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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소비의 한국사 -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탐닉했나

by 이성근 2024. 10. 6.

<소비의 한국사 -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탐닉했나>(김동주·김재원·박우현·이휘현·주동빈 지음, 서해문집 펴냄)

 

목차

머리말

 

01 밥 없이는 못 살아, 정말 못 살아_ 김동주

02 물의 무게와 소비, 물장수부터 생수 배달까지_ 주동빈

03 라면 시장의 맞수, 삼양식품과 농심의 혈투_ 이휘현

04 ‘누구나를 위한 같은 맛의 한 잔_ 김동주

05 당신이 꿈꿔 온 강남의 탄생_ 김재원

06 , 느그 집에 냉장고 있나?_ 이휘현

07 우리는 취하고 싶다_ 김동주

08 무지갯빛 1980년대, 대중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법_ 김재원

09 그때 그 시절, 극장에서 우리는_ 이휘현

10 판매와 소비 욕망의 용광로, 관광의 시간_ 박우현

11 ‘개발욕망의 집결지, 기차역을 둘러싼 갈등_ 박우현

12 ‘노오력에서 재미_ 주동빈

13 불법과 합법의 경계 속 투기와 도박_ 박우현

14 왜 나는 마약을 소비하면 안 되나_ 주동빈

쌀밥. 우상조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2103

K-관광, 여성의 몸을 관광자원으로 선택하다

어쩌다 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내가 먹고 사고 즐긴 게 줄줄이 나온다. 배가 고파서 먹은 것도 있지만 배를 가득 채우고도 식탐(食貪)이 발동해 계산한 것도 있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오늘 힘들었으니까'라는 셀프 보상 심리로 지출한 것도 있다. 때론 '유행이네. 다들 갖고 있네?'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긁은' 것도 있다.

이처럼 현대인은 생존을 위한 상품보다 취향, 기호, 기분을 위한 상품을 더 많이 구매한다.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위로 받으며 자존감을 회복하기도 한다. 심지어 존재성을 확인하고 정체성 확립하는 데도 '소비' 또는 '소비자'를 빼놓을 수 없다. 생산보다 소비가 일상이 된 현대사회에서 '소비하는 인간(Homo Consumus)'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언제부터 또 어떤 흐름 속에서 '소비자'가 됐을까? 김동주, 김재원, 박우현, 이휘현, 주동빈 등 젊은 역사학자 5명이 근현대사 속 한국인의 일상과 욕망을 책 <소비의 한국사>(서해문집 펴냄)로 펴냈다.

책은 쌀··라면·커피·부동산·가전제품·술 등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과 음악·영화·관광·교통·장난감·도박·마약 등 기호나 취향에 따른 소비재로 나눠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는 생존을 위한 밥 한 그릇이 성공 열망의 대명사가 된 배경, 사는(live) 집이 중요 투자처인 '사는(buy) '이 된 이유, 'K-관광'의 시작은 '섹스관광'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쌀밥과 성공 열망

갓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은 이제 전자레인지에서 2분만 돌리면 된다. 2분이면 구수한 향이 나는 흰 쌀밥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쌀밥 한 그릇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이라는 국민적 소원은 옛 일이 됐지만, '한국인은 밥심'과 같은 말이 지금도 통용되는 걸 보면 쌀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은 여전하다.

저자(김동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는 한국인의 쌀에 대한 열망을 "'박탈'된 경험에서 비롯된 정서"라고 봤다.

일제 식민지 시대 일제가 조선을 식량 공급 기지로 삼고 정책적으로 쌀을 유출하면서 "대다수의 농민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소작료로 빼앗겼기에 쌀도, 쌀 판매 대금도 자기 손에 쥐지 못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미군정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미군정은 치솟는 쌀값을 해결한다며 강제 수집 정책을 썼지만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고 결국 총칼을 앞세워 쌀을 공출해 갔다.

이승만 정권은 19506.25 한국전쟁으로 농토가 황폐화된 상황에서도 '전후 복구'라는 명분으로 헐값으로 쌀을 걷어갔으며, 박정희 정권은 수백만 명이 굶주린 상황에서 '쌀밥 좀 그만 먹어라'라며 '혼분식(混粉食) 운동'을 장려했다. 일제 말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에게 "쌀은 내가 생산하고도 먹지 못하는 무언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은 쌀밥을 향한 욕망을 부정하지 않았다. () 박정희 정권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쌀밥 소비욕을 긍정하는 한편, 본인의 지도로 한국 사회가 쌀밥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 선전했다. ()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내건 '잘살아 보세'라는 표어는 맘껏 먹고, 맘껏 소비하고 싶다는 시대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광범한 호응을 얻었다. () , 박정희 정권은 단서를 덧붙였다. 그것은 바로 내일 쌀밥을 먹기 위해 오늘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위의 책, 24)

쌀 품종 개량과 경제 성장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도시 노동자를 중심으로 쌀밥을 먹는 집이 늘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쌀밥을 먹는다'는 것은 '성공했다'로 통했다. 비록 지금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56.4kg으로 역대 최소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쌀이란,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라는 원초적 욕망과 '잘살고 싶다'라는 사회경제적 욕망이 한데 모여 응축된" 상품이다.

집과 투자 열풍

우리가 사는 집(부동산)은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 그러나 한국인에게 집은 생필품이면서 동시에 '투자' 상품이기도 하다. 집을 소비하는 그 투자 열풍이 지금의 '강남'을 만들고 '8학군'과 같은 상품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저자(김재원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겸임교수)"한국 사회에서 집은 거주를 위한 소유가 아니라, 적극적인 투자의 한 형태로 소비되는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한국에서 집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소비재이자, 투자처"라고 했다.

박정희 정권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강조한 '근대화'" 덕에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수도 서울로 유입되는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주거 부족 문제가 심각했다. 정부가 화곡과 수유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소하려고 했지만, 당시 경제 상황에서 토지구획정리 후 지가가 상승한 땅에 주택을 짓고 분양까지 할 수 있는 민간 건설사가 없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돈(자본)이었다. 정권은 1969'한국주택은행법'을 제정해 '주택금고''주택은행'으로 덩치를 키운 뒤 '땅값이 뛰었다면 은행에 맡기고 돈을 빌려라'라는 논리로 민간자금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주택은행이 만들어질 때부터 '주택'이라는 소비재를 "경제성장에 공헌할 수 있는 생산적 투자의 한 형태"로 인식하게 했다. 주택은행에 관한 인식이 적중하려면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집값은 절대 내려가면 안 된다"라는 진리다. 집은 단지 주거의 목적이 아니라, 이제 투자처여야 했다. 집을 소비한다는 건, 집에 투자한다는 공식이 자리 잡아야 했다. () 그렇게 주택은행은 '내 집 마련 계획'을 위한 대출사업을 주도해야 했다."(106)

(부동산)이 사는(buy) 상품이 된 순간이었다. 주택은행의 활약(?)으로 정부와 민간기업은 새로운 투자처가 필요해졌고, 이들이 택한 곳은 "영등포의 동쪽 땅, 허허벌판에 농지가 가득한, 아직 땅값이 저렴하고 누구도 눈독 들이지 않은 그 땅, 지금의 강남이었다". 당시에는 여의도와 동부이촌동이 먼저 선택을 받았다. "지금의 강남땅이 지리적으로 연결되는 공간"이다.

여의도와 동부이촌동은 "공유수면인 한강을 메워 만들어진 땅"이었기에 토지 매입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곳의 개발(영동 개발)'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곳에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욕망을 적중했다. 한강 변 개발의 하나로 영동지구가 형성되고, 강남도로가 만들어졌다.

"한강 변을 중심으로 넒은 면의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었고, 논현동 인근과 청담동 주변에 전원주택 단지가 형성되었다. 애초에 돈 있는 사람이거나 주택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곳이 바로 강남이었다. 당시 정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산층"을 위한 공간의 개발이었다. () 주택은행의 주 고객은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고 고액 봉급생활자였다. () 직업은 대체로 공무원, 사무직 계통의 회사원, 교직원, 은행원 등이었다."(108~109)

이때 같이 성장한 업종이 건설업이었다. 당시만 해도 "집 장수, 또는 토목회사에 지나지 않은 건설업체가 어엿한 중견기업의 모습을 갖추더니, 건설사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늘려 대기업으로 진화했다".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의 기회를 늘린 기업이 건설업에 투자해서 투기 분위기를 만들면, 비싼 집값을 중산층이 대출로 감당하며, 다시 집값을 올리는 구조 말이다. 처음부터 영동은 이런 구조에서 개발된 땅이었다. () 이 구조를 완벽히 완성한 건 바로 정부였다. 영동에 돈이 돌자, 정부는 강남을 더욱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정책을 세우는데, 그 정책의 핵심은 강북 개발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강남을 노른자 땅으로 만들려면 강남이 기존 도심지를 완벽히 대체해야 했다. 그래야 영동에 집을 구한 이가 '이곳은 집값이 내려가지 않습니다'라는 생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고, 이로써 지가를 더욱 끌어올리며 개발을 추진할 수가 있었다."(111)

정부의 '강남 키우기'는 계획적으로 진행됐다. "19722월부터 강북에 유흥시설과 백화점, 시장 등을 신설, 증설할 수 없"었으며 "19754월부터 한강 이북 지역에선 택지개발이 금지"됐을 뿐 아니라 "곧 공공기관(사법부 중심)도 이전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강남으로 이전한 학교는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국가의 엄청난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경기고, 휘문고, 서울고 등 명문고들이 영동으로 이전했다. 한국의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8학군'의 형성은 국가 정책으로 추진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상 국가가 주도한 '강남은 집값이 내려가지 않습니다'라는 신기루는 '강남 불패'라는 신화로 승격됐다. 강남·서초 일대 압구정동·청담동·대치동·반포동은 지금도 한국인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처다.

관광과 그릇된 열기

한국의 관광 산업 역시 일제 식민지와 군사정권이라는 근현대사에서 비롯됐다. 관광(여행)은 국가 주도의 산업 육성 아이템이자 돈벌이 수단이었다.

저자(박우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교수)"관광은 자본주의, 근대가 만들어 낸 상품"이라며 "관광 한국, K-관광의 시작은 이런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관광은 일제 식민지 당시 "제국주의자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정책적 육성"으로 본격화됐다. 조선총독부는 원산 해수욕장, 금강산, 경주 등을 관광 상품화했다. 일본과 만주에서 조선을 찾았고, 조선에서도 일본과 만주로 관광을 떠났다. 이는 "식민지민 조선인에게 식민지이지만 조선은 즐길 거리가 많다는 안도감을, 식민자 일본인에게 우리 '제국'이 너희를 '발전'하게 한다는 우월감을 심어 주었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관광은 "경제개발계획과 연계되어 핵심 '외화벌이' 산업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당시 외국인을 유치할 만한 관광 상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은 "여성의 몸을 관광자원으로 선택했다. 이른바 '섹스관광' 육성국가를 선택"한 것이다.

"시기도 적절(?)했다. 마침 1972년 일본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하자 일본과 타이완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섹스관광'의 수요자였던 일본인 남성이 타이완을 대체할 공급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정변 이후 먼저 처리한 법안 가운데 하나가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었지만, 1973년에 외국인을 위한 매매춘을 하나의 국책사업으로 만들었다. 외채를 줄이고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는 자원이 당시에 '기생관광'으로 불린 정책이었다. 성매매가 필수로 포함되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의 한국 관광을 일컫는 것이었다."(215)

박정희 정권은 "기생관광을 위해, 매춘 여성이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호텔통과증과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매춘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허가증(접객원 증명서)을 발부해 주었". "당국은 여행사를 통해 기생관광을 해외에 선전"한 결과 "1978년 한국이 일본인 관광객으로 얻은 수입은 700억 원에 달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일본이 한국을 '창녀의 소굴 코리아'로 부른다며, 기생관광을 비판하기도 했다. 즉 정권의 적극적인 후원이 낳은 결과는 섹스관광 대국 코리아였다. 1980년대 초에도 외국인 관광객의 80퍼센트는 일본이이었는데, 이들이 한국 관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요정'이었고, 관광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80퍼센트가 '기생파티'를 언급했다."(216~217)

한국인에게 관광(여행)은 더이상 외화벌이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은 동남아시아와 일본 관광업계의 큰 손이자 적극적인 소비자다. 관광(여행)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어 일상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보는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이명선 기자 | 프레시안

 

소비의 역사 설혜심 저자 휴머니스트 · 201708

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설혜심 역사학자 거대한 사료 더미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여 인간의 삶이 중심이 된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설혜심은 익숙하지만 역사책으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주제를 통해 독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1617세기 영국 온천의 상업화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인적자원부 베스트 티처 상과 연세대학교 최우수 강의상, 최우수 업적 교수상, 최우수 교육자상 등을 수상했고 주요 일간지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기로 했다. 지은 책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인삼의 세계사, 소비의 역사, 지도 만드는 사람,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온천의 문화사, 서양의 관상학, 그 긴 그림자, 제국주의와 남성성(공저) 등이 있다.

목차

굿즈GOODS, 욕망하다

1. 유언장ㅣ가장 아끼던 물건은 과부가 된 친구에게 유언장에 나타난 근대 초 유럽의 소비

2. 양복ㅣ양복의 탄생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기성복 산업의 출현

3. 웨딩드레스ㅣ왜 신부의 드레스는 신랑의 턱시도보다 비싼가 사치 논쟁의 본질

4. 도자기ㅣ중국도자기의 유럽적 변신 미지의 세계를 소유하려는 유럽의 욕망

5. 비누ㅣ검은 피부, 하얀 비누 백색 신화를 전파한 최초의 식민주의 상품세일즈SALES, 유혹하다

6. 여성 디자이너ㅣ앙투아네트의 디자이너와 싸구려 여인들생산의 대열에 합류한 여성들

7. 특허약ㅣ돌팔이의 생명력 사이비 의사와 특허약 시장의 진화

8. 할부제ㅣ최초로 대량판매된 가정용 기계 재봉틀의 성공 신화와 반대 논리

9. 화장품 외판원ㅣ화장품 아줌마의 원조, 에이본 레이디 경제활동과 소비의 여성 네트워크

10. 트레이드 카드ㅣ상품의 화려한 명함 트레이드 카드가 배포한 지식과 편견컨슈머CONSUMER, 소비하다

11. 계모임ㅣ빚을 내서라도 사야 하는 물건 노동계급의 계모임과 과시적 소비

12. 수집ㅣ수집은 과연 소비행위인가? 박물관의 기원과 소비로서의 수집 논쟁

13. 이중 읽기ㅣ의학서라 쓰고 포르노로 읽는다 근대 초 의학서의 비밀스런 소비

14. 백화점 절도ㅣ병적 도벽 소비사회가 낳은 새로운 정신병

15. 성형ㅣ성형소비의 내셔널리티 아르헨티나는 유방 확대, 브라질은 유방 축소

16. 노인 소비ㅣ노인을 위한 상품은 없다? 노년층 소비자의 재탄생마켓MARKET, 확장하다

17. 오리엔탈 드레스ㅣ튀르크풍 의상의 유행과 쇠퇴 유럽에 영향을 끼친 튀르크 문화

18. 온천ㅣ400년 전, 온천에서 서비스를 소비하다 18세기 소비혁명 테제의 재검토

19. 박람회ㅣ신기한 상품 더미의 스펙터클 수정궁 박람회와 소비자의 탄생

20. 카탈로그ㅣ홈쇼핑의 기원 카탈로그 쇼핑과 욕망의 평등화

21. 쇼핑몰ㅣ쇼핑몰의 이상과 한계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하는 소비 공간보이콧BOYCOTT, 거부하다

22. 설탕거부운동ㅣ노예제 폐지와 설탕거부운동 윤리적 소비의 기원

23. 외제품 불매ㅣ애국소비 바이 아메리칸캠페인의 역사

24. 인권운동ㅣ미시시피 버닝의 뒷이야기 흑인의 소비와 불매운동

25. 글로벌 소비자 연합ㅣ소비의 정치성 소비자운동의 탄생과 발달

보론 서구 소비사의 현황과 전망

부록

본문의 주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및 소장처

출판사 서평

1.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의 역사’, 국내에 첫 선을 보이다!

- 일상적인 것에서 찾아낸 세계를 변화시킨 역사

거대한 사료 더미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며 인간이 중심이 된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자 설혜심 교수.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역사책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주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서양사를 알려온 그가 이번에는 수많은 인간의 행위 가운데 소비에 주목해 역사학의 주제로 재탄생시켰다. 그동안 사회학, 미학, 경영학 분야에서 논의되던 소비를 역사학의 한 테마로 다루면 어떤 모습일까?

현대인을 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무스라 부를 만큼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우리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비는 지금까지 욕망과 쾌락만을 위한 천박한 물질주의의 산물로 여겨졌고, 나아가 소비를 사치나 방탕과 연결시키곤 하는 사회적 통념은 소비를 진지한 연구의 대상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지금껏 어떤 역사가도 주목하지 않은 익숙한 물건과 공간, 그리고 소비라는 인간의 행위와 동기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내밀하고 다층적으로 살피며, ‘사람생활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를 들려준다.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상품의 역사는 물론, 약장수와 방문판매, 백화점과 쇼핑몰 같은 근대적 판매 방식과 공간의 역사도 함께 살피며,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상품이나 불매운동 같은 행위를 통해 소비의 이면에 숨겨진 저항과 해방, 연대의 장구한 역사를 마주한다. 이 책에 실린 눈을 사로잡는 200여 컷의 그림과 사진들은 근현대 소비문화의 현장을 더울 실감나게 보여줄 것이다.

또한 보론 서구 소비사의 현황과 전망에서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인 소비사의 서구 연구 현황을 정리하여, 역사학의 지평을 확장해줄 소비사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198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소비사 연구는, 근대역사학이 도외시해온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문제의식과 국경을 초월하는 학문적 지형을 뚜렷이 보여주며 첨단 연구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아직 소비의 정의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나, 역사학과 다른 학문 분야 간의 융합이라는 과제 등이 산적하지만, 이 문제들이 소비사가 지닌 특성이자 잠재력이라고 설혜심 교수는 지적한다. 소비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단초를 찾아내거나 국가, 민족, 계급을 초월하는 또 다른 형태의 연대와 네트워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 참여적이며 앞서가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역사학이 주목하지 않았던 인간의 내밀한 행위와 동기,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효과를 살핌으로써 더욱 다채로운 인간의 역사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것들의 역사를 만나고, 혹은 익숙한 것들을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 역사의 즐거움과 더불어 역사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이 스며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잊힌 역사의 조각을 찾아내 독자들에게 역사를 읽는 즐거움을 일깨우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상품과 공간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통해 일상적이고 친근하면서도 새롭고 참신한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를 만나보자!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비를 진지한 학문적 주제로 끌어올리고 싶다. 소비를 둘러싸고 이루어진 다양한 논의를 소개하고, 마케팅·경제학·사회학 등에서 따로 다뤄온 소비를 역사학과 접목시킴으로써 훨씬 더 풍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 소비 행위에서 인간의 동기와 목적성을 주목하는 것은 한때 큰 관심을 받았던 일상생활사나 미시사의 연장선에서, 구조에 함몰되었던 인간을 다시 역사의 중심에 세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역사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 책을 펴내며중에서

소비의 역사가 뒤늦게 시작된 데는 생산에 비해 소비를 폄하해온 학계의 통념 탓이 크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바티스트 세가 1803년 출간한 정치경제학논고에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세의 법칙을 주장한 이래 학계의 연구는 생산과 공급에만 집중해왔다. 카를 마르크스는 소비를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인간관계나 사회적 성격을 은폐해버리는 상품 물신숭배라고 불렀는가 하면, 잘 먹고 잘 입는 등의 욕구를 인간적 기능이 아닌, 동물적 기능이라고 비하했다. 막스 베버는 소비 행위가 사회적 지위 획득에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 바 있었지만,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자본주의 발달의 추동력으로 보는 논리 안에서는 소비는 쾌락으로 간주되었고 결국 주변적 위치로 밀려났다. …… 1980년대가 되자 소비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2012년 영국의 역사학자 프랭크 트렌트만은 소비는 생산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왔다. 소비하는 인간(homo consumens)이 만드는 인간(homo faber)을 대체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 서구 소비사의 현황과 전망중에서

2. 소비의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얼굴들

- ‘소비에 대한 통념을 벗어던지고 호모 콘수무스를 재발견하다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쓰는 행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물건에 대한 상상력과 관계 맺기, 이데올로기, 구별 짓기 같은 사회적 이미지나 상징 등 비물질적 요소를 포함하며, 소비를 촉진하는 다양한 장치들 즉, 판매나 마케팅, 광고 등을 포괄하기도 한다. 또한 오늘날의 소비는 소비자의 욕구와 쇼핑 행위, 소비 공간, 낭비와 재활용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졌다. 소비의 역사는 욕망과 쾌락, 사치와 방탕이라는 도덕적 통념을 벗어나 소비가 포괄하는 다양한 요소와 함께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근대 이후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발명품에서부터 옷과 화장품 같은 패션용품, 책과 같은 인쇄매체, 유럽 상류층의 사치품 등 문화적 삶을 이끌어온 각종 상품의 역사를 살피며, 자세한 사례를 통해 근대 소비혁명과 소비자의 탄생, 사치논쟁, 과시적 소비 등 소비를 둘러싼 개념과 논의들을 소개한다.

또한 온 동네를 돌아다닌 돌팔이 약장수부터 원조 화장품 아줌마 에이본 레이디의 방문판매, 최초로 대량판매와 할부제를 도입한 싱어사의 재봉틀, 소비 생활을 변화시킨 백화점과 쇼핑몰, 그리고 홈쇼핑까지 소비자를 유혹하는 판매 방식과 소비 공간의 기원과 변화를 추적한다. 더불어 백색신화를 전파한 비누, 제국주의적 편견이 담긴 트레이드 카드 등으로 상품에 담긴 식민성을, 노예제 폐지의 일환으로 일어난 설탕거부운동과 흑인들의 불매운동, 미국의 국산품애용운동을 통해 소비의 이면에 숨겨진 저항과 연대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그 외에도 수집 논쟁, 병적 도벽, 성형 소비, 노년층의 소비 문제 등 주변부에 놓인 소비 행위에 대해서도 살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오늘날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소비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소비의 세계에 수동적으로 포섭된 현대인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호모 콘수무스를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1824년 포목상인 피에르 파리소가 상점을 열고 기성복을 팔기 시작했다. 폭넓은 고객층을 상대로 한곳에서 옷을 만들고 판매까지 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이었다. …… 파리소가 창업한 기성복 상점은 곧 프랑스 곳곳에 분점을 내는 동시에 봉마르셰 등의 백화점에 입점하게 된다. 이런 남성용 기성복은 아주 최고급은 아닐지라도 그 이전까지 양복을 맞춰 입었던 계층과, 중고의류에 만족해야 했던 계층 모두를 고객으로 확보했다. 특히 기성복을 사 입음으로써 평생 처음으로 새 옷을 구매하게 된 사람들은 소비의 진정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사실 이런 기성복은 상류사회 사람들의 복장을 저렴한 버전으로 모방한 것이었다. 이제 하급 공무원들, 다소 독립적인 소상인들, 자유업의 보조원들, 산업이나 상업 분야의 고용인들, 유복한 수공업자나 노동자들, 즉 중간계급에 속한 집단들이 대량으로 복제된 명품의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 양복의 탄생 -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기성복 산업의 출현중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는 검은빛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문명세계는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토대로 구축되어왔으며, 어둠보다 빛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검은색을 띤 것들을 차별하고 배제했다. …… 19세기 말부터 남부 아프리카에는 서구에서 생산된 다양한 비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 20세기 전환기에 남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세수를 했던 한 어린 학생이 그런데 선생님은 백인이고 우리는 아직도 흑인 이잖아요라고 불평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학생은 매일 아침마다 깨끗이 씻으면 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가 황당하게 느껴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생과 미용 업계는 백색 신화를 상품화하고 있다.

- 검은 피부, 하얀 비누 - 백색 신화를 전파한 최초의 식민주의 상품중에서

싱어 재봉틀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도 선구적으로 도입한 할부제에서 찾을 수 있다. 싱어사의 경영자였던 클라크는 1856년 공장용 재봉틀뿐 아니라 범용 재봉틀을 만들어 각 가정에 판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생각은 사실 현실성이 떨어졌는데, 왜냐하면 당시에는 재봉틀이 매우 값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 재봉틀을 팔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판매 방식이 필요했다. 클라크는 적은 금액을 착수금으로 받은 뒤 나머지 금액을 오랜 기간에 나눠 갚는 할부제도를 고안해냈다. 이것이 바로그 악명 높은 공격적 마케팅인 “1달러에 계약하고, 1주일에 1달러 내기플랜이었다.

- 최초로 대량판매된 가정용 기계 - 재봉틀의 성공 신화와 반대 논리중에서

에이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독특한 회사였다. 무엇보다도 오늘날까지도 판매원과 고객의 95%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여성이 돈을 벌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19세기 말, 에이본사의 판매원 자리는 여성이 사업에 진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 1954년 에이본사는 -, 에이본이 방문합니다(Ding-Dong, Avon Calling”라는 TV 광고를 내보냈다. 가위손 에드워드가 사는 성을 찾아간 페그가 문을 두드리며 하는 첫 마디가 바로 이 광고 문구다. 이 광고는 1967년까지 계속되었던 역사상 최장기 광고로, 최고 성공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화장품 아줌마의 원조, 에이본 레이디 - 경제활동과 소비의 여성 네트워크중에서

설탕거부운동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설탕, 인디고, , 면화 등 노예노동을 통해 생산된 상품들에 대한 거부를 촉구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설탕의 경우 영국인의 일상에 밀착된 상품이어서 유달리 더 큰 논쟁에 휘말렸다. 설탕 교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설탕이 감각적인 사치품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이라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설탕을 끊게 되면 건강에 큰 해를 불러올 것이라며 경고했다. 사실 이런 논의가 일견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당시 영국인은 설탕에 거의 중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윌리엄 폭스의 팸플릿 때문에 뒤집히게 된다. 폭스는 설탕 소비를 경제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윤리적 측면에서도 고려해봐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노예가 생산하는 설탕을 섭취하는 일을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행위에 비유했던 것이다.- 노예제 폐지와 설탕거부운동 - 윤리적 소비의 기원중에서

보편적 건강서비스'는 성립, '보편적 스포츠카'는 글쎄

생태전환기 복지국가의 방향전환: 세 가지 과제

생태전환의 요구는 우리 사회에 상당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폭과 깊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쟁이 있다. 그저 화석연료 에너지를 어느 정도 감축하고 생산방식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을 지속하는 '생태적 현대화' 관점에서 지구의 수용한계를 고려하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탈성장' 관점, 자본주의 자체의 변혁이 필수적이라는 '생태 사회주의' 관점까지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이 입장들에는 생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차이는 물론, 과학기술을 통한 생태 문제 해결 가능성, 성장의 지속 가능성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놓여 있다.

아직까지 이 입장들 중 어떤 입장이 더 현실에 가까운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생태전환을 보는 그간의 지배적 입장은 가장 적은 변화를 상정하는 '생태적 현대화' 관점에 가까웠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것이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기초했다기보다는 변화가 적기를 '바라는' 긍정편향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는 복지국가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생태전환이 분명 복지국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알면서도 정작 노동전환에 따른 실업정책이나 에너지 빈곤층, 주거빈곤층 문제 대응을 넘어서는 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생태전환이 요구하는 변화는 개별적인 복지정책이 아닌 복지국가 수준의 좀 더 근본적인 체제전환에 이를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복지국가와 사회정책, 그리고 그 근간에 있는 민주주의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 글에서는 그 중 일부의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복지국가든, 아니면 좀 더 넓은 의미의 자본주의 국가든 체계전환을 위해서는 그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은 1950년대 국민계정체계가 자리 잡은 이후로 국내총생산(GDP)을 한 국가의 사회경제적 성취를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 여겨왔다. 물론 GDP 외의 다른 지표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지나친 왜곡이겠지만, 우리의 경제적 삶을 가리키는 단 하나의 지표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이 개인 수준에서는 '소득'을 그리고 국가 수준에서는 'GDP'를 꼽을 것이다. 이는 심지어 '분배'를 지향해온 복지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복지국가의 규범적 정당성은 그것이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기초해 왔으며, 90년대 이래 복지국가론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사회투자론'은 사회적 투자가 GDP로 측정할 수 있는 더 나은 경제적 성취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GDP가 실제로 우리의 삶을 가리키는 정도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GDP는 사회적 관계나 비공식 돌봄과 같은 비시장적 활동을 측정하지 못하고, 경제적 가치 외에 사회적 가치가 큰 공공서비스, 사회적 돌봄, 사회적 경제 등을 평가절하하며, 경제주체들 간의 분배 문제를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행복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개인의 소득이나 국가 수준의 GDP 증가가 실제 우리들의 삶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정도는 제한적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GDP 중심의 세계관에 결정타를 날리는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기후위기가 불러오는 지속가능성 위기다. "당신이 경제 바깥에 환경이라는 경계선을 그리는 순간, 당신은 경제가 영원히 팽창할 수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허먼 데일리의 말처럼 지속가능성 위기는 우리가 GDP로 상징되는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최근의 우려는 '포용적 성장' 혹은 '지속가능 성장'이라는 여전히 성장주의적인 해법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적어도 지구 전체적으로는 탈성장에 기초한 진보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생태위기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앞서 언급한 GDP의 여러 문제들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어차피 소득, GDP 그리고 그 뒤에 자리한 성장주의 패러다임은 우리의 삶을 매우 제한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많은 가치 있는 활동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평가절하 한다. 그렇다면 생태위기의 요구에 따라 우리의 궁극적 조준점을 GDP에서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와 함께 평가절하되었던 관계와 돌봄의 가치를 되돌려놓고, 성장의 한계선 안에서 모두의 삶을 지키는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도록 분배의 기준을 재설정하고, 소비 능력으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개개인의 삶과 행복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사실 GDP의 한계는 이전에도 지적되어 왔고 이를 보완하거나 대신하기 위한 시도는 다양하게 이루어져왔다. GDP가 측정하지 못하는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는 지표로서의 사회지표 운동이나 아마티아 센과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접근을 기반으로 한 인간개발지수(HDI), 사르코지 위원회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마련된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 그리고 최근 국내외에서 GDP를 대신하기 위한 지표로 제안되고 있는 참진보지수(GDI)나 참정장지표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어떤 시도도 GDP의 지배적 위치를 위협할만한 위치에 서지 못했다.

물론 대안적 지표가 반드시 GDP의 지배적 위치를 흔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전히 GDP가 측정하는 성장에는 의미가 있으며, 따라서 다른 지표들을 통해 GDP가 측정하지 못하는 것들을 측정하고 이를 통한 보완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생태위기가 심화될수록 성장에 대한 생각을 재조정할 필요성도 증가한다. 마침내 우리가 지향점 자체를 재조정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면, 이는 GDP가 기존의 지배적 위치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정책의 근간으로서의 필요(needs)

소득과 GDP가 상징하는 소비능력이 개인의 삶의 질이나 행복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고는 해도 여전히 '어느 정도의 소비능력'은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측면이다. 이 점은 성장주의에서 벗어난 복지국가가 어떻게 개인들의 필요를 분배하는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의 바깥에 한계선을 긋는 순간 우리는 개인들의 삶을 '파레토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체제전환 시대의 분배정치는 물론 언제나 어느 정도는 그랬지만 더욱 분명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수반하게 된다.

그 충돌을 관리하는 것이 분배정치의 몫이라면, 사회정책의 몫은 개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분배의 기준으로서의 '필요(needs)'를 더욱 정교하게 측정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필요의 부족' 뿐 아니라 '필요의 과잉'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현된 사례는 적지만 '최저임금'을 넘어 '최고임금'을 상상했던 것처럼 지속가능성 시대의 사회정책의 '필요' 개념은 필요의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필요의 과잉을 관리해야 한다. 영국의 사회정책학자 이안 고프가 설명한 것처럼 우리의 욕구 충족은 현 세대는 물론이고 다음 세대까지를 고려한 바닥(floor)과 천장(ceiling)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논의와 민주적 합의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해진다.

사회정책의 기초로서 '필요'를 정교하게 측정한다는 것이 그간 '보편주의'를 지향해온 방향에서 이탈해 '잔여주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흔히 '필요'라고 하면 자산조사를 떠올리지만, 자산조사는 필요를 측정하는 여러 방법 중 한 가지일 뿐이다. 바닥과 천장 사이에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접근은 그보다는 보편주의의 실현이 대체로 모든 시민들의 욕구가 유사하다는 '동질성(homogeneity)' 가정에서 벗어나 개개인들의 역량이나 상황에 따라 욕구가 그 정도나 유형에서 모두 이질적이라는 '다양성(diversity)'을 수용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상한과 하한 안에서의 분배는 개개인이 어떤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주어진 자원을 역량과 기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요인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까지 고려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가능성 시대의 보편주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욕구를 가지기에 비슷한 자원을 보장하면 된다는 동질성 가정에 기초한 보편주의가 아니라, 그 유형과 정도에 있어 모두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개개인들에게 비슷한 수준의 욕구충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원과 역량을 보장해야 한다는 개별화된 보편주의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 수준에서의 '좋은 삶'에 대한 모색

사회정책의 '필요' 개념은 경제학의 '선호' 개념과 다르다. 사회정책에서 필요의 개념은 개인의 주관적 만족감 뿐 아니라 그 필요가 동시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의 맥락에서는 후세대 관점에서 볼 때 객관적 타당성이 있는지를 고려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사회정책에서 '보편적 건강서비스'는 성립하지만 '보편적 스포츠카'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며, 체제전환의 시대에 우리가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정책의 목표를 소득과 GDP에서 우리의 삶(의 질)으로 재조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정책에서 '필요'의 개념을 정교화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공동체적인 함의를 담을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주관적 효용이 아닌 필요에 기초한 정책을 단지 소비능력의 보장이 아닌 삶의 번성(flourishing)을 목표로 펼친다는 것은 '무엇이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한가?' 나아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검토와 합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간 자유주의 국가가 전제해온 (개인의) 권리가 좋은 삶에 우선하며, 따라서 공동체는 개인이 좋은 삶을 정의하고 추구하는데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에서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탈할 것을 요구하는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비록 그것이 자유주의자들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개인의 권리'를 가장 중요한 공동체의 근간으로 삼아온 자유주의적 기획은 '소득과 소비'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성장을 추구하는 체제와 함께 발전해왔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는 적어도 개인의 호기심을 위해 우주로 로켓을 쏘아 보내는 행위를 개인의 재산권의 실현이라고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한다. 지속가능성 위기의 시대에 우리의 목표를 GDP에서 삶으로 재조정한다는 것은 - 물론 철저히 민주주의적인 숙고와 합의에 기초해서 - 무엇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좋은 삶의 방향이며, 이를 위해 어떤 필요를 보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요구한다. 어쩌면 이것은 GDP로부터의 이탈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전환인지도 모른다.

남재욱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