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저자 자부리 가줄|교유서가 |2019.03.05
저자 : 자부리 가줄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생태계경영학 교수. 2006년부터 2013년까지 학술지 〈바이오트로피카Biotropica〉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2015년에는 열대생물보존협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열대우림 생태학, 다양성, 보존』(OUP, 2010) 등이 있다.
역자 : 김명주
성균관대 생물학과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도덕의 궤적』 『우리 몸 연대기』 『인류세의 모험』 『호모 데우스』 『과학과 종교』 『1만 년의 폭발』 『다윈 평전』 『생명 최초의 30억 년』 『아인슈타인과 별빛여행』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 등이 있다.
목차
1. 인간 문화 속의 숲
2. 여러 종류의 숲
3. 숲의 기원
4. 교란과 역동성
5. 숲의 상품과 서비스
6. 과거, 현재, 미래
감사의 말/ 참고문헌/ 역자 후기/ 도판 목록
출판사 서평
숲의 문화사, 숲의 의미론
숲, 특히 인위적 교란을 받은 적 없는 노숙림(老熟林)은 오랫동안 인류의 집단의식을 지배하면서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숲은 생물다양성을 떠받치는 서식지이고 신성한 가치와 미학적 아름다움이 깃든 장소이며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원을 생산하는 땅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진보에 걸림돌이 되는 황무지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숲의 가치를 둘러싼 정치적 분열이 초래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저자 자부리 가줄은 “세계의 탄소 흡수원 또는 지구다양성의 대부분을 보유하는 장소로서 숲이 갖는 국제적 가치는 국가 수준의 개발 과제와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숲을 뜻하는 고대 영어 단어인 ‘weald’ 또는 ‘woeld’는 ‘야생’을 뜻하는 현대 영어 단어 ‘wild’와 관련이 있다. ‘landscape’(경관)라는 단어의 어원도 숲(woodland)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어원상 서기 500년경에 사용된 고대 영어 ‘landscaef ’와 관련이 있다. 이 단어는 동물, 오두막, 밭, 울타리가 있는 ‘숲(weald)’의 빈터를 뜻한다. 결국 ‘숲(forest)’이라는 단어 자체도 역사를 거쳐오면서 매우 다른 의미들을 가졌고, 나무가 덮인 경관을 뜻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오늘날은 숲은 언제 형성되었는가
약 3억 8500만 년 전에 형성된 최초의 숲은 조용한 편이었다. 그러다 육상식물의 진화와 지질 및 기후 변화가 상호작용하면서 모습을 계속 바꾸었다. 오늘날의 숲이 형성된 것은 마지막 빙기가 끝난 시점, 즉 지금부터 약 1만 년 전에서 1만 2000년 전의 홀로세 때였다. 기후가 온난해지고 빙하가 후퇴한 데 이어 북유럽과 북아메리카 전역에 숲이 돌아온 일은 자연사의 위대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 가줄은 “이 후빙기 홀로세의 식생을 다룰 때는 기후 변화의 영향뿐 아니라 인간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영향은 빙하가 물러나며 드러난 땅에 나무 종자와 인간의 발자국이 들어온 즉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현대 숲의 형성 과정은 농업, 작물화와 가축화, 목재와 땔감 등의 이용, 불 사용의 영향들과 분리할 수 없다. 한편, 8000년 전 낙엽수림은 북유럽을 가로질러 영국 제도와 스칸디나비아 남쪽까지 뻗어 있었고, 자작나무와 소나무로 구성된 북방림은 스칸디나비아 북부와 러시아로 밀려났다. 약 4000년 전에는 유럽의 숲 유형들의 분포와 구성이 현재 알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하략)
책속으로
2010년에 영국 정부가 잉글랜드 공유림의 약 절반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이 격렬하게 반발한 일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줄리아 힐의 항의가 결코 비주류 의견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영국 환경부 장관 캐럴라인 스펠먼은 나중에 이렇게 논평했다. “이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숲과 숲이 주는 혜택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 p.12
유럽의 과학적 임업 관행은, 목재와 여타 자원을 생산하기 위해 숲을 보존해야 할 필요성과, 특히 19세기 말부터 증가한 산림 자원 수요를 억제하지 않을 경우 광범위한 숲이 사라지고 황폐화될 거라는 예상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 p.31
내 연중행사인 스코틀랜드 고지 여행 때 좀더 힘들게 걸으면 고대 소나무숲, 건조한 물푸레나무숲, 참나무 온대우림을 볼 수 있다. 이런 숲 유형들은 각기 기후보다는 지질에 따라 결정되지만, 과거의 관리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숲은 형태와 구성이 매우 다양하고, 따라서 그런 복잡성을 단순화한 형태분류 체계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 p.73
일반적으로 수종이 다양한 숲은 해충 피해를 적게 입는데, 종이 다양하면 해충이 적합한 숙주를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탓이다. 따라서 종 다양성이 매우 높은 숲에서 자라는 열대림의 나무들은 광범위한 해충 발생의 피해를 입는 일이 극히 드물다. --- p.131
목재는 단연 숲이 생산하는 가장 가치 있는 상품으로, 목제품의 세계 무역 가치는 미국 달러화로 약 1500억 달러에 이른다. 문명사의 상당 기간 동안 목재는 경제 발전의 대들보였다. --- p.151
한때 우리는 교란을 받지 않은 자연림의 탄소 흐름은 압류된 탄소량과 방출된 탄소량이 균형을 이루는 평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관찰은 숲이 방출하는 양보다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하고 있으며 숲은 탄소 흡수원의 대략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p.173
숲은 생각한다 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저자 에두아르도 콘|역자 차은정|사월의책 |2018.05
원제 How Forests Think
저자 에두아르도 콘 EDUARDO KOHN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인류학 교수이다.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코스타리카의 열대학연구원이 주관하는 열대생태학 과정을 수료하면서 생태학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쌓았다. 실제로 그는 아마존 강 유역에서 1,000여 개의 식물 표본, 600여 개의 동물 표본을 수집하였으며 이 표본들은 현재 에콰도르 국립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 『숲은 생각한다』는 아마존 강 유역에서 4년간에 걸친 인류학적 현장연구의 성과로서, 숲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밀착 연구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가져온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의 가장 기초적인 전제에 도전하는 책이다. 그의 작업은 새로운 인문학의 지평을 여는 대표적인 포스트휴머니즘 기획으로 평가받는다. 『숲은 생각한다』는 미국인류학회에서 수여하는 2014년 그레고리 베이트슨 상을 수상하면서 그해 인류학계의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으며,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나카자와 신이치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가장 창조적인 의미에서 사고의 도약을 이뤄낸 책”으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역자 차은정-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규슈 대학교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 대학교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공역)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가 있다. 현재 ‘식민지 이후의 식민지’를 주제로 역사의식과 신화세계를 연구하며, 서강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강의한다.
서론: 루나 푸마
1장 열린 전체
세계 안에 있으며 세계에 속해 있는
살아있는 기호들 / 부재 / 언어를 지방화하기
근본적인 분리의 느낌 / 연속성에서 창발하는 참신함
창발하는 실재 / 성장 / 부분에 앞서는 전체 / 열린 전체
2장 살아있는 사고
비인간 자기들 / 기억과 부재 / 생명과 사고
자기들의 생태학 / 기호적 농밀함 / 관계성
알지 못한 채 알아가기 / 주술화 / 애니미즘
퍼스펙티브주의 / 생각의 느낌 / 살아있는 사고
3장 혼맹
피부 너머의 삶 / 죽음을 완결시키다 / 배분되는 자기성
자기 자신의 너머를 보다 / 포식
인간적인 것을 낯설게 만들기 / 혼맹
4장 종을 횡단하는 피진
너무나 인간적인 / 개-인간의 얽힘 / 꿈꾸기
개과동물 명령법 / 종들 간의 발화
형식의 제약 / 수수께끼 / 종을 횡단하는 피진
5장 형식의 노고 없는 효력
고무 / 창발하는 형식들 / 숲의 주재자들
기호적 위계 / 형식의 놀이 / 수양 / 내부
역사의 파편 / 형식의 노고 없는 효력
6장 살아있는 미래(그리고 죽은 자의 가늠할 수 없는 무게)
언제나 이미 루나 / 이름 / 주인 / 미래에 있음
사후 / 죽은 자의 가늠할 수 없는 무게
자기의 ‘너’ / 살아있는 미래
에필로그: 너머
주 / 참고문헌 /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저자는 언어가 없는 숲의 생물들도 사고를 하고 세상을 표상하며 그들만의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숲은 동식물의 다양한 생각과 갖가지의 의미로 가득한 매혹적인 세상이다. 저자는 아마존 숲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루나족에게서 이 점을 배운다. 빼어난 관찰과 심오한 인문학적 통찰을 엮어낸 이 책을 두고 세계적 사상가 브뤼노 라투르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는 법을 배운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숲은 생각한다』는 미국인류학회에서 수여하는 저명한 학술상인 그레고리 베이트슨 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최근 인문학계의 새로운 이론적 흐름인 ‘존재론적 전회(轉回)’를 이끄는 대표적인 저서로 평가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인간 중심의 기존 인식론적 견해를 넘어서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가를 묻는다. 우리는 숲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치밀한 탐색과 성찰이 그 속에 담겨 있다.
■ 인류학자는 왜 숲으로 갔는가
- “우와! 사람들이 재규어로 변하는 곳이 있습니까?”
#1. 1980년대 후반, 에콰도르의 나포 강 상류에 있는 리오 블랑코 마을에서 젊은 인류학도 에두아르도 콘은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의 샤먼들은 주변 숲에서 ‘루나 푸마’라고 불리는 재규어-인간이 출몰한다고 했다. 재규어-인간은 일종의 늑대인간 같은 존재로 사람에서 재규어로 변신하여 가축이나 인간을 습격한다고 한다. 젊은 인류학도는 이 이야기에 이끌려 루나 푸마들이 모여 사는 아빌라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문명화된” 사람들이자 때로는 “포식자”이기도 한 기이한 원주민들과 만나게 된다. (본문 13~18쪽 참조)
사람이 재규어가 된다는 이 기묘한 이야기는 동화나 신화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오히려 이 이야기가 세상의 참모습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아마존 숲 속에서 재규어와 마주쳤을 때, 재규어가 우리를 자신과 같은 포식자로 보는가, 아니면 먹잇감으로 보는가는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이 만남 속에서 우리 자신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재규어에게 그와 동렬에 있는 포식자로 여겨진다면 우리는 말 그대로 ‘재규어-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개미핥기가 개미집 속으로 혀를 집어넣어 개미를 핥아먹고자 할 때, 개미핥기의 혀는 개미가 아무 의심 없이 올라탈 나뭇가지처럼 여겨져야 한다. 옥수수밭에 출몰하는 잉꼬를 겁주기 위해 루나족이 만드는 허수아비는 잉꼬의 관점에서 맹금류처럼 보여야 한다. 나무 꼭대기에 있는 양털원숭이를 잡으려면 야자나무를 쓰러뜨려서 원숭이를 깜짝 놀라게 해야 한다. 요컨대 숲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생존할 수 없다.
『숲은 생각한다』의 저자 에두아르도 콘이 아마존 숲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루나족에게서 배운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루나족의 애니미즘은 원시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탁월한 통찰이었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생물들의 관점을 인정하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려는 루나족의 시도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여기서 ‘숲은 생각한다’는 통찰이 나왔다. 숲이 생각한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나무와 동물은 정말로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가져온 사고와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너무나 협소했던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이해하려면 생각과 느낌의 정의 자체를 새롭게 해야 한다. 저자는 아빌라 루나족에 대한 4년간의 참여관찰 속에서 이 점을 배웠고, 기호학, 인류학, 생태학, 언어학, 철학 등을 넘나드는 학제적 탐구를 통해 ‘종을 횡단하는 소통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 나무와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은 과학적 오류일까?
- 인간과 자연을 차별하지 않는 인문학을 향하여
#2. “자연을 다룬 글에서 모든 것을 생화학적 과정의 하나로 설명하고 과학적 분석만 중시한다면 동물과 식물은 유전자 정보가 프로그래밍된 바이오로봇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동물과 식물도 우리 인간처럼 고유한 감각을 갖고 있으며 활동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동식물의 세계도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우리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다른 것들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페터 볼레벤,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3. “숲이 생각한다. 공동의 생명에는 마음이 있다. 숲이 ‘생각’한다는 주장은 의인화가 아니다. 숲의 생각은 인간을 닮은 뇌에서가 아니라 관계의 살아있는 그물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숲의 지능은 많은 종류의 상호 연결된 생각 집합에서 생겨난다. 신경과 뇌는 숲의 마음을 이루는 한 부분이지만, ‘한’ 부분일 뿐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나무의 노래』)
#4. 아마존의 숲 속에서 한 그루의 야자나무가 쓰러졌다. 그 나무가 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하나의 ‘기호’로서 양털원숭이에게 위험을 알려준다. 원숭이는 그 굉음에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그곳에서 도망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숭이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한다면, 여기서 ‘생명’이란 기호 과정의 산물 혹은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원숭이는 이 기호를 해석해서 ‘사고’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원숭이는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정신을 가진 존재이자 하나의 ‘자기’이다. (본문 60쪽 이하 참조)
동물과 식물은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끼며 심지어 미래를 상상한다. 이것은 의인화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만이 생각과 느낌과 미래를 갖고 있다는 사고야말로 인간중심주의적 편견이다. 숲해설가들과 생태학자들과 아마존 원주민들이 알고 있듯이, 숲은 ‘생각’한다. 『숲은 생각한다』는 숲에 관한 책이자 ‘생각’에 관한 책이다. 숲이 생각한다면, 숲은 어떻게 생각할까? 숲의 사고와 인간의 사고가 가진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저자는 미국의 철학자 찰스 퍼스의 기호학 및 최신의 생물학적 생태학적 연구, 그리고 아마존 숲 속의 인간과 생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통해 모든 생명이 본질적으로 기호 과정 속에 있는 기호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요컨대 숲이든 인간이든, 생명은 기호를 해석하고 기호를 생산하고 기호를 통해 소통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기호는 인간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 있고 이 세상에 속해 있기에 모든 생명은 기호를 통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비인간적 창조물들과 공유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신체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호와 더불어 그리고 기호를 통해서 살아간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여러 방식으로 세계의 일부를 표상해주는 “지팡이”로서 기호를 사용한다. 그럼으로써 기호는 우리를 우리로서 존재하게 한다.” (본문 24~25쪽)
■ ‘존재론적 전회’를 이끄는 책
- 인간과 타자, 문화와 자연의 이분법을 넘어서
저자는 언어가 없는 숲의 생물들이 어떻게 사고를 하고 세상을 표상하며 그들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를 많은 사례와 일화를 통해 차근차근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의 상징적인 의사소통 너머의 세계에서 어떤 소통 방식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처럼 인간만의 제한된 관점을 넘어서게 되면, 표상, 관계, 목적, 생명, 죽음, 사고, 형식, 미래, 역사, 소통 등의 인문학적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바뀐다. 숲이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끼며 미래를 상상한다면, 인간만이 사고하고 미래를 갖고 있다고 말하던 기존 인문학적 관점과는 작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이 점에서 최근 인문학계의 새로운 이론적 흐름인 ‘존재론적 전회’를 이끄는 대표적인 저서로 평가된다. 존재론적 전회란 동시대 철학과 인류학을 필두로 하여 사회학과 생태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트렌드로서 생태위협, 생명공학 및 인공지능의 부상과 더불어 인간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려는 경향이다.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등의 대표 학자들은 과학기술, 반려동물, 다수의 자연 같은 주제를 탐구하면서 인간을 특별하고 구분되는 존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 다른 만물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획기적 관점 전환을 일으킨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처럼, ‘인간이 바라본 자연’이 아니라 ‘자연이 바라본 인간’이라는 전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과 타자, 문화와 자연이라는 구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됨은 당연하다.
이 측면에서 『숲은 생각한다』는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가를 새로운 방식으로 묻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숲을 관찰함으로써 오히려 인간 자신을 더욱 또렷이 보게 된다. 이 책은 숲 속에서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 이 기묘하고 낯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적 도구와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문명과 야생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숲과 인간, 자연사와 역사의 얽힘을 더욱 생생하게 풀어낸다.
“우리는 명백히 환경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점차 세계로부터 단절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내 책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살아있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저자 인터뷰 중에서
책속으로
생명은 본질적으로 기호적이다. 다시 말해 생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호 과정의 산물이다. 생명이 활기 없는 물리적 세계와 구별되는 것은 생명체들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세계를 표상한다는 사실 때문이며, 이러한 표상들은 생명체들의 존재에 본질적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비인간적 창조물들과 공유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신체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호와 더불어 그리고 기호를 통해서 살아간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여러 방식으로 세계의 일부를 표상해주는 “지팡이”로서 기호를 사용한다. 그럼으로써 기호는 우리를 우리로서 존재하게 한다. (서론, 24-25
아빌라의 일상생활은 잠자기와 꿈꾸기라는 제2의 생활과 얽혀 있다. 사람들은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불 옆에 앉아 한기를 쫓거나 김이 오르는 우아유사 차가 가득 담긴 표주박잔을 받아들거나 만월을 바라보며 쏙독새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또 때로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재규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이 소리들에 대해 사람들은 즉석에서 논평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 소리에 잠을 깨기도 한다. 꿈도 경험적인 것의 일부이며, 하나의 현실이다. --- p.31-32
우리는 어떻게 숲과 함께 생각해야 하는가? 비인간적 세계의 사고가 우리의 사고를 해방시키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숲은 생각하기에 좋다. 왜냐하면 숲은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숲은 생각한다. 나는 이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렇게 질문해 보고 싶다. 우리 너머로 확장되는 세계 속에서 인간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숲은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 p.46
개미핥기가 개미를 먹는 방법, 잉꼬를 겁주기 위해 허수아비를 제작하는 방법, 메기가 알아채지 못하게 잡는 방법을 이해한다는 도전, 다시 말해 생태학적인 도전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유기체가 가진 관점에 대한 세심한 주시다. 이 세심한 주시는 개미, 잉꼬, 갑옷메기, 그리고 우림을 구성하는 모든 생명들이 자기들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인가는 그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표상하며 해석하는 방식 및 그 세계 속에 있는 타자들이 그들을 표상하는 방식에서 전적으로 산출된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하나의 관점을 가진 자기들이다. --- p. 170
인간이 형식을 열대의 숲에 부과한 것이 아니다. 숲이 형식을 증식시킨다. 공진화는 상호작용하는 종들 간의 규칙성과 습관의 호혜적인 증식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열대의 숲은 수많은 부류의 자기들이 상호 관계하는 방식에 힘입어 무수한 방향으로 형식을 증폭시킨다.--- p.311
『숲은 생각한다』의 목적은 숲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즉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숲의 사고가 우리를 어떻게 거쳐 가는지에 대한 아이콘 특유의 논리에 우리 자신을 열어놓는 길이다.--- p.380
인간의 언어 너머에 기호작용이 있다는 것은 언어 너머로 확장하는 살아있는 세계의 기호작용과 언어가 이어져 있음을 상기시킨다. 인간적인 것 너머에 자기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아의 속성들 중 일부가 자기들의 속성과 연속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모든 생명 너머에 죽음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드는 부재하는 모든 죽은 자들에 의해 열려진 공간 덕분에 우리가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그 길을 가리킨다. --- p.386
숲과 상상력 나무 인문학자의 숲 산책 저자 강판권 |문학동네 |2018.11
목차
머리말 숲을 만나러 가는 길 _007
1부 사찰과 숲
강원도 평창 월정사·전라북도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 같은 나무, 다른 느낌의 숲 _015
충청북도 보은 법주사 오리숲 잎 떨구는 나무의 진가 _028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 소나무숲 곧은 나무와 굽은 나무 _037
경상북도 영천 은해사 소나무숲 굽이굽이 인생길 _052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숲 물에 자신을 비추다 _066
2부 역사와 숲
제주도 비자림 나무에 기대어 쉬다 _079
전라남도 담양 죽녹원 대나무숲 은자들이 즐겨찾던 곳 _090
경상북도 경주 계림 김알지가 태어난 곳 _102
강원도 원주 성황림 마을의 신성한 공간 _111
경상남도 함양 상림 최치원이 조성한 최초의 인공 숲 _124
경기도 화성 융릉과 건릉 정조의 효심 _134
서울시 종로 종묘 조선 왕과 왕비를 만나다 _146
제주도 절물자연휴양림 긴박했던 역사의 현장 _154
경상북도 경주 삼릉 소나무숲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고개를 숙이다 _159
강원도 횡성 청태산 잣나무숲 이성계를 사로잡은 산 _167
경상북도 문경 단풍나무숲 과거 합격을 염원하며 넘던 고개 _177
3부 사람과 숲
전라남도 광양 청매실농원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 _185
전라남도 장성 축령산 편백숲 지독한 나무 사랑이 만든 숲 _193
울산시 남구 태화강 대나무숲 시민들이 숲을 살리다 _206
전라남도 화순 숲정이 마을의 자랑, 마을숲 _213
전라북도 남원 서어나무숲 논과 함께 있어서 특별한 숲 _223
강원도 횡성 자작나무숲 숲속 미술관에서 꿈을 일구다 _229
전라남도 담양 관방제림 여름과 겨울, 서로 다른 멋 _242
전라북도 무주 덕유산 독일가문비숲 다양한 나무가 어울려 사는 곳 _250
전라남도 구례 산수유마을 산수유꽃에 안긴 마을 _258
맺음말 마음의 소도 _266
참고문헌 _270
자연박물관인 산중 사찰
우리나라 한국 산중 사찰은 자연생태와 인문생태의 보고다. 1부에서는 보은 법주사 오리숲, 합천 해인사 소나무숲, 영천 은해사 소나무숲 등 사찰과 함께한 숲을 소개한다. 법주사는 갈참나무의 모습이 웅장하며, 계곡에는 물억새, 벚나무, 물푸레나무가 어울려 산다. 해인사로 가는 길은 소나무숲길로, 길가에서 간혹 호랑이 무늬 껍질이 아름다운 노각나무를 볼 수 있다. 은해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느티나무 가지가 굴참나무로 다가가 서로 만난 연리지가 있다. 사찰을 둘러싼 숲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정화하는 장소를 제공하고 각종 문화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찰과 어우러진 숲은 박물관의 유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로 값어치 있는 자연박물관이다.
역사를 간직한 숲
역사를 간직한 숲은 자연생태와 인문생태를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화성 융릉과 건릉은 울창한 숲에 조성돼 있다. 정조는 원통하게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왕릉 주변의 소나무를 극진히 보호했다. 사도세자를 그린 정조의 애틋한 사랑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숲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한편, 한국의 조영은 건축물만이 아니라 자연생태까지 포함한다. 종묘는 그 자체로 거대한 숲이다. 종묘의 건축물과 더불어 숲은 그 어떤 공간보다 신성하다. 종묘는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공간이기에 건물과 담에는 화려한 꽃이 피는 나무와 풀을 장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숲 곳곳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경주 계림은 신라시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으로 전해진다. 숲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나뭇가지에 걸린 금궤 안에 사내 아기 김알지가 있었다고 한다. 함양 상림은 최치원이 조성한 최초의 인공 숲으로, 신라시대 위천의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상림은 무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형에 가깝게 현장이 보존된 숲이다. 횡성 청태산 잣나무숲은 이성계가 휴식하면서 횡성 수령에게 점심 대접을 받은 곳이다. 그는 이곳의 아름다운 산세에 반하고 큰 바위에 놀라 청태산靑太山이란 휘호를 직접 써서 횡성 수령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제주 절물자연휴양림에 있는 시오름주둔소는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당했던 제주 4·3 사건 당시의 상흔을 증언하고 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정조는 현륭원을 참배하고 나서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때 정조의 눈에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먹는 장면이 들어왔다. 정조는 송충이를 잡고는 비통한 마음으로 탄식하며 “네가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이렇게 무례할 수 있느냐! 아버지께서 고통스럽게 살다 가셨는데 어찌 너까지 아버지를 괴롭히느냐”라고 하면서 송충이를 이빨로 깨물어 죽여버렸다. 주위 사람들은 정조의 이런 행동에 놀라 송충이를 모두 없애버렸다. 이 이야기는 정조의 효심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알려준다. 한편, 조선시대에 왕릉 주변의 소나무를 보호하는 일은 비단 정조만이 아니라 모든 왕의 의무였다. (본문 137쪽)
숲을 일구다
사람의 숭고한 정신 덕분에 나무가 숲을 이룬 경우도 있다. 장성 편백숲은 한 인간이 평생 숲을 만드는 데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임종국은 1956년부터 21여 년간 지독한 나무 사랑으로 우리나라 헐벗은 산림을 복원했다. 그는 나무를 살리려고 지게로 물을 져 날랐고, 수십 년 동안 인내심을 갖고 나무가 온갖 풍파를 견디면서 살아남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임종국은 조림에 필요한 자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채업자와 채권자들에게 자신이 평생 가꾼 숲을 넘겨줘야만 했다. 임종국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평생 일군 숲은 지금도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광양 청매실농원은 일제강점기 율산 김오천이 광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밤나무와 매실나무를 심어 가꾼 곳이다. 김오천의 며느리인 홍쌍리가 시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이곳을 지금의 청매실농원으로 성장시켰다. 청매실농원에서는 매화를 군자로 삼아 사랑한 조선 선비들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이어받아 매실나무를 가꾼 사람들의 정신을 함양할 수 있다.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사진작가인 원종호가 1991년 이곳에 정착해서 1년생 자작나무 1만 2000여 그루를 심은 숲이다.
나무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성장시키는 과정은 멀고도 험난하다. 조림도 처음엔 술술 잘 풀리는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임종국은 적지 않은 문제에 부딪혔다. 투자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주위 사람의 조롱을 견디는 일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1968년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이었다. 물을 많이 줘야 잘 성장하는 편백과 삼나무는 가뭄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나무를 살리려고 지게로 물을 져 날랐다. 그의 지극한 정성에 나무도 감복했는지 다행히 나무는 극심한 가뭄에도 죽지 않고 잘 자랐다. (본문 195~196쪽)
숲길을 걷는 즐거움
숲 애호가 강판권의 숲 음미법을 따라해보는 건 또다른 재미다. 숲길은 곧다고 해서 꼭 직선으로 걸어가거나 앞만 바라보면서 걸어갈 필요가 없다. 숲길을 나무의 나이테 그리듯 둥글게 걸어가는 방법들이 있다.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걸으면, 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또 햇살이 나무 사이로 겨우 비집고 들어오는 빽빽한 숲에서는 나무 그림자만 밟으면서 가는 방법도 있다. 나무들은 삶이 힘들 때 그림자를 만들어 친구들의 어깨에 살짝 기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숲길을 걸으면서 자주 뒤를 돌아보면 애초부터 앞뒤가 없는 식물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길을 가면서 나무들의 삶을 보면 내 삶도 돌아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그동안 나무와 숲을 만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무와 숲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숲보다 중요한 것은 한 그루의 나무다. 한 그루의 나무 없이는 숲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충고하지만, 나는 오히려 “숲만 보지 말고 나무를 제대로 보라”고 주장하고 싶다. 내가 한 그루의 나무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나무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매우 비생태적이었다. 이 같은 태도는 나무를 생명체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시각을 바꾸어 나무를 생명체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을 ‘생태적 인식 전환’이라 부른다. 생태적 인식 전환은 인간 존재론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인간人間은 자연생태의 공간空間에서 시간時間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공간 밖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이 같은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한 그루의 나무는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나무를 만나는 시간은 인간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이자 인간의 미래를 깨닫는 시간이다. _머리말에서
숲 읽어주는 남자 산책이 즐거워지는 자연 이야기 글/그림 황경택|황소걸음 |2018.03.
저자 황경택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사)우리만화연대, (사)숲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이후 어린이 만화와 숲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숲 생태 놀이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는 생태 놀이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생태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책속으로
저 나무는 왜 넓은 잎을 달았을까? 저 풀은 왜 노란 꽃을 피울까? 저 곤충은왜 날개에 점이 있을까?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독특한 모습이다. 그 디자인에는 까닭이 있을 텐데, 궁금해서 다가가면 조금 알려주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 자연을 공부하는 일은 때로 숨바꼭질 같기도 하고, 숨 은그림찾기 같기도 해서 재밌다. - 20쪽
요즘은 어느 동네나 작은 공원이 있다. 날이 따뜻해지면 동네 주민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한 운동도 한다. 작은 공원이지만 나무가 꽤 여러 종류다.
느티나무, 단풍나무, 백목련, 개나리, 스트로브잣나무, 소나무, 벚나무, 수수꽃다리, 산철쭉, 명자나무… 어느 공원에 가도 비슷하다. 조경 업체 에서 공원 조경을 할 때는 어느 계절이나 보기 좋게 심기 때문이다. 꽃도 한꺼번에 피는 게 아니라 계절에 따라 피도록 심는다. 반드시 꽃이 아니 라도 단풍이 아름다운 나무를 심는다거나, 겨울에도 녹색이 있도록 바 늘잎나무(침엽수)를 심는 등 나름의 기준에 따라 공원을 꾸민다. 우리 동 네 공원은 어떤 생각으로 조경했는지 살펴봐도 재밌다. - 24쪽
미친 개나리?
가을에 꽃을 피우는 개나리를 미친 개나리라고 한다. 철쭉도 이따금 가을에 꽃을 피운다. 개나 리, 철쭉이 정말 미쳐서 그럴까?
추운 겨울을 이겨낸 개나리는 온도와 일조시간 등 조건이 맞으면 꽃을 피운다. 1년에 한 번 더 같은 조건을 경험하는데, 바로 가을(11월쯤)이다. 이때 꽃을 피우는 개나리가 더러 있다. 그런 데 겨울을 겪지 않았다. ‘아차! 실수다.’ 개나리 겨울눈이 착각한 것이다. 미쳤다고 하지 말고 착각했다고, 실수라고 하자.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게 있나? 자연도 실수하는데 누가 실수하지 않을까? 유전자의 실수로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그 돌연변이가 생존 조건에 더 잘 맞으면 적자가 된다. 자연은 돌연변이 와 적자생존을 반복하면서 진화해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자연은 변하는 환경에 ‘실수’로 대처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실수, 청소년의 실수, 부모님의 실수, 무엇보다 자신의 실수에 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 39쪽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이 있듯이, 느티나무는 필요한 것을 굳 이 새로 만들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어쩌면 우리 의 문제도 우리 안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 58쪽
쉬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꿀이 많아 영어로 Bee-bee tree라고 한다. 한약재나 목재로도 사용하지만, 기름을 짜는 나무로 유명하다. 씨앗으로 기름을 짜는데, 머릿기름이나 불을 피우는 데 쓰였다. 옛날 양반가에서는 등잔불을 피워 글공부를 해야 하니 기름이 많이 필요했다. 참깨, 아주까리, 동백 등 기름을 짜는 다른 식물에 비해 기름 양이 많고 맑아 그을음도 없었다고 한다. 다 자란 나무 한 그루에서 씨앗이 약 15킬로그램 나온다니, 기름 양도 꽤 될 만하다.
쉬나무는 봉수대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 남산뿐만 아니라 봉수대가 있는 곳 주변에 대부분 쉬나무가 있다. 쉬나무는 열매가 많으니 그 기름으로 등불을 켜거나, 봉수대에서 불씨를 관리하는 데 필요했을 것이다. 쉬나무는 봉수대를 연상케 한다. 우리는 나무와 함께하기 때문에 나무의 존재는 우리 삶의 흔적이자 역사가 된다. 이것을 알았다면 남산 팔각정 주변의 쉬나무는 베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남산 주변에 그 나무의 자손으로 보이는 쉬나무가 군데군데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 197~200쪽
벌레혹은 벌레가 아니라 식물이 만든다. 벌레가 괴롭히면 식물이 ‘이 거 줄 테니 이제 그만해’ 하고 혹을 만들어낸다. 벌레는 그 안에 알을 낳는다. 그래서 벌레혹은 식물에게 손해다. 벌레가 자꾸 괴롭히니 그 정도에서 타협한 거다. 살다 보면 내 뜻을 모두 펼치기 어렵다. 식물도 그것을 아는 모양이다. -242쪽
큰 새보다 작은 새가 울음소리를 내는 울대(명관鳴管)가 발달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맹금류를 피해 덤불 속에 숨어서 자기들끼리 대화하기 위해 발달시킨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강자는 대화할 필요성이 적고, 약자는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해야 살아남는 데 도움을 받는다. 권력을 손에 쥘수록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동물의 세계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265쪽 --- 본문 중에서
우리 마음속에는 저마다 숲이 있다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저자 황경택|샘터 |2018.12
자연과 친해지고 숲을 깊이 이해하는 법!
우리는 대개 도심에서 살지만 ‘자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한다. ‘친자연’ ‘유기농’ ‘ 천연’ 같은 말들이다. 또 여유가 생기면 ‘자연’으로 떠나 휴식을 즐기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자연과 동떨어져 살면서 이처럼 우리는 자연을 그리워하게 됐지만, 정작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서툴다.
도시의 삶은 편리하고 안락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갈수록 개인의 편의만 생각하고, 남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인생의 최대 가치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청소년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내몰린다. 그러다 결국에는 타인은 물론 자신의 마음까지 좀먹게 된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욕심내지 않고, 괜히 다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는 “자연에 호기심을 갖는 것이 자연을 아는 첫걸음이며, 나아가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식물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물에 대한 인지능력과 세상을 보는 남다른 감수성, 생명체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통찰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책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 자연의 고마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 대해 말한다.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자연에서 알게 된 사실은 ‘씨앗’과 같다. 자연에서 느끼는 감성은 기름진 토양’과 같다. 한번 만들어진 기름진 토양은 아이 곁을 평생 떠나지 않는 착한 요정이 될 것이다.”
단풍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름이 ‘단풍나무’예요. 우리나라에 있는 단풍나무 종류는 20여 가지나 되는데, 모두 ‘단풍나무’처럼 시옷 자 열매를 매달고 있습니다. 이 열매가 마르면서 둘로 갈라져 날아갈 때면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게 돼요. 프로펠러처럼 잘 날거든요.
어쨌든 그 ‘단풍나무’가 왜 단풍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냐면, 단풍이 예쁘게 잘 들어서입니다. 주변에 단풍이 드는 나무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나무가 단풍나무라는 이름을 가져갔어요. 유독 예뻤겠지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을 테고요.
우리는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가면 ‘와! 이제 가을이구나!’ 합니다. 가을이 되면 온 숲이 울긋불긋해요. 온 나무, 온 산에 단풍이 들지요. 그런데 단풍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자연의 섭리를 우리가 모두 다 알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가을이 되어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겨울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겨울은 춥잖아요.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면 수분이 가득한 잎이 얼어버리겠죠. 그러면 세포가 파괴되니까 결국 죽거나 썩게 되고요. 그래서 얼기 전에 미리 잎을 떨어뜨리고, 잎이 진자리를 말끔하게 마무리해서 닫아 놓는 겁니다. --- pp.50-51
추운 겨울은 알로, 많이 먹어야 할 때는 애벌레로, 성충으로 우화하기 위한 준비 과정은 번데기로, 짝짓기를 위해서는 날개를 달고 있는 성충으로. 제각각 상황에 맞게 몸을 변화시켜서 살아가지요.
하나의 모습, 생각만을 고집한 채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은 비난하고 탓만 하기보다 세상에 맞춰서 자신을 변화해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우리는 곤충처럼 외모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생각은 바꿀 수 있어요. 주어진 삶을 잘 살다가 내가 가진 모습 중 버리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과감하게 허물 벗듯 벗어보는 건 어떨까요? 쉽지 않겠지만 한번 시도해보는 거죠. 매미가 그랬듯이. --- p.78
생장이 빠른 나무들은 조직이 무른 경우가 많아요. 오동나무도 무릅니다. 그러다 보니 단단한 목재가 필요한 곳에서는 쓸 수가 없어요. 단단하지 않아 아예 쓸모가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무르기 때문에 쉽게 가공할 수 있고 가볍지요. 휴대하기 편한 일상용품을 만들기에 좋습니다.
게다가 곧게 자라니 목재 낭비가 없고, 습기와 불에도 잘 견딥니다. 좀처럼 트지 않고 좀도 잘 생기지 않아서 옛날에는 오동나무를 장롱이나 뒤주 만드는 데 많이 썼어요.
특히 소리를 전달하는 성질이 좋아서 거문고, 비파, 가야금, 장구 같은 전통 악기를 만드는 데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서양에서는 독일가문비나무가 소리 울림이 좋아서 악기 제작에 많이 사용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그 역할을 오동나무가 하고 있습니다. 쓰임새가 많죠.
우리 삶도 비슷합니다. 강직한 사람은 부드럽기가 어렵지요. 섬세하고 꼼꼼한 사람은 일을 시원하게 결정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모습이 너무 강하면 다른 모습을 갖기가 어렵고, 또 반대되는 성격을 싫어하거나 멀리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는 개성이 있고, 자기 능력에 맞는 역할이 있습니다. 나에게 없는 능력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자기 성향을 잘 활용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 p.102
모과나무를 본 적이 있나요? 참외 같이 큰 열매가 달리는 나무인데 가을이 되면 노랗게 익어서 ‘나무에 달린 참외’라고 해 목과木瓜에서 모과가 되었지요. 모과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 중 하나는 사람들이 모과를 보면 4번 놀란다는 말입니다. 어째서 4번 놀랄까요?
첫 번째는 꽃이 예쁘게 피어 열매를 기대했더니 열매는 정말 못생겨서 놀란답니다. 두 번째는 열매가 못생겼는데 향이 너무 좋아서 놀란답니다. 세 번째는 향이 너무 좋아서 맛있을 줄 알고 먹었더니 맛이 없어서 놀란답니다. 네 번째는 그냥 먹으면 맛이 없는데 차로 만들어 먹으니 향이 좋고 맛나서 놀란답니다.
모과에 대한 칭찬으로 들리네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선입견이 많지요. 꽃을 보고 열매도 예쁠 거라고 미리 짐작하니 못생김에 놀라고, 못생겨서 향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향이 좋으니 놀라고. 이게 모두 선입견입니다. --- pp.131-132
보통 건강한 숲은 참나무가 많고, 떨기나무나 양치식물, 이끼 등 수분이 많은 식물이 숲을 꽉 메우고 있어서 산불이 나더라도 느리게 번집니다. 건강한 숲이 산불을 예방한다고 할 수 있지요. 건강한 숲에는 키가 작은 떨기나무들이 많으니 앞서 말했듯이 작은 나무가 숲을 지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작은 나무만 있는 게 좋은 건 아닙니다. 작은 나무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건강한 숲은 층이 다양합니다. 나이 든 나무도 있고 어린나무도 있고 키 큰 나무도 있고 키 작은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버섯도 있습니다. 그래야 건강한 숲이에요. 그런 숲에 많은 곤충, 개구리들, 포유류들 맹금류들이 살 수 있어요. --- p.152
간혹 숲속을 걷다가 뽕나무를 만나면 ‘예전에 이곳에 민가가 있었나 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집터나 수로, 아궁이 등의 흔적이 발견되곤 해요. 물론 큰 뽕나무이거나 뽕나무가 여러 그루 모여 있는 곳이어야 해요. 작은 뽕나무 한두 그루는 그런 흔적을 알려주기엔 미흡합니다. 오히려 그런 뽕나무는 너구리나 새가 퍼뜨린 나무일 가능성이 높지요.
뽕나무를 만나면 오디를 관찰하고 따먹을 생각에 빠지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거기서 나아가 누에와 비단을 생각하고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생각이 깊이 있는 연상 능력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연결됩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비단으로 인해서 생긴 실크로드를 생각해보세요. 그 실크로드를 이용해서 무역했던 수많은 상인, 낙타들까지도 떠올려 보고 그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의 문명이 교류하고 이어지고 그로 인해 수많은 역사적인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 pp.180-181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관찰학자 최재천의 경영 십계명 저자 최재천|메디치미디어 |2017.12
목차
들어가며
1. 운명처럼 다가온 국립생태원
2. ‘위원장 동지’에서 원장으로
3. 얼떨결에 성공한 CEO
4. 나의 경영 십계명
5. 생태 경영과 통섭
나오며
책속으로
나는 그동안 우리나라 남성들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원인이 ‘밤무대’라며 우리 사회의 지나친 회식 문화를 퍽 신랄하게 비판해왔다. 밤마다 객쩍게 몰려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고 이튿날에는 숙취로 종종 일을 그르치며 사는 뭇 남정네를 비웃었다. 그랬던 내가 서천에서는 매일 저녁 외부 손님을 접대하거나 직원들과 회식하느라 ‘밤무대의 황태자’가 되고 말았다. (들어가며)
대학에서도 온갖 보직을 회피하며 살았고 행정직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생태학을 전공하면서 과연 대운하와 4대강 사업에 찬성할 학자가 있을까 생각했던 우리 기대를 저버리고 이명박 정부 정책에 동조해 온갖 혜택을 누리던 일군의 생태학자가 결국 국립생태원 건립 추진단을 장악했다. 가만히 있으면 그들 중 한 양반이 생태원 초대 원장이 될 것이라며 생태학회의 원로와 중진 회원들이 내 연구실로 들이닥쳤다. (1장)
국립생태원장으로 선임된 다음 찾아뵌 장안의 경영 고수들은 한결같이 리더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줬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 전혀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리더가 큰 그림을 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전체를 보느라 부분을 챙기지 않으면 조직이 어디로 굴러가는지 미처 모르고 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있다는 얘기다. (4장)
적어도 조직의 리더에게는 적재적소를 넘어 과재적소(過材適所)를 제안한다. 자격도 없는 리더가 이른바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조직을 망치는 경우가 많은 마당에 적재적소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저 그 정도의 그릇인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되면 그저 그 정도의 일만 할 수 있을 뿐 조직을 더 높은 단계로 이끌 수 없다. 능력이 넘치는 사람이 조직을 맡으면 주어진 임무는 임무대로 완수하면서 남는 시간에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4장)
용감함과 비겁함도 개성이다. 최근 동물행동학 연구에서 가장 따끈따끈한 주제는 단연 개성(personality)이다. 심지어 진딧물의 개성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마당에 인간의 개성을 관찰하고 분석해 인사에 반영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침대가 과학이라면 인사야말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과학이어야 한다. (4장)
나는 그동안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에도 그때그때 최선을 다한다는 사뭇 두루뭉술한 답변 일색이었다. 생태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천재지변은 물론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환경변화에 대한 각종 생태계의 반응과 적응을 관찰해왔다. 경제학자들에게 우리 공책을 빌려줄 용의가 있다.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다양성(diversity)이 높은 생태계가 더 탁월한 저항력과 회복력을 나타낸다. 다양성은 복잡성(complexity)의 다른 이름이다. 구성이 다양하면 구성원들 간의 관계망이 매우 복잡하고 조밀하게 형성되어 웬만한 충격에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5장)
‘우리 들꽃 포토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 키 큰 고등학생들에게 상을 주던 나는 고등학생 오빠들 뒤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가족 부문 장려상을 받으러 올라온 아이였는데 큰 아이들을 올려다보며 상을 주다가 갑자기 눈을 내리깔며 상을 주려니 왠지 어색했다.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그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마 그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내가 환하게 웃자 따라서 배시시 웃었다. (나오며) ---본문 중에서
------------------------
사막의 풀들은 쑥쑥 자라지 않는다. 잎을 키우려면 먼저 뿌리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을 태생적으로 아는 듯했다. 겨우 5센티미터의 잎을 위해 장장 500미터까지 뿌리를 뻗는 풀도 있다. 참 경이롭고 위대한 적응력이다. 또한 사막의 풀들은 서로 다쿠며 죽이지 않는다. 모든 풀이 적자생존의 법칙에 아랑곳 않고 서로 좀 더 키를 낮추고 적게 자라서 좀 덜 요구하며 공간와 물을 사이좋게 나눠 갖는 것이다. -사막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인위쩐
------------------------
나무에서 숲을 보다 저자 리처드 포티|소소의책 |2018.04
원제 The Wood for the Trees
책속으로
어떻게 동식물이 협력하여 풍요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지 탐구하는 가운데 잠자던 과학자의 영혼이 되살아났다. 나는 이끼, 지의류, 풀, 곤 충, 그리고 버섯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채집했다. 너도밤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주목 등 숲에 있는 나무도 모조리 조사했다. 달빛이 비치는 밤에는 나방을 잡고, 낮에는 포충망을 들고 각다귀를 잡으며 놀았다. 썩은 통나무를 들춰내어 부식 과정을 살피고, 나무딸기 덤불마다 밑을 쑤시고 찌르고 냄새 맡았다. 숲의 지질학을 타일과 유리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사람들은 대개 경관(landscape)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숲은 나에게 경관이 언제나 변화하는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마침내 그림다이크 숲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4월-프로젝트를 시작하다’」중에서
유령란에 얽힌 우여곡절을 듣고 6월의 그림다이크 숲을 샅샅이 뒤져보기로 했다. 이 작은 한 뼘의 땅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너도밤나무로 빼곡히 들어선 도랑마다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리라. 나는 식물학을 전공한 좀비처럼 터덜터덜 위로 아래로, 다시 위로 아래로 30분을 걸었다. 일순간 심장이 멈추었다. 땅에 서 노랗게 올라온 줄기에 꽃이 달려 있었다. 잎도, 그 어떤 초록색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난인가? 줄기 끝은 양치기의 지팡이처럼 구부러졌고 노란 꽃 대여섯 송이가 달린 것이 블루벨의 꽃차례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 꽃은 통발 모양이었다. 이렇게 생긴 난초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당연히 유령도 아니었다. 그래도 낯선 환영을 본 것처럼 전율이 일었다. ??적색 데이터 목록??은 브리튼 섬에서 가장 귀하고 희귀한 식물 종을 기록한 목록이다. 그중 하나가 우리 숲에 있다니! ---「‘6월-유령, 그리고 삼각관계’」중에서
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균류에 대해 미심쩍어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난데없이 나타나서?’ 아니면 그중 몇몇이 맹독성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마 균류가 부패 또는 부식 과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석에 처박아둔 빵에 뒤덮인 초록색 가루, 회색 먼지 덩어리가 붙어 있는 썩은 사과처럼. 그러나 균류와 얽히지 않은 식물은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사체를 청소하는 생물이 없다면 셀룰로스와 리그닌이 세상을 잠식할 것이다. 균류에서 추출한 항생제가 아니라면 오늘날에도 괴저(壞疽)는 과거 놀리스 가문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끔찍한 저주가 될 것이다. 나는 숲에서 누군가가 발로 짓밟은 주황-갈색으로 반짝이는 갈색먹물버섯(Coprinellus micaceus)을 발견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죄인을 단죄하듯 의도적으로 뭉개놓은 것 같았다. 나는 기묘하게 아름답다는 죄 말고는 이 버섯에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했다. ---「‘10월-버섯 갤러리’」중에서
오늘 내가 집으로 가져가는 것은 ‘똥’이다. 썩은 통나무처럼 똥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서식처다. 이 경우는 특별히 질소를 사랑하는 종을 위한 거처로 모두 우리 숲 생물다양성의 일부다. 똥은 생태계의 연쇄 과정을 축소하여 그대로 재현한다. 시장의 거리 행진에 등장하는 고위 인사들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한 종이 다른 종에 뒤이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행진은 매번 야외에 나가서 보는 것보다 집에 들여놓고 보는 게 더 낫다. 똥이 마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흠뻑 젖어서도 안 된다. 다섯 개 정도의 신선한 똥을 올리브 병 같은 투명한 병에 넣고 젖은 이끼를 함께 넣어 상대습도를 높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며칠마다 뚜껑을 열고 큰 확대경으로 조사하면 된다. ---「‘11월-내 취미는 노루 똥 배양’」중에서
계절의 바퀴는 돌고 또 돈다. 시간을 초월한 가운데에서도 숲에서 역사가 건드리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고대의 대지는 인간에 대한 쓸모와 불가분하게 뒤얽혀 있고, 조림(造林)이나 청설모 못지않게 경제적인 필요가 숲의 모양을 일구어왔다. 심지어 대기까지 멀리서부터 미묘한 영향력을 싣고 온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된다면 결국 너도밤나무의 오랜 지배도 끝날 것이다. 내 개인적인 호불호와 상관없이 이 작은 숲은 하나로 묶인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이고, 드 그레이 시대 이후로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나는 ??뉴 실바??에서 예언한 대로 우리의 완벽한 칠턴힐스 너도밤나무가 습기 찬 보루로 퇴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두려워진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가 깊은 이 숲까지도. ---「‘3월-다시 시작’」중에서
숲 사용 설명서 저자 페터 볼레벤|역자 장혜경|위즈덤하우스 |2018.06
원제 Gebrauchsanweisung fur den Wald
저자 페터 볼레벤 PETER WOHLLEBEN-1964년 독일 본에서 태어났으며 로텐부르크 임업대학을 졸업하고 산림 기사가 되었다. 20년 넘게 라인란트팔츠주 산림 관리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6년부터 친환경적 산림 경영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독일 중서부 휨멜 조합의 산림경영지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이곳의 숲 아카데미에 집중하고 있다.
이곳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규모 기계 대신 말이나 사람의 손을 이용하여 산림을 관리하는 독일 전역에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이러한 친환경 관리 방식 덕분에 독일 내 친환경 숲에 수여하는 상을 수차례 받았다. 그는 이곳에 수목장지를 조성하고 원시림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나무 수업』, 『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가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TV와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와 강연, 세미나, 저서를 통해 동식물의 신비롭고 놀라운 삶과 숲 생태계 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이 책을 읽는 곳은 예전에 숲이었다.”
숲 사용 설명서라고? 008
들을 가로질러 011
발자국 찾기 026
동물을 관찰하다 038
버섯 따러 가세! 051
싹 씻고 콕 물리다 062
흡혈 진드기 경보 072
많이 잡으세요! 084
티끌만 한 위험 102
빨간 모자가 나타났다 114
재미난 식물도감 136
―가문비나무, 향수병에 걸린 나무 140
―소나무, 입지가 불안한 전문가 142
―흰전나무, 활엽수가 되고 싶은 침엽수 143
―유럽너도밤나무, 숲의 어머니 145
―참나무, 안타깝게도 2순위 146
―자작나무, 회초리를 휘두르며 148
―낙엽송, 미래가 없는 나무 150
―서양물푸레나무, 세계화의 희생양 152
이게 정말 사랑일까? 154
산림 경영 소사전 167
나무 베는 남자들 174
자연 보호, 결과가 따르는 사랑 187
천둥과 번개 193
유리 조각에 얽힌 이야기 199
시계도 나침반도 없이 205
숲에서 살아남기 212
숲이 영원한 쉼터가 된다면 230
한밤의 숲길에서 246
드레스코드 258
우리의 숲 265
2월에 숲을 걸으면 275
5월에 숲을 걸으면 280
8월에 숲을 걸으면 287
11월에 숲을 걸으면 291
아이들을 데리고 296
글을 마치며 306
주 308
숲을 보존하면서도 숲을 즐기고 숲의 풍부한 자원을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알려 주고 세계적인 숲 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의 숲 관리에도 심각한 왜곡과 문제점이 숨어 있음을 전문가의 눈으로 지적한다.
볼레벤은 숲을 보존한다는 것이 인간의 숲 출입을 막거나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전제한다. 그는 통념과는 달리 우리가 숲을 너무 적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숲에 대한 올바른 감각과 지식을 가진다면 숲은 훨씬 건강한 상태로 유지될 수 있고 인간이 숲을 더 즐겁게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숲에서 나오는 자원을 현재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생각도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데, 그러기 위해서도 숲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관점이 필요하다. 이 점이 바로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의도이며 그가 숲에서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 예를 들어 수목장림을 조성하거나 지역 주민과 아이들을 참여시키는 숲 체험, 숲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이 가능한 이유다. 여전히 생태보다 개발 논리가 우세하고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일상과는 무관한 공간으로 숲을 인식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숲을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해 준다.
◈ 보기 좋은 숲이 건강한 숲일까?
인간의 잘못된 개입이 자연을 도박으로 몰아넣다
볼레벤에 따르면 숲을 보존한다고 해서 인간의 숲 출입을 차단하거나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자연 보호와 경제적 이득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인간의 부적절하고 잘못된 개입이 숲 생태계를 파괴한다. 자연은 인간이 근시안적인 시간 감각으로 손을 대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대응과 굴절(저자의 표현으로는 ‘진화’, ‘뒤엉킴’)을 준비한다.
독일 숲 대부분은 원래 활엽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활엽수 잎을 좋아하는 초식 동물로 인한 숲 황폐화를 막기 위해 숲 소유인들은 소나무와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를 심기 시작했고, 그 공간의 구성원들이 완전히 달라지고 독일의 숲은 침엽수 단일 조림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욕구에 맞추기 위해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작하는 경우도 많다. 반듯하고 흠 없는 수익성 높은 목재를 얻기 위해 이 기준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나무를 베어 버리는 식으로 숲을 관리하는 경우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룰렛게임에 숲 생태계를 몰아넣는 짓이다. 인간에게 유해하다고 인식되는 생물들의 위험을 과장하거나(때로는 이를 실행하여 특정 종을 박멸하고 포획함으로써) 먹이를 주는 등 먹이 사슬에 혼란을 주어(사냥 등 대체로 경제적인 이유로) 생태계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자연은 인간을 이롭게 하거나 위해를 가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중심적인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제대로 숲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우리에게는 숲을 누릴 권리가 있다
숲은 언제나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볼레벤은 30년 이상 숲을 관리하고 숲에 대해 교육하면서 여러 사람을 숲 생태계에 참여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인적 없는 눈 쌓인 겨울 숲을 찾는 이들도, 소란스러운 아이들도, 심지어 세상을 떠난 이들도 숲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숲을 보호한답시고 방문자를 차단한 채 소수의 인간들이 벌이는 몇몇 행태는 사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에서 비롯하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을 흐트러뜨리는 결과만 가져온다. 저자는 우리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가 발길을 제대로만 내딛는다면 숲과 그 구성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속으로
나무는 뿌리로 소통을 하고, 곤충의 습격이나 가뭄의 위험을 서로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잔뿌리가 구석구석까지 다 닿는 것은 아니어서, 미처 닿지 않는 곳에선 균류가 메시지 전달을 대신 맡아 준다. 그래서 학자들은 균류를 일컬어 숲의 통신망Wood Wide Web이라고 부른다. 물론 덕분에 버섯이 나무한테서 받는 대가도 보통 쏠쏠한 것이 아니다. 나무는 자신이 생산하는 양분의 최고 3분의 1까지를 이 숨은 조력자에게 넘겨준다. 대부분 당의 형태로 말이다. 3분의 1이면 나무가 줄기의 목재 생산에 투자하는 양과 얼추 비슷하다. (나머지는 가지, 잎, 열매를 만드는 데 쓴다.) 버섯은 이 엄청난 에너지를 일상생활에 쓰고, 또 버섯 갓을 만드는 데에도 투자한다. 우리가 따는 버섯 갓은 사과나무의 사과에 비할 수 있다. 진짜 버섯은 그 아래로 실처럼 뻗은 균사체다.--- p.54~55
자연의 훼손은 유전적 변화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유전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이용하면 진화의 의미에서 압박을 가하게 된다. 우리에게 쫓기는 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적응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적응이란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동물이 우리 눈에 잘 안 띄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노루와 사슴이 도깨비감투를 쓰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다. 방법은 간단하다. 환한 낮에는 초지나 들판으로 나오지 않고 수풀이나 깊은 숲에 꽁꽁 숨어 있으면 된다. 녀석들이 원래 야행성이라는 주장도 들리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녀석들은 전형적인 초식 동물이기 때문에 눕거나 되새김질할 때를 빼면 하루 종일 먹이를 먹는다. 그러니까 안전이 보장된 지역으로 옮겨 가서 볼일을 보는 것이다. 늑대를 피하려고 숨는 것이라고? 늑대를 피하려면 굳이 수풀이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 아무리 숨어도 늑대가 밝은 귀나 코로 금방 찾아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노루와 사슴은 수백 년에 걸쳐 인간이라는 맹수에 맞추어 적응했다. 녀석들이 개체수가 엄청나게 많은데도 도대체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p.97~98
나무에게서도 인간의 선별로 인한 변화가 확인된다. 나무에게 필요한 특성이 우리 인간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무줄기가 비틀어 짠 손수건처럼 비비 꼬여 돌아가는 경우다. 나무가 용수철처럼 줄기를 꼬는 목적은 자동차를 안정시키는 장치인 쇼크업소버와 같다. 폭풍이 불 때 줄기를 앞뒤로 흔들어 부러지지 않게 막으려는 것이다. 그런 나무줄기를 톱으로 잘라 만든 널빤지는 마를 때도 뒤틀리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서 그런 낌새가 보이는 나무는 어릴 때 미리 베어서 땔감으로 써 버린다. 불에 넣을 때는 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잘 타니까 말이다. 그래서 똑바로 자라서 최고의 수익을 약속하는 흠 없는 나무들만 오래 살아서 몸집을 키울 수 있다. 당연히 이 모범생들만 번식을 하여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나 구부러진 나무도 마찬가지로 반가운 형질이 아니다.
그래서 점차 온 숲이 우리의 욕구에 맞추어 변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무들은 소리 소문 없이 유전적 불구가 되어 간다. 줄기를 용수철처럼 비비 꼬게 만드는 유전자에는 다른 특성들이 함께 들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유전자를 제거하면 다른 특성들도 함께 사라진다. 그 특성이 무엇인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앞으로 우리 숲이 얼마나 튼튼할지도 룰렛게임과 다르지 않다--- p.98~99
먹이가 그 먹이를 먹는 생물의 숫자를 조절하지 반대는 불가능하다고 배웠다. 그것도 참 논리적인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자연은 약간 더 복잡해서 이런 협력의 경우에는 각 개체군에서 복잡한 파상 운동이 관찰될 수 있다.
미국 미시간주 슈피리어 호수에 있는 섬 아일로열Isle Royale 국립공원을 한번 들여다보자. 그곳에서 자연이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실험을 시작했고, 그 실험을 1958년부터 학자들이 관찰했기 때문이다. 먼저 고라니가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 그 섬으로 들어가서 신나게 번식을 했다. 잡목을 베어 먹고 대부분의 어린 나무를 먹어 치웠다. 하지만 어느 혹독한 겨울에 늑대 무리가 뒤를 따라 들어가 고라니를 신나게 잡아먹었다. 그 섬이 육지와 동떨어졌다는 사실은 학자들에게 크나큰 선물이었다.… 학자들이 예상한 시나리오는 이러했다. 늑대 수가 증가하면 고라니를 더 많이 잡아먹을 것이므로 고라니의 수가 감소한다. 그러나 곧 늑대의 수도 줄어든다. 먹이가 줄어들어 먹이를 찾을 때까지 더 오랜 시간 찾고 사냥을 해야 하므로 더 많은 늑대가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럼 다시 고라니의 수가 증가한다. 그러나 그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고라니의 먹이가 많으면 고라니가 번식을 많이 해서 늑대도 먹을 것이 많아진다. 게다가 늑대가 잡아먹는 고라니 숫자가 늘수록 고라니의 번식률도 치솟는다. 거꾸로 개체수가 늘어난 늑대는 스트레스가 더 심해진다. 영역을 지키기 위해 늑대들끼리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라니 개체수의 증감은 늑대보다는 고라니의 생활 공간에 더 좌우된다.… 우와,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빙빙 돌 것 같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 사례를 들려주는 이유는 자연의 뒤엉킴이 수업 시간에 배운 것처럼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 p.117~118
지금껏 우리는 한참 동안 숲과 나무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도 정작 제일 중요한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대체 숲이란 무엇일까? 관계 당국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간단한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 그냥 해당 법령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독일 연방 산림법 2항을 보면 산림 식물을 심은 모든 땅은 숲에 해당된다. 목재 적재장, 길, 작은 초지, 벌목이 된 구역도 이 법에 따르면 충분히 큰 나무 집단에 둘러싸여 있기만 하면 다 숲이다. 이것만 보아도 연방 산림법이 숲을 순수 경제적으로 정의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 한 그루 없는 큰 땅을 숲이라고 부를 생각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니까 당연히 벌목 현장도, 폭풍에 나무가 다 쓰러진 곳도 그냥 다 숲인 것이다. 물론 조건은 있다. 5년 안에 다시 조림을 해야 한다고 법에 적혀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한 가지 공통분모는 있는 셈이다. 나무가 밀집한 큰 땅은 모두 숲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동의하는가?--- p.157~158
‘숲 가꾸기’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산림경영지도원이 열심히 가꾼 숲은 앞으로 더 잘 자랄 것이다. 건강하고 튼튼하여 해충의 공격도 막아 낼 수 있고 기후 변화에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도축업자를 보고 ‘동물을 보살피는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은가? 묘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런데 왜 산림경영지도원은 숲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할까? 숲 가꾸기란 것이 나무를 베는 것 이상의 의미가 아닌데도 말이다. 아주 어린 나무일 때부터 시작된다. ‘어린 나무 가꾸기’라는 말은 촘촘하게 늘어선 어린 나무들을 전기톱으로 잘라서 간격을 넓히는 작업을 일컫는다. 남은 나무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주어 더 빨리 자라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조금 더 자란 후에 실시하는 솎아베기도 마찬가지 의미다. 제일 예쁜 줄기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예쁘지 않은 이웃 나무들을 베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가꾸기’가 숲에게 이로울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절로 알 수 있다. 아마존의 열대 우림을 그런 식으로 보살펴야 할까? 그곳의 나무를 베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마련해 주면 정말 더 건강해질까? 나무를 베어 버리는 곳에선 언제나, 예외 없이 남은 개체들도 허약해진다. 바람만 불어도 나무는 쉽게 넘어진다. 그래서 숲 곳곳엔 폭풍에 쓰러진 나무가 이웃 나무를 함께 쓰러뜨리면서 만들어진 빈 구멍이 입을 떡 벌리고 있다. 줄기와 물관과 뿌리가 다시 위험 대처 능력을 갖추려면 최소 3년은 걸린다. 게다가 나무들의 관계망도 사라진다.… 솔직하게 동물에게 쓰는 도축이라는 개념을 빌려서 ‘도목(屠木)’이라고 쓰면 어떨까?--- p.169~170
장례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숲과 관련이 깊다. 관에 넣어 매장을 하는 풍습은 기독교와 함께 독일로 건너왔다. 원래 이 땅에서 살았던 게르만족과 그 이후에 이곳으로 들어왔던 로마인들은 고인을 화장했다.… 화장을 전제하는 수목장은 과거에 널리 행하던 자연장의 귀환에 다름 아니다.… 영원한 쉼터 수목장림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가 가장 골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숲은 무엇보다 안식을 준다.… 아마도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온전한 숲이 주는 효과일 것 같다. 우리 인간에겐 아직도 건강한 생태계와 (가문비나무 조림지처럼) 인간의 손을 탄 생태계를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그런 능력이 중요했을 것이다. 온전한 숲이 험한 날씨에도 더 안전하고 식량도 더 많이 제공했을 테니까.
장지로 쓸 나무를 고르는 것도 큰 행복이다. 특히 내가 묻힐 나무를 직접 고르는 경우 미리 한번 누워 보자는 말도 하고, 여기서 영원히 스카트 카드놀이를 하고 싶다는 말도 하며 흐뭇한 시간을 보낸다.… 나무의 선택이 해방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p.241~243
당신이 지금 이 책을 읽는 곳은 예전에 숲이었다. 무슨 확신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인간이 자연에 손을 대기 전 독일에는 나무 없는 평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예외가 있다면 홍수나 유빙 탓에 나무가 휩쓸려 간 물가나 큰 늪이나 습지 정도였다. 알프스처럼 수목 한계선을 넘어서는 고지에도 나무가 없겠지만 그렇게 높은 산에 올라가 당신이 책을 읽을 리는 없을 테니 내 추측이 맞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예전의 숲에 앉아 있다. 우리 선조들은 숲을 위험으로 느꼈다. 넉넉한 식량을 내주는 것도 아니면서 다가오는 적까지 가려서 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맹수건 적군이건 몇 미터 앞까지 와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그러니 그 방해가 되는 은신처를 없애면서 동시에 엄청난 양의 나무와 경작지를 얻겠다는 계획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1800년경 계획은 완수되었다. 중부 유럽의 넓은 지역이 초원과 같아졌다. 우리 인류를 탄생시킨 바로 그 생태계로 돌아간 것이다. 만세! 하지만 기쁨은 우수를 동반했다. 나무가 사라지면서 풍경은 영혼을 잃었다. 마디 굵은 참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1774~1840)의 우수에 찬 그림들도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다.
숲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나무의 모습으로 가까운 제재소로 실려 갔고, 지금도 여전히 실려 가고 있다. 숲 면적의 98퍼센트 이상이 정기적인 관리 및 경영의 대상이다. _266~267쪽「우리의 숲」
그대여 - 라스트 포인트: 둔지마을
'세상과 어울리기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락한 저항 (0) | 2019.03.30 |
---|---|
영어의 힘 (0) | 2019.03.29 |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 (0) | 2019.03.12 |
코끼리는 아프다 나도 아프다 (0) | 2019.03.09 |
한의학은 과학인가 철학인가 外 (0) | 2019.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