기지 않거나 할증 휴가를 원할 수 있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야간ㆍ휴일근무 수당으로 낮은 급여를 보전하는 2,3차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 근로시간 계좌제로 임금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며 “도입에 앞서 산별노조가 임금교섭권을 갖고 원-하청 업체 간 임금 격차를 어느 정도 줄여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외 업종을 두지 말고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해야 계좌제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사용자연합(BDA)의 나탈리아 스톨즈 단체협상부장은 “근로시간 계좌제는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는 역할도 하는 만큼 경제상황이 안 좋을수록 시행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잘 시행되지 않을 것을 염려해 도입을 주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이라고 왜 불가능하겠어요? 지금이야말로 적기입니다. 노사정이 토론을 통해 적절한 한국형 모델을 찾아내면 됩니다. 물론 노동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 사각지대를 없애고, 기업문화 개선과 노사 교육도 병행해야죠. 그렇게만 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노동환경을 열 수 있습니다.”
뮌헨ㆍ베를린=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 ‘미니잡’ 고용률 높였지만 질 낮은 일자리 양산
주유소 보조 등 월 급여 57만원 미만
독일 전체 노동자 중 22%가 종사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우 수두룩
독일 뮌헨 중앙역 부근의 한 잡화점. 미니잡 노동자들이 주로 이런 곳에서 일한다. 뮌헨=박재현 기자
“독일에 와서 일만 하고 제대로 외식 한번 못 했어요.” 아르헨티나인인 마뉴엘 슐츠(17)씨는 지난해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하고 할아버지가 태어난 독일을 경험하러 프라이부르크에 왔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독일어학원을 다니고,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한다. 주 8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버는 돈은 290유로(37만6,000원) 남짓. 방세만 300유로(38만9,000원)를 내는 그는 생활비로 부모님으로부터 매달 400유로(51만9,000원)를 받는다. 슐츠씨는 낮 시간에 할 또 다른 미니잡을 찾는 중이다.
고용률 제고의 비법인가, 질 낮은 일자리일 뿐인가. 독일 전체 노동자의 약 22%(2013년 기준), 733만여명이 종사하는 미니잡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미니잡은 월 급여 450유로(약 57만원) 미만의 일자리로,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한국의 초단시간 근로와 비슷하다.
미니잡은 독일의 고용률을 크게 높인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2003년 미니잡 도입 이듬해 고용률은 64.3%였는데 2008년 70%를 넘어서 2012년 72.8%까지 올랐다. 여성 고용률의 상승폭은 더욱 급격하다. 2004년 59.2%에서 2008년 64.3%로 높아지더니 2013년에는 77.8%까지 상승했다. 미니잡 종사자 중 여성이 62.3%(2013년 기준)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니잡이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했을 뿐 정규직으로 가지 못하는 ‘끊어진 사다리’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2010년 독일 고용통계청 조사에서 미니잡 종사자 중 다른 일자리를 원하지만 옮기지 못한다는 응답이 73%나 됐다. 미니잡이 주로 매장ㆍ주유소 보조(17%), 청소(15%), 사무보조(10%), 음식ㆍ숙박업(10%) 등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는 일자리여서 다른 직업을 구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 수준과 사회보장 등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 독일 정부가 뒤늦게 미니잡에도 건강보험과 연금 등을 보장하도록 했지만 최근까지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거나 사회보장에서 배제된 노동자가 상당수라는 조사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경력단절 여성의 고용률을 높인다며 단기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을 늘려온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히 한국에서는 초단시간 근로가 업무에 필요해서라기보다 사용자가 퇴직금, 휴가, 수당 등을 회피하기 위한 일자리 쪼개기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어 단기간ㆍ저품질 일자리에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상철 한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초단시간 근로에 대한 사회보장 사각지대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취약계층을 좋은 일자리로 이끄는 중간 다리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며칠 밤새워도 수당 無 ‘노동자 자유이용권’ 누가 허락했나
대가 못 받는 공짜 야근
게임 개발업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모여 있는 경기 성남시 판교의 테크노벨리는 밤 늦게까지 각 사무실이 뿜는 불빛으로 환하다. 화려한 불빛의 이면에는 과로와 번아웃에 시달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악용되는 포괄임금제
야근 일상인 3년차 게임업체 직원
10시 후 퇴근해도 택시비 1만원뿐
밤샘 땐 퇴근기록 없어 못 받기도
계약서에 ‘제 수당’ 문구 넣고
무한대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수당이요? 오후 10시 퇴근이면 1만원이고, 자정을 넘겨 일하면 1만5,000원이에요.” 경기 성남시 판교동 테크노벨리에 위치한 대기업 게임업체에서 근무하는 3년 차 게임개발자 김성근(가명)씨는 매일 오전 10시에 출근한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한 정상 퇴근 시간은 오후 7시쯤이지만, 김씨는 오후 10시 이전에 퇴근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12시간이다.
김씨는 입사 이후 줄곧 오후 10시를 넘겨 퇴근하면 나오는 택시비 1만원을 자신의 추가 근무 수당이라고 생각해 왔다. 통장에 월급과 함께 나오는 이 택시비를 제외하면 다른 수당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후 10시에 끝나면 고민이 없다. 오후 11시에 일을 마쳤을 때 고민이 시작된다. “1시간 더 있다가 5,000원을 더 받을지, 그냥 1만원 받고 집에 갈지 고민돼요. 그냥 기다렸다가 12시 맞춰서 집에 가는 경우도 있고요”
야근에 받는 것은 택시비 1만원뿐
작년 말, 김씨가 속한 부서는 게임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등 이벤트를 앞두고 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근무)에 돌입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버그를 찾느라 3일 내내 하루 3시간씩 쪽잠을 자고 퇴근 없이 일했다. 게임업계에서 크런치 모드 3일이면 짧은 편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 기간에는 택시비조차 단 한 푼도 못 받았다는 점이다. 퇴근 기록이 있어야 택시비가 나오는데, 퇴근을 안 하니 택시비도 나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김씨는 자신이 받아온 것이 순수 교통비였을 뿐, 회사에서 지급되는 추가근무 수당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팀 동료는 집이 가까워 집에 가서 씻고 2시간을 자고 온 덕분에 1만5,000원이라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밤새 퇴근 없이 사옥에 머무르며, 하루 12시간 일하는 날보다도 손해를 봤다. 그렇게 저녁도, 취미도, 삶도 포기한 채 주 5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의 대가로 받는 연봉은 3,000만원 남짓이다.
김씨가 이렇게 회사에 공짜 야근을 헌납하는 근거는 이른바 포괄임금제다. 근로기준법엔 근거가 없지만 대법원 판례로 인정돼 온 포괄임금제는 상시적인 초과근무가 예상되는 업종에서 일정 금액을 수당으로 추산해 급여로 일괄 지급하는 관행이다. 엄청난 금액도 아닌 약소한 수당을 책정해놓고 무한대 야근, 주말근무를 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노동자 입장에서 추가근무를 거부할 명분이 부족해 보이고, 야근을 당연시하는 사내 문화가 형성돼 있기 십상이라 자연스럽게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 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2016 게임산업종사자 노동환경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0.2%가 주 52시간, 6.5%가 주 60시간 넘게 근무했고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67.1%에 달했다.
포괄임금제 관행은 산업계에 폭넓게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2009년 사업체패널 조사)에 따르면 매일 연장근로를 하는 곳의 40.6%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조사에서도 100명 이상 사업장의 41.3%가 포괄임금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일하는 시간이 기형적으로 긴 장시간 노동 구조를 재생산해 온 악질적인 제도 중 하나가 포괄임금제”라며 “포괄임금제 계약으로 연장근로가 합의된 상태라 하더라도 법정 연장근로 한도(주 12시간)를 넘겨 무한대로 일을 시킬 수는 없는데도, 오랜 시간 노동당국의 관리감독 없이 방치돼 인력을 쥐어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정부 감독 없이 포괄임금제 남용
연장근로 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고, 근무시간이 서버에 버젓이 기록되는데도 포괄임금제가 시행되는 경우는 사측이 이를 임금감축 수단으로 악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국내 게임업체 12곳을 대상으로 기획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근로자 3,250명 중 2,057명(63.3%)이 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해 6시간 더 근무했고, 연장근로 수당 누락, 퇴직금 과소산정 등의 방법으로 직원들에게 미지급한 급여가 44억원에 달했다. 시민단체 ‘노동자의 미래’의 박준도 정책기획팀장은 “기업들이 계약서에 ‘각종 제 수당’이라는 문구 한 줄 넣어두고, 연장근로 수당이 다 포함됐다는 식의 수당 지급 회피기술만 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유명무실 특례제도
최대 근로시간 제한 없는 노동자
전체 53%나 해당… 과로로 탈진
“저녁 있는 삶 막는 각종 악법들
이참에 패키지로 손봐야” 지적
연장근로 수당을 안 줘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으니, 휴식으로라도 갚아 준다는 생각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갚긴 뭘 갚고, 쉬긴 뭘 쉬겠어요. 쉬겠다고 했다간 집으로 돌아가서 아주 오래 푹 쉬는 거죠.”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오후부터 새벽 5시까지 컵라면만 먹고 게임 개발을 하다가 회사 수면실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오전 11시에 일어나 또 일을 반복하는 생활이 빈번한데도, 바짝 일한 만큼 다음에 쉰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며 “한 마디로 노동시간이 ‘부도수표’같은 존재”라고 일갈했다. 당연히 과로와 탈진 문제가 곪아 터져 나온다. 지난해 세상을 버린 tvN 이한빛 PD 사건도 장기간 초과 노동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게임업계 사정에 밝은 한 노무사는 “정부의 관리감독이 없는 틈을 타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를 무분별하게 도입하고 이를 ‘노동자 자유이용권’처럼 악용해 장시간 노동, 저임금 구조에 크게 이바지했다”며 “근로기준법상 규정이 아니라 판례로 굳어진 제도다 보니 노조가 소송을 제기해 문제삼지 않는 한 당연시되는 관행을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례제도 등 패키지로 손봐야
업종에 따라 예외적으로 최대 근로시간 제한을 없앤 근로시간 특례제도도 법정 노동시간 규제를 유명무실화하는 악명 높은 제도다. 본래 취지는 업무 특성상 연장근로 시간이나 휴게시간의 한도를 규제하기 어려운 업종을 특례 업종으로 정한다는 것이었으나 12개 해당 업종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52.9%(2010년 기준)에 달하고 있어 사회 전반의 장시간 노동을 부추긴다. 특례 업종과 포괄임금제는 현장에서 ‘노동자 자유이용권’ ‘인간 무제한 요금제’ 등으로 불린다. 이 노무사는 “이런 악성 제도들이 주 40시간이라는 법정 최대 근로시간을 형해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시 퇴근이 가능하려면 이 같은 제도들을 패키지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선 연구위원은 “노동계 곳곳에서 과로사와 과로자살 문제가 터져 나오는 등 장시간 노동의 부작용이 극에 달한 만큼 저녁이 있는 삶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각종 악법들, 즉 포괄임금제, 노동시간 특례업종, 최대 주 68시간 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고용노동부의 자의적 행정해석, 반인권적으로 운영되는 성과평가제 등을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어차피 한밤까지 일할 텐데...’ 업무 집중도 떨어져
바짝 일하고 빨리 퇴근하자. 근무시간 중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 빨리 퇴근할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직장인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들 근무시간 절반 ‘낭비’
SNS 보고 잡담하며 1시간54분
불필요한 회의 등 2시간30분 써
獨 근로자 점심은 자리서 간단히
“3시 퇴근… 집중해 일해도 빠듯”
지난달 9일, 독일 철강업체 아셀로미탈의 아이젠휘텐슈타트 공장 인사팀에서 근무 중인 질케 베렌(46)씨는 점심을 대부분 자기 자리에서 샌드위치로 해결한다.
주 30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면서 점심시간 없이 일을 하고 빨리 퇴근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근무시간이 짧은 만큼 주어진 시간 내에 내 일을 마쳐야 할 책임이 있다”며 “일하는 중에는 개인적인 일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질문에 답하자마자 바로 일에 집중했다.
7일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빌딩 지하 식당가는 오전 11시40분부터 회사원들이 들이닥쳤다. 낮 12시에 이미 자리는 꽉 차 자리를 잡으려면 15~20분을 기다려야 했고 주문해 음식이 나올 때까지 10~15분 정도가 걸렸다. 실제로 먹는 시간은 짧아도 이래 저래 빠듯하게 1시간 정도를 점심시간으로 쓰는 것이 한국 회사원들의 풍경이다. 2015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549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58.8%가 “점심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실제 식사시간은 10~20분(43.1%)을 꼽은 사람이 많았고, 나머지 시간을 커피를 마시거나(28.7%), 낮잠을 자며(18.2%) 보냈다.
13일 오전 11시 40분 서울 중구의 한 식당가. 차례를 기다리는 직장인들로 인해 식당 앞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기다리는 시간은 15~20분에 이른다. 박선영 기자
‘근로자들이 식사와 사적 업무로 시간을 낭비해 늦게까지 남아 일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지라도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언명은 진실이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 점심시간이라도 여유 있게 지내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항변할 직장인도 있겠지만 바짝 일하고 빨리 퇴근할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직장인 역시 없다.
한국 기업 특히 사무직에서 업무시간 낭비가 많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2013년 국제 회계·컨설팅업체 언스트앤영(Ernst&Young) 한영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직장인은 하루 평균 9시간30분을 직장에서 보내면서 인터넷 검색, 잡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카카오톡 등에 1시간54분(22.4%)를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필요한 회의ㆍ중복 업무에 쓰는 시간도 2시간30분(29.4%)이나 됐다. 9시간30분의 근무시간 중 총 4시간24분(51.8%)이 낭비되는 셈이다. 언스트앤영 한영은 낭비되는 시간을 경제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146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시간 누수를 30%만 줄여도 연간 44조원의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기업들이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집중해서 일하자는 ‘911 캠페인’, 특정시간 동안 사내 메신저 작동을 중지시키는 집중근로시간 제도 등을 도입해 왔지만 장시간 노동과 헐렁한 근무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았다.
근로자의 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접근으로는 현실 개선이 어렵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사무직의 경우 사람을 대하는 텔러와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직원에게 똑같은 근로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며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해 단기간 집중해 일을 끝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자의 하루 업무가 명확히 할당되고 일을 마치면 자율적으로 퇴근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근로자 스스로 시간 낭비를 줄이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에게 책임과 권한을 함께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적절한 근무제를 도입해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준다면 근로자는 스스로 시간 낭비를 없앨 것입니다. 장시간 노동 개선을 위해선 노사 모두 힘을 합쳐야 합니다.”
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 야근 또 야근… 제발 집에 좀 보내주오
저녁 누리는 삶 vs 빼앗긴 삶
직장인 가장 바라는 복지는 ‘시간’
최우선 근무환경 설문 1위는
“상사 눈치 안 보는 정시퇴근”
행복, 정신적 만족 원하는 세대
한국사회 성장논리 더는 안먹혀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조사 결과 직장인들이 가장 바라는 복리후생 제도는 교통비 지원도, 자사 제품 할인도 아닌 '휴식'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취업도 연애도 내 집 장만도 버거운 시대, 젊은 직장인들이 회사에 가장 바라는 복지는 무엇일까.
넉넉한 교통비 지원, 파격적 사원 할인, 자기개발비 지급, 고용안정? 모두 정답이 아니다. 가장 큰 염원은 바로 ‘내 시간’을 되돌려 받는 일이다. 만성적 야근, 일의 연장이라는 접대와 회식, 심지어 업무를 마쳐도 상사 눈치를 보느라 자리를 못 뜨는 사내 문화, 직원의 출산과 육아엔 관심이 없는 인력구조 등으로 인해 ‘야근 좀비’로 살고 있는 이 시대 직장인들은 아우성친다. “나, 집에 갈래!”
첫째도 시간, 둘째도 시간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4월 전국 17개 시도 19~49세 직장인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9~34세 직장인이 가장 바라는 ‘기업의 복리후생 제도’(복수응답) 1위는 출산 및 육아지원제도(육아휴직, 어린이집 운영 등)였다. 응답자의 41.3%가 이 같은 복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2위는 39.5%가 선택한 유연한 근태제도(탄력근무제, 출퇴근 시간선택제 등)였고, 3위는 안식월 등 장기근속 지원제도(안식연월, 장기근속자 포상휴가 등)로 25.6%가 택했다. 하나같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능하게 할 ‘시간’에 대한 요구였다.
보다 연령이 높은 35~49세 직장인 역시 최대 관심사는 휴식, 여가였다. 1위가 안식월 등 장기근속 지원제도(37.3%), 2위가 유연한 근태제도(36.5%)였다. 다만 출산기를 지난 만큼 출산육아 지원(22.4%)보다 의료건강 지원(27.7%)과 주거 지원(27.5%)에 대한 요구가 앞섰다. 두 그룹 모두 자기개발비 지원, 교통비 지원, 자회자 제품 할인 등의 물질적 보상을 원한다는 응답은 20% 이하 또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또 가장 선호하는 근무환경으로는 두 그룹에서 모두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퇴근문화’가 64.8%(19~34세), 55.5%(35~49세)로 압도적 1위로 꼽혔다. 2위는 역시 ‘유연한 출퇴근 시간 조절’로 34.7%(19~34세), 28.5%(35~49세)의 응답을 기록했다.
3_2017-06-08(한국일보)
보상 없는 장시간 노동 왜?
세계 최장 노동과 함께 고도성장을 이룬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서 개인 삶과 여가에 대한 욕구가 폭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작용이다. 가장이 회사에 헌신하고 전업주부가 육아를 전담하며 조직에서의 성공으로 이를 보상받던 시절은 과거가 됐다. 맞벌이가 대세이나 육아부담은 여전하고 경제적 보상도 크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취업 후 결혼과 출산, 육아의 문턱에 진입하는 19~34세 직장인, 특히 여성들에게 ‘내 삶을 돌볼 시간’은 복지이기에 앞서 경력을 유지하느냐 단절하느냐를 좌우할 결정적 요인이다. 입사 9년 차 직장맘 박현지(34ㆍ가명)씨는 “계획에 없는 야근이 잦다 보니, 오후 7시 반에 퇴근하도록 돼 있는 아이돌보미에게 늦게까지 있어 달라고 부탁하느라 늘 죄인 같은 심정”이라며 “그저 지금 포기하면 다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돌보미에게 추가근로 시간당 1만원씩 챙겨 주는 박씨는 “야근을 한다고 회사에서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보니 열심히 일할수록 돈도, 시간도 손해를 보는 이상한 구조”라고 말했다. 시간부족이 가처분 소득의 감소로, 소득 감소가 다시 시간부족으로, 돌고 도는 악순환이다.
최근에는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퇴근 이후 돌발노동까지, 상황이 더 악화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전국 17개 시도 제조업 및 주요 서비스 업종 근로자 2,4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70.3%가 업무시간 이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기기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추가로 일한 시간이 주당 11시간이 넘었지만 따로 보상은 없었다. 이 때문에 근로자들은 ‘수면’(44%), ‘여가, 문화 및 교제’(20.9%), ‘가사 활동’(18.6%)을 줄여야 했다.
성장논리 안 먹히는 요즘 직장인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돌연사, 성인병을 유발하는 등 건강 위협 경고등은 켜진 지도, 외면하고 산 지도 오래다. 평일에는 무조건 야근, 주말에도 걸핏하면 출근하는 게 일상인 15년 차 직장인 최상현(42ㆍ가명)씨는 “육아휴직이나 안식년월을 써서 가족과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어보지만, 어쩌다 칼퇴근을 하고 주말에 쉬더라도 탈진상태로 뻗어 있기 일쑤”라며 체념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주당 근무시간이 61시간 이상이면 40시간 이하의 경우보다 심혈관질환 위험이 약 2배가 높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수두룩한데 불법적인 장기간 근무를 하지 않으면 과로사로 인정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진수 대학내일20대연구소장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지향했던 성장중심주의, 기업을 위해 직원의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에 대해 가족으로부터의 행복,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세대가 충돌하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것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 최상현씨는 “선배들은 ‘사회생활 다 그렇다’, ‘직장이야말로 공동운명체’라는 논리로 회사에 헌신하는 삶에 명분을 부여했지만, 지금은 그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도 아빠 없는 걸 당연시하는 유치원생 딸을 보고 깊은 회의에 빠졌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아빠가 집에 있기만 해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아이 크는 것도 못 보면서 ‘내가 이러려고 고생해 돈을 버나’ 싶은 생각이 잦다”고 했다. 직장인들이 중시하는 가치는 급속히 변하고 있지만 기업의 근무환경은 정체돼 있는 셈이다.
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 한국 노동자들은 왜 ‘야근좀비’가 되는가
칼퇴근 방해하는 제도들
포괄임금제, 근로시간 특례제
장시간 노동 유발 대표적 관행
정부 자의적 해석탓 주 68시간도 가능
일본보다 두달 더 일해도 임금은 3/4
밥 먹듯 하는 야근과 휴일근무, 상한이 정해져 더 받지도 못하는 추가근로 수당,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나라 취업자의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두 번째로 긴 2,113시간이다.
2015년 기준 OECD 회원국의 연 평균 노동시간은 1,766시간으로 우리나라가 347시간이나 많았다. 한국 노동자는 일본보다 2.2달 더 일하고도 임금은 4분의 3 수준으로 받고 있으며,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4.2달을 더 일하고도 실질임금은 70%, 시간당 임금으로 따지면 절반수준에 그친다. 정시 퇴근과 일ㆍ가정 양립, 초과근무 제한 등을 방해하는 제도들이 얽히고 설켜 세계 최장시간 노동이라는 고질병을 낳는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대표적 관행이다. 근로기준법엔 근거가 없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인정돼 왔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보상 즉 급여나 수당은 실근로시간에 따라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상시적인 연장, 휴일, 야간근무가 예상되는 업종에서 시간 산정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예측, 합산해 지급하거나 아예 각종 법정수당을 합한 총액을 월급으로 지급하는 실무상 관행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09년 사업체패널 조사에 따르면 매일 연장근로를 하는 곳의 40.6%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었다.
또 다른 복병은 근로시간 특례제도다. 업무 특성상 연장근로시간이나 휴게시간의 한도를 규제하기 어려운 업종에 한해 그 한도를 없앤 제도인데, 특례라는 말이 무색하게 광범위한 직종에 적용되고 있다. 당초 1961년 입법 당시 지정한 12개 업종의 고용비중은 1993년 전체의 37.7% 수준이었으나, 2010년 기준 52.9%에 달한다. 이를 10개 업종으로 줄이기로 한 노사정 합의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갈등과 맞물려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조장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상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하루 8시간)을 넘을 수 없다. 하지만 12시간 연장근무가 허용돼 한도는 주 52시간으로 늘어나고, 여기에 더해 “1주일을 평일 5일”로 해석하는 고용노동부의 자의적 행정해석 탓에 최대 68시간(주중 40시간+연장 12시간+주말 16시간)을 근무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상 주 40시간제는 말뿐, 처벌 없는 탈법적 장시간 노동이 계속돼 왔다.
이는 휴일수당을 추가 할증하지 않는 수당 계산법으로도 이어져, 노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휴일근로에 대해 휴일 할증과 연장 할증으로 각 50%씩 통상임금의 100%를 추가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자 측의 주장이지만, 고용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50%만 할증하고 있다. 기업들이 추가고용 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해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이유다. 최근 재판에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통상임금의 100%를 수당으로 얹어줘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관련 사건 10여건이 계류된 대법원에서는 아직 판례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월급 1인분, 일은 3인분… 직무관리 없는 한국은 ‘과로우울’
국내기업들 ‘인력 쥐어짜기’
정확한 업무와 양 제시하지 않아
상사 투하하는 ‘일 폭탄’ 맞기 일쑤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고생, 억울
한국의 노동자들이 세계 최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근원적 이유 중 하나는 마구잡이 식으로 부여되는 과도한 업무량이다. 직무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기술이 부재하기 때문에 적정 업무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노동자는 2~3인분의 일을 홀로 떠안아야 한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적정 업무량이요? 그런 게 어딨습니까. 인사와 퇴사로 결원이 생겨도 ‘엔빵’(n분의 1로 나눠 업무 막기)이 기본이고, 충원 없이 일하다 보면 그게 그대로 정원이 되는 구조인데요.” 국내 한 상장사에서 5년째 주식담당자(IR)로 일하고 있는 윤지훈(가명ㆍ32)씨는 과중한 업무 때문에 여러 차례 상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한 적이 있다.
야심하도록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게 너무 싫어 업무시간에는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 가며 일부터 끝내고 보는 윤씨는 사내에서도 손이 빠르다는 칭찬을 받을 만큼 업무 효율이 높다. 하지만 업무량은 가히 살인적이다. 기획본부 소속으로 일하다 보니 기획팀 등 옆 팀의 업무가 자주 넘어오고,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영어능통자라는 이유로 영어와 관련된 업무는 대부분 윤씨의 몫이다. 그렇다고 투자자들을 위한 자사 주식 분석이라는 본업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도저히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니에요. 2인분, 3인분이 기본이죠. ‘사람을 더 뽑아달라’ 여러 번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늘 똑같아요. ‘상황은 이해하지만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거죠.” 윤씨의 회사는 3년 전에 비해 고객 미팅이 2~3배 늘었을 정도로 잘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윤씨 혼자서 미팅 업무를 진행하는 건 똑같다. 성과를 낼수록 업무는 늘고, 회사는 성장하는데 직원은 고통스럽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만성적 과로우울에 시달리는 이유다.
‘최소 인력으로 최대 성과를’
대한민국이 노동시간 최장국가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직무관리의 부재다. ‘채용-교육-배치-업무 할당-성과 관리’의 인사 전 과정에서 노동자가 해야 할 정확한 업무와 업무량이 제시되지 못한 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식의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한 직무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명확한 업무 분석과 기술에 기반해 채용과 업무 할당, 성과 관리, 보상까지 이어지는 직무중심 인사관리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연공서열에 의한 사람중심 인사관리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직원들은 상사가 투하하는 ‘일 폭탄’을 고스란히 받아 안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 인사팀에서 수년간 근무한 A씨는 “외국계 한국지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적정 업무량을 산출할 만큼 직무분석이 안 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외국 기업들이 '추가근무를 시키지 않기 위해' 직무분석을 하는 것과 달리 한국 기업은 인당 생산성 최대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게 근원적 차이”라고 말했다. “개인별 업무분장과 업무범위가 설정돼 있어야 소요시간도 정확히 예측되는데, 한국 기업들은 일단 주어진 인력에 최대한 많은 업무를 부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원칙이라곤 최소의 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낸다는 것뿐이다.
직무관리의 부재는 일을 빨리 끝내면 또 다른 업무를 재빨리 할당하는 방식으로 유능한 직원의 효율을 잠식한다. 윤지훈씨는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고생하고 억울한 구조”라며 “이제는 다 해놓은 일도 감춰뒀다 데드라인에 맞춰 보고하는 경지에 올랐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2년 전 윤씨의 팀에 두 명의 결원이 생겼을 때 팀장과 팀원 모두 죽을 동 살 동 일한 결과 인원이 전혀 보강되지 않았다. 충원하려던 당초 계획이 ‘팀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이유로 물거품이 돼버렸다. 반면 성과가 나지 않고 간간이 사고까지 터졌던 옆 팀에는 즉각 인력이 보충됐다. 한 편의 부조리극 같았다.
도저히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를 맡겨놓고 말로는 정시퇴근을 격려해봤자 소용이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능력 평가할 땐 ‘야근이 최고지’
‘칼퇴근’과 ‘철밥통’의 아이콘으로 불리지만, 공무원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 업무를 담당하는 3년차 공무원 고나리(가명ㆍ27)씨는 처음 입사해 사무실 곳곳에 스탠드가 놓여 있는 걸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가족의 날’인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15분 청사가 강제소등에 들어가면, 어두운 사무실에서 컴퓨터만 켠 채 남은 업무를 하기 위한 용도의 스탠드였다. ‘스탠드 야근’이 문제가 되자, 요즘은 오후 6시 30분~7시면 불을 다시 켜준다.
“일주일에 사나흘이 야근이에요. 밤 9~10시까지 야근하는 게 다반사니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셈이죠.” 주당 60시간에 육박하는 고씨의 장시간 노동 역시 과중한 업무량이 원인이다. 공공부문이라고 직무관리가 잘 되고 있을 리 없어 고씨의 업무는 지자체 예산업무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주거급여, 각 사무실의 회계, 현안 보고서 작성, SNS 인증샷을 통한 출장 복명까지 다종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연관성 없는 업무가 너무 많아요. 업무들이 연계돼 있어야 그나마 효율적인데 마구 투척되는 전혀 다른 단위업무들을 하다 보니 더 힘든 거죠.”
야근을 성실함, 능력의 척도 삼아
비효율적 회의, 과도한 보고 탓
직장인 43% “주 3일 이상 야근”
스웨덴은 ‘무능의 상징’ 간주
하나의 직무단위로 분류하기 어려운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노동자 1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앓고 있는 질병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펴낸 논문 ‘임금직무 체계 변화실태와 직무급의 과제’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적 관행은 사람에 직무를 맞추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개인적인 능력이 높은 직원에게는 추가적인 업무가 부여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한 명 뽑으면 여기저기 돌려쓰고, 포괄적으로 돌려쓰니 직무평가가 어렵다. 일이 많으니 야근이 불가피하고, 누구나 야근을 하니 나도 야근을 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 야근이 성실과 능력의 척도가 되는 기업문화가 이렇게 유지된다.
경영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 의뢰로 작성한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국내 100개 기업의 직원 총 4만951명 중 43%가 주 3일 이상의 야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근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비효율적 회의(61%)와 과도한 보고(59%), 불명확하거나 일방적인 업무지시(45%)로 조사됐다. 대리급 직원 45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조사에서는 회사에서 보내는 총 10시간58분 중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시간은 5시간 32분에 불과했다. 뚜렷하게 할 일이 없음에도 조사기간 중 매일 남아 야근을 한 사람들은 업무시간 생산성이 45%로 평균 58%에 비해 훨씬 낮았다. “야근이 조직에 추가적인 가치를 전혀 창출하지 못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야근의 역설”이었다.
“야근은 무능의 상징”… CEO 결단이 중요
H&M 본사에서 사용자 경험(UX)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는 양효진(36)씨는 스웨덴에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2015년 4월 H&M에 입사했다. 한국에서는 대학연구소와 민간기업 등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관련한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다. 상사가 퇴근해야 컴퓨터를 끌 수 있었던 한국에서와 달리 스웨덴에서는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하루 8시간만 근무한다.
“서류상으로는 한국과 근무시간이 똑같죠. 다른 점은 스웨덴에서는 가급적 야근을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근로계약서를 쓰는데 근무시간을 넘겨서는 일을 하지 말라는 권유사항이 적혀 있더라고요.”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치지 못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게 스웨덴의 직장문화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H&M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양효진씨는 “업무를 몰아주지 않고 잘게 쪼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게 스웨덴과 한국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 같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박선영 기자
그가 오후 5시 반이면 퇴근할 수 있는 이유는 회사와 하기로 계약한 일만 하는 덕분. “한국에서는 웹디자이너에게 포스터 디자인, 브로셔 디자인 등 정해진 업무 외의 일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사람이 닳거나 말거나 소모품으로 보는 거죠. 하지만 여기는 일자리가 잘게 쪼개져 있어요. 명확히 기술된 직무를 보고 지원해 그 능력만으로도 채용 여부가 결정되고, 입사 후에도 그 일만 잘하면 되는 거죠.”
한국도 변화의 바람 불어
SK 이노베이션, 정시 퇴근 위해
강제소등, PC 추적 접속 실시
“CEO의 결단이 가장 중요” 강조
양씨는 입사 초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옆자리에 앉은 스웨덴 사람으로부터 ‘어디 아프냐? 도와줄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버스 안의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쏠려 있는 걸 보고 뒤늦게 깜짝 놀랐다. “그 후 유심히 살펴보니 스웨덴에선 아침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조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야근과 회식에 시달리며 거의 전원이 졸던 한국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었죠.”
야근과 회식을 '증오'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기업의 중추로 자리잡고 있다. 효율적 직무관리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 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억만금도 싫다, 시간을 다오’ 외치는 밀레니얼 세대가 대거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면서 ‘인건비 뽑아먹기’식 경영의 한계를 절감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2012년 가족친화우수기업 대통령표창을 받은 SK이노베이션의 한 부장급 인사는 “CEO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며 “위에서 강하게 밀어붙여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정시퇴근 문화의 조기정착을 위해 SK이노베이션은 당시 CEO 주도 하에 오후 6시 강제소등, 소등 후 사내 PC 접속 이력 추적, 적발 시 팀장 경고, 연차 100% 소진 실패시 본부장 보너스 삭감 등 강제 조치를 시행했다. 회식도 1차만 밤 9시 이전에 종료토록 했다. 5년 여가 지난 현재는 ‘야근은 무능력의 척도’라는 인식이 조직문화로 자리잡았고, 회사는 지난 2년간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했다. “처음에는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주고 강하게 실행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역행은 절대로 불가능하죠. 대기업이 바뀌어야 중소기업도 바뀌고, 기업 전반에 문화가 확산되지 않겠습니까.”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사람중심 인사관리의 유연성과 재량권은 고도성장기에는 효과적이지만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시스템”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명확한 직무분석과 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포괄적으로 업무를 부여하고 포괄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던 비과학적 방식은 한국의 최장 노동시간을 지탱해온 두 축이다. 이제 이 축에 균열이 가고 있고, 더 많은 균열이 가야 한다.
Sweet Sweet Smile - Carpe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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