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네”
삶의 현장에서 투쟁하는 시인 송경동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
절망과 야만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사랑과 연대의 시
거대 자본의 폭력과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맞선 피 맺힌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해온 송경동 시인의 신작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노동시의 한 정점을 보여주었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 2016)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네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결기와 끈기가 담긴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전위적이며 가장 불온한 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선보이며 지난 수십년간 차디찬 거리에서 노동자 민중과 함께해온 삶이 곧 시이고 문학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눈물겨운 투쟁의 세월 속에서 써내려간 시편마다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자본과 권력의 차가운 심장을 꿰뚫는 뜨거운 비수 같은 시집이다.
역사의 주체로서 노동자의 삶을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당당하게 노래하는 송경동의 시는 투쟁의 역사이자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참상을 증언하는 뼈아픈 기록이다. 농성과 투쟁을 이어나가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발화하는 목소리이며, 오로지 소수의 독점만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세상의 “불의와 폭력에 맞서다 이름 없이 스러”(「토대」)진 이들의 유언이다. 시인은 사랑과 연대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무장한 채 거리로 광장으로 앞서 나간다.
이번 시집에는 숨 가쁜 집회 시위 현장에서 낭독한 시가 유독 많다. 특히 5부에 실린 추모시들이 눈에 밟힌다. “다시는 추모시를 읽으며 무너지고 싶지 않”(「대답해드리죠, 스님」)다는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시인은 숱한 죽음들 앞에 피눈물 어린 시를 바쳐야 했다. 용산참사 희생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 황유미,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 종로고시원 쪽방 희생자 등 이 땅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는 시인의 목소리가 비통하기 그지없다. 시인은 이 추모시들에 각주를 붙여 시에서는 하지 못한 뒷이야기와 참담한 현실의 실상을 낱낱이 기록해둔다.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과 목숨을 내놓는 극한의 단식농성과 점거 활동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일로 또 싸움에 나서야 하는 고단한 투쟁의 세월 속에서도 시인은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민중과 연대하며 자신의 삶과 투쟁이 자칫 편협과 아집에 빠지지 않을까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명분과 허세만 잔뜩 걸친 흉한 짐승이 된 건” 아닌지, “무슨 투사라도 되는 양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며/정작 속은 더럽혀온 건”(「목욕탕 순례기」) 아닌지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을/내 것인 양 사유화하고/헐값에 팔아넘기는 사람은 되지 말자”(「내 안의 원숭이를 보라」)는 다짐을 가슴속 깊이 새겨둔다. 그리고 “내가 비로소 나로부터 변할 때/그때가 진짜 혁명”(「우리 안의 폴리스라인」)임을 힘주어 말하면서 모두가 온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가열한 의지를 가다듬는다.
“이런 시인 몇쯤 있어야 이 시대의 울화증 삭이지 않겠나”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냉소를 향한 옹골찬 목소리
시인은 한 지면에서 “내 삶이 어떤 문학사에 기록되는 것보다 경찰 ‘조서’와 검찰 ‘공소장’과 법원 ‘판결문’에 기록되는 것이 얼마나 벅차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비판과 냉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저 거리에서 자빠지겠”(「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다는 시인. “사랑과 노동과 헌신”이라는 “선한 힘을 나눠 받으며” 어떠한 경우에라도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시인의 말) 노력해온 시인. 모든 억압과 폭력과 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 시인은 다시 굳건한 약속을 세운다. 우리가 함께 어깨를 겯고 사랑과 연대의 길로 나선다면 마침내 진실과 정의가 이길 것이라고 소리치는 그 옹골찬 목소리에 이제 귀를 기울일 시간이다.
시인의 말
건강은 괜찮으냐고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나도 오래 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참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에서는 끌려가는 일보다
밥을 굶어야 하는 일이 늘었다. 그게 오히려 고됐다.
단식만 도합 71일을 했으니 29일만 더 채우면
마늘도 쑥도 먹지 않고 정진한 나도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처럼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이 들어갈수록
그게 좀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난 곡류와 단백질만을 섭취하며 자라오지 않았다.
대다수 인류가 실현하는 끊임없는 사랑과 노동과 헌신,
그 선한 힘을 나눠 받으며 이만큼이나마 자라왔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 모든 생명과 물질들에게 감사드린다.
…얼마 전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이 발견되었는데
129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에렌델’이라 한다.
빛의 속도로 가도 129억년이 걸린다는 머나먼 곳.
내가 나에게,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라고 믿어주면, 고맙겠다.
2022년 4월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하면서는
한진 노동자들이 조남호 회장과 교섭할 때
자신들 정리해고 철회뿐만 아니라
정규직에 앞서 우선 해고된 천오백여명의 비정규직과
조남호에 의해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고용되어 있다는
비정규 노동자 이만여명의 권리를
교섭 의제로 삼아주었으면 했다
처지가 같은 노동자들끼리 함께 살기를 모색하는 것
그게 온당한 노동자들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 했다
정부의 노동3권 개악에 대항해
‘을들의 국민투표’ 운동을 할 때는
정부를 참칭해 대통령 선거 전국 투표소 수만큼
일만사천개소의 노동자 시민 투표소를 조직해보자 했다
황당했는지 별반 얘기들이 없었다
벗들과 함께 삼천개소 넘게 만들어본 듯하다
그해 1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 물대포에 맞아
백남기 농민이 뇌사상태에 빠지며
공안정국이 서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고
나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을 할 때 꿈은
2011년 세계 자본의 중심인 뉴욕 월가에서
1퍼센트의 금융자본주의에 맞선 99퍼센트의 저항운동을 외쳤던
주코티 공원 텐트촌을 상상하며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청와대 앞 도로까지
분노한 사람들의 텐트로 덮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 했다
이 겨울에 누가 여름용 텐트를 짊어지고 나오냐
명백한 불법 농성을 박근혜가 가만두겠냐
하지만 나처럼 꿈꾸기와 전복을 좋아하는
소수의 벗들이 있어 배낭을 메고 나갈 수 있었다
야심찼던 ‘퇴진 단지’ 택지 분양에 실패하고
이순신 동상 아래에 세운
모델하우스 텐트촌에 만족해야 했지만
광장상설무대, 촛불기원탑, 광장극장 ‘블랙텐트’
궁핍현대미술광장, 광장신문, 광장토론회, 마을회관
마을진료소,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 등을 둔
작은 코뮌은 만들어본 듯하다
그때마다 그러잖아도 바쁘고 일 많은데
꿈꾸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거 있는가
이제 와 무슨 권력이나 부나 명성 얻을 것도 없고
뒤늦게 철든 이들 따라 무슨 욕심 차리는 것도 추해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기름 묻은 스패너가 투덜거린다
나는 왜 시의 소재가 될 수 없냐고
덩달아 밀링도 투덜거린다
내가 뚫은 수많은 요점들이
근대 한국문학에 제대로 인용된 적 있냐고
컨베이어도 투덜거린다
뺑이치며 이 세상 돌려줘봐도
우리에 대한 서사는 한줄도 없다고
잠자코 듣고 있던 미싱도
공작기계도 건설공구도 농기계도
어구도 한마디씩 하고 나선다
시끄러워 죽겠다
모두가 자기들 얘길 쓰는 거라고
니들 얘기는 니들이 쓰면 되지 웬 투정들이냐고
한마디 하고 만다
소설과 철학의 기원
광화문 촛불 집회 때 백만이 넘어가자
유명한 철학자 한분께서 무대에 서겠다고
자꾸 마이크를 달라 했다
가르쳐주고 싶은 게 많은가보았다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 집회가 거대해졌을 땐
한 저명한 소설가께서 허둥지둥 현장을 휘젓다가
방송 카메라가 보이자 저돌적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가보았다
그 뒤로 나는 그 철학자와
소설가의 책은 안 본다
굳이 그 깊이와 복선을 읽지 않아도 될
그들의 진면목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가(黨歌)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어머니의 구수한 전라도 '당가'였다
그랬당가, 가셨당가
눈물 나 어쩐당가...
모든 말끝에 '~당가'가 붙으면
비로소 안심이 되고
천하의 몹쓸 인간도 그만큼의 곡절로
이해되고 용서가 되었다
나이 들어
따라 부르고 싶던 '위대한 당가(黨歌)'는
아직도 못 만났다
언제나 온당가, 오긴 온당가
영영 안 오면 어쩐당가
그래도 괜찮다
어머니와 같은 지극한 이들이
저 남녘 끝에서 저 대륙 끝까지
냉이 뿌리나 씀바귀마냥 끈질기게 살아
오늘도 서로를 따뜻이 껴안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외로워 말자
내 안의 원숭이를 보라
스물 초입 세상을 배울 때 꿈 하나는
나이 먹어서도 원숭이는 되지 말자였다
잠깐 민주주의자였다가
잠깐 정의의 편 참된 역사의 편이었다가
왕년의 시시껄렁한 무용담이나 늘어놓고
얕은 재주나 파는 이는 되지 말자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을
내 것인양 사유화하고
헐값에 팔아넘기는 사람은 되지 말자였다
그러나 어느 틈에
내 안에도 들어와 사는 큰 원숭이 한마리를 본다
작은 재주에 으쓱하고 쉬지 않고 재롱을 부리며
광대처럼 무대에세 박수만 받고 싶어 하는 원숭이
사회를 검색하는 일보다 자신을 검색하는 일이 더 많고
숨겨진 진실을 캐는 일보다
눈곱만 한 자산을 계량하는 일이
더 많아진 원숭이
자신이 어떤 좁디좁은 철망 속에
다시 갇혔는지도 모른 채
몸집만 커다래진
목소리에 대한 명상
한땐 어떤 현장에서도 목소리 높이지 않았다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면서도 소리 내지 않았다
저 뒤의 구조와 싸우기 위해
구체적인 조직과 결정적인 투쟁을 준비해야지
저들의 희미한 실루엣에 불과한 전경들과
경찰들과 이스트로 불린 빵 같은
용역깡패들에게 분개해서 무엇이 남겠는가 했다
한땐 어떤 논쟁 자리에서도
내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경청하며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려 했다
내 이야기보다 내 의견의 관철보다
타인의 자발성과 주체성 그 결의와 열망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시간
정연한 논리 너머에서 억눌린
침묵의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내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었다
현장에서 경찰과 용역깡패와 구사대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연행해봐, 뛰어, 넘어가…
열겹 스무겹 공권력에 고착된 대오 속에서
그래도 우리 주눅 들지 말자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경찰의 고출력 스피커 소리에 지면 안 된다고
마이크를 통째로 삼킬 듯
내게 남은 모든 힘을 모아 소리치고 있었다
그렇게 대치하고 나면 목에 창살이 드리워져
며칠씩 아무런 소리도 올라오지 않았다
회의와 논쟁 때마다 상처받기도 했다
다른 논리, 다른 평가, 다른 가치
다른 진정성, 다른 틀, 다른 정세분석
밖을 향한 분노보다 내부의 작은 염결만 좇는 편협함에
좌우 막론 자기 조직 입장만 최선인 종파주의자들에게
매번 대중의 상태를 들먹이며 투쟁을 회피하는 상층 관료들에게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자는 의견을
냉소하는 개량된 비웃음에 상처받았다
당신은 조직적인 관점이, 대중적인 관점이
전략적 관점이, 당파성이…
의지주의자, 경험주의자, 사해동포주의, 주관주의자…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숱한 비난과
비판에 상처받기도 했다
나중에는 나도 무장하고 다녔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먼저 공격했다
짓밟히고 난 뒤의 모멸과 분노를 견딜 수 없어
목청을 먼저 높이 올렸다
경험과 관계와 역할과 지위를 이용해
누군가의 불편한 목소리를 선제압하기도 했다
급히 가야 한다는 명분으로
작은 소리, 여린 소리, 세밀한 목소리 들을
묵살하기도 했다
파쇼와 싸우다보면 파쇼를 닮는다고
어느새 내 목소리른 금세 끓어오르고
어느새 창처럼 곤두서고 불처럼 뜨거워져
금세 공격적이 되는가보다
나만 옳고 나만 원칙이고 나만 최선이고
나만 중심이어야 하는가보다
오랜 상처가 쌓인 일종의 산재라고 항변도 해보지만
좋지 않은 목소리다
작은 사랑과 신뢰와 믿음을 전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타인에게 웃음과 자유와 해방감을 전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늘 긴장과 딱딱함과 분별과 위축과 포기와 실망을 전하는 목소리는
좋지 않다
큰 이야기가 대부분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인 것을
무엇을, 누구를 잘 안다는 이야기가
실상은 인생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야기인 것을
내 삶의 서재는
내 첫 서재는
어머니에게 쫓겨나 뜻 모를 상형문자를 새기던
남도 장터의 어두운 흙바닥
갈대밭 너머 해협 위로 흩뿌려지던
저녁노을의 거대하고 숨 가쁜 붓질 앞에서
얼어붙곤 하던 그 긴 뚝방길
고향을 떠나온 컨추리 보이 시절 내 서재는
도회지 백화점의 커다란 쇼윈도
볼 수는 있지만 누구나 쉽게 통과할 수는 없는
문명의 투명한 벽 앞에서
내가 그간 읽어온 읍내의 칠흑과 진창이
까닭 없이 부끄럽고 치욕스럽던
한때 내 서재는
중세 기도원처럼 푸른 녹의 창살이 드리워진
소년원 높은 담장 안의 반듯한 침상
서가의 책들처럼 머리줄 맞춰
가지런히 누워 자던 어린 동화책
수백권이 내 책이기도 했지
그렇게 세상을 읽던 내 서재는 때로
종로3가 뒷골목 가짜 양주를 진짜로 속여 팔던
지하 삐끼집 칸칸의 룸이기도 했고
이중 삼중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파라다이스가 보이던
불법 빠찡꼬 철문 안이기도 했지
그렇게 내가 꾸벅꾸벅 졸면서도
잔업 철야로 세상을 읽으려 애쓰던 서재는
새벽 다섯시 반이면 어김없이 올라타야 했던
여천 석유화학단지 통근 버스
성에 낀 유리창 안이기도 했고
레일 따라 무지개가 솟던
광양제철소 용광로 앞이기도 했고
내복 두벌 위에 솜바지를 껴입어도
칼바람에 몸이 얼던 서산의 광활한 간척지이기도 했고
한번만 헛디뎌도 끝장인 수십 미터 허공에서
원숭이처럼 종일 폭 삼십 센티미터 H빔을 타고
곡예를 하던 지하철 공사 현장이기도 했지
그 서재들에서 나는
인생이라는 서글픈 책에서
희망이라는 군더덕시를 덜어내며 사는
이 눈부신 사회의 평범한 밑줄들을 만나고
헐벗은 영혼들의 텅 빈 본문과
그럼에도 절망할 수 없는 눈물겨운 고전의 세계들을 읽었지
정의와 공평의 새로운 페이지를 꿈꾸며
스스로 구겨지거나 불타오르던
생의 비서(秘書)들도 만났지
노동자 변호사
민주노총 구석 자리 하나 얻어
노동법률원을 처음 열었을 때
노동자들이 와서
"법에 저촉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물으면
이 사람은 제대로 싸울 수 없겠구나 했다
"합법적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물으면
노동자들이 법으로 싸워 이길 길은 없지요
솔직히 말해주었다
기존의 법을 뛰어넘어
새로운 법을 만들려고 싸울 때만이
비로소 노동자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간명한 사실밖에
변호할 게 없었다 한다
토대
사회운동 한 삼십년 쫓아다니다보니
이젠 조금 알겠다
노동자 민중 정치를 하겠다는 이들 중에도
나는 대장만 하고 싶어요 하는 이 많다
혁명을 이야기하며 권력을
수단이나 독점으로 사유하는 이
'나'나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면
아무리 옳아도 보이콧하는
종파주의 분열주의자도 정말 많다
그런 우리의 세세한 욕망과 편협함이
고루 챙겨지고 나서야 오는
혁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아직도 모르겠는 것이 있다
과실이나 결과를 탐하지 않고
불의와 폭력에 맞서다 이름 없이 스러지는
더 수많은 이들의 선한 의지는
도대체 어디서 발원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부디 건투가 있기를!
2018년 종로고시원 쪽방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좁은 복도 양쪽으로 구치소처럼
스물아홉개의 방이 마주 보고 있었지
쪽방이다 고시원이다 저렴주택이다 했지
창문 하나 없던 그곳에서 5호
10호 17호 등으로 불리던 당신들은
얼굴 없이 뭉뚱그려져 사각지대라 불렀지
화재경보기는 울리지 않았고
은빛 스프링쿨러 같은 은총은 없었지
영혼 한 홀 비집고 나갈 비상구도 없었지
더이상 작별해야 할 인연도 없이
인적 사항조차 없는 당신들 중 몇몇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빈소도 없었지
오늘도 어느 누군가는
주택보급률 102퍼센의 휘황찬란한 도심 뒷길을 열어
어느 작은 사글세 쪽방에 몸을 누이지
고시생 아닌 인생 고시생이 되어
이 세상 모든 절망과 슬픔과 아픔을
밤새 읽어야 하지
저 작은 건물 이층에 스물세개의 방이 있었고
삼층에는 스물아홉개의 방이 있었지
그곳에서 당신들은 처음으로 활활 타올랐다가
이내 잿더미가 되었지
금세 다시 잊고
부디 이 풍요로운 대한민국에 영광이 있기를!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학생이 아니다
졸업한 지 오래됐다
당신은 노동자다 주민이다
시민이다 국민이다 아버지다
가정에서 존경받는 남편이고
학부모며 집주인이다
환자가 아니고 죄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모두다
아침이면 건강센터로 달려가 호흡을 측정하고
저녁이면 영어강습을 받으러 나간다
노동자가 아니기에 구조조정엔 찬성하지만
임금인상투쟁엔 머리띠 묶고 참석한다
집주인이기에 쓰레기매각장 건립엔 반대하지만
국가 경제를 위한 원전과 운하 건설은 찬성이다
한 사람의 시민이기에 광우병 소는 안되지만
농수산물 시장개방과 한미FTA는 찬성이다 학부모로서
학교폭력은 안되지만, 한 남성으로
원조교제는 싫지 않다 사람이기에
소말리아 아이들을 보면 눈물 나고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에 보내는 쌀은 상호주의에 어긋나고
미군은 절대 철수하면 안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도살장은 무죄다
너를 죽인 건
도살장 컨베이어 씨스템이 아니다
너를 죽인 건 너다 죽어서도
삼겹 사겹의 두려움을 벗지 못하는
너의 불안이 네 목을 짓눌렀다
너는 생의 목적이 그것뿐인 양
먹이를 달라고 꿀꿀거렸다 그렇게 먹고도
네가 더 달라고 꿀꿀거렸을 때, 주인은
그제야 네 의중을 안심했다 그것은
어떤 탈주도 꿈꾸지 않고 복종하겠다는
가장 확실한 약속
근수를 달아주랴 눈금을 속여주랴
도살장은 무죄다
그것은 결과였을 뿐 원인은 아니었다
원인은 네가 돼지였다는 사실뿐이다
네가 끊임없이 먹고 있을 때
너를 먹는 더 거대한 입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피해버린 너의 굴욕
너의 비겁이다
가을, 나무들에게
왜 내게냐고
하늘 향해 성토하듯
빈손 치켜든 나무야
다 떨구어버렸다고
슬퍼하지 말려무나
우리가 너와 같아
수없이 많은 얼굴들을
피눈물로 떨구며
예까지 왔단다
수조 앞에서
아이 성화에 못 이겨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 열대어가
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이라 한다
관계라니,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
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붕어빵아저씨 고(故) 이근재 선생님 영전에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 그려줄까
13년 동안 밀가루값 가스값 빼면
100원 벌었고 200원 벌었고 300원 벌었고를 헤아리며
변함없이 붕어빵만 구웠을 당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당신 옆에서 또 그렇게 순대를 썰고 떡볶이를 팔던
당신의 아내를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 보여줄까
2007년 10월 11일 오후 2시 일산 주엽역 태영프라자 앞
트럭을 타고 갑자기 들이닥친 300여명의 용역깡패들과 구청직원들에게
붕어틀이 부서지고 가판이 조각나고
조각난 리어카라도 지키려다
부부가 길바닥에서 얻어터지며 울부짖던 날을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 그 밤을 형상화해줄까
잘난 것 없는 죄, 못 배운 죄 억울해
붕어빵 순대 떡볶이 팔아 대학 보낸
자식들 마음 아플까봐 몰래 숨죽여 울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부르튼 아내 손 꼭 잡은 채 잠들지 못했다는 그 밤을
어떤 상징으로 그 아침을 새겨줄까
뜬눈으로 새웠을 새벽 4시 30분
일용일이라도 나갔다 오겠다고 나간 아침
일은 잡지 못하고 낙엽처럼 떠돌다
길거리 나무에 목을 매단 당신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500여 노점상들을 거리에서조차 몰아내기 위해
31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고양시청
30명도 채 되지 않는 양민들의 생존권을 빼앗기 위해
150명의 폭력배를 고용한 일산구청
저항하면 공무수행 위반으로 구속하겠다는 경찰
폭력배를 고용한 관공서를 경찰이 보호하며
서민을 향한 사제 폭력이 공무로 수행되는 나라
이런 민주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어떻게 그럴듯하게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그려줄까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읊어줄까
국화꽃 같은 누이로 그려줄까
어떤 존엄한 시어를 찾아줄까
그러면 나의 시도 어느 연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러면 나의 시도 평론가들로부터 상찬받을 수 있을까
그 애매함으로, 그 모호함으로, 그 규정되지 않음으로
그 깊은 서정성으로, 그 새로운 해석과 역사성으로
어떤 문학사의 말석에나마 기록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 더러운 세상
이 엿 같은 세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저들이 당신들의 생존권과 터전을
가진 자들을 위한 법으로 들어덮듯
당신들 또한 이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없는 자들의 새 법으로 엎어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무슨 시를 쓸까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붕어빵틀을 잃어버려 미안해
당신의 순대를
당신의 떡볶이를
당신의 도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았으리*
이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평범하지는 않았으리
*김남주 선생의 시 구절을 빌려옴.
※ 2006년 겨울 어느 늦은 밤, 인터넷 매체에서 그의 소식을 봤다. 추모의 말을 남기려고 이 시를 써서 몇군데 인터넷 언론에 투고해두곤 새벽녘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이 시를 읽은 네티즌들이 고양시청 홈페이지를 다운시켜버렸다. 기운을 얻은 전국의 노점상들이 고양시청 입구를 불태워버렸다. 그 일로 오랜 벗인 전국빈민연합 최인기 사무처장이 책임을 지고 여섯번째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싸움을 이기고 추도식을 지내고 있다고, 자신은 다시 구속될 것 같다고 그가 전화를 해왔을 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어떤 약
철골일 할 땐 약으로 가끔
함바에 가 돼지고기를 먹었다
소금장 된장 마늘도 듬뿍
상추 깻잎 쑥갓 파무침도 듬뿍
고추도 듬뿍 김치도 듬뿍
밥도 한 숟갈 고봉으로 얹어
입이 찢어지도록 넣어먹었다
제발 이 고단백이 자잘하게 퍼져
질긴 힘줄로 가기를
억센 피톨로 가기를
목 안에서 단내 나지 않는 평온한 아침으로 가기를
골병의 저녁을 지나 깨어나는 새벽으로 가기를 바라며
골고루 씹었다
나중엔 아구지가 아파 더 못 먹었다
지금도 나는 돼지고기를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똥똥한 아랫배가 무겁고
고단백이 버거워
제발 더이상 소화되지 않고
똥으로나 얼른 가기를 바라며
까닭 없이 고기를 사주는 이와
까닭 없이 마주앉아 있다
그해 늦은 세 번의 장마
그해 늦은 세 번의 장마는 음울했다
벼락 맞은 나무처럼 쓰러져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수많은 이들이
눈물바람으로 남북을 오갔다
수천명의 목을 자른 한 자본가는 수천 마리 소떼를 몰고 가 영웅이 되었다 그때마다 거리에서 부딪쳤던
곤봉의 세월이 허리를 끊으며 떠오르곤 했다
5년째 천막농성을 하다 구속당한
전자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안부와 무관하게
양장 고운 '체 게바라 평전'은 불티나게 팔렸다
8·15 사면복권증을 받아온 한 선배는
넌지시 매문을 물어왔다
"기획출판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데…
쓰여선 안 될” 추모시, 송경동의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이름 없이 쓰러져간 삶의 이야기
송경동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엔 실명(實名)과 활동명이 많이 나온다. 대부분 죽은 자들 이름이다. 김용균, 백남기, 황유미 같은 이름에다 ‘혁이’, ‘숲속홍길동’ 같은 별명이 이어진다.
숲속홍길동은 “발전소 정규직 노동자로 혼자 잘 사는 게/ 미안하다고 그만두고 나와선/ <노동의 소리>에서 현장 영상 활동가”(‘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중)로 살다 생활고 등으로 죽었다. 죽기 전 재산 3만 원으로 소주를 사 “뇌를 마비시켰다”고 한다. 마지막 남긴 e메일엔 1만 원도 2만 원도 좋으니 조금씩만 부쳐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혁이는 용산참사현장, 서울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 KTX 비정규직 승무원 투쟁, 2008년 촛불시민운동 등에 참여했다. 여인숙 달방에서 주인 핸드폰을 빌려 돈을 조금만 부쳐달라는 말을 남기곤 세상을 떠났다.
송경동 시인 인터뷰는 서울 익천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이윤엽 판화가가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딱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는 말을 옮긴 판화가 걸려 있다. 김종목 기자
송경동은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된 채 이름 없이 쓰러져간 사람들의 삶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20년 동안 사람들 보고 싶어서, 사회를 알고 싶어서 늘 현장의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죽은 이들은) 그곳에서 늘 나를 가르쳐준 사람들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 명사처럼 어떤 아픔이나 어떤 꿈을 상징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시집 제5부는 추모 시만 모았다.
그간 추모 시를 100편 가량 썼다고 한다. 대부분은 송경동이 알던 사람들이다. 노동운동, 사회운동 현장에서 함께 활동했다. 정서적 교감도 나눴다. 이들의 죽음을 불러내 생애를 다시 복기해 시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들의 삶과 죽음, 아픔과 고통이 쌓여나가는 듯했다.
“삶보다 죽음에 관해 숙고했죠. 그 시간 동안 죽음 속에서 산 거예요. 이미 죽은 사람, 죽겠다는 사람, 단식이나 고공 농성을 하며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들 곁에서 산 거죠.” 이들의 죽음이 부당하고,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점에서 송경동은 추모 시가 “다시 쓰여선 안될 시”라고 말한다.
시를 좇으며 살지는 않았다. 여러 투쟁 현장 사람들과 수년, 10여 년을 넘는 시간을 함께 했는데, 각각의 현장에 관해 발표한 시가 서너 편 정도뿐이다. 시는 가장 큰 위안을 주는 친구다. 기운이 빠지거나 맥이 풀릴 때 시를 쓴다. “모든 푸념과 아픔을 받아주는 게 시”라고 했다.
네 번째 시집인 <꿈꾸는 소리…>엔 자성과 반성의 시를 많이 넣었다. 그는 “청년 시절 그래도 맑고 투명했는데, 지금은 세사에 찌들고 속화되는 것 같다. 열정도 식는 듯하다. (어떤 사안에) 기계적으로 다가간다. 학습도 게을리한다. 아픔과 교감하는 능력도 좀 떨어진 듯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로 표현했다.
“사회를 검색하는 일보다 자신을 검색하는 일이 더 많고/ 숨겨진 진실을 캐는 일보다/ 눈곱만한 자산을 계량하는 일이/ 더 많아진 원숭이// 자신이 어떤 좁디좁은 철망 속에 다시 갇혔는지도 모른 채/ 몸집만 커다래진”(‘내 안의 원숭이를 보라’ 중).
“생각해보니 조명이 집중된 자리나/ 특출하고 빼어난 것들만 좇아 살아온 내 뒤안길이 그렇게 가벼웠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저급한 인간인지를/ 내가 얼마나 얄팍하고 얍삽한 인간인지를”(‘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 중).
자본,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든 건 아니다. 문제의식은 더 깊어지고 비판의 날은 더 각이 섰다. ‘돼지열병’에선 사회적 참사나 천재지변에서도 ‘00주’로 베팅하는 한국 주식 자본주의 문제를 동지들의 죽음과 연계해 제기했다.
“누군가는 비명에 스러져갈 때 어떤 이들의 먹튀통장엔/ 천문학적인 단기수익이 빼곡히 들어찼다”.
이제 노동, 자본, 계급, 재벌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문인은 손꼽을 정도다. 유명 문인일수록 더 그렇다. 김용균의 죽음 때 산재 문제를 계속 지적한 건 보수로 분류되던 김훈 정도였다.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권’ 때 여러 사안에 목소리를 높이던 ‘진보 문인’들은 문재인 정권 이후 노동과 자본 같은 한국 사회 근본 문제는 침묵한다. 대신 정파와 진영을 옹호하는 언어를 쏟아냈다.
송경동은 일관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문제를 줄곧 직시했다. 모두의 평화를 막는 게 자본주의 체제와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선의를 표방하는 기만적 이들도 결국 같은 세력이다. 또 다른 기득권이 된 이들의 내로남불과 패권주의를 지적한 시가 ‘영풍문고 앞 전봉준씨에게’다.
“촛불혁명이 요구한 폐정개혁 100대 과제는/ 다시 저들의 또 다른 패권과/ 내로남불의 기득권과 특권/ 나태와 모멸과 협잡과 직무유기 속에 빠져/ 형체도 없군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촛불정부’.../왕조명만 바뀌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군요/ 사색당파는 끊이지 않고 계급사회는 여전하군요”
‘소설과 철학의 기원’에선 촛불집회 무대에 서려는 유명 철학자와 카메라에 잡히려는 소설가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송경동은 “전체 사회가 자본의 세상이 됐다. 지금 더 극악한 시대로 가면서 사람들의 삶은 깨지고, 소외는 더 깊어진다. 조직이나 집단 힘이 없는 상태에서 개개인들은 굉장히 아프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응하는 작가들 층이 엷어진 것을 두곤 “작가들의 연대 정신을 어떻게 더 넓히고, 연대 공간을 확보할지, 자본주의 거대한 물살을 거스를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는 쉽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며 문학을 공부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의 감각이나 정서, 사상, 감정이 전혀 반영이 안 된 작품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끼고, 괜스레 마음에 상처를 느끼곤 했다. 글이란 건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그 뜻을 알고, 쉽게 접해야 한다고 그때부터 생각했다”고 말했다. “상징이나 비유 같은 게 많이 들어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학적이고 해독할 수 없는 글은 문학이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그에게 문학은 “불의와 모순 현장을 정직하게 증언”하는 것이고, 시 쓰기는 “쉬운 말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헌신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2011년 낸 산문집 제목은 <꿈꾸는 자 잡혀간다>였다. “꿈은 지금은 소박해진 것 같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고, 아프지 않고, 소박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세계를 살면 좋겠다”고 했다. “생명이 고통, 착취 받거나 소외되지 않고 주어진 생명 안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요원해 보인다. 송경동은 낙관을 경계하지만, 비관에 빠지지도 않았다. “언젠가 이 세상의 모순은 극복될 것”이라는 전망은, “꿈꾸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거 있는가”(‘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중)라는 달관한 듯하면서도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와 맞닿은 듯했다.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중에서)
송경동의 이 시가 떠오른 건 ‘조국사태’ 때문이다. 이 사태 한가운데 386 권력자들의 위선과 이중성, 학벌주의가 있다. 수년 전 ‘자칭 맑스주의자’가 누구냐는 세속적인 질문을 했을 때 송경동은 웃기만 했다. 최근 부모 병간호로 현장을 잠시 떠난 마당이라 발언을 삼간다는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386이나 운동권과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려는 시였죠. 자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민중을 대상화하며, 혁명보다는 혁명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요. 현장에 잘 오지도 않았어요. 자기 실현을 위해 무던히 애쓰던 이들은 모든 걸 권력 중심으로 생각했죠.”
시 다음 구절은 이렇다.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2001년 등단한 송경동이 낸 시집은 세 권뿐이다. 시인 타이틀을 달고 정작 운동가로 줄곧 살았다. 시를 쓰며 살기 힘든 세상이었다.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줄곧 경찰, 검찰, 법원을 오갔다. 그는 촛불광장에서 여러 활동가들과 노숙하며 촛불 이후 과제를 고민했다.
송경동은 ‘주역’ 같은 말을 싫어한다.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수많은 시민이나 활동가 중 한 명이라는 평마저 부정하지 않을 것 같다. 정권교체 덕을 본 일이 없다. 두 차례 대선에서 ‘중앙 멘토단’ 같은 현 집권 세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줄곧 현장을 지켰다. 최근 ‘글빚’을 어떻게 갚을지 고민하며 산다. 여러 출판사에서 선인세를 받아 생활비로 써왔기 때문이다.
그는 ‘촛불항쟁’ 때 ‘박근혜’로 대표되던 특권과 불의와 불공정이 없는 세상, 더 나은 민주주의를 원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여전히 살기 힘든 걸 보면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촛불현장을 끝까지 지킨 이들은 인권과 노동, 평등을 줄곧 외쳤다. 이 문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에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집권세력은 뒤늦게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도의 발언만 내놨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나 쌍용차 해고자, 삼성 백혈병 문제에 그나마 연대했던 ‘SNS 셀럽’ 대다수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고공농성 100일을 넘긴 삼성해고자 김용희씨 문제를 두고도 별로 발언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소극적이다. ILO협약의 완전한 비준도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조처도 직권취소하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무소의 뿔처럼 밀고 가’는 일은 없다. 집권세력은 조국 문제를 ‘진영 대결’로 치환해 극한 대치 정국을 만든다. 시민 삶의 절체절명의 과제를 정권의 승리 같은 이해관계 문제로 바꿔놓는다.
이 대치엔 불가피한 요소가 없진 않다. 20일 저녁 덕수궁 대한문 앞을 지날 때 박근혜 석방과 ‘조국 OUT’ 현수막을 내건 무리는 미국 국가를 틀어놓고 ‘트럼프에 대한 경례’ 의식을 진행 중이었다. 광장과 삭발을 혐오하던 자유한국당이 광장에서 머리를 깎으며 총선·대선 승리를 꿈꾼다. 조국에 문제의식을 느끼더라도 비판에 나서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고민하는 지점도 여기 있을 것이다.
도덕과 공정의 최저 하한선을 두고 수구보수세력과 다툴 일은 아니다. 조국사태가 수구보수세력에 복권과 활개의 빌미를 주고 만 점을 성찰하지 않고서는 선거에 승리한들 ‘덜 나쁜 정권’이 될 수밖에 없다. 덜 나쁜 정권이 사모펀드 같은 자본주의 투기 문제나 사학재단 비리 문제를 거론할 수 있을까.
조국은 한편에선 ‘개혁 영웅’이 됐다. ‘조국 수호’를 외치는 이들은 그 없이는 개혁이 한 치 앞도 나갈 수 없을 듯 말한다. 이 개혁은 선택적이다. 그것도 조국이 민정수석일 때 완수했어야 할 개혁이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패배자’로 남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외면된다. 이들을 위한 개혁도 뒷전이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에서 송경동은 소속을 이렇게 밝혔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경향 김종목 사회부장 2019.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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