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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공원녹지

문현동 통일동산의 식생에 주목한다.

by 이성근 2013. 12. 10.

 

 

 문현동 통일동산은 황령산으로부터 뻗어나온 구릉지형 동산이다.  황련산은 금련산맥의 중심축으로 영도 봉래산으로 이어진다.  한편 금련산맥은 낙동정맥의 곁가지라 할 수 있다.  산자락은 시가지의 확대로 토막나 섬으로 전락했다.

황령산 자락 390봉에서 본 통일동산 1.2 와 유룡산 으로 하여 장자산으로 이어지는 줄기와   우룡산에서 본 황령산 방면 산줄기

통일동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흔치 않다.  파주 통일동산, 강릉 통일동산이 있기는 하다만

매년 정월 대보름에 통일동산에서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봉행한다. 동주민센터에서는 단체원과 주민 150여명이 참석하여 동민화합 윷놀이 대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음력 5월5일에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민족고유의 명절인 단오를 기념하기위해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 현장은 출입이 통제 되어 있는데 바위에 '당산제단' '문현1동 40통'이라 음각해 놓았다.  이 일대가 문현1동 40통으로 편재된 시절이라면

 

 바위 위에는 크지는 않지만 팽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있다.

 시멘트를 덧발라 놓은 재단 주변에 새겨 놓은 글들은 해독이 필요한 수준인데 " 1950  7년 임자년 당산 재사 모신 주지 김순도 ..보살 단오재 " 라는 글과 함께 "문현3동 모신일 1988 진순도 "  "을축년 6월 용왕당" "1986년 병신년 2월24  사용하지 맙시다 천수져럭에 탁주 "  등

 이 당산도 사람들로부터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지금처럼 집과 도로가 없었던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싶어 조금 오래된 지도를 찾아 보았다. 

주변의 지형과 산세를 알아보기 위해 찾았던 지도들로서 1905년 조선총독부 수로부 발행 부산항 (중 동천하구 부분 ) 지도를 본다면 동천 주변의 지형이 뚜렸하다. 동천하구가 작은 삼각주 형태로 존재하고 뻘층도 보인다.   매립 전의 원형이다.  황령산 390봉에서 뻗어나온 줄기가 지금의 전포동과 문현동의 경계부인 돌산공원으로 하여 삼성아파트 단지까지 뻗어 있고 마주보는 광선대  사이로 동천의 지류가 보인다.  문현천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의 문현사거리에서 두개의 물 줄기와 합류한다,  하나는 고동골에서고 하나는 지개골과 통일동산으로부터 유입하고 있다.  동일동산은 독립된 봉이 아닌 주변 여러 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남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작은 계류도 품고 있었다. 그로부터 100년 남짓  산과 하천은  원형을 잃어버리고  참 볼품없는 동산으로 전락했다.  물길은 죄다 복개되었다.

 1924년 조선총독부 육지 측량부 부산지형도( 부산북부 중)에서 보면 지형의 변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 동천으로 유입되던 문현천의 합류지점이 직강화 되었다.   문현 이란 지명은 이때부터 통용 되었다. 문현동의 옛 이름은 이 일대의 지형이 집안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기 때문에 찌께골로 불러왔다. 찌께골은 지게골에서 나온 말로서 지게는 마루나 바깥에서 방으로 드나드는 곳에 문종이로 안밖을 두껍게 싸서 바른 외짝문이라는 뜻이다. 해서 지게골이란 우리말 지명을 한문식으로 바꾸면서 지게는 문(門)으로, 고개는 현(峴)으로 바꾸었다. 한편 또 다른 설로는 문현 안동네 즉 성동초등학교 동쪽의 문현1동 쪽에 상당히 높은 고개가 있었는데, 이 고개를 ‘문고개’라 했다는 것이다. 이설은 지금부터 약200년 전에 문안 동네에 영산(靈山) 신씨(辛氏)가 들어와 살면서부터 생긴 마을이라고 한다. 1904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에 의하면 서하면 관내에 문현리가 있는데, 당시 호수는 21호이고 김ㆍ이ㆍ정 등 성씨가 많이 살고 있었다. 21호 가운데 신(辛)씨는 2호뿐이었다. 즉 신씨가 제일 먼저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그 후 다른 성씨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이 고개가 문안과 밖을 구분하는 구실을 하였다.’고 하여 문고개라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이 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434공병 부대가 인근의 도로를 개수할 때 이 문고개에서 필요한 토석을 가져가면서 고개가 점차 낮아졌으며, 1965년 의 착평 공사로 고개가 낮아졌다. 

 

한편 동천의 동쪽 문현 로터리 부근을 조선시대에는 연동리라 불렀다. 다른 이름으로 연동개, 연동계, 연통계 마을이라고도 했다. 이 마을에 있는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많이 피었는데 연꽃이 늘 동쪽을 향해 피었다고 하여 연동개(連動開)라고 불렀다고 한다. 연동개가 있던 장소 주변에는 현재 도로 및 주유소가 있다. 일제시대 전까지는 인구가 거의 없었으나 인근에 대선양조공장이 일본인에 의해 세워지고 난 이후부터 막 노동자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주거지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1934년 신부산대관 -부산부전도에서는  부산진 매축으로 인해 동천 하구의 변형이 본격화 되었다.    지개골을 넘는 도로가 개설되었다.  황령산 줄기의 1차 분절이 이루어 졌다. 우암동 쪽에서 문현 4동쪽으로 넘어오는 장고개도 보인다.  장고개는 우암동, 감만동, 용호동 사람들이 부산장(현재 자성대의 서쪽 아래 부산진 시장 일대의 장터)에 장보러 갈 때 넘던 고개였다.

  1946년 U.S. ARMY, washington. d,c  미군이 발행한 지도로서 물줄기며 산세가 상세하다.  현재의 문현동 안동네 방향으로 군부대가 들어와 있는 상황인데 추측컨테 그렇다면 지도의 제작시점은 1950년대 초가 아닌가 본다.  돌산공원과 삼성아파트 단지 사이의 구릉선에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원래 작은 산봉우리가 있었는데 미군 434공병 부대가 인근의 도로를 개수할 때  그리고 동천의 정비 공사를 할 때 호안 축조를 위해 이 산을 깎아 메웠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산은 평지가 되었으며 그 후 부두 축조 때 문현여중 아래쪽의 흙을 다시 파내게 되어 큰 구덩이가 생기게 되었는데,  ‘흙구덩이’는 여기서 유래한 이름이다.  배정초등학교와 배정중ㆍ고등학교가 있는 위치에 있었던 광선대(廣仙臺)쪽에도 군시설이 입지해 있다.

 

 1951 부산시가도 중 서울 平凡社                                   1980년대 초 문현사거리 도로 확장공사  장면(남구청 출처) 에서 보면 황령산 줄기에서 갈미봉을 타고 통일동산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인다. 일열로 식재된 조림지가 보인다.  현재 일대는 주거지로 바뀌었다.  도로공사는 1980년 10월 개통된 도시고속도로 공사인듯 하다. 중앙동 국제여객부두에서 구서동 경부고속도로를 잇는 21km 4차선 도로인데 문현사거리에서 구서동 까지는 번영로라 부른다.,

통일동산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82년 대원맨션이 먼저 였고, 이후 1985년 금호천지, 1992년 대도 라이프타운 등이 들어서며 동산을 포위하는 형국으로 변했다. 왼쪽  언덕이 현재의 삼성아파트 단지(2000년)가 들어선 곳이다.  우측 하단 부에  36층 대림시티프라자가 1998년가 들어서면서  일대의 경관이 바뀌었다.  이후 문현사거리에는 2007년 이안, 2006년 데시앙, 한화 꿈에 그린 2006년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 섰다.  

 

                                   1960년대 후반 부산시가도 중                                 구글지형도

 

 동천하구역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문현동 역시 마찮가지다.  옛 흔적은 변형된 산세를 통해 읽을 수 있을 뿐이다.  문현 사거리 안동네 방향 중앙교회 도로변에 소나무 한 그루가 그 세월의 부침을 오롯이 담고 있다.  동민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나무다.                           

 

통일동산은 높이 151m에 불과하다.  바로 옆에 152m의 제2 통일동산이 있는데 주민들은 두 산을 쌍둥이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상부에는 무덤 1기가 있다. 체육시설이 있어 인근 주민들이 산책겸 운동을 하러 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산부에는 주목, 비파나무, 무궁화, 등나무, 아왜나무, 태산목, 회양목, 병꽃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제법 수령이 오래된 아카시나무들은 최근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의 다 베어졌다.  대체수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 산림행정의 획일성이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간벌작업 역시 전문가의 동행을 통해 이루어 졌으면 한다.  예컨데 살릴 나무, 보존해야 할 수종에 대한 사전 선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작은 언덕에도 다양성이 유지될 수있기 때문이다.

통일동산은 소나무가 우점했던 것 같다.  소나무는 흔히 육송이라 부르는 소나무와 곰솔, 리기다가 혼재한다. 이들은 북동 사면에 무리지어 있다.

정상부와 동쪽 사면에는 참느릅나무가 수십개체 있고 정상부에 있는 참느릅나무는  제법 수령이 오래됐다. 나무껍질의 약리 효과 때문에 표적이 되기다 하였다.

그리고 서쪽 사면 경작지 있는 절개지 부근에는 조릿대와 이대의 군락이 있다.  더불어 사방오리나무가 사면 토사유출 방지용으로  심어졌다.

그리고 북서쪽 방면에는 밤나무가 십 여 그루 있어, 이전 일대에 대한 토지 이용의 정도를 짐작해 볼 수있다.  

 통일동산 동서남부 사면은 불법경작이 이루어 지고 있다. 산비탈을 개간하여 텃밭을 가꾸는 소박함의 시대는 지나 갔다.  행저에서 계도를 하고 벌금을 부과하고는 있지만 실효성은 없는것 같다. 심지어 불법경작지에 조림을 해도 꾸준이 이루어 지고 있다. 한때 도시농업 차원에서 이를 양성화 하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하였으나 , 현재로서는 뾰죽한 방도가 없다.

북서사면 중간 쯤 은백양이 작은 군락을 일고 있다. 아마도 70년대 심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남사면에는 단풍나무가 식재되어 있고,  남서 사면에는 편백과 삼나무를 비롯하여 리기다, 히말라야시다가  식재되어 있다. 

왕벚나무 역시 식재했다. 그리고 간간이 아카시와 굴피나무를 비롯하여 팽나무들이 있고,  자귀나무와 목련도 서너 그루 있다.  개옻나무도 비교적 흔하게 보인다.  관목층으로는 국수나무와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산딸기와 장딸기, 수리딸기가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진달래나  철쭉은 의외로 개체수가 적다.    통일동산의 식물상(목본)에 대해 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구분  교목  아교목  관목  덩굴성
 식물종  용버들, 밤나무(식),상수리,떡갈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졸참나무, 참느릅나무,느티나무,팽나무,소나무, 곰솔, 리기다소나무(식),왕벚나무, 후피향나무,감나무(식),태산목(식)벽오동(식)아카시나무(식),비목나무,개잎깔나무,굴피나무,동백나무,가죽나무(식), 가이즈까향나무(식),아왜나무(식), 은백양(식),삼나무(식),단풍나무(식), 편백나무(식), 은핸나무(식),피나무  배롱나무(식), 생강나무, 예덕나무,광나무,사철나무(식),자귀나무,뽕나무(식)구골나무, 붉나무,개옻나무,목련,후박나무,노린재나무, 덜꿩나무, 식나무(식)쥐똥나무,보리밥나무,산초나무,초피나무,족제비싸리,싸리,노린재나무,탱자나무(식),병꽃나무(식) 돈나무(식), 때죽나무, 비파나무(식)   땅비싸리, ,장딸기,수리딸기,관음죽, 조릿대,용설란(식),산철쭉,백량금,회양목(식)  노박덩굴,칡,찔레꽃나무,으아리,마삭줄, 계요등, 까마귀머루,개머루,줄딸기,으름덩굴,담쟁이덩굴,사위질빵, 아이비(식),댕댕이덩굴,청미래덩굴,청가시덩굴. 등나무

 

통일동산 전 사면에서 세력을 확장 중인 칡은 맹렬하다.  이런 나무들 사이로 참나무류가 분포한다.   서론이 길었다.  통일동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상록활엽 관목들의 등장이다.  가끔 통일동산의 식생에 대해 언급하긴 했으나  이번에는  좀더 정확히 짚어 보고자 한다. 몇 종 되지는 않지만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위해서다. 참고로 통일동산에서 보이는 초본류는 다음과 같다.  초본류에 있어 종수의 다양성은 경작지의 확대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과 명  식 물 종     과 명     식 물 종    과 명     식 물 종 
 국화과  왕고들빼기, 이고들빼기, 가시상추, 미국가막사리, 돼지풀, 등골나물,산국,참취, 머위(식)떡쑥, 보리뺑이,향유,서양민들레,쥐꼬리망초,들깨풀,개쑥갓,지칭개,큰방가지똥, 엉겅퀴,별꽃아재비,망초, 개망초,코스모스, 노랑코스모스. 만수국아재비,사계국화  
 콩과  매듭풀,비수리,토끼풀,갈퀴나물,낭아초  장미과  오이풀, 뱀딸기,세잎양지꽃  사초과  금방도사니,그늘사초,대사초,애기괭이사초
 벼과  수크령,강아지풀,조개풀,억새,왕바랭이,민바랭이,솔새,큰기름새,주름조개풀,메귀리, 오리새, 포아풀, 염주  난초과  은대난초  명아주과  흰명아주
 돌나물과  돌나물  피나물과  수까치께  삼백초과  약모밀(식)
 자리공과  미국자리공  마디풀과  호장근,개여귀,애기수영,며느리배꼽  괭이밥과  괭이밥
 미나리아재비과  꿩의 다리  박주가리과  박주가리  꼭두서니과  꼭두서니,갈퀴덩굴
 가지과  배풍등,까마중  메꽃과  메꽃, 미국나팔꽃  질경이과  질경이
 현삼과  주름잎  닭의장풀과  닭의장풀,자주달개비(식)  붓꽃과  범부채(식)각시붓꽃,노랑창포꽃(식)
 속새과  쇠뜨기  고사리과  고사리  현삼과  큰개불알풀, 선개불알풀

 

 지치과  꽃마리  비름과  가는 털비름  십자화과  다닥냉이,속속이풀,냉이
 배추과    제비꽃과  흰제비꽃,제비꽃, 호제비꽃,고깔제비꽃,남산제비꽃  현호색과  산괴불주머니
 석죽과  장구채,개미자리,유럽점나도나물,별꽃,벼룩나물  비름과  쇠무릅  백합과  맥문동,둥굴래,부추,애기나리,무릇,왕원추리(식)
 아욱과  난쟁이아욱,접시꽃(식)  골풀과  청비녀골풀, 꿩의 밥  꿀풀과  광대나물,배초향,익모초,산박하,금창초,산골무
 삼과  환삼덩굴  원지과  애기풀  대극과  등대풀
 노루발풀과  노루발풀  앵초과  큰까치수영  천남성과  반하, 천남성
 운향과  백선  도라지과  도라지  파리풀과  파리풀
 ※ 이끼류  우산이끼, 솔이끼  바늘꽃과  달맞이꽃  쇠비름과  쇠비름

※ 2015.4.12 용담과 구슬봉이 추가

 

사실 지난 2009년 초부터 꾸준히 관찰해 왔다.  20년 이상 일해왔던 부산환경운동연합에서 사직서를 내고 안식년에 든 다음 달리 마음 둘 때가 없었다.  통일동산은 사색과 재기를 다짐하며 산책하던 장소였다.  그때 유난히 눈에 띄었던 나무가 팔손이 였다.  겨울 숲에서 팔손이는 쉽게 눈에 들어 왔는데, 살펴보니 주변에 개체수가 많았다.  누군가 심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번식이었다.   그래서 개체수가 얼마나 되는지 전수조사까지 했다.  대상 수종은 팔손이나무를 비롯하여 구골나무, 광나무였다.  다음으로 생각했던 것이 왜 이 수종들이 통일동산에 유난히 많은가 였다.  통일동산 주변을 산지와 활령산을 일부러 찾기도 했다. 통일동산은 약 98,7153 제곱미터  정도 되는데 3만평이 조금 못된다.  어쨌든 인근 도심 야산과는 좀은 다른 식생대를 보이고 있어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언급한 수종들은 서사면에도 있지만 비교적 음지인 북사면에 많다.  매개는 이곳에 터 잡고 사는 새들이 아닐까 추측한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이 직박구리들이고, 그 다음은 딱새,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쇠딱다구리, 참새순이다.  까마귀와 까치, 때까치도 있다.  아주 가끔식 맹금류가 보이기는 하나 대부분 이동중 스쳐가는 곳으로 보인다. 그리고 봄이면 호랑쥐바귀가 어김없이 깃든다.  

아왜나무

광나무

 

후박나무

 

백량금

꽝꽝나무

후피향나무

관음죽

 

 사철나무와 팔손이

 

통일동산의 식생은 어쨌든 자기증식을 통해 각자의 세력들을 넓혀가고 있다.

비록 작은 면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풍부한 그런 통일동산이기를 희망한다. 

머귀나무

 

 

 

 

 

A Place In The Sun-Sandy Pos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