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는 할아버지
김현숙
할아버지 방에는
날짜만 있는
달력 하나 걸려있어요
날짜 밑에는
감자 심은 날
모내기 한 날
둘째네 다녀간 날
송아지 낳은 날
손 씨랑 논물 때문에 싸운 날……
일기처럼 빼곡히 적혀 있어요
6월 7일 할머니 제삿날엔
<무심한 사람>이라 적혀 있고요
10월 8일 내 생일날엔
<강생이 생일>이라고
미리 쓴 일기도 있어요
비밀 없는 할아버지 일기장 읽으면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에 와도
할아버지 그동안 뭐하셨는지 다 알 수 있어요.
사진캡쳐: 다음블로그 김남숙시인
쑥국 -아내에게
최영철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애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 흘러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Dont't Forget To Rem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