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창 김용택
뜨락에서 고은
하루의 일을 끝내고 유승도
모르는 척, 아프다 김상호
간결 이정하
마지막 편지 안도현
짧은 낮잠 문태준
탐진강 13 위선환
얼마나 좋을까 원태연
구두 한 켤레의 시 곽재구
다시오는 봄 도종환
너에게 신동엽
아득한 한 뼘 권대웅
꿈꾸는 지팡이 서상만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선천성 그리움
만찬(晩餐)
흔들린다
강 안도현
풍경(風磬) 민병도
장국밥
가족 윤제림
돌멩이 하나 김남주
뗏목 신경림
12월의 연가 김준태
엄마걱정 기형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기다림 곽재구
선운사에서 최영미
천장호에서 나희덕
‘큰 물’- 함민복
환생 백무산
삶 푸슈킨
키스 조정인
나무가 오고 있다
그대가 있음으로 박성준
목소리
자모의 검 여정
내일 장석남
벽에 걸린 연못
가을볕
오동(梧桐)꽃
적막이라는 상처 배영옥
무량사 가는 길
키스
눈을 보며-문정희
自勉(자면)- 호치민
공공도서관 전윤호
https://www.youtube.com/watch?v=U97mKbD6DwI&list=RDXXECRwM881Y&index=2
방창 김용택
산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 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
하얀 눈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뜨락에서 고은
무슨 북극권 오로라 파열 같은 항홀경이야
어찌 내 앞에
택도 없이 와 있으리오
지금
명자나무 가시 줄기에 달린
이쁘디 이쁜 꽃에
좀스러이 추운 벌이 와 떨리는 사랑이면
더 뭘 빌어마지 않으리오
하루의 일을 끝내고 유승도
도랑물에 손과 얼굴을 씻고 일어나
어둠이 내리는 마을과 숲을 바라본다
끄억끄억 새소리가
어슴푸레한 기운과 함께 산촌을 덮는다
하늘의 하루가 내게 주어졌던 하루와 함께 저문다
내가 가야 할 숲도 저물고 있다
사람의 마을을 품은 숲은 어제처럼 고요하다
풍요롭지도 외롭지도 않은 무심한 생이 흐르건만,
저무는 것이 나만이 아님이 문득 고맙다
모르는 척, 아프다 김상호
술 취해 전봇대에 대고
오줌 내갈기다가 씨팔씨팔 욕이
팔랑이며 입에 달라붙을 때에도
전짓줄은 모른는 척, 아프다
꼬리 잘린 뱀처럼 참을 수 없어
수많은 길 방향 없이 떠돌 때에도
아프다 아프다 모르는 척,
너와 나의 집 사이 언제나 팽팽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인연이란 게 있어서
때로는 축 늘어지고 싶어도
때로는 끊어버리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감전된 사랑이란 게 있어서
내가 없어도 나는 전깃줄 끝의
저린 고통을 받아
오늘도 모르는 척,
밥을 끓이고 불을 밝힌다
가끔 새벽녁 바람이 불면 우우웅....
작은 울음소리 들리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인연은 모르는 척
간결 이정하
별과 별 사이는 얼마나 먼 것이랴
그대와 나 사이,
붙잡을 수 없는 그 거리는
또 얼마나 아득한 것이랴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갈 수는 없다
그 간격 속에 빠져 죽고 싶다
마지막 편지 안도현
내 사는 마을 쪽에 쥐똥 같은 불빛
멀리 가물거리거든
사랑이여
이 밤에도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마음인 줄 알아라
우리가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헤어져 남남으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듯
사로 다른 길이 되어 가더라도
어둠은 또 이불이 되어
우리를 덮고 슬픔도 가려 주리라
그대 진정 나를 사랑하거든
사랑했었다는 그 말은 하지 말라
그대가 뜨락에 혼자 서 있더라도
등 뒤로 지는 잎들을 내게 보여 주지는 말고
잠들지 못하는 밤 그대의 외딴집 창문이 덜컹댄다 해도
행여 내가 바람되어 두드리는 소리로 여기지 말라
모든 것을 내주고도 알 수 없는 그윽한 기쁨에
돌아 앉아 몸을 떠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이제 이 세상을 나누어 껴안고 우리는 괴로워하리라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말라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대가 길이 되어 가거라
짧은 낮잠 문태준
낮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꽃을 보내고 남은 나무가 된다
혼(魂)이 이렇게 하루에도 몇번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질 때가 있으니
오늘도 뒷걸음 뒷걸음치는 겁 많은 노루꿈을 꾸었다
꿈은, 멀어져가는 낮꿈은
친정 왔다 돌아가는 눈물 많은 누이 같다
낮잠에서 깨어나 나는 찬물로 입을 한번 헹구고
주먹을 꼭 쥐어보며 아득히 먼 너울에 산다는 산꿩 우는 소리 듣는다
오후는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다
탐진강 13 위선환
깊어진 것이 무엇인가
헤아려 보아야 고작
속내거나 골이거나 주름살이거나
아니면 그리 아픈 그리움일 것인데
장흥읍에 가서 보았다
깊어진 사람이면 똑같이
들여다보며 사는 것
사람들은 하나씩
강을 가르고 있었다
얼마나 좋을까 원태연
너의 작은 두 손에
붉은 장미가 아니더라도
하얀 안개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 전해줄 수 있는
꽃 한 송이 안겨줄 수 있다면
너의 맑은 두 눈에
그리움이 아니더라도
보고픔이 아니더라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어떤 느낌이 비추어진다면
어느 한 사람이
내 생각으로 마음고생을 한다면
목 메이도록 나를 그리워 해
전화벨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 앉는다면
많이 미안하겠지만
그러고 산다는 걸
내가 알게 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너였으면
구두 한 켤레의 시 곽재구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소리가 묻어있다
겨울 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쑥골 상여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 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다시오는 봄 도종환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이 납니다
기러기 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너에게 신동엽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 가진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 터
새순 돋듯
허구많은 자연 중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아득한 한 뼘 권대웅
멀리서 당신이 보고 있는 달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한 동네지요
이곳 속 저 꽃
은하수를 건너가는 달팽이처럼
달을 향해 내가 가고
당신이 오고 있는 것이지요
이 생 너머 저 생
아득한 한 뼘이지요
그리움은 오래되면 부푸는 것이어서
먼 기억일수록 더 환해지고
바라보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꿈속에서 꿈을 꾸고 또 꿈을 꾸는 것처럼
달 속에 달이 뜨고 또 떠서
우리는 몇 생을 돌다가 와
어느 봄밤 다시 만날까요
꿈꾸는 지팡이 서상만
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네
평생 나에게 기댄 아내
내가 그녀의 지팡인 줄 알았는데,
떠나고 알았네
그녀가 나의 지팡이었네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 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셧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 거렸습니다
눈물 왜 짠가
선천성 그리움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만찬(晩餐) 함민복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흔들린다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커져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이직하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강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풍경(風磬) 민병도
부처님 출타 중인 빈 산사 대웅전 처마
물 없는 허공에서 시간의 파도를 타는
저 눈 큰 청동물고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뼈는 발라 산에 주고 비늘은 강에나 바쳐
하늘의 소리 찾아 홀로 떠난 그대 만행(卍行)
매화꽃 이울 때마다 경(經)을 잠시 덮는다
혓바닥 날름거리며 등지느러미도 흔들면서
상류로, 적요의 상류로 헤엄쳐 가고 나면
끝없이 낯선 길 하나 희미하게 남는다
장국밥 민병도
울 오매 뼈가 다 녹은 청도 장날 난전에서
목이 타는 나무처럼 흙비 흠뻑 맞다가
설움을 붉게 우려낸 장국밥을 먹는다
5원짜리 부추 몇단 3원에도 팔지 못하고
윤 사월 뙤약볕에 부추보다 늘쳐져도
하교길 기다렸다가 둘이서 함께 먹던 .....
내 미처 그때는 샘하지 못하였지만
한 그릇에 부추가 열 단, 당신은 차마 못먹고
가족 윤제림
새로 담근 김치를 들고 아버지가 오셨다
눈에 익은 양복을 걸치셨다
내 옷이다,한 번 입은 건데 아범은 잘 안 입는다며
아내가 드린 모양이다
아들아이가 학원에 간다며 인사를 한다
눈에 익은 셔츠를 걸쳤다
내 옷이다, 한 번 입고 어제 벗어놓은 건데
빨랫줄에서 걷어 입은 모양이다.
돌멩이 하나 김남주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뗏목 신경림
- 봉암사에서
뗏목은 강을 건널 때나 필요하지
강을 다 건너고도
뗏목을 더메고 가는 미친 놈이 어데 있느냐고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
명진 스님이 하던 말이다
저녁 내내 장작불을 지펴 펄펄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절방
문을 열어 는개로 뽀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곰곰 생각해 본다
혹 나는 지금 뗏목으로 버려지지 않겠다고
밤낮으로 바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떠메고
뻘뻘 땀 흘리며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2월의 연가 김준태
겨울이 온다 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으리
멀리서 밀려오는 찬바람이
꽃과 나무와 세상의 모오든 향기를 거두어 가도
그대여, 나는 오히려 가슴 뜨거워지리
더 멀리서 불어오는 12월 끝의 바람이
그 무성했던 그림자마저 거두어 가버릴지라도
사랑이여, 나는 끝끝내 가슴 뜨거워 설레이리
저 벌판의 논고랑에 고인 조그마한 물방울 속에서도
때로는 살얼음 밑에서도 숨쉬며 반짝이는 송사리떼들
그 송사리떼들의 반짝임 속이라도 내마음을 부벼 넣으리
어쩌면 상수리 나무 몇 그루처럼 산등성이에 머무는
우리 시대 그대여, 겨울의 그 끝은 ..
오히려 사랑의 처절한 불꽃으로 타오르리
지금은 두 손뿐인 그대여
엄마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幼年)의 윗목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시를 쓴다는 것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기다림 곽재구
- 연 화리 시편 10
이른 새벽
강으로 나가는 내 발걸음에는
아직도 달콤한 잠의 향기가 묻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 중
눈빛 초롱하고 허리통 굵은 몇 올을 끌어다
눈에 생채기가 날 만큼 부여댑니다
지난밤,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강둑에 매인 채 출렁이고
작은 물새 두 마리가 해뜬 쪽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갑니다
사랑하는 이여
설령 당신이 이 나루터를
영원히 찾아 오지 않는다 해도
내 기다림은 끝나지 않습니다
설레이는 물살처럼 내 마음
설레이고 또 설레입니다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것은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천장호에서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맹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큰 물’- 함민복
옛사람들은 큰물이 났다고 하였으나
우린 水魔란 말을 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물길을 막은 것 아닌가
물의 길에 우리가 살고 있었던 것 아닌가
바닷물을 데워
하늘로 올라가는 수증기의 길에 속도를 가했고
땅으로 내려오는 비의 길을 어지럽혀
어쩔 수 없이 폭우가 쏟아진 것 아닌가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라니
수마란 말은 차마 입에도 담지 말자
우리 몸이 물이고
물이 생명인데
물을 魔라고 하면
너무 자학적이지 않은가
너무 반성이 깊지 않은가
#온실가스 중 가장 많고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물질은
수증기(물)입니다.
햇님이 바다를 증발시키는 것이니
사람이 통제할 수 없어
규제를 못할 뿐입니다.
대기온도가 섭씨 2도 올라가면
수증기가 얼마나 늘어날까요?
빙하기와 간빙기의 기온 차이는
연평균기온 기준 섭씨 5도입니다.
그 차이 때문에 바닷물의 높이가
지금처럼 150미터 올라왔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전설이 아닙니다.
인류가 지금처럼 살면
지금보다 100배 정도의 비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선조가 될지도 모릅니다!
* 두물머리 가정천 하구의 어부
환생 백무산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거냐고
무슨 도통한 것이 있느냐고
이치에 닿는 믿음이냐고
몸을 갈아입을 수 있는 거냐고
그럼 그걸 어쩌란 말이냐
과잉과 결핍과 상실을 어찌란 말이냐
천년을 뜬눈으로 기다려온 사랑이 있는데
죽음보다 아픈 사랑이 얼마나 많은데
질식하도록 넘치는 눈물이 있는데
죄 없이 희생된 무고한 피눈물이 얼마나 많은데
생을 초과하는 사랑이 얼마나 많은데
죽음을 초과하는 눈물이 얼마나 많은데
삶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힘겨운 날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가 슬프다 해도
모든 것은 하염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훗날 그리워지리니.
달팽이 최승호
달팽이는 빗물을
어머니의 눈물이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렇지 않으면
비 온 뒤
죽음을 무릅쓰고 기어나올 리 없다
그것도 형제들끼리 함께 기어나와
사람들 발에 무참히
밟혀 죽을 리 없다
키스 조정인
그때, 나는 황홀이라는 집 한 채였다
램프를 들어 붉은 반점이 어룽거리는 문장을 비췄다 인화성이 강한 두 개의 연료통이 엎어지고 하나의 기술이 탄생했다 두 점, 퍼들대는 얼룩은 일치된 의지로 서로에게 스미었다 무풍지대에서도 불꽃은 기류를 탔다 불꽃은 불꽃을 집어삼키며 합체됐다 불꽃형상을 한 혀에 관한 속설이 꿈속에서 이루어졌다 한 줄, 문장이 타올랐다 나는 심연처럼 깊게 타르처럼 고요하게 끓을 것이다
나무가 오고 있다 조정인
나무의 월식(月蝕) 지나 우리는 겨울을 통과했다
나무 안에 펼쳐진 백사장으로 물 들어오는 소리 아득한 잔설(殘雪)의 날들 지나
기억의 잠복기를 마친 나무의 미열을 누가 꽃이라 불렀나 우레의 마른 울음이
꽃눈에 닿기 직전, 날개를 퍼덕여 착지한 흰 빛에서 태어나 점차 분홍으로
접어든 시간을 벚꽃이라 불렀나
봄날의 대부분을 나무에 기대 보냈다 나무는 방금 도찯한 연푸른 저녁을
흐린 오후에 잇대는 일을 묵묵히 수행해갔다 그것은 망각 속으로 스며든
기억의 회로를 제 몸에 새겨놓는 일 나이테를 되돌리면
현악사중주의 음색이 느리게 풀렸다
나무는 그때 초신성을 겪는 한 그루 늙은 별
어제는 나무 속으로 사라지는 시간을 따라가 아무 기다림도 없이 전생의/
한 때 같은 꽃그늘 아래 우두커니 앉았었는데 어느, 뱀처럼 슬프고 사슴처럼/ 향기롭던 한 시절을 실은 운구가 나무를 한 바퀴 돌고 나가는 거였다
나무가 저마다의 망각 안에 환하게 깨어 불타는 사월
오늘은 벚나무 한 그루를 보내고 왔다 망각을 되짚어 가려는 듯 스스로 일으킨
폭설 속으로 멀어지는 나무 이 거리는 도열해 있는 가로수의
기억과 망각의 힘으로 계절이 발생한다
저기, 또 다른 분홍이 기미를 데리고 나무가 오고 있다 행려환자처럼
다리를 절뚝이며 혹독한 기다림으로 가슴의 절반이 사라진
자귀나무 한 그루
그대가 있음으로 박성준
어떤 이름으로든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아픔과 그리움이 진할수록
그대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별과 바다와 하늘의 이름으로도
그대를 꿈꾼다
사랑으로 가득찬 희망 때문에
억새풀의 강함처럼
삶의 의욕도 모두
그대로 인하여 더욱 진해지고
슬픔이라 할 수 있는 눈물조차도
그대가 있어 사치라 한다
괴로움은 혼자 이기는 연습을 하고
될 수만 있다면
그대 앞에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고개를 들고 싶다
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그대의 언어들
아픔과 비난조차도 싫어하지 않고
그대가 있음으로 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감당하며 이기는 느낌으로/ 기쁘게 받아야지
그대가 있음으로
내 언어가 웃음으로 빛난다
목소리 박성준
아무도 그 우물이
땅의 성대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뒤란 깊숙이 비바람이 스미면
우물벽 틈사이 이끼의 뺨을 스쳐
우물 수위를 조절하던 성대,
바람의 기억을 간직한 물결은
우우, 남 몰래 돌아 울었다
땅의 목소리는 삼베적삼 향이 났다
툇마루에 뒤틀려 앉은 어머니가
더듬더듬 젖무덤을 찾는 아이처럼
까치발 들어 두레박을 내렸다
사라진 시간을 길어 올리며
땅은 가르랑 가르랑 가래가 끓고
후박나무 잎새로 입술을 떨었다
달빛의 사연을 함구한 장독들이
어머니 대신 곰삭아 부풀어 오르고
농민시위 현수막이 수의처럼 울었다
나는 내 왼쪽 갈비뼈 쯤에서
유년의 노랫소리를 만지작거렸다
점점 어둠으로 침식하는 목소리가
밤새 우물가에 풀벌레를 키워냈다
그 우물이, 어머니의 성대였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 만해축전 전국고교생 백일장 대통령상(박성준이 안양예고 3년일 때 수상)
자모의 검 여정
혹자가 말하길, 입속은 자객들의 은신처란다. 그들이 즐겨쓰는 무기는 '영혼을 베는 보검'으로 전해오는 자모의 검이란다. 을씨년스런 날이면 자객들은 검은 말을 타고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어느 심장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단다. 천지를 울리는 말발굽소리 어느 귓가에 닿으면 그들은 어김없이 이성의 칼집을 벗어던지고 자모의 검을 빼어든단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한 영혼의 목을 뎅거덩 자르고나면 자객들은 섬뜩한 미소로 조의금을 전하고 또 다른 심장을 향해 말 달려간단다. 그날에 귀머거리는 복 있을진저, 자객들의 불문율에 있는 '귀머거리의 목은 칠 수 없다' 는 조항에 따름이라.
혹자가 말하길, 자모의 검에 찔린 사람들은 귀부터 썩어간단다. 귀가 썩고 뇌가 썩고 심장이 썩고, 썩고 썩어 생긴 가슴의 커다란 구멍으로 혹한기의 바람이 불어대고 수많은 까마귀 떼의 날갯짓이 장대비처럼 내린단다. 그 부리에 생살이 뜯기고 새하얀 뼈를 갉히며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단다. 그날에 수다쟁이는 화 있을진저, 더 많은 까마귀 떼를 불러 들임이라.
자객들의 말발굽소리 요란한 날이면 너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두손으로 귀부터 틀어막고 묵직한 바위 뒤에 숨어 최대한 몸을 낮춰라. 그리하면 자객들이 탄 검은 말들이 너희를 비켜가리니, 자모의 검일망정 결코 너희를 해(害)치 못하리라. 귀 있는 자들은 들어라. 이 말로 더불어 너희가 그날에 '복 받았다' 일컬음을 받을지니, 부디 그날에 너희에게 복 있을진저, 혹자의 말이니라.
*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내일 장석남
걸어서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바다가 있었습니다
날개로 다는 날 수 없는 곳에
하늘이 있었습니다
꿈으로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세월이 있었습니다
아, 나의 세월로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내일이 있었습니다.
벽에 걸린 연못 장석남
어느 저녁
연못을 떠다가 벽에 걸었다
거기 놀던 새들은 노는 채로
흔들리는 풀은 흔들리는 채로
풀 흔들고 간 바람은 흔들고 간 바람인 채로
벽에 걸렸다
풀이 눕고 그 위에
바람과 같이 우리가 눕던 자리는
저만큼이다
거기 머물던 적막은 그러나
이제 보니 다 적막은 아니다
못 보았던 샛길이 하나 막 어디론가 가고 있다
다시 얼기 시작하는 窓이다
가을볕 장석남
우리가 가진 것 없으므로
무릎쯤 올라오는 가을풀이 있는 데로 들어가
그 풀들의 향기와 더불어 엎드려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별로 서러울 것도 없다
별 서러울 것도 없
그저 아득히만 가는 길의
노자로 삼을 만큼 간절히
사랑은 저절로 마른 가슴에
밀물 드는 것이니
그 밀물의 바닥에도
숨죽여 가라앉아 있는
자갈돌들의 그 앉음새를
유심히 유심히 생각해볼 뿐이다
그 반가사유를 담담히 익혀서
여러 천년의 즐거운 긴장으로
전신에 골고루 안배해둘 뿐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 없으므로
가을 마른 풀들을
우리 등짝 하나만큼씩만
눕혀서 별로/ 서러울 것 없다
오동(梧桐)꽃 장석남
다른 때는 아니고,
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하고 한참만에 고개를 들면 거기에 오동꽃이 피었다
살아온 날들이 아무런 기억에도 없다고, 어떡하면 좋은가...... 그런 평화로움으로 고개를 들면 보라 보라 보라
梧桐꽃은 피었다 오오
무엇을 펼쳐서 이 꽃들을 받을 것인가
적막이라는 상처 배영옥
적막은
꿈꾸는 자의 이름과 동일하다
다만 들을 귀와 마음이 없을 뿐
새벽 세시의 단면을 잘라보면
시간의 단층 사이
살아 움직이는 소리의 화석을 보게 될 것이다
적막이라는 붉은 상처를 본다
풀벌레의 시간을 지나
새의 시간을 지나
매미의 시간을 지나
적막은 결코 텅 비어 있지 않고
적막은 결코 눈멀어 있지 않고
적막은 귀 막은 몸을 향해 발언하는
빈틈없는 소리들이다
무량사 가는 길 배영옥
무량사 팻말 아래 화살표는 보신탕집을 가리키고 있다
한 팻말 안에 절 이름과 보신탕집 이름이 사이좋게 합방하고 있다
도량 건너에는 오리전문점과 암소갈비집도 있다
일종의 묵계 아래 성업 중인,
개들이 꼬리를 말고 당도하는 저곳에서
향냄새를 말끔히 지운 사람들이 질근질근 개고기를 씹어댄다
하릴없이 화살표를 따라 걷거나
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무량사와 보신탕집까지의 백여 미터 거리
그 짧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독경소리보다 개 짖는 소리에 번번이 마음을 빼앗긴다
죽은 부처에게 바치는 오체투지도
지복을 달래는 향공양도
제 육신마저 흔쾌히 연옥의 불길에 던져버린
견공들의 성불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문득 곰곰 생각해 보니
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소신공양의 정토(淨土)였던가
무량사 가는 길이 까마득하다
키스 – 배영옥
전등 하나 만큼의
조명 갓이 드리워주는 반경만큼의/ 입술,
네 입을 열어라
빛이 어둠에 당도하는 시간이
네가 이곳에 머무를 유일한 기회이므로
네 입술에 묻은 이름을
밟고 지나가겠다
어둠의 안이 저토록 눈부시니,
입술에 오래 닿은 이름은
뜨겁게
한 자리를 고수 중이겠다
바깥에서 안으로 짙어지는 어둠이란
변경할 수 없는 차선 같은 것
조명등 아래가 가장 어둡다
밤의 모서리로 번져가는
네 등 뒤가 가장 캄캄하다
1966년 대구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졸업.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뭇별이 총총』,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가 있음. '천몽' 동인.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창작거점 예술가파견사업>에 선정, 2011.11월~2012.7월까지 쿠바 체류. 2018. 6월 지병으로 타계.
눈을 보며-문정희
눈은 하늘에서 오는게 아니라
하늘보다 더 먼 곳에서 온다
여기 나기 전에
우리가 흔들리는 곳
빈 그네만이 걸려 있는
고향에서 온다
첫살에 부서지는 그대 머리칼이
반가운 것은
그 때문이다
한 생애에 돌아오는
목소리다
우리들의 호기심
우리들의 침묵이 닿지 않는 곳
그렇게 먼 곳에서
눈은 달려와
비로소 한 조각의 빛깔이 된다
自勉(자면)- 호치민
스스로 권면하다
沒有冬寒憔悴景(몰유동한초췌경)
엄동설한의 앙상한 풍경이 없다면
將無春暖的輝煌(장무춘난적휘황)
따스한 봄날의 찬란함은 결코 없으리
災殃把我來鍛煉(재앙파아래단련)
지금 겪는 이 재앙이 나를 단련시켜서
使我精神更健康(사아정신갱건강)
나의 정신을 더욱 굳세게 하리라
(胡志明, 1890~1969)
나는 그대가 언젠가 펼쳐질 것을 안다. 굽어 있던 것이 펼쳐지는 것은 이치의 형세이다.
吾知子之伸有日. 旣屈則伸, 理之勢也.
오지자지시유일 기굴즉신 이지세야
- 서경덕(徐敬德, 1489~1546)
공공도서관 전윤호
저 숲을 이룬 아파트들
손보다 높이 올라간 서가들
창마다 불이 켜진 무덤들
어차피 다 읽어 볼 수도 없는
색인표 하나씩 둘러쓴
잃어버린 왕조의 유물들
내 살아온 얘기 책으로 쓰면
소설책 열 권도 모자라지
월세 올리러 온 노인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퀴퀴한 침묵이 내리누르는
망자들의 열람실에서
눈에 불을 켜고 무덤을 뒤지는 도굴범들
빌릴 수는 있어도
가질 수는 없는 집들
은행이 말한다
당신은 연체 중입니다
대출 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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