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저자 한승태|시대의창 |2018.04
저자 한승태 창원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꽃게잡이 배, 주유소, 양돈장 등에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선배 작가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서울의 주인들이 그럴듯한 일자리를 맡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들의 기록자로 임명했다. 요즘은 저자 소개란이 두툼해질 수 있게 좀 열심히 살 걸 하는 후회를 곱씹으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전국을 떠돌며 농업, 어업, 축산업, 제조업, 서비스업계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틈틈이 기록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저질 유머로 가득한 치기 어린 책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인간의 조건》이 있다.
목차
시작하기 전에
- 통계와 클로즈업
닭고기의 경우
- 산란계 농장(충청남도 금산)
- 부화장(대한민국 어딘가)
- 육계 농장(전라북도 정읍)
돼지고기의 경우
- 종돈장(경기도 이천)
- 자돈 농장(충청남도 강경)
- 비육 농장(강원도 횡성)
개고기의 경우
- 첫 번째 개 농장(경기도 포천)
- 두 번째 개 농장(충청남도 금산)
마무리하며
- 붉은 돌담 앞에서
고기[명사]
1.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
2. 사람의 살을 속되게 이르는 말.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맛있는 고기들: 시간과 공간의 감옥에 갇힌, 생명 아닌 상품
고기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맛있는’ 고기와 ‘힘쓰는’ 고기. “고기로 태어나서” 스스로의 생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서글픈 운명에 처한 ‘두 고기 이야기’를 이 책은 두루 다루고 있다.
‘맛있는’ 고기들의 생명은 현대 사회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과 속도와 식감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농장에서 가장 자주 쓰는 말은 ‘도태’다. 고기라는 상품으로 태어난 닭, 돼지, 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즉시, 즉 사룟값 대비 판매가격이 낮다고 판단되면 ‘도태’된다. 죽인다, 잡는다가 아닌 ‘도태’다. 하자가 생긴 물건을 처리하는 것일 뿐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식용 동물일지라도 생애 주기만큼은 보장받는다던지, 조금 더 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육된다던지 하는 것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저자가 경험한 거의 모든 농장의 상황이 비슷했다.
닭은 비좁은 케이지에 한 가득 갇힌 채 고기가 될 부위들만 기형적으로 성장을 당한다. 수평아리들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코 푼 휴지를 버리듯 폐기된다. 돼지 농장에서는 육질을 위한 거세가 제대로 된 마취도 없이 진행되는가 하면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전기 충격기가 종종 쓰였다. 모돈의 경우 1년에 단지 40분을 걷고, 그 외의 시간은 먹고 잠을 자면서 스톨이라는 기구 안에서 “동사(動詞)가 필요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적게 먹고 빨리 찌는 규칙이 농장 전체를 지배하고, 이 규칙을 따르지 못하는 돼지는 도태된다. 아프다고 치료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낫거나, 도태되거나, 판매될 때 그 부위를 잘라내면 될 뿐이다. ‘관리’와 ‘위생’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의 환경에서 개 사육과 도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동물 농장의 동물들은 모두들 서로를 쪼아대고 물어뜯는다. 신체 여러 부위에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자연 상태의 닭, 돼지, 개가 절대 그렇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강제하는 시간과 공간의 감옥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과연 이런 식으로 자연과 관계를 맺는 게 온당한 일일까, 생명을 이런 식으로 낭비해도 되는 것일까 저자는 고민한다.
하지만 이는 조금 더 복잡한 맥락을 지닌다. 돈이라면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농장주가 바로 그 때문에 ‘돼지 킥 노노’를 외치는 것과 그 어떤 농장주(또는 기업 사장들)보다도 노동자 인권을 이해하던 이가 ‘사람들 너무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전기 충격기를 허용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개 농장에 대해 비판하기는 쉽지만, 개 농장이 한국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마지막 재기를 위해 손대는 사업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현실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상품성이 있는 일부 동물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기도 한다. 그럼 그렇지 않은 고기들에 대해 상품성을 배제한 채 윤리적으로만 접근하자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인가. 맛있는 고기의 문제는 보면 볼수록 단순하지 않다.
힘쓰는 고기들: 저 아래 낮은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승태 이빨 잘생겼네.” 부화장 아저씨들이 저자를 보고 이야기한다. 누구 하나 살면서 치아 한번 제대로 관리 받을 여유가 없었기에 밥을 먹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렸다는 걸 저자는 그제서야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과 비슷한 다른 이들처럼 살았다면 아마도 그곳에서 일을 하지는 않았을 저자는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다양한 일들을 경험한다. 부화장에서 함께 한 가족처럼 모여 술을 마시고, ‘앙골와트’를 남긴 민족의 예술혼에 감탄하며, 한국 남성 노동자와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의 결혼을 축하하고, 이집트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왜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질문 받고, 조선족 아저씨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집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요리들을 맛보고, 한 달에 하루 또는 이틀 쉬며 일하던 중 돌발적으로 주어진 ‘저녁이 있는 삶’에 감동하고, 개 농장 주변 농민들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는 말에 자신이 이론서 한 귀퉁이를 붙잡고 성실한 사람들을 평가하며 교만하게 구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
근로기준법도 합법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노동 환경(최근의 개정 논의에서도 이 업종은 완전히 배제됐다)에서 노동을 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 이곳의 ‘저 아래 낮은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인간의 조건》부터 이어져온 작가의 치열하지만 가난한,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사람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인 것이다.
종의 돌담 앞에서 살펴본 인간과 동물의 경계
이 책은 채식을 주장하지 않는다. 야만적인 고기는 없다. 인간과 인간 아닌 동물이 똑같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용 고기 산업의 단면을 살펴보면서, 저자는 동물보다도 “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과연 ‘두 고기’를 저런 식으로 대하는 것을 인간다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은 것 하나부터 더 윤리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식용 고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의심하고 변화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자연과 생명에 야기하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한 고민과 시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를 통해 ‘윤리적인 고기’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육한 고기’의 값이 비싸진다면, 맛이 없어진다면 이는 적절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장,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기 때문에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십 톤의 음식 쓰레기가 불균형하게 쏟아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이 없다면, 우리는 종(種, species)을 가르는 돌담 앞에서 미심쩍은 눈으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계속 바라보며 ‘이것이 인간인가’ 질문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극단적인 불의를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속으로
이 책은 멸종 위기로부터 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찾아 떠난 여행을 기록한 글이다. 내가 처음 양계장에 발을 디딘 것이 4년 전이다. 당시에는 동물의 삶을(당연히 인간도 동물이지만 여기선 편의상 인간이 아닌 동물만을 동물이라고 부르겠다) 확인하겠다거나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서울을 떠날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다. 소개소장이 100원짜리 밀크 커피 한 잔을 뽑아주며 강원도의 옥수수 농장과 금산의 양계장을 추천해줬다. 내가 후자를 선택한 이유는 옥수수보다는 닭을 키우는 쪽이 조금이나마 덜 지루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맞았다. 양계장은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예상이 맞은 건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돈을 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내가 원한 것은 악몽에나 나올 법한 그 닭들에게서 멀어지는 것뿐이었다. 내가 축사 안에서 본 것들 가운데 모르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축사 속에 내가 예상한 대로의 모습을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이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보고 싶어졌다. 이들 주위에는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도 밭을 만들려고 숲에 불을 지르는 주민도 없었지만 디스커버리 채널의 주연 배우를 괴롭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하지만 비슷하게 강력한 위기가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p.5
동정심도 그저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닭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이것들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밟은 다음 저 산 너머로 차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 닭들에 대해서 책으로 읽었다면,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다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내 눈앞에 있었고 너무나도 역겨워 보였기 때문에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 케이지란 도구는 갇힌 쪽이나 가둔 쪽 모두에게서 최악의 자질을 이끌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p.19
계급이란 것은 옷차림이나 대학 졸업장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이빨로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있는 데 복 부장이 대뜸 내게 물었다. “야, 너 그거 니 이빨이야?” 적당하게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지금 그게 내 피부냐고 물은 것처럼. 그는 내 이빨을 임플란트나 틀니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내 이빨로 향했다. “히야, 승태 이빨 잘생겼네. 가지런하니. 얼굴보다 이빨이 낫다.” 이빨이 잘생긴 남자가 이상형인 여성이 몇이나 될까 추측하는 동안 아저씨들은 자신들의 치아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씹을 때 크든 작든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어금니에 문제가 있어서 아주 약하게 씹거나 앞니로 씹었다. 나와 비교적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마흔의 장 대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치과에서 일하는 친척을 둔 덕분에 어릴 때부터 싼 가격으로 꾸준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매번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치는 이유가 단순히 먹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저씨들은 이빨에 생긴 문제는 참을 수 있을 만한 불치병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좀처럼 병원에 가려고 하질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 밥을 먹을 때면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아저씨들이 음식을 씹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며, 들릴 듯 말 듯 신음 소리를 내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처럼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우적우적 씹어대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머쓱해졌다. --- p.58
무감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동에서부터 차례대로 작업했는데 얼마나 많은 닭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수백 마리는 될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손에 ‘투두둑’ 하고 닭의 명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전해져도 정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릴 때만큼의 감정도 소모하지 않고 닭의 목을 비틀었다. 내 발 주위는 무도병에 걸린 것처럼 사지를 흔들어대는 닭으로 가득했다. 잠깐, 정말 찰나의 100분의 1 정도의 순간 동안 예전의 일기에 적어놓은 그런 감정들, 미안함, 불편함, 찝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금세 짜증과 피로에 묻혔다. 이런 식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p.154
겉으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걱정이 됐다. 물론 상처는 크지 않았다. 주사 바늘이 이미 수십 마리의 돼지들 몸속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초조했다. 결국 한 시간이 지나서야 처치를 했다. 사장은 돈사에 소독약이 없어서 사무실까지 내려가야 하는 걸 무척이나 귀찮아했다. “안 죽어, 안 죽어. 피 살짝 나는 것 가지고…… 이제 보니까 아주 귀여운 구석이 있어.” 주사 바늘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건 뉴욕이나 암스테르담으로 이민을 간 후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의료 폐기물 더미 속에서 주운 주사기로 이 국제관계학과 졸업생의 팔을 살짝 찔러보고 싶어졌다. 아, 그렇게만 할 수 있었다면 이 야심만만한 사업가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p.171
다시 한 번 눈물이 핑 돌았다. 돈도 돈이었고 분하고 억울한 것도 그렇지만 가장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은 그의 말투가 한두 시간 전에 멱살을 붙들고 호로새끼를 외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중했다는 거다. 조금이나마 화를 가라앉히고 진정해서일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대에서 소송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농장장은 그가 “문제 생기면 변호사 시동부터 걸고 보는 인간”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일도 소송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차하면 법정에서 증거물로 쓰일 수 있는 휴대폰 문자에 조금 전 일어났던 폭행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철저하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나 쌍남 같은 사람은 절대 이런 사람을 이길 수 없겠구나. 이 개새끼! 이 씨발 놈! 가만 놔두면 안 되겠어. 신고해야겠어. 나는 결심했다. --- p.233
사장처럼 온화한 사람이 전기 충격기로 돼지를 찌르는 모습이 잘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씨 아저씨나 강 부장이 조금이라도 폭력적이거나 거친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전기 충격기는 돼지라는 상품을 다루는 방식의 하나일 뿐이었다. 여기에 이곳 돼지 삶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강경의 사장은 (이런 식으로 야비하게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는데)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사람보다 상품이 더 중요했다. 그는 우리가 절대 돼지를 때리지 못하게 했다. 상품에 흠집이 생기면 안 되니까. 그가 감시하는 동안뿐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농장의 원칙은 그랬다. 하지만 횡성의 사장은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가 물건처럼 다루는 것은 돼지뿐이었다. 그는 진심에서 우리가 너무 힘들게 일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돼지를 때리는 것도 전기 충격기를 쓰는 것도 막지 않았다. 전자는 법적 책임을 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두들겨 팰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돼지에게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게 했다. 후자는 뺨을 얻어맞으면 자기가 뭘 잘못했나부터 고민할 사람이었지만 돼지에게 전기 충격 주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이성의 노예들이 보는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성적으로 문란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횡성의 양돈장에서 보았던 일들도 같은 논리로 이해한다. 그건 그들이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동물은 물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어느 과학자의 말을 바꿔서 표현해보자면 생명관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은 동물을 아끼고 악한 사람은 동물을 학대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 그것은 대부분 동물은 물건이라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p.263
그런 일들이 괜찮은지 물어보자 상대는 내가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즉시 이해했다. “개 키우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그 대답은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흘러나왔기 때문에 더욱더 확신에 차 있는 듯이 들렸다. 내 자신이 쓸데없는 참견쟁이처럼 느껴졌다. 이곳의 물을 마시고 이곳의 쌀을 먹는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내가 뭐라고 그게 더럽고 끔찍하다고 난리란 말인가? 나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을 이론서 한 귀퉁이에서나 찾을 수 있을 법한 기준을 가지고 폄하하고 있는 걸까? ‘다 그런 거지’라는 말속엔 내 비난보다 훨씬 더 거대한 존재에게 호소하는 울림이 있었다. 나는 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 p.355
갑이 을의 처지를 상상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면 인간이 동물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동물은 특히나 식용 가축은 인간 앞에선 영원불변의 을일 테니 말이다. 이곳은 케이지 하나에 여러 마리의 개를 넣고 기르다 보니 서로 싸우고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치료 같은 건 없었다. 어떤 개는 뒷다리에 30cm 정도 길이로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벌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방치됐다. 또 이곳엔 눈에 이상이 생긴 개가 많았다. 가장 심했던 개는 한쪽 눈알이 부어서 눈 대신 8번 당구공을 끼워 넣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어쩌다 저렇게 된 거냐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고 물으면 그는 한결같이 시큰둥했다. “별 거 아냐. 조금 따끔하다 말아.” 유달리 상상력이 부족한 남자가 대답했다.
--- p.414
칠면조를 기르는 미국의 어느 동물 복지 농장은 일반적인 사육 기간보다 수개월을 더 기르는데 이 고기 역시 질기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고기를 구매하는 식당과 개인 소비자들을 위한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했다. 맛은 어찌 보면 생산비나 시설 문제보다 더 큰 어려움일 수도 있다. 동물 복지가 미각과 연결된다면 요식업계의 변화까지 동반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동물에게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그렇다 해도,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동물들이 갇혀 있는 시간의 감옥에 대해 고민해볼 가치는 있을 듯싶다. _433쪽
개·닭·돼지에 바치는 추도문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는 데 별도의 목적이 필요하진 않다. 채식을 하려고, 동물권을 신장하려고 ‘이걸 읽어보라’ 권하고 소개하는, 그런 수단으로 쓰이기엔 아쉽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완전한 목표다. 양계장에서 돼지 농장으로, 그리고 개 농장으로 이어지는 한승태의 여정을 독자가 끝까지 따라가며 완독하는 것. 그것만이 이 책이 받아야 할 정당한 대우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읽기 노동’을 마친 독자들이 저마다 갖는 여운 역시 온전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읽기 노동’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맞서고 저항하고 애쓰며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닭, 돼지, 개 세 동물종이 ‘고기로 태어난’ 죗값으로 사육되는 과정을 담아냈다. 한승태는 산란계 농장부터 종돈 농장, 비육 농장, 개 농장 등등을 오가며 그곳의 일을, 일하는 사람들을, 일하는 환경을 기록했다. 나의 경우는 이랬다. 돼지 농장을 읽으면서부터 확실하게 두려움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돈(새끼 돼지)들을 한 놈씩 들고 니퍼로 생니를 자르고 고환을 잡아 뜯는 장면에서다. 개 농장에서 첫 번째 개가 ‘개고기’가 되는 대목에서는 눈에서 물이 흘렀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이미 예고된 비극 앞에서 페이지 넘기는 게 머뭇거려졌다. 하지만 이 모든 사태가 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코 읽기를 피할 순 없었다. 중간중간 책 뒷면에 적힌 “당신과 고기 사이에, 한 번쯤은 놓여야 할 이야기”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컨테이너로 된 숙소에서 많은 밤을 서성인 작가에게 감사했다.
이 책에는 무언가가 묻어 있다. 병아리들의 털뭉치, 돼지들의 똥따까리, 개들의 울음. 치명적이진 않지만 자꾸 기침을 일으키고 못 견딜 정도는 아닌데 여기저기가 간지럽다. 어떤 생명들은 살고 죽는 일이 딱 그 정도로 취급된다. 하지만 먼지 같고, 얼룩 같고, 메아리 같은 이 가볍고 별것 아닌 것들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안에 쌓여 어떤 무엇이 되었다. 심연에 있던 묵직한 돌이 조금 자리를 바꾼 느낌. 힘없는 죽음이 기록을 통해 두 번째 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독자를 ‘웃프게’ 하는 작가의 글맛도 꿀맛이다.
이 책은 다른 의미의 산 무덤이다. 고발문이자 추도글이다. “동물을 죽이려면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하는 그들의 품속에서 목숨이라는 것을 폭력을 써서 빼앗아야 한다.” 이 문장은 상식에 최선을 다해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나는 이 책이 아주 많이 팔리길 바란다. 그래서 고기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끝내 고기로 죽어간 단명의 무덤 앞에 더 많은 독자들이 변화의 꽃을 한 송이씩 올리길 바라본다.
시사인1.7 제589호 /김다은 (CBS 라디오 PD·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 제작
육식의 딜레마 저자 케이티 키퍼|역자 강경이|루아크 |2017.09
우리가 먹는 소, 닭, 돼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원제 What's the Matter with Meat?
저자 케이티 키퍼Katy Keiffer는 외식산업 전문가로 수십 년간 일했으며 앤서니 보데인Anthony Bourdain, 로빈 밀러Robin Miller, 레이첼 레이Rachael Ray 같은 뛰어난 요리사들의 홍보를 담당했다. 지금은 브루클린의 피자집 로베르타에 자리한 음식 전문 라디오방송 헤리티지라디오네트워크(http://heritageradionetwork.org)에서 장수 팟캐스트 [당신을 죽이지 않는 것: 식품산업 들여다보기What Doesn’t Kill You: Food Industry Insights]를 진행하며 식품체계나 정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역자 : 강경이
역자 강경이는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번역 공동체 모임인 펍헙번역그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프로이트의 말실수》 《천천히, 스미는》 《에코빌리지?지구 공동체를 꿈꾸다》 《그들이 사는 마을》 《그리스의 끝, 마니》 《오래된 빛》 《과식의 심리학》 《잠 못 드는 고통에 관하여》 들이 있다.
들어가는 글
1장 공장식 축산의 진화
2장 유전자 장사
3장 가축과 질병
4장 환경비용
5장 동물복지
6장 임금, 노동자, 안전
7장 육류산업의 흡수와 통합
8장 식품 사기
9장 토지 수탈과 무역협정
10장 아시아와 육류산업
맺는 글 | 감사의 글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우리 식탁에서 ‘고기’를 흔히 볼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할아버지 세대, 그러니까 50여 년 전만 해도 고기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결혼식이나 마을 잔치, 명절 같은 큰 일이 있을 때나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경제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그 ‘별미’를 풍성하게 누리는 게 가능했다. 다시 말해 지금처럼 저녁 식탁에 육류가 자주 올라오게 된 것은 인류 역사상 최근에 일어난 무척 새로운 현상인 것이다. 그동안 육류산업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매 끼니마다 우리는 ‘고기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된 걸까?
지난 수백 년간 인류는 직접 사냥하거나 우리에 가둬 키우는 방식으로 소나 돼지, 닭을 비롯한 여러 동물로부터 단백질을 얻었다. 다시 말해 소규모 축산으로 고기를 자급해왔던 것이다. 그러던 흐름은 20세기 초에 달라졌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사료와 종자, 비료 공급상으로 일하던 제시 주얼(Jesse Jewell)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닭 수백 마리를 실내에 모아 키우는 방식을 고안하면서부터다. 이른바 ‘공장식 축산’의 서막을 연 것이다. 그 이후 수십 년간 덩치를 키운 육류 생산기업은 대규모 농장 외에 도축?가공 공장까지 운영하면서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육류를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이라는 방식은 여러 면에서 사회에 공헌해왔다. 많은 이들에게 미식의 즐거움과 영양 혜택을 주었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을 뿐 아니라, 지역 경제마저 활성화시켰으니 말이다. 겉으로만 보면 공장식 축산은 긍정적인 면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육류산업의 상업적 성공 뒤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비용’이 숨겨져 있다. 이 책 《육식의 딜레마》는 육류산업이 이면, 곧 막대한 이익을 위해 육류산업이 감추고 싶어 하는 ‘비용’에 관해 말한다. 지은이 케이티 키퍼는 육류산업이 왜 그 ‘비용’을 숨기려 하는지 그리고 그 ‘비용’을 사회로 떠넘기기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과 같은 육류 생산방식은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
종의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외면한 채 상품성 있는 특정 형질만 선별해 육종하는 유전자 문제,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의 잦은 유행처럼 점점 심각해져가는 가축 전염병 문제, 가축이 쏟아내는 엄청난 분뇨와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처방되는 항생제, 호르몬제, 살충제의 남용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비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고통받는 동물복지 문제, 공장식 축산의 생산성 강화가 부른 노동자 인권과 안전 문제, 거대 육류기업의 통합과 합병으로 설 자리를 잃고 몰락해가는 소규모 농장 문제, 혼란스러운 식품 표기로 소비자를 농락하는 식품 사기 문제…. 이 책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문제는 우리가 언론을 통해 이미 접했던, 어쩌면 앞으로도 반복해 듣게 될 육류산업의 어두운 면이다. 그동안 육류산업은 막대한 이윤은 자신들이 챙기고 비용은 교묘하게 소비자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덩치를 불려왔다. 그러나 지은이 케이티 키퍼는 지금과 같은 육류 생산방식은 장기적으로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물론 지은이는 육류산업처럼 크고 복잡한 산업이 해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소규모 농업으로 돌아가 2050년에 지구를 공유하게 될 90억 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지은이 케이티 키퍼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비자들이 공장식 축산시스템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인식을 기반으로 육류산업을 점진적으로 혁신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어째서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지 주장하려고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그보다는 육류산업이 왜 전통농업과 점점 단절되고 있는지, 자신들이 돕겠다던 인류를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떤 식으로 위협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육류산업의 현재 관행을 더이상 지지할 수 없다는 신호를 육류 생산 기업들에 뚜렷이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지은이는 소비자들이 육류산업의 나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노동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환경규제를 강화하며 독점을 강력히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치적 행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편으로는 육류 생산 기업과 정부가 생태농업적 축산모델을 개발하는 연구에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류를 지금 이곳까지 이끈 효율성과 기술적 진보를 활용해 자연자원을 더 현명하게 사용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이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육류를 더 안전하게, 더 안정적으로 공급할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책속으로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밀집사육시설은 1930년대 양계업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은 밀집사육시설 하면 주로 비좁은 비육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소 떼를 떠올린다. 하지만 밀집사육시설의 길을 닦은 이들은 닭고기 생산자들이었다. 예전 사람들은 닭을 계절 음식으로 여겼다. 시골 농부들은 달걀을 얻기 위해 가금류를 몇 마리 정도만 키우곤 했다. 요즘처럼 저녁 식탁에 닭이 흔하게 올라오게 된 것은 퍽 새로운 현상이다. 75년 전만 해도 닭은 일요일 저녁 별미였으니 말이다. 미국에서는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이 프라이드치킨 파티 날이었다. 그러나 비타민이 발견되고 먹을 수 있는 형태로 합성할 수 있게 되면서 흐름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닭에게 비타민 D를 먹이면 일 년 내내 실내에 가둬놓아도 계속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곧 튀김용 닭과 구이용 닭을 언제든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사료와 종자, 비료 공급상으로 출발한 제시 주얼(Jesse Jewell)처럼 머리 좋은 몇몇 사람은 많은 이윤을 거두기 위해 닭 수백 마리를 실내에서 모아 키우는 방식을 생각해냈다.
---「1장 공장식 축산의 진화」중에서
미국의 식품안전을 통째로 뒤흔든 사건은 1993년에 일어났다. 서부 해안 지역의 잭인더박스라는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햄버거를 먹은 이들 가운데 694명이 O157:H7 대장균으로 인한 식중독 진단을 받았고 그중 어린이 네 명이 숨진 것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기 때문에 이 소식은 엄청난 뉴스거리가 되었고 많은 미국인을 격분케 했다. 잭인더박스는 피해자 개인들만이 아니라 주주들로부터도 집단소송을 당했다. 법정 기록에 따르면 박테리아를 죽이려면 햄버거 패티를 섭씨 68.3도 이상으로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회사가 알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안타깝게도 회사는 규정대로 할 경우 햄버거 패티가 너무 질겨진다고 판단해 일부러 덜 익힌 걸 내놓았다. 결국 회사는 합의금으로 피해자와 가족에게 5000만 달러를 지불했다.---「3장 가축과 질병」중에서
바람에 실려 이동하는 것은 지독한 악취만이 아니다. 육우 비육장이나 양돈장, 양계장의 거대한 환기시설로 엄청난 양의 먼지도 함께 나온다. 가축의 마른 분뇨나 사료 찌꺼기, 비듬이나 깃털 조각, 흙먼지가 뒤섞인 유해물질이다.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사육시설에서 나오는 먼지는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를 퍼뜨리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미세먼지(particulate matter)라 불리는 것에는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실려오기 십상이다. 이런 미세먼지가 지역을 덮칠 때는 더 굵은 입자를 떨어뜨리는데, 이런 입자에는 분뇨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분뇨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리스테리아균을 비롯해 르시니아(Yersinia), 크립토스포리디움(Cryptosporidium), 지아르디아(Giardia)처럼 흔치 않은 ‘식중독’ 균까지 들어 있을 수 있다. 몇몇 과학자에 따르면 박테리아가 바람에 실려 오면서 유전물질도 전달하므로 훨씬 많은 종류의 다제내성 병원균이 생성된다고 한다.---「4장 환경비용」중에서
달걀에서 시판용 닭까지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성장하는 육계 품종에는 당연히 심각한 동물복지 문제가 뒤따른다. 우리가 즐겨 먹는 두툼한 닭가슴살은 골격이 채 자라지 않은 어린 닭이 지탱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다. 비대한 닭가슴살을 얻기 위해 유전자가 선별된 닭들은 공간이 넉넉한 실외에서 키운다 해도 시판 체중에 이를 무렵이면 거의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사실 ‘보행점수’는 동물복지 문제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보행점수를 개선하려면 수용 밀도를 조정해야 할 수도 있고, 달걀이 어떻게 부화하는지, 심지어 달걀이 수정될 때 어떤 유전자가 들어가는지를 개선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육계의 전반적 복지에 영향을 미친다. 가금류도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이 몰아넣으면 다른 종처럼 건강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공격성을 보이면서 서로를 물고 쪼아대며 털을 잡아 뜯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 감염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심하면 죽는다.---「5장 동물복지」중에서
달걀에서 시판용 닭까지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성장하는 육계 품종에는 당연히 심각한 동물복지 문제가 뒤따른다. 우리가 즐겨 먹는 두툼한 닭가슴살은 골격이 채 자라지 않은 어린 닭이 지탱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다. 비대한 닭가슴살을 얻기 위해 유전자가 선별된 닭들은 공간이 넉넉한 실외에서 키운다 해도 시판 체중에 이를 무렵이면 거의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사실 ‘보행점수’는 동물복지 문제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보행점수를 개선하려면 수용 밀도를 조정해야 할 수도 있고, 달걀이 어떻게 부화하는지, 심지어 달걀이 수정될 때 어떤 유전자가 들어가는지를 개선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육계의 전반적 복지에 영향을 미친다. 가금류도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이 몰아넣으면 다른 종처럼 건강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공격성을 보이면서 서로를 물고 쪼아대며 털을 잡아 뜯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 감염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심하면 죽는다.---「5장 동물복지」중에서
농부나 목축업자가 독립적으로 소를 키운다면, 그러니까 하나 이상의 도축장과 오랜 거래 없이 소를 키운다면 도축할 곳을 찾기 힘들 것이다. 일단 도축을 했다 해도 자신이 생산한 소고기를 내다 팔 시장을 직접 찾아나서야 한다. 도축과 가공을 담당하는 정육회사가 소를 사들여 도축한 뒤 자신들과 거래하는 슈퍼마켓이나 식당, 2차 가공공장 같은 통합된 공급체인으로 유통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어서다. 여러 농산물 직거래 장터나 지역 도매상과 거래하는 소규모 농장이나 목장이라면 생산한 고기를 팔 수 있겠지만, 규모가 좀더 큰 목장의 목장주가 주류 육류산업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결정하면 고기를 운송하고 저장하고 파는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가격이나 가축에 등급을 매기는 방식에 불평하는 생산자들은 화를 면치 못한다! 다음에 가축을 도살해야 할 때 도축장에 예약을 잡을 수 없거나 훨씬 낮은 가격을 받아
들여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소들이 비육장에서 보내는 날이 늘어날수록 생산자는 사료값을 더 지출해야 하는데, 사료값을 지출하는 만큼 이윤은 줄어든다.
---「7장 육류산업의 흡수와 통합」중에서
2013년 영국에서 발견된 ‘식품 사기’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아일랜드 식품안전청이 실시한 무작위 검사에서 소고기 다짐육으로만 만든 것으로 표시되어 있는 몇몇 패티에서 말고기와 소량의 돼지고기가 발견되었다. 곧 조사가 시작되었고 슈퍼마켓 테스코(Tesco)에 상품을 공급하는 주요 공급업체에 재료를 납품하는 또다른 공급업체가
폴란드에서 값싼 고기를 구입한 뒤 패티에 첨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패티들은 슈퍼마켓 테스코의 할인 코너에서 판매될 예정이었다. 더 많은 조사가 뒤따랐는데, 적든 많든 말고기가 포함된 상품은 더 많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100퍼센트 말고기로만 만들어진 제품도 판매되고 있었다. 그것도 인기 있는 인스턴트 라자냐와 볼로네제소스였다.---「8장 식품 사기」중에서
국제 빈민구호단체 옥스팜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국가에 농경지를 매각한 지역에서는 기아와 빈곤이 더 증가했다. 예를 들어 중국이 10만 헥타르의 땅을 빌리거나 사들여서 중국인에게 공급할 돼지와 닭 사료를 키운다면,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먹을 주식을 어디에 심어야 하는 걸까? 사하라사막 남부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생각해보자. 이곳에서는 땅이 현지 주민의 먹거리를 재배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쓰인다. 그뿐 아니라 귀한 물마저 사료작물이 다 빨아들인다. 마시고 씻는 일에 물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먹을 작물에 댈 물조차 부족해졌다. 또한 옥스팜 보고서는 토지를 약탈하는 관행이 “이런 나라들에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한 토지 소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며 사회 불평등과 갈등을 심화한다”고 지적한다. ---「9장 토지 수탈과 무역협정」중에서
육식의 불편한 진실 Diet for a New America저자 존 라빈스|역자 이무열, 손혜숙|아름드리미디어 |2014.12
저자 존 로빈스(JOHN ROBBINS)는 베스트셀러들인 이 책 ≪육식의 불편한 진실 DIET FOR A NEW AMERICA≫을 비롯하여 ≪음식혁명의 주창자들 VOICES OF THE FOOD REVOLUTION≫과 ≪행복한 암소는 없다 NO HAPPY COWS≫ 등 여러 뛰어난 책들을 집필했다. 로빈스는 “지구구조대 인터내셔날”의 창립자이자 10만 회원을 지닌 푸드 리볼루션 네트워크(HTTP://FOODREVOUTION.ORG)의 공동 창립자이면서 공동사회자이다. 베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 제국 창립자의 외동 아들이었던 존 라빈스가 그의 아버지가 제시한 ‘아메리칸 드림’을 거절하고, 대신 “균형 잡힌 생태계를 현명하고 애정 어리게 관리하는 책무를 실천하는, 참으로 건강한 그런 사회를 향한” 아메리칸 드림을 선택하면서 처음으로 낸 책이 바로 이 ≪육식의 불편한 진실≫이다. 또 존은 레이첼 카슨 상과 알버트 슈바이처 휴머니태리언 상, 피스 애비의 양심의 용기 상 등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처럼 존은 이 지구 행성에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영적으로 충만하며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인간 존재를 양성하는 데 자신의 삶을 바쳐왔다. 그는 지금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교외의 언덕에서 부인 디오와, 아들 오션, 며느리 미첼, 그리고 손자 리버 및 바디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로빈스의 사무실과 집은 태양열 발전에 의한 전기만을 사용하고 있다.
머리말
서언
제 1부
신의 창조물은 모두가 성좌에 나름의 자리가 있다
멋진 닭
가장 부당하게 매도당하는 동물, 돼지
신성한 소
어떻게 썰어도 그것은 여전히 소시지일 뿐
제 2부
화보총 16쪽
식단마다 다른 결과
단백질 제국의 성장과 몰락
심장에 유익한 식품
우리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전쟁에서 패한다면
28그램의 예방
제 3부
중독된 미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후기
편집자 후기
현재 인류는 온갖 질병과 환경 문제, 에너지 위기와 세계의 기아 문제로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문제들이 우리가 우리의 식단에서 동물성 식품을 멀리함으로써 파급될 각종 이로움과 직결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런 점에서 존 로빈스의 「육식의 불편한 진실」은 식생활이 어떻게 개인과 인류의 행복 증진, 나아가 더 건강한 세상의 창조에 기여하는 강력한 처방이 될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입증해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암과 심장마비, 골다공증 외 각종 만성질환들이 우리가 섭취하는 동물성 식품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밝히고,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있는 삼림과 수자원 고갈 문제, 유독성 화학 약품의 과잉 사용으로 파괴되고 있는 생태계 균형 문제들 역시 우리의 육식을 위한 목축과 축산물 가공으로 인한 것임을 폭로하고 있다. 예컨대, 가축을 방목하거나 가축사료 경작을 위해 개간된 숲이 도시 개발을 위해 벌목된 숲의 7배에 달하고, 채식가의 한 해 식량 생산에 드는 물의 양보다 육식가의 한달치 육류 생산에 드는 물의 양의 훨씬 더 많다. 또한 가축 사료용 곡물 생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뿌려대는 각종 살충제와 화학 물질들은 점점 더 그 강도가 강해지면서 토양부식과 생태계 균형 파괴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대단히 중요하고 방대한 분량의 연구 자료를 모아서 정리된 탓에 저자 스스로도 고백한 바 있듯이 결코 쉽게 쓰인 책이 아니다. 이것은 그가 이 책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다른 생명체들(특히 식육용 동물)과 우리 자신에게 자행하는 끔찍한 행동들만이 아니라, 그에 얽힌 대사기극까지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정보들은 그가 “그레이트 아메리칸 식품업계(Great American Food Machine)”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된 정육 및 낙농 산업에서 자행되는 잔인하고 위험한 가축 사육방법 및 식품 영양 정보와 전국민을 세뇌시킬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그들의 거짓말, 이 둘에 대한 강력한 고발장이다. 가령, 칼슘 섭취를 위해 “하루 석 잔의 우유를 마셔라”라는 영양학 상식은 전혀 잘못된 것으로 유제품의 과잉섭취는 오히려 골다공증을 촉진함에도 불구하고 낙농업계의 로비에 의해 유포되고 지켜지는 거짓임을 밝히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어떻게 우리가 그들의 “교육” 자료를 통해 우리 수명을 단축시키는 부적절하고 왜곡된 영양학 지식을 주입받고 식단 채택을 부추김 받아왔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이로운 식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동물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새롭게 조명하면서, 동물성 식품 생산을 위해 사육하는 가축들에게 자행되는 각종 비인간적인 행위들―철망 닭장과 공장식 사육장, 칸막이방, 과다한 호르몬제 사용과 항생제 투여 등―을 숨김없이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창조물로써 존중되지 못하는 그들의 비참한 처지를 알리고 있다. 또한 오로지 이윤 추구를 위해 이러한 실태를 조장하고 이끌어온 양계업계를 비롯한 축산업계가 일반 대중들에게는 “어미 닭처럼”돌본다느니, 목자들이 사육장을 지켜준다느니 하는 허위와 거짓 광고를 통해 진실을 감추면서 나날이 더욱 비인간적인 생산체제를 강구하고 구축해가는 현실을 밝히고 있다.
2부에서는 최근 몇십년 동안 이루어진 건강과 식품 선택과의 연관성에 관한 여러 의학연구 성과들을 근거로 하여 상이한 식사 유형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해내고 있다. 이 새로운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지금껏 우리가 추구하던 “균형잡힌 식단”이란 사실 전혀 균형잡힌 식단이 아니며, 육류와 유제품, 달걀이 우리 식생활의 필수품이라는 동물성 단백질 신화가 실은 낙농업계와 축산업계에 위해 배포되고 유지되는 허상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근래 폭증하는 암이나 심장병, 골다공증, 당뇨병 같은 기타 여러 질환들의 원인이 예전에는 좋은 식생활이라고 여겨지던 이들 동물성 식품의 과잉섭취에 있으며, 더 적은 양의 단백질과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고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등의 여러 영양학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3부에서는 물과 흙, 숲의 고갈로 표현되는 오늘날의 생태 위기와 육류 산업과의 연관성을 서술하면서 이 동물성 식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자원을 곡물 생산으로 전환할 때 얻게 될 각종 이로움을 함께 다루고 있다. 특히 동물성 식품 생산을 위해 환경에 쏟아내는 유독성 화학물질의 구체적 성분과 그 끔찍한 유해성을 폭로하면서, 암과 선천성 기형을 유발하는 2,4,5-T 같은 유독성 살충제를 아스피린 정도의 독성을 지녔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화학약품사의 거짓과 뻔뻔스러움도 함께 고발하고 있다. 또한 동물들의 성장 촉진을 위해 주입하는 호르몬제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게 만들기 위해 그들에게 투여하는 각종 항생제와 살충제가 몇십년 동안 소멸되지 않고 잔류함으로써, 이런 약품들에 함께 중독되어가는 인간과 환경의 실태를 각국의 사례와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육과 육식 저자 리처드 W. 불리엣|역자 임옥희|알마 |2008.04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
Hunters, Herders, and Hamburgers (Paperback) The Past and Future of Human-Animal Relationships
리처드 W. 불리엣RICHARD W. BULLIET은 1940년생으로 미국 일리노이 주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이다. 미술 비평가이자 언론인이었던 클래런스 J. 불리엣CLARENCE JOSEPH BULLIET의 손자이기도 하다. 1962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1964년 동 대학원에서 중동 문제 연구로 석사, 그리고 1967년 역시 동 대학원에서 역사학 및 중동 문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버클리 소재 UCLA에 출강하면서,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6년 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과 조교수, 1978년 역사학과 정교수가 되었고, 1979년부터 1991년 사이에는 컬럼비아대학교 출판국의 출판위원 및 출판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84년부터 2000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동문제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목차
1장. 동물과 멀어지다
섹스에 관한 환상의 출현
피에 관한 무의식적인 반응
선택적 채식주의의 역설
증폭되는 죄의식의 합리화
패러다임의 변동과 과학
불가해해진 상징
동물의 권리에 관한 철학과 종교
인간과 동물 관계의 분수령
2장. 분리와 이행의 단계들
3장. 경계의 기원
육식
발화
4장. 사냥꾼과 채집자
동굴벽화의 수수께끼
수렵채집시대의 신화와 민담
5장. 가능한 가설들
쥐와 여우
야생에서 순치되다
낙타와 라마
6장. 의도인가 우연인가
우유와 유제품
마구 견인용
탈것과 운반용 동물
고기
7장. 힘센 사냥꾼에서 야가마나로
8장. 정서적 상징의 추락
당나귀 중상모략
사막의 붉은 신
처녀와 당나귀
멍청한 당나귀
9장. 새로운 시각의 탄생
목축
방목
영국의 경험
10장. 허구적 동물의 출현
동물 주인공과 주관성
동물과 관련된 제도
11장. 인간과 동물 관계의 미래
일본인들의 방식
상상력의 미래
주석
옮긴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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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엣은 사육을 중심으로 전기사육시대(predomesticity), 사육시대(domesticity), 후기사육시대(postdomesticity)로 구분한다(그렇다고 불리엣이 사육시대를 중심으로 한 전후기 3단계를 전 세계적인 보편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동물/인간이 맺는 관계가 지역 ·문화 ·종교 ·역사 ·경제적 동기에 따라 제각기 다르기에 하나로 고정시킬 수 없다고 본다).
사육의 역사로 본 인간/동물의 관계
전기사육시대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 동물에 대한 상징이 넘쳐나던 시기이다. 신과 인간, 동물이 서로 이종결합하면서 동물에게서 신성을, 신에게서 수성獸性을 발견했으며, 동물의 얼굴을 한 신이 인간과 결합한다는 의미에서 신/인간/동물의 경계가 모호했다. 제우스가 백조로 변해 레다와 결합할 수 있고, 동물이 사냥 대상인 동시에 숭배 대상일 수 있는 시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기사육시대의 정서는 사육시대로 들어오면서 급격히 소멸된다. 사육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물을 철저히 대상화시켰다는 점이다. 어찌 그러지 않았겠는가. 자신이 코뚜레를 꿰어 쟁기를 끌게 하는 황소에게서 신성을 찾는다면 그야말로 신성모독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사육시대에는 가축의 도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축산물을 소비하는 데 윤리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후기사육시대로 넘어오면 상황은 급격히 변화된다. 인간의 삶에서(눈에서) 사육동물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사육동물은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닌 인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사육동물의 시체는 부위별로 해체되어 원래 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고기로 전환되며, 동물의 시체를 먹는 것에 대한 인간의 불편한 감정 또한 사라지게 된다. KFC의 치킨은 더 이상 닭의 시체가 아니며, 베이컨 역시 돼지의 시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인간/동물 관계의 분수령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동물을 사육하게 된 걸까? 거의 모든 세계사 교과서가 기술하듯 재배식물종의 출현과 사육동물종의 출현을 당연스레 연결시켜 사고해야 하는 걸까? 한 치의 의혹 없이 경작을 위해 인간은 의도적으로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했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
불리엣의 생각은 이와 많이 다르다. 그는 ‘신석기혁명’으로 기술되는 시대의 특징에서 흔히 추정하던 식량 생산 증대를 위해 동물을 사육했다는 추론이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점을 여러 증거를 통해 입증한다. 즉 지금은 사육동물 역할만 하는 동물들이 애초부터 유제품과 운반수단, 농경을 위해 사육되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고고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지식들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또한 쥐와 여우에 대한 실험에 대한 결과 등을 바탕으로 동물들이 자연선택이나 인간의 선택교배에 의해 의도적으로 사육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렇다면 ‘사육동물은 유용하다’는 관점은 어떻게 해서 나타나게 되었을까?
불리엣은 물질적 용도와 정서적 용도로 나누어 그 유용성에 대해 설명한다. 사육화의 기원에 관해 물질적 용도에만 관심을 두는 현재의 지배적인 학문적 추세와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말이다.
불리엣은 사육의 목적을 희생제의와 연관 짓고, ‘힘센 사냥꾼’이 야가마나(제사장)였을 거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는 사육시대 이전까지 동물이 단지 물질적 수단으로만 간주되었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포함한 정서적 존재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 한 예로 불리엣은 당나귀에 대한 인간의 인식 변화, 즉 전기사육시대-사육시대-후기사육시대라는 이행 과정 속에서 변화되어 가는 당나귀의 정체성을 들고 있다.
전기사육시대 당나귀는 성경과 코란 등에 언급된 신성한 동물이었다. 당나귀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자이자 예언자의 위상을 차지했다. 그런데 그처럼 신성한 당나귀가 사육시대로 들어오면 정력의 상징이자 호색한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그것의 언어적 잔재가 인조人造 페니스로서의 딜도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후기사육시대에서 당나귀는 가장 멍청한 동물로 추락한다. G. K. 체스터턴의 <당나귀(The Donkey)>는 이러한 당나귀의 역사적 변천사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시이다.
물고기가 하늘을 날았고 숲이 걸어 다녔고
무화과에 가시가 자랐을 때,
달이 피가 되는 그런 순간
그때 나는 분명 태어났다.
흉측한 머리와 진저리나는 울음소리에
잘못된 날개 같은 귀에
모든 네발짐승을 흉내 낸
악마의 걸음걸이
지상의 만신창이가 된 무법자
오래된 사악한 의지가
나를 굶기고, 응징하며 조롱한다. 나는 멍청이다,
나는 여전히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바보! 한때 나의 시절도 있었다.
훨씬 격렬하고 달콤했던 그 시절.
내 귀 위로는 함성이 있었고,
내 발 아래로는 종려나무가 놓였던 시절도 있었다.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
불리엣의 논조는 시종일관 역사학자로서 객관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최대 쇠고기 소비국들이 속한 영어권 세계와 쇠고기 소비가 그닥 활발하지 않은 그 외 지역에서 인간이 동물과 맺고 있는 관계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사뭇 달라진다. 후기사육시대의 생활양식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일본을 예로 들어 인간/동물의 관계를 설명하고, 후기사육시대의 동물에 대한 빈곤해진 상상력을 통탄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는 불리엣이 《사육과 육식》을 통해 인간/동물 관계가 애초 물질적인 데 있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주지시키는 동시에, 동물과 접촉하면서 살았던 세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후대에는 인간/동물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해보도록 질문을 던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진정한 천재가 나타나 전기사육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도록 기다려야 할 것이다. 동물이 신과 교감하고 반인반수가 존경받던 시대, 동물을 죽이는 것이 경외감과 죄의식이 들도록 만들었던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려면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책속으로
사육시대에는 가축의 도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축산물을 소비하는 데 윤리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후기사육시대에는 (… 자기 시대에 내재되어 있는 정서적인 모순에 완전히 젖어 있다. 고기, 동물 가죽, 실험동물을 완전히 거부하지 못하면서도, 이것들이 제공하는 제품들과 문화적인 서비스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부적인 일들을 알게 되면서 반발하고 있다. 애완동물과 야생동물은 대단히 긍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지만 소비재 시장에서 제품으로 공급되는 가축은 윤리적으로 곤란한 존재인 셈이다. ---p.15, <1장 동물들과 멀어지다>
인간/동물의 경계 분리가 언제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분리의 문지방을 넘어 전기사육시대로 건너간 인간들은 유전적 ·범주적으로 동물을 자신과는 분리된 새롭고도 낯선 존재로 가주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p.…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동물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었으며, 마침내 세계 각처의 전기사육사회를 표시하는 이정표이자 진지한 관심사가 되었다. ---p.138, <3장 경계의 기원>
만약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사육화의 과정을 주도했다면, 왜 수만 년이 지날 동안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가 비로소 그럴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사육화를 성취하려고 실행한 과정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을까? 왜 불과 몇 종만 길들였을까? (… 소비품보다는 사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동물들-말, 당나귀, 낙타, 물소, 야크, 라마-은 농경이 출현하고 몇 천 년이 지난 뒤 가축이 되었다. 반면 개는 농사를 짓기 몇 천 년 전에 이미 가축이 되었으며, 순록은 농사를 짓지 않은 북부 아시아에서는 꽤 최근에 가축이 되었다. ---p.160-161, <5장, 가능한 가설들>
결코 한 가지의 가축화 전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축화의 모든 사례마다 당시의 인간/동물 관계와 관련하여 고찰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가축화는 대단히 느리게 발생했으며, 한 공동체 안에서 가축화가 이룩한 성과의 결실을 보기란 불가능했다. 동물의 유용성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그랬다. 따라서 인간의 통제 과정과 관련하여 두드러지게 사육된 종의 출현을 분석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며, 한 종의 실험 과정을 다른 종에게도 그대로 반복할 수 있었던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경우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가축화가 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p.265-266, <7장 힘센 사냥꾼에서 야가마나로>
어떤 종은 다른 종보다 그들이 지녔던 신비감을 훨씬 더 빨리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당나귀의 경우와 같은 궤적을 따랐다. 물질적인 용도가 증가하게 됨에 따라 정서적인 용도는 감소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사육동물이 단순히 대상으로 전락할 때까지 정서적 용도는 감소되었다. 따라서 대상화는 후기사육시대를 규정하는 특징이 되었으며, 사육동물종의 초기 역사를 들여다보는 렌즈를 형성하게 된다. ---p.326-327, <8장 정서적 상징의 추락>
영적 ·철학적 뿌리와는 상관없이 19세기가 시작될 무렵 점화되었던 동물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은 세기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영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동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증폭됨에 따라, 그들은 사상은 해외의 영어권 인구들 사이에 급속하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p.355, <9장 새로운 시각의 탄생>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농장동물의 유전적 자원을 위한 글로벌 데이터뱅크 목록에 올라와 있는 사육동물 (6,379종 가운데 4,184종은 이미 멸종되었으며, 1,335종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수치는 전체 종의 49퍼센트에 달한다. ---p.390, <11장 인간과 동물 관계의 미래>
실제 세계에서 마주치게 될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는 후기사육시대적인 양식이 보여준 착취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팽창할 것이며 그로 인해 점점 더 분노하게 된 후기사육시대 활동가들이 그것에 얼마나 저항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p.… 동물이 신과 교감하고 반인반수가 존경받던 시대, 동물을 죽이는 것이 경외감과 죄의식이 들도록 만들었던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려면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p.421, <11장 인간과 동물 관계의 미래>
어째서 돼지독감은 신종플루가 됐나
2년 전, 달걀에서 진드기를 죽이는 살충제성분이 검출되면서 사육농가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이 확산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달걀에서 항생제가 검출됐고,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있을수도 있다는 겁나는 뉴스를 들었다. 달걀찜이 올라온 밥상 앞에서.
축산물에 전염병이 돌거나 살충제와 항생제 파동이 있을때 마다, 언론은 불안을 증폭시키고 농장주의 비양심에 여론의 화살을 유도한다. 정부의 대책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외면한 채, 천문학적인 숫자의 동물을 살처분으로 땅에 묻어버리고, 천문학적인 세금으로 보상을 하고 지원도 해준다.
육식사회의 딜레마
문제의 원인은 동물의 본능을 억압하고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을 하는 공장식축산이다. 공장식축산은 전 세계적으로 오래 전부터 문제의 심각성이 밝혀지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사육방식에 규제를 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못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지금도 공장식축산 농장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반대하는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의 복지와 항생제로 만든 고기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후온난화와 미세먼지를 비롯한 지구생태계 전체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만든 황윤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과정부터 영화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냈다. <사랑할까, 먹을까>는 공장식 축산의 동물복지와 불안한 먹을거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인류앞에 닥친 심각한 문제의 불행한 시작임을 말한다. 그 해법을 알고 있는 국가와 자본주의 기업은 바뀌지 않으므로, 각 개인의 각성과 실천으로 잘못된 축산시스템을 바꿀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려면 공장식축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맹독성 살충제가 달걀에서 검출됐다고 했다. 사람들은 기절초풍했지만 나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그런 문제가 터진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닭농장에 살충제를 뿌려댈 수 있나'라고 몸서리를 쳤지만, 나는 '어떻게 닭농장에 살충제를 뿌리지 않을 수 있나?'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 년전, 돼지를 키우는 공장식축산의 농장을 알고 지내던 관계자의 도움으로 현장을 봤었다. 황윤 감독이 본 그나마 시설이 좋다는 농장과 같은 구조로,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보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현장을 보고는 그 이상의 충격을 받았다.
다녀온 후로 한 달이상 고기를 먹지 못했고, 그 후로 고기를 먹는 횟수와 양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날, 그날 봤던 돼지들의 환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잠을 제대로 못잤다. 트라우마가 이런것인가 싶었다(관련기사: 정액봉투 등에달고 인공수정 '끔찍').
▲ 공장식축산의 농장에서 강제적인 인공수정을 기다리는 돼지 ⓒ 오창균
땅 짚고 헤엄치는 축산기업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고기를 유통하는 기업의 주식은 상한가를 기록하고 판매가격도 올라서 이익을 본다.
"동물이 대량 살처분 되어도 정부가 손실액을 보상해주고, 축산기업은 똑같은 시스템에서 동물을 다시 키운다. 다시 질병이 발생한다. 다시 정부가 살처분하고 국민 혈세로 보상해주고 다시 공장이 돌아간다."
많은 방송채널과 유튜브에서는 '먹방'이 유행이고, 주재료와 부재료에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많다. 고기와 관련된 기업은 광고를 하지 않아도 많은 매체에서 경쟁적으로 홍보해주고 소비를 촉진시켜준다. 기업은 더 많은 고기를 수입하고 더 많은 동물을 빠른시간에 살을 키우는 연구만 하면 된다. 기업은 맛있는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공개하지 않으며, 소비자의 알권리는 먹는 것만 허용되고 있다.
파괴의 시대에 살다
2009년 멕시코의 돼지농장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온 '돼지독감'으로 한국도 한바탕 홍역을 치룬적이 있다. 소비를 위축시킬수 있다는 명칭을 두고 논란이 생기자 한국은 '신종플루'로 명칭을 바꿨다. 치료제로 쓰이는 타미플루가 공장식축산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장식 축산이 수많은 질병을 만들어내고 불러들이는 문고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값싼 제품을 소비하겠다는 우리의 욕망이 결국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을 만들고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받게 되는 거죠.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요"
공장식 축산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낸 고기는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다양한 질병을 발생시켰다. 현실의 문제가 된 토양, 수질, 대기오염으로 지구생태계를 파괴해 인간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인류세(人類世) 시작의 중심에는 공장식축산이 있다. /오마이뉴스 1.11 오창균(ockhh
복을 주는 돼지, 고기가 되는 돼지
기해년, 이렇게 먹어도 괜찮을까...
어렴풋 돼지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이 있다. 마을잔치라도 있는 날이었던지 시골 할아버지 댁 마당에서 도축한 돼지를 해체해 동네 어르신들이 나눠가졌던 일 말이다.
마당에 널브러진 돼지는 아기돼지 삼 형제와 곰돌이 푸의 작고 귀여운 돼지가 아닌 뼈와 살을 들어낸 선홍빛 고기일 뿐이었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돼지 죽이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돼지를 못 먹게 되었다고 했는데… 고기를 먹고 자란 나란 아이는 굉장히 무던했던 모양이다. 이후 청소년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서도 살아 있는 돼지를 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돼지는 늘 내 가까이 있었다.
돼지라는 이름을 잃고 삼겹살, 목살, 족발, 보쌈, 돈가스, 소시지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대체돼 내 입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으로 돼지와 마주하기보단 죽은 뒤 고기가 되어 나와 마주했던 것이다.
▲ 돼지 ⓒ freepik
스스로 고기를 덜 먹는다 여기며 고기를 먹어왔지만 일상생활에서 고기를 먹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했다. 마땅한 점심메뉴가 떠오르지 않으면 만만한 제육볶음을 주문했고, 가족모임이나 회식이라도 하는 날 1순위 메뉴는 삼겹살이었고,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해야겠다며 별 생각 없이 돈가스와 햄버거를 먹었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 이 고기가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가 죽는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구제역으로 전국의 돼지들이 구덩이에 산 채로 파묻힐 때도 여전히 돼지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그건 고기니까. 식재료일 뿐이니까'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이 고기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질 때쯤 육식과 관련된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육식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몇몇의 책을 통해 육식산업의 시스템을 알았고 육식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았다. 무엇보다 비윤리적인 사육 방식이 돼지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알게 되었을 때 육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기적인 나를 조금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꿔줄 돼지에 대한 책이다.
<네모 돼지>(김태호 지음, 창비아동문고)
<사랑할까, 먹을까>(황윤 지음, 휴)
<대단한 돼지 에스더>(스티브 젠킨스 외 2인, 책공장더불어)
오마이뉴스 19.01.09 심선화(dongbanbooks)
행복한 젖소·행복한 계란의 역설과 딜레마
동물복지를 보는 담론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최대한 인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와 식품 안전에 대한 현실적 요구에 따라 커진 것이 동물복지적 축산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고기의 맛과 질 향상이라는 점에서 공장식 축산보다 더 동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여름 살충제 달걀 파동이 한창일 때 친생태적 환경을 유지해 ‘청정지대’로 주목받은 국내 한 양계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잘 보살핀 가축이 양질 식품 제공동물들 복지 향상 증진에도 기여”
동물복지적 축산업은 윈윈전략
“대량축산 비판에 복지 표현 담아
육식자본주의서 ‘억압’을 정당화”
동물 해방론자들은 모순 제기
동물복지의 행복 넥서스는
모두에게 이로운 자본주의론 내포
육식자본주의의 딜레마 보여줘
우유를 마시다가 나온 웃음
몇 년 전 어느 날 우유를 마시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유를 즐겨 마시는 편이기는 하지만 유통기한 말고는 우유팩에 무엇이 써 있는지 그동안 자세히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마시던 우유팩의 뒷면에 대략 다음과 같은 문구가 써 있었다.
“○○우유는 젖소가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정 수의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행복한 젖소는 행복한 우유를 만들어냅니다. 신선한 우유 한 잔으로 고객님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행복의 첫걸음입니다….”
말 그대로 ‘행복하게’ 사육된 젖소는 ‘행복한’ 우유를 생산하고 그 우유는 소비자에게 ‘행복’을 선사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 상황에 누가 딴지를 걸고 싶겠냐만은, 당최 이 ‘모두’와 ‘행복’이 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리는 듯 연결시키는 이 문구의 ‘참을 수 없는 진지함’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은 바로 ‘행복한 우유’라는 문구였다. ‘행복한’이라는 형용사는 어떤 구체적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고 ‘우유’가 감정의 주체가 아님을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어떻게 우유가 행복하다는 말인가. 그에 비하면 ‘행복한 젖소’라는 문구는 그만큼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많은 이들이 동물도 감정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이전에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미 동물을 의인화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한 젖소’는 ‘행복한 우유’에 비해 그것이 비유이건 사실적 표현이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아니게 된다.
‘행복한 달걀’과 착한 소비
물론 ‘행복한 우유’라는 말은 애초에 ‘행복한 젖소-행복한 우유-행복한 고객’이라는 ‘행복 넥서스’ 안에서 가능해지며, 이 말은 ‘좋은 우유’ 또는 ‘신선한 우유’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쓰인다. 여기서 ‘신선한 우유’를 보증하는 것은 따로 수의사까지 두어 잘 돌본 ‘행복한 젖소’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잘 보살펴진 가축 또는 축산 동물이 더 양질의 식품을 생산하고, 이는 이를 먹는 소비자의 더 큰 만족과 건강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진다는 인식은 지금 한국에서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행복한 축산 동물이라는 당위성은 한편으로는 동물도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최대한 인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와, 또 한편으로는 공장식 대량 축산보다는 동물복지적 축산이 동물의 면역력을 높여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등의 문제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식품 안전에 기여한다는 현실적 요구에 의해 커져 왔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복지 축산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2012년부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시행하여 왔고, 그 결과 2016년을 기준으로 전국의 114개 농장이 인증 대상이 되었다.
장을 보는 소비자들은 이제 ‘행복한 젖소’ ‘행복한 우유’ 말고도 ‘행복한 닭이 낳은 동물복지 유정란’ ‘시골 목사들의 행복한 달걀’ 등의 문구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되며, 그와 같은 문구가 없는 ‘보통 제품’과 ‘행복한 제품’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즉 개별 소비자로서 우리는 동물복지적 입장에서 행복한 달걀을 구매하여 닭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그럼으로써 이른바 윤리적 소비자로서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동물복지 담론은 종종 소비자의 역할에 단순히 ‘행복한 닭’이 낳은 ‘행복한 달걀’을 소비하여 ‘행복해지는’ 것 이상의 능동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는 소비자의 윤리적 고려가 결국은 동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서 핵심이라는 주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통 계란보다 두 배, 세 배나 비싼 계란을 사는 소비자들의 존재는 결국 동물복지 양계장이 버틸 수 있는 힘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살충제 계란이 한창 문제가 되었던 작년 이맘때쯤 나온 어느 기사에 따르면 전국에 존재하는 3200여개의 양계장을 동물복지형으로 바꾼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여기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결국 소비자의 의식을 바꾸는 것임이 강조된다(경향비즈, 2017년 8월22일자 “[‘살충제 계란’ 파문] 행복한 닭, 사람도 ‘득’”). 즉 계란은 무조건 싼 것이라는 생각에서 좋은 계란을 먹기 위해서는 돈을 조금 더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의 의식 전환이 동물복지적 축산업을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닭 한 마리가 일반적인 계사보다는 비교적 넓은 모래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이 동물복지농장의 특징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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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의도의 별로 착하지 않은 효과?
한국에서 동물복지와 윤리적 소비라는 문제는 여타 사회 이슈들과 마찬가지로 그 문제가 우리보다 먼저 가시화 된 이른바 ‘선진국’들의 상황을 하나의 모범 사례로 전제하고 공론화 된다. 동물복지 제도가 가장 발달했다고 회자되는 영국의 ‘행복한 고기’ 담론이 그 예다.
하지만 동물복지를 넘어 동물해방 또는 동물권의 관점에서 영국의 ‘행복한 고기’ 담론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들은 동물의 쾌고감수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동물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동물복지적 축산이 결국은 ‘고기의 맛과 질 향상’이라는 목표 안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도살장에서 닭이 공포에 떨지 않게 하는 것은 닭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닭이 고기가 되었을 때 맛을 배로 향상시키기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윈윈 전략’은 감정적 고려라는 질적 차원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양적 차원을 끊임없이 연결시키는 ‘행복한 고기’ 담론의 핵심을 구성한다.
하지만 최근 영국에서 진행되어 온 동물복지 담론은 동물권자들이 제기하는 이와 같은 모순에 응대하는 대신 대상 동물의 ‘긍정적 감정’을 촉진하는 기술의 개발에 몰두해왔다. 이는 동물복지 과학이라 불릴 정도의 섬세한 지식과 테크닉들을 포함하며, 여기서 축산 동물은 어떤 환경이 그들 자신에 더 이로운지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의사 결정자’이자 ‘행위자’로서 인식된다. 다른 환경에 놓인 동물들이 보이는 행동은 각각 ‘차분한’ ‘공격적인’ ‘친근한’ 또는 ‘무관심한’ 등의 표현으로 기술되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정보는 다시 동물복지 과학의 중요한 데이터로 추가된다(M. Cole. “From ‘Animal Machines’ to ‘Happy Meat’?” Animals 2011, 1, 83-101).
동물해방론자들에게 이와 같이 계속 진화하는 동물복지는 축산업, 더 나아가 ‘육식 자본주의’하에서 벌어지는 동물의 착취 및 억압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도살장에서 동물들이 느끼는 공포감과 스트레스를 최대한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각종 기술의 발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고통의 현실에 눈을 감게 한다. 즉 결국은 도살할 동물들로부터 ‘긍정적 감정’과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식용 동물의 행복’이라는 모순적 상황을 정상화하며, 이 과정은 소비자의 실천이 개입되었을 때 더 강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한 동물이 더 맛있다’ 또는 (조금 더 완곡한 표현인) ‘행복한 삶을 영위한 동물이 더 좋은 고기를 만든다’라는 논리에 의해 지탱되는 동물복지적 축산업은 동물의 본연적 가치가 도살되고 또 먹히는 데 있음을 당연시하고, 그 속에서 폭력과 착취를 비가시화하는 것이 된다.
행복한 고기의 역설
하지만 나는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만은 없음을 느낀다. 물론 동물복지가 정말로 동물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있음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동물해방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동물복지라는 담론과 실천이 육식 자본주의하에서 벌어지는 ‘동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비가시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시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것도 역설적으로, 공장식 축산보다 더한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공장식 축산과 육식 자본주의가 사실상 ‘동물’과 ‘고기’의 철저한 분리, 그 분리에 의해 지탱되는 환상, 또는 ‘고기(상품) 물신화’에 의해 작동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트에서 고기를 구매할 때 또는 집과 음식점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 무엇이 더 신선한지 또는 더 맛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지, 그 고기들이 부분을 이루는 동물 전체를 떠올리거나 심지어 그 동물이 얼마나 행복했을지에 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상상과 관심은 오히려 문화적 터부로 존재해왔으며, 이것이 사실상 육식 문화와 그 산업을 지탱하는 도덕의 구조다. 하지만 동물복지적 담론은 연결되지 말아야 할 그 둘(즉 동물과 고기)을 다시 연결시키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2014)의 한 장면은 이와 같은 모순적 순간을 잘 포착한다.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원래는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던 감독 자신이 동물복지 농장에서 만난 돼지들의 새로운 모습에 눈뜨게 되고, 결국 육식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 영화는 가족과 같은 돼지들이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실 진짜 ‘반전’은 그 이후에 등장한다. 자신의 농장에서 영화를 찍고 떠나는 감독에게 농장 주인은 감사의 표시로 농장에서 자란 돼지로 만든 ‘선물 세트’를 증정하고, 이 장면에서 돼지들과 직접 생활한 감독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시선을 따라 돼지들에게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을 하게 된 많은 관객들이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가족과 같았던 돼지가 살 조각이 되어 스티로폼 팩 안에 가지런히 담겨지고 예쁘게 포장된 모습은 의식적 망각을 요구한다.
정성껏 돌본 축산 동물은 그 고기도 맛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동물복지적 상상은 윤리적 딜레마를 봉합하는 대신 열어둔다. 각각에게 이로운 것이 전체에 이로운 것이라 여기는 동물복지 담론은 어쩌면 자본주의를 단지 착취 또는 소외로 보고 이를 도덕적으로 만들면 그 폐해가 해결될 것이라 주장하는 윤리적 자본주의 담론의 자매품일지도 모른다.
윤리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체제가 특정한 도덕의 법칙들 및 환상의 기술들을 통해 작동하여 왔음을 망각할 뿐만 아니라 이른바 ‘모두에게 이로운 자본주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조한다. 동물복지의 행복 넥서스는 비슷한 문제를 내포한다. 하지만 여기서 대반전은 아마도 그것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윤리적 육식 자본주의의 딜레마들을 보여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 전의령의 동물이야기](7) 경향 18.8.9
‘대량도축 시대’ 동물 고통 앞 인간도 ‘말 못할 통증’ 마주한다
고통은 대량 도축되는 동물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그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고통의 제거나 축소를 표방하는 사회적 제도하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또 다른 고통이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역 관계자들이 2014년 2월 충북 진천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오리를 살처분하기 위해 몰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의 동물보호법에서 동물은 ‘반려동물’ ‘실험동물’ ‘농장동물’ ‘전시동물’ 등으로 분류되며, 기본적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존재로 정의된다. 즉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서의 동물이라는 정의는 동물보호/복지법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구성하며, 이는 단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국가들의 동물보호법에도 적용된다. 서구의 맥락에서 이와 같은 존재로서 동물을 정의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실제로 이 시기 영국에선 동물학대 또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잔혹 행위에 대한 반대 움직임들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그 예로써 닭싸움 등의 대중적 오락을 금지한 1654년의 동물학대방지법을 들 수 있다. 1824년에 이르면 최초의 근대적 동물보호협회가 런던에서 등장하였으며, 이후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의 동물보호 운동이 유럽 전역에 퍼져나가게 된다.
지금의 우리들에게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서의 동물, 또는 감정을 가진 존재로서의 동물이란 관념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미디어를 통해 외국의 어느 연구소에서 동물도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식의 뉴스를 접하게 되면 ‘당연한 차원의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 굳이 연구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사실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동물관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유명한 계몽주의 사상가 데카르트는 동물이 이성과 정신의 작용이 부재한 생물학적 기계와 같은 존재라고 보았다. 즉 그에게 동물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실험을 위해 동물을 아무렇게나 절단하고 불에 태워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살았던 16~17세기를 지나 18~19세기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에 대해 감정의 동요를 느끼는 과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은 실험을 위해 비둘기를 죽였을 때 그가 느꼈던 복잡한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비둘기를 사랑하기에 비둘기 껍질을 벗기거나 뼈를 추리는 일이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난 그런 악행을 저질렀고, 태어난 지 열흘밖에 안된 천사 같은 녀석을 살해했다.”(할 헤르조그,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중) 여기서 우리는 데카르트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동물관을 발견한다. 다윈은 실험의 대상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했던 새끼 비둘기에 대해 인간적인 동정심과 죄책감을 느꼈으며, 이는 동물 또한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보았던 그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물론 다윈은 동물실험을 과학의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다윈의 사례는 모두가 동물에 대해 데카르트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 또는 더 나아가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물과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분명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물복지와 인도주의
현재 한국에서 동물복지란 개념은 아주 생소하지만은 않은 용어가 된 듯하다. 제도적 차원에서 이 개념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관할하는 식용동물의 사육과 도축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다. 또한 일반 개개인은 이 용어를 소비라는 행위에 윤리적·사회적 고려를 포함시키는 이른바 ‘착한 소비’라는 차원에서 인식한다.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이 동물복지라는 개념은 인권 및 인도주의라는 근대적 관념과 감수성의 등장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개념이다. 동물 또한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고통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은 본질적으로 인도주의적 감수성 안에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문화사적 의미에서 인권과 인도주의는 인간의 신체적 ‘고통’을 정의하고, 또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의 제반 변화 속에서 등장했다. 린 헌트는 그의 저서 <인권의 발명>에서 인권이란 개념이 기존의 형벌 제도와 범죄자의 처우에 대한 비판, 특히 고문과 같이 제도적으로 허용된 잔혹 행위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발전하였음을 이야기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 존재와 고통에 관한 새로운 정의가 등장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헌트에 따르면 이와 같은 변화들은 18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1760년대에 볼테르는 고문의 사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프랑스의 형벌 제도를 비판하면서 문명화된 국가는 그와 같은 구식 풍습에 더 이상 기대지 않음을 주장했다. 이보다 앞선 1754년에 볼테르의 친구이기도 했던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제는 그의 영토에서 모든 형식의 고문을 폐지하였으며, 이와 같은 움직임은 이후 스웨덴과 보헤미아, 프랑스와 영국으로 퍼져나갔다.
16~17세기 과학자들 실험 위해 동물을 아무렇게나 절단·불태워
18~19세기에 이르러 일부 과학자 동정심·죄책감 표현에 변화 감지
‘착한 소비’ 미명에 축산 대량화 축산 노동자들 신체·정신적 차원
축산 동물들 못지않은 고통 느껴 고된 상황도 개별 노동자가 감수
동물복지, 고통 제거 표방하지만 일부 고통을 감추는 제도에 그쳐
사회적 제도서 또 다른 고통 생산 인간·동물들에 고통 전파 이어져
신체적 고통에 대한 거부를 기반으로 하는 인도주의는 형벌 제도 및 기술에 있어서 여러 가지 혁신을 가능케 하였다. 그 예로써 지금의 우리에게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정부가 이끈 공포정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단두대가 그 당시에는 처형당하는 자의 고통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인도주의적 발명품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들 수 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동시대에 제러미 벤담이 영국에서 고안한 ‘원형 감옥’(판옵티콘)에 대해 길게 분석하면서, 이를 신체형과 고문이라는 고통의 스펙터클에 의존하던 전근대적 권력(주권 권력)과 달리 피감시자가 스스로 ‘감시 권력’에 예속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근대적 권력(규율 권력)의 핵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본다. 인도주의와 감옥개혁 운동 속에서 등장한 판옵티콘이라는 감시 장치는 궁극적으로 매우 새로운 형태의 형벌 제도와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물 가면을 쓴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3년 1월 서울 삼청동에서 동물복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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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없어지지 않고 전파된다”
신체적 고통의 거부라는 인도주의적 감수성이 근대적 감옥 제도에서 동물복지에 이르는 얼핏 보기에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새로운 사회적 개입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단지 신체적이고 물리적 차원의 고통을 넘어서 ‘고통의 스펙트럼’을 조금 더 확장시켜볼 필요가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간 사회에서 도덕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의료적 문제들을 완전히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이른바 ‘사회적 고통’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즉 인간의 고통은 단순히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통증’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제도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인류학, 특히 의료인류학은 고통과 질병 등에 관한 의료적 지식들과 실천들이 어떻게 본질적으로 사회문화적, 도덕적 행위들로써 구성되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넓은 의미의 고통 개념은 인간 사회에서 축산동물, 반려동물, 전시동물, 실험동물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되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동물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조슬린 포르셰는 그와 같은 의미에서 동물을 고통을 느끼는 주체로서 정의하고, 그 고통의 최소화라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동물복지라는 장치가 정말로 동물의 고통을 제거하고 있는가에 대해 흥미로운 방식으로 문제제기한다. 포르셰는 전통적으로 가축과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거리 두기의 곡예”로서 묘사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The Relationship Between Workers and Animals in the Pork Industry: A Shared Suffering.” J Agric Environ Ethics(2011) 24:3-17). 전통적 농업 환경에서 가축으로서의 동물들과 그 가축을 키우는 농부들 사이에 일종의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그와 같은 감정은 가축이 도살되는 시점에서는 거두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애정이 생겨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면 안되는 이 상황은 애착과 무심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것과도 같다.
포르셰에 따르면 이와 같은 관계의 성격은 지금의 대량화된 축산 산업에서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며, 여기서 ‘고통’은 축산 노동자와 축산동물 사이에 공유되는 무엇이 된다. 즉 고통은 단지 대량 생산되어 대량 도축되는 동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그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무엇으로서 이해된다. 축산 현장에서 개별 노동자가 감수하게 되는 고통은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차원에서 복잡하게 얽혀 생산/재생산된다. 여기서 고통은 작업 자체의 고된 성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고, 개별 동물들에 대해 몇 킬로그램의 고기인 동시에 또 (동물복지라는 차원에서) 감정을 가진 존재로 접근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 또한 또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즉 도살이라는 행위를 통해) 느끼게 되는 고통은 윤리적 차원의 딜레마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차원의 고통은 항생제를 투여함으로써 동물의 신체적 고통을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 식품 안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물복지 제도에서는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즉 포르셰에 따르면 동물복지는 어떤 고통은 제거하지만 동시에 어떤 고통은 감추기만 할 뿐인 제도가 된다.
어느 수의사의 죽음
얼마 전 대만의 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일하던 젊은 수의사가 700마리의 개를 안락사시킨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이 수의사는 개들을 안락사시키기 전에 산책을 시킨다거나 간식을 주면서 정성을 쏟았지만 끝내 개들을 안락사시킬 때 사용하였던 약을 스스로 먹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포르셰가 말한 축산 노동자들과 축산동물들 사이에 전파되는 고통, 즉 물리적 통증을 넘어선 ‘사회적 행위와 관계’로서의 고통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아마도 고통의 제거 내지 축소를 표방하는 사회적 제도하에서 또 다른 고통이 생산되고 있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즉 많은 국가에서 유기동물보호소라는 시설은 동물복지라는 제도적 차원에서, 특히 안락사라는 특정한 개입은 입양과 같은 장기적 보호의 가능성이 부재한 경우, 또는 질병·부상이 초래하는 신체적 고통으로부터 회복불가능한 경우 차라리 죽는 것이 그 동물의 행복과 안녕에 이로운 것이라는 동물복지의 윤리적 자장 안에서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장치와 개입 속에서 또 다른 고통이 만들어지고 해소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의 사회적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고통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해소가능한 것일까? 또는 누군가의 고통은 이를 목도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감염시키고 함께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 18.6.7
전의령-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채플힐) 인류학과에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주와 다문화에 대해 담론화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신)자유주의 통치성, 반다문화와 우익 포퓰리즘, 동물과 생정치에 관한 논문들을 써왔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인류학적 믿음 하나로 다양한 연구 주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조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병행 중이며, 전주와 파주를 오가며 세 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다
육식의 성정치 저자 캐럴 J. 아담스|역자 이현|미토 |2006.06
페미니즘과 채식주의 역사의 재구성
원제 (The)sexual politics of meat: A Feminist-Vegetarian Critical Theory Anniversary 1999.11
캐럴 J. 아담스-1970년대부터 반폭력 운동을 벌여온 여성 활동가이자 저술가다. 서던메소디스트대학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을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성폭력과 가정폭력, 아동 학대, 동물권 옹호, 채식주의, 페미니즘 등에 대해 강의를 해왔다. 그리고 채식주의와 페미니즘 시각에서 육식 문제를 다룬 <식탁 위의 암소A Cow at My Table>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목차
10주년 기념판 서문|서문|감사의 말
1부 고기의 가부장제적 텍스트들
1장 육식의 성정치
2장 동물 성폭행, 여성 도살
3장 은폐된 폭력, 침묵의 목소리
4장 말이 살이 되어
2부 제우스의 복부에서
5장 해체된 텍스트들, 분해된 동물들
6장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채식주의자 괴물
7장 페미니즘, 1차 대전, 그리고 현재의 채식주의
3부 쌀을 먹는 것이 여성을 믿는 것
8장 채식주의 신체에 대한 왜곡
9장 페미니스트-채식주의자 비판 이론을 위해
에필로그: 가부장제 소비문화 뒤흔들기
출판사 서평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밭을 간다.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육아에 전념한다. 육식은 남성적이고 채식은 여성적이다. 남성은 호전적이고 여성은 평화주의적이다. 남편과 아들은 고기를 먹고 아내와 딸은 채소를 먹는다……. 고정된 성역할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약자의 지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식사의 종류를 정하는 데에서도 이런 권력 관계는 그대로 투영된다. 결국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지적하듯이 정치 폭력이 남성의 타고난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남성지배 구조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동물과 여성을 똑같이 ‘그 여자her’라고 지칭한다. 동물 도살과 여성 강간의 유비를 통해 남성 지배문화를 전복하기 위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1차 대전을 비롯 여러 침략전쟁에 찬성한 좌파들과 달리 페미니스트들과 채식주의자들이 전쟁에 적극 반대한 사례를 들며 가부장제의 폭력적 속성을 넘어설 대안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침묵을 강요하는 것[가부장제의 육식 문화]과 위협을 고발하는 것[페미니즘―채식주의] 사이의 변증법을 발견함으로써 페미니즘, 채식주의, 평화주의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부에서는 한 개인의 육식이 지니는 의미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를 밝히기 위해 ‘고기의 텍스트’를 분석한다. 1장 ‘육식의 성정치’에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성역할이 고기의 분배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살펴보고, 2장 ‘동물 성폭행, 여성 도살’에서는 여성 억압과 동물 억압이 서로 의존한다는 전제 아래 여성적 언어의 남성적 소비 문제를 다룬다. 3장 ‘은폐된 폭력, 침묵의 목소리들’과 4장 ‘말이 살이 되어’에서는 고기/여성의 소비에 관한 가부장제 언어에 주목한 뒤, 지배적인 세계관에 맞서는 채식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에 미동도 하지 않는 견고한 육식 문화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난관에 대해 살펴본다.
2부에서는 1790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미국에서 채식주의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러나 이 시기의 문화 전반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문학 텍스트들과 채식주의의 관계에 주목한다. 5장 ‘해체된 텍스트들, 분해된 동물들’에서는 고기의 성정치에 저항하는 텍스트들의 특징을 ‘채식주의 단어 낳기’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6장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채식주의자 괴물’에서는 채식주의 단어를 낳고 있는 페미니스트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해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채식주의의 역사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다. 그리고 7장 ‘페미니즘, 1차 대전, 그리고 현재의 채식주의’에서는 1차 대전 시기에 정형화되어 20세기를 거치며 발전해 온 페미니즘, 채식주의, 평화주의의 황금시대라는 관념을 추적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채식주의의 포괄적이고 누적적인 성격을 밝히고, 채식주의와 페미니즘이 갖는 친화성을 역사적으로 규명한다.
3부에서는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에 기초해 여성 억압과 동물 억압의 의존성을 재확인하고, 페미니즘 담론이 육식 문제와 관련해 가부장제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8장 ‘채식주의 신체에 대한 왜곡’은 이 책의 주된 관심사인 윤리적 채식주의를 넘어 채식주의를 선택함으로써 현대 사회가 인간에게 부과한 정신적, 육체적 불행들을 비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9장 ‘페미니스트-채식주의자 비판 이론을 위해’에서는 이른바 채식주의의 탐색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윤리적 채식주의를 수용하는 패턴(고기의 무의미성에 대한 고발→인간이 동물과 맺는 관계에 대한 명명→육식과 가부장제 세계에 대한 비난)을 분석한다.
육식의 종말 저자 제레미 리프킨|역자 신현승|시공사 |2002.01
원제 Beyond beef
제레미 리프킨: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다. 1945년생으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터프츠 대학의 플레처 법과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그 후 워싱턴시의 경제동향연구재단(FOET)을 설립해 현재는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전세계 지도층 인사들과 정부 관료들의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과학 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활발히 집필 작업을 해왔다.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책은 『엔트로피』다.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 것이 바로 '엔트로피' 개념이었다. 그 후 그는『노동의 종말』을 통해 정보화 사회가 창조한 세상에서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미아가 될 것이라 경고하는가 하면, 『소유의 종말』 통해서는 소유가 아닌 '접속'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는 경제학, 국제관계학 외에 정식으로 과학 교육을 받은 바는 없다. 이런 점에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주장을 비판하거나, 그의 이론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현실 비판은 여전히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리프킨의 문명비판에는 환경철학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문명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환경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엔트로피라는 개념도 그렇다. 육식에 대한 비판이나 생명 현상에 대한 관심도 매우 크다. 생명공학이 21세기에 가장 크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학문이 될 것이라는 그의 예측도 이런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입각점 때문에 그는 반문명론자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저서로『생명권 정치학』, 『바이오테크 시대』,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1부 소와 서양 문명
1. 도살업자를 위한 제물
2. 소로 그려졌던 신과 여신들
3. 신석기 시대의 카우보이
4. 신이 내려준 선물과 자본
5. 소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인도
6. 소를 '남성'의 상징으로 여겼던 스페인
7. 소 사육장이 된 아메리카
8. 영국인과 육식
9. 감자를 먹게 하라
10. 살찐 소와 비대한 영국인
2부 미국 서부를 정복기
11. 철도 연결과 소 떼의 이동
12. 육우로 대체된 버펄로
13. 카우보이와 인디언
14. 목초가 곧 금이다
15. '옥수수로 사육하는' 육우 정책
16. 철책을 두른 목장과 토지 사기
3부 쇠고기의 산업화
17. 쇠고기 기업 연합
18. 쇠고기 해체 공정
19. 현대의 쇠고기
20. 자동화된 정육 공장
21. 전세계적인 '육우 기지화'
4부 배부른 소 떼와 굶주린 사람들
22. 소 떼의 천국
23. 맬더스와 육식
24. 지방(脂肪)의 사회학
25. 육식의 대가
26. 인간을 집어삼키는 소
5부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소 떼
27. 생태적 식민지 정책
28. 열대지방에 자리잡은 목초지
29. 발굽 달린 메뚜기 떼
30. 사막으로 변해 가는 아프리카
31. 물을 빼앗긴 사람들
32. 더워져만 가는 지구
6부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의식구조
33. 쇠고기 심리학
34. 육류에서 비롯된 남녀 차별주의
35. 쇠고기가 낳은 계급주의, 국수주의
36. 소 떼와 개척정신
37. 햄버거와 고속도로 문화
38. 현대 육식 문화 비평
39. 쇠고기, 그 차가운 악
40. 육식의 종말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속으로
절망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식량 곡물에서 사료 곡물로의 전환은 역전될 기미가 전혀 없는 채 여러 나라들에서 사료 곡물 생산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이런 전환이 인간에게 미친 결과는 1984년 날마다 수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어 가던 에티오피아의 사례를 통해 극적으로 입증되었다. 바로 그 당시 에티오피아는 일부 경작지를 아마인 깻묵, 목화씨 깻묵, 평지씨 깻묵을 생산하는데 할애했다는 사실을 대중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작물들은 가축사료로 영국을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 수출할 목적이었다. 현재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제 3세계 토지가 오로지 유럽의 가축사육에 필요한 사료를 재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소를 포함하여 여타 가축들은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물의 70%를 소비한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1/3을 소와 다른 가축들이 먹어치우고 있는 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농토가 생계용 양식 곡물 생산에서 상업용 사료 곡물 생산으로 전용됨에 따라 수많은 농부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조상의 땅으로부터 쫓겨나고 있다. 인간들은 기아에 시달리고 있지만 소와 다른 가축들은 실컷 곡물을 먹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개발도상국들에서는 격렬한 정치적 분쟁이, 북반구의 산업화된 국가들과 남반구의 가난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적대감이 움트고 있다.
수백만 명의 인간들이 곡식이 부족해 기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선진국에서는 사료로 사육된 육류, 특히 쇠고기 과잉 섭취로 인해 생긴 질병으로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미국인, 유럽인, 일본인들은 곡물로 사육된 쇠고기를 탐식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풍요의 질병', 즉 심장발작, 암, 당뇨병 등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구촌 곳곳의 축산 단지들이 야기하는 환경적, 경제적, 인간적 해악의 피해에 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가 지구의 생태계와 문명의 운명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다. 하지만 날로 증가하는 소와 육식 문제가 미래의 지구와 인류의 행복에 가장 큰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 머리말 중에서
미국에서 사용되는 제초제의 80%가 축우와 다른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되는 옥수수와 콩에 뿌려지고 있다. 가축들이 섭취한 제초제는 그들의 신체에 서서히 쌓여가며, 살충제 또한 쇠고기 덩어리와 함께 소비자인 인간에게 전달된다. 전미 과학아카데미 연구위원회(NRC)에 따르면 쇠고기는 살균제 오염으로 인한 암 유발 식품들 중 토마토에 이어 두 번째로 위험한 식품이다. 제초제 오염으로는 가장 위험한 식품이며, 살충제 오염으로는 세 번째로 위험한 식품이다. NRC에서는 요즘 시장에 나오는 온갖 식품들 중에서 쇠고기 살균제 오염이 소비자들의 암을 유발시키는 정도가 전체의 11%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pp. 19 ~ 20
그들(포장 노동자들)은 고기가 도저히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될 때면 그것들을 캔 제품으로 만들거나 썰어서 소시지에 넣었다 그곳에선 소시지에 썰어 넣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수입 불가 판정을 받은 곰팡이가 피고 희멀건 유럽산 소시지들이 들어왔는데, 그것들은 보록스와 글리세린으로 처리된 후 가공장치에서 재차 가정용 식품으로 제조되었다.
또 그곳에는 먼지와 톱밥이 가득한 바닥에 고기들이 내팽개쳐져 있고, 그 위에서 노동자들이 짓밟고 침을 뱉어대기 때문에 수십 억 마리의 세균이 득실거렸다. 창고마다 수많은 고깃덩이들이 쌓여 있고, 곳곳에서 새어나오는 물이 그 위로 떨어지고, 그 주위로는 수천 마리의 쥐들이 내달리고 있었다. 이런 저장고들은 너무 어둠침침해서 제대로 볼 수도 없지만, 이 고깃덩이들 위에 널린 말라빠진 쥐똥을 손으로 치워낼 수는 있었다. 이 쥐들은 아주 골칫거리여서 노동자들은 독이 든 빵들을 놓아두는데, 쥐들은 그것을 먹고 죽었다. 그러면 쥐들과 빵과 고깃덩이들은 모두 한꺼번에 가공장치 안으로 들어갔다. --- pp. 158 ~ 159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저자 멜라니 조이|역자 노순옥|모멘토 |2011.02
육식주의를 해부한다
원제 Why we love dogs, eat pigs, and wear cows
저자 멜라니 조이 MELANIE JOY
사회심리학자.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대학 교수로 심리학과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들 및 동물, 환경과 맺는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려는 학술적 연구와 그 관계를 개선하려는 사회활동을 병행하면서 식육 생산과 소비에 내재한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는 데 앞장서 왔다. 심리학과 동물의 권리, 사회정의 등에 관한 많은 글을 발표했으며, 다른 저서로 동물보호운동가들의 핸드북인 『동물을 위한 전략적 행동』이 있다.
목차
제1장 사랑할까 먹을까
제2장 육식주의: “원래 그런 거야”
제3장 ‘진짜’ 현실은 어떤가
제4장 부수적 피해: 육식주의의 또 다른 희생자들
제5장 육류의 신화: 육식주의를 정당화하기
제6장 육식주의의 거울 속으로: 내면화된 육식주의
제7장 바로 보고 증언하기: 육식주의에서 공감으로
출판사 서평
쇠고기, 돼지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떠올리지 않는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인식 과정에는 사라진 연결고리가 있다. 저자는 그 단절의 미스터리에서 일련의 질문을 이끌어 낸다. 수만 종의 동물 가운데 혐오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어째서 극소수일까? 그들을 먹는 일에 우리는 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걸까?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육식이 태곳적부터 행해온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영아살해와 살인, 강간, 식인 풍습 역시 자연스러운 걸까?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식탁에 오르는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은 왜 우리 눈에 거의 띄지 않는가? 이런 의문들을 풀어내는 키워드로 저자는 ‘육식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시공을 넘나드는 사례와 연구 결과들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개와 돼지에 대하여
실험을 하나 해보자. 개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모든 단어를 그대로 적어 보라. 다음엔 돼지를 상상하며 똑같이 하라. 그러고는 두 목록을 비교해 보자. 개를 생각할 때 ‘귀엽다’, ‘충성스럽다’, ‘다정하다’, ‘영리하다’, ‘재미있다’, ‘애정 깊다’, ‘나를 보호해 준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돼지를 상상했을 때는 ‘진창’ 또는 ‘땀’, ‘더럽다’, ‘멍청하다’, ‘게으르다’, ‘뚱뚱하다’, 그리고 ‘못생겼다’ 같은 말을 떠올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다수에 속한다.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매 학기에 하루를 이 실험에 할애한다. 몇 천 명의 학생이 거쳐 갔지만 이때 오가는 대화는 거의 같다. 대부분 학생이 개는 좋아하거나 사랑하며 돼지는 역겹다고 느낀다. 자신과의 관계를 묘사해 보라고 하면 개는 ‘당연히’ 친구이자 가족의 일원으로, 돼지는 식품으로 요약된다. 그때 저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에 따라 설명을 덧붙인다.
돼지는 왜 멍청한 거지? “그냥 원래 그런 걸요.” 그런데 실제론 돼지가 개보다도 더 영리하다고 해. 왜 돼지보고 더럽다 하지? “진창에서 뒹구니까요.” 왜 진창에서 뒹굴지? “진흙 같은 더러운 걸 좋아하니까요. 돼지는 더러워요.” 실은 더울 때 몸을 식히느라 진창에서 뒹구는 거야. 땀샘이 없기 때문이지.
돼지도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 “물론이죠.” 돼지도 개와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그런 것 같은데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몰라서 그렇지, 돼지가 얼마나 예민한가 하면 가둬놓았을 때 자해 같은 신경증적인 행동을 하기도 해.
우리는 왜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는 걸까? “베이컨은 맛있으니까요.” “개에게는 각기 개성이 있으니까요. 개성 있는 존재를 먹을 수는 없잖아요. 이름도 있고,” 돼지에게도 그런 개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들도 개처럼 개체라 할 수 있나? “네, 돼지도 알고 보면 그럴 것 같은데요.”
돼지와도 개처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이 땀투성이도 아니고 게으르지도 탐욕스럽지도 않은 영리하고 예민한 개체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을 먹는 데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돼지를 먹는 걸 이상하게 느꼈을 거예요. 아마 죄책감 같은 걸 느꼈겠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을까? “돼지는 먹기 위해 키우니까요.” 왜 먹기 위해 돼지를 키우는 거지? “몰라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요.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원래 그런 게 아니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종은 도축장으로 보내고 다른 종에게는 사랑과 친절을 베푼다?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에 이처럼 일관성이 없고, 그 사실을 한 번도 반성하지 않았다면, 그건 우리가 부조리한 논리에 휘둘려 왔기 때문일 테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고의 기능을 유보하고 사는 것은 물론, 자기들이 그런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알고 보면 답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육식주의 때문이다.
채식주의와 육식주의
우리는 고기 먹는 것과 채식주의를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다. 채식주의에 대해서는, 동물과 세상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식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행위,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아무런 자의식 없이, 왜 그러는지 생각지 않으면서 고기를 먹는다. 그 행위의 근저에 놓인 보이지 않는 신념체계에 저자는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다. 바로 ‘육식주의(carnism)’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육식주의자, 즉 고기를 먹는 사람은 육식동물과 다르다. 육식동물은 생존하기 위해 고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육식주의자는 또 잡식동물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육식동물’과 마찬가지로 ‘잡식동물’이라는 용어는 개체의 생물학적 특징만을 기술하지 철학적 선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육식주의자는 필요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고기를 먹는다. 그런데도 선택이 아닌 듯 보이는 것은 육식주의의 비가시성 때문이다. 육식주의는 왜 눈에 드러나지 않는가? 왜 지금까지 그것에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거기엔 훌륭한 이유가 있다. 육식주의가 특정한 유형의 신념체계, 바로 ‘이데올로기’이며, 그것도 정밀한 검토를 쉽사리 허용치 않는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없다
육류와 관련해서 우리가 동물에게 적용하는 두 개의 주된 범주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이분법 안에는 또 다른 범주 쌍들이 있다. 예컨대 우리는 야생동물보다는 가축을 먹고, 육식동물이나 잡식동물보다는 초식동물을 먹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돌고래처럼) 지적이라고 생각하는 동물은 먹지 않지만, (소나 닭처럼) 그다지 영리하지 않아 보이는 동물은 일상적으로 먹는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이 귀엽다고 여기는 (토끼 같은) 동물은 먹지 않고 (칠면조처럼)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동물을 먹는다. 이 같은 구분이 실제로 정확한가는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정확하다는 ‘믿음’이다. 이분법의 목적은 단지 고기를 먹는 데 대한 불편감에서 놓여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를 안고 쓰다듬으며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그 행위가 함축하는 바를 전혀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육식은 정당화된다.
정당화의 온갖 기제들
육식을 정당화하는 방대한 신화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정당화의 3N’이라는 것과 연관된다. 육류를 먹는 일은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는 것이다.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으며 오히려 육식이 우리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신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3N이 동물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내재하는 모순을 감추고 우리가 어쩌다 그걸 알아채게 되면 그럴싸하게 해명하고 넘어가는 정신적, 정서적 눈가리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곧 고기로 바뀔 돼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올 경우, 우리는 그 돼지를 쾌락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생명체, 뚜렷한 개성과 선호를 지닌 존재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그 ‘돼지다움(더러움, 게으름 등)’과 ‘먹을 수 있다는 점’뿐이다. 이런 방식으로 동물을 보는 데는 ‘인식의 트리오’라는 세 가지 방어기제(대상화, 몰개성화, 이분화)가 개입한다.
공감의 회복을 위하여
육식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동물과 인간이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역사를 넘나드는 각종 사례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별도 박스로 짜 넣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입맛의 후천성, 공감 능력의 선천성, 다른 문화 다른 시대의 정신적 마비, 전장에서 총을 쏘지 않는 병사들, 축산업계의 비밀주의, 권력과의 결탁, 언어 조작, 동물들의 고통 감각 능력, 한국의 개고기 시장, 권위에 대한 복종 경향, 단백질 신화, 숫자와 감각마비, 불의를 혐오하는 인간 본능, 톨스토이 신드롬 등, 곁들이는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종횡무진이다. 그 모든 것이 저자의 논리를 살찌움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유도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공감 능력의 회복을 위한 안내서라 할 수도 있다.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인류의 육식 연대기 저자 마르타 자라스카|역자 박아린|메디치미디어 |2018.03
원제 Meathooked
저자 : 마르타 자라스카
폴란드계 캐나다인으로 《워싱턴포스트》, 《사이언티픽아메리칸》, 《뉴스위크》, 《아틀란틱》,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뉴사이언티스트》, 《내셔널지오그래픽트래블러》에 글을 기고하는 과학 저널리스트다. 두 권의 소설을 썼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발간한 두 권의 여행 서적에 참여했다. 전 세계 80여개 국을 여행했고, 그중 6개국에 거주했다.
목차
프롤로그
제1장 육식동물의 세계
제2장 고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제3장 만들어진 신화, 단백질
제4장 우리를 중독시키는 고기의 맛
제5장 고기를 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
제6장 육류 수요의 비밀
제7장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을 상징한다
제8장 과거의 채식주의는 왜 실패했을까?
제9장 채식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
제10장 육류 금기는 왜 생겼을까?
제11장 아시아의 폭증하는 육류 소비
제12장 육식의 미래
에필로그: 영양 전이 5단계
감사의 말
주석
출판사 서평
“우리는 왜 고기에 중독되는가?”
250만 년 동안 이어진 육식의 역사와 그 미래
고기에 끌리는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화학적 ‘중독 요인’들
저자는 우리가 고기를 쉽게 끊지 못하는 원인을 ‘중독 요인’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고기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자연사박물관과 고고학연구소,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 식당과 고베 방식으로 소를 키우는 웨일즈의 한 농장, 아프리카의 한 사원과 인도의 쇠고기 요리 식당, 각종 채식주의 식당 등 세계 각지를 찾아간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고기에 중독된 이유는 한마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해보이지만 복잡한 이 말의 함의는 고기가 자주 먹을 수 있을 만큼 주변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고, 각종 기술과 정부의 보조금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굶주림을 경험한 인류가 귀한 음식으로 대접해오고 있고, 여러 부정적인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깊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언급하듯, 육식의 역사는 지구의 역사라고 할 만큼 길다. 인류가 진화하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고기를 먹어온 이유도 변해왔다. 한때 고기는 부와 권력을 상징하기도 했으며, 공동체의 문화를 이루는 강력한 요소로 작동하기도 했다. 이 책은 최초의 육식동물이 탄생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인류의 조상들과 현생인류가 왜 고기를 먹어왔는지, 오늘날 육류 소비가 왜 증가하는지를 밝히는 인류의 육식 연대기다.
우리의 식단에는 미신이 가득하다
의식적인 식단으로 넘어가는 행동 변화 단계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우리 식탁에 스며든 미신이 우리의 식습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서양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 초, 독일의 과학자들에 의해 단백질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이후 동물성 단백질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많은 연구 결과에도 단백질 대한 믿음은 공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양의 정육업계와 패스트푸드 업체는 마케팅과 홍보뿐 아니라, 로비를 통해 제도적으로도 식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콜레스테롤과 지방이 가득한 음식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영양학자들에 의하면 ‘영양 전이(Nutrition Transition)’에는 네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사냥과 채집으로 음식을 모으는 단계이고 두 번째는 농업으로 시작되는 기근 단계, 세 번째는 농업이 개선되어 식량이 증가하는 기근 감퇴 단계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서양의 식단은 네 번째 단계인 ‘퇴행성 단계’다. 그리고 우리가 다섯 번째 단계인 행동 변화 단계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육식을 줄이고 과일과 채소, 곡물을 더 많이 섭취하는 것이다.
지나친 육식이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는 결과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채식주의자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저자에 의하면 인류는 ‘기회주의자’이다. 인류의 진화에 필요했던 것은 고품질의 식단이었고, 당시의 기후변화에 맞게 적응하며 고기라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기가 인류의 진화를 도왔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셈이다. 어디서나 싱싱한 채소와 곡물,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많다.
고기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고
인간은 고기를 만들어 먹는다
우리는 오랜 기간 고기를 먹는다는 행위와 그 맛에 매우 길들여져 있다. 오늘날 육류 대체품이 늘어나는 것은 그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육류 대체품의 증가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육류가 건강에 해로운 요소가 있기 때문이며, 동물의 권리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무엇보다 기존의 농장들로는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인용한 한 조사에 따르면, 마트에 진열된 ‘재구성된 육류’에는 진짜 고기가 55퍼센트밖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콩 또는 다른 혼합물이라고 한다. 이런 고기를 먹는다면 실제로는 반쯤 채식주의를 실행하는 셈이다. 가짜 고기, 혹은 육류 대체품이 아직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우리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다.
저자는 특히 인도와 중국의 육류 소비가 폭증하고 있고, 그들의 일인당 육류 소비가 미국 수준으로 증가한다면 이산화탄소 증가와 물, 토지의 부족으로 지구가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콩고기와 배양육을 포함한 많은 육류 대체품과 곤충 등이 사람들의 식탁에 더 많이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류는 오랜 기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최선의 식단을 찾아 적응해온 동물이기 때문이다 고기는 '식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의 살점 혹은 근육'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육식동물을 고기로 먹지 않는다. 비린 맛으로 인해, 초식동물의 고기가 선호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인간은 고기를 먹게 된 것은 소빙하기로 온도가 낮아지고 강수량이 줄어들면서 나무 위에서 먹이를 찾아 들판으로 내려온 250만년전부터이다. 이후 150만년전에 200만년전의 시대에 인간의 뇌는 급속히 용량이 증대되는데 육식의 영향이 크다. 이후 70만년전 불을 통한 요리를 통해 소화에너지가 줄어 두뇌에너지가 커지고 소화기관이 줄어들면서 사실상 '요리가 인간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
고기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정치.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고 굳이 먹을거리만이 아닌 계급과 명예의 척도가 되었다. 이는 근대에까지 이르면서 상류층, 귀족, 문명인, 서양인은 고기를 먹고 유색인, 야만인, 하층민은 고기를 접할 수 없는 채식자로 규명되까지 했다.
그래서 개발도상국, 동아시아, 중동을 거쳐 최근의 중국과 인도에서도 서양국가의 산업혁명을 따라간 전철처럼, 육식이 근대화와 상위계급의 표식이 되었다. 고기는 탄수화물과 아미노산의 화합물인 아로마를 고기 냄새로 느끼는데 이 반응이 '마이야르 반응'인데, 이는 지방의 감칠감과 식감 및 지방이 불에 타는 냄새는 인간이 고기 중독을 일으키는 생화학적 근거이다.
고기는 남성성, 귀족성, 우월성의 상징으로 문화ㆍ사회적으로 불공평을 양산했고 이는 선진국의 정부정책과 육식업체의 마케팅에 의한 후천적 주입이 상당한 고기욕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채식은 요리법이 낙후하고 맛이 없다는 근원적 단점으로 인해, 육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육식과 채식을 혼합한 잡식성인 인간은, 선호 혹은 습관적 식단 패턴에 따라 여러가지의 육식 혹은 채식주의자들로 나뉘지만, 실제 완벽한 베지테리안은 인구의 0.3%이하에 불과하다고 한다. 육식은 비료가 되는 농작물, 유통, 육가공, 도소매 등으로 전세계에서 1억3천만개의 일자리를 차지 중이다. 그리고 고기가 채식으로 완벽히 변화된다면,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80%가 줄어들고 식용수의 90%가 남아돌게 된다. 이 만큼 지구온난화, 인간 자연환경, 건강 악화 등에도 많은 악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육식을 버릴 능력이 없다는 점을 통해 현실과 미래를 고발하고 있다.
[출처]작성자 휴판 룸펜 18.2.14
채식주의자의 종류
베지테리언 vegetarian 非 동물성 식품으로 구성된 식품을 섭치
비건 Vegan 동물성 식품 뿐 아니라 계란, 치즈, 우유, 꿀 등 동물을 통해 얻어지는 식품을 식단에서 제외 (아미노산 섭취를 위해 계란을 먹는 비건도 있음)
페스카테리안 Pescatarian 고기 X 생선 O -생선은 먹는 채식주의자 또는 생선과 닭고기 등 흰고기는 먹는 반면 소고기 등 붉은 고기는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 (가디언 지 같은 양을 생산함에 있어 붉은고기는 흰고기에 비해 토지는 28배, 물은 11배, 온실가스는 5배 많이 배출)
페간 Pegan 팔리오비건(Paleo -Vegan)이라고 하며 75%의 비건 식당에 25%의 동물성 단백질 및 고품질 지방을 추가해 섭취하는 사람(채식 및 육식의 장점만 고른 식당으로 영양이 풍부)
출처: The Indeoendent
육류대용식품
식물성 고기: 야채, 콩, 견과류 등에서 축출한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해 만든 인조고기 (영국Seitan, Quorn 등)
맥도널드 출시 채식주의자를 위한 햄버거 맥비건
채식주의자들의 4대 음식_우유, 계란, 치즈, 견과류
채식의 유혹 육식의 족쇄를 풀어라! 저자 김우열|퍼플카우 |2012.06
번역가 김우열
목차
들어가는 말
한번쯤 채식을 고민해본 당신을 위하여
Part 1 채식, 얼마나 아십니까?
다르게 사는 법, 채식
-당신이 채식을 선택하게 된다면
-한국에서 채식하기 어려운 이유
-세상 살아가기에 너무 예민해지지는 않을까?
채식의 유혹
-채식 왜 하세요?
-채식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
-평생 할 수 있는 진짜 다이어트
-채식주의자보다는 채식인
채식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맛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탕수육보다 맛있는 ‘탕수벗어’
채식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만 채식을 한다면
Part 2 채식이 정말 건강에 좋을까?
채식이 정말 몸에 좋을까?
영양분 때문에 채식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채식하면 단백질은 어디서 얻나?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환상
-생선이나 어패류, 육류보다는 낫지 않을까?
-비타민 B12가 식물성 식품에는 없다는데
-칼슘이나 철분은 어떻게 해결하나?
채식하면 체력에 문제가 생긴다?
-채식하면 체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채식하는 보디빌더들
-성장기 아이들에게도 괜찮을까?
-아이를 가졌는데 채식해도 될까?
-채식하면 살이 빠질까?
-채식하면서 술 담배를 해도 될까?
젊고 건강한데도 채식을 해야 할까?
Part 3 채식인으로 살기 위한 방법들
몸 상태와 식단을 점검하자
익숙한 음식들과의 결별
-이제 무엇을 먹어야 할까?
-비용을 절약하는 건강한 식단
-실수로 고기를 먹었더라도 개의치 말자
-먹는 양까지 줄일 필요는 없다
성분표 읽는 방법
채식 선언하기
혼자 사는 직장인의 채식
-집에서
-직장에서
-혼자 식당에 가서
-회식 자리에서
-1박 2일 연수를 가서
애인과 데이트할 때의 채식
결혼 후의 채식
-배우자와 둘이 살고 있는 경우
-자녀가 있는 경우
-다른 가족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채식 맛집 소개
채식 장보기
도와주세요!
Part 4 채식 권하는 사회를 꿈꾸며
가장 급진적인 정치 활동, 채식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고기 대신 콩?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코코넛 오일의 발견
갈수록 복잡해지기만 하는 세상
삶을 통제하는 힘
사랑을 배우기 위해
눈을 감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들
Part 5 채식을 둘러싼 단상들
아인슈타인은 왜 채식을 했을까?
골고루 먹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동물을 먹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옳을까?
우리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
인간, 그 모순의 동물
길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안에 있을 뿐
핀란드인의 저력과 자연의 치유력
환경, 채식이 답이다
채식을 넘어 열매식으로
채식 관련 번역서를 읽으면서
번역 작가, 그 길
치열하게 산다는 것
생의 의미
읽어볼 만한 책 소개
나가는 말
채식, 불편한 행복으로의 초대
채식을 하면 질 좋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으며 더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요즘처럼 공장식 농장에서 자동차 찍듯 ‘만들어내는’ 육류와 어패류는 실상을 알고 나면 음식의 범주에 넣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여러 연구를 통해 동물성 단백질보다 식물성 단백질이 몸에 훨씬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비타민이나 칼슘, 철분 등도 채식만으로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성장기 아이들이나 임신부들의 건강에도 채식은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도움이 된다.
채식을 하면서 맛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안 좋은 음식을 끊고 미각이 되살아나면 조미료와 화학물질로 범벅이 된 음식의 맛이 아닌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채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여러 식당과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 등도 소개하는데, 이는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구미가 당길 만하다. 채식을 하면서 무엇보다 걸림돌이 되는 것은 건강도 맛도 아닌 사람들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채식하면 예민해지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원래의 감각을 되찾을 뿐이다. 아이들을 보라. 아이들은 기운이 뻗쳐서 하루 종일 놀고도 자기 직전까지 또 논다. 그러다 쓰러져 잔다. 이렇게 힘이 넘치는 아이라도 몸에 안 좋은 것이 들어가면 쉽사리 복통을 일으킨다. 아이가 면역력이 약해서 그럴까? 아니다. 그것이 정상이다. 몸에 안 좋은 물질이 들어가면 복통이 일어나야 정상이라는 말이다. 안 좋은 것을 먹고 배도 안 아프고 기껏해야 속이 좀 불편한 듯하지만 평소에도 자주 그랬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면, 과연 이런 것이 정상일까? --- p.23
채식이 좋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맛을 포기할 수 없어서 채식을 못 한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살면서 먹는 낙이 얼마나 큰데….” 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채식은 ‘맛’을 포기하는 식단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음식’을 다시 정의하는 작업이다. --- p.41
어떤 이는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어버리지만 어떤 이는 담배를 끊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몸무게 10kg를 빼는 데 두 달 이면 되지만 누군가는 1년이 걸린다. 누군가는 팬티를 먼저 입고 티셔츠를 입지만 누군가는 티셔츠부터 입고 팬티를 나중에 입는다. 우리는 다 다르다. 채식이 좋다고 생각해서 채식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일어났더라도,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접근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번에 바꾸는 쪽이 더 편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부담스럽거나 단순히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천천히, 느긋하게 한 걸음씩 다가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 p.54
나는 채식을 ‘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생각하고, 동물들의 고통을 생각하고, 공장식 축산 때문에 벌어지는 이웃의 고통을 생각하고, 지구 전체를 생각한다면 채식을 하면 된다. 채식을 ‘의식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 p.110
채식은 날마다 자기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에 ‘소중한 한 표’를 던져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느리지만 확실하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다. 그것은 몇 년에 한 번 특정 인물에게 투표하고, 그 후로는 신문이나 뉴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들으며 한탄하는 데 그치는 일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급진적인 정치 활동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정 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하고, 축산 폐기물로 고통 받는 이웃을 돕고, 기아와 환경 문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이 모든 거대담론이, 우리가 자기 입에 무엇을 집어넣느냐는 지극히 사소한 행동에 달려 있다. --- p.198
우리는 대부분 거짓말이 나쁘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때때로 거짓말을 한다. 때로는 흰색 거짓말을, 때로는 시커먼 거짓말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느 정도의 가책은 느낄 테지만, 그것 때문에 이제 이왕 버린 몸이니 앞으로는 도둑질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거나, 거짓말을 매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채식’의 문제로 넘어가면, 사람들은 0 아니면 1 둘 중에 하나만 알아듣는 컴퓨터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채식을 하려면 절대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 p.290
노래출처: 광주 지인의 블로그
Thru The Winter / Bettye Lav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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