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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동축사 1박2일

by 이성근 2014. 8. 25.

 

2014년 휴가의 흔적을 남긴다.  비 때문에 집에 갇혀 있었다. 날이 개인 21일 해운대 구청 회의갔다 해운대바다를 몇 컷 담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여름 다가도록 해수욕장의 도시인 부산에 살면서 발끝에 물 한번 담구지 않는 것이 이 도시 태반의 삶이다.  이날도 바다 가장자리서 바라만 보고 왔다.  늘 파도처럼 몰려 오는 저 것들의 정체는 뭘까 .  사는 일에 고민이 더해져 간다

22일 어딘가 떠나고자 했다. 통영, 강릉, 제주의 밧들을 떠올렸지만  여러가지 고려끝에 울산으로 정하고 먹내를 데리고 떠났다.  사실 막내는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좀 자유로운 나들이가 되고자 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 여름 방학임에도 제대로 놀 지 못하고 학원을 다녀야 했던 어린 것이 안스러워 데리고 떠났다.

오후 2시 부전역에서 동대구행 열차를 탔다.  기차 시간을 마추느라 집 사람에게 역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막상 떠나자니 이것 저것 챙길 것이 많았다. 더욱이 애 하나 데리고 가는 길이라 그러다보니 시간이 빠듯했다. 집을 나서 문현 로터리에서 차가 막혔다. 대통령이 근처에 온다고...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 대통령이다.  원성이 자자한 이 여름, 정치권은 엉망이다.  그 엉망진창을 국민은 혀를 찬다.

그 답답함을 차창 넘어 푸른 들로 채운다. 잠시지만 눈이 시원하다.  하지만 늘 장면은 바뀐다.  송전탑과 신고리 핵발전소가 태연하다.   오래되고 낡은 그리하여 수시로 고장을 일으키는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일상 속에 감춰져 있다. 정말이지 핵발전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차창으로 펼쳐진 이 평화로움은 언제일지 모르는 시한 폭탄 속의 고요와도 같다.  사람들은 그 위장된 평화에 의지하려 한다

울산 태화강역 소나무의 모양이 어쩐지 안스럽다. 

마중나온 지인의 차를 타고 정자 해변으로 이동한다.

아들은 혼자서 즐겁다.  조간대 웅덩이에서 치어를 잡고 게를 잡으며 너무 재미있어 한다. 다행이다.

아들이 밤 늦도록 낚시를 하는 동안 간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친구들은 늘 과거와 더불어 등장한다. 

자정 가깝도록 마신 술,  덕분에 1박을 절집이 아닌 인근 모텔에서 해결했다.  막내는 그 조차도  재미있어 했다. 

동축사로 향한다.  정자에서 45분 마다 있는 버스를 타고 남목에서 내려, 마중 나온 지인의 차를 타고 산길을 달렸다. 

남목 시장통에서 본 송전탑 무리,   

동축사는 울산시 동구 마골산(摩骨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이다. 573(신라 진흥왕 34) 진흥왕의 명으로 창건되었다. 창건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3 황룡사장륙조(皇龍寺丈六條)에 따르면, 5733월 지금의 울산광역시 태화지방인 하곡현(河曲懸) 사포(絲浦)에 서역에서 온 큰 배가 닿았다. 이 배에는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편지와 황금 3만 푼, 황철 57천근이 실려 있었다. 편지에는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황금과 황철을 배에 실어 인연 있는 국토에 가서 장륙존상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아쇼카왕의 기원을 담은 배는 13백여 년간 16대국(大國)5백중국(中國), 7백소국(小國), 1만 부락을 거쳐 신라에 닿았다고 설명되어 있다. 배에는 장륙상의 모형 불상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에 왕은 황금과 황철로 황룡사 장륙존상을 만들었으며, 모형 불상은 사포 동쪽 부근의 깨끗한 곳을 골라 절을 짓고 모셨다. 이 때 모형 불상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절이 동축사라고 한다.

이를 통해 동축사는 축()의 동쪽, 곧 인도의 동쪽에 있는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934(경순왕 8) 중창하고, 고려 정종(재위: 10351046) 때 옥인(玉仁)이 중수하였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다. 1931년 완성(翫性)이 중수하였으며, 1975년 주지 도암(道庵)이 정주영(鄭周永) 등의 시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이 때 대부분의 건물을 보수하고, 600근의 범종을 주조하여 새로 지은 범종각에 두었다.

동축사 가는 길은 울산 어울길 2구간과 겹친다.

정상부에 염포개항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울산 염포가 1426(세종 8) 웅천(경남 진해), 부산포와 함께 개항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것이다.

동축사는 울산에서 제일 오래된 절이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절은 명성에 비해 아담했다.  일대의 지질이 암반지대인점을 고려하면 경내는 그야말로 아담하고 단아하다. 전각도 많지 않다.  듣기로는 이만큼의 정비도 정몽준씨의 관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관일대 (觀日臺)에서 바라 본 마골산 일원의 픙광

녹음을 넘어서는 녹색바다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금정산 고당봉 금천같은 작은 웅덩이를 머리에 인 바위도 있다.  

본격적인 절 구경에 들었다.

집 뒷편 소나무림

정 입구에는 수령 2백년의 회화나무가 꽃을 피웠다

 

공양시간을 한참이나 넘긴 시간임에도 행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동축사 부엌에 모시고 있는 조왕신

지인이 머무는 요사채에 막내가 심심함을 호소한다.

현재 동축사에는 절 마당 귀퉁이에 서 있는 팽나무와 회화나무가 알추 2백살이된다.  그 나무들이 있어 동축사가 힘을 받는다.

 

동축사가 오래된 절임을 말해주는 삼층석탑 ,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안목있는 이들은 투박하고 옹색하다고 한다. 그나마 기단은 도둑을 맞았다고하니 그래서인지 시민트로 만든 기단위에 얹힌 석탑이 더 못나보나 보다. 그리고 원래 있던 자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동축사에서 마주한 두 물체, 하나는 절에서 키우는 개고 하나는 ?

밤이 익어가고 있었다.  머잖아 추석, 생각함 챙겨야 할 것이 많아 근심이 앞선다.

회화나무를 다른 각도에서 보았다. 어디서 보건 잘 어울린다.

눈 밝은 아들이 발견한 사슴벌레, 주변에 참나무가 많다.  아마도 그 근처에서 온듯하다.

산정은 신갈나무와 상수리, 굴참,  졸참나무가 소나무 더불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인지는 모르나 산불이 났던 것 같다.

솔 숲 바닥에서 일어서고 있는 버섯들

 

 

 

 

 

소나무들은 해송과 적송, 리기다가 한데 자라고 있다.  바람의 영향 때문인지 정상부의 소나무는 척박한 환경에도 긴 긴 뿌리를 뻗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뿌리는 바위를 관통해서 건너편 바위로 이어지고 있었다. 질긴 것

관일대에서 아들이 포즈를 취했다. 두꺼비 형상이라 섬암(蟾岩)이라 불리는 바위다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아름다움을 앞서간 시인묵객들은 동면 팔경의 하나로 삼았다. 바위 우측에 해뜨는 동쪽바다에 있다는 아름다운 빛을 내는 신성한 나무를 의미하는 남목을 다스렸던 감목관 원유영(元有永)이 새긴 부상효채(扶桑曉彩)’라는 글이 남아 있다.

절의 동편 산행로

오늘을 직시하고자 했다. 

동축사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절집이 아닌 모텔에서  1박을 하다보니 동축사의 새벽과 밤, 아침이 주는 그림을 만나지 못한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헤어짐이 아쉬워서인지 지인과 시장통을 찾아 잔을 기울였다.    

홍어와 군소를 안주 삼아 마시다 작금의 심적 부담과 세상사의 고담함을 넋두리 처럼 늘어 놓자  '힘들면 놔 버려라' 던 위로의 말이 새삼 스럽다.

동축사 1박2일 나들이는 그렇게 끝났다.  기차를 타고 귀가하는 길,  휴대폰에 저장된 지난 밤 정자 횟집에서의 노래를 다시 들었다.  

 

 Janis Jop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