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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부동산공화국 경제사

by 이성근 2019. 1. 17.




부동산공화국 경제사 저자 전강수|여문책 |2019.01

전강수는 경제학자다. 하지만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며 낙수효과를 외치는 여느 경제학자와는 결이 다르다. 그렇다고 시장을 부정하고 정부의 무조건적 개입만을 주장하는 쪽도 아니다. 시장을 시장답게,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들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농민과 열심히 사업하는 기업가·자영업자가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도록 하는 것이 정의롭고 효율적이라 믿는 사람이다. 시장을 시장답게,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토지제도를 정의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또한 현재 한국 경제가 심각한 불평등과 불안정, 저성장에 시달리는 근본 원인은 토지와 부동산을 잘못 다뤄왔다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라 불리는 이 경제사상은 진보와 빈곤을 써서 19세기 말 세계를 뒤흔들었던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에게서 비롯됐다.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던 그에게 헨리 조지를 소개한 사람은 강원도 첩첩산골에 수도공동체 예수원을 설립한 고 대천덕 신부였다. 대 신부에게서 헨리 조지를 소개받은 후 지금까지 27년 동안 그는 헨리 조지 경제이론과 한국 부동산 문제를 연구하고 토지정의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 토지의 경제학, 부동산 투기의 종말, 부동산 신화는 없다(공저),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공저),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공저) 등을 썼고, 희년의 경제학, 사회문제의 경제학, 부동산권력(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프롤로그

 

1부 해방과 함께 평등지권 사회가 도래하다

들어가는 말 | 평등지권이 중요한 이유

1장 나라의 땅 vs 지주의 땅

2장 농지개혁으로 도래한 평등지권 사회

+ 추미애의 연설, 조봉암과 노무현이 보였다

 

2부 대한민국, ‘부동산공화국으로 추락하다

3장 박정희가 열어젖힌 부동산공화국의 문

4장 자꾸 부는 투기 광풍, 어설픈 정부 정책

5장 슬픈 종부세

6장 부동산공화국의 실상

+ 서민경제를 강타한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

 

3부 땅이 아닌 땀이 대우받는 세상을 향하여

7장 소득주도성장인가, 불로소득주도성장인가

8장 부동산공화국 해체를 위한 제언

+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의 탄생

 

보론 | 한국 토지정의운동사?헨리 조지 사상, 한국에서 만개하다

 

에필로그

미주|용어해설|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 대한민국 경제사

2018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최대의 유행어는 바로 똘똘한 한 채였다. 엄청난 기세로 불어닥친 투기 광풍에 전국이 들썩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서울, 특히 강남의 아파트값에 대한 기사가 연일 보도되면서 평범한 시민들을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부랴부랴 9·13대책을 내놓으면서 투기 바람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지만 근본적 대책이라기보다 땜질식 단기처방에 가까워 언제 또 화약고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960년 무렵 전 세계에서 토지분배가 가장 평등한 나라였던 한국이 어쩌다 너도나도 불로소득에 목을 매는 사회로 전락했을까? 한국의 대표적인 조지스트 학자이자 부동산 전문가로서 실천적 지식인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온 전강수 교수가 이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전 교수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한국이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한 데는 농지개혁의 한계, 다시 말해 도시토지와 임야를 개혁 대상에서 제외했고 토지 소유 불평등의 재현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한계에다 박정희 정권이 밀어붙인 무분별한 강남개발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평등지권 사회가 성립하고 후퇴한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례없는 고도성장, 부동산 투기, 기득권세력 형성, 불평등과 양극화, 경제위기 등이 모두 그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까지 미국에서 성경다음으로 많이 팔린 세계적 명저 진보와 빈곤의 저자 헨리 조지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학자답게 전강수 교수는 기득권세력 · 투기세력, 뉴라이트 사학자들의 논리에 맞서 27년간 꾸준히 토지정의를 설파해왔다. 이번 신간 부동산공화국 경제사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와 그 해법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시각자료와 친절한 용어해설을 넣어 내용의 이해를 돕는 한편, 쉽고 명징한 문체와 논리로 그동안 일반에 잘못 알려져 온 부동산 문제 관련 신화를 해체하고 진실을 알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노도와 같은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 취해야 할 구체적인 정책 제안까지 담았다. 지지부진한 개혁에 점차 민심이반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가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저자가 내놓은 해답에 일반인은 물론 정책 관계자들도 귀를 기울여 사회개혁의 근본인 부동산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해주기를 기대한다.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거짓 신화와 진실

전강수 교수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부동산 문제와 관련한 거짓 신화를 먼저 다음과 같이 일목요연하게 지적한다.

 

신화 1해방 이후의 농지개혁은 불철저해서 개혁이라 부르기 어렵다.

신화 2농지개혁은 이승만의 작품이다.

신화 3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박정희의 리더십 덕분이다.

신화 4박정희의 강남개발은 우국충정에서 비롯됐다.

신화 5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신화 6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신화 7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참여정부의 재판再版이다.

신화 8토지공개념은 반헌법적 또는 사회주의다.

신화 9보유세 강화는 조세저항이 강해서 시행이 불가능하다.

 

이어서 본문과 에필로그를 통해 위의 신화들이 어떤 면에서 거짓인지를 구체적인 근거를 토대로 조목조목 밝힌다.

 

진실 1농지개혁은 개혁 후 자작농 비율이 일본보다 높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지주제를 해체해 경제성장의 장애물을 제거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진실 2이승만이 농지개혁을 추진한 목적은 완전히 정략적인 것이었다. 그는 한때 농지개혁 시행 중지를 지시하기도 했다. 농지개혁의 주인공은 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과 농림부 관료들, 그리고 소장파 국회의원들이었다.

진실 3한국은 공평한 고도성장을 이룬 것으로 유명한데, 그 동력은 농지개혁이 달성한 평등성에서 나왔다.

진실 4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 용지 확보와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강남개발을 밀어붙였다.

진실 5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국 부동산 정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기념비적 업적이었다.

진실 6이상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근본 부동산 정책인 보유세 강화를 극구 회피하고 단기 시장조절과 주거복지에 치중해왔다.

진실 7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불패신화와 정면대결을 펼친 반면, 문재인 정부는 단순한 관리에 그치고 있어서, 두 정부 사이에 큰 유사성은 없다.

진실 8현행 헌법은 토지공개념 조항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토지공개념 정책은 친헌법적이다. 또 토지공개념은 불로소득 차단 · 환수 효과를 발휘해 노력하는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를 실현한다. 이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자본주의다.

진실 9보유세 강화에는 조세저항이 뒤따르지만, 기본소득과 결합하거나 국가재건 프로젝트 시행을 표방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농지개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국 사회가 한때 공평한 농지개혁을 이룬 적이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이승만 정부 당시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봉암의 공산주의 활동 전력을 문제 삼고 조봉암의 업적을 이승만의 작품으로 둔갑시키는 세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어불성설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평등지권을 실현한 일대 사건이었던 농지개혁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일제 강점기 당시 극심한 수탈에 시달리다 해방을 맞이한 조선 농민들은 무엇보다 지주의 압박과 수탈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생산하고 수확물을 자유롭게 처분하며 식량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해방 직후 농지개혁의 문제는 좌우를 막론하고 어떤 정치세력도 외면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회경제적 이슈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국의 농지개혁에 관한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왔는데, 전강수 교수는 그 성과들을 종합해 다음의 요인들이 결합해서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첫째, 미국의 역할이다. 미국은 남한을 반공의 보루로 삼고자 했고, 그래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농지개혁은 이런 미국 한반도 정책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미국은 미군정기에 귀속농지를 일반에 팔아 농지개혁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으며, 한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각종 채널을 통해 농지개혁을 강력히 요구했다.

 

둘째, 이승만의 정치 전략이다. 이승만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순응했고, 지주세력을 약화하면서 농민들의 지지를 받기 원했다. 극우 보수주의자였던 이승만이 농지개혁 같은 급진적 개혁조치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셋째, 농민층의 강력한 요구다. 일제 강점기에 지주들에게 고율의 소작료를 수탈당했던 농민들은 해방 후 식민지 지주제의 철폐와 농지개혁의 시행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고서는 건국과정이 순조로울 수 없었다.

 

넷째, 북한 토지개혁의 영향이다. 북한은 19463월 한 달 만에 무상몰수 · 무상분배를 골자로 하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남한 정부가 농지개혁을 실시하지 않는다면 남한 농민들의 마음이 북한과 공산주의 쪽으로 쏠릴 위험성이 있었다.

 

이런 배경 아래 마침내 한국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대지주의 나라소농의 나라로 변모시키는 엄청난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고, 이는 시대적 상황이 만든 일종의 기적이었다. 나아가 저자는 전 세계가 알아주는 한국인 특유의 높은 교육열에 농지개혁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본다고 덧붙인다. 농지개혁으로 기본적인 평등이 실현된 상태에서 다수의 민중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교육에 사활을 걸게 되었고, 이후 사회에 부패가 만연해 점점 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상태로 악화될수록 더욱 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저자의 말대로 이는 실증 연구가 필요한 흥미로운 주제.

 

평등지권은 사회주의적 개혁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농지개혁으로 평등지권 사회를 실현한 세 나라가 있다. 바로 대만 · 한국 · 일본이다. 이들 세 나라는 유상몰수 · 유상분배 방식의 농지개혁을 단행해 공통적으로 높은 장기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토지독점이 심각했는데도 이를 개혁하는 데 실패한 중남미 여러 나라, 즉 페루 · 베네수엘라 · 콜롬비아 · 파라과이 · 과테말라 등의 장기 경제성장률은 극히 낮다(20[그림 1] 참조). 이렇듯 각국의 토지분배 상태와 그 후의 장기 경제성장률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땅은 본디 거저 주어진 천부자원이기에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땅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평등지권을 거론하면 사회주의적 토지개혁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평등지권은 시장경제와 토지의 배타적 이용을 인정하는 반면, 사회주의적 토지개혁은 양자를 모두 부정하고 궁극적으로 토지의 국공유화와 집단적 이용을 지향하기 때문에 이 둘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일환으로 평등지권의 한 방법인 토지의 무상몰수와 무상분배를 내용으로 하는 토지개혁을 실시했지만, 그 후 농업 집단화 정책을 추진해 평등지권의 이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사회주의적 토지공유제를 성립시키고 말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평등지권 사회에서 불로소득 지향 사회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자화상

대한민국은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일단 평등지권平等地權(모든 사회 구성원이 토지에 대해 갖는 평등한 권리) 사회를 실현했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는 못했다.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토지문제의 중심은 농지에서 도시토지로 이동했는데, 문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이와 관련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의 주범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강남개발이 그 출발점이었는데, 이는 사실 국토개발의 청사진을 구현한다는 식의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경부고속도로 용지 확보와 정치자금 마련이라는, 알고 보면 다소 엉뚱한 목적을 위해 추진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강남개발은 한강 연안 공유수면 매립사업과 함께 강남지역을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만들면서 지가 폭등을 불러왔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동산 투기는 그 후에도 약 10년을 주기로 계속 일어났고, 부동산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최대 화두로 부상했다. 박정희의 강남개발 이후 한국 사회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불로소득을 좇아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정치인 건설업자 유력자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 중산층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부동산으로 대박을 노리는 사회,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부동산공화국이라는 말 외에 이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책속으로

발전국가론 지지자들과 뉴라이트 학자들은 한국이 역사상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한 원인을 박정희의 리더십에서 찾는다. 이들은 모름지기 중대한 경제적 변화는 아래로부터의 동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간단한 원리를 간과하고 있다. 게다가 발전국가론 지지자들과 뉴라이트 학자들은 5 · 16쿠데타 이전에는 엽관주의가 만연해 능력을 중시하는 전문 관료제가 자리를 잡지 못한 반면, 박정희가 집권해서 비로소 엽관주의를 퇴치하고 능력주의에 입각한 전문 관료제를 확립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시험으로 관료를 임용하는 능력주의 관료제는 이미 이승만 정권 때 농지개혁으로 평등지권 사회가 실현되고 교육이 발달하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국가가 강력한 이익집단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고 성장에 유리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것도 그때부터다. 그러니 한국의 성장 경험을 배우려는 개발도상국들에는 박정희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농지개혁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 --- pp.50-51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실패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오로지 집값을 못 잡았다는 것 하나인데, 당시 유례없는 유동성 확대로 전 세계 국가들에서 부동산값이 폭등했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 폭이 낮았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다--- p.[그림 5] 참조). 게다가 정책의 내용은 대한민국 어느 정부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뛰어난 것들이어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패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무현 정부는 보유세 강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을 비롯해서 불황에도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은 것,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한 것,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해서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 서민용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한 것, 토지 소유 분포 통계를 사상 최초로 공개한 것 등 기념비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기득권층의 집요한 공격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으니 역사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pp.143-144

 

자영업자가 아우성이고 청년 실업률이 10퍼센트를 넘을 정도로 심각한데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지 않은 것도 큰 실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옳은 방향임에도 효과를 거둘 수 없었던 것은 과감한 복지정책과 거시경제정책을 펼치지 않은 탓도 크다. --- p.187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돌린 야당과 보수 언론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혼선과 이전 정부 때보다 훨씬 빠른 부동산값 상승세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이명박 · 박근혜 정권이 9년 동안이나 노골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을 시도했다는 명백한 사실과, 박근혜 정권 때의 재건축 규제 완화와 금융 규제 완화가 강남지역 부동산 광풍의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재건축 규제 완화는 투기 광풍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정책임에도 그것을 해법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논리적 결함도 심각하다. --- p.201

 

불로소득의 나라, 정직한 사람들이 실패한 역사

2015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토지자산 가치는 4배가량이다. 한국의 토지 전체를 팔면 GDP4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토지자산 통계를 제공하는 주요 11개 국가 중 최고다. 호주가 3배가량, 일본은 이 비율이 2.5배가량이다.

 

한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 헛말이 아니다. 부동산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왜 자영업자는 가게를 꾸려가기 힘든가. 경기 침체와 과다 경쟁 못잖게 자영업주의 목을 죄는 건 높은 임대료다. 임대료는 왜 올라가는가.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왜 기업들은 그 많은 이익금을 쟁여두거나, 기껏 부동산에만 투자하는가. 부동산 투자가 확실한 수익을 손쉽게 올릴 길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부동산 투자에 목을 매는데 고용이, 설비투자가 활발히 일어날 리 만무하다.

 

부동산이 좋다는 건 이제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장래 희망이 건물주'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어느새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지난해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18세 이하 미성년자 직장가입자 전체 현황자료'를 보면, 미성년자 244명이 이미 부동산 임대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부동산 소득은 불로소득이다. 뜻 그대로 땅만 소유하고 있으면,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절로 소득이 생긴다. 예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힘을 가진 자는 누구나 땅을 취한 까닭이다. 가장 힘 센 자가 가장 큰 땅을 가졌다. 왕조 시대, 땅은 왕의 소유물이었다. 모든 국토의 주인이 왕 하나였다. 조선 시대 왕이 왕족과 고위 관료에게 하사한 과전의 소유주도 엄밀히 말해 왕이었다.

 

힘센 자라면 누구나 무한정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그래서 땅을 가진 자는 가만히 앉아서도 편한 삶을 누리고, 땅이 없는 자는 빌린 땅에서 힘겹게 산다면 사회는 무너진다. 노동의 결과물을 모두 지주와 나라에 빼앗기고 산적이 된 옛 왕조 시대 백성들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 역사에서나 반복된다. 옛 이야기일 뿐일까. 농민을 자영업주, 세입자로 치환하고 지주를 건물주로 바꾸면 바로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공화국은 지주의 등장을 막으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땅을 독점하는 자가 늘어나면 공화의 가치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경실련, 토지정의시민연대 등 시민 사회 단체에서 실천적 지식인으로 오랜 기간 활동한 전강수 교수는 신간 <부동산공화국 경제사>(여문책 펴냄)에서 이 같은 정책을 가장 잘 편 모범 국가로 한국을 꼽는다. 정확히는 해방 직후 농지개혁에 성공한 한국이다.

 

일본인 지주가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고 해방의 봄이 왔다. 한국 정부는 지주들의 땅을 매입해 농민들에게 그 땅을 나눠줬다. 19502월 지주의 토지 몰수 보상액 150%와 토지 구입 농민 상환액 150%를 확정한 농지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한국은 순식간에 지주의 나라에서 소농의 나라로 변화했다. 이 개혁으로 지주층이 소멸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이 천지가 개벽한 개혁에 따라 1960년 무렵 한국의 토지분배 지니계수는 0.3 수준으로, 분석 대상 26개국 중 토지분배 수준이 가장 평등했다. 심지어 중국보다 한국의 지니계수가 낮았다. 민주정이 들어선 후 토지개혁이 이처럼 성공한 대표적 국가가 한국과 일본, 대만이다. 실패한 대표적 국가는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 니카라과 등이었다. 전 교수는 한국의 기적적 고도 성장 배경에 토지 개혁이 있다고 강조했다. 토지개혁으로 인해 누구나 노력하면 노력의 수확물을 누릴 수 있고, 이를 교육에 재투자해 더 나은 삶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기에 한국인의 유별난 교육열과 성공에의 열망이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는 의미다.

 

그랬던 한국이 왜 지금은 부동산 공화국이 되었나. 경실련이 지난 20173월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 발표한 자료를 보면, 1964년에서 2015년 사이 한국의 땅값은 6702조 원 올랐는데 이 중 상위 1%가 가치의 38.1%(2551조 원), 상위 10%82.8%(5546조 원)를 독점했다.

 

이 같은 격변의 원인 제공자로 전 교수는 박정희를 꼽는다. 그가 건설 재벌과 손잡고 선분양제 등의 대기업 친화적 제도를 만들어 강남을 개발해, 전국적으로 토지 투기 열풍이 일어나 땅이 평등한 나라였던 한국이 투기 공화국으로 변했다는 진단이다. 한 번 만들어진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전 교수는 종합부동산세 폐지, DTI, LTV 규제 완화 등으로 일관한 이명박근혜 정부는 물론, 김대중 정부와 전두환 정권 등도 토지 투기에 의존해왔다고 비판했다.

 

대안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어떤 대안이 나와야 불로소득에 목을 맨 투기 공화국이 다시 건전한 자본주의 국가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대목이다. 전 교수는 강력한 토지 보유세를 도입해 투기의 근본 원인을 무력화하고, 다시 땅을 더 평등하게 나눠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빨갱이론'을 전면에서 반박하는 이 책은 헨리 조지의 뜻을 빌려 '부동산 투기야말로 자본주의의 적'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한국 부동산 정책 변화사를 대중이 읽게 쉽게 정리한 부동산 경제 역사서로 볼 수 있으나, 실은 '토지보유세 도입의 실패사'로도 읽을 수 있다. 멀게는 조봉암에서부터 가까이는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토지 보유세를 도입하려 한 여러 사람의 개혁 의지가 땅을 가진 기득권층의 반발에 무너진 역사를 정리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토지 기득권층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자들의 역사가 한국의 현대사라고도 읽을 수 있을 법한 대목이다.

 

부동산 투기와의 싸움을 기준으로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재평가한 부분도 참고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승만 신화와 박정희 신화를 통렬히 비판한 지점도 이 책에서 확인해 볼 부분이다. 저자가 머리말과 에필로그에서 역대 정부가 땅값을 잡는데 실패한 이유를 지적한 대목은 현 정부도 깊이 새겨봄직하다. 당장의 투기붐을 가라앉히는 진통제 투여만으로는 부동산 투기의 근본 원인을 잡지 못했으며, 이 원인 해결을 위해서는 토지보유세 도입만이 정답이라는 지적이다.

 

"많은 사람이 부동산 시장의 상태나 부동산 정책의 효과를 이야기할 때 부동산 가격을 기준으로 잡는다. (...) 하지만 부동산값의 움직임은 병의 증세, 즉 통증과 같다. (...)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경제의사'가 나서서 강한 '정책 진통제'를 투여해 집값을 잡겠노라고 약속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제발 그렇게 해서라도 이 고통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실제로 그리되면 그에게 감사해야 할까? 대다수 국민이 부동산 정책을 대할 때 그렇게 한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그는 진통제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가 오로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자기 병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 이와 같은 사회적 통증을 유발하는 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것은 많은 사람을 투기로 내모는 특수한 초과이익, 즉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 부동산보유세, 특히 토지보유세는 조세로서도 매우 우수할 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다. 그것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개인이 사적으로 취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따라서 불로소득으로 말미암은 불평등은 크게 완화된다. 세수 증가분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게 되면 불평등 완화 효과는 더 커진다. 또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도 자연히 사라진다. 부동산 거품의 형성과 붕괴 때문에 금융 시장이 불안정해지는 현상도 자취를 감춘다. 경제주체들이 지대추구에서 관심을 돌려 땀 흘려 일해서 정당한 부를 추구하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누적되는 사내유보금으로 기업이 땅 투기에 나서는 일도 사라지고, 일반 국민이 집값 상승의 이익을 노려 무리하게 대출받는 일도 없어진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다시 한 번 공평한 성장을 구가하게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프레시안 books] 이대희 기자 1.17

 

투기자본의 천국 국가 부도와 론스타 게이트 저자 이정환|인물과사상사 |2018.12

저자 : 이정환-“피를 가지고 써라. 그것만이 진실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토론을 한다.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말, 뉴시스, 미디어오늘등에서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3년 동안 미디어오늘편집국장을 지내고 2017년부터 미디어오늘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재벌 개혁과 주주 자본주의 논쟁을 다룬 한국의 경제학자들: 이건희 이후 삼성에 관한 7개의 시선들, 미디어오늘기자들과 함께 쓴 저널리즘의 미래: 자기 복제와 포털 중독 언론에 미래는 있는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강수돌 교수와 함께 쓴 한국 경제의 배신: 과잉노동의 사회,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는 가짜다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글 ? 5

머리말 6

IMF 외환위기와 외환은행 매각 주요 사건 일지 ?18

론스타 투자 구조도  24

등장인물과 기관  26


1장 외자 유치라는 망령과 헐값에 팔려나간 은행들

나는 왕처럼 살고 있다”  33

칼라일의 꼼수, 누가 누구를 속였는가  47

차라리 제일은행을 국유화했어야 했다  52

모두 론스타의 사람이었다”  65

결론을 미리 써놓고 시나리오를 짰다  73

론스타가 아니었으면 외환은행이 망했을까 81

모든 네트워크의 중심에 모피아가 있었다  87

외자 유치, 명분과 허울에 홀렸다  93

론스타가 전략을 바꾼 이유  101

프로젝트 아틀라스프로젝트 제우스’  111

론스타가 더블 플레이를 하고 있다  121

BIS가 저래도 되는가 131

자격 요건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138

추경호 보고서에서 드러난 놀라운 사실  149

케이스 1은 왜 삭제되었을까  162

론스타의 짜고 치는 고스톱에 놀아났다  167

거짓말의 연속  176


2장 투기자본과의 전쟁

노무현 정부 최대의 비리 사건  191

죽은 사람이 팩스를 보냈다 202

10인 비밀회동과 의문의 도장값’  219

한 손에는 마이크, 한 손에는 여자”  228

BIS 전망과 의문의 팩스 5장  238

론스타는 투자 구조가 왜 이렇게 복잡한가요?”  244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 무엇이 어떻게 달랐는가 252

누가 론스타의 눈치를 보는가  262


3장 엑시트 플랜과 우리 안의 적들

비금융 주력자, 론스타 출생의 비밀  271

금융감독위원회가 숨기고 싶었던 것들  281

론스타가 속였는가, 금융 당국이 속였는가  287

론스타 구원투수, 김석동의 거짓말  294

론스타에 날개를 달아준 주식 처분 명령  300

론스타의 숨은 투자자를 밝혀라  307

로비스트 박순풍이 털어놓은 놀라운 이야기  313

론스타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328

변양호는 론스타의 금메달리스트였다”  336

변양호 신드롬이 말하지 않은 것들  262

그들만의 이너서클  350


4장 주주 자본주의와 게임의 법칙

JP모건에 농락 당한 SK의 굴욕  365

소버린은 SK의 약점을 노렸다  374

브릿지증권의 운명  386

먹튀로 가는 다리, 골든브릿지  397

로스차일드에 놀아난 한국 정부와 만도기계  406

론스타가 발견한 세금 구멍  411

한몫 단단히 챙겨 나간 이강원  422

변양호와 보고펀드의 미션 임파서블  429


5장 단군 이래 최대 소송과 먹튀의 완성

도둑이 집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다고  445

단군 이래 최대의 소송  460

국가 위에 군림하는 단 한 번의 소송  475

한국 정부의 수상쩍은 태도  483

그들이 언제나 풀려나는 이유  499

진실을 말해주면 쓸 용기가 있습니까?”  514


맺음말  527

부록론스타와 대한민국 분쟁 관련 적요서 전문  537

스토리펀딩 후원에 참여해주신 분들  561

 

출판사 서평

국가 부도이후 모피아와 검은 머리 외국인들의 머니 게임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 매각의 진실

한국 경제를 말아먹는 주주 자본주의의 실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투기자본의 천국의 실체

 

론스타 게이트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집약된 사건이자, IMF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건이다. 또 온갖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수많은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있는 사건이자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IMF 외환위기의 망령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 론스타는 5조 원 가까이 챙겨서 나갔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5조 원의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에서 이기면 5배 가까이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다. 론스타와 한편이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론스타와의 소송에서 한국 정부를 대변하고 있다. 내부의 적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외부의 적과 싸워 이길 수 없다.

 

론스타 게이트에는 등장인물만 수백 명에 이르고, 이들의 수사 기록·진술 조서·판결문 등 읽어야 할 자료가 수만 페이지다. 수백 건의 관련 논문에는 수많은 해석과 평가가 엇갈린다. 국회 상임위원회와 국정감사 관련 자료도 수천 페이지다. 온갖 토론회와 기자회견에서 쏟아져나온 다양한 증언과 주장,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비공개 자료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 책은 언뜻 팩션(팩트와 픽션)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완벽하게 100% 팩트만 담았다. 이 책에 나온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 인물이고 모든 발언은 공인된 기록에서 인용했다. 최대한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확인 가능하도록 했다. 자칫 장황하거나 거칠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우선이고 해석과 평가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사건의 전체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론스타 게이트는 사건의 본질에 다가서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건이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의 과정을 이해해야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단순히 나쁜 놈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분노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단순히 사건을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를 드러내고 시스템을 폭로해야 한다. 이 책이 2006년 출간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들의 필독서로 불렸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누군가가 1쇄를 모두 쓸어갔고 소량으로 찍은 2쇄도 일찌감치 팔린 뒤 절판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의혹을 담고 있고 여전히 시스템을 지배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시스템을 폭로했기 때문일까? 론스타 게이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현재로서는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투기자본의 국부 침탈 과정과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헐값에 매각되었는지 그 민낯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투기자본의 천국의 실체를 드러내는 역사적 기록이다. 제일은행과 한미은행, 외환은행 매각에서 출발해 IMF 이후 공적자금 투입과 환수, 국부 유출의 역사, 그 과정에서 유사 로비스트 집단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역할과 정부 관료들의 회전문 현상,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과 글로벌 투기자본의 역학관계 등을 다룬다.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1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이전, 그러니까 IMF 외환위기 이후 투기자본의 공습을 다룬다. 2장은 외환은행 인수 이후 투기자본과 한국 시민사회의 전쟁을 다룬다. 3장은 론스타의 엑시트 플랜과 론스타의 불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다룬다. 4장은 약탈적 투기자본의 실태와 주주 자본주의의 함정을 다룬다. 5장은 ISD와 전망을 다룬다. 과연 약탈적 투기자본의 실체는 무엇인가?

 

외환은행은 어떻게 불법 매각되었는가?

한국의 은행법에는 외국인이 국내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금융회사거나 금융지주회사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원천적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은행법은 시행령에서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대주주가 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매각 당시는 물론 그 이전에도 부실 금융기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이 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예외 규정을 적용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은행에서 팩스로 보내왔다는 최악의 경우 외환은행의 BIS 비율이 2003년 말까지 6.16%로 떨어질 것이라는 자료에 근거해서 이러한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BIS 비율이 8% 이하면 부실 금융기관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자료는 외환은행에서 작성한 것이 아니라 론스타 측에서 만들었다는 것이 200510월 외환은행 문제를 점검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가 밝혀냈다. 외환은행은 20032,138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그 이듬해인 2004년에는 5,221억 원의 당기순이익 흑자로 돌아섰으며 2005년에는 당기순이익이 무려 19,293억 원으로 불어났다. 부실 금융기관이 될 우려가 있다던 외환은행이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 2년 만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이 같은 실적 호전은 외환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채권, 특히 하이닉스반도체와 동아건설 등의 경영 정상화에 따른 것이다. 실적 호전은 매각 협상이 진행되던 2003년 상반기부터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 멀쩡한 외환은행을 투기자본인 론스타에 팔아넘겼는가?

 

모피아, 검은 머리 외국인, 김앤장

2003년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건에서 론스타와 칼라일, 뉴브리지캐피탈 등 사모펀드들이 한국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한국 경제를 농락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것이 시장의 원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무슨 일이 벌어졌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숱하게 팔려나간 기업들,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 론스타는 그 일부일 뿐이다. 그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론스타는 200310,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신주 26,875만 주를 인수하는 데 1750억 원, 수출입은행과 코메르츠방크 등이 보유하고 있던 구주 6,000만 주를 인수하는 데 3,084억 원을 썼다. 외환은행 매각을 서두르던 20066, 수출입은행과 코메르츠방크의 남은 지분을 콜 옵션을 행사해 인수한 주식이 모두 7,715억 원에 이른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한 돈은 모두 21,549억 원이다. 론스타는 20122월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 지분 전량을 44,059억 원에 내다팔고 떠난다. 그런데 그 이전에 배당으로 받아간 돈이 17,098억 원이다. 20076, 콜 옵션으로 인수한 지분을 블록 세일 방식으로 내다팔아 11,918억 원을 챙겼다. 결국 론스타는 외환은행 투자로 21,549억 원을 써서 73,085억 원을 벌어들였다. 순수익은 51,536억 원에 이른다. 단일 거래 건으로는 기록적인 시세 차익이라고 할 수 있다.

 

론스트의 외환은행 불법 매각에는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외환은행 고위 간부, 법무법인 김앤장, 회계법인 삼정KPMG, 그리고 투기자본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맥과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어 매각에 관여했는지 보여준다. 특히 변양호를 주목해야 한다. 변양호는 20014월부터 20041월까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국장, 20051월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을 마지막으로 재정경제부에서 퇴직, 20058월 보고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한 인물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 매각에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변양호는 외환은행 매각을 두 달 앞둔 2003715,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비밀회동을 소집한 사람이다. ‘10인 비밀회동이라고 불리게 된 이날 모임에서 외환은행 매각 방식과 절차가 결정되었다. 10인 비밀회동의 참석자는 변양호와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추경호,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 김석동, 은행감독과장 유재훈, 외환은행 행장 이강원과 부행장 이달용, 경영전략부장 전용준, 한국 정부의 매각 자문을 맡았던 모건스탠리 전무 신재하, 청와대 정책실 행정관 주형환 등이다.

 

이날 회의에서 변양호 등은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는 아니지만,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논리로 외환은행 매각을 밀어붙이기로 합의했다. ‘이라는 한 글자가 외환은행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런 절묘한 신의 한 수를 알려준 게 바로 김앤장이었다는 사실이다. 회의 일주일 전인 78, 김앤장이 재정경제부에 전달한 법률 검토 문건에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 예외 인정 가능이라는 문구가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김앤장의 의견서를 베껴 쓰다시피 해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변양호는 론스타와 결탁해 외환은행을 헐값에 팔아넘긴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찰은 변양호 등이 고의로 외환은행의 자산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부실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론스타에 부당 이득을 안겨주었다고 주장했다. 변양호는 1심 재판의 최후 진술에서 저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남대문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기와를 뜯고 살수를 해 진화에 성공했더니 기와를 뜯어낸 행위가 잘못이라고 꾸짖는 것과 같습니다.……존경하는 재판장님, 최근 소위 변양호 신드롬으로 능력 있는 후배 공무원들이 일을 적극적으로 하질 않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부디 현명한 결정으로 후배 공무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그런데 오죽 하면 스티븐 리가 외환은행 인수가 끝난 뒤 박순풍과 전용준 등을 만난 자리에서 골드 메달리스트가 변 국장, 실버 메달리스트가 엘리어트 박(박순풍)”이라고 치켜세웠겠는가?

 

김앤장법률사무소는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로펌이다. 그런데 김앤장에는 일명 이헌재 사단이라고 불리는 그의 인맥이 포진해 있었다. 이헌재는 경제부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앤장의 고문으로 옮겨갔다. 그의 인맥은 재정경제부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과 금융감독위원회 등 금융권 곳곳에서 발견된다. 칼라일과 정부 관료들이 만나는 지점이 칼라일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김앤장이고, 그 인맥의 중심에 이헌재가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외환은행 매각을 결정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던 정부 관료들, 변양호, 김석동 등도 모두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로 불린다.

 

김앤장은 법무부 장관 출신의 최경원,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박정규, 법무부 보호국장 출신의 윤동민,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김회선 등 쟁쟁한 검찰 출신 인사들을 영입해왔다.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 역시 김앤장의 고문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국무총리를 지낸 한승수, 검찰총장을 지낸 송광수, 헌법재판소 소장을 지낸 박한철,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윤선,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윤증현 등이 김앤장 출신이거나 김앤장에서 고문 등을 맡고 있다. 회전문 현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에 김앤장 자문위원을 지낸 김형민은 외환은행에 들어가 부행장까지 지냈다.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장을 지내고 김앤장으로 옮겨간 서동원은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다시 옮겨간 일도 있었다.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 때부터 살펴보면 이헌재는 끼지 않은 곳이 없다. 여기에는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 스티븐 리와 칼라일의 이사인 제이슨 리 형제를 비롯해 정치권,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 등에 걸친 광범위한 인맥, 김앤장과 삼정KPMG라는 국내 유수의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이 연루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네트워크와 회전문 현상의 중심에 이헌재가 있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건을 론스타 게이트가 아니라 모피아 게이트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주주 자본주의와 단군 이래 최대 소송

소버린자산운용이 한국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3218일 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뒤 SK의 주가가 13,000원 언저리에서 6,000원 수준으로 반 토막이 나던 무렵이었다. 소버린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공시를 내보낸 때가 43일이었다. 크레스트시큐리티즈라는 외국계 증권사가 나타나서 SK 주식 8.64%를 매입했다고 신고한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SKSKC&C 지분이 8.49%로 최대 주주였는데 최대 주주가 바뀐 것이다. 공시 이후에도 추가로 지분을 매입해 413일까지 14.99%를 확보하자 SK는 발칵 뒤집혔다. 소버린은 428일 보도자료를 내고 공식적으로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노골적인 선전포고였다. 그러고 나서 28개월 동안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매도했다.

 

주주 자본주의는 이미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굳어지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핵심은 자본의 투기적 속성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소버린을 내보내도 다른 소버린이 온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폭주하는 자본, 단순히 국적 자본을 지킨다는 논리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 한국 재벌 대기업 집단처럼 창업자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을 때는 주주 자본주의의 원칙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

 

그 무렵 SK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었고 소버린이 아니라 누구라도 욕심을 낼 만했다. 실제로 주가는 5배 가까이 뛰어올랐고, 소버린뿐만 아니라 SK에 투자한 주주들은 국내 주주와 해외 주주를 막론하고 놀라운 시세 차익을 챙겼다. 소버린 사태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SK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방만한 경영, 경영진의 비도덕성에서 찾아야 한다. 재벌 대기업 집단의 문제와 투기자본의 문제를 모호하게 뒤섞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투기자본이냐 재벌이냐의 단순한 구분은 문제가 많다. 투기자본의 대안이 굳이 재벌일 이유도 없고 외국자본의 대안이 굳이 국내 자본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론스타가 ISD를 거론한 것은 2012127일 외환은행 매각이 마무리된 뒤 3개월이 지난 522일이었다. 한국 정부에 ISD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공식 통보한 것이다. 중재 의향서라는 것을 벨기에 대사관에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한국 정부는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론스타의 소송 가액은 외환은행 매각 지연 157,600만 달러와 국세청의 부당한 과세 처분 76,000만 달러, 손해배상 지연에 따른 추정 보상 등 234,350만 달러 등 모두 467,950만 달러에 이른다. 환율 1,100원 기준으로 51,574억 원이다.

 

그리고 2개월 뒤인 85일 론스타가 갑작스럽게 중재 의향서 전문을 공개하면서 한국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론스타는 기업 뉴스 전문 통신사인 비즈니스와이어에 올린 글에서 한국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언론 보도가 계속되고 있으나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내용이 있어 투명성을 위해 한국 정부에 보낸 중재 의향서 전문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로서는 론스타에 두 번이나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다. 한국 정부는 론스타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겼고, 대주주 자격 요건이 논란이 되자 온갖 거짓말을 쏟아내며 여론을 무마했다. 외환카드 주가조작이 유죄로 드러나자 지분 매각 명령을 내려 떠나려는 론스타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다. 그랬던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한 건 배은망덕을 넘어 황당무계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론스타의 주장은 크게 2가지다. 첫째,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고의로 방해해 국민은행이나 홍콩상하이은행 등과의 매매계약이 파기되었고, 결국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면서 24,000억 원 가까이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 정부가 양도 차익에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는 한국과 벨기에가 맺은 조세협정의 이중과세 금지 조항과 한국-벨기에 투자보장협정의 외국인 투자자 보호 의무 조항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자유 시장의 경쟁이 성장을 견인한다는 것이었다. IMF와 굴욕적인 협상을 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 구조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외국 자본 유치에 목을 맸던 시절이었다. 이제 막 IMF를 졸업했는데 다시 금융 위기를 맞기보다는 론스타가 내민 달콤한 달러를 받아들이고 약간의 불법은 묵인해도 된다는 오케이 사인을 누가 주었는지 밝혀야 한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 매각은 약간의 불법이 아니라 법의 근간을 흔들고 금융 감독 정책과 정부의 시스템을 농락한 심각한 범죄였다.

어쩌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 매각은 확신에 찬 모피아 관료들과 눈 먼 돈을 쓸어 담는 검은 머리 외국인들,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경제 논리에 물러서는 무능한 정치인들, 원칙도 철학도 없었던 IMF 모범생 국가가 빠진 함정이었다. 이제라도 외환은행 불법 매각 과정에 치명적인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론스타가 대주주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격을 박탈하지 않았고 국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질질 끌면서 5조 원 소송의 빌미를 주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그것은 론스타 게이트를 극복해야 비로소 IMF를 졸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속으로

주목할 부분은 정부가 2000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사모펀드의 은행 인수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그해 5월 조흥은행이 미국계 투자펀드 서버러스(Cerberus)에서 5억 달러를 유치하기로 전략적 제휴를 맺었을 때도 금융감독위원회는 은행법의 대주주 적격성 조항을 들어 반대했다. 5억 달러면 14%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금융감독위원회는 은행법에 따라 4% 미만인 14,000만 달러까지만 가능하다고 통보했고 결국 서버러스는 조흥은행 지분 인수를 포기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도 같은 이유로 완강히 반대해왔다. 그런데 그해 6월 조지 H. 부시가 다녀간 뒤로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칼라일의 꼼수, 누가 누구를 속였는가?--- pp. 50-51

 

검찰은 변양호가 의도적으로 외환은행 관련 보고를 누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집중했다. 실제로 권오규는 대통령 당선자가 챙기던 업무일지에 조흥은행과 관련된 수많은 메모가 있었는데 외환은행 관련 메모는 거의 없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피고인 변양호는 정권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결재를 편취하고, 상사를 기망하였으며 국가 의사결정 시스템을 마비시켰다는 결론을 내렸다. 론스타가 살로먼스미스바니 한국 대표인 김은상 등을 통해 10억 달러에 51%의 지분을 매입하겠다고 가이드라인을 밝히고 협상을 진행 중이었는데도 변양호는 경제부총리에게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2002년과 2003년은 가뜩이나 김대중 정부가 물러나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던 과도기였다. 변양호는 부총리 보고 필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후임 부총리를 기망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결론을 미리 써놓고 시나리오를 짰다--- p. 80

 

다음 날인 425일 코메르츠방크의 재무부 부장 토마스 나우만(Thomas Naumann)이 방문한 자리에서 전용준은 론스타의 51% 지분 확보는 전제 조건이고, 뉴브리지캐피탈은 경쟁 구도에 필요하지만 론스타 이외의 다른 대안은 국내에서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토마스 나우만은 이 자리에서 물론 외환은행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지난 수년간 투자 수익을 제대로 낼 것을 기대해왔지만 결과는 바보 같은 투자를 했던 것으로 돼버렸고 이제는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고 더구나 한국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동석한 신재하가 딜이 무산되면 상반기 중에 정부가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자 전용준이 정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것 같다면서 거든 정황도 확인되었다. BIS가 저래도 되는가?--- p. 134

 

74일에는 모건스탠리와 살로먼스미스바니가 첫 미팅을 하고 본격적으로 자격 요건 문제를 논의한다. 변양호도 74일 론스타의 자격 조건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한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은행 지분을 소유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96월 골드만삭스가 국민은행 지분 16.6%를 취득했고, 199912월 뉴브리지캐피탈이 제일은행 지분 100%를 취득했다. 20009월에는 칼라일과 JP모건이 공동으로 한미은행 지분 36.6%를 취득했다. 골드만삭스는 의결권이 없는 지분이었고, 제일은행은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된 상태였다. 한미은행은 형식적이나마 JP모건이 과반 지분을 보유, 금융기관이라는 조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론스타는 골드만삭스나 뉴브리지캐피탈이나 칼라일 등과 달랐다. 죽은 사람이 팩스를 보냈다?--- pp. 217-218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은 외환카드 합병 이후 3년이 지난 20071월에서야 검찰이 유회원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유회원은 네 차례나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으나 이듬해인 20081월 법원이 징역 5년을 선고해 법정 구속되었다. 그러나 그해 6월 고등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풀려났다.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던 건 외환은행이 금융감독원에 외환카드의 회생 방안 등을 제출하는 등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던 중이었고 감자 역시 대안 가운데 하나였다는 론스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감자 계획이 주가 하락을 부추기긴 했지만, 이미 주가가 하락 추세였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었다. 대법원은 3년을 끌다가 20113월 유죄 취지로 다시 고등법원으로 내려보낸다. 그리고 106일 파기 환송심 재판부는 유회원에게 징역 3년과 벌금 429,500만 원을 선고하고 최종 유죄를 확정했다. 론스타코리아에도 벌금 250억 원이 선고되었다. 누가 론스타의 눈치를 보는가?--- pp. 262-263

 

금융위원회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론스타는 마땅히 제출해야 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고 금융위원회 역시 제출하라고 요구해야 할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금융위원회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론스타가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면 얼마든지 제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설령 자료를 받지 못하더라도 이미 공개된 자료만 살펴봐도 론스타가 비금융 주력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론스타의 공범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최종구(현재 금융위원회 위원장)는 과연 몰랐을까? 론스타 구원투수, 김석동의 거짓말--- p. 297

 

하종선은 외환은행 매각과 무관하게 순수하게 변양호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의 기업 가치를 보고 투자했을까? 하종선은 3,000만 원을 투자했다고 진술했지만 변양호는 이 가운데 1,000만 원은 자기 돈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리지만 하종선이 변양호의 동생 회사에 2,000만 원 이상을 투자했다는 건 분명하다. 하종선은 이 회사가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 만나서 설명하고 싶은 것을 변양호가 들어주고 한 것에 대하여 고맙다는 마음의 복합적인 상태, 변양호의 부탁 등 3가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종선은 이 돈을 회수하지 못했고 투자 이윤이나 배당금을 받은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법원은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리고 변양호가 정확히 1,000만 원을 투자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허위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들만의 이너서클--- pp. 357-358

 

로스차일드는 그렇게 사들인 한라시멘트를 프랑스의 라파즈에, 한라펄프를 미국 보워터에, 한라공조의 캐나다 법인을 미국 포드에 각각 나눠 팔았다. 만도기계는 만도와 위니아만도(만도공조)로 분리되어 각각 선세이지와 UBS캐피탈 컨소시엄에 팔려나갔다. 로스차일드는 만도기계의 경영권을 인수할 때도 6,000억 원을 투자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1,890억 원밖에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3,160억 원은 은행 차입금으로 조달했다. 국내 기업들이 투자할 여력도 대출 받을 자격도 안 되었다는 사실을 이용해 알짜배기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인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그 과정에서 브리지론 수수료로 260억 원을 챙기기도 했다. 외자 유치는커녕 엄청난 국부 유출을 초래한 셈이다. 로스차일드에 놀아난 한국 정부와 만도기계--- pp. 407-408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 가운데 일부를 블록세일 방식으로 매각하는 과정에서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된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는 론스타펀드4호의 간주 고정 사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간주 고정 사업장은 기업이 다른 국가 내 지점 등과 같이 물리적인 사업 장소를 가지고 사업을 영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 계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독립적이지 않은 대리인을 통해 사업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그 외국 기업은 그 대리인 소재 국가에 고정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데 이때의 사업장을 의미한다. 한국의 세법이나 조세조약에서 간주 고정 사업장과 일반적인 고정 사업장을 구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과세 방법 역시 동일하다. 국가 위에 군림하는 단 한 번의 소송--- pp. 481-482

 

이용훈은 대법관에서 물러나 변호사 개업을 하고 전관예우로 5년 동안 60억 원을 챙기면서 삼성과 론스타를 변호했던 사람이다. 다시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도 유독 삼성과 론스타에는 몸을 사렸다. 심지어 삼성을 위해 임의로 재판부를 바꾸고 특정 판사를 배제하는 꼼수를 두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용훈의 논리 그대로 1심과 2심 판결이 나왔고 이용훈이 제척 사유로 빠진 대법원 재판에서도 삼성은 면죄부를 받았다. 독수리 5남매가 돌연변이였을 뿐, 단독판사들은 부장판사의 눈치를 보았고 부장판사는 수석 부장판사의 눈치를 보았다. 대법원을 보고 알아서 기거나 조직적으로 기었다. 이용훈이 몰랐다고 발뺌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징계하지 않았거나 적극적으로 주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토론을 만들었지만 그 토론은 재벌과 금융자본 앞에 취약했다. 그들이 언제나 풀려나는 이유--- pp. 51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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