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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이 개만도 못한 버러지들아 -다산 정약용

by 이성근 2013. 11. 3.

 

피를 토하듯 세상을 고발한 ‘참여시의 작가’ 다산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기자

▲ 이 개만도 못한 버러지들아…노만수 엮어옮김, 앨피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치르는구나!”(‘애절양·哀絶陽’)1803년 전남 강진의 백성이 스스로 남근을 잘라버렸다. 그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근을 들고 관아의 문을 두드렸지만 소용없었다.

 

대체 무슨 사정이었을까. 부부는 사흘 전 아이를 낳았다. 마을 이장은 기다렸다는 듯 핏덩이를 군적에 편입하고는 부부의 소(牛)를 토색질해갔다. 그러자 남편은 “내가 남근을 잘못 놀린 탓에 아이를 낳았다”며 자해한 것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고발한 군정 문란의 생생한 현장이다. 갓난아이는 물론 죽은 사람까지 군적에 올려 군포(군대 가는 대신 내는 세금)를 징수하는 무자비한 가렴주구에 백성들은 녹아났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남근까지 잘라버리고 말았을까. 다산의 고발시와 글을 읽고 있노라면 피가 거꾸로 솟고 몸서리가 쳐진다. “시대를 가슴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不傷時憤俗非詩)”라고 절규한 다산이 아니던가. 다산 정약용의 저작물을 엮어 논한 책 <이 개만도 못한 버러지들아>는 이런 ‘참여작가’로서의 다산을 흥미롭게 풀고 있다.

 

“~똑같은 우리나라 백성들이라네/ 마땅히 세금을 거둘 셈이면/ 부자들에게 거두어야 옳구나(가矣是富人)/ ~왜 품팔아 빌어먹고 사는 무리에게만 치우치는가.(偏於傭개倫)”(‘하일대주·夏日對酒’) 다산은 전정의 문란을 한탄하면서 ‘부자감세’ 대신 공평과세와 ‘부유세’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을 예언하기도 했다.

“유리걸식하는 백성이 길을 가득 메웠고, 마을은 텅 비었습니다. 수령과 감사는~애오라지 백성들만 노략질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남쪽 지방에 우환이 있을 것입니다.”(‘여김공후·與金公厚’)

 

이 시가 나온 지(1809년) 85년 뒤 다산의 우려대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다산의 칼날은 사단칠정이 어떻고, 주리·주기론이 어떻고 하면서 공허한 당파싸움을 벌이던 선비들을 겨눈다. 그는 특히 송시열을 ‘머저리(癡)’라고 하고, 그를 맹신하고 신봉하는 무리를 ‘뭇바보(衆愚)’라 폄훼한다.(‘술지·述志’) 그러면서 ‘경세제민’을 도외시한 ‘과거학’과 함께 지역·적서·당파의 차별을 ‘백성의 적’으로 삼았다.

 

“10명 중 8~9명을 버린단 말입니까. 평민이라 버리고, 중인이라 버리고, 서관(평안)·북관(함경)·해서(황해)·송경(개성)·심도(강화)·관동(강원)·호남(전라) 출신이라 버리고, 서얼이라 버리고…. 오로지 권문세가 몇 십 가문만 버림받지 않은 자입니다.”(‘통색의·通塞議’)

 

그는 또 “책상물림 선비들~/ 농사에 게으르니 무진장 굶주리는 게 마땅하다”(‘기민시·飢民詩’)고 읊었다. 놀고먹는 선비들을 직업전선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뿌리 깊은 지역편견을 두고는 “동해건 서해건 마음도 같고 도리도 같다(東海西海 心同理同)”(‘거관사설·居官四說’)고 했다. 지금 이 순간도 가슴깊이 새겨야 할 한마디다.

 

다산은 유배시절에 자식들을 위한 가르침을 전하면서 “재물이란 꽉 쥘수록 더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남겨줄 유산 중 하나는 ‘근(勤)’이요, 다른 하나는 ‘검(儉)’ ”이라고도 했다.(‘시이아가계·示二兒家誡’) 이번에 다산 연구서를 펴낸 노만수의 말마따나 다산은 조선 후기 봉건적 병폐 앞에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피를 토하듯 고발한 참여시의 작가였다 할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치안책을 알려거든 들판 농부에게 묻는 것이 낫다.”(‘유림만보·楡林晩步’) 18년간의 유배는 백성들의 삶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느꼈던 기회였다. 하지만 안타까운 노릇이다. 비분강개, 고발하고, 또 나름의 해결책까지 제시했지만 그뿐이었다. 그저 참여시의 작가로 끝났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한마디 더…. 슬그머니 부아가 끓어오른다. 영조와 정조? 누가 중흥군주였고 개혁군주였단 말인가. 다산의 고발대로 백성이 유리걸식하고, 죽어가고 있었는데….



강변에서(윤지영)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