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일정이 취소됐다. 가뭄이 길어 물을 필요로 한 곳이 많지만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달갑지 않은 비였다. 그런데 비가 잦은 가을이다. 왜 그저 예년에 비해 비가 많이 온다라고 접기에는 기후의 변화를 연관지어 생각할 일이다. 아무튼 옥상에 올라 새삼 깨닫는다.
황령산과 어깨를 겨누고 있는 289m높이로 국제금융센터 BIFC(Busan International Finance Center)는 생명이 없다. 반면 비 내린 다음의 황령산 자락은 안개( 안개는 지표가 급속도로 냉각될 때, 근처에 있는 수증기가 응결되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 를 피웠다. 산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반면 국제금융센터는 산이 어둠에 묻혀 휴식을 취할 때에도 불을 밝히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없다. 하늘 높이 산처럼 쌓아 올린 자본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형상이다. 개발론자들은 생명있는 저런 산을 밀어버리고 그 터에 새로운 빌딩 숲을 만들곤 한다.
문현동은 2000년대 이후 그런 변화가 도처에서 일어나는 곳이다
사람들로부터 크게 대접받지 못하는 사방오리나무지만 제법 굵은 줄기로 마을 주민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여기에 아파트가 들어 선다는
소문이 있다. 딱한 노릇이다. 도시숲이 이렇게 야금야금 사라지는 것이다. 주민들은 어떤 생각들일까. 숲이 사라진다는 것 도로가 개설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집값이 오를까. 사람들의 욕망이 끝이 없다. 한마디로 중독이다. 혈안이다.
본가에 들렸다 성암사도 가 보았다. 작은 사찰에 불과했던 성암사가 나날이 영역을 넓히며 확장일로에 있다. 지난해 성암사 경내에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제법 굵은 줄기를 보여 측정한 바 있다. 그때 이곳의 나무들이 이 절의 산역사니 잘 관리해달라고 했는데 벽면 벚나무를 위해 저런 담장쌓기를 했다. 다소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절집의 변화에 비해 나무의 생육에 도움을 주기 위한 저런 조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늦가을로 향하는 황령산 자락의 숲이다 진노랑 빛의 나무는 아마도 은행나무일듯하다. 갈색과 탁한 적색은 참나무류와 그중에 좀더 선명한 붉은 빛은 붉나무나 개옻나무 등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비안개 스물되는 숲을 한참이나 바라 보았다. 그리다 혹시나 싶어 과수원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우연히 과수원 주인과 만나게 되었다. 재수(財數)가 좋았다. 아마도 울타리 밖에서 과수원을 향해 사진을 찍어 되던 내 모습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사진을 찍게된 이유를 말하자 그기 선뜻 안내를 하겠다고 했다.
사실 이곳의 팽나무는 올해 초부터 추적을 했다. 다만 사유지인 끼닭에 늘 멀리서 아니면 주변에서 맴돌다 와야 했다.
2015.1.27
산자락 사면을 올려다 보는 형태라서 팽나무 한 그루만 대상으로 삼았다. 육안으로 봐도 일정 정도 수령을 풍기는 나무였다.
2015.4.12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 보니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모를 수 있었든가. 문현동에 산지가 몇 년인데
1946 미육군 지도
나무의 둥근 수관은 언제봐도 매력적인데 육안으로는 정확히 어떤 나무인지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확인하게 되었는데 팽나무였다.
아무런 준비없이 팽나무와 만나다 보니 나무의 수고며 수관폭은 눈 짐작만 했다. 마침 안내를 했던 과수원 주인 조봉래씨가 가지고 있던 줄자가 있어 근원부와 허리둘레는 대충 재어 볼 수 있었는데 근원부 4.3m 가슴둘레는 3.5m 수령은 150~200살 수관은 동서 약 22m
정확한 기록은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지만 이들 나무들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성과였다.
과수원에는 팽나무가 세그루 있다. 앞서 간이 측정한 팽나무와 비슷한 수령과 크기다.
두번째 팽나무는 약 1m남짓한 높이에서 세 갈래 줄기를 펼치는데 앞서 보다 더 굵고 나이도 조금 더 많아 보였다.
그리고 세번째 팽나무는 그중 줄기가 곧고 나렵했다.
벚나무 역시 제법 오래된 크기다. 일제시대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나무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뿌리인 것 같다. 그 둘레가 제법 나간다. 봄날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룰 듯하다.
그리고 가시나무도 있었다.
성지곡 수원지에 있는 가시나무류들과 비교한 다면 과수원쪽이 훨씬 더 굵다. 반면 수고는 적은 것 같다. 비교해 볼 일이다.
그는 감을 몇 개 따서 주었고 언제든지 와서 측정해도 된다 했다.
나는 감히 이 나무들이 황령산의 보물이라 규정한다.
조씨의 집은 낡아 쓸어지기 일보직전이긴 하지만 일본식 가옥이다.
많은 이야기가 저 집에 베어 있을 듯 했다. 조씨는 이 집에서 나고 성장했다고 했다. 올해 예순 다섯이다. 부친은 함안 출신인데 이곳과의 인연은 그의 조부까지 연결된다. 예전에 소와 돼지를 키웠다고 했다.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현재 일대는 자연녹지에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있고 유원지 구역에도 속한다. 많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피어 올랐다. 일대를 시가 매입하여 보전과 이용을 도모한다면 .... 본가에 잠깐 다니러 오느라 신고 갔던 신발은 슬리퍼 였다. 때문에 당산나무 또한 다음으로 미루었다. 어쨌든 과수원 일대는 예사롭지 않다.
밤이 오고 다시 옥상에 올라 금융센터건물과 황령산 자락을 다시 바라 보았다. 역시
'길에서 > 오래된 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해서 될 일은 없다 (0) | 2015.11.18 |
---|---|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들의 ‘위대한 생존’ (0) | 2015.11.16 |
밀양과 삼랑진에서 (0) | 2015.10.28 |
자성대 공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노거수의 존재 (0) | 2015.10.23 |
가덕도에서 (0) | 2015.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