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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괜찮은 詩

4.3 그리고 시

by 이성근 2022. 4. 5.

강요배 作 젖먹이

4월의 햇살 오영호

 

화산섬 돌담 밑에

60년 여문 한

쪼아 문 산비둘기 푸드득 날아 올라

구천의 대문을 열고

신원 伸寃의 깃발

흔들 때

와르르

쏟아지는

4월의 노란햇살

반짝이는 나뭇잎에

새겨진 눈물 자국을

허기진 바람을 타고

쉼없이 딱고 있네

 

 

어덕구 산전-정군칠

 

수무엿새 4월의 햇살, 살을 만지네

살이 튼 소니무를 어루만지며

가죽나무 이파리 사시나무 잎 떠는 숲

가죽 얇은 내 사지 떨려 오네

 

울담 쓰러진 서너평 산밭이

스물 아홉 피 맑은 그의 집이었다 하네

아랫동네를 떠나 산중턱까지 올라온

아랫동네 사기사발과 무쇠솥이 깨진 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네

그 숲에나 잡목으로 서

살 부비고 싶었네

그대 한시절에 무릎 꿇은 것, 아니라

한 시절이 그대에게 무릎 꿇은 것, 이라

손전화기 문자 꾹꾹 눌렀네

 

산벚나무 꽃잎 떨어지네

음복하는 술잔속 그 꽃잎 반가웠네

그대 발자국 무수한 산밭길의 실비듬

어깨 서서히 데워 주었네

나 며칠 북받쳐 앓고 싶었네

 

 

선홀곶 답답한 굴속 - 김석교

 

선홀곶 묵시물굴 캄캄한 죽음의 냄새

눈을 감아도 보인다 귀를 막아도 들린다

안개처럼 흐릿한 세월 시간도 이곳은 비켜 간다

 

굴밖ㅇ로 끌려 나온 사람들 무릎 꿇린 채 총살당하고

굴속에 몸 숨겼던 사람들 수류탄 터져 목숨 끊기고

여자들과 아이들 북촌리 억수동까지 끌려가

따르르륵 기관총 맞아 몰살 당하고

노인들 또 잡혀가 고문 당히고

 

봄꽃들 앞 다투어 피는 이 4월에

죽음의 그림자 서성거리는 선흘곶에 오면

새들의 지저귐도 피 토하는 울부짖음이지

가지마다 움트는 생명의 붓순도 총일로 보이지

 

죽은 자들은 말이 없고 죽인자들 미쳐 날 뛰는

4, 선흘곶에 오면 목시물골에만 오면

그날이 생지옥이 나를 휘감아 나는 그만 미쳐 버리겠다.

 

 

박성내에서 김경훈

- 제주시 구양동 양 할머니

 

저기 보라

한라산 자락 아래 시커먼 연기 나는 거 보이지

느네 아방 토벌 다니는 모양이여

기여기여 울지마라

자랑자랑 윙이자랑

 

그날

한라산 자락 아래 제주시 박성내에서는

토벌군인들이 주민들을 총살한 후 휘발유로 태웠다

와랑와랑 시커먼

연기가 솟았다. 와랑와랑

 

 

너븐숭이-정희성

 

흙은 살이요 바위는 뼈로다

두 살배기 어린 생명도 죽였구나

신발도 벗어놓고 울며 갔구나

모진 바람에 순이 삼촌도

억장이 무너져 뼈만 널부러져 있네

그림. 강요배 작 `젖먹이’.

 

 

모슬포 칠월칠석 이애자

 

비 오네

절뚝절뚝

짝 그른

팔다리 끌고

 

홀아비 바느질 같은 낮은 밭담 넘어와

 

솔째기

문 두드리며

젖은 발로

오는 혼백

 

콩 볶듯

멜젖 담듯

섯알오름의 직유

 

죽기실기 살다보면 몽글기도 하겠건만

아직 비린 이 언어를

삭히지 못한 섬

 

모슬포 바람살이

기죽을 틈이나 줍디가

 

마디 곱은 어멍 손

별떡 달떡 빚어 놓고

 

배롱이 초저녁부터

마당 한뼘 밝힙디다

 

오십서

칠월칠석

까마귀 다 아는 제사

 

직녀표 수의 입고

견우씨 소등을 빌려

 

산발한

늙은 팽나무

기다리는

큰 질로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1914년 생 49112일 한경면 판토리에서 토벌대의 총격으로 아래턱을 맞고 턱을 잃었다 20049890세로 생을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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