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그 아래 장산이 해운대를 굽어 보고 있습니다.
관광지라 무인 등대도 색과 기교를 넣어 눈요기를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요트 한 대가 붙으니 그럴듯한 풍경이 됩니다. 하긴 이 계절에 저렇듯 열려 있는 바다만 보아도ㅓ 시원합니다.
끝없이 이어진 비치 파라솔 아래 해운대의 여름이 익고 습니다.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가 들리는 듯 합니다. 선크림 냄새도 느껴집니다. 조선비치 앞 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
집에서 군것질 할 음식들을 미리 준비해 온듯한 초로의 부부가 정겹습니다.
조금 연배가 낮은 중년의 부부입니다.
친구사이 같습니다. 한때 이럴 때가 있었지요. 그냥 거서 보자 카면 만나서 캔 맥주 몇 개에 땅콩이니 오징어 같은 안주 사서는 가볍게 시간을 즐김니다. 오늘 밤은 모처럼 친구들이 모일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근처에 사는 듯 애기 엄마도 해수욕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한때 하면서...
이 친구는 솔로는 아닌듯 한데... 외로와 보였습니다. 그 눈길을 의식했든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합니다.
아마도 이런 시간을 보내고 싶겠지요.
이들을 보며 문득 처이들의 저녁식사 인지 그냥 식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차림새로 보아 먼데서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신발을 벗어 놓은 것이며 등이 쉬원한 옷차림이 대단히 활기차고 쾌활한 처녀들 같습니다. 아무튼 보기 좋습니다.
본격적인 길 걷기에 앞서 준비운동을 하는 사이 둘러본 장면들을 뒤로 하고 미포를 향해 걷습니다. 흔히'삐끼'라고 일종의 적그적 영업전략입니다. 어디 열대의 나라에서 온 사람 같습니다.
누군가 해운대의 트래이드 마크가 뭐냐고 묻는다면 ? 피서인파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해수욕을 즐김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람 구경입니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면 뉴스의 첫 머리는 매일 갱신되는 피서인파의 숫자 입니다. 이미 100만명을 훌쩍 뛰어 넘는 해운대의 피사인파는 그 자체가 광광상품입니다. 그 덕에 이 바닷가에 한철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입니다. 그들에겐 쨍쨍하고 무더운 날씨만큼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나머진 저절로 알아서 됩니다. 하지만 먹을 것 잔뜩 싸들고 오는 가족단위의 피서객이 늘다보니 그들의 영업전략은 보다 치열합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가족들과 해운대 해수욕장을 간 적이 있든가 생각해보니... 없습니다. 그러면 저들은 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까? 말이100만이지 그 백만 속에 호안도로를 따라 즐비한 호텔 투숙객은 얼마나 될까 ?
특급호텔이 여러개 있다보니 또 주변에 외국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파란 눈의 노란머리 사람들을 보는 일은 이미 익숙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제적 관광지에 걸맞는(?) 현상이랄까요
해운대해수욕장은 해방구입니다. 낮과 밤이 다 끈적끈적 합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런 분위기를 즐기려 찾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하긴 제가 보낸 20대의 해운대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 넘치는 젊음을 주체할 수 없는 해변에 노인네들이 세월을 건너다 봅니다. 좀은 쓸쓸한 광경입니다.
아마도 취업 연수생인듯 합니다.
해운대는 파라솔 광고 각축장이기도 합니다. 각양각색의 색상 속에 기업들의 홍보전이 치열힙니다.
주지하다시피 해운대라는 이름은 신리 말의 석학 고운 최치원의 자(子) ' '해운(海雲)'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가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해운대에들러 달맞이 일대의 절경에 심취되어 머무르며 동백섬에다 ' 해운대'라는 글자를 음각한 이후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전해옵니다만 사람이 북적그리고 전국적 지명으로 알려진 것은 온천을 개발한 이후 입니다. 물론 신리시대 진성여왕이 애용하기도 했다지만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알려졌을 뿐, 본격적 대중적 온천 시대는 개항 후 일본인들에 의해서 였습니다. 여기에 1937년 동해남부선의 개통이 해운대를 명소로 만드는데 이바지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30~40년간 개발에 의해 모래가 유실되면서 원형을 상실하는 등 부작용 또한 가중 되고 있습니다. 해운대구는 이를 방지키 위해 신안 등지에서 모래를 사다 붓다 최근 잠재를 설치, 모래유실을 방어하는 것 같습니다. 방금 온 신문을 보니 ...
지난 2004년 1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실시한 '해운대해수욕장 연안정비사업 타당성 및 기본계획' 용역 결과 지난 1947년에 폭 70m, 면적 8만9천㎡였던 백사장은 2004년 폭 38m, 면적 4만8천㎡로 폭은 34%, 면적은 54% 감소했다.구청은 이에 따라 매년 3천만~4천만원씩 들여 1천200~1천700㎥씩 모래를 투입하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용역 결과 492억원을 투입해 미포와 동백섬에 잠제(수중방파제)를 설치한 뒤 모래를 투입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았지만 예산확보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더군다나 자연환경국민신탁 측도 자체 심의 결과 해운대해수욕장을 '국민적 자산'으로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자연환경국민신탁 김병종 자산운용팀장은 "트러스트 운동은 국민 자산을 대상으로 가능한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는 파라솔 대여 등 상업적인 행위가 발생하고 백사장 복원으로 주변 상가들이 이익을 얻기 때문에 백사장을 순수한 국민 자산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타 해수욕장과 형평성은 물론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국토해양부),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은 국민적 자산이다."(해운대구청) '대한민국 대표 해수욕장'인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 복원을 위해 부산 해운대구가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샌드 트러스트(Sand Trust)' 운동이 최근 정부 관계부처의 '기부금품 모집 승인' 불가 입장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하지만 해운대구는 국민 자산으로서의 해운대해수욕장 의미를 부각시켜 '샌드 트러스트' 운동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2009.7.28 부산일보)
한 때 자문회의에도 참여하긴 했습니다만 현 상황이 이런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국민자산이라 는 것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 동의합니다. 다시 말해 해운대해수욕장이 누구의 바다인가 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쨌던 해운대 해수욕장은 전국에 이름난 만큼 그 명성을 지키기 위해, 또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이며 산책로 등을 갈며 변신을 시도중입니다.
사진의 미포는 2006년 늦여름 풍경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미포라 했을까.
동백섬 너머 용호만이 보이고 거기도 거대한 이파트 군단이 들어 서 있습니다.
미포에서 오륙도까지 왕복하는 유람선이 마침 출발했습니다
이 구간은 제가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동해남부선 철갈을 넘어서면, 아니 차량을 이용하여 달맞이고개로 향할 때 언뜻 스치는 장면 중의 하나인데 부산이 바다의 도시라 하지만 바다를 보기위해서는 사간과 발품을 들여야 합니다. 생활공간에서 고개만 돌리면 건물과 건물사이 수평선이 보이는 도시, 그게 부산이 가져야 할 매력입니다. 이제 그런 공간은 눈을 씻고 찾아야 할 정도입니다. 일본 아오모리의 하코다테 언덕길을 대비시켜 봅니다. 진짜 별 거 아닌데도, 거기서 사람들은 낭만을 찾고 추억을 만듭니다.
동해남부선입니다.
해운대구청이 자랑하는 문텐로드 입구입니다. 왜 하필 문텐로드 라 했는지.
달맞이 고개입니다. 예전에 송정으로 가기 위해 넘던 고개입니다. 바다를 보며 차를 마실 곳이 많습니다. 아쉬운 노릇은 건물이 제 각각이라는 것과 인근 AID아파트가 재개발 이후 주변과 어떤 조화를 맞출지 ...
해송 사이 동해가 보입니다
다리쉼도 할겸 주최측이 마련한 이벤트를 즐김니다.
섹스폰 연주와 판소리, 그런대로 어울림이 좋았습니다
'문텐로드' 라 ? 달밝은 밤 걸어봐야 할 듯 합니다. 감흥이 글쎄요?
철길을 따라 가면 청사포가 나옵니다
마을을 향합니다
그 유명한 소나무 망부석이 있는 곳입니다.
큰 변화는 없어 보임니다만 이런 갯마을을 관광산업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묘가 아쉽습니다. 어째 안목이있다 싶으면 무조건 대형으로 집단화 시키니, 볼품이 없어집니다. 가면 또 오게 민들고 기억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안동 하회가 편의를 중심이 뒀다면 오늘 어떤 곳이 되었겠습니까
송정 고개 아래 손바닥 한 만한 길을 찾아 걷습니다. 여름 긴 해도 저물었습니다.
송정 바다가 보입니다.
굴다리를 지나
송정의 바다와 만남니다. 차로는 고개 넘어지만 그 시간 무수히 스치며 지나왔던 것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왔던 길입니다. 걷기의 맛은 거기 있습니다.
목도 마르고 몸도 덥고, 파도 앞에 풍덩 뛰어 들고 싶었습니다.
점점 해운대를 닮아 가려고 합니다. 참으로 한적한 이곳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상황이 만호이 바뀌었만 송정을 소개할 글이 있어 말미에 덧붙입니다.
열다섯 구비길 넘어 송정을 찾아
가끔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부산이 하늘로부터 참 많은 복을 받은 도시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사실 남해와 동해라는 서로 다른 성질의 바다와 갯벌, 그리고 강하구를 한 도시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오죽하면 해안팔대라는 말이 생겼났을까 싶을 정도로 부산은 수많은 포구와 대(臺)로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해수욕장 많기로도 이름난 도시이다. 다대포, 송도, 광안리, 해운대, 송정, 일광 등등
그러나 그 명성도 이제 뭔가 제 맛을 잃어버린 듯 하여 서운함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어디에서고 하나같은 개발의 바람이 갯가를 그냥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나마 덜 훼손된, 그렇지만 어쩌면 조만간 이곳 역시 다른 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개발의 입김에 녹아 버려 실망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찾아드는 송정으로 가보았다.
송정은 달맞이 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 시각적으로 ‘아, 여기는 다르구나’하는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욕심 같아서는 사진으로 찍어 벽에 걸어두고 싶다는 충동이 그것이다. 어떤 대상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은 거기에 동화되었거나 반했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적어도 사람 복닥거리고 번들거리는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가는 고개길은 그런 비교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한다.
특히 청명한 날 고개 마루에서 바라다보는 바다의 빛깔은 어쩌면 쪽빛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남빛이기도 한, 아무튼 푸른 바다로서 사람의 마음을 바다 속으로 끌어당겨 머물게 하는 묘한 매력의 공간이다. 그래서 호젓하니 남의 눈길 피하여 누군가와 은밀한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곳도 여기다.
지금에사 송정 가는 길이 아파트 우글거리는 신도시를 관통하여 급행으로 연결되지만 원래 송정 가는 길은 ‘열다섯 구빗길’이라 하여 오고가기가 몹시 힘든 길이었다고 한다. 외부와의 소통은 이 길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시절, 송정은 자연이 주는 산물로 큰 어려움 없이 이웃이 가족처럼 지내던 한적한 어촌이었다. 이같은 송정이 변화를 시작한 것은 1963년 부산시로 편입되고 1965년 해수욕장으로 공식 개장되면서부터 였다. 그러나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송정은 여전히 부산의 교외였고 변방이었을 뿐 아니라 교통의 불편과 낮은 인지도로 인해 돈과 사람의 부대낌이 적은 인심 좋은 마을이었다.
송정이 본격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군 휴양지가 개방되면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군 휴양지가 있을 무렵, 청사포 쪽 송정 해변은 철책으로 출입이 통제되었고 그 시절에는 미군도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문득 고약한 기억 하나가 스친다. 80년대 초 어느 여름, 이곳에서 근무하던 친구 녀석이 있어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한국병사들의 행색이 너무 왜소하고 초라했다. 그에 비해 거구의 미군들은 바베큐 요리에 시거를 물고 캔맥주를 박스로 쌓아놓고 조달된 한국인 처자들과 희희낙낙 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병사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경멸스러움과 거만함 그 자체였다. 친구는 그것이 보기 싫어 새우깡에 소주로 분한 가슴을 삭이곤 했다.
참회의 바다
내 사는 어둠의 땅을 돌아
바다에 서면
살아 있음이 부끄러운 아침
파도는 소리쳐 꾸짓는다
무엇을 하였는가
무엇을 바라는가
그리하여 벼랑 끝에 선 난장이
가슴 흐느껴 울다가 울다가...
그날 밤 우리가 시국을 걱정하며 친구들의 안부를 나누며 술 마셨던 백사장 자리는 그대로인 것 같다. 다만 조금씩 변해가는 주변 환경이 수상할 따름이다. 광안리처럼 이곳도 흉물스럽게 변하지는 않을련지.... 해안을 따라 개설된 해안도로와 콘크리트 호안은 고층건물과 함께 해수욕장을 망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서 라고 말하지만 실은 당장의 이익에 눈먼 꼴이다. 송정이 다른 해수욕장과 다른 점은 그래도 양질의 모래사장을 2km 이상 간직하고 있고 수질이 좋기 때문이다. 해운대나 광안리는 그 기회를 상실했다. 지난 50년간 백사장 폭이 100m에서 30m대로 급격히 줄어버린 이유가 자연환경을 경시하면서 인간의 관점으로 함부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 광안리나 해운대의 경우 고층건물의 무분별한 건설과 호안의 축조에 의해 모래가 유실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매년 부족한 모래를 보충하기 위해 그래도 해수욕장인데 싶어 모래를 사다 깔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송정해수욕장이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송정천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래를 공급하는 공장이 계속 가동되기 때문이지만 광안리나 해운대는 그 공장들을 복개하거나 없애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발길을 돌려 용궁사 방면 수산진흥원 가는 길에서 송정해수욕장 쪽으로 돌아다 본다. 새로운 그림이 나타난다. 그새 피어난 안개가 그림을 살아있게 만든다. 희고 붉은 무인등대 사이 청사포 산자락이 죽도위에 오버 랩 된다. 여기에 방파제를 때리고 부서지는 파도. 송정이 기억되는 또 하나의 절경이다. 다시 파도가 온다. 보다 멀리서 보다 크게 떼지어 오고 있다.
(위 글은 부산은행 사보에 연재된 글 중의 하나임)
송정 죽도입니다.
These Eyes - Guess 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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