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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들의 ‘위대한 생존’

by 이성근 2015. 11. 16.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관찰하는 상상을 해보자. 이들에게 푸른 별의 주인은 누구일까. 아마도 사람은 아닐 듯 싶다. 인간의 최대 수명은 100여살, 그 몇십배인 수천살부터 길게는 60만살에 이르는 생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에 앞서 있어왔던 식물들이 지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진정한 주인 아닐까.

사진작가 레이첼 서스만은 2004년부터 10여년간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유럽은 물론 시베리아와 남극, 사막부터 바닷속까지 종횡무진했다. 그는 지난 6월20일 한국에 출간된 자연에세이 <위대한 생존 -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윌북/김승진 옮김)를 통해 지구가 품고 있는 2000살 이상 ‘고령’ 생명체 30종을 생생한 사진과 글로 담아냈다.

이들은 ‘생존’의 의미를 온 몸으로 증거한다. 영양분과 수분이 부족한 지역에서 살아남는 법 등 나름의 생존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은 자리에서 ‘역사’를 이어간다.

형태도 사는 곳도 다른 이들에겐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책은 전한다. 생존을 위해 오히려 더 험하고 척박한 환경을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손길이 잘못 닿을 경우 지속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

■ 브리슬콘 파인

브리슬콘 파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 화이트 산맥(이 지역에서 알려진 최고령 나무는 약 5000살로 추정) | 윌북 제공

“브리슬콘 숲의 아름다움은 수목 한계선의 위쪽 극단에서 브리슬콘 나무들이 겪는 험난함에서 나온다. 이 나무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아름다움은 더 강렬하고 호소력 있다. 예를 들면, 브리슬콘은 개체 전체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은 시스템은 모두 닫고 제한된 영양분으로만 살아간다. 그래서 나뭇가지 딱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다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섬뜩하게도, 150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진 네바다 주 경계 지역의 핵 시험장에서 핵폭탄 실험이 있었다.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불지 않았다면 브리슬콘 숲은 일거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나무들은 벌떡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 못한다.”


■ 야레타

야레타(2000살 이상으로 추정), 칠레 아타카마 사막 | 윌북 제공

야레타 잎, 칠레 아타카마 사막 | 윌북 제공

“야레타는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장소로 꼽히는 아타카마 사막에 산다. 이곳의 일부는 ‘절대 사막’이라 불린다. 아타카마 사막에는 인간이 강우량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 비가 단 한 방울도 오지 않은 지역도 있다. 그전에도 비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 이끼 덮인 바위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끄트머리에 작은 잎들이 엉켜 있는 수천 개의 줄기로 이뤄진 관목이었다. 아주 빽빽해서 그 위에 올라설 수 있을 정도다. 사진을 찍을 때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고도가 4500미터였다. 야레타는 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꽃을 볼 수 있는 철이 아니었다. 야레타는 밀도가 높고 수분이 없어서 토탄처럼 불에 잘 탄다. 연료로 효용이 크다는 점은 야레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 뇌산호

뇌산호 윗부분(2000살), 토바고 스페이사이드 | 윌북 제공

“산호는 동물이다. 나는 프로젝트에 동물이 포함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장 오래 산 거북이는 188살까지 살았고, 가장 오래 산 고래가 200살쯤일 것이며, 북대서양의 507살 된 조개가 실험실에서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지만 2000살 넘은 동물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었다. 뇌산호는 2000살 이상의 생물을 찾아 나선 여정에서 처음 만난 동물계 생물이었다. …… 그리고 그 산호를 보았을 때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수면 아래 18미터쯤 되는 깊이에서 5미터의 폭에 걸쳐 있는 이 산호는 뇌산호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개체로 알려져 있었다. 옛 공상과학 영화에서 튀어나온 달이나 별똥별 조각 같아 보였다.


■ 100마리 말의 밤나무

100마리 말의 밤나무(3000살), 시칠리아 산팔피오 | 윌북 제공

“전설에 따르면, 아라곤(시칠리아 일대까지 통치했던 중세 스페인 왕국)의 여왕이 에트나 산으로 가는 길에 엄청난 폭풍을 만났다고 한다. 여왕과 100명의 기사, 그리고 그 기사들의 말이 모두 커다란 밤나무 아래로 몸을 피했다. 번개 칠 때 나무 아래로 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100마리 말의 밤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 무성한 잎도 인상적이었지만 하나의 밑동에서 수많은 가지가 갈라져 나와 퍼져나가는 구조야말로 3000살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 올리브나무

올리브 나무(3000살), 크레타 섬 아노 보우베 | 윌북 제공

“이 나무는 크레타 섬의 자랑이다.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된 고대 그리스 문명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작고 조용한 마을 아노 보우베를 넓은 세상과 연결시켜준다. 4년마다 이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서 올림픽 월계관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첫 올림픽이 열린 해는 기원전 776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는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코어 샘플을 채취해 나이를 계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나무가 정말로 3000살이라면 첫 올림픽의 성화가 올랐을 때 이미 200살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올림픽 선수들도 이 나무도 엄청난 끈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끈기의 시간 규모는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 일본 삼나무

조몬 삼나무(2180~7000살) 일본 야쿠시마 | 윌북 제공

“무성한 아열대 섬인 야쿠시마에는 한 달 중 35일간 비가 내린다는 농담이 있다. 잘못 놓인 철로의 버려진 철길이 미야노우라 정상을 향해 가다가 무성한 숲에 덮인다. 하지만 이 숲은 목재 등을 얻기 위해 삼림을 활용하거나 관리한 기록이 없다. 야쿠시마 주민은 거의 전부 섬의 해안가에 산다. 이곳의 무성한 숲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자연의 정령과 인간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내용을 통해 환경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 시베리아 방선균

시베리아 방선균을 담고 있는 토양 샘플(40만~60만살), 코펜하겐 닐스 보어 연구소 | 윌북 제공

“50만 년 전에는 현생 인류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조상 중 일본에 살았던 한 분파는 최초의 초가집 구조물이라고 알려진 것을 창조하고 있었다. 그때 시베리아 방선균은 이미 10만 살이었을 수도 있다. 40만~60만 살이라는 추정치 중 어린 쪽이 맞다 해도 장수 생물 중 가장 근접한 포시도니아 해초가 30만 살이나 젊다. …… 2005년 러시아의 콜리마 저지에서는 일군의 행성 과학자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곳을 조사해 외계 행성에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연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남극과 캐나다 북부에서도 연구가 진행됐다. 방선균은 지구 전역에서, 육상은 물론 담수와 해수에서 모두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시베리아 방선균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활동이 정지된 상태로 동결돼 있는 다른 고대 박테리아들과 달리 영하의 온도에서도 DNA 복구를 하고 있었다. 즉 50만년 동안 살아 있는 상태로 아주 천천히 생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존슨에 따르면, 그 이후 연구팀은 그 세포들이 여전히 살아 있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9개월을 들였고, 별도의 실험실 연구를 통해 실험 결과를 확인했다.”



■ 바오밥 나무

사골리 바오밥 나무(2000살), 남아프리카공화국 림포포 주 | 윌북 제공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골리 나무는 살아 있는 가장 오래된 바오밥 나무일 가능성이 크다. …… 사골리 나무는 매우 큰데, 나무껍질은 부드러웠고(그래서 나무 속살에 이름을 새겨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뭇가지는 곧았다. 바오밥 나무는 낙엽성이라 건기인 겨울(7월)에 오길 잘했다. 여름에는 잎이 나뭇가지를 뒤덮어 나뭇가지의 굉장한 구조를 볼 수 없을 것이었다. 바오밥 나무의 희한한 생김새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나무의 몸통이 물탱크 역할을 해서 가뭄이 길어질 때 스스로에게 물을 공급한다.”


선랜드 바오밥 나무 ‘맥주’(최대 2000살), 남아프리카공화국 림포포 주 | 윌북 제공

“길고 구불불한 도로를 한참 달린 뒤, 어두울 무렵 선랜드 바오밥 나무에 도착했다. 선랜드는 나무의 빈 속을 술집으로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영업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맥주’라고 쓰인 간판이 나무 몸통에 걸려 있었고 야외 조명등이 있었으며 안에는 살롱 스타일의 오래된 가구들이 있었지만, 술을 실제로 팔고 있지는 않았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연로한 나무가 우스운 볼거리가 된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 웰위치아

웰위치아 미라빌리스(약 2000살로 추정), 나미비아 나미브-나우클루프트 사막 | 윌북 제공

“생김새로 봐서는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웰위치아는 나무다. 특이하고 논란이 많은 ‘마황과’ 식물로, 소나무과 식물의 자매과라고 여겨진다. 소나무과 침엽수들이 그렇듯이 웰위치아(원시적인 형태이기는 해도) 솔방울을 만든다. 길다랗게 곧은 뿌리가 있고 땅 위로는 거의 파도같이 일렁이는 형태를 하고 있다. 나이테가 있긴 한데, 하도 왜곡된 모양이라 나이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식물계에 속하는 다른 어느 생물과도 달리 평생 동안 딱 두 장의 잎만 키운다. 처음에는 떡잎이 나는데, 떡잎이 떨어진 후에 나는 본잎은 평생 동안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성장이 멈추지도 않는다. 거대한 잎 더미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딱 두 장의 잎이다. 두 장의 잎이 길게 자라면서 켜켜이 구부러져 쌓이고 손상되고 갈라져가며 형성된 모양인 것이다. …… 지프가 가는 길 옆으로 선사시대의 분위기를 내며 타조가 돌아다녔다. 한꺼번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웰위치아의 원시적이고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 역시나 매우 생뚱맞아 보이는 근본을 가진 식민지 시대의 마을. 그리고 자연 자원이 마치 무제한 존재하는 양 채굴되고 있는 상황과 이 나라(그리고 이 점에서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미래 등등. 나미비아의 국가 나무인 웰위치아는 어찌어찌해서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았다. 그러기 위해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 스트로마톨라이트

죽은 스트로마톨라이트 사이에 난 바퀴자국,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 샤크 베이 | 윌북 제공

“우리는 우리 행성에서 생명이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 아마 우리 행성에서 발생한 생명의 시작보다 다른 행성의 표면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은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고 있는데, 35억년 전에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나타나서 지구의 대기에 산소를 채우는 막중한 과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지구에 첫 다세포 생물이 나타나기까지는 그로부터 30억년이 더 지나야 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생물분류상의 많은 원칙에 어긋난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생물학적 물질로도, 지질학적 물질로도 여겨질 수 있는데, 생물인 남조류(어떤 경우에는 박테리아 비슷한 고세균)가 무생물인 침전물과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은 지구 전역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살아 있는 군락도 벨리즈와 바하마 제도 등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가장 오래되고 건강한 군락지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 카블라 스테이션에 있는 하멜린 풀 북쪽의 염도가 매우 높은 만에 있다. 샤크 베이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가장 유명하고 방문객도 가장 많지만, 사실 대부분이 죽은 상태다. 검게 변했기 때문에 대번에 알 수 있다.”


■ 남극 이끼

남서부 해안에 자라는 이끼, 남극 엘리펀트 섬(남극 엘리펀트 섬 이끼의 나이는 5500살로 추정) | 윌북 제공

“바위가 많은 해변에 내린 나는 일행과 떨어져서 이끼를 보러 얼음이 덮여 있는 경사면을 기어 올라갔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도무지 생명체가 살 법해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녹색 이끼가 무성했다. 그동안 나머지 일행은 배의 위치를 아래쪽 해변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래서 나는 펭귄들, 그리고 그보다 덜 너그러운 물개와 코끼리바다물범들 사이를 걸어서 지나가야 했다.”

30만마리의 킹펭귄, 사우스조지아 섬 골드하버(남극 사우스조지아 섬의 남극 이끼 나이는 2200살로 추정) | 윌북 제공

“지금 내가 찾으려 하는 이끼는 9000년 된, 화석화된 이끼 둑에서 자라는 2200살 된 이끼였다. // 나는 잔디가 더부룩한 곳을 가로질러 올라가서 고대의 토탄 언덕을 보았다. 찾아낸 것이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번에는 가까이서 찍을 수 있었다. 고대의 이끼를 둘 다 찾아내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운이 좋다고 느껴졌다. …… 이 장소가 품고 있는 고대의 원초적인 장엄함에 다시 한 번 온몸이 멎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지구를 보는 것 같았다.”


사진·글 : 윌북 <위대한 생존 -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THE OLDEST LIVING THINGS IN THE WORLD)

출처: 경향신문 15.11.15  향이네 배문규기자


 서산갯마을 - 조미미.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