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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아름다움의 진화

by 이성근 2019. 4. 21.




아름다움의 진화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저자 리처드 프럼|역자 양병찬|동아시아 |2019.04

 

저자 : 리처드 프럼 예일대학교 조류학과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시에 피바디 자연사박물관의 척추동물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매카서 펠로십과 구겐하임 펠로십을 받았으며, 공룡의 깃털과 그 색깔을 밝혀내는 데 기여했다. 저명한 조류학자인 그는 아름다움의 진화에서, 주도면밀한 연구 결과와 한평생의 조류관찰을 통해 수집한 사례들을 총동원하여, 독자들을 전율 넘치는 지적 탐험의 세계로 안내한다.

 

아름다움의 진화는 각양각색의 새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숲속에서 시작하여, 종래에는 인간의 진화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2017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10권 중 유일한 과학 책이며, 2018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 후보로 올랐던, 흥미진진하고 매력 만점인 걸작이다.

 

목차

아름다움의 진화에 쏟아진 찬사들

프롤로그

1.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

2. 이 세상에는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다

3. 춤추고 노래하는 마나킨새

4. 일생을 탕진하는 퇴폐적 아름다움

5. 백악관을 뒤흔든 오리의 페니스

6. 데이트 폭력은 이제 그만!

7. 로맨스 이전의 브로맨스

8. 사람에게도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다

9. 이 세상에는 별의별 쾌락도 다 있다

10. 섹스 파업이 불러온 평화

11. 호모 사피엔스의 호모-섹슈얼리티

12.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

감사의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만국의 피메일(Female)이여, 단결하라!

모든 동물의 역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은 엄연히 다르다. 비인간 동물들 사이에서 자행되는 강제교미와 인간의 강간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인간의 강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가려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라는 것이 지금까지 동물행동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던 생각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구분 짓기가 동물의 강제교미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함의와 생물학적 시사점에서 눈을 돌리게끔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편견 때문에 오바마 정부 시절, 예일대학교의 오리의 생식기 연구에 정부 예산을 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덕페니스게이트(Duckpenisgate)’라는 조롱이 쏟아지기도 했다. 오리의 생식기와 성 문화 연구가, 오바마 정부 예산 낭비의 대표주자로 꼽힌 것이다. 하지만 오리의 생식기 연구는 결코 예산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생물 진화에 대한 새로운 시사점으로 가득한 보고다.

 

어떤 종의 오리는 몸길이가 평균 3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수컷의 페니스 길이는 암컷의 전체 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최장 42센티미터에 달한다. 반면 암컷의 생식기는 구불구불하고, 험난하여 나아가기 어렵다. 이것은 강제교미를 자행하려고 하는 수컷과, 이를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했던 암컷의 치열한 군비경쟁의 결과다. 오리만이 아니다. 침팬지 암컷은 강압적인 우두머리 수컷을 피해, 자신이 고른 수컷과 달콤한 밀월여행을 떠난다. 구애행동을 위해 수컷이 무대를 만드는 바우어새의 경우, ‘비상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은 무대에는 암컷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이토록 놀랍고도 다양하게 성 갈등 양상이 펼쳐지는데, 이들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나름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현존하는 동물들의 신체에는 그 지난한 싸움의 역사가 진화라는 형태로 아로새겨져 있다. 동물의 진화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다.

 

양성 간의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우리는 진화해 왔다

 

가부장제의 수호자들은 흔히 페미니즘이 자연발생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이를 부인하며, 남성의 지위를 끌어내리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양성의 차이를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하라는 목소리는, 일견 생물학적?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페미니즘이 정말 그렇게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하다는 업신여김에, 리처드 프럼이 정면으로 맞선다. 바로 그 과학을 기초로 말이다. 정말 페미니즘이 허상이라면, 각자 나름의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하고, 진화해온 각종 동물들의 진화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같은 영장류?유인원 조상에서 갈라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는 인간의 신체적 조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보노보와 침팬지의 경우 암수의 몸집 차이가 25~35퍼센트 가량 차이나지만, 인간의 경우 남성의 체구는 여성보다 고작 16퍼센트 가량 클 뿐이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유난히 작은 송곳니를 보라! 인간은 물리적인 강압과 폭력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바로 여성의 선택을 통해서 말이다. 이것을 지금 흔히 사용하는 의미로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양성 간의 평등과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범동물적이고 과학적인 현상이다. 리처드 프럼은 이 책을 통하여 그야말로 과학적 페미니즘의 새로운 근거를 제시한다.

사회운동가도, 사회학자도 아닌 순수한 조류학자의 연구와 관찰이 성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에 도달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새들의 생태와 진화론, 다윈의 미학을 연구한 끝에 자연스럽게 도출된 이야기다. 저자의 추론에 따르면, 성적 강제와 물리적인 억압이 성행하던 시절에는 아름다움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조류와 영장류를 불문하고. 왜냐하면 아름다움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쓸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이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비로소 아름다움에 의미가 생겼다. 이제 데이트 폭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 바우어새 수컷은 암컷을 맞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대를 꾸미고, 수컷들끼리 군무를 준비한다. 인간 또한 성별을 불문하고 서로의 마음에 들고자, 아름다움의 기준과 신체 자체를 진화시켜나가고 있다. 한 종 안에서 양성의 성적 자율성이 담보될 때, 배우자선택의 기준으로 남는 것은 결국 순수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생존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퇴폐적인 아름다움 말이다!

 

새들이 선보이는 진화적 역동성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보다

30여 년의 현장 연구에서 우러나오는 깊이 있는 통찰!

 

한때 생물학계에서는 연구실에서 이론이나 수학에 천착하는 사람과, 답사를 나가 직접 발로 뛰는 현장 생물학자를 구분 짓는 기류가 흘렀다. 매트 리들리의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컴퓨터에 탯줄이 연결된사람과 턱수염을 기르고 장화를 신은사람들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이분법적인 시선을 가당찮다라는 한 마디로 일축해버린다. ’새 덕후로서 30여 년 동안 현장을 답파하며 새의 생태를 관찰해온 리처드 프럼의 연구 성과는, 실험실에서 쌓아올린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공고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 이르렀다. 섬세한 세밀화와 함께, 새들이 부르는 세레나데 마냥 조곤조곤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현존하는 새들의 생태, 서식지, 구애행동만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이야기에까지 다다르며, 나아가서는 유인원 그리고 종래에는 인간 사회의 문화와 섹슈얼리티까지도 두루 섭렵한다. ’조류관찰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 이른다.

<창세기>에서 여호와가 이브를 만들 때 사용한 것은 정말 아담의 갈비뼈일까? 왜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비교했을 때 몸집 대비 엄청나게 거대한페니스를 발달시켰을까? ‘이성애자 여성-동성애자 남성 간 우정은 흔히 소비되는 이미지인데 왜 이성애자 남성-동성애자 여성 간 우정은 낯설게 느껴질까? 오리, 바우어새 등 다양한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여성의 선호를 통해 형질을 진화시켜왔다. 그리고 인간은 빈번하게 영아살해를 일삼는 잔인한 영장류에서 사회적 지능을 갖추고 배우자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돌봄이로 거듭났다. 그러나 수백만 년에 걸친 이 장대한 진화사에서 결코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이 지난한 군비경쟁은 결코 여성이 우월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일어났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체적?물리적으로 성적 강제와 폭력, 억압에 시달리기 쉬웠던 여성이 평화를 도모해온 결과가 지금 인간의 신체다. 이는 역사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는 장구한 정전협정이다.

 

섹슈얼리티와 아름다움, 다윈의 미학에 바치는 찬가

아름다움에는 죄가 없다, 마찬가지로 공도 없다!

 

찰스 다윈이라고 하는 이름과, 그 이름이 생물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유명한 존재지만, 진짜 다윈의 사상은 두터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누구나 종의 기원은 알지만, 다윈의 후기 저작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심지어 성선택의 개념조차 낯설다. 그저 자연선택의 시종으로서의, 반쪽자리 성선택만이 남았다. 다윈의 죽음 이후, ‘다윈주의자를 참칭하며 자연선택만을 남기고, ‘성선택을 배제해버린 신다윈주의자들이 바로 그 범인이다. ‘적응주의라고 하는, 자연의 모든 신비를 기능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맹신만이 남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개념만 가지고는 결코 오롯이 설명해낼 수 없다.


저자가 말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도그마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강력한 단일이론이나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는 구태의연한 일신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종교적 일신론에서 탈피한 게 아니라, 단순히 유물론적 진화론이라는 유일신교로 개종했을 뿐인 지적 전도단의 계보가 아직도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누군가가 짜 맞춘 것처럼 완벽하게 하나의 이론으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 도저히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름다움의 방식이 제각기 진화해왔다. 자연에는 쓸모없는 아름다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떤 단일한 신이나 이론이 아닌,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지금도 어딘가에 보지 못한 채 숨겨져 있을,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새 시대의 찬가다

 

책속으로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진취적인 점은, 미학적 성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그는 자연계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진화적 기원을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동물적 욕구의 결과로 파악했다. 이 생각이 급진적인 이유는, 생명체(특히 암컷)를 종 진화의 능동적 주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경쟁?포식predation?기후?지리 등의 외력external force이 생명체에 작용하는 데서 비롯하지만, 이와 달리 성선택은 생명체가 스스로 담당하는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self-directed인 과정이다. 다윈은 암컷을 미적 취향을 가진 존재심미적 존재, 수컷을 배우자를 매혹하려 노력하는 존재로 서술했다.--- p. 44

 

우리는 이 구절에서 적응주의adaptationism가 탄생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적응주의자들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을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힘으로 내세우며, 그것이 진화과정을 늘 지배할 거라고 믿는다. 또는 월리스가 단언한 것처럼, “자연선택은 엄청난 규모로 끊임없이 작용하므로, 다른 모든 진화적 메커니즘을 중화한다라고 믿는다.

월리스는 다윈의 비옥하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지적 유산지적으로 빈곤하고 획일적인 이론으로 변형시켰는데, 오늘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다윈주의는 후자에 가깝다. 그즈음 월리스의 행동 중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독선과 고집이라는 적응주의적 논증 특유의 스타일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p. 60

 

어떤 경우든, 대칭가설은 청란의 날개깃과 꽁지깃에 나타난 패턴과 같은 복잡한 장식물의 진화를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설사 그런 측면이 존재하더라도, ‘완벽하게 대칭적인 신호에 대한 자연선택으로는 청란의 깃털과 과시형질에 무수히 숨어 있는 특이적이고 복잡한 세부사항을 단 하나도 설명할 수 없다.--- p. 129

 

배우자선택의 자유를 파괴하려는 폭력적 시도가 곳곳에 깔려 있지만, 암컷의 배우자선택이 우 위를 유지하는 한 아름다움은 계속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암컷의 성적 자율성은 수컷에 대한 권력 행사의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단지 배우자선택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메커니즘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암컷 오리는 수컷에게 성적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배우자에게 언제든지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암컷은 성폭력에 맞대응하여 수컷을 지배하도록 진화하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진화했다.--- p. 266

 

바우어는 미적인 건축물일까? 절대적으로 그렇다. 바우어는 (암컷을) 보호할까? 정말로 그렇다. 바우어가 미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하게 진화한 것은, 바로 그것의 보호 기능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바우어의 진화적 기능은 미적 평가를 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며, 이러한 환경은 암컷을 데이트 강간date rape에서 보호한다. 바우어 덕분에 일단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면, 암컷은 좀 더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선호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

--- pp. 309~310

 

평등한 몸집에 대한 여성의 선호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신체적 우위 감소로 이어지며, 성적 강제를 비롯한 폭력에 저항할 기회를 향상시킨다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여성의 배우자선택을 통한 몸집의 이형성 감소는, 그와 관련된 남성의 행동 변화(특히 공격성 감소와 사회적 관용 증가)를 끌어낼 수 있다.--- p. 444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침팬지와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이후 수백만 년 동안 발달한 여성의 성적 자율성은(진화적 맥락 2)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두 가지 문화혁신의 도전에 직면했다. 하나는 농업이고, 다른 하나는 농업과 함께 발달한 시장경제다. 쌍둥이 혁신은 우리 조상들이 궁핍한 생활을 영위하던 600세대 이전 시대에 나타나, 를 창출하고 차별적으로 분배할 기회를 창조했다. 남성들이 이러한 기회를 틈타 물질 자원에 대한 문화적 통제권을 장악하자, 남성의 사회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새로 창출되었다. 전 세계의 많은 문화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고안된 가부장제는, 여성의 삶 중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한 통제권을 남성에게 넘기는 기능을 수행해왔다. 요컨대, 현대 여성들이 과거에 진화를 통해 얻은 성적 자율성을 완전히 향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주범은 가부장제라는 문화의 진화였다.

--- p. 496

 

자신이 누리는 권력과 특권을 정당화하려는 듯, 가부장제의 옹호자들은 종종 페미니즘을 권력 장악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매도한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삶을 조종하고, 그들의 자연발생적·생물학적 특권을 부인하며, 그들을 부차적인 지위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예컨대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한 법학자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합법적 권리마저 자신의 개인적인 성적 욕구를 타인에게 강요하려고 한다라고 그릇되게 비판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강간과 성범죄를 규정한 법령 중 대부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판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개념과 생물학적·문화적 발생과정을 근본적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 p. 499

 

진화를 추동한 또 하나의 힘 별의별 아름다움

1859<종의 기원>을 발간해 인류에 거대한 충격을 던진 찰스 다윈(1809~1882)에게 수컷 공작새는 골칫거리였다. 1860년 식물학자인 미국인 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공작의 꽁지에 있는 깃털을 들여다볼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네!”라고 썼다. 화려한 수컷 공작의 깃털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진화한 다른 형질과는 달리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적자 생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수의 진화생물학자는 성적 장식물과 과시가 진화한 이유는 그 장식물이 배우자의 자질과 조건에 대한 정직한 정보를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아름다운 깃털은 우수한 형질을 갖고 있음을 뜻하고, 암컷은 그런 수컷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암컷의 성선택은 수컷의 사회적 행동도 변화시킨다. 다섯 마리의 성숙한 수컷 푸른마나킨 그룹이 횃대를 방문한 녹색 암컷(맨 왼쪽)에게 협응적이고 협동적인 옆으로 재주넘기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그룹의 묘기가 마음에 들면 암컷은 그중 지배적인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Jo?o Quental, 동아시아 제공

 

리처드 프럼(58) 미국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의 <아름다움의 진화>는 이런 견해에 반기를 든다. 그는 성적 장식물은 배우자의 자질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양쪽의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진화는 심지어 퇴폐적이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화려한 깃털은 우월한 형질 표지가 아닌 실용성 없는 아름다움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지은이는 성선택자연선택의 하나의 하위 형태로 여기는 견해를 비판하고,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으로 진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는 독자적인 진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진화에 암컷의 성적 자율성이 결정적으로 기여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진화로 논의를 넓힌다.

        

지은이는 “‘진짜 다윈정통 다윈주의를 권좌에 복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다윈이 1871년에 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 주목한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진취적인 점은 미학적 성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자연계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진화적 기원을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동물적 욕구의 결과로 파악했다. 이 생각이 급진적인 이유는 생명체(특히 암컷)를 종 진화의 능동적 주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한 세기 반 동안 간과되고 왜곡되고 무시되고 거의 잊혀졌다.” 자연선택 이론의 공동 발견자인 앨프리드 월리스(1823~1913)가 공격에 앞장섰다. 그는 1889년 출간한 <다윈주의>에서 나는 자연선택의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단언하며, 암컷의 선택에 의존하는 성선택이란 개념을 기각한다고 했다. 자연선택으로 진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가 이후 학계를 지배했다.

 

이런 적응주의 진화론을 반박하기 위해 지은이는 새들의 성생활을 살펴본다. “새는 미적 극단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다윈도 새들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심미적이다. 물론 인간은 제외하고 말이다라고 했다. 지은이는 지구상의 1만종의 조류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관찰했다. 화려한 외모를 뽐내는 수컷 새들의 마이클 잭슨 뺨치는 문 워크등 기발한 구애행동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암컷은 노련하고 냉철한 감정가. 구애행동은 배우자의 자질에 관한 정보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임의적이고 미적인 배우자 선택에 적절히 대응하기위해 진화했다고 한다. 수컷의 외모와 구애행동은 암컷의 성적 선호와 욕구, 즉 성선택을 통해 진화했다. 암컷은 심미적 존재, 수컷은 암컷을 매혹하려 노력하는 존재다. “세상에는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다.”

 

보켈콥바우어새 수컷은 오두막집 모양의 앞마당에 이끼정원을 조성하고 신기한 물건들과 재료들로 장식다 사진 동아시아



수컷 청란의 4번 둘째날개깃에서 3D 황금색 공의 복잡한 색상 패턴이 자세히 드러난다. Michael Doolittle, 동아시아 제공

 

책은 수컷의 성적 과시행동과 암컷의 미적 선호가 공진화함으로써 암컷의 성적 자율성이 향상된 미적 리모델링을 보여준다. 암컷의 선택은 수컷의 사회적 행동도 변화시킨다. 이것이 수컷을 지배하도록 암컷이 진화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밝힌다. “단지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진화했다.”

 

새의 경우 성선택과 아름다움을 추동한 쪽은 암컷이었지만, 인간은 양성이 모두 배우자 선택에 관여한다. “인간 남성의 성적 까다로움은 유인원의 생명의 나무에서 오로지 인간의 가지에만 나타난 배타적 특징이다.” 이는 남성이 자녀를 돌보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자하는 것과 관련된다. 남성의 성적 선호와 함께 여성의 성적 장식도 공진화했고, 역방향으로도 진행됐다. “생식기에도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다.” 다른 유인원보다 작은 송곳니 등은 남성의 폭력적 성향이 여성의 선호를 통해 줄어드는 쪽으로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남성의 공격성이 약해지고 인류의 협동적인 사회적 기질과 사회적 지능이 진화한 메커니즘은 바로 이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자연선택이 아니라 여성의 배우자 선택을 통한 미적 성선택을 통해 진화했다.” 지은이는 여성의 쾌락 추구가 인간의 아름다움과 섹슈얼리티 진화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러면 오늘날도 여성이 성적·사회적 자율성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남성의 권력, 성적 지배, 사회적 위계질서(즉 가부장제)라는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발달해 여성의 성적 자율성 확대에 대한 대응조치로 수정·생식·양육투자에 관한 남성의 지배를 재확립했다.” 여성의 성적·사회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문화적 투쟁이 공진화해 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위한 싸움은 지극히 과학적인 현상"



수컷 어깨걸이풍조 한 마리가 자신의 과시용 통나무를 방문한 암컷에서 가슴깃털을 부챗살처럼 펼쳐 특유의 스마일 이모티콘을 보여주며 구애 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 동아시아]


.최근 성별 갈등이 뜨겁다. 여성 혐오는 물론, 페미니즘과 관련한 이슈는 연일 전쟁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최근 나온 리처드 프럼의아름다움의 진화(동아시아)는 페미니즘, 특히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과학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성적 자율성 위한 싸움은 과학적 현상"

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30년 이상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들의 행동과 깃털, 모양,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연구해왔다. 그는 새들의 사례들을 통해 "암컷의 양성 간의 평등과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범 동물적이고 과학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사례 중 하나가 오리 종이다. 오리 종의 성비는 수컷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어 암컷이 선택할 신랑감이 넘쳐난다. 언뜻 생각하면 암컷이 매우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선택받지 못한 수컷들이 암컷을 겁탈하는 '강제교미'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리 가운데는 몸길이가 평균 30밖에 되지 않지만, 수컷의 페니스 길이가 암컷의 전체 길이를 훌쩍 뛰어넘어 최장 42에 달하는 것도 있다.

강제교미가 이뤄질 때 암컷 오리는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이 과정에서 암컷 오리는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죽음을 무릅쓰면서도 암컷이 강제교미에 저항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적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성폭력은 진화론적 이해관계에도 어긋나

암컷이 성적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보기에 성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낳을 간접적유전적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라고 설명한다. 강제교미로 수정된 암컷은 자신의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형질을 가진 2세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우 2세 역시 다른 암컷들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개체 수가 점점 줄게 된다

 

이와 달리 자신이 원하는 수컷과 짝짓기한 암컷은 자신이 원하고 모든 암컷이 동경하는 과시 형질을 물려받은 2세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우월한 2세 역시 다른 암컷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세대를 거듭할수록 개체 수가 점점 늘게 된다. 이처럼 성폭력은 진화론적인 이해관계에 크게 어긋난다.

결국 암컷 오리는 강제교미에 저항하기 위해 특이한 구조로 생식기를 진화시킨다. 실제로 암컷 오리의 질 구조를 관찰한 결과, 생식관에 일련의 구불구불한 통로들이 발견됐는데 이 통로들은 시계방향으로 꼬여 있다. 이는 반시계방향으로 꼬인 수컷 오리의 페니스가 강제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30년 이상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들의 행동과 깃털, 모양,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연구해왔다. [사진 동아시아]

 

저자는 "암컷 오리가 성폭력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지렛대를 통해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보호하려 애써왔단 사실을 알게 된다"고 설명한다. 강제 교미를 자행하려는 수컷과 이를 어떻게든 막아내려는 암컷의 치열한 저항의 결과가 진화로 나타난 것이다.

암컷의 성적 자율성을 지키는 쪽으로 진화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오리 외의 대부분 조류는 페니스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암컷들이 페니스 없는 수컷을 명백히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페니스의 주요 기능이 오리처럼 강제교미를 통해 암컷의 배우자 선택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암컷들은 성적 자율성에 대한 위협을 감소하기 위해 삽입을 거부하는 짝짓기를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수컷은 더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교미를 성공시킬 수 없다. 암컷의 성적 자율성이 확보된 개체에서 수컷들은 순수히 '아름다움'만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대표적 예가 바우어새다.

수컷 바우어새는 구애를 위해 아주 아름다운 오두막을 짓는다. '바우어(bower·나무그늘 또는 정자)'라 불리는 다양하고 독특한 구조물을 만들어 갖가지 재료로 장식해놓고 암컷에게 구애한다. 바우어의 앞마당과 뒷마당을 장식하는 데 사용하는 수집물도 다양하다. 꽃과 이파리, 깃털을 사용하고 이끼나 밀짚, 자갈로 바닥을 깐다. 이렇게도 열심히 오두막을 짓는 유일한 목적은 암컷의 환심을 얻어 짝짓기하기 위해서다.

 

수컷 새틴바우어새는 진입로형 바우어를 지으며, 주변에서 발견한 감청색 물건으로 앞마당을 장식한다. [사진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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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진 오두막이라고 해도, 암컷은 '비상 탈출구'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을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류는 가부장제도가 성적 자율성 억압

이런 과정으로 일어나는 성 선택은 조류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도 성 선택의 흔적이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보노보와 침팬지는 암수의 몸집 차이가 25~30%나 된다. 하지만 인간은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16%가량 크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송곳니도 유난히 작다. 이는 인간이 물리적인 강압과 폭력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증거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외치는 여자들이 넘쳐난다. 그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여성의 배우자 선택이 성적 자율성을 크게 발달시킨 것은 맞지만, 뒤이어 진화한 인간의 문화가 성별 갈등을 야기하는 새로운 문화적 메커니즘을 등장시켰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어 "현대 여성들이 오랜 세월 진화를 통해 얻은 성적 자율성을 완전히 향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주범은 '가부장제도'의 진화"라고 말한다. 남성이 사회·경제적 통제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문화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억압하고 남성의 사회권력을 공고히 할 기회를 새롭게 창출했다는 것이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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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 제 2회 MBC 대학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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