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 도시 생활자가 된 동식물의 진화 이야기
저자 메노 스힐트하위전|역자 제효영|현암사 |2019.01
원제 Darwin Comes to Town
저자 : 메노 스힐트하위전 네덜란드의 생태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나투랄리스 생물다양성센터의 선임 과학자이자 레이던 대학교 진화생물학 교수이다. 100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였고, 저서 『개구리, 파리, 민들레: 종의 형성 FROGS, FLIES AND DANDELIONS: THE MAKING OF SPECIES』 『생명의 조짐 THE LOOM OF LIFE』 『자연의 아랫도리 NATURE’S NETHER REGIONS』 등을 집필했다. 또한 《뉴 사이언티스트》 《타임》 《사이언스》 등에 250편이 넘는 칼럼과 기사를 썼으며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에도 종종 출연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과학 탐구 여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택손 익스페디션 TAXON EXPEDITIONS 도 운영하고 있다.
목차
- 도시로 입장합니다
1부. 도시에서 산다는 것
1. 생태계의 일류 엔지니어
2. 개미와 인간이 그렇게 다를까?
3. 도시 속의 섬들
4. 동식물학자가 도시에서 하는 일
5. 아주 전형적인 현대 도시민
6. 적응하도록 선택받은 자들
2부. 당신이 몰랐던 도시 자연의 비밀
7. 꼭 알려드리고 싶었던 사실
8. 실제로 그렇다
9.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10. 시골 쥐와 도시 쥐
11. 비둘기가 중금속에 대처하는 법
12. 화려한 불빛에 홀리다
13. 그런데 이게 정말 진화입니까?
3부. 도시에서의 조우
14. 특별한 접촉, 밀착 만남
15. 절대 멈출 수 없다
16. 도시의 소리
17. 섹스 앤 더 시티
18.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
4부. 도시로 온 다윈
19. 너와 나의 연결 고리
20. 다윈의 조언이 담긴 도시 설계 가이드라인
- 슈퍼 핵심종의 임무
- 추가 정보
- 감사의 말
- 참고 문헌
출판사 서평
자연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도시를 은근히 좋아한다.“
저자는 자연을 사랑하는 생물학자이다. 생물학자에게 도심은 연구를 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도시는 필요악이며, 진정한 생물학자라면 도시에서는 가급적 오래 머물지 않는 게 좋다’는 일종의 불문율도 있다. 그들 대다수는 ‘진짜 세상은 도시를 벗어난 곳, 숲과 계곡, 들판에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연’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생물학자이면서도 순수한 자연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의 앞머리에서 그는 운을 떼자마자 자신의 은밀한 사랑에 관해 먼저 고백한다. 사실 그는 ‘도시성애자’이기도 하다.
질서정연하고 번드르르한 모습, 척척 잘 돌아가는 부분보다는 도시의 때 묻고 자연스러운 부분, 기억에서 지워진 곳들, 올이 다 풀린 카펫처럼 해어진 곳, 인공물과 자연물이 만나 생태학적인 관계를 맺는 도시의 취약한 부분이 좋다. 생물학자의 눈으로 볼 때 도심의 혼잡함과 부산스러움, 그리고 철저히 부자연스러운 겉모습은 수많은 생태계가 모인 축소판 같다.
(본문 9쪽)
이런 그의 눈에 ‘도시 생활자가 된 동식물’이 포착됐다. 도시에 터전을 마련한 각종 새와 작은 포유류, 곤충, 식물이 우리의 우려와 달리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며 순조롭게 번식하고 있다면? 그들을 살아남게 한 진화의 힘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처음에는 분명 낯설었을 도시라는 세계에 적응하기까지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는지, 저자는 자연의 여러 개체들과 그들이 놓인 환경의 변화를 면밀히 추적해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인간과 공생하는 동물, 그리고 인간이 만든 생태계에서 이들이 찾아낸 서식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전 지구적인 도시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가속도가 붙어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이곳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다.
자연에 관해 논할 때 우리는 보통 ‘인간’ 혹은 ‘인위적인 요소’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한, 청정하고 고유한 환경을 떠올린다. 저자는 먼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며 개미 이야기를 꺼낸다. 개미는 환경에서 얻은 물질로 집을 짓고 그 점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개미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 쓰는 일개미들은 주변에서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공수해 온다. 물론 사람도 그렇게 한다. 식량과 주거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개미의 서식지는 계속 확장되고 번성한다. 인간의 도시도 마찬가지다. 개미 사회가 커질수록 해당 지역에는 변화가 생기고, 주위에 살던 다른 곤충들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생존 기술을 익혀 개미 사회에 흡수되기도 한다. (이런 곤충을 ‘개미동물’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개미 사회나 먹이사슬 전체에서 개미의 역할은 자연스레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활동은 자연을 파괴하고 먹이사슬을 훼손한다고만 여긴다. 우리가 ‘도시 생활자로서의 자연’을 이해하고 공생하려면, 이 관점부터 리셋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을 이야기할 때 왜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인간을 배제하려고 할까? 저 멀리 나무에 매달린 개미집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왜 인간이 만든 도시는 그렇지 않다고 여길까? 개미가 열대우림에서 발휘하는 생태학적인 기능에는 찬사를 보내면서 인간이 풍경을 지배하는 방식에는 왜 혐오감을 드러낼까?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는데도 그렇다. (본문 35-36쪽)
생태계 엔지니어로서의 인간의 역할
“친환경 도시로 만들 수 있는 다윈의 법칙을 적용해보자.“
런던 지하철역 터널 안에 사는 모기와 개미집에 얹혀사는 딱정벌레를 비롯하여 집까마귀, 집참새, 검은머리물떼새, 나방, 도마뱀, 앵무새, 쥐, 까마귀, 비둘기 등의 도시 속 진화 이야기는 하나하나 흥미롭다. 때때로 이들은 오히려 인간이 의도치 않게 제공한 것들을 활용하여 기회로 삼는다. 살아남기 위해 자연은 가능한 한 변화하고 적응한다. 하지만 생존한 개체들은 저마다 다른 서사를 가진다. 이들을 진화하도록 이끈 요인, 변수의 영향, 발현되는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반드시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작업에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앞으로 더욱 풍부한 도시 생태계를 가꾸기 위한 인간의 임무에 대해 힘주어 말한다. 우선 생물의 진화를 고려한 도시 설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정원사처럼 굴지 말고, 조경하듯 생물 종을 선별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채워지도록 그냥 내버려 둘 것’, ‘생물 종을 토종과 외래종으로 구분하여 무조건 외래종을 배척하거나 토종을 고집하지 말 것’, ‘굳이 통로를 만들어 도시 내 자연을 연결하기 보다는 차라리 곳곳에 특색 있는 환경이 유지되도록 제대로 분리할 것’ 등 현재 생태학적 도시 설계에 바탕이 되는 신조와는 다소 어긋나 보이는 제안들이다. 제도적인 부분이기에 삽시간에 개선되기는 어렵겠지만 반드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자연과 공존할 수 있도록 각종 진화 양상을 관찰하는 데 도시민의 관심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도 인상 깊다. 실제로 일본의 자연 복원 사업의 일부인 도시 농업에는 60대 이상 노인 인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스네일스냅(Snailsnap)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는 네덜란드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달팽이 사진을 업로드할 수 있는데, 연구진은 이렇게 수집된 수천 장의 사진을 분석하여 도심에 사는 달팽이의 진화 방향을 조사한다. 이런 방식으로 누구나 시민 과학자가 되어 생태 도시를 위한 연구에 일조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규모의 ‘도시 진화 관찰단’이 형성된다면, 모든 도시의 생태계에서 나타나는 다윈설의 흔적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위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음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을 주저앉히기보다는 일어서서 한 걸음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도시 진화를 관찰하고 모니터링하고 파악함으로써 진화 과정을 촉진하고 조정하도록 도시환경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인간이 가진 생태계 엔지니어로서의 기능을 엔지니어링할 수 있다.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생물들을 없애버리는 파괴적인 방법 대신 친환경 도시로 만들 수 있는 다윈의 법칙을 적용하고 더욱 건설적인 방식으로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본문 314쪽)
책속으로
생태학과 진화, 생태계와 자연을 논할 때 우리는 인간이라는 요소를 고집스레 배제하고, 사라지는 서식지 중에서도 인간의 영향력이 아직 미미한 쪽에 초점을 맞추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자연을 인간이 일으킨 해로운 영향으로부터 최대한 격리시켜 보호하려고 하는 것도 오히려 비자연적인 세상을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본문 14-15쪽)
이겨내야 할 과제와 살아남을 기회가 찾아오면 자연은 어떻게 반응할까? 진화한다. 가능성만 있다면 변화하고 적응한다. (본문 15쪽)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벗어난 곳에서는 전통적인 자연 보존 방식이(외래종 생물을 모조리 ‘잡초’와 ‘해충’으로 여기고 다 없애려고 하는 것) 오히려 미래에 인류를 지켜줄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본문 18쪽)
개미가 개미집을 만들듯이 호모사피엔스는 오늘날 맨해튼 곳곳을 돌아다니며 스스로에게 알맞은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훌륭한 생태계 엔지니어라면 모두 그렇듯, 이러한 행위는 다른 동식물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개미동물처럼 ‘인간과 공생하는 동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본문 33쪽)
수많은 철학자, 생태학자, 환경보호론자 들이 자연과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이미 무수히 노력해왔으므로 나까지 의견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도시도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다른 생태계 엔지니어들이 각자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구조물과 전체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본문 36쪽)
이제는 집까마귀의 서식지를 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고 열대 지역 시내와 도심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다. 생물철학자 톰 반 두렝(Thom Van Dooren)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새들에 한해서는 ‘자연환경’이 곧 우리 인간이다.” (본문 54쪽)
도시가 점차 확장될수록 경작지가 야금야금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경지는 한 뼘도 노는 곳이 없도록 농업 생산량을 최대한 쥐어짜듯 끌어올리는 실정이라 오히려 생물다양성이 보존될 만한 공간은 거의, 혹은 아예 사라졌다. 따라서 비옥하고 기하학적인 구조로 형성된 농촌보다 뒷마당과 녹화된 옥상, 오래된 돌벽, 풀과 잡초가 제멋대로 자란 하수 시설과 도심 공원 등이 마구 뒤엉킨 거대한 도시가 오히려 수많은 야생동물의 피난처가 되었다. (본문 72쪽)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의 성적 특징도 변한다는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이 전 생애를 통틀어 성적 파트너로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의 숫자는 손으로 꼽을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민들의 주변에는 성적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는 곧 파트너를 구하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져 성선택도 더욱 강도 높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도시에 사는) 박새가 완벽한 짝짓기 상대로 인식하는 기준이 바뀐 것처럼, 인간의 성적인 신호와 취향이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본문 291쪽)
여러분이 매일 시내를 걷다가 마주치는 도시 생물들이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지고, 더 관심이 가고, 자주 마주치는 존재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 내 목표다. (본문 313쪽)
다윈도 몰랐던 현재 진행형 진화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중입니다
생명의 진화에서 매우 첨예한 이슈 중 하나는 진화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진화란 자연생태계에서 주로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은 진화를 일으키는 가장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찰스 다윈은 ‘자연’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인공적인 환경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줬다. 또한 진화를 연구하는 주요 도구가 화석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진화는 화석이 생길 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날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이 생겼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최근 들어 DNA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서 이런 선입견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중이다.
그 결론은 “진화는 현재도 이뤄지고 있으며, 그 증거도 볼 수 있다”고 요약된다.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중입니다’(Darwin Comes to Town)은 산업혁명 이후 바뀐 도시환경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진화를 설명한 책이다.
네덜란드의 가장 오래된 국립대학교인 레이던 대학교(Leiden University) 진화생물학자인 메노 스힐트하위전(Menno Schilthuizen) 교수가 썼다.
다윈이 무시한 130년 전 편지
현재 진행형인 진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나방이다. 찰스 다윈이 살아있던 1878년 앨버트 브리지스 판(Albert Brydges Farn)은 다윈에게 편지를 보냈다.
영국에서 서식하는 고리무늬나방 만큼 발견되는 지역에 따라 다채로운 종도 없을 것입니다. 이 나방은 토탄이 남아 있는 뉴포레스트에서는 거의 검은색을 띠고 석회석 지역에서는 회색이며 루이스 인근의 백악질 지역에서는 거의 흰색을 띱니다. 또 점토가 많은 곳이나 헤리퍼드셔의 적색토 지역에서는 갈색을 띱니다. 이러한 다양성이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른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윈은 이 편지를 읽지 않거나 무시했다. 130년이 지나서 2010년 ‘커런트 바이올로지’ (Current Biology) 저널에 ‘이 편지가 현재 진행중인 자연선택을 최초로 기록한 자료’임을 소개하는 논문이 실렸다.
밝은 색의 고리무늬나방은 희끄무레한 백악질 암석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발생한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변한 암석에서는 눈에 잘 띄면서 쉽게 잡아먹히는 상황이 됐다. 그 사이에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날개 색깔이 어두운 것들이 나타났으며 이런 나비가 자연선택돼서 살아남았다고 추정했다.
영국에서 나방연구는 진화생물학의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준다. 회색가지나방은 산업혁명으로 대기오염이 심화된 시기에 허옇던 날개 색깔이 검게 변했고, 최악의 상황이 끝나자 다시 어두운 날개가 밝은 색으로 돌아가고 있다.
짙은 색깔의 회색가지나방 ⓒ 위키피디아
밝은 색깔의 회색가지나방 ⓒ 위키피디아
회색가지나방이 인간의 공업화로 인해 색깔이 변했다는 이 엄청난 현재 진행형 진화를 증명하는 영국 과학자들의 노력은 심장을 뛰게 한다. 캠브리지 대학교의 마이클 마제루스(Michael Majerus)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회색가지나방 4864마리에 각각 표식을 달았다. 그리고 매일 밤 12개 우리에 나방 한 마리씩 풀어놓았다. 그 우리 안에는 울새나 바위종다리, 찌르레기 등 곤충을 잡아먹는 새들이 있다. 나방이 안 보이면 먹힌 것이다. 이 실험에 너무 많은 정열을 쏟아놓은 탓일까, 마제루스는 2009년 54살에 암으로 사망했다. 친구 4명이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2012년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 저널에 마제루스의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마제루스가 6년 동안 한 실험은 어두운 색깔의 회색가지나방 숫자가 2002년 10%에서 2007년 1%로 줄었음을 보여줬다. 새가 먹는 나방의 비율이 날개가 밝은 나방은 20%였지만, 날개가 어두운 나방은 30%로 나타났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영국 나무들이 시커멓게 변했을 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두운 색깔의 회색가지나방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영국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대기오염 방지정책을 추진하면서 나무 색깔이 밝아지자 어두운 회색가지나방은 휠씬 쉽게 새에 먹히면서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산업혁명 결과로 바뀐 나방 생태계
2016년 리버풀 대학의 일릭 사케리(Ilik Saccheri)는 유전적으로 이 현상을 규명하는 논문을 네이처(Nature)저널에 발표했다. 사케리는 회색가지나방의 검은색 날개는 아미노산 2만2000개 길이의 점핑 DNA가 잘려 나와, 나방의 날개색을 조절하는 코텍스 유전자에 끼어 들어가 발생한 돌연변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사케리는 코텍스 유전자의 구조와 염색체에서 이 유전자가 자리잡은 곳 부근의 유전정보까지 조사해서 이런 변이가 1819년경 영국 북부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이 일련의 연구는 인간이 유도한 변화에 따라 진행된 급속한 진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저자는 이 한 가지 사례만 수록하지 않았다. 런던 지하철의 3개 노선에서 채취한 모기가 유전적으로 제각기 달랐다. 노선마다 지하환경이 다르다 보니 서로 다르게 변했다. 심지어 지상에 사는 같은 종의 모기와도 달랐다.
현재 진행형인 진화의 사례는 또 있다. 메리 봄버거-브라운(Mary Bomberger-Brown)과 찰스 브라운(Charles Brown)은 1982년부터 30년간 삼색제비를 연구하면서 삼색제비 둥지를 6000개 만들어줬다.
그리고 매년 서식지를 방문해서 제비 다리에 숫자를 새긴 작은 고리를 끼워 표시했다. 두 사람은 같은 도로변에 떨어져 있는 죽은 삼색제비를 수거해서 날개 길이 등을 측정했다. 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작업을 30년간 한 결과는 2013년 커런트 바이올로지 저널에 실렸다. 1980년대 죽은 새와 산 새의 날개길이는 10.8cm로 비슷했다. 그런데 살아있는 새의 날개가 10년에 2㎜씩 짧아졌다.
미국 삼색제비 ⓒ 위키피디아
반대로 죽은 새의 날개 길이는 약 5㎜ 길었지만, 자동차에 부딪혀 죽는 삼색제비의 숫자는 90% 가까이 줄었다. 교통량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날개가 짧아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신속하게 피할 수 있는 삼색제비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 책에서는 약간만 다뤘지만, 이제 관심은 과연 이같은 현재 진행형의 진화가 인간에게도 일어날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그렇다”이다.
DNA분석기술은 수 년 안으로 사람의 유전체에 담긴 모든 정보를 분석해서 인간의 현재진행형 진화를 증명할 것이다. 이미 영국의 UK10K 프로젝트나 바이오뱅크(Biobank) 프로젝트에 의해 모은 수십 만 명의 DNA정보를 분석하면 수 세기 동안 키, 눈색깔, 피부색, 젖당 내성, 니코틴 욕구, 유아의 머리크기와 여성 엉덩이 둘레 및 사춘기 등에 대한 진화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처럼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아가는 이 새로운 환경의 변화는 동식물은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불가피하게 엄청난 변화와 적응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화생물학은 더욱 자주 듣는 단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건설한 도시문명은 동식물은 물론이고, 인간 자신을 변화시킬 것이다. 인간 역시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그렇지만, 인간은 자연선택을 불러올 환경을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아닐까?
동물 안의 인간 저자 노르베르트 작서|역자 장윤경|문학사상사 |2019.02.21
원제 Der Mensch im Tier
저자 : 노르베르트 작서 독일 동물행동학의 선구자로서,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는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생물학, 화학,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이로이트대학교 동물생리의학과에서 학술위원 및 교수를 지낸 그는 독일 뮌스터대학교 동물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뮌스터대학교 동물행동학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행동생물학 분야 세계적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책머리에…5
|제1장|
전형적인 인간, 전형적인 동물…15
- 동물상의 혁명
|제2장|
빨간 에밀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47
- 행동, 스트레스 그리고 안정적인 사회관계가 주는 축복
|제3장|
고양이는 장난칠 때 기분이 좋아진다…83
- 동물들의 행복과 감정 그리고 동물 친화적 삶
|제4장|
선천적인 것과 학습되는 것은 무엇일까…129
- 유전자, 환경 그리고 행동: 오랜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
|제5장|
영리한 개와 지적인 까마귀…179
- 모든 동물은 학습할 수 있다
|제6장|
동물의 성격…217
- 행동의 발달과 개인성의 발견
|제7장|
동물들은 서로 돕고 서로 죽이기도 한다…257
- 사회생물학적 진화 그리고 이기적인 유전자
|제8장|
우리와 같은 동물들…305
- 동물들에게 숨겨진 인간적인 특성
옮긴이의 말…316
참고 문헌 및 추천 도서…321
출판사 서평
작가의 말-동물의 모든 행동은 진화의 산물이다. 즉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자연 선택에 의해 프로그래밍이 된 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행동을 취한다. 그래서 자기에게 유리하면 타자를 돕지만, 때론 죽이기도 한다. 동물들이 각자의 적합성을 극대화하는 전 과정은 유전자의 이기주의를 따르는 것이며 이는 말 그대로 자연의 섭리다. 따라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판단하거나 인위적으로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우리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이기에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이기적인 유전자에 따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법이나 윤리와 같은 나름의 장치를 마련하여 이기적인 유전자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옮긴이의 말-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연구 사례는 우리와 동물들이 얼마나 가까운지 그리고 그간 우리가 얼마나 편향된 시선으로 동물들을 바라보았는지 실감하게 한다. 책에서 소개되는 동물들의 명칭 대신 인간을 대입해도 무방할 정도로,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 면에서 동물들과 우리는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동물들이 각자의 적합성을 극대화하는 전 과정은 유전자의 이기주의를 따르는 것이며 이는 말 그대로 자연의 섭리다. 따라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판단하거나 인위적으로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우리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이기에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이기적인 유전자에 따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법이나 윤리와 같은 나름의 장치를 마련하여 이기적인 유전자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동물 위에서 군림하려 했던 우리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스스로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했다. 그래서 ‘이성’이 동물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성의 유, 무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했다. 즉 인간과 동물은 아예 다르다고 생각했다. 불과 수십 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이런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사람들은 동물들에겐 생각할 힘이 없고, 그들의 감정도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많은 동물들도 사람처럼 학습 외에 사고思考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들에게 거울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도 자기에 대해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능력이 있다. 또, 우리가 연인을 사랑하거나 연인과 헤어졌을 때 생기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그들도 느낄 수 있다. 동물들에게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 많아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인간들이 오히려 동물들과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 주로 우리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하는 것에서 그들과 무척 비슷하게 보인다. 그들은 본능에 따라 일방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행동 양식을 드러낸다. 그래서 동물들도 우리 인간처럼 고유의 성격이 있고, 상황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으며 때로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동물들의 생존과 번식이 과연 우연일까?
동물은 필요에 따라 서로 돕고 서로 죽이기도 한다
모든 동물의 행동은 번식에 성공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동물들의 생존, 번식, 몰락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적 기질을 가진 동물은 다음 세대로 전해지지만, 번식과 생존에 실패한 유전적 기질을 가진 동물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없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 ‘자연 선택’이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생존과 번식에 성공한 개체들은 세대가 이어질수록 그 환경에 맞도록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다윈의 이론에 따르면 동물들은 자연 선택으로 인해 유전자를 남겨야 하므로 ‘이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자기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남기기 위해서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때로는 같은 개체여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로 돕거나 서로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우리는 그동안 동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작가는 동물이 하는 모든 행동을 진화의 산물로 본다. 그래서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이 자연 선택에 의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기 좋은 행동을 한다고 보았다. 인간인 우리도 때로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우리 인간과 동물 사이에 다른 점은 분명히 있다. 우리에게는 동물들에게 없는 ‘법’과 ‘도덕적 윤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으로 인해 인간은 인간처럼 살고자 하고, 이것들의 테두리 속에서 동물과 다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 - 동물’ 사이의 관계 역시 변하고 있다. 각종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 동물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때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동물이 고통받거나 학대당하는 슬픈 기사도 나온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은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단순히 동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이제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들은 동물을 ‘가족’과 같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반려동물은 가족과 같은 대우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우리는 우리 인간 복지 외에 인간과 함께하는 동물의 복지와 행복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동물들이 행복해하는지, 어떨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지 등 동물의 감정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혼자만 누리는 행복이 아닌 함께 누리는 행복이란 감정이, 인간의 손에 길든 가축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고 동물 친화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물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동물의 가려졌던 비밀과 진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30여 년 연구의 결정판
동물을 가축으로만 생각하던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이제 우리는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부르고, 동물복지나 동물보호에도 관심이 늘어나고 있으며, 동물보호법도 제정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점점 동물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바뀌어 점점 동물과 가까워지고 있다.
반려동물이란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을 뜻한다. ‘사람과 함께 산다’는 의미에서 사람의 보호하에 있는 가축이나 야생에서 사는 동물과는 다른 의미이다. 또, 반려동물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으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가족처럼(때로는 가족보다 더 가깝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책속으로
동물행동학 연구에서 가장 필수적인 전제 조건은 ‘동물에 대한 지식’이다. 다시 말해 동물의 행동을 학술적으로 탐구하려면, 동물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동물행동학에서는 동물에 대한 지식과 동물의 행동에 관한 생물학적 판단이 필요하다. --- p.21
사회적으로 서열이 낮은 개체들은 집단 내 다른 개체들과의 경험을 통해, 자기가 할 수 있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파악한다. 즉,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 p.65
동물의 행복을 진단하려면 원칙적으로 신체적 건강과 심리적 건강을 포괄해야 하고, 동물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한지 진단하려면 신체적 상해를 비롯해 질병과 예상 수명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신체 건강을 파악하는 전형적인 방법에 속한다. --- p.86
지난 20여 년 동안 행동유전학자들은 하나의 유전자가 공격적인 행동을 야기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다른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여러 유전자를 발견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동물들이 늦잠을 자거나 혹은 일찍 일어나는 행위에 관여하는 유전자, 동물들의 학습 능력 속도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도 알게 되었다. --- p.151
조작적 조건화 학습은 동물들이 먹이를 찾고 사회 규칙을 익히며, 새로운 생활공간을 개척하거나 특정 사건들의 진행 과정을 원활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궁극적으로 이런 학습 형식은 동물들이 살아가면서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여러 과정을 지속적으로 익히고 파악할 수 있게 한다. --- p.195
감정이 풍부하고 사회적 능력을 갖춘 개체로 성장하려면 일찍 사회화를 겪어야 한다. 새끼 때 사회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성체가 되어서도 동종의 개체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 pp.220-221
생존과 번식에 성공한 개체들은 세대가 이어질수록 주어진 환경에 한결 능숙하게 적응한다. 다시 말해 개체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행동을 설정하는 것이다. --- p.263
사회적 환경과 스트레스 그리고 행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면, 인간이 아닌 포유동물들과 우리 인간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수많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게 해당하는 많은 원칙이 인간이 아닌 포유동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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