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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왜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서는가/ 가자란 무엇인가

by 이성근 2024. 11. 3.

<왜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서는가>, J. 미어샤이머·스티븐 M. 월트 지음, 김용환 번역, 크레타 펴냄. 2024.10

John J.Mearsheimer 시카고대학교 알 웬델 해리슨 정치학 수훈 교수이자 국제안전정책연구소 공동 소장이다. 리델 하트와 역사의 책임Liddell Hart and the Weight of History, 대국 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목차

추천인 서문(김준형 국회의원) /  머리말  서론

PART |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로비

1장 거대한 수혜자  2장 이스라엘은 전략적 자산인가, 부채인가3장 설득력을 잃어가는 도덕적 근거  4장 이스라엘 로비란5장 정책 과정 이끌어가기  6장 대중 담론 지배하기

PART | 로비의 실제

서론 7장 로비와 팔레스타인인들   8장 이라크와 중동 변혁의 꿈   9장 시리아 겨냥하기  10장 조준선에 든 이란   11장 로비와 제2차 레바논 전쟁

결론 | 어떻게 해야 하나?

미주

 

출판사 서평

자유 국가 미국은 왜 이스라엘 로비에 자유롭지 못하고 이스라엘 편에 서는가?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보더라도 미국은 자유의 나라로 손꼽힌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건국 이념의 미국은 언론과 자유롭게 연합을 형성할 수 있지만, 금기시되는 것을 건드리면 차갑게 돌아서 주요 미디어 대중 담론을 활용해 그들을 반유대주의자’, ‘나치주의등으로 깎아내리거나 고립시킨다. 이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유대인과 이민자로 구성된 로비 이익집단의 정치적 역동성이다. 이들은 미국 내 정책을 친이스라엘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계층으로 구성된 개인과 단체다.

미국은 소련(러시아)’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현재, 미국은 합리적으로 행동한 것인가? 이스라엘은 국가 운영과 생존을 위해 미국에 합리적인 외교 정책을 요구한다. 애초에 비합리적일지라도 미국유대인, 친이스라엘집단은 결정권자인 미국 대통령을 의중대로 움직이게 만든다. 로비는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확고히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며, 미국유대인과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 그러나 이스라엘이 인접 국가들에 가하는 군사적 행위는 합리적인가? 이에 쓰이는 미국의 지원은 도덕적인가?

저자들은 전략적 이익도, 도덕적 당위도 미국이 이스라엘에 관대하고 무제한적인 지원을 지속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몇몇 국제정치학자가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 외교 정책 문제점을 경고하지만, 그조차도 다수의 엘리트 계층과 로비의 힘 때문에 무마되고 만다. 로비는 미국 외교 정책뿐 아니라 정책 결정, 행정부 등 여러 부처에 영향을 끼친다.

이스라엘 로비는 영향력 경쟁에서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유대인은 비교적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감탄할 만한 박애주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정당에 후한 헌금을 하고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도를 보인다. 물론 일부 미국유대인단체가 이스라엘에 헌신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관여하고 있고 상당한 소규모단체가 이스라엘 문제라면 발 벗고 나선다. (211)

로비의 영향력은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에서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전쟁(1차 중동 전쟁)을 시작으로 1956년 수에즈 전쟁(2차 중동 전쟁), 19676일 전쟁(3차 중동 전쟁), 1973년 욤키푸르 10월 전쟁(4차 전쟁)까지 끊임없는 소모전을 벌였다. 욤키푸르 전쟁 이후 2024년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레바논, 하마스와 뿌리 깊은 불신과 적개심으로 반복되는 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조건으로 경제와 군사 물자를 원조했다. 미국은 적대국을 견제한다는 명목과 이집트, 요르단 같은 아랍 연맹과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익을 염두하고 광범위한 중동 정책을 펴왔으며, 이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 가지 주제에서는 모든 후보가 같은 목소리를 낼 것이다. 최고의 권력을 원하는 후보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유대 국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데 찬성했다. 후보 각자가 이스라엘이 직면하고 있는 위협을 충분히 인식하고,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어떤 상황에서건 이스라엘의 국익을 수호할 것을 분명히 했다. 누구도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공평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실패할 것이다. (23)

미국 패싱’ ‘삐삐 폭발

중동의 골리앗 이스라엘

미국 대선까지 흔들어 놓다

2024년 현재 미국은 국경 정책 강화’, ‘이스라엘에 지속적인 안보 지원을 내걸며 치열한 대선 전쟁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휴전 촉구에도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며 헤즈볼라를 공격해 중동 위기 관리 문제의 변수가 되었다.

이처럼 로비와 이익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미국 패싱으로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행위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누구인가? 군사 요충지로 쓰이는 병원, 학교, 언론사 등을 포함해 방패막이가 된 민간인들이다. 이는 결코 이스라엘 지원에 관한 도덕적 전략이 될 수 없다. 또한 미국의 중동 정책은 오늘날 이스라엘을 대표적인 극우 국가로 변모시켰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리더십은 바닥에 떨어졌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로비의 영향력이 미국에 미치는 악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관련해 발생한 군사 외교적 충돌 사례와 로비단체와 미국 간의 사건들을 현실주의 관점으로 저술했다. 이 책은 총 두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다. 6장의 파트 I, 이스라엘에 물적·외교적 지원을 이어가는 무비판적이고 무조건적인 관계는 미국의 국익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1(거대한 수혜자)에서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경제적·군사적 도움과 워싱턴이 제공하는 외교적 지원을 기술하고, 2(이스라엘은 전략적 자산인가, 부채인가?)에서는 이스라엘이 소중한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에 지원할 가치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검토한다. 3(설득력을 잃어가는 도덕적 근거)에서는 이스라엘과 미국 지지자가 유대 국가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도덕적 근거를 살펴본다. 4(이스라엘 로비란?)에서 로비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원을 살피고 광범위한 연합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아보고, 5(정책 과정 이끌어가기)6(대중 담론 지배하기)에서 로비 그룹이 이스라엘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 펼치는 다양한 전략을 기술한다.

파트 II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중동 정책을 수립하는 데 로비가 맡은 역할을 추적한다. 미국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로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7(로비와 팔레스타인인들)에서는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염원을 묵살하거나 제한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노력을 지원한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8(이라크와 중동 변혁의 꿈)에서 신보수주의자가 참여한 로비가 2003년 이라크 침공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는지 살펴본다. 9(시리아 겨냥하기)에서 미국과 아사드 정권의 불편한 관계를 언급하며, 이스라엘 정부의 바람대로 워싱턴의 대시리아 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한 로비의 영향력을 살핀다. 10(조준선에 든 이란)에서 미국의 대이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로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적한다. 11(로비와 제2차 레바논 전쟁)레바논을 주제로 하여 로비가 미국과 이스라엘 국익에 악영향을 준 전형적인 사례를 기술한다. 끝으로 결론(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서 총체적인 난국을 개선할 대안을 논하며 중동에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효과적으로 취할 수 있는 역외 균형자론에 대해 개관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로비의 영향에 대한 솔직하고 냉철한 토론이다. 또한 중동이라는 주요 지역에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이다. 도덕적인 견지에서 이스라엘의 복지가 특별하다고 볼 수 있지만, 점령 지구를 지속적으로 점유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 공개적인 논쟁이 가능하고 광범위한 미디어 활동이 이루어질 때, 현재의 특별한 관계가 유발한 문제들이 드러날 것이고, 미국은 그 지역 국가들의 이익과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에 역점을 둘 수 있다. 우리가 굳게 믿는바, 그것은 이스라엘의 국익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503)

로비가 미치는 해악 미국은 현실을 직시하라

미국에서 발간된 후 존 J. 미어샤이머는 이스라엘 입국 금지까지 당하는 이스라엘 로비의 영향력을 몸소 느끼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독자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다. 국제정치 현실주의 학계 두 학자가 꼬집은 미국 중동 정책의 현실은 재조명받기 충분하다. 이 책을 추천한 김준형 국회의원 역시 중동 문제의 해결과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의 이스라엘 로비가 미국의 대외 정책에 해를 주고 있음을 하루빨리 바로 잡아야 하지만 17년이 흐른 2024년 현시점에서 판단하자면, 변화나 개선은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미·중의 전략 경쟁과 다극화의 시대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다극화와 다자주의는 다르다는 점이다. 전자는 각자도생의 혼란한 질서이고, 후자는 국제협력이 작동하는 정돈된 질서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라는 패권 충돌로 가는 것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지만, 각자도생의 국가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세계가 이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국제협력을 회복해야 한다. 평화는 물론이고 기후 위기, 핵무기 확산 문제 등은 협력 없이는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17)

여전히 미국은 이스라엘을 편애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곤욕을 겪고 있으며 최근 중재국들과 함께 협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 우호국이자, 휴전국인 대한민국에 중동 전쟁은 마냥 남의 나라 일일까? 오히려 미·중 패권 전쟁에서 국제협력 경각심을 키우고 세계가 전쟁을 치르는 내면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약소국이나 중견국은 강대국이 될 수 없으므로, 약하게 봤던 상대 뒤에 어떤 강자가 지원하고 있는지, 국가 생존을 위해 누구와 동맹을 만들어 세력 균형을 유리하게 할 것인지 비판적인 사고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미국 내 이스라엘 지지자에 대한 적대감과 이스라엘의 잘못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예외적으로 지원하는 도덕적 정당성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이스라엘을 예외적인 수준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행적에 집중하는 것이다. 논란을 가중시키는 이중 충성duel loyalty의 문제는 원래 기사에 빠져 있는 쟁점이다. / 21~22

일부는 이스라엘이 미국에 절대적인 전략적 자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한 파트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는 유일한 국가이기에 지원하는 도덕적 명분이 강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모두 공정한 주장이 아니다. / 25~26

로비의 정치력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외교 정책, 특히 중동 정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는 지역은 물론 전 세계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부시 행정부가 일으킨 전쟁으로 이라크인은 황폐한 환경에서 오랜 고통에 시달렸다. 수만 명이 죽었고 수십만 명이 피난했다. 끝날 기약이 없는 분쟁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전쟁은 미국에 전략적 재앙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동맹국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이는 옳고 그름을 떠나 미국이 제멋대로 힘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악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27

20006, 중국에 대한 무기 판매가 문제가 되어 이스라엘 원조를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 AIPAC

대변인은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지원 문제를 어떤 상황과 연계하는 것에 반대한다. 연계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건한 성향을 보이는 당장의 평화를 위한 미국인들의 모임조차도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지지하고, 미국 원조의 삭감이나 조건부에 반대한다. 그들은 미국의 지원금이 점령 지구 내의 정착촌 건설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쓸 뿐이다. / 183

공모의 그림자(또는 우익의 음모)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역으로 신보수주의를 배양해 온 싱크탱크, 위원회, 기금, 출판사는 여타의 정책 네트워크와 다를 바 없이 활동한다. 이들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거나 숨은 음모에 가담하기는커녕, 여론을 형성해 미국의 외교 정책을 이끌어간다는 목적에서 자기를 선전한다. 신보수주의 네트워크는 조세개혁, 환경, 이민과 같은 분야에서 발생하는 네트워크와 흡사하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안보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이 처방하는 정책이 두 나라에 이익을 줄 것으로 믿는다. / 198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 엄청난 영향력을 구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경제적·외교적인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국제적인 협력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다. / 327

전쟁을 선호하는 사람은 후세인을 무너뜨릴 때 미국이 대적할 수 없는 강대국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뜻에 따르지 않는 정권을 무릎 꿇릴 수 있다는 확신을 불량 국가들이 갖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전쟁이 있기 전 미국은 강대국인 동시에 군사적 용맹성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고, 안보에 깊은 우려를 하고 있었다. 위험한 조합이었다. / 333

이야기는 간단하다. 로비의 영향이 아니었다면 시리아 책임법은 없었을 것이며 미국의 대시리아 정책은 미국의 국익과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미국이 다른 정책을 썼다면 이스라엘의 정당성과 지역적 우위를 보장해 주는, 가장 고집스럽고 완강하고 폭력적인 적, 하마스, 헤즈볼라, 이슬람 지하드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줄여줄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평화조약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 400

적국의 민간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방법으로 상대국이 손을 들고 공격자의 요구에 굴복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역사적 증거와 학자의 저술에 의해 밝혀졌다. 반대로 희생자의 발생은 통상적으로 공격자에 대한 분노로 연결되고 자기 정부에 대한 지지를 높인다. / 447

한 세대에 걸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살해하고 투옥하고 격리하기 위해 힘쓴 결과 하마스와 같은 단체가 권력을 잡게 되었고, 협상을 통한 갈등 해결에 찬성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줄어들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스라엘과 로비가 함께 지지한 것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란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 476~477

 

가자지구에서 4만 명 죽여도 미국은 이스라엘 편대체 왜?

202310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약 120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망하고 251명의 인질이 붙잡혀 갔을 때만 해도 서방을 중심으로 한 세계 여론은 이스라엘의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1년이 훌쩍 지난 2024111일 현재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날까지 가자지구에서 43204명이 사망했고 101641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상황이 학살 수준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병원과 학교, 난민촌 등 민간인, 그것도 상대적으로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습과 포격을 이어가면서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해있다. 1031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 지방에 남아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병원 카말 아드완과 누세이라트 난민촌 등을 공격했고 이에 95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는 국가가 있다. 바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휴전을 촉구하고 때로는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지만, 실제 무기 지원을 끊기는커녕 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비롯, 미군 추가 배치를 실시하고 있다.

대체 미국은 왜 이렇게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비호하는 것일까? 지난 2007년 출간됐던 <왜 미국은 이스라엘편에 서는가>를 보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2024년 이스라엘의 만행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 시점에 17년 만에 다시 번역본으로 출간된 이 책은 현실주의적인 국제정치학자인 존 J. 미어샤이머 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와 동맹이론의 대가인 스티븐 M. 월트 하버드대학교 존 F.케네디 스쿨의 국제문제 교수가 함께 펴냈다.

이번 번역서를 추천한 국제정치학자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해당 책이 논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2007년 출간했을 때도 "논란이 많았던 탓에 두 저자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출판사가 부담을 느껴 선뜻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결국 아동용 그림책을 전문으로 펴내던 의외의 출판사가 맡게되었다는 후문"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 의원이 이렇게 설명할 정도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는 미국 사회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이 학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미국에 유리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미국이 이스라엘의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꼬집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로비는 영향력 경쟁에서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유대인은 비교적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감탄할 만한 박애주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그들은 정당에 후한 헌금을 하고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도를 보인다. 물론 일부 미국 유대인단체가 이스라엘에 헌신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관여하고 있고 상당한 소규모단체가 이스라엘 문제라면 발 벗고 나선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로비로 인해 미국의 중동정책은 상당히 편중돼 있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20019.11 테러가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이스라엘만을 두둔하는 미국 중동 정책의 오류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저자들도 중동 문제에서 이스라엘만 편드는 미국 대외 정책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로비의 영향이 아니었다면 시리아 책임법은 없었을 것이며 미국의 대시리아 정책은 미국의 국익과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라며 "미국이 다른 정책을 썼다면 이스라엘의 정당성과 지역적 우위를 보장해 주는, 가장 고집스럽고 완강하고 폭력적인 적, 하마스, 헤즈볼라, 이슬람 지하드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줄여줄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평화조약을 탄생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 세대에 걸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살해하고 투옥하고 격리하기 위해 힘쓴 결과 하마스와 같은 단체가 권력을 잡게 되었고, 협상을 통한 갈등 해결에 찬성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줄어들었다""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스라엘과 로비가 함께 지지한 것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란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고 밝혀 이스라엘만을 두둔하는 미국의 정책이 오히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익을 더 깎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 엄청난 영향력을 구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경제적 외교적인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국제적인 협력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다"면서 미국이 국익을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정책 변화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17년 전에 이렇게 강조했음에도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김준형 의원은 "두 저자가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이슈를 과감히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미국 대외 정책 실패 원인을 로비에서 찾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은 인정하나 "미국 대외 정책에 대한 이스라엘 단체에 의한 로비의 힘을 지나치게 과장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018(현지시각)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 회담을 가졌다. 로이터=연합뉴스

김 의원은 "나치의 극단적 인종주의에 엄청난 희생을 감수했던 이스라엘이 오늘날 인종주의의 대표적 극우 국가로 변모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뒤틀림을 넘어 비극적인 일"이 됐다면서 건국 이후 이슬람 출신의 유대인들이 대거 입국하고 1991년 소련 붕괴로 러시아계 유대인까지 유입되면서 극우 유대주의 정당의 힘이 강해진 이스라엘 자체의 변화도 현재의 이스라엘이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저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금기가 되어버린 '반유대주의'라는 극단주의에 담대하게 맞서는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찬사를 보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약간의 다른 측면이 있을 수 있다""이 책은 반유대주의라는 마녀사낭에 대한 도덕적 또는 사상적 투사의 글은 아니며, 미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대외 정책에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이스라엘 로비의 영향력에 맞서고, 정책을 변경하라는 실용적인 정책 제언"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 번역본의 계기가 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일컫는 말) 시대가 저무는 것이 단순한 이론이나 예측이 아니라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미국의 가치 또는 이념 외교에 의한 신냉전 드라이브 역시 미국의 설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의원은 "미중의 전략 경쟁과 다극화의 시대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데 다극화와 다자주의는 다르다. 전자는 각자도생의 혼란한 질서이고, 후자는 국제협력이 작동하는 정돈된 질서"라며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라는 패권 충돌로 가는 것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전혀 바람직하 지 않지만, 각자도생의 국가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며 미국이 보다 국제협력적인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대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재호 기자 | 프레시안

가자란 무엇인가 -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집단학살의 본질

오카 마리 (지은이),김상운 (옮긴이)두번째테제2024-09-

오카 마리 (지은이)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 교토대학 명예교수. 현대 아랍 문학, 팔레스타인 문제 및 제3세계 페미니즘 사상 전문가이다. 1960년생으로 도쿄외국어대학 아랍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팔레스타인 작가 가산 카나파니의 소설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 아랍 문학을 만났다. 이집트 카이로대학에 유학했으며 모로코 일본국 대사관 전문조사원,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를 거쳤다.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 기억·서사,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가 있으며 최근 저서로 야자나무 그늘에서: 3세계 페미니즘과 문학의 힘(棗椰子木陰: 第三世界フェミニズムと文学)(세이도샤, 초판 2006, 신장판 2022년간), 아랍: 기도로서의 문학(アラブ: りとしての文学)(미스즈쇼보, 초판 2008, 신장판 2015),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ガザに地下鉄)(미스즈쇼보, 2018) 등이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_ 희망으로서의, 가자 5

시작하며 17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 연표 및 지도 23

1. 가자란 무엇인가

매년 행해지는 이스라엘의 혐오 시위 33 | 네 가지 요점 37 | 이스라엘에 의한 집단학살 41 | 봉쇄된 가자지구에 대한 되풀이되는 공격 44 | 발신조차 할 수 없다 49 | 이스라엘의 정보전 50 | 가자란 무엇인가 53 | 이스라엘은 어떻게 건국되었는가 58 | 시오니즘의 탄생 60 | 시오니즘은 인기가 없었다 62 | 식민주의로서의 시오니즘 65 | 팔레스타인 분할안 67 | 팔레스타인을 강타한 인종청소: ‘나크바(대재앙)’ 72 | 이스라엘 국내에서의 움직임 77 | 인구 과밀 지역, 가자지구 79 | 하마스의 탄생 84 | 오슬로 협정 이후 7년 동안 86 | 민주적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 89 | 저항권 행사로서의 공격 92 | ‘봉쇄란 무엇인가 98 |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 102 | 살아 있는 죽음 105 | 귀환의 대행진 110 | 가자지구에서 증가하는 자살 112 | ‘국제법을 적용해 주기만 하면 된다’ 116 | 요르단강 서안지구 출신 여성의 연설 120 | 가자지구 중부 출신 안하르 씨의 연설 125

2. 인간의 부끄러움, 가자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134 | 몇 번이나 반복되어 왔다 136 | 망각의 집적 끝에서 139 | 불균형한 공격 142 | 평화 시위에 대한 공격 145 | 뻔뻔한 망각 149 | 거대한 실험장 151 | 가자지구의 동물원 155 | 세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158 | 말과 휴머니티 160 | ‘증오의 연쇄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166 | 서안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173 | 107일의 공격이 의미하는 것 177 | 밝혀져 온 사실 180 | 진짜로 질문할 것은 이스라엘이란 무엇인가아닐까? 184 |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 분할안 188 |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193 | 인도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 196

질의응답 201

 

2023107,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주도한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과 그에 대한 무차별적 보복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을 빙자한 일방적 공격)이 이어진 지 어느덧 1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학살 방지 명령이스라엘의 점령이 불법이라는 유엔 결의안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와 전쟁 중지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도 아랑곳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집단학살(genocide)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멈춤 없이 늘어나는 사상자 수가 가자지구에서만 사망자 41,272, 부상자 95,551(2024918일 기준)에 달하며, 이미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되었다.

가자지구에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대칭적인 일방적 공격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고 이러한 학살이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뉴스에서는 이스라엘이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레바논 무선호출기(삐삐) 테러에 관한 속보가 전해지고 있으며, 파멸적 확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점점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이 거대한 폭력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이스라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이 무자비한 폭력의 연쇄, 그 본질은 무엇일까?

202310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무자비한 집단학살이 시작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시민사회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긴급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아랍 문학, 3세계 페미니즘 전문가이며 트라우마와 서사에 관한 통찰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지성 오카 마리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는 시민 및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 두 차례의 강연을 통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재빠르게 공유했다. 이 강연을 엮은 가자란 무엇인가: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집단학살의 본질은 독자들을 강연 현장에 초대하면서 친절하게 이 문제를 뿌리에서부터 몸통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집단학살의 본질을 바로 알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각을 넓혀 줄 목적으로, 저자 오카 마리 교수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역사에서 정의의 문제까지 폭넓게 문제의 핵심을 전달한다.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이 되었던 이스라엘의 건국과 시오니즘의 문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 간 과정, 가자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봉쇄 속 현실 가운데 살아가는 모습과 그에 따른 심각성까지 다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외교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이 전 세계에 벌이는 거짓 선전 전술과 미국 정치권과의 관계, 이러한 서구 국가들의 위선적 태도 또한 문제의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거짓 중립이 아닌 정의의 편에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집단학살을 멈추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매듭을 풀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이 해방된다면”,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며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평화, 정의가 실현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연대를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책속에서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자지구,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근대 500년의 유럽과 미국에 의한 전 지구적 식민주의의 역사와 인종주의의 모순들이 응집된 장소입니다. “팔레스타인이 해방되면 세계가 해방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_ 한국어판 서문 중

지금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것은 이스라엘인데, 그렇다면 무엇이 그 집단학살을 가능케 하는가 하면, 이 오랜 국제사회의 이중 잣대입니다. 저스티스(공정성)의 기준은 하나여야 합니다. “이쪽에는 적용되지만 저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건 저스티스가 아니에요. ‘공정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돼야 합니다. P. 40

봉쇄라는 것은 구조적 폭력입니다. 사실 전쟁에서 벌어지는 직접적인 폭력만큼이나 치명적인 폭력이지만 폭격 같은 직접적인 폭력과 달리 그것에 의해 직접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폭력성을 단순하게 알 수 없는 거죠.P. 98~99

정전, 그리고 망각. 이렇게 우리는 망각을 반복함으로써 이번에도 가자지구가 이러한 틀림없는 집단학살로 가는 길을 닦아 온 셈입니다. 언론도 시민사회도 공격이 계속되어 건물이 파괴되고 사람이 대량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을 때만 주목하며 연일 보도하지만, 일단 정전이 되면 잊어버립니다. 가자지구 사람들의 삶을 압살하는 봉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통받는 한, 이스라엘이 아무리 국제법을 짓밟고 전재범죄를 저질러도 세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이 뻔뻔한 망각과 학살의 반복이 지금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집단학살을 가져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P. 149~150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점령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것이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온 투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리는 것입니다. 특히 투류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SNS 등을 이용해서 널리 퍼뜨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P. 205

 

"팔레스타인을 통해 비로소 조선 식민 지배 문제를 알게 됐다"

"팔레스타인을 통해 저는 일본의 식민주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일본인 가정에서 평범하게 공부하고 대학까지 가서 역사 수업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만나면서 저는 처음으로 조선 식민지 지배의 문제, 재일교포의 문제, 오키나와의 문제, 아이누모시리(일본 홋카이도 선주민 '아이누의 땅')의 문제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자란 무엇인가>(오카 마리 지음·김상운 옮김·두번째테제 펴냄·215)의 저자 오카 마리 와세다대 문학학술원 교수는 지난해 10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주도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이 벌인 이스라엘 공격은 이스라엘과 서방이 명명한 "테러"가 아닌 "점령군인 이스라엘군에 대한 저항"으로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107일 이전에 50년 이상의 이스라엘 점령과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으로 불린 16년 이상의 가자지구 봉쇄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의 "시작""테러"로 강조하는 것은 "불편한" 점령 역사를 지우고 이 싸움의 "대의명분"을 가리고자 함이라고 말한다. 그는 "민간인을 끌어들이는 작전의 옳고 그름은 엄격하게 따져야 하지만 (107일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의) 이 군사 공격 자체는 점령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실행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기를 쓰고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며 "조국을 점령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대의명분이 있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이 역사적 맥락이야말로 이스라엘에게 가장 불편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은 이스라엘 주장처럼 지난해 107일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며 역사적 맥락을 단절한 채 가자지구 전쟁을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로 테러 집단의 섬멸을 목표로 한 보복"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75년 전부터 서서히 이어져 온 '점진적 집단학살'의 총결산"이라고 본다.

저자는 "현재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식민지 지배의 굴레로부터 해방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섬멸의 폭력을 행사하는 식민지주의 국가 사이의 '식민지 전쟁'이나 다름없"다며 "이 점령이라는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 한,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초기 가자지구에 대한 식량과 연료 반입까지 차단하며 완전 봉쇄한 것을 비롯해 이후에도 충분한 구호품 반입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들어 왔다. 가자지구 주민 대부분이 심각한 기아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스라엘이 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병원 습격도 여러 차례 저지른 끝에 의료도 붕괴된 지 오래다. 따라서 전쟁 초기부터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는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저자는 그러나 이 "인도적 위기" 또한 이스라엘 점령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거듭 창출돼 왔고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정치적 문제"임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며 경계감을 표출한다. 그는 16년간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사람과 물자의 반입과 반출이 통제돼 경제기반이 파괴되며 이미 전쟁 전 가자지구 실업률이 40%가 넘었고 주민들이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희망을 잃은 가자지구 젊은이들의 자살도 급증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한때는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 손으로 개척해 나가는 그런 정치적 주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점령과 봉쇄가 계속됨으로써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없으면 오늘을 연명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인도적 위기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자지구,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정치적 문제다. 그런데도 거대한 인도적 위기가 끊임없이 창출됨으로써 인도적 문제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말살하고 조국 해방이라든가 독립 국가라든가 난민의 고향 귀환이라는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게 하려고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창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해 1020일과 23,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2주가 지난 상황에서 일본 교토대와 와세다대에서 한 강연을 엮은 것이다. 그러나 전쟁 발발 1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사상자만 늘었을 뿐 본질적인 상황은 같거나 악화되고 있어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가 이미 이스라엘 공격을 "집단학살"로 규정한 지난해 1020일 무렵 가자지구에선 3700여 명이 숨진 상황이었지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인용한 가자지구 보건부 자료에 의하면 이달 16일 기준 가자지구 사망자는 42409명으로 그 10배가 넘는다. 부상자는 99153명이다. 전쟁 전 가자지구 인구 220만 명의 2%가 사망한 것이다.

일본인인 저자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점령 문제를 접하며 비로소 일본의 조선 식민 지배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밝힌 점은 한국인들의 이목을 끈다. 저자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미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와 그 후속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갖고 있다. 2005년 교토 우토로 지구를 방문한 팔레스타인 배우 줄리아노 메르 카미스는 일제에 징발돼 군사 비행장 건설을 위해 동원된 조선 노동자들이 이후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에서 살던 곳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해 투쟁 중이라는 설명을 듣고 "우리 난민촌에서 난민 1, 2세 할머니들이 투쟁하는 것과 같다""동아시아 땅에서 우리와 같은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가 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원은 "식민주의"라며 "그것은 일본 역사의 문제, 일본에 사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강연에서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에 대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국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것, 일본 정부에도 관련해 항의하는 것 외에 "일본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들었다. 저자는 "일본에도 인종주의, 혐오가 있다. 하마스=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것과 조선학교를 적대시하는 것은 정말 똑같은 구조"라며 "우리가 우리의 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안

 

이스라엘 군, 가자지구 병원 얼마나 폭격했나

원소기소 15번 인은 유기체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무기의 원료가 되기도 한

. 화염 2500의 백린탄보다 잔혹한 일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다.

20231015일 백린탄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군 포탄이 레바논 남부 국경 마을에 투하돼 폭발하는 모습.AP Photo

아파트 발코니에 화분을 들여놓고 수확의 기쁨을 누려보려던 야심 찬 계획은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대체 어디로 들어왔는지, 벌레 무리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특히 고춧잎을 잠식해버린 진딧물 무리가 결정타였다. 생태주의를 지향한다면서 벌레는 싫은 가짜 농부가 찾은 대안은 스마트 식물 재배기였다. 아무리 광합성을 한다지만 실내에서 물과 LED 조명만으로 과연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다. 그러나 재배 키트에 동봉된 마법의 영양액은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주입식 교육을 충실하게 받은 이라면 반사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비료의 3요소(질소·인산·칼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도움 덕택에 가짜 농부는 루콜라, 비타민, 청경채를 성공적으로 수확하고 지금 비타민 2기생을 키우는 중이다. 현대 비료 산업이 가져온 녹색혁명을 실감하고 있다.

비료의 핵심 요소인 인산을 구성하는 원소기호 15번 인(phosphorus)은 식물뿐 아니라 모든 유기체의 생존과 기능에 필수적이다. DNARNA 구조에 없어서는 안 되고, 세포의 에너지원인 ATP(Adenosine triphosphate·아데노신 3인산)를 구성하는 핵심 원소다. 또한 인지질 형태로 세포막을 형성하고, 칼슘과 결합하여 뼈를 이룬다. 그래서 동식물을 먹고 소화한 다음에 배출하는 분뇨나 사체를 태운 잿가루에는 인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적 비료 생산 기법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이런 것들이 비료로 쓰였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사람과 가축의 분뇨를 모아 퇴비를 만들었고, 이후에는 새나 박쥐의 구아노(배설물)가 퇴적된 인산 광산이 상업적으로 활용되었다.

사실 인 원소를 처음 발견한 것도 인간의 소변에서였다. 1669년 독일 함부르크의 한 연금술사가 금을 만들어내려고 소변을 졸이던(?) 중 불에 타면서 창백한 청록색 광채를 내는 물질을 발견했다. 이 신비로운 모습으로부터 ‘phosphorus’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샛별(금성·Venus)을 가리키는 단어였는데, 샛별의 역할 그대로 빛을 가져오는 자를 의미한다.

이렇게 낭만적 이름을 가진 인 원소는 유기체 구성이나 비료 같은 생물학적 쓰임새 말고도 산업적 활용도가 높다. 불에 잘 타는 성질 때문에 성냥 제조에 쓰이고,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 내연재의 주요 성분이기도 하다. 또한 유기인은 제초제 성분이기도 한데, 독성이 강하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자살 시도에 많이 쓰였다. 한편으로는 유기체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공할 불길과 독성으로 우리 몸과 생명을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는 원소가 바로 인이다.

인의 여러 동소체(同素體) 중에서 특히 위험한 것은 처음 발견된 백린(white phosphorus)이다. 가장 불안정하고 반응성이 높으며 독성도 크다. 백린으로 성냥을 만들던 19세기에는 작업하던 노동자들의 턱이 녹아버릴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1905년 베른협약 체결 이후, 성냥 제조에 백린 사용이 금지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적린으로 교체됐다.

공기 중에서 50정도만 되어도 자연 발화하고, 일단 점화되면 매우 고온으로 타오르며 다량의 연기를 내뿜기 때문에 백린은 일찌감치 무기로 개발되어 쓰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연막탄, 소이탄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연금술사가 백린을 처음 발견한 독일 함부르크는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소이탄 폭격으로 폐허가 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체첸전쟁 등에서 백린탄이 쓰였고, 21세기에도 미국이 걸프전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레바논을 공격할 때에 사용했다.

2023101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서 생긴 폭발로 부상당한 어린이.DPA

백린탄의 살상 효과는 단지 폭발력만 있지 않다. 백린탄이 연소할 때 화염 온도는 800~2500까지 상승하고 물로 잘 꺼지지 않으며 파편이 피부나 옷 같은 표면에 들러붙으면 떼어내기도 어렵다. 불이 꺼진 후에도 피부 조직에 남아 있던 파편이 다시 자연 발화하기도 한다. 백린탄에 의한 화상은 뼈가 보일 만큼 치명적이고 깊은 상처를 남기며 극도의 고통을 유발한다. 혈관으로 흘러 들어가 다발성 장기 부전을 초래하기도 한다. 소이탄에 백린 외에도 여러 중금속 조각들을 첨가하면 파괴력과 살상 효과는 배가된다. 물론 이런 살상 무기를 사용했다고 밝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말이다.

한 병원은 35차례 폭격 당하기도

백린탄은 현재진행형이다. 2023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촉발된 가장 최근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또다시 백린탄을 사용했다. 백린탄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민간인 거주지역에 소이탄을 공중폭격하는 것은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위반이다. 인명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미 2013, 이스라엘 군은 아주 제한된 특수 상황을 제외하면 앞으로 백린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백린탄의 잔혹함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한 폭력의 역사에서 아주 작은 한 조각을 차지할 뿐이다. 사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남의 땅으로 통 큰 인심을 발휘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다. 나치의 폭압을 피해 탈출하거나 난민이 된 유대인들이 이를 믿고 급속도로 이곳에 모여들었다. 시오니스트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자는 거짓 선동을 펼치며 이를 부추겼다. 수천 년 전부터 그곳에 터전을 닦고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로서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어이없게도 이는 현실이 되었다. 마침내 1948514, 이스라엘이라는 신생 국가가 독립을 선포했다. 이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재앙(Nakba)의 날이었다.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살고 있던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좁은 가자지구로 밀려났고, 이곳은 유례없는 현대의 식민지가 되었다. 2006년 하마스가 정권을 잡고 특히 2007년 자유를 되찾기 위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가 일어난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둘러싼 육지, 바다, 하늘 등 모든 국경을 봉쇄하고 극단적 억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가자지구는 세상에서 가장 큰 개방 감옥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력 공습은 이미 2008, 2012, 2014, 2021년에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그러나 벌써 한 해를 넘긴 이번 공습의 가장 큰 특징은, 의도적으로 보건의료시설을 표적으로 삼고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한다는 점이다. 제네바협약과 국제 인도주의 법률은 전쟁 중에도 의료 임무를 전담하는 군인과 민간 의료인은 모든 상황에서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병원 시설이 명백하게 군사적 목적으로 쓰인다 해도,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사전경고와 함께 유예 시간을 준 다음에 공격을 개시해야 한다. 이때 의료시설이 군사적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입증 책임은 공격을 감행하는 측에 있다.

2023107일부터 1117일까지 폭탄 마크84가 떨어진 자리와 가자지구 내 병원 위치를 표시한 지도. 붉은 점이 마크84의 분화구, 하늘색이 병원이다. 자료:‘Are hospitals collateral damage? Assessing geospatial proximity of 2000 lb bomb detonations to hospital facilities in the Gaza Strip from October 7 to November 17, 2023’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있다. 손목에 생긴 작은 결절종 때문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일이다. 수술대에 누워 소독 천으로 얼굴을 가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는 없었지만, 부분마취 상태였기 때문에 정신은 또렷했다. 통증은 없어도 내 피부를 뚫고 지나가는 감촉을 느낄 수 있었고 의료진이 나누는 대화, 수술 도구 딸깍거리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강심장을 타고난 어린이였지만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그런데 수술 도중 갑자기 공습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민방위 날이면 학교에서 방공 사이렌에 따라 책상 밑으로 대피하는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온 동네가 어둠에 잠기는 등화관제훈련을 하던 시절이었다. 민방위 날도 아닌데 대낮에 사이렌이라니 이상했다. “이거 진짜야? 전쟁 난 거야? 어떡하지?” 의료진들의 허둥대는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여기 적십자병원이잖아. 전쟁 나도 설마 여기를 공격하겠어? 우리 때문에 얘 놀랐잖아. 괜찮아, 괜찮아.”

1983, 하필 내가 수술실에 누워 있던 그 시간에 북한군 조종사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한 것이다. 의료진은 어린 나를 달래며 괜찮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허둥대며 서둘러 봉합하느라 그랬는지, 며칠 후 실밥을 뽑자 봉합 부위가 쩍 벌어지면서 고였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나로서는 피부 아래의 해부학적 구조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덕분에 한참 동안 드레싱을 받으러 다녔고, 손목에는 아직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전쟁이 일어나도 병원은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깨우쳐준 상흔이라고 나름 의미를 부여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거짓 정보였을 뿐이다.

이번 가자 공습에서 이스라엘은 병원 시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기는커녕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심지어 보건의료시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병원 시설이 하마스의 본거지로 쓰였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실제로 한 논문은 지리정보 분석 도구를 활용해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첫 한 달 이후 168000여 개에 달하는 건물들의 파괴 정도를 분석한 결과를 보고했다. 의료시설과 비의료시설 건물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 할차이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또 다른 논문은 가자 공습 이후 첫 한 달 동안, 다른 피해는 차치하고 벙커 버스터라 불리는 마크84(Mark-84) 폭격으로 인한 의료시설 피해를 분석했다. 무게가 900이 넘는 이 폭탄은 폭발하면서 초속 1.8속도로 450에 달하는 고온의 금속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위력을 갖고 있다. 폭발 지점으로부터 360m 반경 이내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살상하는 치명적 효과를 발휘하며, 엄청난 고압의 충격파로 폭 15m, 깊이 11m에 달하는 분화구를 만들어낸다. 벙커버스터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연구진은 CNN뉴욕타임스가 심층 보도한 항공사진 자료를 이용하여 마크84 투하로 생겨난 분화구 위치를 확인하고 병원의 위치 정보를 연계하여 분석했다(그림

참조). 가자지구에서 분화구 총 592개를 확인했는데, 가자 전체의 36개 병원 중 9(25%)치명적피해 범위인 반경 360m 이내에 최소 한 개 이상의 분화구가 있었고, 30(83.3%)인프라 손상과 사상 범위800m 반경 이내에 있었다.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폭탄 분화구는 그 거리가 겨우 14.7m에 불과했고, 두 개 병원은 반경 800m 안에 각각 23개와 21개의 폭발 분화구가 있었다.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360m 거리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고, 800m 거리에 청계광장이 있다.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거의 1t이나 되는 폭탄이 공중에서 떨어져 폭발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진다.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 횟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올해 1월 발표 자료는 의료시설 공격이 최소 364회라고 집계되었지만, 7월 발표 자료에서는 총 950건으로 늘어나 있었다. 한 병원은 35차례나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가자지구의 36개 병원 중 19개는 아예 작동을 멈췄고 17개는 일부만 기능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유일한 어린이 암병동이 있는 병원, 유일한 정신과 병원도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하지 못했다. 1차 의료센터 131개 중 56(43%)만이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파손된 구급차도 130대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대피를 명령했다고 하지만 폭격으로 폐허가 된 길을 변변한 이동 수단도 없이 신속하게 대피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유엔 인도적 지원 조정실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지난 1년 동안 보건의료 종사자 986명이 폭격과 공습으로 사망했고, 구호 인력도 최소 307(이중 유엔 직원이 229)이 죽었다. 연일 부상자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지만 시설이 파괴되고 물자가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 식초로 상처를 소독하고,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불빛으로 수술 부위를 비춰가며 마취제나 진통제도 없이 팔다리 절단술을 시행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상황을 두고 한 논문은 전쟁 안의 전쟁’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루시퍼와 대결한 샌드맨의 최후

놀랍게도 전쟁 초기 이스라엘 랍비 45명이 네타냐후에게 가자지구의 병원을 폭격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이스라엘 의사 400여 명도 이러한 비윤리적 공격 행위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신문 보도에 의하면, 소수의 이스라엘 의사들이 팔레스타인 포로들의 고문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인류는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대체 무엇을 배운 것일까?

홀로코스트 연구자들마저도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을 교과서에 실릴 만한 제노사이드라며 탄식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이스라엘의 폭주를 막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구의 진보 세력들 사이에서도 이스라엘 비판은 오랫동안 금기에 가까웠다. ‘()유대주의라는 낙인이 가진 무게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이 이후 아무 짓이나 저질러도 괜찮다는 허가증도 아닌데, 왜 이스라엘의 잘못을 비판하지 않는지 비서구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철학자인 수전 니먼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도구로 이용하여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모든 비판을 비켜가는 정책을 의식적으로 채택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가자지구 학살 1, 10·6 국제 행동의 날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하지만 요즈음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연일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외치고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를 규탄하고 있다. 정통 유대교 복장으로 시위에 참석하여 자신들의 국가가 저지르고 있는 반인륜 범죄 중단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시민들의 모습은 인간의 존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빛을 가져오는 자(light-bringer)’의 라틴어 이름은 루시퍼(lucifer)’, 지옥을 지키는 타락 천사다. 그래픽노블 명작 샌드맨(Sandman)에서 꿈의 왕국 군주인 샌드맨은 도둑맞은 투구를 찾기 위해 지옥을 방문한다. 루시퍼는 투구를 그냥 돌려줄 수는 없다며 무시무시한 말 잇기 게임을 제안한다. 환상의 세계에서 그들이 내뱉은 단어는 현실이 되어 상대방을 고통에 빠뜨린다. 루시퍼가 이리로 변신하면 샌드맨은 말을 탄 사냥꾼이 되어 이리를 공격하고, 그러면 루시퍼는 말을 쓰러뜨리는 말파리가 되고, 샌드맨은 이에 맞서 거미로 변신해 파리를 먹어치운다. 이제 루시퍼는 뱀이 되어 거미를 잡아먹고 샌드맨은 황소가 되어 그 뱀을 짓이긴다. 이어서 루시퍼가 모든 생명을 파괴하는 살육 박테리아로 변신하면 샌드맨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행성이 되고, 루시퍼는 이 모든 것을 폭발시키고 행성을 태워버리는 신성(新星)으로 변신한다. 샌드맨이 이 모든 생명을 끌어안는 우주가 되겠다고 하자 루시퍼는 자신이 반()생명, 판결의 짐승, 모든 것의 끝에 있는 어둠이라고 선언한다. 더 이상 맞설 방법이 없어 보였고, 구경꾼들은 모두 쓰러진 샌드맨의 패배를 점친다. 그때 샌드맨이 나지막이 내뱉는다. “나는 희망이다.” 침묵이 이어지고 루시퍼는 마침내 항복을 선언한다. 세상에 희망을 이길 수 있는 어둠은 없다. 비록 지금 가장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지라도.

시사인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202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