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선 미포에서 송정, 세상에 단 하나뿐 인 철길
청사포 지나 구덕포 못미쳐 그 절반 쯤에 돌출된 암반지대가 있다. 해안초소가 바위머리에 얹혀있고 용설란이 군락으로 자라고 있다. 다소 이국적인 풍광이 어린 거기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누군가 북진하는 돌고래떼를 보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에 혹했다. 목격담의 사실 여부를 떠나 살펴보니 과연 고래들의 길이기도 했다. 물론 그날 고래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장소는 새롭게 부상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고래전망대’라 이름 붙여 보았다. 오후들어 폐선부지 철길은 시내 번화가처럼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붐볐다. 낭만을 찾아서 풍광을 즐기기 위해, 동해남부선이 베풀었던 기억과 향수를 찾아서다.
이렇듯 시민들의 발길이 잦아진 것은 2013년 12월 2일 부산과 포항 사이를 오가던 동해남부선 송정역에서 해운대역이 지난 80년간의 역할을 마치고 은퇴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철길을 걸으며 바다를 품었다. 동해 해파랑길과 부산시의 갈맷길 조성에 관여한 바가 있어 돌이켜 보건데 철길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강릉 옥계~정동진 구간과 부산 송정~청사포 구간을 꼽는다. 그것도 걸을 수 있는 구간은 송정에서 미포 구간이 유일하다. 그런데 불과 한달도 채 안된 올해 1월, 부산시는 미포 송정 구간을 제외한 해운대구간의 철로를 죄다 홀라당 철거해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공청회 한번 없이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복아 먹듯 해치운 것이다. 앞서 부산시는 628억원을들여 올림픽교차로~동부산관광단지 구간 11.3㎞ 가운데 9.8㎞와 부전역~올림픽교차로 고가차도 아래 옛 철길 11.2㎞에 산책로와 자전거길 등을 2020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근대산업유산에 대한 부산시의 몰이해를 개탄하며 어처구니 없어 했다.
한편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철도공단)은 폐쇄된 옛 해운대역(2만6836㎡)과 미포~옛 송정역 구간 4.8㎞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민간사업자를 상대로 공모를 했다. 부산의 언론사 3곳이 포함된 컨소시엄 3곳과 기업체 3곳 등 6곳이 사업제안서를 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시민들이 분개했다. 다른 사업자도 아니고 언론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것에 시민의 실망은 극에 달했다. 폐선부지에 시민들의 개발반대 목소리가 깔리기 시작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방적 상업개발에 저항하기 위해 ‘기찻길 친구’란 연대체를 만들었다. 시민의견수렴을 배제한 조급한 개발계획을 성토하고 상업화에 반대하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폐선부지에서 이루어 졌다. 시방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철길에 가득하다.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찾는 이가 많아지자 부산시장 후보들도 상업화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황망한 사실은 시장후보 공약선언 이후 부산시가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공개한 부속서의 내용이다. 부산시가 폐선부지 개발사업과 관련한 협약서 외에 보가 구체적 협조사항을 명시한 것으로 부산시와 철도공단이 체결한 협약이다. 부속서 전체 7개 항 중 네 번째인 '부산시에서 공단에 협조할 사항'을 보면 당초 알려진 것보다 상업개발의 범위가 훨씬 넓을 뿐 아니라 상업개발의 실현을 위해 시가 ‘각종 인허가에 적극 협조한다’ 라고 되어 있다. 나아가 미포~옛 송정역 4.8㎞ 구간을 녹지나 수변공원에서 근린공원으로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근린공원 반경 500m 이내는 상업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폐선부지는 이윤창출의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거기에 시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결정이 가능한 것은 폐선부지의 '소유권'에 대한 관점이다. 철도공단(철로구간)과 코레일(역)은 그들 맘대로 철로를 철거할 수 있고 개발도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실상 동해남부선 폐선부지는 그들의 돈으로 매입한 땅이 아니라, 일제로부터 소유권이 이전된 '공공재'임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향유권'과 '환경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민의 권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직시해야 함에도 외면하고 있다.
다시 걷는다. 왔던 길을 되돌아 미포로 가기위함이다. 느린 걸음으로 침목을 징금다리 삼아 걷는다. 가끔은 외줄타기 하듯 레일 위를 뒤뚱거리며 걷기도 한다. 어떻게 걷던 자유다. 이 길은 둘이 걸으면 아름다운 동행이 되고 혼자 걸으면 명상의 길이 된다. 그 길에 찔레꽃이 만발했다. 바다는 벌거숭이인 채로 마냥 즐겁다. 그 푸른빛 출렁임 앞에 시민들은 속수무책 포로가 되었다. 청사포의 망부송이 등대 사이로 손을 흔든다.
달맞이재 아래 터널을 지나자 활처럼 훤 해운대 해수욕장을 등지고 마천루가 포진해 있다. 새로운 세상이다. 미포에서 송정 폐선철길은 고층과 첨단을 내건 부산의 남아있는 몇 안되는 여백이다. 어쩌면 부수고 덧입혀 낯선 것들과 만나면서 뒤돌아서면 씁쓸해 하던 익숙함으로부터 결별하고 싶다는 바램이 이곳만은 지켜야 한다는 공감으로 변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왕복 9.6km, 그동안 제대로 눈길 주지 못한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마다 일일이 인사하느라 오후 한나절을 소비했다. 일행을 다시 만난 것은 저물녁이었다. (월간 함께사는 길 14년 6월호)
음악출처: 다음 블로그 음악과 여행
Hanne Boel :Can't Run From Yourself 外
'세상과 어울리기 > 칼럼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랑지빠귀 우는 봄밤 (0) | 2015.05.02 |
---|---|
부산에서 유일한 동물원, 야생의 시선으로 보다 (0) | 2014.07.20 |
부산시민공원 스토리- 100년만의 해후- 우리땅 되찾기 운동사 (0) | 2014.05.27 |
오륙도 '씨 사이드'를 시민의 숲으로 (0) | 2014.01.24 |
오륙도와 황령산을 그대로 두어라 (0) | 2013.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